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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열왕기상 9장 -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건축한 보상은 지극히 풍성하다

2026-08-07 40,441 列王纪上

相关经文

列王纪上-耶和华再向所罗门显现
  • 1 所罗门建造耶和华殿和王宫,并一切所愿意建造的都完毕了,
  • 2 耶和华就二次向所罗门显现,如先前在基遍向他显现一样,
  • 3 对他说:“你向我所祷告祈求的,我都应允了。我已将你所建的这殿分别为圣,使我的名永远在其中;我的眼、我的心也必常在那里。
  • 4 你若效法你父大卫,存诚实正直的心行在我面前,遵行我一切所吩咐你的,谨守我的律例典章,
  • 5 我就必坚固你的国位在以色列中,直到永远,正如我应许你父大卫说:‘你的子孙必不断人坐以色列的国位。’
  • 6 倘若你们和你们的子孙转去不跟从我,不守我指示你们的诫命律例,去侍奉敬拜别神,
  • 7 我就必将以色列人从我赐给他们的地上剪除,并且我为己名所分别为圣的殿也必舍弃不顾,使以色列人在万民中作笑谈,被讥诮。
  • 8 这殿虽然甚高,将来经过的人必惊讶、嗤笑,说:‘耶和华为何向这地和这殿如此行呢?’
  • 9 人必回答说:‘是因此地的人离弃领他们列祖出埃及地之耶和华他们的 神,去亲近别神,侍奉敬拜他,所以耶和华使这一切灾祸临到他们。’”
  • 10 所罗门建造耶和华殿和王宫,这两所二十年才完毕了。
  • 11 推罗王希兰曾照所罗门所要的,资助他香柏木、松木,和金子;所罗门王就把加利利地的二十座城给了希兰。
  • 12 希兰从推罗出来,察看所罗门给他的城邑,就不喜悦,
  • 13 说:“我兄啊,你给我的是什么城邑呢?”他就给这城邑之地起名叫迦步勒,直到今日。
  • 14 希兰给所罗门一百二十他连得金子。
  • 15 所罗门王挑取服苦的人,是为建造耶和华的殿、自己的宫、米罗、耶路撒冷的城墙、夏琐、米吉多,并基色。
  • 16 先前埃及王法老上来攻取基色,用火焚烧,杀了城内居住的迦南人,将城赐给他女儿所罗门的妻作妆奁。
  • 17 所罗门建造基色、下伯·和仑、
  • 18 巴拉,并国中旷野里的达莫,
  • 19 又建造所有的积货城,并屯车和马兵的城,与耶路撒冷、黎巴嫩,以及自己治理的全国中所愿建造的。
  • 20 至于国中所剩下不属以色列人的亚摩利人、赫人、比利洗人、希未人、耶布斯人,
  • 21 就是以色列人不能灭尽的,所罗门挑取他们的后裔作服苦的奴仆,直到今日。
  • 22 惟有以色列人,所罗门不使他们作奴仆,乃是作他的战士、臣仆、统领、军长、车兵长、马兵长。
  • 23 所罗门有五百五十督工的,监管工人。
  • 24 法老的女儿从大卫城搬到所罗门为她建造的宫里。那时,所罗门才建造米罗。
  • 25 所罗门每年三次在他为耶和华所筑的坛上献燔祭和平安祭,又在耶和华面前的坛上烧香。这样,他建造殿的工程完毕了。
  • 26 所罗门王在以东地红海边,靠近以禄的以旬·迦别制造船只。
  • 27 希兰差遣他的仆人,就是熟悉泛海的船家,与所罗门的仆人一同坐船航海。
  • 28 他们到了俄斐,从那里得了四百二十他连得金子,运到所罗门王那里。

《答疑解惑》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우리는 열왕기상 9장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이 장에서 다루는 내용은 모두 진짜 금과 은, 즉 실질적인 유익에 관한 것입니다. 이 장의 주제는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건축한 보상은 지극히 풍성하다'입니다.

오늘 우리 모두는 한 가지 관념을 바꾸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 고생하며 사는 것이라고 결코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함으로 편안하고 누리는 삶을 삽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여 편안한 삶을 살다가, 살아가면서 사람이 점차 나태해지고 흐트러지기 시작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치명적인 일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께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모든 것을 다 가지게 되면 믿음을 실천할 때가 매우 적어집니다. 사람이 언제 하나님을 가장 신뢰하고 의지합니까? 바로 고난을 겪을 때 하늘과 땅을 부르짖으며 기도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란 참으로 다 누리지 못할 복은 있어도, 겪어내지 못할 고난은 없는 법입니다.

