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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요나 2장 -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느니라!

2024-10-09 4,485 约拿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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约拿书02章-约拿的祷告
  • 1 约拿在鱼腹中祷告耶和华他的 神,
  • 2 说:“我遭遇患难求告耶和华,你就应允我;从阴间的深处呼求,你就俯听我的声音。
  • 3 你将我投下深渊,就是海的深处;大水环绕我,你的波浪洪涛都漫过我身。
  • 4 我说:我从你眼前虽被驱逐,我仍要仰望你的圣殿。
  • 5 诸水环绕我,几乎淹没我;深渊围住我;海草缠绕我的头。
  • 6 我下到山根,地的门将我永远关住。耶和华我的 神啊,你却将我的性命从坑中救出来。
  • 7 我心在我里面发昏的时候,我就想念耶和华。我的祷告进入你的圣殿,达到你的面前。
  • 8 那信奉虚无之神的人,离弃怜爱他们的主;
  • 9 但我必用感谢的声音献祭与你。我所许的愿,我必偿还。救恩出于耶和华。”
  • 10 耶和华吩咐鱼,鱼就把约拿吐在旱地上。

《答疑解惑》

안녕하세요, 여러분. 우리 함께 《요나서》 2장을 보겠습니다. 《요나서》 2장의 주제는 다들 아주 정확하게 짚으셨습니다. 와, 글공부를 그리 많이 하지 않으시고 글씨를 아이처럼 쓰시는 어르신 분들도 다 맞추셨는데, 주제는 바로 “구원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음이니이다”입니다. 구원이 여호와께로 말미암는다면, 그렇다면 구원이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차근차근 나누어 보겠습니다.

지난 장에서 요나는 참 흥미로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는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진짜로 바다에 던져지자, 큰일이 났습니다. 요나가 음부(스올)를 경험한 것입니다. 사람이 무언가를 겪어보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제대로 알기 어렵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사람은 무언가를 겪어보아야 합니다. 요나는 배 위에 있었습니다. 침대 위에 누워 있었던 게 아닙니다. 침대였다면 골치 아팠겠지요. 그는 배 위에 있으면서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이 재앙이 나 한 사람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일에서 요나의 반응과 태도는 참 흥미롭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지요. 나중에 보니 많은 사람이 이런 반응을 보입니다. 관 뚜껑을 봐야 눈물을 흘린다는데, ‘죽기밖에 더하겠어? 괜찮아, 어차피 다 초탈했어’ 하는 식입니다. 하지만 요나는 음부를 경험했고, 막상 음부에 가보니 상황이 생각과 전혀 달랐습니다. ‘아이고, 사는 게 이렇게 힘든데 죽으면 끝인 줄 알았어?’ 제가 말씀드리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1. 음부를 경험한 요나

여러분, 지금 내가 잘 살고 있고 아무 일 없다고 해서 안심하면 절대로 안 됩니다. 사람이 왜 죽기 직전이 되면 죽고 싶어 하지 않는지 아십니까? 잘 모르시겠지만, 사람은 죽기 직전이 되면 다들 죽기를 원치 않습니다. 요나는 덤덤하게 “나를 던지라”고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죽으면 다 끝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아닙니다. 사람은 죽으면 끝이고, 불 끄면 끝나는 것처럼 아무것도 안 남는다고 생각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세상에 그렇게 쉬운 일이 어디 있습니까? 만약 그렇게 거저 끝나는 일이라면 참 좋겠지요, 하나님을 경외할 필요도 없고요.

