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세요, 우리는 이어서 《디모데전서》 4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여전히 많은 도전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 장의 제목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라”입니다.
디모데는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을 섬기기 위해 파견되었습니다. 디모데가 에베소에 도착해서 보니, 그 교회 안에는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있었고 다들 말솜씨가 대단했습니다. 그중에는 노부인들도 있었는데, 마치 대관원(大觀園)의 유할머니(劉姥姥) 같았습니다. 디모데가 그들 앞에 서니, 아휴 세상에,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느새 그 노부인이 하는 말이 마치 진리처럼 들리는 것입니다. 이러면 정말 큰일 나지 않겠습니까?
디모데는 에베소에 도착한 후 바울에게 편지를 써서 자신이 마주한 온갖 어려움들을 바울에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디모데에게 어떻게 어떻게 해야 한다고 답장한 것입니다. 그가 에베소 교회에 가보니 한 무리의 사람들이 혼인을 금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이런 것은 귀신의 가르침입니다. 그리고 어떤 음식은 먹으면 안 되고, 어떤 음식은 먹어도 된다는 식의 이야기도 하고 있었습니다.
교회 안에는 또 근육질의 남성 무리가 나타났는데, 어떤 사람은 복근이 에잇팩(8팩)으로 온몸을 단련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마라톤을 해서 몸이 아주 건강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이 디모데를 보니 디모데는 허여멀건 서생에 위장도 썩 좋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아십니까?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었습니다. 그러자 어떤 이들은 “디모데, 당신은 몸을 단련해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일들이 바울에게 답장할 기회를 제공했고, 디모데에게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물론 근육남들 외에도 살이 겹겹이 접혀 미쉐린 타이어처럼 생긴 뚱뚱한 사람들도 있었는데, 아주 잘 먹고 다녔습니다. 미쉐린 타이어 같은 사람도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될 수 있을까요?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머릿속에 든 것이 있어야 합니다. 다 살로만 가지 말고 머리와 생각 속에 채워져야 합니다.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조심하라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려면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은 반드시 조심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소그룹 목회자가 되었든, 한 교회의 목회자가 되었든 많은 사람들을 양육해야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면 직접적으로 악령과 귀신을 마주하게 되는데, 그들은 매우 교활하고 강력합니다.
여러분은 악령과 귀신이 공포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해골 머리에 흰 소복을 입고 공중을 휙 날아다니며 당신 앞에서 “왁!” 하고 나타나 소스라치게 놀라게 하는 그런 모습일 거라 생각하십니까? 귀신은 그렇게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런 것은 무섭지도 않습니다. 그런 것은 귀신이라고 하지 않고 핼러윈이라고 부릅니다.
그렇다면 악령과 귀신은 도대체 무엇을 할까요? 제가 여러분께 말씀드리겠습니다. 바로 결혼과 음식에 관한 문제입니다. 사람이 결혼한 후에 많은 비극을 겪다 보니 그들은 혼인을 금하고 음식물을 금하게 하면서 이 그물을 어디까지 뻗쳤습니까? 그들은 결혼하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분명히 아셔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더러 결혼하지 말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일흔 살이어도 결혼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됩니다. 스무 살이어도 결혼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됩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일입니다. 그것은 거룩해지는 것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리고 여러분 아십니까? 이 혼인을 금한다는 말이 나오면 그 뒤에 온갖 다른 것들이 줄줄이 따라붙어 교회 안에서 이 문제를 아주 엉뚱하고 터무니없는 지경까지 밀어붙입니다. 또 한 가지 저를 매우 당혹스럽게 만드는 일이 있었는데, 무엇 때문에 당혹스러웠을까요? 바로 결혼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사람이 결혼하면 부부관계를 맺지 않습니까? 여러분 다 알아들으시죠? 그것이 정상적인 것 아닙니까? 그것이 하나님이 지으신 것 아닙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지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굳이 하나님을 거스르려고 합니다.
