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答疑引言
《撒母耳记下》的第十一章,特别让人警醒。这一章题目叫《要警醒留意神所不喜悦的事》。其实我把这事分成几类,大家看看是不是这个道理?第一、神要让你做的,一定要做;第二、神让你不能做的,千万别做,因为这些都是有结果的;第三、神没有清清楚楚说的,凭着信心做或者凭着信心不做;第四、神所喜悦的事要多做;第五、神不喜悦的事,千万别做,就是这么个逻辑。
Q1:老师,打胎算不算流人血的罪呢?
有很多教会把打胎算做流人血的罪,但是你如果问我的话,我只能告诉你,我在《圣经》里没找着答案。那问题就来了,其实这些事特别模糊,不能瞎说。我给大家举个例子,好让大家能够清醒一点。《圣经》里说:这个人来到世上,可能还不如那些没有来到世上的不到期而落的胎;那些不到期而落的胎比来到这世上的人更好!也就是说人在世上活着不容易啊!打胎算不算流人血的罪?那就见仁见智了。
问题在哪呢?问题在于怀了这个孩子。你如果让这个孩子来到世上,那不是很麻烦吗?他不想来到这世上,你让他来了。而且这孩子什么时候死?这孩子还没出生就死了、一岁死了、十岁死了、还是一百岁死了,其实对我来说差不多都一样。
那打胎算不算流人血的罪?传统教会反对堕胎,有的人觉得那是流人血的罪。结果他们就劝人要把孩子生下来。这个孩子生下来以后,妈妈也养活不了自己,孩子就更养活不了自己了,结果那个妈妈就想自杀。教会里有些人就对她说:你要为你的孩子着想啊,你死了以后你孩子怎么办呢?结果发生了什么事情呢?这个妈妈就抱着孩子跳楼了。这是谁流人的血呢?教会流了人的血。如果这个妈妈当时不想把孩子生下来,你就别要求她非得把孩子生下来。
我给大家一个建议:那个人自己愿意做什么样的选择就自己去做吧,我不替人做决定。算不算流人血的罪呢?算也罢、不算也罢,只不过是早点流,还是晚点流的事。所以人别把这事整的那么要命,你说我这态度是不是有点模糊啊?不模糊。就让那个当事人自己去做决定,别把重担放在别人身上,自己在那一根手指头都不动。别因为要不要堕胎这件事,就变成了一个法利赛人,那就麻烦了!如果怀孕的人是你怎么办呢?那我也不告诉你,算不算流人血的罪?愿意干什么,就干什么。
Q2:女人流产多次,算不算流人血的罪?
流产了就流了吧,从现在开始要好好的敬畏神。
Q3:大卫向神祷告,认罪悔改 、认罚,神会原谅大卫吗?
大卫在还没杀乌利亚的时候认罪悔改。神会不会原谅他?肯定会原谅!但是如果你心里不是真正的想要悔改,就在那做做样子,今天整了一个乌利亚,明天整了一个亚利乌;今天整了一个拔示巴,明天再整了一个示巴拔,那就麻烦了。
Q4:老师,假如大卫向乌利亚认罪,悔改,让乌利亚打他一顿,那在神的眼里,大卫还算犯罪吗?
其实这事是这样的,大家对《圣经》里的十诫还有印象吗?不可贪恋别人的房屋,不可贪恋别人的妻子。你别以为贪恋完了什么事都没有,神照样有审判,因为那是十诫,那可不是开玩笑的!流人血是非常严重的罪,这个罪严重到什么程度呢?严重到回到挪亚从方舟里出来的世代。凡是流人血的,神必追讨他的罪。
Q5:老师,拔示巴勾引大卫,神使她的孩子死了。后来神为什么还让她生了神所喜悦的所罗门,是她悔改了,然后神就赦免了她的罪吗?
你看我们人就喜欢把这事整的很扯。拔示巴勾引大卫,那她为什么要勾引大卫呢?其实拔示巴这个人里面有一些东西,还有一点像他玛,只是他玛嫁进了犹大的家里。但是拔示巴却嫁给了乌利亚,这个拔示巴其实很想从大卫得孩子,因为她里面很清楚的知道,要因大卫的后裔得福。
这个事我们是怎么推论出来的呢?我们得知道所罗门是谁教出来的。其实所罗门成长的大部分时间都是拔示巴教的,拔示巴怎么就把所罗门给教好了呢?这个过程我们不清楚,那后来神为什么喜悦所罗门呢?因为所罗门很关心大卫所关心的事,建造神的殿!至于拔示巴是不是想做一个有命定的人,《圣经》里没有依据来支持我这个观点,但是从她生了所罗门,又能够把他调教成神所喜悦的人,我们好像是能贯穿起来一点,但这只是我自己的猜测。
神不太喜欢纪念人的罪直到永远,如果人愿意悔改,神还是喜悦他的!大卫把拔示巴接到宫里做自己的老婆,神好像没太在乎这事。结果拔示巴又生了一个儿子,那就是所罗门,后来接替大卫作王。如果你问我的话,有一点可以确定的就是所罗门关注神的殿,神立所罗门为王。
Q6:老师,大卫不敢承认自己所做的事,是不是也是不好意思、爱面子?