요나가 이전에 “나를 던지라”고 했던 일은, 우리 시절의 만담 하나를 떠올리게 합니다. 어떤 사람이 술에 취해 큰길 한복판에 드러누워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나를 밟고 지나가라, 나를 밟고 지나가라!” 사람들이 “얼른 일어나, 차 온다!” 하니 “무슨 차인데?” 묻습니다. “자전거!” 자전거 탄 사람이 할 일 없어서 당신을 치고 지나가 덤터기 쓰고 집안 망하겠습니까? 술 취한 사람과 무슨 시비를 걸겠어요? 결국 피해 지나갔습니다. 조금 뒤에 또 차가 옵니다. “무슨 차인데?” “오토바이!” 오토바이도 그냥 피해 지나갔습니다. 할 일 없어서 당신한테 엮이겠습니까? 잠시 후 또 차가 옵니다. “무슨 차인데?” “구급차!” 그러자 벌떡 일어났습니다. 깔려 죽으면 안 되니까요. 왜 그럴까요? 구급차는 사람 치어 죽여도 보상 안 해줄 수 있거든요, 네가 거기 누워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알지 못해서 ‘죽으면 그만이지’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에 어떻게 그런 쉬운 일이 있겠습니까? 요나라는 사람은 차라리 죽을지언정 가지 않겠다고 했지만, 죽음이 무엇인지 몰랐던 것입니다. 결국 바다 밑바닥에 던져졌고, 그는 음부의 깊은 곳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음부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던져지자마자 “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에 던지셨으므로 큰 물이 나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요나는 자신이 잘못 생각했던 것이지요. 던져지면 곧 숨이 끊어질 줄 알았는데, 숨이 왜 이렇게 긴 걸까요? 숨이 긴 것이 아니라, 삶과 죽음 사이에서 아주 영적인 경험을 한 것입니다. 여러분, 살아 있을 때 깨닫지 못한다면 자업자득입니다! 살아 있을 때 제대로 깨닫지 못하면 꼴좋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불 끄면 끝나는 것처럼 한순간에 끝날 줄 알았는데, 그런 게 어디 있습니까!

요나는 말합니다.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 물이 나를 영혼까지 둘렀사오며 깊음이 나를 에워싸고 바다 풀이 내 머리를 감쌌나이다.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그가 기록한 것은 자신이 경험한 것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할 것이라 짐작합니다. 실제로 그가 기록하지 않은 경험들이 훨씬 많았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 모든 과정에서 요나는 바다 밑바닥까지 내리눌렸고, 거기에 어떤 문이 있는 것을 발견했으며, 그 문 안으로 처박혀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궈더강의 만담 같지 않습니까? 큰 가마솥 기름에 꽈배기 같은 것을 둘씩 꼬아서 튀겨내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니 그런 게 아닙니다. 바다에 던져지면 끝인 줄 아십니까? 큰일 납니다. 그래서 요나는 “내가 음부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바다 밑바닥에 있는 것들은 정말 무섭습니다. 섬 같은 곳에는 귀신이 많습니다. 우리 중에 바닷가에 사시는 분 계십니까? 바닷가에서 고기잡이로 먹고사는 사람들은 다 무언가를 섬깁니다. 왜 그럴까요? 바다가 너무 무섭고 두려움을 주기 때문에, 무엇이든 빌어야 하는 것입니다.

요나의 내면에는 고집스럽고 제멋대로인 구석이 있었습니다. 우리 중에도 제멋대로인 분들이 많습니다. 음부를 보지 못한 사람들은 다 제멋대로 굽니다. 하지만 음부를 본 사람은 압니다. ‘아이고!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그래서 말씀드립니다. 사람은 살아 있을 때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살아 있을 때 경외하지 않으면, 그때 가서 무슨 기회가 있겠습니까? 모든 사람에게 기회가 주어지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그런 은혜를 다 받는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요나는 음부의 깊은 곳에 갇혔고, 그곳 지옥의 벌레들은 죽지도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지만, 음부는 참으로 끔찍한 곳입니다. 제가 예전에 어떤 분을 사역할 때 갑자기 숨이 멎은 적이 있었습니다. ‘아이고, 세상에!’ 그때 저와 동역자들의 기도 소리가 어떻게 변했는지 아십니까? 그렇게 30분이 지난 후 그 사람이 서서히 깨어났습니다. 세상에! 그 사람은 음부를 한 바퀴 돌고 와서 음부가 어떻게 생겼는지 제게 말해주었는데, 정말 무시무시했습니다.

