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Q1:老师,我想问一下什么时候悔改会没有用呢?
我得确切地告诉你,只要是真心悔改,什么时候都有用。我凭着神的恩典告诉你这点,并不是给你一个放纵自己的机会,而是要让你知道,少领受恩典是亏欠。多领受恩典,那才是恩典,所以越早悔改越好。
我曾经听一些人说:老师,我想在咽气之前赶紧悔改,这样我就能享受罪中之乐。我问他从哪儿学的,他说:从耶稣旁边的强盗那儿学的。我说:你傻呀?他说:我不傻。我问他算过账吗?他说:我没算过。
那我给他算了笔账,做了一辈子的强盗,遭了一辈子的罪,东躲西藏,但还是被人抓了,最后被判了死刑。他这一辈子享受了吗?没享受。他挂在十字架上享受了吗?也没享受。他在耶稣面前赶紧悔改,就进到乐园里去了。
我问他:这样过一辈子好吗?他说:不好。我又问:那你还要不要做这样的人?他说:听你这么一说,我也不想要了。我说:那你早干嘛来了,之前的账算哪儿去了?一个人越早领受恩典越好,越少遭罪越好。
约拿到阴间溜了一圈儿,在阴间被那些虫子咬了一顿,遭了不少罪。然后又在大鱼肚子里待了三天,也遭不少罪。好玩吗?不好玩。一个人越早悔改,领受恩典越多,不仅心里敞亮,而且祝福你的蒙祝福,咒诅你的受咒诅。
我问你,挂在十字架上的强盗,是临死当天得救了好,还是今天就活出神的样子好?到底哪个好呢?所以人什么时候悔改都不迟,但是悔改晚的人蒙恩典少。神的恩典何等的长阔高深!神的恩典长阔高深,不是为了给我们更多犯罪的理由,而是让我们变聪明,早点领受恩典。
Q2:老师,人总是在不知不觉中犯浑,总想着自己可以改变,但实际上却不能改变,应该如何破解?
你不会做自己吃亏的事儿对吗?比如,你欠了一屁股债,然后你老板帮你还了一些,你觉着好不好?好。那你老板帮你还了一些债务,所以那是什么?那是恩典。你会说:不用,我自己来吗?没有人不要占便宜的事儿,但是什么事儿占便宜,什么事儿吃亏?人里面各自有一杆秤。
人为什么会犯浑呢?就是把值钱的当成不值钱的,却把不值钱的垃圾当成宝贝抓住了,就是人的价值体系不对。人的价值体系不对就毁了,像约拿,他也有自己的价值体系。我们自己里面那个价值体系,本来就是被人骗的价值体系,我们为什么还要紧紧抓住呢?
所以人一生要学习变聪明,要分清楚什么东西好,什么东西不好。如果你能分清楚了,你还会犯浑吗?就不犯浑了。我们一直觉得犯罪多好,得罪神多好,羞辱神多好,被神惩罚多好,真的好吗?不好。关键是我们依靠什么活着?依靠你自己就算了,你只能证明依靠自己不行。
不要说你依靠自己不行,我依靠自己也不行吗?我依靠自己都不行了,你依靠自己能行吗?不是说我比你好,而是人靠自己真的只能证明不行。遇到阴间的大门,什么招都没有,遇到倒霉的事,什么招都没有。
今天能不能过蒙福的日子?我问你:为什么非得过受咒诅的日子呢?为什么不能过蒙福的日子呢?我感觉很奇怪。蒙福的日子肯定比受咒诅的日子好,为什么不过蒙福的日子?因为蒙福的日子与我们原来的认知、价值体系不协调,所以我们选择自己那套,但那套却是受咒诅的。
人可以选择一而再、再而三地活在咒诅当中直到灭亡,人也可以选择早点换成神的这套。今天我们要解决的不是自己的不好怎么破解,而是我们的认知出了问题。我们总认为占便宜的是好的,所以就去做,认为吃亏是不好的,所以就不去做,其实刚好搞反了。
Q3:英文《圣经》里的神,一般用Lord God。汉语《圣经》里出现的耶和华,是怎么翻译过来的呢?
这事儿我不知道,但是叫这个还是叫那个,这事儿重要吗?我觉得不重要。我们要知道的是祂是神,祂的旨意,祂的恩典,祂的怜悯。我们要研究自己怎么行在神的话中?怎么不掉到咒诅里?怎么谨守遵行神的话?要好好研究神的话,别整这些东西。
有人说那英文怎么说?希伯来文怎么说。有的牧师讲道一会儿希伯来文,一会儿其它。但真正遇到会说希伯来话的人,他还真不一定行。我见过一个口口声声说做日语翻译的人,日本人一出现他就不做了。
咱们别整这些东西,你如果要整,不管是哪个版本,能不能读出神的心意来?能。英文版本,能不能读出神的心意来?能。千万别断章取义,各个片段拼凑起来形成完整的体系,这都是没有差别的。
我们读《圣经》,按照体系来说,从《创世纪》、到耶稣基督、到使徒保罗都是一套体系。但是《雅各书》、《犹大书》、《彼得前书》、《彼得后书》不一样,不像是一个体系的。有没有几句话是对的呢?有几句话是对的,但是也说明不了什么,他的体系不是神的体系。那也没关系,缺少这几本书不影响什么。
Q4:老师,为什么悔改了,还要很久之后才能有变化呢?为什么不能我今天悔改明天就蒙福呢?
你很想蒙福,对吗?为啥不能明天就蒙福,因为如果你明天蒙福了,后天就又犯浑了。神太认识你了。为什么约拿在大鱼里头待了三天,不是待三秒呢?或者是三分钟、三个小时也比三天好。为什么待三天呢?原因很简单,人学功课得学深一点儿。
信心太神了,不管是在我们犯错,还是走正道的时候,神都要超越我们的信心。亚伯拉罕到了迦南地,后来遇到了饥荒,不是因为亚伯拉罕,而是因为神就是这么操练人。当兵的在操场上怎么训练?先跑十公里,有的人不能跑,人家都能跑,你为什么不能跑?先跑十公里,训练好之后,再背二十公斤,跑二十公里。大家知不知道当兵怎么训练?就这么训练。那能不能只当一天兵就完了呢?当一天兵送到战场上,就是个炮灰,就是送死的。
咱们弟兄姐妹不要急,要知道神在我们身上的计划是美好的。一定要相信神,神是好的神,神是救我们的神,神是恩待我们的神,神在我们身上的计划是最好的。神给我们开的药方,那简直是太对症了,你太适合这个了。所以弟兄姐妹不要急,前面的路一定是蒙福的路。
Q5:老师,有些人是不是越是犯罪越刚硬,很难悔改?
