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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창세기 22장 - 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라

2023-02-08 20,677 创世记 创世记22章 创世记第二十二章 祝福 试验 得胜 拣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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创世记22章-神吩咐亚伯拉罕献以撒
  • 1 这些事以后, 神要试验亚伯拉罕,就呼叫他说:“亚伯拉罕!”他说:“我在这里。”
  • 2  神说:“你带着你的儿子,就是你独生的儿子,你所爱的以撒,往摩利亚地去,在我所要指示你的山上,把他献为燔祭。”
  • 3 亚伯拉罕清早起来,备上驴,带着两个仆人和他儿子以撒,也劈好了燔祭的柴,就起身往 神所指示他的地方去了。
  • 4 到了第三日,亚伯拉罕举目远远地看见那地方。
  • 5 亚伯拉罕对他的仆人说:“你们和驴在此等候,我与童子往那里去拜一拜,就回到你们这里来。”
  • 6 亚伯拉罕把燔祭的柴放在他儿子以撒身上,自己手里拿着火与刀;于是二人同行。
  • 7 以撒对他父亲亚伯拉罕说:“父亲哪!”亚伯拉罕说:“我儿,我在这里。”以撒说:“请看,火与柴都有了,但燔祭的羊羔在哪里呢?”
  • 8 亚伯拉罕说:“我儿, 神必自己预备作燔祭的羊羔。”于是二人同行。
  • 9 他们到了 神所指示的地方,亚伯拉罕在那里筑坛,把柴摆好,捆绑他的儿子以撒,放在坛的柴上。
  • 10 亚伯拉罕就伸手拿刀,要杀他的儿子。
  • 11 耶和华的使者从天上呼叫他说:“亚伯拉罕!亚伯拉罕!”他说:“我在这里。”
  • 12 天使说:“你不可在这童子身上下手。一点不可害他!现在我知道你是敬畏 神的了;因为你没有将你的儿子,就是你独生的儿子,留下不给我。”
  • 13 亚伯拉罕举目观看,不料,有一只公羊,两角扣在稠密的小树中,亚伯拉罕就取了那只公羊来,献为燔祭,代替他的儿子。
  • 14 亚伯拉罕给那地方起名叫“耶和华以勒”(就是耶和华必预备的意思),直到今日人还说:“在耶和华的山上必有预备。”
  • 15 耶和华的使者第二次从天上呼叫亚伯拉罕说:
  • 16 “耶和华说:‘你既行了这事,不留下你的儿子,就是你独生的儿子,我便指着自己起誓说:
  • 17 论福,我必赐大福给你;论子孙,我必叫你的子孙多起来,如同天上的星,海边的沙。你子孙必得着仇敌的城门,
  • 18 并且地上万国都必因你的后裔得福,因为你听从了我的话。’”
  • 19 于是亚伯拉罕回到他仆人那里,他们一同起身往别是巴去,亚伯拉罕就住在别是巴。
  • 20 这事以后,有人告诉亚伯拉罕说:“密迦给你兄弟拿鹤生了几个儿子,
  • 21 长子是乌斯,他的兄弟是布斯和亚兰的父亲基母利,
  • 22 并基薛、哈琐、必达、益拉、彼土利(彼土利生利百加)。”
  • 23 这八个人都是密迦给亚伯拉罕的兄弟拿鹤生的。
  • 24 拿鹤的妾名叫流玛,生了提八、迦含、他辖,和玛迦。

《答疑解惑》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창세기》 22장은 매우 훌륭하고 제게 깊은 감동을 줍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치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바치셨다는 사실에 대해 하나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우리 가운데 형제자매들이 저의 섬김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때마다 저는 눈물을 참을 수 없고, 우리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신 것에 감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시지 않으셨다면 오늘날 우리 모두는 저주 가운데 살고 있을 것이며, 구속도 없고, 기도하는 방법조차 몰랐을 것이며, 무엇을 드려야 할지도 몰랐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들이 속박에서 해방되는 것을 볼 때 저는 하나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반드시 한 가지 공과를 배워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가장 귀한 것을 필요로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는 전혀 부족함이 없고, 그것을 탐내지도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하시는 하나님이시며, 시험하신 후에는 우리에게 큰 복을 주십니다. 그 큰 복이 대체 무엇일까요? 사실 중국인명정신학의 몇 가지 중요한 관념은 모두 《창세기》 22장에서 나온 것입니다. 모든 민족이 우리로 말미암아 복을 받고, 우리가 원수의 성문을 차지하며 승리하는 것도 모두 여기에서 비롯됩니다.

