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Q1:老师,祷告就把鬼赶出去了,可是鬼不断地回来,这是为什么呢?
鬼是怎么来的呢?是你把牠邀请来的,怎么邀请来的呢?因为你里面没有神,神没住在你里面,你里面装的还是那套鬼的逻辑。
鬼是一种灵,就在这世上走来走去,牠一看,这个人里面挺好,打扫得挺干净;又看一个人,这个人里面的想法跟我一样,他就是属于我的,所以鬼就进来了。
如果鬼溜达来溜达去,一看,耶稣基督住在这个人的里面,牠就说:我进来不是挨揍吗?哎呀,躲远点!这是第一个原因。
有一个老牧师跟我说:“赶鬼是没有用的。”我听了以后,就替耶稣基督难过,为什么呢?他在耶稣基督的下面点评,说赶鬼是没有用的。
后来我就明白他说为什么赶鬼没有用,他说的意思是:不是赶鬼没有用,而是赶掉后,鬼又回来了,再赶出去,又回来……然后进入无限的循环。
后来我也研究这个问题,我不觉得没有用,也找到根源了,你把这鬼赶出去,鬼又回来,这是因为人的悟性不通。如果一个人的悟性不通,就不能够认识神,那鬼一定会回来。
所以《圣经》里清清楚楚地告诉我们:真理才能够使人得自由。脑袋里得有真理,如果你脑袋里没有真理,不但你很糟糕,而且很容易跟着鬼走。
就是你一火热地爱神,鬼就把你往宗教味里推,结果宗教的鬼就来了。有人什么事也不做,那可不闹心了吗?但我一把人往做实事里推,结果他就进到爱世界里去了,这就叫做人或偏左,或偏右,就是不走正道,为什么呢?因为人的悟性不通。
所以华人命定神学解决问题的关键在哪呢?就是让你在悟性上明白神的真理,认识神。后来事实也证明它有用,鬼赶了就不来了!但是又冒出来一个,你说那是从哪来的呢?
我再给你解释第二点:人生下来的时候里面就住着鬼。大家一定要知道,人一出生,鬼就住在里面,他里面有什么样的鬼,他就有什么样的性格。
比如小孩一出生就“嗷嗷”哭,不哭不行,哭个不停,为什么哭个不停呢?就是鬼住在他里面,他就喜欢嗷嗷哭,屋子里从来安静不了,就是要哭。所以与生俱来的鬼就这样,随着你悟性不断地提升,一提升到这个层次,这一类的鬼就开始彰显出来,然后就被赶出去了。
还有一些你没有办法在悟性上很清楚认识的鬼,那你怎么办呢?它不会出来,而且它也不彰显,你觉得一切都正常,但到了关键时刻它就捣乱。然后又随着你悟性地提升,属灵高度突然提升到“弟兄合一”的程度,弟兄不合一的灵就被干掉了。
我们当中还有很多弟兄姐妹,千万不要以为你是个小牧者,然后就觉得自己属灵的地位挺高,不是的!你属灵的高度是你悟性上对神认识的高度,对神认识的高度很重要,你认识神到什么程度,然后在那个层次以下的鬼全部被干掉,所以赶鬼是人一辈子的事。
所以人身上与生俱来的鬼怎么败坏人呢?它基本上是透过谎言。悟性上不通的才能够被谎言迷惑,如果悟性通透,不可能中了魔鬼的谎言。
有人说:“你把钱给我,你给我一百万,年底我给你三百万。”巴菲特才有百分之二十的回报率,他现在是百分之二百的回报率,如果你悟性通,就知道他是个骗子。别说什么年底给你三百万,三万你也拿不回来!但有的人悟性不通,就给人家了一百万,带着美好的盼望,盼望着年底人家给他三百万,这就是悟性不通。
有一些脑子不好使的傻瓜蛋子可多了,玩P2P全都崩了,你的钱都被人分了。我说能拿回来多少就多少,但他还不肯拿!其实他根本就拿不回来。那种平台你打钱进去怎么可能拿回来呢?他根本就没拿回来的按钮。你慢慢琢磨,被骗的人身上有很深的恶习,就是想不劳而获。
Q2:老师,名字记在天上就是得救了吗?
