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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 로마서 9장 -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2019-03-13 57,526 罗马书 信心 应许 罗马书 命定 神的应许 信靠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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罗马书09章-神拣选以色列人
  • 1 我在基督里说真话,并不谎言,有我良心被圣灵感动,给我作见证:
  • 2 我是大有忧愁,心里时常伤痛;
  • 3 为我弟兄,我骨肉之亲,就是自己被咒诅,与基督分离,我也愿意。
  • 4 他们是以色列人;那儿子的名分、荣耀、诸约、律法、礼仪、应许都是他们的。
  • 5 列祖就是他们的祖宗;按肉体说,基督也是从他们出来的。他是在万有之上,永远可称颂的 神。阿们!
  • 6 这不是说 神的话落了空。因为从以色列生的不都是以色列人,
  • 7 也不因为是亚伯拉罕的后裔就都作他的儿女;惟独“从以撒生的才要称为你的后裔。”
  • 8 这就是说,肉身所生的儿女不是 神的儿女,惟独那应许的儿女才算是后裔。
  • 9 因为所应许的话是这样说:“到明年这时候我要来,撒拉必生一个儿子。”
  • 10 不但如此,还有利百加,既从一个人,就是从我们的祖宗以撒怀了孕,(
  • 11 双子还没有生下来,善恶还没有做出来,只因要显明 神拣选人的旨意,不在乎人的行为,乃在乎召人的主。)
  • 12  神就对利百加说:“将来,大的要服侍小的。”
  • 13 正如经上所记:雅各是我所爱的;以扫是我所恶的。
  • 14 这样,我们可说什么呢?难道 神有什么不公平吗?断乎没有!
  • 15 因他对摩西说:“我要怜悯谁就怜悯谁,要恩待谁就恩待谁。”
  • 16 据此看来,这不在乎那定意的,也不在乎那奔跑的,只在乎发怜悯的 神。
  • 17 因为经上有话向法老说:“我将你兴起来,特要在你身上彰显我的权能,并要使我的名传遍天下。”
  • 18 如此看来, 神要怜悯谁就怜悯谁,要叫谁刚硬就叫谁刚硬。
  • 19 这样,你必对我说:“他为什么还指责人呢?有谁抗拒他的旨意呢?”
  • 20 你这个人哪,你是谁,竟敢向 神强嘴呢?受造之物岂能对造他的说:“你为什么这样造我呢?”
  • 21 窑匠难道没有权柄从一团泥里拿一块做成贵重的器皿,又拿一块做成卑贱的器皿吗?
  • 22 倘若 神要显明他的忿怒,彰显他的权能,就多多忍耐宽容那可怒、预备遭毁灭的器皿,
  • 23 又要将他丰盛的荣耀彰显在那蒙怜悯、早预备得荣耀的器皿上。
  • 24 这器皿就是我们被 神所召的,不但是从犹太人中,也是从外邦人中。这有什么不可呢?
  • 25 就像 神在何西阿书上说:“那本来不是我子民的,我要称为“我的子民”;本来不是蒙爱的,我要称为“蒙爱的”。
  • 26 从前在什么地方对他们说:你们不是我的子民,将来就在那里称他们为永生 神的儿子”。
  • 27 以赛亚指着以色列人喊着说:“以色列人虽多如海沙,得救的不过是剩下的余数;
  • 28 因为主要在世上施行他的话,叫他的话都成全,速速地完结。”
  • 29 又如以赛亚先前说过:“若不是万军之主给我们存留余种,我们早已像所多玛、蛾摩拉的样子了。”
  • 30 这样,我们可说什么呢?那本来不追求义的外邦人反得了义,就是因信而得的义。
  • 31 但以色列人追求律法的义,反得不着律法的义。
  • 32 这是什么缘故呢?是因为他们不凭着信心求,只凭着行为求;他们正跌在那绊脚石上。
  • 33 就如经上所记:“我在锡安放一块绊脚的石头,跌人的磐石;信靠他的人必不至于羞愧。”

《答疑解惑》

2019년 3월 13일 성경공부 녹음

서론

《로마서》 9장의 주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반드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반드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는 이 말씀이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서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서 무엇을 봅니까? 하나님이 무능력해지고,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봅니다.