솔로몬의 기도를 응답하신 하나님

앞 장에서 솔로몬의 기도는 이러했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보소서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 (열왕기상 8:27)

이번 장에 이르러 여호와께서 응답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전에 기브온에서 나타나심 같이 다시 솔로몬에게 나타나사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기도와 네가 내 앞에서 간구한 바를 내가 들었은즉 나는 네가 건축한 이 성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내 이름을 영원히 그 곳에 두며 내 눈길과 내 마음이 항상 거기에 있으리니 (열왕기상 9:2-3)

솔로몬의 마음가짐이 매우 훌륭했기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셨습니다. 사실 교회를 세우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교회를 다 짓고 나서 하나님께서 이곳에 거하셔야 한다는 점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이곳에 계시지 않는다면, 그런 것을 지어서 무엇 하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다시 말해,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 교회를 세웠는데 하나님의 임재가 없다면 완전히 끝장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없으면 귀신의 임재가 있게 됩니다.

솔로몬의 기도는 이러했습니다. '하나님, 이곳은 주의 이름을 두기 위해 세운 처소입니다.' 왜 이렇게 해야 합니까? 이곳에서의 기도가 응답을 받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교회를 세웠는데, 세우고 나서 이곳에서의 기도가 전혀 응답받지 못한다면 도대체 무엇을 위해 애쓰고 있는 것입니까? 교회를 다 세웠는데 하나님의 동행하심은커녕 귀신의 동행이 있어서, 교회 안에서 암에 걸리는 비율이 세상 사람들의 비율보다 두 배나 높다면, 이것이 얼마나 끔찍하고 치명적인 일이라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솔로몬의 기도는 무엇을 구했습니까? 하나님의 임재를 구했습니다! 우리도 교회를 세울 때 하나님의 임재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없다면 순전히 헛수고입니다. 우리 교회도 꽤나 험난한 길을 걸어온 적이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교회를 세웠으나 하나님의 임재가 없고, 기도해도 응답이 없으며, 게다가 저주를 받고 있으면서도 스스로를 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야말로 비극입니다. 그래서 저는 교회를 세우려면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교회를 세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어디서 옵니까? 교회를 세우는 것에 대해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온전한 안목을 가질 때 옵니다.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하나님을 용납하지 못하거늘, 우리가 교회를 세웠다고 하나님이 거하시겠습니까? 우리는 진실로 겸손해져서 하나님의 뜻대로 건축해야 합니다. 그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마가복음 10:29)

이 말씀을 다 읽고 나면 어떤 느낌이 듭니까? '아이고 맙소사, 이를 어쩌나?' 싶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요구 기준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기준에 따라 교회를 세우지 않고,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형제자매들에게 요구하지 않는다면, 어디서 하나님의 임재가 오겠습니까? 어디서 하나님의 축복이 오겠습니까? 그러나 일단 당신의 그곳에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의 이름을 두는 처소로 구별되면, 그것은 대단한 일이 됩니다. 재물도 많아지고, 물질도 풍성해지며, 기쁨도 넘치게 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얼마나 기쁩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교회를 세우면 정말 말할 수 없이 좋습니다. 사람의 일생에 이 밖에 다른 갈망이 더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많은 사람의 믿음이 너무 둔하여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밥이 되실 수도 있고, 약이 되실 수도 있으며, 돈처럼 쓰일 수도 있어서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게 하시고, 나아가 기쁨으로 충만하게 하십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때로 저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저 역시 은근히 자랑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건대, 교회를 세우고 나면 얼마나 좋은지 아십니까!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목회하면서 나처럼 이렇게 누리며 사역하는 사람은 정말 많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이 계시니 얼마나 좋은가!" 이 일이 이루어지고 나면 정말 대단해집니다. 왜 대단하다고 하는지 아십니까? 무엇을 하든 다 남는 장사이기 때문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히람과의 거래에서 얻은 유익

장사를 할 때 손해를 보려고 합니까, 돈을 벌려고 합니까? 장사를 하면 돈을 벌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솔로몬이 두 궁 곧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을 이십 년 만에 건축하기를 마치고 갈릴리 땅의 성읍 스무 곳을 히람에게 주었으니 이는 두로 왕 히람이 솔로몬에게 그 온갖 소원대로 백향목과 잣나무와 금을 제공하였음이라 히람이 두로에서 와서 솔로몬이 자기에게 준 성읍들을 보고 눈에 들지 아니하여 이르기를 내 형제여 내게 준 이 성읍들이 이러한가 하고 이름하여 가불 땅이라 하였더니 그 이름이 오늘까지 있느니라 히람이 금 일백이십 달란트를 왕에게 보내었더라 (열왕기상 9:10-14)

