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答疑引言
大家好!这章的题目叫做《大卫日渐强盛》,我有感而发地讲了这一章,我们也会日渐强盛。我要自夸一下,我真的看重神的同在!如果没有神的同在,我们走不到现在,可能早就灭亡了。但是因为看重神的同在,接下来的日子,神为我们预备的日渐强盛的季节就要来到,神要给我们一个更大的挑战,这个挑战就是要训练更多人能够担起牧养、担起管理的责任,这样我们就能够牧养更多神的群羊。
我有一个特点就是不着急,不管做什么东西,我都告诉大家别着急,咱能干多少就干多少,为什么不着急呢?因为着急带来的结果更糟,也绝对不是一个有信心的表现。但是我里面有没有着急呢?其实还是有点着急的,虽然着急,但是我不会把自己整的手忙脚乱。
在接下来的日子里,我要继续脚踏实地地训练牧者和同工。在这个训练中,你能走多远就走多远,你能走多快就走多快。如果你不愿意的话,我们拿枪逼着你也没有用,还不如按部就班地往前走就好了,所以不着急是一个信心的表现。
Q1:老师,大卫杀了比录人临门的两个儿子,却没杀约押;是因为他觉得约押是大将军,可以帮他管很多事,大卫也承认自己软弱,只咒诅了约押。大卫这样做不是区别对待吗?神好像也没有责怪大卫,这是神的心意吗?
其实约押是为他弟弟亚撒黑报仇,亚撒黑是被押尼珥所杀,押尼珥又被约押所杀,押尼珥用了点小诡计,也可以说是一场谋杀。如果你问我大卫为什么区别对待?假如押尼珥是约押的上司,那问题就严重了。如果押尼珥是约押的上司,约押把押尼珥给杀了,我问你大卫会怎么样?大卫肯定会把他杀了。
从这个犯罪程度来讲,把主人给杀了,这背后的邪灵是相当邪恶的,不但是流人血的罪,其中还有一个谋反的态度。伊施波设是被比录人临门的两个儿子杀的,他这两个儿子干了一件非常愚蠢的事,他们把他的上司给杀了。这不但犯了流人血的罪,还犯了以下犯上的罪,那是神最恨恶的。大卫应该明白这个道理,但是他有没有点小私心?肯定有!因为他自己软弱,他说:我不比约押他们俩刚强。
这件事应该有两个方面的原因,一个方面是约押虽然流了人的血,但没有犯那么严重的罪。大卫的处理是否妥当呢?我觉得应该是妥当的。
Q2:以前教会的牧者告诉我说,如果你要扩张你自己的境界,就会有很难的环境,这种说法对吗?
这不是甩锅吗?扩张自己的境界就是扩张自己的境界,人的境界是从心里发出的,如果不是从心里发出的,其它的都不好使。不好的环境不重要,别甩锅给环境,有不好的环境感谢神,没有不好的环境也感谢神!别自己创造一个不好的环境,然后把自己给绑起来,卖到埃及做奴隶了。
有一个姐妹给我说她要出一趟远门,我问她:你要干什么去?她说:为了成长,我要离开舒服的环境,到一个很艰苦的地方去锻炼自己!我说这地方不太辛苦你都不成长,你到辛苦的地方,能成长吗?她说:能!我说你哪来的这么大的信心?得了一个小病都没有信心能祷告好,得了一个癌症能有信心祷告好吗?人就是不知道自己半斤八两,这样好不了!一个小困难你都胜不过去,大的困难你能胜过去吗?
有人和我说:老师,我要找一个非常艰难的环境。我说:你还是拉倒吧,我给你创造了一个非常好的环境,你尚且不能成长,你到一个艰难的环境,你能成长吗?脑袋不太好使啊!咱们大家能不能先从小一点的信心开始操练自己,始于信,以至于信,从现在开始一点一点地操练。
Q3:老师,怎么样才知道自己的坚持是对的,是看行出来的结果吗?