人在罪中会变刚硬,在罪中越来越刚硬,这是千真万确。什么是刚硬呢?就是越来越觉得自己那套东西合理,越来越觉得神不讲理。神说:“让你不讲理,我就任凭你刚硬,我就使你刚硬,一直刚硬到倒霉。”是不是很难悔改?倒霉以后,他有自己的解释。
你慢慢仔细看,很多人喜欢解释。他们解释的东西就只是解释,从来解决不了任何问题。《圣经》里给我们看见人就是这个样子,以色列是很厉害的民族,但是以色列民族尚且如此,其他的民族就更别谈了。
Q6:老师,我们要活出耶稣基督的形像,那具体要活出什么形像?
你读《马太福音》,你看耶稣做了什么?耶稣用五饼二鱼喂饱五千人,这就是耶稣的形像。耶稣让瞎眼的看见,瘸腿的走路,大麻风的得洁净,死人从死里复活,耶稣做了什么?耶稣靠着神的灵赶鬼,让神的国降临。耶稣把从天上来的启示,启示给地上的百姓,耶稣能够解决人活着的所有问题,这就是耶稣。在耶稣那里什么好处都不缺,这就是耶稣基督的形像。
但是现在的人不太渴望做耶稣,他们说了一句话:“嗐,耶稣,有几个耶稣呀?我又不是耶稣。”不仅普通人这么讲,就是神学院里的教授也这么讲。要记住神有丰富的恩典和怜悯。
我们要效法耶稣,如果耶稣效法不来,那就效法约瑟;如果约瑟效法不来,那就效法雅各;如果雅各效法不来,那就效法以撒;如果以撒效法不来,那就效法亚伯拉罕;如果亚伯拉罕效法不来,就不太有东西可以效法了。
要好好去琢磨,一定要拥有亚伯拉罕所传承下来的这套体系。为什么有些人领受不了神的恩典?因为他的信心不是亚伯拉罕的信心。亚伯拉罕是信心之父,为什么叫信心之父?因为他为我们开辟的信心是真的信心。
Q6:老师,我有点不明白,约拿这么任性、犯浑,为啥神还要拣选约拿去尼尼微呢?神为什么不换一个像保罗一样的人?神透过《约拿书》让我们得到什么启示呢?
因为像保罗这样的人少,挑来挑去就挑了一个约拿。当时的状况,扒拉来扒拉去,矬子里拔大个,拔出个约拿,约拿还是这么个样儿,还任性说:把我扔下去吧。很有意思啊,你以为神不想找保罗?神想,可是保罗太少了。
在咱们教会当中,如果你是约拿,那我们就感谢神。如果你是个保罗,我们就欢呼雀跃赞美神。神给我们看见,神有丰富的恩典和怜悯。但今天我告诉大家,如果能做约拿,能悔改也很好,很多人还不配呢。如果你愿意做使徒保罗,就省了约拿这份,省了折腾。
神难不难呢?神坐在祂的宝座上往下一看,有寻求的没有,有明白的没有?少。神的心太痛了,看见傻不拉叽的往死里狂奔的人大把,看见能够明白神心意的,少之又少。但是大家得知道,本来宝贝本来就少,你要不要做宝贝?你要好好做神的宝贝。
Q7:老师,我挺喜欢约拿的,包括后面尼尼微毁灭,我觉得这个人很真实、很可爱、很接地气。我这种喜欢本身是不是也有问题?
你想去鱼肚子里待一待吗?你要不要到地狱里逛一圈儿呢?如果你挺喜欢,就挺要命的。那一轮走下来,不扒层皮,也是经历了一场很艰难的事儿。这种事儿没有荣耀,是因为人顽梗悖逆才经历的。人为什么要顽梗悖逆,然后觉得挺好呢?好玩吗?不好玩。很接地气吗?接地气不接神气,最怕接的是阴间的气啊。
做一个因神话语而战兢的人,不要不敬畏神,不然遭罪多呀。
Q8:老师,现在都说以色列要灭国了,以色列会灭国吗?世界末日很快就来了吗?我总认为我的信心太烂了,好像没预备好。
以色列灭不灭国,这事儿咱也不关心。咱关心那玩意儿干啥呀?咱们要关心的是啥?咱们要关心的是我有多少像耶稣,我的信心到底是不是亚伯拉罕的信心?我对神话语的了解到底是不是神的意思。我是不是神眼里的宝贝,是不是神眼里的亚伯拉罕、以撒、雅各?
我们要重新调整下自己,问这样的问题,其实还是里面乱,把以色列这些都放一边去。把我们自己的目标调整到像保罗一样,打拳不是无定向的,攻克己身,叫身服我。让我们在地上如同在天上。
Q9:老师,关于信靠神,我知道凡事要信靠神,但遇到事儿,第一时间就把信靠神的事儿忘了,就用属世的方法解决,后来才反应过来,我要靠主做,怎样才能第一时间就会信靠神呢?
