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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에베소서 6장 - 하나님이 주신 전신갑주를 입고 승리하는 군사가 되라

2025-08-20 29,072 以弗所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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以弗所书06章-儿女和父母
  • 1 你们作儿女的,要在主里听从父母,这是理所当然的。
  • 2 “要孝敬父母,使你得福,在世长寿。”这是第一条带应许的诫命。
  • 3
  • 4 你们作父亲的,不要惹儿女的气,只要照着主的教训和警戒养育他们。
  • 5 你们作仆人的,要惧怕战兢,用诚实的心听从你们肉身的主人,好像听从基督一般。
  • 6 不要只在眼前侍奉,像是讨人喜欢的,要像基督的仆人,从心里遵行 神的旨意。
  • 7 甘心侍奉,好像服侍主,不像服侍人。
  • 8 因为晓得各人所行的善事,不论是为奴的,是自主的,都必按所行的得主的赏赐。
  • 9 你们作主人的,待仆人也是一理,不要威吓他们。因为知道,他们和你们同有一位主在天上;他并不偏待人。
  • 10 我还有末了的话:你们要靠着主,倚赖他的大能大力作刚强的人。
  • 11 要穿戴 神所赐的全副军装,就能抵挡魔鬼的诡计。
  • 12 因我们并不是与属血气的争战(原文是摔跤;下同),乃是与那些执政的、掌权的、管辖这幽暗世界的,以及天空属灵气的恶魔争战。
  • 13 所以,要拿起 神所赐的全副军装,好在磨难的日子抵挡仇敌,并且成就了一切,还能站立得住。
  • 14 所以要站稳了,用真理当作带子束腰,用公义当作护心镜遮胸,
  • 15 又用平安的福音当作预备走路的鞋穿在脚上。
  • 16 此外,又拿着信德当作藤牌,可以灭尽那恶者一切的火箭;
  • 17 并戴上救恩的头盔,拿着圣灵的宝剑,就是 神的道;
  • 18 靠着圣灵,随时多方祷告祈求;并要在此警醒不倦,为众圣徒祈求,
  • 19 也为我祈求,使我得着口才,能以放胆开口讲明福音的奥秘,
  • 20 (我为这福音的奥秘作了带锁链的使者,)并使我照着当尽的本分放胆讲论。
  • 21 今有所亲爱、忠心侍奉主的兄弟推基古,他要把我的事情,并我的景况如何全告诉你们,叫你们知道。
  • 22 我特意打发他到你们那里去,好叫你们知道我们的光景,又叫他安慰你们的心。
  • 23 愿平安、仁爱、信心从父 神和主耶稣基督归与弟兄们!
  • 24 并愿所有诚心爱我们主耶稣基督的人都蒙恩惠!

《答疑解惑》

여러분 안녕하세요. 에베소서의 마지막 장인 6장을 살펴보겠습니다. 6장은 “하나님이 주신 전신 갑주를 입고 승리하는 정병이 되라”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주신 전신 갑주를 입고 승리하는 정병이 되면 어떤 유익이 있을까요? 바로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싸워 승리해야만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 누릴 수 있다

이 말은 화인 사명신학(華人命定神學)의 가장 핵심적인 정수입니다. 지난 세월 동안 저는 교회의 기도가 왜 응답받지 못하고 하나님의 약속이 보이지 않는지 깊이 관찰해 보았습니다.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하기에는 간혹 간증이 조금씩 나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간증이 조금 있다고 하기에는 수많은 문제들이 전혀 해결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들뿐만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이 의문을 가져야 마땅합니다. 이 의문은 하나의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우리가 성경을 상고할 때 한 가지 비밀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누구나 이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 일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바로 출애굽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온 후, 말씀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군대가 애굽 땅에서 나왔다.” 출애굽기를 자세히 찾아보면 실제로 그렇습니다.