그러니 목회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왜 쉽지 않을까요? 이런 귀신의 가르침과 기어코 맞서 싸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어떤 사람이 찾아와서 “선생님, 제가 저기...”라고 합니다. 제가 “그게 뭔데요? 입을 열어 말해보세요, 무슨 문제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가 “제가 음란죄를 지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어떻게 음란죄를 지었습니까? 누구와 동침이라도 했습니까, 아니면 어쨌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가 “아닙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그럼 무슨 일인데요?”라고 물으니 그가 “선생님, 제... 제 성기관에 반응이 생겼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한번 말씀해 보십시오. 이걸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까요? 이걸 어떻게 상담해야 합니까? 저는 속으로 ‘거기에 반응이 없으면 병에 걸린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반응이 생기면 생기는 거지요. 하나님이 만드셨는데 반응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가 “아닙니다, 저에게 또 그것도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어떤 건데요?”라고 물으니 그는 자위 습관이 있다고 했습니다.
아이고, 이 일 때문에 제가 난감했습니다. 제가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찾아보았는데, 한참을 찾아도 이에 관한 구절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아십니까?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죄로 규정하고, 많은 교회들도 이것을 죄로 정죄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어떤 은사주의 교회에 가면 작은 소책자가 있어서 축사(내적치유/축귀 사역)를 받기 전에 양식을 작성해야 합니다. ‘이런 죄가 나에게 있습니다’, ‘저런 죄가 나에게 있습니다’라며 하나하나 체크하고, 하나하나 끊어버리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여러분 이런 게임 해보셨습니까? 만약 여러분이 이런 것을 해보셨다면 말씀드리는데, 이것은 상당히 위험합니다. 왜일까요? 거기에 체크하도록 되어 있는 항목들 중 상당수는 《성경》에서 언급조차 하지 않은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들에 체크한 뒤에 하나하나 다 끊어내야 한다면 그다음엔 어떻게 되겠습니까? 제가 여러분께 묻겠습니다. 그 부담감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사람은 그때부터 이것을 아주 더러운 것으로 여기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혼인을 금할 뿐만 아니라 성과 관련된 모든 것에 대해 금욕하기 시작합니다. 이런 것들이 참아진다고 끊어집니까? 참아서 끊어질 수 있다면 제가 축하해 드리겠습니다. 체크를 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어떤 분이 “선생님, 저도 거기에 체크해 본 적이 있습니다”라고 채팅창에 쓰셨는데, 아무런 쓸모도 없습니다! 저는 이런 직설적인 표현을 좋아합니다. 정말 아무 소용 없지 않습니까? 제가 《성경》으로 돌아가 보았을 때, 성경 전체에서 이런 것을 가르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는 음식물을 금하는 것에 관한 규율도 많아서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된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은 유기농 식품만 먹습니다. 무엇을 유기농이라고 합니까? 천연 비료를 쓴 것입니다. 여러분이 실제로 그 유기농 작물을 어떻게 재배하는지 보십시오. 무엇으로 키웁니까? 인분(똥)을 뿌려서 키웁니다. 아이고 세상에, 이런 부질없는 일들을 줄줄이 늘어놓으면서 우리 하나님은 잊어버립니다.
여러분께 말씀드리는데, 저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부분을 깊이 묵상해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무엇이라 말씀하셨습니까? 음식은 사람을 더럽히지 못하며, 입으로 들어간 것은 다음 날 뒤로 나가 변소에 버려진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마음과 생각에서 나오는 것들이야말로 사람을 더럽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인테리어 공사를 하면 폼알데하이드(포름알데히드)가 나오기 때문에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자매님이 저희가 사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마침 방금 인테리어를 마친 상태였기에 “어머나, 이러다 사람 죽겠어요! 이렇게 포름알데히드가 심하면 사람이 죽어요!”라고 했습니다. 다행히 오늘날 우리 모두 멀쩡히 살아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들을 참 좋아합니다. 어떤 음식이 기준에 맞지 않는다느니, 독성이 있다느니 하면서 말입니다.
