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答疑引言
大家好!《撒母耳记下》的第十四章,我给这一章取了一个题目叫做《学习做有智慧的人》。咱们有没有智慧?自以为是的人就是最愚蠢的人,你有多自以为是,你就有多愚蠢!我们一辈子知道的东西,那都是跟人学的。如果你考试的时候有一个字是你自己发明的,你说:我发明了一个字。其实是错别字,那肯定是要扣分的,你还自以为是自己发明一个东西。
你要是开车学习科目一,你按着设定好的交通规则去开,那交通规则不是你发明的。如果你发明一个新的交通规则,人家地上有很多路牌子,而你自己也画一个,插在路边没人理。如果你真的插一个在路边,那就是给人制造困扰。人家画的是圆的,你画的是什么呢?那就麻烦了!所以说我们没有几样不是跟人学的,智慧没有几样是靠你自己发明的。是我们学人家的东西,不管是谁都得学!
有很多能学的东西,你要问我最近在学什么?我告诉你,最近在学方清平,单口相声,脱口秀,还赵本山什么的,我得跟人家学说话。所以说我鼓励大家,养成一个跟人学的习惯,千万别整天在那自以为是,那肯定是个愚蠢的人。编程是照着别人的规则写的,千万别问为什么,那是傻掉了。我们先了解别人的东西,然后在原来的基础上往前发展,所以我们真的没有几样不是学人家的,因为这个世界就是这样,所以我鼓励大家开始去学习。
Q1:老师,有的时候说神是杀人的神,不在乎多死几个少死几个,但是老师又提到神不希望人死,我里面有点困惑。
神杀的那些人是他们自己逼着神杀的,还是他们没事在那喝点小酒,神就把他们杀了?其实是这群人非得惹神发怒,我们的神一直想救他们,结果他们非得往死路上走。大家为什么会有这种困惑?神的心意是让人活,因为神将祂的独生儿子耶稣基督赐给了我们,为我们死在十字架上。神什么时候希望我们死?如果是的话,那也是你自己非得逼着神杀你。
比如巴兰,是他自己作死。以色列人进了旷野,要进迦南地,但是亵渎了神。千万别把这两件事搞错了:神是希望人活,但人自己不想活。那是什么招也没有啊。弟兄姐妹,我们真的要多琢磨,神说:你摸高压线会死。但是人非要去触碰,结果就死了。
神说:你在马路中间走,车会撞的!你说:没事!我就要在马路中间走,我要到高速公路上走。那不是作死吗?简直就是害人害己。神已经告诉你活的路,但是你非得走死的路。比如拿答、亚比户,神告诉他们不能这么干,但是他们非得那么干,结果就死了。
Q2:老师,如何祝福自以为是的家人?有哪些智慧的做法?
如果你是个打扫卫生的,你回到家里说:大家要有智慧。你觉得会怎么样?你是个打扫卫生的,然后你跟家里人说:“你们要跟我信主!”你觉得好使吗?你祝福他们了吗?他们会怎么看:就你这样,我看你自己最需要祝福。怎么样才叫有智慧?你在家里的地位要高!
如果你在家里的地位极其的低下,闭口不说最好。你却说人家自以为是,你自己本身就挺自以为是的。如果你是一个聪明的人,你不可能做得不好;如果你的智慧跟使徒保罗一样,你做的帐篷不好卖,那是不可能的。现在不做帐篷做房车了,有智慧啊!弟兄姐妹要了解自己的成长,做一个有智慧的人,在自己家族里的地位要高,要不然你没法祝福他们。
Q3:老师,我首次听您的查经,我对信主总是不冷不热,灵里也很迟钝是怎么回事?
你第一次听我查经还习惯吗?像我这样言语粗俗的人,但还是很接地气的。如果我们总是不冷不热,那我们对什么东西很火热呢?一看到这个机会来了,比如说那些年买房子万年摇号,买到就是赚到。结果大半夜去排队,那是绝对有热情!那人为什么会不冷不热呢?人为什么会迟钝呢?因为人不知道这东西厉害啊!不知道这是个宝贝,不知道买到就是赚到。不知道得着就是赚到了,就是这么回事。
如果你得着了就是赚到了,十万块、一百万、一千五百万的决定,你会不会火热?绝对会!所以说为什么我火热呢?因为我知道这东西是个宝贝,我这辈子总算是得到宝贝了,那不得了!我不是没算过账还那种傻乎乎地火热。我是整的清清楚楚,我是觉得非常划算才这么做的。
所以说什么东西火热,什么东西不火热,那不都是你说了算的吗?为什么会不火热?因为觉得不划算。你有考察过吗?没考察过。所以我们人经常会被一些东西吸引,那都是因为利益的缘故。人不知道耶稣基督是至宝、是核心利益,那就傻掉了。如果我们认为这玩意浪费时间:老师,跟你这么信主,日子还怎么过呢?结果麻烦了!那你就忙你自己认为有价值的东西去吧!我自己不这么认为,我就是认为耶稣基督才是我的至宝。
Q4:老师,押沙龙本来该杀,他能见王的面是恩典,可是他的罪还在他里面,也没有悔改,这是不是导致他自取死路的原因呢?
我清楚的是押沙龙这个人有他自己一套的追求、有他自己的核心利益。押沙龙真的以为他自己成了王储了、以为将来王位就是他的,这就是稍微着急了一点。我们说押沙龙的罪还在他里面,其实谁的罪都在谁的里面。别把这事整得这么复杂,可以简化一点,人随时随地都可以掉链子,在核心利益面前,人常常成为核心利益的奴隶。人为什么会得着?为什么会得不着?其实都是神说了算!有的时候神就证明给我们看,我们在那着急也没用。
Q5:老师,《圣经》说要灭绝智慧人的智慧,废弃聪明人的聪明,这个智慧和您今天讲的这些人的智慧是一样的吗?如何理解人的智慧和神的智慧呢?
