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Q1:老师,上一章我对“量器的”理解,就是用神的话去衡量出来的结果。您还说,人如果不蒙福,就是量器坏了,也就是人衡量的标准出了问题,对吗?
其实,神最痛恨的就是大小两样的法码,人衡量人的时候,总是胳膊肘往自己这边拐,判断的标准就是自己发明的标准,也是照着自己自私的标准去衡量,所以这是个很严重的问题。
因此,这不是说量器坏了,而是他觉得我这么衡量多好呀!他就想如果你房子的产权换成我的名字,那该多好!他想的倒是挺美,所以大家要知道,人不蒙福,是因为量器是人自私发明的量器,是以自己为标准的。
你看有一些人,想占人家的便宜,结果没占着,就气得够呛!那人家的房子没划在他的名下,也气得够呛!大家琢磨这件事,你就会发现:人都不会觉着自己错,就算他的歪理都不知歪到哪里去了,但他还是觉得自己对。
Q2:老师,世上很多问题都与“马”有关系,这“马”具体代表了什么呢?
马代表了世界,代表了肉体。我们常常说这个人很“老马”,就是说这个人体贴肉体、爱世界。所以神说:“不是靠势力,不是靠才能,不是靠车,不是靠马,而是靠神的灵”。
Q3:老师,您说对付肉体,一定要伴随医治释放,这是硬币的两面。我理解的是:当懒惰、挑剔、抱怨、论断等属灵恶习来的时候,可以找牧者或者自己方言祷告,靠圣灵胜过去,对吗?但是您又说:属肉体的东西,自己很难改!请问这是怎么回事?
千万要记住,赶鬼很容易,赶自己却很麻烦,那为什么鬼来找你呢?因为你属肉体,肉体就是你自己,就是你与生俱来的那套东西。所以要靠着圣灵治死肉体的邪情私欲,这回你能理解了吗?
那怎么治死肉体的邪情私欲呢?第一靠悟性,认识神的话,第二就是透过祷告,如果你悟性能通,那早就通了,如果你悟性不通,那就得靠牧者的牧养!那在牧养过程中一定会起冲突,因为属肉体的人不可能不起冲突。
所以不要自己在那对付肉体,当然了,你需要自己祷告,需要自己读《圣经》,但是你还需要牧者的带领,需要我带着你查圣经,千万不要独自修行!
Q4:老师,您得新冠时,自己是怎么想的?您不怕死,认为即使得新冠死了,也是与神同在吗?如果是我,自己就害怕没活在神心意里,最后到不了神那里。
在我得新冠的时候,就觉着自己很多地方没整对,于是每天悔改,有的时候自己都不知道在悔改什么!但是我不怕死,我也不觉得我回不到神那里。
因为神是救我的神,不是害我的神!我信靠祂不是因为我做得够伟大,而是因为我很肮脏、污秽,很多东西没整对,这也是华人命定神学的黄金法则。
不像有些人,即使得了癌症还觉着自己极度爱神。我就觉得我爱神爱得不够,还差很远!所以我在得新冠的时候就反思自己,人一定要好好地反思自己。
后来我好了,就深深地了解了一件事:人活着,就是在劳碌中喜乐,而不是在劳碌中焦虑,我就是不想做“焦裕禄”,我想做“喜乐禄”。
Q5:老师,牧师如果被老马抓走,那他是去老马那了吗?
那他不是去老马那,还能去哪呢?我告诉你,做基督徒最要命的就是自义,觉着自己千真万确。有一些弟兄姐妹,就觉着自己千真万确,什么都是对的,拥有绝对的真理,这就麻烦了!人立自己的义,就不求神的义,一个立自己的义的人肯定去老马那里。
现在那些建造教会的人,很多时候都觉着自己拥有绝对的真理。一个不查《圣经》的教会,还觉得自己拥有绝对的真理,这不是很荒谬吗?
Q6:老师,您之前说人一天吃一顿就够了,这样不饿吗?不会导致营养不良吗?
傻孩子,现在人的病都是因为营养过剩导致的,你傻成啥样了?竟然还认为现在的人会营养不良。人不营养过剩就不错了!竟然还认为一天一顿饭会营养不良,人营养过剩就得多得病!
那你不试试怎么知道呢?我这么说是实践出来的,之前我也不是天生一天一顿饭,前一段时间我还试过两天一顿,那也没怎么样!所以这是什么脑子?我真的很感慨!
