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Q1:老师,信神的人在不知道做什么选择的时候可以抽签吗?
当然可以啊。《圣经》里头经常有抽签的事儿。但是我告诉你,不认识属灵的事儿,不知道祝福和咒诅,带着爱世界的心去抽个签儿,我看也是瞎整啊。我给你们讲,你们一定要小心,我们不有老三样吗?就是体贴肉体,爱世界,识别善恶。这老三样记住了啊。
到餐馆里头来有个地三鲜,那我告诉你有个凑三鲜。老三样儿就叫做揍三鲜,第一样儿,爱世界,第二样体贴肉体,第三样识别善恶。所以说我们别把这活着这点的事儿看得这么重。这个生意能不能做呀?抽个签一抽,可以做,一做赔了一大笔钱,你找谁去啊?
还有一些基督徒,祷告祷告,神啊,我可不可以这样?可不可以那样?我可不可以嫁给这个人?可以啊,挺平安的。嫁完以后,发现这人又出轨又嫖娼。神啊,这不是你替我选的吗?啥啥时候神替你选这玩意儿了?满脑子的世俗的观念。所以我想咱们今天要小心。
Q2:约坦只能算是认识神,不能算是谨守遵行神的话和神心意的人吧?神要求这么低,这样也保守他?
《圣经》里约坦这个人的记录不多,我们只能是透过这个现象反思。但是这个反思也不是很合理。你比如说,有一个楼塌了,压死了很多人,然后他们就来到耶稣面前,问:主啊,这些人是不是罪孽深重呢?主耶稣看了看他们说:你们是不是以为自己没有罪呢?你们要不悔改都要如此灭亡。是不是?差不多。
但是这个约坦跟他的那些哥哥们,我觉得不太一样。我告诉你,神有丰富的恩典和怜悯,就这样竟然能逃过这一劫。我想基甸死的时候,他那七十个儿子都成立了很多的家室。这七十个儿子都住在他放以弗得的那个地方,那以弗得是个金子,所以说我想那七十个儿子还在那开会呢。
他们还在那商讨:咱们大家谁来管理这个以色列啊?这约坦不在,这是我编的故事。这约坦说,你们玩你们的,我没兴趣,这事跟我没关系。就好像全家族讨论继承产业似的,我弃权,就跑了。约坦的哥哥们在这讨论,你做啥?我做啥?咱们选谁继承父业。
他们正在开会呢,亚比米勒把他们一锅端了。要不然怎么一个都没逃掉呢?我们是不是觉得有点奇怪啊?怎么一个都没逃掉?那亚比米勒带着匪徒来,挺好啊!你们凑得挺全的,省得我麻烦了。如果一家一家的杀,第一家杀完了消息一走通,全都跑了。是不是?刚好一锅端。所以这约坦呢,我告诉你,他真的没有这些,很佛系。你们玩儿啊,我自己玩去了。你们讨论吧,跟我没关系,我弃权。
那这事儿其实也是一个很有意思的事儿。至于他为什么这么想?我告诉你,是出于神。人的心思意念常常在神的手中。有的时候神就把人这些贪念给显露出来,把人给耍了。
Q3:老师,亚比米勒这么坏,神怎么还让他做以色列人的王呢?
不是神让的,是他自己整来的。我们今天就有一个错误的观念,我们总觉得,哇,他能做以色列的王,他能做管理的岗位,那他肯定是挺好啊。肯定真的是个好事吗?很多人错误地认为是个好事了。其实我告诉你,那个王位是一个极大的试探。只是我们弟兄姐妹,还有很强烈的属世界的观念,所以常常掉到这种困惑里。其实神没在乎这事儿,是不是?你以为是神选一个都好的,哪有这回事儿。
到了《列王纪》,以色列的哪一个王,不是神掌管?都是。那为什么那么多坏王呢?一直到国破家亡。还有犹大,一个好王生了个儿子,继承王位以后成了个坏王。反正就是乌烟瘴气的这些事儿。我们总觉着神这么干不好,难道你就不能找一个好一点的?
我告诉你,这个世界还真的就是,很多时候是很烂的人作王,这是神的作为。我也不知道回答你的问题了没有。不要以为神总是弄个好的,不是这么回事儿。直到今天你看这么多教会难道神不能找一个好的吗?非得立这些人吗?建一个教会讨神愤怒,再建一个教会又讨神愤怒。难道神不能找一个好的吗?神就跟你说老子就愿意,怎么着啊?
Q4:老师,基甸种的带给他的家族这么大的咒诅,为什么《希伯来书》上还在说他是个有信心的人?
