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2019年1月30日分享录音
Q1:如何做到不胆怯?
慢慢琢磨琢磨,人如果信心有多大,胆量就有多大。如果一个人没有信心,他就是一个胆怯的人,就像《圣经》里面说:
惟有胆怯的、不信的、可憎的、杀人的、淫乱的、行邪术的、拜偶像的,和一切说谎话的,他们的份就在烧着硫磺的火湖里;这是第二次的死。(《启示录》 21:8 )
胆怯是一个人的选择,不信的人会胆怯,一个人选择刚强壮胆就是相信,即使欠200万,也可以继续活下去。悟性上不要控告自己,神已经称我们为义了。开始看到我们的进步,即使魔鬼控告是事实,但是不能阻碍我们相信神。不能一直犯罪悔改,相信神敬畏神,可以解决问题。
Q2:我爸爸咳嗽,我想为爸爸祷告,讲见证,他非常反感,我该怎么办?
怎么说话很重要,不要说,来,我为你祷告,有时候你说出来的话都不太确定。我带人祷告,我说话的时候,把压力放在他们身上,比如,你想不想要解决问题啊?如果不渴望,你是什么脑子啊?反感什么呀?能解决问题吗?我们让他们得恩典,不是讨好他们。如果他们反感的话,那就要多遭受点罪。
Q3:我们靠恩典活着,什么是恩典福音?
恩典福音是不得胜就支取恩典。很多讲恩典福音的也得到了恩典,因信就进入恩典,但后来不走得胜的路,还是死路一条。
如何得胜?靠着圣灵致死肉体的恶行,基督徒要经过很多挣扎。基督耶稣是得胜、治死肉体的典范。我们靠着主,过得胜的生活,这是我们传的福音。如果顺从肉体,那就是死,虽然也得到一些恩典,但是还是死路。
Q4:自己的义包括什么?
自以为是,靠自己的能力,靠自己的刀剑过日,包括对自己很有信心,也是自己的义。
Q5:主的恩典彰显在我的软弱上,靠着主除去身上的恶行,这个过程当中常常有反复怎么办?
基督徒得到恩典,不能取代我们在悟性上认识神。我们在悟性上不断提升,可以帮助我们除去肉体的恶行。刚开始信主,属灵很低的阶段,我们还会经历很多东西,魔鬼的剑还会射到我们,我们竭力攀登,认识神和真理的层次,代表我们得胜的层次。《希伯来书》的竭力追求和《罗马书》的进入恩典,两者不能互相取代。
Q6:主日讲牧养问题,不被牧养辖制,什么样的牧养符合神的心意?
牧养弟兄姐妹,我们好像做了很多,好像不做人家就不行。好像调到另外一个牧区,我们心里不舒服,这时候就是被鬼辖制了。好像自己要做点什么,那个人才会成长。其实不是靠着我们,而是要靠着神。
Q7:有罪的声音控告,责备的声音相争,如何胜过?
其实这些声音很矛盾,不用太管。还是需要信心胜过去,我们知道神必拯救我们到底,如果我们犯罪,圣灵启示我们得胜,我们为什么不去听呢?我们选择得胜和信靠神,问题就解决。有时候魔鬼控告一下自己,就开始说完了,完了,这就不是信靠。信靠神这是一个态度,信靠神的态度要成为我们的主轴。
Q8:明明知道不可,还是控制不住自己怎么办?
以前都那样不是吗?你还是罪人的时候神拯救你,这个时候神还会拯救你。有些人犯罪,每天犯罪,现在每3天犯罪一次,这就是好转了。若是人还是控制不住自己,每半个月犯一次,再下去每一个月一次、每半年一次,久而久之就不犯了。这是人一生争战得胜的过程。
Q9: 请问为家族祷告争战是否算代祷?
关于代祷,我非常讨厌这个词,不知道从哪里开始的就形成了这个东西。既然是为家族祷告争战,那就好好地祷告争战,不用管这算不算代祷。
Q10:请问梦是虚幻吗,为什么梦里的事有时在现实中会发生?为什么一辈子做好事的人活的短,作恶的人寿命却很长?
