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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 느헤미야 3장 - 세밀한 계획과 실행력

2025-10-10 30,670 尼希米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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尼希米记03章-重建耶路撒冷城墙
  • 1 那时,大祭司以利亚实和他的弟兄众祭司起来建立羊门,分别为圣,安立门扇,又筑城墙到哈米亚楼,直到哈楠业楼,分别为圣。
  • 2 其次是耶利哥人建造。其次是音利的儿子撒刻建造。
  • 3 哈西拿的子孙建立鱼门,架横梁、安门扇,和闩锁。
  • 4 其次是哈哥斯的孙子、乌利亚的儿子米利末修造。其次是米示萨别的孙子、比利迦的儿子米书兰修造。其次是巴拿的儿子撒督修造。
  • 5 其次是提哥亚人修造;但是他们的贵胄不用肩(原文是颈项)担他们主的工作。
  • 6 巴西亚的儿子耶何耶大与比所玳的儿子米书兰修造古门,架横梁,安门扇和闩锁。
  • 7 其次是基遍人米拉提,米伦人雅顿与基遍人,并属河西总督所管的米斯巴人修造。
  • 8 其次是银匠哈海雅的儿子乌薛修造。其次是做香的哈拿尼雅修造。这些人修坚耶路撒冷,直到宽墙。
  • 9 其次是管理耶路撒冷一半、户珥的儿子利法雅修造。
  • 10 其次是哈路抹的儿子耶大雅对着自己的房屋修造。其次是哈沙尼的儿子哈突修造。
  • 11 哈琳的儿子玛基雅和巴哈·摩押的儿子哈述修造一段,并修造炉楼。
  • 12 其次是管理耶路撒冷那一半、哈罗黑的儿子沙龙和他的女儿们修造。
  • 13 哈嫩和撒挪亚的居民修造谷门,立门,安门扇和闩锁,又建筑城墙一千肘,直到粪厂门。
  • 14 管理伯·哈基琳、利甲的儿子玛基雅修造粪厂门,立门,安门扇和闩锁。
  • 15 管理米斯巴、各荷西的儿子沙仑修造泉门,立门,盖门顶,安门扇和闩锁,又修造靠近王园西罗亚池的墙垣,直到那从大卫城下来的台阶。
  • 16 其次是管理伯·夙一半、押卜的儿子尼希米修造,直到大卫坟地的对面,又到挖成的池子,并勇士的房屋。
  • 17 其次是利未人巴尼的儿子利宏修造。其次是管理基伊拉一半、哈沙比雅为他所管的本境修造。
  • 18 其次是利未人弟兄中管理基伊拉那一半、希拿达的儿子巴瓦伊修造。
  • 19 其次是管理米斯巴、耶书亚的儿子以谢修造一段,对着武库的上坡、城墙转弯之处。
  • 20 其次是萨拜的儿子巴录竭力修造一段,从城墙转弯,直到大祭司以利亚实的府门。
  • 21 其次是哈哥斯的孙子、乌利亚的儿子米利末修造一段,从以利亚实的府门,直到以利亚实府的尽头。
  • 22 其次是住平原的祭司修造。
  • 23 其次是便雅悯与哈述对着自己的房屋修造。其次是亚难尼的孙子、玛西雅的儿子亚撒利雅在靠近自己的房屋修造。
  • 24 其次是希拿达的儿子宾内修造一段,从亚撒利雅的房屋直到城墙转弯,又到城角。
  • 25 乌赛的儿子巴拉修造对着城墙的转弯和王上宫凸出来的城楼,靠近护卫院的那一段。其次是巴录的儿子毗大雅修造。(
  • 26 尼提宁住在俄斐勒,直到朝东水门的对面和凸出来的城楼。)
  • 27 其次是提哥亚人又修一段,对着那凸出来的大楼,直到俄斐勒的墙。
  • 28 从马门往上,众祭司各对自己的房屋修造。
  • 29 其次是音麦的儿子撒督对着自己的房屋修造。其次是守东门、示迦尼的儿子示玛雅修造。
  • 30 其次是示利米雅的儿子哈拿尼雅和萨拉的第六子哈嫩又修一段。其次是比利迦的儿子米书兰对着自己的房屋修造。
  • 31 其次是银匠玛基雅修造到尼提宁和商人的房屋,对着哈米弗甲门,直到城的角楼。
  • 32 银匠与商人在城的角楼和羊门中间修造。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어서 《느헤미야》 3장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이 장은 공부하기가 꽤 어렵습니다. 여기에 기록된 사람들은 저도 모르는 사람들이라, 처음 읽었을 때 ‘당시에 도대체 왜 이런 사람들을 일일이 기록해 두었을까?’ 하며 무척 의아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이 장뿐만 아니라 《창세기》에도 이렇게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이라는 사람은 500년에 한 번, 혹은 5,000년에 한 번 나오는 존재가 아니라 창세 이래로 오직 하나뿐인 매우 특별한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많은 사람을 부르셨고 만인이 구원받기를 원하시지만, 그분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비록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이 누구이고 저 사람이 누구인지 깊이 관심을 두시지만, 우리는 그 사람들의 이름 자체에만 지나치게 시선을 빼앗기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로 시선을 돌려야 할까요? 바로 느헤미야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그는 성벽을 재건하는 매우 완전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번 장에서는 인명은 잠시 접어두고, 상세한 계획과 실행력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저는 ‘느헤미야가 왜 이런 것들을 기록했을까?’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느헤미야를 통해 우리가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고 계신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그저 무릎 꿇고 기도만 하다가, 막상 일하러 나갔을 때 조직이 와해되어 누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게 만드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영은 사람에게 질서를 주시는 분이지 혼란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교회에 지각(이해력)이 결여될 때, 그것은 비극의 시작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은 지각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반드시 지각을 가지고 이해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제가 거듭 말씀드렸지만 많은 사람이 귀담아듣지 않았습니다. 저 역시 왜 듣지 못하는지 참으로 이상했습니다. 제가 지각을 높여야 한다고 아무리 강조해도, 어떤 이들은 “아닙니다, 저는 그저 자리에서 기도만 하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수년 전 제게는 기도하는 교회를 세우겠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교회가 곁길로 빠지지 않을 것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중에 보니 곁길로 빠진 교회들은 전부 기도만 하던 교회들이었습니다. 이 얼마나 기가 막힌 일입니까?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우리 중에 어떤 자매님의 어머니는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 6~7시간씩 쉬지 않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런 사람이라면 하나님을 몹시 사랑하는 사람이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누가 알겠습니까? 하나님도 모르시고, 귀신도 모르고, 저도 모르며 오직 본인만 알 뿐입니다.

