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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너희는 롯의 처를 기억하라

2022-01-22 26,943 讲道 罗得 过日子 恢复命定 罗得妻子 回头 活着的根基

《答疑解惑》

1. 서론

  1.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롯의 아내를 기억하라고 하신 이 말씀은 경고의 말씀이자 세세토록 전해질 교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녀를 죽음에서 구해 주셨지만, 그녀에게는 뒤를 돌아보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뒤를 돌아보았기 때문에 소금 기둥이 되었습니다.

  2. 뒤를 돌아보는 행동은 매우 영적인 일입니다. 뒤를 돌아보는 것은 죽음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생명과 죽음, 복과 화에 관계된 일입니다. 멸망의 세계에서 생명의 세계로 나아갈 때에는 절대로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 됩니다!

2. 성경 본문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하고 물으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너희 안에’는 ‘너희 가운데’로도 번역됨)” 하시고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때가 이르리니 너희가 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하되 보지 못하리라.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저기 있다, 보라 여기 있다’ 하리라. 그러나 너희는 가지도 말고 따르지도 말라. 번개가 하늘 아래 이쪽에서 번쩍이어 하늘 아래 저쪽까지 비침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림을 받아야 할지니라.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망시켰으며,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지었으되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부터 불과 유황이 비 오듯 하여 그들을 다 멸망시켰느니라.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그날에 만일 사람이 지붕 위에 있고 그 세간이 그 집 안에 있으면 그것을 가지러 내려오지 말 것이요, 밭에 있는 자도 그와 같이 뒤로 돌이키지 말 것이니라. 롯의 아내를 기억하라.” (《누가복음》 17:20-32)

3. 기도

4. 본문의 배경

  1. 롯의 아내는 매우 능력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자녀 교육도 잘했고, 장사도 잘했으며, 도덕 수준도 높았고, 가정을 잘 돌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녀의 기초에 있었습니다. 그녀의 기초는 바로 세상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2. 세상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은 사형 선고를 받은 죽은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산 사람인지 죽은 사람인지는 마음속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뒤를 돌아보며 세상살이를 선택하겠습니까, 아니면 영적인 길을 힘써 달려가겠습니까?

5. 롯의 아내의 마음속 생각은 바로 세상살이였습니다

  1. 아브라함이 추구한 것은 영원함과 영광, 썩지 않을 복이었지만, 롯 부부가 추구한 것은 좋은 날을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살이 앞에서는 하나님의 영광마저 어둡고 희미해졌습니다.

  2.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뒤를 돌아보는 것은 매우 큰 문제입니다. 뒤를 돌아보는 습관의 뿌리는 바로 세상살이이며, 세상살이를 추구하는 사람은 대체로 뒤를 돌아보는 사람입니다.

6. 기초를 다시 세우기: 우리의 사명

  1. 세상살이란 사고팔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심고 건축하는 것입니다. 세상살이의 기초는 살아 있기 위해 사는 것입니다.

  2. 우리는 더 이상 살아 있기 위해 살아서는 안 됩니다. 세상살이의 기초를 완전히 허물고, 우리 안에 있는 사명을 다시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의 사명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7. 결론

  1. 롯의 아내를 기억합시다. 세상살이가 죄는 아니지만 생명의 길은 아닙니다. 세상살이는 뒤를 돌아보는 길이며, 멸망의 길입니다!

  2. 우리는 세상살이의 기초를 허물고 롯의 아내의 논리 체계를 철저히 버리며, 사명을 굳게 붙들고 결코 뒤를 돌아보지 말아야 합니다! 절대로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사람이 되지 맙시다!

핵심 단어

  1. 롯

  2. 롯의 아내

  3. 뒤를 돌아봄

  4. 세상살이

  5. 살아 있음의 기초

  6.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봄

  7. 사명을 회복함

녹음 원고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번에는 “너희는 롯의 아내를 기억하라”라는 제목으로 나누겠습니다. 사실 그동안 제가 전한 제목들은 모두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한 것들이었습니다. 왜 믿음을 세우는 이야기는 하지 않을까요? 거짓된 믿음은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번 제목은 《너희는 롯의 아내를 기억하라》입니다. 다행히도 이것은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입니다. 만약 제가 한 말이라면 그다지 유익하지 않을 것입니다.

