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다니엘서》 7장은 조금 작은 도전이 됩니다. 왜 그럴까요? 《다니엘서》 7장에서 말하는 내용이 모두 신화 이야기처럼 들리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모두 한 번이나 두 번은 읽어 보셨으리라 믿습니다. 하지만 한 번 읽고 바로 이해하려고 한다면, 그럴 수 있겠습니까? 책을 잘 읽지 못하는 것은 읽은 횟수가 충분하지 않아서 핵심을 잡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서》 앞부분의 장들은 읽기 쉽지만, 7장부터는 조금 어려워집니다. 사실 처음 여러분과 함께 《다니엘서》를 성경공부할 때부터 저는 미리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이 《다니엘서》 7장을 어떻게 여러분과 함께 공부할까?’ 하고 말입니다. 하지만 속담에도 “차가 산 앞에 이르면 길이 있고, 배가 다리에 이르면 자연히 곧아진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이때가 되어서 저는 여러분에게 《성경》을 어떻게 공부하는지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형제자매들에게 물었습니다. “여러분은 7장을 읽고 이 장의 주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주제를 붙잡으면 일이 쉬워집니다. 만일 여러분이 붙잡은 주제가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진 짐승’이라면 곤란합니다.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진 짐승이 무엇인지 누가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사실 이 장을 반복해서 읽다 보면 반드시 한 가지 주제를 붙잡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이 반드시 영원한 나라를 얻는다”는 것입니다. 또는 “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나라의 권세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에게 주어질 것이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공부할 때는 반드시 먼저 주제를 붙잡아야 합니다. 어떻게 주제를 붙잡을 수 있을까요? 먼저 여러 번 읽어야 합니다. 책을 백 번 읽으면 그 뜻이 저절로 드러난다는 말처럼, 나머지는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다니엘서》를 읽을 때 《다니엘서》의 주제는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신다는 것입니다. 7장에 이르면 마지막 때에 대해 말합니다.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어떤 짐승과 또 다른 짐승을 아무리 많이 거친다 해도, 이 짐승들이 하나님의 계획이 아니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진 짐승이나 큰 붉은 용도 모두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마지막에 무엇을 하려는 것입니까?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이 나라를 얻어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이 나라는 영원합니다. 우리가 이 일의 결말을 알고 있다면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예를 들어 대학 입시를 치르기 전에 이미 자신이 베이징대학교에 합격할 것을 알고 있다면,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많은 사람은 이것이 너무 허황되게 들린다고 말하지만, 일의 결말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이 세상의 오염을 받아 “영원한 것은 중요하지 않고, 한때 소유했던 것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이 이것을 진리라고 여기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마땅히 “한때 소유했던 것은 중요하지 않고, 영원한 것이 중요하다”고 해야 합니다. 우리는 결국 우리가 나라를 얻어 누리게 되며, 그 나라는 영원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나라를 영원히 소유하게 되고, 하늘과 땅의 권세와 능력과 존귀와 영광이 모두 우리에게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나라의 권세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민에게 붙인 바 되리니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라 모든 권세 있는 자가 다 그를 섬기며 복종하리라 하였더라. (《다니엘서》 7:27)
이 일을 말하니 참 흥미롭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본문을 살펴봅시다.
