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우리는 《열왕기상》 7장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오늘의 주제는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짓는 것은, 바로 건축하는 자를 훈련하기 위함이다’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을 그리 필요로 하지 않으시는데, 솔로몬은 왜 그토록 많은 공을 들여 성전을 지었을까요? 솔로몬은 성전을 7년 동안 지었고, 자신의 왕궁을 13년 동안 지어 총 20년이 걸렸습니다. 그가 왕으로 다스린 40년 중 절반의 시간을 건축에 쏟아부은 것입니다.
이 일은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이 성전을 짓는 것을 굳이 원하지 않으셨지만, 또 솔로몬에게 짓도록 허락하셨습니다. 그리고 솔로몬이 성전을 짓자, 하나님은 그것을 매우 기뻐하셨습니다. 도대체 왜 그러셨을까요? 여러분도 이런 의문이 들지 않습니까? 분명 이런 의문이 들었을 것입니다. 오늘 제가 말씀드리자면, 성전을 짓는 것은 바로 건축하는 자를 훈련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도 하나님의 교회를 세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에 대해 특별히 감사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수고롭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교회를 세울 기회가 있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너무나 기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것과 솔로몬이 영광스러운 성전을 짓는 것은 같은 논리입니다. 이것은 고된 노동이 아니라, 정말로 누리는 일이며 매우 즐거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이 과정 속에서 사람의 지혜가 시험받고, 사람의 관리가 시험받으며, 우리는 이 과정 안에서 끊임없이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프로젝트가 없다면 여러분이 무엇을 관리하겠습니까? 날마다 그저 그렇게 살 뿐입니다.
솔로몬은 20년 동안 건축과 인테리어를 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그 건축 자재들에 정말 관심이 있으실 거라고 생각합니까? 하나님은 관심이 없으십니다. 그 많은 돈에 하나님이 관심이 있으실까요? 하나님은 관심이 없으십니다. 그 수많은 인부들, 그 고역을 치르는 자들, 즉 노예들을 관리하는 것에 하나님이 관심이 있으실까요? 하나님은 전혀 관심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오직 솔로몬 한 사람이 훈련받는 것에만 관심이 있으셨습니다. 솔로몬은 참으로 복이 많은 사람이라 하나님께서 그를 그렇게 훈련하셨고, 그래서 그 20년 동안 주로 공사를 진행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 만약 배우는 태도가 바르지 않다면 여러분은 누리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일하는 목적이 오직 돈을 버는 것이라면, 돈을 벌어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놀러 다니고 여행하며 돈을 다 쓴 뒤, 다시 돌아와서 일해야 하니 고역을 치르는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여러분의 목표가 이 수고로움 속에서 누리는 것이 아니라, 고역 속에서 돈을 조금 모아 윈난이나 티베트로 놀러 가는 것이 되어버립니다. 우리 중에도 티베트로 자동차 여행을 가서 풍경을 보고, 이런 호수 저런 호수를 보며 너무 좋다고 감탄하다가, 다시 돌아와 일하려니 너무 힘들다고 느끼는 꿈을 가진 분들이 꽤 있을 것입니다.
오늘 제가 말씀드리자면, 완전히 잘못 짚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셔야 할 것은, 솔로몬이 20년 동안 공사를 했던 그 기간이야말로 가장 누림이 넘쳤던 20년이었으며, 대단히 즐거운 시간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섬김은 은혜다’라는 말이 바로 여기서 나온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데 7년을 썼고, 성전을 다 짓고 나자 하나님께서 그에게 작은 상을 주셔서 자신의 왕궁을 13년 동안 더 짓게 하셨습니다.