那肯定是爱面子,没法说出来啊!只要一想起来,背都发麻!如果是我,我也不知道怎么说,只不过我不是当事人。我就瞎编一个:乌利亚啊,对不起,我干了这事,我该怎么办呢?如果大卫说:乌利亚啊,你回家把婚离了,把老婆让给我吧!那就麻烦了!肯定有爱面子的成分。
Q 7:老师,如何时刻保持警醒?大卫怎么一下子就把神所喜悦的事忘光了呢?
这是很正常的。人如果不警醒,脑子一下子的混乱就会把事给搞砸了。有的人说:淹死的都是会游泳的。有的人动不动就到无人区去旅游,去穿越什么罗布泊,结果就死了!如果他不去的话,就不会死了!所以人信心满满的时候才是最危险的。
Q8:老师,大卫打仗的时候神都与他同在,现在不出去打仗待在耶路撒冷,是不是这本身就不蒙神喜悦、神也不与他同在了?
这两件事之间没有必然的联系。大卫其实上前线打仗也好,不上前线打仗也好,他心里是真的关心神所关心的事,只是这个时候糊涂了一把,就变成现在这样了。咱们这些人本来就不太像大卫,还天天糊涂,那麻烦就更大了。
Q9:老师,大卫做的这事神很不喜悦,可是神为什么拣选了由拔示巴所生的所罗门做王?
因为所罗门关心神的殿!我们千万别把这些事扯到一起。所罗门那是前无古人,后无来者,也是很厉害的人!所罗门生下来脑袋就好使,你说这上哪说理去?拔示巴很想做一个有命定的人,她这一辈子的命好啊!她儿子做了很多年的以色列王。拔示巴这一辈子还缺什么吗?年纪轻轻就嫁给了大卫,等她岁数大了一点,她儿子又做了王,她就变成了太后。拔示巴这一辈子还是挺有眼光的!如果她要跟着乌利亚,我看比跟大卫差不少吧。
Q10:老师,拔示巴后来是不是知道自己错了,觉得自己害死了丈夫,在宫里也不好过,所以悔改,专心寻求神才把所罗门给培养好?
这事咱不敢猜。乌利亚的死当然与她也脱不了干系的。
Q11:老师,人的日子是不是不能过得太舒服?只要一不打仗,不逃亡就容易犯错呢?
生于忧患死于安乐!什么意思呢?安逸可以让人死;忧患的时候,人会比较容易警醒。
Q12:老师,是不是英雄难过美人关,这一关最难过,也最容易让人犯罪?
这问题问得挺好啊。上帝造人的时候,亚当不是没过美人关,而是亚当的老婆夏娃长得很美,亚当长得很帅,这两个人简直是绝配,结果怎么样呢?最先让人犯罪的就是女人。我不是性别歧视,因为《圣经》就是这么说的。所以女人容易犯罪,男人犯罪也是因为女人的缘故。
这是《圣经》里启示的一个非常明显的逻辑。这个逻辑用在谁的身上呢?这个逻辑可以用在彼得的身上。大家得知道,彼得就叫矶法,其实《圣经》字里行间都隐藏了那么一点东西。彼得就得带着他的老婆到处走。那他带着老婆到处走多影响工作啊?但是他就一直带着。彼得后来变成那样,其实跟他老婆也脱不了关系。罗得离开亚伯拉罕到了所多玛,俄摩拉这一带,跟谁脱不了关系呢?跟他老婆脱不了关系。
Q13:老师,拔示巴这么卑劣,为什么名字还记在基督的家谱上?
《圣经》哪里说拔示巴是卑劣的?是你自己认为她是一个卑劣的人吧!其实拔示巴是一个有眼光的女人,怎么就成了卑劣的呢?虽然这件事在人的角度看来是很不道德的。但是为什么会出现在基督的家谱上,这事还真的值得咱们思考。可能拔示巴还真的有点他玛的那种超越道德的辖制、捆绑那种性格,竟然也讨了神的喜悦,那也说不定,但这事我不能随便瞎说。只要能出现在耶稣基督的家谱上,那是很了不起的一件事。天上人间凡是传扬耶稣基督名字的地方,都知道拔示巴。
Q14:老师,拔示巴确实命好,好像没有受到惩罚?
你想让她受什么样的惩罚?我觉着拔示巴的命不错。
Q15:老师,新约《圣经》提到耶稣说:你的罪赦了,瘫子就起来了,也没有付代价。大卫的罪赦了,为什么还要付代价呢?
这问题挺有意思。那瘫子起来了,罪赦了。罪归到哪儿?归到耶稣身上了。后来瘫子又犯罪了,又归在哪儿去了?归到他自己身上了!所以说不是没有代价,那是因为神用恩典承担了我们的过犯。即使神承担了我们的过犯,背负了我们的重担,担当了我们的咒诅,但也不代表我们要一直不断的犯罪,让耶稣担当我们的咒诅,不是这样的!神用恩典担负了我们的咒诅。大卫付代价,谁不需要付代价?难道瘫子身上的咒诅不需要付代价?也要付代价!千万不要说没有付代价,哪有这回事?