小时候,我们家附近有六百户人家,但发现也没有人得过糖尿病,以前都不知道糖尿病是怎么回事?后来有一个人得了糖尿病,大家都笑话他说:“他家里生活太好了”。那现在大家生活都好了,所以糖尿病变成了一个普遍的现象。糖尿病就是血糖高、血脂高、血压高,都是营养过剩导致的。
然而现在还有人认为,一天一顿饭会营养不良,这是什么脑袋?其实在我得新冠的前一天,别人点了外卖,于是我们一起吃了宵夜,那个时候,其实白天已经吃过饭了,结果和我一起吃宵夜的人第二天就发烧了,接着我第三天发烧得了新冠,这都是吃导致的,如果我那天不吃,应该避免得新冠。
Q7:老师,本章第六节说:“套着黑马的车往北方去,白马跟随在后。”第八节说:“他又呼叫我,看那往北方去的,已在北方安慰我的心。”老师,往北方的去的不是老马吗?你怎么读出来,往北方去的是胜过老马呢?是因为“在北方安慰了我的心”吗?
老马被制服了,老马如果不被制服,那就麻烦了。我来给你梳理一遍,“那壮马出来,要在遍地走来走去,套着黑马的车往北方去。”《启示录》里黑马指经商赚钱的,牠跟商业经济紧密相关。
然后“白马跟随在后”,在《启示录》里,白马在前,黑马在后,我们不管谁在前在后,白马是很厉害的!牠几乎不打败仗。白马是释放谎言的,而黑马是掌管经济的,所以世上很多人赚钱就像大风刮来似的。
然后,壮马、有斑点的马应该是灰马,牠代表很多的疾病,牠出来在遍地走来走去,释放很多的败坏、瘟疫,还有各种各样的灾祸。
“看哪,往北方去的,已在北方安慰我的心。”咱们一起商量一下,怎么解读这件事呢?那神的心怎么才能够得安慰呢?就是得胜,胜过这个“往北方去的”!那至于这句话翻译过来有没有文字上的差异,其实有差异也没关系。
大家得知道,北方的极处是撒但的宝座,那“往北方去的”是指往北方去的老马吗?不是!而是指将自己钉在十字架上,受死埋葬,这就叫往北方去了。我们中国人常说的“上西天”了,其实是“上北天”,那是撒但的宝座。
你慢慢琢磨,“往北方去的已在北方安慰我的心,”这是指着耶稣基督说的,这样解释就合理了。相反,如果是说:往北方去的老马安慰了神的心,那就太奇怪了。
这次我们的答疑就到这,愿神祝福大家!弟兄姐妹再见!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우리는 함께 《스가랴서》 6장을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제가 이 장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한 가지 걸림돌이 있었습니다. ‘천사’, ‘환상’, 그리고 ‘네 대의 병거’와 같은 내용이 나오다 보니, 이 본문을 설교하기가 참 까다롭다고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결국 저는 그 뜻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 본문은 반드시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하는 관점에서 바라보아야만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장의 주제는 “순(다윗의 싹)이라 불리는 이가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리라”입니다.
스가랴가 비록 이 장을 기록했지만, 제 생각에는 본인조차 자신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다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는 단지 장차 아브라함의 후손이자 다윗의 자손인 한 분이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아 일어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게 되리라는 것만 알았을 뿐입니다. 그리고 이 ‘성전’은 예루살렘의 건물이 아닌 ‘교회’를 가리킵니다. 옛 예루살렘 성전은 사실상 큰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스가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실 것을 보았다
“그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순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 그가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고 영광도 얻고 그 자리에 앉아서 다스릴 것이요 또 제사장이 자기 자리에 있으리니 이 둘 사이에 평화의 의논이 있으리라 하셨다 하고” (《스가랴서》 6:12-13)
만약 《구약성경》에서 이 구절만 읽는다면, 우리는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며,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 후 사도들이 교회를 세우기 시작한 것을 보며 우리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구절에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한다’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교회’를 뜻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우는 것이 곧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예루살렘으로 성지순례 가기를 좋아합니다. 저 역시 예루살렘에 가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예루살렘에 순례하러 간다고 할 때, 그 성전 터에는 현재 이슬람 사원이 서 있고, 옛 성전 자리에는 통곡의 벽만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그곳이 과연 여호와의 성전일까요? 아닙니다.
훗날 제가 교회를 개척하고 세워가는 과정에서 하나님께로부터 한 가지 계시를 받았습니다. 우리가 예루살렘의 평안을 위해 기도한다는 것은 물리적인 예루살렘 땅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전이자 하나님의 교회인 교회의 평안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며, 그럴 때 복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하는 자가 반드시 복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교회라는 간판만 달면 다 교회일까요?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몇 가지 위대한 일을 이루셨는데, 그 첫 번째 위대한 일이 바로 ‘존귀와 영광을 짊어지신 것’입니다. 존귀와 영광을 짊어진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잘생긴 사람이 나타나서 멋진 설교를 한 편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존귀와 영광을 짊어진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영광을 얻으신 것을 가리킵니다. 그분은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려 우리를 위해 죽으시되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장사되어 음부에 내려가셔서 승리하셨으며,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사망을 이기신 첫 번째 분이시기에 존귀와 영광을 짊어지시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 어디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보다 존귀한 이름은 없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보다 영광스러운 이름은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걸 어떻게 압니까?”라고 묻습니다. 여러분이 귀신을 쫓아내 보지 않고 영적 세계에 들어가 귀신과 맞닥뜨려 보지 않았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가 얼마나 대단한지 결코 알지 못할 것입니다! 귀신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떱니다.
