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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빌립보서 2장 -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

2025-09-10 39,313 腓立比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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腓利比书-以基督的心为心
  • 1 所以,在基督里若有什么劝勉,爱心有什么安慰,圣灵有什么交通,心中有什么慈悲怜悯,
  • 2 你们就要意念相同,爱心相同,有一样的心思,有一样的意念,使我的喜乐可以满足。
  • 3 凡事不可结党,不可贪图虚浮的荣耀;只要存心谦卑,各人看别人比自己强。
  • 4 各人不要单顾自己的事,也要顾别人的事。
  • 5 你们当以基督耶稣的心为心:
  • 6 他本有 神的形像,不以自己与 神同等为强夺的;
  • 7 反倒虚己,取了奴仆的形像,成为人的样式;
  • 8 既有人的样子,就自己卑微,存心顺服,以至于死,且死在十字架上。
  • 9 所以, 神将他升为至高,又赐给他那超乎万名之上的名,
  • 10 叫一切在天上的、地上的,和地底下的,因耶稣的名无不屈膝,
  • 11 无不口称“耶稣基督为主”,使荣耀归与父 神。
  • 12 这样看来,我亲爱的弟兄,你们既是常顺服的,不但我在你们那里,就是我如今不在你们那里,更是顺服的,就当恐惧战兢做成你们得救的工夫。
  • 13 因为你们立志行事都是 神在你们心里运行,为要成就他的美意。
  • 14 凡所行的,都不要发怨言,起争论,
  • 15 使你们无可指摘,诚实无伪,在这弯曲悖谬的世代作 神无瑕疵的儿女。你们显在这世代中,好像明光照耀,
  • 16 将生命的道表明出来,叫我在基督的日子好夸我没有空跑,也没有徒劳。
  • 17 我以你们的信心为供献的祭物,我若被浇奠在其上,也是喜乐,并且与你们众人一同喜乐。
  • 18 你们也要照样喜乐,并且与我一同喜乐。
  • 19 我靠主耶稣指望快打发提摩太去见你们,叫我知道你们的事,心里就得着安慰。
  • 20 因为我没有别人与我同心,实在挂念你们的事。
  • 21 别人都求自己的事,并不求耶稣基督的事。
  • 22 但你们知道提摩太的明证;他兴旺福音,与我同劳,待我像儿子待父亲一样。
  • 23 所以,我一看出我的事要怎样了结,就盼望立刻打发他去;
  • 24 但我靠着主自信我也必快去。
  • 25 然而,我想必须打发以巴弗提到你们那里去。他是我的兄弟,与我一同做工,一同当兵,是你们所差遣的,也是供给我需用的。
  • 26 他很想念你们众人,并且极其难过,因为你们听见他病了。
  • 27 他实在是病了,几乎要死;然而 神怜恤他,不但怜恤他,也怜恤我,免得我忧上加忧。
  • 28 所以我越发急速打发他去,叫你们再见他,就可以喜乐,我也可以少些忧愁。
  • 29 故此,你们要在主里欢欢乐乐地接待他,而且要尊重这样的人;
  • 30 因他为做基督的工夫,几乎至死,不顾性命,要补足你们供给我的不及之处。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빌립보서 2장을 함께 읽겠습니다. 빌립보서 2장은 사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그렇게 살아낼 수 있는지 아십니까? 바로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입니다. 아이고, 이 요구가 좀 너무 높은 것 아닌가요?

제가 처음 주님을 믿고 나서 아주 진지하게 진리를 구했고, 그 후에 신학을 공부하러 등록했습니다. 교수님이 청산유수로 강의하시는데 참 잘 가르치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질문을 하나 드렸습니다. "교수님, 만약 이 일이라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떻게 보실까요?" 그랬더니 그분이 제게 "내가 예수도 아닌데 그걸 어떻게 알아?"라고 하셨습니다. 이 한마디를 들으니 제가 가끔 질의응답 시간에 여러분에게 핀잔을 주었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제가 교수님한테 한 방 먹은 것이죠. 사실 제가 여러분을 쏘아붙이는 것도 그분에게 배운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한 방 맞고 나니, 아이고 세상에, 숨이 턱 막혀 넘어갈 뻔했습니다. '이래서는 더 이상 공부할 수가 없겠구나. 내가 신학을 공부하러 와서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나는 예수님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알아야 하는데.'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지만, 저는 예수님을 믿은 첫날부터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 예수님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른다면, 도대체 무슨 헛소리를 하고 있는 겁니까? 그건 순전히 헛짓거리 아닙니까? 신학은 무슨 신학입니까, 뭘 배운다는 겁니까?

