命定神学
推荐评论
命定神学 关闭
【성경공부】 사도행전 13장 - 하나님께서 바울을 이방인의 빛으로 삼으셨다

2023-08-16 33,882 使徒行传 使徒行传第十三章 使徒行传13章 成为外邦人的光 突破传统观念 系统地认识神 破除道德捆绑

相关经文

使徒行传13章-巴拿巴和扫罗奉差遣
  • 1 在安提阿的教会中,有几位先知和教师,就是巴拿巴和称呼尼结的西面、古利奈人路求,与分封之王希律同养的马念,并扫罗。
  • 2 他们侍奉主、禁食的时候,圣灵说:“要为我分派巴拿巴和扫罗,去做我召他们所做的工。”
  • 3 于是禁食祷告,按手在他们头上,就打发他们去了。
  • 4 他们既被圣灵差遣,就下到西流基,从那里坐船往塞浦路斯去。
  • 5 到了撒拉米,就在犹太人各会堂里传讲 神的道,也有约翰作他们的帮手。
  • 6 经过全岛,直到帕弗,在那里遇见一个有法术、假充先知的犹太人,名叫巴·耶稣。
  • 7 这人常和方伯士求·保罗同在。士求·保罗是个通达人,他请了巴拿巴和扫罗来,要听 神的道。
  • 8 只是那行法术的以吕马(这名翻出来就是行法术的意思)敌挡使徒,要叫方伯不信真道。
  • 9 扫罗又名保罗,被圣灵充满,定睛看他,
  • 10 说:“你这充满各样诡诈奸恶,魔鬼的儿子,众善的仇敌,你混乱主的正道还不止住吗?
  • 11 现在主的手加在你身上,你要瞎眼,暂且不见日光。”他的眼睛立刻昏蒙黑暗,四下里求人拉着手领他。
  • 12 方伯看见所做的事,很希奇主的道,就信了。
  • 13 保罗和他的同人从帕弗开船,来到旁非利亚的别加,约翰就离开他们,回耶路撒冷去。
  • 14 他们离了别加往前行,来到彼西底的安提阿,在安息日进会堂坐下。
  • 15 读完了律法和先知的书,管会堂的叫人过去,对他们说:“二位兄台,若有什么劝勉众人的话,请说。”
  • 16 保罗就站起来,举手,说:“以色列人和一切敬畏 神的人,请听。
  • 17 这以色列民的 神拣选了我们的祖宗,当民寄居埃及的时候抬举他们,用大能的手领他们出来;
  • 18 又在旷野容忍(或译:抚养)他们,约有四十年。
  • 19 既灭了迦南地七族的人,就把那地分给他们为业;
  • 20 此后给他们设立士师,约有四百五十年,直到先知撒母耳的时候。
  • 21 后来他们求一个王, 神就将便雅悯支派中基士的儿子扫罗,给他们作王四十年。
  • 22 既废了扫罗,就选立大卫作他们的王,又为他作见证说:‘我寻得耶西的儿子大卫,他是合我心意的人,凡事要遵行我的旨意。’
  • 23 从这人的后裔中, 神已经照着所应许的,为以色列人立了一位救主,就是耶稣。
  • 24 在他没有出来以先,约翰向以色列众民宣讲悔改的洗礼。
  • 25 约翰将行尽他的程途说:‘你们以为我是谁?我不是基督;只是有一位在我以后来的,我解他脚上的鞋带也是不配的。’
  • 26 “弟兄们,亚伯拉罕的子孙和你们中间敬畏 神的人哪,这救世的道是传给我们的。
  • 27 耶路撒冷居住的人和他们的官长,因为不认识基督,也不明白每安息日所读众先知的书,就把基督定了死罪,正应了先知的预言;
  • 28 虽然查不出他有当死的罪来,还是求彼拉多杀他;
  • 29 既成就了经上指着他所记的一切话,就把他从木头上取下来,放在坟墓里。
  • 30  神却叫他从死里复活。
  • 31 那从加利利同他上耶路撒冷的人多日看见他,这些人如今在民间是他的见证。
  • 32 我们也报好信息给你们,就是那应许祖宗的话,
  • 33  神已经向我们这作儿女的应验,叫耶稣复活了。正如诗篇第二篇上记着说:‘你是我的儿子,我今日生你。’
  • 34 论到 神叫他从死里复活,不再归于朽坏,就这样说:‘我必将所应许大卫那圣洁、可靠的恩典赐给你们。’
  • 35 “又有一篇上说:‘你必不叫你的圣者见朽坏。’
  • 36 “大卫在世的时候遵行了 神的旨意,就睡了(或译:大卫按 神的旨意服侍了他那一世的人,就睡了),归到他祖宗那里,已见朽坏;
  • 37 惟独 神所复活的,他并未见朽坏。
  • 38 所以,弟兄们,你们当晓得:赦罪的道是由这人传给你们的。
  • 39 你们靠摩西的律法,在一切不得称义的事上信靠这人,就都得称义了。
  • 40 所以,你们务要小心,免得先知书上所说的临到你们。
  • 41 主说:‘你们这轻慢的人要观看,要惊奇,要灭亡;因为在你们的时候,我行一件事,虽有人告诉你们,你们总是不信。’”
  • 42 他们出会堂的时候,众人请他们到下安息日再讲这话给他们听。
  • 43 散会以后,犹太人和敬虔进犹太教的人多有跟从保罗、巴拿巴的。二人对他们讲道,劝他们务要恒久在 神的恩中。
  • 44 到下安息日,合城的人几乎都来聚集,要听 神的道。
  • 45 但犹太人看见人这样多,就满心嫉妒,硬驳保罗所说的话,并且毁谤。
  • 46 保罗和巴拿巴放胆说:“ 神的道先讲给你们原是应当的;只因你们弃绝这道,断定自己不配得永生,我们就转向外邦人去。
  • 47 因为主曾这样吩咐我们说:‘我已经立你作外邦人的光,叫你施行救恩,直到地极。’”
  • 48 外邦人听见这话,就欢喜了,赞美 神的道;凡预定得永生的人都信了。
  • 49 于是主的道传遍了那一带地方。
  • 50 但犹太人挑唆虔敬、尊贵的妇女和城内有名望的人,逼迫保罗、巴拿巴,将他们赶出境外。
  • 51 二人对着众人跺下脚上的尘土,就往以哥念去了。
  • 52 门徒满心喜乐,又被圣灵充满。

