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서론
이번 주에는 여러분과 아주 훌륭한 주제인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기로 뜻을 정하다”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이는 솔로몬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포한 말씀입니다. 지난주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계속해서 성전과 관련된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아직 온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 있을지 모르지만, 깊이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솔로몬이 성전 건축을 마치고 언약궤를 성전 안으로 들여놓았을 때,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 찼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곳에 모였는데,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 임하자 제사장들이 능히 서서 섬기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가 성전에 가득하여 서 있을 수조차 없었던 것입니다. 참으로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당시 우리가 교회를 개척할 때 저에게는 한 가지 갈망이 있었습니다. 어떤 갈망이었을까요?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여 제사장조차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할 정도의 교회를 건축하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제 마음에 그러한 소망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가 세워진다면 제사장이 설 수 있는지 없는지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컬어지는 이 성전을 향해 손을 들고 기도할 때 응답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여러분이 세상의 각기 다른 구석에서 이 성전을 향해 손을 들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치유해 주시며 긍휼을 베풀어 주십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축복했는지 아십니까?
사람의 일생에서 마주하는 모든 문제는 이 성전이 없다면 참으로 절망적입니다. 비록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 해도 성전이 없으면 하나님의 임재가 없기에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운 것도 마찬가지로, 수많은 절망적인 문제들을 해결해 왔습니다. 저는 당시에 어떻게 감히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짓겠다는 생각을 품었는지 참으로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때는 자신이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풍성한 보상이었습니다. 그래서 화인 사명 신학에는 “섬김은 은혜다”라는 논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하는 것은 지극히 큰 은혜입니다.
사람의 일생에서 결코 놓쳐서는 안 될 최선의 선택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쓰임 받을 기회를 얻는 것, 혹은 스스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하고자 헌신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의 성전은 솔로몬 자신이 짓고자 한 것이 아니라 다윗이 짓고자 했던 것입니다. 다윗이 성전을 건축하고자 했던 배경 이야기를 여러분과 함께 깊이 살펴보겠습니다.
사무엘하 7장에 이러한 기록이 있습니다. 다윗이 자기 궁에 평안히 살 때, 여호와께서 그로 사방의 모든 원수에게서 벗어나 평안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평안하고 기쁜 나날을 보내던 왕이 선지자 나단을 차 한잔하자며 불렀습니다. 선지자 나단이 궁에 와서 함께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다윗이 말했습니다. “보시오, 나는 백향목으로 지은 궁에 살고 있습니다.” 이 백향목이 어떤 것입니까? 최고급 특수목까지는 아닐지라도 최소한 매우 값비싸고 귀한 목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궤는 여전히 휘장(장막) 가운데 있도다.” 나단이 왕에게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왕과 함께 계시니 왕의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을 행하소서.”
그런데 그날 밤, 하나님께서 나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내 종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내가 살 집을 건축하겠느냐?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부터 오늘까지 집에 살지 아니하고 장막과 회막 안에서 거하며 걸어 다녔나니, 내가 이스라엘 자손과 더불어 다니는 모든 곳에서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먹이라고 명령한 이스라엘 어느 지파의 사사에게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위하여 백향목 집을 건축하지 아니하였느냐고 말한 적이 있느냐?’”
여러분,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의 뉘앙스를 느끼셨습니까? 잘 모르시겠다면 제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깊은 감회에 젖으셨습니다. 어느 정도였을까요? 출애굽 때부터 다윗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역대로 그 누구도 하나님께서 여전히 장막에 거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 다 좋은 집에 살면서도 하나님은 장막에 거하시게 두었습니다. 하나님은 트집을 잡으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선지자 나단에게 하신 말씀은 “내가 이스라엘 어느 지파의 사사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느냐?”였습니다.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으셔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요구하고 싶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요구하실 자격이 없으셨겠습니까? 당연히 있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누군가 자발적으로 그러한 마음을 품고 하나님께 드리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다윗의 시대에 이르러 홀연히 다윗이라는 한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언약궤가 여전히 장막 안에 있는 것을 보았고, 자신은 궁전에 사는데 하나님은 장막에 거하시는 것을 보고는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건축하기로 뜻을 정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감회를 털어놓으신 뒤 너무나 기뻐하셨습니다.