Q16:老师,约押杀乌利亚这件事,会和大卫同定罪吗?如果约押认识神,大卫作为他的领导,约押还能这样听命处理这件事吗?
这是把《圣经》给读偏了。至于《圣经》里有像约押、乌利亚这样的人,或者像该隐,到后来的罗得,《圣经》里头出现了很多这样的人物,其实这些人都不是主轴。《圣经》里的主轴是从亚伯拉罕到以撒,以撒到雅各,雅各到约瑟,一直到耶稣基督,这些人才是《圣经》的主轴。咱们要抓住重点人物,别人咱就别管了。
Q17:老师,《圣经》里提到神造女人,不是男人的帮助者吗?是否既可以成为男人的帮助者,也会成为引诱男人犯罪的重要因素呢?
这种问题肯定是姐妹问的。我觉着这事其实从一开始就没成为帮助者。神造一个女人想成为男人的帮助者,完成神在他身上的命定。但是现实生活中的亚当和夏娃,夏娃成为亚当的帮助者了吗?没有!亚当看见夏娃的时候说:这是我骨中的骨,肉中的肉。但现实生活中却成为:这是我骨中的骨刺,肉中的肉刺。后来我发现这是根本就不是指着人说的,而是指着耶稣基督和祂的教会说的。
大家千万别把男人和女人,还有结婚这些事看得那么重要。我们要把什么东西看得重要呢?其实神要透过这事,要形成一个比喻,或者形成一个对未来的暗示。那个暗示就是教会要成为耶稣基督的新妇,耶稣基督要成为教会的丈夫,成为教会的新郎。这个观念有点超越我们所能理解的。后来所讲的其实都是指着教会说的,而不是指着男人和女人说的。耶稣基督和教会将来要成为一体,完成神在人身上的命定。
Q18:老师,从神的眼光来看拔示巴,是为了成就神的旨意,而做了人看来不光彩的角色,但却是神所喜悦的?
咱们不能这么瞎说,咱们只能说好像是这么回事。大家可别这么说,会导致很多姐妹去找大卫,结果找到的不是大卫,找到的是小卫,那就麻烦了!我们千万别整这些事,我想一个人有命定才是关键。人把活着这件事整明白,不管男人还是女人,有命定的人才是关键。
Q19:老师,怎么知道是拔示巴引诱大卫,还是大卫凭借国王的权势强暴了她呢?
你研究得还挺深的。我只能说我讲的是添油加醋,我给大家讲的大概就是这个样子。我想拔示巴应该在家不拥挤,就算是拥挤,能不能在大卫看不到的地方沐浴?为什么她非要在大卫看得到的地方沐浴呢?这就得靠我们自己去猜了。我猜的也不一定准:其实拔示巴应该没有在屋顶上沐浴,但是你洗澡能不能在家里洗,在人家看不见的地方洗呢?你在家里可以好好地洗,洗得也安心。我想她平时应该都是在屋里洗的,这次她为什么到外面来,整了这么一出闹剧,我们完全没有办法理解。
Q20:老师,拔示巴这属于二手的祝福吗?
你知道什么叫二手吗?如果那么整的话,他玛就是好几手了。传统人的观念就是二手、三手的,但这话好像不太属于合神心意的说法。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우리는 《사무엘하》 11장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이 장은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요? 저자의 의도를 한번 헤아려 봅시다. 저자의 의도를 붙잡으면, 그가 기록하고자 한 주제를 붙잡을 수 있습니다. 이 장은 하나의 사실을 묘사하고 있는데, 아주 흥미진진하면서도 사람을 넘어지게 만드는 이야기입니다. 설마 저자의 의도가 사람을 넘어뜨리려는 것이었을까요? 사실은 사람들로 하여금 깨어 경각심을 갖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장의 주제를 조금 다듬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일을 경계하며 주의하라로 정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장이 다윗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일을 행한 것을 기록했다고 말합니다. 대략 그런 의미가 맞습니다. 여러분도 이미 여러 번 읽어보셨을 텐데, 다 듣고 나면 이 장의 이야기가 한 편의 드라마를 연출해도 될 만큼 묘사가 흥미진진하다고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야기 묘사에만 정신이 팔리면 아무 의미가 없으므로, 중간에 내용을 조금씩 덧붙이면서 먼저 핵심 포인트와 중점부터 나누겠습니다.
승리 속에서도 깨어 있어야 한다
사람은 전쟁에서 승리했을 때 각별히 조심해야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귀신은 계속해서 당신과 싸우고 있는데, 당신이 패배한 후라면 귀신이 어떤 수작을 부리겠습니까? 예로부터 이 수작의 본질은 변한 적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창세기》 3장이 기억나십니까?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보았을 때 심히 좋아 보였고, 이번에는 다윗이 한 여인이 목욕하는 것을 보았을 때 심히 좋아 보였습니다. 둘 다 눈으로 보았고, 결국 보고 난 후에 끝장이 났으며,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눈으로 보기에 좋은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닙니다. 귀신은 끊임없이 사람의 눈을 이용하기 때문입니다.