我们弟兄姐妹一定要小心得救的观念,大家把得救的观念整透。悟性上不通,你就以为一下子我就得救了,但你仔细读《圣经》,里面根本就没有一下子得救的逻辑。
那什么叫做得救了呢?像耶稣叫做得救,你说那怎么可能呢?救恩是什么呢?如果你的解释是死了上天堂,那你的解释跟我的解释不一样,我解释救恩,就是我们活着的时候活出神的样子,神要在我们身上恢复神荣耀的样子,而不是死了上天堂。
名字记在天上就是得救了吗?你照照镜子,看你有几分像耶稣?如果别人说一句,刺激你一下,你立刻就酸不溜秋、抓狂、甩脸子、发飙,那像耶稣吗?不像!反倒像鬼。所以说耶稣干了一件什么事?耶稣让我们活着的时候就活成神的样子,这才是耶稣基督的福音,这才是耶稣基督的救恩。
那如果我们还有一点儿不像耶稣,要怎么办呢?接着往前奔跑,所以华人命定神学是竭力追求的神学。只要还有一点儿,不要说还差很远了,那样你就得使劲!如果说你很像耶稣基督了,也还要继续竭力追求。
所以你仔细读《圣经》会发现,耶稣基督的福音根本就不是一下子的福音,没有一下子!当然你的病得医治可能会一下子,但是一个人活出耶稣基督的形像,就没有一下子的事,因为这是个悟性问题。
名字记在天上,就是那个时候耶稣基督认识你,但后来拿橡皮给擦了,为什么呢?你掉队了。《圣经》里的确有这话,“神哪,你就在天上的生命册上涂抹我的名。”那名字是可以写上去,也可以涂抹掉,你以为是永久的permanent marker吗?不是,是写在白板上,一擦就没了。
所以不要以为我们的名字记在天上,就以为你得救了,然后你就入沉沦了,在《希伯来书》里头有一句话,叫做“退后入沉沦”。后来我就读了一本书,这本书里解释人退后入沉沦,我一开始不太相信,但在我后来的服侍里,有人说:“老师,我最近服侍得比较累,我想退下来休息一段时间。”完了,结果他就沉沦了。
我鼓励大家不要养成坏习惯,不是说我名字已经记在天上了,而是我每天都要竭力追求。
Q3:老师,您在祷告中说,亚伯拉罕不是那种天天“感谢主”的人,能延伸讲讲吗?
我说的感谢主,是那种挂在嘴边的“感谢主”,有一些基督徒,什么屁事都“感谢主”,感谢主成了他的口头禅。
亚伯拉罕绝对不是这样,但是亚伯拉罕心里有没有感谢神呢?绝对有!因为神就是他的盼望,他的命定,神就是他的一切。亚伯拉罕是什么样的人呢?不是口头上天天“感谢主”的那种。
Q4:老师,女儿和我的关系不断地改善,我知道神在改变我的属灵环境,是神在做工,可我问女儿:“你为什么变化这么大呢?”女儿却说是因为前夫家里的一些事,这让我很难受。请问老师,我这是自找搅扰,还是没放下呢?
我们人常常受这些搅扰,我给你讲一个非常重要的概念,就是你情绪在什么地方被搅扰,你就在什么地方悟性不通,不得胜,听明白了吗?
那我们悟性通了以后会怎么样呢?这东西搅扰不了你,那个东西也搅扰不了你,为什么?因为”如今活着的不再是我,而是耶稣基督在我里面活着”,那谁还能搅扰你什么呢?
所以一个人被搅扰就是因为悟性不通,不知道很多东西毫无意义,是虚空的虚空。慢慢你就会发现,越是容易被搅扰、情绪越不稳定的人,就是越爱世界,这个也要,那个也要,没要着就闹心。咱们弟兄姐妹开始调整,很多东西你看得太重了。
Q5:老师好,我妈妈问了我一个问题,她说:“世界上的假神都有生日,怎么没听说主耶稣什么时候生日呢?”
主耶稣也有生日,圣诞节就是耶稣降生的日子!但我告诉你,耶稣基督是道成肉身,我们的神降世为人,从妈妈的肚子里生出来,有血有肉,祂是个人,为我们得胜,也就是说你用针扎他,他也会出血,也会痛。
所以我们就别去搞生日,有一些教会就喜欢讲这种,讲完了有什么用呢?大家慢慢琢磨一下,讲这些有的没的,好像很伟大,其实都是世俗的空谈。
我们要知道,耶稣基督从死里复活的能力已经赐给了我们,好让我们在世上活出耶稣基督的样子。
Q6:老师,为什么现在绝大部分的教会都不做医病赶鬼了,只讲道呢?
你应该问问他们,我真的不知道他们为什么要这么做?我就给你一个字:傻!为什么我说这种教会很傻呢?因为这种教会不解决问题,问题一直在那积累,那你说怎么办呢?
