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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여호수아 10장 - 하나님과 원수 된 자는 다 멸망하리라

2019-08-14 45,000 约书亚记 十一奉献 教会 合一 圣洁 争战得胜 人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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约书亚记10章-击败亚摩利人
  • 1 耶路撒冷王亚多尼·洗德听见约书亚夺了艾城,尽行毁灭,怎样待耶利哥和耶利哥的王,也照样待艾城和艾城的王,又听见基遍的居民与以色列人立了和约,住在他们中间,
  • 2 就甚惧怕;因为基遍是一座大城,如都城一般,比艾城更大,并且城内的人都是勇士。
  • 3 所以耶路撒冷王亚多尼·洗德打发人去见希伯仑王何咸、耶末王毗兰、拉吉王雅非亚,和伊矶伦王底璧,说:
  • 4 “求你们上来帮助我,我们好攻打基遍,因为他们与约书亚和以色列人立了和约。”
  • 5 于是五个亚摩利王,就是耶路撒冷王、希伯仑王、耶末王、拉吉王、伊矶伦王,大家聚集,率领他们的众军上去,对着基遍安营,攻打基遍。
  • 6 基遍人就打发人往吉甲的营中去见约书亚,说:“你不要袖手不顾你的仆人,求你速速上来拯救我们,帮助我们,因为住山地亚摩利人的诸王都聚集攻击我们。”
  • 7 于是约书亚和他一切兵丁,并大能的勇士,都从吉甲上去。
  • 8 耶和华对约书亚说:“不要怕他们;因为我已将他们交在你手里,他们无一人能在你面前站立得住。”
  • 9 约书亚就终夜从吉甲上去,猛然临到他们那里。
  • 10 耶和华使他们在以色列人面前溃乱。约书亚在基遍大大地杀败他们,追赶他们,在伯·和仑的上坡路击杀他们,直到亚西加和玛基大。
  • 11 他们在以色列人面前逃跑,正在伯·和仑下坡的时候,耶和华从天上降大冰雹(原文是石头)在他们身上,直降到亚西加,打死他们。被冰雹打死的,比以色列人用刀杀死的还多。
  • 12 当耶和华将亚摩利人交付以色列人的日子,约书亚就祷告耶和华,在以色列人眼前说:“日头啊,你要停在基遍;月亮啊,你要止在亚雅仑谷。”
  • 13 于是日头停留,月亮止住,直等国民向敌人报仇。这事岂不是写在雅煞珥书上吗?日头在天当中停住,不急速下落,约有一日之久。
  • 14 在这日以前,这日以后,耶和华听人的祷告,没有像这日的,是因耶和华为以色列争战。
  • 15 约书亚和以色列众人回到吉甲的营中。
  • 16 那五王逃跑,藏在玛基大洞里。
  • 17 有人告诉约书亚说:“那五王已经找到了,都藏在玛基大洞里。”
  • 18 约书亚说:“你们把几块大石头滚到洞口,派人看守,
  • 19 你们却不可耽延,要追赶你们的仇敌,击杀他们尽后边的人,不容他们进自己的城邑,因为耶和华你们的 神已经把他们交在你们手里。”
  • 20 约书亚和以色列人大大杀败他们,直到将他们灭尽;其中剩下的人都进了坚固的城。
  • 21 众百姓就安然回玛基大营中,到约书亚那里。没有一人敢向以色列人饶舌。
  • 22 约书亚说:“打开洞口,将那五王从洞里带出来,领到我面前。”
  • 23 众人就这样行,将那五王,就是耶路撒冷王、希伯仑王、耶末王、拉吉王、伊矶伦王,从洞里带出来,领到约书亚面前。
  • 24 带出那五王到约书亚面前的时候,约书亚就召了以色列众人来,对那些和他同去的军长说:“你们近前来,把脚踏在这些王的颈项上。”他们就近前来,把脚踏在这些王的颈项上。
  • 25 约书亚对他们说:“你们不要惧怕,也不要惊惶。应当刚强壮胆,因为耶和华必这样待你们所要攻打的一切仇敌。”
  • 26 随后约书亚将这五王杀死,挂在五棵树上。他们就在树上直挂到晚上。
  • 27 日头要落的时候,约书亚一吩咐,人就把尸首从树上取下来,丢在他们藏过的洞里,把几块大石头放在洞口,直存到今日。
  • 28 当日,约书亚夺了玛基大,用刀击杀城中的人和王;将其中一切人口尽行杀灭,没有留下一个。他待玛基大王,像从前待耶利哥王一样。
  • 29 约书亚和以色列众人从玛基大往立拿去,攻打立拿。
  • 30 耶和华将立拿和立拿的王也交在以色列人手里。约书亚攻打这城,用刀击杀了城中的一切人口,没有留下一个。他待立拿王,像从前待耶利哥王一样。
  • 31 约书亚和以色列众人从立拿往拉吉去,对着拉吉安营,攻打这城。
  • 32 耶和华将拉吉交在以色列人的手里。第二天约书亚就夺了拉吉,用刀击杀了城中的一切人口,是照他向立拿一切所行的。
  • 33 那时基色王荷兰上来帮助拉吉,约书亚就把他和他的民都击杀了,没有留下一个。
  • 34 约书亚和以色列众人从拉吉往伊矶伦去,对着伊矶伦安营,攻打这城。
  • 35 当日就夺了城,用刀击杀了城中的人。那日,约书亚将城中的一切人口尽行杀灭,是照他向拉吉一切所行的。
  • 36 约书亚和以色列众人从伊矶伦上希伯仑去,攻打这城,
  • 37 就夺了希伯仑和属希伯仑的诸城邑,用刀将城中的人与王,并那些城邑中的人口,都击杀了,没有留下一个,是照他向伊矶伦所行的,把城中的一切人口尽行杀灭。
  • 38 约书亚和以色列众人回到底璧,攻打这城,
  • 39 就夺了底璧和属底璧的城邑,又擒获底璧的王,用刀将这些城中的人口尽行杀灭,没有留下一个。他待底璧和底璧王,像从前待希伯仑和立拿与立拿王一样。
  • 40 这样,约书亚击杀全地的人,就是山地、南地、高原、山坡的人,和那些地的诸王,没有留下一个。将凡有气息的尽行杀灭,正如耶和华以色列的 神所吩咐的。
  • 41 约书亚从加低斯·巴尼亚攻击到迦萨,又攻击歌珊全地,直到基遍。
  • 42 约书亚一时杀败了这些王,并夺了他们的地,因为耶和华以色列的 神为以色列争战。
  • 43 于是约书亚和以色列众人回到吉甲的营中。

