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사도행전》 25장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저는 이 장의 주제를 '황제 앞에서 증언해야 하는 바울'로 정했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일찍이 바울에게 나타나셨을 때 그에게 매우 중대한 말씀을 하셨는데, 그 말씀이 《사도행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났고, 예수님의 빛이 그를 비추며 그로 하여금 만민 앞에서 예수님을 증언하게 하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바울은 많은 고난을 겪어야 했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주신 사명이었습니다! 바울은 이 말씀을 듣고 마음에 깊이 새겼습니다. 그는 자신이 이 세상에 온 목적이 만민에게 증언하기 위함임을 알았기에, 기회만 있으면 반드시 사람들에게 간증했습니다. 이것이 바울의 사명이자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었습니다.
여러분, 오해하지 마십시오.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신학 이론을 늘어놓지 말고 간증을 하십시오. 얼마 전 《사도행전》을 나눌 때 간증하는 방법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간증이란 바로 여러분이 행한 일, 여러분이 경험한 일, 혹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행하신 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간증을 들은 사람은 그런 일이 없었다고 부인할 수 없습니다. 만약 원자핵이나 양자역학과 같은 이론을 이야기한다면 사람들은 알아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합니다. 그러므로 간증을 통해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어디를 가든지 나눌 이야기가 많은 이유입니다. 며칠 전 몇몇 동창들과 식사할 때도 간증을 나누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아는 한 사람이 병원에서 거의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병세가 극도로 악화되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그가 저를 떠올렸습니다. 제가 병원에 가보니 정말 상태가 위독하여 손으로 머리를 쓸어 넘길 힘조차 없었습니다.
제가 그를 데리고 한 시간 동안 기도했더니, 그가 펄펄 살아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 간증을 듣고 나서 그들이 무슨 수로 반박하겠습니까? 자기 고집만 내세우며 그런 일이 없었다고 우길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복숭아를 직접 먹어보고 그 맛을 안다면, 다른 사람은 여러분이 느낀 맛이 틀렸다고 말할 자격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진짜 먹어보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런 이치입니다. 간증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며, 결코 단순히 교리만 전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됩니다.
바울은 이러한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는 황제 앞에서 증언하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품었는데, 이것은 실로 엄청난 일입니다. 만약 여러분더러 황제 앞에 나아가 복음을 전하라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마 쫓겨나거나 목이 달아나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일 텐데, 황제에게 무슨 간증을 하겠습니까? 그렇다면 바울은 어떻게 황제 앞에서 증언할 수 있었을까요?
바울은 황제 앞에서 재판을 받아야 했습니다. 이는 황제로 하여금 바울이 어떻게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났는지, 어떻게 죽은 자의 부활을 알게 되었는지 그의 경험을 듣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어쩌면 마침 황제의 집안에 어떤 필요가 생겨, 바울에게 가족을 위해 기도해 보라고 하며 그 효험을 시험해보려 했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순한 종교적 포교를 기뻐하지 않으시고, 간증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증언하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증언하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 하나님의 뜻입니다.
간증을 들은 사람은 그것이 틀렸다거나 그런 일이 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당신도 그 사람을 알고 나도 아는데, 내가 그에게 일어난 일을 이야기해 주는 것이고 그것은 모두 실제로 일어난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어떤 사람이 제게 말하기를, 자기를 따라 주님을 믿으면 십자가를 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노트북 가방만 해도 충분히 무겁고 스트레스도 많은데, 왜 십자가까지 또 져야 하느냐고 했습니다. 며칠 뒤 또 다른 전도자가 와서는 지금 자기를 따라 예수를 믿으면 죽어서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따지기를 좋아하는 성격이라, 그에게 천국에 가본 적이 있는지 증명해 보라고 했습니다. 가본 적이 없다면 그만두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를 보면 실제로 《성경》에 부합하지 않는 부분이 많습니다. 복음을 전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간증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남들에게 이야기한들 누가 믿겠습니까? 자신이 직접 경험했다면 사람들에게 진실하게 전하십시오.
만약 누군가 여러분에게 그런 사람들을 따라 예수 믿으면 죽어서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말이 진짜냐고 묻는다면, 사실 《성경》에는 그렇게 단순하게 쓰여 있지 않습니다. 이 장의 주제는 바울이 황제 앞에서 증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황제든 왕이든 그들은 바울의 이야기를 들어야 했고, 새로 부임한 총독조차 들으려 했습니다. 그들은 바울의 이야기를 듣고 꽤 흥미롭다고 여겼습니다.