人家在拯救以色列,神安排的拯救以色列这件事上,他是有信心的呀。那我知道一个牧师,他是很有信心,瞎子看见,瘸腿走路,很有信心。但是很有信心就完了吗?很有信心也不代表一切。神向我们所要的是什么呢?神向我们所要的是我们谨守遵行他的话呀。是不是啊?
也就是说今天我们要知道,如今长存的有信,有望,有爱,爱是最大的。那你说他有信心,他就停留在信心这个阶段,你觉得怎么样?我告诉你,不咋样。
所以说我们华人命定神学常常讲爱神﹐竭尽全力去爱神。人不爱神有信心可以行。保罗曾经说过:
我若有先知讲道之能,也明白各样的奥秘、各样的知识,而且有全备的信,叫我能够移山,却没有爱,我就算不得什么。(《哥林多前书》13:2)
所以说大家以为信心代表一切吗?信心不代表一切啊。所以说我们弟兄姐妹,按照我们今天这个学习的样子,还是令人堪忧啊。昨天我带大家祷告了四个小时,嗓子都喊哑了。巴不得弟兄姐妹能够看明白。还以为信心代表一切?不,爱是核心!如果你是个爱神的人,神是知道的,神为爱他的人所预备的是,眼睛未曾看见,耳朵未曾听过,心里未曾想过的,超出你的所求所想。
得救和因信称义,这个因果报应不是佛教的专利。其实《圣经》里也有因果的原则。神是公义的,种什么就收什么。你种在情欲里,就从情欲里收败坏;你种在圣灵里,就从圣灵里收永生。这个原则是对所有人都适用的,不管你信不信神。
我们来看《士师记》。以色列人在士师时代常常偏离神,去拜偶像。神就兴起外邦的敌人来攻击他们,他们在痛苦中呼求神,神就兴起士师来拯救他们。可是拯救之后,他们又回到罪中,循环往复。这就是因果原则的体现。他们离弃神,结果就是受敌人的欺压;他们回转向神,结果就是得拯救。
所以,因果报应不仅仅是对信神的人,而是对所有人。信神的人因为有神的恩典,悔改时能得赦免和拯救。但如果一再悖逆,仍然会面对因果带来的后果。
我们要时刻警醒,保持对神的敬畏和顺服,不要自以为是。永远觉得自己做得不够,爱神爱得不够,才能不断地追求神的心意。愿我们都能从《士师记》中学习,警戒自己,活出合神心意的生活。
Q5:不必对作恶的心怀不平,单单爱神对吗?
这个是神所定的属灵的规律,千万别搞错了,这是神给所有人的。但是《圣经》里头所写的咒诅是写给信主的人的。不信的人,神也不会放过。但是要求应该比信主的人低,这就是为什么信主的人要更多地敬畏神。
所以我们对作恶的心怀不平,你要怎么的?你想做神啊?如果那恶是做在你身上,我告诉你活该。如果不是坐在你身上,跟你没关系。那也用不着你打抱不平。所以今天我们要学会敬畏神!
今天答疑就到这。愿神祝福大家!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사사기 9장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주제는 “다 하나님의 보응이다”입니다. 우리 중국 속담에 “보응이 없는 것이 아니라,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을 뿐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모든 일에 다 하나님의 보응이 따른다는 뜻입니다. 찬찬히 깊이 생각해 보면, 이 세상에는 듣기에 다소 끔찍한 이야기들이 있고, 어떤 일들은 일단 일어나고 나면 되돌리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되었는지 알 수 없는 일들이 많습니다.
제가 사사기 9장을 처음 읽었을 때는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했고, 이 장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습니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대도 혼탁하기 그지없습니다.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치고, 또 다른 나라가 저 나라를 폭격합니다. 다들 무엇을 위해 그러는지 명확히 설명할 수도 없지만, 결국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습니다. 우리는 늘 그들이 억울하게 죽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하나님도 틀리지 않으셨고 귀신도 틀리지 않았으며, 단지 우리 인간의 안목이 바르지 못했을 뿐입니다. 모든 일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있으며, 다 하나님의 보응입니다.