首先,梦是虚幻的,多话和多梦中常有虚幻。梦与灵界里的东西紧密相关,有时候梦在现实中发生,其实它们之间没什么关系,只要知道这是属灵的事情就好。
第二个问题是关于《传道书》的,做好事的人活的短是因为他靠自己,靠自己就行义过分,我们只有靠着神。其实做好事谈不上做了个好人。
Q11:别人祷告会有身体释放,但自己却没什么反应,是不是说明比那些祷告身体有反应的人更难改变思想?
要管理自己的心思意念,这是我们的责任。既然自己管自己的,那该遭的罪就遭着吧。有的人心思意念里非常恶劣,可他活得还挺好,那就只能溜溜达达进地狱。
Q12:老师曾说过侍奉神的人不要讨人的喜悦,只要讨神的喜悦,不堕胎就是讨神的喜悦,因为胎儿是属神的,是来自神的赏赐。我们做事情不是凭着信心吗?凭着信心生下孩子,也可以凭着信心养孩子。那位自杀的姐妹是没有信心,不相信神能养活她和孩子,是她自己的原因,这也跟牧者有关系吗?我不太理解。
这个问题很好。那位姐妹当时就没有信心把孩子生下来,是那些牧者逼着的。我们其实没有资格逼任何人,用道德观念甚至是拿《圣经》里的话来挟制人。要让人做自己的选择。
请问什么叫不堕胎就是讨神的喜悦?其实不到世上来的胎儿,比来世上活了一千年也不得喜乐的胎儿更好。说这种话的人就是《传道书》读的太少,对人活着这件事整的不太明白。其实很多人都不明白,总觉得在这世上多活一天是赚一天,总觉得活在这世上好,我怎么就不觉得呢,我觉得离开这个世界比较好。
弟兄姐妹们不要把宗教的规条加在别人身上,这个问题里宗教的味道就很浓厚,讲得听上去非常有道理,你有信心你好好养着自己的孩子,人家没信心的该怎么办呢?你能把你的信心给她吗?这些牧者给了半天,最后还是跳楼了。原因还是教会没有能力,只知道讲道德观念,还以为那是讨神的喜悦。我告诉你们,做这样事情的人,将来要受何等的审判。为什么?因为他们把不能担起来的担子放在别人身上,自己一根指头都不动。
Q13:遇亨通的日子,你当喜乐。遭患难的日子,你当思想。因为神使这两样并列,为的是叫人查不出身后有什么事。(传道书 7:14)这段经文的字面意思是让人省察自己吗?
这里其实是让人学会敬畏神。人不知道将来会发生什么事,也不知道死后会发生什么事,我们遇到任何事情都应当学会靠着神的恩典度日。
Q14:没有律法之先,罪已经在世上。但没有律法,罪也不算罪。(罗马书 5:13)请问后一句应该怎么理解?
比方说在乡村里没有交通规则,人们乱闯红灯,也不存在罚款这回事,这就是没有规矩但罪已经在世上,大家都在违反交通规则,只是不算数。
律法在罪以后,之前的罪是算还是不算呢?之前的罪也算,但是由于没有律法就无法判。律法是把众人都圈在罪人之内,所以神先让世上有律法,没人能把律法活出来。如果有规条让所有人都行不了该怎么办呢?那就要靠信心了,信靠神的恩典。别觉得自己不错,看别人都觉得烂,其实人都挺烂的。不是看烂还是不烂,我们都是靠神的恩典。
Q15:亚当所犯的罪是在律法以前的,他的代价就是死吗?
神没有办法定律法以后的罪,但是亚当所犯的,是神之前就跟他说过如果吃识别善恶树的果子就必定死。后来到了律法的阶段,出现了一大堆的事情,比如说十诫,但神不是靠着律法,而是靠着最早跟亚当说的话来审判。
Q16:家里的人有疾病但是又不信,请问我们该怎么祷告?