몇 년 전에 저는 이스라엘에 간 적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에 가면 당연히 먼저 사해에 가야 합니다. 사해에 가면 반드시 한 가지 풍경을 보게 되는데, 바로 소금 기둥입니다. 사해 주변에는 소금 기둥이 아주 많습니다. 사람의 머리처럼 생긴 것도 있고, 몸처럼 생긴 것도 있으며, 뒤를 돌아보는 듯한 모양의 것도 있습니다. 성경의 창세기에도 롯의 아내가 하나님께 구출되어 소돔이라는 곳에서 빠져나온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계속 달리고 또 달려 그곳까지 갔습니다. 천사는 롯에게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했지만, 롯의 아내가 뒤를 돌아보자 소금 기둥이 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사해 가에 서서 생각했습니다. ‘왜 이렇게 소금 기둥이 많지? 롯에게는 아내가 한 명뿐인데, 롯은 도대체 몇 명의 아내를 둔 거야?’ 그래서 하나님께 말했습니다. “하나님, 왜 이렇게 소금 기둥이 많습니까?” 그러자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대답도 꽤 영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뒤를 돌아보는 사람이 많단다!” 여기에는 롯 1세, 롯 2세, 롯 3세, 아주 많은 롯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롯의 아내 1세, 롯의 아내 2세도 있습니다. 알고 보니 뒤를 돌아보는 사람이 정말 많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롯의 아내를 기억하라”고 말씀하신 것도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세월이 이렇게 많이 흘렀지만, 저는 이 일을 계속 마음에 기억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제게 한 가지 특징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과거의 역사를 거의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저는 과거에 있었던 이야기들을 전할 뿐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제게 “한 사람이 과거의 영광스러운 역사를 이야기하기 좋아한다면, 그것은 그 영광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일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마 그런 뜻일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몇몇 동역자들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그들이 저를 위로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를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우리 형제들이 많지도 않습니다. 우리 형제 중에 아내가 있는 분들은 오늘 조금 불쾌할 수도 있겠습니다.” 사실 제가 여러분이 롯이라는 말도 아니고, 여러분의 아내가 롯의 아내라는 말도 아닙니다. 단지 모두에게 주의를 주는 것입니다. 혹시 비슷한 점이 있다면 순전히 우연입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우리 가운데 남편이 많지 않다고 해서 아내도 많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남편 중에 주님을 믿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아내 중에는 주님을 믿는 사람이 많습니다. 롯의 아내 이야기는 더욱 재미있습니다. 게다가 남자 롯의 아내도 있습니다. 남자들이 뒤를 돌아보는 것도 여자들 못지않게 많습니다. 정말 여러분 모두 조심하고 롯의 아내를 기억해야 합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주 예수님께서 롯의 아내를 언급하신 것은 자매들에게 하신 말씀이 아니라 한 무리의 남자 형제들에게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뒤를 돌아보는 형제들도 적지 않았던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이 하늘의 길을 달려갈 때에는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 됩니다. 뒤를 돌아보는 것은 안 됩니다. 뒤를 돌아보는 일은 매우 영적인 일입니다. 영계에서는 영계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뒤를 돌아보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일본에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라는 애니메이션 영화가 있습니다. 치히로가 죽음 가운데서 빠져나오며 하쿠와 함께 싸우는 이야기입니다. 누군가 치히로에게 뒤를 돌아보면 안 된다고 말했는데, 치히로는 정말 평안하게 죽음에서 빠져나왔습니다. 뒤를 돌아보는 것은 죽음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뒤를 돌아보는 것은 멸망의 길입니다. 사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는 일본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도 아내를 깊이 사랑한 오르페우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오르페우스의 아내가 죽자, 그는 아내를 구하기 위해 지옥으로 갔습니다. 천사는 이미 오르페우스에게 뒤를 돌아보면 안 된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런데 오르페우스가 아내를 붙잡고 필사적으로 앞으로 걸어갈 때, 그의 아내는 뒤에서 계속 불평했습니다. 그러니 죽은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오르페우스가 뒤를 돌아 아내를 위로했을 때, 두 사람은 함께 멸망했습니다. 한 영적 세계에서 다른 영적 세계로, 멸망의 세계에서 생명의 세계로, 죽음의 세계에서 살아 있는 세계로 나아갈 때에는 모두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 신화에도 뒤를 돌아보는 이야기가 있고, 일본에도 뒤를 돌아보는 이야기가 있으며, 우리 베이징에도 그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제가 대학에 다닐 때 근처에 가오량교라는 곳이 있었습니다. 가오량교의 전설은 베이징에서 꽤 유명합니다. 가오량교를 건설한 총설계자는 야오광샤오였는데, 그는 주디 황제의 군사이자 재상이었습니다. 야오광샤오는 매우 뛰어난 사람이었고, 도사이기도 했으며 영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습니다.

용왕이 베이징의 물을 가져가려 했습니다. 용왕과 용왕비는 큰 물통 두 개를 끌고 마차를 타고 떠나려 했습니다. 베이징에 물이 없다면 큰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야오광샤오는 가오량에게 말했습니다. “빨리 말을 타고 용왕과 용왕비를 쫓아가서 창으로 물통을 꿰뚫은 다음 몸을 돌려 달아나라. 누가 너를 불러도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마라.” 가오량은 단번에 물통을 꿰뚫었고, 물이 흘러나왔습니다. 용왕과 용왕비가 그것을 보고 말했습니다. “큰일 났구나. 이제 이 물을 가져갈 수 없게 되었다.” 가오량은 말을 돌려 달아났습니다. 그런데 뒤에서 계속 “가오량, 가오량”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가오량은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자 야오광샤오가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경고했던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결국 용왕과 용왕비가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가오량을 죽였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생명과 죽음, 복과 화 사이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그곳의 이름이 가오량교가 되었습니다. 나중에 사람들이 ‘량’이라는 글자로 바꾸고는 수수의 ‘량’ 자로 잘못 이해하여 수수교라고 생각했습니다. 성경에도 천사가 롯의 아내의 손을 잡고 밖으로 달려 나가면서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실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달리다가 한 번 뒤를 돌아보자 죽었습니다. 많은 형제자매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어떻게 뒤를 한 번 돌아보았다고 죽을 수 있지?’ 알고 보니 뒤를 돌아보는 일은 매우 영적인 일이었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녀를 죽음에서 구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뒤를 돌아보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저는 정말 형제자매들을 뒤를 돌아보는 습관에서 구해 내고 싶습니다. 뒤를 돌아보는 것은 정말 무서운 일입니다. 제가 전하는 이야기는 그저 이야기로 들어 주십시오.

어느 때 우리 가운데 한 자매가 제게 한 가지 일을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 자매가 중학교에 다닐 때 아주 친한 친구가 자살했지만, 그 자매는 그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날 밤 자매는 꿈을 꾸었습니다. 친구가 자살할 것인데, 자신은 뒤를 돌아보면 안 된다는 꿈이었습니다. 누구든 자매를 불러도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뜻이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오늘까지 그 자매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뒤를 돌아보는 것은 영적인 일이며, 생명과 죽음, 복과 화에 관계된 일입니다.