요나는 음부에 이르러 문득 깨달았습니다.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이제야 말이 부드러워지기 시작합니다. 전에는 “괜찮으니 날 던지라”고 하더니, 지금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못합니다. 그리고 그가 하나님께 부르짖었을 때, 하나님께서 응답하셨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뉘앙스가 느껴지십니까? 그는 물고기 뱃속에서 기도했습니다. 물고기에게 삼켜지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잠깐 음부를 경험했는데, 지극히 끔찍한 모습이었습니다. 결국 그가 음부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자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의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져내셨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영계의 일들에 관심이 아주 많습니다. 화인 사명 신학이 영계에 대해 아는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합니다. 어느 해인가 저희 어머니가 알츠하이머(치매)에 걸리셨는데,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건 분명 영계의 일이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기도했고, 어머니의 치매가 치유되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제가 그 귀신을 박살 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의 두 다리가 냉장고에서 갓 꺼낸 고기처럼 차가워졌던 적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 중에도 그런 분이 계실지 모릅니다. 제가 간절히 기도하자 어머니가 깨어나셨습니다. 어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아, 엄마가 마귀에게 붙잡혀 어디로 끌려갔었는지 아니? 수뢰(물감옥)에 갇혔는데 물이 무릎까지 차오르고 얼음장처럼 차가웠단다. 동북 사람들 말로 뼛속까지 시릴 정도로 차가웠어. 얼어 죽는 줄 알았다. 아들아, 네가 그렇게 기도해주지 않았으면 엄마는 돌아오지 못했을 거다.”

형제자매 여러분, 꼭 아셔야 합니다. 왜 우리 가운데서 기도하면 이런 질병들이 다 낫는 것일까요? 질병의 이면에는 영계의 역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영계의 일은 참으로 신기합니다. 저는 저의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어머니를 살려냈습니다. 또 한 번은 어머니가 귀신에게 짓눌려 끌려다니셨는데, 겉보기에는 제 앞에 살아 계셨지만 이미 헛소리를 하고 계셨습니다. 제가 또 간절히 기도하자 어머니가 다시 돌아오셨습니다. 어머니께서 노인성 질환을 앓으신 것은 제게는 크나큰 은혜였습니다. 영계의 수많은 일을 알게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음부는 결코 장난칠 만한 곳이 아닙니다.

여러분 꼭 알아야 합니다. 요나는 이 일을 겪고 나서야 깨달았는데, 진작 왜 그러지 못했을까요? 전에는 몰랐던 것입니다. 요나는 선지자였음에도 음부의 무서움을 몰랐고, 그저 자기를 던져버리면 끝나는 줄 알았지만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음부의 깊은 곳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자 하나님께서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져내셨으니, 하나님은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구원하셨습니까? 하나님은 큰 물고기를 보내어 요나를 삼키게 하셨고, 문을 여시며 요나를 바다 밑바닥에서 건져내셨습니다. 바다 밑바닥이 얼마나 깊을까요? 알 수 없습니다. 적어도 수백 미터는 되었을 것입니다. 탁! 그 큰 물고기가 요나를 건져 올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큰 물고기가 요나를 삼킨 후에야 요나는 이런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2.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응답하셨다

제가 이렇게 말하면 ‘세상에 그런 일이 어디 있어?’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괜찮습니다. 나중에 그곳에 가보시면 요나를 본받으십시오. ‘세상에! 왼쪽에 우두, 오른쪽에 마면이 있구나!’ 하고 보게 될 테니까요.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응답하셨습니다. 왜 요나는 구원이 여호와께로 말미암는다고 했을까요? 바로 이 뜻입니다. 구원은 여호와께로 말미암는 것이지, 우리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대단히 어리석고 억지스러운 사람들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그 못된 고집은 요나보다 나을 게 별로 없습니다. 아십니까? 요나는 참 억지스러웠지요? “나를 던지라”고 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한 것일까요?

예전에 한 자매님이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차가 산산조각이 났는데, 자매님은 차에서 나오면서 가벼운 찰과상만 입었으니 하나님의 보호를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차에서 나오자마자 씩씩대며 화를 냈습니다. “흥! 왜 한 번에 딱 안 죽고 살았담?” 그 말을 듣고 저는 ‘도대체 무슨 생각일까?’ 싶었습니다. 바로 제멋대로인 고집입니다. 그런데 요나가 문득 깨닫고 고백한 것입니다. “나의 하나님은 참으로 좋으신 분이구나! 구원은 하나님께로서 나는 것이구나.” 만약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지 않으시고, ‘어디 한번 씩씩대 봐라, 똥고집 부려봐라’ 하셨다면 어땠을까요? 하나님께서 “네가 어디 한번 자존심 세워봐라, 음부의 떡을 쪄줄 테니 먹기 싫어도 먹어야 할 것이다”라고 하셨을 것입니다.

