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Q1:老师,那对夫妻隐瞒财产,结果被说欺哄圣灵死了。我不理解啊?
这跟《士师记》没有关系,是关于《使徒行传》的。你为什么要理解这事儿呢?我问你,神会因为人奉献不够而击杀人吗?你觉得神是一个因为没有奉献就击杀人的神吗?我在《圣经》里头找不到这样的例子,我们的神应该不会这么做。那为什么当时彼得就这么做了呢?彼得在那处理完了就这样了吗?
我告诉你,灵界是很真实的。很多人都以为是圣灵干的,我觉得不是圣灵干的。因为在《圣经》里头没有这样的事儿。那因为献凡火,我问你彼得搞的这些奉献是不是献凡火啊?那是献凡火啊。我不觉得这是一个很伟大的事情,我倒觉得彼得做的事儿,好像有点问题。彼得,你为什么要敛财呢?大家要知道教会不能敛财啊。
那教会要干啥?教会要训练人。就因为奉献,就给他扣顶欺哄圣灵的帽子,他就突然间就死了。如果我们说这件事是神干的,那后来耶路撒冷教会在那混吃混喝是谁干的?整个耶路撒冷教会好像不太像是神导演的。怎么听起来好像是被魔鬼欺骗,人就胡整。我就觉得那是胡整,彼得是一个彻底的蛮干胡整啊。你要问我彼得怎么样?不怎么样。
那你这么说,你不怕将来见到彼得的面儿啊?我见到彼得的面儿,我觉着他应该不好意思,我不觉着我们应该不好意思。是不是啊?干的什么玩意儿啊?今天还有很多人效法彼得呢。
我可得告诉你啊,《彼得前书》《彼得后书》,我不觉得那是一个什么很伟大的书。为什么?因为他没有把教会建好,建了一个耶路撒冷教会。我们得说保罗这个人太伟大,我们得学。为什么得学保罗呢?因为保罗知道耶路撒冷教会的败坏,他也很想扭转这种败坏。很想祝福耶路撒冷教会,但是最后他在耶路撒冷被抓,被判刑。
我们觉得这是一个深深的功课。直到今天,教会追求人数就是个彼得。我后来给他起个小名叫得得,听着挺亲切,然后如果再发音,发得有点东北味叫嘚儿嘚儿,这得多嘚儿啊?看来这事儿没有一样是效法耶稣的呀,后来彼得死了,被人抓了,要钉十字架了,结果是我死了也得跟耶稣不一样,倒钉十字架,好像很伟大似的。我就感慨这个世代啊,我们真的要传承耶稣多一点,真的要传承保罗多一点,因为保罗效法的是耶稣。听明白了吗?很多人觉得倒钉十字架很伟大,多奇怪。
耶路撒冷教会干了很多不太上道的事儿,养了一群法利赛教门的基督徒。然后这些法利赛教门的基督徒,从耶路撒冷出来,就到了保罗所建立的那些外邦人教会里面,不断地在那释放败坏。这就是耶路撒冷教会,而且彼得带头这么干。到了保罗被兴起来的年间,彼得还喜欢装假,玩假的。
我们今天当中,如果我们做传道人,要特别小心不能玩装假这套东西,现在你能理解了吗?今天咱们弟兄姐妹,你如果不明白奉献的意义,千万别奉献,不要羞辱神。我保证神不会因为你的奉献,把你给击杀的。反倒是我们传道人在神面前,侍奉神的祭坛不能献凡火。
Q2:老师,神拣选的那三百人,他们的信心应该也来自对神一定的认识吧?
那是肯定的。这三百人,我告诉你,在那个年代,不但基甸在那考察偶像背后的灵,这三百人其实心里头都有对拜偶像的这种困惑。后来他们也都被神拣选,在那个世代成为与神同工的人。只不过他们没有成为这个基甸的刀。但是基甸的刀是什么呢?就是这三百人。基甸的刀就只有这三百人,所以我想这个三百人啊,是神所拣选的,神是监察人心的神。你心里装的是啥,你自己知道,神也知道。千万不能够玩假的,玩虚的。
我看到一些人在做传道人的时候,跟神玩假的,玩虚的。那我就心里头还是很难受的,这多危险啊。做一个传道人为什么整天讲大话空话呢?不能够落地的有什么用呢?
Q3:老师,可是《圣经》上明明就是这么记的呀,说是亵渎圣灵啊,《圣经》记错了吗?
你慢慢考察,《圣经》记的是彼得说那是圣灵。但是我们看到这个现象,你觉得那是圣灵还是个啥灵?所以彼得说的话,大家多画个问号,别傻乎乎的信《圣经》啊。《圣经》那还有耶罗波安说的呢?耶罗波安说的你要不要信呢?还有法利赛人说的呢?你要不要信呢?还有撒都该人说的,你要不要信呢?
我就觉得我们这些人脑袋是不是有问题?如果你这么说我真的想想对付你一把,你真的得调整一下你的脑袋。是《圣经》里头有问题呢,还是脑袋里有问题啊?我们真的得调整!
不是《圣经》里记的犹大自杀,你就可以效法自杀啊,那也是《圣经》里记的呀,还有一段肠子流的满地,我们不要僵化啊。那《雅各书》还记在《圣经》里,你要不要信呢?而《彼得前书》《彼得后书》你要不要信?还有《犹大书》你要不要信?所以我想我们里面要重新揣摩,《圣经》不过是记载了那个时候所发生的事儿。如果我们真正的认识神,你会发现圣灵不是说这样话的。听明白了吗?
今天我们有哪个人因为奉献被击杀,是不是啊?神怎么可能因为这个事来击杀人呢?我觉得如果神真这么干的话,那这个神好像有点问题啊。那我告诉你,彼得这么收奉献,本身就是一个很严重的问题。到现在很多基督徒被骗了,很多基督徒被骗到云南去建方舟去了。到云南建方舟听起来怪不怪啊?你要不要信呢?