이득을 보았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히람이 손해를 보았는지 아닌지는 우리가 상관할 바가 아니고, 어쨌든 솔로몬은 이익을 얻었습니다. 여러분은 "목사님, 그렇게 하는 건 도덕적이지 못한 것 아닙니까?"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도덕적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이 솔로몬도 참 흥미롭습니다. 어떤 거래를 했든, 그 거래가 솔로몬이 놓은 덫이든 무엇이든 간에, 결국 돈을 벌었습니다. 히람이 솔로몬에게 얼마나 주었습니까? 백향목, 잣나무, 금을 지원하고 성읍 스무 곳을 샀습니다. 그리고 히람이 그 성읍 스무 곳을 보았는데, 성읍이라는 것이 크기도 하고 작기도 하지 않습니까. 베이징도 성읍(도시)이고 매우 큽니다. 여러분 고향의 작은 시골 현(縣)과 베이징을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중국의 도시들은 1선, 2선, 3선, 4선, 5선 급으로 나뉩니다. 솔로몬이 어떤 도시를 그에게 주었습니까? 전부 18선 급의 작은 도시들을 히람에게 주었습니다. 1선 급 도시를 줄 수 있겠습니까? 줄 수 없지요. 이해가 되십니까? 돈을 벌었습니다. 도덕적이냐 아니냐는 우리는 논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사람에게 이익을 얻게 하십니까?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었습니다. 가나안 땅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준 것은 너희가 선해서가 아니라, 그 땅의 사람들이 심히 악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을 멸하시려는 것이라는 논리입니다. 그러므로 솔로몬이 성전을 짓고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응답하셨는데, 응답을 받았다고 해서 그것이 밥이 되고 돈이 될 수 있겠느냐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농담이 아닙니다. 저는 주님을 제대로 믿으면 정말로 돈처럼 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 이렇게 말할까요? 어떤 사람들은 인정하지 않지만, 성경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는 것을 모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부요하게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곰곰이 묵상해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적으로 가난해지셔서 우리를 영적으로 부요하게 하셨다"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말하면 곤란해집니다. 여러분 이해가 되시지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은행 계좌에 돈이 없었고, 주머니에 돈이 없었으며, 낡은 옷 한 벌마저도 그들이 나누어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영적인 가난이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예수님께 대한 대단한 불경이며,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이고, 신성모독에 가깝습니다.

히람과의 거래에서 이익을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종종 이 돈을 한 사람의 손에서 빼앗아 복을 받은 자에게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하나님의 기쁨을 구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기쁨을 구하지 않으면, 이리저리 돈을 모아봤자 병 한 번 나면 돈을 다 병원에 갖다 바치게 되지 않습니까? 병마에게 다 털리고 마는 것입니다. 어리석게 굴지 마십시오. 오늘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건대, 헌금을 드릴 때 결코 하나님께 팁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일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어떤 사람과 거래를 하면서, 구슬 하나로 양 한 마리를 바꾸고, 다시 양 한 마리로 소 한 마리를 바꾸고, 다시 소 한 마리로 집 한 채를 바꾸었다면, 그 구슬을 가져간 사람에 대해 우리가 상관할 게 무엇입니까? 자기가 바꾸고 싶어서 바꾼 것 아닙니까? 이해가 되시지요?

바로와의 거래에서 얻은 유익

전에 애굽 왕 바로가 올라와서 게셀을 쳐서 취하고 불사르고 그 성읍에 사는 가나안 사람을 죽이고 그 성읍을 자기 딸 솔로몬의 아내에게 예물로 주었더니 (열왕기상 9:16)

바로의 딸과 결혼했는데, 이 바로도 참 대단합니다. 올라가서 게셀을 쳐부수고 빼앗아 버렸습니다. 그가 빼앗은 것이 정당한지 아닌지, 도덕적인지 아닌지는, 어떤 나라들이 그린란드를 자기네 영토로 편입하려 하거나 캐나다를 자기 나라의 한 주로 병합하고 싶어 하는 것과 같으니 우리는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솔로몬은 어떻게 이 모든 것을 얻게 되었습니까? 그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건축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실 하나님의 축복이 정말로 필요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돈을 너무 사랑해서 오늘 큰돈을 벌고 싶고, 내일도 큰돈을 벌고 싶어 한다면, 결국 무엇을 얻겠습니까? 땡전 한 푼 없는 극심한 가난을 얻게 되지 않겠습니까? 만약 여러분이 오늘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일도 하나님을 사랑하며, 모레도 여전히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원하여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저는 우리의 하나님이 부요하신 하나님이심을 보증합니다.

사람이 가난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머릿속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믿지 않으며, 오직 스스로 기를 쓰고 움켜쥐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됩니까? 빚더미에 앉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보십시오, 바로와 솔로몬 사이에 얼마나 좋은 기회입니까! 문제는 무엇입니까? 당신이 바로의 딸을 마음에 들어 해도, 바로의 딸이 당신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솔로몬이 바로의 딸을 마음에 들어 했고, 바로의 딸도 솔로몬을 마음에 들어 했습니다. 그리고 바로의 딸이 솔로몬이 아니면 시집가지 않겠다고 바로를 들볶았습니다. "나를 솔로몬에게 시집보내 주세요."