민수기에 이르면 싸움에 나갈 수 있는 자만 계수되었고, 그 외의 사람들은 셀 필요도 없이 오직 싸울 수 있는 자들만 계수했습니다. 그 결과가 어떠했습니까? 계수해 보니 싸울 수 있는 자가 거의 60만 명에 달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 세대의 사람들은 단 한 사람도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으며, 다 광야에서 하나님의 치심을 받아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비참한 일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싸우기를 원치 않았고, 싸움을 두려워했으며, 강건한 사람이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것이 싸워 승리한 결과임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승리하도록 예정하셨지만, 우리가 직접 들어가 싸워 승리해야만 약속의 땅을 얻을 수 있습니다. 훗날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에 들어간 후에도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계속해서 조금씩 쫓아내야 했습니다. 쫓아내면 땅을 한 조각 더 얻고, 또 쫓아내면 땅을 더 얻는 식이었습니다.

후에 저는 싸워 승리하는 것과 약속을 얻는 것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교회를 세울 때 하나님의 군대의 모형대로 세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주신 전신 갑주를 입는다는 말이 시대에 뒤떨어진 것처럼 여겨지는 것입니다. 군대처럼 세우지 않았는데 군복을 입어서 무엇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전신 갑주를 입고 승리하는 정병이 되어야만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 누릴 수 있다는 말은 지극히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 후 우리는 이러한 훈련을 거듭했고, 감사하게도 교회가 조금씩 정병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약속이 분명하게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므로 싸워 승리해야만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 누릴 수 있다는 것은 하나의 신학적 관점이며, 절대로 ‘너도 사랑하고 나도 사랑하자’는 식의 느끼하고 안일한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네가 나에게 국을 끓여주면 나도 국을 끓여주고, 네가 만두를 빚어주면 나도 만두를 빚어주고, 용돈 봉투를 주면 나도 봉투를 주고, 크리스마스가 되면 선물을 주고받는 식의 교제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싸워 승리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사실 우리는 한 가지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그것은 ‘왜 성경에 묘사된 것과 다른가?’를 묻는 습관입니다. 성경과 다르다면 우리가 잘못된 것입니다. 성경의 말씀이 옳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와 싸우는 것입니까?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공중의 악한 영들과 어떻게 싸워야 할까요? 이 악한 영들은 어떻게 활동할까요?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자면, 마귀는 대단히 악하여 화살 쏘기를 좋아합니다. 릭 조이너의 『마지막 대결』을 읽어보셨다면, 지옥의 군대가 진군하는 장면을 생생하게 보셨을 것입니다. 거기서 무엇을 봅니까? 마귀가 화살을 쏘는 것을 봅니다. 마귀의 화살을 맞은 사람은 그 몸에 마귀의 성품을 띠게 됩니다. 쓸데없는 잡담을 좋아하는 사람이 잡담의 화살에 맞으면 잡담하기를 더 좋아하게 됩니다. 분열의 귀신에게 쏘이면 하나 됨을 이룰 수 없게 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왜 귀신의 화살에 맞는 것일까요? 마귀의 간계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신 전신 갑주를 입어야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십시오. 그래야 악한 날에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굳건히 설 수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겪는 수많은 일들이 영적인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가정 안에서 부부 사이에 일어나는 일들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마귀가 거짓말을 하나 던져놓으면 그 친밀한 관계 속에서 파괴 공작이 일어납니다. 그러면 부부는 서로를 헐뜯고 무너뜨리며 상대를 망가뜨리는 일만 반복합니다. 왜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까요? 둘 다 육신에 속해 있고, 둘 다 마귀의 간계에 걸려들어 죽을 때까지 서로 물고 뜯으며 끝없는 싸움을 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악한 영들과 싸워야지, 혈과 육으로 싸워서는 안 됩니다. 부부가 말다툼하며 육신으로 싸우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으며, 마귀식의 타협도 소용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마음 한뜻을 품고, 동일한 사명을 가지고, 싸워 승리하는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전신 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승리하는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정병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군장의 구성을 알아야 하며, 스스로 승리하는 정병이 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승리하는 정병이 되는 것은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승리하는 정병이 되어야만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 누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하나님의 약속을 얼마나 누려왔는지 잘 살펴보십시오. 만약 여전히 부족하다면, 더 이상 자신을 영적 결핍 속에 내버려두지 마십시오.

