命定神学
推荐评论
命定神学 关闭
【성경공부】에베소서 3장 -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한 몸이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

2025-07-30 26,021 以弗所书

相关经文

以弗所书03章-保罗奉差向外邦人传福音
  • 1 因此,我保罗为你们外邦人作了基督耶稣被囚的,替你们祈祷(此句是照对十四节所加)。
  • 2 谅必你们曾听见 神赐恩给我,将关切你们的职分托付我,
  • 3 用启示使我知道福音的奥秘,正如我以前略略写过的。
  • 4 你们念了,就能晓得我深知基督的奥秘。
  • 5 这奥秘在以前的世代没有叫人知道,像如今藉着圣灵启示他的圣使徒和先知一样。
  • 6 这奥秘就是外邦人在基督耶稣里,藉着福音,得以同为后嗣,同为一体,同蒙应许。
  • 7 我作了这福音的执事,是照 神的恩赐,这恩赐是照他运行的大能赐给我的。
  • 8 我本来比众圣徒中最小的还小,然而他还赐我这恩典,叫我把基督那测不透的丰富传给外邦人,
  • 9 又使众人都明白,这历代以来隐藏在创造万物之 神里的奥秘,是如何安排的,
  • 10 为要藉着教会使天上执政的、掌权的,现在得知 神百般的智慧。
  • 11 这是照 神从万世以前,在我们主基督耶稣里所定的旨意。
  • 12 我们因信耶稣,就在他里面放胆无惧,笃信不疑地来到 神面前。
  • 13 所以,我求你们不要因我为你们所受的患难丧胆,这原是你们的荣耀。
  • 14 因此,我在父面前屈膝,(
  • 15 天上地上的各(或译:全)家,都是从他得名。)
  • 16 求他按着他丰盛的荣耀,藉着他的灵,叫你们心里的力量刚强起来,
  • 17 使基督因你们的信,住在你们心里,叫你们的爱心有根有基,
  • 18 能以和众圣徒一同明白基督的爱是何等长阔高深,
  • 19 并知道这爱是过于人所能测度的,便叫 神一切所充满的,充满了你们。
  • 20  神能照着运行在我们心里的大力充充足足地成就一切,超过我们所求所想的。
  • 21 但愿他在教会中,并在基督耶稣里,得着荣耀,直到世世代代,永永远远。阿们!

여러분 안녕하세요, 에베소서 3장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사실 어떤 면에서 에베소서 3장은 성경 전체에서 가장 탁월한 장입니다. 그 영적 차원의 높이는 결코 평범한 높이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가짐을 새롭게 정돈하여 하나님의 비밀을 참으로 알고, 하나님의 계획을 참으로 알고,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참으로 알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를 참으로 깨닫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온전히 지각(悟性)의 영역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에베소서가 말하는 바, 특히 3장에서 말씀하는 바가 성경 전체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내용임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를 세우고자 한다면 반드시 에베소서 3장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그런 영적 차원의 높이가 없다면, 여러분은 이러한 교회를 세울 수 없습니다. 세워 놓아도 헛수고가 될 뿐입니다. 왜일까요? 교회를 세운 후에도 그런 높이가 없을 뿐만 아니라 마귀에게 짓밟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자면, 교회를 세울 때는 반드시 에베소서 3장의 이 말씀대로 세워야 합니다. 특히 우리 가운데서 교회를 세워갈 때 그러합니다. 왜냐하면 많은 전도자분들이 작은 교회를 이끌며 우리의 나눔을 가지고 성도들에게 전하며 함께 성장해 가고 계신 것을 제가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에베소서 1장을 아주 깊이 전했고, 2장도 아주 깊이 전했습니다. 기억나십니까? 그런데 에베소서 3장은 정말 대단합니다. 훌쩍 뛰어올라 아주 높은 영적 차원에 도달하게 됩니다.

만약 교회를 세우면서 이러한 차원의 높이에서 세우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세울 때, 몇 달 동안 아무도 오지 않다가 한 사람이 교회에 들어오는 것을 보면 마치 보물을 얻은 것처럼 여깁니다. 그래서 온갖 열정을 쏟았는데, 알고 보니 사기꾼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교회에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교회를 세웠지만 하나님의 영광은 없고 마귀의 훼파만 있을 뿐이며, 결국 그 목회자와 동역자들까지 함께 무너져 버립니다.