매일 그렇게 조르니 바로가 보기에 '딸이 이렇게 원하니 어디 이야기나 한번 해보자' 한 것입니다. "그곳 게셀을 너의 혼수품으로 주겠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국가와 국가 사이에서, 바로 왕 같은 존재에게 혼수품이란 고작 십만 위안 정도의 돈이 아닙니다. 바로 왕은 솔로몬에게서 신부 대금을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딸을 시집보내면서 혼수품까지 딸려 보냈습니다. 차 한 대를 가져온 것도 아니고, 집 한 채를 가져온 것도 아니며, 광대한 땅과 성읍 하나를 통째로 가져왔습니다. 성읍이 몇 개나 더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그것은 엄청난 거액입니다.

어떤 사람은 "목사님, 돈을 그렇게 좋아하십니까?"라고 말합니다. 제가 돈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건대 우리 하나님은 사람이 가난하게 사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하나님이 어떻게 사람이 가난한 것을 좋아하시겠습니까? 솔로몬은 온갖 유익을 얻었습니다. 이 세상의 좋은 것들을 솔로몬이 다 차지했습니다. 오직 성전 건축 하나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왕위를 다투던 경쟁자이자 자신의 형인, 아마 넷째 형이었을 아도니야라는 정적을 완전히 꺾어버렸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니, 이제는 바로에게서도 큰 이득을 얻었습니다.

고역하는 노예들을 통해 얻은 유익

이스라엘 자손이 다 멸하지 못하므로 그 땅에 남아 있는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의 남아 있는 후손들을 솔로몬이 노예로 역사를 시켜 오늘까지 이르렀으되 (열왕기상 9:20-21)

성전을 건축하고 왕궁을 짓는 일은 일거리가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그 일들은 다 돈이 드는 일인데, 돈을 주지 않고서야 누가 일을 해 주겠습니까? 고역을 하는 자들이란 무엇입니까? 바로 노예들입니다. 공짜로 일하니 엄청난 돈을 절약한 것 아닙니까? 여러분 집에 노예 몇 명을 두고 밥만 먹여준다면, 남는 것은 다 여러분의 것이며 엄청난 돈을 버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건대, 겉으로 보기에 '솔로몬은 왜 이렇게 매정하고 독한가?' 싶겠지만 우리는 그것을 논하지 않겠습니다. 결코 우리 하나님을 단순한 자선사업가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 하나님은 없는 자의 손에 있는 그 얼마 안 되는 것마저 빼앗아 있는 자에게 주시는 분입니다. 여러분은 마태 효과를 아십니까?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하셨습니다. '아이고, 하나님은 참 너무하시네'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예를 들어 어떤 교회에는 형제자매 몇 명이 겨우겨우 헌금하며 그들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목회자가 제대로 하지 못해 설교에 말씀의 도(道)가 없고, 행하는 일도 바르지 못합니다. 그러자 헌금할 능력이 있는 그 몇 명이 보고 실망하게 되고, 하나님은 그들을 빼앗아 있는 자에게 주십니다. 여러분은 "그럼 누가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까? 당신만 가지고 있다는 겁니까?"라고 할지 모르지만, 그런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되지 않습니까? 여러분 천천히 곰곰이 묵상해 보십시오. 그렇지 않습니까? 이곳에 오면 복을 받고, 이곳에 오면 하나님의 임재가 있으니 하나님께서 그렇게 행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양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이고' 하면서 서로 사양하고 밀고 당길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그냥 받으십시오. 받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고역하는 노예들에 대해서도 우리는 도덕적 관념을 따지지 않고, 유익을 얻고 혜택을 누리는 관점에서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따져보려 한다면, "이 땅에 원래 그 사람들이 잘 살고 있었는데 당신이 그들을 쫓아내지 않았습니까? 예로부터 그들이 여기에 살았는데, 어떻게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주려고 사람들을 쫓아낼 수 있습니까? 예로부터 당신들 이스라엘의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빼앗아 주시겠다는데 어쩌겠습니까? 그러니 이 세상 어디에서 따지겠습니까? 복을 받은 자는 그저 잠잠히 복을 누리면 되고, 화를 당한 자는 어디 가서 따지겠습니까? 누구에게 따지겠습니까? 하나님을 대적하면서 누구에게 따지겠습니까? 하나님은 여러분 손에 있는 것을 빼앗아 있는 자에게 주시는데, 이것이 이치에 닿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까? 사실이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은 무엇을 탐하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자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히람의 집에 있는 물건을 탐내며 마음속으로 매일 탐욕을 부린다고 해서 하나님이 그것을 주실 것이라고 결코 생각하지 마십시오. 기억하십시오, 남의 재산을 탐내는 자는 저주를 받습니다. 그것은 십계명에서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되는 죄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솔로몬은 한 가지 일을 아주 잘했습니다. 그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우리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운다면, 두고 보십시오. 제가 굳이 그런 것을 탐낼 필요가 있겠습니까? 제가 매일 석유 사업을 하겠다고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할 일이 아닙니다. 무기 거래를 하는 것도 우리가 할 일이 아닙니다. 그럼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여러분이 복을 받는 것에 대해 제가 무엇을 했습니까? 저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복을 받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림에서 얻은 유익