정병의 무장 1: 진리의 허리띠로 허리를 동이라

그렇다면 진리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진리가 진정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진리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파편적으로만 알고 있을 뿐, 전혀 체계가 잡혀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인식이 체계적이지 못하면 극심한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어떻게 진리의 허리띠를 띨 수 있을까요? 생각해 보십시오. 태권도를 할 때 매는 띠가 무엇입니까? 검은 띠입니다. 다른 색깔의 띠도 있는데, 색깔마다 다른 단계를 나타냅니다. 또한 단계에 따라 1단, 2단, 3단, 4단이 나뉩니다. 진리의 띠로 허리를 동인다는 것은, 허리를 띠로 단단히 맸을 때 허리가 안정되는 것과 같습니다. 허리가 견고해야 사람이 흔들리지 않고 굳건히 서게 됩니다.

그렇다면 진리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입니다. 만약 그 모든 말씀을 하나하나 다 들으려 한다면 끝이 없어 어려울 것입니다. 다 들을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말씀하고 계시며, 진리에는 체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이 하나의 체계를 형성하며, 이 체계 밖에 있는 것은 진리가 아니고, 이 체계 안에 있는 것이 곧 진리입니다.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신명기든 요한계시록이든 복음의 진리에는 어떤 것도 더하거나 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복음 진리의 체계 밖에 있는 것을 안으로 끌어들여서도 안 되고, 이 체계 안에 있는 것을 제해 버려서도 안 됩니다. 그것은 완전한 하나의 체계입니다.

저는 이러한 완전한 체계에 있어서, 우리 화인 사명신학이 이 시대에 비교적 체계적인 신학 체계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화인 사명신학이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정리해 낸 말씀의 체계입니다.

예를 들어 앞서 첫 번째 대지에서 저는 ‘싸워 승리해야만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 누릴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것은 절대적으로 성경에 부합하는 진리입니다. 싸워 승리하는 교회를 세우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 누릴 수 있겠습니까? 마귀에게 짓밟히면서 어떻게 약속을 누리겠습니까? ‘왜 하나님께서 돌보지 않으실까?’라고 묻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돌보지 않으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진리의 허리띠를 띠지 않고 전쟁터에 나가 두들겨 맞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바오궈 같은 사람은 맞고도 스타가 되어 인터넷 유명인사가 되려 하지만, 여러분이 마귀의 엉덩이 밑에 깔려 짓밟힌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반드시 진리의 띠로 허리를 동여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질문하는 것을 보고 들으면 혼란이 얼마나 많은지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머릿속에 체계가 없고, 풍문으로 들은 이야기들만 이쪽저쪽에서 주워들었기 때문입니다. 온갖 것은 다 들으면서 정작 성경은 제대로 읽지 않습니다. 제 말에 동의하지 않아도 좋으니, 제 말이 아니라 성경에 동의하시고 성경을 제대로 읽으십시오.

예를 들어 창세기 1장을 제대로 이해하셨습니까? 출애굽기는요? 신명기는요? 민수기는요? 레위기는 이해하셨습니까? 마태복음, 누가복음, 사도행전은 다 이해하셨습니까? 우리는 말씀의 체계를 세워야 합니다. 체계가 세워지고 나면, 야고보서가 이 체계에 들어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야고보서는 사도 바울의 체계 안에 들어있지 않습니다. 베드로전후서도 마찬가지로 문제점이 있습니다. 유다서와 베드로전후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체계와 어긋나는 부분이 있습니다.

어디서 어긋나는지 아십니까? 베드로는 롯을 의인이라고 여겼지만, 구약의 선지자들이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롯을 의인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결코 없습니다. 그가 무슨 의인입니까? 저주받은 자였습니다. 그러므로 정병의 무장을 위해서는 반드시 진리를 알아야 하고, 반드시 체계를 세워야 합니다. 체계가 세워진 눈으로 보면, 그것이 사도 바울과 예수 그리스도의 체계에 속하지 않음을 보게 됩니다. 야고보가 비록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의 친동생이라 해도 육으로 난 것은 육일 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냐?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이것이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야고보서는 깊은 함정이 아니겠습니까? 많은 이들이 그 안에 빠져 있으면서도 그것이 성경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는 바울의 말이 기록될 당시에 야고보서는 아직 성경 목록에 포함되어 있지도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바울의 그 말을 인용하지만, 그것은 그 체계 안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진리의 허리띠를 띠어야 흔들리지 않습니다. 허리가 흔들리면 디스크가 오고 허리를 못 쓰게 되는데, 어떻게 전쟁터에서 싸우겠습니까? 결코 싸울 수 없습니다.