《答疑解惑》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우리는 《사도행전》 13장을 함께 보겠습니다. 사실 저는 어제부터 이 장을 반복해서 듣고 몇 번이고 읽어 보았지만, 저자가 대체 무엇을 말하려는지 정말 알 수가 없었습니다. 마치 동에 번쩍 서에 번쩍 갈피를 잡기 어려운 것 같았고, 이런 상황에 부딪힐 때마다 저는 아직 깨닫지 못했음을 알고 계속해서 필사적으로 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얼마나 많이 읽었는지도 모르겠지만, 마침내 이 장의 주제를 발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바울을 이방인의 빛으로 삼으셨다는 것이며, 혹은 하나님께서 이미 바울을 부르셔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 장부터는 기본적으로 베드로에 대한 언급이 거의 나오지 않으며, 그는 어디론가 숨어서 무엇을 하느라 바쁜지도 알 수 없습니다. 베드로라는 인물에게는 많은 단점이 있었는데, 사실 우리 가운데 있는 많은 형제자매들도 자신의 이론적 수준을 높이고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매우 명확한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지식인이었기에, 아는 것은 안다고 말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대대로 그릇을 찾고 계신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보좌에 앉아 아래를 굽어살피시며, 지각이 있는 자와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시지만, 매우 안타깝게도 늘 찾지 못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일단 찾으시면 이러한 사람과 함께하시며, 평생 구하는 것마다 얻게 하십니다.

여러분 모두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사람이 되기를 갈망해야 합니다. 비록 항상 순풍에 돛 단 듯 평탄하지만은 않을지라도,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이 장에서 복음은 이미 예루살렘 유대인의 복음에서 이방인에게로 돌아서기 시작했고, 복음의 중심은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으로 옮겨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부르셔서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습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이전에도 다른 많은 사람들을 부르셨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고 그들은 모두 듣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자신의 마음에 합한 사람을 찾고 계신다