遇到家里的人不信,你要开始释放恩典。如果是我的话,我在我家族中的地位比较高,所以我想怎么带他们就怎么带。有的人在家族中的地位非常低下,我建议你还是先把自己的地位提升上来,地位太低什么也干不了。要想成为家族的拯救,大家要向约瑟学习,必须不断的提升自己,祷告无论在信心上还在是能力上,神一定会在家族里提升你的地位。因为神要使你身居天下万民之上,必须从你的家开始。
Q17:信心本来就小,在遇点困难就开始怀疑了,在告诉自己相信,就是觉得没有力量怎么办?
圣灵浇灌在我们的心里,我们的能力就越来越大。一点点的信就可以积累更多的信,就可以看见神在我们身上所做的。
Q18:《马太福音》说,叫他们看见好行为,那里指的好行为是什么呢?
就是你以前挺烂的,现在好一些了,就叫做好行为。因为你不断的提升,好行为要归荣耀给神。他们看见你的状况比之前好多了,现在脾气好一些了,不是说完全不发脾气,你看我们当中以前脾气很坏的人,然后靠着神脾气好一些了,家里人看着似乎还有点用,好像还行哦!是这个意思,但千万别指望你的行为这么好,你来跟我信主吧!
Q19:总是做出错误的选择,很容易被人忽悠,耳根软总是妥协怎么办?
那是不认识神。你心里的逻辑体系是错误的,现在被人骗了,还说是被别人忽悠。其实不是被别人忽悠,而是你把自己忽悠了。自己身上一大堆的毛病,比如说,人就想坐在家里赚钱,骗子就抓住你这点心里,你不上当可就难喽!人就想不劳而获,你不被骗谁被骗。
Q20:如何提升自己在家里的地位?
其实你在信靠神不断刚强的路上,开始变得更有智慧,透过说话、做事家里的地位就不断的提升。但如果在家里一而再,再而三的做一个软弱的人,你怎么提升地位呢?
但做刚强的人,别又刚强过火了,也挺麻烦的。怎么办呢?学习做事、做人都像那么回事,别像一个神经兮兮的宗教人士,做人还得做一个实实在在的人,你就会发现不断信靠神,在你的家里自然而然的就提升了你的地位。必须知道要学会刚强,但刚强不代表没有有智慧,开始跟家里有地位的人学习。《圣经》里有一个约瑟,非常重要的一个人物,值得我们效法。
Q21:家里有癌症的病人很刚硬不信主,但还是需要日常的照顾,非常的辛苦,自己的信心很受挑战,怎么办?
有癌症晚期的人还是不信主很难,照顾他你很需要刚强。得癌症的人身上都有很多恶习,到了晚期的人是非常要命的。我想为什么会这样?就是人灵里不刚强,癌症患者身上的鬼就修理你,你还挺尽心尽力的被折腾,那就折腾吧!
其实让人活着的乃是灵,肉身是无益的。人死了就死了吧,不用那么当回事。我说这话可能很多人接受不了,那没关系,但我觉着人活多久都一样,人活十岁、二十岁、三十岁都一样,但有的人用今生的观念看那可不好了。
Q22:总觉得神很恩待我,凡事都相信神掌权,但觉得自己的行为很差,怎么办?
不要用行为来改变行为,是用信心来改变行为,靠着圣灵治死自己肉体的恶习。很多基督徒相当的可恶,如果单靠着基督徒的外表就觉得很好,没有这回事。有的时候基督徒身上的鬼更恶,我们都需要神的恩典,自己不太行就靠着圣灵治死肉体的恶习,怎么靠呢?就常常在圣灵里祷告、方言祷告。
Q23:这个时代流行的游戏,背后真的是邪灵和黑暗权势吗?