【원음 성경공부 녹음-표준 중국어판-주제: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자는 모두 멸망한다-2019년 8월 14일 나눔】

서론

저는 하나님의 나라의 원칙을 《여호수아》를 통해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자는 모두 멸망합니다. 우리 형제자매 모두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아주 분명하게 알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여러분이 들어오기를 원하기만 하면 아무도 막을 수 없는 곳입니다. 우리가 속한 하나님의 나라는 열려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꺼이 굴복하고 하나님께 순종하기만 한다면, 설령 속이는 방법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을 속여 언약을 맺었다고 해도 하나님은 여러분을 죽이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마음이 완고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음이 완고한 사람은 모두 멸망합니다. 사람이 굳이 하나님의 나라를 대적하고 하나님과 원수가 되려고 한다면 모두 멸망하게 됩니다. 이 장의 주제는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자는 모두 멸망한다”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보게 됩니까? 예루살렘 왕은 여호수아가 아이 성을 점령하고 완전히 진멸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또 다른 소식도 들었습니다. 기브온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과 언약을 맺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가 들은 소식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아이 성 사람들이 모두 죽임을 당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브온 사람들이 뜻밖에도 모두 살아남았다는 것입니다.

이때 예루살렘 왕은 매우 어리석은 결정을 내렸습니다. 사람은 왜 자주 어리석은 결정을 내릴까요?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는 것은 무엇과 관련이 있을까요? 어리석은 결정은 돈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제 이 장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예루살렘 왕은 자신들에게 승리할 기회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른 왕 몇 명에게 연락했습니다. 이 다섯 왕은 아모리 왕들로서 예루살렘 왕, 헤브론 왕, 야르뭇 왕, 라기스 왕, 에글론 왕이었습니다.

그들은 무엇을 했습니까? 그들은 군대를 이끌고 기브온을 향해 진을 치고 기브온 사람들을 공격했습니다. 그들은 기브온 사람들을 멸망시키려고 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왜 이렇게 이스라엘 사람들과 싸우고 싶어 했을까요? 기브온 사람들은 항복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구했으며,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받게 하셨습니다. 사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께 묻지 않았습니다. 만일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께 기브온 사람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물었다면,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그들을 살려 두라고 하셨을 것입니다.

