서론
우리 사람은 평생 동안 많은 일을 만납니다. 어떤 일을 만났는데 우리가 그 일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그냥 지나가 버립니다. 또 다른 일을 만났는데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또 지나쳐 버립니다. 다시 어떤 일을 만났는데도 또 이해하지 못하면 또 놓치게 됩니다. 이런 일이 오랫동안 계속되면 결국 모든 일을 어리둥절하고 분명하지 않게 처리하게 되고, 얼떨결에 살아가다가 나이가 들면 노인성 치매에 걸리게 됩니다. 사실 사람은 기본적으로 깨달음의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만났을 때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그것을 분명히 알려고 하지 않고, 날마다 얼떨떨하게 아무렇게나 처리한다면 결국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어제 나는 샤워실의 받침대를 설치하고 있었습니다. 설치하는 과정에서 앙카 나사를 박아야 했습니다. 앙카 나사는 벽에 구멍을 뚫고 어떤 부품을 넣은 다음 나사를 끼워 설치하는 것입니다. 나사는 기본적으로 벽에 직접 조일 수 없습니다. 벽에 직접 조이면 단단히 고정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앙카 나사가 필요한데, 우리는 한 자매에게 8mm 앙카 나사를 사 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자매가 물어보는 말이 나를 너무 당황하게 했습니다. 내가 8mm 앙카 나사를 사 오라고 했더니, 80mm짜리를 사야 하느냐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80mm면 매입등만큼이나 큰 것인데, 세상에 80mm짜리 앙카 나사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 자매는 이 사물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그 자매가 나와 함께 앙카 나사를 다루는 것이 처음은 아닙니다. 처음에 사 오라고 했을 때는 사 왔는데, 이번에 사 오라고 하니 또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다시 말해, 처음부터 지금까지 이 일에 대해 계속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8mm 앙카 나사는 젓가락 정도의 굵기인데, 그 자매는 12mm 앙카 나사를 사 왔습니다. 12mm 앙카 나사는 손가락 정도 굵기입니다.
손가락만큼 굵은 것과 젓가락만큼 굵은 것을 함께 놓으면 하나는 할아버지 같고 하나는 손자 같습니다. 내가 8mm짜리를 사 오라고 했는데 왜 12mm짜리를 사 왔느냐고 하니, 그 자매가 말했습니다. “아, 지난번에 샀던 것 아닌가요? 지난번에는 온수기를 설치했잖아요. 온수기는 아주 무거우니까 큰 것을 쓴 거예요!”
오늘 나는 여러분에게 이 일을 곰곰이 생각해 보라고 권면하고 싶습니다. 만약 어떤 물건을 만났는데 그것이 앙카 나사라면, 앙카 나사가 무엇인지, 앙카 나사는 무엇을 하는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앙카 나사에는 몇 가지 종류가 있는지, 앙카 나사의 치수와 규격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는 길이이고 하나는 굵기입니다. 이러면 아주 분명하지 않습니까? 내가 답답하게 느끼는 것은, 많은 사람이 대학도 나오고 고등교육도 받았지만, 일을 너무 아무렇게나 처리해서 자신이 만난 일을 얼떨결에 지나가게 한다는 것입니다. 얼떨결에 지나가는 것은 농담이 아닙니다. 오늘 얼떨결에 지나가고 내일도 얼떨결에 지나가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도 얼떨결에 지나가게 될 것입니다.
오늘 나는 여러분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만나는 모든 일을 분명히 이해하십시오. 예를 들어 연애를 한다면, 연애가 무엇인지 분명히 이해해야 합니다. 이해하지 못한 채 얼떨결에 연애한다면 그것이 슬픈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 형제자매 모두가 일을 분명히 이해하는 습관을 기릅시다. 얼떨결에 아무렇게나 처리하지 맙시다. 얼떨결에 아무렇게나 처리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는 언제쯤 내 주변의 사람들과 우리 교회의 형제자매들을 훈련하여, 깨달음에 있어서 사물에 대해 본질적인 인식을 가질 수 있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오늘도 얼떨결에 지나가고 내일도 얼떨결에 지나가면, 귀신이 여러분을 괴롭히지 않고 누구를 괴롭히겠습니까! 귀신은 사람이 분명히 알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할 때 역사합니다. 여러분이 어떤 일을 잘 알지 못하고 분명히 이해하지 못해서, 아는 것 같기도 하고 모르는 것 같기도 하다면 결정적인 순간에 반드시 문제가 생깁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귀신은 반드시 여러분을 죽도록 괴롭힐 것입니다. 일을 할 때 분명하고 확실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말을 나는 이미 여러분에게 몇 번이나 했는지 모릅니다.