정병의 무장 2: 의의 호심경을 붙이라

정병이 되려면 의의 호심경(흉배)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군장의 무기입니다. 릭 조이너의 『마지막 대결』에 나오는 환상을 보면, 군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묘사됩니다. 어떤 이들은 의의 호심경이 없어 마귀의 화살이 심장에 그대로 꽂힙니다. 심장에 화살이 꽂혔는데 어떻게 살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아주 기괴한 현상을 관찰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이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갑자기 성품이 크게 변하여, 전에는 사소한 흠을 잡지 않고 다 좋았는데 갑자기 변해버립니다. 왜 그럴까요? 마귀의 화살이 심장에 꽂혔기 때문입니다. 트집 잡는 버릇이 생기고, 남의 말을 험담하는 버릇이 생기며, 아주 악하고 기괴한 성품이 나타납니다. 의가 없기 때문입니다. 속으로 오직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기만 생각하는 것이 곧 이기심이 아닙니까? 스스로는 대단히 이치에 맞는 말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듣기에는 너무나 저급합니다.

사람이 귀신의 화살을 맞으면 성품이 변합니다. 그 안에 의가 없기 때문입니다. 속에 의가 없으니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문제를 일으킵니다. 스스로는 옳다고 여기지만, 들어보면 온통 이기적인 논리요 오직 자기 자신만 아는 이야기뿐입니다.

호심경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화살이 아직 심장에 꽂히기 전에는 겨우 버텼을지 몰라도, 심장에 꽂히는 순간 그 사람 안에는 귀신의 형상이 자리 잡게 됩니다. 몸에 귀신이 있는데 어떻게 마음이 편하겠습니까? 속에 귀신이 있으면 마음이 매우 괴롭습니다. 마음이 괴로우니 일종의 정신적 도피처를 찾아보지만, 찾아도 여전히 마음은 괴로울 뿐입니다.

릭 조이너의 책에서 그 부분이 아주 탁월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귀신의 화살을 맞으면 귀신의 성품을 띠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그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진리를 수호하고 있다고 착각합니다. 사실은 교만하여 심각하게 선악을 분별하고 있는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심장에 귀신의 화살을 맞아서는 안 됩니다. 화살을 맞으면 속에서 의가 사라지고 오직 자기 의만 남게 되는데, 그것은 파멸입니다. 의의 호심경이 없는데 어떻게 정병이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고,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가 나타내야 할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고 장담하지만, 제 눈에는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고 그저 혼자만의 착각일 뿐입니다.

지각이 열리지 않는 것은 비극입니다. 항상 배우나 끝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는 까닭은, 하나님의 도리와 진리를 기준으로 삼지 않고 자기 자신의 생각을 기준으로 삼기 때문입니다. 가슴을 가리는 호심경을 벗어던졌으니, 앞가슴과 등이 온통 마귀의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된 것입니다. 쏘면 그대로 맞을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누가 손해를 봅니까? 자기 자신이 손해를 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 누릴 수 있겠습니까? 누릴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은 나를 너무 사랑하셔’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시는 것과, 당신이 하나님을 사랑하느냐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그것이 핵심입니다.

정병의 무장 3: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신을 신으라

저는 이러한 영적 현상들을 관찰하기를 좋아합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제가 관찰한 현상들이 그들에게 일어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전하는 것은 평안의 복음이 아니라 다단계나 폰지 사기 같은 것들입니다. 많은 이들이 복음의 신을 신지 않고, 잘못된 복음을 전하여 저주를 받습니다. 복음을 잘못 믿으면 저주를 받을까요? 복음을 잘못 믿어도 저주를 받습니다.