이 장의 주제는 바로 《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라》입니다. 절대로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 하나님께 드리라고 하면 아까워하지 마십시오. 어떤 사람들은 입으로는 하나님께 드린다고 말하지만, 막상 중요한 순간이 되면 발바닥에 기름을 바르고 도망갑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면 어떤 사람들에게는 자극이 될 수도 있겠지만, 다른 것은 차치하고라도 성경공부와 스스로 성경을 읽는 시간을 하나님께 드릴 의향이 있는지 보십시오. 많은 사람이 그것조차 하지 못합니다. 실제로 해냈느냐, 해내지 못했느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제가 이것을 말하는 것은 여러분에게 무엇을 요구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하고 싶으면 하고, 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이것이 부족하지 않으십니다.

제가 주님을 믿은 첫날부터 지금까지 보물처럼 얻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저의 저주를 담당하시고 저의 근심과 고통을 짊어지셨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병에서 치유된 것은 저의 병이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제 생명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면, 하나님께 드리지 않고 무엇을 더 남겨 두려 하겠습니까?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면 저는 아마도 뛰어내려 죽는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사는 것이 정말 힘들고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하나님이 계셨고, 제가 찾는 길에서 하나님을 만났으며, 제 생명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고, 제가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때부터 오늘까지 저는 주일예배에 한 번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이사해야 할 경우에도 주일에는 일정을 잡지 않고 다른 시간으로 미룹니다. 다른 시간도 안 되면 사장에게 휴가를 내면 됩니다. 그것이 뭐 대단한 일입니까?

저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제 생명은 하나님께로부터 왔는데, 하나님께 드리기 싫은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저는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가장 좋은 것임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고 나면 하나님께서 큰 복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께 드린다고 할 때, 여러분은 하나님을 위해 여러분이 가장 귀하게 여기고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을 기꺼이 내려놓겠습니까? 제가 여러분에게 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스스로 어떻게 할지 선택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시험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사람이 진정으로 시험을 받아 보아야 자신이 얼마나 되는 사람인지 알고, 자신이 금인지 아닌지 알게 됩니다. 순금은 불에 태운 후에도 여전히 금이지 산화철이나 산화구리로 변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매우 혹독하게 시험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아들을 사용하여 그를 시험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별을 바라보고 달을 바라듯 간절히 기다린 끝에, 마침내 하나님께서 주신 아들 이삭을 얻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아브라함에게 이삭에게서 난 자가 그의 후손이 될 것이며, 그의 후손이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아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삭이 이삼십 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그의 아들 이삭을 바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아브라함이었다면 하나님과 한 번쯤 씨름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늙은 몸인데 하나님께서 그래도 저를 원하시지 않습니까? 제 아들은 말고 저를 사용하시면 안 됩니까? 안 됩니다! 절대로 하나님과 조건을 흥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누구를 요구하시든 그 사람을 드려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느냐고 늘 묻습니다. 저는 차라리 듣지 못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합니다. 들어도 여러분이 행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비극이 아니겠습니까? 아브라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전혀 주저하지 않았으며, 아내와 상의하기 위해 집에 돌아갈 때까지 기다리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 그의 가족과 모든 소유를 다 드릴 테니 아들 이삭만 남겨 두면 안 되겠느냐고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여러분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 자신의 생명과 바꾸고 싶을 만큼 귀한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것을 요구하십니다.

그때 여러분은 하나님께 어떻게 응답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사람을 시험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모르면 큰일입니다. 《창세기》 12장부터 22장까지의 모든 복은 시험을 거친 후에 얻은 것입니다. 시험이 없고 승리가 없으면 복도 없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사람이 되기 시작하십시오. 여러분의 사업이나 자녀가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이라면, 하나님 앞에서 그것을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가장 귀한 분이 되시게 하십시오. 여러분이 내어 드리고 하나님께 바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여러분을 축복하십니다.