솔로몬의 왕궁이 더 컸을까요, 하나님의 성전이 더 컸을까요? 이것은 참 가늠하기 어렵지만, 하나님은 그런 것에 관심이 없으십니다.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솔로몬은 다 얻었습니다. 왜일까요? 솔로몬은 성전을 건축하는 자였고, 성전을 짓는 과정 속에서 사람의 지혜가 시험을 받았으며, 공학적인 사고방식은 사람의 지혜를 대단히 훈련시키기 때문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헛소리하고 마구잡이로 일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배를 만들면 배가 가라앉고, 다리를 놓으면 다리가 무너지고, 비행기를 만들면 비행기가 추락합니다. 그것은 다 엉터리로 일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목사님, 그게 아니라 그 비행기는 아예 뜨지도 못했어요”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저도 이해합니다. 날아오를 수도 없었겠지요. 엉터리로 생각하고 엉터리로 일하는데 어떻게 날아오를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공학적인 프로젝트는 사람을 훈련하기에 매우 훌륭한 도구입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형제자매들이 혹여 우둔한 면이 있다면, 그것은 공학적인 훈련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공학적인 훈련이 아니면, 예를 들어 이야기를 하다가 중간에 대사를 잊어버려도 대충 지어내기 시작하면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알아채지 못하지 않습니까? 내가 지어낸 이야기나 남이 지어낸 이야기나 다 지어낸 것이고, 김용의 무협 소설처럼 다 지어낸 이야기일 뿐입니다. 단지 잘 지어냈을 뿐이지요. 하지만 공학은 대충 지어낼 수가 없습니다. 비행기를 만들고 로켓을 만들고, 유인 우주선을 만드는데 아주 작은 결함조차 용납되지 않지 않습니까? 공학은 사람을 훈련하기에 정말 좋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아셔야 할 것은,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것은 하나의 프로젝트라는 사실입니다. 공학적 배경이 없는 사람이 교회를 세우려 하면 꽤나 골치 아픕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은 철학적 배경을 가지고 교회를 개척했는데, 결국 철학을 가르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저는 엔지니어 출신이라 엔지니어의 논리에 따라 교회를 세웠는데, 마침 딱 들어맞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지혜, 사람의 관리 능력, 사람의 기술, 사람의 공정, 자재에 대한 이해가 시험을 받습니다. 이렇게 재료와 도구, 기술, 공정, 기능이 갖춰져야만 만들어낸 결과물이 실로 아름답기 그지없게 됩니다. 오늘 본문을 읽어보니, 솔로몬이 조각한 것들은 분명 싼싱투이(삼성퇴) 유물보다 훨씬 고급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싼싱투이에서 출토된 청동기보다 훨씬 고급스러웠을 텐데, 얼마나 대단합니까? 그러므로 이런 것들은 매우 훌륭한 훈련입니다.
여러분이 훈련받기를 원한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리자면, 목양이라는 일도 대충 하려고 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입으로 한 시간 동안 쉴 새 없이 말하면 상대방은 혼이 쏙 빠지지 않겠습니까? 대충 말하는 것은 너무 쉽습니다. 하지만 상대방이 어떤 문제를 만났을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해결하겠습니까? 커리어 설계의 문제, 학습 능력의 문제, 업무상의 문제 등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 대부분 이러한 기초적인 영역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은 솔로몬이 20년 동안 건축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얼마나 완벽하고 원숙하게 훈련되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솔로몬에게 와서 사기를 치거나 속이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 외에도, 그 자신에게 직접 체득한 엔지니어링 프로젝트 관리 경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 나라가 발전하는 것은 금융 놀음을 해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의 엔지니어링 기술을 보아야 합니다.
일론 머스크가 말하기를, 미국에서 엔지니어를 찾는다고 소리치면 기껏해야 그의 회의실 하나를 채울 정도이지만, 중국에서 엔지니어를 찾는다고 소리치면 축구장 몇 개를 가득 채운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많다는 것입니다. 한 나라의 강성함을 비교할 때 돈이 돈을 낳는 방식으로만 가면 결국 공동화(空洞化)되고 맙니다. 국가 전체가 속 빈 강정이 된다면 그것은 안 됩니다. 그러므로 국가가 강대해지려면 반드시 엔지니어링 기술에 기반해야 합니다. 지금 중국은 대단히 발전하여 온갖 종류의 프로젝트가 매우 뛰어납니다.