《로마서》는 처음부터 이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며, 믿는 모든 사람을 구원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에는 이 복음이 마치 더 이상 효력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초기에 교회를 세울 때, 저는 아주 큰 장점을 드러냈습니다. 그 장점은 바로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믿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행한 결과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크게 다르다면, 저는 복음이 원래 그런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저도 그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습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무능력하게 만들어 버렸을까요? 왜 하나님의 약속이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었을까요? 저는 이 일이 매우 연구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여러분은 건물에 기독교 간판이 붙어 있다고 해서 그것이 기독교회라고 생각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누군가가 “나는 아무개 목사입니다”라고 말한다고 해서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여서도 절대 안 됩니다. 그가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여러분이 그를 믿어도 된다고 생각해서도 절대 안 됩니다.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닮지 않았고, 하나님의 약속이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문제는 바로 믿지 않는 데 있습니다. 한때 우리 가운데 한 자매가 있었는데, 그 자매에게는 아주 많은 귀신이 있었습니다. 몇 년 전 우리를 찾아왔을 때 상태가 매우 심각했습니다. 그런데 왜 주님을 믿은 지 6~7년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그런 상태였을까요? 하나님의 약속이 폐기된 것입니까? 아닙니다. 사람의 불신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반드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

이 복음은 본래 하나님의 능력이며, 믿음에서 시작하여 믿음에 이르게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신실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반드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아마 여러분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보세요. 저는 믿었는데 왜 효력이 없습니까?” 제가 말하자면, 여러분의 그 믿음은 헛소리입니다.

20여 년 동안 목회를 해 온 한 사람이 상하이에서 저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그의 교회는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제가 하는 것보다 더 잘되는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몇 년 동안 교회를 했는지, 그의 어머니도 그만큼 여러 해 동안 불면증을 앓았습니다. 그는 어머니 앞에서 저를 대단한 스승처럼 말하며 많은 사전 작업을 해 놓았습니다. 그 본인도 자주 저를 찾아와서 배우지만, 한 번도 헌금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한마디 불평하거나 푸념을 하면, 그는 다른 곳에서 배우려면 수업료를 내야 하는데 제게서 배운 것은 모두 진짜 실력인데도 수업료를 내지 않는 것이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가 어머니를 데리고 저를 찾아왔습니다. 저는 그의 어머니를 한바탕 꾸짖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육체를 매우 배려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 같은 사람이 불면증에 걸리지 않으면 누가 불면증에 걸리겠습니까? 당신 같은 사람이 병에 걸리지 않으면 누가 병에 걸리겠습니까?” 그렇게 다루고 나서 그분은 그날 밤 집에 돌아가 정상적인 복용량의 세 배가 넘는 수면제와 항우울제를 복용했습니다. 그런데도 한밤중까지 상태가 나아지지 않아 저에게 연락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분을 데리고 기도했습니다.

기도한 후 저는 그분에게 제가 설교한 ``생사를 꿰뚫어 보다"라는 설교를 보내 주었습니다. 다음 날 그분이 말했습니다. “듣다 보니 잠이 들었어요.” 이것이 저를 칭찬한 것인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불면증이 있는 사람이 제 설교를 듣고 잠들었다면, 제 설교가 그래도 쓸모가 있는 것입니다. 정상적인 사람이 제 설교를 듣고 잠들었다면, 제가 말한 내용이 여러분과 아무 상관이 없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 복음이 본래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정말 보배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모른다면 얼마나 어리석은지 모릅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가 하나님의 능력을 보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절대로 폐기되지 않습니다. 제가 실천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너무나 놀랍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왜 믿지 않는 것일까요?

아주 유명한 목사가 한 명 있는데, 그는 의사를 매우 신뢰했습니다.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더니 의사가 그에게 심장병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지만, 심장병은 악한 영입니다. 죽음의 영이 심장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의사는 악한 영을 잘라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제 말을 받아들이지 않고 심장병을 병일 뿐 악한 영이 아니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여러분의 길을 가고 저는 제 길을 가겠습니다.

제 경험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몇 년 전 제 어머니가 심부전증에 걸렸습니다. 의사는 이미 치료를 포기하고 그분이 죽기를 기다리게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기도로 어떻게든 어머니를 다시 살려 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의사가 어머니를 검사하고는 매우 놀라며 어떻게 나았느냐고 했습니다. 제 어머니는 말을 아주 잘하는 분이라 의사에게 “하나님이 치료하셨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하나님은 저를 통해 하셨습니다. 제 안에는 고집스러운 성격이 있어서, 반드시 하나님의 약속을 보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주 저를 찾아와 도전합니다.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면 다 나았습니까? 기도하고도 낫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까?” 저는 이 말을 들으면 참 재미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질문을 하는 목적이 무엇일까요?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낫지 않은 사람이 한 명 있습니다.” “그게 누구입니까?” “바로 당신입니다!” 저는 사람이 어떻게 이런 어리석은 질문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합니다.