바벨론 왕 벨사살 원년에 다니엘이 그 침상에서 꿈을 꾸며 머리 속으로 이상을 받고 그 꿈을 기록하며 그 일의 대략을 진술하니라 다니엘이 진술하여 가로되 내가 밤에 이상을 보았는데 하늘의 네 바람이 큰 바다로 몰려 불더니 큰 짐승 넷이 바다에서 나왔는데 그 모양이 각각 다르더라 첫째는 사자와 같고 독수리의 날개가 있더니 내가 볼 사이에 그 날개가 뽑혔고 또 땅에서 들려서 사람처럼 두 발로 서게 함을 입었으며 또 사람의 마음을 받았으며 이것은 첫째 짐승이요 다른 짐승 곧 둘째는 곰과 같은데 몸 한편을 들고 그 입의 잇사이에는 세 갈빗대가 물렸는데 그에게 말하는 자가 있어 이르기를 일어나서 많은 고기를 먹으라 하였으며 그 후에 내가 또 보니 다른 짐승 곧 표범과 같은 것이 있는데 그 등에는 새의 네 날개가 있고 그 짐승에게 머리 넷이 있으며 또 권세를 받았으며
그 후에 내가 밤 이상 가운데 그 다음 넷째 짐승을 보았는데 이는 무섭고 놀라우며 또 극히 강하며 또 큰 철 이가 있어서 먹고 부숴뜨리고 그 나머지를 발로 밟았으며 이 짐승은 전의 모든 짐승과 다르고 또 열 뿔이 있으므로 내가 그 뿔을 유심히 보는 중에 다른 작은 뿔이 그 사이에서 나더니 먼저 있던 뿔 중에 셋이 그 앞에서 뿌리까지 뽑혔으며 이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이 있고 또 입이 있어 큰 말을 하였느니라 (《다니엘서》 7:1-8)
내가 보니 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좌정하셨는데 그 옷은 희기가 눈 같고 그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고 그 보좌는 불꽃이요 그 바퀴는 붙는 불이며 불이 강처럼 흘러 그 앞에서 나오며 그에게 수종하는 자는 천천이요 그 앞에 시위한 자는 만만이며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 그 때에 내가 보니 그 작은 뿔이 말하는 큰 목소리로 인하여 짐승이 죽임을 당하고 그 시체가 상한 바 되어 타오르는 불에 던진 바 되었으며 그 남은 짐승들은 그 권세를 빼앗겼으나 그 생명은 보존되어 정한 시기가 이르기를 기다리게 되었더라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로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 옮기지 아니할 것이요 그 나라는 폐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나 다니엘이 중심에 근심하며 내 머리 속의 이상이 나로 번민케 한지라 (《다니엘서》 7:9-15)
일반적으로 누군가 꿈을 꾸었다고 합시다. 꿈이라는 것은 아무렇게나 꾸는 것이니,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은 이 꿈을 꾼 후에 그 영이 속에서 근심했고, 머리 속의 이상으로 인해 번민했습니다. 우리는 다니엘이 왜 이 꿈을 그렇게 중요하게 여겼는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에 내가 그 곁에 모신 자 중 하나에게 나아가서 이 모든 일의 진상을 물으매 그가 내게 이 모든 일의 해석을 알려 주며 그 뜻을 알게 하였느니라 (《다니엘서》 7:16)
그 말이 이에 그치니라 나 다니엘은 중심에 번민하였으며 내 얼굴빛이 변하였으나 내가 이 일을 마음에 간직하였느니라 (《다니엘서》 7:28)
우리는 한 가지씩 분명하게 말해야 합니다. 제가 이어서 설명할 첫 번째 내용은 ‘왜 다니엘의 영이 근심했고 머리 속의 이상으로 인해 번민했는가?’입니다. 두 번째는 ‘네 바람이 큰 바다로 불어온 것’에 대한 설명입니다. 세 번째는 ‘네 큰 짐승이 바다에서 올라온 것’입니다. 네 번째는 네 짐승, 특히 네 번째 짐승에 대한 것입니다. 다섯 번째로는 여러분과 함께 《요한계시록》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요한계시록》도 이 부분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요한도 이 이상을 보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진 짐승과 큰 붉은 용도 보았습니다. 이 부분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사실상 세상 끝날의 모습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왜 다니엘의 영이 근심하고 번민했는가?