神的话立定在天,神的话都写在《圣经》里头,能听懂神的意思,就好好的去落实。如果神的话都读不懂,神告诉你:你没有谨守遵行,你却和神说:我有谨守遵行。你的理解跟神要说的差了十万八千里,你说怎么办?所以在我们整个学习的过程当中要养成读神的话的习惯。
华人命定从这种杂乱无章的神学体系里面脱颖而出,在这个世代里把神的话梳理出来,形成了华人命定神学的信仰体系。这个体系就是要帮助大家把《圣经》读对,我们要明白神的心意。我说:别识别善恶,你说:不识别善恶那不是太便宜他了吗?我说:别恨人!你说:不恨人那我不是太便宜他了吗?这是什么脑袋?其实很多时候能把你读懂的部分做出来就不错了,很多人就是读懂的也不做,那没读懂的就更多了。
读懂的做一做,做的不对这是一个过程。有的时候我真的看不起一些人,能做的不做,做不来的非要做;看得上的做不来,做得来的看不上,就喜欢在那扯犊子。他们还问我:老师,我怎么样才知道?是看结出来的果子吗?其实已经有了一半的答案。如果你把神的同在给整没了,把鬼的同在整来了。你还问整的对吗?这种问题根本不用问。第一、得有神的话;第二、得看事情的结果。我们做对了还是做错了,我们自己肯定知道。
Q4:老师,经文上说恨人就等于杀人,是不是也可以理解为恨人是流人血的?
那当然了。为啥恨人呢?因为人家占了你的便宜,人家占了你的便宜就开始恨。现在你是没有那个本领,你要有那个本领,那到死都不知道咋死的。如果你做了中央情报局,你是戴笠,你是毛人凤,那死在你手里的人可就多了。所以现在是没机会杀人,只有机会恨人。如果有机会杀的时候那肯定是杀掉了,是吧?不是别的原因,是因为没机会。所以我想大家不要忽略恨人这件事,恨完了以后,虽然还没有杀人呢,就已经等于流了人的血了,然后就受咒诅了,你说图什么呢?
Q5:老师,神是否与人同在,就看我们是否谨守遵行神的话,然后在落实中来查验自己是否有神的同在,我的理解对吗?
对的。如果你明白神的心意,那神就与你同在,你就会像约瑟一样,就算被卖到埃及做奴隶,在奴隶当中做了上好的奴隶;做囚犯,在囚犯当中做了最好的囚犯,能理解吗?如果没有神的同在,哪来的智慧?没有神的同在,哪来的机会?所以大家不要看到约瑟被卖到埃及做了奴隶,就以为没有神的同在,不是这么回事,是卖到埃及做了奴隶都有神的同在,你说那得多厉害!
Q6:老师,恨人已经在悟性上得罪神了,在冒出这个念头时,及时回转就是落实神的话吗?
是的,那是落实神的话。有的时候是鬼在骗你,你要小心别顺着鬼走,被鬼骗了还觉得自己很有理那就坏了。
서론
이번 장은 매우 훌륭한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이번 장의 주제가 바로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과거에 쌓아온 그 모든 삶의 궤적이 이 시점에 이르러 점점 강성해지기 시작합니다. 이 점점 강성해짐은 하나님이 함께하심으로부터 온 것이며,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은 사람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다윗이 과거에 쌓아 올린 것은 '승리'라 할 수 있는데, 일마다 하나하나 승리하여 마침내 열매를 맺게 된 것이며, 대략 20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다윗과 요셉에게는 공통된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의 믿음이 1년을 견뎌야 하고, 때로는 10년을 견뎌야 하며, 때로는 20년을 견뎌야 합니다. 당신의 인내가 옳은지 그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동행하심이 가장 중요하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잃어버립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잃어버리면, 다른 모든 것은 끝장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이 사람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왜 다윗이 지난 장에서 세상에서 피 흘린 자를 반드시 제하겠다고 결단했을까요? 피를 흘리는 것은 단순히 충성과 불충성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죄이며, 반드시 이 땅에서 제거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다윗이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죽인 자들을 처형한 이유입니다. 그들은 사람의 머리를 들고 다윗을 찾아와 상을 받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뜻밖에도 다윗은 부하들에게 그들을 죽이라고 명했습니다.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누군가 원수를 제거해 주고 그 나라를 멸망시켜 주었으니 이제 나머지 열한 지파를 다스리는 왕이 될 수 있는,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하지만 지금 그 사람들을 죽여버렸으니, 앞으로 누가 당신을 돕겠습니까? 사실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잃어버리는 것이야말로 진짜 치명적인 일입니다! 사람이 평생을 살면서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많은 사람들이 이를 알지 못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후,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잃어버렸습니다. 그 후로도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잃어버렸습니다. 사울 왕은 하나님의 동행을 잃어버렸을 뿐만 아니라, 귀신이 함께하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그는 정신질환에 걸려 결코 점점 강성해질 수 없었습니다. 이로 인해 사울은 많은 고통을 겪었고 치명적인 우울증에 걸려 매우 비참한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는 이 영적 법칙을 깨달아야 합니다. 당신이 하는 일이 큰 축복을 받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당신과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만약 당신이 하는 일에 귀신이 함께한다면, 그것을 저주라고 부릅니다. 예를 들어 이 일을 해도 귀신이 함께하고, 저 일을 해도 귀신이 함께한다면, 계획을 아무리 치밀하고 빈틈없이 세운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귀신이 함께하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하든 무너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삶을 더 이상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종종 저처럼 살면 잘 살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제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돈이 아니라 하나님의 함께하심이라는 것을 모릅니다. 이것이야말로 사람이 살아가는 핵심입니다. 우리는 그 무엇도 중요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함께하심만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잃어버리고 귀신이 함께하게 만든다면, 죽을 때까지 바쁘게 살아도 점점 강성해지는 것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인생에서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보지 못한다면, 그 일생은 망한 것입니다.
