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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 사무엘하 11장 -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는 일을 깨어 경계하라

2023-08-04 58,682 撒母耳记下 撒母耳记下11章 撒母耳记下第十一章 得胜中仍要警醒 灵界是透明的 人不知鬼不觉 不欢心乐意侍奉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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撒母耳记下11章-大卫和拔示巴
  • 1 过了一年,到列王出战的时候,大卫又差派约押,率领臣仆和以色列众人出战。他们就打败亚扪人,围攻拉巴。大卫仍住在耶路撒冷。
  • 2 一日,太阳平西,大卫从床上起来,在王宫的平顶上游行,看见一个妇人沐浴,容貌甚美,
  • 3 大卫就差人打听那妇人是谁。有人说:“她是以连的女儿,赫人乌利亚的妻拔示巴。”
  • 4 大卫差人去,将妇人接来;那时她的月经才得洁净。她来了,大卫与她同房,她就回家去了。
  • 5 于是她怀了孕,打发人去告诉大卫说:“我怀了孕。”
  • 6 大卫差人到约押那里,说:“你打发赫人乌利亚到我这里来。”约押就打发乌利亚去见大卫。
  • 7 乌利亚来了,大卫问约押好,也问兵好,又问争战的事怎样。
  • 8 大卫对乌利亚说:“你回家去,洗洗脚吧!”乌利亚出了王宫,随后王送他一份食物。
  • 9 乌利亚却和他主人的仆人一同睡在宫门外,没有回家去。
  • 10 有人告诉大卫说:“乌利亚没有回家去。”大卫就问乌利亚说:“你从远路上来,为什么不回家去呢?”
  • 11 乌利亚对大卫说:“约柜和以色列与犹大兵都住在棚里,我主约押和我主(或译:王)的仆人都在田野安营,我岂可回家吃喝、与妻子同寝呢?我敢在王面前起誓(原文是我指着王和王的性命起誓):我决不行这事!”
  • 12 大卫吩咐乌利亚说:“你今日仍住在这里,明日我打发你去。”于是乌利亚那日和次日住在耶路撒冷。
  • 13 大卫召了乌利亚来,叫他在自己面前吃喝,使他喝醉。到了晚上,乌利亚出去与他主的仆人一同住宿,还没有回到家里去。
  • 14 次日早晨,大卫写信与约押,交乌利亚随手带去。
  • 15 信内写着说:“要派乌利亚前进,到阵势极险之处,你们便退后,使他被杀。”
  • 16 约押围城的时候,知道敌人那里有勇士,便将乌利亚派在那里。
  • 17 城里的人出来和约押打仗;大卫的仆人中有几个被杀的,赫人乌利亚也死了。
  • 18 于是,约押差人去将争战的一切事告诉大卫,
  • 19 又嘱咐使者说:“你把争战的一切事对王说完了,
  • 20 王若发怒,问你说:‘你们打仗为什么挨近城墙呢?岂不知敌人必从城上射箭吗?
  • 21 从前打死耶路·比设(就是耶路·巴力,见士师记九章一节)儿子亚比米勒的是谁呢?岂不是一个妇人从城上抛下一块上磨石来,打在他身上,他就死在提备斯吗?你们为什么挨近城墙呢?’你就说:‘王的仆人赫人乌利亚也死了。’”
  • 22 使者起身,来见大卫,照着约押所吩咐他的话奏告大卫。
  • 23 使者对大卫说:“敌人强过我们,出到郊野与我们打仗,我们追杀他们,直到城门口。
  • 24 射箭的从城上射王的仆人,射死几个,赫人乌利亚也死了。”
  • 25 王向使者说:“你告诉约押说:‘不要因这事愁闷,刀剑或吞灭这人或吞灭那人,没有一定的;你只管竭力攻城,将城倾覆。’可以用这话勉励约押。”
  • 26 乌利亚的妻听见丈夫乌利亚死了,就为他哀哭。
  • 27 哀哭的日子过了,大卫差人将她接到宫里,她就作了大卫的妻,给大卫生了一个儿子。但大卫所行的这事,耶和华甚不喜悦。