제 생각을 말씀드리자면, 얼마 전에 건축 자재를 파는 친구를 만났는데, 요즘 자재 분류에는 폼알데하이드 등급이 있어서 0등급부터 3등급까지 있다고 합니다. 그 친구가 제게 나누기를, 이 폼알데하이드가 들어간 판재가 흰개미를 막아준다고 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이런 것들에 신경을 씁니다. 제 방식대로 말하자면, 직장 동료와 선악을 분별하며 다투고, 어머니와 한바탕 화를 내고, 아버지와 싸우고, 남편과 한바탕 지지고 볶으며 부딪힐 때 발생하는 영적 폼알데하이드는 “E1” 등급 판재에서 나오는 것보다 훨씬 더 많습니다. E1 판재는 여러분이 선악을 분별하는 것과 비교도 안 됩니다. E1, E2, E3는 고사하고 E100도 넘게 나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특히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으로서, 좋은 일꾼이 되기 위해서는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디모데전서》 4:1)
이어서 계속 읽어보며 무엇이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고 할 터이나 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디모데전서》 4:2-5)
여러분, 이제 이해가 되십니까? 우리 사람들은 이것저것 까다롭게 따지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것이 어디서 온 것입니까? 귀신에게서 온 것입니다. 여러분께 말씀드리지만, 모든 약에는 30%의 독이 들어 있습니다. 한약이든 양약이든 마찬가지입니다. 그 독이 크지 않습니까? 그러니 이독제독(以毒攻毒)이라며 날마다 약을 먹고 날마다 주사를 맞습니다. 그게 얼마나 위험한 일입니까? 그런데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아이고, 여러분께 말씀드리건대 사람이 이러한 궤계에 걸려들지 않기가 참 어렵습니다.
한번은 제가 섬기던 어떤 자매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왜 찾아왔을까요? 축사 기도를 받으려고 찾아와서 저희 집에 보름 동안 머물렀습니다. 매일 아침마다 보니 그녀가 가방에서 작은 포 몇 개를 꺼내는데, 가루 형태였습니다. 다행히 약간 누런색이었지 흰색은 아니었습니다. 흰색이었다면 마약인 줄 알았을 것입니다. 그녀가 그것을 뜯어서 컵에 붓고 끓는 물을 부은 뒤 뚜껑을 덮었습니다. 제가 “그게 뭡니까?”라고 물으니 그녀는 “유기농 식품인데, 이 콩 저 콩을 갈아서 만든 분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알아보니, 세상에나, 엄청 비싼 다단계 제품이었습니다. 여러분, 제대로 알아보셨습니까? 건강을 지킨다고요? 무슨 건강을 지킨다는 말입니까? 그녀는 이미 꽤 오랜 기간 그것을 먹었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습니다. 그녀의 몸에 있던 병은 다 제가 기도해서 나은 것이지, 그 가루와는 눈곱만큼도 상관이 없었습니다.
오늘날 귀신의 가르침이 넘쳐납니다. 예를 들어, 치유와 축사를 마친 후에는 반드시 정결 기도를 해야 한다고 하면서, 어떤 사람들은 “어머나, 나 정결 기도 안 했는데!”라고 합니다. 온갖 것은 다 믿으면서 정작 하나님이 얼마나 능력이 크신지는 믿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 이런 귀신의 가르침이 널려 있습니다. 기가 찰 노릇 아닙니까? 또 어떤 귀신 쫓는 목사님은 유기농 제품만 드신다고 합니다. 저는 속으로 ‘유기농이든 무기농이든 무슨 상관인가, 그냥 먹으면 되지’라고 생각합니다. 왜일까요? 저는 그런 것에 별로 연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다릅니다. 그들은 그런 것에 지대한 관심을 둡니다. 그들은 오래 잘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잘 살겠다고 애쓰던 사람들을 보니 저보다 오래 살지도 못하더군요.