성전을 짓는 데는 인재가 필요하다
그 큰 돌과 거대한 나무들을 다루는 데 인재가 필요하겠습니까,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인재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놋을 다루는 자가 필요한데, 그것은 결코 장난이 아닙니다. 성경을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보통 공사가 아닙니다. 싼싱투이에서 출토된 유물들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수많은 헤드헌팅 업체를 통해 수소문한 끝에 마침내 후람을 찾아냈고, 사람을 보내 그 후람을 정중히 모셔왔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후람이 과연 와서 일해주고 싶어 할까요? 인재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그 인재를 관리할 수 있는 역량도 필요합니다. 목에 칼을 들이댄다고 해서 그 사람이 일을 제대로 해주겠습니까? 목에 칼을 들이대는데 일을 제대로 해줄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것은 통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한 나라의 발전에도 인재가 필요하듯이, 성전을 건축하는 데는 더더욱 인재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교회가 왜 날마다 형제자매들을 훈련해야 하는지 생각합니다. 때로는 여러분을 너무 몰아붙여 얼굴을 붉히게 만들고, 선악을 분별하는 잣대에 빠지게 만들 정도로 훈련하기도 합니다. 왜 그럴까요? 저는 여러분이 고역이나 치르는 자가 아니라 진정한 인재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바로 그 후람과 같은 사람이 되기를 얼마나 바라는지 모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솔로몬 왕이 사람을 보내어 히람을 두로에서 데려오니 그는 납달리 지파 과부의 아들이요 그의 아버지는 두로 사람이니 놋쇠 대장장이라 이 히람은 모든 놋 일에 지혜와 총명과 재능을 구비한 자이더니 솔로몬 왕에게 와서 그 모든 공사를 하니라 (열왕기상 7:13-14)
제가 말씀드리자면, 우리 교회는 인재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사실 저에게는 작은 비극이 있었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우리 형제자매들을 훈련하여, 훈련을 마친 후 정말 훌륭하고 가치 있는 사역을 감당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훈련을 시켜놓았더니 전멸해 버렸고, 결국 저는 포기했습니다. 포기하고 나서 어떻게 했겠습니까? 여기저기서 사람을 스카우트하고, 이 후람 같은 사람을 찾아다녔습니다. 물론 우리 중에 후람처럼 지혜와 총명과 재능을 갖추고 온갖 공사에 능숙한 형제자매가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니 이런 인재를 얻기가 참으로 어려운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하는 사역은 정말 대단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샤오무(AI 목양 도구)’를 아주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목회자에게 말하기 귀찮고, 그와 대화하면 말이 안 통할 때 차라리 샤오무에게 털어놓는 것이 낫습니다. 우리 중 많은 형제자매들이 샤오무를 사용하며 아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의 소그룹 목자에게 털어놓으면 “왜 그래요? 또 선악을 분별하는 마음에 빠졌어요?”라고 말할 테고, 여러분은 “네가 말 안 해도 다 알거든”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 샤오무가 어디서 나왔습니까? 우리가 초빙한 엔지니어들이 만든 것이며, 이 인재들이 바로 현대의 후람인 것입니다.
제가 단언하건대, 성전을 건축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필요한 인재를 보내주십니다. 지금의 상황을 보면 일반적인 교회들은 정말 경쟁력이 없지 않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일반적인 교회보다 잘해야 할 뿐만 아니라, 수많은 기업보다도 더 잘해야 합니다. 저는 언젠가 우리가 더욱 강력해질 것이라 믿습니다. 인공지능을 통한 목양이 매우 탁월해져서 사람들의 문제를 아주 잘 해결해 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솔로몬은 인재를 몹시 갈망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쇠신이 닳도록 찾아 헤매도 없던 것을 뜻밖에 쉽게 얻게 되듯, 당시 매우 유명했던 놋 대장장이 후람을 단번에 찾게 되었습니다. 이야말로 진정한 인재입니다.