《答疑解惑》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우리는 《사무엘하》 11장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이 장은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요? 저자의 의도를 한번 헤아려 봅시다. 저자의 의도를 붙잡으면, 그가 기록하고자 한 주제를 붙잡을 수 있습니다. 이 장은 하나의 사실을 묘사하고 있는데, 아주 흥미진진하면서도 사람을 넘어지게 만드는 이야기입니다. 설마 저자의 의도가 사람을 넘어뜨리려는 것이었을까요? 사실은 사람들로 하여금 깨어 경각심을 갖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장의 주제를 조금 다듬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일을 경계하며 주의하라로 정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장이 다윗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일을 행한 것을 기록했다고 말합니다. 대략 그런 의미가 맞습니다. 여러분도 이미 여러 번 읽어보셨을 텐데, 다 듣고 나면 이 장의 이야기가 한 편의 드라마를 연출해도 될 만큼 묘사가 흥미진진하다고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야기 묘사에만 정신이 팔리면 아무 의미가 없으므로, 중간에 내용을 조금씩 덧붙이면서 먼저 핵심 포인트와 중점부터 나누겠습니다.

승리 속에서도 깨어 있어야 한다

사람은 전쟁에서 승리했을 때 각별히 조심해야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귀신은 계속해서 당신과 싸우고 있는데, 당신이 패배한 후라면 귀신이 어떤 수작을 부리겠습니까? 예로부터 이 수작의 본질은 변한 적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창세기》 3장이 기억나십니까?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보았을 때 심히 좋아 보였고, 이번에는 다윗이 한 여인이 목욕하는 것을 보았을 때 심히 좋아 보였습니다. 둘 다 눈으로 보았고, 결국 보고 난 후에 끝장이 났으며,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눈으로 보기에 좋은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닙니다. 귀신은 끊임없이 사람의 눈을 이용하기 때문입니다.

승리하고 있을 때, 당신의 눈이 부주의하게 보아서는 안 될 것을 보게 되면, 보고 난 후에 마음이 동요하게 되고, 그 뒤로 일련의 사건들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때 당신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일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부주의하여 그곳에 빠져들면 저주를 받게 됩니다. 저주라는 것은 결코 장난이 아니며, 당신이 다윗이라 할지라도 예외 없이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각별히 조심해야 하며, 승리 속에서도 여전히 깨어 있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아무리 큰 승리를 거두고 있다 할지라도 반드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사실 다윗은 자신에 대한 판단이 꽤 긍정적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고, 하나님께서 어떤 상황에서든 자신과 함께하시며, 하나님께서 자신을 평안하게 하시고 승리하게 하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사람이 자신이 꽤 잘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 망가지기 시작하고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바로 승리했을 때 깨어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해가 돌아와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매 다윗이 요압과 그에게 있는 그의 부하들과 온 이스라엘 군대를 보내니 그들이 암몬 자손을 멸하고 랍바를 에워쌌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더라 (《사무엘하》 11:1)

이러한 상황이 보이십니까? 이스라엘 군대가 출전하면 정말로 대단하여 백전백승이었습니다! 그것이 다윗의 공로였습니까? 아닙니다! 다윗은 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을까요? 자신이 출전할 필요가 없었고, 요압과 이스라엘 군대가 매우 막강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군대가 막강했던 것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강하셨던 것입니다. 그 결과 다윗은 그만큼 깨어 있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해 질 녘에 다윗이 침상에서 일어났습니다. 아마도 전날 밤에 술을 너무 많이 마시고 늦게까지 마시다가 이튿날 해 질 녘까지 잤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밤새 마작을 하느라 해 질 녘까지 자기도 합니다. 《성경》에는 다윗이 무엇을 했는지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어쨌든 해 질 녘까지 자다가 해가 진 후에야 일어났으니, 이때 사람의 머리는 멍해져서 동서남북을 분간하지 못하는 상태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의 눈은 여전히 잘 보였고, 왕궁 옥상으로 올라갔습니다.