우리 시대에 복음이 무엇인지 극도로 혼란스럽습니다. 복음을 전하지 않는 편이 나을 지경입니다. 어떤 분은 제게 “목사님, 제가 복음을 안 전할 때는 괜찮았는데, 복음을 전하고 나니 그 사람 형편이 너무 비참해졌어요”라고 말합니다. 복음이 비참해지는 복음입니까? 재앙의 복음입니까? 그것은 ‘화음(禍音, 재앙의 소리)’이지 복음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평안의 복음입니다.

어떤 자매의 아버지가 저를 찾아온 적이 있습니다. 딸이 저를 따라 예수님을 믿는 것을 반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왜였을까요? 그의 삼촌이 예수를 믿은 후 평생 재수 없는 일만 겪었기 때문입니다. 자기 딸이 삼촌처럼 불행해지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입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그가 믿은 것은 참된 복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복음에 대해 진정 어떻게 알고 계십니까? 여러분의 복음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저는 앞서 18강에 걸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사도 바울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복음은 무엇입니까? 많은 이들이 병에 걸려놓고 “병이 복음이다”라고 말합니다. 얼마나 혼란스러운 소리입니까? 그것이 평안의 복음입니까? 온통 영적 분위기를 흐려놓고 있습니다.

우리 중에도 부모님이 사역자인 형제자매들이 있습니다. 그 사역자 부모님들이 성경을 정말로 깊이 연구하셨을까요? 그 자녀들이 주님을 믿고 난 후, 자기 아버지가 전한 복음과 우리가 전하는 복음이 완전히 다른 복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제 말만 듣지 마시고, 성경을 깊이 상고하여 제 말이 맞는지 직접 확인해 보십시오.

예를 들어 육신을 처리하려 합니까? 처리하지 않습니다. 육신을 처리하지 않고 어떻게 복음의 유익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평안의 복음, 병 고침의 복음, 육신을 쳐서 죽이는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성령으로 육신을 죽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승리하게 하심은 절대적인 진리입니다.

평안의 복음을 전하십시오. 우리가 믿는 복음은 평안과 기쁨의 복음이요, 치유의 복음이며, 부족함이 없는 복음입니다. 들리는 모든 것이 좋은 것뿐이며 나쁜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어떤 좋은 것에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이것을 변질시켜 ‘가정의 복음’ 따위로 만듭니다. 성경 어디에 그런 것이 있습니까? 가정 제단을 쌓아야 한다며 온갖 것들을 만들어 내는데, 저는 성경에서 교회가 아닌 가정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구절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섬겼던 한 목회자는 훗날 교회에서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이 첫째, 가정이 둘째, 교회가 셋째다.” 성경에 그런 말이 있습니까?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가정이 둘째고 사업이 넷째라고 가르치는 그것이 복음입니까? 여러분, 그에게 재앙이 닥쳤을 때 그는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복음을 변질시켰기 때문입니다.

다시 반복합니다. 복음을 잘못 믿으면 저주를 받고, 복음을 잘못 전하면 더 큰 저주를 받습니다. 이 말을 평생 기억하십시오. 복음을 잘못 전할까 두렵다면, 복음이 진정 무엇인지 제대로 깨달으십시오. 그 목사는 병원에 암 환자를 심방 가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왜 우리 교회에 다니면서 암에 걸렸을까요?” 암이 저주라는 말은 입 밖으로 내지도 못합니다. 그 사람의 악습과 내면의 극심한 이기심, 독선, 자기 의를 한 번도 다루어 준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암에 걸린 채 “이것도 복음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암이라는 재앙의 소식이지 결코 복음이 아닙니다!

정병의 무장 4: 믿음의 방패

믿음의 방패에 대해 말씀합니다.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에베소서 6:16)

이것은 정병의 무장이며, 정병에게는 반드시 믿음의 방패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믿음이란 결코 포기하지 않는 신뢰입니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굳게 믿는 것, 그것이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을 향한 내 안의 신뢰를 흔들 수 없게 합니다. 진리가 내 안에 있고, 하나님의 의가 내 안에 있으며, 하나님의 공의로운 기준과 예수 그리스도의 평안의 복음이 내 안에 있을 때, 비로소 하나님을 굳건히 신뢰하게 됩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 제게 며느리를 주십시오. 하나님이 며느리를 주실 줄 믿습니다”라고 구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며느리 복음’이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며느리를 얻으면 모든 것을 얻는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며느리가 들어와서 끝없는 갈등과 싸움이 시작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렇게 구하고 나서 “하나님, 왜 제게 이런 며느리를 주셨습니까? 예전에는 참 평안하고 좋았는데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라고 탄식합니다. 도대체 무엇을 믿은 것입니까?