우리 가운데 한 자매가 신장결석에 걸렸습니다. 기도한 후 수술실로 들어갔는데, 검사해 보니 결석이 사라져 있었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돌이 사라지는 것은 아주 간단한 일입니다. 그 자매의 집안에는 유전성 심장병도 있어서 가족들이 모두 약을 먹고 있었는데, 저는 그 자매를 데리고 기도하여 낫게 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보배가 아니라면 무엇이 보배란 말입니까?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 복음이 본래 하나님의 능력이며, 이 믿음은 믿음에서 시작하여 믿음에 이른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걸어가는 길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길이며,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길입니다. 이것은 믿음의 길입니다. 저는 기도하거나 찬양을 부를 때 자주 눈물을 흘립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이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이 날들을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저는 절망적인 사례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오늘도 저는 거의 감동하여 눈물을 흘릴 뻔했습니다. 한 어린 형제가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 지적 발달 지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았습니다. 10 이내의 덧셈도 하지 못하고 손가락을 접어 가며 계산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그가 스스로 직장을 구했습니다. 세상에, 이런 사람이 스스로 직장을 구하다니요. 직접 위챗을 검색하고, 스스로 면접을 신청했으며, 결국 채용되었습니다. 월급도 몇천 위안이나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달려가는 믿음의 길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내가 과연 하나님께 선택받은 사람인가?”, “내가 과연 하나님의 자녀인가?”와 같은 수많은 혼란이 있어도 그런 것은 신경 쓰지 마십시오. 믿음이 있는 사람이 되어 믿음으로 아름다운 미래를 창조하기만 하십시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반드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지난 장에서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모든 일에 우리가 이미 넉넉히 이겼으며, 어떤 것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배웠습니다. 글자 하나하나를 다 알고 있는데, 왜 믿지 않는 것입니까?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우리가 아직 죄인일 때 우리를 위해 죽으셨고, 그가 맞으신 채찍에 맞아 우리가 나음을 받았습니다. 그는 우리를 위해 채찍을 맞으셨고, 보혈을 흘리셨으며, 우리의 허물 때문에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믿습니까?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주님은 우리를 위해 죽으셨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주 예수님은 우리에게 믿음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분을 믿는다면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길고 넓고 높고 깊은지 알게 될 것입니다.

최근 우리는 사술이라고 불리는 영을 대적하고 있습니다. 그 이름을 동물로 바꾸어 말한다면 족제비의 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술의 영은 매우 악합니다. 일을 아주 괴이하게 만들어서, 믿음으로 성취하거나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향을 한 자루 피우거나, 무슨 주문을 외우거나, 어떤 대가를 찾아가 절하게 하는 등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게 합니다. 어떤 때는 해결되고 어떤 때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반드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마음에는 많은 의문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 중화민족의 역사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8개국 연합군이 베이징에 들어온 사건을 묻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아무 관계도 없습니다. 저도 그들이 왜 이런 것을 묻는지 모르겠습니다.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하던 시대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왜 실패했습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선민이 아닙니까? 이스라엘은 로마 시대에 나라가 무너지고 가정이 흩어져 로마의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렇다면 그 약속은 여전히 효력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왜 이런 모습입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의 모습도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헛되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이 여전히 효력이 있습니까? 아무개 목사의 모습을 보십시오. 승리하는 모습을 살아 내지 못하는 목사들이 천 명, 만 명 있다고 해서, 승리하는 모습을 살아 내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다고 해서 무엇을 증명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폐해졌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믿음이 있는 사람을 선택하신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속에 의문을 품습니다. “하나님은 불공평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본래 이렇게 만드셨고, 사람을 선택하는 주권도 하나님께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이미 예정하셨다면 그것은 제 책임도 아닌데, 왜 저를 책망하십니까? 저는 율법을 지키려고 힘썼는데 왜 얻지 못합니까? 보십시오. 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했는데, 그것도 하나님이 예정하신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이 그가 예수님을 배반하도록 예정하셨으니, 그는 얼마나 불쌍합니까.” 그들은 모든 책임을 하나님께 떠넘깁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반드시 한 가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까?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9장을 읽을 때 하나님의 주권을 논합니다. 그러나 오늘 저는 이것이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잘못된 생각임을 말씀드리고, 여러분에게 잘 논증하고자 합니다. 바울의 주제가 하나님의 주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이 말한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반드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이 있는 사람들을 선택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은 믿음이 있는 사람들을 선택하시는 것입니다.

그 쌍둥이가 아직 나기도 전에, 선이나 악을 행하기도 전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사람의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로마서》 9:11)

이 성경 구절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사람을 선택하시는 자신의 뜻이 어떠한지 나타내셨습니다. 곧 믿음이 있는 사람을 선택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을 의지하는 사람은 반드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세상에서 믿음이 있는 사람이 되기로 선택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될지를 선택하는 것은 우리의 책임입니다.

지난날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당신을 선택하셨습니까? 하나님이 당신을 선택하지 않으신 것 같은데요? 천사가 당신에게 말한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마음에 감동이 있었습니까?” “없습니다.” “털이 곤두선 적은 있습니까?” “없습니다.” “하나님이 꿈을 통해 당신에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당신이 이렇게 불행한 것도 당연하군요. 처음 하나님을 섬기기 시작했을 때 직장에서 사방으로 적을 만나고, 결국 직장까지 잃었지요? 보아하니 그것은 하나님의 선택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는 믿음이 있는 사람이 되기로 선택합니다. 그때 어떤 사람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선택하셨습니까?” “하나님이 저를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선택하셨다는 것을 어떻게 압니까?” “하나님이 저를 선택하셨다고 믿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믿습니까?” “저는 믿고 싶습니다.” 그가 다시 묻는다면 저는 한마디 쏘아붙일 것입니다. “당신이 상관할 일입니까? 나는 믿는 것이 좋습니다. 당신과 무슨 상관입니까?”

