命定神学
推荐评论
命定神学 关闭
【성경공부】사사기 7장 - 하나님께서 이 삼백 명으로 너희를 구원하시며 미디안을 너희 손에 넘겨주시리라

2024-12-11 6,089 士师记

相关经文

士师记07章-基甸击败米甸人
  • 1 耶路·巴力就是基甸,他和一切跟随的人早晨起来,在哈律泉旁安营。米甸营在他们北边的平原,靠近摩利冈。
  • 2 耶和华对基甸说:“跟随你的人过多,我不能将米甸人交在他们手中,免得以色列人向我夸大,说:‘是我们自己的手救了我们。’
  • 3 现在你要向这些人宣告说:‘凡惧怕胆怯的,可以离开基列山回去。’”于是有二万二千人回去,只剩下一万。
  • 4 耶和华对基甸说:“人还是过多;你要带他们下到水旁,我好在那里为你试试他们。我指点谁说:‘这人可以同你去’,他就可以同你去;我指点谁说:‘这人不可同你去’,他就不可同你去。”
  • 5 基甸就带他们下到水旁。耶和华对基甸说:“凡用舌头舔水,像狗舔的,要使他单站在一处;凡跪下喝水的,也要使他单站在一处。”
  • 6 于是用手捧着舔水的有三百人,其余的都跪下喝水。
  • 7 耶和华对基甸说:“我要用这舔水的三百人拯救你们,将米甸人交在你手中;其余的人都可以各归各处去。”
  • 8 这三百人就带着食物和角;其余的以色列人,基甸都打发他们各归各的帐棚,只留下这三百人。米甸营在他下边的平原里。
  • 9 当那夜,耶和华吩咐基甸说:“起来,下到米甸营里去,因我已将他们交在你手中。
  • 10 倘若你怕下去,就带你的仆人普拉下到那营里去。
  • 11 你必听见他们所说的,然后你就有胆量下去攻营。”于是基甸带着仆人普拉下到营旁。
  • 12 米甸人、亚玛力人,和一切东方人都布散在平原,如同蝗虫那样多。他们的骆驼无数,多如海边的沙。
  • 13 基甸到了,就听见一人将梦告诉同伴说:“我做了一梦,梦见一个大麦饼滚入米甸营中,到了帐幕,将帐幕撞倒,帐幕就翻转倾覆了。”
  • 14 那同伴说:“这不是别的,乃是以色列人约阿施的儿子基甸的刀; 神已将米甸和全军都交在他的手中。”
  • 15 基甸听见这梦和梦的讲解,就敬拜 神,回到以色列营中,说:“起来吧!耶和华已将米甸的军队交在你们手中了。”
  • 16 于是基甸将三百人分作三队,把角和空瓶交在各人手里(瓶内都藏着火把),
  • 17 吩咐他们说:“你们要看我行事:我到了营的旁边怎样行,你们也要怎样行。
  • 18 我和一切跟随我的人吹角的时候,你们也要在营的四围吹角,喊叫说:‘耶和华和基甸的刀!’”
  • 19 基甸和跟随他的一百人,在三更之初才换更的时候,来到营旁,就吹角,打破手中的瓶。
  • 20 三队的人就都吹角,打破瓶子,左手拿着火把,右手拿着角,喊叫说:“耶和华和基甸的刀!”
  • 21 他们在营的四围各站各的地方;全营的人都乱窜。三百人呐喊,使他们逃跑。
  • 22 三百人就吹角,耶和华使全营的人用刀互相击杀,逃到西利拉的伯·哈示他,直逃到靠近他巴的亚伯·米何拉。
  • 23 以色列人就从拿弗他利、亚设,和玛拿西全地聚集来追赶米甸人。
  • 24 基甸打发人走遍以法莲山地,说:“你们下来攻击米甸人,争先把守约旦河的渡口,直到伯·巴拉。”于是以法莲的众人聚集,把守约旦河的渡口,直到伯·巴拉,
  • 25 捉住了米甸人的两个首领:一名俄立,一名西伊伯;将俄立杀在俄立磐石上,将西伊伯杀在西伊伯酒榨那里;又追赶米甸人,将俄立和西伊伯的首级带过约旦河,到基甸那里。

《答疑解惑》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사사기》 7장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이 장은 저에게 매우 깊은 영향을 준 말씀입니다. 초기 교회를 개척하던 시절, 저는 교회에 300명의 정병(精兵)이 있기를 마음속으로 바랐습니다. 그러다 나중에는 300명의 정병은 너무나 아득한 꿈이라는 것을 깨닫고, 120명의 기도하는 큰 용사로 목표를 바꿨습니다.