승리하고 있을 때, 당신의 눈이 부주의하게 보아서는 안 될 것을 보게 되면, 보고 난 후에 마음이 동요하게 되고, 그 뒤로 일련의 사건들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때 당신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일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부주의하여 그곳에 빠져들면 저주를 받게 됩니다. 저주라는 것은 결코 장난이 아니며, 당신이 다윗이라 할지라도 예외 없이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각별히 조심해야 하며, 승리 속에서도 여전히 깨어 있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아무리 큰 승리를 거두고 있다 할지라도 반드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사실 다윗은 자신에 대한 판단이 꽤 긍정적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고, 하나님께서 어떤 상황에서든 자신과 함께하시며, 하나님께서 자신을 평안하게 하시고 승리하게 하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사람이 자신이 꽤 잘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 망가지기 시작하고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바로 승리했을 때 깨어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해가 돌아와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매 다윗이 요압과 그에게 있는 그의 부하들과 온 이스라엘 군대를 보내니 그들이 암몬 자손을 멸하고 랍바를 에워쌌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더라 (《사무엘하》 11:1)
이러한 상황이 보이십니까? 이스라엘 군대가 출전하면 정말로 대단하여 백전백승이었습니다! 그것이 다윗의 공로였습니까? 아닙니다! 다윗은 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을까요? 자신이 출전할 필요가 없었고, 요압과 이스라엘 군대가 매우 막강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군대가 막강했던 것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강하셨던 것입니다. 그 결과 다윗은 그만큼 깨어 있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해 질 녘에 다윗이 침상에서 일어났습니다. 아마도 전날 밤에 술을 너무 많이 마시고 늦게까지 마시다가 이튿날 해 질 녘까지 잤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밤새 마작을 하느라 해 질 녘까지 자기도 합니다. 《성경》에는 다윗이 무엇을 했는지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어쨌든 해 질 녘까지 자다가 해가 진 후에야 일어났으니, 이때 사람의 머리는 멍해져서 동서남북을 분간하지 못하는 상태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의 눈은 여전히 잘 보였고, 왕궁 옥상으로 올라갔습니다.
다윗의 집에서는 예루살렘의 스카이라인이 다 내려다보였습니다. 예루살렘의 백성들은 누구든지 다윗의 집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다윗이 자기 집 옥상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어느 집 마당이든 그에게 훤히 다 보였습니다. 이때 그의 머리는 멍한 상태였는데, 결국 문제가 터졌습니다! 다윗이 한 여인이 목욕하는 것을 보았는데, 어쩌면 그렇게 교묘하게 맞아떨어졌을까요? 왜냐하면 이것은 모두 영계에서 연출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과 기뻐하시지 않는 일에 주의해야 한다고 말씀드릴까요?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여인의 남편은 최전선에 싸우러 나갔고, 그녀는 자기 집 마당에 서서 고개만 들면 다윗의 집을 볼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이날 다윗이 갑자기 해 질 녘에 일어난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사실 다윗은 이렇게 한 지 이미 꽤 오래되었고, 다윗은 매우 잘생겼습니다! 밧세바는 다윗이 매일 이 시간에 일어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람의 생각과 마음이란 참 묘한 것이어서, 그녀는 다윗을 좋아하게 되었고, 궁에 들어가 다윗과 함께 있고 싶어 했으며, 그것을 대단한 일로 여겼습니다.
이튿날이 되자 밧세바는 시간을 잘 가늠하여 딱 이 시간에 맞춰 목욕을 했습니다. 그 결과 다윗이 멀리 바라보았을 때, 그녀의 용모가 너무나 아름다워 마치 유화 속의 인물 같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밧세바가 방 안에서 목욕하면 안 되었나?”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하필 마당에서 목욕을 했는데, 다윗에게 보여주어 그의 마음을 움직이고, 자신을 궁으로 데려가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일에 조심하지 않고 배겨낼 수 있겠습니까? 절대 안 됩니다! 다윗은 멍한 상태에서 마음속으로 영화를 찍기 시작했고, 사람을 보내 알아보게 하니, 마침 그녀의 남편이 집에 없고 최전선에서 자신을 위해 싸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윗의 머릿속은 온통 밧세바의 모습으로 가득 찼습니다.
어떤 사람이 마당에서, 그것도 다윗의 시선이 곧바로 닿을 수 있는 곳에서 목욕을 하겠습니까? 참 이상하게도, 이 소동극은 그렇게 연출되었습니다! 다윗 안의 감정이 너무나 강렬하여, 알아본 후에 사람을 보내 밧세바를 데려오게 했습니다. 밧세바는 그곳에서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그녀가 이 일을 위해 오랫동안 기도해 왔는데 마침내 다윗에 의해 궁으로 들어오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소설을 쓴다면 얼마나 생생하게 쓰겠습니까! 타이밍도 너무나 절묘하여, 그들이 단 하루 동침했을 뿐인데 임신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절묘할까요? 귀신이 연출한 것이니 절묘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성경공부를 하면서 생각했습니다. ‘이것 참 치명적이구나! 하나님께서는 나를 승리하게 하시고, 부유하게 하시고, 매 순간 그분의 임재를 누리게 하실 수 있지만, 깨어 있을지 깨어 있지 않을지는 정말로 내 자신의 선택에 달렸구나.’