몇 년 전 저는 한 사람을 섬긴 적이 있습니다. 여성의 허벅지 안쪽, 배 근처에 꽃양배추처럼 생긴 종양이 자랐습니다. 종양 안의 물이 흘러나와 피부에 닿으면 피부가 썩었습니다. 그 사람이 사진을 찍어 보내왔는데 너무 무서워서 많은 사람이 본 후 밥을 먹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정말 역겨웠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사람과 함께 기도했습니다. 꽃양배추처럼 자라기 시작한 지 두 달쯤 되었을 때에는 주먹만 한 크기였고, 푸르스름하고 초록빛을 띠었으며 물도 자주 흘러나왔습니다. 우리는 그 사람과 함께 기도하며 섬겼습니다. 정말 온 힘을 다했습니다. 그 사람을 죽음의 가장자리에서 끌어내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매일 밤 그 사람과 함께 기도했습니다. 농담이 아니었습니다. 두 달 동안 계속 기도했습니다. 한 번 기도할 때마다 세 시간, 다섯 시간, 여덟 시간씩 기도했습니다. 당시에는 교회에 섬김을 맡을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아 정말 힘들었습니다. 낮이든 밤이든 그 사람이 아파서 소리를 지르면 곧바로 기도했고, 기도하면 좋아졌습니다. 결국 그 꽃양배추 같은 종양은 크게 줄어 거의 절반 정도가 되었습니다. 커다란 꽃양배추 같은 종양이 절반 크기로 줄어들고 마른 것처럼 보였습니다. 종양이 싱싱하고 축축하면 점점 더 커지지만, 마르면 곧 나아진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 사람에게 죽음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가르쳤고, 어떻게 복된 삶을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헌금해야 하는지도 가르쳤습니다.

마침 인터넷에서 제 사역을 통해 그 사람을 알게 된 한 후원자가 그 사람에게 8천 위안을 헌금했습니다. 헌금이 들어온 후 저는 그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그중 십분의 일을 헌금해야 합니다.” 사실 그 8천 위안은 그 사람의 돈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가난에 시달리다 보니 십분의 일을 내놓는 것이 목숨을 내놓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나중에 그 자매는 교회를 떠나겠다고 했습니다. 떠나기 전 두 달 동안 우리는 하루도 빠짐없이 그 자매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교회를 떠나는 날에도 원래 그 자매를 섬기기로 정해져 있었는데, 아무리 연락해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바로 그날 밤에는 그 자매와 함께 기도하지 못했습니다. 다음 날은 주일이었고, 아침 8시에 저는 자매의 어머니에게 전화했습니다. 어머니는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새벽 5시에 숨을 거두었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제 마음은 얼음처럼 차가워졌습니다. 농담이 아닙니다. 뒤를 돌아서 어디로 가겠습니까? 제가 이런 일들을 겪은 것은 정말 큰 충격이었습니다. 형제자매들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뒤를 돌아보는 것은 생명과 죽음, 복과 화에 관계된 일입니다.

2년 전에도 저는 한 암 환자를 섬긴 적이 있습니다. 그 자매 역시 조금만 상태가 좋아지면 돈을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 사람이 돈을 너무 사랑하니 돈을 조금 주면 돈을 그렇게 사랑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막을 수 없었습니다. 죽을 때 눈도 감지 못하고 눈을 부릅뜬 채 죽었습니다. 뒤를 돌아보는 것은 죽음의 길입니다. 정말 어리석은 일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만약 여러분이 저라면, 죽음에서 벗어나는 것이 한 걸음밖에 남지 않은 상황, 생사 사이에 있는 상황에서 한 번 뒤를 돌아보면 즉시 붙잡혀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너희는 롯의 아내를 기억하라”고 전하는 것은 경고의 말씀이자 세세토록 전해질 교훈입니다. 형제자매들이 뒤를 돌아보는 비율이 조금이라도 낮아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제가 말하는 ‘뒤를 돌아본다’는 것은 사람 안에 완전하고 매우 합리적이며 스스로를 납득시키는 체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뒤를 돌아보려 한다면, 그 사람 안에는 이미 오랫동안 매우 합리적이고 사람을 멸망시키는 뒤돌아봄의 체계가 형성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예전에 제가 기업 경영을 할 때, 어떤 사람이 사직하려고 하면 저는 반년 전부터 그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제가 관찰해 보면 그 사람의 모든 행동 방식에서 그것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사직하려는 사람은 이미 반년 전부터 직장을 구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교회를 떠나려고 한다면 대략 서너 달 전부터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사람 안에 일정한 반응 방식과 뒤를 돌아보는 논리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자면 끝이 없습니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권능을 경험한 후 하나님을 버리고 다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히브리서를 읽어 보면 그들을 다시 회개하게 할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권능을 경험하고도 하나님을 버렸는데 어떻게 다시 돌아올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이것은 여러분이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마귀가 이미 여러분을 철저히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뒤를 돌아서 다시 오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하나님을 버리고도 스스로를 위로합니다. “나에게는 여전히 사명이 있어.” 나중에 제가 성경을 살펴보면서 한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바로 ‘새 인간’입니다. 영어로는 birdman입니다. 사실 birdman일 뿐 아니라, 뒤를 돌아보는 birdman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 이 하늘의 길을 가는 곳에는 시체가 널려 있고 곳곳에 뒤를 돌아보는 새들이 있습니다. 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간곡히 “너희는 롯의 아내를 기억하라”고 경고하신 것도 당연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깁니다. 롯의 아내가 사람을 죽였습니까? 아닙니다. 도둑질을 했습니까? 아닙니다. 남자를 훔치거나 음행을 했습니까? 아닙니다. 단지 한 번 뒤를 돌아보았을 뿐입니다.

사실 롯의 아내는 매우 능력 있는 여인이었습니다. 소돔은 매우 음란한 환경이었지만, 그녀는 자녀를 잘 교육했습니다. 혼전 성관계도 없었고, 혼전 연애도 하지 않았습니다. 자녀 교육도 잘했고, 장사하는 능력도 뛰어났으며 도덕 수준도 높았습니다. 그뿐 아니라 남편을 돕고 자녀를 양육했으며 집도 지었습니다. 좋은 아내이자 좋은 어머니였습니다! 롯이 천사들을 맞이하는 것도 도왔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한 번 뒤를 돌아보았다고 죽었을까요? 문제는 사실 기초에 있었습니다. 그녀의 기초는 세상살이였습니다. 사고팔고, 심고 건축하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것, 이것이 바로 세상에 속한 일들입니다.

