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Q1:老师,那些离开教会的人就刚硬,死不悔改啊。我每次看到他们那么惨,心里都希望他们能悔改,但人家就是不悔改。这是神的心意吗?神的心意不是希望他们悔改吗?
这事儿是这样,神希望他们悔改,但是悔改还是不悔改,是他自己要做决定啊。那他自己做什么决定,就看他的造化了。有的人一生都不会悔改。有一次我就跟一个人说话。哎呀,说来说去,给我来了一个对不起。后来我就在想,我说你这对不起来之不易啊。他说老师,我这一辈子,活了五六十年,我只说过三个对不起。哎呀,我说还给我一个,我可得当宝贝呀。
在《约拿书》中,我们看到一个非常特别的故事,是关于悔改和神的怜悯。约拿被神呼召去尼尼微城传讲悔改的信息,但他选择逃避。他经历了一系列奇妙的事件,包括被大鱼吞下。最终约拿顺服神的旨意,去尼尼微传达悔改的信息,尼尼微人悔改了,神也因此转意,不降灾难。
所以人家不要回头,那就别逼人家了。就那么地吧,告诉他就完了。有的时候,我们就喜欢说神啊,你为什么要把他造成那样?神说我愿意,做一个金子的、银子的,尊贵的酒杯。来了最高贵的客人,就把我那金杯拿出来。哎呀,觉着老有荣耀了,是不是很有意思啊。所以说什么都能帮,就是这选择悔改帮不了啊。
Q2:老师,约拿经历神的拯救之后,他应该是真的明白神的心意了,对吗?
明白啥呀?下一章咱就讲了,这小子挺有意思。所以约拿和尼尼微人都经历了一场神的恩典。我告诉你,千万别笑话约拿,其实像约拿的人不少。
所以说就这样,这约拿下一章还在那盼着神降灾祸呢。难道他不知,他没经历过从神来的灾祸吗?经历了从神来的灾祸,神拯救他了没有?神拯救了。到了尼尼微人,他就希望神不拯救。神呐,我就希望你灭了他们。所以人要明白神的心意就好了,大家要知道约拿不是一个好的典范。如果引用耶稣说的话,除了约拿的神迹,再也没有神迹给你们看,这就叫做悔改。
Q3:换在今天,有先知在城里喊一天,别说全城的王都悔改了,就是基督徒全悔改都难啊。这也是神的作为吧?
这也是神的作为,这个世代灾祸多啊。我就给大家讲一个故事,这不是很多年前的事儿,东南亚大海啸完了以后,在泰国有一个岛,哎哟,那岛惨了。死的人无数,到处都是冤魂,其实一点也不冤。结果现在那地方旅游又开始好起来了。
有人招的士,司机一看问:你们几个人呢?他们说:我们三个人,但是的士司机一看怎么是四个人呢?开车就跑,你不觉得奇怪吗?你们几个人不会数数啊?他们说我们三个,但是的士司机一看有四个,其中有一个是鬼。这其实是好了伤疤,很快就忘了疼。
那不要说他们啊,就说我服侍过的那癌症患者。病好了以后回来跟我说:“我儿子跟着你们这么信主,日子怎么过呀?”我说这是什么脑子啊,如果不是我为你祷告好了,你的日子咋过?今天你就不用过了啊。所以说,悔改真难啊!这就是为什么地上有很多灾祸。神使他弯曲的,你不要想给它变直了,他就是个弯的。不吃点亏,不遭点罪那能行吗?那日子能过吗?
Q4:老师,我和同学说完话,上车就开始头痛,恶心,吐。我就知道又做错了,但有时不知道错在哪儿?
你说的话招鬼,因为你说的话都不是属灵的话,都是招鬼的话。那些东西都是属世界的逻辑体系。
Q5:老师讲得这么明白,怎么有很多人不接受呢?将来会怎么个结果呢?
我也纳闷呢,我就在想我讲得这么好,怎么点击量老也上不来呢?其实点击量还行。有一次有一个牧师对我说:“你不知道你在外面有多出名啊。”我说我还真不知道,但是咱们这个点击量还是挺高的。我就觉得我跟人家讲的时候,能真正相信的不多。其实很简单的事儿。
我说:神是医治的神,你知道吗?所有的病都得医治。你知道吗?这是《圣经》说的。他说:那好像不是。我说:为啥不是呢?他说:因为我没看见过。他以看见为他的标准。我是以神的话为标准。结果哪个是标准呢?人就是这样,多感慨啊。
所以说有很多牧师,看到他们教会的会友听华人命定神学,就说:你们不要再听了。他的会友说:牧师,他们华人命定神学是异端吗?他说:不是异端。会友问:那是哪一端呢?他说:就是有点极端。哎,病得医治不好吗?好啊,就是不信。他对他们教会那些癌症的患者说:别来教会了,来教会给教会丢人。你说这都是什么脑子啊?我真感慨!得了癌症扩散了,想起了华人命定神学了,你倒是早点来呀。按我的话说,多在这蒙点福不好吗?非得扩散了才来。
我说:神呐,怎么来的都是这个呢?你早干嘛去了?早都在那混,因为华人命定神学要求高。所以说我讲的这么明白,但是相信的人很少,《圣经》讲的不是更明白吗,耶稣讲的比我讲的明白的多得多。但是有人信吗?没人信。
Q6:老师,为什么尼尼微人一听,就会相信约拿所讲的话呢?就是神使他们心柔软吗?一个人能不能悔改是神预定的,可以这样理解吗?