저는 하나님께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엔지니어 출신이라, 만약 순전히 이론적으로만 하나님을 믿으라고 했다면 믿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저는 단지 이론으로만 주님을 믿고 ‘죽으면 천국 가겠지’라고 생각하며 믿는 것이 아닙니다. 왜일까요? 내가 살아있는 동안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하는데, 죽어서 천국에 갈 수 있을까요? 그것은 너무 막연합니다. 그런 논리 체계로는 저를 설득할 수 없습니다.
훗날 《성경》을 읽으면서 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하신 복음이 능력의 복음임을 발견했습니다. 그분이 이 땅에서 행하신 일은 전무후무한 일이었으며, 그분은 몸소 존귀와 영광을 짊어지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당시 많은 목회자가 “생명이 온전하지 못하면 귀신을 쫓아낼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정말 터무니없는 말입니다! 생명이 온전하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뜻입니까? 그런데 귀신도 참 간사합니다. 귀신은 “너한테 아직 틈(열린 틈)이 있고, 너는 아직 부족해!”라며 참소합니다. 그러면 저는 귀신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집어치워라! 내가 온전해서 귀신을 쫓아내는 줄 아느냐? 아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의지하여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다.”
그러자 귀신은 또 이어서 말합니다. “사실 너도 지금 섬기고 있는 이 사람을 싫어하잖아.” 귀신이 제법 찌르고 들어옵니다. 육신적으로 보면 솔직히 그 사람이 얄미울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 뜻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마귀야, 물러가라! 이 자매는 반드시 자유케 되어야 한다!”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제 성격이 꽤 분명하지 않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너무나 큰 은혜입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얼마나 존귀하고 영광스러운지 잘 모를 수도 있습니다. 제가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주님을 알게 된 것은 정말이지 가문의 영광이자 감당할 수 없는 축복입니다. 그분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되셨다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저를 위해 능력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한번은 축사 사역을 할 때 귀신이 저를 속이지 못했습니다. 틈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제가 믿는 복음은 모든 원수 마귀를 짓밟는 하나님의 능력이기에, 귀신은 저만 보면 골치를 앓았습니다. 또 한번은 어떤 사람을 위해 치유와 축사를 할 때 한 떼의 귀신들을 보았습니다. 키는 1미터 남짓한 난쟁이 같았는데 얼굴은 원숭이 같았고, 두 다리로 서서 두 발톱을 축 늘어뜨리고 있었습니다.
사람의 눈으로만 보면 눈빛에 번뜩이는 흉포함을 제외하고는 꽤 귀엽게 생겼습니다. 그런데 그놈들이 “아이고, 빨리 도망가자. 이 사람을 만나다니 정말 재수 없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제 이름을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가 이토록 대단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고자 하십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 거룩한 프로젝트에 동참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제사장의 직분과 왕의 직분을 모두 얻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자 모두 왕자요 공주이므로 왕의 직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왕의 직분과 제사장의 직분이 그리스도인 한 사람 안에서 완벽하게 하나를 이루어 “이 둘 사이에 평화의 의논이 있으리라”는 말씀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왕의 기름부음을 받으면 왕이 되고, 제사장의 기름부음을 받으면 제사장이 되었지만, 지금의 그리스도인은 두 직분을 겸하고 있으니 실로 놀라운 일입니다!
한 가지 조금 아쉬운 점은, 우리가 사역을 하면서 귀신을 쫓아내는 일이 점차 줄어들었다는 것입니다. 요즘은 훈련할 기회가 그리 많지 않지요? 기회가 많아지면 여러분도 서서히 그 권세를 실감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다윗의 자손이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고 영광을 얻으며, 그 자리에 앉아 왕권을 행사하고 제사장 직분을 감당하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가 하나님을 믿음으로써 우리 몸에 붙은 귀신의 문제뿐만 아니라 육신의 문제까지 해결함을 받게 됩니다. 스가랴가 보았던 다윗의 자손, 그분이 바로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먼 데 사람들도 와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
“먼 데 사람이 와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니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줄을 너희가 알리라 너희가 만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할진대 이같이 되리라” (《스가랴서》 6:15)
이 구절은 바로 우리를 두고 하신 말씀이 아닙니까? 우리는 지구 반대편의 아주 먼 곳에 있으면서도, 모두 함께 와서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합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주의 깊게 청종하는 자라야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합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먼 곳에 있더라도, 만군의 여호와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으로 이 땅에 보내셨음을 알고,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가운데 있음을 알며, 이 성전을 건축하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직분임을 아는 자들입니다! 그런 자 앞에서는 귀신도 두려워 떨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게 됩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라고 묻습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교회 안에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신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사람들은 이 문제를 너무 복잡하게 만듭니다. 제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교회 안에 있다는 뜻이며,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주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뜻이지, 예수님이 작아져서 우리 몸속으로 들어오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과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그분의 성전을 건축할 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려 하셨음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할 때 귀신이 벌벌 떠는 것은 여러분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위대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여러분이 귀신보다 더 강하다는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사 우리를 위해 죽으시되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고, 장사되셨다가 음부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음부의 권세를 이깁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이 죽음을 두려워한다면 이 얼마나 비극입니까? 저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그리스도인을 많이 보았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하는 사람은 자신을 산 제물로 드려야 하며, 결코 죽음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이제 먼 곳에 있는 우리가 이 일을 이루어야 하며, 이 일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제가 처음 교회를 개척할 당시에는 상황이 몹시 황폐했습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겠다는 굳은 결단만 있다면 이 일은 반드시 성취됩니다. 싱가포르는 1제곱킬로미터마다 교회가 하나씩 있을 정도로 땅값이 금값인 곳입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교회가 공업 빌딩 안으로 들어갔고, 공업 빌딩마다 교회와 사당이 밀집해 있어 밀도가 매우 높습니다.