에베소서 3장의 주제는 바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한 몸이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입니다. 이 주제는 참으로 훌륭하며, 이것이야말로 바울이 전하고자 했던 핵심 관점입니다.

이방인과 유대인의 비밀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그 언약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이 땅의 아브라함이라는 한 사람과 친히 언약을 맺으신 것이니 얼마나 놀랍습니까? 그래서 그가 마지막에 이삭을 바칠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리브가는 이 소식을 듣고 늘 입으로 고백했습니다. "나의 후손이 대적의 성문을 차지할 것이다." 먼 곳에서 이삭에게 시집을 오면서 연애를 해본 것도 아니고, 이삭이 어떻게 생겼는지, 잘생겼는지, 키가 큰지 보지도 못했습니다. 어쩌면 평범했을지도 모릅니다. 리브가는 매우 아름다웠고, 사라도 매우 아름다웠는데, 먼 곳의 미녀가 이삭에게 시집을 온 것입니다. 이는 참으로 부러운 일입니다.

결국 이 언약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거쳐 계속해서 전수되었습니다. 이렇게 전해져 예수 그리스도의 시대에 이르렀습니다.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읽었지만, "아브라함이 땅의 모든 족속의 복이 될 것"이라는 말씀을 읽어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읽고 또 읽었지만 정작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놓쳐버린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땅의 모든 족속에게 복이 되었습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땅의 모든 족속이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한 몸이 되며, 함께 약속에 참여하여 하나님의 교회로 들어가 아브라함의 언약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은 실로 강력했습니다. 얼마나 강력합니까?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창세기 12:3)

아, 세상에! 아브라함은 이 땅에서 도무지 대적할 자가 없었습니다. 이것은 실로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 놀라운 일을 유대인들은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마음이 몹시 편협하여 아무런 의미도 없는 민족적 자부심에 갇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만약 여러분에게 여전히 민족적 자부심이 남아 있어 "유대인은 정말 대단해", "우리 민족은 정말 대단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면, 그것은 바로 우리가 아브라함과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한 몸이 되며, 함께 약속에 참여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브라함의 언약을 얻은 자라는 사실입니다.

아브라함의 언약을 위해 이삭의 아내 리브가는 많은 대가를 치렀습니다. 훗날 룻, 라합, 다윗 등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이 그러했습니다. 물론 제가 명확한 증거를 일일이 다 제시할 수는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때에 이르러 아브라함의 언약과 아브라함이 받은 약속이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임했습니다. 우리는 유대인과 별다른 관련이 없지만, 하나님의 비밀과 지혜는 결코 유대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여기신 것은 무엇입니까? 아브라함의 복이 땅의 모든 민족과 백성에게 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우리 가운데서 축복을 받아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한 몸이 되며, 함께 약속에 참여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얻었다면, 여러분은 누구에게 빚을 진 것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 빚을 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이 있었기에, 비로소 우리가 아브라함과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한 몸이 되며 함께 약속에 참여할 자격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마음이 너무 편협하여 '우리는 유대인이다', '우리에게는 할례가 있고 언약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자부할 것도 없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시대에 유대인들은 참으로 비참하게 로마 제국의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유대인의 역사는 망국의 역사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멸망했고, 유다는 바벨론에 멸망했습니다. 이후 페르시아 제국부터 로마 제국을 거쳐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온갖 굴곡을 겪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큰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것도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입으로는 "그 피의 저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라고 외쳤습니다. 대단해 보입니까? 제가 말씀드리지만, 이는 하나님의 비밀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교회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직분을 사도 바울에게 맡기셨고, 교회를 세우심을 통해 온 땅의 백성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고 참된 유대인이 되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 가운데서 "와, 정말 놀랍다!" 하는 것을 보지 못하셨습니까? 여러분은 우리 가운데서 하나님의 약속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있기에 평생 부족함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아무런 좋은 것에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영업을 잘하는 것이 자신의 능력 때문이라고 결코 생각하지 마십시오. 최근에 직장을 얻은 것도 자신이 잘나서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제가 말씀드리지만,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 때문이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훈련을 위해 여러분을 다소 어려운 환경에 두시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함께 약속에 참여하고, 함께 상속자가 되며, 함께 한 몸이 되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결코 이방인과 유대인을 그렇게 명확하게 구분 짓지 마십시오. 베드로처럼 이방인을 '이방인 개'라고 부르지 마십시오. 한 예로 예전에 어떤 유대인 랍비는 "지구상의 65억 인구는 살 가치가 없고 오직 유대인만이 살 가치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었습니다! 그들이 읽는 창세기와 우리가 읽는 창세기는 같은 창세기입니다. 하지만 그들 내면에는 '나는 유대인이니 대단하고, 돈도 잘 벌고, 유대 자본이다'라는 생각이 가득 차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방인과 유대인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한 몸이 되며,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은혜를 받았다면 그것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것입니다. 치유를 받았다면 예수 그리스도께 빚을 진 것입니다. 은혜를 입었다면 예수 그리스도께 빚을 진 것입니다. 직장을 얻었다면 예수 그리스도께 빚을 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 모든 풍성한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직분을 사도 바울에게 맡기시다