这是个悔改的神迹。其实我告诉你啊,尼尼微人是不是神造的?是神造的。那神就演了约拿的神迹这么一出戏,记在约拿书里。好让我们看见原来神的心意是什么,就给我们做了一个典范。你看人家尼尼微王,亚述帝国的老大尚且是披麻蒙灰,禁食祷告,然后逃过了一劫。但是今天你看看咱们,就一个干瘪老头,家里有点钱,过一个生日就狂得不得了。结果怎么着?就招灾祸嘛。
Q7:老师,那彰显神愤怒的器皿不是很冤吗?
一点也不冤。其实他是有选择的。你如果说是神使他刚硬,那咱也无话可说。还有一句话叫做神任凭他刚硬。你说任凭他刚硬,任凭就是由着你刚硬,我看你能刚硬到哪儿去。所以悔改人人都有份,人人都有机会,但是人是否选择悔改是自己的问题。
其实我们心里柔软也好,不柔软也好,神也任凭我们。但是神降了灾祸,降了一个小灾祸,又降一个大一点的,又降更大一点的灾祸,人还是不改,直到灭亡。其实神有没有给他们警告?有。警告多了,咱不是亲眼看见的吗?
Q8:老师,您举例说,容易受伤的问题,是识别善恶。对吧?我们要训练对别人的话刀枪不入,不受影响才是目标。对吧?
不对。咱们弟兄姐妹记住啊,如果你是想把祝福给出去,你受什么伤?我给你点祝福你不要,我就走吧。如果我想从你那得点好处,我没得着,我就生气。你觉着他能好得了吗?路边的狗都知道。有的人该占的便宜没占到生气,有的人不该占的便宜没占到也生气,他就觉得这是我的,那是你的吗?
所以说训练人受伤不受伤,关键就是你到底为啥活着。如果你是为了祝福别人活着,那很简单,你很难受伤啊。为什么?因为我给你好的东西你不要OK啊。不要我自己收着,免得浪费了。所以说人受伤,实际上都是自私的缘故。训练人有命定,那就很难受伤了。
Q9:老师,我经历了神,还相信有神,为啥到事儿上就把神忘了,就照着自己的意思行了,是没有进到命定里,还是我不惧怕神?以致犯罪,咒诅就来,就是做不到不犯罪呢?
其实一个人真正相信,干了这事儿,亏损了一百万,你还干吗?你肯定不干。干了这事儿亏损一千万,你还干不?你一定不干。那你怎么就非得干这亏损的事儿呢?
所以人从骨子里建立一套属神的价值观念。这属神的价值观念没有进入到你的骨髓里。所以你骨子里还是一个属世界的逻辑体系,那好不了。所以说,就喜欢犯罪受咒诅,受了亏损一次又一次,还是不知道。你说这是什么脑子啊?你厉害不?我挺佩服的。
神的价值观念这么好,就是不要,非得信那属世界的逻辑体系。所以就到时候一做,就做出你骨子里的真情流露。你常常真情流露,然后平时在教会里装得人模人样的,到了核心利益的时候,立刻流露的是你里面的真情啊。
Q10:老师,我跟我姐姐传福音的时候,说起家人谁谁谁招咒诅,我立刻就头痛,这是不是在论断?我试了好几次都是立刻头痛,我觉得这事不对。
其实你说的是实话,但是这头痛是邪灵。为什么?邪灵不喜欢人明白真理。当你一把这事戳穿了,邪灵就搞你,你开始再次刚强起来,把这邪灵干掉,以后再说这事的时候就没事了。这不叫做论断,你说想祝福她,不是在讲闲话。
Q11:老师,我学生们请我到深山里钓鱼,中午喝了二三两酒后,我就给他们讲了我的强直性脊柱炎得了医治的见证,他们继续喝酒,我继续给他们说了半个小时,他们还是不信。一个警官学生说:摩西带领以色列人过红海都是扯淡。我也没辙了,为什么这些人就这么顽梗悖逆呢?
