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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빌립보서 요약

2025-10-01 2,220 腓立比书

여러분, 안녕하세요. 우리가 함께 배운 빌립보서를 정리하며 요약해 보고자 합니다. 만약 저에게 주제를 하나 정하라고 한다면 “평생 누리는 기쁨”이라고 하겠습니다.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부딪치고, 딸과 엄마가 부딪치고, 부부 사이도 부딪칩니다. 그렇게 계속 부딪치다 보면, 아이고 세상에, 오늘은 이것 때문에 속상해하고 내일은 저것 때문에 화를 내며 속을 썩이다가, 위장이 뒤틀려 아프다고 비명을 지르고 얼굴까지 일그러집니다. 우리 인생에서 주님을 믿는 가장 큰 유익은 바로 ‘기쁨’입니다. 주님을 믿는 가장 큰 유익은 돈이 아닙니다. 일하는 것도 아닙니다. 주님을 믿는 가장 큰 유익은 기쁨이며, 평생토록 누리는 기쁨입니다.

빌립보서를 자세히 다 읽고 나서 ‘기쁨’이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1장에도 기쁨이 있고, 2장에도 기쁨이 있고, 3장에도 기쁨이 있고, 4장에도 기쁨이 있으며, 그것도 한두 군데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믿는다는 것은 곧 기쁨을 믿고 얻는 것입니다.

쓸데없이 일을 만들어 내며 기뻐하지 않을 핑계를 찾을 수도 있겠지만, 기쁨에는 본래 이유가 필요 없습니다. 만약 이유가 있어야만 기뻐할 수 있다면 그것은 큰일입니다. 그러므로 빌립보서는 기쁨의 신학을 말씀하고 있으며, 이것은 인생의 커다란 보상입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께 권면하고 싶습니다. 고생하지 않도록 이런 일들을 하나하나 명확하게 정리할 수는 없겠습니까? 오늘은 이 사람과 부딪치고, 내일은 저 사람과 부딪치며, 오늘은 이것 때문에 속상해하고, 내일은 저것 때문에 화를 내면 무슨 유익과 보상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사도 바울을 본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으십시오. 기쁨의 지혜를 얻으십시오.

주님을 믿는 것은 곧 기쁘게 믿는 것입니다

주님을 믿는 것은 곧 기쁘게 믿는 것인데, 사실 제가 방금 말씀드린 것이 바로 첫 번째 요점입니다. 주님을 믿으면서 기쁘지 않다면 완전히 잘못된 것이고 빗나간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기쁨이야말로 가장 큰 보상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기뻐할 수 있겠습니까? 하는 일마다 제대로 되지 않는 사람이 과연 기쁠 수 있겠습니까? 트집 잡고 불평하는 재주는 대단하지만, 정작 무슨 일을 하든 제대로 해내지 못합니다. 일만 시작하면 빗나가고, 빗나가지 않으면 꾸물거리며 질질 끕니다. 그런 사람이 평생 기쁠 수 있겠습니까? 저는 매우 어렵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기뻐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혜가 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기에 주님을 기쁘게 믿어야 한다는 점에는 여러분 모두 이견이 없을 것입니다. 속을 썩이고 화를 내다 보면 병이 생깁니다. 위가 망가지든, 장이 망가지든, 숨이 차든, 대변이나 소변을 제대로 못 보든, 눈이 잘 안 보이든, 몸의 어느 부속 하나라도 망가지면 큰 고생을 하게 됩니다. 기쁨은 온 몸을 치료하는 양약입니다!

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 (빌립보서 1:25)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빌립보서 2:2)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빌립보서 2:17)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빌립보서 2:18)

그러므로 내가 더욱 힘써 그를 보낸 것은 너희로 그를 다시 보고 기뻐하게 하며 내 근심도 덜려 함이니라 (빌립보서 2:28)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빌립보서 3:1)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빌립보서 4:1)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빌립보서 4:4)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빌립보서 4:10)