그런데 그분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업에 실패한 뒤 고리대금을 빌렸고, 세 자녀에게 각자의 이름으로 고리대금을 빌리게 강요하며 자기 빚 구멍을 메우게 했습니다. 소위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격이었습니다! 이것이 언제 끝이 나겠습니까?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저를 비난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처음에 저는 기도하는 교회를 세우고자 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교회가 점점 더 빗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지각을 매우 중시하는 사람이라 이것이 잘못되었음을 알아차렸습니다. 왜 잘못되었을까요? 기도하는 소리가 너무 커서 건물 관리사무소 전체가 알 정도였고, 계속 이대로 가다가는 경찰이 올 지경이었으니 얼마나 아찔한 일입니까!

나중에 어떤 분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목사님, 크게 소리 내어 기도하는 건 목사님이 개발하신 게 아니에요. 저희 이전 목사님은 목사님보다 훨씬 더 크게 기도하셨어요! 심지어 에어로빅할 때 쓰는 1,500와트짜리 대형 앰프 스피커까지 사다가 기도할 때 썼으니까요!” 세상에, 이것은 이웃에게 큰 피해를 주는 민폐가 아닙니까?

그래서 저는 시험 삼아 소리를 조금 낮추어 기도해 보았습니다. 그래도 효과가 있을까요? 분명히 효과가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 외에 크게 소리 지르는 기도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 후 저는 성경을 아주 꼼꼼히 읽기 시작했습니다. 자세히 읽어보니 사도 바울이 쓴 서신들은 온통 지각과 마음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잘못 생각했음을 깨닫고는 더 이상 무작정 크게 소리 지르는 기도를 고집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500명이 함께 모여 기도하면 대단한 느낌과 감정이 듭니다. 50명만 모여도 저마다 기도 방석을 하나씩 깔고 무릎 꿇어 함께 기도하면, 그 느낌이 얼마나 충만하게 느껴지는지 모릅니다! 지금도 그런 느낌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것은 착각입니다.

이것은 매우 영적인 문제입니다. 왜일까요? 그 사람들이 기도를 마친 뒤 일을 시켜보면, 어떤 사람에게 “이 도면을 그려보라”고 해도 끙끙대며 그리지 못합니다. “이 계획서를 작성해 보라”고 해도 끙끙대며 쓰지 못합니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해 보라”고 하면 안 하느니만 못하게 일을 다 그르쳐 놓습니다.

이런 사람들뿐이라면 우리가 계속 그런 방식으로 교회를 이끌어야 하겠습니까? 저는 진지하게 재고해 보아야 한다고 느꼈고, 이것은 분명 잘못된 방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모든 껍데기를 다 뒤엎어 버렸고, 더 이상 감정이나 느낌을 좇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저를 지각 있는 사람으로 만드신 것인지, 아니면 제가 나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지각을 얻게 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 것은 굳이 따질 필요가 없지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나니 현실은 감정적인 느낌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형제자매들은 지각 안에서 하나님을 온전히 알아야 하며, 지각 안에서 충만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지각 안에서 나오는 확고한 믿음만이 유익하며, 느낌에 의존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음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시간이 흐른 뒤 저는 또 한 가지를 연구해 보았습니다.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며 방언으로 기도하는 은사주의 교회를 하면서도 지각이 결여된 사람들은, 결국 마지막이 매우 비참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지금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분명히 계시해 주실 것입니다.

바울이 《빌립보서》에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라고 말했듯이, 우리는 반드시 이러한 마음과 뜻을 품고 지각 안에서 하나님을 알며 충만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느헤미야》 3장이 왜 이런 내용을 기록했는지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의 이름이 중요한 것 외에도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상세한 계획과 실행력입니다. 바울의 말씀처럼 이것들을 차근차근 구체화해 나가야 합니다!