다윗의 집에서는 예루살렘의 스카이라인이 다 내려다보였습니다. 예루살렘의 백성들은 누구든지 다윗의 집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다윗이 자기 집 옥상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어느 집 마당이든 그에게 훤히 다 보였습니다. 이때 그의 머리는 멍한 상태였는데, 결국 문제가 터졌습니다! 다윗이 한 여인이 목욕하는 것을 보았는데, 어쩌면 그렇게 교묘하게 맞아떨어졌을까요? 왜냐하면 이것은 모두 영계에서 연출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과 기뻐하시지 않는 일에 주의해야 한다고 말씀드릴까요?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여인의 남편은 최전선에 싸우러 나갔고, 그녀는 자기 집 마당에 서서 고개만 들면 다윗의 집을 볼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이날 다윗이 갑자기 해 질 녘에 일어난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사실 다윗은 이렇게 한 지 이미 꽤 오래되었고, 다윗은 매우 잘생겼습니다! 밧세바는 다윗이 매일 이 시간에 일어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람의 생각과 마음이란 참 묘한 것이어서, 그녀는 다윗을 좋아하게 되었고, 궁에 들어가 다윗과 함께 있고 싶어 했으며, 그것을 대단한 일로 여겼습니다.

이튿날이 되자 밧세바는 시간을 잘 가늠하여 딱 이 시간에 맞춰 목욕을 했습니다. 그 결과 다윗이 멀리 바라보았을 때, 그녀의 용모가 너무나 아름다워 마치 유화 속의 인물 같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밧세바가 방 안에서 목욕하면 안 되었나?”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하필 마당에서 목욕을 했는데, 다윗에게 보여주어 그의 마음을 움직이고, 자신을 궁으로 데려가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일에 조심하지 않고 배겨낼 수 있겠습니까? 절대 안 됩니다! 다윗은 멍한 상태에서 마음속으로 영화를 찍기 시작했고, 사람을 보내 알아보게 하니, 마침 그녀의 남편이 집에 없고 최전선에서 자신을 위해 싸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윗의 머릿속은 온통 밧세바의 모습으로 가득 찼습니다.

어떤 사람이 마당에서, 그것도 다윗의 시선이 곧바로 닿을 수 있는 곳에서 목욕을 하겠습니까? 참 이상하게도, 이 소동극은 그렇게 연출되었습니다! 다윗 안의 감정이 너무나 강렬하여, 알아본 후에 사람을 보내 밧세바를 데려오게 했습니다. 밧세바는 그곳에서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그녀가 이 일을 위해 오랫동안 기도해 왔는데 마침내 다윗에 의해 궁으로 들어오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소설을 쓴다면 얼마나 생생하게 쓰겠습니까! 타이밍도 너무나 절묘하여, 그들이 단 하루 동침했을 뿐인데 임신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절묘할까요? 귀신이 연출한 것이니 절묘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성경공부를 하면서 생각했습니다. ‘이것 참 치명적이구나! 하나님께서는 나를 승리하게 하시고, 부유하게 하시고, 매 순간 그분의 임재를 누리게 하실 수 있지만, 깨어 있을지 깨어 있지 않을지는 정말로 내 자신의 선택에 달렸구나.’

