命定神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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哥林多后书06章-永生 神的殿
  • 1 我们与 神同工的,也劝你们不可徒受他的恩典。
  • 2 因为他说:“在悦纳的时候,我应允了你;在拯救的日子,我搭救了你。”看哪,现在正是悦纳的时候!现在正是拯救的日子;
  • 3 我们凡事都不叫人有妨碍,免得这职分被人毁谤;
  • 4 反倒在各样的事上表明自己是 神的用人,就如在许多的忍耐、患难、穷乏、困苦、
  • 5 鞭打、监禁、扰乱、勤劳、警醒、不食、
  • 6 廉洁、知识、恒忍、恩慈、圣灵的感化、无伪的爱心、
  • 7 真实的道理、 神的大能;仁义的兵器在左在右;
  • 8 荣耀、羞辱,恶名、美名;似乎是诱惑人的,却是诚实的;
  • 9 似乎不为人所知,却是人所共知的;似乎要死,却是活着的;似乎受责罚,却是不至丧命的;
  • 10 似乎忧愁,却是常常快乐的;似乎贫穷,却是叫许多人富足的;似乎一无所有,却是样样都有的。
  • 11 哥林多人哪,我们向你们,口是张开的,心是宽宏的。
  • 12 你们狭窄,原不在乎我们,是在乎自己的心肠狭窄。
  • 13 你们也要照样用宽宏的心报答我。我这话正像对自己的孩子说的。
  • 14 你们和不信的原不相配,不要同负一轭。义和不义有什么相交呢?光明和黑暗有什么相通呢?
  • 15 基督和彼列(彼列就是撒但的别名)有什么相和呢?信主的和不信主的有什么相干呢?
  • 16  神的殿和偶像有什么相同呢?因为我们是永生 神的殿,就如 神曾说:“我要在他们中间居住,在他们中间来往;我要作他们的 神;他们要作我的子民。”
  • 17 又说:“你们务要从他们中间出来,与他们分别;不要沾不洁净的物,我就收纳你们。
  • 18 我要作你们的父;你们要作我的儿女。”这是全能的主说的。

《答疑解惑》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고린도후서》 6장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만약 여러분에게 영적인 높이가 없다면 읽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설령 읽는다 해도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알기 어려울 것입니다. 정말 이해하기 어렵지만, 사실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하나님의 동역자)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주제는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입니다》입니다. 바울은 한참 동안 자신이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라는 것을 논증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떠합니까? 사실 그는 고린도 사람들만을 위해 말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목적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게 하려고 우리에게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오늘 여러분은 잘 관찰해 보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건물 아래에 앉아 있으면 저쪽에 길고양이 몇 마리가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작은 동물이나 쥐 같은 것들이 기어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만약 사람이 그렇게 산다면 동물과 다를 바가 없어 보입니다. 동물이 태어나듯 사람도 태어나고, 동물이 죽듯 사람도 죽으며, 동물이 먹이를 구하듯 사람도 먹을 것을 구합니다. 깊이 파고들지 않으면 자신이 동물과 거의 같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세상에서 단지 그렇게만 산다면 사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들개 두 마리가 뼈다귀 하나를 두고 죽기 살기로 싸우는 것을 보거나, 쇠똥구리 두 마리가 똥 경단 하나를 두고 죽기 살기로 다투는 것을 볼 때가 있습니다.

충분히 관찰해 보면 이 세상에 매우 좋은 일이 하나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것입니다. 이 광활한 세상에서 사람은 도대체 왜 사는 것일까요? 연구하고 또 연구한 끝에 사도 바울이 한 가지 결론을 얻어냈습니다. 그것을 믿을지 말지는 각자의 몫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엄청난 가치가 있습니다. 영적 세계에 노벨상이 있다면 이 발견은 틀림없이 노벨상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일한다는 이 말은 대단한 것으로, 곧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주제는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입니다》입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자신이 무엇을 위해 왔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1. 그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여러분은 그 이유를 아십니까? 우리 중에 그분의 은혜를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우울증에 걸렸던 사람이 와서 치유받고는, 돌아가서 기어이 또 우울증을 불러들이는 일이 있지 않습니까? 많은 사람이 그렇습니다. 우리가 은혜를 입은 것은 살아서 하나님과 함께 일하게 하려는 것 아니겠습니까? 사람이 사는 것은 하나님과 함께 일하기 위함인데, 하나님과 함께 일하면 무슨 유익이 있을까요?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여러분에게도 그분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권합니다.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고린도후서》 6:2)

우리는 사소한 일 하나를 겪기도 합니다. '이 아픈 건 병도 아니다'라고 하지만, 통증이 시작되면 죽을 만큼 괴롭습니다. 오늘 아침 어떤 분이 배가 아프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어제 제가 기도를 인도할 때 배가 아팠던 분입니다. 밤에 또 아프면 연락하라고 했는데, 어제 제가 너무 피곤해서 곯아떨어졌습니다. 그 바람에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습니다. 세상에, 십여 시간을 내리 잤으니 참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침에 다시 아프다며 연락이 와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사실 전에 하나님께서 그분에게 은혜를 베푸신 적이 있습니다. 전에는 우울증이 있었던 것 같은데, 감사하게도 화인명정신학(华人命定神学)에 와서 치유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신 것이지요. 그분의 부모님도 전도자이고, 남편의 부모님도 전도자라고 하는 그런 가정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이 함께 일하시는 것을 보지 못해서 우리 가운데로 오게 되었습니다. 배가 아픈 것은 아주 중한 병일 수도 있고 가벼운 병일 수도 있지만, 통증이 오면 온몸에 식은땀이 날 정도로 정말 죽을 맛입니다. 생리통을 겪어본 분들은 그 통증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잘 아실 것입니다.

