命定神学
推荐评论
命定神学 关闭
【성경공부】고린도후서 4장 - 우리가 긍휼하심을 입어 이 직분을 받았으니 낙심하지 아니하노라!

2024-07-03 31,162 哥林多后书 哥林多后书04章 哥林多后书四章 我们受了这职分 荣耀的职分 我们不丧胆 传耶稣基督为主

相关经文

哥林多后书04章-在瓦器里的宝贝
  • 1 我们既然蒙怜悯,受了这职分,就不丧胆,
  • 2 乃将那些暗昧可耻的事弃绝了;不行诡诈,不谬讲 神的道理,只将真理表明出来,好在 神面前把自己荐与各人的良心。
  • 3 如果我们的福音蒙蔽,就是蒙蔽在灭亡的人身上。
  • 4 此等不信之人被这世界的神弄瞎了心眼,不叫基督荣耀福音的光照着他们。基督本是 神的像。
  • 5 我们原不是传自己,乃是传基督耶稣为主,并且自己因耶稣作你们的仆人。
  • 6 那吩咐光从黑暗里照出来的 神,已经照在我们心里,叫我们得知 神荣耀的光显在耶稣基督的面上。
  • 7 我们有这宝贝放在瓦器里,要显明这莫大的能力是出于 神,不是出于我们。
  • 8 我们四面受敌,却不被困住;心里作难,却不至失望;
  • 9 遭逼迫,却不被丢弃;打倒了,却不至死亡。
  • 10 身上常带着耶稣的死,使耶稣的生也显明在我们身上。
  • 11 因为我们这活着的人是常为耶稣被交于死地,使耶稣的生在我们这必死的身上显明出来。
  • 12 这样看来,死是在我们身上发动,生却在你们身上发动。
  • 13 但我们既有信心,正如经上记着说:“我因信,所以如此说话。”我们也信,所以也说话。
  • 14 自己知道那叫主耶稣复活的,也必叫我们与耶稣一同复活,并且叫我们与你们一同站在他面前。
  • 15 凡事都是为你们,好叫恩惠因人多越发加增,感谢格外显多,以致荣耀归与 神。
  • 16 所以,我们不丧胆。外体虽然毁坏,内心却一天新似一天。
  • 17 我们这至暂至轻的苦楚,要为我们成就极重无比、永远的荣耀。
  • 18 原来我们不是顾念所见的,乃是顾念所不见的;因为所见的是暂时的,所不见的是永远的。

《答疑解惑》

서론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은 《고린도후서》 4장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저는 이 장의 말씀을 자주 인용합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성경공부를 하려고 하면 정말 어디가 핵심인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이번 장의 주제는 《우리가 긍휼하심을 입어 이 직분을 받았으니 낙심하지 아니하노라!》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우리가 낙심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 어떤 사람들은 바울이 감히 오지 못한다고 말했을 것이고, 그렇지 않았다면 바울이 굳이 그들에게 낙심하지 않는다고 말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사실 바울이 오기를 두려워한 것이 아닙니다. 앞 장에서 그는 서로 만났을 때 근심하고 부끄러워하기보다는, 만났을 때 같은 소망과 같은 꿈을 품고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는 능력을 갖기를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장에서는 《주의 영광으로 충만한 새 언약의 일꾼》에 대해 말씀드렸는데, 오늘 바울은 이어서 우리가 긍휼하심을 입어 이 직분을 받았으니 낙심하지 않는다고 선포합니다.

1. 우리는 자신을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전파함

우리가 능력이 별로 없으면서도 자신을 전파하려고 한다면 반드시 낙심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은 반드시 아셔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전파한다면 결코 낙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능력이 우리 몸에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자신을 전파하면서 능력조차 없다면 완전히 망하게 됩니다. 능력 중심의 사람은 나쁜 습관이 매우 많고, 그가 마주하는 어려움은 대개 자기 자신보다 훨씬 큽니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어려움을 이길 수 없으면서도 자기 이름을 널리 알리려 하니, 결국 평생을 전전긍긍하며 두려움 속에 살아가게 됩니다.