기쁨에는 지혜와 지식이 필요합니다

지식과 지혜가 없으면 기뻐하기가 참 어렵다는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사례를 들자면 정말 많습니다. 말 한마디 때문에 버럭 화를 내는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어떤 사람은 아들과 며느리에게 화를 내며 말합니다. “내가 아침 5시 넘어서 일어나 아이를 봐야 한다니까요.”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당신이 5시에 일어나도 아이는 여전히 자고 있을 텐데요.’ 그분은 또 말합니다. “아이고, 내가 하루 종일 얼마나 바쁜지 몰라요. 집안 빨래를 다 내가 한다니까요.” 제가 물었습니다. “세탁기가 빨래를 합니까, 당신이 합니까?” 아이고 세상에, 여러분을 한번 보십시오. 제가 말씀드리지만, 사람이 왜 이러는지 아십니까? 미련해서 그렇습니다. 그 사람의 말이 일리가 있습니까? 억지 논리일 뿐입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무엇입니까? 마음에 기쁨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불행하고 기쁘지 않은 데는 수천수만 가지 핑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기뻐하는 데는 아무런 이유를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 이 말을 꼭 기억하십시오. 사람이 주님을 올바르게 믿으면 기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지식이 없으면 마치 수다스럽고 옹졸한 사람처럼 온종일 트집이나 잡게 됩니다. 하찮고 쓸데없는 생각들로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런 걸 두고 ‘머리에 엉뚱한 것만 가득 찼다’고 하지 않습니까? 문제는 지식과 지혜가 없어서 일을 겪을 때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른다는 데 있습니다.

사람에게 지식과 지혜가 없어서 일을 만났을 때 처리할 줄 모르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아십니까? 화를 내고 성질을 부립니다. 제 말이 본인 이야기처럼 찔리는 분들이 6070%, 7080%, 80~90%는 될 것입니다. 사실 화를 내고, 분노하고, 욕을 하면서 자기가 꽤 옳다고 생각하지만, 큰일입니다! 그로 인해 스스로 기쁨을 다 날려버렸기 때문입니다.

일을 하는 데도 지식과 지혜가 필요하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데도 지식과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 지식과 지혜는 어디서 옵니까?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지식과 지혜만이 사람을 기쁘게 할 수 있음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보배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보배를 얻고도 알지 못한다면 어떻게 기뻐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을 보배로 여기지 않으니, 그저 자기 논리만이 옳다고 여깁니다. 무슨 일을 하든 답답하고 꾸물거리며 괴로워합니다. 왜 그럴까요? 지식과 지혜가 없기 때문입니다. 일을 제대로 못 하니 재정에도 문제가 생깁니다. 재정에 문제가 생기면 돈을 사랑하게 되고, 돈을 사랑하지만 돈을 얻지 못하니 늘 그 얽매임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말씀드리건대, 주님을 믿으면서 재정의 복을 받지 못하고 건강의 복을 받지 못한다면 큰일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입술과 눈 때문입니다. 그나마 선악을 분별하는 데 냄새까지 맡지 않는 게 다행입니다. 냄새로도 선악을 분별했다면 코까지 죄를 지었을 것입니다. 그 입과 눈으로 오직 안 좋은 것만 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전혀 하지 않고 귀신의 소리만 늘어놓습니다. 주님을 믿는 교회 안에서도 그렇습니다. 주님을 잘 믿는다는 것은 나 때문에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차원을 넘어, 우리가 주님을 믿음으로써 우리 자신이 기쁨으로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지 못하고 교회 안에서조차 서로 다투고 싸웁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우리 교회에서는 저와 말싸움해서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없기에 다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왜 저를 이기지 못하는지 아십니까? 여러분은 정답을 맞히기 어려울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의 머리채를 잡거나 멱살을 잡는 힘이 세서가 아닙니다. 제가 힘이 세서가 아니라, 저는 여러분의 유익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유익을 구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저와 부딪치고 나면 분명 이렇게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아니,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저 사람은 내 유익을 구하고, 내가 행복하고 기쁘기를 바라는데, 내가 왜 저 사람과 기 싸움을 하고 떼를 쓰고 있지?’ 이것이 바로 도(道)가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왜 이렇게 할 수 있을까요? 예수 그리스도를 배우고 사도 바울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내 유익을 구하지 않고 당신의 유익을 구하는데, 제게 무슨 불평을 하겠습니까? 얼굴을 찌푸리고 삐쳐 있던 사람도 표정을 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썩어짐과 패망을 극히 조심해야 합니다. 지혜와 지식이 있는 사람은 쉽게 망가지지 않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제게 하나의 논리가 있는데, 한동안 이야기하지 않았더니 다들 생소하실 것입니다. 무슨 논리인지 아십니까? 일명 ‘개똥 이론’입니다. 누가 저에게 “너는 개 같다”고 하면 저는 “아이고, 과찬이십니다. 저는 기껏해야 개똥에 불과합니다”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을 만나면 상대방이 어떻게 하겠습니까? 만약 누군가 저와 부딪치며 “네 꼴 좀 봐라, 꼴불견이다”라고 하면, 저는 “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그냥 개똥일 뿐입니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정말 제 마음속에서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렇게 나오면, 아이고 세상에, 상대방이 더 이상 힘을 쓸 수가 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당신 말이 다 맞습니까? 다들 이해하셨습니까?”라고 묻습니다. 저 역시 제 말이 다 맞는지 돌아보곤 합니다. 하지만 저는 어떻습니까? 따지지 않습니다. 밥 한 그릇 더 먹겠다고, 자존심 한번 세우겠다고 아귀다툼하지 않습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는 늘 즐겁습니다. 지혜도 없고 지식도 없어서 온종일 사소한 일로 화를 내는 사람들을 보면, 아이고 세상에, 제 마음이 그들을 위해 참 안타깝습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배울 수는 없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 깊이 새길 수는 없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제발 위장이 아프고, 배가 아프고, 장에 문제가 생기고, 엉덩이에 문제가 생기고, 머리에 문제가 생기고, 심장에 문제가 생길 때까지 기다리지 마십시오. 처음에 귀신을 불러들이고 귀신을 포룩포룩 살찌워 놓았으니 어쩌겠습니까? 온몸에 병을 달고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여기저기 결석이 생기면 어디에 생기든 큰 고생이고, 여기저기 혹이 생기면 어디에 생기든 호된 곤욕을 치르게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치통이 큰 병은 아니라 해도 아프기 시작하면 사람 목숨을 쥐고 흔듭니다. 여러분께 말씀드리지만, 사람은 절대로 그런 지경까지 자신을 몰고 가서는 안 됩니다. 우리 가운데 어떤 분들은 머릿속에 쓰레기만 가득 차 있습니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다리도 못 쓰고, 발도 못 쓰고, 골반도 안 좋고, 허리도 안 좋고, 어깨도 안 좋고, 목도 안 좋습니다.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머리, 곧 생각이 잘못된 것입니다. 생각이 올바르다면 자신을 어찌 그런 꼴로 만들었겠습니까?