그 밤에 하나님의 말씀이 나단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가서 내 종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내가 거할 집을 건축하지 말라 내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린 날부터 오늘까지 집에 있지 아니하고 이 장막과 저 장막에, 이 회막과 저 회막에 있었나니 이스라엘 무리와 더불어 가는 모든 곳에서 내가 내 백성을 먹이라고 명령한 이스라엘 어느 사사에게 내가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위하여 백향목 집을 건축하지 아니하였느냐고 말하였느냐 하고
또한 내 종 다윗에게 이처럼 말하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목장 곧 양 떼를 따르는 데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고 네가 어디로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대적을 네 목전에서 멸하였은즉 세상에서 존귀한 자들의 이름 같은 이름을 네게 만들어 주리라 내가 또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곳을 정하여 그들을 심고 그들이 그 곳에 거주하면서 다시는 옮겨가지 아니하게 하며 악한 사람들에게 전과 같이 그들을 해치지 못하게 하여 전에 내가 사사에게 명령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아니하게 하고
또 네 모든 대적으로 네게 복종하게 하리라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한 견고한 집을 세울지라 네 생명의 연한이 차서 네가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면 내가 네 뒤에 네 씨 곧 네 아들 중 하나를 세우고 그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니 그는 나를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되리니 나의 인자를 그에게서 빼앗지 아니하기를 내가 네 전에 있던 자에게서 빼앗음과 같이 하지 아니할 것이며 내가 영원히 그를 내 집과 내 나라에 세우리니 그의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역대상 17:3-14)
이것이 다윗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약속입니까! 시간이 되시면 이 약속의 말씀을 깊이 묵상해 보십시오. 원수의 성문을 취하게 되는 엄청난 권세이며, 원수가 결코 이기지 못하고 당신뿐만 아니라 당신의 아들과 대대로 이어지는 자손들이 왕위에 앉게 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나단이 이 모든 말씀을 다윗에게 전했습니다. 다윗은 이 말을 듣고 깊은 감사를 드렸습니다.
주목해야 할 점은 이것이 사무엘하 7장의 내용이며, 솔로몬이 태어나기도 전이고 밧세바가 다윗에게 오기도 전이라는 사실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건축하기로 뜻을 정하자 하나님께서 이러한 약속들을 주셨습니다. 그러자 다윗의 반응은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를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나이까?”였습니다. 다윗은 깜짝 놀랐습니다. ‘나는 단지 백향목 궁에 사는데 하나님의 언약궤는 휘장 가운데 있다는 생각 한 번 하고 말 한마디 했을 뿐인데, 그저 생각 한 번 했을 뿐인데 이토록 엄청난 은혜를 입다니!’ 하고 말입니다.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를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나이까 주 여호와여 주께서 이것을 오히려 적게 여기시고 또 종의 집에 있을 먼 장래의 일까지도 말씀하셨나이다 주 여호와여 이것이 사람의 법이니이까 (사무엘하 7:18-19)
형제자매 여러분, 저는 깊은 감동을 받습니다. 과거 교회가 황폐했던 시절, 저는 하나님을 위해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하기로 결단했습니다. 제가 “하나님, 저를 써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자 하나님께서는 “너는 나를 위해 죽을 수 있느냐?”라고 물으셨고, 저는 “예, 기꺼이 죽겠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오늘날 사명 신학이 이렇게 세워진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닙니다. 과거 모든 것이 황폐했던 시절, 단지 그런 마음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주 여호와는 주의 종을 아시오니 다윗이 다시 주께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주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주의 뜻대로 이 모든 큰 일을 행하사 주의 종에게 알게 하셨나이다 (사무엘하 7:20-21)
여호와 하나님이여 이제 주의 종과 종의 집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을 영원히 세우셨사오며 말씀하신 대로 행하사 사람이 영원히 주의 이름을 크게 높여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 하게 하옵시며 주의 종 다윗의 집이 주 앞에 견고하게 하옵소서 (사무엘하 7:25-26)
오늘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기로 뜻을 정한다면 참으로 엄청난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결코 이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제가 이어서 전할 이야기는 여러분의 생각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조금은 색다른 시각에서 풀어내는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짓고자 했으나 자신이 짓지 못하고 그의 아들이 짓게 될 것이라는 소식이 온 이스라엘에 퍼졌습니다.
어떤 아들이었을까요? 다윗의 아들들을 살펴보면, 이 아들은 철이 없고 저 아들도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압살롬은 왕위를 찬탈하려 했고, 암논은 누이를 범하는 등 참으로 한심한 상태였습니다.
다윗은 “내 아들이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지을 것이라 하나님께서 정하셨다”고 선포했고, 온 이스라엘이 이를 알게 되었습니다. 밧세바라는 여인 역시 이를 알게 되었습니다. 밧세바는 다윗 왕궁 뒤편에 살던 이웃이었습니다. 그녀는 다윗을 통해 하나님을 위한 성전을 지을 아들을 낳기를 밤낮으로 사모했습니다. 이는 결과를 보고 거꾸로 유추해 볼 수 있는 사실입니다.
솔로몬은 누구의 아들입니까? 밧세바의 아들이 아닙니까? 솔로몬이 태어난 후 어떤 교육을 받았겠습니까? 다윗이 왜 솔로몬을 후계자로 선택하여 왕위를 잇게 했을까요? 솔로몬이 어머니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태어나 말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 밧세바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들아, 네 엄마가 너를 어떻게 낳았는지 아느냐? 엄마는 원래 다윗의 아내가 아니었단다.” 솔로몬이 “그럼 누구의 아내였나요?”라고 묻자 밧세바는 “우리야의 아내였단다. 하지만 다윗의 아들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게 될 것이라는 소식을 들은 뒤로, 나는 다윗을 통해 그 아들을 낳기를 날마다 꿈꾸었단다”라고 말했습니다.