따라서 마음에 늘 두려움이 있는 사람의 이유는 간단합니다. 자신을 의지하고 자기 이름을 전파하기 때문이며, 당연히 신경질적이고 불안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시저 밀란의 도그 위스퍼러'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거기서 아주 흥미로운 진리가 드러납니다. 개가 집 안에서 주인이 되고 왕이 되어 모든 것을 무시하게 되면, 늘 신경이 곤두서고 곧 미친 개처럼 변해버립니다. 주인이 없기 때문입니다. 시저는 훈련할 때 종종 개를 굴복시키는데, 개가 일단 굴복하면 바로 얌전해집니다. 나중에 제가 발견한 것은 사람과 개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개는 주인이 생기면, 주인이 어떠하든 일단 주인을 인정하는 순간 담대해지고 신경질적으로 변하지 않습니다. 사람도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전파하기 시작하면 결코 신경질적이거나 불안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전파하는 분은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고린도후서》 4:5)

이 말씀은 우리가 예수를 위하여 여러분의 종이 됨으로써 이 직분을 받았으니 낙심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주님이 되시기 때문에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일평생 주님이 없다면 갈피를 잡지 못하고 혼란에 빠지며, 신경질적이고 걸핏하면 낙심하면서도 능력 위주로 살며 인간이 하늘을 이길 수 있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결국 홍수나 지진 같은 천재지변과 인재를 당해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정말로 하나님이 주인이 되셔야 합니다. 우리가 이 직분을 받고 낙심하지 않는 까닭은 우리 자신을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전파하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의 빛이 우리 마음에 비추었음

우리가 직분을 받고 낙심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빛이 우리 마음에 비추었기 때문입니다.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고린도후서》 4:6)

하나님의 빛이 우리 마음에 비추었다는 것은, 우리가 이미 하나님의 빛으로 비춤을 받았고 우리 내면에 더 이상 어둡고 무지한 것들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속임으로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추천하노라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고린도후서》 4:2-4)

오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것은 하나님의 빛이 우리 마음에 비추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까지도 제 마음에 한 가지 아픔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 교회 안에 여전히 몽매함 속에 살아가는 형제자매들이 있다는 점입니다. 제가 아는 바로도 한둘이 아니라 아주 많습니다.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일들이란 늘 이런 것입니다. 어떤 이는 오빠가 자기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거나, 어머니가 아파서 돈이 필요한데 돈이 없어서 돌아가셨다거나, 아버지가 아파서 돈을 다 쏟아부었는데도 결국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빛이 아직 우리 마음에 비추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빛이 우리 마음에 비추었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 소망을 두지 않을 것입니다.

또 많은 자매들이 온종일 연애하느라, 온라인으로 데이트 상대 찾느라 바쁘고, 입만 열면 다 멸망할 사람들의 일들, 즉 세상의 하찮은 일들에만 관심을 둡니다. 그러다 그렇게 살다가 죽는 것이니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사업 발전과 건강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들이 모두 여러분의 영적 상태가 겉으로 드러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건강 상태와 재정 상태는 여러분이 진짜 복을 받았는지, 가짜로 복을 받았는지를 보여줍니다. 많은 이들이 주님을 믿으면서도 복을 받지 못하고 몹시 힘들게 따라갑니다. 때로는 예수님과 인연이 없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오늘 하나님의 빛이 우리 마음에 비취어, 우리의 마음이 그 어둡고 부끄러운 일에서 벗어나기를 바랍니다. 멸망하는 자들에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빛이 우리를 비추어 사람이 세상에서 사는 것이 헛되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를 바랍니다.

만약 오늘 여러분이 여전히 살아가는 것이 헛되다고 느끼지 못하고 아주 맛깔나게 잘 살고 있다면, 제가 보기엔 가망이 없습니다. 예수님과 인연이 없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차라리 절에 가는 편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그 마음속에 온통 어둡고 무지한 일들만 가득 차 있고, 미혹과 허망함 속에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추구하는 것이란 세상에서 먹고 마시고 즐기는 하찮은 일들뿐이며, 죽고 멸망할 때까지 그러합니다. 하나님의 빛이 우리 마음에 비추었으니 우리는 낙심하지 않으며, 심지어 삶과 죽음의 문제 앞에서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결코 이 세상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을 잘못 보았고 깔보았으며, 바울이 자기들과 같을 것이라 여겼습니다. 바울은 이를 부인하며, 하나님의 빛이 자신들의 마음에 비추어 어둠 가운데서 나왔으니 세상에는 소망이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고린도후서》 4:17-18)

