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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열왕기상 3장 -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여 주의 백성을 재판하고 선악을 분별하게 하라

2026-06-12 46,127 列王纪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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列王纪上-所罗门祈祷求智慧
  • 1 所罗门与埃及王法老结亲,娶了法老的女儿为妻,接她进入大卫城,直等到造完了自己的宫和耶和华的殿,并耶路撒冷周围的城墙。
  • 2 当那些日子,百姓仍在邱坛献祭,因为还没有为耶和华的名建殿。
  • 3 所罗门爱耶和华,遵行他父亲大卫的律例,只是还在邱坛献祭烧香。
  • 4 所罗门王上基遍去献祭;因为在那里有极大(或译:出名)的邱坛,他在那坛上献一千牺牲作燔祭。
  • 5 在基遍,夜间梦中,耶和华向所罗门显现,对他说:“你愿我赐你什么?你可以求。”
  • 6 所罗门说:“你仆人我父亲大卫用诚实、公义、正直的心行在你面前,你就向他大施恩典,又为他存留大恩,赐他一个儿子坐在他的位上,正如今日一样。
  • 7 耶和华我的 神啊,如今你使仆人接续我父亲大卫作王;但我是幼童,不知道应当怎样出入。
  • 8 仆人住在你所拣选的民中,这民多得不可胜数。
  • 9 所以求你赐我智慧,可以判断你的民,能辨别是非。不然,谁能判断这众多的民呢?”
  • 10 所罗门因为求这事,就蒙主喜悦。
  • 11  神对他说:“你既然求这事,不为自己求寿、求富,也不求灭绝你仇敌的性命,单求智慧可以听讼,
  • 12 我就应允你所求的,赐你聪明智慧,甚至在你以前没有像你的,在你以后也没有像你的。
  • 13 你所没有求的,我也赐给你,就是富足、尊荣,使你在世的日子,列王中没有一个能比你的。
  • 14 你若效法你父亲大卫,遵行我的道,谨守我的律例、诫命,我必使你长寿。”
  • 15 所罗门醒了,不料是个梦。他就回到耶路撒冷,站在耶和华的约柜前,献燔祭和平安祭,又为他众臣仆设摆筵席。
  • 16 一日,有两个妓女来,站在王面前。
  • 17 一个说:“我主啊,我和这妇人同住一房;她在房中的时候,我生了一个男孩。
  • 18 我生孩子后第三日,这妇人也生了孩子。我们是同住的,除了我们二人之外,房中再没有别人。
  • 19 夜间,这妇人睡着的时候,压死了她的孩子。
  • 20 她半夜起来,趁我睡着,从我旁边把我的孩子抱去,放在她怀里,将她的死孩子放在我怀里。
  • 21 天要亮的时候,我起来要给我的孩子吃奶,不料,孩子死了;及至天亮,我细细地察看,不是我所生的孩子。”
  • 22 那妇人说:“不然,活孩子是我的,死孩子是你的。”这妇人说:“不然,死孩子是你的,活孩子是我的。”她们在王面前如此争论。
  • 23 王说:“这妇人说‘活孩子是我的,死孩子是你的’,那妇人说‘不然,死孩子是你的,活孩子是我的’”,
  • 24 就吩咐说:“拿刀来!”人就拿刀来。
  • 25 王说:“将活孩子劈成两半,一半给那妇人,一半给这妇人。”
  • 26 活孩子的母亲为自己的孩子心里急痛,就说:“求我主将活孩子给那妇人吧,万不可杀他!”那妇人说:“这孩子也不归我,也不归你,把他劈了吧!”
  • 27 王说:“将活孩子给这妇人,万不可杀他;这妇人实在是他的母亲。”
  • 28 以色列众人听见王这样判断,就都敬畏他;因为见他心里有 神的智慧,能以断案。

《答疑解惑》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우리는 《열왕기상》 3장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이 장은 정말 너무나 좋습니다. 여러분이 지혜를 얻을 수만 있다면, 그 어떤 것을 얻는 것보다 낫습니다. 그러므로 이 장의 주제는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라.’ 사실 이것은 본문 말씀 중 한 구절이기도 합니다.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열왕기상 3:9)

무엇이 있어도 지혜가 있는 것만 못합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이 있어도 지혜가 있는 것만 못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옛날에 매우 큰 부자였던 양광총독(兩廣總督)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그가 아주 의미심장한 말을 한마디 했습니다. “내 아들이 나와 같다면 내가 그에게 돈을 줘서 무엇하겠는가? 만약 내 아들이 나와 같지 않다면 내가 그에게 돈을 줘서 무엇하겠는가?” 이 말은 참으로 뼈를 때리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은 무엇이 있어도 지혜가 있는 것만 못하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개척되던 초기에 저에게는 한 가지 소원이 있었는데, 바로 모든 사람이 다 총명한 사람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총명한 사람이라면 생계를 꾸려가는 데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총명한 사람인데 먹고사는 것에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하지만 여러분이 어리석은 사람이라면, 제가 어떻게 손을 쓰려 해도 정말 이끌어주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니 무엇이 있어도 지혜가 있는 것만 못합니다. 스스로에게 지혜가 있는지 한번 물어보십시오. 여러분에게 돈을 주어도 지혜가 없다면 그 돈은 재앙이 됩니다. 여러분에게 권력을 주어도 지혜가 없다면 그 권력 역시 재앙이 됩니다. 만약 황제 앞에서 섬기는 자리라면, 지혜 없는 사람은 누구보다도 먼저 목이 달아날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장수를 구해서 평생 지혜 없이 살면서 오래만 산다면, 아이고 세상에,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겠습니까?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십니까?