그러므로 살아가는 데는 기쁨이 필요합니다. 내가 모든 일에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무슨 비결을 얻었습니까? 있든 없든 그것이 내게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비결입니다. 부하든 가난하든, 비천하든 존귀하든, 이러하든 저러하든 저는 모든 비결을 배웠습니다. 주 예수 안에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누군가에게 거슬릴지 모르겠지만, 저는 정말 그렇습니다. 저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압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개똥이 되면 어떻습니까? 아주 존귀한 개똥이 되면 됩니다. 꽃이 소똥에 꽂히는 게 아니라 개똥에 꽂히는 셈입니다.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저 같은 사람이 노후를 걱정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제게 노후 대책이 필요하겠습니까?

한 자매님이 저와 노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 자매는 작가 충야오(瓊瑤)처럼 여든이 넘어서 잠자듯 세상을 떠나는 것이 참 좋겠다고 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우리가 그런 것을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까? 필요 없습니다. 나는 그저 내 하나님을 온 맘 다해 사랑할 뿐이며, 내 하나님께서는 평생 내게 부족함이 없게 하실 것이고, 나는 평생 어떤 상황에도 처할 수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일체의 비결을 얻었기에 그런 것은 염려하지 않습니다.” 제가 고민하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솔직한 심정으로 말씀드리면, 내 평생 한 사람이라도 더 축복하고, 두 사람이라도 더 축복하며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것뿐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하나님께서 반드시 제게 능력을 더해 주실 것입니다. 또한 제 하나님께서 제 생명을 영원토록 주관하심을 압니다. 마지막 날에 저는 반드시 하나님 앞에 서서 그분의 상급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저를 위해 증언해 주실 줄 믿으며, 평생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저의 사명으로 삼고,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므로 주 예수 안에서 저는 우리 성도들과 소그룹 목회자들, 그리고 가장 연약하고 비천한 형제자매들까지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맺는 열매가 더욱더 풍성해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점점 성장해 가기를 바랍니다. 제 마음 깊은 곳의 바람은 모든 성도가 지혜와 총명을 얻는 것입니다. 지혜와 총명을 얻으면 남들이 열 시간 걸려 할 일을 한 시간에 끝낼 수 있으니 얼마나 경쟁력이 있습니까? 남들이 한 시간에 할 일을 열 시간 동안 붙잡고 있다면 얼마나 분주하고 고달프겠습니까? 멘붕이 오면서도 자기가 잘하고 있다고 착각합니다. 얼마나 미련합니까? 정말 미련한 일입니다.