我认为是,凡是上瘾的东西都是。是不是,你看看自己的行为就知道,整来整去整得现在这个样子不是挺难受吗,这不腿摔坏了,怎么整成这个样子的,那不是自己选择的吗?不要做一个愚昧人,开始做一个聪明人,没有回报的事别干,开始学会胜过去,今天得胜一点,明天得胜一点,别总是顺着自己的意念行。
2019년 01월 30일 성경공부 녹음
서론
이 장의 주제는 앞뒤의 장들과 연결해서 보아야 합니다. 이 장만 따로 보면 주제가 갑자기 뛰어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3장의 주제는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도 행위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습니다. 《로마서》 4장에 이르면 그 주제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받는 것입니다. 다음 두 구절을 살펴봅시다.
이 일이 저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한 것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로마서 4:23-24)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은 우리의 범죄 때문이며, 부활하신 것은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함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장차 의롭다 하심을 받을 우리를 위해 기록된 것이며, 곧 하나님께서 주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믿는 우리를 위해 기록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사람들에게 넘겨지신 것은 우리의 범죄 때문이며, 부활하신 것은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함입니다. 이 말씀은 《로마서》 4장의 마지막 부분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인데, 《로마서》 4장의 마지막 부분이 바로 《로마서》 5장의 주제를 이끌어 냅니다.
이 칭의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장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은혜에 들어가는 것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러면 이 은혜는 어떤 은혜일까요? 이 장에 기록된 것이 바로 그 주제입니다. 우리가 이 주제를 발견하면 《로마서》 5장 전체를 관통하여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때로 책을 읽어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주제를 붙잡지 못하고 저자가 무엇을 표현하려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실 《로마서》 5장이 말하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주 예수님을 의지하여 믿음으로 우리가 있는 은혜 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평생 은혜가 필요합니다
이 은혜는 우리를 계속 영생으로 들어가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은 믿어 가면서 이것이 은혜라는 사실을 잊어버렸습니다. 우리 가운데 있는 형제자매들도 믿어 가면서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잊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주님을 믿기 시작할 때만 은혜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평생, 살아 있는 동안 계속 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 삶 가운데 은혜가 없다면 우리는 계속 걸어갈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걸어가다가 자신이 충분히 잘하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여러분은 언제나 충분히 잘한 적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스스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충분히 잘하지 못했어. 나는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어.” 그런데 저는 이상합니다. 처음에 정말 형편없었을 때에도 여기까지 걸어왔는데, 오늘은 왜 안 된다는 것입니까?
바울이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로마서》를 쓴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들이 믿어 가면서 우리 가운데 있는 형제자매들과 마찬가지로 이것이 은혜라는 사실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는 계속 은혜가 필요합니다.
그들도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아, 내가 충분히 잘하지 못했어. 나는 자격이 없어.” 이것이 첫 번째 문제입니다. 두 번째 문제는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이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과 매우 비슷했다는 것입니다. 어떤 점에서 비슷할까요? 바로 하루 종일 죄를 자백하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범죄를 위해 고난을 받으시고 부활하신 것은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부활의 능력 안에서 살아가기 시작해야 합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이 능력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들이 전부 행위를 근거로 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안 돼. 나는 너무 형편없어. 그러니 끊임없이 회개해야 해!” 사실 끊임없이 회개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은혜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이해하셨습니까?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로마서》 5:20)
다시 말해 오늘 우리의 죄는 계속 은혜를 의지하여 다루어야 합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 가운데 완벽한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습니까? 사실 저는 주님을 믿기 전에 계속 완벽한 사람을 찾고 있었습니다. 완성된 경지에 이른 사람이 있는지 찾아보았지만, 끝내 찾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리스도인들이 결코 ‘완성된 경지에 이르는 것’을 말하지 않고, 모두 은혜를 얻는 것을 말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여기서 아주 큰 혼란이 생깁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끊임없이 행위를 근거로 하거나, 아니면 육체를 기쁘게 하는 데로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로마서》 6:1-2)
사실 이 장 전체의 말씀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이 부활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마리아라는 여인이 있었는데, 성령으로 잉태하여 예수님을 낳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같이 자라셨습니다. 성령으로 잉태되어 태어나셨다는 것 외에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피와 살을 가진 사람이셨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고통을 느끼셨고, 음식을 먹지 않으면 배고프셨으며, 눈물을 흘리시고 괴로워하시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한 분의 사람,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는 길을 열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부활은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자세히 읽어 보면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믿음만이 우리가 능동적으로 하는 것이고, 나머지는 모두 수동적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 하시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로운 자로 여기십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현재의 은혜 안으로 들어가게 하시며, 성령께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에 부어 주십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로마서》 5:8-10)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평생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은혜를 헤아려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헤아려 봅시다. 2018년이 이미 지나갔는데, 여러분은 그 한 해 동안 경험한 은혜를 헤아려 본 적이 있습니까? 2019년도 어느새 한 달이 지나갔습니다. 여러분은 이 한 달 동안의 은혜를 마음을 다해 헤아려 보았습니까?