만약 여러분이 이상한 생각을 가지고 교회에 와서 대충 섞여 살아가려 한다면, 그것은 올바른 길이 아니며 해결책도 아닙니다. 이곳은 하나님의 빛으로 비춤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이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의 빛이 당신을 비추지 않았는지 저도 명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택하심의 문제이고 인연이 닿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가끔 말씀드리지만, 그런 인연이 없다면 차라리 더 잘 맞는 다른 인연을 찾는 것이 나을 수도 있습니다. 태국에 가서 백룡왕을 찾아갔던 배우들은 다 유명해지고 아주 멋지게 살았습니다. 여러분이 백룡왕을 찾아가고 싶다면 어쩌면 거기에 연이 닿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은 여러분이 진정으로 자신의 길을 찾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빛이 우리를 비추었고, 우리가 예수님과 이러한 인연이 닿아 하나님께 택하심을 입어 이와 같은 직분을 얻었기에, 결국 우리 몸에 심히 큰 능력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심히 큰 능력을 나타내어야 함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4:7)

제가 왜 여러분에게 자신을 잘 돌아보고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해 보라고 권면하겠습니까? 여러분이 원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빛이 비취는 것이 아니라면, 이 심히 큰 능력은 나타날 수 없습니다. 이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오직 사람이 자신을 하나님께 바칠 때에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4:8-11)

어떤 자매는 이런 것을 원치 않고 그저 부잣집 사위를 만나고 싶다고 하는데, 예수님은 그런 신랑감과는 거리가 멉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살면서 이것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을 하러 온 것입니까? 사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그 소망을 영생에 두는 자들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영생을 구하는 자들 위에 비추어지는 것이지, 많은 이들처럼 영생을 구하지 않는 자들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구하는 것은 모두 이생에 속한 것이지만, 이생에서는 아무것도 얻지 못하며 그저 살다가 죽을 뿐입니다. 어떤 이는 몇 살까지 살다 누구를 낳고, 또 몇 년을 더 살다가 죽었다고 합니다. 마지막에 다 죽고 만다면 이 세상에서 도대체 무엇을 위해 아등바등하는 것입니까? 실상은 먹고 마시며 죽을 날만 기다리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보배를 우리라는 초라한 질그릇에 담았습니다. 본래 우리는 값어치 없는 자들이며 존귀하지도 않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들이지만,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이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나타내려 하심입니다. 본래 우리도 죽음만을 기다리며 소망이 없던 자들이었습니다. 만약 여러분의 소망이 온통 이 세상에 있다면 잘못 찾아오신 것입니다. 여러분의 소망이 그저 먹고 마시며 죽음을 기다리는 것이라면, 무엇 때문에 예수님을 따라 이 길을 가려 하십니까? 이 길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고 마음에 답답한 일을 겪는 길이지, 편안하기만 한 길이 아닙니다. 박해받는 것도 싫고, 거꾸러뜨림을 당하는 것도 싫고, 몸에 그리스도의 죽음을 짊어지는 것도 싫다면 대체 무엇을 원하십니까?

우리들, 특히 우리 가운데 있는 목회자 여러분은 진정으로 저와 함께 이 길을 가고자 한다면, 반드시 하나님의 빛이 여러분을 비추어 내면의 어둠을 쫓아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더 이상 속임으로 행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며,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뭇사람의 양심에 스스로를 추천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무엇을 추구하는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추구하는 바가 하나님이 아니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면,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지도 않을 것이며, 이 심히 큰 능력을 나타내지도 못할 것이고, 그런 능력이 필요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우리 역시 바울처럼, 비록 그가 겪었던 처절한 상황까지는 아닐지라도 실은 늘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합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4:8-10)

살아 있는 우리가 기꺼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죽고자 하기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능력이 우리 몸에도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라는 보배는 정말 보람차게 살아갑니다. 일평생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가득하며, 평생 하나님의 심히 큰 능력을 나타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종임을 증명하고, 어떤 상황을 만나도 낙심하지 않음을 증명합니다. 우리 중에는 여전히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한 자매는 유방에 멍울이 생겨 의사가 2cm에서 6cm로 자랐다고 하자, 이제 다 끝났다며 절망했습니다. 아직 예수를 위해 죽음에 넘겨지지도 않았는데 이미 담력이 다 녹아내린 것입니다.