他也是说他是那个地方的先知。有真先知,有假的先知啊,是吧?还有某个省的先知,啥都有。你要不要信呢?好好回到《圣经》里,做个聪明人。我今天就很感慨,大家不会分辨也不会学习,不知道是谁的心意。今天我跟大家讲,什么样的学说都有,乱呀。但我想华人命定神学巴不得弟兄姐妹能够学会认识神。
Q4:老师,都来分享神的荣耀,这句话从解经文看出来?
这个基甸打发人走遍以法莲山地,你们下来攻击米甸人,争先把守约旦河的渡口直到伯巴拉。于是以法莲的众人聚集,把守约旦河的渡口直到伯巴拉,捉住了米甸人的两个首领,一个叫俄立,一个叫西伊伯。将俄立杀在俄立磐石上,将西伊伯杀在西伊伯酒榨那里。又追赶米甸人,将俄立和西伊伯的首级,带过约旦河到基甸那里。
你看到没有?然后以色列人就从拿弗他利、亚设和玛拿西全地,聚集来追赶米甸人。我告诉你,这个事儿很有意思,当基甸打胜仗了,大家都赶过来了。如果基甸打败仗呢,大家肯定都不会赶过来,是不是?所以说你要看明白啊。
Q5:老师,今天去服侍一个小孩,他早就有了方言祷告,可是他妈妈还没有学会,这是因为悟性吗?他妈妈还天天听讲道,听《圣经》,还没有学会。
其实方言祷告是一个信心的操练,它不是悟性的操练。你比如说,那是谁在说?今天方言祷告的人没有说,突然间一个东西撬动你的嘴巴在那祷告,没有人知道。今天还有人活在这种状态里头吗?如果活在这种状态里头,是你不认识神。方言祷告是个信心的操练,但小孩的信心比大人的信心来得比较快。
其实人这一辈子有的时候学错东西太多了,要让他 redo undo,redo undo 这是啥呢?这是撤销重做的意思,是很难的啊。所以当人的脑子被训练错了以后,是很麻烦的。
Q6:可是彼得也行了那么多的神迹,不是也靠着圣灵吗?
这是什么脑子呢?我问你,靠着圣灵行了神迹,因为信的人必有神迹奇事随着,他所做的事就都对了?咱们大家说说看。我凭着信心,靠着圣灵,行了几个神迹,然后我说的话你就都要听啊?我就觉得这是一个很荒谬的学习方法。明显的不合理。
你要不要信一些神棍呢?他也行了神迹啊。行了神迹你要不要信他的?你要信他的话,那你就好好信啊。你要问我,我不信。像你这种人容易被骗。
Q7:老师,我以前认为《圣经》是无误的,是神的话语。来到这儿才听说《圣经》有很多的坑。那问题就来了,那我们还能相信《圣经》吗?或者说该相信哪些《圣经》?怎么分辨呢?
你的问题很有意思,这是个好问题。一定要记住《圣经》是一个完整的体系。可能你直到今天都没有这个完整体系的概念。我能理解,你对《圣经》的认识是支离破碎的。你对《圣经》里头所讲的东西,没有形成一个完整的体系。
在摩西年间,摩西说这律法书不能增加什么,也不能够删去什么。你有没有读到过?你要是没读到,不知道,你自己去查。到了老约翰年间,这福音不能删去什么,也不能够增加什么。那现在问题来了,摩西过了很多年,到了撒母耳年间,写了《撒母耳记》。那我问你,增加了还是删减了?
那后来又有了《马太福音》,《路加福音》,增加了还是删减了?增加了没有?删掉了没有?没有。我们的神从来是不改变的。我们的神是不改变的神,为什么?因为他们是在一个完整的体系里。听明白了吗?
如果不在这个体系里头有一些东西,我问你,那是啥?你以为在耶稣钉十字架三百年以后,有那么一群人,把这个书、那个书收到《圣经》里。天主教也整了一本《圣经》,基督教整了一本《圣经》。天主教的《圣经》和基督教的《圣经》其实不是完全一样的。那我问你:应该哪个是啊?
所以说我们今天学神的话,弟兄姐妹要知道,要认识神!在保罗年间,那个时候《新约》还没有成形。保罗所说的和你说的那个《圣经》,都是神所默示的那个《旧约》《圣经》。
如果说是后来的《彼得前书》《彼得后书》,我不知道保罗认为那是不是《圣经》,我不知道啊。你如果今天没有一个完整体系的概念,肯定会混乱。那怎么分辨?形成了一个完整的体系,一看就知道。
我告诉你,彼得说的话,犹大说的话,雅各说的话,很多都不是约书亚说的。那我问你,彼得也好,雅各也好,这些人还是推崇《旧约》的割礼,那你觉得怎么样?如果今天你相信那个的话,相信耶路撒冷教会说的那些事儿,可能你也得做割礼啊。怎么分辨?就这么分辨。
所以我想盲目的、僵化的、片面的,然后支离破碎的,没有体系的去读《圣经》,是很危险的呀。那是很危险的!保罗之后的三百年以后才收到《圣经》里,那是些什么人整的呀?我们今天真的要学习。
你比如说,如果你查《路加福音》,这有一个先知看到还是婴孩的耶稣,抱起了耶稣基督。说这孩子被立,要将人心里的隐情显露出来。要使许多人兴起,许多人跌倒,这孩子是跌人的磐石。你知道吗?如果你不知道耶稣说的话都跌人,是跌人的磐石啊。所以脑袋要转过弯来。
那早些年间我读这个《雅各书》,读了不知道多少遍呢,肯定上千遍啊。为啥?我很想把这事整明白,后来我发现不对,整不了。为什么整不了?因为他不在使徒保罗和耶稣基督这套体系里头。
那我可以说,像彼得啊,雅各啊,犹大啊,这些人,学习的时候应该是个学杂,上学不好好学习。所以说对神的认识是很奇怪的,是道听途说来的。所以这福音当人到了保罗年间,他写了《加拉太书》。所以人信错了福音是受咒诅的,人传错了福音也是受咒诅的。你说这不要了命了吗?