这应该是《哥林多前书》里说的,人的智慧有好多种,神的智慧也不少。可是问题来了,哪些智慧是人的智慧,哪些东西是神的智慧呢?我问你像这一章讲的约押、大卫、提哥雅妇人、押沙龙,这些智慧是好的智慧还是不好的智慧?是人的智慧还是神的智慧?我想在《哥林多前书》里头讲的那些人的智慧是想守摩西的律法,建立了一系列的规条,然后废弃了神的恩典。
神的智慧是透过耶稣基督使我们得着圣灵,靠着圣灵的能力在这世上活出神有智慧的形像。约押和提哥亚妇人,难道神不认同这种智慧吗?千万别发明一系列毫无用处的东西,徒有智慧的就麻烦了。所以灭绝智慧人智慧,聪明人的聪明,这个智慧跟我讲的智慧得琢磨一下。我讲的智慧其实也是神的智慧。那人的智慧是什么?就是发明了一系列的宗教规条,废弃了耶稣基督恩典,那是《哥林多前书》讲的。
Q6:老师,押沙龙为达到目的放火烧田,对现今的社会能行吗?
现今的社会有变种。那个时候可以烧田,这个时候可以做别的,好不好使?好使。为什么好使?当代有当代人的利益,过一段时间有不同的利益,所以只要好好的把事情给处理好。我觉着大家得琢磨一下,千万别把事情搞混了,别僵化的去放火烧人家的田,那就麻烦了。
Q7:老师,王位不是神给的吗?如果押沙龙不死,王位还是给所罗门的?
肯定是给所罗门的,因为老四本来是应该得着的,但是老四没得着,跳过老三也很正常,跳过老五、老六、老七、老八也都很正常。所罗门前面有好多个哥哥,原因在哪儿?原因在于所罗门有更高的智慧,他关心的是神的殿,得着了神的心意,那是神拣选的,因为神就喜欢这样的人。
Q8:老师,我信主二十多年了,感觉什么都知道,又好像什么都不知道,这条福音的路上好迷茫,我该怎么办?
其实你什么也不知道!为什么我会这么说呢?咱们就不说信主这事,只说装修这事。有的人就给我说这个那个的,跑这跑那儿的,说的好像啥都知道,但是只要我一问细节就什么都不知道了。讲笼统的东西都知道,但是讲具体的东西就不知道了。
前一段时间,我陪一个弟兄吃饭,这个弟兄就给我说:老师,其实我现在听你讲道,有点不太爱听了。我听他这话有点小难受。他说:你讲了上句话,我就知道下句话你要讲什么?我说:你挺厉害啊!那人家都这么说了,我也不能为我自己辩白。
后来他就去一个课程做助教,考核完发现什么题都答不对。前面百分之三十最简单的题,就连那没读过书的老太太都答对了,他才能答对。后来衡量了一下,就那么个水平。至于他为什么说我讲了上句,他就知道下句呢?大家琢磨一下,就是因为他觉着自己什么都知道,又好像什么都不知道,其实就是什么都不知道。
那人为什么不知道呢?因为没去做!只有做出来才算数。作为一个基督徒,却看不见神的恩典、能力、聪明、和智慧。学了一点《圣经》上的东西,但是脑子就是一团浆糊。我鼓励大家要有一种严谨的自学态度,你要知道华人命定神学是一个非常严谨的神学,这个严谨的神学不是因为说了才算数,而是因为做出来才算数!我们是照着神的话去落实,神的应许无论有多少,在耶稣基督里都是是的。所以千万别停留在字句上,开始落实神的话才是最重要的。
Q9:老师,我为了报复人,放了他的车胎气,这算犯罪吗?
别被人抓到。如果有好的智慧,就用好的招解决,千万别用损招。当然你用了也别告诉我。我再重复一下:做一个聪明人,做一个有智慧的人,开始要在神的话上有严谨的态度,不是做一个马马虎虎,稀里糊涂的基督徒。如果你想做一个糊里糊涂的人也可以,但是做耶稣基督的门徒就不行了。华人命定神学就是希望大家能够成为聪明人,成为神眼中的聪明人。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우리 함께 《사무엘하》 14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는 목적은 이러한 이야기들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기 위함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압살롬이 피를 흘린 죄를 범했기 때문에 용서받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다윗은 이미 큰아들 암논을 잃었는데, 이제 또 다른 아들 압살롬마저 잃어야 할까요? 아들 하나를 잃는 것이 낫습니까, 아니면 두 아들을 다 잃는 것이 낫습니까?
사실 이치는 매우 간단합니다. 당연히 아들 하나만 잃는 편이 낫습니다. 때때로 우리 머릿속의 논리는 매우 혼란스러워서, 하나님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사람을 죽이려는 것이 아니라 살리려 하십니다. 비록 때로는 하나님께서 몇 사람 죽는 것을 개의치 않으시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본심은 여전히 사람을 살리는 데 있습니다.