사람은 예수님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생각하시는 대로 우리도 생각하고, 예수님이 보시는 대로 우리도 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가 예수님을 처음 믿었을 때의 일인데, 만약 그때 제가 다른 것을 믿었다 해도 저는 아주 진지하게 탐구했을 것입니다. 만약 마르크스를 믿었다면 마르크스가 어떻게 생각했는지 연구했을 것이고, 석가모니를 믿었다면 석가모니가 어떻게 생각했는지 연구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노자를 믿었다면 노자가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아야 하니, 그러면 배우는 것이지요.

사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은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살아내게 하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살아가는 모습이 저승사자 같거나, 흉측한 괴물 같거나, 꼬마 귀신 같다면 어떻겠습니까? 성이 왕 씨면 왕가 꼬마 귀신, 성이 이 씨면 이가 꼬마 귀신이라고 부른다면, 거기에 무슨 영광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은 절대로 '예수 믿고 영생 얻는다'라는 말을 함부로 가볍게 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냥 믿고 죽어서 천국 가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내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엇을 하겠다는 것입니까? 저는 그들이 도대체 뭘 하러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이 뭐 어쨌다고? 그리스도의 마음 따위 집어치워라" 하면서 자기 자신을 내팽개쳐 버립니다. 그렇게 자기가 내팽개치면 하나님도 그 사람을 내버려 두시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이 그렇게 포기해 버리는데 예수님이 여러분을 포기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러므로 이 일을 제가 여러분에게 가르쳐 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맏아들로서 우리에게 영생의 길을 열어 주셨고, 기쁨의 길을 열어 주셨으며, 영광의 길을 열어 주셨고,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흠 없는 자녀의 모습으로 살아가도록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지만, 이것은 제가 나중에 목회자가 되어서 깨달은 것이 아니라, 훨씬 이전에 성경을 읽을 때부터 너무나 명확하게 깨달았던 것입니다. 영어 성경이든 중국어 성경이든 자세히 읽어 보면 다 이런 뜻입니다.

그러니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 여러분 안에 그리스도의 마음이 얼마나 있는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말씀드리자면, 저는 한동안 마음이 몹시 괴롭고 답답했습니다. 왜 괴로웠을까요? 아이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은 형제자매가 도대체 몇이나 됩니까? 제 생각에는, 우리 가운데서 참으로 옛 자아를 이겨내는 사람이 너무나 적어 보입니다. 한 사람도 없다고 하면 여러분이 너무 절망할까 봐 그렇지만, 정말로 옛 자아를 이겨낼 수 있습니까?

아시다시피 빌립보 교회는 비교적 훌륭한 교회였습니다. 바울이 이 빌립보서를 쓰면서 예수님을 믿는 참된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고린도전서에서는 왜 이런 이야기를 안 했을까?'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육에 속한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해서 뭐 하겠습니까? 말해 봐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빌립보 성도들에게는 그래도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는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빌립보 교회는 이 기준에서 그리 멀지 않았지만, 고린도 교회는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빌립보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래도 괜찮은 편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살아낼 수 있을까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셨는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우리에게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빌립보서 2:6-11)

아, 참으로 훌륭한 말씀입니다. 깨달아지십니까? 제가 이 구절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이 구절은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본래 하나님이셨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본래 하나님이셨으나 낮아져서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분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셨으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높은 곳에 군림하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시고 사람의 모양이 되셨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분은 사람의 모양이 되셔서 "너희는 사람 됨을 배워라, 사람이란 이렇게 사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그분은 어떻게 사람으로서 행하셨습니까? 이것을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분은 사람이 되셨기에 사람의 모습으로 행하셨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낮추셨습니다. 낮아지셔야만 해서 낮아지신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본을 보이시며 "사람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 이렇게 해야 영광을 나타낼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자기를 낮추는 것, 무언가 조금만 가지면 자기가 대단한 줄 아는 사람들과는 다릅니다. 그렇게 교만하면 곤란하며 축복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자세히 보십시오. 저는 여러분에게 복종하라는 말을 거의 하지 않습니다. 사실 제게 복종할 필요는 없고, 여러분 자신이 복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내고 싶으십니까?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내고 싶다면 복종을 배워야 합니다. 아무것에나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는 것이며, 죽기까지, 그것도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면 그걸로 끝장나는 줄 아십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지극히 높이셨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영적 정상에 올라가야 한다고 자주 말씀드립니다. 많은 경우 사람들은 영적 정상에 어떻게 올라가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읽은 말씀을 지켜 행하고 또 지켜 행하면 영적 정상에 빠르게 올라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무엇에 순종해야 합니까? 하나님은 "사람이 사는 것은 헛되고 헛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그것을 악착같이 쥐고 있다면 영적 정상에 오르기는 틀렸습니다.