我告诉你一个招,告诉他们:你们今天遇到的事都能自己处理,等你们得了强直性脊柱炎怎么治都不行,再来找我,有一位神他要医治你。完事了。
今天你们遇到的事儿都能处理,是不是?好。等你们得了强制性脊柱炎,怎么整都不行,来找我。我有招啊。等你遇到你觉得自己不厉害的时候,可以试试啊。所以说,人哪,就这样,你给他讲多少啊,他都是他那套逻辑体系,就是癌症都扩散了,还是他那套体系。那就玩吧,祝你好运。
咱们的答疑就到这儿。愿神祝福大家!弟兄姐妹再见。
여러분 안녕하세요, 우리 《요나서》 3장을 함께 보겠습니다. 이번 장의 주제는 "회개는 재앙을 내리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바꿀 수 있다"입니다. 여러분 꼭 아셔야 할 것은, 하나님의 계획은 언제나 못 박혀서 바꿀 수 없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특히 재앙을 내리시는 일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작은 재앙을 겪었다면 신속히 마음을 부드럽게 낮추어야 합니다. 작은 재앙을 겪고도 부드러워지지 않고, 중간 크기의 재앙을 겪고도 완고하다면, 그 다음에는 큰 재앙이 닥치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사람을 기어이 죽여 없애려는 것처럼 못 박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사람을 반드시 죽이려 하셨다면, 저는 지금까지 살아있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왜일까요? 수시로 하나님께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은 결코 장난이 아니며, 따라서 가장 좋은 배움은 바로 회개입니다. 제가 사역하면서 십중팔구는 사람들의 문제점과 허물을 지적해야만 합니다. 아이고, 그게 얼마나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입니까? 제가 사람들의 문제를 말해주지 않으면, 다들 마음속으로 자기가 꽤 괜찮은 줄 압니다. 하지만 여러분, 사람이 계속해서 거듭 완고해진다면 그것은 곧 재앙이요 멸망입니다.
一、하나님은 사람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살기를 바라신다
하나님께서는 왜 굳이 요나를 니느웨로 보내려 하셨을까요? 니느웨 사람들이 저지른 악한 짓들이 적었습니까? 니느웨는 앗수르 제국의 수도였고, 앗수르 제국은 전 세계에서 전무후무할 만큼 극도로 잔인한 형벌들을 고안해 냈습니다. 예를 들어 능지처참처럼, 산 사람의 몸에서 살점을 한 점 한 점 베어내는 잔혹한 형벌인데, 어떤 사람은 삼천 번 이상 칼로 살을 베이고 나서야 죽었습니다. 칼로 벨 때마다 얼마나 비명을 질렀겠습니까. 이런 잔인한 형벌을 상상이나 할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구약 《성경》을 읽다 보면, 한 무리의 사람들이 하나님께 침을 당해 죽고, 또 다른 무리가 죽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하나님은 사람을 죽이기를 아주 좋아하신다'는 이상한 관념을 갖게 됩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느끼신 적 없습니까? 출애굽한 이스라엘 사람들을 보십시오. 60만의 군사들 중에서 결국 여호수아와 갈렙만 남았습니다.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정말 복권에 당첨된 것과도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얼마나 많은 기회를 주셨습니까? 거듭거듭 기회를 주셨지만, 그들은 도무지 하나님을 경외할 줄 몰랐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경외할 줄 모르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너무나 아픕니다. 마음을 아주 조금만 부드럽게 낮추어도, 오늘날 여러분이 여전히 숨 쉬며 살아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어? 내가 수년 동안 이렇게 엉망이었는데 어떻게 아직도 살아있지?' 사실 하나님이 어찌 여러분을 짓눌러 죽이려 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죽이려 하셨다면 진작에 죽었을 것입니다. 저를 죽이려 하셨다면 저 역시 진작에 죽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올바른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왜 다 광야에서 죽었을까요?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할 때, 하나님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재앙을 내리시는 것을 그들이 보았습니까, 못 보았습니까? 보았습니다. 다 보고 나서도 왜 여전히 어리석게 굴었을까요? 이스라엘 백성은 차치하고 먼저 애굽 사람들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내 백성을 보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바로 왕은 보낼 듯하다가 마음을 바꾸기를 반복했고, 결국 바로 왕과 모든 애굽 백성 가정의 장자와 가축의 처음 난 것들이 하나님께 침을 당하고 나서야 비로소 백성을 보냈습니다.
진작에 그럴 것이지 왜 그랬을까요? 이 재앙, 저 재앙을 겪으면서 말입니다. 저는 많은 사람들의 머리가 문틈에 끼인 것처럼 망가져 있는 것을 봅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러는 걸까요?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도 아실 것입니다. 결국 애굽의 바로 왕은 오늘날의 홍해 바다 밑바닥에 수장되어 죽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 모든 것을 보고도 하나님께 맞서 대적하다가 결국 모두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만나를 매일 먹으면서도, 모세를 죽이려 들고 이런저런 불평을 일삼으며 하나님이 얼마나 두려운 분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참아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내가 그들을 다 멸하고 너의 후손으로 큰 민족을 이루겠다"고 하셨을 때, 모세는 하나님 앞에서 울며 간구했습니다. "하나님, 그렇게 하지 마옵소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한 번 넘어가 주셨습니다. 금송아지를 만든 사건도 그렇고, 어처구니없는 악행들을 끊임없이 저질렀습니다.