다윗이 지난 세월 동안 눈앞의 것만 보았다면 무력으로 그 열한 지파를 공격해 취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방식이 옳은 것일까요? 비록 하나님께서 이미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부으셨지만, 다른 열한 지파는 순종하지 않고 이스보셋을 따르며 7년을 보냈습니다. 다윗은 7년 6개월을 기다렸습니다. 그 기간 동안 이스보셋도 죽고 아브넬도 죽었지만, 그들의 죽음은 다윗과 아무런 상관이 없었습니다.
다윗은 조급해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조급해지면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죄에 대한 다윗의 태도, 피 흘림에 대한 태도, 열한 지파를 취하는 데 있어 조급해하지 않는 그 태도는 다윗이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를 보여줍니다. 여러분께 권면합니다. 어떤 일을 마주하고 결정을 내릴 때,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잃어버리지 않았습니까? 일만 생기면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잃어버린다면, 앞으로 닥칠 저주가 얼마나 깊겠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마귀는 간계로 사람을 속입니다. 마귀는 진짜 칼과 창을 들고 공격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것이 바로 영계의 작동 법칙입니다.
예로부터 마귀가 쓰는 간계는 명백히 알 수 있습니다. 마귀는 사람들로 하여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게 하여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잃게 만들고, 저주 가운데 살아가게 합니다. 그러면 마귀의 싸움은 끝납니다. 마귀는 그저 곁에서 사람이 스스로 부패해 가는 것을 지켜볼 뿐입니다. 우리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법을 배워야 하며, 다윗의 태도를 본받아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러면 결국 날로 강성해질 것입니다. 조급해지면 믿음이 사라지고, 믿음이 없으면 결코 하나님이 함께하실 수 없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매우 컸습니다. 비록 삶이 매우 고달팠지만 말입니다. 시편 16편을 읽어보면 다윗은 눈물로 요를 적시고 침상을 띄웠다고 언급하는데, 참으로 너무나 힘겨운 삶이었습니다! 다윗이 도망치던 그 시절, 블레셋 사람들 틈에서 사울을 피해 숨어 지내며 힘든 나날을 보냈지만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명백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하심을 똑똑히 보았습니다. 귀신이 찾아와 속이려 할 때마다 매번 속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결코 미끼를 물지 않았고, 자신의 이익이나 자신의 명성, 자신의 유익을 위해 저주를 받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귀하게 여기십니까? 저는 다양한 질병을 앓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사역해 보았는데, 그들이 멸망의 길을 택하여 결국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잃어버리는 모습을 똑똑히 지켜보았습니다.