사람의 인생은 헛된 것입니다. 이것이 매우 중요한 분수령입니다. 영적 정상에 오르고 싶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싶다면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사람이 생사를 꿰뚫어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꿰뚫어 보지 못하겠다고요? 꿰뚫어 보지 못하면 이 길을 갈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사는 것이 매우 실질적이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말씀드리자면, 사는 것은 실질적인 것이 아니라 온통 허무한 것입니다. 돈이 매우 실질적이라고 생각하지만 돈은 허무한 것입니다. 돈은 있어도 사람 같지도 않고 귀신 같지도 않게 산다면 도대체 무엇을 위해 사는 것입니까?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어떻게 해야 지극히 높아질 수 있습니까? 바로 죽기까지 복종하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든 하나님께서 다스리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보면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것 같고, 내일 보면 귀신이 다스리는 것 같고, 오늘은 사람이 결정하는 것 같고, 내일은 귀신이 결정하는 것 같고, 모레는 다시 하나님이 결정하시는 것처럼 번갈아 주권을 쥔다고 생각한다면 여러분은 이 길을 갈 수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어떤 일을 겪어 거의 죽을 뻔했다고 합시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것입니까? 당연히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렇겠습니까? 스스로에게 잘 물어보십시오. 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이런 일을 겪게 하실까요? 우리는 사람이 연약한 존재임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사람은 가만히 있어도 귀신 같은 모습을 살아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내려면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죽기까지 복종해야 합니다. 쉽지 않지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일단 이것을 붙잡으면 영적 정상에 순식간에 쑥 올라가게 됩니다.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자기를 비우십시오. 자신을 그렇게 대단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아이고 내 체면, 아이고 내 자존심' 하다가 결국 이리저리 부딪혀 존귀함도 영광도 다 잃어버립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행하셨습니다.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서른세 살에 돌아가셨다고 해서 안타까워하지 마십시오. 그분은 영원 안에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사람이 이 땅의 일에 마음을 두기 시작하면 끝장입니다. 그러면 영적 차원의 가장 밑바닥에 살게 됩니다. 가장 밑바닥이 18층 지옥 아니냐고요? 아닙니다. 0층입니다. 그러다 나중에 18층으로 가도 늦지 않습니다. 이생에 살면서 돈을 너무 중하게 여기는데, 사실 생각해 보면 다 알 수 있습니다. 고작 70년, 80년, 90년 살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휙 지나가 버립니다. 마치 앨범을 넘기는 것과 같습니다.

어느 아흔이 넘은 어르신이 돌아가시기 전에 앨범을 꺼내 보셨습니다. 가만히 보니 태어난 해가 1931년인데 지금은 2025년이니, 눈 깜짝할 사이에 94년이 흘렀습니다. 한국 나이로는 95년입니다. 앨범을 넘기니 흑백사진이 다 누렇게 바랬습니다. 젊은 시절 처녀 때는 참 예뻤는데, 좀 더 넘기니 아이가 보이고, 더 넘기니 온갖 우여곡절을 겪은 모습이 나옵니다. 그러다 며칠 안 지나 퇴직한 사진이 나오고, 몇 장 안 넘겨서 60대, 70대, 80대, 90대가 되더니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진이 벽에 걸린 게 아니라 인생이 끝나 버린 것입니다. 아이고, 얼마나 빠릅니까?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그러니 사람이 세상에서 사는 것이 헛되지 않습니까? 헛됩니다. 그런데 우리 중에 이 허무함을 꿰뚫어 본 사람이 몇이나 됩니까?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다면 괴로워할 일이 줄어듭니다. 왜 괴롭습니까? 영적 수준이 너무 낮아서(low) 그렇습니다. 너무 낮다고요? 땅만 파고 있는 것입니다. 땅을 파고 있으니 이제 천천히 위로 올라오십시오.