다니엘은 왜 번민했을까요? 많은 사람은 꿈을 꾸면 해석할 수 있으면 해석하고, 해석할 수 없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다니엘은 바벨론 제국의 총리가 된 매우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이 꿈을 꾸고 왜 번민했을까요? 우선 그는 이 꿈이 분명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며 계시를 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 의미가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는 일을 마주하면 두 가지 태도를 취합니다. 하나는 ‘나는 이해하지 못하니 그만두자’는 태도이고, 다른 하나는 엄격하고 진지하게 대하는 태도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진지한 태도를 기르기를 권합니다. ‘이 일을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면 반드시 분명히 이해해야 한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가 오늘 하고 있는 일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깨달음으로 이해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깨달음으로 모든 것을 투철하게 이해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예를 들어 제가 《창세기》를 읽을 때 많은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창세기》 1장은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저는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두려워하며 답을 구하고자 했습니다. 많은 사람은 1장이 하나님의 창조를 말한다고 했지만, 저는 그 대답에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기도하기 시작했고, 올바른 답을 구했습니다. 그 후 하나님께서 매우 분명한 계시를 주셨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대로 우리도 일해야 합니다. 이 답을 얻고 나서 저는 매우 기뻤습니다. 형제자매들과 함께 《창세기》 1장을 성경공부할 때에도 마음이 만족할 만큼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떨고 두려워한다’는 관념을 갖기 시작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떤다는 것은 매우 올바른 태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원자폭탄의 에너지보다도 크신 분입니다. 오늘 우리가 원자폭탄을 만든다고 할 때 신중하지 않다면, 그것은 죽음을 향해 장난치는 것과 같습니다! 에너지가 매우 큰 것은 무엇이든 매우 엄격하고 신중하게 다루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수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복음은 본래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진지하고 엄격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지한 태도를 길러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판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을꼬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이사야서》 66:1)
하나님께서는 왜 안식할 곳을 찾으실까요?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무관심한 것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다니엘도 아니고 사도 바울도 아니니’라고 생각하며 제멋대로 행동하기 시작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이 배운 것이 적어서 아무리 해도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배운 지식의 많고 적음과 관계된 것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떨고 두려워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무릇 이 모든 것을 나의 손으로 지었으므로 그 모든 것이 이루어졌느니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권고하리라 (《이사야서》 66:2)
이해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안식을 얻지 못하시는 것은 이 세상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떨고 두려워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지으셨지만, 하나님께서 돌보시는 사람은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사람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제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떨고 두려워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보세요, 또 자랑하고 있잖아요!” 이것은 자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떤다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태도입니다. 사람이 겸손하고 통회하는 마음이 없다면, 《창세기》 1장이 무엇을 말하는지 물었을 때 “하나님의 창조를 말합니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터무니없는 말이며, 실제로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주님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 “천지 만물은 모두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고 사람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습니다”라고 말한다고 합시다. 한참 설명했는데도 어떻게 논증해야 합니까? 설명이 된 것 같기도 하고, 안 된 것 같기도 합니다. 그 사람이 “왜 그렇습니까?”라고 물으면 “성경에 그렇게 쓰여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다시 말합니다. “나는 《코란》을 믿고, 《불경》도 믿고, 《도덕경》도 믿습니다.” 이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주 재미있는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정부가 팔레스타인 땅은 자기들의 것이라고 말하면서, 자기들 손에 증거가 있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그 증거가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묻자, 그들은 “증거는 《성경》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아랍 사람들이 《코란》을 들고 “이것이 우리의 증거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중국 사람도 《산해경》을 들고 나왔습니다. 세상에! 펼쳐 보니 땅의 모든 일이 《산해경》 안에 다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이렇게 논증해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논증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떨고 두려워하는 사람은 진지하고 엄격한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자세히 구합니다. 자세히 구하지 않는다면 위선자와 같습니다.
소를 잡아 드림이 살인함과 다름이 없고 어린 양으로 제사드림이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으며 제사드림이 돼지의 피를 드림과 다름이 없고 분향함이 우상을 찬송함과 다름이 없이 하는 그들은 자기의 길을 택하며 그들의 마음은 가증한 것을 기뻐한즉 (《이사야서》 66:3)
이런 사람은 자기 길을 선택하게 내버려 두십시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저렇게 생각한다’, 자기 생각대로 하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성경》에서 매우 분명하게 계시하셨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며 떤다면 반드시 잘 구할 것입니다. 잘 구한 결과가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곳에서 오랫동안 여러분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런데 사람이 잘 구하지 않고 자기 길을 선택합니다.
나도 유혹을 그들에게 택하여 주며 그들의 무서워하는 것을 그들에게 임하게 하리니 이는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으며 내가 말하여도 그들이 듣지 아니하고 오히려 나의 목전에 악을 행하며 나의 기뻐하지 아니하는 것을 택하였음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을 인하여 떠는 자들아 그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르되 너희 형제가 너희를 미워하며 내 이름으로 인하여 너희를 쫓아내며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으나 그들이 수치를 당하리라 하셨느니라 (《이사야서》 66:4-5)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떨고 두려워하는 사람은 바로 여러분, 또는 우리입니다. 또 다른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형제들이지만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사람들을 미워합니다. 그 결과는 어떻습니까? 여러분을 미워하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을 내쫓은 사람들이 결국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이 말씀을 읽고 나면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사람들과 여호와의 말씀을 제멋대로 다루는 사람들이 단번에 구분됩니다.