솔로몬을 훈련하여 가장 진보된 기술을 발전시키시다
중국의 고대 상나라든 주나라든, 청동기를 제작하는 주조 기술은 그 나라의 최첨단 기술 수준을 대표했습니다. 오늘날은 무엇으로 경쟁합니까? 인공지능, 로봇, 드론으로 경쟁합니다. 솔로몬 시대에는 가장 진보된 놋 주조 기술로 경쟁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데 최첨단 기술이 사용되었으니, 성전을 다 짓고 나서 국가가 강성해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왜일까요? 기술력이 이미 매우 높은 수준에 도달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두 개의 놋기둥을 만든 것을 보십시오. 기둥 하나의 높이가 18규빗인데, 18규빗이 얼마인지 아십니까? 8미터입니다. 둘레가 12규빗인데, 직경이 얼마인지 계산해 보십시오. 둘레가 12규빗이면 12규빗은 얼마에 해당합니까? 5미터가 넘습니다. 1규빗이 대략 40센티미터라고 하면 12규빗은 5미터에 가깝습니다. 다시 계산해 보면 기둥의 두께(직경)가 1미터가 넘지 않습니까? 4.8미터를 3.14로 나누면 두께가 1미터가 넘습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두께가 1미터가 넘고, 높이가 8미터가 넘는 거대한 놋기둥을 그곳에 세운 것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감당하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그런 거대한 작업을 할 수 있겠습니까? 다 만든 후에는 어떻게 옮겼겠습니까?
이 놋기둥을 가볍게 보지 마십시오. 이 놋기둥 위에 또 2미터가 넘는 머리(주두)를 얹었습니다. 8미터에 2미터를 더하니 높이가 10여 미터에 달합니다. 그것은 참으로 교묘한 기술이며, 적은 힘으로 거대한 무게를 다루는 공학입니다. 두 놋기둥 중 하나의 이름은 ‘야긴’이고, 다른 하나의 이름은 ‘보아스’였습니다. 야긴은 제사장이었고, 보아스는 사업가였습니다. 이 두 사람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는데,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었다는 점입니다!
이 두 놋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머리를 얹고 조각을 새겨 넣었으니, 이 두 놋기둥은 분명 당시의 핫플레이스였을 것입니다. 외국 사절단이 오면 솔로몬은 그들을 이 두 놋기둥으로 데려가 보여주었을 것이고, 그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을 것입니다. “이 나라는 도대체 어떤 나라인가? 얼마나 강대한 나라인가? 다른 건 다 제쳐두고라도, 이런 공정과 기술로 이런 것을 생산해 낼 수 있다니 우리는 상대도 안 되겠구나” 하지 않았겠습니까?
우리가 오늘날 이집트의 피라미드나 신전, 거대한 돌 건축물 같은 고대 유적을 보러 가듯이, 만약 이 놋기둥을 보았다면 대단했을 것입니다. 그것들보다 훨씬 뛰어났을 것입니다. 진보된 기술입니까, 아닙니까? 대단히 진보된 기술입니다.
또 바다를 부어 만들었으니 그 직경이 십 규빗이요 그 모양이 둥글며 그 높이는 다섯 규빗이요 주위는 삼십 규빗 줄을 두를 만하며 그 가장자리 아래에는 돌아가며 박이 있는데 매 규빗에 열 개씩 있어서 바다 주위에 둘렸으니 그 박은 바다를 부어 만들 때에 두 줄로 부어 만들었으며 그 바다를 소 열두 마리가 받쳤으니 셋은 북쪽을 향하였고 셋은 서쪽을 향하였고 셋은 남쪽을 향하였고 셋은 동쪽을 향하였으며 바다를 그 위에 놓았고 소의 뒤는 다 안으로 두었으며 바다의 두께는 한 손 너비만 하고 그것의 가는 백합화의 양식으로 잔 가와 같이 만들었으니 그 바다에는 이천 밧을 담겠더라 (열왕기상 7:23-26)