여러분은 털이 곤두서는 것을 의지하지만, 저는 믿음을 의지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의지하지만, 저는 믿음을 의지합니다. 저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나의 하나님이 지금 나를 선택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지 않으셨다 해도, 나는 하나님이 반드시 나를 선택하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보내지 않으셨다 해도, 나는 하나님이 지금 나를 보내고 계신다고 믿습니다!

믿는 것은 나의 책임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이 되면 반드시 하나님의 약속을 얻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 시절 제 마음도 매우 불안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지 않으신 것은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이리저리 씨름하다 보니 마음이 너무 괴로웠습니다. 괴로울 때는 눈물을 흘리고, 다 울고 나면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믿어도 가야 하고 믿지 않아도 가야 한다면, 나는 그래도 믿음의 길을 선택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동안 형제자매들이 한 사람씩 치료받는 것을 보았고, 이제는 치료되는 속도도 점점 빨라지고 있으며 마귀를 공격하는 힘도 점점 강해지고 있습니다. 저는 매우 감사하고 감격스럽습니다. 다시는 하나님께 따지며 말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주님은 저를 선택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 주권은 주님께 있습니다. 하나님, 왜 저를 책망하십니까? 하나님, 주님은 저를 선택하지도 않으셨고 저는 믿음도 없는데 왜 저를 책망하십니까?” 이런 말을 묻다니, 생각이 있는 것입니까? 믿음이 있는 사람이 되지 못합니까?

믿음은 여러분 자신의 선택입니다. 여러분은 믿음이 있는 사람이 되기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믿음에서 나고 약속에서 난 것은 모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분을 의지하는 사람은 반드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공평하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은 불공평하십니까?”라고 묻습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십니다. 선택은 여러분 자신에게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저는 선택할 수 없습니다.” 선택할 수 없다면 그것은 자업자득 아닙니까? 어떤 사람들은 왜 선택하지 못합니까? 어떤 사람들은 왜 그렇게 완고합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어떤 일이 있어도 믿음이 있는 사람은 보배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늘과 땅에서 믿음이 있는 보배를 찾고 계십니다. 그것을 찾으면 모든 것을 팔아 그 보배를 사십니다. 하나님은 아들의 보혈과 생명으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믿음이 있는 사람들을 구속하셨습니다. 이런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능력이 자신의 몸에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한다면, 그 불공평함은 여러분의 생각과 뜻이 잘못된 선택을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탓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따지지 마십시오. 따지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어떤 사람은 불평합니다. “하나님, 왜 저를 이렇게 만드셨습니까?”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선택할 수 없습니까?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선택한다면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이 있는 사람을 찾으시는 것이 아닙니까? 내가 바로 믿음이 있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있는 사람을 찾으시는 것이 아닙니까? 내가 바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있는 사람이다!” 털이 곤두서지도 않았고, 꿈도 꾸지 않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적도 없고, 아무것도 없지만 우리는 믿기로 선택합니다. 바울의 서신에는 털이 곤두선다거나, 온몸이 떨린다거나, 전기가 통하는 것 같은 느낌에 대해 한 번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 전체를 관통합니다.

하나님께 풍성한 은혜와 긍휼이 있다는 것을 믿습니까? 하나님이 여러분을 구원하실 것을 믿습니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믿음을 본받기 원합니까? 이 시대에 선택하지 못하는 사람, 믿음이 없는 사람이 수천수만 명 있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와 무슨 상관입니까? 우리 같은 그릇은 하나님께 부름받아 영광을 받도록 예비된 그릇입니다. 육신적으로 유대인인지 아닌지는 상관없습니다. 나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믿음을 본받을 것입니다.

믿지 않는 것이 모든 문제의 근원입니다. 우리가 환경을 바라보면 선악을 분별하고 이것저것 탓하게 만드는 이유가 무더기로 생깁니다. 그러나 선악을 분별한 결과는 죽음입니다. 우리 가운데 어떤 어리석은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과 연락을 주고받다 보면 믿음이 사라지는데도 여전히 그들과 연락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을 줄 모르는 것입니다. 사실 저는 이렇게 어리석은 사람들을 매우 싫어합니다. 싫어하는 것은 싫어하는 것이지만, 섬길 때에는 제가 해야 할 일을 여전히 합니다. 이것은 제가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로 돌이키기만 하면 하나님도 여러분에게로 돌이키신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아들었습니까? 예수님은 어떤 분입니까? 사도 바울은 어떤 사람입니까? 그들은 믿음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제 그들을 본받기 시작하십시오. 여러분은 모든 일이 오직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이 말을 읽고 어떤 사람들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으니 가만히 앉아서 하나님이 긍휼을 베푸시기를 기다리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는 풍성한 은혜와 긍휼이 있고, 노하기를 더디 하십니다. 성경 전체를 살펴보면, 여러분이 하나님께로 돌이키기만 하면 하나님도 여러분에게로 돌이키십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 하나님은 정말 조금 만만한 분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그렇게 존귀하신 분이지만,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믿음이 있는 사람이 되기로 선택하고, 하나님이 선하신 분임을 믿으며 하나님께로 돌이키기를 간절히 바라십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돌이키면 내가 그들을 고치리라.” 하나님은 구약성경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회개하기만 하면 내가 받아 주겠다. 과거의 일은 내가 지워 버리겠다. 조상의 저주와 자신이 지은 죄 등을 모두 내가 담당하겠다. 네가 나에게로 돌이켜 믿음이 있는 사람이 되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사람은 정말 그렇게 하기가 어렵습니다.