一检查就有一个姐妹得癌症,哎呦,牧师累得够呛,每个礼拜去探望,探望的时候一看就很绝望,然后就说一些虚假安慰的话。说着说着牧师也得癌症了,然后又绝望了,整个教会就这样,为什么呢?原因很简单:傻!
我是不太理解,他们愣把耶稣基督大有能力、医病赶鬼,可以在属灵的世界里震撼天地的福音给信成了大乘佛教,还觉得自己挺伟大。牧师在台上讲道,讲得就跟大乘佛教一样。
那什么叫大乘佛教呢?就是讲道理的佛教。那什么是小乘佛教呢?就是不但讲一些道理,还整很多神奇的事,很多神迹。所以有的时候我就在想,我们怎么整着整着,把耶稣基督的福音归到大乘或小乘佛教里去了呢?但这话是开玩笑。
记住,不赶鬼是解决不了问题的;如果不赶鬼,就会被鬼赶!这很有意思的。
Q7:老师,面对有些人服侍起来很有自信,可面对有一些人就会犹豫,这是因为他后面的鬼太厉害了吗?怎么突破呢?
言语上的交战实际上是灵里的交战,你面对有一些人看起来很自信,就是说他们身上这些东西,你能够因为你属灵的悟性能压制这些鬼,他们肯定说不过你,但是也不要追求这种说得过或说不过的东西。
可是你会发现有些人的气场比你大,人家气场很大,你气场很小,人家几句话把你给搞没电了。所以我们就得知道自己属灵的高度在哪儿,不是鬼厉不厉害,而是我们自己属灵的高度在哪。
我们这次的答疑就到这儿,愿神祝福大家!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어서 《느헤미야》 11장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주제는 “기쁜 마음으로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자는 복이 있다”입니다. 여러분은 이 장을 읽으면서 무엇을 느끼셨습니까? 10년 전 제가 이 장을 읽었을 때는 약간의 슬픈 기운을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느헤미야가 엄청난 도전에 직면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가 직면한 도전
느헤미야는 어떤 도전에 직면했을까요? 당시 성벽은 완공되었고, 백성들은 점차 하나님 중심의 삶을 회복해 가고 있었지만, 아무도 예루살렘에 와서 살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지역이 갓 조성되었을 때는 아직 성숙한 주거 단지가 아니고, 나이트클럽이나 노래방처럼 먹고 마시고 즐길 수 있는 각종 편의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곳에는 무엇이 있었습니까? 성전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게 재미가 있을까요? 여러분이 놀러 성전에 가겠습니까? 아니죠, 썰렁하고 적막합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건대, 이것이 사람 인생에서 가장 치명적인 문제입니다. 싱가포르에서 가장 번화하고 맛있는 음식이 어디에 있는지 아십니까? 바로 홍등가(유흥가)입니다. 이곳은 매우 흥미롭게도 합법적이고, 음식이 정말 맛있으며, 사람도 인산인해를 이룹니다.
만약 이곳이 성전이라면 어떨까요? 끝난 것입니다! 성전에 개구리죽이나 바비큐, 시원한 맥주 같은 게 있겠습니까? 그런 건 전혀 없습니다! 그러니 하나님 중심의 삶을 회복하기란 너무나 어렵습니다. 들어오라고 해도 “안 가요”라고 합니다. 느헤미야가 직면했던 도전을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루살렘에 거주하였고 그 남은 백성은 제비 뽑아 십분의 일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서 거주하게 하고 그 십분의 구는 다른 성읍에 거주하게 하였으며 예루살렘에 거주하기를 즐겨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백성들이 복을 빌었느니라 (《느헤미야》 11:1-2)
어떤 뉘앙스인지 느껴지십니까? 군인이 전선으로 파병될 때 모든 사람이 그들을 축복합니다. 일본인이든, 중국인이든, 러시아인이든 전장에 나가기 전에는 모두가 행운을 빌며 축복해 줍니다. 그런데 백성들이 진심으로 그들을 축복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들의 속마음은 이렇습니다. “예루살렘 성에 살게 된 걸 축하하네. 거긴 오락 시설도 하나 없고 오직 하나님의 성전 하나뿐인데 말이야.”