人为什么第一时间不信靠神,第二时间、第三时间才信靠神?我们把世上的事情看得太重,其实一旦看不透就坏了。把虚空的东西当作实实在在的,这不毁了吗?因为那都是虚妄的东西。
我们觉得这些事多重要。孩子上不了大学,没有未来了。孩子考大学没考好,没有未来了。哪有这回事儿?很多上了名牌大学,后来没有未来,在家里啃老的也有很多。那未来在哪里?未来根本就不在你那虚妄的谎言当中。
我们弟兄姐妹为什么不能够第一时间信靠神?价值体系有问题。你的信心不是亚伯拉罕的信心,如果你是亚伯拉罕,老婆被人抢去了,你也要信靠神。为啥?因为这世上的事儿都是虚空。到了尼尼微,那里闹饥荒,反正这世上的事儿都是虚空,没关系。
如果世上的事儿都是虚空,你会那么闹心吗?你就不会那么闹心了。你就会自然而然信靠神了。你信靠神以后,活得好还是活得不好?比信靠自己活得好,我们要仔细地琢磨好。
Q10:老师,我想蒙福是不是有问题?是不是我信主的目的不纯,但是我真的想过好日子,每一秒都不想倒霉,想天天开心,做啥事都顺利。
谁不想啊?谁都想,可是问题是咋没有呢?我还想去月亮上住几天呢?上不去啊。我想到火星上去溜达一圈,去不了啊。所以说我们想是一回事,但是怎么才能到那儿,那是另外一回事。
我给你指条路,走亚伯拉罕的路。我最近对亚伯拉罕的认识又深了一层,深到哪儿去了呢?就是在《传道书》。人活着在日光之下都是虚空的虚空,就完事儿了。你说:老师,你不是推我成长吗?成长也是虚空。老师,你不是推我喜乐吗?喜乐也是虚空。什么东西是真实的?《传道书》写完了以后,重点就是敬畏神。因为神掌管祝福这件事儿。你不敬畏神,你想要也没招,不给你。
你说:神啊,祝福我祝福我,我不想过这闹心的生活了。神说:那就再给你点闹心。你说:神啊,为什么还这么闹心?谁让你看不透?你的信心不是亚伯拉罕的信心呢,你慢慢学亚伯拉罕的信心吧。如果认定地上的事儿还有点意义,人就还是认为蒙福还是很重要的,还是没看透。活着活着就死了,有什么意思呢?
有人说:哎呀,我被人骗了。骗了多少钱?骗了三十万。另一个说:哎呀,我也被人骗了。骗了多少钱?六十万。为什么会被骗?把地上这点事儿看得太认真。有人来问我:哎呀,我欠的债明天到期还不了。我回答了还怕人家识别善恶,我说:还不起就不还呗,你还想让我给你还呢?他说:那不成老赖了吗?你不赖也不行,你不赖怎么办?
都是虚空的虚空,毫无意义。我这么一说,很多事儿就好解决了。因为是虚空的虚空,所以这事儿也不是什么了不起的事儿。这么着混个骨灰盒,那么着也是混个骨灰盒,都没什么意义。
把活着的事儿给看扁了。这一看扁可了不得喽。看扁了以后怎么着?看扁了以后你就会看重神的话。看重了神的话以后,人就靠着神的话而活,神的能力就彰显在你身上。后来你发现:咦,债务还上了。为什么?难道神不能够帮你吗?神能帮,这就是关键。所以说建立在亚伯拉罕信心的根基上才叫做信心,要一点一点的看透虚空。
神给我们画了一个很窄的路,只有一条正道的路。太窄了,路是窄路,门是窄门。这条路是怎么画的呢?左边画了一条,你要实实在在地活着。另外一边画的是虚空的虚空。有的人一虚空,就遁入空门,结果就掉到路右边去了。有的人一实在,就去爱世界,就被世上的事辖制,然后就掉到左边去了,不走正道。我们认定活着是虚空的虚空,同时又实实在在地活在神的恩典之中。
大家想过蒙福的日子不是问题,但是你得有招,这招我不是教给你了吗?落实起来还是有点距离的。人有的时候看东西特别偏,新加坡房地产过去这几年往上涨,有的人心里发毛,就说:哎呀,当时买一个就好了。买一个之后房地产涨了很多,股票涨了很多,一下没抓住,踩空了,赔了人不少钱,那钱是你的吗?也不是你的。
要看透了,人活着不是靠财物,人活着最重要的,也是《传道书》最核心的,就是在劳碌中喜乐。有钱很纠结,有什么意义呢?没钱也纠结,又有什么意义呢?在劳碌中喜乐,做什么就好好的做,行在亚伯拉罕的信心之中。
愿神祝福大家。
안녕하세요, 여러분. 우리 함께 《요나서》 2장을 보겠습니다. 《요나서》 2장의 주제는 다들 아주 정확하게 짚으셨습니다. 와, 글공부를 그리 많이 하지 않으시고 글씨를 아이처럼 쓰시는 어르신 분들도 다 맞추셨는데, 주제는 바로 “구원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음이니이다”입니다. 구원이 여호와께로 말미암는다면, 그렇다면 구원이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차근차근 나누어 보겠습니다.
지난 장에서 요나는 참 흥미로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는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진짜로 바다에 던져지자, 큰일이 났습니다. 요나가 음부(스올)를 경험한 것입니다. 사람이 무언가를 겪어보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제대로 알기 어렵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사람은 무언가를 겪어보아야 합니다. 요나는 배 위에 있었습니다. 침대 위에 누워 있었던 게 아닙니다. 침대였다면 골치 아팠겠지요. 그는 배 위에 있으면서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이 재앙이 나 한 사람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일에서 요나의 반응과 태도는 참 흥미롭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지요. 나중에 보니 많은 사람이 이런 반응을 보입니다. 관 뚜껑을 봐야 눈물을 흘린다는데, ‘죽기밖에 더하겠어? 괜찮아, 어차피 다 초탈했어’ 하는 식입니다. 하지만 요나는 음부를 경험했고, 막상 음부에 가보니 상황이 생각과 전혀 달랐습니다. ‘아이고, 사는 게 이렇게 힘든데 죽으면 끝인 줄 알았어?’ 제가 말씀드리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1. 음부를 경험한 요나
여러분, 지금 내가 잘 살고 있고 아무 일 없다고 해서 안심하면 절대로 안 됩니다. 사람이 왜 죽기 직전이 되면 죽고 싶어 하지 않는지 아십니까? 잘 모르시겠지만, 사람은 죽기 직전이 되면 다들 죽기를 원치 않습니다. 요나는 덤덤하게 “나를 던지라”고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죽으면 다 끝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아닙니다. 사람은 죽으면 끝이고, 불 끄면 끝나는 것처럼 아무것도 안 남는다고 생각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세상에 그렇게 쉬운 일이 어디 있습니까? 만약 그렇게 거저 끝나는 일이라면 참 좋겠지요, 하나님을 경외할 필요도 없고요.