그러므로 사람의 눈은 한번 보면 문제가 생기기 쉽습니다. 동북 지역에는 유명한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한 사람이 “뭘 쳐다봐?”라고 하니, 다른 사람이 “쳐다보면 어쩔 건데?”라고 대꾸했고, 결국 두 사람이 주먹다짐을 벌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함부로 쳐다보지 마십시오! 저는 그런 곳에 가면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아무것도 감히 쳐다보지 않습니다! 그런 대화가 오갔기 때문에 그런 결말이 났기 때문입니다. 다윗조차도 견뎌내지 못했는데, 누가 견뎌낼 수 있겠습니까? 명심하십시오, 우리는 승리하고 있을 때 각별히 깨어 있어야 합니다! 이런 유의 이야기는 매우 많습니다. 꼭 이것을 보아서가 아니라 저것을 보아서일 수도 있습니다. 무엇을 보았든 간에, 사람 내면의 깨어 있지 못함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에 대해 깨어 있어야 합니까? 무엇이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무엇이 하나님의 기쁨이 되지 않는지 아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우리 가운데 와서 승리하는 교회에 왔으니 이제는 누워서 편히 쉬어도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내가 승리하는 교회에 있으니 기도 한 번만 해도 병이 낫는다”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무엇을 조심해야 합니까? 마귀의 궤계를 조심해야 합니다. 다윗이 이렇게 똑똑한데, 마귀의 궤계를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몰랐을까요? 알고 있었습니다.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몰랐을까요? 역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순식간에 어리석어져서 이런 촌극을 빚어냈을까요?
아무도 모르고 귀신도 모를 것이라 생각하지 말라
아무도 모르고 귀신도 모를 것이라고 절대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사실 이 세상의 모든 일은 투명합니다. 사람도 알고, 귀신도 알고, 하나님도 아십니다. 결국 밧세바가 임신을 했고, 이 일은 다윗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밧세바의 배가 날이 갈수록 불러오는데 누가 모르겠습니까? 다 압니다! 어쩌면 밧세바는 도처에 “이것은 나와 다윗의 아이다”라고 떠벌리고 다녔을지도 모릅니다. 다윗의 눈에 들었으니 얼마나 체면이 서겠습니까!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요? 이때의 다윗은 뜻밖에도 하나님께서 무엇을 기뻐하시지 않는지 잊어버렸습니다. 그는 또한 이 세상과 영계가 모두 투명하다는 사실도 잊어버렸습니다. 그는 더 나아가 모든 일이 영계에서 연출된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는데, 이것이 바로 비극의 시작이었습니다.
밧세바는 여전히 ‘내가 다윗을 위해 아들을 낳을 수 있게 되었구나!’ 하며 기뻐하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남편이 있지 않습니까! 이러면 엉망진창이 되지 않습니까? 그녀는 서둘러 다윗에게 자신이 임신했음을 알렸습니다. 다윗은 이 말을 듣고 잔꾀를 내어, 밧세바의 남편을 돌아오게 했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전장에서 돌아왔으나 자기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밧세바의 배가 아직 임신한 티가 나지 않을 때 우리아를 집으로 돌려보내 밧세바와 동침하게 한 후, 얼마 지나서 임신 이야기를 꺼내면 밧세바와 자신이 동침한 일을 덮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사실 이렇게 하는 것도 매우 골치 아픈 일입니다. 만약 아이가 태어났는데 생김새가 점점 다윗을 닮아간다면 얼마나 속이 타겠습니까? 귀신이 이 아이로 하여금 점점 다윗을 닮아가게 만들지 않겠습니까? 만듭니다!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든 결국에는 매우 골치 아파질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아는 전장에서 돌아온 후 도무지 집으로 들어가지 않으니, 다윗은 몹시 답답해졌습니다! 사람이 자기가 행한 일을 아무도 모르고 귀신도 모를 것이라 생각한다면 큰 문제가 됩니다.
사람은 작은 거짓말 하나를 위해 반드시 큰 거짓말로 그 작은 거짓말을 덮어야 하고, 다시 엄청난 거짓말로 그 큰 거짓말을 덮어야 합니다. 사람이 작은 죄를 하나 짓고 중간 크기의 죄로 그것을 덮으려다 제대로 안 덮이면 다시 큰 죄로 그것을 덮으려 하는데, 이는 영계가 투명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당신에게 왜 종종 여러 일들이 일어날까요? 당신이 생각하는 그 일들이 모두 투명하기 때문에 귀신이 와서 당신을 가지고 놀 수 있는 것입니다.