이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인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이 말하거니와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먼저 간단히 기록함과 같으니 그것을 읽으면 내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 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 (에베소서 3:1-6)

이 말씀이 얼마나 훌륭합니까! 제가 말씀드리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도 바울을 택하셨습니다. 왜일까요? 사도 바울의 안에는 이러한 편협한 민족의식이 없었고, 넓은 도량과 가슴을 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마음은 '유대인인가, 이방인인가? 유대인은 사람이고 이방인은 개다'라는 따위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도량은 베드로와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였습니다.

사도행전 15장에서 베드로 일행과 바울은 어떤 합의를 이루었습니까? "바울, 당신은 이방인의 사도요, 우리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유대인만을 섬기겠소. 우리는 이방인들을 섬기는 것이 더럽고 부정하게 느껴지며, 그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라도 하면 역겹소." 이런 마음가짐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이 그런 하나님이시겠습니까?

여러분, 사도 베드로는 배움이 부족하여 글을 잘 몰랐기에 창세기의 깊은 뜻도 제대로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지각이 통하지 못했고, 이것이 비극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지난 3년에서 5년 동안 제가 여러분의 영적 지각이 열리도록 힘써왔습니다. 우리 가운데도 지각이 열리지 않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선악을 분별하는 그 뿌리를 잘라내는 것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지만, 선악을 분별하는 마음을 끊어내려면 지혜와 지각이 있어야 하고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상태에서 빠져나오기 어렵습니다. 지금까지도 깊은 종교적 관념에 사로잡혀 소위 말하는 기도에만 맹신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기도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지각이 없이 아무리 기도해 봐야 베드로보다 조금 나은 수준에 불과하며, 그것으로는 부족합니다.

바울이 왜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았습니까? 그는 영적 지각으로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구약을 읽어보면 아브라함이 받은 약속은 온 인류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까지도 지각이 꽉 막힌 사역자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어떤 사역자가 제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제가 이끄는 사람들과 함께 화인 사명 신학(华人命定神学)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제가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이 사람들을 이끌고 있으니, 제게 가장 소중한 것을 드리겠습니다."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입니까? 지각으로 하나님을 충만히 알고, 지각 안에서 온전한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그에게 특별한 은혜를 나누어 주려 했더니, 그 사람은 "저는 필요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왜일까요? "들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왜 필기까지 해야 합니까? 평생 글자도 몇 자 안 써봤는데 무슨 노트를 합니까?"라고 하는 것입니다. 알고 보니 베드로 같은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직분을 바울에게 맡기셨습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에 갔을 때 그를 붙잡은 자들이 누구였습니까? 바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왜 바울을 잡았습니까? 바울이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지각이 얼마나 닫혀 있었는지를 보십시오.

그러므로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 죽는 법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루살렘은 종교의 영이 극성을 부리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진정한 하나님의 선지자라면 반드시 예루살렘에서 박해를 받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사람이라면,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핍박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종교의 영이 너무나 강력하기 때문입니다.

종교의 영이란 거칠게 말하면 미신에 불과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저 맹목적으로 떠들어댑니다. 오늘날 불교 안에도 청정도량이 없듯이, 교회 울타리 안에도 온전한 정토를 찾기 어렵습니다. 사도 바울처럼 명확하게 깨달은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다 같이 에베소서를 읽지만 읽어내는 내용은 천차만별입니다.