많은 사람이, 저를 포함해서, 하나님께 드리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얻을 것을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이 매우 많습니다. 헌금할 때도 복이 어디에 있는지, 왜 아직 복을 받지 못했는지를 계속 생각합니다. 마음속에 드림이 아니라 복만 생각한다면, 드려도 소용이 없습니다.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많지만 선택받은 사람은 적습니다.

성경에는 아브라함 한 사람만 기록되어 있고, “아브라설사”가 된 사람들은 많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시험만 받으면 설사하고 무너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아브라설사”나 “아브라미끄럼” 같은 사람들은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기록해도 별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한 사람만 선택하시고 다른 사람을 선택하지 않으신 것은 많은 사람이 하나님과 조건을 흥정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이 시험을 견디지 못합니다. 가장 귀한 것을 드리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귀하지 않은 것도 드리지 못합니다. 많은 사람은 아직 “아브라설사” 단계까지도 이르지 못하고, 여기까지 온 사람만 해도 이미 괜찮은 편입니다. 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께 드려야 할 때에야 무너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심지어 “아브라설사” 단계에도 이르지 못합니다. “아브람” 단계에서 “아브라녹색”이 되어 얼굴이 파래지고, 도저히 “아브라설사” 단계까지 갈 수 없습니다. 믿는 사람은 많지만 선택받은 사람은 적습니다. 여러분은 선택받는 사람이 되겠습니까, 아니면 선택에서 떨어지는 사람이 되겠습니까? 분명 “아브람” 외에도 “아브라노랑”, “아브라빨강”, “아브라녹색”이 많았을 것입니다. 다만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을 뿐입니다. 아브라함에 이른 사람은 한 명뿐이고, “아브라설사”가 된 사람은 많습니다. 시험을 견디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는 사람들 가운데도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은혜를 주셔서 하나님을 섬기게 하셨지만, 아내나 아들, 돈 또는 여자라는 관문에 이르면 통과하지 못하고 “아브라녹색”이 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과 제가 과연 하나님의 시험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을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을 의향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을 위해 내려놓은 사람입니다. 부모, 아내, 자녀, 밭, 집을 내려놓은 사람입니다. 정말 기꺼이 그렇게 한다면 반드시 큰 복을 받게 됩니다! 이것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입니다. 매일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말씀해 주시기를 갈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과 대화하기를 갈망하기 전에 먼저 여러분 머릿속의 논리 체계를 준비하십시오. 사는 것이 공허가 아니라 소망으로 가득하다고 생각한다면 하나님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그냥 잘 살아 보십시오. 여러분이 가진 이런저런 일이 모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들을 잘 붙들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말씀하시기를 기대하지도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정말 여러분에게 말씀하셔서 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시면 끝입니다. 얼굴이 파래질 것이고, 성경에는 “아브라녹색”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브라이언 웰치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아프리카로 보내 복음을 전하라고 부르셨다고 말했습니다. 나중에 제가 영상을 보니 집회에 모인 사람이 백만 명이 넘었는데, 정말 놀라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이런 일을 맡기신다면 저도 매우 두려울 것입니다. 수백만 명이 모이는 집회에서는 화장실 관리만 해도 후방 지원에서 해결하기 매우 어려운 일이고, 교통 관리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브라이언 웰치에게 말씀하시기를, 그는 첫 번째로 선택받은 사람이 아니고 두 번째도 아니며 네 번째로 선택받은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브라이언 웰치는 하나님께 다섯 번째 사람은 더 찾지 않으셔도 된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사람이 더 있어도 상관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이 몇 명 더 생기는 것을 전혀 신경 쓰지 않으십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말씀하시기를 원한다면 자신을 온전히 드릴 준비를 하십시오. 사실 저는 언젠가 주님과 함께 있게 되기를 늘 꿈꿉니다. 그것은 지극히 좋은 일입니다. 성령으로 첫 열매를 받은 사람인 저도 마음속으로 늘 탄식하며 수고하고 구원을 얻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교회가 지금까지 걸어오는 동안 무너진 사람도 많았습니다. 앞으로도 무너지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무너지면 무너지는 대로 두십시오. 제가 말한다고 되는 일도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분과 저는 무너지지 않는 사람이 되기를 선택하겠습니까?