그러므로 지혜가 없으면 다스림을 논할 수 없고, 지혜가 없으면 그 어떤 것도 논할 수 없습니다. 제가 오늘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지혜가 으뜸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이 지혜도 없고 총명하지도 않다면, 이 세상에 온 것이 비극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예를 들어, 제가 보았던 어떤 일들은 저를 참 놀라게 했습니다. 마흔 살가량 된 어리석은 아들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매우 총명한 사람이었고, 어머니도 둔한 사람이 아니었지만, 이 아들은 어려서부터 참 바보 같은 아들이었습니다. 제가 그를 겪어보니, 그는 아버지가 일구어 놓은 가업과 자원을 활용하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아버지가 저를 만났을 때,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고통스럽게 말했습니다. “내 아들은 금밥통을 들고 구걸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금밥통을 들고 구걸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제가 그 아들에게 권면하며 말했습니다. “집안에 있는 자원을 잘 활용해라.” 그러자 그는 “아니요, 저는 집안의 자원을 이용하고 싶지 않고 제 힘으로만 일하고 싶습니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럴 만한 능력이 없었습니다. 하는 일마다 다 안 되고, 돈 쓰는 것만 일등이었습니다. 한 번은 술을 잔뜩 들여왔는데 팔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더니 아버지에게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보세요, 내가 들여온 술을 아버지는 팔아주지도 않잖아요!”

제가 그 말을 들으면서 생각했습니다. ‘누구든 이런 아들을 키운다면 얼마나 속이 터지겠는가?’ 남 탓하는 건 일등이고, 제대로 하는 일은 하나도 없으니, 때로 그의 아버지는 참으로 무력하고 속이 답답했습니다. 저도 그를 돕고 싶어서, 그 아들을 데리고 엔지니어링 관련 일을 좀 가르쳐서 머리가 좀 트이게 해줄 수 없을까 생각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이 어리석다는 것조차 모르기 때문입니다. 틈만 나면 불쑥 다가와서 저에게 아이디어를 내고 아버지에게 훈수를 두는데, 저희는 그저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었습니다. 그는 우리가 고개를 젓는 것을 보고 자기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리를 뜨면서, 자신이 때를 만나지 못한 인재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그가 하는 말들은 전혀 도리에 닿지 않는 것들이었습니다.

어리석은 자식을 키운다면 그것은 참으로 인생의 큰 비극입니다. 차라리 자식이 없으면 속이나 안 썩이지, 이런 자식이 있으면 정말 너무나 속이 상합니다. 살아가다 보면 어리석은 아이든 총명한 아이든 다 그렇게 살아가지 않습니까? 그러니 무엇이 있어도 지혜가 있는 것만 못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자녀를 키운다면 절대로 육신을 위하지 마십시오. 육신을 위하고 나면 골치 아파집니다. 자녀를 키운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혜를 갖추게 해야 합니다.

저희 어머니는 저를 키우시면서, 제가 어디를 가든 걱정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머니는 “내 아들은 어디 나가도 분명히 밥벌이는 하고 살 거야”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제가 어떤 고생을 했는지 어머니는 모르시지만, 어머니는 참 안심하셨습니다. 왜일까요? 이 아들이 사람 구실을 할 줄 안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무엇이 있어도 지혜가 있는 것만 못합니다. 이 일로 인해 제가 너무 조급해졌고, 너무 조급해지다 보니 저 자신이 어리석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성경에서 사도 바울이 가르친 대로, 제가 우매한 자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저도 며칠 동안 반성해 보았습니다. 무엇을 반성했을까요? 어떻게 해야 지혜를 얻을 수 있을까? 최근에 제가 아주 조금 깨달은 바가 있습니다. 그 조금이 무엇일까요? 사실 사람이 지혜를 얻는 것은, 온종일 옆에서 잔소리 많은 노파처럼 주절거린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노파처럼 잔소리하면 사람들이 싫어하지 않습니까? 주절거려 봐야 소용없습니다. 예전에 저는 거의 노파처럼 될 뻔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 형제자매들에게 물었습니다. “내가 잔소리꾼 노파 같습니까?” 온종일 이렇궁저렇궁 주절거리다 보니 제 스스로도 제가 싫어져서 말했습니다. “나는 총명한 사람이 되어야겠다.” 나중에야 저는 어떻게 해야 지혜를 얻을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똑똑해질 수 있는지, 지각(깨달음)이 어떻게 해야 열리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며칠 동안 진지하게 반성하면서 아주 조금 깨달았습니다. 노파처럼 잔소리를 퍼붓는다고 해서 사람이 총명해지는 것이 아니라, 깊이 생각하고 궁구하며 깨달아야 합니다. 깨달음이란 마음을 다해 깊이 궁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깨닫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깨달음의 영성이란 깊이 생각하고 묵상하는 데서 오며, 저 역시 겨우 조금 깨달았을 뿐입니다.

지난 세월 동안 저는 사실 깊이 생각하고 궁구하는 것을 유난히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참 많은 일들을 깊이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 동창들은 가끔 저를 만나면 “너는 이 나이가 되어서도 온종일 뭘 그렇게 궁구하고 있냐?”라고 묻습니다. 그러면 저는 “맞아, 아직도 생각하고 있어”라고 대답합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깊이 생각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렇게 깊이 생각하고 궁구하다 보면 깨달음이 오지 않습니까? 깨달음이 온다는 것은, 그 일에 대해 깊이 생각하다가 ‘아, 이런 것이구나’ 하고 통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너무 분주하게만 시간을 보내지 마십시오. 손으로 키보드만 열심히 두드리고 펜으로 열심히 끄적거리며 녹초가 될 정도로 피곤해하면서도, 깊이 생각하고 깨달을 시간은 갖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 말을 하면서도 제가 염려가 되는 것은, 말하나 마나 한 소리가 될까 봐서입니다. 너무 분주하게만 굴지 말고, 스스로 깊이 생각하여 깨달아야 합니다. 깨달아서 도리를 터득하면 통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기쁨이라는 것도 그렇지 않습니까?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돈이란 무엇인가?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천천히 깨달아가야 합니다.