어쩌면 여러분은 이것이 기존의 상식과 관념을 뒤흔든다고 여길지 모릅니다. 하지만 다윗이 그녀를 궁으로 데려와 동침했을 때 밧세바는 다윗을 고발하지 않았습니다. 밧세바는 음란한 여인이 아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다말, 라합, 룻의 이야기와 맥락을 같이합니다.
결국 그녀는 어린 솔로몬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네가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짓기를 바란다. 네가 바로 성전을 지을 그 아들이란다. 아들아, 너는 반드시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해야 한다.” 지극히 총명했던 어린 솔로몬은 다윗 왕 앞으로 나아가 말했습니다. “부왕이시여, 성전 건축 일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습니까? 설계도를 제게 보여주실 수 있나요?” 그 순간 다윗의 마음은 완전히 녹아내렸습니다.
솔로몬이 다윗과 함께 성전 건축에 대해 논의하자, 다윗은 아들 솔로몬을 지극히 사랑했습니다. 왜일까요? 어머니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자녀가 누구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습니까? 어머니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습니다.
밧세바를 결코 단순한 인물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아도니야가 반역하여 왕이 되려 했을 때, 밧세바는 사람을 보내 다윗과 상의했고, 다윗은 즉시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며 아도니야의 계략을 무너뜨렸습니다. 그러므로 밧세바는 결코 평범한 여인이 아니었습니다. 대단한 여인이었습니다.
솔로몬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할 당시 밧세바는 40대 초반 정도로 매우 젊었을 것입니다. 20대에 솔로몬을 낳았으니 솔로몬이 20세가 되었을 때 그녀는 40대였습니다. 솔로몬이 왕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밧세바와 절대적인 관계가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었겠습니까? 제가 말씀드리건대, 우리 하나님은 인간의 고정관념을 완전히 뛰어넘으시는 분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단순한 도덕률에 얽매이시는 분이 아니라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누구든지 온전한 마음을 품고 있다면 다른 것은 문제 되지 않습니다. 우리야의 아내였는지의 여부를 넘어, 하나님만을 향한 중심을 보신 것입니다. 이처럼 온전히 하나님을 향한 마음은 실로 놀라운 것이며, 결국 솔로몬은 왕위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본문 말씀
솔로몬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으며,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뚫고 나가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말씀을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내 아버지 다윗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었으니 이 마음이 네게 있는 것이 좋도다 그러나 너는 그 성전을 건축하지 못할 것이요 네 몸에서 낳을 네 아들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리라 하시더니 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루셨도다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내 아버지 다윗을 이어서 일어나 이스라엘의 왕위에 앉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고 내가 또 그 곳에 우리 조상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실 때에 그들과 세우신 바 여호와의 언약을 넣은 궤를 위하여 한 처소를 설치하였노라 (열왕기상 8:18-21)
솔로몬이 전한 말씀이 보이십니까? 행간마다 제가 방금 나눈 숨겨진 배경과 마음이 고스란히 묻어나고 있습니다.
기도
하나님, 이 귀한 이야기를 성경에 기록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우리에게도 성전 건축을 뜻하였던 다윗의 중심을 허락하시고, 솔로몬처럼 주님 앞에서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주의 전을 건축하여 주의 전에 영광이 가득하게 하옵소서. 하나님, 비록 수많은 고난을 겪을지라도 주님의 계시를 따라 건축하게 하시고, 이것이 주님의 마음에 합하며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임을 굳게 믿게 하옵소서.
하나님, 우리 형제자매들을 일으켜 세우사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이 영광스러운 성전을 세워가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주의 영광이 온 땅에 가득하고, 온 땅의 만국과 만민이 주의 영광으로 인하여 복을 받게 하옵소서. 이 시대에 우리에게 이토록 귀한 기회를 주심에 감사드리며, 우리 자신을 온전히 기쁨으로 주께 드리옵나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배경
솔로몬은 성전을 완공한 후 다윗성에서 언약궤를 모셔왔습니다. 다윗 시대에도 언약궤를 옮기려 한 적이 있었는데, 소달구지에 궤를 싣고 가다가 궤가 넘어지려 하자 웃사가 손으로 붙들었다가 즉사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기록을 읽을 때 우리는 혼란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역대로 어느 시대든 사람의 생각으로 ‘하나님을 돕겠다’는 마음을 품는 순간 망한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돕겠다는 교만한 태도를 가진 자는 죽임을 당해 마땅합니다. 그렇기에 솔로몬은 하나님을 돕겠다는 식의 태도를 결코 품지 않았습니다. 언약궤를 메어와 하나님의 거처로 지어진 지성소 안에 안치하자, 온 성전에 영광이 가득했습니다.