롯의 아내는 한 번 뒤를 돌아보자 갑자기 소금 기둥이 되었습니다. 아마도 그녀는 죽는 순간까지 자신이 왜 죽었는지 이해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나는 주님을 사랑하고, 가정을 사랑하고, 남편을 사랑하며, 맡은 일에도 충실했는데.’ 그러나 비극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실 저도 그녀가 가정을 잘 돌보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녀는 자신이 아브라함보다 못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저 자신의 가정이 조금 더 좋은 날들을 보내기를 바랐을 뿐입니다. 자신도 아브라함처럼 어릴 때부터 인생을 꿰뚫어 보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나도 당신처럼 어릴 때부터 인생을 꿰뚫어 보았다”고 말하지만, 막상 그의 돈과 물건에 손을 대면 표정과 태도가 달라지는 것과 같습니다.

롯의 아내가 잠깐 뒤를 돌아본 것이 그렇게 이상한 일입니까? 제가 여러분에게 말하겠습니다. 롯의 아내는 결코 나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것이 문제의 핵심입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은 도덕적인 모범이라고 불릴 수 있지만 여전히 롯의 아내입니다. 모든 것이 좋은 날을 보내는 데 집중되어 있습니다. 간증의 내용이 자녀의 성적이 좋다는 것, 자녀가 건강하다는 것, 부동산을 샀다는 것, 투자 수익이 높다는 것뿐입니다. 이것이 바로 문제의 핵심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롯의 아내입니다. 그 수가 적었다면 예수님께서 이 일을 언급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여러분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 롯의 아내의 체계입니까, 아니면 진정으로 예수님을 따라 이 사명의 길을 가려는 마음입니까?

성경 본문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망시켰으며,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지었으되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부터 불과 유황이 비 오듯 하여 그들을 다 멸망시켰느니라.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그날에 만일 사람이 지붕 위에 있고 그 세간이 그 집 안에 있으면 그것을 가지러 내려오지 말 것이요, 밭에 있는 자도 그와 같이 뒤로 돌이키지 말 것이니라. 롯의 아내를 기억하라. (《누가복음》 17:26-32)

기도

하나님, 우리에게 깨어 있는 마음을 주셔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빛을 비추어 주옵소서. 우리 안에 있는 롯의 아내와 같은 논리 체계를 철저히 제거하시고, 이러한 뒤를 돌아보는 습관에서 벗어나게 하옵소서. 이 하늘의 길을 달려갈 때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않게 하옵소서. 하나님, 우리가 깨어 기도하게 하셔서 미혹에 빠지지 않게 하옵소서. 하나님, 우리의 마음을 열어 주셔서 하나님의 이름을 경외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게 하옵소서. 우리가 하나님을 따르는 길에서 굳게 따라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의 배경

이 본문의 배경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얼마 전에도 누가복음 17장의 본문을 성경공부했는데, 매우 잘 공부했습니다. 여러분이 원하시면 《누가복음》 17장 녹음도 들을 수 있습니다. 17장은 처음부터 제자들이 주 예수님께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우리의 믿음을 더하여 주옵소서.” 그러자 주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누가복음》 17:6)

예수님께서는 그 질문에 직접 대답하지 않으시고, 이어서 믿음은 우리의 책임이며 우리는 무익한 종이고 우리가 한 일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믿음은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무엇을 믿는가 하는 논리는 매우 중요합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은 세상살이를 믿고, 어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존귀와 영광, 썩지 않을 복을 얻는 것을 믿습니다.

그다음 열 명의 나병환자가 등장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나병은 매우 역겨운 병이었습니다. 식당에 들어가 식사할 수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마을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까? 역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나병은 전염병이었고, 출입이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단 한 사람만 돌아와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것도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어디 있느냐?” 그들은 모두 세상살이로 돌아간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오랜 세월 나병을 앓다가 갑자기 나았습니다. “아, 딘타이펑 만두를 먹고 싶다. 아, 마라샹궈를 먹고 싶다.” 머릿속에 이런 것만 가득했습니다. 오직 한 사람만 돌아와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도 나중에 돌아와 예수님을 따르려는 사람은 매우 적습니다. 그다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일이 언급되는데, 먼저 이것을 제기한 사람들은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사람의 마음속에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속의 선택이 여러분의 생명과 죽음을 결정합니다! 열 명의 나병환자 중 아홉 명은 모두 돌아가 세상살이를 했습니다. 그 결과는 무엇이었습니까? 나중에 일어난 일은 아주 분명합니다. 멸망이었습니다. 이어서 인자가 임하는 날은 롯과 노아의 때와 같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고팔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심고 건축하는 때입니다.

그리고 인자가 나타날 때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지붕 위에 있는데 세간이 집 안에 있다면 그것을 가지러 내려오지 말아야 합니다. 그 세간이 금으로 되었든 은으로 되었든 구리나 철로 되었든 내려와 가지러 가서는 안 됩니다. 밭에 있다면 집으로 돌아가서는 안 됩니다. 집 안에 있는 가장 귀한 물건이 64코어 고성능 컴퓨터든, 모니터든, 그래픽카드든 아무리 귀해도 돌아가 가져오지 말아야 합니다. 인자가 나타날 때에는 롯의 아내를 기억해야 합니다. 돌아가 가져오면 소금 기둥이 됩니다. 주 예수님께서 나타나시는 날에는 여러분의 결과가 드러날 것입니다. 사방을 둘러보면 소금 기둥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때에는 분명 매우 많을 것입니다.

무릇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 (《누가복음》 17:33)

그 후 예수님께서는 매우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어느 곳이니이까 이르시되 주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이느니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7:37)

많은 사람이 이 본문을 공부하면서 제대로 해석하지 못합니다. 죽은 사람은 어디에 있습니까? 사실 세상살이를 위해 사는 사람은 멸망한 사람입니다. 자신이 살아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세상살이를 위해 사는 사람은 이미 사형 선고를 받은 죽은 사람이며, 단지 시간이 조금 연장되었을 뿐입니다. 죽은 사람은 영이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마귀는 반드시 그런 사람을 따라가며, 독수리도 그곳에 모입니다.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입니다.