여러분이 온라인으로 제 성경공부를 듣고 있고 목회자라면,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반드시 떨고 두려워해야 합니다! 떨지 않는다면 정말 큰일입니다. 마지막에 뭐라고 합니까? “수치를 당할 자는 그들이다.” 여러분이 수치를 당한다면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다니엘의 이런 태도는 매우 훌륭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속으로 번민하며 생각했습니다. ‘이 안에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말씀을 어떻게 기록해야 하는가?’ 이것은 매우 진지한 태도입니다. 그는 이런 일을 마음속에 간직했습니다. 우리 가운데 형제자매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 모두 이런 태도를 갖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네 바람과 큰 바다와 네 짐승
다니엘은 하늘의 네 바람이 갑자기 일어나는 꿈을 꾸었습니다. 이 바람은 영을 의미합니다. 네 바람에 대한 말씀은 사실 성경에 여러 번 나옵니다. 땅의 네 바람을 주관하는 것은 실제로 하나님의 사자들, 곧 영들입니다. 바람과 영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여러분은 이것을 이해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 중의학에서는 흔히 ‘도둑바람’에 대해 말합니다. 도둑바람이 갑자기 들어오면 사람의 입이 돌아가고 눈이 비뚤어집니다. 이 도둑바람은 바로 악령입니다. 바람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네 바람이 큰 바다로 불어오고 바람이 일어난 후 하나님의 영이 온 땅에서 운행하시는데, 그 결과는 재앙입니다.
《요한계시록》을 읽을 때에도 네 바람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는 먼저 불지 말라. 내가 내 종들의 이마에 인을 치기까지 기다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인을 친 후에는 하늘과 땅의 어떤 것도 하나님의 종들을 해칠 수 없습니다. 그들의 이마에 하나님의 인이 있기 때문입니다. 전에 제가 《몸에 예수 그리스도의 인을 지니고》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이 인은 매우 좋습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어떤 것도 여러분을 해칠 수 없습니다.
모든 종들의 이마에 인을 친 후 네 바람이 갑자기 일어나 큰 바다로 불어옵니다. 바람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나라 가운데서 다스리십니다. 그 결과 바람이 큰 바다로 불어오고, 바다에서 네 짐승이 올라옵니다. 이 네 짐승이 바다에서 올라오는 것이 좋은 일입니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나라 가운데서 다스리신다면, 땅의 짐승들이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지 않겠습니까? 물론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습니다. 바람이 큰 바다로 불어오고 짐승이 바다에서 올라옵니다. 네 짐승은 네 왕입니다. 그렇다면 왜 바다에서 올라오는 것일까요? 바다의 문제는 매우 중요합니다. 인류의 역사가 바다와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중화민족은 매우 대단한 민족입니다. 정화가 서양으로 항해하기 시작했을 때 이미 매우 큰 선단을 이루었고, 서양보다 훨씬 발전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화는 서양으로 정복하러 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군대를 이끌고 약탈하러 간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천조의 은혜를 가지고 곳곳에 돈을 뿌리러 갔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서양 열강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중화민족은 예로부터 바다에 대해 매우 분명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남중국해의 난사군도와 시사군도를 보십시오. 지금까지도 주권에 관한 많은 분쟁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해양 패권이라는 일이 바로 네 짐승이 바다에서 올라오는 것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인류는 언제부터 해양 패권을 의식하기 시작했을까요? 사실 중화민족은 일찍부터 알고 있었지만, 서양 열강은 백여 년 전에야 깨달았습니다. 이삼백 년, 삼사백 년 동안 해양 강국은 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을 거쳐 오늘날의 미국에 이르렀습니다. 이들이 해양 패권국입니다.
1890년에 마한이라는 미국인이 《해권론》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 책은 “바다를 장악하면 세계 해상 무역을 지배하고, 세계 무역을 지배하면 세계의 부를 지배하며, 세계의 부를 지배하면 전 세계를 지배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각국이 해군을 힘써 발전시키는 이유입니다. 최초의 해양 패권국은 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였고, 그 후 영국이 되었습니다. 대영제국, 곧 대영제국의 해군은 세계를 제패했습니다.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 곳곳에 식민지를 세웠고,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와 인도도 모두 영국의 식민지였습니다.