우리가 교회를 세울 때 제 마음속에는 ‘교회를 세웠는데 하나님이 거하지 않으시면 누가 거하겠는가? 귀신이 거하는가? 절대 안 된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교회를 건축할 때는 반드시 하나님의 계시를 따라 건축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시를 따라 세워질 때 비로소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계시를 따라 성전을 건축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아십니까? 예루살렘에 가본 분들은 통곡의 벽이 솔로몬 성전 건축 당시에 쌓은 돌들이라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그 돌들은 엄청나게 거대하며, 모두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직접 설계해 주신 것입니다. 솔로몬이 설계도를 보고 “세상에, 이렇게 거대한 돌이라니! 하나님, 그냥 벽돌로 바꾸면 안 될까요? 꼭 이렇게 큰 돌을 써야 합니까?”라고 탄식할 만한 크기였습니다.
그 돌들은 길이가 수 미터에 달하고 높이와 두께도 1미터가 넘습니다. 예루살렘 도심에서 그런 돌을 쉽게 구할 수 있었겠습니까? 깊은 산속에서 채석하여 일일이 깎아 운반해 와야 했습니다. 솔로몬은 온갖 고난을 겪었으며, 그 난이도는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성전 건축 자체가 하나의 기적이었습니다. 3천 년 전, 그 옛날에 설계도를 보니 기둥마다 순금으로 입히고 온갖 기물을 금으로 덮어야 했습니다. 그 금이 다 얼마였겠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그 돈으로 경제를 발전시키거나 백성들의 민생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 더 낫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솔로몬은 결단력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 임하는 것은 결코 평범한 일이 아닙니다. 어떤 이들은 솔로몬이 오랜 세월 동안 자기 궁전을 먼저 짓고 난 후에 하나님의 성전을 지었다며 이를 비판적으로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솔로몬이 어리석었겠습니까? 여러분이 솔로몬보다 지혜롭다고 생각하십니까?
솔로몬이 왜 그렇게 했겠습니까? 제 생각에는 거대한 돌을 보고 ‘내 궁전을 먼저 지으면서 기술과 경험을 쌓아보자’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솔로몬의 궁전에는 그런 거대한 돌을 쓰지 않았습니다. 기껏해야 목재를 주로 사용했습니다. 먼저 연습해 본 것입니다. 그토록 거대한 돌을 구해 웅장한 성전을 짓는 데는 엄청난 믿음이 필요했고, 당시의 과학 기술 수준으로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자신의 궁전을 지을 때 솔로몬은 아직 나이가 어렸기에 하나님의 성전을 온전히 감당할 역량이 부족했을 수도 있습니다. 어찌 되었든 그는 참으로 대단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 임하자 솔로몬은 얼굴을 돌려 이스라엘 온 회중을 축복하며 이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왕이 얼굴을 돌려 이스라엘의 온 회중을 위하여 축복하니 그 때에 이스라엘의 온 회중이 서 있더라 왕이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 여호와께서 그의 입으로 내 아버지 다윗에게 말씀하신 것을 이제 그의 손으로 이루셨도다 이르시기를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내 이름을 둘 만한 집을 건축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서 아무 성읍도 택하지 아니하고 다만 다윗을 택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였노라 하신지라
내 아버지 다윗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었더니 여호와께서 내 아버지 다윗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었으니 이 마음이 네게 있는 것이 좋도다 그러나 너는 그 성전을 건축하지 못할 것이요 네 몸에서 낳을 네 아들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리라 하시더니 (열왕기상 8:14-19)
솔로몬은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방향을 따라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성전 건축을 뜻하는 것은 지극히 큰 은혜이다
다윗이 성전 건축을 뜻했을 때,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은 다윗의 상상을 완전히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에게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수많은 놀라움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 놀라움은 무엇이었습니까? “내가 누구이며 내 집이 무엇이기에 나를 이 지경에 이르게 하셨나이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짓기로 뜻을 정하자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세워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과 그의 가문을 돌보아 주신 것입니다. 또한 다윗의 이름을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자들의 이름처럼 높여 주시고, 원수들이 그를 괴롭히지 못하게 하시며, 그의 왕위와 나라를 견고하게 세우시고 그의 아들이 영원토록 그 왕위에 앉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다윗은 거듭 감탄했습니다. “나는 단지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짓겠다고 생각했을 뿐인데, 어찌하여 이토록 큰 은혜를 주시는가?”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짓기로 뜻을 정한다면 동일한 은혜를 얻게 될 것입니다. 과거 제가 교회를 개척하려 했던 이유는 이 교회도 온전치 못하고 저 교회도 온전치 못한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다른 교회를 비판하거나 목회자에게 “이것이 틀렸고 저것이 잘못되었습니다”라고 지적하는 감시자가 되어 미움을 사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직접 교회를 세우기로 결단했습니다.