얼마 전 한 형제가 운전면허 시험을 보았는데, 네 번이나 보았어도 합격하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그 형제가 나에게 설명하는데, 정말 이상했습니다! 운전면허 시험을 신청하면서 수동변속기를 신청한 것입니다. 내가 왜 수동변속기를 신청했느냐고 물으니 그 형제가 말했습니다. “수동변속기면 앞으로 어떤 차든 운전할 수 있잖아요!” 여러분이 자동차 운전 강사가 될 것도 아닌데 무슨 차든 운전할 수 있으면 뭐합니까? 지금 누가 수동변속기 차를 사겠습니까? 물론 낙후된 곳에는 아직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시험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한 번, 두 번도 아니고 네 번이나 시험을 봤는데도 안 된 것입니다!
수동변속기에는 클러치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형제는 차를 출발시키기도 전에 불합격했습니다. 클러치를 밟은 채로 힘껏 밟고 있으니 차가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핸드브레이크를 내리자 발이 미끄러져 차가 아래로 내려갔고, 그러자 액셀러레이터를 힘껏 밟았습니다. 그는 클러치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어떤 것이든 철저히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오늘 우리가 만나는 일들에 대해 나는 이런 일들을 처리하는 데 시간을 좀 더 써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만나는 일들이 너무 괴롭습니다. 많은 사람이 일을 불분명하게 처리합니다. 앙카 나사 하나도 아무렇게나 사고, 운전면허 시험도 아무렇게나 봅니다! 이해하지 못했다면 반드시 분명히 이해해야 합니다.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함부로 말하면 큰일입니다.
얼마 전 나는 갑자기 한 가지 원리를 깨달았습니다. 이 원리는 아주 흥미롭습니다. 주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마태복음 5장 37절 나는 전에는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이제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직원들에게 “이 일이 어떻게 된 거냐?”라고 자주 물으면, 직원들은 아무 말이나 늘어놓습니다. 그들은 자기 사장을 얼버무릴 수는 있지만 나를 얼버무릴 수는 없습니다! 그들이 나를 얼버무리려고 하면 나는 “그럼 다시 설명해 봐”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그들은 눈을 똑바로 뜨고 흰자위를 드러냅니다. 아무렇게나 말했기 때문에 자기 말의 앞뒤를 맞출 수 없는 것입니다. 왜 이 일이 귀신에게 괴롭힘을 당하게 됩니까? 바로 분명하지 않고 확실하지 않으며, 일을 만났을 때 그것을 분명히 처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일을 분명히 이해하기
우리는 어떤 일을 만나든 그 일을 분명히 이해하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어제 나는 한 가지 일을 만났습니다. 우리 자매 한 명이 나사 조이는 드릴 비트를 가지고 나무에 구멍을 뚫으려고 하면서 나에게 물었습니다. “1단으로 해야 하나요, 2단으로 해야 하나요?” 나는 한참 동안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문제는 1단이냐 2단이냐가 아니라, 드릴 비트를 사용해야 하느냐, 다른 비트를 사용해야 하느냐의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나무를 뚫는 드릴 비트와 벽을 뚫는 드릴 비트는 다르고, 차이가 매우 큽니다. 그 자매는 구멍을 뚫는 비트를 가지고 와서 1단으로 해야 하는지 2단으로 해야 하는지 물었는데, 그 자매가 가지고 온 것은 벽을 뚫는 비트였습니다. 지난번에도 한 형제가 잘못된 비트를 사용해서 벽에 구멍을 내 버렸습니다. 벽을 뚫는 비트는 바로 박아 넣는 방식이고, 나무를 뚫는 비트는 칼날로 깎아 들어가는 방식입니다. 두 드릴 비트는 서로 다르고, 육안으로 보아도 아주 분명하며, 한 번 시험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나는 많은 사람이 기본 개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전동 드릴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앙카 나사도 제대로 알지 못하며, 드릴 비트와 다른 비트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을 만나든 그것을 분명히 이해하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예전에 앙카 나사를 사용해 본 적이 있어도 다음에 사용할 때 여전히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은 앙카 나사의 원리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쇠에 사용하는 것과 나무에 사용하는 것도 구분하지 못합니다. 사람은 아무렇게나 처리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망가뜨리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입니다.