수년 전, 저는 하나님 중심의 삶을 정말 회복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우리의 삶의 방식을 마치 고행승처럼 바라보며, 그렇게 사는 게 무슨 재미가 있느냐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엄청난 의미가 있습니다. 저는 당시 교회의 성장을 어떻게 한 걸음씩 이끌어왔는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그 과정은 정말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당시 제가 주일 모임 후에 기도회를 하자고 했습니다. 세상에나, 제가 설교를 마치고 찬송하고 헌금하고 “아멘”이 끝나자마자 모든 사람이 쏜살같이 빠져나갔습니다! 기도하러 남으라고 하는 것은 마치 돼지를 잡는 것만큼이나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주일에는 와야 했습니다. 왜일까요? 복은 좀 받아야 하니까요. 하지만 예배가 끝나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습니다! 저는 속으로 말했습니다. “뭘 피하는 거냐? 남고 싶지 않다면 굳이 붙잡지 않겠다.” 왜 그랬을까요? 기도하러 남아 있으면 속으로 ‘남자니 남기 싫고, 가자니 대놓고 말하기 민망하고’ 생각할 텐데, 그렇게 하는 건 너무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말씀드리건대, 하나님 없는 삶은 힘듭니다! 집집마다 겪는 어려움이 다 있는 법인데, 하나님 없는 인생이라면 그 고난을 고스란히 겪어 보십시오!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이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 한 달쯤 지나자, 주일 모임 후 기도회에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한 형제에게 물었습니다. “어쩐 일로 남아서 기도해요?” 그가 대답했습니다. “선생님, 제 시험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제가 “무슨 일인데요?”라고 물으니 그가 말했습니다. “며칠 전에 시험을 보러 갔는데 완전히 망쳤어요.” 과거에는 예배만 끝나면 꽁무니를 빼고 도망쳤으니 시험을 안 망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기도를 하고 났더니, 비록 시험은 망쳤지만 결과적으로 합격을 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하나님은 정말 대단하십니다!
얼마 후 또 다른 사람이 남아서 기도회에 참석했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어째서 남았어요? 꽁무니 빠지게 도망가던 사람이?” 정말 “일이 없으면 절(성전)을 찾지 않는다”더니, 알고 보니 그 사람도 시험을 망친 것이었습니다. 그래, 천천히 해보자! 망칠 일들은 앞으로도 계속 있을 텐데 뭘 그리 서두르겠습니까? 결국 그는 기도하러 왔습니다.
우리 가운데 자원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많습니까? 여러분이 자원하는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긴다면 복이 있습니다! 그 후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저는 꽤 성깔(뚝심)이 있는 사람이라 목회를 하면서 아무도 따르지 않는다 해도 저 혼자서라도 기쁘게 저의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입니다.
사람이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지 않는다면 그 인생을 제대로 살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기만 하면, 시험을 망쳤더라도 하나님께서 합격하게 해 주실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사람이 망쳤어도 또 붙었습니다. 세상에,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교회 성도 100%가 기도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나중에 한 목회자분이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교회는 한 달에 한 번 기도회가 있는데, 20%만 참석해도 교회가 부흥할 것입니다.” 저는 속으로 ‘됐거든요!’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교회 기도회는 100% 참석이니까요!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겠다고 결단할 지혜가 정말 있습니까? 여러분이 진정으로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 중심의 삶을 확신하고 살아간다면 복이 있습니다! 나중에 성도들은 다들 자원하는 마음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왜일까요? 안 오면 귀신이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귀신이 교회로 오는 게 아니라, 귀신이 여러분을 괴롭히러 오는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성벽을 다 지었는데 아무도 성 안에 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요? 첫째, 성 안에는 오락 시설도 없고 편의시설도 갖춰져 있지 않았습니다. 둘째, 지금은 느헤미야가 유다 총독으로 있지만 어느 날 그가 떠나버리면 자신이 사람들에게 해를 당하지는 않을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으니 당연히 두려웠던 것입니다. 셋째, 그들은 생각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에 가면 어떻게 먹고살지? 고향의 밭은 누가 돌보지? 내 밭이 황폐해지지 않을까? 예루살렘 성에서 온종일 성전 봉사만 하면 그게 돈이 되나? 도대체 어떻게 살라는 거지?’ 사람들은 정말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집에 방금 소 두 마리를 샀으니 끌고 나가봐야 하고, 새로 집을 샀으니 인테리어 계획도 잘 세워야 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건대, 사람들은 세상일에는 정말이지 온갖 신경을 곤두세우면서도,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는 ‘그만두자’고 합니다! 사람이 소소한 자기 삶만 챙기다가 결국 비극으로 치닫지 않고서야 정신을 차리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늘 사리사욕의 작은 삶에 안주하려는 마음을 부숴버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어떤 이들은 “난 지금 잘 살고 있는데 왜 그걸 깨부수라고 하느냐?”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자기중심적인 작은 삶에 안주하는 것이 몹시 부패한 것입니다.