이스라엘의 다른 지파들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스라엘의 다른 지파들이 와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은 것 같습니다. 과연 그들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은 것일까요, 아니면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은 것일까요? 분명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았습니다. 이것은 사실 그들이 기름을 붓고 안 붓고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충성된 자를 택하여 제사장으로 삼으셨고, 또 충성된 자 다윗을 찾아 왕으로 삼으셨으며,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굳게 세우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을 만나 뭐라고 말합니까?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아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는 왕의 한 골육이니이다 전에 곧 사울이 우리의 왕이 되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려 출입하게 한 자는 왕이셨고 여호와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네가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사무엘하 5:1-2)
다른 열한 지파 사람들이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것을 언급하며 "당신이 반드시 우리를 목양해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았다는 의미는 "우리가 당신의 목양을 받겠습니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택하여 목양의 일을 맡기셨으니, 우리는 당신의 목양을 받으러 왔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런 뜻입니다. 즉, 그들 스스로 다윗의 양이 되고, 다윗의 백성이 되어 다윗의 권위 아래 들어가겠다고 기름 부은 것이니, 이는 매우 흥미로운 일입니다. 다윗이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자신의 왕위보다 이스라엘 백성을 더 소중히 여겼기 때문입니다. 만약 당신이 맡은 사람보다 손에 쥔 사역을 더 소중히 여긴다면 큰 문제가 생깁니다. 사역을 하든 목양을 하든, 다른 일을 하든 사람보다 일을 더 소중히 여겨서는 안 됩니다!
일을 사람보다 더 중요하게 여긴다면 사람들이 당신을 자신의 목자로 인정하고 따를 것이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사람들은 당신이 그 자리에 걸맞지 않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우리는 다윗을 본받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백성을 자신의 왕위보다 훨씬 더 소중히 여겼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왕위가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알았기에, 평생 하나님의 뜻을 구했습니다.
만약 다윗이 큰 위험을 무릅쓰고 이스라엘 열한 지파를 치러 가서 끊임없이 싸웠다면 이스라엘 백성의 존경과 영예를 얻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중국 속담에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다윗이 이스라엘 다른 지파의 존경과 사모함을 얻고, 그들이 다윗에게 목양 받기를 원했던 이유는 다윗이 자신의 왕위나 먹고 마시고 누리는 권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다윗은 날로 강성해졌고, 열한 지파가 모두 그에게 순복했습니다.
예루살렘을 정복하다
왕과 그의 부하들이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 땅 주민 여부스 사람을 치려 하매 그 사람들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결코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맹인과 다리 저는 자라도 너를 물리치리라 하니 그들 생각에는 다윗이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함이나 다윗이 시온 산성을 빼앗았으니 이는 다윗 성이더라 (사무엘하 5:6-7)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사무엘하 5:10)
날로 강성해지는 것은 영토를 빼앗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 된 후 예루살렘을 공격하러 갔는데, 예루살렘은 다윗 성이라고도 불립니다. 다윗 성이 있는 예루살렘 바로 곁에 베들레헴이 있습니다. 베들레헴과 예루살렘은 매우 가깝고, 여부스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살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사람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의 여부스 사람들을 쳐서 예루살렘 땅을 차지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원수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강성함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까? 강성함입니다. 확장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까? 확장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마침내 한 나라로 통일된 것입니다.
원래 예루살렘, 온 유대, 사마리아, 온 이스라엘 땅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약속의 땅이었습니다. 만약 그것을 차지하러 가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다윗과 그를 따르는 자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그 땅의 여부스 사람들을 치려 했습니다. 그러자 여부스 사람들이 다윗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만약 맹인과 다리 저는 자를 쫓아내지 못하면 결코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우리도 이 말을 들으면 어리둥절합니다. 다윗이 결코 들어오지 못한다고 생각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너는 다리 저는 자나 맹인조차도 해치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성벽이 워낙 견고하게 지어졌고, 안에는 수로와 참호 및 각종 방어 시설이 갖추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땅을 확장하려 할 때 싸우지 않고 확장할 수 있겠습니까?