예수님께서 마가의 다락방에서 승천하신 후, 그곳에는 오직 120명만이 남아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무엇을 위해 기도했을까요? 성령의 임재를 구했습니다.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셨을 때, 120명의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곳에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드온과 300명의 큰 용사는 저에게 매우 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3만 명이 좋을까요, 아니면 300명이 좋을까요? 저는 300명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예전에 지역 교회에서 평범한 교인으로 그저 적당히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다 나름 직분도 맡아 소그룹 리더가 되어 사람들을 데리고 성경공부를 인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때 저는 매우 기이한 현상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교회는 사람이 많아지기를 몹시 바라지만, 제가 교회를 개척하면서 깨달은 것은 교인 수가 많은 것이 결코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왜 좋지 않을까요? 제가 섬기던 교회의 담임 목회자가 완전히 녹초가 되어 탈진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알을 낳는 사람은 없고 똥만 싸대는 사람만 수두룩한 형국이었습니다. 복건(푸젠) 말이나 대만 말, 민남어로 표현하면 정말 기가 막히게 와닿는 표현입니다.

제가 보기에 그 목회자님은, 아휴, 암에 걸린 교인이 한 명 생기면 병원으로 달려가야 했습니다. 그 암 환자가 아직 낫지도 않았는데, 또 다른 교인이 뇌경색에 걸려 또 병원으로 뛰어갑니다. 그러다 얼마 지나면 또 다른 일이 터져서, 아휴, 지칠 대로 지치고 넋이 나갈 지경이었습니다. 겨우 수습이 될 만하면 누군가 세상을 떠나서 장례식을 치르기 시작합니다. 세상에나! 저는 그 모습을 보면서 ‘정말 목회자는 못 해먹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 사람이 많은 것이 과연 좋은 일일까요? 좋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 온갖 사람들이 뒤섞여 있으면 정말 난장판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언제쯤 승리하는 교회를 세울 수 있을까? 언제쯤 기드온의 300명 정병을 일으킬 수 있을까?’ 저는 “하나님! 우리를 일으켜 세우셔서 이 세대 가운데 밝은 빛을 비추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이것이 당시 저의 간절한 소망이었습니다.

어느덧 세월이 이렇게 흘렀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교회 안에서는 네 살짜리 아이의 기도조차도 역사가 일어납니다. 저는 참으로 감회가 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만 명씩 모이는 대형 교회가 부럽지 않습니까?”라고 묻습니다. 저는 전혀 부럽지 않습니다. 저는 교인 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원수가 쳐들어왔을 때 그 원수를 쳐부술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승리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교인들에게 가장 큰 손실입니다.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은 굳은 결단을 내리고, 더 이상 두려워하지 말며, 승리하는 정병이 되어야 합니다.

이번 장의 주제는 “하나님께서 이 300명으로 너희를 구원하시며 미디안 사람을 너희 손에 넘겨주시리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하시는 것이 사람 수에 달려 있지 않음을 알아야 합니다. 혹시 모르고 계셨다면 지금 반드시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하시는 것은 사람 수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1. 하나님이 우리를 승리하게 하시는 것은 사람 수에 달린 것이 아니다