그러므로 조심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려면 시집가고 장가가고 음식 먹는 따위의 사소한 일에 얽매여 씨름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기억하십시오. 귀신은 뒤에서 해골 머리로 나타나 당신의 어깨를 툭툭 치고, 돌아봤을 때 해골 얼굴을 보여주는 식으로 일하지 않습니다. 귀신은 그런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일상생활의 생각 속에 역사합니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라
특히 우리 가운데 있는 젊은 청년 일꾼들과 젊은 목회자들, 우리 형제자매들은 세상의 말을 버려야 합니다. 이 세상의 풍조는 매우 무섭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 세상 뒤에 누가 있습니까? 이 세상 뒤에는 온통 귀신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디모데가 에베소에 갔을 때 에베소 교회는 세상의 말들로 인해 엄청나게 침식되어 있었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교회를 개척하고 세울 때 여러분은 세상의 말에 대해 상당한 영적 민감성을 가져야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세상의 말이란 도대체 어떤 것입니까? 살인하라고 가르치거나 불을 지르라고 가르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수많은 세상의 말들은 사람을 극도로 부패하게 만들며, 늙은 부녀들의 허탄한 신화와 같습니다.
어떤 예가 있을까요? 교회 안에 세상적인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한번은 제가 어느 교회의 훈련 과정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 과정의 책임자가 강단에 올라가 온갖 이야기를 늘어놓았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요? 자신의 할머니가 불교 신자인데 매우 독실하셨고, 자기는 할머니의 그토록 독실한 정성에 큰 감명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제가 들으면서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싶었습니다. 그 할머니가 정말 독실했을까요? 정말 독실했겠지요. 그런데 그다음이 무엇입니까? 그는 할머니의 그런 정성을 본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배워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이고 세상에, 제가 ‘이게 도대체 무슨 해괴한 말인가?’ 싶어 깊은 탄식이 나왔습니다.
디모데가 에베소에 갔을 때 세상의 말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 교회 안에서 사람들이 그를 이리저리 평가했습니다. “저 디모데를 봐라, 멀쩡한 대학도 안 다니고 바울이나 따라다니며 빌붙어 있는데, 바울 따라다녀서 뭐가 되겠어?” 디모데가 옆에서 듣고는 ‘엄마야, 내 얘기네. 그래, 나도 조만간 학위를 하나 따서 박사 학위라도 하나 챙겨야겠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제가 지금 디모데 외전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만, 그는 사도 바울에게 “저도 바리새인들에게 돌아가서 학위라도 하나 받아와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물었을지도 모릅니다. 이것이 얼마나 변질된 생각입니까? 디모데는 ‘내가 박사 학위를 따야 하나? 박사가 아니면 앞으로 어떻게 사역하지?’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온통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이자 이 세상 풍속입니다.
그렇다면 《에베소서》에는 어떻게 기록되어 있습니까? 바울은 에베소서에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고 썼습니다. 얼마나 무섭습니까? 이 세상 풍속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망쳐놓았습니까? 그러므로 세상의 말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바울이 왜 이 구절을 썼는지 잘 모르지만, 틀림없이 세상의 말이 디모데의 마음속에 들어갔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왜 버리라고 했겠습니까? 바울은 그에게 “너는 이 길을 가면 안 된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늙은 부녀들의 허탄한 말은 더욱 많았습니다. 그 노부인들이 디모데를 보며 “어휴, 넌 아직 입술에 노란 솜털(젖비린내)도 안 벗겨졌구나”라고 했습니다. 디모데는 즉시 주눅이 들었을 것입니다. ‘노란 입술’이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어린 새가 알에서 갓 깨어났을 때 부리 양쪽이 샛노란 것을 말합니다. 즉, 사람이 아직 너무 어리고 미숙하여 젖비린내가 가시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노부인들은 디모데를 풋내기 취급하며 “내가 먹은 소금이 네가 먹은 밥보다 많다”고 여겼습니다. 이 노부인들은 기세가 대단해서 다짜고짜 “디모데야, 넌 잘 모르는 모양인데, 네가 말하는 그런 게 아니라 이런 거란다”라고 한마디 던져 디모데의 기를 팍 꺾어놓았습니다.
사실 디모데는 비록 당시 일꾼이었지만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행간을 통해 유추해 보면, 그에게 여자친구가 생겼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여자친구의 집안에는 말을 아주 잘하는 이런 노부인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디모데는 이 노부인의 허탄한 말에 기가 완전히 죽어버렸습니다. 노부인은 “디모데야, 아내 말을 잘 들어야 해. 아내 말을 잘 들으면 집에 돈이 들어오는 법이란다”라며 이런 식의 세상 소리들을 늘어놓았습니다. 노부인의 머릿속에는 온갖 허탄한 말들이 쌓여 있었습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동북 지역 할머니들이 아주 구성지게 늘어놓는 말들이 많은데, ‘아내에게 쩔쩔매는 남자가 부자가 된다’는 식의 논리입니다. 그 노부인이 누구였겠습니까? 여자친구의 할머니였을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의 말과 늙은 부녀들의 허탄한 신화를 버려야 하는 이유입니다.