원수가 말하기를, "네가 맹인과 다리 저는 자도 쫓아내지 못하는데 어떻게 이곳으로 들어오겠느냐? 맹인이나 다리 저는 자조차 이기지 못하고 그들이 참호 안에서 너희 이스라엘 군대를 물리칠 수 있다면 네가 어떻게 싸우겠느냐?"라고 한 것입니다. 그 시대에는 드론도 없었고 공군도 없었기에 사람이 직접 성벽을 기어올라가야 했는데, 다윗은 기어이 쳐부수고 점령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함께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영토를 확장하고 그 사람들을 그곳에서 쫓아내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뜻이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확장하라고 하시는데 우리가 확장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취하러 가지 않고 원수들이 약속의 땅을 차지하도록 그대로 내버려 둔다면 문제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다윗은 여부스 사람들을 치러 갔던 것입니다. 훗날 다윗은 그곳을 점령하고 요새를 쌓았으며, 그곳의 이름을 다윗 성이라 불렀습니다. 그래서 10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만약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면 극복하지 못할 어려움이 없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면 해결하지 못할 문제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우리는 조급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할 수 있고, 더 이상 마귀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아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잃어버리지 않게 됩니다. 만약 여러분이 확장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원수를 만나고 경쟁 상대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 시대, 즉 점점 강성해지는 계절 속에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결코 잘못된 길을 가서는 안 되며,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다른 지파들을 억지로 빼앗거나 착취해야 할까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해결해야 할 것은 바로 목양의 문제입니다. 훗날 누군가 "당신들은 늘 다른 교회를 비판한다"고 말한다 해도, 그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기 때문일 뿐입니다. 어떤 이들은 저에게 "너만 옳으냐"며 꼬리표를 붙이기도 합니다. 저는 '내가 틀렸을 수도 있지. 내가 잘못한 부분이 있다면 지적해 주어 고맙다'고 생각합니다.
화인 사명 신학(华人命定神学)은 여전히 확장되는 과정 중에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얻어야 하며,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가 목양하는 교회임을 사람들에게 알려야 합니다. 여러분은 오늘날 교회에 가장 부족한 것이 목양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목양이 없으면 하나님의 백성은 매우 고통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들이 당신의 백성을 제대로 목양하지 않는 것을 보실 때, 그 백성을 거두어 목양할 수 있는 교회에 맡기십니다. 하나님의 본래 뜻이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는 끊임없이 확장해 가고 있으며, 우리의 목양 또한 계속해서 향상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목양하는 교회라 하지만 사실 아직 많이 부족하며, 계속해서 더 확장되고 성장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확장하고 교회의 기초를 견고히 하며 아직 얻지 못한 땅을 끊임없이 얻는 것, 그것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일이며 그것이 바로 '점점 강성하여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는 지금 우리가 점점 강성해지는 계절에 있다는 감동이 있습니다. 이 계절에 우리를 승리하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결코 잊지 마십시오. 어쩌면 우리는 지금 어떤 영적 견고한 진을 치고 있는 중일지도 모릅니다. 그 영적 진에 있는 마귀가 우리를 향해 "다리 저는 자나 맹인이 지켜도 너희는 들어오지 못한다"고 큰소리칠 수도 있습니다.
만약 맹인과 다리 저는 자만 있어도 들어갈 수 없다면 마귀의 진이 얼마나 견고하겠습니까. 그러나 아무리 견고한 진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역사를 가로막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면 우리는 반드시 하늘의 예루살렘, 즉 영계의 예루살렘을 점령할 것입니다. 우리가 한 걸음씩 승리하고 한 걸음씩 전진하기 시작할 때, 두로 왕이 조공을 바치기 시작했습니다. 조공을 바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주변 나라들이 당신의 강성함을 보고 아부하며 예물을 바치는 것을 말합니다.
두로 왕 히람이 조공을 바치기 시작하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두로 왕 히람이 다윗에게 사절들과 백향목과 목수와 석수를 보내매 그들이 다윗을 위하여 집을 지으니 (사무엘하 5:10-11)
다윗이 날로 강성해진 후 가져온 열매는 사람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습니다. 히람 왕이 굴복했습니다. 히람은 다윗에게 잘 보이기 위해 백향목을 다윗에게 보내고, 사절과 목수들을 보내 다윗을 위해 궁전을 지어주었습니다. 당신이 충분히 강하지 않다면 누가 당신을 거들떠보겠습니까? 우리 세대에서도 중화민족의 부흥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중화민족이 강해지기 시작하여 지난 백 년 동안 세계 열강들 사이에서 겪었던 수많은 수치를 더 이상 겪지 않게 되었습니다. 9·18 사변은 중국을 사분오열로 만들었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 안에서 우리가 일어나야 함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대에 하나님께서는 화인들을 크게 들어 쓰실 것입니다.
우리가 원수의 진들을 하나하나 무너뜨리고 영적 세계에서 승리할 때, 두로 왕 같은 자들도 조공을 바치러 올 것입니다. 이 번성하는 날이 이르렀을 때 지난 고난의 날들을 돌아보면, 다윗이 당시에 걸었던 길이 얼마나 험난했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다윗이 4~500명을 이끌 때는 끼니를 걱정해야 했고, 600명의 부하들이 때로는 다윗을 돌로 쳐 죽이려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혹독한 환경 속에서도 다윗은 꿋꿋이 견뎌내며 걸어왔습니다.
