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세요, 스가랴서 8장을 함께 보겠습니다. 주제는 “여러분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입니다. 이 장은 매우 슬픈 주제에서 듣기에 그리 슬프지 않은 주제로 바뀌었습니다. 왜일까요? 앞선 장에서 “내가 불러도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은즉, 장래에 너희가 불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즉 하나님께서 사람의 기도를 듣지 않으신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요? 여러분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여러분의 기도를 듣기 싫어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여러분을 저주하고자 하시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축복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이 하나님을 어떻게 인식하느냐가 그 사람 안의 누림과 받음을 결정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예루살렘 길거리에 늙은 남자들과 늙은 여자들이 다시 앉을 것이라 다 나이가 많으므로 저마다 손에 지팡이를 잡을 것이요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그 날에 이 일이 남은 백성의 눈에는 기이하려니와 내 눈에야 어찌 기이하겠느냐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그들을 인도하여다가 예루살렘 가운데에 거주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진실과 공의로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스가랴》 8:4-8)
하나님께서 이 시온과 예루살렘을 향해 지극히 열정적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자면, 만약 갑자기 어떤 사람이 나타나서,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보시고 택하신 후 시온을 건축하고 예루살렘을 건축하고 성전을 건축하기 시작한다고 할 때, 이 단어들에 대해 혼란스러워하지 마십시오. 시온은 이스라엘 땅의 그 시온이나 그 예루살렘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시온이라 부르고,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십니까?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위해 지극히 열심을 내시며, 시온을 위해 마음에 지극히 큰 열정을 품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시온으로 돌아와 예루살렘 가운데 거하고자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누군가가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되, 그분의 공의와 진실하심을 따라 그분의 전을 건축하기를 간절히 바라시는 것입니다. 건축을 마치고 나면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거하실 것입니다.
이 사실은 제가 증명할 수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과거에 이런 마음을 품고 교회를 건축해 왔기 때문입니다. 만약 교회 안에서 여러분의 기도가 응답을 받는다면, 그것은 교회를 건축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얻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지극히 열심을 내고 계심을 아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지만, 이것은 절대적으로 사실입니다. 그리하여 이 예루살렘은 진실한 성읍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진실하지 못하고 온통 거짓되고 헛된 것만 일삼으며 하나님의 마음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그저 교회의 간판만 걸어 놓는다면, 그것은 지난 장에서 말씀드린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르셔도 듣지 않았으니, 장래에 그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어도 하나님께서 듣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세울 때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시는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여러분이 교회를 선택할 때도, 그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볼 수 있는 교회를 선택해야 하며, 그 교회는 반드시 진실과 공의를 따라야 합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며칠 전 한 자매님이 지난 30여 년간 온갖 교회를 다 보았는데, 갑자기 우리 교회를 찾아왔습니다. 사실 그녀가 우리 가운데 온 지는 이미 몇 년 되었습니다.
그녀는 오고 나서 발견했습니다. ‘어? 이곳 사람들은 내가 예전에 보았던 교회 사람들과 다르네.’ 예전에 보았던 그 교회는 그저 배우들의 무리였습니다. 목사는 목사 티를 내고, 사모는 사모 티를 내고, 성도는 성도 티를 내며, 말할 때도 “안녕하세요, 좋습니다. 예수님이 당신을 사랑하시고, 저도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며 온통 가식적이었습니다.
이번에 그녀는 사람들을 직접 보려고 저를 찾아왔습니다. 본 적이 없었기에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녀에게는 문제가 많았는데, 결국 보고 난 후 한바탕 훈계를 들었고 매일 훈계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의지하고, 진실과 공의를 따른 것이었습니다. 문제가 있는데 말을 안 할 수 있겠습니까? 비위를 맞추는 것은 가짜를 행하는 것입니다. “오, 자매님, 예수님이 자매님을 사랑하시고, 저도 사랑해요”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저는 “그만 좀 하세요”라고 한마디 던집니다. 가식적이고 헛된 껍데기들을 단번에 날려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교회가 가장 싫어해야 할 것이 바로 종교적인 냄새임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가 가장 싫어해야 할 것은 불성실(거짓됨)이며, 교회가 가장 싫어해야 할 것은 진실하지 못한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야 하며, 실제적인 일을 더 많이 하고 헛된 짓은 줄여야 합니다. 교회 전체가 헛된 짓만 하고 있다면 결국 사람은 많을지 몰라도 아무런 문제도 해결하지 못합니다.