하나님은 왜 이 직분을 바울에게 맡기셨을까요? 바울은 자신이 갇히더라도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을 나누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감옥에 갇힐지라도 이 직분을 감당하리라." 에베소서는 그가 체포되어 감옥에 앉아 있을 때 쓴 서신입니다. 그는 평생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바울이 이러한 사실을 안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계시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어떻게 말했습니까?

바울은 이 직분이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무엇으로 말미암았습니까? 계시로 복음의 비밀을 알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 모든 것을 알게 된 근원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에게 친히 계시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저의 창세기 성경공부를 들으셨다면, 그것은 정말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보적인 말씀이라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자랑이 아니라, 참으로 하나님의 계시로 말미암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처럼 창세기를 풀어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창세기를 깊이 이해해야 합니다. 저는 창세기를 매우 명쾌하게 강해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일목요연하게 풀어드렸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1장을 읽어도 도무지 깨달아지지 않아 무릎 꿇고 2주 동안 매일 마음이 찢어지듯 괴로워했습니다.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수많은 자료를 뒤져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자료도 없었습니다. 많은 자료를 찾아보았지만 그들의 설명에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단순한 지식만을 전하는 것을 보고, 성경을 너무나 엉뚱하게 해석한다고 느껴져 2주 동안 꿇어 엎드려 하나님의 계시를 구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화인 사명 신학은 중화권 사람이 어떻다는 뜻이 아니라, 단지 제가 중화권 사람일 뿐입니다. 사명 신학의 본질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비밀을 참으로 온전히 깨닫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하는 에베소서 역시 남의 것을 베낀 것이 아니며,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그 비밀과 계시로부터 온 것입니다. 바울이 계시를 통해 깨달은 것은 이전 세대에는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과장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친히 그에게 계시하시어 복음의 비밀을 알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유대인의 교회는 어디로 갔습니까? 사라졌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훗날 어떻게 되었습니까? 사라졌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그렇게 계속 가다가는 끝장이 날 것 같았기에 결국 사도 바울을 택하셨습니다. 그에게 복음의 직분을 맡기셨고, 베드로 일행이 세웠던 예루살렘 교회는 흐지부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능력을 사도 바울에게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사도 바울이 세운 교회 가운데 나타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길 필요가 없습니다. 수많은 질병의 치유는 사실 아주 사소한 일에 불과합니다. 여러분에게는 매우 심각한 문제일지 모르지만,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는 지극히 사소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브라함이 받은 언약이 우리에게 임하게 하기 시작하셨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꼭 알아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5대째 모태 신앙인 자매가 있습니다. 그 자매가 직접 고백하기를, 하나님의 은혜나 약속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고 온 집안이 많은 고난을 겪었다고 했습니다. 왜일까요? 복음을 잘못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믿었던 것이 무엇인지 아무도 명확히 설명하지 못합니다. 5대째 맹목적으로 믿어온 것입니다. 그 자매에게 이르러 최근 종교의 영이 꽤 강하게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자매 안에서 수많은 거짓말이 역사했습니다. 저는 담당 목회자가 그녀를 섬기는 모습을 직접 보았습니다. 직장을 얻었는데 머릿속에 걷잡을 수 없는 온갖 생각들이 몰려왔던 것입니다. 저는 깊이 탄식했습니다. 사람이 일생 동안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능력이 하나님의 교회 가운데 나타나야 한다는 사실이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그리하여 참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한 몸이 되며, 함께 약속에 참여하게 하는 것입니다.

결코 잘못 믿지 마십시오. 예수님을 믿는다면서 무엇을 믿는지조차 모릅니다. 무엇을 믿느냐고 물어보면 아무것도 모릅니다. 5대째 신앙이라고 하지만, 이슬람교도 수십 대를 이어갑니다. 정말 알고 믿습니까? 모른다면 잘못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영적 세계는 얼마나 실재적입니까! 영적인 일을 이런 식으로 대하면 엄청난 파탄을 불러옵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예수 믿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오직 천국 가는 것만을 중시합니다. "차라리 병들더라도 천국에만 가면 된다"고 합니다. 병이 나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우리 주 예수님은 우리를 치료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까? 아닙니다. 고난받는 것이 당연하다며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암에 걸리고, 수많은 목사와 사모가 암에 걸립니다. 복음을 잘못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3장을 읽었다면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교회를 세웠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승리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에베소서를 철저하게 통달해야 합니다.