이제 진정으로 하나님을 알아가기 시작해야 합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반드시 하나님을 알아야 하고, 우리의 하나님이 은혜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속임을 당하고도 여호와께 묻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맞게 행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멸망시키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이 마음먹고 하나님을 대적한다면, 하나님도 마음먹고 여러분을 멸망시키실 것입니다. 그리고 기브온 사람들만 죽임을 당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기브온을 공격하러 온 다른 사람들까지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의 원수로 여기셨습니다.

이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처리하셨습니까? 하나님의 처리 방법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기브온 사람들이 길갈 진영에 사람을 보내어 여호수아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종들을 모른 체하지 마시고 속히 올라와 우리를 구원하시고 도와주십시오. 산지에 거주하는 아모리 사람의 왕들이 다 모여 우리를 공격합니다.” 여호수아가 모든 군사와 용사와 함께 길갈에서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그들을 네 손에 넘겨주었으니 그들 가운데 한 사람도 너를 당할 자가 없으리라.” (《여호수아》 10:6-8)

하나님께서는 두 가지 의문을 해결해 주셨습니다. 첫 번째 의문은 여호수아가 그들을 두려워할 것인가 하는 것이고, 두 번째 의문은 ‘내가 이렇게 기브온 사람들을 돕는 것이 옳은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그들을 네 손에 넘겨주었으니 그들 가운데 한 사람도 너를 당할 자가 없으리라.” 이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기브온 사람과 같은 사람들도 구원하신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 주셨습니다. 여러분이 기브온 사람들을 공격하면 하나님께서는 기브온 사람들을 공격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정말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이때 우리는 또 한 가지 매우 놀라운 일을 보게 됩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스라엘 앞에서 혼란에 빠지게 하셨습니다. 여호수아가 기브온에서 그들을 크게 무찌르고 추격하여 벧호론으로 올라가는 비탈길에서 아세가와 막게다까지 이르러 그들을 죽였습니다.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서 도망하여 벧호론의 비탈길을 내려갈 때에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큰 우박을 내리셨습니다. 원문에는 ‘돌’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박이 아세가까지 내렸고 그들을 죽였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칼로 죽인 사람보다 우박에 맞아 죽은 사람이 더 많았습니다. (《여호수아》 10:10-11)

이 일은 너무나 기이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 사람들을 그렇게 미워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왜 그렇게 긍휼이 없으신 것처럼 이 사람들을 치셨을까요?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는 말을 한마디 하겠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특히 우리 하나님을 산타클로스처럼 여기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 하나님은 산타클로스가 결코 아닙니다.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전혀 변하지 않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은혜와 긍휼을 베푸시고 천 대까지 복을 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미워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결코 죄 없다 하지 않으시고, 그 죄를 삼사 대까지 갚으십니다. 이해하셨습니까?

인간적인 연민을 버리십시오

우리 형제자매에게는 흔히 ‘여성적인 연민’이라고 부르는 문제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교회를 세우는 일을 생각해 봅시다. 교회 안에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형제자매들은 인간적인 연민을 가지고 하나님과 원수가 된 사람들에게 은혜와 긍휼을 베풉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원수로 여기실까요?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도 자신의 원수로 여기실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왜 형제자매에게 그렇게 높은 기준을 요구하는지 점차 알아가기 시작해야 합니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원수가 교회 안에 섞여 들어오는 것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며,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은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여야 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신자들을 제자로 변화시키기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여러분과 함께 교회를 세우러 온 것이 아니라 교회를 무너뜨리러 옵니다. 그런데 교회를 세운다는 사람들이 어떻게 합니까? 이런 사람들을 교회 안에 남겨 둡니다. 그들은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이라고 생각하지만, 저는 그런 것을 인간적인 연민이라고 부릅니다.

저는 우리 목회자들에게 자주 말합니다. 결코 인간적인 연민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우리를 따르기를 원하는 사람은 우리가 그들을 이끌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면 됩니다. 그런데 누군가 와서 훼방하고 교회에 도전하러 왔다면, 왜 그들을 그곳에 남겨 두어야 합니까? 한 가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결코 자비를 베풀지 않으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들에게는 은혜와 긍휼을 가득 베풀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결코 산타클로스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가기 시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과 미워하는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처리는 결코 같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를 대적하러 온다면 그는 하나님의 나라의 원수입니다. 귀신을 쫓아내는 일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참 흥미로운 일이 있습니다. 어떤 목회자는 “이 사람들은 귀신을 쫓아낼 능력이 없으니 목회자를 쫓아내는 것이 한 사람보다 두 사람 몫을 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원수가 아니라면 무엇이겠습니까?