지혜가 부족하고 생각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은 비극입니다. 하지만 저는 여러분이 날 때부터 머리가 나쁘게 태어났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며, 남들보다 부족하게 태어났다고도 믿지 않습니다. 20대든, 40대든, 60대든 왜 어떤 사람은 지혜롭고 어떤 사람은 우둔할까요? 도대체 무슨 까닭일까요?

사람은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마음(자고함)이 클수록 장차 더욱 어리석어지며, 그 자고함은 나이가 들수록 날마다 더해집니다! 왜 그럴까요? “내가 먹은 소금이 네가 먹은 밥보다 많다”라며 경험만 내세우기 때문입니다. 소금을 너무 많이 먹으면 머리가 둔해집니다. 사람은 지식을 섭취해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무릎 꿇고 기도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상세한 계획을 세우는 본보기를 보여주었습니다. 물론 성경에 설계도가 그려져 있지는 않지만, 저는 느헤미야가 실제로 수많은 도면을 그렸을 것이라 짐작합니다. 저는 도면을 그리는 일에 아주 능숙합니다.

성벽을 제대로 쌓고 집을 잘 짓고 인테리어를 잘하려면 도면 없이는 완전히 헛수고입니다! 그러므로 도면을 그리는 것은 계획의 매우 중요한 일부임을 알아야 합니다.

저처럼 아프면 스스로 돌보고, 책을 스스로 읽으며, 지식을 스스로 배우고, 집 인테리어도 스스로 한다면 평생 돈을 얼마나 쓰겠습니까? 평생 엄청난 돈을 절약할 수 있고, 목숨 걸고 뼈 빠지게 일하지 않아도 됩니다. 3년 동안 겨우 모은 돈을 몽땅 인테리어 업자에게 바치는 사람들과는 다릅니다.

우리는 한 가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반드시 지각의 돌파를 이루어야 합니다! 지난 3년 동안 제가 매일같이 외쳐댄 것은 감정에 도취되어서가 아니라, 답답한 현실을 보며 마음이 아팠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도무지 귀담아듣지 않는데, 이는 참으로 심각한 문제입니다. 사람의 지각이 열리지 않으면 결국 어리석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상세한 계획과 실행력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느헤미야에게 배워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자리에서 기도만 한 것이 아니라 직접 나가서 성벽을 살피고 곳곳을 일일이 기록했습니다. 그의 마음에 건축 자재에 대한 계산과 준비가 없었겠습니까? 당연히 있었습니다. 자재가 없는데 어떻게 일하겠습니까? 시멘트가 얼마나 필요한지, 어떤 목재가 필요한지 다 파악했습니다.

그런 다음 편지를 써서 사람을 보내 목재와 자원을 관리하는 책임자들을 찾아가게 했고, 그들이 속히 자재를 준비하여 운반해 오도록 조치했습니다. 그러니 느헤미야가 얼마나 뛰어난 사람입니까!

성벽 재건의 몇 가지 핵심 요소

성전 건축이든, 성벽 재건이든, 집 수리든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하려면 반드시 몇 가지 핵심 요소가 필요합니다. 첫 번째 요소는 ‘계획 수립’입니다. 계획은 매우 중요합니다.

앞선 장에서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도착하자마자 사흘 동안 밤에 나가 성벽을 구석구석 돌며 일일이 살펴보았는데, 그것이 바로 계획을 세우는 과정이었습니다. 왜 수많은 군사를 이끌고 다니며 계획을 세우지 않았을까요? 그렇게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했다가는 군사들의 소음을 통제하는 것만으로도 벅찼을 것입니다!

리더는 프로젝트에 대해 세밀하게 설계하고 조사하며 도면을 그리고, 잘못된 부분을 발견하면 수정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첫 번째 요소인 ‘계획 수립’이며, 마음속에 명확한 그림이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 요소는 ‘사람들의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어떻게 열정을 불러일으켰습니까? 그는 백성과 관원, 귀족, 그리고 권세가 있는 자나 없는 자 모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왕궁에서 왕과 얼마나 깊은 신뢰 관계를 맺고 있는지 아십니까! 첫째, 왕께서 나를 파견하셨고, 둘째, 왕께서 조서를 써 주셔서 자재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는 백성들에게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우리가 이방 민족들에게 오랫동안 멸시와 괴롭힘을 당해왔으나, 나 느헤미야가 이 일을 이루기 위해 왔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일어나 건축하자!”라고 외쳤습니다. 그들의 마음에 불이 붙은 것입니다. 이전에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었지만, 느헤미야가 그들에게 큰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 준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말했습니다. “보십시오, 내가 왕궁에서 하나님께 간절히 금식하며 기도했더니 왕께서 은혜를 베풀어 나를 이곳으로 보내주셨습니다. 이번에는 반드시 완공할 수 있으며, 우리를 억압하던 자들은 예루살렘에서 아무런 권리도, 몫도, 명분도 없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의 열정이 솟구쳤습니다. 이것이 바로 팀을 세우는(빌딩하는) 것입니다.

저 역시 교회를 세우는 데 상당한 능력이 있습니다. 제가 만만한 사람인 줄 아십니까? 저는 형제자매들에게 날마다 뜨겁게 말씀을 전하며 사기를 북돋웠습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어떤 이들이 찾아와 “목사님, 제가 직장을 그만두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어느 직장으로 옮기려고 합니까?”라고 묻자, “교회 사역을 하러 왔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세어보니 모두 여섯 명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누가 오라고 했습니까?”라고 묻자, 그들은 “목사님께서 오라고 하신 것 아닙니까?”라고 했습니다.