여러분, 아십니까? 저는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한 것이, 일하는 것으로 치자면 저보다 더 잘 해내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육체노동을 하더라도 저는 남들에게 뒤지지 않는데, 요령과 지혜를 쓰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저는 여러분이 지식과 지혜 안에서 힘써 성장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방송 진행을 하더라도 훌륭한 진행자가 되고, 회계 일을 하더라도 탁월한 회계사가 되십시오.

우리가 회계 소그룹 커뮤니티를 만들지 않았습니까? 역량이 부족한 회계 담당자들에게 온갖 도움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많은 사람에게 지혜와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시험을 어떻게 치러야 하는지, 공인회계사 시험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저를 진작 알았더라면 벌써 합격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믿지 않고 교만하여 자기가 아주 잘하고 있다고 착각합니다. 그러니 결과를 내느라 끙끙대며 힘들어하는데 어떻게 잘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기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정말 온 힘을 다해 여러분이 유익을 얻기를 바랍니다. 가장 중요한 유익은 지혜를 얻는 것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지식을 얻는 것이며, 가장 중요한 것은 지혜와 지식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아직도 쓸데없이 문제를 일으키고, 아주 사소하고 하찮은 일에 얽매여 스스로 기쁨을 잃어버리는 분이 있다면 돌이키십시오.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여러분께 권면합니다. 기뻐하는 법을 배우십시오. 지혜를 배우고 지식을 배우십시오. 많은 사람이 일하는 면에서 저를 따라오지 못합니다. 저는 혼자서 열 사람 몫을 해내지만, 그들은 열 명이 모여도 한 사람 몫을 못 해냅니다. 그러므로 지혜와 지식이 필요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지식과 지혜는 어디서 옵니까?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제가 드리는 이 말씀은 참으로 진심에서 우러나온 고백입니다. 제가 아는 어떤 목사님들은 사역을 하다가 우울증에 걸리기도 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어떻게 주님을 저렇게 믿을까’ 싶습니다. 여러분은 우울증에 걸리게 만드는 교회에 가고 싶습니까? “저도 정말 고치려고 노력 중입니다”라고 말하지만, 제 말을 귀담아듣는 사람은 참으로 적습니다.

여러분에게 조금이라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다면 즉시 회개하십시오. 발이 상하고, 다리가 상하고, 골반이 상하고, 배가 상하고, 위가 상하고, 가슴이 상하고, 머리가 상하고, 목이 상할 때까지 기다리지 마십시오. 그때 가서 고통으로 얼굴을 찡그리며 “목사님, 기도해 주세요”라고 하지 마십시오. 진작에 어떻게 하셨습니까? 심은 대로 거두는 법입니다. 그것을 모르십니까?

자신이 심은 것은 자신이 거두어야 합니다.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라고 하겠지만, 제가 하는 말을 진작에 귀담아들었다면 이런 재앙들을 미리 피하지 않았겠습니까? 왜 굳이 하나님께 죄를 짓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과 한마음이 되고, 주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2장에서 나눈 말씀의 제목이 “너희 안에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입니다. 가인의 마음을 품으면 가인의 운명에 처해집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주님과 한마음이 되면 어떻습니까? 기뻐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어렵습니다. 그 누구도 여러분 내면의 기쁨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기쁨에는 주님과의 연합이 필요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에게 말씀의 도(道)가 없으면 기뻐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진리가 없고 늘 극도로 이기적인 사람이 과연 기쁠 수 있겠습니까? 개혁개방이 기쁨을 앗아가 버렸습니다. 왜냐하면 모두가 돈에 눈이 멀었기 때문입니다. 북한 사람들을 보면 얼마나 기뻐 보입니까? 제가 어릴 적 문화대혁명 시절에는 잘 몰랐지만, 어쨌든 몹시 가난했습니다. 돌이켜보면 꽤 즐거웠던 것 같은데, 둘 중 무엇을 택하시겠습니까?