우리가 자랑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심히 큰 능력을 자랑할 수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늘 죽음에 넘겨지며 생사를 초월할 수 있습니까? 죽기를 두려워할수록 죽게 마련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목숨을 바칠수록 생명을 얻게 된다는 이 간단한 이치를 깨닫지 못하십니까? 고린도 교인들 중에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무리들이 가득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쓸 때 이미 죽은 자들이 있었고, 《고린도후서》를 쓸 때 또 수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어떻게 아느냐고 묻는다면, 성경 서신서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제 일평생 헛되이 살지 않게 하시고, 표적과 기사로 가득 채우사 이 심히 큰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을 나타내시며, 제가 예수 그리스도의 종임을 드러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미 영생 가운데 있으며 우리의 소망은 이 세상에 있지 않고, 우리가 얽매이는 것들도 이 세상에 있지 않으므로 재물이 더 이상 우리를 얽매지 못하며 범사에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사실 여러분 모두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우리 가운데서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인데 왜 여전히 겁을 내고 낙심합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입어 이 직분을 받았으니 낙심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받은 직분이 그저 먹고 마시며 죽을 날만 기다리는 것이라면, '죽음'이라는 말만 나와도 절망하고 소망을 잃을 것입니다. 사람은 본래 소망이 없습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생사를 초월한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주목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이며,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 같은 사람들이 늘 이런 일들을 겪어야 합니까? 모든 것이 다 여러분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4. 모든 것이 다 여러분을 위한 것임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라 이는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함이니 많은 사람의 감사로 말미암아 은혜가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4:14-15)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낙심하지 않는 것은 여러분에게 본을 보이기 위함임을 아셔야 합니다. 이 길이 참으로 좋은 길이며, 하나님의 영광이 있는 길이고,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길이며, 하나님의 심히 큰 능력이 나타나는 길임을 여러분에게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비록 이 길이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 걷기 힘들지라도 싸이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와 함께하기 때문이며, 마음에 답답한 일을 겪을지라도 낙심하지 않는 까닭입니다. 마치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을 늘 곤란하게 만들어 그가 고린도 교인들 때문에 마음에 실망하고 눈물 흘리며 기도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로서 누군가 넘어질 때 제 마음에 어찌 아픔이 없겠습니까? 여러분이 넘어지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강건하게 일어서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늘 우리 자신의 이야기, 우리가 죽음을 가볍게 여기고 이생의 삶을 초월했던 이야기들을 나누어, 여러분이 조금이나마 힘을 얻고 우리를 본받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충만한 이 영생의 길을 걷기 시작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함이니 많은 사람의 감사로 말미암아 은혜가 더하여 넘치게 하려 함입니다.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빛을 받아 회개하고 보배를 담은 질그릇이 될 때, 하늘의 천사들도 우리를 위해 환호하며 하늘의 천사들이 우리의 응원단이 됩니다. 오늘 우리가 《고린도후서》를 읽을 때에도 하늘의 천사들이 우리를 위해 환호하고 있습니다. 우리 중 많은 사람이 이 말씀을 듣고 그러한 사람이 되고자 결단할 것이며, 그로 인해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넘치고 감사가 더욱 풍성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자신을 추스르고, 과거에 아직 쓰지 않았던 간증들을 작성하여 감사가 더욱 넘치게 하십시오. 우리 각자의 간증과 체험은 결코 적지 않지만, 다들 속으로만 묻어두고 말하지 않으며 남에게 전하려 하지 않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만약 여러분이 남을 위해 살고, 긍휼을 입어 이 직분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며, 하나님의 빛이 우리 마음에 비추어 우리 안의 보배가 하나님의 심히 큰 능력을 나타내도록 하여 사람들을 섬긴다면, 모든 사람이 우리를 통해 은혜를 얻게 될 것입니다. 사람이 이기적으로 살아가는 것은 지극히 비참한 일임을 알아야 하며, 사람들이 매달리는 관심사가 과연 무엇인지 똑똑히 보아야 합니다.

