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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 사도행전 23장 - 담대하라, 네가 로마에서도 나를 증언하리라!

2023-11-01 39,748 使徒行传 使徒行传第二十三章 使徒行传23章 为主献上生命 必为神作见证 走命定的路 有信心就有盼望

相关经文

使徒行传23章-杀害保罗的阴谋
  • 1 保罗定睛看着公会的人,说:“弟兄们,我在 神面前行事为人都是凭着良心,直到今日。”
  • 2 大祭司亚拿尼亚就吩咐旁边站着的人打他的嘴。
  • 3 保罗对他说:“你这粉饰的墙, 神要打你!你坐堂为的是按律法审问我,你竟违背律法,吩咐人打我吗?”
  • 4 站在旁边的人说:“你辱骂 神的大祭司吗?”
  • 5 保罗说:“弟兄们,我不晓得他是大祭司;经上记着说:‘不可毁谤你百姓的官长。’”
  • 6 保罗看出大众一半是撒都该人,一半是法利赛人,就在公会中大声说:“弟兄们,我是法利赛人,也是法利赛人的子孙。我现在受审问,是为盼望死人复活。”
  • 7 说了这话,法利赛人和撒都该人就争论起来,会众分为两党。
  • 8 因为撒都该人说,没有复活,也没有天使和鬼魂;法利赛人却说,两样都有。
  • 9 于是大大地喧嚷起来。有几个法利赛党的文士站起来争辩说:“我们看不出这人有什么恶处,倘若有鬼魂或是天使对他说过话,怎么样呢?”
  • 10 那时大起争吵,千夫长恐怕保罗被他们扯碎了,就吩咐兵丁下去,把他从众人当中抢出来,带进营楼去。
  • 11 当夜,主站在保罗旁边,说:“放心吧!你怎样在耶路撒冷为我作见证,也必怎样在罗马为我作见证。”
  • 12 到了天亮,犹太人同谋起誓,说:“若不先杀保罗就不吃不喝。”
  • 13 这样同心起誓的有四十多人。
  • 14 他们来见祭司长和长老,说:“我们已经起了一个大誓,若不先杀保罗就不吃什么。
  • 15 现在你们和公会要知会千夫长,叫他带下保罗到你们这里来,假作要详细察考他的事;我们已经预备好了,不等他来到跟前就杀他。”
  • 16 保罗的外甥听见他们设下埋伏,就来到营楼里告诉保罗。
  • 17 保罗请一个百夫长来,说:“你领这少年人去见千夫长,他有事告诉他。”
  • 18 于是把他领去见千夫长,说:“被囚的保罗请我到他那里,求我领这少年人来见你;他有事告诉你。”
  • 19 千夫长就拉着他的手,走到一旁,私下问他说:“你有什么事告诉我呢?”
  • 20 他说:“犹太人已经约定,要求你明天带下保罗到公会里去,假作要详细查问他的事。
  • 21 你切不要随从他们;因为他们有四十多人埋伏,已经起誓说,若不先杀保罗就不吃不喝。现在预备好了,只等你应允。”
  • 22 于是千夫长打发少年人走,嘱咐他说:“不要告诉人你将这事报给我了。”
  • 23 千夫长便叫了两个百夫长来,说:“预备步兵二百,马兵七十,长枪手二百,今夜亥初往凯撒利亚去;
  • 24 也要预备牲口叫保罗骑上,护送到巡抚腓力斯那里去。”
  • 25 千夫长又写了文书,
  • 26 大略说:“革老丢·吕西亚,请巡抚腓力斯大人安。
  • 27 这人被犹太人拿住,将要杀害,我得知他是罗马人,就带兵丁下去救他出来。
  • 28 因要知道他们告他的缘故,我就带他下到他们的公会去,
  • 29 便查知他被告是因他们律法的辩论,并没有什么该死该绑的罪名。
  • 30 后来有人把要害他的计谋告诉我,我就立时解他到你那里去,又吩咐告他的人在你面前告他。(有古卷加:愿你平安!)”
  • 31 于是,兵丁照所吩咐他们的,将保罗夜里带到安提帕底。
  • 32 第二天,让马兵护送,他们就回营楼去。
  • 33 马兵来到凯撒利亚,把文书呈给巡抚,便叫保罗站在他面前。
  • 34 巡抚看了文书,问保罗是哪省的人,既晓得他是基利家人,
  • 35 就说:“等告你的人来到,我要细听你的事”;便吩咐人把他看守在希律的衙门里。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사도행전》 23장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사도행전》도 거의 다 공부해 가네요. 이번에 공부하면서 예전보다 훨씬 더 명확해졌다고 느끼지 않으시나요? 주제를 파악하는 능력이 계속해서 향상되고 있습니다. 저만 발전한 것이 아니라 여러분 모두 발전했습니다! 이는 참으로 좋은 현상입니다. 성경공부뿐만 아니라, 우리는 간증하는 데 있어서도 사도 바울을 본받아야 합니다.