영국처럼 작은 나라가 어떻게 이곳들을 지배할 수 있었을까요? 사실 영국도 모든 것을 통제할 수는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홍콩은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습니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국이 해양 패권국이 되었고, 오늘날 해상 군사 강국은 미국입니다. 사실 《성경》에서 묘사한 네 큰 짐승이 바다에서 올라오는 것은 네 개의 서로 다른 왕국이 해양 패권을 차지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나눈다면 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가 첫 번째 물결이고, 영국이 두 번째 물결이며, 미국이 세 번째 물결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오늘날까지 《성경》의 계시를 따라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해양 패권국을 대략 세 번의 물결로 나눌 수 있지만, 네 번이나 다섯 번으로 나누어도 괜찮습니다. 어쩌면 미국이 네 번째 짐승일 수도 있지만, 우리도 확실히 말할 수는 없습니다. 천천히 지켜봅시다. 역대 인류 역사를 보면 이천 년 전에는 바다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고, 천 년 전에도 바다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최근 수백 년에 이르러서는 모두 바다의 통제권을 놓고 다투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난사군도 같은 곳을 아무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지만, 지금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섬 위에 가라앉지 않는 항공모함을 세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네 짐승이 바다에서 올라옵니다. 인류의 역사는 한 방향을 향해 발전하고 있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이 나라를 얻어 영원히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이 나라를 얻어 영원히 누리게 된다고 생각하면, 저는 이것이 얼마나 소망이 되는지 모릅니다. 정말 소망이 있고, 너무나 큰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는 몸에 예수 그리스도의 인을 지니고, 장차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를 얻고 영원무궁토록 누려야 합니다.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가 되기 위해 힘쓰라
이제 네 짐승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처음 세 짐승은 말하지 않고, 네 번째 짐승을 보겠습니다. 네 번째 짐승은 처음 세 짐승과 상황이 크게 달랐습니다. 철 이와 놋 발톱으로 먹고 부수며, 남은 것은 발로 밟았습니다. 대단합니다. 이 네 번째 짐승은 정말 대단합니다. 철 이와 놋 발톱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이는 네 번째 왕이 다스리는 시대가 철의 시대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후에 내가 밤 이상 가운데 그 다음 넷째 짐승을 보았는데 이는 무섭고 놀라우며 또 극히 강하며 또 큰 철 이가 있어서 먹고 부숴뜨리고 그 나머지를 발로 밟았으며 이 짐승은 전의 모든 짐승과 다르고 또 열 뿔이 있으므로 《다니엘서》 7:7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다를 제패하려면 배를 만들어야 하고, 배를 만들려면 철이 필요합니다. 철강이 있어야 합니다. 놋은 왜 사용합니까? 전선에는 놋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놋이 없으면 전기가 흐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배에는 몇 가지 중요한 기본 체계가 있는데, 놋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 일은 참 흥미롭습니다.
제가 말하는 것이 반드시 맞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이 네 번째 왕은 대단합니다. 고도로 현대화되어 있습니다. 철 이와 놋 발톱을 가진 이 네 번째 짐승은 큰 말을 하고, 그 모습이 사납고 다른 동류보다 강합니다. 그리고 이 뿔은 성도들과 싸워 그들을 이겼습니다.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 때에 내가 넷째 짐승의 진상을 알고자 하였으니 곧 그것이 앞의 모든 짐승과 심히 다르고 심히 무서운 모양이며 그 이는 철이요 그 발톱은 놋이며 먹고 부숴뜨리고 그 나머지는 발로 밟았으며 그 머리에는 열 뿔이 있고 또 그 외에 다른 뿔이 나서 그 앞에서 세 뿔이 뿌리까지 뽑혔으며 그 뿔에는 눈도 있고 큰 말을 하는 입도 있고 그 모양이 동류보다 강하여 보이는지라 내가 본즉 이 뿔이 성도들과 더불어 싸워 이겼더니 《다니엘서》 7:19-21
그리스도인들이 이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진 짐승과 싸우다가 나중에 패배하는 상황입니다. 이 성경 본문을 보면, 이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진 짐승을 만나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닙니다. 그것을 만났는데 그 짐승이 강하다면 상황이 매우 좋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우리의 나라는 이 세상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세상의 나라는 세상의 신에게 속해 있습니다. 물론 최종적으로는 하나님께 속하지만, 우리는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로서 이 땅에서 박해를 받게 됩니다. 이것은 매우 정상적인 일입니다.