얼마 전 한 자매를 사역하며 돌보아 주었는데, 그 자매는 온통 집안 이야기만 늘어놓았습니다. 오빠가 돈을 빌려달라고 하고, 가족들은 부자 남자를 만나 결혼하라고 권유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오빠가 자매에게서 돈을 뜯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온통 이런 생각뿐인 것을 보며 제 마음에 큰 슬픔이 밀려왔습니다. 우리 가운데 이런 일들이 결코 적지 않습니다. 온통 돈과 관련된 일들이며, 마치 살아가는 유일한 소망이 돈인 것처럼 여깁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헌신하여 하나님의 새 언약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이 직분을 받았기에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종이 되었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기에, 우리가 많은 사람에게 축복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누구에게 축복이 되었습니까? 여러분은 누구를 위해 살고 있습니까? 때로는 오빠에게 돈을 빌려주자니 속이 쓰리고, 안 빌려주자니 체면이 깎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괴로워합니다. 사람이 세상에서 품는 소망이란 고작 이런 것이며, 이런 하찮은 것들을 위해 살아갑니다. 허무함 속에 살아가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찬물을 한 바가지 더 끼얹자면, 사람은 살다 보면 결국 죽게 마련이며 대단한 의미란 없습니다. 진정 의미 있게 살고자 한다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을 본받아, 주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살아야 일평생이 헛되지 않습니다. 사역하는 과정은 참으로 고단합니다. 힘들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입니다. 바울도 그러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찌 늘 눈물을 흘렸겠습니까? 깊이 말하면 마음이 아프고, 가볍게 말하면 소용이 없는 상황 속에 바울은 늘 처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 생각에 바울은 성미가 그리 좋지 못했을 것입니다. 화가 나면 간이 상하고, 간이 상하면 눈도 나빠지기 때문에 그에게 안질이 생겼던 것입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늘 온갖 환난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우리는 온전히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그리하여 겉사람은 날로 낡아지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졌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의 이러한 연약함이 고린도 교인들의 웃음거리가 되어, 바울은 겉사람이 날로 쇠약해져 가면서 자기 몸 하나 제대로 돌보지 못하면서 무슨 하나님을 섬기느냐고 비아냥거렸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몸을 사리지 않고 일찍 죽으면 그만이라는 심정으로 살았으며, 오직 하나님 앞에서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겠다는 유일한 소망 하나만을 품고 살았습니다.

제가 '일찍 죽으면 그만'이라고 말하는 뜻을 잘 이해하셔야 합니다. 제 생각이 실제로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육신을 입고 살아가는 것은 참으로 고단한 일이며, 우리가 원해서 육신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그렇게 살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오직 한 가지 소망은 속히 주님의 얼굴을 뵈옵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오늘 밤 저를 부르신다면 저는 아침까지 머물고 싶지 않습니다. 주님의 얼굴을 뵙는 것이 비교할 수 없이 좋기 때문입니다. 다만 때로는 형제자매들을 두고 떠나기가 참으로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래서 하루를 살더라도 여기서 목청껏 외치며 여러분이 세상의 하찮은 일들의 실체를 똑똑히 깨닫도록 하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자기가 죽은 후에 하나님의 얼굴을 뵙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는데, 그 정도 믿음이라면 굳이 만날 필요도 없다고 봅니다.

참으로 탄식이 나옵니다! 주님의 얼굴을 뵙지 못할까 염려하면서도 세상의 하찮은 일들 때문에 온종일 분주하게 수고하며, 하나님의 임재는 털끝만큼도 보지 못하고 도리어 마귀의 역사만 보고 있으니, 우리는 도대체 언제 우리 몸에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겠습니까? 사람의 육체는 언젠가 썩어 없어질 것이며, 이 낡은 가죽 부대는 살코기로 된 것이기에 썩고 망가지겠지만, 우리는 결코 낙심하지 않습니다.