이 시대에 우리는 다시 한번 인내하며 계속해서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지켜내야 하고,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잃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두로 왕이 조공을 바치러 올 때까지 견뎌낸다면 실로 엄청난 일이 될 것입니다! 그 후 우리 화인 사명 신학은 날로 강성해지는 계절로 들어갈 것입니다. 물론 우리도 한 가지 교훈을 배워 특별히 조심해야 하며, 결코 다윗이 빠졌던 구덩이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다윗은 죄를 지어 하나님께 범죄한 적이 있는데, 그의 교훈은 우리가 반드시 배워야 할 교훈입니다. 사람이 일을 이루어가면서 스스로 대단하다고 여기기 시작하면 큰일 납니다! 우리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기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대적들도 다윗 앞에서 패하다
훗날 하나님께서 다윗을 견고히 세워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시자 전쟁이 시작되었고,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왔습니다. 그들이 처음 와서 진을 쳤을 때,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내가 블레셋 사람에게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 손에 넘기시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말씀하시되 올라가라 내가 반드시 블레셋 사람을 네 손에 넘기리라 하신지라 (사무엘하 5:19)
결국 다윗은 블레셋 사람들을 쳐부수었습니다. 과거 블레셋 왕은 다윗과 사이가 좋았습니다. 그는 이제 다윗을 진작에 죽이지 않은 것을 몹시 후회했을 것입니다. 당시 그는 다윗이 사울의 원수이니 자신의 친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블레셋의 아기스 왕 곁에 여러 해 숨어 지내다가 이스라엘로 돌아가 왕이 되었고, 결국 그들의 원수가 되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다윗을 치러 왔지만, 다윗에게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그들이 어찌 알았겠습니까? 다윗이 하나님께 묻자마자 하나님은 올라가라 말씀하시며 반드시 그들을 그의 손에 넘기겠다고 하셨습니다. 블레셋 사람이 하나님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이길 수 없습니다. 사람으로 살아가든, 사업을 하든, 교회를 세우든, 결코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잃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결국 다윗은 블레셋 사람들을 대파했습니다.
다윗이 바알브라심에 이르러 거기서 그들을 치고 다윗이 말하되 여호와께서 물을 흩음 같이 내 앞에서 내 대적을 흩으셨다 하므로 그 곳 이름을 바알브라심이라 부르니라 (사무엘하 5:20)
그것이 다윗이 싸워 이긴 것입니까? 아닙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을 치러 갔지만, 실제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의 앞에서 물이 휩쓸고 지나가듯 원수들을 흩으신 것입니다. 싸우기도 전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블레셋 사람들이 홍수에 휩쓸려가는 것처럼 패주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결국 블레셋 사람들은 우상을 그곳에 버려두고 도망쳤습니다. 우상도 그들을 구원할 수 없었고, 그 우상들을 챙겨갈 기력조차 없었습니다.
거기서 블레셋 사람들이 그들의 우상을 버렸으므로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치우니라 (사무엘하 5:21)
그것들을 가져다가 무엇을 했겠습니까? 땔감으로 불태워 버렸습니다. 집에 가져가서 섬기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은 아무 쓸모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 후 블레셋 사람들이 다시 쳐들어왔습니다.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니 이르시되 올라가지 말고 그들 뒤로 돌아서 뽕나무 숲 맞은편에서 그들을 기습하되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들리거든 곧 공격하라 그 때에 여호와가 너보다 앞서 나아가서 블레셋 군대를 치리라 하신지라 (사무엘하 5:23-24)
만약 나무 꼭대기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면, 그것은 누구의 발걸음입니까? 하나님의 군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싸우시기에 원수들도 반드시 우리 앞에서 패할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의 상상을 초월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싸우는 싸움은 영적 전쟁이며, 모두 하나님께서 앞서 싸워 이겨주시는 것입니다. 마귀를 단숨에 제압할 수 있다면 그것은 여러분과 저의 공로가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귀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계시입니까! 하나님께서 다윗을 위해 싸우신 것은 우리가 본받아야 할 모범이 됩니다.