롯의 아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녀가 뒤를 돌아보았을 때, 소돔 성에서 빠져나온 것은 그녀만이 아니었습니다. 롯의 아내 주변에는 많은 영적인 것들이 함께 있었을 것입니다. 그중에는 분명 늙은 말도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녀가 뒤를 돌아보는 순간 늙은 말이 롯의 아내의 영을 붙잡았고, 즉시 그녀의 몸이 소금 기둥으로 변했습니다. 우리는 매우 영적인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보지 못한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살아 있는 사람인지 죽은 사람인지는 마음속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생명을 하나님께, 예수님께 드리고 그분을 따르며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않는 것은 생사를 가르는 치명적인 문제입니다! 이것이 이 본문의 배경입니다. 집에 돌아가서 《누가복음》 성경공부 녹음을 들어 보시기를 권합니다.

롯의 아내의 마음속 생각은 바로 세상살이였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세상살이는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롯의 아내의 마음속에 있는 모든 생각은 세상살이였습니다. 이 문제를 잘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세상살이를 위해 사는 사람입니까? 세상살이를 위해 사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사고팔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심고 건축하는 것, 집에 딸이 있다면 그 딸에게 좋은 사위를 찾아 주고 싶은 것, 이런 것들은 죄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생명의 기초가 아닙니다!

당시 롯이 아브라함과 헤어진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롯과 롯의 아내가 아브라함을 따라 장막에서 사는 것을 매우 불만스러워했기 때문입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소돔 성의 위생 환경은 얼마나 좋습니까? 이 늙은이를 따라 동쪽으로 갔다 서쪽으로 갔다 하며 날마다 장막을 쳤다 걷었다 해야 했습니다. 가축을 다루다 보니 몸에서는 냄새가 났습니다. 목욕을 하려 해도 샤워실이 없고, 화장실에 가려 해도 제대로 된 화장실이 없었습니다. 정말 힘들었습니다. ‘우리 소돔 성 안으로 들어가면 안 될까? 위생 시설도 얼마나 좋고, 도시 건설과 도시 계획도 얼마나 훌륭한가!’ 롯의 아내는 곁에서 계속 롯에게 이런 바람을 불어넣었습니다.

사실 롯의 목자들과 아브라함의 목자들이 다툰 것은 아래 사람들이 다툰 것이지만, 아래 사람들이 다투는 것은 위에 있는 사람들이 만든 문제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모두 중국인이니 이런 일을 잘 알고 있습니다. 롯이 정말 이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면 간단하지 않았겠습니까? 종들을 불러 서로 더 이상 다투지 말라고 하면 끝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것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이들은 철저히 세상을 사랑하는 부부구나. 그렇다면 나를 따라오지 마라. 너희는 떠나라! 네가 동쪽으로 가면 나는 서쪽으로 가고, 네가 남쪽으로 가면 나는 북쪽으로 가겠다. 네가 왼쪽으로 가면 나는 오른쪽으로 가겠다. 네가 어느 방향으로 가든 나는 반대 방향으로 가겠다. 먼저 네가 선택해라. 손해는 내가 감수하겠다. 이런 사람들을 데리고 다니고 싶지 않다.’

실제로 교회를 세우려면 이런 결단이 필요합니다. 교회를 세울 때 이런 사람들을 남겨 두어서는 안 됩니다. 롯과 같은 사람이 교회를 무너뜨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날마다 교회를 시끄럽고 어지럽게 만들 것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살이를 원하고, 아브라함 당신은 이 늙은 나이에 사명을 추구하려 하니 마음껏 추구하십시오. 당신이 가는 하늘의 길과 세상살이의 길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나중에 하나님께서는 정말 롯에게 한 가지 교훈을 주셨습니다. 당시 매우 강력한 왕이었던 그돌라오멜이 소돔 성을 완전히 약탈하고 소돔 왕을 무너뜨렸습니다. 롯과 그의 아내는 사로잡혀 갔고, 그 길에서 노예와 같은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의 모든 재산도 빼앗겼으니, 평생 노예로 살아야 할 처지였습니다.

롯과 롯의 아내가 기도했을까요? 분명히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이 기도하는 것을 직접 보았는데 어떻게 기도하지 않았겠습니까? 기도를 마친 후 아브라함은 정말로 그들을 구하러 왔습니다. 구출된 롯은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하나님, 주님께 감사합니다. 아브라함을 보내 저를 구해 주셨군요. 이제 다시 돌아가 세상살이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생각해 보니 다시 소돔으로 돌아가 세상살이를 하러 갔습니다. 아무리 막아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재난을 한 번 겪었다면 조금은 정신을 차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건 안 되겠구나!’ 그런데도 ‘드디어 다시 세상살이를 할 수 있게 되었구나. 하나님, 그래도 계속 살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합니다. 오늘날 이런 그리스도인이 매우 많습니다. 자녀를 잘 가르치고, 자신을 깨끗하게 지키는 것도 세상살이를 위해서입니다. 투자와 재테크는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세상살이를 위한 것입니다. 영적인 추구를 유지하고 매우 높은 도덕 기준을 지킵니다.