5.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을 보십시오. 겉사람은 날로 낡아지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고 있습니다. 겉사람이 낡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 너무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거울을 보면 주름살이 하나 더 늘었을 것이고, 겉모습이 예전만 못한 것은 당연합니다. 70대는 60대만 못하고, 60대는 50대만 못하며, 50대는 40대만 못한 법입니다. 어떤 사람은 천국에 가면 자기가 가장 아름다웠던 열여덟 살 때의 모습으로 변하느냐고 묻기도 하는데, 제 생각엔 꼭 그렇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외모에 대한 집착이 그 정도에 이른 것입니다. 우리의 겉사람이 비록 낡아질지라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낡아지면 낡아지는 대로, 일찍 죽으면 그만입니다. 우리들의 소망은 이미 육신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더 이상 이생의 세상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어 줄 것임을 명확히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겉사람이 낡아지는 것은 결코 대단한 일이 아닙니다.

저는 젊었을 때 아마 50세를 넘기지 못하고 죽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덕분에 십여 년을 덤으로 더 살고 있습니다. 학창 시절부터 심장이 자주 두근거렸는데, 무슨 문제인지도 몰랐고 병원에 가서 검사받아 보라는 권유도 있었지만 그냥 두었습니다. 그런데도 목숨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지니 어쩌겠습니까? 몹시 피곤할 때면 심장이 쿵쾅거리곤 했는데, 늘 그런 일이 일어나 악령의 역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다윗도 죽었고 모세도 죽었으며, 심지어 죽었다가 살아난 나사로도 결국 다시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육신 안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라, 영원 속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데 있습니다.

오늘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능력이 우리 몸에 나타나야 하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대단한 소망을 두지 않으며, 소망을 품고 싶지도 않습니다. 육체가 쇠약해져도 낙심할 필요가 없고, 몸이 좀 아프고 힘들어도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이생만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만이 낙심하는 법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합니다. 이생을 살아가며 세상에 소망을 두지 않게 하시고, 세상살이에 큰 흥미를 갖지 않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세상을 떠나 주님과 함께 거하는 것이 저의 간절한 소망이며, 속히 주님의 얼굴을 뵙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이것이 저의 소망입니다. 많은 이들이 제게 몸을 잘 돌보라고 권하지만, 저는 제 몸을 거의 돌보지 않습니다. 어떤 분들은 저 자신보다 제 건강을 더 걱정해 주시지만, 솔직히 저 역시 형제자매들을 쉽게 내려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6.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룸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고린도후서》 4:17)

우리는 이 세상에서 반드시 이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을 겪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겪는 그 사소한 고난은 진실로 아무것도 아닙니다. 세상에서 더 많은 쾌락을 누리려다 고난을 겪는다면 거기에는 아무런 영광도 없겠지만,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루기 위한 고난이라면 이 잠시 받는 가벼운 고난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생각입니다.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건대, 그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은 실재합니다. 여러분이 저처럼 수많은 귀신을 쫓아내고 수많은 기적을 행해 보았다면 틀림없이 이와 똑같이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이 늘 우리 몸에 머물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모든 은혜는, 우리 소수의 무리가 자신의 생명을 바쳐 여러분으로 하여금 은혜를 얻게 했기 때문이며, 우리에게 영광스러운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영광스러운 소망은 참된 것입니다. 영적 세계는 실재하며,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권세는 마귀 원수를 짓밟고 사로잡힌 백성을 해방할 만큼 참으로 실재합니다. 이 모든 것은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서도 시간이 지나면 낙오하는 이들이 생깁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첫 번째로 세워졌던 리더들 중 지금은 한 명만 남았고, 두 번째로 세워졌던 리더들 중에서도 한 명만 남았습니다. 그렇다면 세 번째, 네 번째 무리에서는 몇 명이나 남겠습니까? 이 영광스러운 소망이 없다면 이 길을 끝까지 갈 수 없으며, 제 마음도 몹시 아플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눈에 보배로운 자들을 가려내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어떤 처지에 있든지 마음에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소망을 품고 있다면, 세상의 수많은 일들은 아주 단순해질 것입니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고린도후서》 4:18)