사실 우리가 경험한 이 은혜들은 우리가 충분히 잘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은혜롭게 대하셨기 때문이며, 우리가 믿기로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육신을 입고 오셨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으며, 또한 우리를 위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습니다.
지난 주일에 많은 형제자매들이 자신들의 간증을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자매는 20만 위안이 넘는 빚을 졌었는데, 이제는 모두 갚았습니다. 그 자매는 앞선 반년에서 1년 동안 정말 많은 일을 겪었고 매우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런 사람도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고 구원하셨습니다. 그 자매는 반년이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계속 변화되기 시작했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누렸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신실하시므로 그 자매의 재정은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후에 저는 점차 깨닫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행위를 근거로 하며 종교의 영에 지배받고 있는데, 이런 사람들은 은혜를 받아 누리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우리 가운데 어떤 형제자매들은 제가 보기에 말도 명확하게 하지 못하고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며, 자신 안에 온갖 문제가 있습니다. 충분히 잘하지 못했다고 말한다면, 그들은 정말 충분히 잘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현재의 은혜 안으로 들어갑니다.
우리 모두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부족한 부분에 눈을 고정해야 합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은혜에 눈을 고정해야 합니까? 오늘 우리 가운데 있는 형제자매들에게 말합니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하늘에 속한 길을 달려가며, 계속 승리를 경험하고, 성령을 의지하여 우리 육체의 악한 습관을 죽이며,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이심을 영원히 믿어야 합니다.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로마서》 5:21)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5:8)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범죄를 담당하셨습니다. 이것은 매우 큰 은혜입니다! 《성경》에서 바울은 아담과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고, 의인의 범죄를 말합니다. 그리고 모두 죽었지만, 의인의 의로운 행위로 인해 모두 다시 살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후에 저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들에게는 이전에 선택권이 없었습니다. 사실 아브라함도 마찬가지로 연약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직 오시지 않았지만, 그들은 자신의 행위를 바라본 것이 아니라 장차 오실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았습니다.
오늘 우리의 연약함은 당시 아브라함의 연약함과 다르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우리를 위해 죽으셨고 우리를 위해 부활하셨으며, 우리의 삶 가운데 그분의 능력을 나타내고 계십니다.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합니까? 구약시대에 사람은 매우 연약했습니다. 신약시대에도 우리가 은혜를 버리고 행위를 근거로 하는 길을 간다면 똑같이 연약한 그리스도인이 될 것입니다.
지난날들을 지내며 저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도덕경의 전문가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도덕을 지키는 것을 근거로 삼고 많은 것들을 도덕적인 문제로 바꾸어 버립니다. 도덕을 근거로 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행위를 근거로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것저것을 평가하고 많은 것을 판단하기 시작합니다.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자신도 판단을 받으며, 그 결과 은혜를 잃고 무능력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치명적인 것은 능력이 충만한 복음을 무능력한 복음으로 믿고, 은혜의 복음을 도덕의 복음으로 믿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느 교회의 형제자매들이 한 자매가 임신한 것을 보고 그 자매가 낙태하지 못하도록 끝까지 막았습니다. 만약 저에게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저는 많이 관여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됩니다. 그러나 그들은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도덕적인 관념을 그 소녀에게 강요했고, 결국 그 소녀는 억지로 아이를 낳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양육해야 합니다. 아이가 두 살이 되었을 때, 그 엄마는 아이를 안고 건물에서 뛰어내렸습니다.