那为什么会信错呢?就是瞎整啊。我说这些话很多人不太喜欢,但是我还得说。华人命定神学是这么多年以后第一次把这个《圣经》里使徒保罗的神学体系,整理得这么清楚的。有的人不太喜欢,说怎么老讲华人命定神学?因为他是传承使徒保罗的神学体系。就这么分辨,千万别人云亦云啊,要小心。
所以《圣经》在《申命记》的年间,你们要学习敬畏神,你们要学习读神的话。你们去查一下《申命记》,学习这两个字,是一大堆的学习。人不学习神的话,怎么可能明白呢?可是法利赛人天天读《摩西五经》,从《创世记》到《申命记》,结果成了法利赛人,你不觉得奇怪吗?那你要不要跟着法利赛人去信耶稣?要不要跟着法利赛人信摩西呢?所以那个时候,耶稣说他们如果信摩西,怎么可能不信他呢?其实他们那些人读《圣经》也不相信。
我想咱们弟兄姐妹提了这些好的问题,我得谢谢大家。但是大家按照学习的功夫,早就应该可以做师父,但是学的东西还是一些宗教的属世界的东西。要调整啊!我们有多少这些属世界的东西,把这些基督徒们害惨了。有一些得癌症的,到死都不知道神是怎么一回事儿,很惨的。
那天我上到这个Facebook去看,好几个好友都去世了。心里头也有隐隐的悲哀,跟他们讲,讲不进去啊。今天开始抓住整个《圣经》的本质。你比如说《创世记》的第一章,那是讲神的创造吗?不是。那是讲人是照着神的形象造的,所以我们应该照着神的形象活。
今天的答疑就到这。愿神祝福大家!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사사기》 7장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이 장은 저에게 매우 깊은 영향을 준 말씀입니다. 초기 교회를 개척하던 시절, 저는 교회에 300명의 정병(精兵)이 있기를 마음속으로 바랐습니다. 그러다 나중에는 300명의 정병은 너무나 아득한 꿈이라는 것을 깨닫고, 120명의 기도하는 큰 용사로 목표를 바꿨습니다.
예수님께서 마가의 다락방에서 승천하신 후, 그곳에는 오직 120명만이 남아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무엇을 위해 기도했을까요? 성령의 임재를 구했습니다.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셨을 때, 120명의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곳에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드온과 300명의 큰 용사는 저에게 매우 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3만 명이 좋을까요, 아니면 300명이 좋을까요? 저는 300명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예전에 지역 교회에서 평범한 교인으로 그저 적당히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다 나름 직분도 맡아 소그룹 리더가 되어 사람들을 데리고 성경공부를 인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때 저는 매우 기이한 현상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교회는 사람이 많아지기를 몹시 바라지만, 제가 교회를 개척하면서 깨달은 것은 교인 수가 많은 것이 결코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왜 좋지 않을까요? 제가 섬기던 교회의 담임 목회자가 완전히 녹초가 되어 탈진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알을 낳는 사람은 없고 똥만 싸대는 사람만 수두룩한 형국이었습니다. 복건(푸젠) 말이나 대만 말, 민남어로 표현하면 정말 기가 막히게 와닿는 표현입니다.
제가 보기에 그 목회자님은, 아휴, 암에 걸린 교인이 한 명 생기면 병원으로 달려가야 했습니다. 그 암 환자가 아직 낫지도 않았는데, 또 다른 교인이 뇌경색에 걸려 또 병원으로 뛰어갑니다. 그러다 얼마 지나면 또 다른 일이 터져서, 아휴, 지칠 대로 지치고 넋이 나갈 지경이었습니다. 겨우 수습이 될 만하면 누군가 세상을 떠나서 장례식을 치르기 시작합니다. 세상에나! 저는 그 모습을 보면서 ‘정말 목회자는 못 해먹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 사람이 많은 것이 과연 좋은 일일까요? 좋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 온갖 사람들이 뒤섞여 있으면 정말 난장판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언제쯤 승리하는 교회를 세울 수 있을까? 언제쯤 기드온의 300명 정병을 일으킬 수 있을까?’ 저는 “하나님! 우리를 일으켜 세우셔서 이 세대 가운데 밝은 빛을 비추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이것이 당시 저의 간절한 소망이었습니다.
어느덧 세월이 이렇게 흘렀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교회 안에서는 네 살짜리 아이의 기도조차도 역사가 일어납니다. 저는 참으로 감회가 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만 명씩 모이는 대형 교회가 부럽지 않습니까?”라고 묻습니다. 저는 전혀 부럽지 않습니다. 저는 교인 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원수가 쳐들어왔을 때 그 원수를 쳐부술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승리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교인들에게 가장 큰 손실입니다.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은 굳은 결단을 내리고, 더 이상 두려워하지 말며, 승리하는 정병이 되어야 합니다.
이번 장의 주제는 “하나님께서 이 300명으로 너희를 구원하시며 미디안 사람을 너희 손에 넘겨주시리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하시는 것이 사람 수에 달려 있지 않음을 알아야 합니다. 혹시 모르고 계셨다면 지금 반드시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하시는 것은 사람 수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1. 하나님이 우리를 승리하게 하시는 것은 사람 수에 달린 것이 아니다
저는 일찍이 이 비밀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를 승리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다윗 시대에 다윗이 왜 군대의 인구 조사를 했는지 아십니까? 왜 그랬을까요? 그의 마음 깊은 곳에 승리는 군대의 무기 덕분이고, 군대의 장비 덕분이며, 잘 훈련된 군사들 덕분이라는 등 수많은 인간적인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다윗은 살아오면서 승리가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것을 줄곧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예전에 오합지졸 같은 사람들을 이끌고 사울을 피해 다니다가 전투를 치르러 간 적이 있었습니다. 길을 가던 중 지친 사람들이 생기자 그들을 쉬도록 남겨두고, 소수의 무리만 데리고 계속 싸우러 갔습니다. 결국 큰 승리를 거두고 전리품을 똑같이 나누었는데, 싸우러 나간 자나 나가지 않은 자나 모두 한 몫씩 나누어 가졌습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왜 그랬을까요? 다윗은 승리가 우리가 나가서 싸웠기 때문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싸우러 나간 것 자체가 은혜이며, 결코 자랑할 만한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승리하게 하셨고, 하나님께서 원수를 우리 손에 넘겨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눈에는 흔히 사람의 수로 자랑하려 하지만,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은 절대로 교회의 숫자를 바라보지 마십시오. 난장판 같은 교회는 숫자가 아무리 많아도 큰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는 실제로 싸울 수 있는 자라야 인정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숫자로 자랑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사람들이 하나 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기드온을 따르는 자들이 일어났을 때, 단번에 3만 2천 명이 몰려왔습니다. 여러분이라면 기분이 어떠셨겠습니까? 아마도 “와, 부흥했다!”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부흥한 느낌이 듭니까? 듭니다. 그런데 정말 부흥한 것일까요? 제가 보기엔 좀 골치 아픕니다. 알을 낳는 자는 없고 똥만 싸대는 무리가 가득한데, 그 3만 2천 명이 과연 좋겠습니까? 군량미 대는 것만 해도 여간 골칫거리가 아닐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이 관점을 바꾸어야 합니다. 절대로 숫자로 자랑하지 말고, 교회를 세우려면 정병의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은 사람이 결코 자랑할 수 없게 하시는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서도 계속해서 빚어지고, 끊임없이 일어나는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끊임없이 빚어가기를 원하십니다.