제가 솔직한 이야기를 하나 해드리겠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한 노목사님이 제게 에베소서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책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읽고 또 읽었습니다. 당시에는 온전히 깨닫기 어려웠지만, 너무나 중요하다고 하셨기에 저는 그 말씀을 깊이 새겨들었습니다.

그렇게 읽고 난 뒤, 십수 년 전에 에베소서를 공부했습니다. 비록 지금처럼 명확하지는 않았지만 기본적인 맥락은 같았습니다. 교회를 세우려거든 하나님의 능력이 있는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교회를 세우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교회를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거룩하고 흠이 없는 영광스러운 교회입니다. 거룩하고 흠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교회는 하나님의 지혜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느니라 그러므로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 (에베소서 3:8-13)

여기에는 매우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는 구절입니다. 이는 영적 세계의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자들을 가리킵니다. 이 땅에서 권세를 잡고 있는 자가 누구입니까? 바로 마귀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이후 사망이 이 땅을 지배하고 마귀가 이 땅에서 권세를 잡았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의 부활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가 교회를 통해 이 마귀를 이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께 한 가지 말씀드리자면, 하나님의 수는 7이고, 귀신의 수는 6이며, 사람의 수는 5입니다. 짤막한 일화를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방식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사람을 귀신보다 작게 지으셨습니다. 묻겠습니다. 사람이 육신의 힘으로 귀신을 이길 수 있습니까? 이기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울 때 귀신은 발아래 짓밟히게 됩니다. 사람의 수는 5입니다. 5는 결코 6보다 클 수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를 세움으로 인해 5가 6보다 커지게 되고, 사람은 귀신을 이길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지극히 사소하고 쉬운 일입니다.

물론 우리의 지각이 통하지 않으면 문제가 됩니다. 하나님의 수는 7, 귀신의 수는 6, 사람의 수는 5입니다. 사람은 손가락이 다섯, 발가락이 다섯 개입니다. 열 개라고 하지 마십시오. 한 손에 다섯 개입니다. 그런데 하늘의 타락한 존재들로부터 태어난 자들은 손가락과 발가락이 양손 양발 모두 여섯 개씩이었습니다. 고대의 거인들은 손가락이 여섯 개였으며 매우 강력했습니다. 땅의 딸들을 통해 낳은 자식들이 육손이 거인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작은 여담입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떠합니까? 과거에는 아무도 귀신을 이길 수 없었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사 지금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교회를 세운 최고의 첫 주자가 바로 사도 바울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깊이 이해했습니다. 유대인이었음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가 되어 이방인의 교회를 세웠습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유대인들의 편협한 민족적 자부심에 얽매이지 않고 깊이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 그분의 지혜를 나타내고자 하십니다.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이 땅에서 어떻게 귀신을 이깁니까? 이 땅에서는 무엇을 믿든 귀신을 이길 수 없습니다. 무슨 짓을 해도 귀신을 당해낼 수 없습니다. 중국인의 도교에서도 천인합일(天人合一)을 추구하며 귀신을 이기려 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습니다. 결국 영적 세계에서 아무런 역사도 일으키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담대함과 확신을 얻을 수 있습니다.

교회란 본질적으로 무엇입니까? 교회는 이방인이든 유대인이든 어떤 사람이든 상관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워 영적 세계에서 이 땅을 주관하는 통치자들과 권세 잡은 마귀를 넉넉히 이기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마귀를 이긴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이 땅에서 누가 귀신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주의하십시오. 귀신은 사실 우리 앞에서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귀신이 나타낼 수 있는 유일한 힘은 거짓말뿐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마귀의 거짓말에 속지만 않는다면 귀신을 이기는 것은 지극히 사소한 일입니다. 결코 귀신이 하나님보다 강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가 세워질 때,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 그분의 지혜를 나타내십니다. 이것은 실로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사역자로서 교회를 세우고자 한다면 에베소서 1장, 2장, 3장을 깊이 읽어야 합니다. 이것은 흑암의 권세를 뛰어넘는 초월적인 신앙이자 능력이요,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일입니다. 사도 바울의 계시를 따라 교회를 세운다면 하나님의 임재는 반드시 나타나게 됩니다.