성경 전체를 다 읽고 나면 제 마음 깊은 곳에서 약간의 슬픔이 밀려오며 하나님을 대신해 마음이 아픕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말이 너무 지나치십니다. 하나님도 마음 아파하지 않으시는데 왜 당신이 마음 아파합니까?" 아브라함 시대에는 오직 아브라함 한 사람만을 택하셨는데, 저는 '하나님께서는 왜 아브라함을 몇 명 더 찾지 못하셨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몇 명 더 있으면 당연히 좋겠지만, 문제는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2호, 3호, 4호, 아니 그보다 더 많이 찾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오직 한 사람만 찾으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이삭이라는 아들 하나뿐이었고, 이삭 대에 이르러 겨우 두 아들을 낳았으나 하나는 빗나가 버려 야곱 한 사람만 남았습니다. 야곱은 열두 아들을 낳았지만 결국 요셉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자신의 마음에 합한 사람을 찾고 계시는데, 제가 이러한 황량한 상황을 보며 하나님을 대신해 마음 아파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 그렇게 많은 왕이 있었지만, 오직 다윗 한 사람만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사모합니다. 그렇게 되면 다윗 왕 외에 저라는 사람이 하나 더 더해지는 것이니, 그야말로 희소하기에 더욱 귀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속 찾으시다가 어렵게 여러분을 발견하신다면, 그분은 반드시 여러분과 함께하시며 그분의 모든 영광을 여러분에게 쏟아부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은 바로 또 하나의 동역자를 찾는 것인데, 하나님께는 재정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마치 벤처 투자와 같아서 자신과 함께 동역할 파트너를 찾으시는데, 그 결과 하나님께서 투자하시자마자 수포로 돌아가 버리곤 했습니다.

이번에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한 파트너를 찾으셔서 과거에 투자하셨던 것들을 모두 회수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고 싶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투자하시려면, 여러분은 반드시 그분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사람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한 일을 행하든지, 아니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한 일을 행하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여러분이 정말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된다면 하늘의 창고가 여러분을 위해 열리고, 하나님께서는 천국의 열쇠를 여러분에게 주실 것입니다. 손에 큰 열쇠 꾸러미를 쥐고, 온갖 무기 중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가지게 될 것입니다.

《서유기》에서 손오공은 곳곳을 돌아다니며 보물을 찾았지만 마땅한 무기가 없다가 용궁에 가서야 비로소 여의봉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이 여의봉도 잘 통하지 않을 때가 있었는데, 많은 요괴들의 손에 보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손오공은 강력한 보물을 만나기만 하면 요괴를 잡기 위해 하늘로 올라가고 땅으로 내려가 보물을 찾아 헤매야 했습니다. 즉, 우리 같은 사람들이 요마와 마귀를 굴복시키려면 영적인 무기가 있어야 하며, 하나님께서 열쇠를 주신다면 하늘의 보물을 마음대로 고를 수 있게 됩니다. 다만 전제 조건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열쇠를 들고 베드로에게 받겠느냐고 물으셨지만 베드로는 받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유대인들도 찾으셨지만 모두 똑같은 대답을 얻으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더니 잔치할 시각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이르되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매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밭을 샀으매 아무래도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장가 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 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 종이 이르되 주인이여 명하신 대로 하였으되 아직도 자리가 있나이다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들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누가복음》 14:16-24)

바울은 이미 그곳에서 후보로 오랫동안 줄을 서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시에 베드로를 부르셔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을 때, 바울은 어느 구석에서 기다리고 있었는지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바울은 마치 구직 대기 상태에 있는 것과 같았는데, 운동선수가 경기를 할 때 어떤 사람들은 출전하기 위해 감독과 관계가 좋아야 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뒤에는 수많은 벤치 멤버들이 대기하고 있었고, 바울은 뛰어난 후보 선수로서 줄곧 그곳에서 간절히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연출자가 보니 이전 사람들은 모두 쓸모가 없고 앞서 뽑힌 자들이 다 빗나가 버리자, 바울이 마침내 무대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사실상 계시를 받은 사람은 많지만, 빗나가는 사람도 많아서 도무지 듣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동쪽으로 가라 하시면 굳이 서쪽으로 가고, 개를 쫓으라 하시면 기어이 닭을 잡으려 합니다.

우리 가운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보배로 여기고 있습니까? 만약 여러분이 그렇다면,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천국의 열쇠를 얻고 황금 알을 깨는 격입니다. 황금 알 속에는 온갖 보물이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마음에 합한 사람을 찾고 계시며, 이는 우리 마음에 소망을 가득 채워 줍니다. 제가 당시에 교회를 개척할 때에는 오로지 마음속의 뜨거운 열정 하나만 믿고 무작정 행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제가 과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는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지만, 사실 받지 않았더라도 상관없었습니다.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부르실 것이기에, 저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살아가기를 사모했을 뿐입니다.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사도행전》 13:1-4)