제가 제시한 비전이 너무 커서 저 자신마저 그 안에 갇혀 버렸고, 제가 오라고 했던 사실조차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좋습니다! 우리는 화인 사명 신학 교회를 세울 것이며, 승리하는 교회를 세울 것입니다!” 열정으로 가득 찼습니다.

사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제 마음속에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아주 크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만약 우리가 사례비를 받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얼마나 버틸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목사님, 6개월은 거뜬히 버틸 수 있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렇다면 한번 힘을 합쳐 버텨봅시다. 교회가 사례비를 주지 못해도 6개월을 버틸 수 있다니 참으로 든든합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것은 복된 길이었으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결코 섭섭하게 대우하지 않으셨습니다. 저 역시 이 청년들의 부모님을 부끄러움 없이 마주할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러므로 열정은 지각 안에 있어야 합니다. 계획이 없다면 열정만으로 무엇을 하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전진하기 시작했고, 형제자매 여러분 모두에게 열정이 있기를 바랍니다. 열정이 있으면 대형 집회는 열 수 있을지 몰라도, 교회를 견고히 세우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거기에는 반드시 상세한 계획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상세한 계획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우리 교회는 지금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열정에 지각이 더해지고, 거기에 계획과 열심과 믿음이 합쳐질 때, 비로소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훌륭한 기회가 열리는 것입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이 화인 사명 교회에 와서 지금까지 흔들리지 않고 남아 있다면, 앞으로는 반드시 지각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지각의 길을 가지 않는다면, 예컨대 회계 일을 하더라도 엉망으로 처리하여 퇴사한 사람에게 월급을 송금하는 식의 실수를 저지르게 될 텐데, 어찌 야단을 맞지 않겠습니까?

일은 제대로 못 하면서 “할렐루야”만 가장 크게 외치는 것은 우리 화인 사명 신학이 추구하는 바가 아닙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모든 성도를 격려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지각 있는 사람이 되도록 돕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리숙하신 분이 아니며 지혜가 무궁하신 분입니다. 어떤 성도들은 생각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아무것도 알지 못하여 스스로 고난을 자초합니다. 지각이 통달하지 못하면 아무리 “할렐루야”를 외친다 해도 결코 마귀를 막아낼 수 없습니다.

기회가 되면 《예레미야서》와 《예레미야애가》를 여러분과 나누겠습니다. 거기에는 지각이 꽉 막힌 이스라엘 백성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들은 자신들이 아주 잘하고 있다고 착각했습니다. 예레미야가 “바벨론 사람들이 곧 들이닥쳐 성벽을 무너뜨릴 것입니다”라고 경고하자, 그들은 “설마 그런 일이 있겠느냐? 당신은 왜 우리에게 재앙만 선포하느냐?”라며 반발했습니다.

패망은 남이 노래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스스로 자초한 것입니다! 날마다 저주받을 일만 골라서 행해놓고, 정작 저주를 거둘 때가 되면 어찌 감당하려 합니까? 그래서 지금까지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명절과 절기 때마다 예레미야애가를 부르고 있습니다.

결국 바벨론 군대가 실제로 쳐들어왔습니다! 예레미야는 참으로 애가 탔습니다. “내가 진작부터 경고했으나 너희가 믿지 않았다! 너희는 세상이 평안하다고만 여겼다.” 부동산 투자, 주식 투자, 사업에는 그토록 열정을 쏟으면서도, 성벽을 쌓고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일에는 자신들과 아무 상관이 없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제가 다시금 안타까운 마음으로 애타게 외칩니다. 비극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이미 너무 멀리 빗나갔음에도 여전히 그 길을 향해 치닫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해 “그 길에서 멈추고 속히 돌아오라!”고 외치십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내가 돈 버는 게 배 아파서 그러십니까?”라고 반응합니다. 세상에,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결국 큰 화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예레미야 당시에도 이와 똑같았고, 그런 사람들의 모습이 바로 이러했습니다.

계획의 핵심

계획의 첫 번째 핵심은 ‘무엇을 할 것인가’입니다. 즉, 이 사람이 자신의 시간을 어디에 쓰고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이것이 그가 어디로 나아갈지를 결정합니다. 하루 종일 틱톡(더우인)만 붙잡고 있다면, 훗날 온몸이 떨리는 질병이 찾아왔을 때 저를 찾아오지 마십시오.

사람이 무엇을 하느냐는 매우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먼저 성벽을 쌓겠습니까, 아니면 여러분 자신의 집 담장을 먼저 쌓겠습니까? 하나님의 성전을 먼저 짓겠습니까, 아니면 여러분의 커리어를 먼저 쌓겠습니까? 이 둘의 차이는 엄청나며, 많은 사람이 이 논리를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왜 이 일을 해야 할까요? 저는 가장 보상이 큰 일을 하라고 말씀드립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가장 큰 보상이라는 사실을 믿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천천히 가보십시오. 그 길의 끝에 도달하면 알게 되겠지만, 그때는 이미 너무 늦었을 것입니다! 다른 것은 차치하더라도, 어떤 사람들은 그 길을 가다가 루게릭병(근위축성 측삭경화증), 강직성 척추염, 암, 루푸스 같은 중병에 걸립니다. 그렇다면 그동안 무엇을 하며 살았단 말입니까?