그러므로 사람의 눈은 한번 보면 문제가 생기기 쉽습니다. 동북 지역에는 유명한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한 사람이 “뭘 쳐다봐?”라고 하니, 다른 사람이 “쳐다보면 어쩔 건데?”라고 대꾸했고, 결국 두 사람이 주먹다짐을 벌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함부로 쳐다보지 마십시오! 저는 그런 곳에 가면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아무것도 감히 쳐다보지 않습니다! 그런 대화가 오갔기 때문에 그런 결말이 났기 때문입니다. 다윗조차도 견뎌내지 못했는데, 누가 견뎌낼 수 있겠습니까? 명심하십시오, 우리는 승리하고 있을 때 각별히 깨어 있어야 합니다! 이런 유의 이야기는 매우 많습니다. 꼭 이것을 보아서가 아니라 저것을 보아서일 수도 있습니다. 무엇을 보았든 간에, 사람 내면의 깨어 있지 못함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에 대해 깨어 있어야 합니까? 무엇이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무엇이 하나님의 기쁨이 되지 않는지 아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우리 가운데 와서 승리하는 교회에 왔으니 이제는 누워서 편히 쉬어도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내가 승리하는 교회에 있으니 기도 한 번만 해도 병이 낫는다”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무엇을 조심해야 합니까? 마귀의 궤계를 조심해야 합니다. 다윗이 이렇게 똑똑한데, 마귀의 궤계를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몰랐을까요? 알고 있었습니다.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몰랐을까요? 역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순식간에 어리석어져서 이런 촌극을 빚어냈을까요?

아무도 모르고 귀신도 모를 것이라 생각하지 말라

아무도 모르고 귀신도 모를 것이라고 절대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사실 이 세상의 모든 일은 투명합니다. 사람도 알고, 귀신도 알고, 하나님도 아십니다. 결국 밧세바가 임신을 했고, 이 일은 다윗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밧세바의 배가 날이 갈수록 불러오는데 누가 모르겠습니까? 다 압니다! 어쩌면 밧세바는 도처에 “이것은 나와 다윗의 아이다”라고 떠벌리고 다녔을지도 모릅니다. 다윗의 눈에 들었으니 얼마나 체면이 서겠습니까!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요? 이때의 다윗은 뜻밖에도 하나님께서 무엇을 기뻐하시지 않는지 잊어버렸습니다. 그는 또한 이 세상과 영계가 모두 투명하다는 사실도 잊어버렸습니다. 그는 더 나아가 모든 일이 영계에서 연출된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는데, 이것이 바로 비극의 시작이었습니다.

밧세바는 여전히 ‘내가 다윗을 위해 아들을 낳을 수 있게 되었구나!’ 하며 기뻐하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남편이 있지 않습니까! 이러면 엉망진창이 되지 않습니까? 그녀는 서둘러 다윗에게 자신이 임신했음을 알렸습니다. 다윗은 이 말을 듣고 잔꾀를 내어, 밧세바의 남편을 돌아오게 했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전장에서 돌아왔으나 자기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밧세바의 배가 아직 임신한 티가 나지 않을 때 우리아를 집으로 돌려보내 밧세바와 동침하게 한 후, 얼마 지나서 임신 이야기를 꺼내면 밧세바와 자신이 동침한 일을 덮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사실 이렇게 하는 것도 매우 골치 아픈 일입니다. 만약 아이가 태어났는데 생김새가 점점 다윗을 닮아간다면 얼마나 속이 타겠습니까? 귀신이 이 아이로 하여금 점점 다윗을 닮아가게 만들지 않겠습니까? 만듭니다!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든 결국에는 매우 골치 아파질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아는 전장에서 돌아온 후 도무지 집으로 들어가지 않으니, 다윗은 몹시 답답해졌습니다! 사람이 자기가 행한 일을 아무도 모르고 귀신도 모를 것이라 생각한다면 큰 문제가 됩니다.