아브라함의 내면에서 믿었던 것은 무엇인가

브라이언 웰치가 다섯 번째 사람은 더 선택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을 때, 저도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정말 제게 말씀하시기를 제가 첫 번째가 아니라 네 번째라고 하신다면, 저는 하나님께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사람도 선택받게 해 달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 세상에 아브라함이 몇 명 더 있어도 괜찮습니다. 하나님께는 자리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자신의 아들을 바칠 수 있었는데, 당시 그의 생각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아들, 네 독자, 네가 사랑하는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줄 산에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세기》 22:2)

여러분은 상상할 수 있습니까? 그때 이 늙은이의 마음이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그가 믿은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데리고 사흘 길을 가게 하셔서 모리아산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그에게는 사흘 동안 생각하고, 후회하고, 몸부림치며, 심지어 돌아서서 집으로 갈 시간도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제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곳을 멀리 바라보았습니다.(《창세기》 22:3-4)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곳은 훗날 야곱이 돌 하나를 베고 누워 꿈을 꾸며 하늘에 닿은 사다리를 본 곳입니다. 솔로몬과 다윗 시대에 세워진 예루살렘 성전도 바로 이곳에 있었으며, 오늘날의 성전산이 바로 그곳입니다. 사실 그들이 이곳까지 오는 데 그렇게 많은 날이 필요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천천히 걸었습니다. 이 길을 걷는 것이 매우 힘들었고, 한 걸음 한 걸음이 몹시 무거웠습니다. 아브라함은 마음속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을 바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해 주실 수는 없을까?

그러나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나도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칼을 들어 아이를 죽이려 할 때에야 하나님께서 다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칼을 들었고, 아들은 묶여 나무 위에 놓여 있었습니다. 우리는 당시 아브라함이 어떻게 행동했는지 도저히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는 정말로 행동한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르러 아브라함이 그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였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신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사자가 이르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내가 아노라.”(《창세기》 22:9-12)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기를 오랫동안 기다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정말 오래 끄셨습니다. 아브라함의 마음이 무너질 때까지 끄셨습니다. 그 마음이 정말 아팠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프지 않다면 하나님께서 요구하실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 곧 가장 귀한 것입니다. 게다가 하나님께서는 가는 길 내내 이삭에게 나무를 지게 하셨고, 부자가 함께 걸을 때 이삭도 물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가져다가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창세기》 22:6-8)

아브라함은 이때 가슴이 만 갈래로 찢어졌을 것입니다. 이런 시험은 보통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늙은이는 입으로는 하나님께서 준비하실 것이라고 말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했습니다. 만일 어린 양이 이삭이라고 말하면 이 아이가 듣고 도망갈까 두려웠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정말 놀랍습니다. 한 명의 놀라운 아브라함과 또 한 명의 놀라운 이삭이 있었습니다. 이삭이 그곳에 도착해 나무가 준비되자 아브라함은 이삭을 묶었습니다.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제 생각에는 이삭이 스스로 그 나무더미 위에 누웠던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얻은 후부터 두 사람은 줄곧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이야기했을 것입니다. 사람이 사는 것을 공허하게 여기지 않으면 사는 것이 의미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없고, 더구나 자신을 드릴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전도서》를 잘 읽어 보라고 권합니다. 사는 것이 정말 의미 없다고 느낄 때 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가지는 모든 의미는 오직 한 가지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시험을 거치고 하나님께 선택받는 것, 그리고 선택에서 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번에 이삭은 자신을 온전히 드렸습니다. 정말 훌륭합니다! 이런 장면을 상상할 때 아브라함과 이삭이 울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한 사람은 기쁘고 즐겁게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을 드렸고, 다른 한 사람도 기쁘고 즐겁게 자신을 드렸습니다. 저도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사람이 육신 가운데 살아가며 성령으로 첫 열매를 받았을지라도 마음속으로는 지금까지 탄식하며 수고합니다. 여러분이 사는 일을 너무 중요하게 여기면 자신을 하나님께 드릴 수 없습니다. 저는 형제자매들이 사람이 사는 것이 공허하고 아무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모두 알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여러분이 사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을 뿐 아니라 여러분의 자녀가 사는 것도 아무 의미가 없는데, 대체 무엇을 그렇게 붙들고 씨름하고 있습니까?