제가 날마다 안타깝게 부르짖으며 “사명을 가져야 합니다! 사명을 가져야 합니다! 사명을 가져야 합니다!”라고 외치지만, 그들은 “사명? 사명이 밥 먹여 줍니까?”라고 반문합니다. 그들의 말을 들을 때마다 제 마음은 찢어지듯 아픕니다! 왜일까요? 그들이 걷고 있는 그 길의 앞을 내다보면 온통 하나님의 진노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진노 아래 산다면 그 얼마나 끔찍한 일입니까?

그러므로 무엇을 하느냐는 매우 중요합니다. 물론 우리가 무엇을 하든, 이 일과 저 일을 어느 시점에 수행해야 하는지에는 깊은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경영과학이나 운영 연구(OR)를 배우지 않았다면 갈피를 잡지 못할 것입니다. ‘무엇을 할 것인가’는 단 하나의 과업이 아니라 수많은 과업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반드시 먼저 할 일과 나중에 할 일을 구분하고, 어떻게 실행할 것인지를 진지하게 배워야 합니다!

그날 기도할 때 제 마음속에는 깊은 탄식과 함께 그 영혼들을 향한 애통함이 가득 찼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진노의 날, 심판의 때까지 스스로 진노를 쌓아가고 있음이 너무나 또렷하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주여,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저는 교회를 떠난 사람들을 단순히 아쉬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치매를 향해 맹렬히 달려가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들은 아직 노년이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정신이 흐려져 날마다 원망과 갈등 속에 살아갑니다. 이를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차근차근 연구해 보십시오. 느헤미야는 먼저 무엇을 했습니까? 그는 왕궁에서 술 맡은 관원장으로서 왕 곁의 최고 실세로 편안히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 먼 길을 달려와 예루살렘에서 성벽을 쌓았겠습니까? 그 일은 몹시 고되고 힘들지만, 영적으로 가장 큰 보상이 따르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일으키셔서 지극히 험난하고 도전적인 사명을 맡기셨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는 언제나 하나님을 최우선에 두었습니다. 저는 형제자매 여러분이 이 도리를 깨닫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지금까지도 제 마음속에는 깊은 감회가 듭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까 염려되기도 하지만, 상처를 주려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제발 깨어나 그 파멸의 길을 향해 더 이상 질주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우리의 시간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쓰여야 합니까? 눈 깜짝할 사이에 인생은 지나가며,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서게 될 날도 기껏해야 수십 년 뒤입니다. 그때 여러분은 주님께 무엇으로 결산해 드리겠습니까?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일어나 철저히 계획을 세우십시오. 여러분의 시간을 무엇을 위해 쓸 것인지 계획하십시오!

어떤 사람들은 매일 틱톡이나 보면서 재앙을 향해 달려가고, 손대는 일마다 엉망으로 만듭니다! 그러면서 “목사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묻습니다. 저는 한 가지 일이라도 제대로 성사시켜 보라고 대답합니다.

무엇을 배워야 하고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알려주어도 그는 늘 “아이고, 너무 어려워요!”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어렵다면 도대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일 더하기 일은 이라는 단순한 셈은 바보도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할 것인가’는 계획의 핵심입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성벽을 샅샅이 돌아보았습니다. 그는 단순히 성벽만 지으러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의 삶을 회복시키러 왔습니다. 나중에 느헤미야는 에스라를 초청하여 하나님의 율법을 강론하게 함으로써 말씀을 회복시키고, 백성이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도록 이끌었습니다. 그가 왜 그렇게 했겠습니까? 가장 큰 보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느헤미야에게는 그것이 큰 보상이었겠지만, 저에게도 큰 보상이 됩니까?”라고 물을지 모릅니다. 그것은 여러분에게 달렸습니다. 제가 억지로 설득할 수는 없지만, 저는 이것이 가장 높은 보상이라고 확신합니다. 계획의 두 번째 핵심은 ‘어떻게 할 것인가’입니다. 말씀을 읽어드리겠습니다:

그 때에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그의 형제 제사장들과 함께 일어나 양문을 건축하여 성별하고 문짝을 달고 또 성벽을 건축하여 함메아 망대에서부터 하나넬 망대까지 성별하였고 그 다음은 여리고 사람들이 건축하였고 또 그 다음은 이므리의 아들 삭굴이 건축하였으며

어문은 하스나아의 자손들이 건축하여 그 들보를 얹고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고 그 다음은 학고스의 손자 우리야의 아들 므레못이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므세사벨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므술람이 중수하였고 (느헤미야 3:1-4)

그렇다면 성경은 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까요? 아닙니다, 이미 다 나와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본영 앞에 앉아 마치 제갈량이 군사를 배치하듯 자리에 앉아 3일 만에 계획을 완성했습니다.

그리고 관원들과 지도자들이 모여들자 탁자를 치며 명했습니다. “대제사장 엘리아십은 이 구간을 건축하십시오.” 그가 “어떻게 짓습니까? 저는 모릅니다”라고 하자, 탕! 하고 설계도를 펼쳐 보이며 “이대로 지으십시오!”라고 한 것입니다.