그렇다면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은 왜 이 땅에서 박해를 받습니까? 이 땅에서 박해를 받을 때 진정한 믿음을 시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믿음이 있다면 여러분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어서 억압을 당하자마자 짐승의 표를 받는다면 큰일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 일을 생각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다니엘이 이것을 보았고, 《요한계시록》에서 사도 요한이 다시 이것을 보았을 때 하나님의 성도들이 나라를 얻는 전체 과정이 매우 분명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일을 여러분과 나누기 위해 《요한계시록》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의 역사에 대한 묘사에서 첫 번째 단계는 일곱 교회이고, 이어서 일곱 인이 나옵니다. 그중 처음 네 인은 네 말이라고 불립니다. 오늘 우리가 말하는 늙은 말의 영은 바로 이 네 말입니다. 이 늙은 말의 영이 지나간 후 일곱째 인을 떼면 일곱 나팔을 불기 시작합니다. 일곱 나팔을 불면 일곱 대접이 나옵니다. 이런 과정입니다. 인류의 역사가 이 과정을 느린 속도로 지나간다면, 나팔을 불 때에 이르러서는 인류 역사의 속도가 매우 빠르게 가속될 것입니다.
일곱째 나팔이 울리기 시작하면 제3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것입니다. 미국이 이란의 한 소장을 폭격해 죽였고, 일련의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그 결과 인터넷에서 가장 많이 검색된 단어가 ‘제3차 세계대전’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제3차 세계대전이라는 화약고는 언제든 누군가에 의해 불붙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일곱 나팔이 울리기 시작합니다.
이 제3차 세계대전은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제3차 세계대전이 끝나면 이 세상에 바퀴벌레만 남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바퀴벌레의 생명력은 매우 강하니까요. 제3차 세계대전은 아무도 감히 일으키지 못하지만, 반드시 일어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제가 성경에 근거하여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나라 가운데서 다스리시며, 인류 역사의 발전 과정을 이미 우리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결국 우리는 나라를 얻어 누리게 될 것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가 되는 것, 문제는 여러분과 제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인지 여부입니다.
우리 교회의 요구 수준은 매우 높습니다. 교회 안에서 대충대충 해도 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의 나라는 침노하는 사람이 들어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노력하지 않고 어떻게 들어가겠습니까? 느긋하게 돌아다니면서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느긋하게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오직 한 곳뿐입니다. 인류 역사는 제3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전 세계가 하나의 나라가 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다니엘은 말했습니다. “이 넷째 짐승은 이 땅에 있을 넷째 나라로서 모든 나라와 달라서 온 천하를 삼키고 밟아 부서뜨릴 것이다.” 이 네 번째 짐승이 대표하는 나라가 전 세계를 통일하고 온 땅을 집어삼키게 됩니다. 그러므로 제3차 세계대전이 끝나면 유엔도 필요 없고, 오직 하나의 나라만 남게 됩니다. 그 나라는 적그리스도의 나라입니다. 바로 그 큰 붉은 용,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진 짐승입니다. 온 땅을 삼키고 밟아 부숴뜨립니다.
이것은 하나의 징조입니다. 이때가 되면 여러분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요한계시록》 11장까지 살게 된다면, 12장까지 살아남기를 바랍니다! 13장까지 살아남는다면 순교할 수밖에 없습니다. 짐승의 표를 받든지 순교하든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11장은 매우 중요합니다.
앞의 여섯 나팔이 울리면 제3차 세계대전이 끝납니다. 일곱째 나팔이 불릴 듯 말 듯한 이때 한 가지 일이 일어납니다. 전 세계가 하나의 나라가 되고, 그때 두 명의 전도자가 죽임을 당해 예루살렘이라는 큰 성의 길바닥에 누워 있게 됩니다. 아무도 그들의 시체를 거두지 않고, 그들은 그곳에 누운 채 전 세계 사람들에게 보입니다. 사흘 반이 지난 후 생기가 두 사람의 몸 안에 들어가고, 그들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납니다. 살아난 후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며, 전 세계 사람들이 그것을 지켜봅니다.