또 교회 안에는 하나님의 복음을 혼란스럽게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원수가 아니라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치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들에게 은혜와 긍휼의 마음을 품어야 할까요? 이 문제는 대답하기가 조금 어렵습니다. 이 주제에 닿으면 저도 말이 조금 막힙니다. 왜냐하면 말하다 보면 많은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형제자매 앞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목양할 수 없는 사람은 여러분의 목회자에게 맡기고, 여러분의 목회자가 목양할 수 없는 사람은 그 목회자의 목회자에게 맡기십시오. 그분도 목양할 수 없다면 저에게 맡기십시오. 저도 해결하지 못하면 하나님께 맡기면 됩니다.

우리가 세우려는 교회는 거룩하고 하나 된 교회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거룩하고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교회에서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다면, 그런 사람은 교회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여러분은 교회의 요구가 너무 높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헌금을 드리느냐 드리지 않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제가 그 돈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고 생각합니까? 저는 돈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마땅히 드려야 할 십분의 일을 자기 손에 남겨 둔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원수가 되는 것이 아닙니까? 그는 하나님의 나라의 도둑이 됩니다. 성경에는 바로 그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 자신이 진멸될 물건이 되었습니다.

7장에서 아간이 하나님께 속한 물건을 훔친 일이 나옵니다. 원래 하나님께서 그 물건들은 모두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가 그것을 훔쳤기 때문에 그 자신이 진멸될 물건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전체가 전쟁에서 패했습니다. 그러면 제가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기브온 사람들은 진멸될 물건에 해당합니까? 기브온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전체적으로 항복하고 이스라엘 사람들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기브온 사람들에게 긍휼을 베푸셨습니다. 매우 흥미롭지 않습니까? 누군가 기브온 사람들을 공격하러 오자 하나님께서는 기브온 사람들을 공격한 모든 사람을 멸망시키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정말 흥미로우신 분입니다. 잘 묵상해 보십시오. 만일 기브온 사람이 우리 가운데 온다면 우리는 그를 목양의 보호 아래 받아들일 것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왕, 헤브론 왕, 야르뭇 왕, 라기스 왕, 에글론 왕이 교회에 도전하러 온다면, 이들은 하나님의 나라의 원수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모리 사람들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넘겨주시던 날에 여호수아가 여호와께 아뢰어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말했습니다. “태양아,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아얄론 골짜기에 그치라.” 태양이 머물고 달이 멈추어 백성이 그 대적에게 원수를 갚기까지 하였습니다. 이 일이 야살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습니까? 태양이 하늘 가운데 머물러서 거의 종일토록 속히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여호수아》 10:12-13)

이 얼마나 큰 믿음입니까? 이 믿음은 무엇을 위해 사용되었습니까? 이 믿음은 하나님의 나라의 원수를 죽이고 멸망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이 여호와의 군사이고,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지휘관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싸우신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며 마귀와 원수의 일을 멸망시키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지금은 신약시대이지 구약시대가 아닙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신약이든 구약이든 하나님은 한 번도 변하지 않으셨습니다. 많은 사람이 성경을 읽을 때 신약과 구약을 서로 대립시키는 것뿐입니다. 신약과 구약은 모두 하나님의 뜻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런 상황을 보면서 “하나님은 정말 잔인하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정말 잔인하십니까? 사실 하나님은 은혜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사람들을 대하실 때에는 조금도 자비를 베풀지 않으십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한 가지 교훈을 배우기 시작하십시오. 인간적인 연민을 품지 마십시오. 하나님과 원수가 된 사람들까지 교회 안으로 데려오지 마십시오. 교회 안에는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가진 사람들이 있어야지, 하나님과 원수가 된 사람들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신약성경의 이야기를 하나 인용해 보겠습니다. 신약성경의 이야기는 매우 흥미롭습니다. 《사도행전》에 기록되어 있듯이 사도 베드로가 설교하자,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말했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너희가 각각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베드로가 여러 말로 증언하며 권하여 말했습니다.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 명쯤 더해졌습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힘썼습니다. (《사도행전》 2:37-42)