믿음이란 무엇을 믿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진리의 허리띠, 의의 호심경, 평안의 복음 위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싸워 승리하는 자가 약속을 얻는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기 욕심을 따라 온갖 조잡한 것들을 배워서 그런 것들만 구합니다. 그런 것을 얻었다 한들 그것이 무엇을 증명합니까?

저는 성경에서 그런 식의 믿음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믿음의 훈련 삼아 해볼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당신의 핵심적인 추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마귀의 표적이 되지 않고 배기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한 번, 두 번, 세 번 긍휼을 베풀어 주셨다고 해서 그 긍휼이 영원히 지속되겠습니까? 긍휼을 입고 나서도 여전히 자기 욕심만 구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믿음의 방패는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하고 견고하게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준과 말씀은 무엇을 말합니까? 우리 안에서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이어야 합니까? 바로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내야 함에도, 수많은 형제자매들이 “이것을 원합니다, 저것을 원합니다” 하며 예수 믿는 사람 같지 않은 것들을 구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저는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여러분이 구하는 것이 진정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까?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인데, 사람들은 이것을 왜곡합니다. “이삭도 아내를 구하지 않았습니까?”라고 묻습니다. 이삭이 아내를 구한 일과 당신이 며느리를 구하는 욕심에 무슨 공통점이 있습니까? 아무런 공통점이 없습니다.

정병의 무장 5: 구원의 투구

정병의 무장에는 믿음의 방패, 의의 호심경, 진리의 허리띠, 평안의 복음의 신, 그리고 구원의 투구가 있습니다.

저는 지난 세월 동안, 그저 죽어서 천국에 간다는 식의 구원관이 사람을 대단히 나쁘게 만든다고 느꼈습니다. 사람이 얼마나 이기적으로 변합니까? 주님을 믿는 목적이 오직 자기 하나 천국 가기 위한 것이 됩니다. “나는 구원받았으니 죽으면 천국 간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구원입니까?

여러분, 화인 사명신학의 구원관은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나타내고,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사람인지 귀신인지 모를 흉측한 모습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온전한 형상을 살아내야 합니다. 이리저리 뜯어보아도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내는 것, 그것이 참된 구원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시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혀 마귀 사탄을 멸하고, 마귀의 간계에 넘어가지 않으며,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내게 하시는 것, 이것이 바로 구원의 투구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낼 수 있다고 믿습니까? 그것을 믿는다면 이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살아가십시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사는 것이 손해를 보는 일입니까? 우리 머릿속에 든 생각들을 점검해 보십시오. 구원의 투구를 쓰십시오. 우리 중에는 온갖 교단과 배경에서 온 형제자매들이 많습니다.

예수를 수십 년 믿어도 변하지 않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내지 못하고, 아는 것은 하나도 없고 일은 제대로 못 하면서 기도하는 데만 일등인 모습입니다. 틈만 나면 환상을 보고 성령의 감동을 느낀다고 하지만, 삶을 보면 찢어지게 가난하고 바라보기조차 답답합니다. 물어보면 진리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진리의 허리띠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의의 호심경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저 입을 열어 유창하게 기도할 줄만 압니다.

