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하나, 서론
- 느헤미야, 스룹바벨, 모르드개, 다니엘은 모두 고위 관리였고 매우 부유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성전과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권세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었으며, 하나님의 성전을 위해 자신을 드린 사람들이었습니다.
- 신약성경에서 교회는 매우 중요한 개념입니다. 하나님의 집과 하나님의 성전은 모두 교회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사람은 반드시 형통하게 됩니다.
둘, 본문 말씀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받은 첫해, 곧 그가 통치하던 첫해에 나 다니엘이 책을 통해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 년이면 끝나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에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로 결심하였다. (《다니엘서》 9:1-3)
셋, 기도
넷, 본문의 배경
- 다니엘은 어릴 때 포로로 바벨론에 끌려가 바벨론에서 “관리 연수생”이 되었고, 결국 바벨론 제국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하나님의 성전을 재건하는 일은 다니엘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 다니엘의 직장 생활의 발전은 작은 수단을 부리거나 자신의 지식과 재능에 의지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염려하시는 것을 염려하고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기뻐하시므로 그를 높여 주셨습니다.
- 다니엘은 세 왕조 네 대에 걸쳐 총리를 지냈고, 비바람이 몰아치는 직장 생활 속에서 70년 동안 “쓰러지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다니엘이 깊이 깨달은 가장 중요한 원칙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직장에서도 다니엘을 높이셨을 뿐 아니라, 그를 지혜롭고 매우 통찰력 있는 사람으로 만드셨습니다.
다섯, 다니엘은 왜 살았는가
- 다니엘은 하나님을 위해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왕이 금지령을 내렸을지라도 그는 여전히 날마다 창문을 열고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했습니다. 그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다시 예루살렘을 돌보시기를 소망했으며, 한 번도 생사를 마음에 두지 않았습니다.
- 하나님은 통치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자의 입을 막으실 수 있습니다. 다니엘은 사자 굴에 던져졌을지라도 예루살렘을 위해 평안을 구하며 기도해야 했고, 그 결과 사자 굴에서도 아무 탈 없이 지냈습니다.
- 하나님을 위해 사는 사람은 죽음을 업신여기고, 살아 있는 것 자체도 업신여기며, 정치적 다툼도 업신여깁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살기만 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위대한지 알게 됩니다!
여섯, 사람은 무엇을 구하는가
- 하나님께서는 작은 일상만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미워하십니다. 그들은 자녀를 구하고, 직장을 구하고, 승진을 구하고, 임금 인상을 구하며 살아 있는 것에 관한 하찮은 일들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지만, 이런 것들은 하나님의 눈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 사람은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기뻐하시고 어떤 사람을 미워하시는지 알아야 합니다. 다니엘이 구한 것은 하나님의 성전이 더 이상 황폐하지 않는 것이었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교회를 돌보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을 기뻐하셨습니다.
일곱, 혼란을 마주하는 태도
- 다니엘이 사자 굴에 던져졌을 때 많은 사람이 혼란스러워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사자 굴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는 더 이상 혼란스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왜 혼란스러워합니까? 사람의 가치 체계와 추구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 세상에는 두 가지 가치관과 두 가지 추구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세상에서 잘 사는 것을 추구하면 많은 일을 보고 혼란스러워합니다. 그러나 영원 안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바라보고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시는지 알면 혼란스러워하지 않습니다.
여덟, 하나님께서 성소를 연단하고 정결하게 하심
-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연단을 경험하고 혼란을 경험한 후, 그 혼란에서 빠져나오게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정결하게 하시는 사역입니다. 모든 일이 순조롭고 구하는 즉시 얻는다면 아무것도 연단되지 않습니다.
- 사람이 하나님께 속했는지 마귀에게 속했는지는 연단을 받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모든 일이 순조로운 것은 연단을 거친 후에야 있게 됩니다. 연단을 거친 후에야 사람의 믿음이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될 수 있습니다.
아홉, 결론
-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이 되면 어떤 시험과 연단도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있는 사람이 되어 온갖 연단과 혼란을 견뎌 내십시오!
- 사람은 더 멀리 바라보아야 합니다. 살아 있을 때 아무리 형통해도 죽으면 모두 똑같습니다. 사람은 세상의 일을 위해 죽든지, 하나님을 위해 죽든지 해야 합니다! 하루를 살아도 하루를 하나님께 드리고, 장차 하나님의 앞에 서서 하나님의 상을 받으십시오!
핵심 단어
- 다니엘
- 직장 생활
- 하나님을 위해 살아감
- 사람의 혼란
- 마음을 연단함
- 성소를 정결하게 함
- 하나님께 드림
-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
-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움
하나,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우리는 또 한 인물을 이야기하겠습니다. 제가 누구를 이야기하려는지 아십니까? 다니엘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전에 느헤미야, 스룹바벨, 모르드개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들에게는 모두 공통된 특징이 있었는데,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들은 모두 아주 높은 관리였습니다. “아이고, 선생님은 관직에 미친 사람입니까?”라고 하실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그들이 모두 고위 관리였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정말 고위 관리였습니다. 제가 높은 관리가 되는 것을 좋아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지만 “자, 느헤미야와 스룹바벨과 모르드개와 다니엘에 대해 이야기합시다”라고 하면서 그들이 모두 거지였다고 하면, 듣기에 좀 그렇지 않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아십니까? 그들은 모두 매우 부유했습니다. 모두 고위 관리였고, 도지사와 총리였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고위 관리였기 때문에 고위 관리가 된 것이 아니고, 부유했기 때문에 부유하게 된 것도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공통된 특징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과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권세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성전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드렸으며, 이를 위해 수고하고 이를 위해 살았습니다.
오늘 이야기할 다니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고위 관리가 된 것과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한 것이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편》 122편 6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십시오. 예루살렘아, 너를 사랑하는 자들은 형통할 것이다. (《시편》 122:6)
그러므로 제가 성경적인 근거를 가지고 말하는 것입니다. 너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형통할 것입니다! 오늘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있는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사람이 되기를 격려합니다. 여러분을 해치려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좋은 선택입니까! 사람들이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하자 고위 관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무엇을 사랑합니까? 돈을 사랑하면 결국 가난해지지 않습니까? 돈을 사랑하는데 어떻게 가난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반드시 형통합니다!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구약에서 말하는 예루살렘은 오늘날의 교회를 가리킵니다. 구약에 나오는 모든 예루살렘, 구약의 하나님의 성전, 하나님의 집은 모두 오늘날의 교회를 가리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사람은 반드시 형통합니다. 아멘!