제가 왜 이렇게 말할까요? 병원에 가서 암에 걸린 사람들을 보십시오. 호스를 하나, 둘, 셋씩 꽂고 있고 꽂는 줄은 점점 늘어납니다. 그전까지 그들의 삶은 얼마나 번창했습니까? 그들에게 무슨 꿈이 있었습니까? 꿈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게 도대체 밥 먹여주나?’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마주했던 이스라엘 백성이 바로 이랬으니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저도 느헤미야의 심정에 깊이 공감합니다. 우리는 교회를 세울 때 사람을 가려 뽑을 수 있습니다. 안 될 사람은 됐다고 하고, 좋은 사람은 남기고 아닌 사람은 보내면 됩니다! 악한 영이 열심히 일해서 부실한 자들을 데려가게 두면 됩니다. 하지만 느헤미야가 직면한 도전은 정말 너무나 컸습니다. 결국 지도자들이 예루살렘에 거주하게 되었는데, 유다 총독이 행정 명령 하나 내리지 못하겠습니까? 행정 명령은 확실히 효과가 있었습니다.
이곳은 유다 지방의 행정 중심지였기에, ‘이 구역은 네가 살고 저 구역은 저 사람이 살며, 나는 성전 옆에 살겠다’고 결정한 것입니다. 도청처럼 도시 전체의 각 방면을 다 계획해 두었으니 지도자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사실 이것은 도시 건설의 매우 중요한 전략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정말 똑똑했습니다. 백성들이 인테리어 허가증을 신청하러 성에 들어와야 하고, 상표나 회사를 등록하려 해도 다 이곳으로 와야 했습니다. 하물며 이때 느헤미야가 제사를 드리도록 요구했으니 예루살렘 성은 당연히 북적이게 될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예루살렘 성에서 하나님 중심의 삶을 회복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음을 알아야 합니다.
느헤미야의 전략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건대, 느헤미야가 전략을 세우자 하나님께서 그를 도우셨습니다. 이 지도자들 중에는 자원하는 사람도 있었고, 마지못해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내키지 않는 사람들은 ‘아이고, 어쩔 수 없지, 재수 없게 내가 여기까지 왔네! 내가 시장이고 저 사람이 총독인데 어쩌겠어? 내일 당장 때려치우지 않는 한 별수 없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내키지 않는 이들도 다 예루살렘 성으로 이주하여 살게 되었습니다.
그럼 일반 백성은 어떻게 했을까요? 백성들은 제비를 뽑아 열 사람 중 한 사람이 성에 살도록 했습니다. 제비를 뽑는 것이 좋은 일일까요, 나쁜 일일까요? 제비를 뽑았더니 수많은 사람이 뽑혔는데, 놀랍기 그지없었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이 단순히 제비뽑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것은 모두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느헤미야기의 전략 첫 번째: 지도자들은 성에 살고, 나머지 백성은 제비를 뽑아 열에 하나를 택했습니다. 이 제비뽑기가 대단했던 것은, 뽑힌 사람들이 정말로 역량 있는 자들이었고 용사들이며 담대한 자들이었다는 점입니다. 제가 묻겠습니다. 담대한 사람이 훗날 느헤미야에게 무슨 변고라도 생길까 봐 두려워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지도자들이 성에 살고, 나머지 백성은 제비를 뽑았으며, 뽑히고 나자 나머지 백성이 그들을 축복하며 승리를 기원했습니다. 사실 느헤미야는 그곳에서 총독으로 꽤 여러 해 동안 재임했습니다. 2~3대를 연임했을 텐데, 한 임기가 4년이라면 3대를 지냈고, 6년이라면 2대를 지낸 셈입니다.
총독은 백성 중 열에 하나를 택하도록 배정했는데, 이 선택은 실로 하나님께서 은밀하게 택하신 역사였습니다. 일반 백성과 제사장, 레위인뿐만 아니라 문지기들도 제비를 뽑았습니다. 조상이 문지기였으면 지금도 문지기를 하고, 조상이 노래하는 자였으면 지금도 노래하러 오는 등 매우 신기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성전에서 일하며 무엇을 먹고 마셨을까요? 사실 그들은 헌물로 생활했습니다. 예루살렘에는 노래하는 아주 특별한 무리가 있었는데, 성경에 기록된 바 “예루살렘에서 레위 사람의 어른은 ... 하나님의 전 일을 맡아 다스리는 자는 노래하는 자 아삽의 자손”이었습니다.