1. 기드온의 정치적 지혜와 세상적인 소망은 모두 그의 올무가 되었다
이 모든 일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아십니까? 기드온이 전쟁에서 승리한 후, 온 백성이 그를 추대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려 달라고 했을 때부터입니다. 사실 그가 정말로 백성을 잘 다스리고자 했다 하더라도 이는 꽤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말을 듣는 사람도 있고 듣지 않는 사람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에브라임 사람들은 “기드온, 네가 미디안과 싸우러 갈 때 어찌하여 우리를 부르지 않았느냐?”라고 따졌습니다. 정치 지도자가 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니, 우리는 웬만하면 그런 자리에 서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평범한 백성으로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런데 기드온은 다스리고 싶어 했을까요? 그는 다스리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기드온이 다스릴 수 있었습니까? 다스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기드온은 한 가지 꾀를 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한 가지 청할 것이 있으니, 탈취한 금 귀고리와 금을 다 내 옷에 던지라.” 그렇게 해서 거둔 금이 아주 많았고, 그는 그 금으로 에봇 하나를 만들었습니다. 여러분은 에봇이 무엇을 하는 데 쓰이는지 아셔야 합니다. 에봇은 제사장이 입고 하나님의 뜻을 묻는 데 쓰이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와서 이런저런 일들을 구했고, 이 세상의 재난과 문제들도 참 많았습니다. 다루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마치 우리가 섬기는 사람들에게 문제가 많은 것처럼, 때로는 해결하기가 곤란하여 기드온 역시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교회를 치리할 때 이런 에봇 같은 것이 없으면 다스리기가 힘든 것처럼, 우리 가운데도 그렇고 교회도 그렇습니다. 어떤 교회는 기도할 때 아예 중보기도 팀을 만듭니다. 그 목회자의 기도팀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아십니까? 목회자를 지지하고 보증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목회자가 선지자 팀을 세우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로 에봇과 같은 역할을 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말을 듣지 않는 사람들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라고 하면 다들 조용해집니다. 그래서 아무도 함부로 대들지 못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그것이 실제와 다를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여러분, 꼭 기억하십시오. 제가 하는 모든 말이 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은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을 우매하게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성경을 읽고 함께 탐구해야 합니다. 저는 진리의 소유자가 아니며, 저 역시 자주 틀립니다. 그러므로 저는 결코 에봇 같은 것을 만들어 입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예전에 어떤 목사님이 강단에서 “내가 강단에서 선포하는 모든 말은 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라고 설교했습니다. 제가 밑에 앉아 그 말을 듣고 ‘큰일 났구나, 기드온의 에봇이 나타났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기드온의 정치적 지혜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그런 담력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철저히 세상에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유명해지고 싶지도 않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그저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 있는 동안 보응을 자초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사람이 일단 보응을 받게 되면 그것은 결코 장난이 아닙니다. 저는 여러분이 저와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깨닫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보응이라고 해서 제가 여러분에게 보응을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제가 여러분에게 무엇을 보응하겠습니까? 저 자신도 보응을 받지 않으면 다행입니다. 저는 진리의 소유자가 아니라, 아주 진지하게 하나님을 찾는 사람일 뿐입니다.
결국 에봇을 만든 이후, 사사기 8장에서 그것은 기드온 집의 올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9장에 이르러 그 올무가 무엇인지 너무나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훗날 기드온은 이스라엘을 다스렸고, 사실 그는 거대한 가문을 이루고 싶어 했습니다. 이것은 성경에 매우 은밀하게 숨겨져 있는데, 제가 그것을 읽어낸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대가족을 이루고자 하는 것은 다 세상적인 소망입니다. 만약 누군가 찾아와서 “목사님, 우리 교회를 크게 키우고 강하게 만듭시다”라고 한다면, 저는 그를 보며 “우리에겐 그런 재주가 없습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목사님, 마케팅 전문가가 있으니 제가 도와서 목사님을 세계적인 유명 목회자로 만들어 드릴 수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저는 그저 빙그레 웃으며 말합니다. “우리는 그런 거 못 합니다. 그저 보응이나 받지 않으면 족합니다. 교회를 크게 키우고 세계적인 명목이 되는 게 다 무슨 소용입니까,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어 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기드온에게는 이처럼 거대하게 키우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아들을 일흔 명이나 낳았습니다. 하지만 그 70명의 아들을 잘 건사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기드온은 큰 가문을 이루고 싶어 했고, 그 일에 매우 열심이었습니다. 마치 씨돼지처럼 말입니다. 여러분도 아시지 않습니까? 고기를 얻기 위해 기르는 것이 아니라, 종자를 퍼뜨리기 위해 유전자를 물려주는 데 열심인 그런 돼지 말입니다.
기드온은 평생토록 분주히 살며 아들을 70명이나 낳았으니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낳는 것이 어디 쉽습니까? 몹시 피곤했을 텐데, 그는 참 대단했습니다. 종돼지보다도 더 대단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에 대해 부디 꼬투리를 잡지 마시길 바랍니다. 저는 사람이 거대해지고 강해지려 하는 그 본질이 대체 무엇인지를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묵상해야 합니까? 우리는 반드시 주기도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행하시도록 해야 합니다. 저 역시 예전에는 경기장을 가득 채우는 교회가 되기를 바랐던 적이 있습니다. 긴 장대에 카메라를 달고 촬영하고, 요즘은 드론까지 띄워 한 바퀴 돌리면 영상이 얼마나 멋있습니까.