오늘 우리 형제자매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사람인지 살펴봅시다. 이 일에 대해 반드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시온산, 예루살렘, 하나님의 성전은 모두 교회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신약에서 교회는 매우 중요한 개념입니다. 그것이 오늘날 땅에 있는 예루살렘이라고 다시는 잘못 생각하지 마십시오. 오늘날 땅에 있는 예루살렘은 돈을 버는 도구가 되어 버렸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저도 이것이 어떻게 돈을 버는 도구가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많은 단체가 이 행사 저 행사를 하며 예루살렘에 가는데, 그 목적이 무엇인지 누가 알겠습니까? 많은 경우 이런 것들에 속지 마십시오.
오늘 우리가 이야기하는 다니엘은 스룹바벨과 같은 시대의 사람이며, 아마 스룹바벨보다 조금 나이가 많았을 것입니다. 느헤미야, 모르드개, 스룹바벨, 다니엘은 서로 전후로 100여 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모두 이스라엘이 망하고 유다 나라가 망한 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나중에 페르시아 제국이 바벨론을 멸망시켰고, 이 사람들은 다시 페르시아 제국에 있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바로 이 사람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가 처음에는 느헤미야를 이야기했고, 그다음에는 스룹바벨, 그리고 모르드개를 이야기했으며, 오늘은 다니엘을 이야기합니다.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다니엘이 먼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다니엘은 기원전 606년의 사람이고, 스룹바벨은 기원전 539년의 사람입니다. 기원전이라는 것은 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사람으로 오시기 전을 뜻합니다. 기원전의 숫자가 클수록 우리에게서 더 먼 시대입니다. 여러분이 이해하기 쉽도록 기원전이라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겠습니다. 다니엘은 2,600여 년 전의 사람이고, 스룹바벨은 2,500여 년 전의 사람이며, 모르드개는 2,400여 년 전의 사람입니다. 느헤미야는 우리 시대에 더 가까운 사람으로, 2,400년 전의 사람입니다. 모르드개가 느헤미야보다 조금 더 이른 시대의 사람입니다.
이 시대의 사람들 가운데 누가 스룹바벨과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고 성벽을 건축하도록 시작하게 했습니까? 누가 시작했습니까? 다니엘이 시작했습니다! 다니엘이라는 사람은 이 일을 시작했습니다. 참 흥미로운 일입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바벨론에 끌려갔을 때 매우 총명한 아이였고, 결국 바벨론 사람들이 그를 눈여겨보았습니다. 요즘 어떤 기업들은 대학생 중에서 좋은 학생들을 뽑아 기업으로 데려와 씨앗처럼 양성합니다. 다니엘은 바벨론 제국이 양성한 씨앗이 되어 관리 업무를 배웠고, 나중에는 바벨론 제국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다니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을 때, 그의 마음에는 예레미야가 예언한 말씀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70년 후에 하나님께서 다시 예루살렘을 돌보시고, 하나님의 백성을 다시 예루살렘으로 데려가 성전을 재건하실 것이다.”라고 한 말씀이었습니다. 이 젊은 다니엘이 10년을 소망하면 60년이 남고, 다시 10년을 소망하면 50년이 남았습니다. 결국 그는 모두 70년을 기다렸습니다. 오늘 형제자매 여러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하나님의 성전이 담겨 있다면, 여러분은 관리 연수생, 곧 관리자로 훈련받는 씨앗이 된 것입니다. 기업에 들어간 관리 연수생은 여러분보다 훨씬 높은 급여를 받습니다. 다니엘이 들어가자 좋은 음식과 좋은 대우를 받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장차 바벨론 왕을 대신하여 이 제국을 관리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바벨론의 총리가 된 것과 마음에 하나님의 성전을 품은 것, 이 두 가지 사이에 필연적인 관계가 있습니까? 분명히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는 사람은 모두 그렇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다니엘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묻습니다. 스룹바벨이 성전을 수리할 때 다니엘은 아직 살아 있었습니까? 성전을 수리한 것은 다니엘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었습니다. 스룹바벨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을 때 다니엘은 여전히 다리오 왕 아래에서 총리로 있었습니다. 오늘 저는 역사도 이야기하고, 이야기도 들려드리면서 이런 내용들을 여러분과 나누겠습니다.
둘, 성경 읽기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받은 첫해, 곧 그가 통치하던 첫해에 나 다니엘이 책을 통해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 년이면 끝나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에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로 결심하였다. (《다니엘서》 9:1-3)
셋, 기도
하나님, 오늘 우리의 영적인 눈을 열어 주셔서,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는 것, 곧 오늘날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여 평안을 구하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이며 얼마나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인지 보게 하소서. 하나님,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백성이 될 수 있는 형제자매들을 일으켜 세워 주소서! 하나님, 오늘 우리 가운데 일으켜 주소서! 크고 작은 다니엘들을 일으켜 주소서! 크고 작은 느헤미야들을 일으켜 주소서! 크고 작은 모르드개들을 일으켜 주소서! 크고 작은 스룹바벨들을 일으켜 주소서! 주님의 성전과 주님의 성과 주님의 백성을 위하여 중보하게 하소서. 우리가 오직 주님의 나라와 주님의 의를 구하게 하시고,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백성이 되게 하소서. 하나님, 우리의 마음에 이 황폐한 시대를 보게 하소서. 하나님, 주님의 뜻은 본래 번성하는 것이오니, 이 번성이 오늘 주님의 교회에 임하게 하소서. 주님의 교회가 다시 일어나 번성하고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게 하소서. 주님의 백성이 작은 일상만을 살아가는 삶과 돈을 탐하는 삶에서 돌이켜 주님께로 돌아오게 하소서. 다니엘의 부르짖음과 같이 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넷, 이 본문의 배경
오늘 제가 나누는 내용은 제가 최근에 연구한 결과입니다. 아주 좋고, 갓 나온 따끈따끈한 내용입니다. 제가 이 내용을 다 이야기하고 나면 여러분은 이 몇 인물을 서로 연결해서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이 본문의 배경과 다니엘의 직장 생활을 살펴보면, 그가 고위 관리가 된 것은 오직 한 가지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작은 수단을 부리거나 자신의 지식과 재능에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한 가지 특징이 있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염려하시는 것을 염려하고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 것인데, 저는 이 논리를 깊이 알고 있습니다. 이 논리는 다니엘의 일생을 관통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는 것을 기억하고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어릴 때부터 그랬습니다! 그 결과 고위 관리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은 고위 관리가 된 것만 바라보고, 고위 관리가 되는 논리는 보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늘 고위 관리가 되고 싶어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다른 사람들이 부정하게 재물을 취하는 것을 보면서, 자신에게는 부정하게 재물을 취할 기회가 없어서 속을 태우는 것입니다. “왜 나는 부정하게 재물을 취할 기회가 없을까?”라고 생각합니다. 고위 관리가 되기도 전에 부정하게 재물을 취하려 한다면, 고위 관리가 된 후에는 부패한 관리가 됩니다. 돈이 없을 때부터 부정하게 재물을 취한다면, 돈이 생겨 사업을 할 때는 악덕 상인이 됩니다. 여러분은 부패한 관리와 악덕 상인이 되고 싶습니까? 결국 어린 시절 여러분의 마음에 무엇이 담겨 있었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다니엘도 그렇고, 다윗과 솔로몬도 그렇습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모두 하나님의 성전이 담겨 있었습니다. 참 신기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셔서 왕을 맡기시거나 총리를 맡기신다면 얼마나 좋습니까? 하지만 제가 본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눈에는 오직 관직과 돈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리저리 애쓰다가 자신을 아주 비참하게 만듭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 다니엘 본문의 배경을 아십니까? 저는 《다니엘서》를 연구한 자료를 많이 보았지만, 그들이 잘 연구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몇 년 전에 제가 여러분과 함께 《다니엘서》를 공부했는데, 많은 자료 중에서 가장 분명하게 살펴본 연구였다고 생각합니다. 《다니엘서》 9장을 읽을 때는 다리오 왕 때인 539년경이었습니다. 다니엘은 606년경에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가면서 관리 연수생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아이는 참 복이 있었습니다. 포로로 끌려갔는데도 관리 연수생이 되었으니, 이것이 좋은 일입니까, 나쁜 일입니까?