새로 부임한 총독이 바울의 간증을 듣고자 하다
베스도가 부임한 지 삼 일 후에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 (《사도행전》 25:1)
새로 부임한 총독은 바울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감옥에 죄수가 너무 많아서 일일이 다 파악할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새로 부임한 총독은 부임한 지 3일 만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정치가들은 소요가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합니다. 만약 관할 도시에서 갑자기 소요가 일어나면 자리를 보전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의 대제사장들과 유대인들은 매우 강력한 정치 세력이었으므로 총독은 일을 잘 수습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사흘 뒤 예루살렘으로 가 대제사장을 만난 것입니다.
여러분, 결코 얕보아서는 안 됩니다. 새로 부임한 총독이라 해도 이 유대인들을 마음대로 통제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로마 제국은 영토가 광활하여 작은 나라들을 차례로 정복해 나갔습니다. 그들에게는 그들만의 통치 이론이 있었습니다. 이 작은 나라들을 안정시키려면 정면으로 충돌해서는 안 되며, 그것은 정치가 아닙니다. 정치란 국가를 관리하는 일련의 이론이며, 로마 제국의 국가 통치 이론은 역사상 손꼽히는 위대한 제국의 이론 중 하나였습니다. 페르시아 제국처럼 로마 제국도 위대한 통치 철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이 바울을 고소할새 베스도의 호의로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옮겨 보내기를 청하니 이는 길에 매복하였다가 그를 죽이고자 함이더라 베스도가 대답하여 바울이 가이사랴에 구류된 것과 자기도 멀지 않아 떠나갈 것을 말하고 (《사도행전》 25:2-4)
베스도는 부임 후 인사차 대제사장을 예방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대제사장을 만나자마자 권세를 쥔 유대인들이 바울을 기필코 죽이려 들었습니다. 베스도는 다른 일은 아직 꺼내지도 않았는데 대뜸 바울이라는 자를 들먹이니 '도대체 바울이 누구인가?' 싶었습니다. 베스도는 바울을 불러 심문하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다는 간증을 한참 동안 들었습니다. 만약 베스도가 이 일에 흥미를 느꼈다면, 그는 반드시 깊이 파고들어 바울의 설명을 차근차근 들었을 것입니다.
저는 바울에게 일어난 이 일이 참으로 신기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루살렘으로 갈 때 성령께서 막으셨음에도 그는 굳이 가려 했습니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지 않고 어떻게 호랑이 새끼를 잡겠습니까? 바울이 이 길을 가지 않았다면 어떻게 황제 앞에 나아가 복음을 전할 수 있었겠습니까? 바울은 예루살렘에 도착하자마자 붙잡혀 2년 동안 옥살이를 했습니다. 그는 옥중에서 보낸 2년 동안 꽤 잘 지내며 많은 서신을 썼고, 사역을 정리하고 총괄했습니다. 이전에는 사역이 너무 바빠 추상화하고, 정리하고, 귀납할 시간이 없었지만, 이제 감옥 안에서 조용히 정리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면회도 허락되었습니다.