바울은 매달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내주시기를 기도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때는 아직 베드로가 빗나가기 전이었으나, 이 장에 이르러 드디어 바울이 출전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과 바나바에게 사역을 맡기셔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고 이방인의 빛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전에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어디로 숨었는지 보이지 않았는데, 마치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께서 아담을 부르셨을 때 다들 숨어서 감히 응답하지 못한 것과 같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시에 예루살렘 교회를 치시고 그들을 다루실 때, 베드로는 하나님의 의도를 분명히 깨달았어야 했습니다. 이는 마치 오케스트라에 온갖 악기가 있지만 무대 위의 지휘자가 어떻게 하든 밑에서는 전혀 듣지 않고 각자 제멋대로 연주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교회에 박해를 허락하시고 심지어 몇 사람의 희생을 아끼지 않으셨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깨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교회가 쇠퇴하는 동시에 안디옥 교회가 부흥했는데, 하나님께서 마침내 그분의 마음에 합한 사람을 찾으셨기에 부흥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제가 왜 하나님의 뜻을 굳게 붙잡고 온종일 두리번거리며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살피고, 하나님께로부터 제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싶어 했는지 이해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화인 사명 신학을 세우고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를 계시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걸어올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우리에게 찬물을 끼얹고 또 끼얹었으며, 기존의 기성 목회자들은 제가 이렇게 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사실 온라인 교회를 세우는 데 있어서 저는 원조 격이라 할 수 있는데, 당시에 전화로 기도해 주면서 수많은 위급하고 절박한 문제들이 해방을 받았습니다. 한 번은 제가 기도를 인도할 때, 수천 리 떨어진 곳에 있는 한 사람이 화상을 켜놓고 함께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사람이 카메라 앞에서 쓰러졌고, 아무리 불러도 응답이 없어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당시에는 하늘을 향해 부르짖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비행기 표를 사서 그 사람에게 가보니 이미 아무런 반응도 없이 기절해 있었습니다.

저는 그가 이렇게 죽은 줄로만 알았는데, 한 시간 동안 기도한 후에 다시 살아났습니다. 당시의 기도는 마치 처절하게 울부짖는 듯했으나, 온전히 하나님만 의지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제가 안 될 것이라 생각하며 "거기 몇 명이나 모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그럼 현장 교회에는 몇 명이나 모입니까?"라고 되물었고, 결국 그들은 부끄러워서 말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대세입니다. 결국 어느 날 과거에 제가 안 된다고 하던 사람들이 저를 찾아와서 제가 선견지명이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현장 교회가 큰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들은 저를 존경하기 시작했지만, 사실은 제가 하나님의 뜻을 굳게 붙잡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사람을 부르실 때, 사도 바울의 시대에 사도 바울을 부르신 것은 그 안에 전통적인 관념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제 안에도 전통적인 관념이 없으며, 전통을 깨뜨리는 것이야말로 제가 잘하는 일입니다. 제가 섬기는 사람들은 모두 전통을 깨뜨리는 사람들이며, 사람이 저에게 올 때 그가 누구이든 어떤 형편에 처해 있든 간에, 저는 도덕의 결박을 깨뜨리고 그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것만을 중히 여깁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은혜가 저를 통해 풍성하게 전해졌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여기서 말씀을 전하고 여러분이 그곳에서 타이핑을 하는 것도 제게 빚을 진 셈입니다. 수많은 세월 동안 하나님께서 다윗 한 사람을 찾으셨다면, 우리는 '작은 다윗'이 되면 됩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다면, 제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작은 다윗'이 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찾고 계시며, 찾으신 후에는 보배처럼 여기십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고 싶다면, 빗나가 실격되지 마십시오. 저와 힘겨루기를 해 봐야 소용없습니다. 저는 오직 나의 하나님만을 인정하며, 그 누구도 제가 하나님을 섬기는 권리를 빼앗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모두 준비되십시오. 사람이 아무리 더 많아져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자리를 마련해 주실 수 있습니다. 다른 교회가 문을 닫더라도 우리 교회에는 여러분을 위한 자리가 있습니다. 팬데믹이 조금만 더 길어지면 더 많은 교회가 쓰러지게 될 텐데, 누가 그들에게 예루살렘 교회처럼 되라고 했습니까? 사실 팬데믹이 오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한 선지자에게 계시해 주셨는데, 아쉽게도 지금은 그분의 영상을 찾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선지자를 통해 친히 그 교회들을 무너뜨리시겠다고 말씀하셨으며, 당시의 예루살렘 교회도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그들이 너무나 썩었기 때문이며,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는 자는 남겨두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이해해야 합니다. 바울이 당시에 예루살렘으로 가서 한자리 차지해 보려 했으나, 아무도 그를 받아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교회 안팎에서 줄곧 그를 죽이려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바람에 바울은 결국 벤치 멤버 신세가 되었지만, 벤치를 지키는 기간 동안 자신의 이론적 수준을 끊임없이 끌어올렸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자신은 1년 내내 사업이 안 된다고 말하는데, 그것도 좋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자신의 이론적 수준을 높이고 자신을 준비시킬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당시 제가 교회를 개척할 때에는 시간이 넉넉했고, 저를 찾아와 기도와 치유를 구하는 사람도 많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할 일이 별로 없었기에 시간만 있었고, 그래서 필사적으로 성경을 읽었습니다. 바울이 벤치 멤버로 머물렀던 그 수년 동안 수많은 하나님의 말씀을 쌓았고,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더욱 깊어졌습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 바울을 파송하실 때가 되자, 그는 입을 열자마자 온 청중을 감동시키며 하나님의 말씀을 매우 명확하게 풀어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가운데 사업이 잘되는 분들은 열심히 일하시고, 사업이 잘 안되는 분들은 서둘러 자신의 이론적 수준을 높이십시오. 교회가 부흥할 때에는 신속히 섬기고, 부흥하지 않을 때에는 끊임없이 자신을 향상시키십시오.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셔서 그분의 일을 하게 하실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바로 이방인을 향해 있음을 분명히 보아야 합니다. 바울을 불러 다른 이들을 섬기게 하실 때에는 베드로에게 계시를 주실 때처럼 한참을 씨름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수많은 환상을 보여주었으나 헛수고였는데, 베드로가 전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더라 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러 바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인 마술사를 만나니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 이 마술사 엘루마는(이 이름을 번역하면 마술사라) 그들을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 (《사도행전》 13:5-8)