우리 중 한 자매가 간증하기를, 이전 교회의 한 자매는 기도를 기가 막히게 잘했다고 합니다. 입을 열면 한 시간 동안 같은 말을 반복하지 않고 막힘없이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기도를 잘하던 자매가 우리에게 와서 사역을 받게 되었는데, 우리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음란물을 즐겨 보는 심각한 음란의 문제가 있었고 고치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다 삶에 소위 ‘백마 탄 왕자’가 나타나자 주님을 버리고 그를 따라가 버렸습니다. 그 기도는 무엇을 위한 것이었습니까? 자기 과시였습니다. 그것이 구원입니까? 하나님의 형상입니까?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기도에 불과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종교적인 껍데기는 우리 가운데서 통하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구원의 투구를 쓰고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내야 합니다. 동방번개든, 전능신교든, 여호와의 증인이든, 그 어떤 이단 출신이 이곳에 와도 상관없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다시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내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진리의 허리띠, 의의 호심경, 평안의 복음의 신, 믿음의 방패, 그리고 구원의 투구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다시 입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내야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내지 못한 채 그럴듯한 말만 늘어놓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오늘날 겉으로는 정통처럼 보이는 신앙도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이라는 구원관으로 달아보면 함량 미달인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온갖 잡다한 것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저를 부르셔서 섬기게 하신 것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성경을 상고하고 말씀을 읽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산 자의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하셨음을 감사드립니다. 종교적인 열심만 늘어놓는 것은 무익합니다. 기도를 유창하게 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형상이 나타납니까?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기도의 감투만 쓰고 있지 마십시오. 그것은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정병의 무장 6: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

성령의 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영이요, 생명이며, 우리의 길이요, 곧 하나님의 도(道)입니다. 성령께서 오신 목적은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사 하나님의 도를 깨닫게 하시는 것이며, 이것이 핵심입니다. 성령의 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성적 지각으로 말씀을 깨닫는 것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과거 어떤 목회자들은 머리로 예수를 믿지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럼 발뒤꿈치로 믿으라는 말인가? 아니면 엉덩이로 믿으라는 말인가?’ 머리로 믿지 않을 거라면 하나님께서 왜 지각을 주셨겠습니까? 베이징 원인의 뇌를 주신 것입니까?

성령의 검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 말씀은 엄청난 능력이 있습니다. 릭 조이너의 『마지막 대결』을 보면, 주인공이 성령의 검을 짚고 영적인 산을 오르며 검에 의지해 자신을 굳게 세우고 조금씩 위로 올라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성령의 검은 능력의 원천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성령으로 충만해야 하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고 성령을 따르는 자에게는 생명과 평안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은 영이요 생명이며, 예수님은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 중에는 우리가 차마 듣기 힘들어하는 말씀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이것도 버리고 저것도 버리라 하셨지만, 우리는 아무것도 내려놓지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버리지 않는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버려야만 온전히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버리지 않으면 얻지 못하는데도 사람들은 믿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주님의 크신 능력 안에서 강건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여호수아서를 보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이 백성을 거느리고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라.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라.” 얼마나 위대하고 놀라운 말씀입니까!

손에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쥐십시오. 마음속에 하나님이 계시하신 말씀들을 가득 채우십시오. 비록 믿기 어렵고 삶에 적용하기 힘들며 담대함이 서지 않는다 할지라도, 예수님의 말씀이기에 순종하여 실행하십시오. 마태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마가복음을 정독하십시오. 온통 예수님이 하신 말씀으로 가득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우리도 말하고, 예수님이 행하신 대로 우리도 행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친히 본을 보여주셨고 새로운 살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붙들고 실행하십시오. 불가능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실행하기만 하면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습니다.

정병의 무장 7: 성령 안에서 여러 가지로 기도하라

성령 안에서 여러 가지로 기도하라는 것은 아들의 취업이나 장가가는 일, 혹은 며느리가 아이를 낳지 못해 아이를 구하는 식의 사소하고 잡다한 개인적 기도 제목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 안에서 무시로 여러 모양으로 기도하는 목적이 무엇일까요? 본문은 이를 중보기도라고 부릅니다. 사도 바울이 왜 중보기도를 가르쳤는지 그 이유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기도의 목적은 우리 모두가 하나의 비전, 하나의 사명을 품게 하기 위함입니다.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까? 교회의 하나 됨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또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릴 수 있는 언변을 사역자에게 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것저것 세상 것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승리하는 교회를 세우고 그리스도께 속한 정병이 되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결코 본질을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온몸에 병이 든 어떤 사람이 “목사님, 저를 위해 중보기도 좀 해주세요”라고 부탁했습니다. 제가 “그럼 당신은 무엇을 합니까?”라고 묻자, “목사님이 기도해 주세요, 저는 휴대폰 보느라 기도할 시간이 없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런 중보기도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성경에서 예수님이 무엇이라 말씀하셨는지 기억하십시오. “너희는 이런 것들을 구하지 말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날마다 육적인 것만 구하면서 응답을 받았습니까? 받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구하고 승리하는 교회를 세우기를 구한다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실 것입니다.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 물정을 모르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의 비전, 하나의 사명을 품으십시오. 승리하는 정병의 교회를 세우도록 기도하십시오. 제가 진리를 명확히 선포하고 복음의 비밀을 온전히 밝힐 수 있도록 저를 위해서도 기도해 주십시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형제자매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 기도는 저 혼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영적 유익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