솔로몬이 게셀과 아래 벧호론을 건축하고 또 바알랏과 그 땅의 들에 있는 다드몰과 자기에게 있는 모든 국고성과 병거성들과 마병의 성들을 건축하고 솔로몬이 또 예루살렘과 레바논과 그가 다스리는 온 땅에 건축하고자 하던 것을 다 건축하였는데 이스라엘 자손이 아닌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 중 남아 있는 모든 자 곧 이스라엘 자손이 다 멸하지 못하므로 그 땅에 남아 있는 그들의 자손들을 솔로몬이 노예로 역사를 시켜 오늘까지 이르렀으되 다만 이스라엘 자손은 솔로몬이 노예를 삼지 아니하였으니 그들은 군사와 그 신하와 고관과 대장이며 병거와 마병의 지휘관이 됨이었더라 솔로몬에게 일을 감독하는 우두머리 오백오십 명이 있어 일하는 백성을 다스렸더라 (열왕기상 9:17-23)

얼마나 좋습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을 모두 관리자로 훈련시켰고, 솔로몬은 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관리하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다스릴 사람이 없으면 스스로 다스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고역하는 자들을 관리하기가 쉽습니까? 어렵습니다. 그래서 550명의 감독관을 세우고 손에 채찍을 들려주었습니다. 일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채찍질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인가?"라고 묻겠지만, 이것은 하나님이 솔로몬을 통해 행하신 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잘 세우고, 모든 국고성과 병거성, 마병의 성, 예루살렘을 건축하며, 나라 안에서 건축하고자 한 모든 것을 지었습니다. 마치 오늘날 우리가 고속도로를 놓고, 수리 시설을 만들고, 여러 시설을 대규모로 건설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려면 유능한 인재를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모두 유능한 자들로 훈련시켜 그 일들을 다 감당하게 하니, 참으로 훌륭했습니다. 정치, 경제, 국정 운영이 모두 번영하고 흥왕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임재가 있었기 때문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셨기 때문이며, 하나님이 솔로몬의 기도에 응답하셨기 때문이고, 솔로몬의 생각 속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했기 때문입니다.

조선과 항해에서 얻은 유익

솔로몬 왕이 에돔 땅 홍해 물 가의 엘롯 근처 에시온게벨에서 배들을 지은지라 히람이 자기 종 곧 바다에 익숙한 사공들을 솔로몬의 종과 함께 그 배로 보내매 그들이 오빌에 이르러 거기서 금 사백이십 달란트를 얻고 솔로몬 왕에게로 가져왔더라 (열왕기상 9:26-28)

어느 나라인들 강성할 때 배를 만들지 않았겠습니까? 항해와 조선술이 뛰어난 나라는 반드시 흥왕하는 나라입니다. 그리고 번영하는 나라라면 반드시 배를 만들고 항해를 할 것입니다. 지금도 제해권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이스라엘은 그야말로 대단했습니다. 역사상 이스라엘의 영토가 솔로몬 때처럼 넓었던 적이 없었고, 나라의 통치 또한 솔로몬 때처럼 훌륭했던 적이 없었습니다.

왜 솔로몬처럼 훌륭하게 다스릴 수 있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셨기 때문이고, 하나님의 성전이 그곳에 있었으며, 하나님의 이름이 그 안에 거하고, 하나님의 눈이 항상 지켜보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 성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내 이름을 영원히 그곳에 두며 내 눈길과 내 마음이 항상 거기에 있으리라."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이 점을 결코 오해하지 마십시오. 나중에 주님을 엉터리로 믿고 제멋대로 행하면 큰 낭패를 보게 됩니다.