기드온은 세겜에 첩까지 두었습니다. 사실 당시 그의 나이가 그리 많지 않았을 때였기에, 그 첩이 낳은 아들 아비멜렉은 70명의 아들 중에서도 형 뻘이었습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기드온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아시겠지요. 첫째인지, 둘째인지, 셋째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어쨌든 아비멜렉은 형이었습니다. 기드온은 그의 이름을 아비멜렉이라고 지었습니다. 아비멜렉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아비멜렉은 가나안의 한 족장이자 왕이었습니다. 아비멜렉이라는 인물은 마치 우리가 유방이나 항우, 조조, 손권, 유비 같은 영웅호걸을 떠올리는 것처럼 대단한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왜 이름을 아비멜렉이라고 지었을까요? 왜 이방인의 이름을 붙여 주었을까요? 이는 기드온의 꿈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대목입니다. 그는 그런 존재를 흠모했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은 헛수고로 끝났습니다. 이러한 일이 일어났을 때, 기드온이 그 당대에 심었던 것들은 기드온 당대에는 임하지 않고 그의 아들들의 몸에 임했습니다.
이런 일을 마주했을 때 여러분이라면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자, 그를 위해 기도합시다.” 아비멜렉을 위해 기도한들 소용이 있겠습니까? 소용없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매우 영적인 원리입니다. 늙은 엘리 제사장을 기억하십니까?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스스로 짠 올무에 걸려 넘어지면 기도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겪는 수많은 일들 가운데 아무리 기도해도 소용없는 이유입니다. 왜 기도가 통하지 않을까요? 그 저주가 너무나 무겁기 때문입니다.
만약 여러분의 가문 조상 중에 하나님을 섬기던 사람이 있었다고 해 봅시다. 늙은 엘리를 향해 하나님께서 저주를 내리실 때 “기도와 제사로도 속죄함을 받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즉, 엘리의 집안에는 노년까지 사는 사람이 없고 다 중년에 죽는다는 것입니다. 기드온 가문의 일 역시 되돌릴 수 없는 하나님의 보응이었습니다. 다윗이 우리아를 죽였을 때 어떻게 되었습니까? 칼이 다윗의 집에서 영영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무서운 일입니다! 어떤 이들은 “내가 다윗을 위해 기도하겠다. 3만 명의 중보기도 팀을 꾸려 다윗을 위해, 엘리 가문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소용이 있겠습니까? 아무 소용없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효력이 있습니까? 그 집안에서 한 사람이라도 영적인 세계를 깨닫고, 하나님을 갈망하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더 깊이 알아가기 시작한다면, 그 사람은 그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은 그 가문의 저주로부터 벗어나 그 이후로는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칼이 집안을 떠나지 않는 저주 속에서도 그의 집만은 화를 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성경을 읽으며 깨달은 바입니다. 제가 완벽하게 설명하지는 못할지라도, 성경 속에서 이러한 단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기드온의 70명의 아들이 죽임을 당할 때 막내아들 요담은 죽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에게는 영적인 지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드온의 정치적 지혜와 세상적인 소망은 결국 그의 올무가 되었고, 마지막에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모두 망해 버렸고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부자가 삼 대를 못 간다고 하더니, 이 집안은 2대 만에 끝나 버렸습니다. 훗날 그 요담 역시 역사 속에 이름 없이 묻혀 버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2. 기드온이 심은 것을 하나님께서 반드시 보응하신다
기억하십시오. 사람은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두는 법입니다. 저는 우리가 무언가를 심을 때 하나님을 경외할 줄 모르고 당장 눈앞의 문제만 바라볼까 봐 심히 염려가 됩니다. 기드온은 당시 문제를 바라보며 “어떻게 해야 하나?” 하다가 생각이 빗나가 버렸습니다. 세상의 논리 체계로 생각이 빠져들었고, 도덕적 관념으로 치우쳤으며, 자신이 배운 세상의 정치적 지식으로 흘러가 버렸습니다.
기드온이 죽은 후, 이야기의 전개는 통제 불능이 되었습니다. 그는 죽을 때까지도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그가 죽은 후 영혼이 하늘에서 자신이 행한 우매한 일로 인해 모든 것이 끝나 버린 것을 보았을 때는, 이미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이었을 것입니다.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한 가지 비유를 드셨지 않습니까? 한 부자가 죽어 음부에 떨어졌는데, 아래에서부터 꼬챙이가 꿰어져 입으로 나와 숯불 위에서 뱅글뱅글 돌아가며 구워지는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가 한 바퀴 돌아 눈이 위를 향할 때 멀리 아브라함을 보고 외쳤습니다. “내 조상 아브라함이여, 어서 사람 하나를 내 아버지 집에 보내어 그들이 이곳에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그러자 아브라함이 말했습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그들은 믿지 아니할 것이다.”