여기서 총독은 순무나 군수, 시장과 비슷한 직책입니다.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이르되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맹인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둠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 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놀랍게 여기니라 (《사도행전》 13:9-12)

바울은 베드로처럼 하나님께 이방인과 밥을 먹어도 되는지 물어볼 필요가 전혀 없었습니다. 매번 무슨 일을 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일깨워 주셔야 한다면 하나님이 그의 비서가 되는 셈인데, 이것이야말로 주객이 전도된 것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라 하시는데도 안 된다고, 부정하다고 여겼습니다.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었던 것은 바울이 방대한 지식을 쌓았고 하나님에 대해 매우 명확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다스림을 위해 선지자와 교사, 그리고 목사 등 여러 직분을 세워 각자의 직무를 수행하게 했습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뜻을 연구하는 사람인데, 선지자가 하나님의 뜻을 모른다면 거짓 선지자라 불립니다.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성경이 오래전에 이미 주었던 계시이며, 바로 이방인의 빛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방인의 빛이 되겠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구했고, 비록 하나님께서 즉시 응답하지 않으시더라도 계속해서 기다렸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흐리멍덩합니다. 예를 들어 마가, 곧 여기에 나오는 요한은 바나바와 바울을 따르다가 결국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마가는 당시에 예수님과 영생에 대해 논했던 그 청년으로, 본래 부유한 집안의 도련님이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으로 쫓겨왔는데, 마가는 안디옥에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으니, 이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해 이리저리 방황한 것입니다.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그들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사도행전》 13:13)

바울과 바나바가 다투어 두 사람이 갈라서게 된 것은 훗날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는 바나바와 바울이었지만, 바나바 역시 빗나가고 말았습니다. 오직 바울만이 자신이 이방인의 빛이 되어야 함을 끝까지 굳게 믿었으며, 바나바는 이방인과 함께 있으면서도 정결한가 부정한가의 문제로 자주 갈등하며 늘 유대인의 전통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체계가 있어야 하며, 하나님을 체계적으로 알아야 한다

바울의 수준이 높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이 장의 13절부터 41절까지, 이 본문은 많은 분량을 할애하여 바울 안에 체계가 잡혀 있었고 하나님의 뜻을 매우 깊이 알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화인 사명 신학은 절대로 문맥을 무시하고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름난 유명한 목회자들이 철학적 조예가 깊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했지만, 그 사람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그 목회자들이 하는 말이 체계적이지 못하고 논리적으로 일관되지 못하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어떤 일이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면 오직 혼란만 가져올 뿐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말하는 것은 이곳에서 한 구절, 저곳에서 한 대목 베껴 온 것들이라 기본적으로 자기 것이 아닙니다.