사람으로 살아가려면 대단한 사람을 따라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그분의 모습을 배우십시오. 여러분에게 억지로 복종을 요구하고 싶지는 않지만, 빌립보서에서 예수님은 죽기까지 복종하셨고 그것으로 단번에 승리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음을 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생사의 문제를 초월하여 꿰뚫어 보았다면 직장 일이 여러분을 괴롭힐 수 있겠습니까? 직장 상사가 여러분을 괴롭힐 수 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극히 높아지셨음을 진정으로 안다면, 모든 것이 너무나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지극히 높이실 것을 정말로 안다면, 굳이 그렇게 아등바등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살아가는 모든 일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합니다.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만물을 발아래 짓밟아야 합니다. 세상일은 다 사소한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십시오! 여러분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얼마나 있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립보서 2:5)

알아들으셨습니까? 마땅히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란 도대체 어떤 마음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순종하는 마음입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지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다스리시면 그 누구도 여러분의 것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하나님이시며, 여러분이 하나님을 가장 중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제가 이렇게 설교하면서 너무 공허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까 염려되기도 합니다. 어떻게 해야 이 사실을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사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다는 것은 '참된 사람의 도리를 아는 것'입니다. 사람의 일생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살아내니 얼마나 좋습니까? 절대로 사람 같지도 않고 귀신 같지도 않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비극 아닙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람으로서 순종을 배워야 합니다. 순종을 배운 사람은 매우 지혜로워집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여러분에게 "당신은 왜 그렇게 어리석습니까?"라고 했을 때, "아, 제가 어리석었군요"라고 할 수도 있고, "뭐라고요? 나를 무시하는 겁니까?"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 말을 들어보십시오. 후자는 순식간에 IQ가 0이 되어 버리고 진짜로 어리석어지는 것입니다. 원래 상대방이 "당신 이 일 처리를 참 어리석게 했네요"라고 알려주었는데, "난 어리석지 않아요"라고 한다면 자기가 정말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까? 똑똑하지 않습니다. 살아내는 꼴을 보면 압니다. 그러므로 순종이라는 것은 실로 엄청난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몇 가지 권면을 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십니까? 그분은 비범한 고수이십니다. 인류 역사상 예수 그리스도를 뛰어넘은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그분의 제자가 되었는데 그분의 말씀을 듣지 않고 누구 말을 듣겠습니까? 그분께서 지극히 높아지실 수 있었다면, 우리도 지극히 높아질 수 있습니까?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복음은 사실상 힘써 푯대를 향해 달려가는 복음입니다. 오늘날 너무나 많은 크리스천의 마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에 돈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을 사랑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에 죽음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겠습니까? 그분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육신 가운데 사신 것이 아니라 영원 안에 사셨기 때문입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합니다.

여러분이 단지 이생에만 살고 육신 가운데 살면서 이것이 매우 실질적이라고 여긴다면, 그것은 분명 비극이며 망하는 길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옛 자아를 이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옛 자아를 이기려면 살아가는 이까짓 일들을 가볍게 보아야 합니다. 이것을 영적 정상에 오른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것은 결코 빈말이 아닙니다.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사신다면, 그것은 실로 놀라운 일입니다.

왜 놀라운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돈을 어떻게 보는가? 인간관계를 어떻게 보는가? 집안의 복잡하고 골치 아픈 일들을 어떻게 보는가? 자녀, 남편, 아내 등의 문제를 어떻게 보는가? 여러분의 생각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각과 같다면, 그것은 실로 엄청난 일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이제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십니다"라고 말하면서도, 속마음과 생각을 들여다보면 온통 세상의 논리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빈말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논리가 있다면 여러분은 반드시 대단히 기쁜 사람이 될 것이고, 반드시 대단히 지혜로운 사람이 될 것이며, 반드시 대단히 능력 있는 사람이 될 것이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가진 사람이 될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직접 살펴보고 시도해 보아도 좋습니다.

같은 뜻을 품고 같은 마음을 가지라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을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빌립보서 2:1-4)

이 말씀을 읽고 나면 "이러면 손해 보는 것 아닌가요? 이렇게 하면 너무 곤란해지는 것 아닌가요?"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모든 형제자매가 한마음을 품는 것은 누가 하시는 일입니까?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너는 네 생각대로, 나는 내 생각대로 서로 자기주장만 내세우며 얼굴을 붉히고 다툰다면, 그만두는 편이 낫습니다. 우리 둘 다 3×8=23이라고 우기는 미련한 사람에 불과합니다. 여러분이 뭘 안다고 그럽니까? 고작해야 지극히 보잘것없는 사람일 뿐인데 왜 자기가 진리를 다 안다고 생각합니까? 그러므로 같은 뜻, 같은 마음을 품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지난 수년간 우리 교회는 일치하지 못하게 만드는 영을 대적하여 싸우는 데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정말 신기하게도, 다른 뜻과 다른 생각을 품은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둘씩 다 떠나갔습니다. 어떻게 떠났을까요? 악한 영에 이끌려 떠나간 것입니다. 악한 영이 거들어 준 셈이지요. 그러면서 교회는 점점 더 온전한 하나를 이루게 되었는데, 이것이 우리가 초기에 치렀던 몇 차례의 영적 전쟁이었습니다.