결국 하나님은 3만 2천 명을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기드온은 ‘세상에! 3만 2천 명이나 있는데 이기지 못하겠는가?’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미디안이 몰고 온 10만 대군에 비하면 3만 2천 명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택도 없는 숫자였습니다. 더군다나 이 3만 2천 명 중 2만 2천 명은 두려워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 2만 2천 명은 다들 가니까 “나만 안 가면 민망하니 그냥 가자” 하고 따라나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백성이 너무 많다.”
이 2만 2천 명은 절대로 데리고 싸우러 가면 안 됩니다. 왜일까요? 그들을 데리고 싸움터에 나갔다가는, 진격하자마자 뒤돌아서 도망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3만 2천 명이 돌격하는데 그중 2만 2천 명이 뒤돌아 도망치면, 남은 1만 명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남은 1만 명도 끝장나는 것입니다. 똑같이 뒤돌아 도망치게 됩니다. 그러면 기드온의 300명만 남겨져 끝장나고, 10만 대군이 몰려와 침만 뱉어도 익사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움이 있는 자들을 데려가서는 안 됩니다! 우리 가운데 아직 두려움이 있는 분이 있다면 바꾸셔야 합니다. 두려움은 귀신을 불러들이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조정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저는 태어날 때부터 겁이 많았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담대한 사람이 되기를 선택하십시오.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하면 하나님의 정병이 될 수 없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귀신을 불러들이는 것 외에는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자신을 새롭게 인식해야 합니다. 아직도 시체를 무서워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저는 참 이상합니다. 살아있는 사람도 안 무서운데 죽은 사람이 뭐가 무섭습니까? 아주 해괴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은 바로 이 300명으로 10만 명을 쓰러뜨리는 것인데, 두려워하는 자는 아무런 쓸모가 없을 뿐만 아니라 부작용만 낳습니다. 결국 1만 명이 남았을 때 하나님은 또 말씀하셨습니다. “백성이 아직도 너무 많다.” 기드온은 그때 멍해졌습니다. ‘10만 명인데! 우리가 1만 명을 가지고 10만 명과 싸우는 게 가능할까? 저들은 잘 훈련된 미디안 대군인데, 고작 우리 1만 명으로 되겠는가?’ 그런데도 하나님은 “백성이 아직도 너무 많다”고 하셨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은 300명을 택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친히 택하신 자들입니다. 이 300명은 실로 대단했습니다. 그들 중 아무도 “이봐, 유언장은 써 뒀어? 이번에 나가면 우리는 다 죽을 텐데, 집안일은 잘 정리해 뒀나?”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장담하건대 그런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하실 사람들은 모두 큰 믿음을 가진 자들입니다. 교회를 세울 때 하나가 되어야 하는데, 바로 믿음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이 300명은 기드온이 명하는 대로 그대로 행했습니다.
2. 이 300명은 모두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이다
여호와께서 또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아직도 많으니 그들을 인도하여 물 가로 내려가라 거기서 내가 너를 위하여 그들을 시험하리라 내가 누구를 가리켜 네게 이르기를 이 사람이 너와 함께 가리라 하면 그는 너와 함께 갈 것이요 내가 누구를 가리켜 네게 이르기를 이 사람은 너와 함께 가지 말 것이니라 하면 그는 가지 말 것이니라 하신지라 이에 백성을 인도하여 물 가에 내려가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개가 핥는 것 같이 혀로 물을 핥는 자들을 너는 따로 세우고 누구든지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들도 그와 같이 하라 하시더니 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는 자의 수는 삼백 명이요 그 외의 백성은 다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신지라 (사사기 7:4-6)
이렇게 나누어 놓으니 이쪽은 9,700명이고 저쪽은 300명이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9,700명이 훨씬 많아 보입니다. 9,700명이 까맣게 모여 있지만, 이쪽의 300명에 비할 바가 못 됩니다. 사실 사람이 물을 어떻게 마시는지가 왜 중요할까요? 왜 그렇게 물을 마시게 했는지 제게 물으신다면, 저도 잘 모르고 설명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물 마시는 방식으로 사람을 택하셨는데, 이렇게 손으로 물을 움켜쥐고 마시는 방식은 이후 역사에서 다시 나타난 적이 없습니다.
《사사기》 이후로는 이런 방식으로 사람을 택한 적이 결코 없습니다. 사실 이 300명도 자신들이 왜 손으로 물을 움켜쥐고 핥아 마셨는지 알지 못했지만, 그냥 그렇게 행동했습니다. 왜일까요? 하나님께서 그들을 택하려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마신 다른 사람들은, 무릎 꿇고 어떻게 마셨는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굳이 이해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택이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우리는 그것을 연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성경에서 야곱이 나뭇껍질과 나뭇가지를 벗겨 세워놓고 교배시켜 얼룩덜룩하고 줄무늬 있는 양을 낳게 한 일이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지금 다시 따라 해 본들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 방식은 오직 한 번만 나타났을 뿐입니다.