철학적 조예가 깊은 이 사람이 저와 신학을 논하면서, 화인 사명 신학에는 체계가 있어 말하고 설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행하여 사람을 귀신의 억압에서 풀어낼 수 있다고 느꼈습니다. 우리 화인 사명 신학이 하나님의 말씀을 인식하는 깊이는 일반 사람들이 정말로 따라올 수 없습니다. 우리 가운데 많은 형제자매들이 다른 교회에서 왔는데, 그들 역시 이에 대해 깊이 공감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일어나 손짓하며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과 및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들으라 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우리 조상들을 택하시고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된 그 백성을 높여 큰 권능으로 인도하여 내사 광야에서 약 사십 년간 그들의 소행을 참으시고 가나안 땅 일곱 족속을 멸하사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시기까지 약 사백오십 년간이라 그 후에 선지자 사무엘 때까지 사사를 주셨더니 그 후에 그들이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간 주셨다가 (《사도행전》 13:16-21)

여러분도 알 수 있듯이, 바울은 매우 명확하고 이해하기 쉽게 전했습니다.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사도행전》 13:22)

바울이 말한 이 모든 것은 사실 그가 자신의 이론적 수준을 끊임없이 높이면서 도출해 낸 매우 핵심적인 개념으로, 곧 모든 일에 하나님의 뜻을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바로 사도 바울을 부르셔서 이방인의 빛으로 삼으시는 것이며, 바울은 틀림없이 행할 것이고 절대로 빗나가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투자는 분명 천 배, 만 배의 보답을 거둘 것인데, 사람을 제대로 찾으셨기 때문입니다. 저 자신도 이렇게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찾으신 것도 제대로 찾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제가 과연 감당할 수 있는지 물으신다면, 그 대답은 절대적으로 "해낼 수 있습니다!"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체계적으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 화인 사명 신학은 신학적 기초에 있어서 지금까지도 가장 앞선 신학 체계입니다. 저는 존 칼빈, 웨슬리, 그리고 현대 교회의 신학 체계 등 많은 것을 연구해 보았지만, 그들은 본문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정말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제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기 싫어하며 자신을 자랑하거나 남을 깎아내린다고 하지만, 저는 사실 진실을 말했을 뿐입니다. 제 뜻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울 때 체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것입니다. 저는 사람이 사는 것이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말하는 이를 거의 들어보지 못했는데, 그 모든 말씀이 바로 체계입니다.

사도 바울은 말을 이어가며 세례 요한에 대해 이야기했고, 바울은 당시 예루살렘에 있었기에 일어난 일들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이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했는데, 인용한 내용들은 모두 구약 성경에서 가져온 것으로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논증했습니다. 무덤은 비었고 육체는 썩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썩어짐을 당했으나 예수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이론적 수준의 높고 낮음에 따른 차이가 매우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머리를 아무리 쥐어짜도 소용없습니다. 다윗이 쓴 시편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예언한 것이며, 우리는 모세의 율법을 행함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으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는 얻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 말은 매우 직설적이며, 훗날 사도 바울의 신학 체계는 하나님을 체계적으로 아는 것이라 불리게 됩니다.

그런즉 너희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 너희에게 미칠까 삼가라 일렀으되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놀라고 멸망하라 내가 너희 때를 당하여 한 일을 행할 것이니 사람이 너희에게 일러줄지라도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사도행전》 13:40-41)

너희에게 일러주어도 믿지 않고, 말을 해주어도 듣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은 모두 천지를 뒤흔드는 일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세상에 40일 동안 머무시며 제자들에게 자신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이 말씀들은 모두 베드로에게 들으라고 하신 말씀인데, 이때 베드로는 이미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습니다. 업신여기는 자들은 놀라고 멸망할 것이라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체계적으로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가볍게 여기는 자는 멸망하게 됩니다! 사람이 도대체 얼마나 많은 표적을 경험해야 믿을 수 있겠습니까? 매주 화요일 저녁 제가 기도를 인도할 때 치유를 받는 사람들이 매우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결단코 하나님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하며, 체계를 세우는 일에 게을러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정말로 하나님을 알고 계십니까? 어떤 사람들은 꽤 어리석어서 줄곧 하나님에 대한 체계적인 인식도 없고 하나님의 뜻도 알지 못한 채 자기 일만 중히 여기다가 결국 일도 제대로 해내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매우 체계적인 인식이 없다면 멸망하게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성경에는 사도 바울이 설교할 당시의 상황이 다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제가 나가서 사역할 때 섬김이 필요한 분은 손을 들라고 하면 순식간에 수많은 사람이 손을 듭니다. 어떤 이들은 사역을 받자마자 낫지만, 오래된 그리스도인들 중 일부는 치유받기가 다소 어려운데, 이는 마음속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면서도 스스로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많은 사람이 여러분에게 찬물을 끼얹는다면 여러분은 끝까지 버텨낼 수 있겠습니까? 저로서는 남들이 찬물을 끼얹든 말든 이 길을 걸어갑니다. 저는 사람들의 필요를 똑똑히 보면서 그들을 섬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느 날 밤 새벽 3시가 넘어서 만 자가 넘는 이메일을 받았는데, 자신의 수많은 비참한 경험을 적어 보냈기에 저는 그 자리에서 바로 답장을 보냈습니다. 이 사람은 한때 우울증 환자였으나 나중에 나아서 직장까지 구했습니다. 그가 아플 때 현지 지역 교회를 찾아가라고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하나의 필요이자 책임이며 감당해야 할 몫입니다! 참으로 우는 자들과 함께 울고 기뻐하는 자들과 함께 기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흥왕해질 때, 저는 여러분 안의 기쁨을 함께 나눌 것입니다.