교회를 세우겠다고 결단하고 걸어온 길은 참으로 험난했습니다. 그러나 돌아보면 그 모든 여정이 오직 믿음이었으며, 하나님의 은혜는 지극히 풍성했습니다. 다윗의 고백처럼 “주께서 이것을 오히려 적게 여기시고 또 종의 집에 있을 먼 장래의 일까지도 말씀하셨나이다”라는 고백이 절로 나옵니다. 성전을 짓는 것은 주님 보시기에 작은 일일 수 있으나, 주님은 종의 집안을 영원토록 지켜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나는 주의 성전을 세우는 것만 생각했는데, 주님은 내 집을 생각해 주시니 이것이 어찌 사람에게 흔히 일어나는 일이겠습니까!’ 참으로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입니다.
다윗과 솔로몬의 지혜가 어디에 있습니까? 다윗은 “다윗이 다시 주께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라고 고백했습니다. 이것이 지극히 큰 은혜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성전 건축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닙니다. 다윗이 이후에 수많은 도전을 마주하지 않았겠습니까? 수많은 도전을 겪었습니다.
주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주의 뜻대로 이 모든 큰 일을 행하사 주의 종에게 알게 하셨나이다 그런즉 주 여호와여 주는 위대하시니 이는 우리 귀로 들은 대로는 주와 같은 이가 없고 주 외에는 신이 없음이니이다 (사무엘하 7:21-22)
여호와 하나님이여 이제 주의 종과 종의 집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을 영원히 세우셨사오며 말씀하신 대로 행하사 사람이 영원히 주의 이름을 크게 높여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 하게 하옵시며 주의 종 다윗의 집이 주 앞에 견고하게 하옵소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주의 종의 귀를 여시고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세우리라 하셨으므로 주의 종이 이 기도로 주께 간구할 마음이 생겼나이다 (사무엘하 7:25-27)
다윗의 중심은 성전 건축을 지극히 큰 은혜로 여기는 것이었습니다. 도전이 있었습니까?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내가 집을 지어드리니 내게 감사하셔야 합니다”라는 태도를 취했습니까? 결코 아닙니다. “내가 성전을 짓다니, 내게 무슨 자격과 능력이 있습니까!”라는 겸손한 태도였습니다.
화인 사명 신학이 계승한 것이 바로 다윗의 이러한 논리 체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이름을 크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의 사역은 널리 알려졌습니다. 수년 전 한 목회자가 저를 찾아와 “유 목사님, 밖에서 목사님의 명성이 얼마나 자자한지 아십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정말 몰랐고 그런 것을 생각해 본 적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여러분이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기로 뜻을 정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여러분의 이름을 크게 높여 주실 것입니다! 지금까지 화인 사명 신학을 통해 개발된 수많은 콘텐츠가 수많은 사람을 세우고 살려냈습니다. 그러므로 성전 건축을 뜻하는 것은 지극히 큰 은혜입니다! 그 보상은 여러분이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을 뛰어넘습니다.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큽니다.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이것은 지극히 풍성한 은혜입니다! 섬김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특별한 은혜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그분은 지극히 위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성전 건축을 뜻하는 것은 믿음의 훈련이다
다윗은 고난 가운데 성전 건축을 위한 재료를 모았습니다.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의 성전을 위하여 금 십만 달란트와 은 백만 달란트와 놋과 쇠를 그 무게를 달 수 없을 만큼 심히 많이 준비하였고 또 재목과 돌을 준비하였으나 너는 더 더할 것이며 또 다스릴 일꾼이 네게 많이 있나니 곧 석수와 미장이와 목수와 온갖 일에 익숙한 모든 사람이니라 금과 은과 놋과 쇠가 무수하니 너는 일어나 일하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실지로다 하니라 (역대상 22:14-16)
다윗이 그의 아들 솔로몬을 불러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기를 부탁하여 다윗이 솔로몬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나는 내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었으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피를 심히 많이 흘렸고 크게 전쟁하였느니라 네가 내 앞에서 땅에 피를 많이 흘렸은즉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보라 네게 한 아들이 나리니 그는 온순한 사람이라 내가 그로 주변 모든 대적에게서 평온을 얻게 하리라 그의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그의 생전에 평안과 안일함을 이스라엘에게 줄 것임이니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지라 그는 내 아들이 되고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어 그 왕위를 이스라엘 위에 굳게 세워 영원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셨나니 이제 내 아들아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며 네가 형통하여 여호와께서 네게 대하여 말씀하신 대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며 여호와께서 네게 지혜와 총명을 주사 네게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을 지키게 하시기를 더욱 원하노라 (역대상 22:6-12)