기도를 해보니 이것은 맘몬의 영이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울증에 걸렸던 사람이 나았는데, 낫고 나서도 여전히 돈을 사랑합니다. 사람이 돈을 사랑하지 않기란 참 어렵습니다. 제가 그분에게 돈을 많이 사랑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습니다. 얼마 전에 우울증이 나았는데, 은혜를 거저 받고도 헛되이 받은 것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우울증에서 건져내신 본래 목적은 삶이 무엇인지를 꿰뚫어 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이 없으면 인생은 비극이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배가 또 아픈 이유는, 지난주에 라이브 방송을 잘해서 이틀 만에 보름치 수입을 벌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음이 너무 기뻤던 것입니다. 사실 그렇게 기뻐할 일입니까? 돈을 사랑하니까 돈이 들어오면 기쁜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틀 일하고 보름치 돈을 벌었으니 당연히 기쁘지 않겠냐고 하겠지만, 문제는 그 뒤로 돈이 들어오지 않자 괴로워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우리 가운데도 이런 경우가 많습니다. 만약 어느 날 갑자기 여러분에게 1조 원이 생긴다면 너무 일찍 기뻐하지 마십시오. 나중에 2조 원을 빼앗겨서 1조 원의 빚을 지게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10만 위안을 얻고 기뻐하지만, 10만 위안이 사라지면 괴로워합니다. 사실 원래 없었던 돈인데 말입니다. 물론 1조 원은 어떻게 써야 할지 감도 안 오겠지만, 10만 위안은 쓸 줄 알지 않습니까? 10만 위안이 생기면 무엇을 살까 생각하며 집도 알아보고 차도 알아봅니다. 세상에! 그러다 결국 10만 위안이 다 사라지고 나면 일장춘몽이었음을 깨닫습니다.

사람의 삶은 종종 이렇습니다. 왜 그럴까요? 귀신이 함께 있어서 한번 흔들어놓으면 영락없이 휘둘리기 때문입니다. 오늘 갑자기 횡재를 했다면 조심해야 합니다. 횡재한 것이 사라질 때 극심한 고통이 찾아옵니다. 원래 없었을 때는 괜찮았는데, 생겼다가 사라지면 더 괴롭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이 문제를 분명히 정리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여러분에게 그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권합니다. 하나님이 계시므로 우리가 원래 살아가던 그 낡은 삶의 방식을 무너뜨려야 합니다.”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이 죽을 몸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날입니다.

오늘 우리 형제자매들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만약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고작 눈앞의 일들 때문에 배가 아프고 머리가 아프며 등이 결리고 눈을 뜨지 못한다면, 그 인생은 정말 안타깝기 그지없지만 정작 본인은 알지 못합니다. 오늘까지 여러분이 화인명정신학을 따라오면서 권면하건대, 그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마십시오. 이미 은혜를 받았다면 다른 모든 것을 속히 무너뜨려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던 과거의 논리 체계는 다 틀렸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살면서 인생이 제법 재미있다고 생각하지만 결국은 죽게 됩니다. 이를 어찌하겠습니까? 왜 하나님이 여러분의 기도에 응답하셨을까요? 하나님이 여러분을 기쁘게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기 전에는 어떤 상태였습니까? 이전에는 하나님의 원수로서 육체 가운데 살았습니다. 하나님께 용납받은 후에도 여전히 육체 가운데 살며 다시 하나님의 원수 노릇을 합니다. 늘 하나님과 맞서 싸우니, 대체 무슨 생각인지 저는 정말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한 번 경험하고 "이것이야말로 보배다!"라고 감탄하지만, 어떤 사람은 수없이 우울증을 겪습니다. 저는 사람들을 이 세상적이고 필경 죽음에 이르는 논리 체계에서 끌어내려고 하는데, 어째서 이렇게 어려울까요?