그 후 베드로가 솔로몬 행각에서 다시 설교했습니다. 그 결과 그날 한 사람의 병이 나았고, 또 많은 사람이 주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어떻게 성장하는지 연구하는 많은 사람은 이 말씀을 읽고 “한 번에 삼천 명이 늘어났다”고 하면서 사람 수를 늘리는 것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도 처음에는 사람 수를 많이 늘리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바뀌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교회 사람 수를 늘리는 것을 추구하는 일은 사실 매우 심각한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왜 심각합니까? 삼천 명, 오천 명이 주님을 믿게 할 수는 있지만, 그들이 모두 진정으로 주님을 믿는 사람들입니까? 사실 많은 바리새인이 들어왔고, 그 결과 교회가 매우 혼란스러워졌습니다. 왜냐하면 온갖 사람들이 다 왔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그때 헬라어를 사용하는 유대인들이 히브리어를 사용하는 유대인들에게 불평했습니다. 매일의 구제에서 자기들의 과부들이 소홀히 여김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각 사람이 자신이 손해를 조금이라도 볼까 봐 두려워했습니다. 이것이 부흥입니까, 부흥이 아닙니까? 저는 이것도 하나님의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일곱 명의 집사가 세워졌습니다. 이후 교회는 많은 바리새파 사람들로 이루어진 교회가 되었고, 많은 바리새파 사람들이 교회 안으로 섞여 들어왔습니다. 얼마 전 우리는 “바리새인의 누룩을 조심하라”는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베드로가 교회를 이끌 때 바리새인의 누룩을 조심했습니까?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십시오

교회는 사람 수를 추구해야 합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기쁨을 추구해야 합니까? 우리가 사람 수를 추구하면 큰 문제가 생깁니다. 여러분은 교회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교회 사람 수를 추구하면 바리새인의 누룩이 반드시 들어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나중에 교회를 세우는 과정에서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더 이상 사람 수를 추구하지 않고 하나 됨을 추구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거룩하고 하나 되어 싸움에서 승리하는 정예 교회를 세워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면 나중에 예루살렘 교회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사도행전》 15장에 이르면 바리새파를 지지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우두머리인 야고보가 나옵니다. 그는 모세의 율법을 부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고, 사람들에게 할례를 지켜야 한다고 고집했습니다. 신약성경을 익숙하게 읽은 사람이라면 사도 바울이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에 단호하게 반대했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입니다. 모세의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과거 예수님 당시부터 모세의 율법이 공포된 지 1,500년 동안, 바리새인 무리를 만들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 외에는 사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사람의 육체를 의지해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왔고, 그들의 우두머리는 《야고보서》를 쓴 야고보였습니다. 야고보의 사람들이 각지에 가면 누구든 그들을 보고 두려워했습니다. 당시 교회의 큰 사도였던 베드로조차 나중에는 교회를 이끌 권세를 잃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큰 제자였던 그가 나중에는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이 일은 정말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어디에서 시작되었습니까? 한 번에 삼천 명이 주님을 믿고, 한 번에 오천 명이 주님을 믿게 된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가운데 목회자들이 있다면 이 말씀을 듣고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결코 하나님의 나라의 원수를 교회 안으로 끌어들이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나라의 원수를 교회 안으로 끌어들일 뿐만 아니라 그들을 지도자의 자리에까지 세운다면 큰 문제가 생깁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나라의 원수가 되고 심각한 타락을 가져올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있었기에 우리가 순수한 복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왜 우리 교회에 이렇게 큰 능력이 있고, 많은 사람이 치유받으며, 많은 사람이 자유를 얻습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이어받았고, 사도 바울의 신앙 체계를 이어받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성경의 말씀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 의사였고 사도 바울의 동역자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로 끌려가 재판을 받게 되었을 때 누가는 그러한 상황에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했습니다. 그 가운데 《누가복음》의 내용은 바울의 생각을 대표하며, 야고보라는 사람을 묘사하는 내용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이방인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다만 편지하여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하는 것이 옳으니,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의 율법을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읽기 때문이라.” (《사도행전》 15:19-21)

무슨 뜻인지 읽어 내셨습니까? 사람이 반드시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뜻 아닙니까? “그러나 나는 너희 이방인들을 괴롭게 하지 않겠다. 하지만 이스라엘 사람과 유대인이 주님을 믿으려면 너희는 괴로움을 당해야 한다. 너희는 반드시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 이것이 복음입니까? 사실 그들의 말에는 다른 뜻이 담겨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본모습은 무엇입니까? 사람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교회 안에 있다고 해서 그가 형제이고 그녀가 자매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많은 교회에서 보면 교회를 타락시키는 사람들이 매우 기승을 부립니다.