그 소녀는 줄곧 자살하고 싶어 했습니다. 아무도 정말로 그녀를 도와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도 부양하지 못하는데 아이까지 키워야 했으니, 그녀의 삶은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러나 그 교회의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죽으면 안 돼요!” 아이의 엄마가 말했습니다. “저는 더 이상 살아갈 수 없어요.” 그러자 그 사람들은 또 말했습니다. “죽으면 안 돼요. 당신이 죽으면 아이는 어떻게 해요?” 여러분, 이런 사람들이 얼마나 악합니까? 이런 것으로 사람을 묶어 놓았고, 결국 그 엄마는 아이를 안고 건물에서 뛰어내렸습니다. 이것이 그 여자가 문제를 해결한 방법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그녀를 구원하실 수 없었겠습니까? 우리가 사람을 평생 도덕으로 묶고 행위를 근거로 한다면, 어떻게 이 죄인들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고, 하나님의 사랑이 여기에서 우리에게 나타났습니다.
영원히 우리 하나님을 의지하기로 선택합시다
우리에게 많은 문제가 있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끝까지 구원하실 수 없겠습니까? 사실 아무도 자기 자신을 의지하여 자신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은 지 절반쯤 되었을 때에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주님을 믿은 지 3분의 1쯤 되었을 때에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막 주님을 믿기 시작했을 때에도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내일 이 세상을 떠나게 되더라도 오늘 여전히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이 이끄는 만큼 행해야 하며, 이런 도덕적인 규칙들을 사람들에게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사실 우리의 신앙은 《로마서》 시대부터 오늘날까지, 능력이 충만한 복음과 능력이 없는 복음 사이의 대결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능력 있는 복음을 능력 없는 복음으로 믿고, 또 능력 없는 복음을 정통적인 규례로 여기며 믿고 의지합니다.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로마서》 5:20)
이 말씀은 우리가 일부러 죄 가운데 살도록 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오늘 우리는 아직 충분히 좋지 않고, 여러분과 저 모두 완벽한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은 정말 좋으신 분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고,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났으며, 성령께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에 부어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하늘에 속한 길을 달려가기 시작하고 계속 승리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여전히 연약한 때가 있지만,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계속 승리하도록 인도하셔서 성화에 이르게 하시고, 우리가 점점 주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가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오늘 누가 자신은 죄가 없는 사람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까? 누가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로운 사람으로 여기신 것이 아닙니까? 지난날 우리는 오늘까지 달려올 수 있었고, 오늘 우리는 은혜를 의지하여 영생까지 달려갈 수 있습니다.
은혜를 의지하여 영생까지 달려갑시다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한 가지를 알기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가 충분히 좋지 않고 여전히 죄인이지만, 지금의 우리는 그때보다 조금 더 나아졌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게다가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성령을 우리 마음에 부어 주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얻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그때 이 은혜 안으로 들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의지했다면, 오늘 우리는 더욱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의지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사도 바울이 말한 “믿음으로 시작하여 믿음에 이르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을 믿고 내일 성인이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얼마 전 저는 계속해서 무너진 틈에 관한 문제를 말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목회자들이 저에게 말했습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당신에게는 무너진 틈이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무너진 틈이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들은 귀신이 들어올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을 얼마나 두렵게 하겠습니까? 여러분, 우리 가운데 완벽한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무너진 틈이 없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핵심은 우리에게 무너진 틈이 있는지 없는지가 아니라, 우리 안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으면 귀신이 우리 안에서 왕 노릇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미 우리를 위해 해결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우리의 범죄 때문에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다시 말해 오늘 우리 안의 무너진 틈은 체와 같지만, 우리는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입니다. 장차 우리는 반드시 점점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갈 것입니다.