교회 안에서 마음과 생각이 일치하지 않고, 어떤 이는 자기만의 꿈과 추구를 좇고, 또 어떤 이는 자기 뜻을 좇을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자 하는데 그는 직장의 마음을 품고자 한다면 같은 길을 갈 수 없습니다. 그렇게 가다 보면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십니까? 악한 영을 통해 그를 데려가게 하십니다. 그렇게 교회가 깨끗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목사님들은 성도가 떠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목사님은 가슴이 철렁하지 않습니까?"라고 물으실지 모릅니다. 예전에는 철렁했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있고, 하나님께서 영원히 다스리심을 알며, 하나님께서 우리 모든 형제자매로 하여금 같은 뜻, 같은 마음, 같은 가치관을 갖게 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영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을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행하십시오. 겸손에 대해 많은 이들이 사람의 겸손을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겸손이란 '나는 할 수 없으나 내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만약 '나도 못 하고, 아무도 못 하고, 하나님조차도 못 하신다'고 여긴다면 그것은 겸손이 아니라 교만입니다. 하나님이 못 하실 줄을 당신이 어떻게 압니까?

그러므로 깊이 묵상해 보십시오. 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겨야 합니까? 여러분이 저를 보면서 '당신이 나보다 낫다'고 여기고, 제가 여러분을 보면서 '당신이 나보다 낫다'고 여긴다면 다툴 일이 있겠습니까? "이 일은 제가 보기에 좀 틀린 것 같습니다", "아, 그렇군요. 저도 좀 미흡한 것 같습니다"라고 한다면 함께 그 일을 바르게 풀어갈 수 있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하지만 내가 "무조건 이 말이 맞아, 3×8=23이야"라고 하고, 상대방은 "아니야, 3×8=22야", 또 저쪽 사람은 "아니, 3×8=27이야"라고 한다면 어떻게 일치할 수 있겠습니까? 모두가 '3×8=24'라는 절대적인 진리 앞에 서 있다면 틀릴 일이 있겠습니까? 틀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같은 뜻과 같은 마음을 가지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데 어떻게 서로 다를 수가 있겠습니까?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표대로 삼고 있는데 어떻게 다를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이 못 하실 것이라고 결코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온전히 하실 수 있습니다. 단지 사람이 하나님의 역사를 가로막고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이 사역자라면 빌립보서에 대한 제 설교를 듣고 돌아가서 깊이 묵상해 보십시오. 교회 안에서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고 요구하지 않는다면 목회를 지속해 나갈 수 없습니다. 저마다 자기 기준이 있기 때문입니다. 3×8=23이라는 사람, 22라는 사람, 21이라는 사람, 20이라는 사람, 심지어 270이라는 사람까지 온갖 사람이 다 있습니다. 기준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자, 그러니 헛된 짓은 그만둡시다. 여러분의 모습을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이 보입니까? 제 얼굴을 보아도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썩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우리 둘 다 도긴개긴이니, 손을 맞잡고 예수 그리스도의 기준을 우리의 기준으로 삼아 '예수님은 어떻게 보시는가'를 함께 바라봅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런 시시한 일에 얽매이지 않으십니다. 아들이 대학에 붙든 떨어지든, 장가를 가든 안 가든 그런 일에 얽매이지 않으십니다. 그분이 관심을 두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영원 안에서 우리를 위해 예비된 영광의 면류관이요, 사탄을 발아래 짓밟는 것이며, 우리를 만민 위에 뛰어나게 하사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으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나타내며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이것이 좀 어려운 일입니까? 당연히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건성으로 대충 해서는 결코 도달할 수 없습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을 때, 우리는 과연 얼마나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주님을 믿고 있습니까? 대충대충 얼렁뚱땅 주님을 믿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초정밀 공학과 같습니다. 대단히 정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정밀 공학이다." 이 개념이 없이 어물쩍거리며 흐리멍덩하게 건성으로 믿는다면 무슨 역사가 일어나겠습니까?