니느웨 사람들은 매우 악하고 우매한 무리였습니다. 앗수르 제국의 니느웨가 얼마나 악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 이스라엘을 징계하게 하셨더니,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학대하는 것을 유희로 삼아 즐겼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진노하사 니느웨 사람들을 벌하시려 했고, 그 벌을 내리시기 전에 한 이스라엘 사람을 택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사람과 니느웨 사람은 원수지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서 선포하라고 하셨지만, 요나는 완강히 거부했습니다. "무엇이든 시키시는 대로 하겠지만, 제발 니느웨 사람들에게 전하라고만은 하지 마십시오. 저는 그들이 죽도록 싫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선지자가 가지 않자, 하나님께서는 선지자에게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그 선지자의 마음은 차라리 죽고 싶을 지경이었습니다. "니느웨에 가느니 차라리 죽겠습니다. 저는 그들이 벌받는 꼴을 꼭 보고 싶습니다. 하나님, 제가 몇 년 동안 기도했는데 이제야 니느웨에 재앙을 내리시려 합니까? 그냥 멸망시켜 버리십시오." 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살기를 바라십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재앙을 내리셨고, 그는 마침내 회개했습니다. 바다에 빠져 큰 물고기에게 삼켜졌고, 물고기 뱃속의 고약한 냄새로 고통을 겪었습니다. 쓸개즙과 위액까지 다 토해낼 정도였을 것입니다. 그 후 요나가 회개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죽게 내버려 두셨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큰 물고기를 통해 요나를 구원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마음이 보이십니까? 《구약》에서 《신약》에 이르기까지 성경 전체를 통해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재앙을 내리기도 하시고 복을 주시기도 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이 죽는 것을 바라지 않으시며,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사 그들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십니다.
저는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 같은 자가 하나님께 죄를 짓는 일은 다반사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목사님, 어떻게 코로나에 걸리셨어요?"라고 묻습니다. 저는 "제가 죄인의 본보기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결코 저를 의인의 본보기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때로는 저도 요나와 비슷합니다. "하나님, 저 사람에게서 가능한 한 멀리 떨어지게 해주세요. 보기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립니다. 하나님, 불쌍히 여겨주세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더러 그를 섬기라고 했으니 가서 섬겨라" 하십니다. 아이고, 주여! 저를 좀 봐주십시오!
제 안에는 하나님의 징계가 아니면 고쳐지지 않는 나쁜 습관이 하나 있습니다. 제가 똑똑하다는 뜻이 아니라, 저도 어리석을 때가 많지만 '어리석음에 대한 혐오증' 같은 것이 있습니다. 이것이 악습이 아니겠습니까? 분명 나쁜 습관입니다. 주제에 자기가 똑똑한 줄 알고 괜찮은 줄 아는 교만 말입니다.
하나님은 정말 좋으신 분입니다! "하나님, 주님의 은혜와 긍휼이 아니었다면 우리 중 누가 주님 앞에 나아올 수 있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같은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것을 볼 때마다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어리석은 지구인들을 보실 때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가?' 답답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러므로 사람은 회개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사람이 살면서 크고 작은 재앙을 자주 겪는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감기, 생리통, 발치 후 얼굴 전체가 붓는 것, 목에 가시가 걸리는 것 등도 작은 재앙에 속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작은 재앙들을 내리시는 이유는 우리를 회개로 이끄시기 위함인데, 사람들은 너무나 완고합니다.
얼마 전 암으로 죽어가는 한 친구를 심방했습니다. 제가 갔을 때, 매일 밤 죽음의 영이 그를 찾아왔고 일주일 뒤 그는 사망했습니다. 그의 아들은 옆에서 귀신이 사람을 쳐서 죽이는 과정을 생생히 목격했습니다. 암 환자가 회개하기란 정말 어렵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아주 어리석은 모습이 있는데, 바로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자고함'과 '완고함'입니다.
한 자매를 섬길 때, 그녀의 말이 저를 화나게 만들어서 화를 억눌러야 했습니다. 강하게 말하면 상처받을까 봐 조심했는데,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남편과 시어머니를 내 가족으로 여겼는데, 그분들은 저를 가족으로 여기지 않아서 마음이 너무 찢어집니다."
여러분, 이 말을 듣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그 말을 듣고 그녀를 호되게 훈계했습니다. "상대방이 무슨 근거로 자매님이 자신들을 가족으로 여긴다고 믿겠습니까? 자매님이 대하는 태도를 보면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데 무슨 상처를 받았다는 겁니까?" 예전에 또 다른 자매는 "저는 시어머니를 친정어머니처럼 대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그만두십시오! 친정어머니와는 만날 때마다 싸우는데, 시어머니를 친정어머니처럼 대하지 않는 편이 낫겠습니다." 이런 사람이 일을 한들 복을 받겠습니까? 마음도 괴롭고 하는 일마다 힘들면서, 스스로는 꽤 괜찮고 효도한다고 착각합니다.