이번 장의 주제는 ‘담대하라, 네가 로마에서도 나를 증언하여야 하리라!’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주신 계획이며, 그는 반드시 로마로 가서 주님을 위해 간증해야 했습니다. 지금 비록 갇힌 몸이 되었지만, 주님께서는 밤에 바울 곁에 서셨습니다. 사람에게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바울은 비록 갇혔지만, 그의 마음을 가둘 수는 없었고 그의 사명을 가둘 수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밤에 친히 그의 곁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저는 이런 간증을 보고 이런 말씀을 읽을 때마다 참으로 너무나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이 무엇을 위해 사는지 알고, 주님을 위해 뛰어다니며 수고하고, 주님을 위해 간증할 수 있는 이런 기회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실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입니다. 저도 언젠가 주 예수님께서 제 곁에 서셔서 “담대하라!” 하고 말씀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갇혔는데 뭐가 좋다는 거지? 다 붙잡혔고, 심지어 찢겨 죽을 뻔했는데.’ 보통 사람이라면 이런 일을 겪었을 때 가슴이 떨리고 다리가 후들거리며 바지에 오줌을 쌌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기저귀를 찰 필요가 없었고, 결코 무서워서 사시나무 떨듯 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있었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대제사장도 바울의 간증을 들어야 한다

바울이 공회를 주목하여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까지 나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하거늘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바울 곁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그 입을 치라” 명하니 (사도행전 23:1-2)

대제사장이 왔지만 바울은 알지 못하고 계속해서 그들에게 간증을 전했습니다. 결국 대제사장은 곁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바울의 입을 치라고 명하며 ‘바울, 네가 아직도 네 자신을 자랑하느냐?’라고 한 셈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참으로 양심을 따라 살아온 사람인데, 왜 갇히게 되었을까요? 바로 이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간증을 듣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한 사람이든 두 사람이든, 듣는 사람마다 들을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대제사장을 포함한 공회 사람들 중 누군가는 집에 돌아가 침대에 누워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이 예수 그리스도가 진짜 그리스도일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한 사람이 이렇게 의기당당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분을 위해 간증할 수 있단 말인가?’ 보통 사람이라면 그저 돈을 위해서나 목숨을 건지기 위해 이런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예수 그리스도가 진짜가 아니라면 바울이 이렇게 할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가 모를 뿐이지 그런 사람이 몇 명쯤은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공회 사람들에게 나중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간증을 들은 사람이 있었을까요? 저는 있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예수님께서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오게 하셔서 유대인들 앞에서 간증하게 하시고, 또 로마인들 앞에서도 간증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바로 이를 위해 온 것입니다. 야고보나 베드로 같은 사람들도 바울의 이러한 사명감으로 인해 감동을 받고, 바울이 전하는 것이 참 복음임을 알게 되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끝내 감동을 받았는지 여부는 그들 각자의 몫에 달린 일이겠지만 말입니다.

바울이 이르되 “회칠한 담이여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 네가 나를 율법대로 심판한다고 앉아서 율법을 어기고 나를 치라 하느냐” 하니 곁에 선 사람들이 말하되 “하나님의 대제사장을 네가 욕하느냐” 바울이 이르되 “형제들아 나는 그가 대제사장인 줄 알지 못하였노라 기록하였으되 너의 백성의 관리를 비방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더라 (사도행전 23:3-5)

지난 장에서 바울이 공회에 이르러 사람들을 보고 입을 열어 말하다가, 나중에야 눈앞에 있는 사람이 대제사장임을 알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서둘러 사과하며 동시에 몇 마디 말을 덧붙였습니다.