지금은 섬김이 필요한 사람이 많아서 다 감당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저는 저와 함께 같은 길을 걸어갈 많은 목회자들을 훈련시켰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하시고 하늘 보물창고의 열쇠를 제게 다 주셨기에, 저는 하나님의 뜻을 품고 섬기러 갑니다. 제가 종종 말을 강하게 하여 그 목사들을 불편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들이 정말로 양들을 아끼고 있습니까? 그들의 목양을 중요하게 여깁니까? 그들의 헌금 때문은 아닙니까? 여러분은 제가 사람들의 헌금에 전혀 연연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저는 오직 사람만을 귀하게 여기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매우 체계적으로 알고 있기에 사람의 삶과 죽음의 문제를 꿰뚫어 보았습니다. 여러분이 원하신다면 제가 나눈 《전도서》 성경공부를 많이 들으시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면 세상의 문제 중 절반은 줄어들 것입니다. 《전도서》는 사람이 살아가는 온갖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일들을 가치 없는 자리로 내려놓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부르신 자와 함께하신다

어떤 사람들은 멀리서 저에게 사역을 받으러 오려 하지만, 현재 저로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을 다 섬길 만한 여력이 되지 않습니다. 제가 양육한 목회자들이 여러분을 섬기는 것도 동일하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진정으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사역을 받은 형제자매들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해방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귀신을 쫓아낼 때 매우 단호하고 강하게 몰아붙이며, 귀신이 제게 오는 것은 죽으러 오는 것과 같습니다. 제가 쫓아내면 귀신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저를 죽도록 증오한다고 소리치며 도망치곤 합니다. 어제도 어떤 귀신이 울부짖으며 저를 증오한다고 했는데,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르신 자와 함께하시는데, 그렇다면 그 능력이 어디에 나타납니까?

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러 바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인 마술사를 만나니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 이 마술사 엘루마는(이 이름을 번역하면 마술사라) 그들을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이르되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맹인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둠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 (《사도행전》 13:6-11)

어느 날 제가 기도를 인도할 때 주제가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매우 골치 아픈 일을 만나서 아무리 해도 해결되지 않고 완전히 막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그 녹음본을 따라 기도했고, 결국 사람을 통하지 않고도 일이 해결되었으며, 다시 확인해 보니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부르신 자와 함께하시며, 여러분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여러분과 함께하십니다. 표적과 기사가 반드시 여러분에게 일어날 것이며,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길을 예비하시는 것을 반드시 보게 될 것입니다!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후에 회당장들이 사람을 보내어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만일 백성을 권할 말이 있거든 말하라 하니 (《사도행전》 13:15)

강단에 올라가 설교하는 것이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만약 어떤 사람이 올라가서 세상 노래를 부른다면 안 될 일입니다. 그곳은 회당이었고, 사람들이 사도 바울에게 말씀을 전해달라고 한 것은 사전에 서로 교제가 있었기 때문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그를 알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대화를 나누어 보니 바울의 지식이 너무나 해박하고 탁월하여 회당에서 성도들에게 말씀을 전한다면 분명 많은 사람이 덕을 세우게 될 것임을 발견했습니다. 설교가 끝난 후 그다음 주에는 또 수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는데, 이렇게 전하는 말씀을 들어본 적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듣고 치유와 해방을 받았습니다.

그들이 나갈새 사람들이 청하되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하라 하더라 회당의 모임이 끝난 후에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르니 두 사도가 더불어 말하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권하니라 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시민이 거의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이니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이 말한 것을 반박하고 비방하거늘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그것을 버리고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주께서 이같이 우리에게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사도행전》 13:42-48)