그 설계도는 느헤미야가 직접 그린 것이었고, 구체적인 작업 방식이 담겨 있었습니다. 어떤 분은 “목사님,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라고 묻겠지만, 제가 그 상황을 그려본 것입니다. 만약 설계도가 없었다면 지어진 성벽은 온통 삐뚤빼뚤 엉망진창이 되었을 것입니다.

도면에는 모든 치수가 적혀 있습니다. 치수가 없으면 주먹구구식으로 엉망이 됩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글을 많이 쓰고 도면을 많이 그려보아야 생각이 명확해집니다. 글을 쓰지 않고 도면을 그리지 않는 사람의 머릿속은 온통 뒤엉킨 풀죽과 같습니다! 도면과 글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사람은 생각이 명료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요즘 저는 성도들을 어떻게 훈련해야 할지 고민이 많습니다. 훈련을 시작하면 답답해서 목소리가 커지고, 마치 어린아이에게 보충 수업을 시키는 것처럼 “아이고, 대체 생각이 있는 건가?” 하는 탄식이 절로 나옵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어떤 프로젝트든 가장 큰 도전은 ‘어떻게 실행할 것인가’입니다. 우리도 우주선 건조 계획을 세울 수 있습니다. 남들이 스페이스X(SpaceX)라 부르면 우리는 스타X(StarX)라 부르면 됩니다. 그러나 이름이 스페이스X든 스타X든, 스타쉽이든 선쉽이든 핵심 문제는 무엇입니까? 실제로는 아무것도 갖추지 못한 채 입으로만 허풍을 떨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은 ‘어떻게 할 것인가’가 핵심임을 알아야 합니다. 백성들이 일할 때 느헤미야는 순찰을 돌며 “이곳은 잘못되었고 저곳도 틀렸소”라고 지도했습니다.

프로젝트 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머릿속에 ‘이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할 것인지, 무엇을 가지고 할 것인지’가 명확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자재를 보니 벽돌이 한 장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둘이서 기도만 한다고 벽돌이 저절로 생겨납니까? 성경에 벽돌이 비 오듯 쏟아졌다는 기록이 있습니까? 만약 벽돌 비가 내린다면 얼마나 무섭겠습니까?

천사가 나타나 척척 벽돌을 쌓아 올려 성벽을 완성해 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그것은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사람이 직접 성벽을 쌓으며 성장하고, 하나님께서 그 모습을 기뻐하시며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성벽을 쌓는 것은 마땅히 다해야 할 인간의 책임이자 태도의 문제입니다. 자신의 집안일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사람들을 격려해 놓고 “이제 어떻게 일합니까?”라고 물었을 때, “기도합시다!”라고만 한다면 그것이 통하겠습니까? “기도하면 천사가 벽돌을 다 놓아줄 것입니다”라고 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이 일들을 직접 감당하는 것 자체가 은혜이며, 그 과정을 통해 지각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는 참으로 탁월하며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느헤미야여, 천사들은 섬기는 영인데 왜 사람들을 모아놓고 기도만 하여 단숨에 벽돌을 다듬고 흙을 바르고 성벽을 평평하게 쌓지 않았습니까?’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온전한 방식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계획의 핵심은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할 것인가, 무엇으로 할 것인가, 누가 할 것인가’입니다. 이번 장은 계획을 하달하고 ‘누가 할 것인가’를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느헤미야가 모든 일을 혼자 다 했습니까? 아닙니다! 여기에는 질서와 논리가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이미 전체적인 프레임워크(골격)를 완성해 두었습니다. 바세아의 아들 여호야다와 브소드야의 아들 므술람이 쌓아야 할 성벽의 형태가 이미 잡혀 있었고, 그들은 그 프레임워크 위에서 더욱 세부적인 계획을 완성해 나갔습니다.

이것은 큰 프로젝트를 여러 개의 작은 프로젝트로 나누고, 작은 프로젝트를 다시 수많은 구체적인 태스크(과업)로 쪼개는 것과 같습니다. 이 장에 기록된 인물들은 계획을 더욱 세분화하여 수많은 사람을 이끌고 실행에 옮겼고, 구체적인 실행 단계에 이르러서는 모두가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계획의 핵심은 여전히 프레임워크이며, 최고위 설계에서 시작하여 단계별로 하향식 위임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예를 들어 제 동역자가 전문가다운 능력을 갖추고 있다면, 제가 대략적인 계획만 제시해도 그는 문제를 명확하게 해결해 냅니다.

저와 직원들 사이의 업무 배치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이 일을 하십시오”라고 하여 공감대가 형성되었다면, 그가 프로젝트 책임자로서 저에게 돌아와 “목사님, 저는 이 일을 이렇게 진행하겠습니다”라고 보고해야 합니다.

즉, 제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제시했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할 것인가’를 저에게 가져와야 합니다. 단순한 기능직 작업자가 아닌 이상, 일일이 어떻게 하라고 떠먹여 주어야만 실행하는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됨을 이해해야 합니다.