바울이 그 중 일부는 사두개인이요 다른 일부는 바리새인인 줄 알고 공회에서 외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로 말미암아 내가 심문을 받노라” (사도행전 23:6)

바울이 보니 마주한 무리의 절반은 사두개인이고 절반은 바리새인이었습니다. 이는 마치 오늘날의 교회에서 절반은 방언하는 것을 찬성하고 절반은 방언을 반대하며, 절반은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믿고 절반은 부활이 없다고 믿으며, 절반은 천사가 있다고 생각하고 절반은 천사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두 교파, 곧 사두개파와 바리새파는 종일토록 서로 논쟁만 일삼았습니다. 감리교, 장로교, 은사주의, 보수주의 등 수많은 교파가 저마다 자기 논리를 내세우는 것과 같습니다.

그 말을 한즉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사이에 다툼이 생겨 무리가 나누어지니 이는 사두개인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 하고 바리새인은 다 있다 함이라 크게 떠들새 바리새인 편에서 몇 서기관이 일어나 다투어 이르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니 악한 것이 없도다 혹 영이나 혹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으면 어찌하겠느냐” 하여 큰 분쟁이 생기니 천부장은 바울이 그들에게 찢겨질까 하여 군인을 명하여 내려가 무리 가운데서 빼앗아 가지고 영내로 들어가라 하니라 (사도행전 23:7-10)

바울이 이 말을 마치자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사람들은 바울의 일을 다 잊어버렸습니다. 사두개인이든 바리새인이든 마치 싸움닭처럼 두 파가 맞붙어 논쟁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들은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하고, 어떤 이들은 부활이 없다고 하며, 어떤 이들은 천사가 있다고 하고, 어떤 이들은 천사가 없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그 중간에서 하마터면 찢겨 죽을 뻔했고, 사람들은 바울의 일 따위는 신경 쓰지도 않았습니다. 천부장이 이 상황을 보고 서둘러 바울을 빼내어 데려갔습니다. 바울은 정말 영리했습니다. 질문 하나를 던져 두 파를 혼란에 빠뜨리고 순간적으로 그들의 머릿속을 뒤흔들어 놓은 것입니다. 바울은 대제사장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간증할 기회를 얻었는데, 사실 이 사람들도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다 알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어떻게 간증했는지 아십니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면 주님을 위해 간증할 수 없고, 돈을 사랑해도 예수님을 위해 간증할 수 없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그를 보고 ‘저 사람은 진짜구나’라는 것을 단번에 알게 됩니다. 목숨을 바칠 수 있어야 비로소 진정한 간증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것이 핵심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저 입만 번지르르합니다. 결정적인 순간만 되면 여지없이 무너지고, 머릿속에는 사기 칠 생각만 가득하여 여러분의 돈을 자기 주머니에 넣으려고만 합니다. 결국 여러분 주머니의 돈이 그의 주머니로 들어가고, 그 돈이 어디로 갔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 사람 자신은 분명 감옥에 들어가게 됩니다.

바울이 갇힌 것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 때문이었고, 그들이 갇힌 것은 돈 때문이었습니다. 흔히 ‘사람은 재물 때문에 죽고, 새는 먹이 때문에 죽는다’고 하듯, 이것이 평범한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바울이 이 모든 일을 이렇게 담담하게 마주할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사명이 있었기 때문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든 로마인들 앞에서든 오직 간증하는 이 일을 하도록 부름받았습니다. 바울은 세상의 큰 무대를 경험한 사람이며, 평생 간증하며 총독과 로마 황제에게까지 나아갔습니다. 세상에 이런 기회를 얻은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바울의 계획은 로마로 가서 주님을 위해 간증하는 것이었다

원래 바울의 계획은 로마로 가는 것이었는데, 예루살렘에 오자마자 일이 꼬여버렸으니 마음속에 갈등과 함께 아쉬움이 컸습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 오기 전 이미 로마 교회에 편지를 써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로마의 형제자매들에게 먼저 예루살렘에 갔다가 로마로 가서 그들을 보겠다고 전했습니다. 로마로 가려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 위기에 처하자 바울은 마음이 매우 복잡하여 밤에 하나님께 기도했고, 기도 중에 주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사도행전 23:11)