여러분, 다윗이 편안하게 재료를 모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얼마나 힘겨운 내적 갈등이 있었겠습니까? 그 막대한 재정을 경제 발전, 도로와 인프라 구축, 우물 파기, 수해 복구 등 수많은 민생 사업에 쓸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돈을 다른 데 쓰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성전을 위해 구별해 두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결단이었습니다. 이 금은 경제 발전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쉬운 선택이었겠습니까?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은 모든 곳에 돈이 필요한 극심한 곤경 속에서도 여호와를 위하여 금 십만 달란트 이상을 준비했습니다. 우리가 교회를 건축할 때도 수많은 갈등이 있었습니다. 부실하게 타협하고 싶지 않았기에 때로는 벅찬 상황에서도 이를 악물고 감당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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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어려움 속에서 저는 다윗의 마음을 깊이 체감합니다. 우리가 만국과 만민의 축복이 되고자 한다면 옹졸한 마음으로는 이 사명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온갖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전을 위해 이토록 풍성히 예비할 수 있는 믿음의 담대함이 필요합니다. 그런 배포가 없이는 하나님의 역사를 이룰 수 없습니다. 다윗과 솔로몬이 걸어간 길은 철저한 믿음의 훈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것은 온 땅의 만국과 만민이 복을 얻는 통로이며, 이스라엘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가 머무는 근본적인 해결책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없이 세상적 경제 발전에만 몰두한다면, 결국 하나님의 임재 대신 헛된 우상과 원수 마귀의 지배만 남게 될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계시해 주신 성전의 양식을 솔로몬에게 그려주었습니다. 설계도를 본 솔로몬은 ‘세상에, 침대보다 더 큰 이런 거대한 돌을 써야 하다니! 하나님, 너무 큽니다. 다루기 쉬운 긴 벽돌로 바꾸면 안 됩니까?’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타협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행해야 했습니다.
교회를 건축할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만 짓는 것이 쉬운 일입니까? 수많은 갈등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것도 내려놓고 저것도 버리라 하실 때 과연 온전히 내려놓을 수 있습니까? 많은 사람이 세상적인 이유로 하나님을 저버리곤 합니다. “하나님, 이 많은 금을 경제 발전에 쓰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라고 타협하려 합니다.
그러나 솔로몬이 깊이 묵상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거대한 돌을 산에서 예루살렘 산 위로 운반하여 성전을 건축할 수 있는 놀라운 지혜를 부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지어 올린 것입니다.
화인 사명 신학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건축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교회를 그렇게 정의한다면 그대로 짓는 것입니다.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습니다. 질병과 고통 가운데 신음하는 형제자매들을 마주할 때마다 매 순간이 치열한 영적 씨름이었습니다. 솔직히 말해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 안의 믿음을 추스르며 ‘내게는 능력이 없으나 하나님께는 능치 못하심이 없다’고 선포해 왔습니다. 오늘날까지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우리의 믿음의 결단을 기뻐하십니다. 솔로몬이 행한 것은 참으로 세밀한 믿음의 훈련이었으며, 아무리 어려워도 철저히 하나님의 계시를 따라 건축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성전은 반드시 하나님의 계시를 따라 건축되어야 한다
내 아들 솔로몬아 너는 네 아버지의 하나님을 알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길지어다 여호와께서는 모든 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사상을 아시나니 네가 만일 그를 찾으면 만날 것이요 만일 네가 그를 버리면 그가 너를 영원히 버리시리라 그런즉 너는 삼갈지어다 여호와께서 너를 택하여 성전의 건물을 건축하게 하셨으니 힘써 행할지어다 하니라
다윗이 성전의 복도와 그 집들과 그 곳간과 다락과 골방과 속죄소의 설계도를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주고 또 그가 영감으로 받은 모든 것 곧 여호와의 성전의 뜰과 사면의 모든 방과 하나님의 성전 곳간과 성물 곳간의 설계도를 주고 또 제사장과 레위 사람의 반열과 여호와의 성전에서 섬기는 모든 일과 여호와의 성전을 섬기는 데 쓰는 모든 그릇의 양식을 설명하고 또 모든 섬기는 데 쓰는 금 기구를 만들 금의 무게와 모든 섬기는 데 쓰는 은 기구를 만들 은의 무게를 정하고
또 금 등잔대들과 그 등잔 곧 각 등잔대와 그 등잔을 만들 금의 무게와 은 등잔대와 그 등잔을 만들 은의 무게를 각기 그 규격대로 정하고 또 진설병의 각 상을 만들 금의 무게를 정하고 은상을 만들 은도 그렇게 하고 갈고리와 대접과 종지를 만들 순금과 금 잔 곧 각 잔을 만들 금의 무게와 또 은 잔 곧 각 잔을 만들 은의 무게를 정하고 또 향단에 쓸 순금과 또 수레 곧 금 그룹들의 설양식대로 만들 금의 무게를 정해주니 이 그룹들은 날개를 펴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덮는 것이더라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의 손이 내게 임하여 이 모든 일의 설계를 그려 나에게 밝히 알게 하셨느니라 (역대상 28:9-19)
이 말씀의 의미를 아시겠습니까? 교회를 세워갈 때 저는 교회의 모형이 반드시 하나님의 계시를 따라 세워져야 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절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모나 아내나 자녀를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주님의 제자가 되기에 합당하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진정으로 믿고 따를 자가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부모와 형제와 처자와 전토를 버릴 수 있는 자가 누구입니까?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이러한 결단과 중심이 없다면 하나님의 성전, 곧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할 수 없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볼 때 이러한 요구는 납득하기 어렵고 믿기 힘든 것일 수 있습니다. 성경의 깊은 진리와 창세기의 핵심 원리들은 세상의 보편적인 해석과 전혀 다른 하나님의 계시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성전을 건축하는 일이 어렵지 않겠습니까?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의 계시대로 건축해야 합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면서 자재를 빼돌리고 타협하며 변질시키는 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온전한 침례의 의미를 축소하고 약화시키는 타협이 만연합니다.