그러므로 기드온이 심은 것을 하나님께서는 다 보응하셨습니다.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기드온이 누구입니까? 기드온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이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조차 이럴진대, 택함 받지 못한 세겜 사람들 같은 자들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이 이야기의 전개는 매우 흥미로우면서도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갑니다. 일들이 자연스럽게 파멸을 향해 내려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소망을 드리자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바로 여러분이 영적인 세계를 깨닫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경외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반드시 이러한 저주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조상 대대로 내려오던 걷잡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 여러분 대에 이르러 하나님을 사랑하기 시작하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손에 맡겨지게 되고 그때부터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다스리십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평생이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것입니다. 반면 어떤 이들은 귀신의 손에 붙들려 있습니다. 그 귀신은 어디서 왔습니까? 하나님께서 보내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소망이 있습니까? 소망이 있습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오직 한 가지만 두려워하십시오. 함부로 행동하여 저주를 심는 것을 두려워하십시오.
오늘날 교회 안에서의 정치적 다툼은 매우 치열합니다. 감사하게도 우리 교회에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그 뿌리를 잘라버렸기 때문입니다. 제가 죽은 뒤에 그런 일이 생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제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런 것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저는 오직 한 가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만을 추구합니다. 헛된 짓을 하여 온몸에 저주를 두르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반드시 보응하시는 하나님이시니, 보응을 당하고 나서야 비로소 기도를 떠올리지 마십시오.
기드온이 씨를 뿌려놓고 죽은 후, 기막힌 이야기들이 펼쳐집니다. 그에게는 아비멜렉이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그의 어머니는 참으로 독특한 신분이었습니다. 이방인 첩이었습니다. 요담은 아비멜렉을 무엇으로 묘사합니까? 가시나무로 묘사했습니다. 즉, 집안의 골칫덩어리였습니다. 골칫덩어리가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머릿속에 나쁜 생각만 가득한 자입니다. 학창 시절에 아주 질 나쁜 학생들을 본 적이 있지 않습니까? 다루기 힘들고, 뱃속에 온통 악한 꾀만 가득하여 나쁜 짓만 골라 하는 자들 말입니다.
아비멜렉의 처지가 어떠했습니까? 다른 형제들의 어머니는 본처였지만, 그의 어머니는 첩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속이 좁은 면이 있습니다. 모세가 이방 여인과 결혼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비멜렉의 형제들은 그를 볼 때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입을 삐죽거리며 낄낄거렸습니다. 얼마나 사람의 자존심을 긁는 행동입니까. 아비멜렉은 그 모습을 보며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습니다. 형제들은 대놓고 말하지는 않아도 “첩의 자식”이라며 무시했고, 아비멜렉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래서 그는 집안에서 가시나무 같은 존재였습니다.
아비멜렉은 분노 속에서 매일 몰래 무예를 연마했습니다. 아비멜렉의 무예는 매우 뛰어났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마음속에 ‘나는 큰 인물이 될 것이다. 훗날 내 아버지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 될 것이다. 아버지가 아들을 70명 낳았으니 나는 700명을 낳을 것이다’라는 야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략 그런 심정이었습니다. 성경에 그렇게 쓰여 있지는 않지만 말입니다. 아비멜렉은 마음속으로 굳게 결심했지만, 저주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기드온이 심은 것들로 인해 보응을 받는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아비멜렉은 어떤 계획을 세웠습니까? ‘아버지가 죽기만 하면 외삼촌들을 찾아가야겠다.’ 그의 외가는 세겜 지역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유력한 가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아비멜렉은 외삼촌들을 찾아갔고, 이미 그 전부터 외삼촌들과 어머니, 그리고 세겜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다져 놓았습니다. 어떻게 다졌을까요? 기드온이 이스라엘을 다스릴 때 그 지역 역시 기드온의 관할 하에 있었으므로, 기드온의 아들이라는 신분을 이용해 관계를 잘 맺어 둔 것입니다.
세겜 사람들은 아비멜렉의 든든한 정치적 기반이었습니다. 아비멜렉은 ‘훗날 반드시 복수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사실 사람들은 저주가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무엇이 저주인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저는 우리 형제자매들이 저주가 무엇인지 참으로 깨닫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무엇이 저주인지 알지 못한 채 행하다가는 훗날 기도조차 어려워집니다.