오늘 살아가는 일을 꿰뚫어 보게 되면 정말 선택받게 됩니다. 여러분은 “아브라녹색”도 되지 않고 “아브라설사”도 되지 않으며 반드시 아브라함이 될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 없이 사는 것, 하나님께 드릴 수 없는 것이 아무 의미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사는 것은 반드시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야 합니다. 이것은 지극히 좋은 선택입니다. 정말 그렇다면 여러분은 자신의 득실 때문에 씨름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씨름하게 될 것이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 다시 해산의 고통을 겪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안에 있어야 할 소망과 논리입니다. 곧 사는 것이 의미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시간에 생방송도 해야 하고, 사업도 해야 하고, 고객도 만나야 하니 하나님께 드릴 시간이 없다고 더 이상 고민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실제적인 일을 하라고 말하면 많은 사람이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고 실제적인 일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결국 하나님을 내버려 둡니다. 사업, 고객, 자녀의 일들이 우리가 붙들고 씨름하는 일이라면, 그것은 정말 삶을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계속 왔다 갔다 하며 얽혀 있을 뿐 아무 결과도 나오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제 말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오늘까지 온 것은 아직 아브라함만큼 “아브라함”답지는 못하지만, 제 안에 결코 “아브라설사”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많은 일을 비교적 분명히 보고 있습니다.

이 일은 하면 하고, 하지 않으면 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을 일은 아닙니다. 한다면 그것은 제게 주신 은혜이고, 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그분의 두 손으로 만물을 붙드십니다. 저는 이 세상에 와서 한 번의 시험을 치르는 것뿐이며, 반드시 선택받아야 합니다. 교회를 세우는 일도 저를 속박하는 것이 될 수 없고, 어떤 일이든, 설령 실제적인 일을 하는 것이라도 저를 속박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저는 가장 아름다운 것을 하나님께 드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저를 데려가신다면 저도 땅에서 내일까지 머물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마음속에는 여전히 많은 염려가 있습니다. 제가 목양하는 이 사람들을 보면, 평소 아무 일도 없을 때에도 사소한 일들을 따지고 계산하느라 마음이 늘 괴로워합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아브라함이 믿은 것과 같아야 하는데, 왜 우리는 기쁘고 즐겁게 하나님께 드리지 못합니까?

하나님께 드릴 때 가슴이 찢어지고 죽을 것처럼 고통스러운데, 정말 그렇게 심각한 일입니까?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시험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고, 우리가 시험을 견딜 수 있는 것은 우리 안에서 무엇을 믿고 있는지 알기 때문이라는 것도 아십시오. 우리 안의 논리 체계가 잘못되었다면 서둘러 바로잡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결코 아브라함이 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번제로 드린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불태워 없애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서 난 자가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서른이 넘은 아들을 이렇게 태워 버린다는 말입니까?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이삭을 잿더미 가운데서 다시 살리셔서 영광스러운 사람으로 만드실 것을 믿었습니다. 이삭도 어릴 때부터 하나님께서 사람을 죽음에서 다시 살리실 수 있다는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죽음에서 다시 살리실 수 있고, 사람에게 영생을 주실 수 있습니다. 사람이 사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으며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이 지극히 좋은 일입니다. 아브라함의 내면에 있던 논리를 분명히 설명하려면 시간이 좀 필요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아브라함의 내면에 있던 논리는 《전도서》의 논리입니다. 사람이 사는 것의 궁극적인 의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마음대로 행하겠습니까?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전도서》 12:13)