그때 다니엘은 대략 열네다섯 살이었을 것입니다. 포로로 끌려갔을 때 열다섯 살이었다고 가정하면, 539년경에는 82세의 노인이 된 것입니다. 다니엘은 포로로 끌려간 채로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그는 늘 《이사야서》와 《예레미야서》를 읽었습니다. 바로 우리가 오늘 읽는 성경입니다. 다니엘은 《예레미야서》를 읽고 그 안에 기록된 70년을 소망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예루살렘을 돌보시고 그들을 다시 돌아가게 하실 것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이 바벨론의 총리가 되었을 때, 바벨론 제국은 페르시아 제국의 고레스 왕 아래에 있던 한 뛰어난 장수 다리오에게 멸망했습니다. 바벨론은 다리오 왕의 영토가 되었고, 다리오 왕은 페르시아 황제 고레스 왕 아래에 있었습니다.
다리오 왕이 62세였을 때 바벨론 성에 쳐들어가 벨사살을 죽였습니다. 사실 다니엘은 바벨론의 총리였는데, 다리오 왕은 바벨론의 수도에 들어온 후에도 여전히 다니엘을 총리로 기용했습니다. 정말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그는 쓰러지지 않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다니엘의 직장 생활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우리의 논리대로라면 그는 이전 왕조의 신하였으니 반드시 죽었어야 합니다. “내가 너를 어떻게 다시 기용하겠느냐?”라고 할 수 있지 않습니까? 다리오 왕이 많은 사람을 죽이고 다니엘만 남겨 두었을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다니엘은 다리오 왕의 마음에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기뻐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상사 앞에서 여러분을 높이시려 한다면, 여러분은 반드시 상을 받게 됩니다.
다니엘은 나이가 그렇게 많았는데도 여전히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그는 하루에 세 번 창문을 활짝 열고 그 앞에 무릎을 꿇어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했습니다. 그는 페르시아 제국의 총리가 되었지만, 마음으로 염려한 것은 예루살렘의 하나님의 성전이었습니다. 이것은 진심이었습니다. 그가 형통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반드시 형통합니다! 그때 이미 일흔이 넘었을 것입니다. 다니엘은 한 가지 원칙을 깨달았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는 직장 생활에서 오늘날까지 70년 동안 쓰러지지 않는 사람으로 지내며, 관리 연수생에서 총리가 되기까지 한 가지 원칙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만 하면 나머지는 모두 해결된다는 것입니다.
그는 다른 모든 일이 잘 풀리게 하려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 아닙니다. 그가 살아가는 목적 자체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직장 생활의 온갖 풍파 속에서 왕을 모시는 일은 호랑이 곁에서 모시는 것과 같습니다! 그는 세 왕조 네 대에 걸쳐 쓰러지지 않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그가 의지한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해하셨습니까? 여러분은 왜 아무리 도와주어도 일으켜 세울 수 없는 아두가 됩니까? 어떻게 해도 일어나지 못하고, 하는 일마다 손해를 봅니까?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분명히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분명히 알고 다니엘처럼 지혜롭고 통찰력 있는 사람이 된다면, 직장에서도 반드시 통찰력 있게 행동하게 됩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제가 다니엘은 아니지만, 제 안의 논리와 다니엘의 논리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마침내 70년을 기다린 끝에 다리오 왕이 바벨론 제국을 무너뜨리고 바벨론의 왕을 죽인 후 바벨론 왕을 대신하여 다리오 왕이 되었습니다. 다니엘은 《예레미야서》의 말씀을 읽고 10년, 또 10년을 소망하다가 마침내 바벨론이 멸망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끝났구나! 내 직장도 없어졌고, 사장도 멸망했네.” 그런데 다리오 왕은 다니엘을 총리로 세웠을 뿐 아니라 고레스 왕과 함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매우 존귀하게 여겼습니다. 다니엘은 《예레미야서》만 이해한 것이 아니라 《이사야서》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고레스라는 페르시아 왕을 하나님께서 일으키실 것이라고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이 다니엘이 이해한 내용입니다.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는 사람의 평생은 반드시 형통합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있는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겠습니까?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합니다.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런데 기회가 왔고, 다니엘은 그곳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여러분은 다니엘이 사자 굴에 던져진 것이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는 어느 정도까지 구했습니까? 사자 굴에 던져질 정도까지 구했습니다. 그 결과 사자가 그를 물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자의 입을 막으셨고, 사자는 굶주렸지만 다니엘을 물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이 본문의 배경입니다.
다섯, 다니엘은 왜 살았는가
저는 자주 생사를 꿰뚫어 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생사를 꿰뚫어 보지 못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을 위해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루에 세 번 창문을 열고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하는 것을 습관으로 삼았습니다. 페르시아 제국의 온 성읍에 다니엘이 매일 아침 창문을 열고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매일 정오에 집에 돌아와 식사할 때도 창문을 열고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매일 저녁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한다는 것도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대가를 치르는 일이었습니다. 여러분, 정치적 다툼은 매우 잔혹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왕이 다니엘을 좋아하자 주변 사람들은 크게 질투했습니다. 질투한 사람들은 다니엘을 해치려고 했고, 매우 악한 계략을 세웠습니다. 그들은 다리오 왕 앞에 나아가 왕에게 명령을 내리도록 요청했습니다.