《시편》에는 아삽 자손의 시가 많이 나옵니다. “왕이 노래하는 자들을 위하여 명령을 내려 날마다 일정량의 양식을 공급하게 하였더라.” 여기서 왕은 누구입니까? 페르시아 왕입니다. 왕궁에서 조서를 내려 성전에서 노래하는 자들에게 날마다 일정한 몫(급여)을 받도록 한 것입니다.
느헤미야의 전략 두 번째: 각자 직무에 맞게 배치하는 것입니다. 성전에는 수많은 섬김의 일이 있었고 누군가는 섬겨야 했기에, 그는 회복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회복은 실로 놀라운 결과를 낳았습니다. 저 멀리 페르시아 제국 왕궁에 있는 황제가 이 일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왜일까요? 그들이 그곳에서 자신을 위해 열심히 기도해 주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느헤미야가 황제를 위해 기도했을까요? 틀림없이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황제가 어떻게 특별히 조서를 내렸겠습니까?
느헤미야는 매주 황제에게 보고서를 올렸고, 매달 종합 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 그 결과 황제가 조서를 내려 노래하는 자들과 기도하는 자들에게 각종 쓸 것을 공급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 감사 기도를 인도하는 첫 지도자는 미가의 아들 맛다냐였습니다. 이처럼 여기서 매우 흥미로운 현상을 볼 수 있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드리는 섬김은 영광으로 가득 찬 섬김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모든 것은 영광스러운 섬김입니다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수많은 사람의 이름을 기록하는 것을 유독 좋아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실 그들을 누가 압니까? 여러분도 모르고 저도 모릅니다. 그런데 왜 그들의 이름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을까요? 의아하지 않습니까?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건대, 영광스러운 섬김에 참여한 자들은 모두 대단한 자들입니다. 아들이 섬기면 그의 아버지 이름까지도 함께 기록됩니다.
사실 우리 중국인들에게는 유대인과 같은 전통이 있습니다. 중국인도 이스라엘인처럼 장자를 중히 여깁니다. 이러한 전통은 어디서 왔을까요? 4천 년 전 아브라함이 그두라라는 아내를 다시 맞이했고, 훗날 그두라의 아들들이 동방으로 갔기 때문에 중국인(화인) 역시 아브라함 후손의 한 갈래입니다.
중국인들은 흔히 5천 년 역사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기록이 있는 역사는 3천 년도 채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5천 년이라는 말에 혼동되지 마십시오. 5천 년 전에는 북경원인이었을지도 모르며, 5천 년 전이 어떠했는지는 기록이 전무합니다. 아브라함의 아들들이 동쪽으로 이동한 것은 4천 년 전의 일이라 기록은 없지만, 중국인들의 많은 전통은 아브라함과 매우 닮아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아담과 하와를 보십시오. 중국인들은 ‘하와’라는 이름을 듣고 ‘여와’로 바꾸어 불렀습니다. 이처럼 많은 것에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중국인에게 조상이나 족보 같은 것이 있는 반면, 미국이나 유럽에는 그런 것이 별로 없는데, 족보는 바로 유대인의 전통입니다. 영광스러운 섬김으로 돌아와서, 이 사람들의 이름이 다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며 저는 생각했습니다. ‘우리의 섬김도 생명책에 한 줄 한 줄 기록되고 있으며, 우리의 이름도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구나!’ 그러니 이렇게 많은 이름을 여러분과 제가 알지 못해도 하나님께서 아시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깊이 묵상해 보십시오. 사실 여러분과 제가 그들을 알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읽고 ‘와, 이 모든 것이 영광스러운 섬김이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하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일들이 상업적인 실효성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은 어떻게 생활했을까요? 다들 이런 의문이 들 것입니다. 우리가 걸어온 길을 여러분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기 전에는 교회가 매우 황폐했습니다. 기도, 성경공부, 설교 등 모든 면이 심히 황폐했습니다. 사역을 하면서 섬김을 받는 성도들에게 주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았더니, 세입자는 집주인과 싸우고, 직장인은 사장과 싸우고, 구직자는 비자 승인이 안 나고, 삶이 온통 꼬이고 풀리지 않는 온갖 문제투성이였습니다.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고 싶었겠지만, 결코 그렇게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이후 이러한 문제들이 우리 가운데서 하나씩 사라졌습니다. 만약 지금도 직장이나 생활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는 분이 계신다면, 생각과 마음이 아직 온전히 돌아서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후 교회가 부흥하기 시작했고, 성도들 모두가 기도회에 전원 참석했습니다. 당시 싱가포르의 11일간의 공휴일에는 온전히 금식기도회를 열었습니다.