저주를 받는 것은 참으로 무서운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보응하셨기 때문입니다. 그의 에봇과 세상적인 야망이 그의 올무가 되지 않았습니까? 세상의 많은 일에는 인과관계가 있습니다. 인과관계가 불교에만 있는 것이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세상만사를 깊이 연구해 보면 인과관계가 없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영적인 세계가 이를 주관하고 있으며, 결말은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기드온이 심어 놓은 것들로 인해 결말은 이미 정해졌습니다. 70명의 아들이 죽임을 당했는데, 누구에게 죽었습니까? 바로 그의 아들 아비멜렉의 손에 다른 모든 형제들이 몰살당했습니다. 이 관계는 참으로 묘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사실상 영적인 문제입니다.
3. 기드온의 막내아들 요담은 영적인 지식이 조금 있었다
요담은 어떻게 영적인 지식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그가 한 말을 통해 그 사람을 엿볼 수 있습니다. 두 가지를 통해 알 수 있는데, 첫째는 그가 선포한 말이고, 둘째는 그가 홀로 화를 면했다는 점입니다. 요담은 왜 살아남았을까요? 이상하지 않습니까? 다른 아들들은 다 죽임을 당했는데 그 혼자만 도망쳐 살아남았습니다. 그것은 분명 하나님의 보호하심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아들들은 어떠했습니까? 다른 아들들은 영적인 세계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습니다.
영적인 세계에 대한 지식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세상에 대한 갈망은 그만큼 줄어들게 마련입니다. 세상에 대한 욕망이 깊을수록 영적인 일에 대해서는 무지해지며, 영적인 일에 대해 많이 알수록 세상일에 대한 헛된 소망은 사라지게 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이 사실을 깊이 묵상해 보십시오. 요담이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사람들이 요담에게 그 일을 알리매 요담이 그리심산 꼭대기로 가서 서서 그의 소리를 높여 그들에게 외쳐 이르되 세겜 사람들아 내 말을 들으라 그리하여야 하나님이 너희의 말을 들으시리라 하루는 나무들이 나가서 기름을 부어 자신들 위에 왕으로 삼으려 하여 감람나무에게 이르되 너는 우리 위에 왕이 되라 하매 감람나무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게 있는 나의 기름은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나니 내가 어찌 그것을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우쭐대리요 한지라 (사사기 9:7-9)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영적인 지식이 있지 않고서야 어찌 가능하겠습니까? 이는 비단 감람나무, 무화과나무, 포도나무의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요담은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왕이 되고 싶지 않다. 나무들 위에서 우쭐대고 싶지 않다. 아버지의 권력을 물려받고 싶지 않다. 나는 그저 평범한 백성으로 살고 싶을 뿐이다. 거대해지고 강해지는 것을 추구하지 않으며, 권력의 단물을 빨며 사람들 위에서 우쭐대고 싶지 않다.”
오늘날 이 세대를 자세히 보십시오. 사람들이 왜 그렇게 위로 올라가려고 안달입니까? 꼭대기까지 올라간다고 해서 과연 좋을 것이 있습니까? 요담은 어려서부터 이러한 이치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고, 세상의 것들을 꿰뚫어 보고 있었습니다. 어떤 이는 “아버지가 부유해서 집안에 부족함이 없으니 욕심이 없었겠지”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요담은 권력 다툼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고,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하나님의 보호를 받아 화를 면했습니다.
더욱이 요담은 어디로 도망쳤습니까? 그리심산 꼭대기로 올라갔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심산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여호수아 시대에 이스라엘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백성들은 그리심산과 에발산에 서서 축복과 저주를 선포했습니다. 어린 요담의 마음속에는 이미 축복과 저주에 대한 깊은 깨달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아, 저주라는 것은 참으로 무서운 것이구나!’ 그리하여 요담은 그리심산에 올라가 저주를 선포했습니다. 그 저주는 단지 그의 개인적인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선포한 말이었습니다. 요담은 만약 사람들이 기드온과 그의 온 집안을 진실과 성실로 대했다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겜의 불량배들과 그의 형 아비멜렉은 아버지의 아들 70명을 한 바위 위에서 다 죽였습니다. 그래서 요담은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아비멜렉에게서 불이 나와서 세겜 사람들과 밀로의 집을 사를 것이요 세겜 사람들과 밀로의 집에서도 불이 나와 아비멜렉을 사를 것이니라 하고 (사사기 9:20)
실제로 불살라졌습니까? 그렇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어린 요담이 선포를 마치자, 하나님께서 그 아이의 중심을 보시고 그의 말대로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요담아, 네 말이 옳다. 내가 네 말대로 이루어 주마” 하시고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을 저주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틀리지 않으시며, 귀신도 틀리지 않고, 오직 사람만이 착각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깊은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영적인 지식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심산을 알아야 하고 에발산을 알아야 하며, 여호수아가 선포했던 축복과 저주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신명기 28장입니다. 읽어 보셨습니까? 깊이 묵상하며 읽으십시오. 왜 하나님께서는 즉시 심판하지 않으시고 몇 년 동안 내버려 두셨을까요? 하나님의 일하심은 악이 가득 차기를 기다리시는 법입니다. 참으로 의미심장한 일입니다.