여러분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선택받지 못할까 두려워하고, 시험을 받자마자 “설사”해 버릴까 두려워한다면 육신의 욕망을 따라 제멋대로 행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시험하시자마자 “설사”해 버린다면 큰일입니다. 여러분 안에 있는 논리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사소한 일 하나를 두고 계속 얽매이고 따지며, 어디에서 더 했는지 어디에서 덜 했는지를 계산한다면 절대로 시험을 견딜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가장 귀한 분이라면 반드시 하나님을 경외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궁극적인 의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전도서》를 끝까지 읽으면 하나님을 경외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고 날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오늘 가장 두려운 것은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지옥에 던져져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육신의 욕망을 따라 제멋대로 행하게 됩니다. 여러분에게 숨기지 않고 말하자면 저도 마음속으로 자주 괴롭습니다. 때로는 형제자매들의 그런 모습을 보며 다시 해산의 고통을 겪는 것처럼 매우 힘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에 형제자매들을 섬기는 것을 하나님을 섬기는 것처럼 합니다. 어떤 사람에게 질문을 받고 심한 말을 들어 가슴이 답답했던 적도 있지만, 저는 제 육신의 욕망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제가 무엇을 자랑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형제자매 여러분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을 본받는 법을 배우기 시작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정말 좋으신 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사랑하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셨고, 우리를 위해 죽게 하셨으며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여기에 나타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죽음에서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믿지 못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생을 주실 수 있다는 것도 믿을 수 없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다는 사실을 믿지 않으면 평생 육신의 욕망을 따라 살게 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세월과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시는 시험, 그리고 장차 여러분이 행하는 모든 것은 영원으로 가져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영생의 관념이 없다면 세상의 일들을 모두 너무 중요하게 여기게 됩니다. 저도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왔고, 이제는 점점 덜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많은 일은 아무도 하지 않아도 괜찮고, 하루 이틀 늦게 하거나 심지어 한두 달 늦게 해도 별일 아닙니다. 그런 것들이 있어도 없어도 사람은 여전히 살 수 있습니다. 제가 더 하든 덜 하든 상관없고, 저도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 안에 있던 그런 논리가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땅에서 천국처럼, 이 세상에서 영생처럼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생의 한 부분일 뿐입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다면 비극이 될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한 자매는 ‘호랑이 엄마’라서 아이를 매우 엄하게 키웁니다. 그런데 그 아이는 꽤 순종적입니다. 아이가 엄마를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조금은 건강하게 자란 것입니다. 아이가 어릴 때부터 방자하고 제멋대로라면 이번 생은 그만이라고 해야 합니다. 부모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안에서 무엇을 믿고 있는지 다시 세우십시오. 부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을 하찮게 여기고, 하나님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며, 육신의 욕망을 따라 제멋대로 행하지 마십시오. 언제 떨어질지, 언제 무너질지 모르며, 한순간에 하나님께 선택받지 못하게 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바치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바치셨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치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를 시험하신 것일 뿐이며, 사실은 하나님께서 친히 바치셨습니다. 후에 하나님께서는 친히 그분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얼마나 선하신 하나님이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우리의 저주를 담당하시고 우리의 근심과 고통을 짊어지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내어 주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도 하나님을 닮아 내어 주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무엇을 하든 하나님께 하듯 하십시오. 많은 사람이 복을 받고 싶어 하지만 그 복이 어디에서 오는지 모릅니다. 복은 하나님을 본받는 데서 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으므로 우리도 우리 자신을 포함하여 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면 반드시 큰 복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큰 복을 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여러분에게 큰 복을 주실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아들까지 바쳤는데 큰 복을 받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말합니다. 그렇게 말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 가운데 아브라함에게 선언하신 것입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할 것이며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창세기》 22:15-18)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고, 하나님께서는 수십 년 동안 준비하셨으며 크고 작은 모든 시험을 통과하게 하셨습니다. 이삭을 낳기까지 26년이 걸렸고, 이삭이 다시 서른 살까지 자랐으니 모두 56년이 걸린 셈입니다. 거듭된 시험을 거치고, 기근이나 다른 일들도 모두 통과한 뒤, 이삭을 바치는 것이 가장 큰 시험이었습니다. 그 후로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아브라함을 시험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큰 복을 주셔서 그의 후손을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게 하시고, 그의 후손이 원수의 성문을 차지하게 하실 것입니다.