왜 변질시킵니까? 거대한 돌을 다루기가 너무 어렵다며 다루기 쉬운 벽돌로 바꾸어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인위적인 벽돌로 쌓은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전이겠습니까? 아닙니다. 번거롭고 힘들다고 해서 하나님의 규례와 방식을 하나씩 타협해 나간다면, 어찌 그곳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다윗은 솔로몬에게 “너는 삼갈지어다. 여호와께서 너를 택하여 성전의 건물을 건축하게 하셨으니 힘써 행할지어다”라고 당부했습니다. 담대하고 강하지 않으면 이 사역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마귀와의 영적 전쟁에서 강하고 담대하지 않으면 결코 승리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우리는 교회를 세워가야 합니다.
우리는 최근 디모데전서를 깊이 나누었고 곧 디모데후서를 나눌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유약한 디모데의 모습에 머물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디모데에게는 영적인 강인함과 담대함이 부족했습니다.
어느 원로 목사님이 “목회자의 성품이 교회의 모습을 결정하고, 기업가의 성품이 기업의 성격을 규정하듯, 교회는 목회자 영성의 반영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매우 공감하는 말입니다. 여러분도 제 성품을 아실 것입니다. 저는 타협하지 않는 성품입니다.
저는 동역자들에게 자주 말합니다. “나와 함께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하기를 원한다면 온 힘을 다해 제대로 감당합시다. 만약 그럴 마음이 없다면 억지로 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직설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이것이 본질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하는 일에는 결코 타협이 있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험난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하며, 아무리 세밀하고 작은 부분이라도 삼가 주의하고 강하고 담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이 성전에 가득하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위에 올랐을 때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찾아와 불평했습니다. “당신의 아버지 솔로몬은 우리에게 무거운 멍에를 메우고 채찍질하며 돌을 나르게 하여 궁궐과 성전을 짓게 했습니다!” 백성들의 육신적인 요구에 맞추어 성전을 지을 수 있었겠습니까? 교인들의 입맛에 맞추어서는 결코 하나님의 성전을 지을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 지어야 합니다.
솔로몬이 감당한 거룩한 역사는 일반 백성들이 육신적으로 좋아할 만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백성들은 그저 적당한 땅에서 가족들과 안락하게 먹고사는 평범한 삶을 원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교회에는 세상적인 의미의 인본주의적 민주주의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계시대로 전진합니다. 비록 사람들의 육신적인 생각을 거스른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야 합니다.
이제 내 종 다윗에게 이와 같이 말하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양치는 목장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았고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땅에서 위대한 자들의 이름 같은 이름을 네게 만들어 주리라 (사무엘하 7:8-9)
양 떼를 따르는 자리에서 구별되었다는 것은, 여러분의 사고방식이 더 이상 평범한 백성의 수준에 머물지 않고 비범한 하나님의 관점으로 거듭났음을 의미합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렇기에 이 성전에 영광이 가득한 것입니다. 누구를 섭섭하게 할지라도 하나님을 섭섭하게 해드려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저의 확고한 원칙입니다. 저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지만,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은 지극히 두려워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훼손될 수 없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교회를 선택할 때는 민주적인 외형을 갖춘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이 실제적으로 머무는 교회를 선택해야 합니다. 영적 권세가 없어 귀신은 쫓아내지 못하면서 목회자를 내쫓는 데만 혈안이 된 교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제사장,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영적 지도자를 따라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성전을 함께 건축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실로 큰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때로는 난관에 부딪히기도 하지만, 우리 사이에 근본적인 갈등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진정한 유익을 구하시고, 여러분 또한 참된 유익을 구하는데 어찌 갈등이 있겠습니까? 제가 구하는 것도 여러분의 영적 유익입니다.
다만 영적 원리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를 뿐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에게 유익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실제로는 영혼에 해가 될 수 있고, 제가 유익하다고 제시하는 훈련을 여러분은 힘들고 해로운 것으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각 사람의 은사와 부르심에 따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다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방식은 달라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변함이 없습니다. 사역할 때 우리는 서로를 비교할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인정하고 세워주어야 합니다.