아이고, 말씀드리지만 사람은 참으로 제멋대로입니다! 하지만 나중에 요나는 회개했습니다. 무엇을 회개했을까요? 환난 중에 부르짖으니 물고기가 왔고, 문도 열렸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요나는 깨달았습니다. ‘내 생명은 하나님이 구원하신 것이다.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져내셨고, 음부의 무더기 같은 사망의 큰 구덩이에서 건져내셨구나.’ 여러분, 그 구덩이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싶으십니까? 어떤 분은 “목사님은 보셨습니까?”라고 묻습니다. 저는 못 봤고, 그런 것을 보고 싶지도 않습니다. 저는 오직 나의 하나님만 뵙고 싶을 뿐입니다.

하지만 제가 사역했던 사람들 중에도 요나처럼 그렇게 고집불통인 구석이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구덩이에 다녀온 적이 있는데, 기도받다가 숨이 끊어졌을 때 어디로 갔겠습니까? 그 구덩이로 간 것입니다. 아이고, 그 구덩이 바닥에는 온통 팔뚝만 한 구더기들이 가득했습니다. 젓가락만 한 구더기만 해도 끔찍하고 징그러운데, 구더기가 팔뚝만 한 굵기에 다들 곧추서서 입을 쩍쩍 벌리고 소리를 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큰 구덩이는 엄청나게 깊었고, 주변은 마치 우물처럼 깎아지른 절벽인데 위쪽은 미끌미끌했습니다. 그 자매는 벽에 겨우 달라붙어 있었습니다. 살아난 뒤에 제게 말하기를, 제가 “내 기도 소리가 들렸습니까?” 하고 물으니 “네! 들렸어요! 그래서 속으로 ‘제발 기도 멈추지 마세요’ 하고 소리 질렀어요”라고 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요? 제가 기도를 멈추기만 하면 그녀가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갔던 것입니다. 그러다 제가 다시 기도하면 어떤 힘이 그녀를 위로 끌어올렸습니다. 정말 무섭지 않습니까? 몇 미터만 더 미끄러져 내려가면 팔뚝만 한 거대한 구더기들이 있는 곳인데, 기겁할 일이지요. 사람은 이런 일을 몇 번 겪어보아야 제멋대로 구는 고집을 꺾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여러분이 굳이 경험하고 싶다면, 차라리 요나와 같은 표적을 경험하십시오. 요나의 표적, 이것을 바로 회개라고 부릅니다. 사람은 음부를 보기 전에는 눈물을 흘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때때로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무슨 탄식일까요? 사람의 완고함에 대한 탄식입니다. 우리 중국 사람들은 흔히 ‘남쪽 벽에 부딪혀봐야 돌아보고, 관 뚜껑을 봐야 눈물을 흘린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기어이 음부를 보아야만 눈물을 흘리시겠습니까? 꼭 음부 속에 들어가서야 하나님께 부르짖어야겠습니까? 그럴 필요가 어디 있습니까? 살아 있을 때 하나님을 경외하고, 더 이상 제멋대로 굴지 마십시오. 제멋대로 굴어서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초창기 우리 교회가 아직 그렇게 강력하게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던 시절이 기억납니다. 이공대 학생이었던 스물한두 살쯤 된 젊은 형제가 있었는데, 조금 철이 없었습니다. 그가 “귀신을 한번 겪어보고 싶어요”라고 하더군요. 제가 “겪을 게 없어서 하필 귀신을 겪고 싶어 하느냐?”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정말로 귀신에게 사로잡혀 온몸을 떨며 바닥에서 경련을 일으켰습니다. 저희 몇 사람이 진땀을 빼며 한참 기도한 끝에야 겨우 그를 건져냈습니다. 제가 ‘이게 사서 고생하는 것 아니냐? 굳이 귀신을 겪어봐야겠느냐? 귀신을 겪어서 뭐 하려고?’ 했습니다. 완고해서 그렇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물으십니다. 당시에는 이런 말이 없었을 수도 있지만, 제가 지어낸 말입니다. “요나야, 아직도 제멋대로 굴래?”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다시 이런 일이 생기면 또 바다에 던져달라고 할래?” “바다에 던져달라고 안 하겠습니다.” “교훈을 얻었느냐?” “얻었습니다.” 아이들도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자주 철없이 굴지 않습니까? 그런 철없는 짓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십니까? 사실 요나 같은 사람이 참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는 여전히 풍성한 은혜와 긍휼이 있으시며, 이것이 바로 회개의 표적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구덩이에서 건져내셨고, 이때 그는 큰 물고기 뱃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순서가 맞지 않습니까? 큰 물고기 뱃속으로 들어갔으니, ‘아이고, 이제야 겨우 좀 숨을 돌리겠네. 비록 냄새는 별로 안 좋아서 수산시장 냄새 같지만, 그래도 음부의 냄새보다는 낫지. 여긴 그래도 견딜 만하네’ 싶었겠지요. 물론 큰 물고기 입속이 더 좋았겠지만 뱃속이어도 비록 썩은 생선이나 썩은 새우 같은 게 널려 있어도 음부는 아니니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입니다.