이번 장의 주제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을 배우라》입니다. 여러분이 기억해야 할 것은, 《성경》에 나오는 선지자들과 예수님, 그리고 이후의 바울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비판하지 않으셨으니, 우리도 그들을 비판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지난 수년간 제 마음속에는 늘 한 가지 의문이 있었습니다. '왜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을 믿고 나서 오히려 바보가 되는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말을 들으면 기분이 썩 좋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을 믿은 후 경직되고 융통성이 없어지며 지혜를 잃어버리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저는 그런 환경 속에서 주님을 믿었지만 그들처럼 경직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성경》을 읽으며 하나님의 마음을 읽어 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문제에 대해 늘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을 믿은 후 점점 더 어리석어지는 것일까요? 그들은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교조적으로 조문만을 고수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하나님께서 육신이 되어 오셨고, 예수님께서 우리 가운데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깨닫지 못했다는 것은 참으로 기이한 일입니다! 우리는 같은 《성경》을 읽고, 똑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있지만, 그 하나님의 말씀을 쓰신 분이 우리 가운데 오셨을 때 사람들은 정작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 세상에 참으로 치명적인 것이 하나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사람이 자기 생각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입니다. 사람이 선악을 분별하는 방식으로 《성경》을 읽으면 어리석어지고, 육신을 따르는 방식으로 읽어도 어리석어지며, 종교적인 사고방식으로 읽으면 더더욱 어리석어집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읽어 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프로그래밍을 배울 때 몹시 힘들어하고, 어떤 사람은 일을 배울 때 매우 힘들어합니다. 사람이 자기 생각만을 고집하고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에는 전혀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자기 안의 생각만 고집한다면 그것은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자만일 뿐이며, 이는 지혜가 아니라 어리석음입니다. 저는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사람이 유독 많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를 들어 그들이 질문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왜 성찬을 지켜야 합니까? 왜 세례를 받아야 합니까? 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야 합니까?" 저는 하나님께 이런 어리석은 질문들을 수없이 늘어놓지 않습니다.
예전에 제가 회사를 경영할 때, 그리스도인을 직원으로 채용하는 것을 가장 꺼렸습니다. 그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을 들으면 곧바로 "안 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다 다음 지원자에게 묻고 그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하면 괜찮다고 여겼습니다. 왜냐하면 초기에 그리스도인 한 사람을 채용했던 적이 있는데, 그 그리스도인이 일하는 방식 때문에 수년간 속이 답답하고 괴로웠기 때문입니다. 그는 일을 하러 와서 우리 회사의 업무 프로세스를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 그리스도인의 상사가 저를 찾아와 말하기를, "사장님, 채용하신 직원에 대해 말씀드려도 될지 모르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그리스도인인 것을 알고 있고, 채용된 사람도 그리스도인이다 보니 문제를 일으킬까 봐 조심스러웠던 것입니다.
저는 편하게 말해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이 사람이 규칙대로 일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 직원을 불러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말했습니다. "이 일에는 작업 표준 규정이 있습니다. 첫째, 둘째, 셋째, 넷째, 다섯째 순서대로 진행해야 하는데, 왜 이 작업 표준 규정대로 하지 않습니까?" 그러자 그는 "제가 왜 이것대로 해야 합니까?"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기절할 뻔했습니다. 그것은 당신의 직무이며, 회사에서 그 일을 요구했다면 당연히 요구에 따라 성실히 일해야지, 왜냐고 따져 물을 일이 아닙니다. 저는 그리스도인들이 유독 이런 함정에 잘 빠지며,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라는 맹목적인 자부심을 품는 것을 봅니다. 하지만 실제로 누구의 자녀인지 아직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요압, 드고아 여인, 압살롬, 다윗과 같은 사람들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제가 목회자가 되기 전, 원래 있던 교회에서 그러한 훈련과 가르침을 받았지만, 나중에 목회자가 되어 사람들을 양육하기 시작했을 때는 저만의 확고한 논리 체계에 따라 목회했습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한 가이드가 예전에 이런 식의 교훈을 받았습니다. 여행사에서는 가이드에게 관광객들을 기념품 가게로 데려가 온갖 옥, 보석 등을 사게 하도록 요구했습니다. 그 가이드가 말했습니다. "목사님, 제 마음에 양심의 가책이 너무 커서 그들에게 사지 말라고 합니다. 그냥 관광객들에게 이것이 여행사가 돈을 버는 방식이라고 솔직히 말해 버립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장이 당신에게 월급을 주는데 당신은 사장의 뒤통수를 치고 있으니, 대체 무슨 생각입니까? 당신의 급여가 바로 거기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고상한 도덕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는 오래 버티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는 한 가지를 잊고 있었습니다. 이 세상의 재물은 모두 불의한 재물인데, 그는 이 문제를 지나치게 무겁게 여긴 것입니다! 아마 여러분은 제 입장을 짐작하실 수 있을 텐데, 제 입장은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한 청지기가 해고될 위기에 처하자, 그는 주인에게 빚진 자들을 일일이 불러 물었습니다. "당신이 우리 주인에게 얼마를 빚졌습니까?" 10만 원을 빚진 자에게는 장부를 관리하는 권한을 이용해 5만 원으로 고쳐 주었습니다. 또 물었습니다. "당신은 우리 주인에게 곡식을 얼마나 빚졌습니까?" 100석을 빚진 자에게는 80석이나 40석으로 고쳐 주었습니다. 훗날 예수님께서는 이 청지기를 향해 지혜로운 청지기라고 칭찬하셨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런 사람을 인정하실 수 있는지 매우 놀랄지도 모릅니다. '이런 사람도 충성스럽다고 할 수 있는가?' 하지만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가리켜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부르십니다.