여러분은 이것을 만들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만들겠습니까? 직경 4미터짜리 거대한 놋 대야를 주조했다고 칩시다. 다 주조한 다음에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오늘날에는 크레인이 있지만, 그 시대에는 전부 손으로 뒤집어야 했는데 어떻게 감당했겠습니까? 그것을 어떻게 뒤집고, 그 놋 소들 위에 어떻게 들어 올려 얹었겠습니까? 여기에 쓰인 도구들, 즉 개발해 낸 일련의 도구들과 그렇게 진보된 방식으로 제조한 결과물을 보고 외국 사절단이 오자마자 솔로몬 앞에 엎드려 완전히 감복하지 않았겠습니까? 감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이런 물건이 굳이 왜 필요하겠습니까? 거대한 두 놋기둥을 세우고, 또 거대한 놋 대야를 만들고 말입니다. 그것이 워낙 크다 보니 ‘바다’라고 불렀는데, 4미터가 넘는 거대한 놋 대야를 왜 만들게 하셨을까요? 사실은 사람을 훈련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형제자매들은 이것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설계를 마치신 후 솔로몬에게 만들라고 하셨을 때의 반응은 남달랐습니다. 하나님께서 기준을 매우 높게 잡으셨는데, 예를 들어 이 놋기둥과 놋바다라는 두 거대한 놋 구조물의 도면을 솔로몬이 보았겠습니까, 안 보았겠습니까? 도면을 보았을 때 제 생각엔 당장 다리가 풀렸을 것입니다. “하나님, 이걸 대체 어떻게 만듭니까? 만든다 해도 옮길 수가 없는데 어떡합니까? 옮겨오는 것은 또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그때의 태도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오늘날 우리가 교회를 건축하는 것도 바로 이 논리를 가지고 지금까지 멀리 걸어왔습니다. 처음에 저더러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것을 상상해 보라고 했을 때, 오늘날 우리 교회의 이 모습을 당시의 저는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감히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지금 우리 교회의 모습도 아직 갈 길이 먼데, 어떤 목사님들에게 이야기하면 즉시 저에게 “그게 어떻게 가능합니까?”라고 반문합니다. 우리가 걸어온 길은 믿음의 길이었으며,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는 길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여전히 이러한 믿음을 굳게 붙잡는다면, 놋기둥을 만들 수 있겠습니까? 만들 수 있습니다! 놋바다를 만들 수 있겠습니까? 만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는데, 인공지능을 통한 목양 시스템을 만들 수 있겠습니까? 만들 수 있습니다! 매우 진보된 목양 기술을 만들어낼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지금도 끊임없이 앞으로 전진하고 있습니다.
제 안에는 장차 우리의 목양이 더욱 정교해질 것이라는 꿈이 있습니다. 정교할 뿐만 아니라 매우 효과적이고, 나아가 인공지능 기반이 될 것입니다. 인공지능을 훈련하는 것이 사람을 훈련하는 것보다 낫습니다. 사람은 훈련을 시켜놓아도 말을 듣지 않지만, 인공지능은 전기만 공급되면 지속적으로 목양을 수행할 수 있고 감정싸움을 걸지도 않습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이것은 오늘 갑자기 생긴 꿈이 아니라, 5년 전부터 품었던 꿈입니다. 5년 전에는 그림자조차 없었고 거대언어모델(LLM)조차 없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고 바라다보니 LLM이 등장했고, 계속 생각하다 보니 최초의 버전을 만들어냈으며, 또 계속 발전시키다 보니 놀라울 정도로 강력해졌습니다.
저는 오늘 우리 형제자매들이 머릿속에서 ‘불가능’이라는 세 글자를 반드시 지워버리기를 바랍니다. 제 말이 들리십니까? 저는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다 짓고 나면, 여러분의 기술이든 일하는 태도든 모든 것이 완전히 탈바꿈됩니다. 그러면 사람이 점점 더 강성해지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강한 자를 동경해서가 아니라, 본인이 부족하기 때문에 강한 자를 동경하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여러분 자신이 이미 강해졌다면 누구를 동경하겠습니까? 아무도 동경할 필요가 없고 오직 하나님만을 사모하면 됩니다.