‘아이고, 하나님!’ 요나는 서둘러 기도하며 주님께 감사했고, 구출받았습니다. 그가 그 큰 물고기 뱃속에서 무엇을 경험했습니까? 그는 물고기 뱃속에서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더니”라고 말합니다. 제가 말씀드리지만, 사람이란 참…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니 또 마음이 혼미해진 것입니다. 마음이 왜 또 혼미해졌을까요?

3.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더니

요나가 다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왜일까요? 그는 물고기 뱃속에서 혼잣말로 투덜거렸습니다. “이게 무슨 몹쓸 곳이야? 왜 이렇게 냄새가 나! 어디서 이런 비린내가 나는 거야?” 불평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불평하다 보니 마음이 혼미해지고, 마음이 혼미해지니 물고기 뱃속에서는 냄새가 점점 더 지독해지고 악취가 심해져, 마치 새우젓 통 속에 빠진 꼴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새우젓 드셔보셨습니까? 새우젓 통 속에 담겨 있으니 본인도 새우젓의 일부가 되어가는 것 같았겠지요. 세상에! 정신이 혼미해지자 얼른 하나님의 뜻에 맞는 생각을 떠올렸습니다. 요나는 다시 여호와를 생각하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도하자 냄새가 조금 줄어드는 것 같았습니다. 불평하면 안 되겠구나, 다시 그 음부로 돌아가고 싶단 말인가?

제가 말씀드리지만, 요나 이 친구 참 억지스럽습니다. 우리 중에도 요나 같은 사람이 꽤 많다고 봅니다. 요나는 속으로 ‘다시는 안 그래야지! 내 마음이 혼미해질 때 얼른 하나님을 생각해야겠다. 그리하여 내 기도가 주의 전에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사오니,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물고기 뱃속에서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은, 새우젓 통 속에서 감사드리는 것과 비슷합니다. 결국 요나는 더는 고집을 부리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물으십니다. “니느웨로 갈래, 안 갈래?” 요나가 대답합니다. “약속합니다, 꼭 가겠습니다. 서원하건대 반드시 가겠습니다.”

저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진작 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진작 갔더라면 새우젓 통 속에 절여질 필요가 어디 있었겠습니까? 굳이 음부까지 한 바퀴 돌고 올 필요가 어디 있었겠습니까? 왜 굳이 큰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 비린내와 악취를 맡으며 고생을 해야 했습니까? 숨이 막힐 지경이었지요. 하나님도 참 유머가 있으십니다. 유에프오(UFO)를 타고 날아오게 하셨으면 얼마나 멋집니까? 그런데 큰 물고기를 보내 그를 삼키게 하셨습니다.

며칠 동안 삼켜져 있었는지 아십니까? 밤낮 사흘 동안이었습니다. 이 사흘 밤낮 동안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사흘 동안 잠깐 어리석게 굴다 회개하고, 또 멍청하게 굴다 회개하고. 냄새가 심해지면 기도해서 줄어들고, 냄새가 좀 덜해지면 또 불평하다가 다시 냄새가 심해지고. 아이고, 사흘 밤낮을 겪고 나서야 요나는 마침내 그 못된 고집을 고쳤습니다.

우리 형제자매들 중에도 요나 같은 기질이 있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회개의 교훈을 도무지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걸핏하면 어리석은 고집을 피웁니다. 요나는 마음이 단순히 피곤했던 것이 아니라, 마음속으로 억지를 부렸던 것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마음속으로 멍청하게 굴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한 것은, 하나님은 참으로 인내심이 크신 분이라는 점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사흘 밤낮 동안 참아주셨습니다.