중국의 옛말에 “좋은 말은 되돌아가서 먹던 풀을 먹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되돌아가서 과거로 돌아가는 사람을 별로 좋지 않게 여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반역하는 백성이 돌아오기를 날마다 기다리십니다. 그런데 그들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당시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으려 함 같이 내가 너희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 주시고 우리가 그분의 능력을 경험하게 하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오래전부터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성령 충만과 방언 기도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성경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믿지 않습니다. 믿는 사람들에게는 표적과 기사가 따를 것이라고 했지만, 그들은 이 말씀을 믿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풍성한 은혜와 긍휼이 있다는 것만 믿으면,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도 하나님의 지극히 풍성하심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제가 어떤 형제자매를 위해 기도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 그를 치료해 주십시오. 질병과 마귀의 영에게 명하오니 물러가 떠나갈지어다……” 그러자 하나님의 영이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람에게는 미운 구석이 많지만, 나는 그를 치료하고 그가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겠다.” 저는 그 말을 듣고 매우 놀랐습니다.

나병 환자 열 명이 예수님을 찾아왔고, 예수님은 열 명 모두를 치료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하나님을 버릴 것을 모르셨습니까? 아홉 명은 예수님을 떠났고, 오직 한 명만 돌아와 주님을 따랐습니다. 하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풍성한 은혜와 긍휼이 있습니다.

구약의 늙은 엘리를 예로 들어 봅시다. 하나님은 거듭하여 하나님의 사람을 보내시고 사무엘을 보내 그를 일깨우셨습니다. 그러나 늙은 엘리는 하나님께 풍성한 은혜와 긍휼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판결을 내리신 뒤 완전히 사형 선고를 확정하신 것이 아니라, 늙은 엘리가 회개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만약 늙은 엘리가 “하나님, 이제부터 제가 회개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면, 하나님이 선고하신 일들이 늙은 엘리에게 임하게 하셨겠습니까? 그러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품으신 생각은 재앙을 내리려는 생각이 아니라 평안을 주려는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평안하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됩니까? 늙은 엘리는 믿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심판의 하나님이라고 생각했고, 하나님의 심판이 자신에게 임할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니느웨 성의 경우, 하나님은 요나를 통해 니느웨 성에 대한 심판을 선포하셨습니다. 그 결과 니느웨 성 사람들이 회개했습니다! 그들은 과거에 사람들에게 고문을 가하는 등 너무나 많은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그러나 왕부터 백성까지 모두 회개하자 하나님은 그들에게 내리려던 재앙을 거두셨습니다. 하나님께는 풍성한 은혜와 긍휼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얻기 원한다면, 여러분이 믿는 바로 그때부터 얻을 수 있습니다. 그때 여러분이 아직 완전히 회개하지 않았더라도 말입니다. 우리 가운데 완전한 사람이 된 후에야 치료받은 사람이 몇 명이나 됩니까? 없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아직 완전하지 않을 때에도 여러분에게 긍휼을 베푸십니다.

하나님께는 풍성한 은혜와 긍휼이 있다

저는 하나님을 알기 때문에 그분을 의지합니다. 오래전 제가 섬길 때 깊은 저주를 받았지만, 하나님은 저를 죽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는 풍성한 은혜와 긍휼이 있어서 제가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풍성한 은혜와 긍휼을 베푸시고 우리에게 남은 씨를 남겨 주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벌써 소돔과 고모라처럼 멸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저를 향해 품으신 생각은 재앙을 내리려는 생각이 아니라 평안을 주려는 생각이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은 정말 선하신 분이라는 것을 느낍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하나님께 얼마나 큰 은혜와 긍휼이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더 이상 강조하지 말고 우리의 책임을 강조해야 합니다! 우리의 책임은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입니다. 우리의 책임은 선악을 분별하는 것, 육체를 배려하는 것, 세상을 사랑하는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며 평생 하나님을 의지하여 살아가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것이 사람의 모든 문제의 근원입니다! 하나님이 선하신 분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 것이 문제의 근원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도 많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문제를 만났을 때에도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믿었고, 오직 하나님만 사랑하며 하나님만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한 후 목매어 자살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유다가 매우 불쌍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다에게 몇 번이나 경고하셨는지 알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유다가 멸망하도록 예정하셨습니까? 아닙니다. 유다가 스스로 멸망을 선택했고, 멸망의 길을 가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고 모든 사람이 믿음의 보배가 되기를 간절히 원하시지만, 믿음의 길을 선택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의 작정과 우리 마음의 달려감은 모두 은혜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까? 믿음으로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이것은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로마서》 9:16)