스스로 효부라고 생각하지 말고 시댁에 물어보십시오. "제가 효성 깊은 며느리인가요?" 상대방이 아니라고 하면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사람 마음에는 저울이 있어서 결코 잘못 느끼지 않습니다. 시어머니를 가족으로 여긴다는 증거로 도대체 무엇을 행했습니까? 얼마나 자기중심적입니까. 틈만 나면 옳고 그름을 따지며 속에는 쓴 뿌리만 가득합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시어머니가 자매님을 애굽에 팔아넘겼습니까? 아닙니다. 시어머니가 자매님의 돈을 빼앗아 손해를 입혔습니까? 아닙니다. 그런데 무슨 상처를 받았다고 합니까? 이런 생각과 태도로 어떻게 복을 받겠습니까?"
선악을 분별할 자격도 없으면서 온갖 핑계를 만들어 선악을 분별하려 합니까? 제 마음이 아픈 이유는 그녀의 말 때문도 아니고 시어머니와의 사건 때문도 아닙니다. 그녀가 마음속의 이 더러운 것들을 바꾸기까지 도대체 얼마나 많은 크고 작은 재앙을 겪어야 할까 염려되기 때문입니다. 설령 우리가 애굽에 팔려갔다 할지라도 우리는 형제를 미워할 자격이 없습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람이 죽는 것을 원치 않으시고 살기를 바라십니다.
제가 드리는 이 말씀에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은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또 다른 예를 들자면, 어떤 자매를 섬김의 자리에 세웠는데, 그 자매도 회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조금씩 자신의 한계를 깨뜨려 가며 생각을 많이 바꾼 상태였습니다. 제가 "이제 잘 섬겨보라"고 당부했습니다. 그녀가 섬기게 된 대상은 당뇨병으로 두 다리를 절단해야 할 위기에 처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섬김을 받는 그 사람이 오히려 선악을 분별하며 거친 말을 쏟아냈습니다.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상대방이 무엇을 바라고 당신을 섬기겠습니까? 말이 마음에 안 든다느니 부족하다느니 하며 선악을 분별하고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우리 안에는 선악을 분별하는 뿌리가 깊이 박혀 있습니다. 저는 사람의 뇌는 호두 알만 하고, 마음의 크기는 땅콩 알만 하다고 자주 말합니다. 나중에는 녹두알만 하다고 했는데, 땅콩 알이라고 한 것도 과분한 칭찬이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선지자가 회개하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음에서 건지셨습니다.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자 하나님께서는 이미 작정하셨던 재앙에서 그들을 건져주셨습니다. 누구든지 회개하면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십니다.
二、사람의 회개는 재앙을 내리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돌이킬 수 있다
하나님께서 정말 재앙을 내리고 싶어 하실까요? 아닙니다. 만약 재앙 자체가 목적이라면 단번에 끝내실 수 있습니다. 쓰나미 한 번으로 수많은 사람을 쓸어버리실 수 있고, 지진이나 산사태 한 번으로도 수많은 사람을 멸하실 수 있으며, 연쇄 추돌 사고 한 번으로도 사람들을 데려가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굳이 선지자를 보내 경고하십니다. 왜일까요? 사람이 선지자의 경고를 듣거나 하나님이 내리신 작고 중간 크기의 재앙을 보았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시기 위함입니다.
제가 섬기는 중환자들, 암 환자들을 보면 그 뼛속에 박힌 고집과 완고함이 참으로 무섭습니다. 사기를 당해놓고도 여전히 거짓말을 믿으며 자신이 저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합니다. "목사님, 주변 사람들을 조심하세요." 제가 무엇을 조심합니까? 저는 당신보다 훨씬 밝히 봅니다. 틈만 나면 속으면서도 여전히 자기 안목이 좋다고 여깁니다.