저는 정말 여러분 모두에게 작은 관을 하나씩 사주고 싶을 지경입니다. 우리 모두 언젠가는 그 안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아무 의미도 없는데 왜 그렇게 사는 재미에 푹 빠져 있습니까? 작은 문제 하나만 닥쳐도 목숨이 위태로워지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응답하시고 기쁘게 받으시며 구원해 주시면 "아, 이것이 보배구나!" 해야 합니다. 저는 매일 하나님의 구원이 필요하고, 매일 하나님의 공급이 필요하며, 매일 하나님의 기뻐하심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온 것은 하나님과 함께 일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과 동역하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기도 몇 마디에 배가 아프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당신을 기쁘게 받으신 것입니까, 아니면 저를 기쁘게 받으신 것입니까? 바로 저를 기쁘게 받으신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께 깊이 감사드리며 온 마음으로 엎드려 경배합니다. 왜일까요? 하나님께서 저를 통해 행하신 일들로 인해 제가 어떤 사람이 되었으며, 하나님과 함께 일할 기회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경험한 일들은 저 자신도 믿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맹인이 보고 다리 저는 사람이 걷지 않습니까? 온갖 질병과 수많은 암 환자가 치유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치유를 받고 나면 다시 세상을 사랑합니다. 암에 걸려 죽어가다가 살아나자마자 곧바로 돈을 세기 시작합니다. 죽자 살자 돈만 세고 있으니 아무리 권면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입니다. 보십시오! 지금이 바로 은혜 받을 때요, 구원의 날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일하고 하나님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은 테슬라와 프로젝트를 하는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우리도 프로젝트 하나 유치해 보면 어떻겠습니까? 천국의 프로젝트를 이 땅에 끌어오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천국은 얼마나 좋습니까? 질병도 없고 고통도 없으며 돈이 부족하지도 않습니다. 그곳은 정말 부족함이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고 매일 붉은 인민폐나 푸른 달러를 세고만 있습니다. 인플레이션이 오면 다 사라질 것들인데 말입니다.

묻겠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는데 사람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겠습니까? "교육청에 계시니 제 아이 입학 좀 도와주세요"라고 부탁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디를 가든 똑같지 않습니까? 저는 사람들이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을 왜 모르는지 답답합니다. 여러분은 믿으십니까?

2. 우리는 아무 일에든지 거리끼지 않게 합니다

무슨 뜻일까요?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어떤 일에서도 거침돌이 되지 않게 한다는 뜻입니다. 만약 제가 남에게 폐를 끼치게 되면 마음이 몹시 불편합니다. 나중에 저는 깨닫고 그런 것들을 다 없애버렸습니다. 사람에게 청탁하고 매달려야 하는 일들을 다 치워버렸습니다. 왜일까요? “나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이므로, 아무 일에든지 거리끼지 않게 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고, 할 수 없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단순하지 않습니까? 감당할 수 있는 음식은 먹고, 감당할 수 없는 것은 먹지 않습니다. 살 수 있는 것은 사고, 살 수 없는 것은 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일에 하나님의 공급하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무엇을 합니까? 하나님이 함께하시기에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주의 성전을 건축합니다. 묻겠습니다.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며 하나님의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으므로, 하나님께서 저에게 A라운드, B라운드... 지금은 몇 번째 라운드까지 투자하셨는지 모를 정도로 투자해 주셨습니다. 부족하겠습니까? 사람이 이 세상에서 결핍을 겪는 이유는 귀신과 일하고 사탄과 동역하기 때문입니다. 사탄의 프로젝트를 잘 해내면 그것이야말로 큰일 아닙니까? 장담하건대 하나님은 여러분의 그 일을 반드시 중단시키실 것입니다.

바벨탑을 쌓고 있는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멈추라고 하시면 멈추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온갖 애를 쓰며 회의하고 토론하고 KPI를 정하며 IBM을 불러 컨설팅을 받게 한들, 하나님이 혼란케 하시면 그 바벨탑은 미완성으로 끝나버리지 않습니까? 그래서 세상에는 짓다 만 건물들이 많습니다. 차를 타고 가다 보면 이쪽에 10년 된 미완성 건물이 있고, 저쪽에는 20년째 방치된 건물이 서 있습니다. 철근이 흉하게 녹슬었는데 철거하자니 막막하고, 그냥 두자니 곤란하여 시청에서도 골머리를 앓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귀신과 동역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늘 아무 일에든지 사람에게 거리낌이 되지 않게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동역하여 주의 성전을 건축하기 때문입니다. 주의 성전을 건축하는 데 사람이 필요합니까? 사람을 번거롭게 해야 합니까? 우리 교회에는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저를 도와 하나님의 성전을 짓겠다고 오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저는 단번에 거절합니다. 이곳은 '도움'이 필요한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곳에 필요한 것은 전심전력의 헌신입니다. 어디에 헌신합니까?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일에 헌신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동역하는 자들입니다! 그래야 비방을 받지 않습니다. 우리가 부족함이 없고 하나님을 뵐 때까지도 부족함이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공급하시기 때문이며, 이것은 하나님이 투자하신 프로젝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람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거나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사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게 해야 한다면 그것을 하나님이라 부를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우상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얼마 전 산 위에 아주 거대한 절과 불상이 세워진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지은 것이라 헌금이 없으면 지을 수 없습니다. 사람의 손으로 짓는 것이기에 물질이 없으면 안 되니 돈을 벌어야 합니다. 오늘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데 돈이 필요합니까? 아닙니다. 돈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의 전심전력의 헌신이 필요합니다. 우리 교회 안에서 참 안타까운 것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른다는 점입니다. 그것이 사람이 살아가는 목적이지 않습니까? "내가 세상에 와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예전에는 몰랐지만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전도자가 되었는데, 어쩌다 전도자가 되었는지도 잘 몰랐습니다. 나중에야 이것이 비할 데 없이 좋은 일임을 알았습니다. 예전에는 미처 몰랐던 것입니다. 평신도 시절에는 전도자 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전도자들을 보면 그리 존귀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역을 제대로 못 하는 전도자들도 있어서, 저는 탄식하며 하나님께 전도자는 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시키시면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이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예전에는 참 어리석었습니다. 예전에는 그런 전도자들만 보았지만 사실 그렇게 사역하는 것이 아닙니다. 화인명정신학은 전도자라는 직무를 온전히 탁월하게 감당해 냅니다. 여러분은 이 일을 사모해야 합니다. 사람이 하나님과 함께 일하면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우리에게 유익한 분이십니다. 응낙하실 때에 우리에게 응답하시고, 기뻐하실 때에 우리를 들으시며, 구원하실 때에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여러분이 과거에 하나님의 치유를 받았거나 하나님을 경험한 적이 있다면, 그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권합니다. 세상에 속한 것들을 아직 무너뜨리지 못했다면, 오늘부터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더 많은 일을 겪어야 비로소 하나님과 동역하고, 주의 성전을 건축하며, 모든 일에 거리낌이 없게 하겠습니까?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계시므로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3.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임을 나타냄