겉으로는 매우 영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여전히 세상살이를 위한 것입니다. 지금도 많은 그리스도인이 동성애를 반대합니다. 왜 그것을 반대합니까? 그 땅이 더럽혀져 자신들의 세상살이에 영향을 줄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기도는 자신의 생활과 가정을 위한 것입니다. 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모두 이런 것들, 곧 세상살이를 위한 것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좋은 아버지, 좋은 어머니, 좋은 자녀를 많이 양성하는 목표도 모두 세상살이를 위한 것입니다. 저도 ‘혹시 내가 롯의 아내는 아닌가?’ 하고 스스로 돌아보게 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님께서 “롯의 아내를 기억하라”고 하신 것은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신 것입니다! 사실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이런 것들을 가르치신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많은 교회의 자매들에게 제가 물어봅니다. “교회에는 왜 나오십니까?” “그 교회에는 형제들이 많으니까요. 혹시 좋은 사위를 찾을 수 있을까 해서요.” 주님을 믿고 주님을 사랑하는 형제를 찾으려 하지만, 찾은 후에는 그 형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허락하지 않고 자신만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결혼과 연애가 바로 이런 사고팔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심고 건축하는 일이니, 이것이 세상살이가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주님께서 오시는 날에도 사람들은 이렇게 세상살이를 할 것입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불이 내려오고 물이 밀려와 모든 것이 끝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초창기에 우리 가운데 몇몇 자매가 찾아왔습니다. 왜 왔는지 아십니까? 형제를 찾으러 온 것입니다. 키가 작은 형제는 기회가 별로 없고, 키가 크고 잘생긴 형제는 멀리서부터 눈여겨봅니다.

나중에 이 자매들은 좋은 사위감에게 이미 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금거북 사위를 찾지 못하면 은거북 사위를 찾고, 은거북 사위를 찾지 못하면 동거북 사위를 찾았습니다. 한 자매의 어머니는 제게 직접 전화했습니다. “목사님, 아무개 형제는 어떻습니까? 수입이 높습니까?” 알고 보니 모두 이런 목적으로 온 것이었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좋은 사위감에게 이미 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 자매는 무너졌고, 저는 또 섬겨야 했습니다. 마음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사실 제가 롯의 아내를 왜 섬기고 있었던 것입니까!

어느 때 우리 가운데 한 형제가 매우 아름다운 사진을 찍었습니다. 양복을 잘 차려입고 의자에 앉아 한 손으로 턱을 괴고, 깊은 생각에 잠긴 듯한 모습을 연출한 사진이었습니다. 사실 그가 웨이보에 올린 글은 모두 제가 설교에서 전한 명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어머니와 딸이 먼 곳에서 비행기를 타고 와 우리 교회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예배하는 동안 그 모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 형제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마침내 마음에 둔 사람을 찾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정말 대단했습니다!

한 명만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또 다른 어머니는 아예 제게 직접 전화해서 그 형제가 어떠냐고 물었습니다. 그 형제의 웨이보를 통해 오랫동안 양육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사실 그의 웨이보 글은 모두 제 설교를 베낀 것이었습니다. 처음 만났는데 그 형제는 아주 촌스럽게 말했습니다. “우리 둘이 아이를 낳으면 우리 어머니는 아이를 봐주지 않으실 거예요.” 처음 만난 자리에서 아이를 낳는 이야기부터 하다니, 정말 큰일 아닙니까!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듣고 그저 웃음거리로 삼았습니다.

교회가 많은 경우 사고팔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심고 건축하는 장소가 되어 버렸습니다. 사명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들의 사명은 가정이고 세상살이입니다. 세상살이와 비교하면 하나님의 영광은 모든 것이 어둡고 희미해집니다. 그들에게는 좋은 사위감 하나가 보이면 다른 모든 것이 어둡고 희미해집니다. 롯의 아내에게 세상살이와 비교할 때 사명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모든 것, 심지어 하나님의 영광까지도 어둡고 희미해졌습니다.

롯의 아내의 눈에는 모든 것이 세상살이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들을 떠나보낸 것은 여러분이 반드시 알아야 하듯이 아브라함이 먼저 제안한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서로 다른 사명과 서로 다른 추구였습니다. 롯은 세상살이를 위해 살았지만, 아브라함은 하늘에 속한 길,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않을 복을 추구하는 길을 걸었습니다! 일과 사업은 아브라함에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롯의 아내는 자신이 애써 경영해 온 모든 것이 완전히 재가 되어 사라지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녀의 모든 소망과 의지하던 것, 평생의 투자와 평생 모은 재산, 살아가는 의미가 모두 사라졌습니다. 그녀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힘들게 경영해 온 모든 것이 사라진다면 남은 날들을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그래서 뒤를 돌아보는 것을 선택했고, 천사가 자신에게 한 말을 완전히 잊어버렸습니다.

천사는 한 손으로 롯의 아내를 붙잡고 다른 손으로 롯을 붙잡아 앞으로 달렸습니다. 롯의 아내는 마지못해 끌려가며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이 길은 쉽지 않습니다. 생명을 얻는 길은 얼마나 어렵습니까! 사명과 생명이 있는 길은 얼마나 어렵습니까! 세상살이가 사람의 추구가 되면 모든 것이 어두워집니다. 사람 안에는 얼마나 많은 미련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주님을 믿되 롯의 아내처럼 믿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사람을 뒤를 돌아보는 새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구원하시려 해도 여러분이 뒤를 돌아보며 멸망하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이제 이 뒤돌아보는 습관을 없애기 시작해야 합니다. 그 습관의 뿌리는 바로 세상살이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세상살이를 위해 사는 사람입니까? 여러분이 좋은 날들을 보내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생명의 기초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세상살이를 위해 사는 사람이라면 아마 뒤를 돌아보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때가 되면 반드시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결정적인 때, 곧 주 예수님께서 나타나시는 날에 여러분은 분명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그것들이 여러분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기초를 다시 세우기-우리의 사명

누가복음 9장 62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누가복음》 9:62)

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어떤 사람이 “주 예수님, 제가 주님을 따르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마태복음》 8:20)

예수님께서 “나를 따르라”고 하시자 그 사람은 말했습니다.

주여 내가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마태복음》 8:21)

또 다른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누가복음》 9:61)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누가복음》 9:62)

이 말씀은 인정이 없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이것이 하나님의 요구입니다. 여러분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입니까? 아버지를 장사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자신의 가족에게 작별 인사를 하는 것입니까? 어떻게 작별 인사를 하겠습니까? 가족들은 여러분이 출가라도 하려는 줄 알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초를 다시 세워야 합니다.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애굽에서 나와 뒤를 돌아보면 광야에서 죽게 됩니다. 이것은 모두 생명과 죽음, 복과 화에 관계된 일입니다.