요나가 이전에 “나를 던지라”고 했던 일은, 우리 시절의 만담 하나를 떠올리게 합니다. 어떤 사람이 술에 취해 큰길 한복판에 드러누워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나를 밟고 지나가라, 나를 밟고 지나가라!” 사람들이 “얼른 일어나, 차 온다!” 하니 “무슨 차인데?” 묻습니다. “자전거!” 자전거 탄 사람이 할 일 없어서 당신을 치고 지나가 덤터기 쓰고 집안 망하겠습니까? 술 취한 사람과 무슨 시비를 걸겠어요? 결국 피해 지나갔습니다. 조금 뒤에 또 차가 옵니다. “무슨 차인데?” “오토바이!” 오토바이도 그냥 피해 지나갔습니다. 할 일 없어서 당신한테 엮이겠습니까? 잠시 후 또 차가 옵니다. “무슨 차인데?” “구급차!” 그러자 벌떡 일어났습니다. 깔려 죽으면 안 되니까요. 왜 그럴까요? 구급차는 사람 치어 죽여도 보상 안 해줄 수 있거든요, 네가 거기 누워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알지 못해서 ‘죽으면 그만이지’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에 어떻게 그런 쉬운 일이 있겠습니까? 요나라는 사람은 차라리 죽을지언정 가지 않겠다고 했지만, 죽음이 무엇인지 몰랐던 것입니다. 결국 바다 밑바닥에 던져졌고, 그는 음부의 깊은 곳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음부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던져지자마자 “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에 던지셨으므로 큰 물이 나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요나는 자신이 잘못 생각했던 것이지요. 던져지면 곧 숨이 끊어질 줄 알았는데, 숨이 왜 이렇게 긴 걸까요? 숨이 긴 것이 아니라, 삶과 죽음 사이에서 아주 영적인 경험을 한 것입니다. 여러분, 살아 있을 때 깨닫지 못한다면 자업자득입니다! 살아 있을 때 제대로 깨닫지 못하면 꼴좋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불 끄면 끝나는 것처럼 한순간에 끝날 줄 알았는데, 그런 게 어디 있습니까!
요나는 말합니다.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 물이 나를 영혼까지 둘렀사오며 깊음이 나를 에워싸고 바다 풀이 내 머리를 감쌌나이다.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그가 기록한 것은 자신이 경험한 것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할 것이라 짐작합니다. 실제로 그가 기록하지 않은 경험들이 훨씬 많았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 모든 과정에서 요나는 바다 밑바닥까지 내리눌렸고, 거기에 어떤 문이 있는 것을 발견했으며, 그 문 안으로 처박혀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궈더강의 만담 같지 않습니까? 큰 가마솥 기름에 꽈배기 같은 것을 둘씩 꼬아서 튀겨내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니 그런 게 아닙니다. 바다에 던져지면 끝인 줄 아십니까? 큰일 납니다. 그래서 요나는 “내가 음부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바다 밑바닥에 있는 것들은 정말 무섭습니다. 섬 같은 곳에는 귀신이 많습니다. 우리 중에 바닷가에 사시는 분 계십니까? 바닷가에서 고기잡이로 먹고사는 사람들은 다 무언가를 섬깁니다. 왜 그럴까요? 바다가 너무 무섭고 두려움을 주기 때문에, 무엇이든 빌어야 하는 것입니다.
요나의 내면에는 고집스럽고 제멋대로인 구석이 있었습니다. 우리 중에도 제멋대로인 분들이 많습니다. 음부를 보지 못한 사람들은 다 제멋대로 굽니다. 하지만 음부를 본 사람은 압니다. ‘아이고!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그래서 말씀드립니다. 사람은 살아 있을 때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살아 있을 때 경외하지 않으면, 그때 가서 무슨 기회가 있겠습니까? 모든 사람에게 기회가 주어지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그런 은혜를 다 받는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요나는 음부의 깊은 곳에 갇혔고, 그곳 지옥의 벌레들은 죽지도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지만, 음부는 참으로 끔찍한 곳입니다. 제가 예전에 어떤 분을 사역할 때 갑자기 숨이 멎은 적이 있었습니다. ‘아이고, 세상에!’ 그때 저와 동역자들의 기도 소리가 어떻게 변했는지 아십니까? 그렇게 30분이 지난 후 그 사람이 서서히 깨어났습니다. 세상에! 그 사람은 음부를 한 바퀴 돌고 와서 음부가 어떻게 생겼는지 제게 말해주었는데, 정말 무시무시했습니다.
요나는 음부에 이르러 문득 깨달았습니다.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이제야 말이 부드러워지기 시작합니다. 전에는 “괜찮으니 날 던지라”고 하더니, 지금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못합니다. 그리고 그가 하나님께 부르짖었을 때, 하나님께서 응답하셨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뉘앙스가 느껴지십니까? 그는 물고기 뱃속에서 기도했습니다. 물고기에게 삼켜지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잠깐 음부를 경험했는데, 지극히 끔찍한 모습이었습니다. 결국 그가 음부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자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의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져내셨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영계의 일들에 관심이 아주 많습니다. 화인 사명 신학이 영계에 대해 아는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합니다. 어느 해인가 저희 어머니가 알츠하이머(치매)에 걸리셨는데,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건 분명 영계의 일이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기도했고, 어머니의 치매가 치유되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제가 그 귀신을 박살 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의 두 다리가 냉장고에서 갓 꺼낸 고기처럼 차가워졌던 적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 중에도 그런 분이 계실지 모릅니다. 제가 간절히 기도하자 어머니가 깨어나셨습니다. 어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아, 엄마가 마귀에게 붙잡혀 어디로 끌려갔었는지 아니? 수뢰(물감옥)에 갇혔는데 물이 무릎까지 차오르고 얼음장처럼 차가웠단다. 동북 사람들 말로 뼛속까지 시릴 정도로 차가웠어. 얼어 죽는 줄 알았다. 아들아, 네가 그렇게 기도해주지 않았으면 엄마는 돌아오지 못했을 거다.”