예전에 저도 이 문제를 연구할 때 걸려 넘어진 적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불충한 일인가!' 그러나 나중에 점차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이러한 세상 재물은 모두 불의한 재물이며, 우리가 종이돈(가짜 돈)을 보듯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종이돈을 한 묶음 더 주든 덜 주든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예를 들어 "당신이 우리 주인에게 종이돈을 얼마나 빚졌습니까? 두 묶음 빚졌으니 한 묶음으로 깎아 줍시다"라고 한들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우리 주인에게 종이돈 몇 상자를 빚졌습니까? 열 상자를 다섯 상자로 칩시다"라고 해도 아무도 이를 대단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지혜의 안목을 가지고 요압의 지혜, 드고아 여인의 지혜, 다윗과 압살롬의 지혜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저는 형제자매 여러분 모두가 압살롬의 지혜를 갖추기를 간절히 바라고, 요압의 지혜를 갖추기를 바라며, 더 나아가 드고아 여인의 지혜를 갖추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형제자매들이 어리석게 행동하는 것을 보면 답답하고,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양육해야 할지 막막해집니다. '사람이 어쩌면 저렇게 어리석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사람이 어리석은 문제를 해결할 좋은 방법을 아직 찾지 못했는데, 이제 여러분에게 《사무엘하》 14장을 전하면서 여러분에게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을 배우라고 가르칠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요압의 지혜
요압은 일을 매우 잘 처리했습니다. 그는 다윗을 하루이틀 따른 것이 아닙니다. 제 생각에는 그가 처음에 다윗과 함께 일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이 청년은 이미 대단히 지혜로웠습니다. 그는 다윗이라는 유망주에게 베팅할 줄 알았습니다. 요압과 그의 아우 아비새는 다윗의 군대에서 원수급의 직책에 있었으니, 틀림없이 매우 총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요압은 다윗이 밧세바를 취하고 우리아를 죽이는 자리에까지 이르기까지, 이 모든 일에 깊이 관여했습니다. 여러분은 "이 사람 참 악하다!"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만약 여러분이 요압만큼이라도 될 수 있다면, 저는 오히려 여러분을 축하해 주고 싶습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하는 데는 위험이 따르며, 종교적인 사람들은 제게 "이 사람 참 못됐다! 어떻게 요압을 인정할 수 있는가?"라며 낙인을 찍을 것입니다. 제가 인정하는 것은 요압의 지혜입니다. 그는 자신의 상전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알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요압의 위치에서 "왕이시여, 이렇게 하시면 안 됩니다. 이것은 너무 부도덕한 일입니다"라고 말했다면 큰 곤경에 처했을 것입니다!
일찍이 요압이 다윗에게 귀순했을 때, 그는 이미 매우 영리한 사람이어서 앞으로의 정세가 어떻게 전개될지를 한눈에 꿰뚫어 보았습니다. 요압은 다윗의 낯빛만 보고도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았으며, 요압의 마음속은 훤히 꿰뚫고 있었습니다. 만약 다윗이 압살롬을 그리워하지 않았다면 요압은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이 압살롬을 그리워하는 것을 본 요압은 이마를 찌푸리며 지혜를 짜내었고,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단번에 알아차렸습니다.
그는 상전의 두통거리가 아니라, 상전의 진통제였습니다. 상전의 진통제가 되는 것과 상전의 두통거리가 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일을 하면서 상전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다면 큰 문제입니다! 제가 일할 때 왜 영리했겠습니까? 저는 온종일 '내 상사가 무엇을 원하는가?'를 머리가 터지도록 고민했기 때문입니다. 상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면, 여러분의 급여는 분명 매우 빠르게 오를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제가 틀렸거나 요압이 틀렸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혹은 여러분 자신이 옳다고 여길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가운데 있는 목회자 동역자들에게 묻겠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제가 원하는 것은 여러분이 총명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어리석은 사람이라면, 어떻게 여러분이 돌보는 사람들을 지혜롭게 만들 수 있겠습니까? 먼저 여러분 자신이 총명해져야 여러분이 돌보는 사람들도 총명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여러분 자신이 배울 줄 모른다면, 어떻게 양육하는 사람들이 배우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이 먼저 배울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저 혼자서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많이 하지 못합니다. 저는 탄식할 때가 많습니다. "당신들이 손을 대기만 하면 내 마음을 답답하게 만드는군요!" 그렇다면 그냥 여러분 뜻대로 하십시오! 제 마음도 다 압니다. 그러나 어찌하겠습니까? 방법이 없습니다. 어리석으려면 계속 어리석어지고, 미련하려면 계속 미련해질 수밖에요. 사실 제가 원하는 것은 여러분이 똑똑해지는 것뿐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리더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지, 그저 자기의 작은 생각에만 갇혀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요압은 일할 줄 아는 사람이었고, 가장 먼저 다윗의 유익을 생각했습니다. 그는 대단히 뛰어난 인물이었습니다. 요압은 장자인 암논이 죽었으니 이제 둘째 차례라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둘째인 길르압의 꼴을 보니, 그의 어머니 밑에서 거의 출가하여 중이 될 정도로 길러져서 그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자기와는 상관이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다윗이 아들들을 다 불러 모아 일을 상의해도 길르압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습니다. 다윗이 "너 무엇을 먹고 싶으냐, 무엇을 원하느냐?"라고 물으면, 길르압은 "주시는 대로 받겠습니다"라고 대답할 뿐이었습니다. 길르압은 대략 이런 성품이었는데, 사실 이것도 대단한 것이며 일종의 지혜로서 많은 재앙을 면하게 해 주었습니다.