이방인들의 갈망

많은 이방인이 사람이 살아가는 이러한 문제들을 구하다가 유대교에 입교했습니다. 사실 요즘 젊은이들, 특히 90년대생, 00년대생들은 마음이 몹시 공허하여 절을 찾아가곤 하는데, 그들 마음 깊은 곳에 갈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일 아니겠습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이 마음 깊은 곳에서 하나님을 보기를 갈망하고, 사람이 살아가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깨닫기를 갈망하고 있습니까! 사실 이방인들의 마음은 매우 갈급하며, 이것이 바로 사도 바울의 시대에 하나님께서 그를 위해 예비하신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바울이 전하는 말을 듣기 좋아하여 끊임없이 질문했고, 바울 역시 매우 명쾌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사람들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한다는 도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으나,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사람들에게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다행히 바울은 오랜 세월 동안 적지 않게 준비되어 있었기에, 500편의 설교 중 아무거나 하나를 꺼내도 지극히 명확하게 전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 곳에서든 사람이 갈망하는 것을 보실 때, 하나님께서는 그곳에 생명의 도를 주고자 하십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계신 곳에서 이 세상의 필요를 바라보시고, 사람들의 마음속 갈망을 보며, 동시에 우리의 부족함도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말씀을 풍성히 채워야 함을 알아야 하며, 충동적인 열정만 가지고 사역하겠다고 나서서는 안 됩니다. 실제로 어떻게 섬기겠습니까? 올라가서 횡설수설하시겠습니까? 이제 자신을 잘 준비시키고 자신의 이론적 수준을 끌어올려야 합니다. 우리 사명 신학에는 이러한 학습 자료가 부족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보아야 하며, 각처에서 영생을 얻기로 작정된 자들은 다 주님을 믿게 될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한 걸음 나아갔다가 두 걸음 물러서는 사람들을 결코 본받지 마십시오. 우리 화인들 가운데에는 하나님을 갈망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으나, 우리가 한 일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부르신 자들을 우리 가운데 더하여 주셔서 우리 또한 자신을 잘 준비하고, 이 사람들을 잘 섬겨 그들의 필요를 채워줄 수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이방인들의 갈망이라는 뚜렷한 흐름을 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유대인의 사도가 되기 위해 달려갔고, 결국 매우 황량해지고 말았습니다. 유대인들의 교회는 바리새인들로 가득 차 있었으며, 모두 소란을 피우는 자들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의 방해

유대인들도 성경을 읽었지만, 성경을 읽는다고 해서 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생각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이 사람들은 성경을 읽기는 했으나 가볍게 여기는 자들이었고, 온전히 깨닫지 못한 채 읽었기에 결국 멸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고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버림받게 된다는 분명한 흐름을 볼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이 도를 버리고 스스로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방인에게로 돌아섰는데, 이 전환의 과정에서 바나바도 빗나갔고 마가도 떠나버렸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마가는 베드로와 각별한 사이였고, 그가 기록한 《마가복음》은 곧 베드로의 설교였습니다. 마가가 바울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까닭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분명히 보지 못하고 이방인을 더럽고 부정하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는 바울이 전한 복음과 진리에 대한 인식에 어긋나는 것이었습니다. 훗날 바울은 어디를 가든 마가를 데려가려 하지 않았고, 심지어 바나바와 다투면서까지 거부했습니다.

이 세대의 교회도 마찬가지여서 복음주의파, 은사주의파 등도 복음을 읽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잘 알지 못합니다.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의 도를 죽은 것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수많은 개념이 극도로 혼란해졌으며, 그러한 사례는 이루 다 셀 수 없고 열거하기조차 힘듭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방해하는 자들은 참으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인터넷에서 중국인의 목을 조르는 이들이 대부분 화인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참으로 탄식이 나오고 놀라우며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유대인들은 복음의 걸림돌이 되어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으며, 모세로부터 이후의 선지자들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 백성이 장차 하나님께 저주받아 세상 만국 가운데로 흩어지게 될 결말을 예언했습니다.

결론

하나님께서는 이미 바울을 이방인을 위해 세우셨고, 다행히 그가 있었기에 우리는 복음의 유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을 볼 수 있습니까? 여러분도 하나님의 뜻을 볼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이 세대에 우리를 일으키셔서 빛을 발하는 백성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명백히 우리와 함께하시며, 이 세대에 그분의 영광을 나타내시고 그분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맞이하게 하실 것이며, 우리 또한 이방인의 빛이 될 것입니다! 아멘!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원합니다.

관심을
关闭
贾玲
讲的太好了。谢谢!我也愿意成为目标神心意的人,更愿意成为外邦人的光。让我继续学习神的话语,明白神的心意,成为被神呼召和使用的人。
命定小助手
愿神使你成为神所呼召和使用的人!
@贾玲: 讲的太好了。谢谢!我也愿意成为目标神心意的人,更愿意成为外邦人的光。让我继续学习神的话语,明白神的心意,成为被神呼召和使用的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