소돔에서 나와 뒤를 돌아보면 소금 기둥이 됩니다. 뒤를 돌아보는 것은 매우 큰 문제입니다. 이제 또 다른 종류의 뒤돌아봄을 이야기하겠습니다. 롯은 소돔을 나온 후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왜 아브라함에게 돌아가지 않았을까요? 아브라함의 집에는 소와 양, 먹을 것과 마실 것이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롯은 왜 돌아가지 않았을까요? 롯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삼촌, 죄송합니다. 떠날 때 삼촌에게도 하나님께도 잘못했습니다. 이제 삼촌에게 돌아왔으니 저를 품꾼 중 하나로 여겨 주십시오. 여기서 일하겠습니다.” 그러면 충분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탕자가 돌아온 것처럼 롯에게 좋은 옷을 입히고 소와 양을 잡아 대접하지 않았겠습니까? 아마 분명히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롯은 왜 돌아가지 않았을까요? 롯의 마음은 아브라함의 길을 전혀 걷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롯의 마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기초는 세상살이야. 이 모든 것이 사라졌다면 술이나 마시자! 오늘 술이 있으면 오늘 취하자.”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의 기초는 무엇입니까?

사람이 살아가는 기초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제가 전하는 말을 들을 때 깨어날 수 있겠습니까? 이 낡은 기초, 세상살이의 기초를 다시 깨뜨립시다. 그것을 깨뜨린 후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 위에 다시 세워야 합니다. 낡은 세상살이의 기초 위에 하나님의 진리를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낡은 것들을 깨뜨리고, 세상살이의 체계를 깨뜨린 후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 위에 다시 세워야 합니다. 생명을 드리고, 살아 있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야 합니다. 롯의 아내를 기억하는 것은 기초에 관한 문제입니다.

한 자매는 원래 능력이 매우 부족했습니다. 변호사인데도 마흔이 넘도록 하는 일이 대학을 갓 졸업한 사람보다 못했습니다. 능력이 매우 부족했습니다. 겉으로는 주님을 사랑하는 것처럼 보였고, 예전에는 자신이 살던 지역 교회에서 설교도 했지만, 능력이 너무 부족해 세상을 사랑할 자격조차 없을 정도였습니다. 나중에 우리가 그 자매를 만나 계속 훈련했습니다. 훈련을 받으면서도 자매는 말했습니다. “제가 언제쯤 목사님처럼 머리가 그렇게 명확해질 수 있을까요?” 저는 말했습니다. “머리가 명확해지면 무엇을 하려고요? 세상을 사랑하려고요?” 정말 큰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능력이 날마다 세워졌습니다. 얼마 전 법정에 서게 되었을 때 많은 준비를 하고 열 쪽이 넘는 서류를 작성했습니다. 자매는 마음속으로 ‘나는 반드시 목사님처럼 준비해야 해’라고 생각했습니다. 법원 서기가 자매에게 “준비를 정말 잘하셨네요. 이렇게 진지하게 준비한 분은 처음 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칭찬을 받자 자매는 너무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 그렇게 기쁜 일입니까? 그저 살아 있는 동안의 작은 일일 뿐입니다. 반대로 자매는 우리가 맡긴 사역을 한쪽에 내버려 두었습니다. 결국 목회자가 자매에게 “이렇게 하면 안 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제야 자매는 그것이 세상을 사랑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6, 7년이 지나서야 최근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자매는 예전에는 순자산이 천만 위안이 넘고, 자녀가 둘이며 좋은 아내가 있는 좋은 가정을 가진 사람을 매우 부러워했지만, 이제는 그렇게 부럽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그저 세상살이일 뿐입니다. 주 예수님께서 오실 때에는 이런 것들이 모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됩니다.

또 한 형제는 하루 종일 여자친구를 찾을 생각만 했습니다. 우리는 그 형제를 사명이 있는 길로 밀어 넣으려 했지만 너무 어려웠습니다. 사실 그 형제의 문제는 모두 세상살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고, 몸에도 병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에게 사명을 갖게 하고 문제를 해결해 주고 싶었지만 너무 어려웠습니다. 어느 날 저는 그 형제의 목회자를 한바탕 책망했습니다. 사람의 갈망에 맞추어 섬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목회자가 형제와 교제하며 배우자를 찾는 일에 대해 이야기하자, 형제는 이미 목회자에게 책망받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목회자는 오히려 그가 배우자를 찾는 일에 관심을 가져 주었습니다. 형제는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정말 그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모든 것이 세상살이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세상살이를 하면 할수록 문제가 더 많아집니다! 어떤 사람은 세상살이를 아주 잘하고, 어떤 사람은 잘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잘 살든 못 살든 그런 것은 사람이 살아가는 기초가 아닙니다. 우리가 허물어야 할 것은 너무나 많습니다. 예전에 우리 가운데서 그 형제에게 사명이 있어야 한다고 많이 말했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나는 배우자를 찾아야 해’라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제가 “사명이 있어야 합니다, 사명이 있어야 합니다”라고 말하면 그는 “배우자를 찾아야 합니다, 배우자를 찾아야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이런데 어떻게 문제가 해결되겠습니까! 기초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여전히 롯의 기초입니다. 이런 것들을 철저히 깨뜨리기 시작해야 합니다. 이런 것들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아무 소용도 없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기초를 다시 세워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가족을 주님께 인도하는 목적이 좋은 날을 보내기 위해서이기 때문입니다. 가족을 주님께 인도하고 복을 받게 하려는 것도 좋은 날을 보내기 위해서입니다. 가족과 함께 기도하는 것도 좋은 날을 보내기 위해서입니다. 여전히 세상살이이고, 여전히 롯의 아내입니다. 여러분의 기초가 무엇인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입으로는 모든 것이 헛되다고 말하지만, 돈이 사라지면 여러분은 어떻게 반응합니까? 직장을 잃으면 어떻게 반응합니까? 아직 애굽에 팔려가 노예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우리 안의 기초가 무엇인지는 우리의 반응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입으로는 모든 것이 헛되다고 말하면서 머릿속에는 여전히 세상살이에 관한 것들이 가득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을 알아 가는 만큼 조금씩 변화되는 일입니다. 그러나 제가 전한 말이 여러분에게 조금이라도 충격을 주었습니까?