그때 기드온도 조금 얼떨떨하지 않았을까요? 기드온은 속으로 ‘하나님, 착오가 있으신 것 아닙니까? 고작 300명이라고요?’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기드온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300명이라고 하셨다면, 이 300명이 10만 대군보다 분명히 더 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숫자를 추구하는 것은 매우 허망한 일입니다. 베드로 시대에도 이러한 상황이 나타났는데, 이 일은 잠시 후에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300명으로 어떻게 10만 대군을 상대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300명 모두가 믿었고, 또한 이 300명의 마음속에는 아주 특별한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우리 겨우 300명뿐인데 유언장은 써 뒀어? 10만 대군이 침만 뱉어도 우리를 익사시키겠다. 너 수영할 줄 알아? 침 속에서 헤엄칠 수 있겠어? 집안 식구들에게 뒷일은 다 부탁해 뒀어?” 같은 소리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위챗도 없고 전화도 없던 시절입니다.
이 300명은 그런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하나님께 택함을 받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기드온을 따르며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여!”라고 외치며, 하나님께 택함을 받았다는 사실을 크나큰 영광으로 여겼습니다. 마치 우리 가운데 있는 형제자매들이 “나는 승리하는 교회에 있습니다. 나는 화인명정신학(华人命定神学) 안에 있습니다”라고 간증하는 것과 같습니다. 승리하는 교회 안에 있다는 것은 그들에게 큰 자부심입니다!
만약 이 정도의 대가조차 치를 수 없다면 어찌 정병이라 부를 수 있겠습니까? 그 대가는 죽음조차 개의치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 같은 자를 택하시고, 나를 사용하셔서 하나님과 동역하게 하시다니!’ 이전 세대에도 없었고 앞으로 올 세대에도 없을 이 큰일에, 바로 이 세대 가운데 나를 택하셨다는 것은 참으로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3만 2천 명이 시험을 치러 겨우 300명이 합격한 셈이니, 백여 명 중에서 한 명을 뽑은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제가 지금까지 사역해 온 과정에서도 정말 백 명 중에 겨우 몇 명을 뽑아내는 식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세대 가운데 하나님께 택함을 받고 쓰임 받는 자들입니다. 여러분은 죽지 않습니다! 죽으려 해도 쉽게 죽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하시기 때문이며, 죽는 것은 원수들이기 때문입니다.
그 300명이 당시에 느꼈던 감정은 마치 칭화대나 베이징대에 합격했을 때의 기분과 같았을 것입니다. 9,700명이 보기에 “어떻게 된 거지? 우리가 그렇게 물을 마셨다고 저들은 뽑히고 우리는 탈락했단 말인가?” 하고 그들도 몹시 끼어들고 싶었겠지만,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교회를 세우는 방식도 일종의 ‘희소성 전략’을 만들어낸 셈입니다. 여러분이 우리 가운데 올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큰 영광입니다. 우리의 훈련 과정을 통과하고 우리 교회에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떤 분은 “강사님, 화인명정신학 안에 있으니 하루하루가 정말 알찹니다”라고 말합니다. 제가 그 말을 들으니 속뜻이 느껴졌습니다. ‘아휴! 매일 공부하느라 끊임없이 성장하고 있구나.’
우리 가운데서는 대충 얼렁뚱땅 넘어갈 수가 없습니다. 오랫동안 과제를 제출하지 않는다면 포기하십시오! 과제조차 낼 수 없다면 안 됩니다. 우리 가운데 아직도 노트 필기를 못 하는 분은 없겠지요? 만약 여전히 필기도 하지 않고 여기서 적당히 때우려는 사람이 있다면 곤란합니다. 우리는 성경공부, 주일 예배, 기도회, ‘자기주도 학습’ 과정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세상에나! 여기서 공부하는 것은 대학교에 다니는 것보다 더 치열합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이었고, 이 300명 역시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어떤 분은 음성을 텍스트로 변환하는 사역에 푹 빠졌었는데, 이제 인공지능이 나와서 음성 변환 사역이 별로 필요 없게 되자 약간 아쉬워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교회는 참으로 놀라운 교회입니다. 최근에 제 동역자들이 우리 공식 홈페이지를 개편하여, 점차 학습 중심의 시스템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자료를 더 잘 수집하고 제대로 공부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함이며, 앞으로 여러분의 학습과 성장을 돕기 위한 더 많은 자료들이 제공될 것입니다.
3. 하나님이 기드온에게 미디안 진영으로 내려가 보라고 명하시다
하나님께서 이 300명을 택하셨을 때, 그들은 자부심은 있었지만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어?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 300명으로 저 10만 명을 물리치게 하실까? 10만 개의 장작을 팬다고 해도 이 300명으로는 감당하기 힘들 텐데, 어떻게 패야 하지? 10만을 300으로 나누면 한 사람당 몇 개를 패야 하나? 그것만 해도 장작더미가 엄청날 텐데, 아휴, 피로에 지쳐 쓰러지지 않겠는가?’
이 300명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도무지 답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승리하게 하실까? 저 10만 명을 칼로 일일이 목을 베어야 하나? 하지만 칼을 휘두르면 상대방이 피할 텐데, 열 번을 내리쳐도 한 번 맞출까 말까 아닌가?’ 이 300명은 ‘이 싸움을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라며 어리둥절했을 것입니다.
그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진영으로 내려가라 내가 그것을 네 손에 넘겨 주었느니라 (사사기 7:9)
기드온은 ‘갔다가 못 돌아오면 어쩌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여호와 하나님께서 흥미로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만일 네가 내려가기를 두려워하거든 네 부하 부라와 함께 그 진영으로 내려가서 그들이 하는 말을 들으라 그 후에 네 손이 강하여져서 그 진영으로 내려가리라 하시니 기드온이 이에 그의 부하 부라와 함께 군대가 있는 진영 근처로 내려간즉 (사사기 7:10-11)
기드온이 부라에게 “너 나랑 같이 갈래?”라고 묻자, 부라는 “상황을 좀 보고요”라고 답했습니다. 기드온이 “뭘 본단 말이냐?”라고 하니, 부라는 “아휴, 우리 둘이 가는 건 좀 무리인 것 같은데요”라고 했습니다. 이때 기드온은 온몸에 전기가 통하듯 찌릿찌릿 저렸고 두 다리가 후들거렸으며, 부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기드온은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미디안 진영으로 내려가 보라고 하셨지.’ 얼마나 갈등이 되었겠습니까! 변장을 하고 미디안 사람들의 옷을 챙겨 입은 뒤 몰래 숨어 들어갔습니다. 세상에, 이번에는 담대해졌습니다. 하나님은 미디안 사람들의 꿈 하나를 통해 그들을 완전히 무너뜨리셨습니다.