이것은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과도 일맥상통합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성막을 지었을 때 하나님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했습니다. 성막의 기물들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의 계시대로 온전히 순종하여 지었기 때문입니다. 다윗과 솔로몬이 하나님의 계시를 따라 성전을 지었을 때도, 성전 건축물 자체가 중요했던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며 세웠기에 하나님의 영광이 그 성전에 충만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훗날 성전을 관리하던 대제사장들은 하나같이 타락하여 성전을 자릿세나 받는 장소로 전락시켰습니다. 제 생각에는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고작 그 몇 푼의 세보다 못하단 말입니까? 오늘날 저 역시 동역자들과 성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임대료를 받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임대료에만 의지해서 산다고 부유해질 수 있겠습니까? 런정페이(화웨이 창업자) 같은 기업가조차 세를 받는 일은 매우 낮은 차원의 일이라고 여깁니다. 화웨이를 창조하여 오늘에 이르러 수만 배의 가치를 창출한 것을 보십시오. 임대료만 받아가지고 얼마나 얻을 수 있겠습니까? 비참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어리석어지지 마십시오. 교회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세우면서 온갖 쓰레기를 교회 안으로 끌어들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데 온갖 쓰레기를 들여놓으니 하나님께서 책망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몸 안에 온갖 더럽고, 불신앙적이고, 혼탁한 것들을 용납하고, 교회를 중매소나 다단계 판매의 온상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교회를 이렇게 만들어 놓고 먼저 예수 그리스도 앞에 엎드려 "하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주님의 영광을 가렸습니다"라고 회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기 위해 생명을 바친다 해도 결코 아깝지 않습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의 고백입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오늘 내가 사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사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사도 바울은 자신의 생명을 바쳐 이 능력의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얼마나 귀합니까! 두려워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공중의 어둠의 권세와 영적 세계의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이 모두 우리 발아래 짓밟혔는데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그리스도의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함께 깨닫기를 구함

이러므로 내가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에베소서 3:14-20)

이 말씀은 참으로 탁월합니다. 오늘 여러분이 구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직장을 구하는 것은 지극히 사소한 일이 아닙니까? 이 땅에서 필요한 생활용품을 구하는 것은 지극히 사소한 일이 아닙니까?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광의 풍성함이 어떠한지 참으로 깨닫고 계십니까? 그리스도의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 참으로 깨닫고 계십니까?

그리스도의 사랑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의 일용할 양식과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반드시 공급해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가난이 없습니다. 그분의 가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부요하게 하셨습니다. 직장이 없어서 곤궁하겠습니까?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제가 처음 주님을 믿었을 때 직장이 없어 살아갈 길이 막막했고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저 직장 하나 때문에, 예수님이 누구신지도 잘 모르면서 '이 하나님은 참 좋으신 분이구나' 하는 마음에 교회에 발을 들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제게 직장을 주셨고, 그 직장을 얻게 된 과정은 그야말로 기적이었습니다! 제가 수없이 간증했습니다.

왜일까요? 아무도 저를 채용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영어도 엉터리 영어(Broken English)로 더듬거렸고 기술도 전혀 없었으며 그런 일은 다뤄본 적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제가 말로 다 표현할 수도, 온전히 이해할 수도 없는 방법으로 직장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훗날 저는 하나님께서 저를 너무나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그분께 무엇을 드린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오직 그분의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제 마음은 하나님께 깊이 감동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저 역시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구합니다. 그분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속사람이 다시 한번 능력으로 강건해지기를 간구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에게는 참으로 아무런 부족함이 없습니다. 우리 가운데 직장이 필요한 분들, 결코 궁핍하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께서 직장을 예비해 두셨습니다.