우리 중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경고를 받았습니까? 그런데도 참으로 완고합니다. 제가 사역하면서 어떤 공격에도 끄떡없는 상태로 훈련되지 않았다면 온몸이 상처투성이였을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목사님, 상처받지 않으셨나요?"라고 묻습니다. 저는 "제 마음은 이미 벌집처럼 구멍이 숭숭 뚫렸지만 다행히 단련되었습니다"라고 합니다. 제발 완고해지지 마십시오. 눈이 안 보여서 조금 회개하는 듯하더니, 또 어지럼증이 도지면 그제야 회개합니까?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합니다.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 사기를 당한 적이 있다면 깊이 회개하십시오. 중병에 걸렸다면 깊이 회개하십시오. 사람은 참으로 연약하여 거짓말 하나에도 맥없이 쓰러집니다. 저를 보십시오. 제가 얼마나 헌신했습니까? 제 헌신을 자랑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방은 정작 제게 차가운 표정을 짓고 억울하다며 쏘아붙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한 것은, 제가 점점 더 강건해지고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에게는 선악을 분별할 자격이 없습니다. "하나님, 저를 기억해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하나님, 이것이 제게 주신 사명입니다." 저는 모든 형제자매가 복음의 유익을 누리고 더 이상 완고해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사람 속의 완고함을 보면 참으로 탄식이 나옵니다. 저를 통해 태산 같은 은혜를 입고도, 아흔아홉 가지를 잘해주다가 한 가지가 마음에 안 들면 모든 것을 엎어버립니다. 멸망할 때까지 회개하지 않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완고해지지 않기를 권면합니다. 한 번 겪었으면 경외함이 더 자라고, 또 한 번 겪었으면 경외함이 더욱 자라야 합니다. 사람이 회개하기만 하면, 하늘에서 천사들이 여러분을 위해 환호성을 지릅니다. 하늘의 응원단이 있어서 여러분이 회개할 때 올림픽 금메달을 딴 것처럼 환호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시니 회개가 얼마나 좋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20대인데 삶에 불운과 재앙이 닥친다면 회개하십시오. 30대인데 불운이 겹친다면 회개하십시오. 그렇지 않습니까? 이미 찢어지게 가난하고 하는 일마다 안 되며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다면, 회개 말고 무엇을 하겠습니까? 더 이상 완고하지 말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배우십시오. 하나님은 수시로 경고하시며 제가 전하는 설교를 통해서도 경고하십니다. 그런데도 말씀을 듣고 나서 여전히 자기 논리와 핑계를 내세웁니다. 그렇게 망가져 있으면서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습니까?
여러분의 그 논리는 정당한 이유가 아니라 저주와 불운을 부르는 핑계일 뿐입니다. "이제 재앙에서 벗어나고 싶으니 회개하겠습니다"라고 해야 합니다. 저는 집에서 순종적인 편이어서 아버지가 매를 드시면 즉시 "고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징계하실 때도 즉시 "고치겠습니다"라고 합니다. 제 고집을 부려봤자 매만 더 벌 뿐입니다. 반면 끝까지 입만 살아서 고집을 피우는 사람들은 참으로 미련합니다. 고치면 매를 덜 맞을 텐데 말입니다. 그러므로 완고해지지 말고 하나님을 경외하십시오.
三、진정한 회개
진정한 회개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요나가 니느웨에 도착하여 성읍으로 들어가 하루 동안 걸었습니다. 그곳은 얼마나 컸을까요? 남에서 북으로, 동에서 서로 사람이 사흘 길을 걸어야 할 만큼 컸으며, 하루에 약 30km를 걷는다고 칩니다. 빠른 행군은 하루 50km, 일반적인 걸음은 30km 정도입니다. 즉 니느웨 성은 약 90km에 달하는 크기였는데, 요나는 하루 동안 남에서 북으로 가며 거리를 누비고 외쳤습니다.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신다!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꽹과리를 치듯 크게 외치며 하루 만에 3분의 1을 돌았습니다.
요나는 마음속으로 무척 신이 났을 것입니다. 왜일까요? 하나님께서 니느웨에 재앙을 내리신다고 하니까요! 요나는 요즘의 유명 인플루언서보다 더 열정적으로 외쳤습니다.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진다!" 듣는 이들은 "저 녀석이 죽으려고 환장했나, 어디서 고소해하며 저러는 거야?"라고 했을 것입니다. 니느웨는 앗수르 제국의 수도인데 길거리에서 그렇게 외치도록 허락했겠습니까? 오늘날로 치면 확성기를 들고 대로를 아침부터 저녁까지 누비며 소리친 격입니다.
그런데 니느웨 백성은 그 말을 듣고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소문이 삽시간에 퍼져 온 성읍의 사람들이 굵은 베 옷을 입고 재 위에 앉았으며,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베 옷을 입었습니다. 베 옷이 무엇입니까? 바로 상복입니다. 니느웨 왕이 이 소식을 듣고 "무슨 일이냐? 누가 죽었느냐?" 하고 묻자 백성들이 "왕이여, 40일 후면 우리가 다 죽게 되었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니느웨 왕도 대단했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일입니다. 왕은 왕좌에서 일어나 조복을 벗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 위에 앉았습니다.
니느웨 사람들은 왜 이랬을까요? 그들이 지은 죄가 많았습니까? 많았습니다! 자신들의 악행을 알고 있었습니까? 알고 있었고 잔인했습니다. 그런데 왕은 "이대로는 안 된다, 돌이켜야 한다"고 결단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회개의 마음을 부어주신 것인지 그들 안에 일어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이것은 분명 하나의 놀라운 기적이었으며 우리에게 회개의 본보기를 보여줍니다. 그 결과가 어떠했습니까?