새로 부임한 총독도 바울의 간증을 들어야 했습니다. 결국 이렇게 한 바퀴를 돌아온 것은 오직 이 한 가지 일을 위해서였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정말 유머러스하십니다. 성령께서 일부러 바울을 막아보시며 그가 진정으로 이 위험을 감수할 마음이 있는지를 시험하셨는데, 바울이 진심으로 임하니 아무도 막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기필코 증언하고자 했습니다! 성령께서 발람을 막으셨을 때도 막지 못했고, 바울을 막으셨을 때도 마찬가지로 막지 못했습니다. 다만 발람은 무지한 선지자였고, 바울은 매우 분명한 사명을 가진 사도였습니다! 그는 증언하는 이 사명을 결코 잊지 않았습니다. 신임 총독의 첫 번째 사건이 바울의 간증을 듣는 것이었으니, 이 일은 베스도에게 매우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베스도가 그들 가운데서 십여 일을 지낸 후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이튿날 재판자리에 앉고 바울을 데려오라 명하니 그가 나오매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유대인들이 둘러서서 여러 가지 중대한 사건으로 고발하되 능히 증거를 대지 못한지라 바울이 변명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가이사에게나 내가 도무지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노라 하니 (《사도행전》 25:6-8)
어떤 사람들은 바울이 감옥에 갇힌 것이 좋지 않다며 하나님께서 꼭 이런 방식으로 일하셔야 하느냐고 의문을 제기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렇게 일하십니다. 요셉이 이집트로 팔려 갔을 때도 하나님께서 거짓말하는 영을 보내 요셉의 형들을 속이셨고, 그 결과 형들이 요셉을 산 채로 이집트에 팔아넘겨 노예가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행하십니다. 그러나 요셉은 훗날 이집트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산다는 것의 본질을 꿰뚫어 보지 못한다면 하나님과 동역하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 도착해 붙잡힌 뒤 2년 동안 옥살이를 했습니다. 사계절을 두 번이나 겪었는데, 겨울 감옥은 몹시 추워서 호텔에 묵는 것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호텔에 묵으면서도 불평하지만, 바울은 옥살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 기간 동안 전임 총독도 바울의 간증을 다 듣지 못해 계속 들었고, 신임 총독 역시 이어서 들었습니다. 바울은 죽음조차 두렵지 않다고 말했는데, 이것이 그의 사명이었습니다. 바울은 감옥 안에서 매우 활발하게 지내며 가장 훌륭한 모범수가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이 기필코 바울을 죽이려 했기 때문에, 오히려 역사상 으뜸가는 유명한 사도 바울이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명성을 얻으려면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아그립바 왕이 바울의 간증을 듣고자 하다
아그립바가 베스도에게 이르되 나도 이 사람의 말을 듣고자 하노라 베스도가 이르되 내일 들으시리이다 하더라 (《사도행전》 25:22)
로마 제국은 중국의 진나라와 다소 비슷합니다. 진나라는 주나라의 역사를 본받아 분봉왕과 지방관을 동시에 두었습니다. 행정권은 총독에게 주었고, 지방에는 분봉왕이 있는 정치 제도였습니다. 바울이 황제에게 상소하여 공정한 판결을 받고자 한 것은, 사실 황제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증언하기 위함이었으니 이 대가는 실로 컸습니다. 그런데 총독 베스도가 부임하여 맡은 첫 번째 사건이 바로 사도 바울의 간증을 듣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라는 자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는데, 총독이 조사해 보니 빌라도 치하에서 예수께서 고난을 받으신 실제 사건이 있었습니다. 빌라도는 그 지역의 전임 총독 중 한 사람이었는데, 바울은 예수가 살아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참 유머러스하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밤중에 베스도에게 직접 나타나셨다면 그는 기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일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오직 믿는 자들에게만 나타나십니다. 간증을 듣고 믿어야 나타나시지, 믿지 않으면 나타나지 않으십니다. 사람을 겁주려 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총독 베스도는 아마도 하급 관리에서 승진한 인물이었기에 이 사건을 판결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유대 대제사장은 바울을 죽이려 하고, 바울은 가이사, 즉 황제에게 상소하려 했습니다.
만일 내가 불의를 행하여 무슨 죽을 죄를 지었으면 죽기를 사양하지 아니할 것이나 만일 이 사람들이 나를 고발하는 것이 다 사실이 아니면 아무도 나를 그들에게 내주실 수 없나이다 내가 가이사께 상소하노라 한대 베스도가 배석자들과 상의하고 이르되 네가 가이사에게 상소하였으니 가이사에게 갈 것이라 하니라 (《사도행전》 25:11-12)
이제 일이 수월해졌습니다. 베스도가 아그립바 왕에게 연락하여 '여기 가이사에게 상소하려는 자가 있는데, 마땅한 죄목을 찾지 못하겠습니다'라고 말하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그러자 아그립바 왕은 죽은 자가 부활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간증을 매우 듣고 싶어 했습니다.