사람의 역량이 성장함에 따라 처음에는 단순 작업자로 시작하여 시키는 대로만 하겠지만, 때로는 그마저도 제대로 해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동쪽으로 가라 하면 서쪽으로 가고, 개를 쫓으라 하면 닭을 쫓다가, 결국 닭인 줄 알고 잡아 온 것이 개라면 어찌 책망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리더로서 느헤미야는 적재적소에 사람을 선별했습니다. 이 사람에게는 이런 능력이 있고 저 사람에게는 저런 능력이 있음을 파악하여 그들을 불러 과업을 분배했습니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토막까지 시시콜콜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각 사람의 역량에 맞추어 임무를 맡긴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쓸모가 있겠습니까? 대단히 유용합니다! 제가 가르쳐 드리는 이런 원리들을 잘 활용한다면 놀라운 결실을 맺을 것입니다. 우리 소목회자 훈련의 많은 내용도 바로 느헤미야가 했던 일, 즉 사람을 성장시키고 혁신하며 리더십을 발휘하고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사람 구실을 하고 일을 제대로 하려면 지식이 필요합니다. 지식과 지혜가 없이는 결코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없습니다! 행복해지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깊이 묵상해 보면 계획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진정한 계획이란 큰 프로젝트를 작은 프로젝트로 나누고, 전체 성벽을 여러 구간으로 쪼개어 소프로젝트를 맡기며, 각 소프로젝트를 구체적인 과업으로 전환하고, 어떤 난관이 있는지,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무엇인지를 규명하여 돌파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계획의 핵심입니다.

자재, 도구, 그리고 실행할 사람의 준비

계획에는 자재와 도구, 그리고 이를 실행할 사람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번 장 본문에서 건축 자재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왜 언급되지 않았을까요? 느헤미야가 이미 왕의 조서를 받아두었기에 자재 문제를 사전에 단번에 해결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성벽을 쌓으러 나가자마자 자재가 공급되었고 즉시 작업에 착수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생각 없이 전쟁터에 나간다면, 와! 하고 돌격했다가 “아이고, 총을 깜빡 잊고 안 가져왔네!” 하는 꼴이 됩니다. 그렇다면 무엇 하러 올라갔습니까? 죽으러 간 것뿐입니다.

총을 들고 엎드렸는데 “어라, 총알이 어디 갔지?” 하고 탄약이 없음을 발견한다면 세상에 어찌 되겠습니까? 죽으러 간 것입니다. 혹은 탄약 상자를 열어보니 총은 7mm구경인데 총알은 5mm라 총구 밖으로 그냥 흘러내려 버린다면 얼마나 기가 막힌 일입니까?

포탄을 장전하려는데 규격이 맞지 않아 들어가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오늘날 시장에는 대포, 총기, 탄약의 종류가 무수히 많습니다. 규격이 맞지 않는다는 것은 사전에 철저히 준비하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도구든, 자재든, 실행할 사람이든, 계획이 담긴 도면이든 모든 것이 정확히 맞아떨어져야 합니다! 프로젝트를 망치는 데는 수많은 실수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단 한 곳만 틀어져도 충분합니다. 예를 들어 건물을 20층까지 지어놓고 엘리베이터를 설치하지 않아 걸어 올라가야 한다면 얼마나 난감하겠습니까? 세상만사는 참으로 정교하고 복잡합니다.

모든 요소가 정확하게 맞아떨어져야만 사명을 완수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다른 모든 것을 잘 해냈다 하더라도 단 한 가지만 어긋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마치 비행기를 하늘로 띄우기는 했으나 착륙시킬 방법이 없다면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하늘에서 치르는 장례 도구를 만든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자재와 도구, 실행 인력을 철저히 준비해야 합니다. 느헤미야가 이 장에 일일이 기록하지 않았다고 해서 준비가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는 기록하지 않은 것이 훨씬 많으며, 오직 누가 무슨 일을 맡았는지만을 기록했을 뿐입니다. 그가 현장에 가서 입김을 훅 불자 자재가 저절로 쏟아져 나왔다고 생각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왜 사람들의 이름을 일일이 기록했을까?

사람들의 이름에 대해, 서두에서 저는 이 부분을 깊이 다루지 않겠다고 했으나 성경공부에서 결코 건너뛸 수 없는 대목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 속에 들어가기를 원하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임을 늘 기억하십시오.

《창세기》, 《역대기》, 《마태복음》에는 수많은 사람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제가 처음 주님을 믿었을 때 가장 읽기 싫었던 부분이 바로 이런 인명 명단이었습니다. 읽기만 하면 눈앞이 캄캄해지고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앙의 연륜이 쌓이면서 그 모든 사람이 성경에 기록된 깊은 뜻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 사람들을 기록해 두셨을까요? 하나님은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인간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신 분은 아니지만, 여러분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힘을 쓴다면 여러분의 이름은 생명책에 반드시 기록될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결코 자신을 하찮게 여기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요셉과 같은 자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십니다.

어떤 이들은 “우리 집 장자의 명분을 유다가 가져가 버렸으니 얼마나 절망적인가”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결코 절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가문의 구원자’라는 또 다른 요셉의 직분을 창조해 내실 수 있는 분입니다. 하나님 나라에는 직분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 있는 사람이 부족할 뿐입니다!