그가 왕과 그의 대신들의 조서를 내려 니느웨에 선포하여 이르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 떼나 양 떼나 아무것도 입에 대지 말지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 옷을 입을 것이요 힘써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가 멸망하지 않게 하실지 누가 알겠느냐" 한지라 (《요나서》 3:7-9)
그들에게 확실한 믿음이 있었습니까? "누가 알겠느냐" 할 만큼 확신은 없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러한 마음이 하나님을 감동시켰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니느웨 사람들이 악한 길에서 돌이킨 것을 보시고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셨던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바로 왕과 대조해 보십시오. 바로 왕은 이러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다"고 기록합니다.
반면 니느웨 사람들의 마음은 하나님께서 부드럽게 낮추신 것입니다. 제가 이 사건을 통해 내린 '진정한 회개'의 정의는 바로 '스스로를 낮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잘난 줄 알고 늘 재앙과 저주를 부르는 핑계만 늘어놓습니다. 그럴 필요가 무엇이 있습니까? 회개란 "제가 틀렸습니다! 목사님, 더 말씀 안 하셔도 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고치겠습니다! 제가 불효했고, 저주를 받았으며, 불운의 표본이었습니다. 이제 돌이키겠습니다" 하고 끝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대화할 수 있다면 감격스러울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제가 훈계할 때 눈물을 흘리는데, 그것이 진정한 회개의 눈물인지 억울함의 눈물인지 돌아보게 됩니다. 콧물 눈물 쏟으며 우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회개가 아니라 억울해서 우는 것입니다. 그렇게 잘못 살아놓고 무엇이 억울합니까? 머리는 호두 알만 하고 마음은 녹두알만 한데, 제발 땅콩 알만큼이라도 넓히십시오. 더 작아지면 참깨만 해집니다.
잘못해 놓고도 자신이 옳다고 여기고, 틀려놓고도 억울해합니다. 애굽에 팔려간 것도 아니면서 애굽에 팔려간 요셉처럼 억울해합니다. 녹두알에서 땅콩 알만큼이라도 마음이 넓어진다면 다행입니다.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하나님께서는 멸시하지 않으십니다.
《성경》에 겨자씨는 참깨보다 훨씬 작다고 했습니다. 참깨 여러 개가 녹두알 하나만 하고, 녹두알 여러 개가 땅콩 알 하나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겨자씨만 한 통회하는 마음도 멸시하지 않으십니다.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하며 상한 마음을 주님은 업신여기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실수하고 죄짓는 것보다 완고해지는 것을 더 경계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참으로 위대하십니다. 주님의 긍휼이 아니었다면 우리 중 누가 그분 앞에 설 수 있겠습니까?
예를 들어 초기 암에 걸렸을 때 즉시 회개하고 악한 성품을 바꿀 수 없습니까? 가벼운 관절염이 왔을 때 악행에서 돌이켜야지, 관절이 붓고 손가락, 무릎, 발가락, 허리, 목, 급기야 뇌까지 망가질 때까지 완고하게 버텨서야 되겠습니까? 얼마나 더 아파야 정신을 차리겠습니까? 사람은 늘 "나는 잘못이 없다. 다 남 탓이다. 달이 잘못 돌고 태양의 위치가 틀렸을지언정 나는 틀리지 않았다"며 입만 살아서 관 뚜껑을 보기 전까지는 눈물을 흘리지 않습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이 십계명을 얼마나 많이 어겼습니까? 십계명의 조항들을 거의 다 범하며 빠뜨린 것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생명을 보존해 주신 것은 여러분이 죽지 않고 살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부드러운 마음이 있습니까? 가벼운 감기를 겪거나 식은땀이 날 때 즉시 회개하십시오. 진정한 회개는 자기를 낮추는 것입니다. 자신이 틀렸음을 인정하고 하나님이 필요함을 아는 것입니다. 설령 자신이 옳다 한들 하나님의 기준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거울을 들여다보며 자신의 녹두알만 한 옹졸한 마음과 걸핏하면 깨지는 유리 멘탈을 보십시오. 어쩌면 그렇게 쉽게 상처를 받습니까? 아무도 애굽에 팔지 않았는데 애굽에 팔려간 사람처럼 억울해하며, 조금만 훈계하면 저를 미워할 기세입니다. 제발 이기심을 버리고 자기 자신에게만 집착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이기적인 인간들을 보실 때 얼마나 답답하시겠습니까? 마치 수많은 귀신을 층층이 짊어지고 사는 형국입니다. 수십 마리의 귀신을 짊어지고 사는데 어찌 저주와 재앙이 따르지 않겠습니까? 얼마나 더 많은 귀신을 불러들이고 얼마나 더 비참해져야 회개하겠습니까?