기드온이 어느 장막 근처로 다가가 귀를 기울였습니다. 한 장막이었는지 여러 장막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많은 장막에서 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을 것입니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만일 네가 내려가기를 두려워하거든 네 부하 부라와 함께 그 진영으로 내려가서 그들이 하는 말을 들으라 그 후에 네 손이 강하여져서 그 진영으로 내려가리라 하시니 기드온이 이에 그의 부하 부라와 함께 군대가 있는 진영 근처로 내려간즉 (사사기 7:10-11)
기드온이 부라를 데리고 내려갔습니다. 처음에는 온몸이 덜덜 떨렸습니다. 기드온이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거짓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네가 두려워하거든 부하 부라를 데리고 가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곳에 가보니 다음과 같았습니다.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의 모든 사람들이 골짜기에 누웠는데 메뚜기의 많은 수와 같고 그들의 낙타의 수가 많아 해변의 모래가 많음 같은지라 (사사기 7:12)
끝없이 펼쳐진 광경에는 10만 대군이 가득했습니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한 사람이 야영지에서 10제곱미터를 차지한다고 해도 어마어마한 면적입니다. 기드온이 장막에 가까이 다가갔을 때 그들이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기드온이 그 곳에 이른즉 어떤 사람이 그의 친구에게 꿈을 말하여 이르기를 보라 내가 한 꿈을 꾸었는데 꿈에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영으로 굴러 들어와 한 장막에 이르러 그것을 쳐서 무너뜨려 위쪽으로 엎으니 그 장막이 쓰러지더라 (사사기 7:13)
보리떡과 기드온의 칼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사람은 원래 엉뚱한 소리를 잘합니다. 왜 엉뚱한 소리를 할까요? 꿈을 꾸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중에도 뒤숭숭한 꿈을 꾸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사실 저도 엉뚱한 꿈을 자주 꿉니다. 어젯밤에도 꿈 때문에 너무 피곤했는데, 차를 주차해 두고 아무리 찾아도 찾지 못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 거대한 주차장에서 계속 헤매다가 꿈에서 깼습니다. 다행히 저는 꿈 해몽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이런 헛된 생각과 허황된 꿈은 쓰레기처럼 내다 버립니다.
그런데 이 미디안 사람은 보리떡 한 덩어리, 마치 인도 사람들의 로티 프라타(Roti Prata) 같은 떡을 꿈에서 본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기드온의 칼이 될 수 있단 말입니까? 기드온이 들으면서 속으로 ‘이 사람들 머리가 어떻게 됐나? 무슨 보리떡이 진영으로 굴러 들어온단 말인가? 보리떡이 굴러 들어오면 얼른 집어먹어야지. 차라리 바위가 굴러 들어왔다고 하면 모를까’ 하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의 친구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의 칼이라 하나님이 미디안과 그 모든 군대를 그의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하더라 (사사기 7:14)
성경에는 기드온이 다른 장막으로 옮겨 다니며 살펴보았다는 말은 없지만, 아마 미디안 진영의 모든 장막마다 “나도 꿈을 꿨어, 너도 꿈을 꿨어?” 하며 모두가 보리떡 꿈에 대해 기이하게 이야기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꿈 하나를 통해 이 군사들의 마음을 완전히 녹여버리셨습니다. 하나님은 실로 대단하십니다! 사람이 많다고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결국 기드온은 승리의 암호를 얻었는데, 그것은 바로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었습니다. 기드온이 그곳에서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여!”라고 외쳤을 때, 원수들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원수들은 “세상에, 정말 기드온의 칼이다!”라며 어찌할 바를 몰라 넋이 나갔을 것입니다. 사람이 많아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사람이 많으면 혼란만 가중될 뿐입니다.
하나님은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라는 암호를 지으시고, 그것을 보리떡으로 나타내셨으니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법을 배우고, 여호와의 목전에서 정직하게 행하는 법을 배우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승리하게 하시고 상황을 반전시키시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핵심적인 문제는 우리가 늘 믿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자주 원수에게 사로잡히고, 하나님의 목전에서 정직하게 행하지 않으며, 도리어 하나님의 눈에 악한 일을 행합니다.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것은 두려워하고, 정작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두려워할 줄 모릅니다. 제 말을 이해하시겠습니까? 우리가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십시오.
하나님의 명령대로 미디안 진영을 살펴보고 온 기드온은 미디안 군대보다 훨씬 큰 담력을 얻었습니다. 세상에, 정말 대단했습니다! 기드온은 믿음이 충만해져 돌아와 300명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미디안 진영에 다녀왔는데, 적들의 장막마다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에 대한 소문이 파다하다. 일어나라! 여호와께서 이미 원수들을 우리 손에 넘겨주셨다!”