원고들이 서서 내가 짐작하던 것 같은 악행의 혐의는 하나도 제시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들의 종교와 또는 예수라 하는 이가 죽은 것을 살아 있다고 바울이 주장하는 그 일에 관한 문제로 고발하는 것뿐이라 (《사도행전》 25:18-19)
이 일은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사도 바울이 평소에 어떻게 베스도 같은 총독을 만날 수 있었겠으며, 아그립바 왕을 만나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했습니다. 설령 만났다 한들 "아그립바 왕이여, 제가 간증 하나 하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랬다가는 몽둥이질을 당해 법정 밖으로 쫓겨났을 것입니다. 포교를 하고 간증을 한다고요? 목숨이 아깝지 않은 짓입니다. 그런데 이제 아그립바 왕이 직접 듣겠다고 나섰습니다. 바울은 참으로 헛된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총독과 유대 대제사장, 아그립바 왕을 거쳐 로마 황제에게까지 나아가 증언하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바울은 목표가 뚜렷했을 뿐만 아니라 전략도 매우 명확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 가서 붙잡혔을 때,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을 수 없다는 사실을 마음속으로 잘 알고 있었습니다. 결국 그는 투옥되고 상소하여 황제에게까지 나아갔습니다. 아그립바 왕이 바울의 간증을 듣고자 한 것도 매우 흥미롭습니다. 아그립바 왕은 예수님 시대의 헤롯 왕의 후손이었는데, 아들 대인지 손자 대인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헤롯 가문이 성전을 건축한 것을 보면 영적인 면모가 다소 있었습니다. 즉, 아그립바 왕은 영적인 존재를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날 이 시대에도 귀신이나 신적 존재를 믿는 사람은 많지만, 안타깝게도 참되신 하나님은 믿지 않습니다.
황제도 바울의 간증을 들어야 하다
황제 역시 바울의 간증을 들어야 했는데, 이것이 로마의 법도였습니다. 총독이 바울의 간증을 들은 것도 그것이 그의 직무였기 때문이고, 아그립바 왕이 바울의 간증을 들은 것 역시 그의 직무였습니다. 바울은 비록 죄수의 몸이었지만, 이들은 각자의 직무를 수행해야 했습니다. 황제가 바울의 간증을 듣는 것조차 황제의 공무였습니다. 로마 제국에는 체계가 있어서 지방관들이 해결하지 못한 사건은 모두 황제에게 올려 재판을 받게 했습니다.
로마 제국은 영토가 광활하여 대 로마 제국의 황제는 매일 수많은 정무로 바빴지만, 바울을 직접 심문해야 했습니다. 황제가 바울의 간증을 듣는 것은 황제의 일이었고, 아그립바 왕이 듣는 것은 왕의 일이었으며, 총독이 듣는 것은 총독의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놀라우십니다! 로마 제국의 관례가 그렇게 정해져 있었습니다. 총독이 해결할 수 없는 일은 사건을 명확히 기록하여 황제에게 상소했습니다.
《사도행전》은 누가가 데오빌로 각하에게 쓴 것으로 전해지는데, 데오빌로는 당시 로마의 매우 유명한 변호사였을 것입니다. 《사도행전》은 《성경》에 수록되어 사도 바울의 여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때 누가는 바울의 이야기를 명확하게 기록하여 변호사에게 전달함으로써, 변호사가 황제 앞에서 사도 바울을 변호할 수 있게 하려 했던 것입니다.
본래 간증 하나 하는 것으로 끝날 일이었지만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황제가 바울의 간증을 듣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재판을 거쳐야 바울의 차례가 오겠습니까! 그래서 바울은 로마에서 2년 동안 순서를 기다렸습니다. 로마 황제가 매일 재판만 할 수는 없었고, 처리해야 할 국가 중대사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으며, 황실의 일도 돌보고, 사냥도 가고, 올림픽 경기와 같은 수많은 행사도 직접 주관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황제가 바울의 간증을 듣기까지는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개의치 않으셨고, 바울 역시 개의치 않았습니다. 순서가 얼마나 오래 걸리든 황제에게 간증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는 기꺼이 감수했으며, 감옥에서 2년을 보낸다 해도 아무런 원망이 없었습니다. 사람에게 사명이 있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있다면, 그의 일생은 영광의 광채를 띠게 되며 이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사람이 됩니다. 바울은 감옥에 갇히자마자 하나님께 왜 이러시느냐고 따지는 사람들과는 달랐습니다. 그렇게 따지는 것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프로그램과 주파수를 맞추지 못하는 것입니다.