4. 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이 심은 것을 하나님께서 반드시 보응하신다
기드온이 심은 것만 하나님께서 보응하셨을 것 같습니까? 기드온이 심은 것도 보응하셨고,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이 심은 것 역시 하나님께서 보응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과 제가 심은 것은 하나님께서 보응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반드시 보응하십니다.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아비멜렉은 무엇을 귀하게 여겼습니까? 그는 오직 권력만을 탐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목회자가 되었다면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그 사명만이 하나님의 임재를 가져오며, 사람들을 섬기고 축복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사람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악한 생각들은 참으로 무섭습니다. 아비멜렉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얼마나 으스댔겠습니까. 당시에는 아직 왕이 없던 시대였는데, 그가 다스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비멜렉은 ‘나는 권력을 쥐고 사람들 위에 우쭐대며 군림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나라요,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인데 감히 하나님을 대신하려 한 것입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아비멜렉이 외가 친척들을 통해 바알브릿 신전에서 은을 받아 챙겼고, 그것을 거리낌 없이 취했다는 점입니다.
돈을 챙긴 아비멜렉은 방탕하고 경박한 사람들을 용병으로 샀습니다. 온몸에 문신을 두른 깡패 같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도둑질과 약탈을 일삼았습니다. 아비멜렉은 그들을 거느리고 기드온의 다른 아들들을 모조리 죽였습니다. 아비멜렉 역시 대단히 악독한 인물이었습니다. 불량배들을 통솔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조직의 우두머리뿐입니다. 아비멜렉은 어릴 때부터 악한 우두머리의 기질을 갈고닦았던 것입니다. 결국 70명의 형제들을 죽이고 정치적 술수를 부렸으며, 세겜 사람들은 그를 왕으로 추대했습니다.
당시 그 지역에는 지도자가 없었기에, 아비멜렉은 단숨에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통솔하게 되었습니다. 누가 감히 그에게 맞서겠습니까? 주변에 온통 조직폭력배들이 깔려 있는데, “내가 다스리겠다”고 나섰다가는 다음 날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 버릴 판이었습니다. 경찰에 신고한들 찾을 수도 없이 증발해 버리는 형국이었습니다. 아비멜렉은 그런 악랄한 수단으로 백성을 통제했습니다.
어떤 분은 “그 70명이 저항하지 않았을까요?”라고 묻습니다. 당연히 저항했을 것입니다. 어찌 가만히 있었겠습니까? 하지만 온실 속의 화초처럼 귀하게 자란 기드온의 아들들이, 온갖 상처와 원한을 품고 살아온 아비멜렉을 어찌 당해낼 수 있었겠습니까? 다른 아들들은 돈 쓸 줄만 아는 도련님들이었지만, 아비멜렉은 복수의 칼을 갈며 뛰어난 무예를 연마한 자였습니다. 누가 그를 이길 수 있겠습니까?
아비멜렉은 무예가 출중했고, 거기에 무술깨나 하는 불량배 무리까지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은 악행을 일삼으며 승승장구했습니다. 2년 차에도 세금을 거두러 다니며 장터를 털고 집집마다 돈을 갈취했습니다.
아비멜렉이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되자, 온 나라는 암흑가 조직폭력배의 손아귀에 들어간 꼴이 되었습니다. 노점상들의 삶은 처참했습니다. 자기 형제들까지 몰살하고 아버지의 낯도 보지 않는 자가 힘없는 백성의 사정을 봐주겠습니까? 아비멜렉이 나타나면 사람들은 공포에 떨었습니다. 감히 누가 그에게 대들 수 있겠습니까? 그저 돈을 바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노점상이 “어제 이미 냈습니다”라고 하면, 아비멜렉은 “다시 말해 봐라!” 하며 시장 바닥을 피로 물들였습니다. 그 악명에 질려 백성들은 벌벌 떨었고, 악이 기승을 부리자 온갖 건달들이 그에게 몰려들어 세력을 불렸습니다. 완전히 악의 소굴이 된 것입니다.
건축 자재 시장의 모래와 석탄 채굴권, 온갖 광산이 다 아비멜렉 가문의 손에 들어갔으니 돈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첫째 해도, 둘째 해도 그렇게 떵떵거리며 살았습니다. 그가 얼마나 많은 여인을 범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 자신뿐 아니라 부하들까지 온갖 악행을 저질러 이스라엘 전체가 흑암에 덮였습니다.