어떤 자매님이 계셨는데,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지만 병이 있어서 우리 가운데 치유와 축사를 받으러 왔습니다. 제가 “어느 교회 다니세요?”라고 묻자 그녀는 “그 교회에 다녀요”라고 했습니다. 제가 “그 교회는 얼마 전에 치유 축사 특별 집회를 열지 않았나요? 왜 안 가셨어요? 담임목사님 좋으신 분 아닌가요? 치유 축사 집회 하신 분이잖아요?”라고 묻자, 그녀는 “저희 목사님이 치유 축사 집회는 외부 사람들을 위한 것일 뿐이라고 하셨어요”라고 했습니다.
듣고 너무 놀랐습니다. 세상에!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하나님을 경외할 줄 모르는구나.’ 알고 보니 그것을 미끼로 삼은 것이었습니다. 미끼가 무엇입니까? 마케팅을 한 것입니다. 저는 ‘도대체 무슨 생각인가?’ 싶었습니다. 사람들을 현혹해 교회로 끌어들인 뒤, 교회에 들어오면 더 이상 신경 쓰지 않는 것입니다. 저는 그들과 정반대입니다. 아픈 사람이 있으면 제대로 축사해 주고, 축사가 잘 안 되면 그것을 일종의 연구 과제로 삼아 끝까지 씨름합니다.
최근에 저는 많은 사람이 깨달음이 막혀 있는 문제에서 축사를 받아야 함을 발견했습니다. 사람은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늘 거짓말을 믿습니다. 깨달음이 막혀 있어서 진실함조차 모르고, 깨달음이 막혀 있어서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이고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심을 알지 못합니다. 깨닫지 못하니 교회는 이래서는 안 되고 허례허식에 찬 모습이어야 한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다시 조율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교회를 향해 마음에 지극히 열정적이시며, 그분의 교회 가운데 거하기를 간절히 바라십니다. 하나님은 교회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장소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시며,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기를 간절히 바라십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우리는 과연 응답하고 있습니까, 응답하지 않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사람들의 반응은 이렇습니다. “저 휴가 가야 하는데요.”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사람들의 반응은 이렇습니다. “제가 모임에 참석하면 남편이 버럭 화를 낼 텐데요.”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하나님, 저 휴가 중인데요”라고 합니다. 온통 이런 것들뿐인데, 여러분이 하나님을 부를 때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 속에 이런 것들만 가득 차 있는데 어떻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예루살렘 길거리에 늙은 남자들과 늙은 여자들이 다시 앉을 것이라 다 나이가 많으므로 저마다 손에 지팡이를 잡을 것이요 그 성읍 거리에 소년과 소녀들이 가득하여 거기에서 뛰놀리라.” 여러분 말씀해 보십시오. 이것이 교회입니까? 이것이 어떻게 교회일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이것은 진실한 실재입니다. 사람은 참으로 진실해야 하는데, 진실하지 못하니 온갖 거짓된 겉모습만 만들어 냅니다. 이유를 아십니까? 교회 안에 나이 드신 분들이 오면 몸에서 냄새가 나기도 합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자면, 교회들은 보통 이런 사람들을 별로 환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은 바로 이런 곳에 있습니다. 나이가 많아 손에 지팡이를 잡고 있는 그들에게 말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노인을 공경하고 어린이를 사랑할 줄 압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돈을 거두는 곳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돈 많은 사람, 직장인, 전문직, 사업가, 자영업자처럼 돈을 많이 버는 사람만 극진히 환영하고, 노인들은 ‘왜 오냐?’ 하고, 우울증 걸린 사람은 ‘왜 오냐, 정신병원에나 가라’고 한다면, 교회가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정말 심각한 일 아닙니까?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기이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많은 사람이 기이하게 여깁니다. ‘어, 이곳에는 어떻게 하나님의 임재가 있지? 이곳에서는 어떻게 하나님께서 이들의 기도에 응답하시지? 하나님이 과연 이런 하나님이신가?’ 사람들은 기이하게 여깁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눈에도 이것이 기이하겠다고 생각하십니까? 전혀 기이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진실과 공의이며, 하나님의 마음이 바로 여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에게 은혜를 베풀고자 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자 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를 듣고자 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은 진정 하나님의 마음을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아십니까? 만약 알지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비극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교회를 세우는 것은 바로 진실한 교회를 세우기 위함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저를 보러 왔다가 실족하기도 하고, 실족하지 않기도 합니다. 왜일까요? 실족한 사람들은 “저 사람 꼴이 고작 저 정도야?”라고 말합니다. 그나마 더 심한 욕을 하지 않은 것만 해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들은 목사라면 으리으리하고 고상하며 저 높은 곳에 있어서 아래에서 우러러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와서 보니, 푸드코트에 가서 밥을 먹고, 길거리 포장마차 음식도 먹고, 잘 시간에 자고, 할 일 다 하는 평범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누군가 문제를 안고 찾아온다면 그의 문제와 그의 아픔은 바로 우리의 아픔이 됩니다. 제가 훈련시킨 동역자들도 다 이렇습니다. 당신의 아픔이 곧 우리의 아픔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이며, 하나님은 구원을 베풀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이들은 내 백성이요,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 이곳에는 분명한 하나님의 임재와 풍성한 은혜가 있습니다.