나무 꼭대기에서 발걸음 소리가 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천군 천사를 보내 우리를 위해 싸우시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에 '어차피 하나님이 가셨으니 우리는 안 가도 되겠지'라고 생각한다면 큰일 날 잘못된 생각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동역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군대를 보내시면 우리는 뒤따라가야 하며, 이것을 '하나님과의 동역'이라 부릅니다. 하나님이 이미 다 하셨으니 우리는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잘못 짚은 것입니다.
이에 다윗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행하여 블레셋 사람을 쳐서 게바에서부터 게셀까지 이르니라 (사무엘하 5:25)
다윗 집안의 자손이 번성하다
이번 장에는 다윗이 많은 아들을 낳아 자손이 매우 번성했다는 내용도 나옵니다. 이것에 대해 다윗을 칭찬해야 할지 저도 잘 모르겠고 완전히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다윗이 헤브론에서 올라온 후에 예루살렘에서 처첩들을 더 두었으므로 아들과 딸들이 또 다윗에게서 나니 예루살렘에서 그에게서 난 자들의 이름은 삼무아와 소밥과 나단과 솔로몬과 입할과 엘리수아와 네벡과 야비아와 엘리사마와 엘리아다와 엘리벨렛이었더라 (사무엘하 5:14-16)
다윗은 많은 자녀를 낳았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것을 부러워하신다면, 여러분 또한 점점 번성해지기를 바랍니다. 다윗이 많은 처첩을 두었다고 해서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잃어버렸습니까? 아닙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께서는 실제로 이 일에 크게 개의치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온전한 뜻일까요? 훗날 솔로몬이 태어났을 때, 하나님은 뜻밖에도 솔로몬을 세워 다윗을 이어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였던 밧세바의 아들입니다. 우리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것이 좋은 일일까요, 나쁜 일일까요? 영적 자녀와 후손이 번성하는 것이라면 참으로 좋은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무엇을 중요하게 보시고 무엇을 중요하게 보지 않으시는지 알아야 합니다. 다윗이 우리아를 죽이는 추악한 죄를 지었을 때, 선지자 나단이 다윗을 찾아왔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게 줄 것은 다 주었고, 네가 수많은 처첩을 두었어도 나는 상관하지 않았다. 네가 우리아의 아내를 마음에 두었다면 내게 말했어야지, 그러면 내가 해결해 주지 않았겠느냐? 그런데 왜 이런 짓을 행하여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였느냐? 왜 굳이 우리아를 죽여야만 했느냐?"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이것이 문제가 된 것입니다. 결국 이 일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다윗에게 첩이 한 명 더 있고 덜 있고에는 그리 크게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은밀하게 악을 행하거나 피를 흘려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지극히 부패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후 하나님은 다윗의 집에 칼이 영원히 떠나지 않으리라는 저주를 내리셨습니다. 죄를 지어도 대가가 없을 것이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사람이 죄를 지으면 반드시 그에 따른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다윗이 예루살렘에서 자손이 번성한 것 역시 날로 강성해진 하나의 단면입니다. 다윗이 날로 강성해지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렇게 많은 자녀를 낳아 기를 여유가 있었겠습니까? 많은 부부들이 아이 하나만 키우려 해도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힘들어합니다.
결론
다윗은 오랜 세월을 인내하며 쌓아온 끝에 마침내 점점 강성해지는 삶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저 또한 이러한 날이 우리에게도 임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제 영 안에 이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는 분명한 감동이 있습니다. 지난 세월 동안 우리는 힘들게 인내해 왔지만, 화인 사명 신학은 온 세대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이 세대에는 목양하는 교회가 너무나 부족합니다. 만약 누군가 목양하는 교회를 세우고자 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얻은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나눌 것이며,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성취되기를 바랍니다.
점점 강성해지는 날이 곧 다가옵니다. 저는 우리 형제자매들이 이 시대의 필요를 보고 자신을 훈련하여 준비시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속이 좁다면 지경을 넓히고, 생각이 부족하다면 지혜로워지기를 배우며, 하나님께 쓰임 받기를 갈망하십시오. 이 세대의 영적 세계에는 기회가 가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여러분과 저에게 이러한 기회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이 기회를 굳게 붙잡아 자신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목양하는 사람으로 빚어가야 합니다. 매일 목양 받는 사람들과 다투거나 자신의 훈련생들과 다투지 마십시오. 만약 무언가 어긋났다면 반드시 우리 내면에 바로잡히지 않은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을 변화시키고 조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