진정한 회개는 악한 길에서 돌이키고 손의 강포를 버리는 것입니다. 사람을 미워하는 것이 곧 살인입니다. 관계를 망치는 데는 능숙하면서 관계를 회복하는 데는 왜 이리 무능합니까? 어떤 부부들을 보면 오늘은 이쪽이 삐치고 내일은 저쪽이 원수가 되어 하루도 편할 날이 없습니다. 그럴 때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서로 얼굴을 보지 않도록 당분간 떨어져 지내게 하는 것뿐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의 그릇이 넉넉하다면 제가 왜 이런 궁여지책을 내겠습니까? 저 역시 악명을 뒤집어쓰면서까지 권하는 것입니다. 서로를 옭아매고 괴롭힐 때는 잠시 거리를 두는 것이 서로의 성장을 위해 낫습니다.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다시 칼로 베는 짓을 반복하지 마십시오.
아담과 하와를 보십시오. 인류 최초의 부부도 시작부터 서로 책임을 전가하며 다투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그들은 선악과를 한 입 베어 물었을 뿐이지만, 여러분은 날마다 바구니째 퍼먹고 있습니다. 선악과의 열매를 먹고 자라 선악을 분별하지 않고는 못 사는 사람들 같습니다.
진정한 회개는 겸손히 통회하며, 악한 행실과 손의 강포를 버리고, 마음속의 억울함과 분노를 제거하며 자신이 틀렸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늘 "난 잘못 없다"고 합니다. "그럼 누구 잘못입니까?" 하고 물으면 "달의 잘못입니다"라고 합니다. "달은 너무 가까우니 화성 탓도 해보시지요. 일론 머스크처럼 로켓 타고 화성에 가서 지구도 고치고 화성도 고쳐보십시오." 결국 자기 자신만은 죽어도 뜯어고치지 않다가 화성에 닿기도 전에 미라가 될 판입니다.
四、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은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않으신다
회개하려면 말장난이 아니라 진정으로 회개해야 합니다. 관절염이 좀 나았다고 좋아하다가 며칠 뒤 도지면 다시 원망과 미움의 악한 기운을 드러냅니다. 회개의 길을 온전히 걷지 못하고 옛사람과 새사람 사이를 끊임없이 맴돌다가는 결국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됩니다. 회개는 우리가 평생 동안 감당해야 할 배움과 훈련입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서 마귀를 완전히 쫓아내고 마귀의 거짓말을 완전히 내몰아야 합니다. 니느웨 왕처럼 겸비해야 합니다. 니느웨 왕도 아니면서 무엇이 그리 당당합니까? 왕이라 한들 저울에 달면 수십 킬로그램의 고깃덩어리에 불과하며, 때가 되면 결국 죽을 인생인데 무엇을 교만하게 굽니까? 감당치 못할 문제가 태산인데 하나님과 대적하고 재앙과 맞서 싸울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재앙을 작정하시도록 만들지 마십시오.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던 재앙을 내리지 않으십니다. 한평생 잘 살펴보십시오. 개인이든 국가든 교만하여 분수를 잊으면 즉시 재앙이 닥칩니다. 예전에 한 노인을 만났는데, "석가모니든 태상노군이든 옥황상제든 예수 그리스도든 다 내 엉덩이 밑에 깔고 앉겠다"며 오만방자하게 굴더니 그 말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습니다. 참으로 어리석기 짝이 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싱가포르 같은 손바닥만 한 나라는 당장 멸망시켜 버려야 한다"고 큰소리치다 암에 걸려 죽었습니다. 군함이 자기 집 것입니까? 사람이 참으로 무지하고 교만합니다. 교만해지면 분수를 모르지만, 인간은 한 줌 흙먼지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회개만이 황금률입니다. 회개했더라도 아직 턱없이 부족합니다.
"나 이미 회개했는데 나더러 어쩌란 말이냐" 하며 자만하지 마십시오. 평생 회개해야 재앙이 줄어듭니다. 재앙과 불운을 줄이고 싶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십시오. 회개의 훈련을 부지런히 하십시오. 축귀도 끝이 없고, 회개도 끝이 없으며, 하나님을 알아감과 영적 고지를 향해 오르는 일도 끝이 없습니다. 또한 받는 축복도 끝이 없습니다. 저는 우리 모든 형제자매가 복을 받는 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돈 몇 푼 벌었다고 우쭐대지 마십시오! 돈 좀 벌었다고 거들먹거리며 걷는 사람을 보았는데, 고작 몇백만 원 벌고 그러는 것이었습니다. 몇백만 원에 저러는데 수천만 원을 벌면 날개라도 돋아나겠습니다. 얼굴에 털이 나고 머리에 뿔이 돋아 털게처럼 땅을 기어 다니며 거들먹거릴 셈입니까? 계속 교만하다가는 찜통 속의 게 신세가 될 뿐입니다. 우리는 분수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사 평생 하나님의 은혜만 의지하며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