사람은 작은 거짓말 하나를 위해 반드시 큰 거짓말로 그 작은 거짓말을 덮어야 하고, 다시 엄청난 거짓말로 그 큰 거짓말을 덮어야 합니다. 사람이 작은 죄를 하나 짓고 중간 크기의 죄로 그것을 덮으려다 제대로 안 덮이면 다시 큰 죄로 그것을 덮으려 하는데, 이는 영계가 투명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당신에게 왜 종종 여러 일들이 일어날까요? 당신이 생각하는 그 일들이 모두 투명하기 때문에 귀신이 와서 당신을 가지고 놀 수 있는 것입니다.

십여 년 전 제가 귀신을 쫓아낼 때 매우 흥미로운 현상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사람들을 데리고 기도할 때 보통 제가 한마디를 하면 상대방이 한마디를 따라 했습니다. 제가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외골수로 파고드는 영은 떠나갈지어다!”라고 선포했습니다. 그러자 사역을 받던 사람이 말을 더듬으며 “내… 내… 내가…” 하며 한참을 끙끙대도 이 말을 내뱉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성령이여 내게 충만히 임하소서!”라고 따라 하게 했더니, 이 말은 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다른 말은 다 할 수 있었지만, “외골수로 파고드는 영은 떠나갈지어다”라는 말만은 내뱉지 못했습니다. 참으로 흥미로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앞 구절만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러자 귀신이 그를 막아버렸습니다. 귀신은 제가 이어서 “외골수로 파고드는 영은 떠나갈지어다”라고 말할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다시 한번 시험 삼아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성령이여 내게 충만히 임하소서!”라고 했더니, 이 구절도 그가 말하지 못하고 오직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까지만 말할 수 있었습니다. 배후의 귀신은 사람의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다 알고 있기 때문인데, 현대 과학 기술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뇌파’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남의 점을 아주 잘 치는 사람들을 만난 적이 있어서 영계의 일들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점을 아주 잘 치는 것은 사실 그 사람이 잘 맞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붙은 영이 미래의 일들을 다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훗날 저는 깨달았습니다. 영계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 세상의 수많은 세월 뒤의 일까지도 내다볼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사람은 영계 안에서 모두 투명하므로, 절대로 귀신과 잔머리를 굴리지 마십시오. 오직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행하는 것만이 핵심입니다. 만약 우리 마음에 든 이런저런 생각들을 곰곰이 따져본 결과, 결국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는 결론이 나온다면 하지 마십시오. 작은 것을 행하면 중간 크기의 것을 행하게 되고, 그것이 다시 큰 것으로 발전하게 되어 큰일이 나기 때문입니다! 귀신이 저를 가지고 놀려고 한다면 아마 조금은 힘을 써야 할 것입니다. 비록 제가 다윗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저는 여전히 깨어 있어야 합니다. 승리하는 면에서 제가 다윗과 비교한다면 한참 뒤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승리하는 다윗’이라고 지었다면, 저는 제 별명을 ‘승리하지 못하는 다윗’이라고 붙여서 저 자신으로 하여금 항상 깨어 있게 하겠습니다. 사람이 평생 하나님을 기뻐하시게 하기를 추구한다면 그것은 실로 대단한 일이며, 귀신도 당신에게 아무런 수를 쓰지 못합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평생 오직 하나님만을 기쁘시게 하려 하며, 사람의 기쁨을 구하고자 한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고 말했습니다. 아무도 모르고 귀신도 모를 것이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사실 모든 일은 투명합니다. 당신은 깨어 있으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빤히 지켜보고 계신다 할지라도 당신을 대신해 선택을 내려주실 수는 없습니다. 결정을 내리는 것은 당신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제 머릿속에 계속 맴도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많은 형제자매들을 점점 더 부유하게 하실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너희가 부유해졌을 때 기쁜 마음과 즐거운 뜻으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지 아니하면, 너희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내신 마귀를 섬기게 될 것이다’라는 말씀인데, 이 말씀이 벼락처럼 귓가에 울렸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사람은 왜 부유해진 후에 기쁜 마음과 즐거운 뜻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지 못할까?’ 제가 보기에 그 사람은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것 같지만, 그의 내면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으니, 곧 기쁜 마음과 즐거운 뜻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누구를 섬기러 간 것입니까? 재물을 섬기러 간 것입니다. 그러므로 재물은 매우 큰 시험거리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갑자기 당신에게 1억을 주셔서 작은 목표 하나를 이루게 하셨다면, 당신은 ‘내년에 이것이 5천만으로 줄어들면 큰일인데!’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은 수많은 시간을 포트폴리오 투자에 쏟아붓게 되고, 하나님을 섬길 때가 되면 시간을 빼앗겨서 오늘도 시간이 없고 내일도 시간이 없게 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데는 시간이 필요한데, 당신은 시간이 없고 모든 시간을 돈에 다 바쳐버립니다. 저는 이런 사람이 참 묘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을 승리하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당신을 부유하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신데, 정작 부유해지고 나서는 당신의 하나님을 기쁜 마음과 즐거운 뜻으로 섬기지 않으니 말입니다. 섬기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기쁜 마음과 즐거운 뜻으로 섬기지 않는 것이며, 조금만 틈이 생기면 하나님을 한쪽으로 밀쳐버립니다.