어떤 교회들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저는 결코 그런 짓을 하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찬양할 때 정신질환이 발작하면, 그 사람을 붙잡아 작은 방에 가두어 버립니다. 찬양하는 것이 중요합니까, 아니면 그 정신질환자를 섬겨주는 것이 중요합니까? 그들은 그럴듯하게 “방해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무슨 방해입니까? “아이고, 저 사람 축사 반응이 일어나고 있으니 우리 예배에 절대 방해되지 않게 해라”는 식입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예배는 포로 된 자가 자유를 얻고, 눌린 자가 놓임을 받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예배는 눈먼 자가 보게 되고, 다리 저는 자가 걷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예배입니다. 여러분 중에는 이 말을 듣고 ‘어디 한번 목사님을 시험해 볼까, 어떻게 하나 보자’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얼마든지 와 보십시오. 기억하십시오, 교회는 가식을 부리는 곳이 아닙니다. 저는 자라면서 가식을 몹시도 싫어했습니다.
교회 안에서 “좌우에 계신 분, 옆에 계신 분과 인사합시다. 주 예수님이 당신을 사랑하시고, 저도 당신을 사랑합니다.” 상대방도 돌아보며 “주 예수님이 당신을 사랑하시고, 저도 사랑합니다”라고 합니다. 저는 ‘네가 날 어떻게 사랑하는데?’라는 생각이 듭니다. 눈을 뻔히 뜨고 보아도 서로 알지도 못하는 만 명 모이는 대형교회에서 그가 나를 사랑한다고요? 저는 그것이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거짓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런 말을 할 수 없어 입을 닫고 있었습니다. 그런 말을 하고 나면 속이 메스꺼웠기 때문입니다.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내가 아플 때 날 보러 올 겁니까? 내게 필요가 있을 때 진실하게 손을 내밀어 줄 수 있습니까? 이런 것은 일이 생겼을 때 보면 바로 드러납니다. 하지만 아무 일 없을 때는 사람들은 그냥 그렇게 넘어갑니다.
제가 전에 섬겼던 한 자매님이 저를 찾아온 적이 있습니다. 왜 찾아왔을까요? 그 교회에서 상처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가 편찮으신데 그 교회에서는 아무도 신경 써 주지 않았습니다. 온 가족이 그 대형교회에 다녔습니다. 아무 일 없을 때는 헌금하러 가는 것을 아무도 말리지 않더니, 막상 병이 나니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것입니다. 매일 “은혜입니다, 은혜입니다” 하더니, 정말 은혜가 임했습니까?