십여 년 전 제가 귀신을 쫓아낼 때 매우 흥미로운 현상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사람들을 데리고 기도할 때 보통 제가 한마디를 하면 상대방이 한마디를 따라 했습니다. 제가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외골수로 파고드는 영은 떠나갈지어다!”라고 선포했습니다. 그러자 사역을 받던 사람이 말을 더듬으며 “내… 내… 내가…” 하며 한참을 끙끙대도 이 말을 내뱉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성령이여 내게 충만히 임하소서!”라고 따라 하게 했더니, 이 말은 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다른 말은 다 할 수 있었지만, “외골수로 파고드는 영은 떠나갈지어다”라는 말만은 내뱉지 못했습니다. 참으로 흥미로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앞 구절만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러자 귀신이 그를 막아버렸습니다. 귀신은 제가 이어서 “외골수로 파고드는 영은 떠나갈지어다”라고 말할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다시 한번 시험 삼아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성령이여 내게 충만히 임하소서!”라고 했더니, 이 구절도 그가 말하지 못하고 오직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까지만 말할 수 있었습니다. 배후의 귀신은 사람의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다 알고 있기 때문인데, 현대 과학 기술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뇌파’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남의 점을 아주 잘 치는 사람들을 만난 적이 있어서 영계의 일들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점을 아주 잘 치는 것은 사실 그 사람이 잘 맞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붙은 영이 미래의 일들을 다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훗날 저는 깨달았습니다. 영계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 세상의 수많은 세월 뒤의 일까지도 내다볼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사람은 영계 안에서 모두 투명하므로, 절대로 귀신과 잔머리를 굴리지 마십시오. 오직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행하는 것만이 핵심입니다. 만약 우리 마음에 든 이런저런 생각들을 곰곰이 따져본 결과, 결국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는 결론이 나온다면 하지 마십시오. 작은 것을 행하면 중간 크기의 것을 행하게 되고, 그것이 다시 큰 것으로 발전하게 되어 큰일이 나기 때문입니다! 귀신이 저를 가지고 놀려고 한다면 아마 조금은 힘을 써야 할 것입니다. 비록 제가 다윗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저는 여전히 깨어 있어야 합니다. 승리하는 면에서 제가 다윗과 비교한다면 한참 뒤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승리하는 다윗’이라고 지었다면, 저는 제 별명을 ‘승리하지 못하는 다윗’이라고 붙여서 저 자신으로 하여금 항상 깨어 있게 하겠습니다. 사람이 평생 하나님을 기뻐하시게 하기를 추구한다면 그것은 실로 대단한 일이며, 귀신도 당신에게 아무런 수를 쓰지 못합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평생 오직 하나님만을 기쁘시게 하려 하며, 사람의 기쁨을 구하고자 한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고 말했습니다. 아무도 모르고 귀신도 모를 것이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사실 모든 일은 투명합니다. 당신은 깨어 있으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빤히 지켜보고 계신다 할지라도 당신을 대신해 선택을 내려주실 수는 없습니다. 결정을 내리는 것은 당신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제 머릿속에 계속 맴도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많은 형제자매들을 점점 더 부유하게 하실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너희가 부유해졌을 때 기쁜 마음과 즐거운 뜻으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지 아니하면, 너희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내신 마귀를 섬기게 될 것이다’라는 말씀인데, 이 말씀이 벼락처럼 귓가에 울렸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사람은 왜 부유해진 후에 기쁜 마음과 즐거운 뜻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지 못할까?’ 제가 보기에 그 사람은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것 같지만, 그의 내면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으니, 곧 기쁜 마음과 즐거운 뜻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누구를 섬기러 간 것입니까? 재물을 섬기러 간 것입니다. 그러므로 재물은 매우 큰 시험거리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갑자기 당신에게 1억을 주셔서 작은 목표 하나를 이루게 하셨다면, 당신은 ‘내년에 이것이 5천만으로 줄어들면 큰일인데!’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은 수많은 시간을 포트폴리오 투자에 쏟아붓게 되고, 하나님을 섬길 때가 되면 시간을 빼앗겨서 오늘도 시간이 없고 내일도 시간이 없게 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데는 시간이 필요한데, 당신은 시간이 없고 모든 시간을 돈에 다 바쳐버립니다. 저는 이런 사람이 참 묘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을 승리하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당신을 부유하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신데, 정작 부유해지고 나서는 당신의 하나님을 기쁜 마음과 즐거운 뜻으로 섬기지 않으니 말입니다. 섬기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기쁜 마음과 즐거운 뜻으로 섬기지 않는 것이며, 조금만 틈이 생기면 하나님을 한쪽으로 밀쳐버립니다.