우리는 기쁘게 살아야 할 뿐 아니라 풍요롭게도 살아야 합니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님과 연합하여 산다면 어떻게 가난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님과 하나가 되었는데 어떻게 기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풍요로우면서도 기쁜 삶, 얼마나 좋습니까! 많은 사람에게 축복이 될 수 있으니 참으로 좋습니다. 신학적 근거가 있느냐고 묻고 싶으십니까? 왜 없겠습니까?

아브라함이 얼마나 기뻐했습니까? 돈이 없었습니까? 부유했습니다! 그는 당대의 족장이었습니다. 집안에 딸린 종만 수천 명이었으니 대략 2천 명 규모의 기업을 운영한 셈입니다. 4천 년 전 그 시대에 2천 명이면 엄청난 규모였습니다. 당시 황제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모르던 시절입니다. 이삭, 야곱, 요셉, 다니엘 모두 얼마나 훌륭했습니까?

그러므로 주님과 연합하는 데 손해 볼 일이 있겠습니까? 주님과 연합하면 결코 손해 보지 않습니다. 하늘의 보화가 다 여러분의 것인데 어떻게 손해를 보겠습니까? 주님과 연합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이 여러분 안에 역사하는데, 손해를 보겠습니까? 결코 손해 볼 수 없습니다.

물론 제가 온전히 다 이루었다고 생각하지는 마십시오. 저 역시 푯대를 향해 힘써 달려가고 있으며, 지금까지도 그리스도를 본받기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2장에서 말씀하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는 것이며, 같은 마음을 품고, 같은 생각을 하며, 동일한 겸손으로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종의 형체를 가지시고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심으로 만물을 발아래 두신 그 마음입니다. 이 논리는 보통 사람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지혜가 없는데 어떻게 받아들이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어야 합니다. 만약 패망을 이루려 한다면 배울 필요도 없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자기 자신과 연합하면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자기 자신과 딱 붙어서 자기 뜻만 끔찍이 위하고, 자기 뜻대로 살아가면 됩니다. 자기 뜻대로 사는 게 얼마나 편합니까? 배울 필요도 없이 ‘나는 나답게 살겠다’며 그렇게 살아가면 됩니다.

그러나 자기를 내려놓지 않으면 기쁨을 누리며 살기 어렵습니다. 배달 음식을 시켜 먹고 또 시켜 먹으며, 돈이 없으면 소액 대출이나 할부 결제를 긁어댑니다. 돈을 쓸 때는 참 즐겁지만, 갚아야 할 때는 얼마나 고통스럽습니까? 배달 음식을 먹을 때는 편하고 좋지만, 살이 찌고 나면 여전히 편안하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우리 인생의 온전한 승리의 본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개들을 삼가고, 사람을 미혹하여 넘어뜨리는 자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그럴듯하게 말하지만 실상은 사람을 망쳐놓습니다. 귀신의 말이 가장 달콤하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귀신의 소리가 가장 듣기 좋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멀쩡한 다리를 속여 절름발이로 만들고는 목발을 팔아넘깁니다. 돈을 벌기 위해 당신을 다리병신으로 만들고 목발을 판 것입니다. 그러고는 나중에 휠체어까지 또 팔아먹습니다. 아이고 세상에, 돈을 버는 이 세상의 이치가 이렇습니다. 그러나 주님과 연합하면 속아 넘어갈 일이 있겠습니까? 속지 않게 됩니다.

기쁨을 위해서는 힘써 추구해야 합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참 흥미로운 점을 발견합니다. 며칠 전 SNS를 보는데 어떤 분이 영상을 하나 공유했습니다. 그 영상에는 한 중년 여성이 얼굴이 벌게지도록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눈빛은 마치 초상집에 있는 사람 같았습니다. 부르면 부를수록 점점 더 구슬프고 처량해졌습니다. 그 영상을 올린 사람도 분명 공감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마실 술은 있지만 기쁨은 없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온종일 먹고 마시고 노는 데만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SNS를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늘 먹고 마시고 즐기는 친구들이 그런 눈물 짜내는 노래를 부를 때면 묘하게 감정에 젖어 듭니다. 마음속에 온갖 우울함과 정체 모를 이상한 감정이 가득 차오릅니다. 참으로 비참합니다. 그러면서도 깊이 공감합니다. 어째서 먹고 마시며 즐기는데 이런 비참한 지경에 이르게 될까요?