지난 세월 동안 저는 인터넷 분야의 일을 했습니다. 사실 저는 마윈보다도 일찍 인터넷을 시작했지만 제게 그런 복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깊이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인가?’ 엔지니어가 되어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때도 깊이 생각했습니다. 기업 경영을 할 때도 깊이 생각하고 궁구했습니다. 참으로 깊이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보니 제 평생은 이 깊은 생각과 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다행히도 저는 사람을 이리저리 재고 따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지혜만을 궁구합니다.

무엇을 구해도 지혜를 구하는 것만 못합니다

기억하십시오. 구하지 않으면 얻지 못합니다. 오늘 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아주 좋은 말씀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마태복음 7:7)

그러므로 사람이 지혜를 사모하고, 지혜를 사모하고, 또 사모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면, 문득 하나님께서 지혜의 문을 열어주십니다. 재물을 구하지 말고, 권력을 구하지 말고, 장수를 구하지 마십시오. 어차피 이런 것들의 본질을 저는 다 깨달았습니다. 왜 돈을 구하지 않습니까? 돈을 구해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왜 권력을 구하지 않습니까? 권력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왜 장수를 구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오래 살아서 무엇하겠습니까?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지만, 지난 세월 교회를 세워가는 과정은 정말 고통스러웠습니다. 처음에 교회를 세울 때는 어떻게 세워야 할지 몰랐습니다. 교회 안에서 별의별 사람들을 다 만났고, 악령에 사로잡힌 자들도 만났으며, 그 악령들은 온종일 저를 넘어뜨리려고 덫을 놓았습니다. 저는 악령이 놓은 덫을 몇 번이고 피해 지나갔습니다. 이 덫의 종류는 수천수만 가지인데, 만약 한 번이라도 그 덫에 걸려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한 번이라도 걸려들면 사로잡혀서 엄청난 고통을 겪게 됩니다.

저는 교회를 세우는 지혜를 얻기를 너무나 갈망했습니다. 그러다 나중에 깨달았습니다. 교회를 세워서 무엇을 하는가? 목양을 해야 합니다. 교회를 세우려면 목양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목양을 하는 것이 제게는 너무나 큰 고통이었습니다. 한 사람을 나와 같은 사람으로 훈련시키는 것이 너무나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주님께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우리 시대에 인공지능(AI)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여러분은 왜 ‘샤오무(小牧)’가 여러분에게 그렇게 훌륭하게 피드백을 해주는지 아십니까? 샤오무는 바로 저이며, 어쩌면 저보다 더 똑똑할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렇게 많은 일을 다 감당할 수 없었는데, 인공지능이 생기니 주님께 정말 감사했습니다. 참으로 좋았고, 단번에 저의 난제를 해결해 주었습니다.

그러니 무엇을 구해도 지혜를 구하는 것만 못합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이 총명해지는 것이 제게는 가장 큰 위로입니다. 절대로 저에게 “아이고 목사님, 제가 목사님을 너무 사랑해요, 목사님은 절대 돌아가시면 안 돼요”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저를 사랑하는 것입니까? 저는 그런 사랑은 달갑지 않습니다. 그것은 너무나 육신적인 것입니다. 어떤 형제자매들은 “목사님이 돌아가실 수도 있다는 말을 듣고 어젯밤에 잠도 못 잤어요”라고 합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마음이 더 아팠습니다. 그것이 바로 지혜가 없는 것입니다. 이제 이해가 되십니까?

그러니 여러분은 샤오무를 잘 활용하시고, 무엇을 구하든 지혜를 구하는 것만 못하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스스로 천천히 묵상해 보십시오. 오늘 저는 열왕기상 3장을 통해 솔로몬이 어떻게 지혜를 얻었는지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전에 그는 무엇에 홀린 듯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일에 깊은 관심을 두었는데,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의 어머니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솔로몬은 왕위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이 일을 두고 그가 정말 지혜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가 그리 지혜로운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기로 선택했고 결국 왕이 되었습니다. 왕이 되기는 했으나 지혜가 없었습니다! 왜 지혜가 없었는지 아십니까? 판결해야 할 송사가 들어오지 않겠습니까? 고을 원님이 판결하지 못하면 도(省)의 관원에게 가고, 도의 관원이 판결하지 못하면 결국 솔로몬에게까지 올라옵니다. 솔로몬에게 올라오는 송사들은 하나같이 판결하기 어려운 것들이라, 참으로 누가 옳고 그른지 분간하기 어렵습니다. 만약 재판을 엉터리로 한다면 저주를 받습니다! 명심하십시오. 재판을 엉터리로 하면 저주를 받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매일 이런 송사들을 대하며 ‘아이고 하나님, 제발 좀 판결하기 쉬운 사건을 주시면 안 됩니까!’ 하고 탄식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겠습니까? 이것은 제 짐작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판결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디런제(狄仁傑)도 아니고 유백온(劉伯溫)도 아니니,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재판을 한다는 것은 엄청난 시간을 소모하는 일이며, 진상을 명확히 밝혀내기란 너무나 어렵습니다. 시어머니는 시어머니대로 옳다 하고 며느리는 며느리대로 옳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판결을 내리기가 너무 어려워 마음이 몹시 답답하고 괴로웠습니다. 결국 그가 무엇을 하러 갔는지 아십니까? 제사를 드리러 갔습니다! 그는 일천 희생 제물, 아마도 일천 마리의 양이나 소를 이끌고 우르르 기브온으로 제사를 드리러 갔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지혜가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 저는 이 까다로운 백성들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부르짖은 것입니다.