형제자매 여러분, 꼭 아셔야 합니다. 왜 우리 가운데서 기도하면 이런 질병들이 다 낫는 것일까요? 질병의 이면에는 영계의 역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영계의 일은 참으로 신기합니다. 저는 저의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어머니를 살려냈습니다. 또 한 번은 어머니가 귀신에게 짓눌려 끌려다니셨는데, 겉보기에는 제 앞에 살아 계셨지만 이미 헛소리를 하고 계셨습니다. 제가 또 간절히 기도하자 어머니가 다시 돌아오셨습니다. 어머니께서 노인성 질환을 앓으신 것은 제게는 크나큰 은혜였습니다. 영계의 수많은 일을 알게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음부는 결코 장난칠 만한 곳이 아닙니다.
여러분 꼭 알아야 합니다. 요나는 이 일을 겪고 나서야 깨달았는데, 진작 왜 그러지 못했을까요? 전에는 몰랐던 것입니다. 요나는 선지자였음에도 음부의 무서움을 몰랐고, 그저 자기를 던져버리면 끝나는 줄 알았지만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음부의 깊은 곳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자 하나님께서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져내셨으니, 하나님은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구원하셨습니까? 하나님은 큰 물고기를 보내어 요나를 삼키게 하셨고, 문을 여시며 요나를 바다 밑바닥에서 건져내셨습니다. 바다 밑바닥이 얼마나 깊을까요? 알 수 없습니다. 적어도 수백 미터는 되었을 것입니다. 탁! 그 큰 물고기가 요나를 건져 올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큰 물고기가 요나를 삼킨 후에야 요나는 이런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2.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응답하셨다
제가 이렇게 말하면 ‘세상에 그런 일이 어디 있어?’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괜찮습니다. 나중에 그곳에 가보시면 요나를 본받으십시오. ‘세상에! 왼쪽에 우두, 오른쪽에 마면이 있구나!’ 하고 보게 될 테니까요.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응답하셨습니다. 왜 요나는 구원이 여호와께로 말미암는다고 했을까요? 바로 이 뜻입니다. 구원은 여호와께로 말미암는 것이지, 우리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대단히 어리석고 억지스러운 사람들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그 못된 고집은 요나보다 나을 게 별로 없습니다. 아십니까? 요나는 참 억지스러웠지요? “나를 던지라”고 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한 것일까요?
예전에 한 자매님이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차가 산산조각이 났는데, 자매님은 차에서 나오면서 가벼운 찰과상만 입었으니 하나님의 보호를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차에서 나오자마자 씩씩대며 화를 냈습니다. “흥! 왜 한 번에 딱 안 죽고 살았담?” 그 말을 듣고 저는 ‘도대체 무슨 생각일까?’ 싶었습니다. 바로 제멋대로인 고집입니다. 그런데 요나가 문득 깨닫고 고백한 것입니다. “나의 하나님은 참으로 좋으신 분이구나! 구원은 하나님께로서 나는 것이구나.” 만약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지 않으시고, ‘어디 한번 씩씩대 봐라, 똥고집 부려봐라’ 하셨다면 어땠을까요? 하나님께서 “네가 어디 한번 자존심 세워봐라, 음부의 떡을 쪄줄 테니 먹기 싫어도 먹어야 할 것이다”라고 하셨을 것입니다.
아이고, 말씀드리지만 사람은 참으로 제멋대로입니다! 하지만 나중에 요나는 회개했습니다. 무엇을 회개했을까요? 환난 중에 부르짖으니 물고기가 왔고, 문도 열렸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요나는 깨달았습니다. ‘내 생명은 하나님이 구원하신 것이다.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져내셨고, 음부의 무더기 같은 사망의 큰 구덩이에서 건져내셨구나.’ 여러분, 그 구덩이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싶으십니까? 어떤 분은 “목사님은 보셨습니까?”라고 묻습니다. 저는 못 봤고, 그런 것을 보고 싶지도 않습니다. 저는 오직 나의 하나님만 뵙고 싶을 뿐입니다.
하지만 제가 사역했던 사람들 중에도 요나처럼 그렇게 고집불통인 구석이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구덩이에 다녀온 적이 있는데, 기도받다가 숨이 끊어졌을 때 어디로 갔겠습니까? 그 구덩이로 간 것입니다. 아이고, 그 구덩이 바닥에는 온통 팔뚝만 한 구더기들이 가득했습니다. 젓가락만 한 구더기만 해도 끔찍하고 징그러운데, 구더기가 팔뚝만 한 굵기에 다들 곧추서서 입을 쩍쩍 벌리고 소리를 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큰 구덩이는 엄청나게 깊었고, 주변은 마치 우물처럼 깎아지른 절벽인데 위쪽은 미끌미끌했습니다. 그 자매는 벽에 겨우 달라붙어 있었습니다. 살아난 뒤에 제게 말하기를, 제가 “내 기도 소리가 들렸습니까?” 하고 물으니 “네! 들렸어요! 그래서 속으로 ‘제발 기도 멈추지 마세요’ 하고 소리 질렀어요”라고 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요? 제가 기도를 멈추기만 하면 그녀가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갔던 것입니다. 그러다 제가 다시 기도하면 어떤 힘이 그녀를 위로 끌어올렸습니다. 정말 무섭지 않습니까? 몇 미터만 더 미끄러져 내려가면 팔뚝만 한 거대한 구더기들이 있는 곳인데, 기겁할 일이지요. 사람은 이런 일을 몇 번 겪어보아야 제멋대로 구는 고집을 꺾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여러분이 굳이 경험하고 싶다면, 차라리 요나와 같은 표적을 경험하십시오. 요나의 표적, 이것을 바로 회개라고 부릅니다. 사람은 음부를 보기 전에는 눈물을 흘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때때로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무슨 탄식일까요? 사람의 완고함에 대한 탄식입니다. 우리 중국 사람들은 흔히 ‘남쪽 벽에 부딪혀봐야 돌아보고, 관 뚜껑을 봐야 눈물을 흘린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기어이 음부를 보아야만 눈물을 흘리시겠습니까? 