많은 목회자는 매우 힘든 일을 겪습니다. 그들은 콧물을 훔쳐 가며 자신이 섬기면서 겪은 비참한 역사를 울며 호소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인간적인 연민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원수를 하나님의 교회 안으로 데려오고서 잘될 수 있겠습니까? 이런 사람들에게 붙어 있는 귀신은 매우 악합니다. 교회 안을 둘러보면 사람마다 온갖 악한 영이 붙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귀와 원수에게 복수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사로잡힌 사람들을 풀어 주고 억압받는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우리 가운데 오려면 반드시 스스로 원해야 합니다. 본인이 원하지 않는다면 누가 그를 도울 수 있겠습니까? 교회 사람 수를 추구한다면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교회가 하나님의 뜻을 삼가 지켜 행하고, 인간적인 연민을 제거하며, 하나님의 원수를 하나님의 교회 안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더구나 교회의 지도자 자리에 세워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싸우시는 과정에서 형제자매 여러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마십시오. 우리가 실수를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잘못을 바로잡아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강해지고 더 이상 인간적인 연민을 품지 않으며 형제자매에게 담대하게 요구하기 시작하면, 우리가 입으로 선포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모두 이루실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께 순종했고, 모세의 가르침을 삼가 지켜 행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모든 말씀에 따라 하나님의 뜻대로 섬겼습니다. 여호수아가 “태양아, 기브온 위에 머물라. 달아, 아얄론 골짜기에 그치라”고 말하자 하나님께서 그대로 이루셨습니다.

《사무엘상》에 한 구절이 있습니다. 제가 그 말씀을 읽은 후 깊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 말씀은 “사무엘이 말한 것은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없었다”는 내용입니다. 저는 감탄하며 말했습니다. “하나님, 저도 이런 사람이 되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울 때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을 위해 싸우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이끌어 싸우게 하시고, 사람들을 마귀의 손에서 해방시키시며,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실 것입니다. 저는 많은 경우 제가 말한 것을 하나님께서 모두 이루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제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의 교회를 세웠기 때문이며, 저는 하나님의 원수를 결코 불쌍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우리 가운데 있으면서 우리의 요구가 매우 높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헌금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면 우리는 여러분의 헌금을 받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람의 헌금을 받기 위해 여러분을 이곳에 남겨 두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돈이 부족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몸도 돈이 부족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교회를 세우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교회가 매우 가난해지는 것입니다. 교회가 가난할수록 헌금이 더 필요하고, 헌금이 더 필요할수록 하나님의 원수를 교회 안으로 더 많이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러면 교회는 더욱 가난해집니다.

사도 바울은 붙잡히기 전에 많은 헌금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왔지만, 결국 예루살렘에서 붙잡혔습니다. 당시 예루살렘 교회는 이미 매우 가난해져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교회의 목회자이고 우리 가운데서 제 나눔을 듣고 있다면, 교회가 가난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뜻임을 알아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지켜 행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 따라 교회를 세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 진멸될 물건이 있으면 반드시 전쟁에서 패하고, 전쟁에서 패하면 하나님의 약속을 누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여호수아를 본받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의문을 가집니다. “이 사람들을 모두 죽였단 말입니까? 선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까?” 아모리의 다섯 왕과 성 안의 사람들 가운데 분명히 선한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선한 사람들도 죽임을 당했습니까? 이것이 무슨 정의입니까?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기브온 사람들은 구원을 받았고, 라합과 그의 온 가족도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성 안의 사람들 중에는 기브온 사람을 본받은 사람도, 라합을 본받은 사람도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대적하기로 작정했고, 함께 하나님의 원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들을 죽이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큰 우박도 내리셨습니다. 우박에 맞아 죽은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들이 죽인 사람보다 더 많았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런 하나님이십니다. 신약성경에서도 여전히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겉모습을 보지 말고 본질을 보아야 합니다.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 가운데 불공평한 것은 하나도 없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복에 따라, 혹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재앙에 따라 일어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 특히 목회자라면 하나님의 뜻 안으로 들어가도록 읽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구약의 하나님이지 신약의 하나님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형제자매에게 나눌 때 하나님을 위해 몇 가지 변명과 핑계를 만들어 줍니다. 사실 하나님께는 그런 핑계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바로 이런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한 사람이 매우 가난하여 살아가기도 어려운 상태가 되어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 사람은 펀드 관리 일을 했는데, 결국 고소를 당해 법정에 서게 되었습니다. 우리 가운데 왔을 때에도 다른 많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저도 불쌍하다고 생각하여 그 사람을 데리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몇 분 기도하지 않았을 때 하나님께서 제게 그 사람이 도둑이라고 알려 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당신은 헌금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십일조도 드리지 않았습니다. 이것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내리신 재앙입니다.” 그 말을 듣자 그 사람은 눈을 크게 뜨고 저를 바라보더니 저를 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사람을 제가 섬길 수 있겠습니까? 사실 그 사람은 정말 도둑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말했습니다. “저는 헌금했습니다.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부했습니다.” 우리 가운데 이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저주받은 사람입니다. 십일조는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십분의 일을 제외한 나머지는 여러분이 원하면 기부해도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속한 것을 하나님의 성전 밖으로 가져가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자는 모두 멸망합니다. 결코 하나님과 원수가 되지 마십시오. 헌금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헌금하는 일에서조차 도둑이 된다면 앞으로 어떻게 하겠습니까?