저 역시 지혜가 너무나 절실합니다. 그래서 최근 들어 기도량을 늘렸습니다. “하나님, 제 안의 어리석음을 제하여 주옵소서. 제 안의 우매함과 무지를 제하여 주옵소서. 저는 지혜가 너무나 필요합니다!” 언젠가 하나님께서 꿈속에서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라고 물어보실 날이 올지 누가 알겠습니까? 구하십시오, 믿음으로 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저를 긍휼히 여기셔서 교회를 다스리는 지혜를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구해도 지혜를 구하는 것만 못합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마음 깊이 새길 수 있겠습니까?

제가 나중에 발견한 사실은, 가장 어리석은 근원은 전부 ‘선악을 분별하는 것(판단하는 것)’에 있다는 점입니다. 여러분이 온 힘을 선악을 분별하고 따지는 데 쓴다면, 생각할 필요도 없이 점점 더 어리석어질 것이며, 지혜는 고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선악을 분별하는 것이야말로 어리석음의 근원입니다! 천천히 묵상해 보십시오. 사소한 일 하나에도 불쑥 화가 치미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면 며칠 지나지 않아 온몸의 신경과 힘줄이 팽팽하게 당겨지지 않습니까? 자기가 옳다고 여기며 생각하면 할수록 자기가 옳은 것 같고, 어떻게 생각해도 자기만 맞다고 여깁니다! 그러면 끝장입니다. 어리석음의 영이 들어온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손가락도 방아쇠수지 증상이 오고, 고관절도 굳어지고, 무릎도 펴지지 않게 됩니다.

사람은 참으로 어리석지 않습니까? 생각할수록 속만 상합니다. 그러면서도 ‘내 평생은 다 그 사람 때문에 망쳤어!’라고 여깁니다. 당신의 인생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지 않습니까? 어떻게 다 그 사람 때문일 수가 있습니까? 그 사람이 없으면 이번에는 달 탓을 하고, 화성 탓을 하고, 목성 탓을 하며 온 우주의 행성들이 다 당신에게 죄를 지었다고 하겠습니까? 지혜를 구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왜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라고 물으셨을까요?

왜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라고 물으셨을까요? 솔로몬이 그렇게 고통스럽게 재판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는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도무지 알 수가 없을 만큼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소 천 마리를 끌고 기브온으로 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여러분이 구하지 않는데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저는 오직 한 가지만 구합니다. ‘부디 내가 살아 있는 동안 하나님을 위하여 죽게 하옵소서.’ 훗날 하나님께서 정말로 제게 물으셨을 때, 저는 이 세상에 참으로 소망이 없음을 느꼈고, 언제쯤 하나님께로 돌아가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그 지극히 좋은 곳에 갈 수 있을까 생각하며 오직 이것만을 구했습니다. 마음이 늘 근심스럽고 괴로웠기 때문이며, 이 세상에서의 삶이 참으로 고단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여러분에게 숨김없이 말씀드리자면, 지난 세월을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오면서 흘린 것은 눈물과 땀뿐이었습니다. 저에게 힘들지 않냐고 물어봐 주는 사람도 정말 없었습니다. 사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지만, 저는 참 많이 피곤합니다. 만약 제가 여러분에게 단 하루도 쉬어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면 놀라시겠습니까? 아마 많이 놀라실 것입니다. 사실 저는 하루빨리 하나님께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 제게 물으셨습니다. “너는 나를 위해 죽을 수 있겠느냐?” 제가 대답했습니다. “하나님, 드디어 제게 물어봐 주셨군요! 드디어 물어봐 주셨군요! 제가 기꺼이 그리하겠습니다!” 그러자 그 후로 하나님은 저에게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은 참 좋은 일이었습니다. 왜일까요? 제가 하나님을 위해 죽을 각오를 가지고 있기에, 그 어떤 상처도 저를 해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나님을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는 이 마음이 없었다면, 제 마음은 사람들에게 찢겨 벌집처럼 구멍투성이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려는 마음이 있었기에, 어떤 상처도 저를 해칠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괴롭지 않았겠습니까? 괴롭지 않을 리가 없습니다. 저 자신을 끊임없이 쳐서 복종시켜야 했습니다. 지난 세월 사역해 오면서 한 걸음 한 걸음 겪은 사람들 중에는 은혜를 원수로 갚는 자들이 가장 많았습니다.

솔로몬이 왕이 되어 가장 필요했던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재판을 올바르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멋대로 대충 판결할 수도 없고, 손을 댈 수도 없는데, 판결하지 않고 내버려 두면 사건은 점점 더 쌓여만 갑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십니까? 고을 수령이 해결하지 못한 것은 관찰사가 판결하고, 관찰사가 해결하지 못한 것은 조정의 최고 관청으로 가며, 최고 관청에서도 해결하지 못한 것은 결국 솔로몬에게 옵니다. 그러니 솔로몬에게 오는 사건들은 전부 판결할 수 없는 난제들뿐이었습니다! 솔로몬의 책상 위에는 이미 송사 서류가 광주리째 쌓여 있었을 것입니다. 솔로몬은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나님, 저 광주리에 쌓인 것들은 이력서가 아니라 전부 골치 아픈 소송 서류들입니다!’