인간관계는 가장 좋은 시험대다

인간관계는 신앙의 가장 훌륭한 시험대입니다. 어떤 이는 “목사님, 저는 이미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라고 말하지만, 그의 인간관계를 살펴보면 부모와의 관계도 엉망이고, 자녀와의 관계도 나쁘며, 이웃, 직장 상사, 부하 직원과의 관계도 온통 깨어져 있습니다. 거기에 무슨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이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낼 수 있습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주 밖이 아니라 주 안에서 순종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자기 힘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왜 할 수 없을까요? 마귀가 부모와의 관계를 파괴하려 들기 때문입니다. 오직 싸워 승리해야만 관계를 온전히 세울 수 있습니다. 마귀의 온갖 불화살과 간계를 능히 이겨내야 합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여러분은 이것을 행할 수 있습니까? 싸워 승리하지 못하면 결코 할 수 없습니다.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여러분은 이렇게 살 수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이 없고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마귀가 던진 작은 거짓말 하나에도 모든 것이 무너지고 맙니다. 상전과의 관계도 망치고, 종과의 관계도 파탄 나고 맙니다.

우리가 싸워 승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영적 승리에는 두 가지 면이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공중의 통치자들과 권세자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대적하여 싸우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 내면의 사고체계가 온통 세상적인 것으로 가득 차 있다면, 악한 자의 손아래 굴복하여 그리스도의 종이 아닌 마귀의 종노릇을 하게 됩니다. 삶이 어떻게 온전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형제자매들 가운데 내면의 세상적인 논리를 완전히 쳐서 멸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채워 넣은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여러분이 참으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었다면, 남의 집 종살이를 하더라도 가장 뛰어난 종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주인이 되어 수많은 종을 거느린다 해도 가장 훌륭한 주인이 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머릿속에 더 이상 세상의 논리 체계가 자리 잡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 싸움 속에서 한편으로는 악한 영들과 싸우고,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안의 육신에 속한 것들을 쳐서 죽여야 합니다. 육에 속해 있으면 얼마 못 가 속아 넘어가게 됩니다. 말씀에 깊이 뿌리내리지 않고 헛된 것만 좇다가는 다단계나 폰지 사기에 쉽게 걸려듭니다. 스스로는 좋은 의도로 남을 돕는다고 생각하면서 남들까지 다단계 사기 속으로 끌어들입니다. 이 모든 것이 세상적인 욕심 때문입니다. 세상 것에 대해 싸워 보았습니까? 싸우지 않았습니다. 이미 몇 번이나 사기를 당해놓고도 또 속으시겠습니까?

인간관계는 매우 훌륭한 영적 시험대입니다. 마지막으로 권면합니다. 여러분은 진정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내기를 진심으로 사모하십니까? 진정 사모한다면 어떻게 추악하고 부끄러운 짓을 행할 수 있겠습니까?

에베소서 6장의 말씀처럼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전신 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러닝셔츠에 슬리퍼 차림으로 약속의 땅에 들어가려 하지 마십시오. 그런 차림으로 들어갔다가는 원수의 밥이 될 뿐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다시 한번 경계하십시오. 돈을 내고 회원이 되면 가족 모두가 혜택을 보고 자기도 부자가 된다는 식의 유혹은 생각할 필요도 없이 다단계 사기입니다.

감사하게도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낼 수 있습니다. 무엇이 당신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내지 못하게 막고 있습니까? 육신에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내면에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와 복음과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내기 위해 반드시 하나님이 주신 전신 갑주를 입고 승리하는 정병이 되십시오. 아멘!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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