얼마 전 정저우에서 한 사업가가 숯을 피워 자살했습니다. 왜 자살했습니까? 가게를 열자마자 전염병을 만났고, 전염병이 끝나기도 전에 정저우에 큰 홍수가 났습니다. 물에 잠겼습니다. 과거에 벌었던 돈이 모두 물거품이 되자 숯을 피워 자살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그것이 그 사람이 살아가는 목적이자 소망이었고, 생존을 의지하던 모든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몇 년 전에도 저는 한 젊은이를 섬긴 적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사기를 당해 50만 위안을 잃고 건물에서 뛰어내리려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당신의 가치가 50만 위안밖에 안 됩니까? 너무 싼 것 아닙니까! 좀 더 비싸게 하십시오! 누군가 당신을 3천만 위안에 속일 때까지 기다려도 됩니다.” 굴원은 왜 강물에 뛰어들어 자살했습니까? 직장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초 회왕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자 직장을 잃었고, 강물에 뛰어들어 자살했습니다. 물론 여러분은 그에게 더 위대한 목표가 있었다고 미화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기초는 살아가는 것, 곧 이런 세월과 여러분의 직장, 사업, 가정과 같은 것들입니다. 문제는 이것이 살아 있음의 기초인가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정말로 ‘헛되고 헛되다’고 인정한다면 다시 생각하고, 기초를 다시 세우며, 우리 안에 있는 사명을 다시 회복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고 이 길을 굳게 정하며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말아야 합니다.

나중에 제가 ‘더더’라는 별명을 지어 준 사람이 있습니다. 본래 이름은 베드로였습니다. 이 베드로는 매우 흥미로운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할 때부터 사람의 생각을 중요하게 여겼고, 나중에도 계속 변하지 않고 사람의 생각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베드로가 한 말들을 조심해서 보아야 합니다. 베드로는 롯을 의인이라고 인정했습니다. 그런데 롯이 의인이었습니까?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그런 기록을 찾을 수 없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도 롯을 의인이라고 말하지 않았고, 예수님도 롯을 의인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베드로만 롯을 의인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가 어떻게 의인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베드로와 롯 안에 있는 기초입니다.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부르신 첫 번째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방인들과 함께 있다가 야고보에게서 온 바리새인 그리스도인들을 보자 위선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위선적으로 변했습니까? 그의 안에는 이상한 것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베드로는 아내가 자신보다 연약하지만 함께 생명의 은혜를 상속받는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무슨 뜻인지 저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베드로가 아내와 함께 연약해진다는 뜻입니까? 아내는 오히려 남편이 좀 더 강해지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형제들은 알아야 합니다. 만약 아내가 매우 연약하다고 해서 여러분도 함께 연약해지고, 가정의 영적 기준을 아내의 기준 안에 세운다면, 특히 롯의 아내와 같은 사람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어떻게 강해질 수 있겠습니까? 사실 사람의 가정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가정, 하나님의 교회가 핵심입니다. 나중에 베드로는 아내를 데리고 이곳저곳을 다니며 섬겼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가 말한 많은 것들에는 영적인 부분도 있고 세상살이에 관한 부분도 있었습니다. 세상살이에 관한 부분은 기초가 아닙니다! 베드로와 롯, 이 두 사람은 사실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부르신 뜻을 모두 잃어버렸습니다. 롯이 사명을 잃었습니까? 잃었습니다. 결국 아브라함이 그를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같은 길을 가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부르셨지만, 그 일은 사도 바울의 사역이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베드로를 그다지 높이 평가하지 않았고, 갈라디아서에서 그의 본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것이 사명을 잃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둘 다 아내가 있었고, 그 아내가 롯의 아내처럼 세상살이를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초를 다시 세워야 합니다. 본받으려면 예수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것을 굳게 붙들고 놓지 말아야 합니다. 본받으려면 사도 바울을 본받아야 합니다. 제가 왜 이렇게 말합니까? 사실 베드로는 좋은 교회를 세운 적이 없습니다. 만약 있다면 여러분이 제게 알려 주십시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승리하는 교회를 하나씩 세웠고, 교회를 세우는 가르침을 오늘 우리가 읽는 신약성경에 기록했습니다.

이치는 아주 간단하지 않습니까? 사람이 무엇을 말했는지가 아니라, 그 사람이 무엇을 행했는지가 중요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기초를 다시 세워야 합니다. 누구를 본받아야 하는지 알고, 어떤 기초를 세워야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 기초는 바로 우리의 사명,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선생님, 또 그 말씀을 하시네요. 저는 이미 다 알고 있습니다.” 아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실제로 행하는 모습을 하나 보여 주십시오. 정말 알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기초는 도대체 무엇 위에 세워져 있습니까? 여러분은 실제로 무엇을 했습니까? 여러분은 롯의 아내입니까, 아니면 사도 바울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사람입니까? 이것은 깊이 생각해 볼 만한 문제입니다.

결론

우리는 롯의 아내가 사고팔고, 심고 건축하고, 시집가고 장가가던 날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은 죄가 아니지만 생명의 길은 아닙니다. 그녀는 죄를 지은 사람도 아니고 나쁜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매우 훌륭하게 세상살이를 하던 사람이었지만 생명의 길을 걷지는 않았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를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해야 합니다. 제 충고를 한마디만 들으십시오. 기억하십시오! 제가 여러분에게 한 말을 기억하십시오. 어떤 사람도, 어떤 일도 우리가 사명이 있는 이 길을 달려가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아무것도 우리를 막을 수 없습니다. 세상살이의 체계를 철저히 허물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계시면 세상살이는 여전히 이어집니다. 그러나 세상살이는 결코 우리가 살아가는 기초가 아닙니다. 그것은 생명의 길이 아니라 뒤를 돌아보아 멸망하는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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