이 구절을 여러분에게 설명해 보겠습니다. 저 역시 이 모든 것을 다 겪어본 것은 아니라 설명하기가 조금 조심스럽습니다.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가운데서도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 영광과 욕됨으로 그러했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러했느니라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고린도후서》 6:4-10)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곧 모든 일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일꾼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묻겠습니다.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하나님과 함께 일하며 주의 프로젝트를 감당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투자하고 계신다면,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겪게 하실 때 하나님이 다스리신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하나님이 주관하심을 믿는다면 인내하십시오. 인내하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형제자매들이 자라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정말 괴롭습니다. 참고 또 참으며 말이 입안까지 올라왔다가도 삼킵니다. 강하게 말하면 감당하지 못할까 두렵고, 약하게 말하면 아무 소용이 없으니 인내하고 또 인내할 수밖에 없습니다.

환난이 없겠습니까? 환난은 있습니다. 어떻게 없겠습니까? 환난, 궁핍, 곤란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 궁핍한 날을 겪어보지 않으면 하나님의 공급이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돈이 많으면 자신이 스스로 공급하므로 하나님의 공급이 별로 필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환난이 없고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하며 하루 세끼 잘 먹고 잘 지낸다면 믿음도 필요 없고 하나님의 구원도 전혀 필요치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환난을 만날 때 하나님의 구원을 보고, 궁핍을 만날 때 하나님의 공급을 보며, 곤란을 만날 때 하나님이 우리의 힘이 되심을 보게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참 이상합니다. 어떤 자매는 매일 빈뇨 증상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분명 옛 뱀의 문제인데, 우리에게 이런 문제는 아주 쉬운 일 아닙니까? 그런데 그 자매의 담임 목사는 어느 날 "하나님이 고쳐주지 않으셔도 계속 믿겠습니까?"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성경 어디에서 그런 제목을 찾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치료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 자매에게 믿음을 심어주었습니다. 그 자매가 제가 있는 호텔로 찾아왔고, 치유되어 그 후로 빈뇨 증상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무엇입니까? 그 은혜를 헛되이 받았다는 점입니다. 만약 보통 사람이 이런 일을 경험했다면 어떻게 반응하겠습니까? 저라면 "이것이 대체 무슨 신학인가? 무슨 도리인가? 이분은 하나님과 동역하는 사람이니 나도 함께 하나님과 동역해야겠다"라고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 헛된 길로 빠져 다른 쓸데없는 일들에 매달렸습니다.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임을 어떻게 나타냅니까?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이 하나님의 일꾼임을 나타낼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매를 맞는 것이 이상한 일입니까? 예수님도 매를 맞지 않으셨습니까?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이러한 고난이 따른다 해도 하나님과 함께 일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은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결단하지 않으면 앞으로 어떻게 하겠습니까? "매 맞고 갇히고 난동을 겪어야 한다면 나는 하나님과 일하지 않겠다"고 하시겠습니까?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함께 일한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강한 귀신과 싸우는 일입니다. 이전에는 이 귀신에게 짓눌려 살았지만, 이제 그분의 은혜를 입었으니 하나님과 함께 일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세상에서 영적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악한 영들과 싸우는 것은 마치 종합격투기(MMA) 챔피언, 타이슨급의 거구들과 맞서는 것과 같습니다. 플라이급이 아니라 헤비급입니다. 덤벼들어 태클을 걸고 강펀치를 날려 KO를 시키기도 합니다. 때로는 정말 쓰러져 카운트를 세어야 할 만큼 장난이 아닙니다.

지금도 마귀와 싸울 때 팽팽하게 맞서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지만 괜찮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일하시기 때문에 매를 맞든 갇히든 난동을 겪든 상관없이 모든 일에 자신이 하나님의 일꾼임을 나타냅니다. 왜입니까? 나는 하나님을 위해 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살고 하나님과 동역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영적 전쟁이 얼마나 잔혹한지 잘 알고 있습니다. 포로 된 자를 자유케 하고 억눌린 자를 풀어주며 마귀 원수를 발아래 짓밟는 이 과정에서 하나님은 진실로 다스리십니다.