요압이 상황을 보니, 왕위는 틀림없이 압살롬에게 돌아갈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압살롬은 장인 댁에 가 있었습니다. 다윗은 이 아들을 몹시 그리워하면서도 돌아오게 할 수 없었는데, 압살롬이 피를 흘렸기 때문에 다윗이 공평하게 처리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었습니다. 요압은 생각했습니다. '어떤 사람의 아들이 다른 사람의 아들을 죽였다면 그 목숨으로 갚게 하여 각 집안에서 아들 하나씩 잃는 것이 공평하겠지만, 자기 아들이 자기의 또 다른 아들을 죽였는데 그 아들로 하여금 다른 아들의 목숨을 대신 갚게 하여 두 아들을 다 죽게 만든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래서 요압은 다윗에게 퇴로(명분)를 열어 주고자 했습니다. 다윗이 진퇴양난에 빠져 어찌할 바를 모르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답답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압은 영리하여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았습니다. 그는 '내가 드고아 여인을 한 사람 찾아 이야기를 하나 꾸며서 다윗에게 두 아들을 다 잃는 것보다 아들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는 것을 넌지시 알려 주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다윗도 그렇게 여겼습니다. 요압은 다윗과 여러 해를 함께하면서 다윗의 일 처리 스타일을 깊이 알고 있었고, 다윗의 판단 기준과 경중을 알고 있었으며, 어느 쪽이 더 중대한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요압에게서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머리에 맥을 짚을 줄 알아야지, 결코 어리석게 굴어서는 안 됩니다. 요압은 이야기를 꾸며내어 한 편의 연극을 연출했습니다. 만약 압살롬이 훗날 왕이 된다면 요압의 원수 자리는 더욱 굳건해질 것이고, 이 일은 다윗을 기쁘게 할 뿐만 아니라 압살롬에게도 은혜를 입히며 문제도 해결되는 것이었습니다. 이 일은 아무리 계산해 보아도 남는 장사였기에, 요압은 이 일을 결행하기로 했습니다.
훗날 암논이 죽고, 길르압은 늘 자리에서 "아, 예!"라고만 할 뿐이었으며, 셋째 압살롬도 죽자 넷째 아도니야에게 차례가 돌아갔습니다. 나중에 요압은 아도니야에게 베팅했으나 잘못된 베팅이었습니다. 요압에게 지혜가 있었지만 어리석은 부분도 있었으니, 우리가 배울 것은 그의 지혜로운 부분이지 결코 그의 어리석은 부분이 아닙니다. 많은 이들이 제가 능력 있는 사람들을 부러워한다고 오해하지만, 사실 저는 뛰어난 사람들을 몹시 존경합니다.
예를 들어 마오쩌둥 주석에 대해 저는 존경해 마지않는데, 그는 절대적으로 지혜로운 사람이었으며, 신중국을 세운 원로들 역시 하나같이 비범하고 총명한 인물들이었습니다. 덩샤오핑 역시 말과 행동에 있어 절대적으로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런 이들에게서 지혜를 배워야 하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일들은 분별하여 피해야 합니다. 그들은 일의 본질을 훤히 꿰뚫고 있었기에 우리는 그들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는 평생 《성경》 한 권만 읽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바보가 되지 않고 배기겠습니까! 요압이 직장 생활을 할 줄 알았습니까, 몰랐습니까? 상전의 골치 아픈 문제를 해결할 줄 알았습니까, 몰랐습니까? 자신의 장래를 위해 길을 닦을 줄 알았습니까, 몰랐습니까? 그는 알았고, 대단히 뛰어났습니다. 혹시 저를 오해하여 제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예전 교회 목사님들은 그런 악한 자들을 본받지 말라고 했는데, 왜 이 목사는 본받을 대상으로 삼는가?"라고 생각하십니까? 괜찮습니다. 우리는 하나씩 하나씩 지혜로워지는 법을 배워 가면 됩니다.
드고아 여인의 지혜
요압은 말을 조리 있게 잘하는 여인을 찾아 나섰습니다. 여러분은 말 잘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까? 알고 싶다면 부동산 중개인을 찾아가 보십시오. 그들은 대단히 똑똑하고 모두 말을 청산유수처럼 잘합니다. 얼마 전 저는 한 부동산 중개인을 만났는데, 그의 형이 집을 한 채 지었으나 무허가 불법 건축물이 되었습니다. 불법 건축물은 철거해야 마땅합니다. 그러자 그는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도움을 구하고 일을 처리하여, 결국 철거하지 않아도 되게 만들었습니다. 당시 제가 보았을 때는 틀림없이 철거될 줄 알았습니다. 헛돈을 들여 지었을 뿐만 아니라 허물어야 하고 쓰레기까지 치워야 하니 얼마나 속이 쓰리겠습니까! 그런데 나중에 그가 철거하지 않게 되었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저는 이 드고아 여인 역시 결코 평범한 인물이 아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드고아 여인이 왕께 나아갈 때에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하며 이르되 왕이여 도우소서 하니 (《사무엘하》 14:4)
왕은 구원하고 돕는 일을 좋아합니다. 영웅은 미인을 구한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왕이 그에게 이르되 무슨 일이냐 하니라 대답하되 나는 참으로 과부니이다 남편은 죽고 이 여종에게 아들 둘이 있더니 그들이 들에서 싸우나 그들을 말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므로 쳐죽인지라 (《사무엘하》 14:5-6)
우리 중 어떤 사람들의 생각대로라면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다윗이여, 왜 그녀에게 어머니로서 자식을 어떻게 가르쳤느냐고 묻지 않습니까?" 자식이 잘못하면 대개 어머니가 잘못 가르친 탓으로 돌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렇게 묻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사람의 뜻대로 되지 않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드고아 여인은 말을 이어갔습니다.