어떤 이는 말씀 사역의 은사를 받아 성경 진리를 명쾌하게 풀어내고, 어떤 이는 돌봄과 중보기도의 은사를 받아 연약한 지체들을 위로하고 격려합니다. 교회 지체들은 서로 연합하여 그리스도의 한 몸을 온전히 드러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가 획일적인 스타일을 추구할 필요가 없으며, 오직 한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맺으시는 아름다운 열매를 구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사랑 안에서 스스로를 세우고 다른 사람을 세울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다양한 섬김 속에서 풍성한 은혜를 보게 하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자라가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저는 사람의 생각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어떤 이들은 찾아와 “목사님, 사역을 이렇게 하셔야 합니다. 교회는 저렇게 운영해야 합니다”라고 훈수를 둡니다. 그러면 저는 “형제여, 며칠 전만 해도 절망에 빠져 자살하겠다며 기도받던 사람이, 이제 와서 나의 선생 노릇을 하려 합니까?”라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저는 거짓된 겸손으로 “아, 조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식의 위선을 떨지 않습니다. 무엇이 감사합니까? 방금 전까지 영적으로 무너져 있던 사람이 책 몇 권 읽고 와서 하나님의 교회를 논할 수 있습니까? 그 책에 쓰인 것이 다 진리입니까? 직설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이것은 교만을 부리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바로 서지 못한 자가 어찌 교회를 온전히 세울 수 있겠습니까? 혼란만 가주할 뿐입니다. 저와 함께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온전히 건축하기를 원한다면, 오직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하심만을 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 가운데 온전히 다스리시고 역사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곳에서 기도를 들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이곳에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며, 우리는 지극히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비록 많은 대가를 치렀을지라도 이 모든 것은 비교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제 인생 역시 본래는 헛되고 공허한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고, 부르심을 받아 주를 섬기며, 하나님의 말씀을 엄밀히 상고하여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하고자 하는 거룩한 중심을 품었기에 하나님께서 이곳에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것입니다.
홍반성 루푸스 같은 중병에 걸린 지체가 있더라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가운데 하나님은 기도를 들으시는 분입니다. 여러분이 치유를 받았다면, 하나님의 이름을 둘 거처요 영광이 가득한 성전을 세우고자 뜻을 정한 믿음의 통로가 있었음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의 기도가 응답받는 것은 사람 때문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 때문입니다.
십여 년 전부터 저는 모든 질병이 치유될 수 있음을 굳게 믿었습니다. 당시 많은 교인이 “목사님, 너무 극단적이고 절대적으로 말씀하지 마십시오”라고 도전했습니다. 저는 “1 더하기 1은 2라는 사실이 절대적이지 않습니까? 그것이 3도 되고 4도 될 수 있습니까? 당신이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절대적이듯, 진리는 절대적인 것입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그대로 우리는 믿습니다. 예수님께 나아온 자들이 다 고침을 받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온전히 세울 때 이곳에 오는 모든 자가 치유를 경험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당시에는 즉각적인 역사가 다 나타나지 않았을지라도 우리는 흔들리지 않고 믿었고, 지금은 수많은 치유와 회복의 역사를 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어떤 질병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이 확실한 믿음을 가진다면 불필요한 고통과 낭비를 줄이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시며, 이 영광스러운 성전 가운데서 우리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십니다.
다른 곳에서 오랜 세월 해결받지 못하던 문제가 이곳에 와서 기도함으로 해결되었다면, 여러분은 큰 영적 빚을 진 것과 같습니다. 이는 진리를 빚진 자의 심정으로 여러분 앞에 선 믿음의 선진들을 본받아, 여러분 또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일에 헌신하도록 도전하는 것입니다.
지금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앞에 여러분의 문제가 아무리 클지라도 결코 포기하지 말고 하나님께로 온전히 돌이키십시오. 반드시 치유와 회복을 얻을 것입니다. 과거 암 환자 중 치유를 경험했다가 다시 옛 삶으로 돌아가 방종하다가 생명을 잃은 안타까운 사례가 있었습니다. 죄를 짓고 하나님을 떠났다가 회개하여 기도로 은혜를 입었으면 거룩함을 지켜야 하는데, 다시 하나님을 저버리고 주의 진노를 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기도를 듣지 않으셔서가 아닙니다.
결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성전을 건축하는 것은 이 시대 가장 영광스러운 사역입니다. 이것은 헛된 희생이 아니라 최고의 영광을 얻는 축복입니다. 과거를 돌아보면 수많은 눈물이 있었지만, 그 눈물은 성전을 건축하는 사명이 억울해서 흘린 것이 아니라 험난한 선택의 기로에서 겪었던 믿음의 연단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더욱 강건해졌고 날마다 승리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