여러분께 말씀드리지만, 그리스도인이 여기저기서 세상 것을 묻히다 보면 온통 쓰레기만 쌓이게 되는데, 어떻게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될 수 있겠습니까? 노부인을 섬기기는커녕, 그 노부인에게 이끌려 곁길로 빠져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으면 다행일 것입니다. 노부인이 말합니다. “남들을 좀 봐라. 내 손녀사위가 되려면 근육이라도 좀 키워야지. 러닝셔츠 한번 벗어봐라, 복근이 에잇팩은 있느냐?” 보니 겨우 삼단 뱃살뿐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겠습니까? 디모데는 헬스장에 가서 매일 운동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쓴 편지의 내용이 참 흥미롭습니다. “오직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노부인은 “에잇팩 복근도 없으면서 어떻게 내 손녀와 결혼하겠느냐? 운동을 해야지”라고 합니다. 이 몇 마디 말에 디모데는 헬스장으로 직행했습니다. “너 돈 없지? 내가 돈을 대줄 테니 개인 트레이너를 붙여라.” 아이고 세상에, 돈까지 대줬으니 안 갈 수가 있겠습니까? 디모데는 복근을 만들러 운동하러 갔습니다. 여러분, 사람은 남의 꾐에 넘어가기가 참으로 쉽습니다. 그렇게 운동하러 간 것입니다.
바울이 이 소식을 듣고 ‘이게 무슨 짓인가? 경건에 이르도록 자신을 훈련해야지’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미쁘다 이 말이여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하도다 (《디모데전서》 4:7-9)
이 말씀이 무겁습니까, 가볍습니까? 아주 무겁습니다. 디모데가 권투를 배우러 갔는지 마라톤을 뛰러 갔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노부인은 “네가 그 꼴로 어떻게 내 손녀를 지키겠느냐? 내 손녀사위가 되려면 무술이라도 좀 배워야지, 소림사라도 다녀와라”라고 했을지도 모릅니다. 소림사까지 가면 정말 끝장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이런 것들이 사람을 미혹하지 않습니까? 마라톤을 뛰는 사람들은 실제로 몸이 좋습니다. 보디빌딩을 하는 사람들은 무대에 올라가서 가릴 곳만 가리고 근육을 딱 과시합니다. 하지만 디모데가 올라가면 내세울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여러분,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는 데 에잇팩 복근은 그리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은 마라톤을 뛸 필요도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경건을 훈련하는 것입니다.