처음 교회를 시작할 때 그런 광경을 보고 마음이 몹시 착잡했습니다. 다른 대형 교회들의 화려한 조명과 무대, 인플루언서보다 더 멋지게 드럼을 연주하는 드러머들, 뛰어난 찬양팀과 음향 장비, 마이크 시설을 보았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뜻이 거기에 있지 않음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화려한 무대나 조명을 겨루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겨루며, 하나님께서 과연 이 교회 안에 거하기를 기뻐하시는가를 바라봅니다. 그것이야말로 비교할 수 없이 좋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교회를 세워야 할까요?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청종하고, 원수 마귀를 이기며, 사람의 육적인 정욕과 탐심을 쳐서 복종시키는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존귀와 영광을 보게 되고, 제사장과 왕의 직분을 보게 되며,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곳에서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일입니다!
저는 지금도 몹시 황폐한 상황 속에서 교회를 개척할 수 있도록 제게 그런 믿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가 왜 교회를 개척했겠습니까? 당시에 사람들이 세워놓은 교회들의 모습에 만족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제게 다소 패기가 넘쳤던 면도 있지만, 그 당시 교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교회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가 베드로가 세운 교회와 비슷해 보입니다.
우리가 세우는 교회는 사도 바울이 세운 교회와 같습니다. 지금 얼마나 좋습니까? 비록 우리가 수만 리, 혹은 수천 킬로미터 멀리 떨어져 있을지라도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는 함께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워갈 수 있으며,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곳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우심을 바라볼 수 있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 갈 길이 멀기에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더욱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수요일과 금요일에 성경공부를 하며, 지금처럼 구약의 말씀을 깊이 상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극히 무겁게 여깁니다. 형제자매 여러분도 이와 같은 진지한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교회를 세우려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이 되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화인 사명 신학(Chinese Mingding Theology)입니다.
영광의 관이 우리를 위해 예비되어 있다
“사로잡힌 자 가운데서 바벨론에서부터 돌아온 헬대와 도비야와 여다야가 스바냐의 아들 요시아의 집에 이르렀나니 너는 이 날에 그 집에 들어가서 그들에게서 받되 은과 금을 받아 면류관을 만들어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머리에 씌우고 말하여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순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
그가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고 영광도 얻고 그 자리에 앉아서 다스릴 것이요 또 제사장이 자기 자리에 있으리니 이 둘 사이에 평화의 의논이 있으리라 하셨다 하고 그 면류관은 헬렘과 도비야와 여다야와 스바냐의 아들 헨을 기념하기 위하여 여호와의 전 안에 두라 하시니라” (《스가랴서》 6:10-14)
이 말씀을 읽고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저는 영광의 관이 대제사장의 머리에 씌워졌지만, 결국 여호와의 전 안에 기념물로 보관되며 헬대, 도비야, 여다야, 그리고 스바냐의 아들 헨(요시아)에게 돌아간다는 사실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왜 그것이 그들에게 돌아갈까요? 하나님께서 영광의 관을 우리를 위해 예비해 두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여호와의 전에 기념으로 보관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일까요? 헬대, 도비야, 여다야, 요시아 이 네 사람은 바벨론에서 돌아올 때 수많은 금은보화를 가지고 와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 헌신하고자 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스가랴를 요시아의 집으로 보내셨습니다. 그곳에 네 사람이 모여 있었는데, 스가랴가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성전을 어떻게 지을지 의논하고 있었습니다. 스가랴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너희가 바치고자 하는 것을 가져오라. 내가 관을 만들리라.” 그것은 진주, 마노, 보석 등으로 장식된 매우 값진 왕관이었습니다.