우리는 두렵고 떨려야 합니다. 왜 두렵고 떨려야 할까요? 이것은 하늘을 나는 프로젝트와 같아서, 하나님의 영과 함께 공중을 날아오를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두려운 것은 흐리멍덩하고 대충대충 하다가 얼떨결에 날아올랐을 때입니다. "야, 나 같은 돼지도 날 수 있구나!" 바람이 불 때는 돼지도 날아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람이 지나가면 어떻게 됩니까? 쿵 하고 바닥에 곤두박질치거나 푸른 하늘 저편으로 산산조각이 나버릴 것입니다. 그렇게 추락하면 참혹해서 눈 뜨고 볼 수 없을 지경이 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이 구원은 바로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높은 하늘을 날아오르고,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으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되며, 만물을 발아래 짓밟는 것입니다. 그것은 장난이 아닙니다. 우리 형제자매 중에 흐리멍덩하고 건성으로 대충 신앙생활을 하는 분이 있다면, 정말 위험하다고 경고합니다. 그런 태도로 지은 집은 무너지고, 그런 태도로 놓은 다리는 붕괴됩니다. 대충대충 해서 되겠습니까? 그렇게 지은 성전에는 하나님의 임재가 없고 귀신만 우글거리게 됩니다. 여러분의 섬김이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는커녕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된다면 그것은 죽을 일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태초부터 철저히 삼가 지켜 행할 것, 즉 '엄격한 철저함'을 말씀해 왔습니다. 저는 철저하지 못한 태도를 몹시 싫어합니다. 좀 더 철저할 수 없습니까? 철저하지 못한 태도로 살면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살아내겠다는 것은 꿈도 꾸지 마십시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십시오. 같은 뜻, 같은 마음을 품으십시오. 그래야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두렵고 떨림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살아가겠습니까? 두렵고 떨림과 하나님을 경외함은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재앙을 겪고도 하나님을 경외함을 배우지 못한다면, 좌우를 돌아보지 말고 그냥 계속 가던 길을 가십시오. 그러다 파멸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비극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어떤 비극을 겪더라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마십시오. 우리에게 정밀 공학과 같은 철저한 마음가짐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정밀 공학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중국의 산둥이나 허베이, 동북 지역 같은 곳에는 정밀 공학이 잘 발달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접해 본 바로는 그 지역 사람들은 정밀한 작업을 잘 감당하지 못합니다. 옛날 중국에서 우리가 어릴 적에 상하이 시계나 스위스 시계는 대단히 비쌌습니다. 상하이 시계가 200위안이 넘었는데, 당시 한 달 월급이 40위안 정도였고 한 달에 10위안 저축하기도 힘들었습니다. 꼬박 2년을 모아야 상하이 시계 하나를 살 수 있었습니다.

상하이 사람들이나 일본인들, 장쑤와 저장 지역 사람들이 일하는 것을 보면 비교적 정밀하고 꼼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런 일을 해낼 수 없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 것은 상하이 시계를 만드는 정밀 공학보다 훨씬 더 철저해야 합니다. 더욱 엄격해야 하며, 삼가 지켜 행해야 합니다.

철저하지 않고서 어떻게 이 길을 가겠습니까?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처럼 "나 예수 믿었으니 구원받았다"라고 안일하게 말하지 마십시오. 그런 게 아닙니다. 주님을 믿는 순간 여러분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대적을 선택한 것입니다. 제가 위대하다고 표현한 것은 마귀가 정말 대단하고 강력하기 때문입니다. 시작하자마자 마귀에게 나가떨어진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물론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지켜주실 수 있지만, 여러분에게 이런 중심이 없다면 어떻게 하나님을 온전히 구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빌립보서 2:12)

어떤 이들은 이것을 두고 '잘 달리는 말에 채찍질한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빌립보 형제자매들을 더 높은 영적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함입니다. 건성이 아니라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결코 대충 넘어가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건성으로 하는 사람에게는 방법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제가 받은 교육은 정밀 공학 교육이었습니다. 대학교 첫날 수업 시간에 교수님이 아주 생생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작은 나사 하나 때문에 비행기가 추락한다는 것입니다. 현대의 비행기는 모두 컴퓨터로 제어됩니다. 졸업 후 제 동기 한 명이 비행기 제작 공장으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얼마 후 그 친구가 출장 길에 대학원에 다니던 저를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시험 비행 조종사는 정말 위험한 직업이야. 위험률이 30%나 돼. 한번 비행할 때마다 죽어서 내려올 확률이 30%나 된다니 얼마나 무섭냐."