앞으로 삼십 일 동안 누구든지 왕 외에 다른 신이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하였습니다. (《다니엘서》 6:7)
그러자 다리오 왕은 조서를 내렸습니다. 그 기간에는 누구도 자신의 신에게 무릎 꿇어 절할 수 없고, 다리오 왕에게만 무릎 꿇어야 한다는 명령이었습니다. 명령이 내려진 후 다니엘은 그 사실을 알았습니까?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집으로 돌아가 기도했습니다. 그의 기도는 이러했습니다. “70년이 가까이 왔습니다. 하나님, 다시 예루살렘을 돌보아 주십시오!” 형제자매 여러분, 아십니까? 중국인 사명신학이 왜 ‘사명’이라고 불립니까?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를 위해 태어나고, 이를 위해 살며, 이를 위해 죽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살아갑니다. 그래서 제 목회자 친구들도 매우 감탄하며 저에게 묻습니다. “어떻게 사람들을 그렇게 훈련시켰습니까?” 그것은 여러분을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있는 사람으로 훈련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태어난 사람으로 훈련하는 것입니다. 왜 세상에 왔습니까? 바로 이것을 위해서입니다. 왜 죽습니까? 이 일을 위해 왔고, 이 일을 위해 죽는 것입니다. 왜 삽니까? 이 일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 논리 체계입니다. 저도 그렇게 하고, 그렇게 훈련합니다. 다니엘도 그렇게 했고, 그는 총리가 되었습니다.
결국 다니엘은 사자 굴에 던져졌습니다. “기도가 누구에게 해가 되었기에 생명의 위험까지 당해야 합니까? 기도한다고 어떻게 생명의 위험이 생깁니까?” 왕이 조서를 내렸고, 다니엘의 경쟁자들이 왕을 속였기 때문입니다. 왕은 다니엘을 매우 좋아했지만, 그들은 왕 앞에 나아가 말했습니다. “이것은 왕께서 내리신 조서입니다.” 메대와 페르시아의 법에 따르면 왕이 명령을 내린 후에는 그것을 바꿀 수 없었습니다. “왕께서 다니엘을 좋아하시는 것은 알지만, 왕께서 좋아하시는 다니엘을 사자 굴에 던지셔야 합니다.” 그들은 왕에게 함정을 팠지만 왕은 그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왕은 크게 화가 났습니다. “너희는 정말 나쁘구나! 나에게 함정을 팠단 말이냐? 너희는 죽고 싶으냐?” 그러나 아무리 다급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미 명령이 내려졌기 때문입니다. 왕은 하루 종일 생각했지만 방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 사람들이 다시 와서 말했습니다. “다니엘을 던지십시오. 왜 던지지 않으십니까? 메대와 페르시아의 왕이 명령을 내리면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다리오 왕은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스스로 자신에게 함정을 판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정말 악했습니다. 미워 죽을 지경이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결국 다니엘을 사자 굴에 던졌습니다.
다니엘은 사자 굴에 떨어져서 무엇을 했을까요? 한번 맞혀 보십시오. 사자 굴에 던져졌다고 해서 사자를 두려워했을까요? 그는 여전히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했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사자는 몹시 굶주렸지만 다니엘을 물지 않았습니다. 참 사랑스러운 사자였습니다. 저는 다니엘도 그곳에서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자는 그를 물 수 없었습니다.
이 일은 제가 실제로 경험한 일이기도 합니다. 저는 한 스모 선수를 섬긴 적이 있습니다. 몸무게가 300킬로그램이 넘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스모를 훈련했습니다. 손가락이 무서울 정도로 굵어 당근처럼 보였고, 손도 아주 컸습니다! 덩치가 크고 뚱뚱했으며 얼굴에는 험상궂은 살이 붙어 있어 무서웠습니다. 고향에서 사람을 때리고 사고를 쳐서 아버지가 그를 외국으로 유학 보냈습니다. 어느 날 그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의 손에는 핏줄이 솟아 있었고, 주먹을 쥐자 손가락뼈에서 “뚝뚝” 소리가 났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왜 그러세요?” 그가 말했습니다. “이 손이 사람을 때리고 싶어도 통제가 되지 않습니다.” 저는 속으로 “하나님, 저를 때리지는 마십시오”라고 생각했습니다. 300킬로그램이나 되는 사람이 저를 엉덩이 밑에 깔고 앉으면 저는 그대로 죽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에게서 귀신을 쫓아내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두 손은 제 목에서 20센티미터쯤 떨어져 있었고, 손바닥 하나 정도의 거리였습니다. 그가 저를 조르려 할 때마다 저는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어쨌든 그는 저를 조르지 못한 채 손을 휘저으며 발악했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쿵” 하고 바닥에 쓰러졌고, 귀신이 그에게서 나갔습니다. 저는 그가 바닥에 쓰러져 힘이 없는 것을 보고, 아직 숨을 쉬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제 회의실에서 일어난 일이었는데, 저도 꽤 담대했습니다. 잠시 후 몇 분이 지나자 그가 깨어났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아까 손으로 무엇을 하려고 했습니까?” 그가 대답했습니다. “내 안의 귀신이 선생님을 죽이려고 목을 조르려고 했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그런데 왜 조르지 못했습니까? 계속 손짓만 하고 있던데요.” 그가 말했습니다. “조를 수가 없었습니다! 어떤 하나님의 힘이 막고 있어서 계속 몸부림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 하나님은 정말 위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자의 입도 막으실 수 있고, 스모 선수의 손도 막으실 수 있습니다. 정말 좋습니다. 나중에는 태권도 고수가 저에게 와서 해방을 받았는데, 기도하기만 하면 저를 때리려고 했습니다. 키가 1미터 90센티미터이고 몸무게도 100킬로그램이 넘는 사람이어서 아주 무서웠습니다. 그런데 그가 다시 저를 때리려고 하자, 보이지 않는 힘이 그를 밀어 바닥에 “쿵” 하고 쓰러뜨렸습니다.
이런 일을 경험하고 나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아주 커집니다! 저는 다니엘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사자의 입을 막으실 수 있고, 태권도 고수의 손도 막으실 수 있으며, 스모 선수의 손도 막으실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은 정말 큽니다. 여러분,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는 것, 곧 오늘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선택입니까! 무엇보다도 좋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의 성전을 위해 사자 굴에 던져졌습니다. 다음 날 아침 다리오 왕은 다니엘이 살아 있는지 확인하려고 했습니다. 다리오 왕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아침까지 뜬눈으로 지내다가 사자 굴로 달려가 외쳤습니다. “다니엘아, 네 하나님이 너를 구하셨느냐?” 다니엘은 아래에서 아주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대답했습니다. “왕이시여, 저는 죄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죄가 없고 왕 앞에서도 죄가 없습니다. 저는 모함을 받은 것입니다.” 다니엘이 무엇을 했습니까? 집에서 하나님께 기도했을 뿐입니다. 왕은 그 말을 듣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침대에서 밤새 잠도 못 잤는데, 너는 여기서 사자들과 함께 지내면서 아주 잘 잤구나.” 돌을 옮기고 다니엘을 구해 내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제부터는 나 다리오 왕에게 절하지 말고 다니엘의 하나님께 절하라.” 다니엘의 하나님은 정말 위대하셨습니다!