그러므로 화인 사명 신학은 실질적인 일을 행하는 신학입니다. 화인 사명 신학에서 여러분이 노인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여러분을 짐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어린아이라서 교회 안에서 기쁘게 자라나고 있다면, 여러분 역시 교회 안에서 하나님이 귀하게 보시는 존재입니다. 헌금을 얼마나 많이 내느냐에 따라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저주와 축복은 모두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집 곧 성전을 건축하려고 그 지대를 쌓던 날에 있었던 선지자들의 입의 말을 오늘 듣는 너희는 손을 견고히 할지어다 이 날 전에는 사람도 삯을 얻지 못하였고 짐승도 삯을 받지 못하였으며 사람이 원수로 말미암아 평안히 출입하지 못하였으니 내가 모든 사람을 풀어 서로 치게 하였음이라 (《스가랴》 8:9-10)
이해가 되십니까? 하나님이 저주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고 절대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저주하기도 하시고, 축복하기도 하십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제는 내가 이 남은 백성을 대하기를 옛날과 같이 아니할 것인즉 곧 평강의 씨앗을 얻을 것이라 포도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땅이 산물을 내며 하늘은 이슬을 내리리니 내가 이 남은 백성으로 이 모든 것을 누리게 하리라 유다 족속아,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이방인 가운데에서 저주가 되었었으나 이제는 내가 너희를 구원하여 너희가 복이 되게 하리니 두려워하지 말지니라 손을 견고히 할지어다 (《스가랴》 8:11-13)
“하나님이 다스리신다”라는 이 말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며칠 전 한 자매님을 만났습니다. 이 자매님은 집에서 우리와 함께 모임에 참석하려고 하면 남편이 버럭 화를 내며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퍼부었습니다. 그러니 두려워서 모임에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남편이 다스립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다스리십니까? 저더러 그렇게 억압받는 삶을 살라고 한다면 저는 차라리 살지 않겠습니다.
얼마 전에 한 형제가 있었는데, 어찌나 힘들고 비참했는지 모릅니다. 나중에 아내를 데리고 구청에 이혼하러 들어갔다가, 이혼하기 싫어져서 다시 돌아왔습니다. 입으로는 이혼하자고 소리쳤으면서, 진짜 이혼하려니까 왜 또 안 하겠다는 겁니까? 알고 보니 그저 위협하려고 소리친 것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우리 속에서 정말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 안에서 신경 쓰는 대상이 정녕 하나님입니까, 아니면 우리의 이익입니까? 왜 두려워합니까? 이익이 사람 손에 달려 있으니 당연히 두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언제 하나님이 다스리십니까? 하나님은 언제나 다스리십니다! 여러분이 강하고 담대하여 두려워하지 않고 손을 견고히 하기만 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다스리십니다. 이 믿음이 제 뼛속에 새겨져 있었기에 우리가 오늘날까지 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전을 건축해야 합니다. 왜일까요? 여호와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는 것이야말로 축복과 저주의 분수령이기 때문입니다. 가로막힘이 없겠습니까? 방해하는 사람이 없겠습니까? 위협하는 사람이 없겠습니까? 있습니다. 그곳 현지 사람들을 통해 마귀가 찾아와 난동을 부리고 위협합니다. “너 한 번만 더 이러면 조정에 상소문을 올려 고발해서 뼈도 못 추리게 하겠다.” 그러면 어떡합니까? 두려워집니다. 왜일까요? ‘황제가 상소문을 받고 단번에 나를 파면하면 목이 달아날 텐데, 역모죄에 걸릴 텐데. 여호와 하나님의 전을 짓는 일이 보통 일인가?’ 하지만 하나님께서 다스리실 수 없겠습니까? 다스리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려는 우리의 마음을 막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저주와 축복의 분수령이기 때문입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전, 곧 그분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하기로 선택하면 반드시 축복을 받으며,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 가운데 거하십니다. 물론 성전을 짓는 것도 헛된 짓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과 공의로 하는 것입니다. 공의가 무엇입니까? 공의는 곧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저주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추수한 곡식을 하나님께서 불어 날려 버리시면 끝납니다. 하나님은 다른 것을 하실 필요도 없이 곡식 창고에 쥐 몇 마리만 보내시면 끝납니다. 그러면 헛수고하는 것입니다. 축복 또한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진실과 공의를 따라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십시오.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자면, 오늘 우리가 하는 일은 사람들을 가치 있는 사람으로 빚어내는 일입니다. 생계를 꾸리지 못하던 사람도 우리 가운데서 훈련받아 생계를 꾸릴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방해가 있습니다.