자세히 들여다보십시오. 어떤 사람이 진정으로 즐겁습니까? 여러분, 어떤 사람이 행복한지 발견하셨습니까? 일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기쁩니다. 곰곰이 잘 생각해 보십시오. 일하기 싫어하는데 억지로 일해야 한다면 그것은 고통 위에 고통을 더하는 것입니다. 일하기 싫어하면서 그저 먹고 마시고 놀기만 좋아하고 또 그렇게 지낸다면, 거기에는 진정한 기쁨이 없습니다. 그러나 일하기를 좋아하고 또 할 일이 있는 사람은, 아이고, 정말 기쁩니다! 진심으로 말씀드리니 깊이 묵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실 때 수고하는 가운데 기쁨을 누리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입니다. 당신이 잘나서 얻은 것이 아니라, 전생의 복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주신 특별한 은혜입니다. 일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기쁘고, 일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건강합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게으른 사람에게 병이 많습니다.

먹고 마시며 놀기만 하던 사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심장 스텐트 시술을 받게 되고, 또 다른 곳에 관을 넣어야 할지 모릅니다. 얼마나 고통스럽습니까? 머리에 구멍을 뚫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온몸 머리부터 발끝까지 여기저기 구멍을 뚫어야 한다면 어쩌겠습니까? 질병은 정말 먹는 데서 생깁니다. 제가 왜 이렇게 건강하겠습니까? 저는 일하기를 좋아하고, 이 기쁨의 이치를 깊이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 기쁨의 비결은 푯대를 향해 힘써 추구하는 데 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지능이 가장 높았을 때가 대학 입시를 준비할 때 아니었습니까? 말하다 보니 웃음이 나옵니다만, 그 뒤로는 점점 지적 수준이 떨어졌을 것입니다. 그때 입시를 치르며 전심전력으로 달려갈 때 얼마나 알차고 충만했는지 떠올려 보십시오. 우울해할 틈도 없었고 아플 시간도 없었습니다. 참으로 충만한 삶이었습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수고하는 중에 누리는 기쁨을 가지십시오. 왜 그렇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최고의 보배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혜와 지식을 얻기 위해 힘써 달려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지극히 귀한 보배이실 뿐만 아니라 목수이셨습니다. 중국에는 유명한 목수가 몇 있는데 1등은 노반(魯班), 2등은 제갈량입니다. 다들 아십니까? 다들 유명한 기술자이자 지혜자였습니다. 그리고 3등이 외국의 예수님이라고 중국인들이 순위를 매겼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힘써 추구하십시오. 무엇을 하든 단순히 무작정 시간만 쏟아붓는 것이 아니라, 지혜를 쏟아부어야 합니다. 어떤 이들은 무작정 시간만 때려붓다가 스스로 지쳐 무너집니다. 아십니까? 무작정 시간만 들이붓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명심하십시오. 시간만 때우는 것은 미련한 방식입니다.

며칠 전 한 형제가 제가 설계한 방안을 두고 매일 고민하더니 제게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목사님, 사실 이렇게 저렇게 바꾸면 업무량을 약 20배는 줄일 수 있습니다.” 20배라니, 정말 훌륭한 방안 아닙니까! 그 형제가 제 방안을 보기 좋게 물리쳤고, 저는 그의 방안을 적극 채택했습니다. 참으로 좋습니다. 그것이 바로 지혜이고 총명입니다.

남들이 10시간 걸려 할 일을 여러분이 1시간 만에 끝낸다면, 남들이 1년 걸릴 일을 한 달 만에 해낸다면, 남들이 20분 걸릴 일을 20~30초 만에 끝낸다면, 어찌 지치겠습니까? 사람이 어떻게 이런 역량을 발휘할 수 있습니까? 푯대를 향해 힘써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힘써 추구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이 지혜와 총명을 가진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이것을 깊이 연구하고 궁리한다고 합니다. 예컨대 저는 화장실 변기에 앉아서 볼일을 볼 때도 머리의 CPU를 풀가동합니다.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연구하고 그림을 그립니다. 운전할 때도 마찬가지로 생각하고 연구합니다. 그렇게 생각이 정리되면 펜을 들어 쓱쓱 도면을 그리거나 글을 써 내려갑니다. 바로 나옵니다. 왜 그럴까요? 힘써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아, 내가 무슨 문제를 풀려고 했더라?” 하지 않습니다. 제가 풀어낸 문제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힘써 추구하기에 저는 매 1분의 시간을 쥐어짜듯 알차게 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지혜를 끊임없이 다듬고 발전시켜 나갑니다. 저는 가끔 깊은 탄식이 나옵니다. 왜 탄식할까요? 사람들이 무작정 시간만 쏟아부으면서도 자신이 잘못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지혜가 없고 미련해서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지혜의 근원이시며 우리의 가장 귀한 보배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능력의 근원이십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주님을 의지하며 나아간다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여러분과 함께하시고 여러분의 지각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명심하십시오.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쓰시기 어렵습니다. 자기 생각에 갇힌 사람은 하나님께서 지각을 열어주기 힘듭니다. 늘 자기가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바쁘게 일하면서도 자기가 틀렸다고는 인정하지 않고 시간만 없다고 핑계를 댑니다. 그 시간들이 다 어디로 갔습니까? 낭비해 버린 것 아닙니까. 알아들으셨습니까?