많은 사람들이 보통 가정이 첫째, 사업이 둘째,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셋째입니다. 이것이 보편적인 현상입니다. 이전에 한 목사님이 계셨는데, 제가 한동안 사역을 돕고 나니 그가 눈물 콧물을 흘리며 회개했습니다. 회개한 후에 그가 한 말이 참 흥미로웠습니다. 그는 “그동안 제가 너무 하나님 섬기는 일에만 전념하느라 제 가정을 소홀히 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소홀히 한 적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부터는 하나님 섬기는 것을 첫째 자리에 두고, 가정을 둘째 자리에 두며, 교회 사역을 셋째 자리에 두겠습니다”라고 했는데, 결국 하나님을 셋째 자리로 밀어 넣은 것입니다! 저는 그가 “이제부터는 가정을 첫째 자리에 두겠습니다”라고 말할 줄 알았는데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거짓을 행하며 여전히 하나님을 첫째 자리에 둔다고 말했지만 하나님의 이름을 빌렸을 뿐입니다. 그가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기쁨이 될 수 있겠습니까?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사람의 기쁨만 구하러 다녔으니, 아이의 기쁨을 구하든지 아내의 기쁨을 구하든지 하고, 하나님에 대해서는 ‘그냥 그런대로’ 대하는 것입니다! 그가 사역을 안 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사역을 하기는 합니다. 그러면서 사역을 조금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깁니다. ‘하나님, 저한테 더 무엇을 원하십니까? 제가 사역을 안 했습니까? 저도 사역을 했습니다.’ 바로 이런 태도입니다.

우리는 결코 아무도 모르고 귀신도 모를 것이라 생각해서는 안 되며, 영적인 세계에서는 모든 일이 투명하다는 것을 늘 의식해야 합니다. 당신의 생각과 뜻이 아무리 합리적으로 여겨진다 해도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당신은 우리아를 불러와 그의 아내와 동침하게 하면 아무도 모르게 덮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까? 태어난 아이가 당신과 아무 상관이 없게 될 줄 알았습니까? 분명히 상관이 있으며, 그 아이는 자라면서 점점 당신을 닮아갈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이 될 수 있으니, 절대로 스스로 똑똑하다고 여기며 가리려다 도리어 더 드러나게 만드는 우를 범하지 마십시오.