4. 일어나라, 여호와께서 원수를 우리 손에 넘겨주셨다
만약 기드온이 돌아와서 300명에게 “세상에, 낙타가 셀 수 없이 많고, 미디안 군대는 해변의 모래알처럼 많다”라고 말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 300명은 완전히 끝장났을 것입니다! 기드온과 부라가 돌아와서 그런 불신앙의 말을 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을 즉시 쳐서 죽이셨을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전례가 있는 일입니다. 손으로 물을 떠 마시는 방식은 전례가 없었을지 몰라도, 악평을 전하고 하나님을 불신앙한 자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수많은 전례가 있습니다. 가나안 땅을 탐지했던 열두 정탐꾼 중 불신앙했던 자들이 다 그렇게 죽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기드온은 돌아와서 “여러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이미 원수를 우리 손에 넘겨주셨습니다”라고 선포했습니다. 300명으로 10만 명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300명만의 싸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군대가 이미 우리 앞서 싸우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이러한 영적인 통찰력이 있다면 대단한 사람이 될 것이며, 영적인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영적인 시각이 없다면 그 열두 정탐꾼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기드온이 그 꿈과 해몽하는 말을 듣고 경배하며 이스라엘 진영으로 돌아와 이르되 일어나라 여호와께서 미디안과 그 모든 군대를 너희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하고 삼백 명을 세 대로 나누어 각 손에 나팔과 빈 항아리를 들리고 항아리 안에는 횃불을 감추게 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만 보고 내가 하는 대로 하되 내가 그 진영 근가에 이르러서 내가 하는 대로 너희도 그리하여 나와 나를 따르는 자가 다 나팔을 불거든 너희도 모든 진영 주위에서 나팔을 불며 이르기를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 하라 하니라 (사사기 7:15-18)
이것은 마치 ‘열려라 참깨’와 같습니다. 승리에는 비밀번호가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라는 이 한마디 말씀만을 주셨습니다. 그 결과 300명이 이곳저곳 구석구석에서 손에 든 항아리를 깨뜨리고, 세 무리가 일제히 나팔을 불며 횃불을 흔들고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여!”라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칠흑같이 어두운 밤중에 진영 안의 적들은 누가 아군이고 누가 적군인지 분간하지 못한 채 자기들끼리 칼로 쳐 죽이기 시작했습니다.
이 300명의 정병은 직접 싸우지도 않고 그저 횃불과 나팔을 든 채 그곳에서 외치고 불기만 했습니다. 하나님은 실로 위대하십니다! 10만 명, 10만 톤의 나무를 장작 패듯 하려면 한 사람당 330명을 베어야 합니다. 한 사람의 목을 베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300명의 목을 베는 것은 결코 장난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습니다. 미디안 군사들이 자기들끼리 칼부림을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원수들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난투극을 벌이며 얼마나 오랫동안 서로를 죽였는지 모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제 생각에 하나님께서 이 300명을 뽑으실 때 테너나 소프라노 같은 목소리가 아주 좋은 사람들로만 뽑으신 것 같습니다. 밤새도록 소리를 질러도 끄떡없을 정도로 성량이 대단했던 것입니다. 기드온은 원수들이 서로를 칼로 쳐 죽이다가 도망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왜 도망치는지도 모른 채 달아났습니다.
적들이 소리 지르는 자들이 고작 300명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까요? 그들은 300명뿐이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습니다. 단지 300명이 각자 나팔 하나와 횃불 하나를 쥐고 크게 나팔을 불며 소리를 질렀을 뿐인데, 적들은 고작 300명인 줄 몰랐던 것입니다. 저는 속으로 ‘이것이 도대체 무슨 논리인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모두가 한 꿈을 꾸었고, 그 결과 이런 엄청난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사람이 많은 것은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꿈 하나를 통해 적들을 자멸하게 만드셨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참으로 놀랍습니다. 여호와께서 원수들을 우리 손에 넘겨주셨습니다.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일어나야 하며, 절대로 나태하고 안일한 사람으로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배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배우고, 성경을 통해 배우며, 여호와를 아는 지식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을 알아야 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능력이 우리 몸에 나타나야 합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원수들은 모두 우리 발아래 짓밟힐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절대로 육신에 속한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육신에 속한 사람은 귀신을 불러들입니다! 저는 우리 형제자매 모두가 하나님 안에서 새롭게 변화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여러분 중에 빚을 졌거나, 실직했거나, 여러 가지 문제로 곤경에 처한 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모든 문제의 근원은 단 하나, 하나님을 경외할 줄 모르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상황을 반전시키시는 것은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그 믿음이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우리가 이 세대 가운데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이 될 수 있는가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용하고자 하신다면, 그것은 일생일대의 천재일우의 기회입니다.
우리 교회가 어떻게 지금까지 올 수 있었을까요? 죽기를 두려워하고 육신의 안일함을 좇는 목회자는 형제자매들을 승리로 이끌 수 없습니다. 저는 기드온이 참으로 부럽습니다. 우리 교회에 있는 기드온 형제가 아니라 성경에 나오는 기드온 말입니다. 우리 가운데도 기드온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여러 명 있어서, 나중에는 구분하기 위해 다른 글자를 붙여야 할 정도였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참으로 훌륭하신 분입니다! 우리 가운데 수많은 기드온을 일으키실 것입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죽으려 해도 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안의 믿음을 다시 추스르고 하나님께 쓰임 받기를 갈망하며, 하나님께 택함 받기를 갈망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시험하시는 기회가 올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 여러분을 시험하실지는 모르지만, 여러분이 하나님께 택함 받은 자인지 확인하시고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는 결코 쉽게 죽지 않습니다. 우리 안의 세상적인 논리 체계를 제거하고, 육신을 위하는 모든 것들을 씻어내기 시작하십시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반드시 하나님께 쓰임 받기를 갈망해야 합니다. 그것이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만약 여러분과 제가 그 300명 중에 속하여 미디안 진영의 사방을 둘러싸고, 온 진영 주위에서 나팔을 불고 횃불을 흔들며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여! 여호와와 명정신학(命定神学)이여!”라고 외친다면, 얼마나 통쾌하고 위대하며 흥분되는 일이겠습니까! 이 세대 가운데 우리 형제자매들은 모두 하나님의 기이한 역사를 보게 될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이 우리 가운데 나타날 것입니다. 어떤 귀신이라도 우리 발아래 짓밟힐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5. 모두가 하나님의 승리를 함께 나누다
3만 2천 명 중 겨우 300명만 남았을 때, 기드온은 나머지 사람들을 보내며 “이 온 지역을 두루 다니며 모든 길목을 지키라”고 명했습니다. 알고 보니 이들도 원래는 겁쟁이들이었지만, 기드온이 승리하는 것을 보고는 “나도 하나님의 역사를 보았으니, 나도 하나님의 승리에 동참하겠다”며 달려들었습니다. 그러자 모두가 용맹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한 동역자가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강사님, 어떤 사람들은 우리를 무시하지만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그들은 늘 다른 사람들이 더 대단하다고 생각하니까요.” 제가 “왜 그럴까?”라고 물으니, 그가 말했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점점 더 승리하고 더욱 강력해지면, 그들도 결국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승리에 동참하게 될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저 역시 큰 힘을 얻었습니다.