그 금이 얼마였습니까? 420달란트였습니다. 히람이 솔로몬에게 준 것은 얼마였습니까? 120달란트였습니다. 엄청난 거액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건대, 한 나라의 부유함에는 매우 신기한 일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한 가지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자세히 관찰해 보십시오. 이 세대에 우리 중화권 사람들이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지 않습니까? 이 세대에 우리 중화권 교회가 가장 부흥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 세대가 우리 중화권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는 세대가 아닙니까? 정말 그렇습니다. 미국, 캐나다, 유럽에 계신 분들도 한번 보십시오, 그렇지 않습니까? 오늘 우리가 세운 이 사명 신학(华人命定神学)이야말로 가장 체계적인 신학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중국의 강성함이 이것과 약간의 관련이 있지 않겠습니까? 관련이 있습니다. 남들이 인정하든 안 하든 우리와는 상관없지만, 우리 마음속으로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정말 그렇습니다. 불과 수십 년 만의 일입니다. 수십 년 전만 해도 싱가포르 사람들은 중국인들이 고기도 못 먹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신학마저도 우리가 세운 신학 체계가 되었습니다!

영국인들이 하나님을 가장 신뢰하고 의지하던 때를 빅토리아 여왕 시대라고 부르는데, 그 시대에 영국이 가장 부유했고 하나님을 가장 신뢰했습니다. 미국인들이 하나님을 가장 신뢰했을 때, 미국은 세계 최강국이었습니다. 이제 우리 중화권 사람들이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는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점점 더 강대해지고 있습니다. 중화권이 점점 더 강대해지고 있으며, 오히려 이 시대에 우리가 복음 전파의 바통을 이어받고 복음의 깃발을 높이 들어야 합니다. 바라건대 이 세대에 중화권 사명 신학의 체계적인 논리와 체계적인 신학을 통하여 수많은 사람에게 축복이 흘러가기를 원합니다.

얼마 전 한 목사님이 저를 찾아왔는데, 교회를 개척하고 건축하느라 매우 힘든 단계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저에게 왔을 때 제가 중화권 사명 신학의 핵심 개념을 설명해 주었더니 모든 의문과 곤혹스러움이 해결되었습니다. 그는 몹시 기뻐하며 "목사님, 제가 목사님께 올 때마다 전해주시는 말씀은 정말 너무나 영양가가 풍부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 역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솔로몬이 기뻐한 모든 것을 하나님이 주시다

솔로몬이 기뻐했던 것을 제가 어떻게 알까요? 솔로몬 자신이 전도서에 기록했듯이, 그가 기뻐한 모든 것을 하나님이 그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바로 왕의 딸을 아내로 맞이했으니 그야말로 선녀 같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아내를 맞이하고, 또 맞이하다가 방이 부족하면 후궁을 지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남자가 솔로몬처럼 되기를 바라겠지만, 우리에게는 솔로몬과 같은 지혜가 없을 뿐입니다.

솔로몬이 누리고자 했던 것을 보십시오. 그가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는 데는 7년이 걸렸고, 자신의 왕궁을 건축하는 데는 13년이 걸렸습니다. 듣기에 뭔가 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지어라, 마음껏 지어라. 우리는 돈이 부족하지 않다." 그러므로 솔로몬이 기뻐한 것, 경험하고 싶었던 것, 건축하고자 했던 것을 그는 모두 건축했습니다. 자신이 다스리는 전국에서 건축하고자 했던 모든 것을 다 지었습니다. 보십시오. 솔로몬이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과 자기가 원하던 모든 것을 건축하기를 마쳤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솔로몬이 단지 이것들만을 좋아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솔로몬은 하나님을 사랑했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그의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리하자 하나님께서 이토록 많은 아름다운 것들을 그에게 주셔서 누리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개의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이 고행승처럼 살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마치 지공 스님처럼 다니며 때를 뭉쳐 툭 튕겨내면서 만병통치약이라도 되는 양 착각하는, 그런 더러운 모습으로 살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에게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가운데 사역자나 목회자가 계시다면, 그분이 제가 전하는 열왕기상 9장 강해를 듣고 있다면 오늘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교회를 세운다면 그 기쁨은 대단히 크고 넘쳐나며, 모든 사람을 뛰어넘어 그야말로 하나의 거대한 누림과 안식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고백하건대, 저는 제가 하는 사역을 대단히 즐거워하고 누리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하나님은 제가 누리는 것을 기뻐하시며, 제가 고행승처럼 무거운 짐을 지고 고통당하는 것을 원치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수고하는 가운데 기뻐하기를 원하며, 이것이 바로 성전을 건축한 보상입니다. 제가 직접 경험한 바를 통해 형제자매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보상, 즉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세운 보상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깨닫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돈처럼 쓰일 수 있는 분입니다. 왜 재물신 같은 것을 섬깁니까? 그렇게 보잘것없는 존재를 왜 섬깁니까? 우리의 하나님은 돈처럼 쓰일 수 있는 분이시니, 재물신을 섬길 필요 없이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우리의 하나님은 우리의 치료자이시니 약처럼 드실 수 있습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우리의 기쁨이요, 우리의 만족이시며, 우리의 하나님은 우리의 지혜요, 우리의 모든 것이 되십니다!