주일에는 성도들이 먼 곳에서 교회로 와서 3시간 동안 기도하고 나눔을 가졌으니 반나절이 훌쩍 지나갔고, 그 후에야 다른 일을 하러 갔습니다! 우리의 주일 모임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어졌으니 진정한 주일이었습니다. 이후 교회는 점점 더 부흥했습니다. 종교적인 색채가 너무 짙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그런 생각은 잠시 접어두십시오. 우리가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자 교회 형제자매들의 수입이 지속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이것은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그들은 좋은 직장을 구했고, 일도 훌륭하게 해냈으며, 사업을 하는 이들도 날로 번창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여러분은 이것이 밥이 될 뿐만 아니라 약도 되고 돈도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단지 사람들이 그것을 모를 뿐입니다! 그러니 보십시오. 느헤미야가 얼마나 고생했습니까?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얻게 하려고 행정 명령까지 동원해 그들을 축복 안으로 밀어 넣어야 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결코 어리석게 행하지 마십시오.
지금도 우리 가운데 많은 형제자매들이 제게 이렇게 말합니다. “선생님, 예전에는 의료보험 카드가 늘 비어 있었고, 돈을 다 쓰고도 모자라 제 사비를 털어 넣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 온 이후로는 의료보험 카드의 돈을 쓸 일이 없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여러분도 이런 경험이 있으십니까? 병든 자들이 다 나았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도 사람들은 알지 못합니다! 저 자신도 신앙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단단히 결심하고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았습니다! 제가 바보라서 그랬겠습니까?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요? 이것이 바로 최고의 복(좋은 몫)이기 때문입니다! 이 귀한 복을 왜 마다하겠습니까? 단지 사람들이 깨닫지 못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결코 사람의 안목으로 하나님 중심의 삶을 바라보지 마십시오. 사람의 눈으로 보면 그렇게는 도저히 살 수 없어 보이지만, 직접 경험하고 나면 ‘지난 수십 년 동안 왜 그렇게 어리석게 살았을까’ 하고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중심의 삶이 돈이 되느냐고요? 됩니다! 우리 가운데 한 자매는 남에게 빌려준 30만 위안을 돌려받지 못할 것이라 여겨 포기하고 있었는데, 얼마 전 제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저에게 30만 위안을 빚진 사람이 스스로 갚아주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말씀드리건대, 우리 하나님께서는 문제를 해결하시는 데 정말 탁월하십니다! 예를 들어 라반이 야곱의 재산인 낙타, 나귀, 양, 소, 말을 모조리 빼앗으려 했습니다. 거의 따라잡았을 즈음 라반이 꿈을 꾸었는데, 하나님께서 라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조심하라. 야곱에게 잘잘못을 따지지 말라. 그는 내 것이니 감히 건드려 보아라!” 결국 야곱을 따라잡은 라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어젯밤 꿈을 꾸지 않았다면 지금 이 모든 것은 내 것이 되었을 것이고, 네 목은 달아났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여기서 그대로 두겠다.” 하나님이 문제를 해결하시는 능력이 대단하지 않습니까? 대단합니다!
또한 에서가 야곱을 죽이려고 먼 길을 맹렬한 기세로 용사 400명을 이끌고 왔습니다. 야곱을 없애버리려고 왔는데, 불과 수백 미터를 남겨두고 그의 머릿속에 문득 ‘내가 왜 동생을 죽이려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두 형제는 얼싸안고 통곡하며 화해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아무도 모르지만 우리 하나님은 아십니다! 이것이 바로 영광스러운 섬김입니다.
여러분께 다시 권면합니다. 어떻게 해서든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사는 습관을 기르십시오. 하지만 저처럼 설교하는 교회는 많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다니는 교회들은 사람 중심의 삶을 살도록 가르칩니다. 그런 삶은 겉보기에는 좋아 보일지 몰라도 실상은 저주 아래 사는 것입니다. 말라기는 느헤미야와 같은 시대의 사람이었는데, 말라기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희가 사리사욕의 작은 삶을 사느라 이미 깊은 저주를 받았다!”라고 선포했습니다.
교회 안에서 아무리 작은 섬김이라도, 지극히 작은 형제 하나에게 물 한 그릇 대접하는 것조차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기억해 주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최근 저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우리 가운데 한 암 환자가 장폐색을 앓고 있는데, 요 며칠 밤마다 그분을 위해 기도해 주었습니다. 밤만 되면 장이 막히고 통증이 오는데, 기도하면 뱃속에 있던 것들이 입으로 다 토해져 나옵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말하는 ‘배변도 배뇨도 못 하는 문제’입니다. 이런 문제들은 다 과거에 자기 뜻대로 살아왔기 때문에 생긴 것인데, 지금도 그렇게 사시겠습니까?