많은 사람들이 보통 가정이 첫째, 사업이 둘째,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셋째입니다. 이것이 보편적인 현상입니다. 이전에 한 목사님이 계셨는데, 제가 한동안 사역을 돕고 나니 그가 눈물 콧물을 흘리며 회개했습니다. 회개한 후에 그가 한 말이 참 흥미로웠습니다. 그는 “그동안 제가 너무 하나님 섬기는 일에만 전념하느라 제 가정을 소홀히 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소홀히 한 적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부터는 하나님 섬기는 것을 첫째 자리에 두고, 가정을 둘째 자리에 두며, 교회 사역을 셋째 자리에 두겠습니다”라고 했는데, 결국 하나님을 셋째 자리로 밀어 넣은 것입니다! 저는 그가 “이제부터는 가정을 첫째 자리에 두겠습니다”라고 말할 줄 알았는데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거짓을 행하며 여전히 하나님을 첫째 자리에 둔다고 말했지만 하나님의 이름을 빌렸을 뿐입니다. 그가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기쁨이 될 수 있겠습니까?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사람의 기쁨만 구하러 다녔으니, 아이의 기쁨을 구하든지 아내의 기쁨을 구하든지 하고, 하나님에 대해서는 ‘그냥 그런대로’ 대하는 것입니다! 그가 사역을 안 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사역을 하기는 합니다. 그러면서 사역을 조금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깁니다. ‘하나님, 저한테 더 무엇을 원하십니까? 제가 사역을 안 했습니까? 저도 사역을 했습니다.’ 바로 이런 태도입니다.
우리는 결코 아무도 모르고 귀신도 모를 것이라 생각해서는 안 되며, 영적인 세계에서는 모든 일이 투명하다는 것을 늘 의식해야 합니다. 당신의 생각과 뜻이 아무리 합리적으로 여겨진다 해도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당신은 우리아를 불러와 그의 아내와 동침하게 하면 아무도 모르게 덮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까? 태어난 아이가 당신과 아무 상관이 없게 될 줄 알았습니까? 분명히 상관이 있으며, 그 아이는 자라면서 점점 당신을 닮아갈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이 될 수 있으니, 절대로 스스로 똑똑하다고 여기며 가리려다 도리어 더 드러나게 만드는 우를 범하지 마십시오.
마귀의 연환계(연쇄적 계략)를 경계하라
저녁 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그 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 여인을 알아보게 하였더니 그가 아뢰되 그는 엘리암의 딸이요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아니니이까 하니 다윗이 전령을 보내어 그 여자를 자기에게로 데려오게 하고 그 여자가 그 부정함을 깨끗하게 하였으므로 더불어 동침하매 그 여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사무엘하》 11:2-4)
마귀의 연환계는 매우 무섭습니다. 첫 번째 연환계는 당신의 눈으로 여인이 목욕하는 것을 보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 여인은 아름다웠고 마치 유화 속에서 걸어 나온 미녀 같았습니다. 결국 다윗은 보고 나서 그냥 넘기지 못하고 누구의 딸인지 알아보기 시작했고, 알아보니 엘리암의 딸이자 우리아의 아내였습니다. 다윗은 속으로 ‘아! 그녀는 이미 시집을 갔는데 내가 어찌해야 하나?’ 하며 온갖 잡생각을 품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었고 손에 권세를 쥐고 있었기에 사람을 시켜 그녀를 데려오게 했습니다. 처음에는 눈으로 본 것만으로 작은 죄를 지었으나, 이때 그녀와 관계를 맺음으로써 중간 크기의 죄를 지었습니다.
다윗은 중간 크기의 죄를 짓고 나서 이 일이 이것으로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밧세바가 임신을 했습니다. 이 일이 얼마나 절묘합니까? 어떤 사람들은 임신을 하고 싶어서 온갖 기도를 드려도 임신이 안 되는데, 그들은 단번에 임신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윗은 “괜찮다, 내가 우리아에게 휴가를 주어 우리아를 집으로 보내면 된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 우리아는 “요압과 이스라엘 군사들이 모두 전방에서 진을 치고 싸우고 있는데, 내가 어찌 내 집으로 가서 먹고 마시고 내 처와 같이 자리이까?”라고 말하며 왕궁 문어귀에 머물렀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편지를 써서 우리아의 손에 들려 요압에게 보내어 그를 전쟁터에서 죽게 만들었습니다. 전쟁터에서 죽게 만드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었지만, 피 흘린 죄는 다윗과 직접적인 관련을 맺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마귀의 연환계를 경계해야 합니다.
사람이 일단 저주를 받으면 결코 그 저주가 그냥 지나갈 것이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죄를 짓고 회개하고, 회개하고는 또 죄를 짓고, 다시 회개하고는 또 연이어 죄를 짓습니까? 사람은 죄를 짓는 데는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알아야 하지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를 알지 못합니다. 한 비그리스도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들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형편없고, 당신들의 하나님도 아주 형편없습니다.” 제가 “어떻게 형편없다는 말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당신들 그리스도인들은 죄를 짓고 회개하면 그만이고, 아무 일 없으면 또 죄를 짓고 회개하면 또 그만이지 않습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보혈이 우리의 허물을 덮어주실 수 있다는 것만 알았지, 죄를 짓는 데는 대가가 따른다는 사실을 잊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 비그리스도인에게 설명을 해주었고, 설명을 다 듣고 나자 그는 수긍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죄를 짓는 것에도 대가가 따릅니다.