제가 큰 귀신을 이기지 못할 때는 하나님께서 작은 귀신만 보내 훈련시키셨습니다. 한참 훈련받고 나서야 그것들이 다 스파링 상대였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종이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일꾼임을 드러내게 하셨습니다. 감사하게도 수고로움, 자지 못함, 먹지 못함이 있었습니다. 수고로움이 게으름입니까? 아닙니다. 게으른 사람은 전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게으른 자가 어떻게 전도자가 되겠습니까?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때로는 정말 먹을 것이 없을 때도 있지만,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일꾼이요 종이며 동역자임을 나타냅니다. 왜입니까? 힘써 일하고 노력해도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에 부족할 수 있는데,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면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사역은 공동체 안의 형제자매들을 끊임없이 훈련시키는 것이며, 결코 안이한 일이 아닙니다. 감사하게도 저는 다른 취미는 없고 오직 일하는 것만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수고하면서도 큰 기쁨을 누립니다. 저는 이 일이 좋습니다! 깨어 경성하지 않으면 한순간에 귀신에게 속고 마귀의 간계에 빠집니다. 피곤하지 않겠습니까? 피곤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청렴함, 여러분은 남의 것을 탐내고 이득을 취하려 합니까? 사람이 돈에 대해 온전히 꿰뚫어 보았다면 굳이 이득을 취하려 하겠습니까? 세상의 관리들만 청렴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전도자 역시 청렴하지 않으면 사역할 수 없습니다. 매일 남의 돈을 탐내고 맘몬 아래 매여 있다면 어떻게 감당하겠습니까? 육신을 따르는 '옛 뱀'의 본성을 이기는 사람도 많지 않지만, 그 위에 맘몬까지 이기는 사람은 더욱 적다는 것이 저의 솔직한 심정입니다. 저는 형제자매들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 예수님을 힘입어 넉넉히 이기는 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는 돈을 사랑할 필요가 없습니다. 돈을 사랑하지 않아 보십시오. 결코 부족함이 없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가운데 맘몬에 얽매인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최근에 괴로워하는 분들이 많았는데, 맘몬의 영이 쫓겨나려 하기 때문입니다.

지식, 우리는 배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식이 없으면 무지로 인해 멸망합니다.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는 무엇을 뜻합니까? 사역할 때 우리는 늘 하나님이 함께 일하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저의 동역자들은 종종 "우리가 수많은 일을 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한 번 만져주시는 것이 낫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성령께서 감화하시면 사람들은 단번에 변화되고 생각의 틀을 바꿉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놀라우신 분이며, 이것이 바로 성령의 감화하심입니다.

거짓이 없는 사랑, 전도자는 반드시 거짓 없는 사랑으로 사역해야 하며 가식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과 동역하며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코 육신을 위하는 그런 사랑이 아닙니다. 기억하십시오. 나와 함께 동역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같은 비전과 같은 사명을 품었기에 서로 사랑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동역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어떻게 한 멍에를 메겠습니까? 한 사람은 동쪽으로, 한 사람은 서쪽으로 가며 줄다리기를 하겠습니까? 저는 그런 줄다리기를 하지 않으니 각자 갈 길을 가면 됩니다.

진리의 말씀, 하나님의 능력, 좌우에 가진 의의 무기입니다. 제가 하는 말이 때로는 거칠고 투박해 보일지 몰라도, 화인명정신학의 도리는 결코 거칠지 않습니다. 진리의 말씀, 거짓 없는 사랑, 하나님의 능력, 공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짐으로써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험악한 원수를 대적할 수 있습니다. 가장 까다로운 원수는 사탄이므로 우리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하고, 부지런해야 하며, 청렴해야 하고, 지식을 갖추며, 오래 참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거짓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좌우에 의의 무기를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 진실로 감사한 것은, 어떤 환경, 아무리 험난한 상황 속에서도 주께서 늘 함께하사 우리를 넉넉히 이기게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영광과 욕됨으로 그러했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러했느니라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고린도후서》 6:8-10)

영광이든 욕됨이든 더 이상 우리가 신경 쓸 문제가 아닙니다. 영광, 욕됨, 악한 이름, 아름다운 이름, 이제 이해가 되십니까? 혼자 읽으면 조금 난해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사람이 세상에서 겪는 이런 문제들이 다 해결된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사람을 미혹하는 자 같으나 참되며, 우리가 하는 말이 사람을 무안하게 하는 것 같으나 사실은 사람을 세워주는 말입니다.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입니다. 바울이 무슨 말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겪는 일들이 사람들이 모르는 것 같으나 하나님께서 알게 하시기 때문에 다 알려져 있다는 뜻입니다. 죽은 자 같으나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않으며,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겨본 적이 있습니까? 죽음에 직면하는 것은 참으로 큰 시험입니다. 저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수없이 보았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목회자들도 수없이 보았습니다!