스가랴는 이 면류관을 만들어 헬대, 도비야, 여다야, 요시아에게 돌리되 하나님의 성전에 기념으로 두게 했습니다. 저는 이 본문을 해석할 때마다 이 영광의 관을 제 머리에 씌우기를 좋아합니다. 여러분은 ‘왜 그렇게 김칫국을 마시느냐’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성경》은 옛사람들만을 위해 기록된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를 위해 기록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자신을 헌신하여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고자 한다면, 그 영광의 면류관은 바로 우리의 것입니다. 우리가 바로 이 시대의 헬대요, 도비야요, 여다야요, 요시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영광의 면류관을 예비해 두고 계십니다.
제 마음속에는 깊은 갈망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고난을 조금 더 받는 것은 전혀 상관없지만, 훗날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착하고 충성된 종아, 들어와 이 영광의 면류관을 받아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것이 제 평생의 소원입니다!
세상의 수많은 일은 참으로 헛됩니다. 자고 일어나서 삼시 세끼 밥 먹고 쉬는 것의 반복인데, 그렇게만 사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래서 제 마음은 하루라도 빨리 주님께로 가기를 깊이 갈망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왜요, 일찍 죽고 싶으신가요?”라고 묻습니다. 죽고 싶다는 뜻이 아니라, 하루빨리 그 영광의 면류관을 받고 싶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제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오늘 저를 부르신다면 저는 단 하루도 지체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 살아있는 동안에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기 위해 하루하루를 살 것입니다. 저는 오직 이 목적을 위해 삽니다!
그렇다면 어떤 성전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요? 사람들을 헌신하는 자로 훈련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을 헬대, 도비야, 여다야, 요시아처럼 훈련하는 성전입니다. 그들이 살아가는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성전을 건축하는 것이었고,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 역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사람이라면, 세상의 사소한 일들에 마음을 상해하겠습니까? 사람들은 온종일 부질없는 일들에 얽매여 얼마나 추하게 살아갑니까? 영광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집착하고 있는 것들을 한번 돌아보십시오.
저는 성도들이 이런 세상일에 매여 있는 것을 볼 때마다 마음이 무겁습니다. 부부가 모이면 다투지 않고는 못 견디고, 모녀가 함께 있으면 말끝마다 가시를 돋우며 싸우고 다투고 소란을 피웁니다. 온통 쓸데없는 일들뿐이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비극입니까? 왜 인생을 이토록 무가치하게 낭비합니까?
여러분께 제안합니다. 내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이 문제를 확실히 정리해야 합니다. 어떤 이들은 은퇴할 나이가 되면 그저 편안하게 즐기며 노후를 보내다가 얼마 못 가 허무하게 세상을 떠납니다. 참으로 무의미하지 않습니까!
제가 목회하면서 상담했던 한 자매가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그녀의 직장 상사는 저와 비슷한 나이의 외국인이었는데, 늘 열정이 넘쳐 온종일 일에만 매달리다가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졌다고 합니다. 그렇게 밤낮으로 일한 목적이 무엇이었을까요? 세상일이 과연 그토록 가치 있는 것일까요? 그러나 그것이 그의 인생이자 사명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저와 성도 여러분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命定) 안에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사람이 복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살아가는 목적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살아가는 목적이 고작 그런 사소한 일들에 불과하다면, 악취를 풍기며 살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겠습니까? 온종일 헛된 것에 매달려 있으니 말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한 가지를 부르짖을 결단이 서 있습니까? 이 영광의 면류관을 사모하며 부르짖을 수 있습니까? 이 영광스러운 직분을 간구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의 가장 소중한 것을 하나님께 기꺼이 드릴 수 있습니까? 그렇게 드리는 것은 잃는 것이 아니라 얻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네 사람이 가장 귀한 것을 바쳤을 때, 하나님은 그들을 위해 면류관을 만드셨습니다. 이것이 어떤 논리입니까?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것을 빼앗으려는 분이 아니라,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자 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이 영광스러운 직분을 짊어지고 자신을 촛불처럼 태워 하나님을 위해 빛과 열을 내며 양 떼를 목양할 때, 하나님께서는 영원 속에서 우리를 위해 크고 무거운 상급과 영광의 면류관을 예비해 주실 것입니다. 그 면류관은 어디서 옵니까? 바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하겠다는 헌신의 결단에서 비롯됩니다!
저는 여러분이 인생의 목적을 명확히 깨닫기를 권면합니다. 그저 먹고사는 삶은 사실 별 의미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노후 대책을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합니다. 왜 늙어갈 준비만 하려 합니까? 이는 육신의 생각(말의 영)을 키우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사람은 영적으로 늙지 않는데 왜 늙음에 얽매입니까? 많은 이가 자녀를 통해 노후를 보장받으려 하는데, 이것은 휠체어에 앉아 남이 밀어주기만을 바라는 지극히 이기적인 생각 아닙니까? 그러한 노후 준비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의 삶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하루를 살아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 하루를 살아도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하기 위해 살며, 하루를 살아도 자신을 내어주는 삶을 삽니다! 만약 아직 드릴 것이 마땅치 않다면 먼저 자신을 말씀으로 잘 빚어내십시오.