결국 여호수아는 이 다섯 왕을 추격했고, 마지막에는 그들을 동굴에서 끌어내 모두 죽였습니다. 그러면 이 다섯 왕에게는 장점이 하나도 없었습니까? 사실 장점이 있느냐 없느냐는 하나님께서 보시는 기준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면 하나님의 원수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는 하나님의 원수입니다

《여호수아》 10장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날에 여호수아가 막게다를 점령하고 칼날로 그 성읍과 왕을 죽이며 그 안의 모든 사람을 진멸하여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였으니, 막게다 왕에게 행한 것이 여리고 왕에게 행한 것과 같았습니다. (《여호수아》 10:28)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과 함께 막게다에서 립나로 가서 립나와 싸웠습니다. 여호와께서 립나와 그 왕도 이스라엘의 손에 넘겨주셨습니다. 여호수아가 그 성읍을 공격하여 칼날로 그 안의 모든 사람을 죽이고 한 사람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립나 왕에게 행한 것이 여리고 왕에게 행한 것과 같았습니다. (《여호수아》 10:29-30)

여호와께서 라기스를 이스라엘의 손에 넘겨주셨습니다. 이튿날 여호수아가 라기스를 점령하고 칼날로 그 성읍의 모든 사람을 죽였습니다. 립나에 행한 모든 것과 같았습니다. 그때 게셀 왕 호람이 라기스를 도우러 올라왔으므로 여호수아가 그와 그의 백성을 죽이고 한 사람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여호수아》 10:32-33)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과 함께 에글론에서 헤브론으로 올라가 그 성읍을 공격하여 헤브론과 그에 속한 모든 성읍을 점령하고 칼날로 그 성읍의 사람들과 왕과 그 성읍들에 속한 모든 사람을 죽여 한 사람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에글론에 행한 것과 같이 그 성읍의 모든 사람을 진멸했습니다. (《여호수아》 10:36-37)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과 함께 돌아와 드빌을 공격하여 그 성읍과 그에 속한 성읍들을 점령하고 드빌 왕을 사로잡았습니다. 칼날로 그 성읍들의 모든 사람을 진멸하여 한 사람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드빌과 그 왕에게 행한 것이 헤브론과 립나와 그 왕에게 행한 것과 같았습니다. (《여호수아》 10:38-39)

그러므로 저는 사람을 두 부류로 나눕니다. 한 부류는 복을 받은 사람이고, 다른 한 부류는 저주를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 자신을 살펴봅시다. 우리는 복을 받은 사람입니까, 아니면 저주를 받은 사람입니까? 자신에게 많은 문제가 있고, 무엇을 하든 매우 힘들다는 것을 발견한다면 분명 그 원인이 있을 것입니다. 그 원인을 알고 싶다면 《신명기》 28장을 읽어 보시기를 권합니다. 그곳에는 복과 저주에 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신에게 나타나는 많은 징조가 저주의 징조와 같다는 것을 발견한다면 조심해야 합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기브온 사람처럼, 라합처럼 되고, 멸망당하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많은 사람은 주일에 교회에 가기만 하면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여호수아에게 죽임을 당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매우 이성적이라고 생각했고 하나님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기준에 따라 행하십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십니까? 사실 하나님의 눈에는 어떻게 죽든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죽든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인간적인 시각으로 문제를 보면 꿰뚫어 볼 수 없습니다.