이것은 수동태 문장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만 맡긴 채 가만히 기다리면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바라보라는 뜻입니다. 우리 자신이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된다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믿음의 길을 가기로 작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길을 갈 때 달려가기로 작정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 마음속의 선택이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육신이나 혈통 때문이 아니라 마음속의 선택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고(이삭과 이스마엘 외에도 많은 아들이 있었습니다), 큰아들 이스마엘은 그의 후손으로 여겨지지 않았으며 둘째 아들 이삭에게서 난 자만 그의 후손으로 여겨졌습니다. 이삭은 어떻게 태어났습니까? 이삭은 믿음으로 태어났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했기 때문에 이삭이 태어났고, 그것도 그들이 완전히 생식 능력을 잃은 때에 태어났습니다. 이것은 육신과 혈통으로 난 것이 아니라 약속으로 난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마음속 선택은 모두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왜 하나님을 의지하기로 선택했습니까? 아브라함은 인생과 죽음을 꿰뚫어 보았고, 하나님을 찾기로 작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모든 나라와 모든 민족의 복이 되겠다.” 이것이 그의 마음속 선택이었습니다. 이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삭은 기꺼이 자신을 바쳤고, 아브라함도 기꺼이 이삭을 바쳤습니다. 이런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이 불에 타더라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삭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라고 믿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같은 사람이 몇 명이나 있었습니까? 대부분은 살기를 탐하고 죽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도 많은 경우 이렇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달고, “내 아이가 교회에 다닌다”, “내 부모님이 결신하고 주님을 믿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교회에 다니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결신하고 주님을 믿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여전히 사람 마음속의 선택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혈통이 아니라 사람 마음속의 선택입니다. 이삭에게서 난 자라야 아브라함의 후손입니다. 이삭은 에서와 야곱을 낳았지만 에서는 해당되지 않았습니다. 에서의 마음에는 아브라함과 이삭의 마음속에 있던 것이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쓴 《로마서》가 말하는 것은 사람 마음속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으로 믿고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바라보며 평생 하나님을 위해 살아갑니다. 여러분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살아갑니까? 입을 열기만 하면 “내 아들이 결혼해야 한다”, “내 아들의 여자친구”, “내 아들이 여자친구에게 차였다”, “내 아들에게 집을 사 줘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아마 여러분은 저를 잘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저도 이런 것들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본받고 하나님께 완전히 헌신하라

오늘 그리스도인이 된 우리는 예수님을 완전히 본받아 자신을 남김없이 하나님께 드리고, 여호와께 거룩하게 구별할 수 있습니까? 완전한 거룩함을 살아 내기 원한다면 완전히 헌신해야 합니다. 이것은 마음속의 선택입니다. 한 번은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비교적 큰 집회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사실 저는 이런 집회에 참석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쉬는 시간에 저는 그곳에서 기도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너의 생명을 나에게 줄 수 있겠느냐?” 그 순간 저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기꺼이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이 저를 시험하시고, 저를 귀하게 여기시고, 이 쓰레기 같은 저를 기꺼이 선택하여 영원으로 이끌어 주신다면 저는 기꺼이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이 저를 데려가고 싶으시다면 내일까지 기다리고 싶지 않습니다. 누구에게 인사할 시간도 갖고 싶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저를 데려가시려 한다면 저는 절대로 뒤돌아보지 않겠습니다.” 저처럼 선택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여러분이 저에게 왜 하나님이 제 손을 통해 이렇게 많은 표적을 행하셨느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제 믿음 때문이라고 대답하겠습니다. 저는 기꺼이 제 자신을 완전히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사실 제게도 아직 많은 문제가 있지만, 그것은 상관없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하나의 선택을 했습니다. 이 선택은 육신이나 혈통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믿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저는 제 일생이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는 삶이라는 것을 압니다!

오늘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든 나라와 민족 가운데서 이리저리 내던져졌고, 이사야는 구원받는 자가 남은 자에 불과하다고 기록했습니다. 여러분은 큰 교회에 다니면 그것이 하나님의 역사라고 감사합니까?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자신을 드리려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됩니까? 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제 자신을 드리기 원합니다.

여러분에게 어떤 신학적 개념은 저에게서 배울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배울 수 없습니다. 그것은 자신을 완전히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완전히 드리는 것은 여러분 마음속의 선택입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교회에 가서 잠시 앉아 있다고 그리스도인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사실 아무것도 아닙니다. 한 자매가 말했습니다. “우리 부모님은 이미 결신하고 주님을 믿게 되었어요.” 그런데 결국 부모님이 노인성 치매에 걸리자, 그 자매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육신과 혈통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의 선택을 의지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까?