이제 형제자매 여러분은 깨달으셨습니까? 여러분이라는 존재는 500년 만에, 혹은 5,000년 만에 한 번 태어난 자가 아니라 창세 이래로 지금까지 오직 단 하나뿐인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각 사람을 깊이 사랑하고 계심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어떤 가문은 기록되다가 어느 순간 끊어지고, 수많은 사람이 더 이상 기록되지 않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실 기록할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가인은 본인만 기록되고 그 후손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다가 홍수 심판 때 모두 쓸려나가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께서 나를 안중에 두지 않으신다고 결코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소중히 여기시며 만인이 구원받기를 원하시지만, 사람이 스스로 하나님의 계획을 망쳐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진정 여러분을 아끼고 계신다는 이 말씀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됩니까! 때로는 하나님이 여러분을 도태시키신 것이 아니라 여러분 스스로 자신을 도태시킨 것입니다. 여러분이 마음을 열고 순종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여러분의 이름을 생명책에 기록해 주실 것입니다.

제가 왜 이토록 온 힘을 다해 사명을 좇는지 아십니까? 저는 하나님께서 제게 주실 상급을 얻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육신의 삶 자체에는 큰 미련이 없습니다. 이 땅에서의 삶은 고되고 피곤한 일투성이이기 때문입니다. 생각이 막힌 사람을 만나면 목소리가 커지게 되고, 그러면 상대는 “목사님, 화를 가라앉히세요”라고 말합니다.

비록 육신의 삶이 헛되고 헛됨을 꿰뚫어 보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맡겨진 문제들을 지혜롭게 해결해 나가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구원받고 승리하기를 바라시며, 여러분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잠깐 곁길로 나가자면, 저는 《성경 암호(Bible Code)》라는 매우 흥미로운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사야서》와 《창세기》 원문을 일정한 암호 방식으로 풀어낸 책입니다.

예를 들어 ‘뉴턴’이라는 이름을 찾을 때, 몇 글자씩 건너뛰며 글자를 조합하면 ‘뉴턴’이라는 단어가 완성되고, 바로 그 아랫줄에 ‘상대성 이론’이라는 단어가 배열되어 있는 식입니다. 참으로 신비롭기 그지없습니다.

‘에디슨’을 찾으면 바로 곁에 ‘전등’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성경이 기록되던 고대 시대에 그런 단어가 있었겠습니까? 없었습니다! 그러나 문자 배열을 통해 그것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저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는 ‘지금 인공지능이 고도로 발달하고 연산 능력이 엄청난데, 과연 내 이름도 찾아낼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만약 제 이름을 찾는다면 그 곁에는 틀림없이 제가 정립한 ‘사명 신학’이라는 단어가 있을 것이고, ‘예수를 닮음’, ‘모든 것을 내려놓음’,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음’, ‘사도 바울을 본받음’, 그리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신앙을 계승함’이라는 단어들이 나란히 놓여 있을 것입니다.

만약 슈퍼컴퓨터가 있다면 여러분과 저의 이름이 그 안에 기록되어 있을 것이며, 우리가 행한 모든 일이 새겨져 있을 것입니다.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는 이미 여러분의 이름을 예정해 두셨으니, 이름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뉴턴의 이름이 왜 뉴턴이 되었겠습니까? 우연히 지어진 것이 아니라 창세 전에 이미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 속에 예비된 것입니다. 이 사실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그러므로 저는 우리 형제자매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고, 생명책에서 여러분과 관련된 거룩한 행적들을 발견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성경이 왜 하나의 두루마리이며, 《요한계시록》에서 왜 아무도 그 두루마리를 펴지 못했겠습니까? 우리는 겉으로 드러난 글자만 읽지만, 영적 지각으로 제대로 읽을 줄 아는 자는 그 안에서 각 사람의 구속사적 이야기를 읽어내기 때문입니다.

어떤 코드로 읽으면 여러분의 이야기가 되고, 다른 코드로 읽으면 저의 이야기가 되니 얼마나 놀랍습니까! 이 사람들의 이름이 하나님의 생명책에 당당히 기록되었습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은 영적으로 맑게 깨어나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교회의 역사 속에 우리의 발자취가 반드시 기록될 것입니다.

느헤미야 시대에는 그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벽 재건에 동참했고, 이 마지막 시대에는 우리가 화인 사명 신학의 교회를 세우는 일에 동참하여 기독교 역사상 위대한 영적 개혁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장차 제 이름을 찾아보았을 때, 그 아랫줄에는 ‘화인 사명 신학’, 그 아랫줄에는 ‘새 시대 기독교의 영적 개혁’이라고 기록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일으키는 이 영적 개혁은 이전의 어느 시대가 이루어낸 개혁보다 더욱 탁월하게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이 세대에 밝히 드러낼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받아들이고 믿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체계적인 신학 체계로 풀어내어 증거했다는 사실입니다.

느헤미야 시대에 예루살렘 성벽을 쌓았던 자들이 성경에 기록되었듯이, 이 세대에 저와 여러분이 함께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성전을 건축하여 하나님의 책에 기록된다는 것은 참으로 가슴 벅찬 일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이 다시 한번 영적 활력을 되찾고 내면의 열정을 불일 듯 일으켜, 우리 모두의 이름이 하나님의 생명책에 한 줄, 두 줄, 아니 한 단락의 거룩한 역사로 기록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이번 성경공부는 여기까지 나누겠습니다.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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