마귀의 연환계(연쇄적 계략)를 경계하라

저녁 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그 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 여인을 알아보게 하였더니 그가 아뢰되 그는 엘리암의 딸이요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아니니이까 하니 다윗이 전령을 보내어 그 여자를 자기에게로 데려오게 하고 그 여자가 그 부정함을 깨끗하게 하였으므로 더불어 동침하매 그 여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사무엘하》 11:2-4)

마귀의 연환계는 매우 무섭습니다. 첫 번째 연환계는 당신의 눈으로 여인이 목욕하는 것을 보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 여인은 아름다웠고 마치 유화 속에서 걸어 나온 미녀 같았습니다. 결국 다윗은 보고 나서 그냥 넘기지 못하고 누구의 딸인지 알아보기 시작했고, 알아보니 엘리암의 딸이자 우리아의 아내였습니다. 다윗은 속으로 ‘아! 그녀는 이미 시집을 갔는데 내가 어찌해야 하나?’ 하며 온갖 잡생각을 품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었고 손에 권세를 쥐고 있었기에 사람을 시켜 그녀를 데려오게 했습니다. 처음에는 눈으로 본 것만으로 작은 죄를 지었으나, 이때 그녀와 관계를 맺음으로써 중간 크기의 죄를 지었습니다.

다윗은 중간 크기의 죄를 짓고 나서 이 일이 이것으로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밧세바가 임신을 했습니다. 이 일이 얼마나 절묘합니까? 어떤 사람들은 임신을 하고 싶어서 온갖 기도를 드려도 임신이 안 되는데, 그들은 단번에 임신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윗은 “괜찮다, 내가 우리아에게 휴가를 주어 우리아를 집으로 보내면 된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 우리아는 “요압과 이스라엘 군사들이 모두 전방에서 진을 치고 싸우고 있는데, 내가 어찌 내 집으로 가서 먹고 마시고 내 처와 같이 자리이까?”라고 말하며 왕궁 문어귀에 머물렀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편지를 써서 우리아의 손에 들려 요압에게 보내어 그를 전쟁터에서 죽게 만들었습니다. 전쟁터에서 죽게 만드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었지만, 피 흘린 죄는 다윗과 직접적인 관련을 맺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마귀의 연환계를 경계해야 합니다.

사람이 일단 저주를 받으면 결코 그 저주가 그냥 지나갈 것이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죄를 짓고 회개하고, 회개하고는 또 죄를 짓고, 다시 회개하고는 또 연이어 죄를 짓습니까? 사람은 죄를 짓는 데는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알아야 하지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를 알지 못합니다. 한 비그리스도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들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형편없고, 당신들의 하나님도 아주 형편없습니다.” 제가 “어떻게 형편없다는 말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당신들 그리스도인들은 죄를 짓고 회개하면 그만이고, 아무 일 없으면 또 죄를 짓고 회개하면 또 그만이지 않습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보혈이 우리의 허물을 덮어주실 수 있다는 것만 알았지, 죄를 짓는 데는 대가가 따른다는 사실을 잊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 비그리스도인에게 설명을 해주었고, 설명을 다 듣고 나자 그는 수긍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죄를 짓는 것에도 대가가 따릅니다.

저는 그에게 스스로 찬찬히 살펴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날마다 하나님의 기쁨이 되지 못하는데 하나님께서 징계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징계하지 않으신다 한들 대가를 치르지 않겠습니까?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누구든지 죄를 지으면 대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이며, 다윗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구약 《성경》의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할 때 그들이 너무나 번거롭고 괴롭게 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그 반석을 조금만 치면 물이 나올 것이라 하셨는데, 모세는 화를 내며 반석을 세게 내리쳤습니다. 모세의 성질이 왜 갑자기 폭발했을까요? 그가 선악을 분별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작은 일 하나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일은 마귀의 연환계였습니다. 우리아는 왜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을까요? 당신은 그가 충성심 때문이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충성심 때문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때 그의 머릿속에 있는 생각은 사람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의 생각과 마음, 뜻은 종종 영계의 존재들에게 조종당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아이든 밧세바이든, 단지 한 편의 소동극으로 다윗을 범죄하게 하고 하나님께 죄를 짓게 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일을 행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사람입니다. 모든 것은 사람의 머릿속에 품은 생각에 달려 있습니다! 사람의 머릿속에 품은 생각이 시작부터 마귀의 올무와 궤계에 걸려든다면 그것은 치명적인 일입니다! 만약 당신이 평생을 그렇게 흐리멍덩하게 살아간다면 결국 마귀의 소굴로 굴러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행해야 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일은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일에는 늘 마귀의 올무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일은 저에게도 매우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저는 항상 깨어 있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자칫 방심하면 하나님께서 무엇을 기뻐하시지 않는지 잊어버리고, 우리가 오늘날 이런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이 모두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일에 주의하라