꼭 음부 속에 들어가서야 하나님께 부르짖어야겠습니까? 그럴 필요가 어디 있습니까? 살아 있을 때 하나님을 경외하고, 더 이상 제멋대로 굴지 마십시오. 제멋대로 굴어서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초창기 우리 교회가 아직 그렇게 강력하게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던 시절이 기억납니다. 이공대 학생이었던 스물한두 살쯤 된 젊은 형제가 있었는데, 조금 철이 없었습니다. 그가 “귀신을 한번 겪어보고 싶어요”라고 하더군요. 제가 “겪을 게 없어서 하필 귀신을 겪고 싶어 하느냐?”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정말로 귀신에게 사로잡혀 온몸을 떨며 바닥에서 경련을 일으켰습니다. 저희 몇 사람이 진땀을 빼며 한참 기도한 끝에야 겨우 그를 건져냈습니다. 제가 ‘이게 사서 고생하는 것 아니냐? 굳이 귀신을 겪어봐야겠느냐? 귀신을 겪어서 뭐 하려고?’ 했습니다. 완고해서 그렇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물으십니다. 당시에는 이런 말이 없었을 수도 있지만, 제가 지어낸 말입니다. “요나야, 아직도 제멋대로 굴래?”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다시 이런 일이 생기면 또 바다에 던져달라고 할래?” “바다에 던져달라고 안 하겠습니다.” “교훈을 얻었느냐?” “얻었습니다.” 아이들도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자주 철없이 굴지 않습니까? 그런 철없는 짓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십니까? 사실 요나 같은 사람이 참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는 여전히 풍성한 은혜와 긍휼이 있으시며, 이것이 바로 회개의 표적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구덩이에서 건져내셨고, 이때 그는 큰 물고기 뱃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순서가 맞지 않습니까? 큰 물고기 뱃속으로 들어갔으니, ‘아이고, 이제야 겨우 좀 숨을 돌리겠네. 비록 냄새는 별로 안 좋아서 수산시장 냄새 같지만, 그래도 음부의 냄새보다는 낫지. 여긴 그래도 견딜 만하네’ 싶었겠지요. 물론 큰 물고기 입속이 더 좋았겠지만 뱃속이어도 비록 썩은 생선이나 썩은 새우 같은 게 널려 있어도 음부는 아니니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입니다.
‘아이고, 하나님!’ 요나는 서둘러 기도하며 주님께 감사했고, 구출받았습니다. 그가 그 큰 물고기 뱃속에서 무엇을 경험했습니까? 그는 물고기 뱃속에서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더니”라고 말합니다. 제가 말씀드리지만, 사람이란 참…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니 또 마음이 혼미해진 것입니다. 마음이 왜 또 혼미해졌을까요?
3.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더니
요나가 다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왜일까요? 그는 물고기 뱃속에서 혼잣말로 투덜거렸습니다. “이게 무슨 몹쓸 곳이야? 왜 이렇게 냄새가 나! 어디서 이런 비린내가 나는 거야?” 불평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불평하다 보니 마음이 혼미해지고, 마음이 혼미해지니 물고기 뱃속에서는 냄새가 점점 더 지독해지고 악취가 심해져, 마치 새우젓 통 속에 빠진 꼴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새우젓 드셔보셨습니까? 새우젓 통 속에 담겨 있으니 본인도 새우젓의 일부가 되어가는 것 같았겠지요. 세상에! 정신이 혼미해지자 얼른 하나님의 뜻에 맞는 생각을 떠올렸습니다. 요나는 다시 여호와를 생각하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도하자 냄새가 조금 줄어드는 것 같았습니다. 불평하면 안 되겠구나, 다시 그 음부로 돌아가고 싶단 말인가?
제가 말씀드리지만, 요나 이 친구 참 억지스럽습니다. 우리 중에도 요나 같은 사람이 꽤 많다고 봅니다. 요나는 속으로 ‘다시는 안 그래야지! 내 마음이 혼미해질 때 얼른 하나님을 생각해야겠다. 그리하여 내 기도가 주의 전에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사오니,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물고기 뱃속에서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은, 새우젓 통 속에서 감사드리는 것과 비슷합니다. 결국 요나는 더는 고집을 부리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물으십니다. “니느웨로 갈래, 안 갈래?” 요나가 대답합니다. “약속합니다, 꼭 가겠습니다. 서원하건대 반드시 가겠습니다.”
저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진작 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진작 갔더라면 새우젓 통 속에 절여질 필요가 어디 있었겠습니까? 굳이 음부까지 한 바퀴 돌고 올 필요가 어디 있었겠습니까? 왜 굳이 큰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 비린내와 악취를 맡으며 고생을 해야 했습니까? 숨이 막힐 지경이었지요. 하나님도 참 유머가 있으십니다. 유에프오(UFO)를 타고 날아오게 하셨으면 얼마나 멋집니까? 그런데 큰 물고기를 보내 그를 삼키게 하셨습니다.
며칠 동안 삼켜져 있었는지 아십니까? 밤낮 사흘 동안이었습니다. 이 사흘 밤낮 동안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사흘 동안 잠깐 어리석게 굴다 회개하고, 또 멍청하게 굴다 회개하고. 냄새가 심해지면 기도해서 줄어들고, 냄새가 좀 덜해지면 또 불평하다가 다시 냄새가 심해지고. 아이고, 사흘 밤낮을 겪고 나서야 요나는 마침내 그 못된 고집을 고쳤습니다.
우리 형제자매들 중에도 요나 같은 기질이 있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회개의 교훈을 도무지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걸핏하면 어리석은 고집을 피웁니다. 요나는 마음이 단순히 피곤했던 것이 아니라, 마음속으로 억지를 부렸던 것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마음속으로 멍청하게 굴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한 것은, 하나님은 참으로 인내심이 크신 분이라는 점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사흘 밤낮 동안 참아주셨습니다.