저는 그에게 스스로 찬찬히 살펴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날마다 하나님의 기쁨이 되지 못하는데 하나님께서 징계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징계하지 않으신다 한들 대가를 치르지 않겠습니까?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누구든지 죄를 지으면 대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이며, 다윗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구약 《성경》의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할 때 그들이 너무나 번거롭고 괴롭게 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그 반석을 조금만 치면 물이 나올 것이라 하셨는데, 모세는 화를 내며 반석을 세게 내리쳤습니다. 모세의 성질이 왜 갑자기 폭발했을까요? 그가 선악을 분별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작은 일 하나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일은 마귀의 연환계였습니다. 우리아는 왜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을까요? 당신은 그가 충성심 때문이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충성심 때문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때 그의 머릿속에 있는 생각은 사람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의 생각과 마음, 뜻은 종종 영계의 존재들에게 조종당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아이든 밧세바이든, 단지 한 편의 소동극으로 다윗을 범죄하게 하고 하나님께 죄를 짓게 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일을 행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사람입니다. 모든 것은 사람의 머릿속에 품은 생각에 달려 있습니다! 사람의 머릿속에 품은 생각이 시작부터 마귀의 올무와 궤계에 걸려든다면 그것은 치명적인 일입니다! 만약 당신이 평생을 그렇게 흐리멍덩하게 살아간다면 결국 마귀의 소굴로 굴러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행해야 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일은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일에는 늘 마귀의 올무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일은 저에게도 매우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저는 항상 깨어 있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자칫 방심하면 하나님께서 무엇을 기뻐하시지 않는지 잊어버리고, 우리가 오늘날 이런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이 모두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일에 주의하라
우리아의 아내는 그 남편 우리아가 죽었음을 듣고 자기의 남편을 위하여 소리내어 우니라 그 장례를 마치매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를 왕궁으로 데려오니 그가 그의 아내가 되어 그에게 아들을 낳으니라 다윗이 행한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 (《사무엘하》 11:26-27)
만약 다윗이 처음부터 ‘이 일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하며, 내가 무엇을 기뻐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면 알아보러 사람을 보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밧세바를 자기 궁으로 데려왔고, 하나님께서 이 일을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어버렸으며, 일을 저지르고 나니 밧세바가 임신하는 사태까지 빚어졌습니다. 이 일련의 일들은 모두 한 가지 이유에서 비롯되었으니, 곧 다윗이 하나님께서 이 일을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아가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밧세바도 임신했다면, 이 일이 들통날 바에야 차라리 일찍 들통나게 하는 편이 나았을 것입니다. 차라리 직접 우리아에게 “정말 미안하네. 자네 아내가 임신한 것은 내가 저지른 짓일세. 어서 집으로 돌아가게. 이 일은 우리 둘만 아는 비밀로 하고, 내가 자네를 승진시켜 주고 부유하게 해 주겠네. 내가 잘못 처신했네. 그날 내가 어리석었네. 어제는 정말 편지를 써서 자네를 최전선으로 보내 적의 손에 죽게 하려고까지 생각했었네”라고 털어놓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차마 입을 떼지 못했고, 결국 일은 갈수록 더 꼬여만 갔으며, 뜻밖에도 하나님께서 이 일을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어버렸습니다.
우리아가 알았다면 어떻게 말했겠습니까? “내가 최전선에서 왕을 위해 싸우고 있는데 뒤에서 내 아내를 범하다니, 왕은 내게 너무나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만약 다윗이 이때 단호하게 우리아에게 “내가 이미 일을 저질렀으니 미안하다는 말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지금부터라도 자네에게 떳떳하게 대하겠네. 나를 한 대 때리고 싶다면 때리게, 어쨌든 내가 잘못했네!”라고 처리했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우리는 사람의 피를 흘린 죄가 결코 장난이 아니며, 매우 깊은 저주가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일을 잊어버리면 큰일이 납니다! 이미 일을 저질렀다면 차라리 “우리아, 자네가 한 번 더 충성을 보여주게. 자네 아내의 일은 작은 일이 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어야 했을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제가 빗대어 한 말입니다. 핵심은 행하면 행할수록 더욱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는 길로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며, 갈수록 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면 큰 문제가 됩니다. 다윗은 이 일을 행한 후 수많은 고난을 겪었고, 훗날 칼이 그의 집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비록 우리아를 죽였지만 다윗은 훗날 즉시 손실을 멈추고 곧바로 깨달아 제때에 회개했기에, 결과적으로 그는 여전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다윗으로 남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승리할 때 깨어 있어야 하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일에 주의하는 것이야말로 핵심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형제자매들을 날마다 부유하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부유해졌을 때, 정말로 여전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주의를 기울이겠습니까? 이것이 제가 여러분에게 남겨드려 깊이 생각해 보게 하고자 하는 질문입니다. 절대로 부유해진 후에 그 부유함이 당신의 짐이 되게 하지 마십시오. 승리한 후에 그 승리가 당신의 짐이 되게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