왜 경건해야 할까요? 아주 단순합니다. 여러분이 경건하여 하나님의 진리에 순종하면 몸이 나빠질 리가 없습니다. 왜일까요? 선악을 분별하지 말아야 할 때 분별하지 않았고, 육신을 따르지 말아야 할 때 따르지 않았으며, 이 세상 풍속을 좇지 않았으니 귀신이 많이 달라붙겠습니까? 별로 붙지 않습니다. 반면에 이 세상 풍속을 따르면 귀신이 많이 붙겠습니까, 적게 붙겠습니까? 많이 붙습니다. 귀신을 잔뜩 끌어들였으니 다른 목표는 하나도 이룰 수 없고, 누구를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서 건강보조식품이나 전하고, 헬스나 보디빌딩이나 전하고, 보험이나 팔고 있다면 사역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사역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오직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며 금생과 내생의 약속이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건강이 오직 운동으로만 얻어지는 것이라 생각한다면 조심해야 합니다. 건강이 양생(건강관리법)으로만 얻어지는 줄 안다면 조심해야 합니다. 실제로 수많은 양생 전문가들이 50세를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느 날 한 건강관리 전문가(그는 관리직 공무원이기도 했습니다)가 주변 동료들에게 건강 관리 비결을 전수하며 피를 맑게 갈아야 한다느니 어쩌니 했습니다. 심장과 장기만 안 바꿨지 이것저것 부품 갈아 끼우듯 다 손을 댔습니다. 그런데 예순도 안 되어 퇴직도 하기 전에 죽고 말았습니다. 그의 말을 듣던 사람들이 “결국 당신이 하던 말은 다 헛소리였네”라고 했습니다. 귀신의 거짓말을 훈련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평생 이런 것들을 버리기 시작해야 합니다. 경건을 훈련하십시오. 경건을 훈련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진리 안에서 힘써 추구하며 끊임없이 성장하는 것입니다. 저는 참 안타깝습니다. 암이 왜 생깁니까? 그들이 몸 관리를 안 했을까요? 했습니다. 몸을 아끼고 위하지 않았을까요? 아꼈습니다. 운동을 안 했을까요? 했습니다. 그런데 왜 암에 걸렸을까요? 머릿속에 경건이 없고 세상의 논리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병이 든 것입니다. 저는 요즘 이런 사람들을 섬길 때 제 마음을 다시 추스릅니다. 왜일까요? 머릿속이 너무나 더럽혀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을 어떻게 섬겨야 하겠습니까? 바른말을 해주면 기분 나빠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경건을 훈련하여 진리 안에서 하나님을 알아가야 합니다. 귀신의 거짓말을 분별하고, 이 경건의 길에서 영적 세계를 깨달으면 여러분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의 영역은 실로 어마어마하며, 반드시 건강해질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살아 계신 하나님께 있느니라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힘쓰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 (《디모데전서》 4:10)
우리의 소망은 살아 계신 하나님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육신 가운데 살아가므로 오직 육신의 일에만 신경을 씁니다. 이생의 일에만 매달립니다. 그런데 그 결과 이생에서 무엇을 얻었습니까? 아무것도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소망은 살아 계신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가 왜 수고하고 힘씁니까? 사람들이 말합니다. “바울을 따라다녀서 뭐 하겠니? 우리 집에 데릴사위로 들어와라. 내 손녀사위가 되면 우리 집에 돈이 넘쳐난단다.” 디모데는 내면에서 얼마나 갈등했겠습니까! 그래서 바울이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수고하고 힘쓰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
상대방은 돈이 많으니 “그렇게 고생하며 일하지 마라, 뭣하러 그러니? 우리 집에 돈이 널렸다”라고 합니다. 여러분, 이게 얼마나 위험한 유혹입니까? 지금도 우리 가운데 어떤 자매들은 머릿속에 온통 세상적 관념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소망을 하나님께 두지 않고 부자 신랑(금거북이)을 만나는데 소망을 두다 보니, 찾고 찾다가 결국 노처녀가 되어 절망에 빠집니다. ‘남의 첩이 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만, 이 세상이 일부다처제라면 작은마누라라도 들어가서 시집이라도 갈 텐데’ 하는 생각까지 합니다. 눈에 차는 사람은 나이가 너무 많고, 젊은 사람들은 아직 젖비린내 난다고 눈에 차지도 않습니다. 아이고, 참 피곤하게 삽니다.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여러분, 제 비유만 듣지 마시고 분명히 아셔야 합니다. 우리의 소망이 하나님께 있지 않으면 큰일 납니다. 제 대학 동기 중에 매우 유명한 인사의 후손이 있는데 아주 똑똑한 친구입니다. 그는 젊었을 때부터 은퇴한 지금까지 줄곧 ‘일부다처제 합법화’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사실 그럴 필요도 없이 말레이시아의 ‘세컨드 홈’ 프로그램에 가입하고 이슬람으로 개종하면 일부다처가 가능한데 말입니다. 그러면 간단하지 않습니까? 중국에서 일부다처제 운동을 하려니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하지만 사도 바울은 힘써 수고했습니다. ‘나는 한가하게 놀고 싶지 않다. 나는 힘써 수고하여 이 땅에서 섬긴 사역의 열매가 나를 따라 영원까지 이어지기를 원한다.’ 우리의 소망은 이 세상에 있지 않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보시기에 “아, 정말 그렇구나” 싶으실 것입니다. 성경을 읽어보니 디모데의 처지가 꽤나 위태로웠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노부인이 디모데와 아무 상관없다고 생각하시겠지만 다 연결되어 있습니다. 어쩌면 그 집 손녀도 그리스도인이었을 것입니다.