사실 바울은 마음속으로 몹시 걱정하고 있었지만, 주님의 이 말씀을 듣고 안심했습니다. 비록 지금은 갇힌 몸이지만 주 예수님께서는 여전히 그를 위해 로마로 가는 길을 평탄케 해 주셨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이것이 바로 믿음의 논리임을 알아야 합니다. 로마에 가지 못하게 된 것은 아쉬운 일이었지만, 바울은 믿음을 가지고 밤에 기도했습니다. 그는 반드시 로마로 가서 주님을 위해 간증하고, 그곳에서 로마의 형제자매들을 얻고자 했습니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참 흥미롭습니다. 믿음이 사라지면 괴로워집니다. 그러다가 ‘이러면 안 되지, 믿음을 가져야 해, 반드시 로마에 가서 간증할 수 있어’라고 생각했다가도, 또다시 믿음이 사라지곤 합니다. 믿음이 있다가도 없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믿음이 있을 때는 마음이 편안하고, 믿음이 없을 때는 몹시 괴롭다는 것을 발견하셨습니까? 사람에게 믿음이 있을 때는 소망이 생기지만, 믿음이 없을 때는 괴롭고 불안하여 이리저리 궁리해 보아도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습니다. 과거에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 갇혔을 때는 옥문이 열렸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문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만약 하나님께 왜 문을 열어주지 않으시냐고 따진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사실 하나님께서는 전혀 개의치 않으시며, 옥문이 열리지 않았다고 해서 염려할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바울을 위해 문을 여시고, 그 앞길에 복음을 전하고 간증할 길을 평탄케 하십니다. 사명이 있는 사람에게는 그렇습니다.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믿음이 있다가도 없고, 안심했다가도 다시 불안해지는 이 과정은 사실 매우 정상적인 것입니다. 여러분도 갈등해 보았고 저도 갈등해 보았습니다. 어제 아침, 캐나다에 있는 한 자매님이 전화를 걸어와 자신의 믿음이 있다가도 없어진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만약 우리가 회사의 상장에 대해 이랬다저랬다 믿음이 흔들린다면 그것은 헛된 일입니다. 상장이 되든 안 되든 하나님께서는 별로 개의치 않으십니다.

만약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있다면, 믿음이 있든 없든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여러분을 도우실 것입니다. 이것이 사명을 가진 자의 유익입니다. 사람이 사명이 없으면 무엇을 위해 사는지조차 알지 못합니다. 우리 가운데 어떤 선생님이 강단에서 수업을 하고 있는데, 반의 불량 학생 몇 명이 들어와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선생님은 저의 가르침을 들었기 때문에 그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물어본 그 질문은 정말 대단한 질문이다. 그것은 철학적인 문제인데, 그렇다면 너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니?”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암에 걸리기 위해서 온 것입니까? 어떤 사람은 요실금이나 변실금을 앓고, 어떤 사람은 배변을 못 하거나 음식을 넘기지 못합니다. 세상에 무엇을 하러 왔는지도 모른 채 그저 그렇게 살아간다면, 그것은 맹목적으로 사는 것에 불과합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세상에 무엇을 하러 왔느냐고 묻는다면, 암에 걸리기 위해서라거나 관절염에 걸리기 위해서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자오번산(赵本山)이 넌센스 퀴즈로 우스갯소리를 한 적이 있습니다. 돼지 한 마리와 당나귀 한 마리가 있는데, 주인이 어느 것을 먼저 잡는 것이 좋겠느냐는 문제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당나귀를 먼저 잡는다”라고 대답하자, 자오번산은 “맞았습니다! 돼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돼지가 이 세상에 온 것은 사람에게 고기를 주기 위함이고, 어떤 사람은 돈을 찍어내기 위해 왔으며, 어떤 사람은 다단계나 사기를 치러 왔고, 어떤 사람은 먹고 마시기 위해 왔습니다. 사실 돼지나 개, 원숭이도 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온 것은 주님을 위해 간증하고,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그분의 크신 능력을 증언하며, 죽은 자의 부활을 증언하여 이제부터는 더 이상 절망하지 않고 소망 가운데 살아가기 위함입니다. 비록 갇힌다 할지라도 우리 앞에 하늘로 통하는 길은 여전히 열려 있습니다. 우리가 걷는 길은 악한 영들을 굴복시키는 하늘로 통하는 큰길입니다. 원숭이조차 영생을 얻는 것을 아는데 사람이 그것을 모른다면 비극이 아니겠습니까? 바울은 비록 갇혔지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가 로마로 가서 주님을 위해 간증할 길을 평탄케 해 주실 것입니다.

제 안에는 주님을 위해 간증하고자 하는 수많은 꿈이 있으며, 하나님께서 반드시 저를 위해 길을 평탄케 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제가 예전에 목회를 시작할 때 하나님께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는 무능하고 형편없는 목회자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당당하고 훌륭한 목회자가 되고 싶습니다.” 그 후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화인명정신학(华人命定神学)을 세우게 하셨습니다. 지행합일을 논한 왕양명이 심학을 세운 것처럼, 이 땅에서 하나의 학설을 세울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몇 되지 않습니다.