어느 날 저는 제 친구였던 한 목사의 관 곁에 서 있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사실 제 코로나 증상이 그 친구보다 훨씬 심했지만 저는 살아났고 그는 관 속에 누웠습니다. 왜일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저는 하나님의 일꾼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병원의 힘으로 나은 것이 아니라 저의 하나님으로 인해 살았습니다. 제가 온전히 행하지 못한 부분들이 있어 하나님의 징계나 훈계였을 수도 있지만, 아무 상관없습니다. 저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입니다. 죽음이 두렵습니까? 그것을 왜 두려워합니까? 하나님을 의지하면 죽음도 두렵지 않습니다. 저는 이미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죽을 고비를 넘겨 살아났는데, 어째서 죽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살아나셨으니 기뻐하셔야지요"라고 하겠지만, 저는 그리 기쁘지 않았습니다. 세상을 떠나 주님과 함께 거하는 것이 훨씬 더 좋기 때문입니다. 아직 제 차례가 오지 않아 줄을 잘못 섰는지 다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얼마나 자주 '죽은 자 같은' 상황을 겪었겠습니까? 수없이 겪었지만 보란 듯이 살아 있었습니다. 그가 삶에 집착했을 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삶도 죽음도, 영광도 수치도, 좋은 평판도 나쁜 평판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어떤 분은 "목사님, 사람들이 목사님을 그렇게 비방하는데 제가 어떻게 대답해야 합니까?"라고 묻습니다. 저는 "그냥 사람들에게 '류 목사 말 듣지 마라, 다 헛소리다. 우리가 그 사람 곁에 있으면서 잘 아는데 안 믿을 도리가 없다'라고 말하라"고 합니다. "목사님, 차마 그 말이 입에서 안 떨어집니다!"라고 하기에 "말하기 힘들면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마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합니다. 우리가 왜 근심합니까? 우리가 이마를 찌푸리는 것은 주의 성전을 짓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며 어떻게 하나님과 동역할 것인가를 온종일 고민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때로는 연약한 형제자매들을 보며 마음속으로 눈물을 흘립니다. 형제자매들이 연약하여 멸망의 길로 걸어가는 것을 보면서 불러도 돌아오지 않을 때, 마음을 다해 그 몸을 하나님께 산 제물로 드리라고 애타게 권면합니다. 때로는 참으로 힘겹습니다. 학위도 따야 하고 일도 해야 하며, 논문도 써야 하고 이것저것 할 일이 너무나 많아 삶을 왜 이리 복잡하게 사는지 모릅니다. 갈수록 복잡해집니다. 오늘은 이 일, 내일은 저 일로 하나님께 드릴 시간이 없습니다. 겨우 시간을 내어 하나님께 드려놓고는 스스로 대단하다고 여깁니다.

모든 일에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일꾼임을 나타내야 합니다. 사실 이 말씀은 저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바울이 고린도 성도들에게,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주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나타냅니까?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충성스럽게 세우고, 온전히 자신을 바쳐 헌신함으로써 나타냅니다. 세상에서의 삶 자체는 헛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사는 것이 헛되다면, 왜 아무 의미 없는 일에 그토록 많은 시간을 낭비합니까? 하나님을 위해 살기 시작하면 기쁨이 넘칩니다.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언제나 우리를 승리로 이끄사 원수 마귀를 짓밟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한 영혼이 자유케 되면 저는 대추야자 하나를 먹은 듯 기쁘고, 두 영혼이 자유케 되면 두 개를 먹은 듯 기쁩니다. 짝수 계산은 다들 아시지요? 네 사람이 자유케 되면 네 개를 먹은 것처럼 정말 신이 납니다.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합니다. 오늘 많은 분들이 부요해졌는데, 형제자매 여러분, 저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거듭 권면합니다. 때로는 마음이 너무 아파 조심스럽게 권면하지만, 성경공부 시간에 용기를 내어 한 말씀 드립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하나님께 빚을 졌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사실 우리는 하나님께 목숨을 빚진 자들입니다. 질병에서 치유받았다면 목숨 하나를 빚진 것입니다.

사람이 살면서 인생이 헛되고 헛된 것임을 모른 채 세상일에 분주하고 괴로워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비참한 일입니다. 지난날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어떻게 한 걸음 한 걸음 인도해 오셨습니까? 이제 좀 살 만해졌다고 세상을 사랑할 자격을 얻은 것입니까? 차라리 없었을 때가 나을 뻔했습니다. 가난한 자 같으나, 가진 돈으로 치면 내세울 것이 없을지라도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합니다. 바울은 은행 계좌도 없었고 돈주머니도 텅 비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걸어 다니는 지갑이었기에 그가 가는 곳마다 축복이 임했습니다. 왜입니까? 하나님이 그와 함께 일하시는데 무엇이 부족하겠습니까?

빌레몬이라는 사람은 사업에서 큰 손실을 보았습니다. 바울이 찾아가자 빌레몬은 근심 어린 얼굴로 바울을 찾아왔습니다. 바울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고 하자, 빌레몬은 "아닙니다, 저는 이제 가난한 사람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바늘귀 걱정은 없겠군요." "하지만 빚이 너무 많은데 어찌해야 합니까?" (이 이야기는 제가 지어낸 예화입니다.) 바울이 입을 열어 선포하자 하나님께서 바울의 말대로 이루어 주셔서 빌레몬의 사업이 단번에 회복되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빌레몬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하나님의 동역자인 전도자가 선포한 한마디 말로 인해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신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많은 사람들의 부요함은 사실 이렇게 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종, 곧 하나님과 동역하는 자들을 통해 이 세대를 축복하셨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믿음 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생각한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입니다. 우리는 겉보기에 아무것도 없는 것 같으나 모든 것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면 모든 것을 가진 것이니, 세상 사람들이 몹시 부러워할 만합니다. 물론 형제자매 여러분이 바울과 같은 결박을 겪지 않기를 바라지만, 하나님과 함께 일할 수 있다면 그것은 더할 나위 없이 복된 일입니다.