우리 가운데 한 자매가 있습니다. 제가 그 자매를 인도하여 주님을 믿게 했는데, 그 자매의 아들이 우울증에 걸렸습니다. 제가 그 자매에게 전화를 했더니 아들이 많이 좋아졌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많이 좋아진 것이 아니라 귀신이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귀신을 쫓아내는 일에서 우리는 자주 인간적인 시각으로 문제를 봅니다.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면 그 아이는 여전히 이전과 같고, 여전히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이 귀신을 쫓아내는 일에서 큰 혼란을 겪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번은 제가 수업을 하러 갔습니다. 쉬는 시간에 사람들이 강의실에서 나와 주변의 빈 공간에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전에 섬겼던 자매 한 명이 제 사정을 알고, 매우 심하게 아픈 사람을 제 앞에 데려왔습니다. 그 사람은 귀신에게 심하게 시달려 거의 무너질 지경이었습니다. 제가 그 사람을 데리고 기도했는데, 2분도 지나지 않아 귀신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귀신이 소리를 지르자 문제가 생겼습니다. 수업을 담당하던 교사와 목회자들이 그 소리를 듣고 모두 나왔습니다. 저는 남의 영역이었고 그들도 모두 목회자와 동역자들이었기 때문에 재빨리 그 자리를 피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육체를 배려하는 방식으로 그 자매를 도왔고, 그 자매에게서 나온 귀신을 다시 밀어 넣었습니다. 다행히 완전히 다시 들어간 것은 아니어서 그 자매의 몸은 조금 정상으로 회복되었습니다. 사실 계속해서 귀신을 쫓아냈다면 자유를 얻었을 것입니다. 수업이 끝난 후 그 자매는 앞으로 나가 강단에서 간증했습니다. 그 자매는 방금 전까지 몸이 매우 불편했고 몸 안에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느껴져 매우 괴롭고 무너질 것 같았는데, 어떤 사람이 자신을 위해 기도해 주자 몸에서 귀신이 쫓겨났고, 또 다른 사람들이 와서 자신을 마사지해 주었다고 말했습니다. 계속해서 귀신을 쫓아냈다면 더 좋지 않았겠습니까?

하나님의 시각으로 문제를 보는 법을 배우십시오

사람은 인간적인 시각으로 문제를 보기를 좋아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시각으로 문제를 보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여호와의 원수가 된 사람은 모두 멸망합니다. 저는 목회자들이 암에 걸린 상황을 많이 보았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잘 생각해 보십시오. 암은 저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어디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습니까? 사실 정확히 찾아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원수를 멸망시키는 일에서 자주 손을 놓습니다.

사울 왕도 그랬습니다. 《사무엘상》과 《사무엘하》를 읽어 보면 사울 왕이 하나님의 원수를 자주 불쌍히 여겼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의 임무는 무엇입니까? 우리의 임무는 자선사업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임무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은 단지 도덕적 기준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는 것은 여호수아와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며, 그런 일을 행하는 것은 칭찬받을 만한 일입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저도 읽고 나서 동의하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들이 옳게 행했다는 사실을 압니다. 제가 반드시 옳게 행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읽고 나서 그들이 옳게 행하지 않았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자신이 여호수아보다 더 뛰어나고, 이삭과 야곱보다 더 뛰어난 것처럼 말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결코 하나님의 원수를 불쌍히 여기지 마십시오. 우리의 임무는 하나님께로부터 사명을 받고 이 시대에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선사업을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까?”라고 의문을 가집니다. 그러나 저에게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며,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고, 사로잡힌 영혼들을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사실 저는 사람 수를 전혀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입니까? 신약성경은 우리에게 교회를 세우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라고 합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가 되었으니, 우리는 더욱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회를 씻어 교회에 흠이나 주름이나 그 밖의 잘못이 없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오늘 무엇을 해야 합니까? 얼마 전 한 사람이 저에게 연락해 왔습니다. 그는 지적장애인, 자폐인, 각종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많이 모아 놓았고, 그 교회의 사역은 이런 사람들을 교육하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사람이 나를 만나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가?” 성경에는 매우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사람들에게는 온갖 귀신이 붙어 있습니다. 그들을 속박에서 해방시키는 것 외에는 좋은 방법이 없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나를 찾아오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결론

우리는 마귀와 원수를 짓밟고, 하나님의 뜻을 우리의 모든 행동의 원칙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약속의 땅을 빼앗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은 약속을 받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은 멸망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는 복이 필요 없습니다. 그들에게 복을 주십시오”라고 말합니다. 마치 여러분이 하나님을 대신하여 이런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사람이 가난한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사실 하나님께서 그를 가난하게 하신 것입니다. 물론 우리에게는 긍휼의 마음이 필요하지만, 인간적인 방법으로 사람의 문제를 해결해서는 안 됩니다.

제가 이렇게 많은 말을 했지만 반드시 분명하게 전달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의 죄를 삼사 대까지 반드시 갚으십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은 회개하는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구원하시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울 때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싸우시고, 마귀와 원수를 짓밟으시며, 약속의 땅을 빼앗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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