이렇게 몇 번을 엎치락뒤치락한 끝에 요나가 내린 결론은 바로 “구원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음이니이다”였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마땅히 우리를 구원하셔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본래 우리를 모기나 개미를 눌러 죽이듯 단번에 없애버리실 수도 있었습니다. 본래는 그렇습니다. 우리는 다 지독하게 어리석지 않습니까? 우리는 늘 마음속으로 멍청한 짓을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래도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말씀드리지만, 우리 중에 하나님의 치유를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치유를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럼에도 우리를 고쳐주셨습니다. 우리 중에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단 한 명도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여기까지 말씀드리며, 모든 형제자매들이 요나처럼 고백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겠나이다.” 여러분의 금은보화를 바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감사하는 목소리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를 사망에서 건져내셨음을 감사하고, 우리를 음부의 권세에서 건져내셨음을 감사하며, 우리의 저주를 짊어지시고 우리의 고통을 담당하셨음을 감사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어찌 그리 넓고 깊고 높으신지요! 그분의 은혜는 참으로 기묘합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며, 감사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며,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마땅히 행할 본분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면 누가 감히 이 땅 위에 설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께 온전히 감사하며 지난날을 깊이 반성해야 합니다. 지난 수많은 세월 동안 여러분은 얼마나 자주 요나처럼 굴었습니까? 그것이 바로 완고함입니다. 여러분이 마음을 부드럽게 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행했다면, 굳이 음부까지 한 바퀴 돌고 올 일이 있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만 순종했다면, 굳이 그 큰 물고기 뱃속에 들어갈 일이 있었겠습니까? 우리 중에 마음이 완고한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아주 많습니다. 물론 저도 쉰 발자국 도망친 자가 백 발자국 도망친 자를 비웃는 격으로, 때로는 지독하게 완고할 때가 있습니다.
정말로 마음을 부드럽게 낮추면 훨씬 덜 고생하지 않겠습니까? 할 일 없이 물고기 뱃속에는 뭐 하러 들어갑니까? 거기로 관광 가셨습니까? 고생스럽기만 합니다. 거기에 들어갈 필요 없이, 우리는 매일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사람이 제멋대로 구는 것은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은 일종의 어리석음입니다. 말씀드리지만, 어리석은 사람들은 뼛속까지 자기가 꽤 괜찮은 줄로 착각합니다.
요나는 평소 선지자로 일하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선포했고, 다 잘 돌아갔습니다. 다 잘되니 기고만장해진 것이지요. 우리 형제자매들 중에도 수많은 일을 겪고서도 뼛속까지 완고한 분들이 있습니다. 지난날의 어리석음을 반성해보라고 하면 너무나 어려워합니다. 스스로 ‘아니야, 난 똑똑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게 바로 요나 아닙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회개하지 않으면 오직 요나의 표적밖에 없으니, 자신을 철저히 돌아보고 조정하십시오.
4. 요나의 반성: 구원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음이니이다
요나는 음부를 겪고, 큰 물고기 뱃속을 겪으며 한 바퀴 돌고 난 뒤, 뱃속에서 깊이 회개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구원받을 자격이 없는데도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셨으니, 나는 깊이 회개해야 한다.’ 이전에는 귀로만 하나님에 대해 듣고, 음부에 대해 듣고, 지옥에 대해 듣고, 큰 물고기 뱃속에 대해 들었지만, 이번에는 눈으로 하나님을 뵙고 직접 하나님을 경험한 것입니다. 욥도 이전에는 귀로만 하나님을 들었으나 일련의 재앙을 겪은 후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었습니다. 요나도 회개했고 욥도 회개했습니다. 우리는 결코 요나처럼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성경》 어디에도 요나가 잘했다고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제가 여러분께 드릴 수 있는 권면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이 예수님처럼 부드러워지고,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여 교만하게 굴지 않는다면 훨씬 덜 고생할 것입니다. 말씀드리지만,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잘못했다는 명백한 증거일 뿐입니다. 요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스스로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의 기준에 한참이나 미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물으신 질문에 그는 단 하나도 대답하지 못했고, 결국 요나는 자신이 참으로 어리석은 자였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므로 구속의 은혜는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는 것이며,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요나가 겪었던 것과 같은 경험을 했다고 해서 무슨 대단한 일인 양 착각하지 마십시오. 길거리를 어깨에 힘주고 활보하며 자기가 물고기 뱃속에서 나온 사람이라도 되는 양 굴지 마십시오. 그 은혜가 마땅히 받을 만해서 받은 것이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그저 하나님의 은혜일 뿐이며, 하나님의 은혜는 하늘보다 높으시니 우리는 회개해야 합니다.
그것은 자랑할 만한 증거가 아닙니다. 자랑하려거든 우리의 마음이 부드러워져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행하며 더 이상 완고하게 거역하지 않는 것을 자랑하십시오. 하나님이 동쪽으로 가라 하시면 서쪽으로 가고, 개를 쫓으라 하시면 닭을 잡으러 가니, 결국 하나님께서 물고기 뱃속에 집어넣으시는 것입니다. 가끔 보면 우리 형제자매들 중에도 완고하기 짝이 없는 고집이 있습니다. 제 생각에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베푸신 은혜는 입으로 토해내게 하신 것이지만, 만약 우리 형제자매들이라면 엉덩이 쪽으로 배설되게 하셨을지도 모릅니다. 그것도 은혜이긴 하지만, 그게 무슨 대단한 일입니까? 전혀 대단하지 않습니다.
여러분께 솔직히 말씀드리지만, 저는 이 세상에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습니다. 걸려 넘어질 사람은 넘어져도 상관없습니다. 제가 한 자매님을 사역할 때, 그녀는 온 가족이 지역 교회의 목사님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언니가 안타깝게도 작년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온 가족이 큰 슬픔에 잠겼습니다. 언니가 병원에 가서 검사하니 암이었습니다. 언니는 “난 아픈 거 안 무서워, 난 괜찮아, 하나님이 계시잖아”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집에 돌아오니 너무 아파서 결국 다시 입원했습니다. 비참하게 암으로 죽어가면서도 끝내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말씀드리지만, 전통적인 신학 관념은 참으로 가증스럽습니다. 얼마나 많은 교회가 사람의 손으로 지은 전을 짓고 있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다른 불을 드리고 있습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기가 하나님을 돕고 있다고 착각하며, 하나님의 진노를 사면서도 알지 못하는지 정말로 비참할 따름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떨기 시작하십시오. 저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저는 눈치가 빨라서 상황이 안 좋다 싶으면 얼른 회개하며, 늘 ‘내가 뭔가 잘못했구나’라고 생각합니다. 구원은 여호와 하나님께로 말미암으니, 제게는 오직 회개할 몫밖에 없습니다. 늘 ‘이것을 잘못했구나, 저것을 잘못했구나, 이것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구나, 저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구나’ 하며 하나님의 말씀 앞에 깨어 경성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신학의 핵심 이념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알아가기를 추구하는 데에는 끝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제 성경공부와 설교를 들으시면 ‘목사님이 또 성장하셨네’ 하고 느끼실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목사님의 영적 높이가 또 높아졌네’ 하실 것입니다. 왜일까요? 저는 늘 제 높이가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에도 형제자매들에게 ‘내가 밑천이 다 떨어졌다’고 말했습니다. ‘아이고, 어찌해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 내 재주는 여기까지인가 보다.’ 자신이 가진 것이 고작 그것뿐임을 깨닫고 자신의 무능을 인정할 때, 다시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아, 하나님은 참으로 좋으신 분이구나. 하나님은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시지, 나를 필요로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시구나! 나는 하나님을 도우러 온 것이 아니라, 은혜를 입으러 온 것이다.’