대제사장과 유대인들이 바울을 살려두려 하지 않다
같은 유대인이고 바울 역시 바리새인이었는데, 그들은 왜 바울을 살려두려 하지 않았을까요?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 보니 충분히 이해가 되었습니다. 해외에서 같은 동포를 속이는 일이 흔한 것처럼 말입니다. 대제사장은 바울을 살려두려 하지 않았고, 간증조차 하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그들은 왜 바울이 예수의 살아계심을 증언하는 것을 그토록 두려워했을까요? 그 배후에 종교의 영이 역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제사장들과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이 바울을 고소할새 베스도의 호의로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옮겨 보내기를 청하니 이는 길에 매복하였다가 그를 죽이고자 함이더라 베스도가 대답하여 바울이 가이사랴에 구류된 것과 자기도 멀지 않아 떠나갈 것을 말하고 또 이르되 너희 중 유력한 자들은 나와 함께 내려가서 그 사람에게 만일 옳지 못한 일이 있거든 고발하라 하니라 (《사도행전》 25:2-5)
여기 아주 명확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베스도는 예루살렘의 권세 있는 자들에게 자신과 함께 가이사랴로 내려가 바울을 심문하고, 원고와 피고가 대질하도록 했습니다. 이 일은 본래 로마인들과 상관없는 일이었기에 그들도 얽히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종교의 영을 대적할 때 각별히 주의해야 합니다. 종교의 영은 매우 강력하며, 그 첫 번째 특성은 참된 도를 어지럽히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도 그들만의 복음이 있지만, 그것은 종교의 영에서 비롯된 거짓 복음입니다.
로마 제국은 바울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유대 대제사장은 바울을 매우 심각하게 여겼습니다. 그 배후에 종교의 영과 권세의 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서신을 쓸 때, 이 세상의 권세자들과 지위 있는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지혜를 결코 깨달을 수 없다고 기록했습니다. 그들은 사도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거짓 복음이라 굳게 확신했고, 바울을 고발한 내용 역시 전혀 입증할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거짓말하는 영입니다! 사람이 일단 거짓에 미혹되면, 자기 자신조차 입증할 수 없는 수많은 것들을 맹신하게 됩니다. 종교의 영에는 또 다른 특성이 있는데, 바로 완고하게 믿는다는 점입니다. 저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따르는 사명 신학에 대해 가장 심하게 대적하는 이들이 다름 아닌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종교의 영에 사로잡힌 무리는 대단히 기괴합니다! 이것이 바로 대제사장과 유대 권세자들이 바울을 살려두려 하지 않은 이유입니다.
바울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다
바울은 정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를 해치려던 자들은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는 것이 마냥 좋다고 여겼지만, 바울은 죽는 것도 유익하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죽이려 한다면 얼마든지 덤비라는 식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바울을 해치지 못하도록 막아선 것은 다름 아닌 이방인의 법이었습니다. 로마 제국에는 엄격한 법 규범이 있어서 로마 시민을 함부로 죽일 수 없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진정한 법치 정신이 있어서 정식 심문을 거치지 않고는 사람들이 함부로 처형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바울은 태생부터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으니 어디 가서 이런 이치를 따지겠습니까? 당시 로마 시민의 권리는 매우 커서 재판을 받을 때 황제에게 상소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그가 일개 유대인에 불과했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었을 것입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도 지켜주실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보호를 받습니다. 사도 바울은 사명이 있었기에 자신이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알았습니다.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계십니까? 만약 뚜렷한 목적 없이 살면서 고난을 당하고도 죽기 싫어 안달한다면 얼마나 비참하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오직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위해 살았습니다. 사실 육신의 삶 자체는 덧없으며 눈 깜짝할 사이에 늙어버립니다.
젊은 시절 혈기 왕성하던 열혈 청년들도 눈 깜짝할 사이에 불혹의 나이에 이르고, 사진을 찍어보면 다들 노인이 되어 있습니다. 어떤 이는 노파처럼 변해서 사진을 보고 누구의 어머니냐고 묻기도 합니다! 세월이 참으로 무상하여 사람의 얼굴을 그렇게 바꾸어 놓습니다. 예전에는 훈훈한 청년이었지만 지금은 완전히 딴사람이 되었습니다.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르고 눈썹은 길어져 수성노인 같고 이마는 훤칠합니다. 십 년 전만 해도 이렇지 않았고 이십 년 전에는 다들 의기양양했는데, 이제는 그 혈기가 온데간데없어졌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제가 왜 살아야 하는지 알고 있으며, 제가 아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축복이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하지만 이를 실천하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먼 곳까지 가서 간증을 전하고 돌아오는 것은 정말 고된 일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바로 이 일을 행했습니다. 영원한 소망을 품은 그가 죽음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 담대함이 실제로 저를 살렸습니다. 제가 마흔 살 되던 해에 비인두암의 모든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대조해 보니 모든 증상이 정확히 일치했습니다.