기쁨을 위해서는 힘써 추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게으른 자들이 많고, 게으른 자에게는 병이 많습니다. 부지런함이 질병을 고치는 근본 치료제임을 많은 이들이 알지 못합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부지런한 자를 결코 저버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억지로 고생하며 일하지 말고, 기쁘고 즐겁게 일하십시오. 기쁜 마음으로 일하십시오.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고, 또 하나의 문제를 풀어내십시오. 문제를 해결하고 나서 스스로 내놓은 해결책을 보며 뿌듯함을 느껴본 적이 있습니까? 산해진미를 먹는 것보다 훨씬 기분이 좋고, 배움의 기쁨이 있습니다.

왜 힘써 추구해야 할까요? 우리는 스스로 기뻐할 줄 모르기 때문에 기뻐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기쁨을 배울 때 고작 1의 힘만 쓰면 되겠습니까? 저는 12의 온 힘을 쏟아도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1의 힘만 쓰거나 아예 힘을 쓰지 않고 온종일 누워만 있다면, 일어나서 맞이할 것은 고통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푯대를 향해 힘써 달려가십시오. 사도 바울은 전심전력으로 달려간 사람이었습니다. 중국 고사에 “봄누에는 죽어서야 실 뽑기를 멈추고, 촛불은 재가 되어서야 눈물이 마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비신자가 한 말이지만, 그리스도인은 마땅히 이를 뛰어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람들은 너무 게으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귀한 보배로 여기고, 결코 그분을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평생의 모든 힘을 다해 주님을 쫓아가십시오. 평생의 온 힘을 다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실천하십시오. 사도 바울이 바로 그렇게 행했습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빌립보서 3:12-15)

기쁘고 즐겁게 일하고, 일하는 가운데 바르게 성장하십시오. 그러면 할 수 있는 일들이 점점 더 많아질 것입니다.

기쁨에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기쁨에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며, 지혜와 지식을 얻어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깨닫는다면, 장담하건대 여러분은 반드시 믿음의 사람이 될 것이며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에게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 말씀의 의미를 풀어드리자면, ‘그 어떤 것도 내 안의 기쁨을 빼앗을 수 없으며,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니 무엇을 염려하겠는가’라는 뜻입니다. 믿음의 사람이 되십시오.

여러분이 믿음의 사람이 된다면, 믿음이 있을 때마다 미래를 창조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믿음이 있을 때마다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믿음이 있을 때마다 능력이 나타납니다. 믿음이 있을 때마다 소망이 넘쳐나며, 그 믿음을 통해 일을 성취하게 됩니다. 일을 훌륭히 이루어 내는데 어찌 기쁘지 않겠습니까? 사람에게 부족한 것은 바로 능력입니다.

저는 사도 바울의 빌립보서를 간략히 요약하여 몇 가지 핵심을 여러분과 나누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사도 바울을 본받으십시오. 덧붙여 한마디 더 드리자면, 여러분은 저를 본받기를 원하십니까? 저를 소화하는 것만으로도 한동안 벅찰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진정으로 사도 바울을 본받는다면 저는 여러분과 함께 기뻐할 것입니다.

만약 바울이 너무 멀게 느껴진다면, 저는 사도 바울을 본받는 사람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사람입니다. 비록 온전하지는 못하나 제게는 힘써 추구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바르게 성장시켜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일을 성취하는 사람이 되고, 믿음의 사람이 되어 하나님께서 하늘로부터 부어주시는 능력을 공급받고, 위로부터 오는 지혜를 힘입으며, 하나님께서 하늘에 예비해 두신 지식을 풍성히 공급받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기쁨을 충만히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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