4. 마음을 넓히십시오

고린도 교회의 사람들은 참으로 배은망덕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바울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지만 제가 대신하는 말입니다. 바울이 그들에게 얼마나 많은 은혜를 끼쳤습니까? 고린도 사람들은 바울의 사역 덕분에 점점 세상을 사랑할 여유가 생기지 않았습니까? 바울은 고린도에서 1년 6개월 동안 머물며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그들이 바울이 재물을 탐낸다고 비난했습니다. 바울이 그들의 돈을 취한 적이 있습니까?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그들이 드린 헌금은 고린도 교회에 드려진 것 아닙니까? 바울 자신은 먹는 것도 아끼고 쓰는 것도 아끼며, 자기 손으로 직접 일하여 자신과 동역자들의 쓸 것을 공급했습니다. 저보다 훨씬 훌륭합니다! 바울의 마음은 넓어서 고린도 사람들의 것을 탐내지 않았습니다. 말씀에 무엇이라 기록되어 있습니까?

고린도인들이여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이 넓어졌으니 너희가 우리 안에서 좁아진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심정에서 좁아진 것이니라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것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 (《고린도후서》 6:11-13)

조금 전에 여러분이 하나님께 빚진 것이 있지 않느냐고 물었는데, 때로는 저에게 빚진 것들도 많습니다. 제가 직접 섬긴 분들이 아주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어떻게 받고 있습니까? 우리의 마음은 얼마나 넓습니까? 제가 던진 한마디 말에 섭섭해하며 따지지는 않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세상의 일들을 꿰뚫어 보아야 하며, 마음이 넓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마음이 넓은 것은 하나님의 일꾼이자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의 뚜렷한 특징이며,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태도입니다.

5.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만약 사람의 소망이 이생에만 있다면 마음이 좁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고 그분의 성전을 건축하여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 주의 임재가 우리 가운데 머물게 하려면, 인생의 본질을 반드시 꿰뚫어 보아야 합니다. 제가 이토록 많은 말씀을 드렸는데 여러분은 온전히 깨달으셨습니까? 혹여 여러분이 겁을 먹었을까 염려되기도 합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는 자는 모든 것을 소유한 자입니다. 과거에 우리는 세상적인 논리 체계 안에서 살았습니다. 말씀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벨리알은 사탄의 별칭)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또 이르시되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고린도후서》 6:14-18)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자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세상에서 몇몇 사람이 잘 사는 것을 보면 혼란에 빠집니다. 그들이 잘 사는 것을 보고 제가 직설적으로 "가서 그 사람이 무엇을 섬기는지 물어보라. 미륵불을 섬긴다면 당신도 어서 가서 섬겨라. 그쪽과 인연이 깊은가 보다"라고 하면, "목사님, 안 갑니다"라고 합니다. "왜 안 갑니까? 좋아 보이는데"라고 물으면, 그것은 미륵불의 전당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미륵불의 전당을 짓겠습니까, 아니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고 좌우에 의의 무기를 가지며, 이러한 수고와 고난을 기꺼이 감내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 때문입니다. 죽어서 극락에 가거나 천국에 가는 것만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살아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성전을 건축하고 하나님이 함께 일하심을 보며, 주의 임재를 경험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믿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며, 그것이 바로 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빛 가운데 거하며 그리스도를 힘입어 승리합니다.

그리스도와 사탄이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양다리를 걸칠 수는 없습니다. 한 발은 그리스도께, 한 발은 벨리알 쪽에 걸치면 찢어지지 않겠습니까? 세상에 속한 것들과 하나님께 속한 우리 사이에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세상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잘 먹고 잘 산다 해도 흔들릴 필요가 없습니다. 어제 어떤 분이 이상한 질문을 해서 오늘 답을 해주려 합니다. 그의 관심사가 온통 세상의 사소한 일들에 쏠려 있었습니다. "어느 도시의 비리 관료가 잡혔는데 사실 그가 좋은 일도 많이 하지 않았느냐..." 좋은 일을 많이 했다고 비리 관료가 아닙니까? 정치적 다툼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닙니까? 그것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상관없습니다.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는 멍에를 함께 멜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의 모습을 보십시오. 얼마나 피곤하게 삽니까?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을 찾았다가 문제가 해결되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갑니다. 마치 용수철처럼 손을 놓으면 원래 자리로 튕겨 돌아갑니다. 그래서 저는 굳이 억지로 붙들지 않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을 붙들어 무엇하겠습니까?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남들이 잘 사는 것이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며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겪고 지불하는 대가는 결코 작지 않지만,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태어나고 살아가며 죽기까지 섬길 살아 계신 하나님을 위한 일이며, 우리가 얻을 것은 영원한 영광의 면류관입니다.