우리가 육신 안에 살면서 이 보배를 품어 하나님의 심히 큰 능력을 나타낸다면, 장차 주님의 얼굴을 뵈올 때 얼마나 큰 영광과 능력이 나타나겠습니까? 여러분 모두 이 소망을 품고 앞으로 달려가며, 하나님 앞에서 이러한 직분을 받기를 갈망하십시오. 목사만 이 직분을 받는 것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이 이 직분을 받았으니, 여러분 모두 낙심하지 마십시오. 분명한 한 가지 사실은, 언젠가 우리 모두 이 세상을 떠나 주님과 함께 있게 된다는 점입니다. 만약 우리가 보이는 것에만 주목한다면 이 길을 끝까지 갈 수 없으며, 능력도 사라지고 맙니다. 보이는 것에 주목하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나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잃어버리게 되며, 다 잃지 않는다 해도 곰팡이가 슬어버릴 텐데 어떻게 이 길을 갈 수 있겠습니까?

본래 좋은 패를 쥐고 있었으면서도, 우리가 눈앞의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다 보니 스스로 곤경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입을 열어 하는 말을 들어보십시오. 여러분이 진정으로 신경 쓰는 것은 무엇입니까? 때로는 저도 마음을 가다듬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온통 하찮은 일에만 얽매여 그런 것들만 주목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제가 좀 바빠서 먼저 끊겠습니다'라고 말하게 됩니다. 제가 여러분의 재정 상태를 신경 쓰는 이유는, 여러분 몸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이 머물고 있다면 어찌 그런 처지에 머물러 있겠느냐는 안타까움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 모두 굳게 결단하고, 이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품고 영원 속의 지극히 크고 영광스러운 소망을 품고 앞으로 달려갑시다. 그리하여 본래 썩어 없어질 질그릇 같은 우리 안에 이 보배를 담아냅시다.

7. 우리가 믿었으므로 또한 말함

믿지 않는 사람이 하는 말과, 믿는 사람이 하는 말은 전혀 다릅니다.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기록된 바 내가 믿었으므로 말하였다 한 것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었으므로 또한 말하노라 (《고린도후서》 4:12-13)

우리가 믿었으므로 이와 같이 말하며, 일찍 죽으면 그만이라고 담대히 고백합니다. 육체가 날로 낡아질지라도 우리는 이 직분을 받았으니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미 세상의 모든 것을 초월하여 바라보며, 하나님의 빛이 우리 마음에 비추어 영광스러운 소망을 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기에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은 다 여러분을 위한 것이며,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을 바라보는 이 모든 것이 오직 '믿음' 하나에 달려 있습니다. 믿음이란 보아야 믿는 것이 아니라, 믿으면 반드시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바탕은, 이 세상의 모든 삶이 헛되고 헛되며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깨닫는 데 있습니다. 사람이 세상에서 온종일 세상일만 생각한다면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것이 의미 있다고 여긴다 한들 마지막에는 한 줌의 유골함에 불과할 뿐인데, 이 말을 이해하시겠습니까?

우리가 전파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영광스러운 소망으로 충만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화인 사명 신학은 이 시대에 위대한 발견을 이루어 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되다는 것을 발견했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큰 능력과 큰 소망을 가졌음을 발견했으며, 예수님 앞에 나오는 자마다 모두 치유받았음을 발견했고, 치유와 축사의 근본이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데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또한 사람이 살아 있을 때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나타내야지, 이기적인 마귀의 형상으로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화인 사명 신학은 이 시대에 기독교의 변혁을 가져올 것이며, 매우 중대한 역할을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이 신학은 중화권의 신학일 뿐만 아니라 가장 앞선 신학이자 가장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신학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믿었으므로 또한 이와 같이 담대히 말합니다.

앞으로 우리는 화인 사명 신학이 온 땅에 편만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화인을 크게 사용하실 것이며, 여러분이 세계 어느 구석에 있든지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크게 사용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본래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우리로 말미암아 복을 얻게 될 것이니, 이는 얼마나 아름다운 직분입니까. 우리가 긍휼하심을 입어 이 직분을 받을 기회를 얻었으니, 더 이상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강건하게 일어서서 자신을 추스르고, 비록 아무도 우리와 함께 달리지 않는다 해도 우리는 여전히 이 길을 힘차게 달려가야 합니다. 사도 바울을 본받아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으로 충만한 길을 달리며, 착하고 충성된 종의 길을 걸어갑시다. 아멘!

관심을
关闭
暂无评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