이렇게 몇 번을 엎치락뒤치락한 끝에 요나가 내린 결론은 바로 “구원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음이니이다”였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마땅히 우리를 구원하셔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본래 우리를 모기나 개미를 눌러 죽이듯 단번에 없애버리실 수도 있었습니다. 본래는 그렇습니다. 우리는 다 지독하게 어리석지 않습니까? 우리는 늘 마음속으로 멍청한 짓을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래도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말씀드리지만, 우리 중에 하나님의 치유를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치유를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럼에도 우리를 고쳐주셨습니다. 우리 중에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단 한 명도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여기까지 말씀드리며, 모든 형제자매들이 요나처럼 고백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겠나이다.” 여러분의 금은보화를 바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감사하는 목소리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를 사망에서 건져내셨음을 감사하고, 우리를 음부의 권세에서 건져내셨음을 감사하며, 우리의 저주를 짊어지시고 우리의 고통을 담당하셨음을 감사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어찌 그리 넓고 깊고 높으신지요! 그분의 은혜는 참으로 기묘합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며, 감사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며,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마땅히 행할 본분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면 누가 감히 이 땅 위에 설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께 온전히 감사하며 지난날을 깊이 반성해야 합니다. 지난 수많은 세월 동안 여러분은 얼마나 자주 요나처럼 굴었습니까? 그것이 바로 완고함입니다. 여러분이 마음을 부드럽게 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행했다면, 굳이 음부까지 한 바퀴 돌고 올 일이 있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만 순종했다면, 굳이 그 큰 물고기 뱃속에 들어갈 일이 있었겠습니까? 우리 중에 마음이 완고한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아주 많습니다. 물론 저도 쉰 발자국 도망친 자가 백 발자국 도망친 자를 비웃는 격으로, 때로는 지독하게 완고할 때가 있습니다.

정말로 마음을 부드럽게 낮추면 훨씬 덜 고생하지 않겠습니까? 할 일 없이 물고기 뱃속에는 뭐 하러 들어갑니까? 거기로 관광 가셨습니까? 고생스럽기만 합니다. 거기에 들어갈 필요 없이, 우리는 매일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사람이 제멋대로 구는 것은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은 일종의 어리석음입니다. 말씀드리지만, 어리석은 사람들은 뼛속까지 자기가 꽤 괜찮은 줄로 착각합니다.

요나는 평소 선지자로 일하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선포했고, 다 잘 돌아갔습니다. 다 잘되니 기고만장해진 것이지요. 우리 형제자매들 중에도 수많은 일을 겪고서도 뼛속까지 완고한 분들이 있습니다. 지난날의 어리석음을 반성해보라고 하면 너무나 어려워합니다. 스스로 ‘아니야, 난 똑똑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게 바로 요나 아닙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회개하지 않으면 오직 요나의 표적밖에 없으니, 자신을 철저히 돌아보고 조정하십시오.

4. 요나의 반성: 구원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음이니이다

요나는 음부를 겪고, 큰 물고기 뱃속을 겪으며 한 바퀴 돌고 난 뒤, 뱃속에서 깊이 회개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구원받을 자격이 없는데도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셨으니, 나는 깊이 회개해야 한다.’ 이전에는 귀로만 하나님에 대해 듣고, 음부에 대해 듣고, 지옥에 대해 듣고, 큰 물고기 뱃속에 대해 들었지만, 이번에는 눈으로 하나님을 뵙고 직접 하나님을 경험한 것입니다. 욥도 이전에는 귀로만 하나님을 들었으나 일련의 재앙을 겪은 후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었습니다. 요나도 회개했고 욥도 회개했습니다. 우리는 결코 요나처럼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성경》 어디에도 요나가 잘했다고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제가 여러분께 드릴 수 있는 권면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이 예수님처럼 부드러워지고,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여 교만하게 굴지 않는다면 훨씬 덜 고생할 것입니다. 말씀드리지만,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잘못했다는 명백한 증거일 뿐입니다. 요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스스로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의 기준에 한참이나 미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물으신 질문에 그는 단 하나도 대답하지 못했고, 결국 요나는 자신이 참으로 어리석은 자였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므로 구속의 은혜는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는 것이며,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요나가 겪었던 것과 같은 경험을 했다고 해서 무슨 대단한 일인 양 착각하지 마십시오. 길거리를 어깨에 힘주고 활보하며 자기가 물고기 뱃속에서 나온 사람이라도 되는 양 굴지 마십시오. 그 은혜가 마땅히 받을 만해서 받은 것이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그저 하나님의 은혜일 뿐이며, 하나님의 은혜는 하늘보다 높으시니 우리는 회개해야 합니다.