저는 노후를 준비하기보다 영광을 키워가고 싶습니다. 늙어가는 것을 준비하기보다 영적인 젊음을 유지하고 싶습니다. 비록 나이가 들어도 결코 무기력하게 늙고 싶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그럼 나이 들면 어떡합니까?”라고 묻습니다. 저는 나이가 들어도 모세처럼 눈이 흐리지 않고 기력이 쇠하지 않을 것을 믿습니다. 제 하나님은 저를 다른 사람의 짐이 되게 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저는 이 땅에 사는 날 동안 매일 빛을 발하고 열정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며 도움이 필요한 영혼들을 섬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광의 면류관이 저를 위해 예비되어 있음을 확신합니다. 왜 무기력한 노후를 바라보겠습니까? 하나님은 제게 휠체어나 재앙이나 질병을 예비하신 것이 아니라, 찬란한 영광의 면류관을 예비해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지금까지도 결코 제가 늙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날마다 감사와 흥분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사역도 참으로 많습니다. 웬만한 젊은이들보다 더 많은 일을 해냅니다! 늙기 전에 교회를 세울 수 있었던 것이 감사하고, 당시 실직했던 고난 덕분에 이 영광스러운 직분을 얻어 주님을 뵈올 날까지 달려갈 수 있게 된 것이 참으로 다행입니다.
제 안에는 웅대한 계획이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헌신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재능을 아낌없이 드리십시오! 제가 하고자 하는 일은 사람들을 훈련하여 모두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닮아가도록 세우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목양입니다. 사람들이 태어나서 주님 앞에 갈 때까지 온전히 하나님의 영광으로 살아가도록 그들의 삶과 사역을 훈련하고자 합니다.
사람이 무지하다는 것은 참으로 큰 비극입니다! 무지하기 때문에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아갑니다. 영문도 모른 채 열 살이 되고, 스무 살이 되며, 대충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이혼하네 마네 갈등하며 살아갑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참으로 마음이 답답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결코 무지함 속에 머물지 마십시오. 지금 결단하십시오. “나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命定) 안에서 살리라! 나는 하나님을 위해 살리라!” 내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어떻게 복을 받을 수 있습니까? 바로 사명을 갖는 것입니다. “내가 이를 위해 태어났고 이를 위해 살아가며, 온 땅의 만민에게 복이 되리라!” 결단할 때 하나님께서 복을 부어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아브라함이 열어젖힌 믿음의 길입니다.
교회를 세우려면 육신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교회를 세우려면 반드시 사람의 육신(육적인 정욕)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매우 무지합니다. 교회는 지극히 거룩한 곳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성전이며, 하나님의 지혜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처소입니다. 교회의 가장 위대한 사역 중 하나는 사람 속에 감추어진 육신의 문제를 낱낱이 드러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머니와 딸이 마주 앉아 대화하다가 말이 조금만 엇갈려도 서로 다투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어머니도 마음이 상하고 딸도 괴로워합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요? 육에 속한 두 사람이 만나면 결코 평안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 육에 속한 사람들이 가득하다면 그 교회 역시 온전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사역자라면 자신이 세운 교회를 돌아보고 육신의 문제가 얼마나 다루어지고 있는지 점검해 보십시오. 교회를 세우려 할 때 육신의 세력인 ‘말(사탄의 영)’이 반드시 찾아옵니다! 그러면 교회는 순식간에 혼탁해집니다.
제가 코로나에 걸려 죽음의 문턱까지 갔을 때의 일을 나눈 적이 있습니다. 사실 저는 죽음이 두렵지 않았습니다. 코로나로 죽든 어떻게 죽든 주님과 함께 거하는 것이 훨씬 더 좋기 때문입니다! 당시 침대에 누워 있으면서 ‘내가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잘못했는가?’를 날마다 돌아보았습니다.
그 무렵 저와 동시에 코로나에 걸린 다른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며칠 지나지 않아 그 목사님은 세상을 떠났지만, 저는 살아남았습니다. 그 목사님이 개척한 교회는 성도들 간에 끊임없이 치고받고 싸우는 ‘용호상박(육적 혈투)’의 교회였습니다. 교회 안에서 육신적인 다툼과 갈등이 끊이지 않았기에 본인조차 자신이 세운 교회에 깊이 낙심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교회를 세울 때의 원칙은 분명했습니다. “나와 함께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기를 원하는 사람은 함께 가고, 원치 않는 사람은 어디든 원하는 곳으로 가도 좋습니다!” 우리 교회는 육신을 처리하는 일을 최근에 시작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철저히 다루어 왔습니다. 이렇게 교회를 세웠을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셨습니다. 교회를 세울 때는 반드시 육신의 문제를 뿌리 뽑아야 합니다.