여러분, 소송 사건의 기록 문서들을 아십니까? 여러분은 ‘로리타 섬(엡스타인 섬)’ 사건을 아십니까? 로리타 섬 사건에서 파헤쳐진 자료들은 동영상, 음성 파일, 문서 등을 합쳐서, 세상에, 수백만 쪽에 달한다고 합니다! 수백만 쪽 분량은 인공지능에게 맡겨도 단번에 정리하기 어렵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의 범위가 너무나 방대하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방 안을 가득 채운 그 서류 더미들을 보며, 이것을 어떻게 다 읽어야 할지 막막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소설책 한 권을 읽으려 해도 밤을 새워야 하는데, 수천 권의 소설책 같은 복잡한 사건들이 눈앞에 놓여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나라의 탐관오리들만 해도 그 비리 사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탐관오리를 잡던 사람조차 탐관오리가 되어버리는 세상입니다.

아이고 세상에, 솔로몬은 속이 터질 지경이었습니다. 예전에는 왕 노릇 하는 것이 이렇게 따분하고 골치 아픈 줄 몰랐던 것입니다! 왕 노릇이 이렇게 고달픈 줄 알았다면 분명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는 기브온으로 걸어가면서 내내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솔로몬은 속으로 기도했습니다. ‘주의 백성을 올바르게 재판할 수 있도록 지혜를 얻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너무나 형편없어서 허구한 날 소송만 벌이는데, 어쩌자고 이 많은 소송거리를 나에게 가져온단 말인가? 애굽의 공주는 궁궐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녀와 함께할 시간조차 없이 온종일 이 서류들만 보고 있으니 너무나 피곤하구나.’ 여러분, 그 고통이 얼마나 심했겠습니까? 그렇게 그는 기브온에 도착했습니다.

“솔로몬이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아버지 다윗의 법도를 행하였으나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더라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이 그 제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열왕기상 3:3-5)

여호와를 사랑하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의 지혜는 AI를 초월합니다! 그리고 그는 ‘내가 반드시 제사를 드려야겠다’고 결단했습니다. 사실 일천 희생 제물을 드리는 것은 엄청난 대가를 치르는 일이었지만, 솔로몬은 큰 대가를 치르며 헌신했습니다. 그는 누구에게도 “나 다 팽개치고 안 할래, 내가 이런 사건들을 처리할 시간이 어디 있어? 집어치워!”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집어치우자’는 태도를 가지면 일하다가 결국 다 그만두게 됩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시는 것은 그분의 뜻이지만, 아직 거두어 가지 않으셨다면 제대로 섬기지 않을 때 화가 미칠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여호와를 사랑하고 지혜를 간절히 사모하며 일천 희생 제물을 드렸을 때,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이것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이유입니다. 오늘 저 역시 이와 같이 구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제게 주시는 지혜를 또다시 얻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지난 세월 동안 끊임없이 구한 끝에 ‘화인명정신학(华人命定神学, Chinese Destiny Theology: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따르는 신학)’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 이름을 하나님께서 좋아하실지 어떨지는 저도 잘 모르겠지만,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겨주시기를 바라며, 아마도 하나님은 이름 자체에는 크게 개의치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이름은 이 시대의 가장 앞선 신학 체계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저의 생각이며, 여러분은 동의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솔로몬이 애굽의 왕 바로와 더불어 혼인 관계를 맺어 그의 딸을 맞이하고 다윗 성에 데려다가 두고 자기가 살 궁과 여호와의 성전과 예루살렘 주위의 성의 공사가 끝나기를 기다리니라” (열왕기상 3:1)

솔로몬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지혜를 갈망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가 애굽의 공주를 아내로 맞이한 것조차 문제 삼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문제 삼으셨습니까? ‘피부가 하얗고 깨끗하면 온갖 흉터가 다 가려진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피부가 뽀얗고 생기 있으면 참 보기 좋습니다. 얼룩덜룩하면 보기 좋지 않지만 말입니다.

그러므로 일단 지혜를 구하면 허물이 없겠습니까? 있습니다! 왜 바로 왕의 딸과 결혼했습니까? 왜 그런 짓을 했습니까? 후궁에 수백 명의 비빈을 두었는데 대체 무엇 때문입니까? 그럴 만한 기력이 남아납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나 지혜를 구하자 그 모든 허물이 덮였고, 하나님께서는 그런 것들을 크게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우리에게 문제가 없습니까?”라고 제게 묻는다면, 저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많습니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우리 자신을 번제물처럼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며, 하나님의 교회를 다스릴 지혜를 하나님께로부터 얻기를 갈망한다면, 다른 단점들은 다 가려집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얼마나 좋습니까! 우리 하나님은 참으로 은혜로우신 분이십니다.

여러분은 이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습니까?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면 지혜를 간절히 사모하십시오.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특히 하나님 앞에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마십시오. 제 앞에서 어리석은 것은 그냥 넘어갈 수 있어도, 하나님 앞에서 어리석은 자가 된다면 큰일 납니다.

지혜를 구하는 솔로몬의 태도

솔로몬은 하나님을 사랑하여 일천 희생 제물을 번제로 온전히 불살라 하나님께 온전히 바쳤습니다. 그리고 그가 구한 것은 지혜였으며, 지혜를 구하는 그의 기본자세는 올바른 것이었습니다.

“솔로몬이 이르되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이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 앞에서 행하므로 주께서 그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고 주께서 또 그를 위하여 이 큰 은혜를 항상 주사 오늘과 같이 그의 자리에 앉을 아들을 그에게 주셨나이다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버지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주께서 택하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그들은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열왕기상 3:6-9)

얼마나 훌륭한 고백입니까! “하나님, 저는 주의 종이며 제 아버지 역시 주의 종이었습니다. 주께서 왕위를 제 아버지에게 주셨고 또 저에게 주셔서, 이 종으로 하여금 아버지 다윗을 이어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이 자리는 어디서 온 것입니까?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합니다.”