그 후 놋 물두멍과 사자, 소, 그룹들, 그리고 옆에 달린 받침대 등의 조각들은 매우 정교했습니다. 솥과 부삽과 대접들은 왜 만들었을까요? 솔로몬을 훈련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솔로몬의 믿음 때문이었으며, 그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믿음의 사람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본인 이야기하시는 겁니까?”라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분명 믿음의 사람이지만, 제 믿음은 아직 부족합니다. 저는 오늘 겨자씨만 한 믿음 하나로 오늘날까지 사역해 왔는데, 만약 우리 모두가 각자 겨자씨 하나씩의 믿음을 가진다면 얼마나 대단하겠습니까? 수천수만 개의 겨자씨가 모인다면 지구를 뒤집어놓지 않겠습니까? 국가의 강성함은 무엇과 관련이 있습니까? 그 나라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나라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솔로몬에게는 가장 진보된 관리가 있었다
앞 장의 프로젝트가 어려웠습니까, 안 어려웠습니까? 어려웠습니다! 이번 장의 프로젝트는 어려웠습니까? 훨씬 더 어려웠습니다! 여러분은 이 사람들을 어떻게 관리하겠습니까? 이 사람들을 어떻게 통솔하겠습니까? 후람 같은 사람도 목에 칼을 들이댄다고 해서 일을 잘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목에 칼을 들이대지 않으면 그가 일을 잘해주겠습니까? 그것이 바로 관리의 영역입니다. 저는 인재를 붙잡아두지 못하는 기업들을 알고 있는데, 기업이 인재를 붙잡지 못하는 이유는 관리 방식이 낙후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까지도 많은 기업의 관리는 산업혁명 시대에 머물러 있습니다. 산업혁명은 과학적 관리법을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오늘날의 관리는 대단히 어렵습니다. 왜일까요? 산업 시대의 관리는 사람의 육체 노동력을 극대화하여 쥐어짜는 방식이었습니다. 우리가 어릴 때 보았던 찰리 채플린의 영화를 보면, 그것이 바로 산업혁명 과학적 관리의 결과물입니다. 퇴근하고 집에 걸어가는데 손이 저절로 나사를 조이는 동작을 멈추지 못하고 덜덜 떨립니다. 사람을 로봇처럼 훈련시켜서 출근해서도 나사를 조이고, 퇴근해서도 조이고, 자면서도 조이게 하며, 1초에 나사를 몇 개나 조일 수 있는지만 보던 것이 산업 시대의 관리 방식이었습니다. 그런 방식을 오늘날 적용해서는 통하지 않습니다. 오늘날에는 사람의 뇌 속에 있는 지식과 지능의 잠재력을 끌어내야 합니다. 그렇다면 관리가 매우 진보적이어야 하겠습니까, 아니겠습니까? 대단히 진보적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관리라는 영역도 하나씩 파고들어 개발해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관리는 대단히 깊은 학문입니다. 솔로몬의 관리는 전무후무한 것이었으며, 그런 위대한 프로젝트를 수행해 냈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형제자매 여러분, 성전 건축이라는 과업이 없었다면 그가 어디서 이런 기술을 얻었겠습니까? 해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성전을 짓는 훈련이 없었다면, 그에게 어디서 이런 과학적 관리 시스템이 나왔겠습니까? 없었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건축하는 자를 훈련하기 위함이다
이 모든 것은 바로 건축하는 자를 훈련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저와 함께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워가는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교회를 세울 때, 마음속으로 스스로에게 선포해야 합니다. “우리는 매우 강력하고 매우 진보된 교회를 세울 것이다.” 교회가 무엇을 하는 곳입니까? 사람을 훈련하는 곳이며, 사람을 빚어 인재로 만드는 곳입니다. 사람을 빚어 인재로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훗날 우리 교회의 규모를 보십시오. 장차 우리 목회자들에게 인공지능의 역량을 더해준다면 호랑이에 날개를 단 격이 되지 않겠습니까? 건축하는 자를 훈련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대변하는 신학은 가장 진보되고 가장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신학 체계이자, 《성경》의 본래 맛에 더욱 부합하는 신학 체계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가장 진보된 기술이 있습니다. 왜일까요? 이 시대에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것은 더 이상 거대한 건물을 짓는 것으로 경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거대한 유리 궁전 같은 건물을 지어놓고 결국 재산세도 감당하지 못해서는 안 됩니다. 수많은 교회가 무리하게 큰 예배당을 짓다가 그렇게 되는데, 정작 사람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가 교회를 세우는 것은 바로 사람을 세우는 것이며, 사람을 온전히 훈련하는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은 배우려는 태도를 가져야 하고, 훈련받으려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언제까지나 낮은 차원에 머물러 살아서는 안 되며,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내고 하나님의 존귀함을 나타내야 합니다. 