“내가 또 눈을 들어 본즉 네 병거가 두 산 사이에서 나오는데 그 산은 구리 산이더라 첫째 병거는 붉은 말들이, 둘째 병거는 검은 말들이, 셋째 병거는 흰 말들이, 넷째 병거는 어룽지고 건장한 말들이 메었는지라
내가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물어 이르되 내 주여 이것들이 무엇이니이까 하니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하늘의 네 바람인데 온 세상의 주 앞에 서 있다가 나가는 것이라 하더라 검은 말은 북쪽 땅으로 나가고 흰 말은 그 뒤를 따르고 어룽진 말은 남쪽 땅으로 나가고 건장한 말은 나가서 땅에 두루 다니고자 하니 천사가 이르되 너희는 여기서 나가서 땅에 두루 다니라 하매 곧 땅에 두루 다니더라” (《스가랴서》 6:1-7)
이 말씀을 읽으면 다소 난해하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여러분뿐만 아니라 저 역시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저는 ‘말’에 대한 영적 의미를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말을 타서가 아니라, ‘말’은 《성경》에서 매우 중요한 영적 의미를 지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애굽으로 돌아가 말을 사는 것을 엄히 금하셨습니다. 나귀나 노새를 사는 것은 막지 않으셨지만, 말은 절대 사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이후 성경 여러 곳에서 말을 언급하며, 유명한 구절처럼 “병거를 의지하지 않고 말을 의지하지 않으며, 오직 여호와의 영으로 말미암아 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세상에서도 보십시오. 좋은 차를 ‘BMW(보마-보배로운 말)’, ‘마세라티’, ‘메르세데스 벤츠’ 등으로 부르듯 말과 관련된 이름이 많습니다. 성경에서 말은 인간의 세력, 재능, 육신, 그리고 손에 쥔 칼과 무력을 상징합니다.
본문에는 “땅에 두루 다니고자 하니”라는 흥미로운 표현이 나옵니다. 성경에서 ‘두루 다닌다’는 표현을 찾아보면 사탄을 묘사할 때 사용됩니다. 육신의 영인 ‘말’, 곧 마귀 사탄이 주님 앞에서 나와 온 땅을 두루 다니는 것입니다.
사탄의 세력인 말이 온 땅을 두루 다니며 무엇을 하겠습니까? 여러분이 성전을 건축하기 시작하면 이 말(육신의 영)이 반드시 찾아옵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를 이기지 못하면 결국 ‘말의 영에 사로잡힌 육적인 교회’를 세우게 되고, 사람들은 타락하게 됩니다. 세상의 논리 체계를 따라 교회를 세운다면 그것은 사탄에게 속한 교회이며, 그 교회의 목회자는 반드시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교회를 처음 시작할 때 저는 스스로 다짐했습니다. ‘나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교회를 건축하리라.’ 많은 목회자가 재앙을 만나 우울증에 걸리고, 암에 걸리고, 감옥에 가는 등 비참하게 무너지는 모습을 수없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스스로에게 경고했습니다. ‘절대 어리석게 행동하지 마라! 교회를 세우는 것은 불을 다루는 것과 같아서 결코 장난이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불장난을 하거나 교만 부리지 말고, 오직 말씀을 삼가 지켜 행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그 후 저는 이 육신의 영(말)과 치열하게 영적 싸움을 벌였고, 오랜 세월이 흐른 뒤 마침내 이를 굴복시켰습니다. 이것이 교회를 건축할 때 가장 중요한 핵심 개념입니다. 교회를 육신의 정욕으로 혼탁하게 만들지 마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목회자가 가장 먼저 큰 피해를 당하게 됩니다.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수많은 사역을 감당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람들을 훈련하는 교육을 지속해야 합니다.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모든 과정에서 철저히 훈련받고 목양받아야 하며, 육신의 정욕과 탐심을 쳐서 복종시켜야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는 60대, 70대 성도들도 계십니다. 여러분은 다른 어떤 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한 가지만 점검하십시오. ‘내가 지금 하나님의 뜻 안에 행하고 있는가? 내가 하나님의 말씀 안에 살아가고 있는가?’ 여러분이 말씀 안에 거한다면 평생의 모든 염려는 눈 녹듯 사라질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보좌에 앉아 계시며, 우주 만물이 그분의 것입니다. 그분의 능력은 광대무변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이 작은 일들조차 해결해 주지 못하신다면 어찌 하나님이라 부를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더 이상 자신을 얽매이지 말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 안에서 살아가며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십시오. 그리할 때 영광스러운 직분을 얻고, 영광의 면류관을 쓰며, 육신의 세력을 능히 이기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교회를 세우기 시작하면 사탄의 영(말)이 반드시 찾아옵니다. 여러분이 이 세력을 제압하지 못하면 그 영은 교회 안에서 풍파를 일으켜 교회를 피비린내 나는 혈투의 장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저와 같은 시기에 코로나에 걸렸던 그 목사님은 결국 갑작스럽게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육신의 세력에 사로잡혀 끌려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전을 풀이나 나무나 짚으로 지어서는 안 되며, 반드시 온전한 생명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교회를 세울 때 마귀 사탄이 땅을 두루 다니며 엿봅니다. 마귀는 육신에 속한 사람을 발견하면 즉시 “이 사람은 내게로 오라!” 하며 자기편으로 끌고 갑니다.