어떤 율법과 규례를 의지하면 여러분은 반드시 이 돌에 걸려 넘어질 것입니다. 이 돌에 걸려 넘어지면 이 돌이 여러분을 산산이 부술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의지하여 주일예배에 참석하고 규례를 지키며 “피를 먹으면 안 된다, 이것도 먹으면 안 되고 저것도 먹으면 안 된다……”라고 하면, 반드시 이 돌에 걸려 넘어질 것입니다. 오늘 필요한 것은 규례를 지키는 것도 아니고 율법을 지키는 것도 아니라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하나님을 의지하겠습니까?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반드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표적과 기사가 그것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그 어떤 것도 여러분의 믿음을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믿는 사람들에게는 표적과 기사가 따르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새 방언을 말합니다. 저는 우리 가운데 모든 사람이 믿음이 있는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규례와 율법을 의지하고,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나는 돈을 헌금했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합니다. 믿음에서 나온 헌금이라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헌금은 단지 행위일 뿐입니다. 믿음이 여러분을 이끌어 헌금하게 했다면, 여러분의 헌금이 하나님께 기쁘게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여러분의 돈이 아니라 여러분의 믿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육신과 혈통으로 여러분이 하나님의 백성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호세아서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전에 내 백성이 아니었던 자를 내 백성이라 하며, 사랑을 받지 못한 자를 사랑받는 자라 하리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그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로마서》 9:25-26)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이 믿음이 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때, 하나님을 의지하기를 원하는 때, 그때 여러분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알아들었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더 이상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지 말고 자신의 책임을 강조하기 시작합시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주권을 알려 주셨습니까?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자신이 선택한 사람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그렇지 않지요. 그것은 여러분 스스로 그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스스로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모두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믿음이 있는 사람은 많지 않고, 구원받는 사람도 남은 자에 불과합니다. 구원받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해서 하나님의 약속이 폐기되는 것은 아닙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반드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주님을 믿는 것은 대가를 지불하는 길이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증언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로마서》 9:1-3)

알아들었습니까? 바울은 자신이 죽고 저주를 받더라도 자기 형제들이 복을 받는다면 그 대가를 기꺼이 치르겠다고 말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 유익만을 위해 주님을 믿을 정도로 이기적입니다. 여러분이 주님을 믿는 모든 이유가 자신을 위한 것이라면, 하나님이 주신 사명과 대가를 지불하는 삶이 어디에 있습니까?

많은 사람이 저의 신학적 개념은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가를 지불하는 것은 반드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저를 비판하고 있으며, 제가 그들을 판단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사실에 불과합니다. 저처럼 대가를 지불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제가 왜 이렇게 대가를 지불합니까? 심지어 저는 “우리의 혈육과 우리의 민족을 위해서라면, 내가 저주를 받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더라도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제가 왜 이런 말을 하겠습니까? 그것은 이 땅의 모든 나라와 민족, 그리고 자신의 가족과 민족이 하나님의 은혜를 얻게 하려는 마음과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가족이 변화되도록 대가를 지불하기 원합니까? 많은 사람들은 대가를 지불하기 원하지 않습니다. 며칠 전 저는 한 자매를 위해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그 자매의 가문은 귀신에게 매우 심하게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그 귀신은 자매의 입을 통해 사실상 자매 자신이 동의하고 있던 일부를 말했습니다. “이것은 어렵습니다. 가문을 변화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큰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대가를 지불하기 원하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사명입니다. 그것은 진지하게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분리되더라도, 저주를 받더라도 저는 기꺼이 하겠다는 것이 하나의 마음가짐입니다. 우리 가운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저의 이런 마음가짐을 통해 은혜를 얻었습니까?

제가 우리 가운데 형제자매들을 섬길 때마다 그들에게 말합니다. “오늘 제가 이렇게 여러분을 섬겼으니, 앞으로 여러분도 다른 사람을 이렇게 섬겨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이런 믿음이 있다면 여러분은 보배입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의지, 이삭의 의지, 야곱의 의지입니다. 저는 제가 보배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제가 보배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저를 만드실 때부터 제가 원래 이런 사람이었는지, 아니면 오늘 제가 이렇게 선택한 것인지 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제 안에 하나의 선택이 있다는 것은 분명히 압니다. 저는 쓰레기가 되고 싶지 않고 보배가 되고 싶습니다. 알아들었습니까? 언제 보배가 온 땅에 가득한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보배가 온 땅에 가득하다면 그것은 더 이상 보배가 아닙니다. 희귀한 것이 보배입니다.

오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속에 결단을 내릴 수 있습니까? 소수가 되기로 하고 다수가 되지 않기로 결정할 수 있습니까?