목양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떨결에 하는 목양이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결국 우리를 성장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일을 분명히 이해하는 것은 우리의 책임입니다. 이렇게 여러 해가 지나도록 운전면허 시험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전동 드릴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지만, 우리의 목양은 그래도 꽤 잘 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여전히 얼떨결에 지나가 버리지 않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내가 앙카 나사로 그 받침대를 설치할 때 벽에 박아야 할 나사가 네 개 있었습니다. 나는 위쪽의 나사 두 개를 조이고, 아래쪽의 나사 두 개는 그들에게 조이게 했습니다. 다 조인 후에 내가 확인하러 가 보니 전혀 조이지 않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볼트와 너트가 함께 돌아가서 단단히 조여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나는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내 육체를 강하게 다스리며 서둘러 말했습니다. “괜찮아, 괜찮아. 나사를 제대로 조이지 못한 것도 괜찮고, 목양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도 괜찮아.” 나는 그들의 성장을 보아야 했습니다. 그들도 우리에게 “우리의 성장이 보이지 않으시죠?”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보이지, 보이지”라고 말했지만, 그래도 한숨을 한 번 쉬고 마음속의 화를 억지로 눌러야 했습니다.
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렇게 작은 일도 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가?” 그 자매가 처음 하는 것도 아닌데, 왜 오늘 또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어떤 때는 이해하고 어떤 때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정말 큰 문제입니다. 예전에 내가 한 학생을 가르친 적이 있습니다. 스무 번을 설명하고 나면 이제는 문제가 없겠지 생각했는데, 5분 후에 또 잊어버렸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나는 이 일에 대해서도 앞으로 반드시 답을 찾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이런 일들을 연구하는 것을 아주 좋아합니다. 언젠가는 우리 모두가 이런 일들을 철저히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나는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함부로 말하지 맙시다. 맞는 것은 맞다고 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합시다.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해야 합니다. 모르는 것을 안다고 여기고, 아는 것을 모른다고 여기면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됩니다. 옛사람도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라”고 말했습니다. 아는 것도 모르는 것 같고 모르는 것도 아는 것 같다면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됩니다. 사람이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은 매우 번거로운 일입니다. 일단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면 해결하기 쉽습니다. 자신이 모르는 것을 분명히 알면 됩니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에게 간절히 권합니다. 일을 분명히 이해하십시오. 분명히 이해하지 못하고서 어떻게 하나님의 형상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일하실 때 언제나 매우 분명하고 확실하게 하십니다. 결코 얼떨결에 하시거나 불분명하고 모호하게 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일하실 때 언제나 분명하고 확실하게 하시며, 모든 것을 종류대로 나누십니다.
그런데 한 형제가 홀쏘를 한 통 안에 넣어 두었는데, 그 통은 페인트 통이었습니다. 또 서랍 레일도 있었는데, 한 토막을 잘라 놓고 두 개를 하나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나중에는 그것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위로하며 말했습니다. “족제비가 가져갔나 봐.” 사람은 일을 하다 보면 머리가 혼란스러워지고, 물건도 여기 하나 저기 하나 아무렇게나 놓게 됩니다. 사람은 훈련을 받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우리와 같은 훈련을 받으면 모든 일을 하나하나 분명히 이해하게 됩니다. 10%만 이해해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보다 훨씬 낫고, 20%가 10%보다 낫고, 50%가 20%보다 낫고, 80%가 50%보다 낫습니다.
결론
언젠가 여러분이 정말 영적인 눈으로 모든 일을 꿰뚫어 보고, 모든 일을 아주 분명하고 확실하게 처리하게 된다면, 여러분 자신에게 문제가 그렇게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의 문제도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에게 축복이 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깁니다. 이해하지 못한다면 생각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맹목적으로 아무렇게나 처리합니다. 앞으로 다시 나에게 답을 달라고 한다면, 나는 더 이상 답을 주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 스스로 생각해서 분명히 이해하십시오. 예를 들어 병원이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병원’이라는 두 글자의 의미를 분명히 이해한다면 병원에 대해 얼마나 큰 믿음을 갖게 되겠습니까? 약을 먹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내가 어떻게 된 일인지 알려 주기를 기다리지 마십시오. 내가 알려 준다고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누군가 나에게 “아프면 약을 먹어도 됩니까?”라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먹고 싶으면 먹고, 먹고 싶지 않으면 먹지 마세요.” 확실한 답을 얻고 싶다면 질병이라는 일을 여러분 스스로 분명히 이해해야 합니다. 누군가 나에게 “이 집을 사도 됩니까?”라고 묻는다면, 나는 똑같이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사고 싶으면 사고, 사고 싶지 않으면 사지 마세요.” 나중에 물려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된다면, 그것은 분명히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주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생각한 후에 구체적인 일을 가지고 나에게 물어본다면, 나는 반드시 알려 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여러분이 그저 아주 경직된 태도로 나에게 답만 달라고 하고, 스스로 생각하지도 않고 책임도 지지 않으려 한다면, 나는 별로 알려 주고 싶지 않습니다. 어떤 일이든 반드시 분명히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면 결국 반드시 유익을 얻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