그 친구는 비행기가 활주로에 착륙하려던 순간 뒤집히면서 불꽃이 튀어 조종사의 머리가 형체도 없이 갈려 나가는 참상을 눈앞에서 똑똑히 목격했습니다. 끔찍하지 않습니까? 코드 한 줄에서 양수(+)를 음수(-)로 잘못 쓴 실수 때문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저는 '세상에, 그 코드를 잘못 짠 사람이 조종사를 죽인 셈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때부터 매우 철저한 태도로 일하게 되었고, 모든 일에 철저함을 기합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책임이 막중합니다. 오늘 우리가 두렵고 떨려야 하는 이유는 영혼이 죽고 사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사람이 죽어 나가기 때문입니다!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가 되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빌립보서 2:13-18)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 각자가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가 된다는 것이 어떤 기준인지 아십니까? 티끌 하나 없는 온실이나 방진복을 입고 들어가는 무진 반도체 공장 같은 깨끗한 환경에서가 아닙니다. 온통 더러운 세상 속에서, 이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정밀한 과정입니까? 반도체나 하드디스크를 만드는 것보다 훨씬 더 정밀하고, 항공 우주 공학보다 훨씬 더 고차원적인 일입니다. 저는 진심으로 형제자매 여러분이 이 말씀을 마음 깊이 받아들이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기준에서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겪는 온갖 문제들은 사실 우리 내면에 세상의 온갖 더러운 것들을 가득 채워 넣었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내면에 세상의 더러운 것이 가득 차면 마음이 괴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여러분에게 '살기가 참 괴롭다'고 말해 줄 것입니다. 여러분이 굳이 제게 말하지 않아도 저는 다 압니다. 사람이 괴롭고 기쁨이 없는 이유는 사람 같지도 않고 귀신 같지도 않게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머릿속에 온갖 더러운 생각이 가득하여 이 문제 아니면 저 문제로 끝없이 시달립니다.

'집집마다 말 못 할 사연이 있다'는 넋두리를 읊조리며 세상에서의 생을 마감합니다. 여러분이 읊조려야 할 것은 성경 말씀이지 그런 신세타령이 아닙니다. 누가 그런 타령을 하라고 했습니까?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구원을 이루어가며, 이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가 되어 내면을 깨끗이 씻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 우리를 깨끗이 씻어 주사 주님의 뜻대로 행하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사 자신의 선하신 뜻을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A를 택하든 B를 택하든, 옳다고 여기든 그르다고 여기든, 세상의 논리를 따르든 하나님의 논리를 따르든 그 결과는 여러분이 잘 알고 있습니다.

만약 마음이 괴롭다면 여러분의 마음이 증언하고 하나님의 영도 증언하실 것입니다. 겉으로 구호 몇 번 외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정밀 공학을 다루는 장인의 마음으로 실질적인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감사하게도 우리 형제자매 중 많은 분이 열심히 진리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힘을 내어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이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에서는 누구나 그렇게 살아가기 때문에 더러움에 물들기 십상입니다. 보배는 본래 흔하지 않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보배가 될 것인지 쓰레기가 될 것인지는 스스로 선택하십시오. 빛들로 나타나 생명의 말씀을 밝히 드러내십시오. "보라,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도리이다!"라고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목숨을 아끼지 않은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는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목숨을 돌보지 아니함으로 여러분의 본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들을 보며 깊은 감동을 받습니다.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는 바울 곁을 지켰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곁에 있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어떤 이들은 그들이 감옥까지 함께 들어가 바울 곁에 있었다고도 합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생업을 내려놓아야 했습니까? 그렇습니다. 손해를 보았습니까? 재정적 손실을 보았습니다. 생명의 위험이 있었습니까?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목숨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바로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디모데를 속히 너희에게 보내기를 주 안에서 바람은 너희의 사정을 앎으로 안위를 받으려 함이니 이는 뜻을 같이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밖에 내게 없음이라 그들이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내 일이 어떻게 될지를 보아서 곧 이 사람을 보내기를 바라고 나도 속히 가게 될 것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내가 쓸 것을 돕는 자라 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가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을 알고 심히 근심한지라 그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그를 긍휼히 여기셨고 그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더욱 급히 그를 보낸 것은 너희로 그를 다시 보고 기뻐하게 하며 내 근심도 덜려 함이니라 이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그를 영접하고 또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 그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 (빌립보서 2:19-30)

참으로 은혜로운 말씀입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바울은 곧 출옥할 예정이었지만 빌립보 성도들을 몹시 염려하고 있었습니다. 왜 그들을 염려했을까요? 그들이 온전히 서 있는지 걱정스러웠기 때문입니다. 빌립보 교회의 파송을 받아 바울을 돌보러 왔던 에바브로디도가 중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교회가 들었기 때문입니다.