저는 일찍이 이 비밀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를 승리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다윗 시대에 다윗이 왜 군대의 인구 조사를 했는지 아십니까? 왜 그랬을까요? 그의 마음 깊은 곳에 승리는 군대의 무기 덕분이고, 군대의 장비 덕분이며, 잘 훈련된 군사들 덕분이라는 등 수많은 인간적인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다윗은 살아오면서 승리가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것을 줄곧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예전에 오합지졸 같은 사람들을 이끌고 사울을 피해 다니다가 전투를 치르러 간 적이 있었습니다. 길을 가던 중 지친 사람들이 생기자 그들을 쉬도록 남겨두고, 소수의 무리만 데리고 계속 싸우러 갔습니다. 결국 큰 승리를 거두고 전리품을 똑같이 나누었는데, 싸우러 나간 자나 나가지 않은 자나 모두 한 몫씩 나누어 가졌습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왜 그랬을까요? 다윗은 승리가 우리가 나가서 싸웠기 때문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싸우러 나간 것 자체가 은혜이며, 결코 자랑할 만한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승리하게 하셨고, 하나님께서 원수를 우리 손에 넘겨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눈에는 흔히 사람의 수로 자랑하려 하지만,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은 절대로 교회의 숫자를 바라보지 마십시오. 난장판 같은 교회는 숫자가 아무리 많아도 큰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는 실제로 싸울 수 있는 자라야 인정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숫자로 자랑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사람들이 하나 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기드온을 따르는 자들이 일어났을 때, 단번에 3만 2천 명이 몰려왔습니다. 여러분이라면 기분이 어떠셨겠습니까? 아마도 “와, 부흥했다!”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부흥한 느낌이 듭니까? 듭니다. 그런데 정말 부흥한 것일까요? 제가 보기엔 좀 골치 아픕니다. 알을 낳는 자는 없고 똥만 싸대는 무리가 가득한데, 그 3만 2천 명이 과연 좋겠습니까? 군량미 대는 것만 해도 여간 골칫거리가 아닐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이 관점을 바꾸어야 합니다. 절대로 숫자로 자랑하지 말고, 교회를 세우려면 정병의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은 사람이 결코 자랑할 수 없게 하시는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서도 계속해서 빚어지고, 끊임없이 일어나는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끊임없이 빚어가기를 원하십니다.

결국 하나님은 3만 2천 명을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기드온은 ‘세상에! 3만 2천 명이나 있는데 이기지 못하겠는가?’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미디안이 몰고 온 10만 대군에 비하면 3만 2천 명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택도 없는 숫자였습니다. 더군다나 이 3만 2천 명 중 2만 2천 명은 두려워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 2만 2천 명은 다들 가니까 “나만 안 가면 민망하니 그냥 가자” 하고 따라나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백성이 너무 많다.”

이 2만 2천 명은 절대로 데리고 싸우러 가면 안 됩니다. 왜일까요? 그들을 데리고 싸움터에 나갔다가는, 진격하자마자 뒤돌아서 도망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3만 2천 명이 돌격하는데 그중 2만 2천 명이 뒤돌아 도망치면, 남은 1만 명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남은 1만 명도 끝장나는 것입니다. 똑같이 뒤돌아 도망치게 됩니다. 그러면 기드온의 300명만 남겨져 끝장나고, 10만 대군이 몰려와 침만 뱉어도 익사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움이 있는 자들을 데려가서는 안 됩니다! 우리 가운데 아직 두려움이 있는 분이 있다면 바꾸셔야 합니다. 두려움은 귀신을 불러들이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조정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저는 태어날 때부터 겁이 많았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담대한 사람이 되기를 선택하십시오.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하면 하나님의 정병이 될 수 없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귀신을 불러들이는 것 외에는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자신을 새롭게 인식해야 합니다. 아직도 시체를 무서워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저는 참 이상합니다. 살아있는 사람도 안 무서운데 죽은 사람이 뭐가 무섭습니까? 아주 해괴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은 바로 이 300명으로 10만 명을 쓰러뜨리는 것인데, 두려워하는 자는 아무런 쓸모가 없을 뿐만 아니라 부작용만 낳습니다. 결국 1만 명이 남았을 때 하나님은 또 말씀하셨습니다. “백성이 아직도 너무 많다.” 기드온은 그때 멍해졌습니다. ‘10만 명인데! 우리가 1만 명을 가지고 10만 명과 싸우는 게 가능할까? 저들은 잘 훈련된 미디안 대군인데, 고작 우리 1만 명으로 되겠는가?’ 그런데도 하나님은 “백성이 아직도 너무 많다”고 하셨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은 300명을 택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친히 택하신 자들입니다. 이 300명은 실로 대단했습니다. 그들 중 아무도 “이봐, 유언장은 써 뒀어? 이번에 나가면 우리는 다 죽을 텐데, 집안일은 잘 정리해 뒀나?”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장담하건대 그런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하실 사람들은 모두 큰 믿음을 가진 자들입니다. 교회를 세울 때 하나가 되어야 하는데, 바로 믿음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이 300명은 기드온이 명하는 대로 그대로 행했습니다.