6. 우리는 거룩하게 구별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기 때문에 우리는 거룩하게 구별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동역하는 자이므로 그분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또한 아무 일에든지 사람에게 거리끼지 않게 하고,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임을 나타내며,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여러분 모두에게 드리는 권면입니다. 우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기에 우리는 구별되어야 합니다. 논리가 명확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고린도후서》 6:16-18)

여기에는 '거룩하게 구별됨'이라는 매우 중요한 개념이 있습니다. 거룩하게 구별되는 것은 하나의 태도이며, 확고한 뜻이자 인격이며 믿음입니다. 구별되는 성품이 없으면 매사에 대충대충 타협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주일 예배나 성경공부를 꾸준히 지키지 못하는데, 저는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참 무겁습니다. 말하기도 조심스럽고 안 하자니 답답하여 속이 상합니다. 구별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구별됩니까? 그들은 세상일을 위해 분주하지만, 우리는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삽니다.

구약 성경을 읽어보면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에스라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도록 독려했으나 이스라엘 백성은 온전히 살아내지 못했습니다. 스룹바벨 세대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70년 만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으나, 결국 하나님의 프로젝트를 망쳐버리고 저주 가운데 살았습니다. 스룹바벨과 학개 시대에 사람들은 자기 집 짓는 일에만 분주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몹시 슬퍼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본래의 계획대로 살기를 바라셨지만, 이스라엘은 플랜 B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원래 하나님의 계획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건져내어 약속의 땅으로 들이시는 것이었으나, 그들은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바벨론 포로 생활을 통해 거룩하게 구별된 태도를 배우게 하셨으나,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자마자 다시 자기 안락에만 빠져들었습니다. 수십 년, 백 년이 흘러 느헤미야와 말라기 시대에 이르렀음에도 하나님의 성전은 여전히 황폐했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사람이 거룩하게 구별되는 태도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유월절과 초막절을 지킬 때, 남들이 초막 짓는 행사가 끝나고 난 뒤에 찾아가서 싼 호텔에 묵는 격입니다. 호텔이 훨씬 저렴할지 몰라도 그것이 어찌 초막절이겠습니까? 그것은 초막절이 아니라 초막을 허무는 절기입니다!

우리는 거룩하게 구별되어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은 여러분을 해치려는 것이 아니라 가장 큰 은혜를 주려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그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권했습니다. 세상적인 안락에 빠지면 마음이 좁아지기 때문입니다. 자기 몫에 조금만 손해가 가도 안달복달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몫이 하나님이라면 누가 감히 빼앗겠습니까? 우리는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임을 나타내고 있습니까? 우리가 주의 성전을 건축하고 거룩하게 구별된 자임을 나타내고 있습니까? 시간을 구별하여 드리고 다른 일들은 뒤로 물려두어야 합니다. "이 일은 창세 전에 내가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린 것이니 주님의 것을 침범하지 말라"고 선포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왜 그리 분주합니까? 이 일 저 일, 여기저기 인간관계를 챙기느라 바쁩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 한 분만 상대해도 충분하지 않습니까? 주님과의 관계가 우선이며, 다른 일들은 할 수 있으면 하고 못 하면 그만입니다.

감사하게도 저는 환난을 만났을 때 하나님이 계셨기에 평안히 지나갈 수 있었고, 궁핍을 겪을 때도 하나님으로 인해 평안히 이겨냈습니다. 온갖 어려움이 닥쳐와도 하나님이 계셨기에 발아래 짓밟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저의 보배이시며, 저는 하나님을 위해 기꺼이 구별된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고린도 사람들은 어쩌다 땅콩만 한 좁은 마음에 호두알만 한 생각을 가진 옹졸한 사람이 되었을까요? 이스라엘 백성의 전철을 밟아 자기 일에만 바쁘고 자기 욕심만을 좇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직장을 잃을 위기에 처했거나 이미 실직했다면 왜 그렇겠습니까? 지금까지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왜 빚을 지게 되었습니까? 거룩하게 구별되지 못하고 늘 자기중심적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땅콩만 하고 생각이 호두알만 한데 어떻게 지혜롭게 살 수 있겠습니까? 분별력이 없으니 사기꾼에게도 쉽게 속아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자신을 새롭게 인식하고 삶의 본질을 꿰뚫어 보아야 합니다. 자신을 위해 관을 하나 준비하고, 마지막에는 결국 그렇게 끝날 것이며 세상의 삶 자체는 헛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의 삶이 헛되다면 돈에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돈도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의미 있는 한 가지 일은, 하나님을 위해 살고 주의 성전을 건축하여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거하시게 함으로써 평생에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제가 어제 기도회 때 말씀드렸듯이, 작은 통증 하나에도 쓰러질 존재가 사람인데 무엇을 그리 잘났다고 뽐냅니까? 생각이 어리석어 잘못 투자했다가 빚더미에 앉으면 본래 아무 문제 없던 인생에 온갖 골칫거리만 만들어 스스로 수습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므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고, 하나님의 백성이므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것, 이것이 바로 핵심입니다. 아멘!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동역자가 되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오늘부터 이러한 기준으로 자신을 훈련하십시오. 아직 세상살이를 꿰뚫어 보지 못했다면 고난을 더 겪고 은혜를 더 많이 경험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복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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