사실 아브라함은 살아 있을 때 그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는 믿음의 눈으로, 영원 가운데서 자신의 후손이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은 것을 보았습니다. 바로 우리가 그 후손입니다. 우리 모두가 아브라함을 본받는 사람이 되고 내어 주는 사람이 된다면, 영원 가운데서 사람을 낚는 어부처럼 많은 사람을 얻게 되고, 우리의 후손은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아질 것입니다. 여러분이 축복할 사람은 매우 많습니다. 땅의 모든 민족이 여러분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원수의 성문을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마귀와 원수를 땅에 내리눌러 짓밟는 것이며, 곧 승리입니다! 성문만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성안에 있는 모든 것도 우리의 것이 됩니다. 여러분은 기업을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후손이 모두 아브라함을 본받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은 육신적인 혈통의 후손이 아니라 영적인 세계에서 아브라함을 본받는 후손입니다. 아브라함을 본받고 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려는 사람은 모두 아브라함의 후손이 됩니다. 알고 보니 이 땅에는 아브라함과 같은 사람이 매우 많습니다.

중국인명정신학이 요구하는 수준은确실히 조금 높습니다. 바로 아브라함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비전은 승리하는 교회를 세우고 땅의 모든 나라와 민족에게 복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육신을 따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세계를 따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선언하신 일이 오늘날 우리 가운데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원수의 성문을 차지해야 합니다. 영적인 세계에서 여러 관문을 통과하고 마귀와 원수를 짓밟아야만 땅의 모든 민족을 축복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큰 복입니다.

간증을 하려면 내가 이것을 얻었다거나 저것을 얻었다고 말하지 말고, 우리가 누구를 축복했는지를 말하십시오. 지난 여러 해 동안 계속 성장하면서 저는 이 시대가 우리로 말미암아 복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점점 더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내어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무엇을 줄 수 있습니까? 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고, 이러한 논리 체계로 그들을 축복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같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부터 큰 복을 받게 하는 것, 이것이 큰 복입니다. 그렇다면 작은 복은 무엇입니까? 기도했더니 아들이 좋은 학교에 갔다거나, 내가 좋은 직장을 구했다거나, 월급이 올랐다는 것들입니다…… 물론 여러분 모두가 재정적으로 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목표는 아닙니다.

주님을 믿은 지 여러 해 된 사람이 하루 종일 그런 일들만 생각하고 그것을 간증으로 말한다면 매우 이상합니다. 오늘 우리는 승리가 중국인명정신학의 중심축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간증하면서 교회 이름도 모르고 그저 승리의 교회라고만 압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승리의 교회로 인도하신 것에 감사한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저도 여러분이 승리의 교회에 온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너의 후손이 원수의 성문을 차지할 것이다

우리가 가장 귀한 것을 드리고, 가장 귀한 것을 모두 내려놓으면 마귀는 더 이상 우리를 속박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원수의 성문을 차지하고, 마귀와 원수를 땅에 내리눌러 짓밟을 수 있으며, 반드시 계속 눌러 둘 수 있습니다. 원수는 반드시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노예가 되어 우리를 위해 일하게 될 것입니다. 중국인명정신학은 승리하는 교회를 세우는 신학 체계입니다. 이곳에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드리고 모든 것을 내려놓으려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승리하지 못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우리 가운데서 치유를 경험했다면 하나님께 빚을 진 것입니다. 여러분이 우리 가운데서 은혜를 받은 것은 이곳에 사도 바울처럼, 주 예수님처럼 자신을 드린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곳은 승리의 장소이며, 마귀와 원수는 철저히 발 아래 짓밟히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위해 가장 귀한 것을 내려놓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까? 원한다면 축하합니다. 여러분은 승리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마귀는 더 이상 여러분을 속박할 수 없습니다!