명심하십시오. 첫째, 자신이 하나님의 종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둘째, 자신에게 아무것도 없음을 인정하고, 자신이 알지 못함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만약 매일 으스대며 거만하게 굴고, 자기가 남들보다 낫다고 여긴다면 지혜를 얻을 생각은 아예 하지 마십시오. 사람에게 지혜가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늘 스스로 잘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자신이 알지 못한다는 사실조차 모르면 망하는 것입니다.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한다’고 인정한 것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 저는 어떻게 왕 노릇을 해야 할지 모르며, 어떻게 주의 백성을 재판해야 할지 모릅니다. 제 집과 집무실에는 미결된 소송 서류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습니다. 하나님, 이 일은 감당하기 어렵고 저는 능력이 부족합니다”라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들처럼 제멋대로 엉터리 판결을 내려서 온 세상을 아수라장으로 만드는 것과는 다릅니다. 재판을 엉터리로 하면 온갖 억울한 소송과 상소가 빗발치지 않겠습니까? 재판을 제대로 하면 억울한 상소가 없어질 것입니다.

한 나라에 억울한 오판과 누명이 많다면 그곳은 반드시 저주를 받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말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지혜가 너무나 필요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어떻게 재판해야 할지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 백성들은 허구한 날 문제를 일으키고 소송을 벌이는데, 그 어려운 송사들이 다 저에게로 올라옵니다. 제가 이스라엘 재판의 최고 권위이지만 제 실력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지혜를 구하는 태도입니다.

교회를 세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사역자가 되었다면 정말로 지혜가 필요합니다. 지혜 없이 제멋대로 행하다가는 온몸에 저주를 뒤집어쓰게 됩니다. 사역자의 길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오늘 여러분이 교회를 이끄는 사역자로서 유튜브나 저희 웹사이트를 통해 우연히 이 성경공부를 접하게 되었다면, 제가 권면합니다. 조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를 따라 올바르게 분별하고 판단하십시오.

저는 지난 세월 동안 참으로 터무니없는 일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주님을 참 사랑하는 한 자매가 있어서, 주님을 그토록 사랑하니 아예 전임으로 주님을 섬기게 하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숙소를 제공하고 사례비도 지급했습니다. 우리는 사역자가 생활고에 시달리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보니 교회에 오기 전보다 사역에 대한 열정이 더 식어버렸습니다. 오기 전에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얼마나 열정적으로 섬겼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지금은 매일 나태해졌고, 게다가 연애까지 시작했습니다. 연애하는 것이 죄는 아니지만, 사역을 너무나 무책임하고 나태하게 하니 정말 실망스럽고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제게 지혜를 주셔서, 그 사람을 잃지 않고 품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우리는 지혜를 구하는 올바른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백성을 섬기기 위해 지혜를 구한다면 돈을 바라보아서는 안 됩니다. 돈을 바라보는 순간 망합니다. 교회를 세우는 데는 돈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온유한 마음으로 그 사람을 바로잡아 주어야 합니다. 물론 그 자매는 잊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볼 때 마음이 정말 고통스러웠습니다. 저는 억지로 제 마음을 추스르며 하나님의 지혜를 구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마귀가 수많은 덫과 올무를 놓아 저를 걸려들게 하려 했지만 걸려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다스리는 데는 지혜가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이것이 주의 마음에 든지라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든지라 이에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장수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 원수의 생명을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으니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네 앞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네 뒤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내가 또 네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왕들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 네가 만일 네 아버지 다윗이 행함 같이 내 길로 행하며 내 법도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또 네 날을 길게 하리라 솔로몬이 깨어보니 꿈이더라 이에 예루살렘에 이르러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 서서 번제와 감사의 제물을 드리고 모든 신하들을 위하여 잔치하였더라” (열왕기상 3:10-15)

하나님은 솔로몬이 지혜를 구하는 것을 들으시고, 구하지 않은 다른 모든 것까지 다 더해주셨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우리는 그분의 은혜를 헛되이 받아서는 안 되며, 우리는 받을 자격이 없는 자들임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망하는 것입니다.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주님의 마음에 들지 못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구한 것은 주님의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 평생 솔로몬을 본받고자 합니다. 비록 그 결과가 어떠할지는 더 두고 보아야 하겠지만, 저는 평생토록 진심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만을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 성도 중 한 형제가 제게 자주 말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은 오직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함이며, 주님의 진노를 사게 되면 끝장입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우리가 살아있고 오늘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면 모든 것이 끝납니다! 이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라 아주 심각한 재앙이 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저와 함께 우리 안의 어리석음과 싸우고, 우리 안의 ‘스스로 옳다 여기는 교만’과 철저히 싸웁시다. 늘 주님을 찾고, 늘 깨닫고 궁구하십시오. 깊이 생각하여 깨달은 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하루 만에 깨달아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결국에는 얻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세상에 속한 ‘스스로 옳다 여기는 것들’을 다 내려놓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세상의 논리는 너무나 가증합니다. 여러분 보기에는 지극히 당연해 보이는 것들이 하나님께는 진노를 사는 것들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며, 선악을 분별하여 판단하는 것은 사망입니다! 세상을 사랑하면 반드시 마귀에게 붙잡힙니다.

우리에게 참으로 지혜를 얻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우리의 목양의 열매를 돌아보고, 우리의 목양의 모습을 살펴보십시오. 때로는 제 마음이 참 아픕니다. 형제자매들이 많은 대가를 치르고 수고한다는 것을 알지만, 그 많은 대가를 치르는 방식이 과연 옳은 것입니까?