요즘 세상을 보면, 결혼할 때 상대가 반드시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다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너무 심하게 오염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눈을 똑바로 뜨셔야 합니다. 배우자를 고르는 이야기는 이쯤 하고, 본론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사는 목적은 이생에 있지 않고, 하나님 안에서 구원을 얻고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는 데 있다. 나를 이 어둠의 권세에서 건져내시고, 사망에서 건져내시며, 이 모든 영적 악령들에게서 건져내사 담대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 영광의 면류관을 얻게 하시는 것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수고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사역하며 수고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게으름은 아주 고약한 습관입니다. 곁가지 이야기를 조금 하자면, 게으른 사람은 주님을 믿기 어렵고, 먹고 마시고 노는 것만 좋아하는 사람도 주님을 믿기 어렵습니다. 그들은 그런 취미에 빠져 살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은 사역하기를 좋아하고 힘써 수고하기를 좋아합니다.
제가 짐작건대 디모데는 한편으로는 남들에게 무시당하고, 내면도 그리 강건하지 못하며, 일하는 것도 좀 서툴렀기에 ‘차라리 데릴사위로 들어가는 게 최선의 선택 아닐까? 그러면 이렇게 고생하지 않아도 될 텐데’라며 깊이 갈등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종이 되고,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기 위해 이를 위하여 살고, 이를 위하여 수고하는 것을 기쁘게 여겨야 합니다! 이것이 내가 살아가는 목적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입니다.
사람들에게 명하고 가르치라
너는 이것들을 명하고 가르치라 (《디모데전서》 4:11)
바울이 디모데에게 요구한 것이 참 흥미롭지 않습니까? 꽤나 단호한 요구입니다. 너 자신이 이 도리를 명확히 깨달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이것을 가르치고 명하여 그들도 깨닫게 하라는 것입니다. 결혼하는 것은 죄가 아니며, 부부간의 정상적인 부부관계도 죄가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지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사람 중심에 경건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에 연연하지 말고, 세상의 이런 것들에 얽매이지 마십시오. 이런 것들은 다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만이 영원히 거하십니다.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받을 때에 예언을 통하여 받은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며 (《디모데전서》 4:12-14)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명하십시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경건을 훈련한다면 나눌 수 있는 간증과 이야기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분별하는 법을 가르칠 수 있습니다. 왜일까요? 기독교의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참된 인간으로 사는 법을 가르쳐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해야 할 사람을 사람답지도 않고 귀신답지도 않은 꼴로 살게 내버려두지 마십시오. 데릴사위로 들어가 기생충처럼 살아가는 것도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합니까?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살아내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미쉐린 타이어처럼 살라고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에잇팩 복근을 만들라고 가르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나타내도록 가르치는 것입니다. 비즈니스 세계든 공직 사회든 세상의 게임 규칙은 너무나 복잡하고 피곤합니다. 한번 얽매이면 빠져나오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를 입어 자유를 얻었습니다. 왜일까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부족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무엇이 부족하겠습니까?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약이 되시고, 밥이 되시며, 재정이 되시고, 우리의 영광스러운 면류관이 되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나타내며 사십시오. 우리는 더 이상 세상의 것들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아무도 여러분의 젊음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십시오. 만약 남들이 젊다고 무시하며 “아직 젖비린내도 안 가신 게, 내가 널 가르치는 게 맞지!”라고 한다면 말입니다. 디모데가 진시황을 알았겠습니까? 몰랐습니다. 한무제를 알았겠습니까? 몰랐습니다. 칭기즈 칸을 알았겠습니까? 몰랐습니다. 우리 사역자들도 세상의 많은 것들을 잘 모릅니다. 세상의 노련한 자들은 사람들을 가르치며 온갖 세상 영웅들을 들먹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잘 살았습니까? 아닙니다. 비참하게 살았습니다.