이사야가 이스라엘 사람을 가리켜 외쳤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비록 바닷가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으리니.” (《로마서》 9:27)

주님께서 이 땅에서 자신의 말씀을 이루시고 자신의 말씀이 모두 성취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 땅의 모든 나라와 민족이 구원받고 하나님의 은혜를 얻기를 바라시지만, 실제로 하나님을 의지하기로 선택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돈을 의지하기로 선택한 사람들은 절반 이상 넘어졌고, 현세의 풍속을 의지하기로 선택한 사람들도 절반 이상 넘어졌습니다. 소소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계속해서 절반 이상 넘어집니다. 그렇다면 남은 사람은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여러분은 소소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까? 여러분의 남편도 그런 사람입니까? 여러분이 섬기는 것은 자녀입니까, 집입니까, 자동차입니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단지 여러분의 여가 활동에 불과하다면, 그만두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모습입니까?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이사야》 53:4)

어떤 사람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왜 바울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채운다고 말했습니까?” 사실 우리도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야 하지 않습니까? 믿음이 있는 사람,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 중에 세상에게 배척받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육에 속한 사람은 반드시 영에 속한 사람을 박해합니다. 영에 속한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위해 대가를 지불합니다.

교회를 세워 가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걸러졌습니다. 저는 우리 가운데 모든 사람이 걸러져 나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 그러하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 환경에서 걸러지고 저 환경에서도 걸러졌는데도 “걸러졌으면 그만이지”라고 생각한다면, 여러분은 얼마나 오래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영원히 하나님을 의지할 것입니다.

이기적이지 마십시오. 능력이 없는 믿음을 갖지 마십시오. 믿는 사람이 예수님을 닮지 않은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문제의 근원은 바로 여러분 자신입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까? 여러분 때문에 여러분의 가문이 얼마나 변화되었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을 위해 얼마나 큰 대가를 지불하기 원합니까? 어떤 사람들은 어느 정도까지 대가를 지불하다가 더 이상 지불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위해 모든 대가를 지불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이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아직 세상에 속한 것들을 의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정말 하나님을 의지합니까? 정말 하나님을 의지한다면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있어야 하고, 하나님을 위해 모든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눈에 보배가 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승리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의지하면 반드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이 여러분을 통해 나타날 것입니다. 온 땅의 모든 것을 붙들 수 있는 능력,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그 능력이 여러분에게 나타날 것입니다. 저는 우리 가운데 많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가진 사람들이 일으켜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여러분이 정말 하나님을 의지하는지는 시험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재물을 움직여 보고, 핵심적인 이익을 움직여 보면, 여러분이 핵심적인 이익을 의지하는지 하나님을 의지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핵심적인 이익이 하나님이 아니라면 많은 상처를 받게 될 것입니다. 마귀도 여러분의 핵심적인 이익을 건드리고, 하나님도 여러분의 핵심적인 이익을 무너뜨리실 것이니 어떻게 잘 살 수 있겠습니까? 소소한 삶을 살고 싶다면 하나님의 사명은 여러분과 상관없습니다. 소소한 삶을 사는 것은 매우 치명적인 일입니다.

결론

여러분의 마음속에는 도대체 무엇이 있습니까? 절대로 하나님과 거짓된 장난을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저와 거짓된 장난을 해도 통하지 않는데, 하나님과 거짓된 장난을 하려 한다면 죽음을 자초하는 것 아닙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저를 속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반드시 여러분이 거짓 가운데 있다는 것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하나님 앞에서 진지하게 임해야 합니다. 진짜로 해야 합니다. 그것이 핵심입니다.

어떤 형제자매들은 저를 찾아올 때 작은 선물을 가져옵니다. 그런 것을 가져와서 무엇을 하려는 것입니까? 제가 그 물건이 부족합니까? 제가 부족한 것은 여러분이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자신을 하나님께 완전히 드려 산 제물로 바치고, 거룩하게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를 원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이 단지 자기 유익을 얻기 위해 더 많은 돈을 벌려고 하고, 그때 치료까지 받았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다음에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다음이 없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긍휼을 베푸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반드시 진지하게 임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진지하게 임하지 않는 사람은 끝까지 갈 수 없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넘어지겠습니까? 우리의 예수 그리스도는 걸려 넘어지게 하는 돌이시며, 걸림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외에는 모두 걸림돌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사람들만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얼마 전 저는 《걸려 넘어지게 하는 돌》이라는 설교를 했는데, 인터넷에서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의 경험과 맞아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이 넘어지는 사람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저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사람들을 자주 시험합니다. 시험해 보면 누가 보배이고 누가 쓰레기인지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산타클로스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저는 자주 말투가 매우 강합니다. 제가 말을 다 한 후 집에 돌아가 억울해하고 괴로워한다면, 그런 사람은 제가 사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을 의지합니까? 여러분이 정말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사람도, 어떤 일도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아름다운 계획을 바꿀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사람이라면 축하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눈에 보배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여러분에게 나타날 것입니다. 이 복음은 본래 하나님의 능력이므로, 우리를 믿음에서 시작하여 믿음에 이르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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