당시에는 차를 10분만 운전해도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피곤하여 몹시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단 하루도 병가를 내지 않고 출근하며 죽을 각오로 일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쉬면서 진료를 받으라고 권했습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죽으면 그만이지요!"라고 말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죽어도 상관없었습니다. 보험이라도 들어두어야 하나 싶었지만, 보험에 들기 전에 병원에서 정식 검사를 받으면 보험 가입조차 안 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검사도 받지 않았고 알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반년이 지나도 죽지 않았고, 9개월이 지나자 신기하게도 완전히 다 나았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실로 대단한 힘이 있습니다. 죽기를 무서워하지 않는 자의 생명은 질깁니다!
비인두암 증세가 있던 그 시기는 마침 사스(SARS)가 유행하던 때였습니다. 사스는 피해 갔지만 얼마 전에는 코로나에 걸렸습니다. 침대에 누워 천장의 전등을 바라보는데 전등이 농구공처럼 커졌다가 작아지기를 반복했습니다. 제 스스로 전등의 원래 크기를 잘 알고 있는데 어떻게 농구공만 해질 수 있겠습니까? 환시 증상이 나타났음을 문득 깨달았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니 그저 기도했습니다! 인공호흡기도 쓰지 않고 아무런 조치도 없이 버텨내어 완쾌되니, 주변 사람들이 다들 깜짝 놀랐습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병원에서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것이 과연 병 때문인지, 치료 때문인지 명확히 분간하기 어렵습니다. 절반은 약의 독성 때문이고, 나머지 절반은 질병에 대한 공포 때문에 죽는 것입니다. 약에는 저마다 독성이 있으니, 병원을 신뢰한다면 의사를 찾아가십시오. 저는 제 개인의 경험을 말하는 것이니 함부로 따라 하지 마십시오! 저와 같은 믿음의 역량이 없다면 억지로 버티지 말고 의사에게 가서 진료를 받으십시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우리 가운데 아직도 죽음을 두려워하는 분이 계십니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영생 안에 거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있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심을 알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이 우리 삶에 나타나는 것을 늘 목도한다면 어찌 죽음을 두려워하겠습니까? 결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경험하십시오! 바울은 죽음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기에 옥살이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감옥에서 감기에 걸렸는지, 관절염을 앓았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하나님을 모신 사람은 실로 강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이 늘 우리를 덮고 계시기에, 바울은 자신이 항상 죽음을 경험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끊임없이 경험한다고 고백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이러한 사명을 품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사명 신학이며, 자신이 이 땅에 무엇을 하러 왔는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삼장법사나 손오공을 보아도 얼마나 뚜렷한 사명이 있었습니까? 서역으로 경전을 구하러 가며 81가지의 환난을 겪었습니다. 화염산을 넘고 반사동을 지나 백골정을 세 번이나 물리치며 참으로 험난한 길을 걸었습니다.
그들 역시 믿음의 본보기이자 사명에 헌신한 모습입니다. 서역으로 불경을 구하러 가든, 예루살렘으로 순례를 가든, 메카로 가든, 마음속에 뚜렷한 푯대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분이며, 그분의 부활의 능력이 항상 우리와 함께합니다. 죽기를 두려워하고 삶에 연연한다면 결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으며, 온전한 간증도 전할 수 없습니다.
결론
바울은 황제 앞에서 증언해야 했고, 결국 그 뜻을 이루었습니다. 로마 황제는 분별력 있는 사람이었기에 바울을 석방했고, 유대 대제사장이 아무리 고발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로마에서 재판을 받은 이후에는 교회를 세우기 위해 쓴 서신들이 많이 수집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사역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바울은 그 시대에 가장 위대한 사명을 완수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세대 가운데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명을 짊어지고, 온전한 양육 체계를 세워 나가야 합니다.
비록 쉽지 않은 일이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수고하고 있으며, 저는 《성경》에 부합하는 온전한 양육 체계를 정립하고자 간절히 힘쓰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신 것은 양떼를 먹이고 돌보는 양육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러한 양육의 깊은 지혜를 바울에게 계시해 주셨을까요? 많이 계시하지는 않으신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함께 사모하며 하나님의 계시를 구하면 어떻겠습니까? 저는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온전한 양육 체계를 우리에게 계시해 주실 것이라는 감동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의 양 떼를 온전히 양육하여, 기쁨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맞이합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