온 족속이 일어나서 당신의 여종을 가리켜 말하기를 그의 동생을 쳐죽인 자를 내놓으라 우리가 그의 동생 죽인 죄를 갚아 그를 죽여 상속자까지 끊겠노라 하오니 그러한즉 그들이 내게 남아 있는 숯불을 꺼서 내 남편의 이름과 유기를 세상에 남겨두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니 (《사무엘하》 14:7)
여러분, 한번 말씀해 보십시오. 그를 죽여야 마땅합니까, 죽이지 말아야 합니까? 사실 여러분이 어떻게 생각하느냐보다 다윗이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만약 이 여인의 두 아들이 모두 없어진다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겠습니까? 이 여인의 집안사람들은 모두 율법을 지키는 자들이었습니다. 《성경》에는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내가 그의 피를 찾을 것이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드고아 여인의 이 아들이 저 아들을 쳐죽인 것은 사람의 피를 흘린 것이며, 그 땅을 더럽히고 그들의 삶에 영향을 미쳐 그 지역이 저주를 받게 될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집안사람들은 이 여인에게 남은 아들을 반드시 내놓으라고 요구한 것입니다. 다윗은 이 여인의 마음을 훤히 꿰뚫어 보았기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왕이 여인에게 이르되 네 집으로 가라 내가 너를 위하여 명령을 내리리라 하는지라 드고아 여인이 왕께 아뢰되 내 주 왕이여 그 죄는 나와 내 아버지의 집으로 돌릴 것이니 왕과 왕위는 허물이 없으리이다 왕이 이르되 누구든지 네게 말하는 자를 내게로 데려오라 그가 다시는 너를 건드리지도 못하리라 하니라 여인이 이르되 청하건대 왕은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사 원수 갚는 자가 더 죽이지 못하게 하옵소서 내 아들을 죽일까 두려워하나이다 하니 왕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 아들의 머리카락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사무엘하》 14:8-11)
만약 곁에 있던 신하들이 "왕이시여, 어찌 그렇게 판결하십니까? 그것은 모세의 율법에 부합하지 않습니다"라고 했다면 어떻겠습니까? 그것이 과연 모세의 율법에 부합합니까, 부합하지 않습니까? 과연 하나님의 뜻에 부합합니까, 부합하지 않습니까? 다윗이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 아들의 머리카락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고 선언하자, 아무도 감히 다윗에게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습니다. 다윗은 남의 일을 판단할 때는 매우 명철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우리아를 죽이고 우리아의 아내를 취했을 때, 나단이 와서 한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자 그는 "그럴 수 없다"며 분노했던 사람입니다.
여인이 이르되 청하건대 내 주 왕께 한 말씀을 여쭙게 하옵소서 하니 그가 이르되 말하라 하니라 여인이 이르되 그러면 어찌하여 왕께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대하여 이같은 생각을 하셨나이까 이 말씀을 하심으로 왕께서 죄 있는 사람처럼 되심은 그 내쫓긴 자를 왕께서 집으로 돌아오게 하지 아니하심이니이다 (《사무엘하》 14:12-13)
여인은 다윗에게 명분과 퇴로를 마련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남의 문제를 해결할 때는 머리가 맑았지만,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때는 흐려졌습니다. 그러나 이 드고아 여인은 대단히 지혜로웠습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우리는 필경 죽으리니 땅에 쏟아진 물을 다시 담지 못함 같을 것이오나 하나님은 생명을 빼앗지 아니하시고 방책을 베푸사 내쫓긴 자가 하나님께 버린 자가 되지 아니하게 하시나이다 (《사무엘하》 14:14)
우리는 모두 사형 선고를 받은 자들이며, 단지 언제 집행되느냐의 차이일 뿐, 결국 죽을 운명이며 조금 더 사느냐 덜 사느냐의 문제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겠습니까? 우리는 다 죽을 수밖에 없는 자들이며, 땅에 쏟아진 물을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는 것과 같으나, 하나님은 우리의 생명을 빼앗지 않으시고 방책을 마련하사 쫓겨난 자가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일이 없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살기를 원하시지 죽기를 원치 않으시며, 만인이 구원받기를 원하시지 멸망하기를 원치 않으신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길은 모두 우리 자신이 선택한 것이며, 사람의 목숨은 땅에 쏟아진 물과 같아서 한번 쏟아지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러나 드고아 여인의 논증은 보통 사람의 차원을 뛰어넘는 높은 수준이었습니다. 제 생각을 물으신다면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세상의 많은 나라에서 사형 제도를 폐지한 이유는, 두 사람이 죽는 것보다 한 사람이 죽는 편이 낫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들은 "세상에 쓰레기 같은 인간 하나가 더 사는데 왜 죽이지 않는가?"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분의 공의로 우리를 판단하신다면, 이 땅 위에 그분 앞에 설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우리 같은 자들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면 그 누구도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사형 선고를 받고 집행유예 상태에 있는 자들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기회를 주시는 것은 새로운 사람이 되게 하려 하심인데, 어떤 사람들은 이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한 사람의 아들이 다른 사람의 아들을 죽여서 사형 선고를 받았을 때, 만약 아들을 잃은 집안에서 가해자의 아들을 위해 탄원해 준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효력이 있지 않겠습니까? 만약 한 가정에 두 아들이 있는데 큰아들이 작은아들을 쳐죽였다면, 큰아들마저 죽여야 하겠습니까? 아들 하나만 죽는 편이 낫습니다.
드고아 여인의 말을 차근차근 읽어 보면, 그녀의 논리 전개가 대단히 정교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때 다윗은 바로 이 지점에서 막혀 있었습니다. 비록 이 계책은 요압이 낸 것이지만, 만약 드고아 여인이 길르압처럼 그저 "아, 예"라고만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면 제대로 설명하지 못해 일이 틀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드고아 여인은 말을 아주 명확하게 풀어냈고, 자신의 가상 이야기를 들어 다윗의 얽힌 매듭을 풀어 주었습니다.
다윗의 지혜
죽음에 대한 다윗의 생각은 이러했습니다. 사람이 죽는 것은 땅에 물을 쏟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암논은 이미 죽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그를 다시 살려낼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압살롬은 아직 살아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그마저 죽게 내버려 두지 말자는 것입니다. 이 논리는 대단한 것입니다. 사실 다윗은 진심으로 압살롬이 자신의 뒤를 잇기를 원했습니다. 압살롬이 대단히 총명하고 외모도 준수했기 때문입니다.