솔로몬이 하나님의 성전을 지은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셔서 지은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하나님은 이 성전을 그리 필요로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솔로몬이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짓고자 했고,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의 그 마음을 보시고 그에게 지혜를 주셨습니다. 솔로몬은 그 지혜를 얻어 성전을 지었고, 하나님은 그에게 더 많은 지혜를 주셨으며, 더 많은 지혜를 얻은 그는 더욱 힘써 하나님의 성전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이후에 솔로몬은 13년을 들여 자신의 궁전을 지었습니다. 제 생각에 그 13년 동안 지은 왕궁은 보통 사람은 감히 살 수도 없는 집이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가장 최첨단의 집이었습니다. 4세대 주거 공간 수준이 아니라 5세대도 비할 수 없는 궁전이었습니다. 왜일까요? 하나님께서 그에게 상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가 조금 호화롭게 사는 것을 크게 개의치 않으셨고, 그가 덜 검소하게 사는 것을 탓하지 않으셨으며, 그가 존귀하게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매우 존귀하게 사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지은 성전은 여호와의 성전 안뜰과 낭실의 양식을 따른 것이었습니다. 솔로몬은 자신을 위해서도 하나 짓고, 하나님을 위해서도 하나 지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그곳에 거주하신다고 생각합니까? 하나님은 그런 곳에 거주하지 않으십니다.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 땅과 땅 위의 땅도 우리 하나님의 처소가 되기에 부족한데, 이것은 결국 솔로몬을 훈련하기 위함이 아니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니, 그로 하여금 자신의 집도 훌륭하게 짓도록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형제자매들이 교회에 올 때, 기꺼이 훈련받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지 돌아보기를 바랍니다. 오늘날의 교육은 천지개벽할 변화를 겪게 될 것입니다. 기존의 교육 방식이 모두 무력해졌기 때문입니다.
베이항 대학(베이징항공항천대학)에 겅(耿)이라는 학생이 있는데, 정말 대단하여 수많은 원사(학술원 회원)들과 우수 청년 학자들을 낙마시켰습니다. 왜일까요? 가짜를 잡아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논문과 데이터가 모두 조작된 것이었습니다. 그에게는 그것이 생존 기술이었던 셈입니다. 왜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인공지능이 생겨나서 한번 분석을 돌리면 가짜들이 순식간에 다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교육 시스템과 그 모든 논리는 붕괴될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오늘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어떤 논리가 끝까지 시험을 견뎌내겠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조상들이 행했던, 스승이 제자를 도제식으로 훈련하던 방식입니다. 고대 선조들이 행했던 교육을 읽어보십시오. 그것이야말로 진보된 것이었습니다. 산업혁명 이후 대학을 공장 생산 라인처럼 만들어버렸는데, 그것이 어떻게 온전하겠습니까? 학교를 생산 라인으로 만들지 않고 스승이 제자를 개별 맞춤으로 지도하던 도제식 방식이 진짜입니다.
교회에서 사람을 훈련하는 방식도 우리는 계속해서 발굴해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고 사람을 훈련하는 것은, 스승이 제자를 가르치는 것과 같습니다. 스승이 제자를 훈련할 때는 육신을 어설프게 다루지 않고 호되게 쳐서 복종시킵니다. 박사과정 학생을 가사도우미처럼 부리는 것이 아니라, 정말 혹독하게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장차 교회의 모습은 스승이 제자를 훈련하던 방식을 많이 배워야 합니다. 귀곡자(鬼谷子)가 훈련한 인물들은 하나같이 대단하지 않았습니까? 얼마나 뛰어납니까! 황석공(黃石公)이 훈련한 인물도 얼마나 뛰어납니까? 고대 중국에는 이런 도제식 훈련이 매우 보편적이었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사람을 빚어내고 양육하는 가장 진보된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가장 진보된 기술을 가질 뿐만 아니라, 가장 진보된 신학 체계를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토록 진지하고 엄격하게 교회를 세워가는 것을 보시고 크게 기뻐하시며, 모든 것을 우리에게 더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