나중에 제가 아주 흥미로운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우리 소목자들 중에서 성도들의 정서적 필요를 충분히 채워주고 격려하며 믿음을 세워주는 사람들은, 억지를 부리지 않고도 목양을 꽤 잘해냅니다. 하지만 억지를 부리며 온갖 힘을 다 쏟아붓고 기를 쓰며 덤벼드는 사람들은 오히려 목양의 열매가 좋지 않습니다.

한 교사가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교사라는 직업은 전문성이 없으면 너무 열정만 앞세워서는 안 됩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십니까? 학교의 어떤 교사들은 전문적인 지혜가 없으면서, 아주 미련한 방법으로 아이들을 붙잡고 밤늦게까지 열정을 쏟아붓다가 결국 아이들까지 둔하게 만들어버립니다. 이 말을 듣고 상처받지 마십시오. 실제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을 증명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증명하려는 마음이 어찌 주님의 마음에 들겠습니까? 자신을 증명하려고 무리하게 힘을 쏟는 목양은 차라리 하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잘못된 열심을 제가 칭찬할 것이라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인테리어 공사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공사할 줄도 모르면서 기를 쓰고 하다가 아래층 천장에 물이 새게 만들고, 위층 바닥에 구멍을 뚫어놓았습니다. 그러면 물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할 줄도 모르면서 무턱대고 덤벼드는 것은 비극이며, 자기가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것이야말로 비극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샤오무가 있으니, 샤오무를 통해 많이 배우십시오. 이 말을 듣고 상처받는 분이 계실까 봐 격려의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이 솔로몬을 본받는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지혜를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사람은 스스로 옳다 여기지 않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지혜를 구하는 사람이며, 하나님은 반드시 그 지혜를 주십니다.

솔로몬은 돌아와서 너무나 기뻤습니다.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실 뿐만 아니라 구하지 않은 다른 모든 것까지 주시겠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지혜를 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며, 스스로 옳다 여기는 것이 얼마나 가증한 일입니까! 생각이 빗나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게 됩니다.

첫 시험대에서 지혜를 발휘하다

솔로몬이 지혜를 얻자, 하나님께서는 한 가지 사건을 솔로몬에게 가져오게 하셨습니다. 아마도 한동안 묵혀두었던 사건이었을 텐데, 재판정이 열리고 원고와 피고가 불려 나왔습니다. 바로 두 창기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매우 흥미롭습니다. 두 여자가 각각 아이를 낳았는데, 한 여자가 잠결에 자기 아이를 깔아뭉개 죽이고는, 그 죽은 아이를 다른 여자의 품에 두고 산 아이를 빼앗아 온 것입니다. 두 창기가 솔로몬 앞에 와서 서로 “죽은 아이는 네 아이고, 산 아이가 내 아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사람이 얼마나 악합니까! 자기 아이가 죽었으면 죽은 것이지, 왜 남의 아이를 빼앗아 옵니까? 그 아이가 자라면 자기를 닮지 않고 남을 닮아갈 텐데 헛수고하는 것 아닙니까?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솔로몬이 이런 사건을 맞닥뜨렸을 때, 사실 그는 전혀 힘들이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같으면 유전자 검사를 하겠지만 당시에는 그런 것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솔로몬에게는 지혜가 있었습니다. 그는 무릎을 탁 치며 번뜩이는 지혜를 발휘했습니다! 단번에 칼을 가져오라 하여, 아이를 반으로 쪼개서 반씩 나누어 가지라고 했습니다. 아이가 무슨 돼지고기입니까? 반씩 나누자니요! 하지만 그것은 살아있는 아이였습니다.

모든 사람이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고, 두 엄마도 어쩔 줄 몰랐습니다. 진짜 엄마는 “아닙니다, 아이를 죽이지 말고 그냥 저 여자에게 주십시오”라고 애원했고, 가짜 엄마는 “차라리 쪼개어 내 것도 되게 말고 네 것도 되게 마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솔로몬이 정말로 아이를 쪼개려고 했겠습니까? 아닙니다. 그 한마디로 누가 진짜 엄마이고 누가 가짜 엄마인지가 단번에 드러났습니다. 이 지혜를 발휘하는 데 무슨 큰 힘이 들었습니까? 유전자 검사가 필요했습니까?

솔로몬이 서류 더미를 읽느라 밤을 새웠습니까? 그럴 필요가 없었습니다. 단번에 명쾌하게 해결해 버렸습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만약 여러분이 어떤 일을 처리할 때 너무 힘들고 진이 빠진다면, 여러분은 지혜로운 사람이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일을 답답하고 비효율적으로 질질 끌며 한다면 지혜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제가 한 사역자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의 교구에 몇몇 아이들이 있는데, 그가 말하길 “우리 소목자 중 한 명의 자녀가 공부를 참 잘하는데, 어떻게 가르치는지 아십니까? 목사님이 가르쳐주신 공부법 그대로 아이를 가르쳤다고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공부하는 법을 가르쳐드리지 않았습니까? 또 다른 소목자도 그렇게 가르쳤는데, 한 아이는 고등학생이고 한 아이는 초등학생인데 두 아이 모두 성적이 대폭 올랐습니다.