저 자신이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임에도 과거에 저질렀던 분명한 잘못들을 생각할 때마다, 오랫동안 그리스도인이었는데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저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길고 넓고 높고 깊은지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 여러분의 삶이 아직 충분히 좋지 않더라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로 돌이키기 시작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하십시오. 우리 주 예수님께서 우리를 영원히 구원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 믿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기뻐하며 소망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과 성령을 통해 나타나는 여러 표적과 기사들이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재정적으로 크게 뒤집힌 사람들도 있고, 오늘날 여전히 가난하고 궁핍한 상태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으며, 다른 사람에게 속고 괴롭힘을 당한 일들이 형제자매들에게 일어나기도 합니다. 이런 선택은 여러분 자신이 한 것이며, 이런 일을 겪는 것은 자업자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여전히 여러분을 구원할 것입니다.
최근 제 마음에 깊은 감동이 있었습니다. 어떤 형제자매들이 말했습니다. “이 사람을 위해 기도해도 될까요?” 저는 “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또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주님을 믿지 않아요.” 저는 말했습니다. “괜찮습니다. 우리는 이 사람에게 은혜를 베풉시다.” 우리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이렇게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저는 우리 가운데 있는 몇몇 지도자들을 책망했습니다. 이 지도자들은 상대방에게 다가가자마자 “믿습니까, 믿지 않습니까?”라고 묻습니다. 상대방이 믿지 않는다고 하면 “믿지 않으면 그만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그런 말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도 처음에 사람들이 믿느냐고 물어서 믿는다고 대답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은 매우 너그러우시고, 우리 하나님은 얼마나 은혜로우신 분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항상 흘려보내야 합니다. 처음부터 “믿습니까, 믿지 않습니까?”라고 묻지 마십시오. 상대방이 믿지 않는다고 대답한 뒤 그 자리에 막혀 버려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물을 수 있습니다. “은혜를 얻기를 원하십니까?” 저는 그 사람이 원한다고 믿습니다! “치유받기를 원하십니까?” 저는 그 사람이 원한다고 믿습니다! 그러면 그 후에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은 당신을 치유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제가 당신을 초대하니 한번 경험해 보십시오!”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을 주셔서 그분의 사랑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고, 우리가 은혜를 얻도록 하십니다. 오늘 여러분의 실적이나 재정이 뒤집혔을 수도 있고, 몸의 질병이 치유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느 것이 여러분이 받을 자격이 있는 것입니까? 사실 어느 것도 여러분의 능력이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과거에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했다면, 오늘 우리는 더욱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본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진노를 나타내셔야 했고,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하여, 우리 안에 겨우 숨이 붙어 있는 믿음이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서 진노를 거두십니다. 본래 우리는 하나님의 원수였지만, 오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를 위해 죽으셨으므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겠습니까? 이미 화목하게 되었으니,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 더욱 구원을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하시면 우리를 끝까지 구원하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 모든 형제자매들은 영적으로 어느 단계에 있든지 여전히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오늘 《로마서》 5장의 말씀이 여러분에게 분명해졌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자매는 돈을 매우 사랑하고, 사람에게 속기도 하며, 자신도 자주 어리석은 결정을 내립니다. 그래도 우리는 그 자매에게 은혜를 베풀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런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말한 것입니다.