남편이 우울증을 앓고 있는 한 자매가 있었습니다. 그 자매는 훗날 동북 지역으로 갔는데, 그곳은 참으로 척박하여 평균 월급이 3천 위안에 불과한 곳이었습니다.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제가 그곳에 머물지 말고 발전 가능성이 있는 곳으로 가라고 권면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자매를 위해 직장을 예비해 주셨고, 남편 또한 우울증에서 건져내셨습니다. 하나님께는 풍성한 공급이 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귀신으로 인해 야기된 거의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첫째, 재앙의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여러분을 인도하시고 보호하사 수많은 재앙을 면케 하실 것입니다. 둘째, 가난의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생활에 결코 부족함이 없으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비록 지금 찾은 직장이 프로젝트 단위라 프로젝트가 끝나면 사라질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공급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맞춤형 직장을 마련해 주시는 것은 식은 죽 먹기처럼 지극히 쉬운 일입니다. 셋째, 질병의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가난은 귀신으로부터 오는 것이며, 질병도 귀신으로부터 오고, 재앙도 귀신으로부터 옵니다. 우리는 지각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가난하여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는 것을 어찌 보고만 계시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함께 깨닫게 해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십시오. 아이가 아픈데 애태우지 않는 어머니가 어디 있겠습니까? 자녀가 아픈데 걱정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부모의 심정을 가지고 계십니다. 육신의 아버지라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우리에게는 참으로 지각이 필요합니다. 영적 지각이 끊임없이 성장하여 지각 안에서 하나님을 온전히 알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에베소서 3:17-20)

이 말씀이 얼마나 훌륭합니까! 백 번을 읽어도, 천 번을 읽어도 질리지 않습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토록 사랑하십니다. 그분은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셨으며, 우리의 저주를 담당하시고 질병을 짊어지셨으며 가난을 제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교회를 통해 하늘의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시는 것 아니겠습니까?

여러분이 그리 지혜롭지 못할 수도 있고, 능력이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아무런 부족함이 없게 하시고, 스스로 능력이 있다고 자부하는 자들을 부끄럽게 만드십니다. 실로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지각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계시가 여러분 위에 임하여 그분의 비밀이 드러나기를 바랍니다. 저는 참으로 우리 하나님이 최고이심을 고백합니다! 그렇기에 그분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수년 전 제게 주신 직장 하나만으로도 저는 지금까지 감사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너무나 훌륭하고 말할 수 없이 좋은 은혜가 있음을 압니다! 긴 시간 동안 결국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처럼 들릴지라도, 그렇습니다. 바로 이 핵심을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을 받으시기를

이것은 사도 바울이 에베소 성도들에게 쏟아놓은 진심 어린 고백입니다. 왜일까요? 세워진 모든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온전히 거하는 것은 아니며, 세워진 모든 교회가 영광을 얻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없는 교회를 세워놓고 온갖 이유를 대며 변명하지만, 아무리 변명해 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하늘에 있는 사도 바울 역시 우리가 이 세대에 그가 꿈꾸었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교회 안에서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광을 받으시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왜 교회를 개척하기 시작했겠습니까? 평범한 교회에서 작은 목회자로 섬기는 것으로 족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주 단순한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진정으로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도 한번 시도해 보리라' 결단했고, 감사하게도 긴 흑암의 시기를 지나 마침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흑암의 날들은 길었지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을 보았을 때는 그 영광이 순식간에 임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므로 저의 이 나눔을 듣고 여전히 어둠 속에서 분투하고 계신 사역자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통해, 여러분이 세운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대대로 영원무궁토록 영광을 받으시기를 간절히 사모하고 소망하십시오. 이것이 바로 사도 바울의 소망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얼마나 풍성한 영광이 있는지 사람들이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것이 본래 하나님의 비밀이요 뜻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편협한 생각에 갇히지 말고 하나님께 간절히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대에 사도 바울이 말한 수많은 영광스러운 교회들을 일으키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마땅히 받아야 할 영광이 이 세대에 다시금 드러나기를 간구해야 합니다.

많은 형제자매들이 "아멘, 아멘!" 하고 고백하는 것을 봅니다. 제 마음도 함께 "아멘!"을 외칩니다. 때로는 말씀을 전하다가 스스로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이 세대에 하나님의 영광이 한량없이 우리에게 충만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본 것은 아직 바닷물의 한 방울, 구우일모(九牛一毛)에 불과합니다.

우리의 지각이 끊임없이 성장하여 사도 바울이 섰던 그 영적 높은 곳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이 세대의 황폐함과 이 세대의 필요를 보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은혜를 온전히 바라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참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우리의 형제자매들이 하나님으로 인해 새롭게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우리 마음 깊은 곳의 간절한 기도입니다. 아멘!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관심을
关闭
暂无评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