문제는 이 모든 것이 시험 아니겠습니까? 방해가 있고 위협이 있다고 해서 우리가 이기지 않아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이 다스리심을 믿는다면 여러분은 반드시 승리할 수 있습니다. 물론 깨달음이 열려야지, 남들과 싸우라는 말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 누구에게도 밉보이지 않으려 하면서 유독 하나님께는 겁 없이 죄를 짓습니다. 제정신이 아니지 않습니까? 온갖 일은 하나도 빠뜨리지 않으면서 오직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는 일만 빠뜨립니다. 참으로 탄식이 나옵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만군의 여호와의 집을 건축하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사실 그 성전 건물 자체를 크게 신경 쓰시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마음을 보십니다. 여러분이 성전을 짓는 사람이라면 성전을 짓기 시작한 그날부터 축복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늘도 이슬을 내릴 것이며, 하나님께서 이 남은 백성으로 이 모든 복을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과거 이방 민족들 가운데서 저줏거리가 되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것입니다. 어디서부터 시작됩니까? 만군의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는 데서부터 시작되며, 이것이 바로 분수령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복을 받지 못하고 있다면, 온종일 무엇에 바쁜지, 온종일 여러분의 핵심 이익이 무엇인지 돌아보십시오. 여러분이 부유해졌을 때, 하나님께서 축복하셔서 부유해졌을 때가 더 위험합니다. 부유해졌을 때 여호와 하나님을 기쁨과 즐거운 마음으로 섬기느냐가 미래를 결정합니다. 축복을 받았다면 영원토록 축복을 받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가 바로 그러했습니다. 복을 받고 구원을 받아 부유해지자마자 또다시 맘몬을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왜입니까? 돈 버는 게 얼마나 중요하고, 인맥 쌓는 게 얼마나 중요하며, 무엇을 하든 다 중요한데, 오직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는 것만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결국 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저주도 주관하시고 축복도 주관하십니다.
제가 여러분을 겁주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진리를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조심하지 않을 수 없으며, 반드시 조심해야 합니다. 제게 묻는다면, 저는 이 문제를 아주 분명하게 구분하고 있습니다. 저는 저주 가운데 살고 싶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작은 저주 하나만 내리셔도 뼈저린 고통을 겪게 되는데, 제게는 그럴 담력이 없습니다. 저는 이것도 저것도 추구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마음에 들어가는 것만을 추구합니다.
그러므로 화인 사명 신학은 반드시 하나님의 뜻 가운데 행하는 신학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구약부터 신약까지 성경 전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 관한 것입니다. 만물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교회의 만물 위의 머리로 삼으시고 만물을 그 발아래 두셨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이런 믿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자세히 관찰해 보고, 많이 살펴보고 이해하며 깨달음이 열리고 나면 ‘아, 원래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거구나!’ 하고 알게 됩니다. 절대 착각하지 마십시오. 잘못 판단하면 완전히 망합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데는 반드시 방해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방해를 돌파해 나갈 때마다 여러분은 승리의 기쁨을 얻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 조상들이 나를 격노하게 하였을 때에 내가 뜻을 정하고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기로 하여 뉘우치지 아니하였으나 이제 내가 다시 예루살렘과 유다 족속에게 은혜를 베풀기로 뜻을 정하였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니라 (《스가랴》 8:14-15)
너희가 행할 일은 이러하니라 너희는 이웃과 더불어 진리를 말하며 너희 성문에서 진실하고 화평한 재판을 베풀고 마음에 서로 해하기를 도모하지 말며 거짓 맹세를 좋아하지 말라 이 모든 일은 내가 미워하는 것임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가랴》 8:16-17)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참으로 치명적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것은 바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웃을 해하는 것과 거짓 맹세를 일삼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이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권면합니다. 남과 이야기할 때 절대로 “나 하나님 믿는 사람이니까 날 믿어야 해”, “나 그리스도인이니까 날 믿어줘”, “내가 네 형제인데 날 믿어야지” 같은 소리는 하지 마십시오. 형제자매 여러분, 절대로 믿지 마십시오. 그것은 거짓 맹세를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왜 그런 말을 하겠습니까? 속이려는 것입니다. “내 보험 하나 들어줘, 괜찮아, 안심해, 나 그리스도인이니까 안 속여”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교회 안에서는 반드시 진실과 공의를 가지고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다른 것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의 핵심 이익이 하나님이 아니라 돈이거나 사업이라면 큰일입니다. 어떤 사람의 핵심 이익이 남편이거나 아내라면, 아내가 눈을 한번 흘기기만 해도 끝나버립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거짓된 것을 가장 미워하십니다. 교회를 세우려 하는데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는다면 누가 함께하겠습니까? 