이 세대 가운데 승리하는 정병의 교회가 반드시 일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우리로 인해 도전을 받고 격려를 얻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갈대와 같아서 바람이 강하게 부는 쪽으로 기울어지고 넘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이 담장에 걸터앉아 눈치만 보고 있습니다. 사실 수년 전부터 저는 “우리가 새로운 세대의 기독교 변혁을 가져올 것”이라고 선포했습니다.
오래 살아본 사람들은 “그게 그렇게 대단한 일인가?”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화인명정신학은 얼굴도 없고, 유명세도 없으며, 유명한 스타 목회자도 없고, 마르틴 루터 같은 인물도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가져올 영향력은 역사상 역대 기독교의 변혁을 훨씬 뛰어넘을 것입니다. 저는 기독교 역사를 꽤 깊이 연구해 왔는데, 교회의 역사는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 아주사 거리(Azusa Street)에서 갑자기 큰 부흥이 일어나 모두가 주님을 믿게 되었고, 1904년 영국 웨일스에서도 갑자기 수많은 사람이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참으로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연구를 거듭할수록 그것이 온전한 것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것만이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 세대에 세운 교회들은 이후 수백 년 동안 세워진 교회들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러나 미국 아주사 거리나 영국 웨일스의 부흥 같은 것들은 어느 순간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습니다. 마치 순식간에 찾아왔다가 언제 사라졌는지 모르는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는 일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일시적인 부흥을 좇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기초를 견고히 세우며, 형제자매들을 사도 바울의 형상과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은 사람으로 빚어내는 것을 추구합니다. 그때가 되면 수많은 사람이 우리와 함께하게 될 것입니다. 마치 기드온의 300명 정병이 승리한 소식이 온 땅에 퍼졌을 때 모든 사람이 나아와 기드온이 가져온 승리를 함께 누렸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승리하게 하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챌 수 있는가?”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었던 것처럼, 기드온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챈 것이 아니라 기드온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낸 것입니다. 우리 화인명정신학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영광을 얻는 것이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우리가 오래 살다 보면 반드시 그 세대가 도래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아멘! 우리는 더 많은 사람이 우리와 함께 이 승리를 누리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6. 교회를 세우는 것도 이와 같다
우리는 험난한 길을 걸어왔으며, 교회를 세우는 일도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원수를 우리 손에 넘겨주셨습니다. 공중의 권세 잡은 자든, 통치자들과 권세자들이든, 이 어둠의 세상을 주관하는 흑암의 세력이든, 모두 우리 발아래 놓이게 될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택하셨을 때, 베드로는 예수님을 온전히 본받지 못했습니다. 왜 예수님을 본받지 못했을까요? 갑자기 3천 명, 5천 명이 몰려오자 그는 너무나 기뻐 어쩔 줄 몰랐습니다. 그 후 베드로가 한 일이 무엇입니까? 사람들에게 가산을 다 팔게 하고 아주 기이한 방식의 교회 공동체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제가 묵상해 보니 그것은 난장판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베드로가 한 일이 무엇입니까? 모두가 공짜로 먹고마시다 보니 결국 배급 문제로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이런 상태로 어떻게 영적 전쟁을 치를 수 있겠습니까? 베드로는 구제와 배급을 맡으러 갔지만, 그 일조차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교회를 세울 때 일시적인 붐이나 센세이션을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웨일스의 부흥이나 아주사 거리의 부흥 같은 일시적인 현상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원했던 것은 견고하게 기초를 다져 승리하는 교회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본보기입니까!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절대로 베드로가 했던 방식을 사모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참으로 알은 낳지 못하면서 똥만 싸대는 형국입니다. 그런 교회가 어찌 흥왕할 수 있겠습니까?
이후 하나님은 예루살렘 교회를 치셔서 흩으셨고, 사도 바울의 시대를 여셨습니다. 그 시대에 베드로는 쓸쓸히 무대 뒤로 물러났고, 바울이 교회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습니다. 화인명정신학의 핵심 이념은 바로 바울의 신학입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이 미신 같은 착각 속에 살고 있습니다. 어떤 목회자는 “내가 설교할 때 왜 이렇게 능력이 나타나는지 아십니까? 뒤에서 300명이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합니다. 300명이 기도해 주어야만 능력이 나타난다는 말입니까? 저는 성경에서 그런 전례를 찾을 수 없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절대로 이런 착각에 빠지지 마십시오. 어떤 사람들은 더 많은 사람이 기도하거나 온 교회가 함께 기도해야만 무언가 변화가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를 위한 기도입니까? 스스로를 돌보지 못하는 장애를 가진 아이를 위한 기도 같은 것입니다. 더 많은 사람이 기도하면 능력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여전히 그런 상태에 머물러 있다면 그것이 정말 맞는 말이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천군만마를 이끌고 다니시는 것을 보셨습니까? 예수님은 천군만마를 이끌지 않으셨고, 홀로 모든 것을 해결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오병이어로 5천 명을 먹이셨지만, 그 사람들은 그저 얻어먹고 즐기려고 모여든 무리에 불과했습니다.
나중에 예수님은 그렇게 무리 지어 몰려드는 사람들을 달가워하지 않으시고 다 돌려보내셨습니다. 다 먹었으면 그만하고 집으로 돌아가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더 이상 그런 헛된 것을 추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각 사람이 예수님을 닮고, 각 사람이 사도 바울을 닮아,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끊임없이 성장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아멘!
숫자에 대한 맹신은 매우 무서운 미혹입니다. 많은 교회가 중보기도 팀을 세우는데, 그들이 무엇을 기도합니까? “하나님, 우리 목사님을 변화시켜 주옵소서”라며 기도합니다. 마치 주술이나 무속 행위를 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은 성경적 근거가 없는 이러한 맹신과 착각에서 반드시 벗어나야 합니다! 교회를 세우려면 하나님께서 택하신 교회를 세워야 하며, 하나님께서 친히 그분의 교회를 세우실 때 그분의 영광이 교회 가운데 충만히 나타날 것입니다. 아멘!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