훗날 이 영(말)이 제게 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네가 교회를 세우는 것을 돕고 있는 중이다.” 가만히 보니 하나님의 말씀이 과연 그러했습니다. “말(사탄)에게 속한 자는 사탄에게로 돌아가고,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라!” 사탄의 것은 사탄에게,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는 영적 원리는 지극히 명확합니다.
우리가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릴 때 우리는 거룩해지며,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움으로써 거룩한 사명을 감당하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크신 지혜입니다. 우리는 성령을 의지하여 육신의 정욕과 탐심을 죽일 수 있으며, 이것이 바로 가장 위대한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따라서 교회 안에 분쟁과 다툼이 있다는 것은 그들이 육신에 속해 있다는 증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은 여러분과 제가 각자의 육신을 쳐서 복종시킬 때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사탄의 영이 온 땅을 두루 다니는 것을 무조건 나쁘게만 보지 마십시오. 그런 영적 존재가 있기에 사람 마음의 생각과 동기가 명백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에 품은 뜻을 낱낱이 드러내시는 분입니다! 질병에 걸리는 까닭도 여전히 육신의 생각에 사로잡혀 헛된 일에 매여 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사람들이 모인 곳에 문제가 없을 수는 없지만, 모든 문제의 뿌리는 바로 ‘육신’에 있습니다. 여러분이 육신의 정욕을 제어한다면 교회에 무슨 문제가 생기겠습니까? 여러분이 육신의 탐심을 쳐서 복종시키면 원수 마귀조차 여러분에게 굴복하여 조공을 바치게 됩니다!
한번은 제가 그 영에게 “너 요즘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소달구지에 멍에를 메우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소달구지를 메워서 무엇을 하려느냐?”고 묻자 “재물을 실어다 당신들에게 가져다주려고 합니다”라고 하더군요. 원수 마귀가 굴복하여 재물을 실어다 준다니 참으로 흥미롭지 않습니까!
제가 “왜 그것을 가져다주느냐?”고 묻자, “우리가 싸움에서 졌기 때문입니다. 수천 년 동안 패배해 본 적이 별로 없는데, 당신들에게 패하고 말았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세우는 분들에게 권면합니다. 여러분의 사역에서 가장 중요한 목양의 직무는 바로 육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를 세우는 데 있어 가장 핵심적인 일입니다! 우리가 육신의 세력을 이길 때 하나님께서 큰 위로를 받으십니다!
“그가 내게 외쳐 말하여 이르되 북쪽으로 나간 자들이 북쪽에서 내 영을 쉬게 하였느니라 하더라” (《스가랴서》 6:8)
‘북쪽으로 나간다’는 것은 사탄이 여러분을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직접 사탄의 진영으로 쳐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탄은 사람의 생각을 가장 잘 부추깁니다. 여러분이 사탄을 대적하여 나아간다면 사람의 생각을 쳐서 복종시켜야 하며, 그럴 때 승리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음부에 내려가신 것은 바로 사탄의 본거지로 쳐들어가신 것입니다. 북쪽 가장 먼 곳은 사탄의 보좌가 있는 곳입니다. 예수님은 육신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몸을 온전히 드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되심으로써 사탄의 권세를 멸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말’은 누구입니까? 사탄의 휘하에 있는 매우 강력한 장수입니다. 결코 단순한 말 한 필이 아니라 군대와 같은 무리입니다. 우리가 북쪽으로 나아갈 때 사탄을 이기고 육신을 이기게 되며, 그로 인해 하나님께서 참된 안식과 위로를 얻으십니다.
스가랴서를 이렇게 풀어 드리니 이제 명확히 이해가 되시지요? 우리 주 예수님은 친히 교회를 세우시는 주님이시며, 우리는 주 예수님의 교회를 함께 세워가는 제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육신의 영을 이겨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는 순식간에 혼탁해지고 맙니다.
어떤 이들은 “교회를 세우고 육신을 처리하는 것이 밥을 먹여 줍니까?”라고 묻습니다.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이것이 삶의 근본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 중요하겠습니까? 가난한 이유는 마귀의 생각에 묶여 있기 때문이며, 질병이 많은 이유는 여전히 육신의 생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미련하게 행동하는 것 역시 육신에 속한 세상 논리 체계를 따르기 때문입니다.
지혜로워지기를 원한다면 먼저 육신의 생각을 이기십시오! 부유해지기를 원한다면 먼저 육신의 영을 굴복시키십시오! 복음 안에는 가난이 없으며 복음 안에는 질병이 없습니다. 가난과 질병은 모두 육신의 어둠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오늘 나눔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