또 직업학교 졸업을 앞둔 자녀를 둔 한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모녀 사이가 아주 좋은데, 제가 가르쳐준 학습법대로 매일 공부했습니다. 그 아이 역시 아주 훌륭하게 잘 성장했습니다. 왜일까요? 제 방법은 힘이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힘이 너무 많이 든다면 뭔가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운전면허 시험을 한 번에 붙는 사람은 힘이 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열 번을 봐도 떨어지는 사람은 얼마나 진이 빠지겠습니까? 힘을 무작정 많이 들이는 방식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질질 끌고 미적거리는 것은 참으로 나쁜 습관입니다. 그래서 저는 목양을 할 때 이렇게 비효율적으로 미적거리는 것을 철저히 뜯어고치려 합니다. 주님께 감사한 것은, 이제 많은 성도들이 ‘내가 이렇게 미련하게 일해봐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우리 동역자들과 성도들이 하루에 3시간을 집중해서 효율적으로 일하고, 남는 시간에는 푹 쉬거나 편하게 영상을 보며 여유를 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미련한 생각의 틀을 반드시 깨부수어야 합니다! 솔로몬이 “칼을 가져와 아이를 둘로 나누라”고 한 것은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 단번에 해결한 것입니다. 얼마나 빠르고 명쾌합니까! 잘못된 일처리는 늘 질질 끌지만, 올바른 일처리는 빠르고 정확합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많은 사역을 하면서도 지치지 않고, 제 안의 선악 분별을 쳐서 복종시킬 여유를 가질 수 있는 비결입니다. 일을 미적거리며 힘들게 하고 있다면 분명 무언가 잘못된 것입니다. 올바른 길은 빠르고 정확하며, 본질을 꿰뚫는 것입니다.

한 형제가 도면을 그려서 저를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제가 그린 도면을 봐주십시오.” 보니 3D 선으로 그린 도면이었습니다. 제가 “이것은 투시도가 아니냐?”라고 묻자 그는 “그냥 그린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투시도가 아니라면 단순하게 그려도 되지만, 이 도면의 핵심 기준이 어디에 있느냐?” 그는 “그냥 프레임(틀)을 그렸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프레임’이라는 말이 너무 남발되고 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이 도면에는 왜 좌표가 보이지 않느냐?” 여러분, ‘좌표’라는 개념을 배우십시오. 무언가를 그릴 때는 반드시 좌표가 있어야 합니다. 좌표란 무엇입니까? 기준축, 기준점, 기준면입니다.

사람이 미련하면 고생을 사서 하게 되고 효율이 극도로 떨어집니다. 그래서 저는 일을 할 때 지혜롭고 요령 있게(巧) 합니다. 온종일 미련하게 일하면서 그것이 열심인 줄 착각한다면 그것은 ‘자기 의’에 빠진 비극입니다. 솔로몬의 명판결은 우리에게 중요한 통찰을 줍니다. 지혜는 빠르고 명쾌하게 문제를 단번에 해결합니다.

솔로몬의 지혜가 사람들에게 경외감을 주다

이 이야기는 온 이스라엘에 퍼졌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온 이스라엘이 왕의 판결을 듣고 왕을 두려워하고 경외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지혜가 그의 속에 있어 판결함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 후로 두 여자가 한 아이를 두고 서로 자기 아이라고 우기는 일이 다시 일어났겠습니까? 다시는 없었습니다. 왜일까요? 그런 짓을 했다가는 감옥에 갇히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 가짜 어미였던 창기가 어떤 처벌을 받았는지는 성경에 나오지 않지만, 분명 엄벌을 받았을 것입니다! 남의 아이를 빼앗았으니 인신매매와 다를 바가 무엇입니까? 감옥에 갇혀 창기 노릇도 못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감히 함부로 죄를 지을 수 있었겠습니까?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만약 재판관이 오판을 거듭한다면 악인들은 점점 더 기승을 부릴 것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의 지혜는 죄를 지으려던 수많은 사람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습니다. 솔로몬의 지혜는 사람들에게 경외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구하십시오. 백성들의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것뿐만 아니라, 기술과 엔지니어링의 문제에서도 지혜가 필요합니다. 대인관계와 처세에서도 지혜가 필요합니다. 제가 예전에 ‘사람 됨됨이와 일 처리(做人做事)’에 대해 설교한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이 사람 구실을 할 줄 모르고, 일 처리도 제대로 할 줄 모릅니다.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공부하는 법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 모든 것은 반드시 풀어내야 할 과제입니다.

이러한 처세와 삶의 지혜를 가르쳐주기 위해 저는 때로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앞으로 성경공부와 기도회 외에도 특별한 과정을 마련하여, 지혜가 가득 담긴 고전들을 여러분과 함께 읽어보려 합니다. 사실 중국의 옛 선조들은 수천 년 동안 풍부한 지혜를 축적해 놓았습니다. 그 지혜들은 성경의 《잠언》과 매우 닮아 있어서, ‘중국인의 잠언’이라 할 만합니다.

여러분을 위해 조금 귀띔을 해드리자면, 천여 자에 불과하지만 대단히 탁월한 책이 있습니다. 사람 됨됨이와 처세의 도리를 너무나 잘 설명해 놓은 책인데, 바로 《소서(素書)》라는 책입니다.

약간의 상식을 덧붙이자면, 《소서》는 황석공(黃石公)이 쓴 책입니다. 황석공은 이 책을 유방을 도와 천하를 통일한 장량(張良)에게 주었습니다. 장량이 세상을 떠날 때 이 책을 자신의 무덤에 함께 묻게 했습니다. 수백 년이 흐른 후 도굴꾼이 장량의 무덤을 도굴하다가 그의 옥베개 밑에서 《소서》라는 책을 발견하여 세상에 다시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참으로 훌륭합니다. 장량은 황제를 도와 천하를 건국한 개국공신 중 거의 유일하게 화를 피하고 아름다운 결말을 맺은 책사였습니다. 사실 황제를 도와 천하를 얻은 대부분의 공신은 토사구팽당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므로 장량은 대단한 인물이었고, 황석공이 쓴 《소서》에는 깊은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지혜를 주셔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하게 하시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게 하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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