왜 우리 가운데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이 자주 전화해서 괴롭다고 말합니까? 자녀가 좋지 않거나 남편이 좋지 않거나 사업이 잘되지 않아서 괴로운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하나님 나라가 황폐해졌기 때문에 괴롭다고 전화하는 사람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하루 종일 세상의 사소한 일들 때문에 괴로워하면서도 자신은 꽤 승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것은 마귀에게 땅에 내리눌려 짓밟히는 상태이므로 당연히 괴로운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다시 해산의 고통을 겪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들어 보지 못했습니다. 오늘부터 여러분이 괴롭다면 하나님 나라를 위해 괴로워하십시오. 그것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있습니다.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갈라디아서》 4:19)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형제자매들을 위해 다시 해산의 고통을 겪는 것입니다. 그들이 다시 마귀에게 유린당하고 억압당하며 속박당하는 것을 뻔히 보고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마음속에 늘 자기 몫을 남겨 두고, 하나님께 드리기 싫어하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이렇게 간곡히 권하고, 중요하게 여기지 말고 내려놓으라고 말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선택권은 여전히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께 너무 많은 빚을 졌다고 말하지만, 사실 하나님께 빚진 것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에게 너무 많은 것을 빚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늘 잘못된 선택을 하는데, 그것이 바로 자신에게 빚을 지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이 썩은 두부 같은 것을 전혀 탐내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눈에 한 접시의 요리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자신이 대단한 존재인 줄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한마디 하겠습니다. 제 설교를 들을 때 절대로 거꾸로 듣지 마십시오. 거꾸로 들으면 큰일입니다. 제가 옳게 행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제 마음속의 소리는 늘 제가 충분히 하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늘 제가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 충분히 드리지 못했다고 생각하며, 더 드려야 한다고 늘 여깁니다. 저는 아직 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더 귀한 것이 있다면 다시 하나님께 드릴 것입니다.

지난 여러 해 동안 저는 제가 아직 제대로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까지 오게 되었다고 자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오늘까지도 앞으로 가야 할 길이 어디인지, 어디로 돌파해 나가야 하는지에 대해 자주 고민합니다. 물론 지금 단계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어떤 신학은 삼백 년 전의 단계에 머물러 있고, 그 삼백 년 전의 신학을 오늘날에도 보물처럼 여기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힘써 추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형제자매들을 섬기면서 늘 빚진 마음을 느낍니다. 제가 여러분을 섬기는 것은 다른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기꺼이 하나님을 섬기듯 섬기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제게 맡기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장차 제가 하나님 앞에 나아갔을 때 하나님께 충성되고 선한 종이라는 칭찬을 받고 싶습니다. 부르심을 받았을 뿐 아니라 선택받고 싶습니다. 저는 패배하고 싶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잘하지 못한다고 해서 제가 무너지게 되고 싶지도 않습니다. 여러분이 저를 쓰러뜨리려 해도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비난과 멸시를 받더라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저는 원수의 성문을 차지하고 마귀와 원수를 땅에 내리눌러 짓밟아야 하기 때문에, 반드시 굳게 서서 하나님의 은혜 안에 서기 시작해야 합니다. 제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며, 이것은 지극히 좋은 일입니다. 우리가 오늘 달려가는 길에는 여러 가지 시험이 가득합니다. 시험을 만날 때마다, 혹은 마음이 괴로울 때마다 승리를 선택해야 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께 이렇게 말하기 시작하십시오. “나는 원수의 성문을 차지하겠습니다. 가장 귀한 것을 모두 드리겠습니다.” 이것은 지극히 좋은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창세기》 22장 성경 본문

22:1 이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22: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독자 이삭 곧 네가 사랑하는 자를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22:3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22:4 제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22:5 아브라함이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22:6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가져다가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22:7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22:8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22:9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22:10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22:11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22:12 사자가 이르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22:13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22:14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22:15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22:16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22: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할 것이며 22: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22:19 이에 아브라함이 그의 종들에게로 돌아가서 함께 떠나 브엘세바로 갔고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거주하였더라 22:20 이 일 후에 어떤 사람이 아브라함에게 알리어 이르기를 밀가가 당신의 형제 나홀에게 자녀를 낳았다고 하였더라 22:21 그 맏아들은 우스요 우스의 형제는 부스와 아람의 아버지 그므엘이며 22:22 게셋과 하소와 빌다스와 이들랍과 브두엘이라 22:23 이 여덟 사람은 아브라함의 형제 나홀의 아내 밀가가 그에게 낳은 자손이며 브두엘은 리브가를 낳았더라 22:24 나홀의 첩 르우마라 하는 자도 데바와 가함과 다하스와 마아가를 낳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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