그것은 자랑할 만한 증거가 아닙니다. 자랑하려거든 우리의 마음이 부드러워져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행하며 더 이상 완고하게 거역하지 않는 것을 자랑하십시오. 하나님이 동쪽으로 가라 하시면 서쪽으로 가고, 개를 쫓으라 하시면 닭을 잡으러 가니, 결국 하나님께서 물고기 뱃속에 집어넣으시는 것입니다. 가끔 보면 우리 형제자매들 중에도 완고하기 짝이 없는 고집이 있습니다. 제 생각에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베푸신 은혜는 입으로 토해내게 하신 것이지만, 만약 우리 형제자매들이라면 엉덩이 쪽으로 배설되게 하셨을지도 모릅니다. 그것도 은혜이긴 하지만, 그게 무슨 대단한 일입니까? 전혀 대단하지 않습니다.

여러분께 솔직히 말씀드리지만, 저는 이 세상에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습니다. 걸려 넘어질 사람은 넘어져도 상관없습니다. 제가 한 자매님을 사역할 때, 그녀는 온 가족이 지역 교회의 목사님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언니가 안타깝게도 작년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온 가족이 큰 슬픔에 잠겼습니다. 언니가 병원에 가서 검사하니 암이었습니다. 언니는 “난 아픈 거 안 무서워, 난 괜찮아, 하나님이 계시잖아”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집에 돌아오니 너무 아파서 결국 다시 입원했습니다. 비참하게 암으로 죽어가면서도 끝내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말씀드리지만, 전통적인 신학 관념은 참으로 가증스럽습니다. 얼마나 많은 교회가 사람의 손으로 지은 전을 짓고 있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다른 불을 드리고 있습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기가 하나님을 돕고 있다고 착각하며, 하나님의 진노를 사면서도 알지 못하는지 정말로 비참할 따름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떨기 시작하십시오. 저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저는 눈치가 빨라서 상황이 안 좋다 싶으면 얼른 회개하며, 늘 ‘내가 뭔가 잘못했구나’라고 생각합니다. 구원은 여호와 하나님께로 말미암으니, 제게는 오직 회개할 몫밖에 없습니다. 늘 ‘이것을 잘못했구나, 저것을 잘못했구나, 이것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구나, 저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구나’ 하며 하나님의 말씀 앞에 깨어 경성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신학의 핵심 이념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알아가기를 추구하는 데에는 끝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제 성경공부와 설교를 들으시면 ‘목사님이 또 성장하셨네’ 하고 느끼실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목사님의 영적 높이가 또 높아졌네’ 하실 것입니다. 왜일까요? 저는 늘 제 높이가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에도 형제자매들에게 ‘내가 밑천이 다 떨어졌다’고 말했습니다. ‘아이고, 어찌해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 내 재주는 여기까지인가 보다.’ 자신이 가진 것이 고작 그것뿐임을 깨닫고 자신의 무능을 인정할 때, 다시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아, 하나님은 참으로 좋으신 분이구나. 하나님은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시지, 나를 필요로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시구나! 나는 하나님을 도우러 온 것이 아니라, 은혜를 입으러 온 것이다.’

하나님께서 저를 온전히 사용하여 주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그릇이 되게 하시기를 간구합니다. 하나님, 평생 주님을 더욱 알아가기를 끊임없이 추구하게 하시고, 평생 주의 뜻 안에서 행하며 때를 따라 형제자매들에게 영의 양식을 나누어주게 하옵소서. 얼마나 좋습니까!