하나님께서 저를 온전히 사용하여 주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그릇이 되게 하시기를 간구합니다. 하나님, 평생 주님을 더욱 알아가기를 끊임없이 추구하게 하시고, 평생 주의 뜻 안에서 행하며 때를 따라 형제자매들에게 영의 양식을 나누어주게 하옵소서. 얼마나 좋습니까!
5. 요약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반성입니다. 여러분, 반성문을 쓸 줄 아십니까? 우리의 반성을 보면 공허하고 판에 박힌 겉치레 말만 늘어놓습니다. 진솔한 이야기를 하십시오! 물고기 뱃속에서 어떻게 빠져나왔는지, 무엇을 잘못했는지, 어떤 인식이 틀렸었는지, 어디서 이해가 천박했는지, 어느 부분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렸는지를 나누십시오. 이것이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본분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한 것은, 우리가 회개할 때 충분히 깊이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물고기의 입을 통해 우리를 토해내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물고기의 반대편으로 나오지 않은 것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요나는 회개를 잘하여 사흘 밤낮을 겪었지만 괜찮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이미 물고기 뱃속에서 하루를 보낸 분도 계실 테고, 이틀을 보낸 분도 계실 것이며, 어떤 분은 이제 곧 토해내질 직전이라 온몸에 비린내가 진동할지도 모릅니다. 이미 토해내진 분도 계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 베푸시기를 원합니다.
우리 머릿속에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가 얼마나 많이 들어차 있습니까? 어떤 사람들의 머릿속은 얼마나 더러운지, “이 세상에서 죄 안 짓고 하나님께 죄 안 짓고 어떻게 살아?”라고 생각합니다. 그 말을 한번 들어보십시오.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 죄를 짓고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거스르면서 살고 싶으십니까?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 그것은 장난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죄짓는 일로 장난치지 말고 철저히 회개하십시오.
요나의 반성은 훌륭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네 반성이 괜찮구나” 하시고 큰 물고기로 하여금 그를 토해내게 하셨습니다. 토해내진 후, 감사하게도 요나는 깊이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또 문제가 도졌습니다.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자 화를 냈던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물고기 뱃속에 덜 있었던 걸까요? 지난번에는 큰 물고기가 삼켰으니, 이번에는 작은 물고기로 바꿔주실까요? 세상에, 안이 얼마나 비좁겠습니까! 물고기에게 삼켜졌는데 안쪽에 공간이 없어서 “왜 이렇게 집이 좁아?” 하며 불평하게 만들면 어쩌겠습니까? 사람에게는 회개해야 할 부분이 너무나 많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해 《요나서》를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요나처럼 살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처럼 살며, 사도 바울처럼 살아서 우리가 있는 그곳이 하나님으로 인하여 안디옥이 되게 합시다! 안디옥이 무엇입니까? 예전에 여러 선지자와 많은 목회자들이 싱가포르에 와서 이곳이 장차 안디옥이 될 것이라고 선포했지만, 지금 보면 전혀 안디옥 같지 않습니다.
어느 날 저는 ‘하나님, 이곳이 정말 안디옥입니까?’ 하고 깊이 고민했습니다. 수많은 선지자가 이곳에 와서 안디옥이라고 선포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하나님의 은혜가 제게 임했고,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습니다. 저는 문득 하나님으로부터 한 가지 계시를 받았습니다. 알고 보니 이곳이 안디옥인 이유는, 이곳에 교회가 몇 개나 있고 기독교인이 몇 퍼센트나 되는가에 달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이곳에 바울과 같은 무리가 있기 때문이며, 사실은 바울 한 사람만 있어도 충분합니다. 교회를 세우는 바울 한 사람만 있다면 그곳은 바로 안디옥이라 불리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서 있는 그곳이 안디옥이라 불리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바울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교회를 세워 수많은 사람의 축복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목숨을 값으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사도 바울과 같은 사람들은 몸에 늘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짊어지고 다녔으며, 몸에 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자신들을 보호하게 했습니다. 그는 요나처럼 며칠씩 물고기 뱃속에 들어갈 필요가 없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택하신 사도 바울, 그리고 모세와 같은 사람들 외에 성경에 또 누가 있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모세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 한 분, 사도 바울 한 사람, 이들은 모두 스스로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말한 분들입니다. 모세는 자신이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다고 했고, 예수 그리스도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하셨으며, 바울도 자신이 겸손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을 자랑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러했습니다.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행하실 수 있음을 아는 것, 이것이 바로 겸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을 무리 지어 일으키사,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하시기를 원합니다. 수십 년 전에 어떤 사람이 예언하기를, 한 교회가 일어나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일어날 텐데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고 사도 바울과 같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담대하게 이 말씀이 바로 우리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를 통해 나타나기를 서원하며,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를 이끌어 온 땅에 가득하기를 원합니다. 아멘!
지금 말씀을 전하다 보니 제 자신도 매우 흥분됩니다. 물고기 입이냐 엉덩이냐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있는 곳이 바로 선교지가 되고, 교회를 세우는 곳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있는 한, 그곳은 우리로 인하여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아멘!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