마귀가 함께합니다. 마귀가 함께하는 교회를 세우면서도 스스로는 알지 못합니다. 사실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일은 사울 왕처럼 죽을 때까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난 분명 하나님의 말씀을 지켰는데”라고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이 너무나 많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왜 이런 일이 내게 닥쳤을까? 왜 하나님은 내 기도를 듣지 않으실까? 하나님, 왜 그러십니까?” 하면서 자신이 어디서 잘못되었는지를 모릅니다. 왜일까요? 바로 이 핵심 이익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거듭 말씀드립니다.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은 가짜를 행하는 것입니다. 스스로는 하나님을 잘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핵심 이익은 하나님이 아닌 것입니다. 예를 들어 사람들과 어울려 인맥을 쌓고 관계를 맺습니다. 어떤 관계가 하나님과의 관계보다 더 좋고 더 확실하겠습니까?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분별하지 못합니다. ‘믿음의 사람들과 어울리면 얼마나 좋아?’ 하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그저 수치를 가리는 가림막에 불과하고, 방패막이에 불과하며, 핑곗거리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치명적인 논리 체계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넷째 달의 금식과 다섯째 달의 금식과 일곱째 달의 금식과 열째 달의 금식이 변하여 유다 족속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들이 되리니 오직 너희는 진리와 화평을 사랑할지니라 (《스가랴》 8:18-19)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시간을 거룩하게 구별하기를 간절히 바라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이고, 넷째 달, 다섯째 달에도 금식이고 일곱째 달, 열째 달에도 금식이네. 금식이 왜 이렇게 많아?”, “이것 때문에 내 장사에 지장 생기잖아. 이 시간에 계약을 몇 건이나 더 따낼 수 있는데!”, “이 시간에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는데!”라고 합니다. 여러분,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데 지금은 “와, 이거 정말 좋구나!” 하고 유다 족속의 기쁨과 즐거움의 날, 희락의 절기가 되었습니다. 돈 버는 데 지장이 생겼습니까? 생겼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임을 압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실과 화평을 사랑해야 합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삶의 이치를 꿰뚫어 보면,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가장 중요함을 알게 됩니다. 많은 사람이 돈은 벌었지만 그와 함께 수많은 근심과 고통도 벌어들였습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해서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알아야 하고, 어떻게 해서든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하며, 어떻게 해서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심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서면 수많은 관계가 다 해결됩니다. 한번 시도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기분을 좌우하는 것은 여러분의 자녀이고, 여러분에게 영향을 주는 것은 여러분의 가족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사람의 일생은 재앙 하나로 마침표가 찍힐 수 있습니다. 작은 저주 몇 개만 겹쳐도 뼈저린 고통을 겪게 됩니다. 사람이 하나님께서 무엇을 기뻐하시는지 모른다는 것은 참으로 거대한 비극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뻐하고 즐거워하기를 바라십니다. 돈은 여러분이 번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어쨌든 제게 “당신은 무엇으로 삽니까?”라고 묻는다면, 저는 “하나님께서 나를 먹여 살리시는 은혜로 삽니다”라고 답하겠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나를 먹여 살리십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분은 ‘아, 하나님께서 이렇게 잘 먹여 살리시는구나!’ 하고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내 사업이 참 잘돼”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여러분이 벌어들인 것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사람이 이 논리를 명확히 이해하면 진실과 화평을 사랑하게 됩니다.
절대로 하나님께 “하나님, 절 이해해 주세요. 저들이 날 해치려 해서 주님의 전을 지을 힘이 정말 없어요”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절대로 하나님께 이런 말을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다스리심을 알지 못합니까? 여러분을 해치려는 자들을 무엇 때문에 두려워합니까?
이곳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기 시작하고,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이 바로 그분의 전, 그분의 교회임을 알며, 만군의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는 것이 축복과 저주의 분수령임을 알게 되었다면, 우리는 영과 진리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제 마음속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먹이시고 입히신다는 확신이 분명합니다. 동역자 여러분, 잘 들으십시오. 오늘날 우리 교회는 결코 가난하지 않습니다. 왜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먹이시며,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다 형통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먹이시니 우리가 이끄는 형제자매들도 무엇을 하든 다 형통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형통하지 못하다면 자기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잘 살펴보십시오.