이후의 이야기도 한 가지 사실을 증명해 줍니다. 다윗은 진정으로 왕위를 압살롬에게 물려주고 싶어 했습니다. 이 일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단정하기 어렵지만, 압살롬은 총명이 지나쳐 도를 넘었습니다. 지진이 났을 때 어떤 사람이 십몇 층, 이십몇 층에서 온 힘을 다해 아래로 내달리다, 지나치게 영악하여 지하층까지 내달려 버린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큰일 나지 않겠습니까? 거기서 어떻게 빠져나오겠습니까? 지진인데 말입니다! 지상 1층에 도달했으면 밖으로 나와야 합니다. 사람이 지나치게 머리를 굴리면 이렇게 됩니다.
다윗은 이 문제를 명확하게 꿰뚫어 보고 있었기에 듣자마자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알았습니다. 드고아 여인이 집안일을 이야기하자마자 다윗은 그녀를 위해 판결을 내려 주며 "네 아들의 머리카락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문제는 사람이 생사를 꿰뚫어 보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생사를 꿰뚫어 보면 생사에 대해 매우 명확한 시각을 갖게 되고, 명확한 시각이 생기면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의 본질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살리시는 하나님이시지 죽이시는 하나님이 아니시며, 이 마음은 하나님께서 거듭거듭 강조하신 것입니다.
사람은 죽으면 다시 살 수 없지만, 살아 있을 때는 회개할지 여부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죽은 자에게는 회개할 기회가 완전히 사라집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아무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며, 하나님께서 생명을 보존해 주시지 않았다면 우리의 보잘것없는 행위로는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은혜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하나님, 왜 저 인간을 쳐서 죽이지 않으십니까?"라고 말합니까? 사람이 어리석어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살리고자 하시는 마음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늘 '저 사람이 나를 너무 심하게 괴롭히니, 하나님께서 저자를 쳐죽여 주셨으면 좋겠다. 하나님께서 공의를 집행해 주시기를 구한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만약 하나님께서 공의대로만 심판하신다면, 우리의 수준으로는 여러분이나 저나 아무도 살아남지 못합니다.
다윗은 결정을 내렸습니다. 다윗의 지혜가 보이십니까? 그는 듣자마자 곧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본래 모두 죽어 마땅한 자들이니, 남에게 공의와 율법만을 강요하지 말고 은혜를 베풀어야 합니다. 물론 저 같은 사람도 완전한 사람은 아닙니다. 제가 사람들을 가르칠 때 열 번, 스무 번을 가르쳐도 고치지 않으면 정말 속이 터져 눈물이 다 날 지경입니다. 하지만 그들을 탓하지 않고 제가 잘 가르치지 못한 탓으로 돌립니다. 가끔씩 화를 내며 한마디 하기도 하지만, 어떻게든 바르게 돌려놓으려고 애를 씁니다. 오직 은혜만이 사람을 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헷 사람 우리아를 죽였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고비를 넘겼습니다. 비록 그 일로 인해 칼이 그의 집에서 영영 떠나지 않게 되었으나, 지금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왔음을 다윗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압살롬의 지혜
이번 장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누구 하나 빠짐없이 며칠씩 묵상하며 배울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압살롬이라는 인물도 대단한데, 그의 지혜는 어디서 나타납니까? 요압이 그를 데려오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다윗은 그를 만나 주지 않았습니다. 얼굴을 보는 것과 보지 못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입니다. 저희가 살던 시대에는 품속에서 마오 주석과 함께 찍은 사진 한 장만 꺼내 보여도 온 천하를 활보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마오 주석을 직접 만났다. 사진이 있으니 확실한 증거다"라는 의미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대면한 것과 대면하지 못한 것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양전닝(C. N. Yang) 박사가 마오 주석과 함께 있는 사진을 보면, 사람들이 양전닝을 대단하게 여기는 것과 같습니다.
압살롬이 왕을 만나는 것과 만나지 못하는 것은 왕과의 관계에서 조금의 차이가 아니라 십만 팔천 리의 차이였습니다. 압살롬은 왕을 뵙고 싶었지만 다윗은 만나 주지 않았습니다. 다윗도 압살롬이 보고 싶었지만, 그가 예루살렘에 와 있음에도 부르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압살롬을 불러 함께 식사 한 끼 하는 것이 불가능했겠습니까? 얼마든지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왜 그를 만나 주지 않았을까요?
왕이 이르되 그를 그의 집으로 물러가게 하여 내 얼굴을 볼 수 없게 하라 하매 압살롬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왕의 얼굴을 보지 못하니라 (《사무엘하》 14:24)
여러분, 다윗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다윗에게는 한 가지 지혜가 있었습니다. 그는 압살롬으로 하여금 '너는 살인자이며, 돌아왔다고 해서 모든 일이 끝난 줄 착각하지 말라'는 것을 알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압살롬을 돌아오게는 했지만, 자신이 먼저 주도권을 쥐고 다가가지 않았습니다. 비록 다윗 역시 압살롬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만나 주지 않았고, 압살롬이 먼저 적극적으로 자기를 찾아오게 만들었습니다. 다윗의 비범함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중 어떤 목회자들처럼 일을 어설프게 그르치지 않았습니다.
압살롬이 다윗 왕의 마음을 알았을까요? 그 역시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방책을 궁리하여 요압에게 사람을 보내 말했습니다. "당신이 나를 데려왔지만 왕을 뵙지 못하고 있으니 어찌합니까? 당신이 나를 대신해 왕궁에 들어가 왕께 말씀드려 주십시오. '내가 왕을 뵙기를 간절히 원합니다'라고 전하며 다리를 놓아 주십시오. 내가 먼저 다가가지 않으면 왕께서 나를 만나 주지 않으실 것을 압니다. 내가 살인자이기 때문입니다."