에바브로디도가 걸린 병은 일종의 '상사병(향수병)'이었습니다. 빌립보 고향 사람들을 너무나 그리워했던 것입니다. 참 흥미롭지 않습니까? 바울은 그를 나무라지도 않았고 "왜 그렇게 육에 속했느냐"고 탓하지도 않았습니다. 사실 고향 집 생각이 너무 간절하다 보니 병이 났고 마귀에게 틈을 준 것입니다. 그는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습니다. 바울이 그를 정성껏 섬겼습니다. 그 섬김의 구체적인 과정은 기록되지 않았지만, 바울은 그를 위로하고 먼 길이지만 서둘러 고향으로 돌려보내려 했습니다.

에바브로디도는 향수병에 걸렸던 것입니다. 크리스천으로 살아가다 보면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할 때가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에서 로마까지 달려와 바울을 돌볼 만큼 용기와 헌신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빌립보의 수많은 성도는 로마까지 올 엄두조차 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뜻을 같이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밖에 없다"고 탄식한 것입니다. 향수병으로 돌아가야 하는 에바브로디도와 디모데 외에는 쓸 만한 일꾼이 없었기에, 바울은 디모데를 보내어 성도들의 형편을 살피고 자신의 상황을 전하게 하려 했습니다.

바울이 무엇을 염려했겠습니까? 그들이 악한 영에게 휘둘릴까 봐, 그들의 영적 수준이 아직 연약할까 봐 염려한 것입니다. 바울은 그들의 마음속 생각을 꿰뚫어 보고 있었습니다. 로마까지 와서 바울을 섬길 정도로 훌륭한 에바브로디도조차 향수병에 걸려 휘청거리는데, 다른 성도들의 상태는 오죽하겠습니까? 참으로 염려스러웠던 것입니다.

바울의 일생은 쉽지 않았습니다. 자신과 하나님만 바라보면 늘 기뻤지만, 연약한 성도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짓눌리고 아팠습니다. 이것이 도대체 어떤 마음이겠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정말로 분발해야 합니다. 우리 내면에 자리 잡은 세상의 논리가 너무나 깊습니다. 세상을 이기고, 육신을 이기며, 혈육의 얽매임을 이겨내기까지 가야 할 길이 아직 멉니다.

그러나 바울이든 디모데든 에바브로디도든, 그들은 성도들에게 훌륭한 본이 되었습니다. 빌립보서는 지극히 현실적인 상황을 솔직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에바브로디도가 병들었을 때 바울이 옆에 있으면서 왜 치유 사역을 하지 않았을까?"라고 의아해합니다. 바울이 기도하지 않았겠습니까? 문제는 에바브로디도의 내면에 깊은 향수병이 있었고, 그 마음의 문제로 인해 병이 났다는 점입니다. 그가 아주 영적이었습니까? 꼭 그렇지만은 않았습니다. 바울은 그의 마음과 생각의 문제를 치유하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참으로 감회가 새롭습니다. 지금은 비행기를 타면 스무 시간 남짓 만에 지구 반대편으로 가지만, 당시에는 몇 달씩 걸어서 이동해야 했습니다. 가족을 다시 만나는 것이 정말 어려웠습니다. 왜 향수병에 걸렸겠습니까? 처자식이 눈에 밟혔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도록 목숨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바울의 글귀 속에는 "빌립보 성도들이여, 여전히 두렵고 떨림으로 힘써 구원을 이루어가라. 훌륭한 교회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안타까움이 묻어납니다.

우리 가운데 많은 형제자매가 영적 열정을 품고 있음에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우리가 겪는 모든 일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다시 한번 깊이 묵상해 보십시오. 비록 힘겹고 고통스러운 일을 겪을지라도,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일하시며 자신의 선하신 뜻을 이루어가시는 과정입니다.

이것이 기쁨의 길입니다

이 모든 세상적인 얽매임을 이겨내는 사람은 반드시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이 험한 세상에서 참된 기쁨을 누리며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위대하고 멋진 일입니까! 그러나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를 무너뜨리지 않는다면 참된 기쁨을 누리기 어렵습니다. 이것에 얽매이고 저것에 시달리며, 마귀가 이리저리 뒤흔들어대는 끝없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다면, 세상의 문제들이 여전히 존재할지라도 더 이상 우리의 마음을 뒤흔들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 온전히 드렸기 때문입니다. 아멘! 하나님께서 참으로 우리에게 이러한 결단을 주사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게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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