여러분이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된다면,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 때 교회가 들림 받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이고 승리하는 성도라면 들림 받을 것입니다. 승리하는 교회가 바로 그곳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어떤 일이 있어도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에서는 반드시 승리하는 교회 안에 있어야 합니다.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하나님 앞에 자기 보좌에 앉은 이십사 장로들이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시도다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임하여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무론대소하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하더라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 (《요한계시록》 11:15-19)
이것이 세상 끝날의 상황입니다. 두 전도자가 부활하여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는데도 여러분이 여전히 이 땅에 남아 있다면,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대략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적그리스도가 땅에서 다스리고,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진노를 쏟으실 것입니다.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하려 해도 몇 년 남지 않았습니다. 짐승의 표를 받으면 하나님의 불이 여러분을 태우고 진노가 여러분에게 임할 것입니다. 짐승의 표를 받지 않아도 살아남을 기회가 없습니다. 666 같은 것들이 우리와 관계없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이미 들림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옷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에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면류관을 썼더라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를 쓰며 부르짖더라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면류관이 있는데 그 꼬리가 하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 서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일천이백육십 일 동안 저희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요한계시록》 12:1-6)
여러분이 《요한계시록》 12장을 읽으면 한 여자가 나옵니다. 그 발 아래에는 달이 있고 머리 위에는 해가 있으며 열두 별이 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을 의미합니다. 왜 그럴까요? 요셉이 한 꿈을 꾸었는데,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자신에게 절하는 꿈이었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바로 이스라엘입니다. 그런데 이 여자가 한 아이를 낳습니다. 이 남자아이는 기독교, 곧 승리하는 교회를 의미합니다. 이 승리하는 교회는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들림 받습니다. 그러면 이 여자는 땅에서 이것저것 하게 됩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뜻은, 여러분 모두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저희의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가로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루었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요한계시록》 12:7-11)
하늘에서 전쟁이 일어났고,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과 싸웠습니다.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웠지만 이기지 못했고, 하늘에는 더 이상 그들이 있을 곳이 없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용이 교회에게 패하여 하늘에서 쫓겨난다는 뜻입니다. 교회가 이 용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어린양의 피와 자신들이 증언한 말씀 때문입니다.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는 어떻습니까? 이때 승리한 사람들은 이미 들림 받았습니다.
마귀가 땅으로 내려온 후에는 남은 자녀들과 싸웁니다.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하더라 (《요한계시록》 12:17)
그러나 들림 받지 못하고 남겨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용이 그 성도들과 싸우고 이기도록 내버려 두십니다. 다시 말해 이때에는 성도들에게 더 이상 승리한다는 개념이 없고, 오직 순교라는 개념만 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요한계시록》 13장까지 남게 되었다면 순교하십시오!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요한계시록》 13:7)
인류의 역사는 마지막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이 영원한 나라를 얻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잠시 받는 가벼운 환난은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을 이루게 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치르는 이 작은 대가는 결코 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과 세상에 속한 모든 것은 지나가지만, 오직 하나님의 나라만 영원히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 마귀들과 땅의 이런 일들이 없다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그저 느긋하게 다니는 것에 불과하며, 승리한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지으시고 각각 그때에 맞게 아름답게 하셨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진 짐승까지도 모두 하나님께서 다스리고 계십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사람의 나라 가운데서 다스리고 계신다는 사실을 절대로 잊지 마십시오!
결론
하나님께서 사람의 나라 가운데서 다스리시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승리하는 백성입니다! 승리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을 수 있고, 승리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약속을 상속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힘써 들어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무것도 분별하지 못한 채 세상을 사랑하고 육신을 따르며 선악을 분별하는 일을 좋아한다면 어떻게 승리할 수 있겠습니까?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도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가 되기 위해 조금 힘쓰는 것은 매우 가치 있는 일입니다! 하려면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십시오! 이 세상에 사는 날 동안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십시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있다면 장차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귀신이 여러분과 함께한다면 장차 어디로 가겠습니까? 그 결과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 가운데 있는 이 무리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가 되어 장차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를 얻기를 소망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