2. 이 300명은 모두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이다

여호와께서 또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아직도 많으니 그들을 인도하여 물 가로 내려가라 거기서 내가 너를 위하여 그들을 시험하리라 내가 누구를 가리켜 네게 이르기를 이 사람이 너와 함께 가리라 하면 그는 너와 함께 갈 것이요 내가 누구를 가리켜 네게 이르기를 이 사람은 너와 함께 가지 말 것이니라 하면 그는 가지 말 것이니라 하신지라 이에 백성을 인도하여 물 가에 내려가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개가 핥는 것 같이 혀로 물을 핥는 자들을 너는 따로 세우고 누구든지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들도 그와 같이 하라 하시더니 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는 자의 수는 삼백 명이요 그 외의 백성은 다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신지라 (사사기 7:4-6)

이렇게 나누어 놓으니 이쪽은 9,700명이고 저쪽은 300명이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9,700명이 훨씬 많아 보입니다. 9,700명이 까맣게 모여 있지만, 이쪽의 300명에 비할 바가 못 됩니다. 사실 사람이 물을 어떻게 마시는지가 왜 중요할까요? 왜 그렇게 물을 마시게 했는지 제게 물으신다면, 저도 잘 모르고 설명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물 마시는 방식으로 사람을 택하셨는데, 이렇게 손으로 물을 움켜쥐고 마시는 방식은 이후 역사에서 다시 나타난 적이 없습니다.

《사사기》 이후로는 이런 방식으로 사람을 택한 적이 결코 없습니다. 사실 이 300명도 자신들이 왜 손으로 물을 움켜쥐고 핥아 마셨는지 알지 못했지만, 그냥 그렇게 행동했습니다. 왜일까요? 하나님께서 그들을 택하려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마신 다른 사람들은, 무릎 꿇고 어떻게 마셨는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굳이 이해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택이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우리는 그것을 연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성경에서 야곱이 나뭇껍질과 나뭇가지를 벗겨 세워놓고 교배시켜 얼룩덜룩하고 줄무늬 있는 양을 낳게 한 일이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지금 다시 따라 해 본들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 방식은 오직 한 번만 나타났을 뿐입니다.

그때 기드온도 조금 얼떨떨하지 않았을까요? 기드온은 속으로 ‘하나님, 착오가 있으신 것 아닙니까? 고작 300명이라고요?’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기드온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300명이라고 하셨다면, 이 300명이 10만 대군보다 분명히 더 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숫자를 추구하는 것은 매우 허망한 일입니다. 베드로 시대에도 이러한 상황이 나타났는데, 이 일은 잠시 후에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300명으로 어떻게 10만 대군을 상대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300명 모두가 믿었고, 또한 이 300명의 마음속에는 아주 특별한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우리 겨우 300명뿐인데 유언장은 써 뒀어? 10만 대군이 침만 뱉어도 우리를 익사시키겠다. 너 수영할 줄 알아? 침 속에서 헤엄칠 수 있겠어? 집안 식구들에게 뒷일은 다 부탁해 뒀어?” 같은 소리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위챗도 없고 전화도 없던 시절입니다.

이 300명은 그런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하나님께 택함을 받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기드온을 따르며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여!”라고 외치며, 하나님께 택함을 받았다는 사실을 크나큰 영광으로 여겼습니다. 마치 우리 가운데 있는 형제자매들이 “나는 승리하는 교회에 있습니다. 나는 화인명정신학(华人命定神学) 안에 있습니다”라고 간증하는 것과 같습니다. 승리하는 교회 안에 있다는 것은 그들에게 큰 자부심입니다!