또 이 은사는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그런즉 한 범죄로 모든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로마서》 5:16-19)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지 마십시오
이해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를 의롭다 하셨으니, 오늘 우리는 스스로 옳다고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이 대단하다고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그것은 단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 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와 같은 은혜를 받았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여러분이 오늘 또 잘못된 선택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해서 하나님의 믿음을 폐기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폐기할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지혜로운 선택을 하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한 가지 선택을 합시다. 우리가 삶의 어느 단계에 있든지, 아직 많은 죄를 짓고 있을 수도 있고, 여전히 마음속으로 돈을 매우 사랑할 수도 있으며, 우리 안에 많은 문제가 있고, 밖으로는 많은 빚을 지고 있어 우리의 삶 전체가 엉망진창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께로 돌이킵시다. 더 이상 율법에 의지하지 말고, 도덕적 관념에 의지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받을 자격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하나님께서 본래 이렇게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여러분이 어제까지 죄인이었다면, 오늘 하나님께로 돌이키기로 선택하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 안에 들어가십시오. 제가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뒤집힐 수 없는 재정은 없고, 치유될 수 없는 질병도 없습니다. 《성경》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분의 가난하심으로 우리가 부요하게 되었고, 그분이 맞으신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치유받았으며, 그분이 고난을 받으심으로 우리의 범죄가 용서받았고, 그분의 보혈로 우리가 의인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큰 은혜가 아니겠습니까?
죄인을 돌이키시는 하나님
율법과 도덕적 관념에 의지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자격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본래 이렇게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어제까지 죄인이었다면 오늘 하나님께로 돌이키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십시오. 뒤집힐 수 없는 재정은 없고, 치유될 수 없는 질병도 없습니다. 《성경》은 어떻게 말합니까?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이사야서》 53:5)
그의 보혈로 우리의 죄가 씻겨져 우리가 의인이라 칭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베드로전서》 1:19)
또 누가 범죄가 없는 사람이라고 칭함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바울은 사역의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죄인 중에 괴수라.” (《디모데전서》 1:15 참조)
그는 왜 자신을 죄인 중의 괴수라고 했을까요? 저는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바울이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자신의 안에 있는 더러움을 깨닫고,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더욱 필요로 했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찬양 중 하나는 《주의 긍휼을 구합니다》입니다. 우리는 정말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항상 자신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바로 죄인인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자신을 죄인이라고 여기며 하나님의 보혈로 깨끗하게 되기를 필요로 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범죄를 지워 버리시고 우리를 의인으로 여기십니다.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로마서》 5:20)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저 죄인일 뿐이며, 율법을 행함으로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십니다. 율법은 정말 많아서 우리가 그것을 모두 완전히 행할 수 없습니다. 우리 안에 부어진 성령을 의지하여 우리는 능력을 얻고, 우리 안의 죄를 이기며, 우리의 육체를 이길 수 있습니다.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로마서》 5:21)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것은 사람이 죽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영생을 얻어 그분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오늘 한 형제가 저와 대화를 나누며 말했습니다. “주님을 믿는 일은 마치 프로그램을 작성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성경》을 작성해 놓으셨으니, 우리는 복사해서 붙여넣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그것조차 하지 않고 자기 길로 가며 자신의 의를 세우고 하나님의 의를 원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로마인들에게 편지를 써야 했던 이유입니다.
은혜를 바라보고 소망을 되찾읍시다
오늘 우리는 기쁨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고, 기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소망합시다. 그뿐 아니라 환난 중에도 기뻐합시다. 환난이 단지 예수님 때문에 받은 것입니까? 우리의 죄로 인해 치른 대가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언제 예수님의 은혜를 바라보기 원하든지, 그때 우리에게 소망이 생깁니다. 오늘 절망 가운데 있는 사람은 소망을 다시 불태우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고, 그분이 우리를 지으셨을 때의 형상을 회복하기 원하십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로마서》 5:4-5)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며 이렇게 말합시다. “하나님, 제가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우리는 하루도 하나님이 필요하지 않은 날이 없고,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지 않은 날이 없습니다. 이것이 바울이 로마 사람들에게 쓴 뜻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받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시대에는 아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을 보지 못했지만,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는 예수님께서 오신 지 이미 2천 년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더욱 육체에 속한 악한 습관을 이기고, 계속 성령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은혜 안으로 들어가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세례를 받고 예수님께 속하게 된 것은 우리의 옛 자아를 죽이고, 계속 예수님의 모습을 본받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능력으로 계속 우리 안에서 일하시게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의 부활의 모습에 그분과 연합하여 죄에서 벗어나고, 정죄가 우리 안에서 계속 왕 노릇 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형상을 삶으로 나타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