만약 여러분에게 이러한 안목이 있다면, 사역자가 되는 것은 참으로 멋진 일입니다. 이 세상에 사역자가 되는 것보다 더 좋은 직업이 어디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직업도 사역자가 되는 것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도 사역자가 되었을 때 항상 기뻐했고, 그 어떤 것도 자기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제가 언변이 부족하여 말로 다 묘사하기 어렵습니다만, "정말 좋다!"라는 말 외에 무엇이 더 있겠습니까?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나게 좋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 있습니까? 왜 마땅히 얻어야 할 프로젝트를 얻지 못합니까?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지 않고 왜 그 프로젝트만을 사랑합니까? 어리석은 자여,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왜 라이브 방송이나 그런 잡다한 것들을 사랑합니까?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왜 일만 사랑합니까?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왜 돈만 사랑합니까? 모든 문제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데서 비롯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모든 저주가 사라집니다. 여러분이 저의 이 마음을 받아들이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경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기도와 네가 내 앞에서 간구한 바를 내가 들었은즉 나는 네가 건축한 이 성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내 이름을 영원히 그 곳에 두며 내 눈길과 내 마음이 항상 거기에 있으리니 네가 만일 네 아버지 다윗이 행함 같이 마음을 온전하게 하고 바르게 하여 내 앞에서 행하며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온갖 일에 순종하여 내 법도와 율례를 지키면 내가 네 아버지 다윗에게 말하기를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한 대로 네 이스라엘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려니와 만일 너희나 너희의 자손이 아주 돌아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가 너희 앞에 둔 나의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가서 다른 신을 섬겨 그것을 경배하면 내가 이스라엘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에서 끊어 버릴 것이요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거룩하게 구별한 이 성전이라도 내 앞에서 던져버리리니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가운데에서 속담거리와 이야기거리가 될 것이며 이 성전이 높을지라도 지나가는 자마다 놀라며 비웃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무슨 까닭으로 이 땅과 이 성전에 이같이 행하셨는고 하면 대답하기를 그들이 그들의 조상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을 따라가서 그를 경배하여 섬기므로 여호와께서 이 모든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심이라 하리라 하셨더라 (열왕기상 9:3-9)

이 구절을 읽고 나니 마음이 다소 무거워집니다. 솔로몬의 마음도 단번에 큰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경각심을 주고자 하십니다.

네가 네 아버지 다윗을 본받아 행하면,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네 자손 중에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만일 너희와 너희 자손이 나를 따르지 아니하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계명과 율례를 지키지 아니하며, 다른 신을 섬겨 경배하면 끝장입니다. 여러분, 결코 여러분의 믿음을 건물로서의 교회 위에 두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믿음을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했던 솔로몬의 그 성전 위에 두지 마십시오. 그것도 결국 돌과 나무와 금에 불과합니다.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경고, 하나님의 이름, 그리고 우리 내면의 마음과 생각이 진정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듣기에 참으로 두렵지 않습니까? 저는 종종 형제자매들에게 주님을 믿는 것은 큰 위험이 따르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이 지켜 행하면 그 보상은 지극히 풍성하지만, 지켜 행하지 않고 돌아서서 다른 신을 경배한다면 어떻게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이 성전 자체에 연연하지 않으십니다. 주께서는 솔로몬에게 "내 이름을 영원히 그곳에 두겠다"라고 약속하셨지만, 지금 너희가 하나님을 버린다면 하나님 또한 이 성전을 가차 없이 버리실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솔로몬이 건축한 성전은 파괴되었고,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훗날 예수님 시대에 이르러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에는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졌습니다. 영원히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교회를 세울 때, 교회 자체가 우리의 우상이 되어서는 안 되며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목사님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목사님, 후계자를 생각해 두셨습니까?" 저는 말했습니다. "내가 그런 것을 왜 생각합니까? 다윗과 같은 사람이 있는가? 솔로몬과 같은 사람이 있는가? 그런 마음 중심이 있는가? 그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런 마음 중심도 없으면서 껍데기뿐인 교회를 세워 무엇 하겠습니까? 저주를 받으려고요?" 교회를 세우는 것은 위험 부담이 매우 큽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도 큰 위험이 따릅니다! 사람이 마귀에게 속고 미혹되고 유혹을 받아 하나님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율례와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않는다면,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이든, 목회자이든, 교회이든 순식간에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고 맙니다.

오늘 저는 전화로 한 사람을 섬겼는데, 참 특이한 사람이었습니다. 여러 해 전에 그의 딸이 우울증에 걸려 저를 찾아왔습니다. 딸의 우울증이 낫자 그들은 다시 돌아가서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살았습니다. 저는 남을 도덕적으로 구속하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전하는 진리는 억지로 쑤셔 넣는 것이 아니라, 사모하는 자가 받는 것입니다.