제가 세운 화인명정신학은 마르틴 루터보다도 더 명확하게 정리되었습니다. 역사적 한계 속에서 그 시대에는 그 정도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을 넓히고 더 많은 꿈과 믿음과 소망을 품고 주님을 위해 간증해야 합니다. 저는 제가 살아 있는 동안, 세상에서 복음을 잘못 믿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화인명정신학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얻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비록 이 소망이 제가 살아 있는 동안 다 이루어지지 않는다 할지라도, 제가 죽은 후에라도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해야 한다

사실 우리가 걸어온 길은 사도 바울이 걸었던 길에 비하면 훨씬 낫습니다. 사도 바울은 온갖 핍박과 환난을 겪으며 돌에 맞고 몽둥이에 맞았으며, 심지어 맞아 죽어 성 밖으로 내던져졌다가 얼마 후 다시 살아나기도 했습니다. 바울이 겪은 일들은 사람이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일들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왜 예루살렘으로 가려 했을까요? 이전에 그 모든 것을 다 겪었으니 예루살렘에 가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 아니겠습니까? 과거에 경험했던 것을 지금도 여전히 경험해야 하지만, 매번의 경험은 믿음 안에서 하나의 훈련이자 배움입니다. 이번에도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머리털 하나도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명을 가진 사람입니다. 만약 사람이 세상에 올 때 돼지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산다면, 머리털이 빠질 대로 다 빠져 돼지털을 뽑는 꼴이 될 테니 그것이야말로 큰일입니다.

안심하십시오. 그 누구도 우리가 이 사명의 길을 가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화인명정신학은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이 온 땅에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며, 바울의 신학을 계승했기에 우리를 수많은 사람의 축복이 되게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명을 가진 자의 유익이며,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하십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볼 수 있고 때로는 보지 못할 때도 있지만, 보이지 않을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함께하십니다. 그 무엇도 하나님이 주신 우리의 사명을 빼앗을 수 없으며, 우리는 반드시 이 길을 걸어갈 것입니다.

날이 새매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 맹세하되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 하고 이같이 합동맹세한 자가 사십여 명이더라 그들이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가서 말하되 “우리가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기로 굳게 맹세하였으니 이제 너희는 그의 사실을 더 자세히 묻는 척하면서 공회와 함께 천부장에게 청하여 바울을 너희에게로 데리고 내려오게 하라 우리는 그가 가까이 오기 전에 죽이기로 준비하였노라” 하더니 (사도행전 23:12-15)

비록 마흔 명이 넘는 사람들이 바울을 죽이려 했지만 결코 죽일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대적하여, 하나님께서 택하셔서 주를 위해 간증하게 하신 사람을 없애려 했으나 어림도 없는 소리입니다! 우리 마음에 아무런 두려움이 없고 심령이 매우 담대하며,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계획이 성취되는 것을 기쁨으로 맞이하고, 하나님을 위해 간증하는 이 길을 기쁨으로 걸어갑니다. 이것이 우리의 선택입니다. 비록 온갖 위험과 장애를 겪는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시는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우리에게는 성령님의 도우심이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때에 맞는 도우심을 예비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때에 맞는 온갖 도우심을 예비하신다

바울의 생질이 그들이 매복하여 있다 함을 듣고 와서 영내에 들어가 바울에게 알린지라 바울이 한 백부장을 청하여 이르되 “이 청년을 천부장에게로 인도하라 그에게 무슨 할 말이 있다” 하니 (사도행전 23:16-17)

이 사십여 명은 바울을 죽이려 했지만, 그들 중에 한 청년이 바울의 생질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기가 막힌 우연처럼, 하나님께서는 바울의 생질, 즉 그의 누이의 아들을 그들 가운데 두셨습니다. 바울의 생질은 그 말을 듣고 영내로 달려가 바울을 만났고, 바울은 백부장을 불렀으며, 백부장은 이 청년을 데리고 천부장에게로 갔습니다. 천부장이든 백부장이든 연달아 바울을 돕게 되었으니, 실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입니다! 상식대로라면 이 조카가 은이나 금을 챙기거나 값비싼 술이라도 들고 천부장을 찾아가야 했겠지만, 아무것도 없이 곧장 들어갔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딱 맞아떨어질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온갖 도우심을 예비하셨기에 천부장과 백부장이 모두 길을 열어준 것입니다.