드고아 여인의 일도 요압이 분명 압살롬에게 말해 주었을 것입니다. 요압과 압살롬이 그술에서 돌아올 때 이틀 길을 동행했습니다. 요압이 압살롬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을 것입니다. "이보게! 내가 어떻게 자네를 데리러 올 수 있었는지 아는가?" 압살롬이 "모릅니다"라고 하자, 요압은 "내가 드고아 여인을 하나 섭외해서 왕께 어떻게 말할지 다 코치해 주었지"라고 했을 것입니다.
압살롬이 요압에게 "당신 참 똑똑하군요!"라고 하자, 요압은 "당연하지. 내가 왕을 모시고 수많은 세월 생사를 넘나들며 천하를 평정했는데, 자네 이 작은 일 하나 처리 못 하겠는가? 하지만 자네 내 은혜를 잊지 말게나!"라고 했을 것입니다. 물론 요압이 그렇게 노골적으로 말하지는 않았겠지만, 압살롬은 요압에게 "내가 훗날 왕이 되면 반드시 당신의 은혜를 기억하겠습니다"라고 답했을 것입니다. 두 사람은 길을 오며 마오타이주를 몇 병이나 비웠을지도 모릅니다.
압살롬은 어찌해야 할지 몰라 하루하루 기다렸습니다. 요압을 오라고 불러도 요압은 오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모두 똑똑한 자들이라 거드름을 피울 줄 알았습니다. 그러자 압살롬은 묘수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요압의 밭이 압살롬의 밭 곁에 붙어 있었기에, 그는 종들을 시켜 요압의 밭에 불을 질러 버렸습니다. 만약 요압이 와서 "왜 내 밭을 태웠느냐?"라고 따지면 압살롬은 "실수로 태웠습니다"라고 할 참이었습니다. 미사일이 남의 대사관에 떨어졌는데도 "아이쿠, 조준을 잘못했네"라고 발뺌하는 것과 같습니다. 세상일이 다 이렇습니다.
압살롬은 고의로 불을 질렀고 아주 정확하게 태웠지만, 겉으로는 "실수였다"고 말한 것입니다. '당신이 오지 않으니 밭을 태운 것이고, 그래도 안 오면 또 한 필지를 태울 것이다'라는 속셈이었습니다. 결국 요압이 찾아와 왜 밭을 태웠느냐고 따졌습니다. 압살롬이 말했습니다. "누가 오지 말라고 했습니까? 내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훗날 내가 왕이 되면 당신 몫을 챙겨 주겠다고 했는데, 지금 내 앞에서 무슨 시치미를 떼고 딴청을 피웁니까? 내가 얼마나 독한 사람인지 모릅니까?" 결국 요압은 두손을 들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부족한 것이 바로 요압, 드고아 여인, 다윗, 압살롬 같은 인물들이 지닌 이러한 기지와 담력입니다. 그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았습니다. 우리처럼 외골수로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그 한 가닥 융통성마저 없어서 아무것도 못 합니다.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방책을 생각해 내야 합니다. 방책이 있으면 일이 쉬워집니다! 밭 하나 태우고 얼마 배상해 주면 그만입니다. 결국 요압은 배상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사이에 배상은 무슨 배상인가? 탔으면 탄 거지"라고 한 것입니다. 그 후 요압은 왕을 알현하러 들어갔습니다. 왕궁의 계단 하나하나에는 고도의 외교적 수사가 얽혀 있어, 우리의 사소한 일상과는 다릅니다. 왕실과 궁중의 일에는 사소한 일이 없으며, 외교에는 작은 일이 없고 모두 중대한 일이기에 어느 하나도 빈틈없이 정교하게 처리해야 합니다.
요압이 왕께 나아가서 그에게 아뢰매 왕이 압살롬을 부르니 그가 왕께 나아가 그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어 그에게 절하매 왕이 압살롬과 입을 맞추니라 (《사무엘하》 14:33)
이제 압살롬의 손에 확실한 패가 쥐어졌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보았느냐? 너희들 다 조심해라! 내가 왕과 독대했다." 첫째는 죽었고, 둘째는 멍청하며, 셋째가 바로 압살롬 자신이었습니다. 다윗 왕 다음은 셋째인 그였으니, 아랫사람들은 헛된 꿈을 꾸지 말라는 것입니다. 밑에 있는 사람들이 보니 그는 차기 왕, 즉 후계자가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압살롬은 지나치게 똑똑하여 단숨에 지하층까지 내달려 버렸습니다. 마치 지진이 났을 때 수십 층 건물에서 무작정 지하층으로 내달려 스스로 죽음을 자초한 것과 같습니다! 이는 과거 린뱌오가 성급함을 이기지 못하고, 자신의 건강도 좋지 않은 데다 더 기다리다가는 누가 먼저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마오 주석을 제거하려다 실패한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모두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고 했습니다. 누구에게 어떤 지혜가 있든 그 부분을 배워야지,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겨서는 안 됩니다. 제 평생에 커다란 아쉬움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제가 만약 대단한 능력자 집안에서 태어나 주변에 지혜로운 사람들을 붙여 주었더라면 저의 학습 능력으로 보아 엄청나게 빨리 배웠을 것이고 지혜가 탁월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어릴 때부터 탁월한 사람들의 환경에서 자랐다면 분명 지혜가 훨씬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온갖 고생을 하고 흙탕물을 뒤집어쓰며 기어 나와 지금의 자리까지 왔습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이 되려면 뛰어난 사람들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긍휼히 여기사 하늘로부터 오는 지혜를 제게 부어 주셨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부디 융통성 없는 외골수가 되거나 그나마 있는 분별력마저 잃어버리지 마십시오. 우리는 기를 쓰고 뛰어난 고수들에게서 배워야 하며, 언제나 자신의 보잘것없는 능력에 안주하지 말고 반드시 다른 사람의 탁월함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복 주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