5. 요약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반성입니다. 여러분, 반성문을 쓸 줄 아십니까? 우리의 반성을 보면 공허하고 판에 박힌 겉치레 말만 늘어놓습니다. 진솔한 이야기를 하십시오! 물고기 뱃속에서 어떻게 빠져나왔는지, 무엇을 잘못했는지, 어떤 인식이 틀렸었는지, 어디서 이해가 천박했는지, 어느 부분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렸는지를 나누십시오. 이것이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본분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한 것은, 우리가 회개할 때 충분히 깊이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물고기의 입을 통해 우리를 토해내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물고기의 반대편으로 나오지 않은 것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요나는 회개를 잘하여 사흘 밤낮을 겪었지만 괜찮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이미 물고기 뱃속에서 하루를 보낸 분도 계실 테고, 이틀을 보낸 분도 계실 것이며, 어떤 분은 이제 곧 토해내질 직전이라 온몸에 비린내가 진동할지도 모릅니다. 이미 토해내진 분도 계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 베푸시기를 원합니다.

우리 머릿속에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가 얼마나 많이 들어차 있습니까? 어떤 사람들의 머릿속은 얼마나 더러운지, “이 세상에서 죄 안 짓고 하나님께 죄 안 짓고 어떻게 살아?”라고 생각합니다. 그 말을 한번 들어보십시오.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 죄를 짓고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거스르면서 살고 싶으십니까?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 그것은 장난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죄짓는 일로 장난치지 말고 철저히 회개하십시오.

요나의 반성은 훌륭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네 반성이 괜찮구나” 하시고 큰 물고기로 하여금 그를 토해내게 하셨습니다. 토해내진 후, 감사하게도 요나는 깊이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또 문제가 도졌습니다.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자 화를 냈던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물고기 뱃속에 덜 있었던 걸까요? 지난번에는 큰 물고기가 삼켰으니, 이번에는 작은 물고기로 바꿔주실까요? 세상에, 안이 얼마나 비좁겠습니까! 물고기에게 삼켜졌는데 안쪽에 공간이 없어서 “왜 이렇게 집이 좁아?” 하며 불평하게 만들면 어쩌겠습니까? 사람에게는 회개해야 할 부분이 너무나 많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해 《요나서》를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요나처럼 살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처럼 살며, 사도 바울처럼 살아서 우리가 있는 그곳이 하나님으로 인하여 안디옥이 되게 합시다! 안디옥이 무엇입니까? 예전에 여러 선지자와 많은 목회자들이 싱가포르에 와서 이곳이 장차 안디옥이 될 것이라고 선포했지만, 지금 보면 전혀 안디옥 같지 않습니다.

어느 날 저는 ‘하나님, 이곳이 정말 안디옥입니까?’ 하고 깊이 고민했습니다. 수많은 선지자가 이곳에 와서 안디옥이라고 선포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하나님의 은혜가 제게 임했고,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습니다. 저는 문득 하나님으로부터 한 가지 계시를 받았습니다. 알고 보니 이곳이 안디옥인 이유는, 이곳에 교회가 몇 개나 있고 기독교인이 몇 퍼센트나 되는가에 달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이곳에 바울과 같은 무리가 있기 때문이며, 사실은 바울 한 사람만 있어도 충분합니다. 교회를 세우는 바울 한 사람만 있다면 그곳은 바로 안디옥이라 불리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서 있는 그곳이 안디옥이라 불리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바울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교회를 세워 수많은 사람의 축복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목숨을 값으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사도 바울과 같은 사람들은 몸에 늘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짊어지고 다녔으며, 몸에 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자신들을 보호하게 했습니다. 그는 요나처럼 며칠씩 물고기 뱃속에 들어갈 필요가 없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택하신 사도 바울, 그리고 모세와 같은 사람들 외에 성경에 또 누가 있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모세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 한 분, 사도 바울 한 사람, 이들은 모두 스스로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말한 분들입니다. 모세는 자신이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다고 했고, 예수 그리스도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하셨으며, 바울도 자신이 겸손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을 자랑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러했습니다.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행하실 수 있음을 아는 것, 이것이 바로 겸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을 무리 지어 일으키사,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하시기를 원합니다. 수십 년 전에 어떤 사람이 예언하기를, 한 교회가 일어나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일어날 텐데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고 사도 바울과 같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담대하게 이 말씀이 바로 우리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를 통해 나타나기를 서원하며,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를 이끌어 온 땅에 가득하기를 원합니다. 아멘!

지금 말씀을 전하다 보니 제 자신도 매우 흥분됩니다. 물고기 입이냐 엉덩이냐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있는 곳이 바로 선교지가 되고, 교회를 세우는 곳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있는 한, 그곳은 우리로 인하여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아멘!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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