《창세기》 5장에는 힘센 자들의 문화(강인 문화)가 나옵니다. 우리는 나중에 강한 자로 사는 것이 좋은 게 아님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늘 영웅이 좋은 줄 알고 영웅주의 가르침이 뼛속 깊이 박혀 있지만, 자세히 보십시오. 관우처럼 살고 싶습니까? 결국 맥성에서 패망했습니다. 장비처럼 살고 싶습니까? 다들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무엇이 되라고 가르칩니까? 믿는 자의 본이 되라고 가르칩니다.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의 본이 되십시오. 알아들으셨습니까? 만약 비교하려거든 우리의 사랑과 믿음과 거룩함을 비교하십시오. 누가 돈을 더 많이 버는지 비교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런 것을 탐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사는 소망이 그런 것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본업에 충실하고 맡은 일을 잘 감당하면 평생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일을 성실히 하는데 무엇이 부족하겠습니까?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으며, 더욱이 하나님께서 손으로 하는 일에 복을 주십니다.
부지런히 전심전력하여 성숙함을 나타내고 삼가며 지속하라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디모데전서》 4:15)
이 모든 일에 부지런히 힘쓰십시오. 제가 여러분께 묻겠습니다. 디모데가 게을렀던 것일까요? 만약 그가 이미 충분히 열심을 내고 있었다면 바울이 굳이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바울이 전화해서 “너 지금 어디냐?”라고 물으니 “어... 공원에 있습니다”라고 합니다. 바울이 “거기서 누구랑 있느냐? 부지런히 힘써 행하고 이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해라. 공원 벤치에 앉아서 뭘 하고 있는 거냐? 전화받으면서 광장무라도 추고 있느냐?”라고 훈계하는 격입니다.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살펴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디모데전서》 4:16)
여러분께 묻겠습니다. 디모데가 매사에 조심하지 못했던 것일까요? 그렇습니다. 인내하며 지속하지 못했던 것일까요? 틀림없이 그랬을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대단히 엄중한 경고입니다.
여러분이 디모데라면 이 구절을 읽고 “왜 그러시지? 나는 지금 불같은 연애를 하고 있는데 왜 자꾸 가로막으시는 걸까? 무슨 성숙함을 보이라는 거지?”라고 했을지도 모릅니다. 훗날의 일은 우리가 다 알 수 없지만, 디모데가 후대에 별다른 영적 저작을 남기지 못한 것을 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사례입니다.
중국 속담에 “자식을 낳으려면 손중모(손권) 같은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들을 낳으려면 디모데 같은 아들을 낳아야 한다”고 하지만, 제가 보기엔 디모데를 본받으려 하지 않는 편이 낫겠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 디모데에게 편지를 쓰시며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하라고 격려하셨습니다. 마음이 분산되지 말고 전심전력하라고 권면하셨습니다. 마음을 빼앗는 것이 있다면 단호히 끊어버리십시오. 성숙해지라고 격려하셨고, 삼가 조심하라고 권면하셨습니다. 왜일까요? 그의 가르침 중 일부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단숨에 살찌려 하지 말고 끈기 있게 지속하라고 권면하셨습니다. 조급해하거나 허둥대다가 결국 사역에서 큰 갈등과 탈진을 겪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시간을 사역에 써야겠습니까, 연애에만 쏟아부어야겠습니까? 디모데의 여자친구 할머니는 그를 불러서 훈계를 늘어놓고, 한쪽에서는 바울의 가르침을 들어야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노부인의 훈계를 들어야 하니 얼마나 고달프고 힘들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 참으로 좋은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하십시오. 마음이 나뉘지 말고 전심전력하십시오. 뒤로 물러서지 말고 영적으로 성숙해지십시오. 힘써 수고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십시오. 가르칠 때는 삼가 조심하여 함부로 허탄한 소리를 하지 마십시오. 디모데가 여자친구의 할머니에게 엉터리 세상 소리를 듣고 와서 강단에 올라가 그대로 설교한다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이겠습니까? 그리고 끝까지 인내하며 지속하십시오. 우리 형제자매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는 법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