악행이 덜한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회개의 기회를 더 주시지만, 극악무도한 자에게는 그 날을 줄이십니다. 사람이 악을 행할 때 그 죄악이 차오르는 법인데, 아비멜렉은 단 3년 만에 죄악의 잔을 가득 채웠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수십 년에 걸쳐 죄악이 찼다면, 아비멜렉은 그 흉악함으로 인해 3년 만에 그 잔을 넘치게 채운 것입니다. 아비멜렉과 그의 부하들이 쏟아부은 악의 분량은 실로 엄청났습니다.
결국 3년이 지난 후, 하나님께서 악한 영을 보내사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 사이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응하지 않으실 줄 알았습니까? 하나님은 반드시 보응하십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결코 악을 행하지 마십시오.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처럼, 아비멜렉은 자신이 행한 악을 반드시 되돌려받게 된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요담은 한적한 곳에 숨어 때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요담은 참으로 대단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매일 저주를 선포했을 것입니다. “아비멜렉에게서 불이 나와 세겜 사람들을 사르고, 세겜 사람들에게서 불이 나와 아비멜렉을 사를 것이다.” 참으로 놀랍지 않습니까? 결국 세겜 사람들과 아비멜렉의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전에는 그렇게 결탁했던 자들이 어찌하여 원수가 되었을까요?
사람의 생각은 영적인 영역에 속해 있습니다. 왕의 마음도 하나님의 손에 있고, 백성의 생각 또한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세겜 사람들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우리가 왜 저 아비멜렉을 지지해야 하지? 쟤도 결국 기드온의 아들이잖아? 이름만 우리 이방인 이름을 따서 아비멜렉이라고 붙였지, 사실은 가짜 세겜 사람 아니야?’라고 깨닫게 된 것입니다. 3년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린 것입니다.
그때 갑자기 가알이라는 인물이 나타나고, 아비멜렉의 외가 쪽 사람으로 보이는 스불이라는 자도 등장합니다. 가알, 스불, 아비멜렉 세 세력이 얽히고설켜 세겜 땅은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서로 물고 뜯는 싸움이 벌어진 것입니다.
가알은 힘도 못 쓰고 아비멜렉에게 대패했고, 세겜 사람들도 처참하게 짓밟혔습니다. 아비멜렉에게서 나온 불이 세겜 사람들을 불사르고, 세겜 사람들에게서 나온 불이 아비멜렉을 불사르는 형국이었습니다. 아비멜렉은 기세등등하여 ‘일찍이 무예를 연마하길 잘했구나. 내 말을 안 듣는 놈들은 다 쓸어버리겠다’ 하며 성읍과 망대를 무너뜨렸습니다. 사람들이 망대로 도망치자, 아비멜렉은 산에 올라가 굵은 나무를 혼자 짊어지고 내려와 망대에 불을 질렀습니다. 그 괴력으로 수많은 사람을 태워 죽였습니다.
승리감에 도취된 아비멜렉이 다음 망대를 공격하려 할 때, 한 여인이 맷돌 위짝을 아비멜렉의 머리 위에 내던졌습니다. 그것은 미사일보다 더 정밀한 영적인 유도탄과 같았고, 아비멜렉의 두개골을 박살 냈습니다. GPS보다 더 정확하게 내리꽂혀 전쟁을 단숨에 끝내버렸습니다.
세상적인 자존심이 얼마나 질긴지, 아비멜렉은 세겜의 한 여인이 던진 맷돌에 맞아 죽게 되자 자기 무기를 든 청년에게 “네 칼을 빼어 나를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 악령이 연출한 한 편의 희극이지 않습니까? 결국 보응을 받았습니까? 받았습니다. 아비멜렉은 죽는 순간까지도 여자의 손에 죽었다는 오명을 남기기 싫어 부하의 손에 죽기를 택했습니다. 이 얼마나 허망한 광경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아비멜렉이 그의 아버지에게 행한 악행, 곧 형제 70명을 죽인 악을 갚으셨고, 세겜 사람들의 모든 악행 또한 그들의 머리에 갚으셨습니다. 여룹바알의 아들 요담의 저주가 그들에게 그대로 임한 것입니다. 무섭지 않습니까? 참으로 두려운 일입니다. 세겜에 있든, 아비멜렉의 집안에 있든, 누구라도 영적인 분별력을 가지고 하나님을 아는 자였다면 분명 보호를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참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5. 하나님을 경외하라, 하나님은 반드시 보응하신다
우리가 과거에 무엇을 심었든, 지금 하나님께로 돌이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 멸망의 길에서 건져내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십시오. 머릿속에 온통 세상적인 생각과 하나님께 합당하지 않은 도덕적 관념만을 가득 채우고 있다면, 생각할 필요도 없이 반드시 보응을 자초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배워야 하며, 함부로 입을 놀리거나 행동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보응하시는 날에는 아무도 그것을 되돌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