그러자 다리오 왕은 크게 화가 났습니다. 다니엘을 모함한 사람들을 향해 말했습니다. “너희가 나에게 함정을 파서 나를 조롱했구나! 너희는 목숨이 아깝지 않으냐?” 여러분, 다니엘의 하나님을 보았습니까? “너희가 다니엘의 하나님과 겨루겠다는 것이냐? 어디 한번 해 보아라. 지금 너희를 사자 굴에 던져 넣고, 너희가 꾸민 그 계략이 사자를 막을 수 있는지 보겠다.” 다니엘을 밤새도록 먹고 싶어 했던 사자들은 밤새 다니엘을 눈앞에 두고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가까이 갈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사자 굴 바닥에 닿기도 전에 사자들이 그들의 뼈를 부숴 버렸습니다. 사자가 한 번 뛰어오르자 곧바로 초밥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생선회는 살아 있는 것을 날것으로 먹는 것 아닙니까? 아직 죽지도 않은 아주 신선한 회와 같았습니다. 이 사람이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그 근거가 무엇인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아시겠습니까!
다니엘이 만일 “왕이 명령을 내렸고 왕의 성격도 매우 강하니, 창문을 닫고 조용히 기도해서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하자”라고 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창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아마 가족들도 그에게 권했을 것입니다. “왕께서 명령을 내리셨으니 그렇게 하지 마세요!” 그러나 그는 창문을 열었습니다. 이런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에스더와 모르드개 같은 사람들입니다. “나는 이렇게 하겠다. 죽지 않는다.” 모두 목숨을 걸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는 모두 허리춤에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죽으면 죽는 거지’라는 모습으로 하나님을 섬깁니다. 그러므로 오늘 형제자매 여러분, 다니엘은 왜 살았습니까? 저도 이 세상에 왔고 언젠가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압니다. 언젠가는 이 세상을 떠날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하루를 살아 있는 동안에는 하나님을 위해 하루를 살 것입니다. 죽음도 제가 하나님께 예루살렘의 평안을 구하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머리는 자신의 허리띠에 걸려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허리띠에 걸려 있습니다. “죽으면 죽는 거지”라고 했는데, 죽었습니까? 죽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의 하나님께서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고 계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관심이 있는 분은 저의 《다니엘서》 성경공부를 들으셔도 됩니다. 아주 분명하게 설명했는데, 제목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스리지 못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다스리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기업에서 일하면서 겪는 그 작은 일이, 페르시아 왕보다 더 큰 것입니까? 비교도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형제자매 여러분, 아십니까? 반드시 결단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위해 산다면 죽음을 업신여기게 됩니다. 하나님을 위해 산다면 사자의 입도 업신여기게 됩니다. 하나님을 위해 산다면 이런 정치적 다툼도 업신여기게 됩니다. 하나님을 위해 산다면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위대한지 알게 됩니다! 여러분이 정말 안다면 하나님을 위해 살지 않을 수 있습니까? 정말 안다면 죽음을 업신여기지 않을 수 있습니까? 다니엘과 같은 사람들은 모두 “죽으면 죽는 거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전혀 마음에 두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래 살아도 잘 죽지 않습니다. 죽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결단하십시오. 기억하십시오. 돈을 그러모으는 것은 얼마나 수준 낮은 일입니까! 돈이 사람의 생명을 지킬 수 있습니까? 어리석은 일입니다! 제가 알기로 돈을 그러모으는 목회자들이 아주 많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그러모아야 합니까? 하나님을 그러모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품에 꼭 안아야 합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조금 촌스럽게 들릴 수도 있지만, 하나님을 꼭 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위해 사십시오.
여러분의 근거는 도대체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은 아들이 자라면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들을 위해 무언가를 마련해야겠다. 내가 죽기 전에 아들에게 무엇을 남겨 줄 수 있을까?”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은 그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정말 아들을 사랑한다면, 어릴 때부터 영광스러운 성전에 대한 관념을 갖게 하고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게 하십시오. 바람이 불고 풀이 흔들리는 것처럼 작은 움직임만 있어도 사자의 입 앞에서 사람의 마음이 단번에 정결하게 됩니다. 보이지 않습니까? 사람이 하나님의 보배로움을 알지 못하면 위험에 부딪혔을 때 즉시 하나님을 밀어내고, 하나님께서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신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조금만 일이 생겨도, 왕이 조서를 하나 내린 것도 아닌데 상사가 한마디만 해도 그 자리에서 떨게 됩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상사를 위해 잘 살아 보십시오. 그런데 여러분의 상사는 무엇을 위해 사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오늘 형제자매 여러분, 이것이 사람의 마음을 단번에 정결하게 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 삽니까? 사자의 입 앞에 서면 단번에 드러납니다. 여러분은 정말 하나님을 위해 목숨을 드리기를 원합니까? 이삭이 하나님께 목숨을 드렸을 때 살아서 돌아왔습니다. 다니엘이 하나님께 목숨을 드렸을 때 살아서 돌아왔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가 하나님께 목숨을 드렸을 때 모두 살아서 돌아왔습니다. 살아서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도 있습니까? 그들도 영원 안에서 살아 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평소에는 무엇이든 괜찮다가 시간이 부족해지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것은 상당히 도전적인 일입니다. 물론 제가 “반드시 이렇게 해야 한다”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저는 행정적인 명령으로 시키지 않습니다. 결국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지 말지는 여러분 안에서 결정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을 위해 사는 사람이었기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 이해하셨습니까?
여섯, 사람은 무엇을 구하는가?