우리가 교회를 세우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교회를 세워야 하고, 하나님의 임재가 있으며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한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임재가 있고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시는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왜입니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세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진실과 공의를 의지하여 나아갈 때 하나님의 임재가 있고,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자면 하나님의 축복이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듯 임하게 됩니다!
나중에 보니 우리 가운데 많은 형제자매에게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복이 정말이지 쌓을 곳이 없도록 넘쳐났습니다. 왜일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여러분과 제가 동일한 뜻을 품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워가며, 이곳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고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스스로 ‘난 아직 한참 부족해, 난 여전히 엉망이야’라고 바라보지 마십시오.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작은 간증 하나를 나누겠습니다. 작년 이맘때 우리는 정말 머리가 지끈지끈했습니다. 왜였을까요? 한 자매님 때문이었습니다. 이 자매님이 자라온 삶은 정말 막장 드라마 같았습니다. 서른대여섯 살에 실직을 했는데, 기술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더니 무얼 하겠다고 했냐 하면 대건강(헬스케어) 사업을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건강 사업이라는 게 뭔지 아십니까? 건강해지는 건 둘째치고 그저 거창하게 떠벌리는 사기성에 가까운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적인 기술은 하나도 없고 그저 말로 현혹하는 기술뿐이었습니다.
제가 듣고 보니 이것은 건강 사업이 아니라 남의 돈을 가로채는 짓이었습니다. 그런 일에 축복이 임하겠습니까? 제가 말했습니다. “자매님, 그런 거 하지 마시고 제 말 한마디만 들으세요. 기술을 배워서 생계를 꾸릴 수 있는 능력을 키우세요.” 바로 작년 이맘때였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올해 도약에 도약을 거듭하여 하나님께서 아주 좋은 기회를 열어주셨습니다. 수석 설계사가 되었고, 밑에 여러 직원을 둔 관리직이 되었습니다.
작년 이맘때만 해도 그녀는 정말 돈이 없었습니다. 밥조차 굶을 지경이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우리가 지낼 곳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올해 지점장이 되었습니다. 불과 1년 만에 실직 상태에서 연봉 수천만 원을 벌게 된 것입니다. 1년에 그 정도 벌면 정말 좋지 않습니까? 얼마 전 제가 “차 한 대 사세요. 타던 중고차 보조금 받아서 새 차 사면 아주 저렴해요”라고 했습니다. 이곳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와서 암이 치유되었습니다. 우리 가운데 오면 어떤 병이든 관절이 비틀려 굳어 있던 것도 풀려납니다. 허리 통증이 낫고, 피부병이 낫습니다. 우리 가운데 오면 참으로 엄청나게 좋아집니다! 그러니 형제자매 여러분, 어떤 교회에 갔는데 마귀가 다스리고 있다면—마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악령을 보내신 것입니다. 그곳은 위부터 아래까지 온통 가식과 거짓뿐이기 때문입니다. “오, 주 예수님이 당신을 사랑하시고 저도 사랑합니다.” 제발 그만두십시오. 그런 이모티콘이 있다면 당장 보내고 싶습니다. ‘제발 그만 좀 하세요!’
형제자매 여러분, 이곳에서 우리의 생각과 뜻을 하나님의 마음에 맞추어 조율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면 사람들이 보고 다 찾아올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하나의 종교를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종교에 끌어들여 교인으로 만들고, 입교시킨 뒤에 당신을 따라 계속 가식적인 짓이나 하게 만든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온종일 “아이고, 오늘 복음을 몇 명에게 전했다. 오늘 몇 명을 전도했다. 오늘 몇 명에게 영접 기도를 시켰다” 하고 세고 있는 사람들에게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제발 그만 좀 하세요!”