제가 때로는 목소리를 높이게 되는데, 너무나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아직 대소변을 못 가리는 지경에 이르지 않았다면, 어서 속히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사십시오. 알아들으셨습니까? 이것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입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은 정말 뜨겁습니다. 그들의 영적 생명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섬길 때 쏟아붓는 그 마음을 보며 제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우리 가운데는 시각장애인을 섬기는 이들도 있고, 다른 많은 이들을 섬기는 사역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연말이 다가오니 날을 정해 시간을 성별하여 24시간, 48시간, 72시간 동안 연속으로 기도회를 열고자 합니다. 다시 한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이고, 다시 한번 한마음 한뜻으로 원수 마귀를 짓밟으며,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 가운데 그분의 영광을 다시 나타내시도록 할 것입니다. 이것이 영광스러운 섬김입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번거로움을 마다하지 않고 이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기록했습니다. 잘못 적은 것이 있을까요? 틀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매우 진지하고 반듯하고 정갈하게 이름을 기록했습니다. 돌에 새겼을까요? 저는 잘 모릅니다. 어쩌면 훗날 히브리어로 《느헤미야기》가 새겨진 비석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더 나아가면, 언젠가 하늘에 있는 생명책에 이들의 이름과 여러분과 저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음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는 실로 놀라운 일입니다. 그 안에는 모든 제사장, 용사, 레위인, 문지기, 기도하는 자, 감사를 인도하는 자, 찬양을 인도하는 자, 그리고 성전에서 직접 섬기지는 않았지만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위해 헌신함으로써 성전 사역에 동참한 다른 모든 백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왜 이 이름들을 기록했을까요? 여러분과 저는 그들을 모르지만, 영광스러운 섬김에 참여한 자들의 이름은 반드시 기록된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함입니다. 암 환자를 위해 밤낮으로 간절히 기도하는 여러분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을 리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이러한 아픔을 느낄 수 있기에 때로 마음이 급해 말이 다소 거칠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고 영광스러운 섬김에 동참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선택인지 간절히 알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는 또다시 대대적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원수 마귀를 짓밟는 때를 맞이했습니다. 날 때부터 맹인 된 자가 보게 되고, 절름발이가 걷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결코 예전의 안락한 자기 삶으로 되돌아가지 마십시오. 이것이 영광스러운 섬김입니다! 느헤미야도 이 방향을 향해 한 걸음씩 이끌어갔습니다. 추진이 되었습니까? 되었습니다. 하지만 훗날 느헤미야가 떠난 후 다시 황폐해졌습니다.
저는 지금 여러분을 이 영광스러운 섬김의 길로 인도하면서, 이 영적 DNA가 여러분의 세포 속에 깊이 새겨지기를 소망합니다. 제가 애타게 외칠 때에만 비로소 이 영광스러운 섬김을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제가 없더라도 여러분의 영광스러운 섬김이 계속되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제가 하나님께 구하고 기대하는 바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디모데에 머물지 않고 사도 바울과 같은 자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우리가 어디를 가든지 그곳이 우리가 축복하는 땅이 되고,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우리 주변 사람들이 우리의 축복의 대상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담대히 예언합니다. 화인 사명 신학이 전 세계에 강력한 충격을 가져올 것입니다! 능력 있는 복음을 무능한 복음으로 믿는 것이 얼마나 큰 타락이며, 그것은 결코 온전한 복음이 아님을 만방에 알리게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복음을 사도 바울 시대의 능력 있는 복음으로 회복시킬 것이며, 이것은 하나의 거대한 변혁입니다! 이 변혁에는 저 혼자가 아니라 여러분의 몫도 있습니다. 제 이름은 드러나지 않아도 좋지만, 사명 신학에는 반드시 여러분의 헌신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의 섬김이 없다면 이는 아무것도 아니며 한낱 헛된 말에 불과할 것입니다.
우리 무리는 또 하나의 《화인 사명 신학 행전》을 써 내려갈 것입니다. 우리가 걸어온 길은 우리 모두가 기쁨으로 섬겨온 길입니다.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자는 참으로 복이 있습니다. 교회를 새롭게 빚어가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새롭게 세워 예수 그리스도의 시대로 회복시킵시다! 이 생각을 하면 마음이 너무나 상쾌하고 참으로 벅찹니다! 이 땅에서 우리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아멘!
이번 성경공부 나눔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