사람은 무엇을 구합니까? 다니엘이 “하나님, 제 직장을 지켜 주세요”라고 기도한 것을 보셨습니까? 그런 기록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제가 대학 입학시험을 봅니다. 하나님, 제 시험을 축복해 주세요.” 머릿속에는 온통 자신의 하찮은 일뿐입니다. 마치 그 하찮은 일이 인생에서 가장 큰일인 것처럼 생각합니다. 정말 어리석습니다. 머리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기뻐하시고 어떤 사람을 미워하시는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사람은 매일 매우 진지하게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구하는 것은 온통 이런 것뿐입니다. “아내가 아이를 낳게 되었으니 하나님, 축복해 주세요. 아이가 열이 나니 하나님, 치료해 주세요. 직장에서 승진하게 되었으니 하나님, 지켜 주세요.” 모두 이런 하찮은 일들입니다. 저는 이런 일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저에게 기도를 부탁하고, 어떤 일이 생겨서 저를 찾아왔다고 합시다. 그러면 저는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하고 대충 넘길 수도 있습니다. 형식만 갖추고 여러분을 실망시키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정말 진지하게 무엇인가를 구해 주고 싶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어떤 사람이 저에게 전화해서 “선생님, 제 돈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라고 말한 적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돈이 무엇입니까? 지전과 같은 것입니까? 지전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여러분의 돈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지전을 위해 기도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러므로 다니엘은 《다니엘서》 9장에서 70년이 찼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실 70년이 차기 전부터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그의 기도는 무엇이었습니까? 그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님,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언약을 지키시고 인자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를 지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 회개해야 합니다. 주님, 주님은 의로우시지만 우리의 얼굴에는 수치가 가득합니다.”
주여 우리와 우리의 왕들과 지도자들과 조상들이 주께 죄를 범하였으므로 얼굴에 부끄러움이 가득하나이다. (《다니엘서》 9:8)
보십시오. 이 사람의 논리 체계가 얼마나 훌륭합니까! 이스라엘의 왕들과 지도자들과 조상들이 왜 하나님께 죄를 지었습니까? 모두 자기 삶만 살려고 했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구한 것은 그 하찮은 일들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모든 재앙이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임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죄악에서 돌이키지 않았고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다니엘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 우리 하나님, 주께서는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인도하여 내셨습니다.” 주님, 주님께는 크신 인자와 공의가 있으니, 주님의 분노와 진노를 주님의 성 예루살렘에서 거두어 주소서. 오늘 우리도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주님의 분노와 진노를 주님의 교회에서 거두어 주소서.”
어제 한 자매의 이야기가 아주 재미있어서 저를 크게 웃겼습니다. 제가 남의 불행을 기뻐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어떤 자매가 우리 교회에 왔는데, 다른 자매를 데리고 왔다는 것입니다. 그 자매가 어느 교회에서 왔는지, 왜 우리 교회에 왔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 교회에서는 검사를 할 때마다 한 사람씩 암에 걸렸고, 또 검사하면 또 한 사람이 암에 걸렸습니다. 나중에는 목회자까지 암에 걸렸습니다. 암에 걸린 교회가 된 것입니다. 왜 암에 걸렸습니까? 하나님의 분노와 진노가 그들의 교회 가운데 임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다니엘이 구한 것은 예루살렘 성, 곧 하나님의 거룩한 산이었고, 예루살렘의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이름 아래 있는 백성, 하나님의 이름 아래 있는 성전이었습니다. 우리의 황폐한 곳을 돌보아 달라고 구한 것입니다!
하나님, 눈을 떠서 바라보시고 귀를 기울여 들으소서. 우리의 황폐한 상황을 돌보아 주시고, 주님의 이름으로 불리는 성과 주님의 이름으로 불리는 교회를 돌보아 주소서. 다니엘이 구한 것은 모두 이것이었습니다! 오늘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께서 주님의 교회에서 분노를 거두어 주시기를 구합시다. 오늘 우리는 절대로 남의 불행을 기뻐해서는 안 됩니다. “나는 바벨론에서 총리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벨론에서 총리가 되도록 나를 도우셨습니다.”라고 간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나에게 부동산을 사게 하셨습니다.”라고 간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나를 큰 부자가 되게 하셨습니다.”라고 간증하지 마십시오. “페르시아 제국의 왕이 와서 나를 바벨론 제국의 총리로 세웠습니다.” 이것이 간증입니까? 여러분은 이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사람들이 하는 간증은 대부분 이런 것들입니다. 천천히 생각해 보십시오. 이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반드시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 일을 하나씩 분명히 이해해 보겠습니다. 다니엘이 한 것처럼 우리도 해야 합니다. 절대로 잘못하지 마십시오. 다니엘이 구한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그가 이렇게 구하자 하나님의 천사가 다니엘 앞에 내려와 다니엘에게 계시를 주었습니다. 이 계시는 다니엘에게 매우 깊은 혼란을 가져왔습니다.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이 이레가 지날 것이요 환난 때에 예루살렘 성이 거리와 해자를 포함하여 다시 건축될 것이며 육십이 이레 후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무너뜨릴 것이요 그 끝은 홍수처럼 휩쓸려 갈 것이며 전쟁이 계속될 것이고 황폐하게 하는 일이 이미 정해졌느니라. (《다니엘서》 9:25-26)
뭐라고요? 제가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했는데, 돌아온 것은 황폐한 날들이란 말입니까? 하나님, 혼란스럽지 않습니까? 혼란스럽습니다.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하나님의 생각이 다른 것 같습니다.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다.” 이것은 무슨 말입니까?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일곱, 혼란을 마주하는 태도
사람이 구하고 난 뒤에는 매우 깊은 혼란을 겪습니다. “이게 무슨 말씀입니까?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있는 사람이 끊어져 없어지고, 한 왕의 백성이 와서 이 성읍과 성소를 무너뜨리며, 끝까지 황폐하게 하는 일이 정해졌다고요?” 혼란스럽지 않습니까? “하나님, 제가 잘못 들은 것입니까? 하나님, 정말 혼란스럽고 너무 괴롭습니다.”
다니엘은 마음이 매우 괴롭고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계속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그리스도인이 되면 반드시 많은 혼란을 마주하게 됩니다. 제가 전하는 관점은 교회가 목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승리하는 교회를 세우고, 교회가 하나님의 양 떼를 잘 목양해야 합니다.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저는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면 교회가 반드시 형통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왜 실제로 보이는 상황은 이렇게 이상합니까?
며칠 전 한 자매가 저에게 질문했습니다. 그 지역에 한 노인이 있는데, 그도 교회를 세웠지만 교회에는 노인 몇 명만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목회자는 매우 대단했습니다. 금융 전문가이거나 부동산 전문가인 것 같았습니다. 정말 대단했습니다. 집을 사고팔아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200만에 산 집을 1,300만에 팔았습니다. 노인은 얼굴이 붉고 건강하며 아주 튼튼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저는 정말 혼란스럽습니다. 그 사람이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것은 보이지 않는데, 정말 형통해 보입니다! 이런 일을 보면 혼란스럽지 않습니까? 이것은 저주받은 것이 아닙니까?”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한 왕의 백성이 와서 이 성읍과 성소를 무너뜨릴 것이요 그 끝은 홍수처럼 휩쓸려 갈 것이며 전쟁이 계속될 것이고 황폐하게 하는 일이 이미 정해졌느니라. (《다니엘서》 9:26)
그 백성이 성소보다 더 형통하다는 말입니까? 이런 것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오래 살지 않았고 충분히 많이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충분히 오래 살고 충분히 많이 보면 어느 쪽이 크고 어느 쪽이 작은지 알게 됩니다. 그것은 사람을 속이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영원 안에 서서 하나님의 계획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찾는다면,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고 계신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다니엘이 사자 굴에 던져지기 전에는 혼란스럽지 않았겠습니까? “이 다니엘은 왜 이렇게 어리석습니까? 창문을 열어서 무엇을 합니까? 몰래 기도하면 되지 않습니까? 왜 굳이 창문을 열고 모르드개처럼 사람들과 맞서야 합니까?” 우리는 혼란스럽습니다. 그러나 사자 굴에서 살아서 나왔을 때는 더 이상 혼란스럽지 않았습니다.