우리아의 아내는 그 남편 우리아가 죽었음을 듣고 자기의 남편을 위하여 소리내어 우니라 그 장례를 마치매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를 왕궁으로 데려오니 그가 그의 아내가 되어 그에게 아들을 낳으니라 다윗이 행한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 (《사무엘하》 11:26-27)

만약 다윗이 처음부터 ‘이 일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하며, 내가 무엇을 기뻐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면 알아보러 사람을 보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밧세바를 자기 궁으로 데려왔고, 하나님께서 이 일을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어버렸으며, 일을 저지르고 나니 밧세바가 임신하는 사태까지 빚어졌습니다. 이 일련의 일들은 모두 한 가지 이유에서 비롯되었으니, 곧 다윗이 하나님께서 이 일을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아가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밧세바도 임신했다면, 이 일이 들통날 바에야 차라리 일찍 들통나게 하는 편이 나았을 것입니다. 차라리 직접 우리아에게 “정말 미안하네. 자네 아내가 임신한 것은 내가 저지른 짓일세. 어서 집으로 돌아가게. 이 일은 우리 둘만 아는 비밀로 하고, 내가 자네를 승진시켜 주고 부유하게 해 주겠네. 내가 잘못 처신했네. 그날 내가 어리석었네. 어제는 정말 편지를 써서 자네를 최전선으로 보내 적의 손에 죽게 하려고까지 생각했었네”라고 털어놓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차마 입을 떼지 못했고, 결국 일은 갈수록 더 꼬여만 갔으며, 뜻밖에도 하나님께서 이 일을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어버렸습니다.

우리아가 알았다면 어떻게 말했겠습니까? “내가 최전선에서 왕을 위해 싸우고 있는데 뒤에서 내 아내를 범하다니, 왕은 내게 너무나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만약 다윗이 이때 단호하게 우리아에게 “내가 이미 일을 저질렀으니 미안하다는 말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지금부터라도 자네에게 떳떳하게 대하겠네. 나를 한 대 때리고 싶다면 때리게, 어쨌든 내가 잘못했네!”라고 처리했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우리는 사람의 피를 흘린 죄가 결코 장난이 아니며, 매우 깊은 저주가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일을 잊어버리면 큰일이 납니다! 이미 일을 저질렀다면 차라리 “우리아, 자네가 한 번 더 충성을 보여주게. 자네 아내의 일은 작은 일이 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어야 했을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제가 빗대어 한 말입니다. 핵심은 행하면 행할수록 더욱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는 길로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며, 갈수록 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면 큰 문제가 됩니다. 다윗은 이 일을 행한 후 수많은 고난을 겪었고, 훗날 칼이 그의 집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비록 우리아를 죽였지만 다윗은 훗날 즉시 손실을 멈추고 곧바로 깨달아 제때에 회개했기에, 결과적으로 그는 여전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다윗으로 남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승리할 때 깨어 있어야 하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일에 주의하는 것이야말로 핵심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형제자매들을 날마다 부유하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부유해졌을 때, 정말로 여전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주의를 기울이겠습니까? 이것이 제가 여러분에게 남겨드려 깊이 생각해 보게 하고자 하는 질문입니다. 절대로 부유해진 후에 그 부유함이 당신의 짐이 되게 하지 마십시오. 승리한 후에 그 승리가 당신의 짐이 되게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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