딸이 나았으니 이제 자기 갈 길을 가면 그뿐인데, 이번에는 그 사람 자신의 몸이 망가졌습니다. 간과 신장 수치가 완전히 망가졌고 수면 장애까지 겪고 있었습니다. 저에게 기도를 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는데, 그는 제 기도만을 맹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체계적인 신앙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기독교와 불교를 융합하려 하다가 자신의 간과 신장 수치를 치솟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것을 왜 융합하려 합니까? 그래서 저는 그에게 주님을 믿는 것은 그렇게 믿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솔직히 인정해야 합니다. 많은 불교도가 헛됨(공, 空)에 대해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보다 더 깊이 꿰뚫어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헛됨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은혜'에 머무릅니다. 불교도는 스스로 천천히 수행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은혜를 의지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수행이 아니라 은혜를 의지하며, 우리가 아직 자격 없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사 우리의 질병을 고치시고, 우리의 슬픔을 담당하시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지셨습니다.

저는 그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나에게 기도를 받으러 왔지만, 나는 내게 가장 보배로운 것, 즉 내가 세운 중화권 사명 신학을 주어야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101, 102, 103 과정 강의를 전부 보내주며 차근차근 들어보라고 했습니다. 만약 그가 복이 없어 다 듣기도 전에 세상을 떠난다면 저와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가 복이 있어서 101, 102, 103 과정을 다 듣고 성경을 제대로 읽는다면, 다시는 그런 혼합주의적인 융합을 시도하지 않을 것입니다.

차라리 일관도(一貫道)를 배우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일관도는 융합을 가장 잘합니다. 노자, 석가모니, 예수 그리스도, 무함마드를 다 한곳에 융합해 두고 그 위에 무생노모를 둡니다. 사실 저는 그를 일관도로 안내했어야 했습니다. 이미 그렇게 잘 융합해 둔 곳이 있는데 굳이 처음부터 바퀴를 다시 발명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제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사람은 하나님의 경고에 주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를 우상으로 삼아서는 안 되며, 사역을 우상으로 삼아서도 안 되고, 소교구를 우상으로 삼아서도 안 되며, 작은 목회자라는 직분을 우상으로 삼아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와 계명을 철저히 마음에 새기고, 평생 오직 하나님만을 섬겨야 합니다. 세상의 부귀영화를 볼지라도 마음이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보고,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보며, 하나님께서 온갖 거래 가운데 유익을 얻게 하시는 것을 보면서도, 우리의 마음을 결코 그 얻어진 이익에 두어서는 안 됩니다.

금은 우리의 생명이 아니며, 성전도 우리의 생명이 아니고, 교회도 우리의 생명이 아닙니다. 오직 우리의 하나님, 그리고 하늘에 영원히 굳게 선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의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지켜 행하는 자와 지켜 행하지 않는 자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다시 한번 권면합니다. 점차 깨달아 가십시오. 나중에 제가 발견한 사실은 이 일이 참으로 간단하다는 것입니다. 선악을 분별하지 말고(识别善恶), 육신의 생각을 따르지 말며, 세상을 사랑하지 말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며 오직 그분만을 섬기십시오. 그러면 참으로 단순해지지 않습니까? 단순해지니 얼마나 좋습니까? 그렇게 하면 우리는 병상에서 보내는 시간을 아낄 수 있고, 각종 치료를 받으며 겪는 온갖 고통을 면할 수 있습니다.

그러자 그가 저에게 물었습니다. "목사님은 건강검진을 받으십니까?" 저는 말했습니다. "참으로 수준 낮은 질문입니다. 내가 건강검진을 왜 받습니까?" 그는 검진을 받고 나서 질겁을 했습니다. 수치들이 하나하나 치솟았기 때문입니다. 나에게는 하나님이 계시며, 나의 하나님이 최고의 건강검진이십니다. 나의 건강검진은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지 않는데 의사가 내 몸에 병이 있다고 알려준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물론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면 의사를 잘 의지해야 합니다. 그러나 저처럼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좋습니까! 저는 모든 고비를 다 돌파해 냈습니다. 무엇으로 돌파했습니까? 기도로, 회개함으로 돌파했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므로 깨어 근신하며, 절대로, 절대로, 결코 하나님께 범죄하지 마십시오. 사람이 죄를 짓고 하나님을 거역하는데 어찌 좋은 꼴을 볼 수 있겠습니까? 귀신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결정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마음에 두시는 것을 우리도 마음에 둘 때,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마음을 돌아보십니다. 우리의 마음은 과연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 위에 있습니까? 오늘 하나님께서 주의 말씀을 우리의 심비에 깊이 새겨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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