저는 설교자들이 이런 간증을 하는 것을 자주 듣습니다. 한 설교자가 말했습니다. “어제 소시지가 너무 먹고 싶었는데, 다음 날 아침 누군가 문을 두드렸고, 한 자매가 제가 먹고 싶어 하던 바로 그 소시지를 가져왔습니다.” 저는 듣고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게 무슨 간증입니까?” 제가 간증한다면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한 자매가 소시지를 몹시 먹고 싶어 했는데, 저는 그 자매가 그것을 먹고 싶어 하는 줄도 모르고 소시지 한 상자를 사서 가져다주었습니다.” 이해가 됩니까? 제 논리는 무엇을 얻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주는 것입니다. 그들의 논리는 무엇을 얻었는가이고, 제 논리는 무엇을 주었는가입니다. 이 논리는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간증은 정말 다양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을 알고 두 나라, 두 가치 체계, 두 가지 추구가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것이 다리오 왕 원년이었다는 것을 아십니까? 다니엘이 기도한 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십니까? 고레스 왕이 조서를 내려 스룹바벨이 포로로 잡혀 있던 사람들 가운데 약 4만 명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을 뿐 아니라 성전의 금그릇과 은그릇도 가져갔습니다. 이것들은 모두 솔로몬과 다윗이 성전을 세울 때 만든 귀중품과 골동품이었습니다. 스룹바벨은 유다 지방의 도지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3년이 지났습니다. 3년 후 《다니엘서》에는 페르시아 왕 고레스 제3년에 다니엘이 3주 동안 슬퍼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왜 슬퍼했는지 아십니까? 그가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했는데, 스룹바벨이 돌아가서 아무 일도 이루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해가 됩니까? 유다 땅으로 돌아갔지만 일이 매우 순조로운 것이 아니라 매우 험난했습니다. 답보다 문제가 많았고, 문제를 만드는 사람이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보다 많았습니다. 스룹바벨의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중앙 정부가 어느 지방에 경찰청장을 파견했는데, 그가 이유도 모른 채 죽었다고 생각해 봅시다. 왜 죽었겠습니까? 그 지역의 범죄 세력이 거미줄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고, 암흑가와 공권력이 모두 단단히 얽혀 있어 깨뜨릴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왕이 경찰청장 한 명을 파견했다고 문제가 해결될 것 같습니까? 죽어도 왜 죽었는지 모르게 될 것입니다. 스룹바벨이 마주한 상황도 이와 비슷했습니다.
다니엘은 처음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했고, 그 결과 스룹바벨이 돌아갔지만 마음에는 혼란이 가득했습니다. 계시를 받고 이해한 것 같기도 하고 이해하지 못한 것 같기도 했습니다. 스룹바벨이 돌아간 지 3년이 되었을 때, 다니엘은 다시 마음이 괴롭고 슬퍼 기도했습니다. 이번에도 하나님께서는 다시 응답하셨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제가 이 말씀을 읽어 드리면 여러분은 분명 혼란스러울 것입니다.
그가 내게 이르되 “큰 은총을 받은 다니엘아, 내가 네게 이르는 말을 깨닫고 일어서라. 내가 이제 네게 보내심을 받았느니라.” 그가 내게 이 말을 할 때에 내가 떨며 일어서니 그가 내게 이르되 “다니엘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깨달으려 하여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하게 하기로 결심하던 첫날부터 네 말이 응답받았으므로 내가 네 말로 말미암아 왔느니라. 그런데 페르시아 왕국의 군주가 이십일 일 동안 나를 막았으므로, 가장 높은 군주들 중 하나인 미가엘이 와서 나를 도와주므로 내가 거기 페르시아 왕들과 함께 머물러 있더니, 이제 내가 마지막 날에 네 백성이 당할 일을 네게 깨닫게 하러 왔노라. 이는 이 환상이 오랜 후의 일에 관한 것임이라.” 그가 이런 말로 내게 이르매 내가 얼굴을 땅에 향하고 말문이 막혔더니, 사람의 모양 같은 이가 내 입술을 만지므로 내가 입을 열어 내 앞에 서 있는 이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주여, 이 환상으로 말미암아 근심이 내게 더하므로 힘이 없어졌나이다.” … 그가 이르되 “내가 어찌하여 네게 왔는지 네가 아느냐? 이제 내가 돌아가서 페르시아의 군주와 싸우려니와 내가 나간 후에는 헬라의 군주가 이를 것이라.” (《다니엘서》 10:11-16)
우리가 상상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우리는 총리가 되면 무한히 영광스러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집트의 총리가 되면 얼마나 영광스럽겠습니까? 바벨론의 총리가 되고, 페르시아 제국의 총리가 되면 얼마나 영광스럽겠습니까? 정말 좋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그가 이르되 “큰 은총을 받은 사람이여 두려워하지 말라 평안하라 강건하라.” 그가 내게 이같이 말하매 내가 곧 힘이 강건하여져 이르되 “내 주께서 말씀하옵소서 주께서 나를 강건하게 하셨나이다.” (《다니엘서》 10:19)
이 말씀을 읽고 혼란스러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행하심이 무엇인지 우리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다니엘은 꿈을 해석할 수 있는 매우 지혜로운 사람이었지만, 이런 일을 만났을 때는 매우 혼란스러워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여러 가지 일을 마주할 때, 맛있는 것을 먹고 좋은 것을 마시면 혼란스럽지 않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면 혼란스러워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먹으로 맞고 발길질을 당하신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의 얼굴에 사람들이 침을 뱉은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의 계획은 본래 이와 같았습니다.
여덟, 하나님께서 성소를 연단하고 정결하게 하심
제가 여러분의 혼란을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이것은 논문이지 이야기가 아닙니다. 설마 제가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줄 아십니까? 모든 일이 순조롭다면 무엇이 연단되겠습니까? 기도하자마자 응답되고, 모든 일이 순조롭고, 건강하고, 맛있는 것을 먹고 좋은 것을 누리며, 고위 관리까지 된다면 무엇이 연단되겠습니까? 그런 일을 통해 무엇인가 연단될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도 이렇게 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러분, 악인이 모든 일이 순조롭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악인이 때로는 모든 일이 순조로울 수도 있습니다. 의인은 모든 일이 순조롭고 악인은 모든 일이 순조롭지 않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눈에 보이는 현상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혜를 가질 수 있다면 다음 말씀을 읽어 보십시오.