천부장에게로 그를 데리고 가서 이르되 “죄수 바울이 나를 불러 이 청년이 당신께 할 말이 있다 하여 데리고 가기를 청하더이다” 하매 천부장이 그의 손을 잡고 물러가서 조용히 묻되 “내게 할 말이 무엇이냐” 대답하되 “유대인들이 당부하기를 그들이 바울에 대하여 더 자세한 것을 묻기 위함이라 하고 내일 그를 데리고 공회로 내려오기를 당신께 청하자 하였으니 당신은 그들의 청을 따르지 마옵소서 그들 중에서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기로 맹세한 자 사십여 명이 그를 죽이려고 숨어서 지금 다 준비하고 당신의 승낙만 기다리나이다” 하니 이에 천부장이 청년을 보내며 경계하되 “이 일을 내게 알렸다고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고 백부장 둘을 불러 이르되 “밤 제 삼 시에 가이사랴까지 갈 보병 이백 명과 기병 칠십 명과 창병 이백 명을 준비하라” 하고 또 “바울을 태워 총독 벨릭스에게로 무사히 보내기 위하여 짐승을 준비하라” 명하며 또 이 아래와 같이 편지하니 일렀으되 “글라우디오 루시아는 총독 벨릭스 각하께 문안하나이다 이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잡혀 죽게 된 것을 내가 로마 사람인 줄 들어 알고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구원하여다가 유대인들이 무슨 일로 그를 고발하는지 알고자 하여 그들의 공회로 데리고 내려갔더니 고발하는 것이 그들의 율법 문제에 관한 것뿐이요 한 가지도 죽이거나 결박할 사유가 없음을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사람을 해하려는 간계가 있다고 누가 내게 알려주기로 곧 당신께로 보내며 또 고발하는 사람들도 당신 앞에서 그에 대하여 말하라 하였나이다” 하였더라 (사도행전 23:18-30)

만약 이 일을 베드로가 겪었다면 꽤나 곤란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로마 시민권이 없었기에 하나님께서는 다른 방식으로 도우셔야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로마 시민이었고, 정죄를 받거나 특히 중죄로 다스려지려면 황제의 심문을 받아야 했습니다. 당시 로마 시민은 높은 신분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것들은 실로 너무나 신기합니다. 천부장은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보고 그날 밤으로 바울을 헤롯의 관정으로 보냈습니다. 헤롯의 관정이 어떤 곳입니까? 헤롯은 분봉왕이었으니, 헤롯의 관정은 유대 왕의 왕궁과 같은 곳입니다. 왕궁에 들어가 사람을 죽이려 한다면 그것은 자객이나 다름없으니,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것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총독조차도 바울의 간증을 들어야 한다

보병이 명을 받은 대로 밤에 바울을 데리고 안디바드리에 이르러 이튿날 기병으로 바울을 인도하게 하고 영내로 돌아가니라 그들이 가이사랴에 들어가서 편지를 총독에게 드리고 바울을 그 앞에 세우니 총독이 읽고 바울더러 어느 영지 사람이냐 물어 길리기아 사람인 줄 알고 이르되 “너를 고발하는 사람들이 오거든 네 말을 들으리라” 하고 헤롯 궁에 그를 지키라 명하니라 (사도행전 23:31-35)

총독이 아무 사람의 간증이나 쉽게 들어주겠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으며, 어느 정도 지위가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기묘한 일을 안배하셔서, 바울을 죄수의 신분으로 총독에게 보내어 간증하게 하셨습니다. 죄수의 신분으로 간증하는 것이야말로 안성맞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진술을 듣고 재판하며 판결하는 것이 바로 총독의 본업이기 때문입니다. 총독이 근무 시간에 간증을 들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딴짓할 필요도 없이 오직 간증에만 집중해서 듣게 된 것입니다.

결론

“담대하라, 네가 로마에서도 나를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나님께서 저에게도 이렇게 말씀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담대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이 세대에 우리를 일으키셔서 주님을 위해 영광스러운 간증을 하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걱정할 것도 없고, 염려할 것도 없으며, 조급해할 필요도 없습니다. 힘차게 전진하며 끊임없이 하나님의 양 떼를 목양합시다. 우리는 간증을 할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온전케 되며 바울이 다 마치지 못한 사역을 완성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저는 믿음으로 선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그분의 영광을 끊임없이 나타내실 것이며, 온 땅에 가득하게 하실 것입니다.

아멘!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복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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