어떤 자매의 아버지가 치매 증상이 시작되어 점점 심해졌습니다. 제가 “치매 배후의 악령을 어떻게 치는지 잘 보십시오”라고 했더니, 그 자매가 제게 “우리 아버지는 문제없어요. 이미 영접 기도하고 주님을 믿으셨어요”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에! 예전 목사가 그녀의 머릿속에 심어놓은 독이 어찌나 지독한지 깊이 뿌리박혀 있었습니다. 기가 턱 막혔습니다. 결국 집에 돌아가 아버지를 돌보는데 치매가 사람을 얼마나 괴롭히고 난리를 피우는지 모릅니다. 제가 “결국 제 말을 들어야 하지 않겠어요?”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영접 기도했다고 해서 어쨌다는 겁니까? 영접 기도한 치매 환자는 괜찮다는 말입니까? 영접 기도하고도 치매에 걸려 있는 모습이 참으로 안타깝지 않습니까?
나중에 그녀는 제가 가르쳐 준 대로 악령을 쫓아냈습니다. 배후에 마귀가 있는 것입니다. “이 녀석, 내가 널 가만둘 줄 아느냐!” 그것이 정말 아버지 자신의 모습이겠습니까? 그렇게 대적하여 쫓아내고 나니 치매 증상이 호전되었습니다.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어서 자녀들이 없으면 또 발작을 일으켰지만, 자녀들이 있으면 제압할 수 있었습니다. 배후에 마귀가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무엇을 말씀드립니까? 이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이곳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습니다!
열방의 사람들이 여호와의 은혜를 구하러 이곳으로 올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다시 여러 백성과 많은 성읍의 주민이 올 것이라 이 성읍 주민이 저 성읍에 가서 이르기를 우리가 속히 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자 하면 나도 가겠노라 하겠으며 많은 백성과 강대한 나라들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그 날에는 말이 다른 이방 백성 열 명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잡을 것이라 곧 잡고 말하기를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심을 들었나니 우리가 너희와 함께 가려 하노라 하리라 하시니라 (《스가랴》 8:20-23)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교회를 세울 때는 반드시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이 은혜를 보고 다 이 은혜를 받으러 오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 땅에서 모든 민족과 만민의 축복이 될 수 있습니까? 이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흘려보내는 것은 더없이 좋은 일입니다.
어떤 자매가 어머니와 약간의 갈등이 있어서 어머니가 하는 행동을 못마땅해하고 못 견뎌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당신 어머니가 우리 가운데서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아느냐.” 예전에 그 어머니를 뵌 적이 있는데, 허리 디스크에 아주 심각한 문제가 있었으나 우리 가운데서 치유받고 나았습니다. 그분이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안 하는지는 일단 차치하고라도, 그분은 참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계십니다. 왜일까요? 이곳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이 “나도 갈래” 하며 삼삼오오 짝을 짓고 여덟 명, 열 명씩 무리 지어 함께 올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앞으로 다가올 날들에 여러분은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지난 수년간도 그러했습니다.
앞으로 누군가가 어느 교회에서 인터넷을 통해 우리가 전하는 설교를 듣고, 하나님의 임재와 여호와의 은혜에 대한 말씀을 듣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찾아와 들어보고, 와서 복을 받기 시작하며 여호와의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아, 정말 좋구나!’ 그러면 한 사람이 두 사람에게, 두 사람이 세 사람에게 전하여 다들 와서 듣게 될 것입니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몰려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흘려보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은혜이니 ‘은혜 복음’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임재의 복음’이며,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하는 복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므로 우리 가운데 거하시고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교회라면 이곳에서 반드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보게 될 것입니다.
만약 어떤 곳에 하나님의 임재가 없고 마귀가 함께한다면 끊임없는 재앙을 보게 될 것입니다. 교회에 안 갔으면 차라리 나았을 텐데 교회에 가서 암에 걸리고, 교회에 안 갔으면 괜찮았을 텐데 교회에 가서 다리가 부러지며, 교회에 안 갔으면 멀쩡했을 텐데 교회에 가서 온갖 사고를 당합니다. 이것이 너무나 명백한 사실 아니겠습니까?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 다시 조율합시다. 물론 우리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여러분을 징계하십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서 가식적으로 행동한다면 우리 가운데 있다고 해서 하나님이 징계하지 않으실 리 없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축복과 저주를 주관하심을 알고,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을 알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알아서 교회를 세울 때 반드시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저는 하나님께 특별히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이런 뜻을 주신 것인지, 아니면 제게 이런 뜻이 있었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고자 하는 이러한 중심과 뜻을 기뻐하신다고 믿습니다. 모든 헛되고 가식적인 것들은 물러갈지어다. 아멘!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