그가 내게 이르되 “이천삼백 주야까지니 그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되리라.” (《다니엘서》 8:14)
이 말씀을 읽고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본뜻은 자신의 성소를 정결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어떻게 정결하게 하십니까? 여러분이 사자의 입을 지나게 하시고, 불과 같은 시험을 지나게 하시며, 이런 일들을 겪게 하십니다. 여러분이 가득한 혼란 가운데 있을 때 그 혼란에서 빠져나오게 하시고, 정결한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또 그들 중 지혜로운 자 몇 사람이 칼날과 불꽃과 사로잡힘과 약탈을 당하여 여러 날 동안 쇠패하리니 이는 그들이 연단을 받아 정결하게 되어 마지막 때까지 이르게 하려 함이라 이는 작정된 기한이 있음이라. (《다니엘서》 11:35)
《다니엘서》를 읽어 보면 많은 사람이 자신을 정결하고 희게 하며 연단을 받을 것이라는 말씀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연단하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므로 모든 일이 순조로울 것이라고 약속하지만, 그 모든 일이 순조로운 것은 연단을 통과한 후에 이루어집니다. 요셉은 이집트에서 10년 동안 노예로 살았고, 3년 동안 죄수로 지냈습니다. 연단을 받았습니까? 연단을 받았습니다. 다윗은 13년 동안 도망 다녔습니다. 연단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연단을 받은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고 거룩하게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은 결과, 저는 찾았습니다. 혼란의 근원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자신의 교회를 정결하게 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스스로를 정결하게 하고 희게 하며 연단을 받을 것이나 악인은 악을 행하리니 악한 자는 아무도 깨닫지 못하되 지혜 있는 자는 깨달으리라. (《다니엘서》 12:10)
백성 중의 지혜로운 자들이 많은 사람을 가르칠 것이나 그들이 칼날과 불꽃과 사로잡힘과 약탈을 당하여 여러 날 동안 쇠패하리라. (《다니엘서》 11:33)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다니엘서》 12:3)
이제 이해했습니다. 하나님, 원하신다면 모든 대가를 치르실 수 있습니다.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도 아끼지 않으셨고, 우리의 생명도 아끼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시험하고 연단하고 단련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고위 관리인지 하급 관리인지 전혀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사는가입니다. 연단을 받으면 드러납니다. 지혜로운 사람이 되었다 해도 여전히 많은 지혜로운 사람이 넘어질 것입니다. 이러한 혼란도 우리가 한 가지 사실을 깨닫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나라는 이 세상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천국을 상속받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가운데 임하면 우리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업신여기게 됩니다. 그러므로 어떤 시험과 연단도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십시오. 중국인 사명신학은 승리의 신학입니다. 중국인 사명신학은 하나님을 찾는 신학입니다. 중국인 사명신학은 온갖 혼란을 끊임없이 풀어 가는 신학입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저는 목회자가 왜 암에 걸리는지 자주 연구했습니다. 저에게는 제 나름의 답이 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여러분이 하나님께 속했는지 마귀에게 속했는지는 연단을 받아 보면 알 수 있고, 시험을 받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야곱인지 에서인지,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 안에서 사는지 하나님께 속한 논리 체계 안에서 사는지는 한 번 다루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병이 치료될 수도 있지만, 여러분 안의 논리 체계는 여전히 바뀌어야 합니다. 병이 치료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행하시는 일이지, 여러분이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해야 할 일은 여전히 마음속으로 “나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있는 사람이 되어 이러한 연단과 혼란을 견뎌 내겠다”라고 아는 것입니다.
근거는 여전히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에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명입니다. 그러므로 《다니엘서》에서 어떤 왕은 제멋대로 행동하며 멸망을 행하고, 또 어떤 왕도 제멋대로 행동하며 멸망을 행하며, 어떤 왕은 이것을 공격하고 저것을 공격하며 모든 일이 형통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다 읽고 나면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 더 멀리 바라보십시오. 아무리 형통해도 죽을 때가 되면 모두 똑같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일을 위해 산다면 장차 반드시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위해 산다면 죽어도 반드시 살 것입니다. 우리는 죽음도 업신여기고 살아 있는 것 자체도 업신여겨야 합니다. 다니엘의 혼란은 다니엘의 패배로 인해 해결된 것이 아니라, 결국 하나님의 뜻을 깨달음으로써 해결되었습니다.
해결되었습니까? 아직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에게 감추어지고 봉인된 일은 지혜로운 사람만이 깨달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혜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고,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에게도 혼란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사람에게는 혼란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여러분은 세상의 일을 위해 죽든지, 하나님의 일을 위해 죽든지 해야 합니다. 스스로 선택하십시오. 오늘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 영원 안에 서서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고 끝까지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앞에 서서 영원 안에 있는 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아홉, 결론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께 목숨을 드려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더 이상 자신을 위해 살지 말고, 살아 있기 위해 살지도 마십시오. 하루를 살면 하루를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장차 하나님의 앞에 서서 하나님의 상을 받기 위해 사십시오. 아멘!
우리 함께 찬송을 한 곡 부르고 오늘의 헌금을 시작하겠습니다. 헌금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절대로 헌금하지 마십시오! 이것은 제 생명의 집념입니다. 저는 매우 고집스럽게 하나님을 위해 살아왔습니다. 우리 형제자매들도 한마음 한뜻으로 생사와 살아 있는 이 작은 일을 꿰뚫어 보고, 여러분의 직장과 사업과 모든 것을 꿰뚫어 보며,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고위 관리가 되더라도 여전히 하나님의 성전을 위해 부르짖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성전, 곧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십시오.
우리 모두 손을 들고 함께 기도합시다. 하나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저를 선택하시고 보내시며 사용하여 주소서. 하나님, 만민 가운데서 저를 일으켜 세워 주소서. 하나님, 제가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겠습니다. 영광스러운 교회를 위하여 평안을 구하겠습니다. 하나님, 제 안의 모든 혼란을 제거하여 주소서. 저는 주님을 찾기 원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 주님의 나라와 주님의 의를 구하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사명인지 깨닫게 하소서. 하나님, 저를 사용하셔서 섬기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제 자신을 산 제물로 드립니다! 하나님을 위해 산다는 것은 주님의 영광 가운데 살기를 갈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저의 헌신을 받아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사람을 용서한 것같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며,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고 악에서 구하여 주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