만약 이 정도의 대가조차 치를 수 없다면 어찌 정병이라 부를 수 있겠습니까? 그 대가는 죽음조차 개의치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 같은 자를 택하시고, 나를 사용하셔서 하나님과 동역하게 하시다니!’ 이전 세대에도 없었고 앞으로 올 세대에도 없을 이 큰일에, 바로 이 세대 가운데 나를 택하셨다는 것은 참으로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3만 2천 명이 시험을 치러 겨우 300명이 합격한 셈이니, 백여 명 중에서 한 명을 뽑은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제가 지금까지 사역해 온 과정에서도 정말 백 명 중에 겨우 몇 명을 뽑아내는 식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세대 가운데 하나님께 택함을 받고 쓰임 받는 자들입니다. 여러분은 죽지 않습니다! 죽으려 해도 쉽게 죽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하시기 때문이며, 죽는 것은 원수들이기 때문입니다.

그 300명이 당시에 느꼈던 감정은 마치 칭화대나 베이징대에 합격했을 때의 기분과 같았을 것입니다. 9,700명이 보기에 “어떻게 된 거지? 우리가 그렇게 물을 마셨다고 저들은 뽑히고 우리는 탈락했단 말인가?” 하고 그들도 몹시 끼어들고 싶었겠지만,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교회를 세우는 방식도 일종의 ‘희소성 전략’을 만들어낸 셈입니다. 여러분이 우리 가운데 올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큰 영광입니다. 우리의 훈련 과정을 통과하고 우리 교회에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떤 분은 “강사님, 화인명정신학 안에 있으니 하루하루가 정말 알찹니다”라고 말합니다. 제가 그 말을 들으니 속뜻이 느껴졌습니다. ‘아휴! 매일 공부하느라 끊임없이 성장하고 있구나.’

우리 가운데서는 대충 얼렁뚱땅 넘어갈 수가 없습니다. 오랫동안 과제를 제출하지 않는다면 포기하십시오! 과제조차 낼 수 없다면 안 됩니다. 우리 가운데 아직도 노트 필기를 못 하는 분은 없겠지요? 만약 여전히 필기도 하지 않고 여기서 적당히 때우려는 사람이 있다면 곤란합니다. 우리는 성경공부, 주일 예배, 기도회, ‘자기주도 학습’ 과정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세상에나! 여기서 공부하는 것은 대학교에 다니는 것보다 더 치열합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이었고, 이 300명 역시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어떤 분은 음성을 텍스트로 변환하는 사역에 푹 빠졌었는데, 이제 인공지능이 나와서 음성 변환 사역이 별로 필요 없게 되자 약간 아쉬워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교회는 참으로 놀라운 교회입니다. 최근에 제 동역자들이 우리 공식 홈페이지를 개편하여, 점차 학습 중심의 시스템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자료를 더 잘 수집하고 제대로 공부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함이며, 앞으로 여러분의 학습과 성장을 돕기 위한 더 많은 자료들이 제공될 것입니다.

3. 하나님이 기드온에게 미디안 진영으로 내려가 보라고 명하시다

하나님께서 이 300명을 택하셨을 때, 그들은 자부심은 있었지만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어?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 300명으로 저 10만 명을 물리치게 하실까? 10만 개의 장작을 팬다고 해도 이 300명으로는 감당하기 힘들 텐데, 어떻게 패야 하지? 10만을 300으로 나누면 한 사람당 몇 개를 패야 하나? 그것만 해도 장작더미가 엄청날 텐데, 아휴, 피로에 지쳐 쓰러지지 않겠는가?’

이 300명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도무지 답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승리하게 하실까? 저 10만 명을 칼로 일일이 목을 베어야 하나? 하지만 칼을 휘두르면 상대방이 피할 텐데, 열 번을 내리쳐도 한 번 맞출까 말까 아닌가?’ 이 300명은 ‘이 싸움을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라며 어리둥절했을 것입니다.

그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진영으로 내려가라 내가 그것을 네 손에 넘겨 주었느니라 (사사기 7:9)

기드온은 ‘갔다가 못 돌아오면 어쩌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여호와 하나님께서 흥미로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만일 네가 내려가기를 두려워하거든 네 부하 부라와 함께 그 진영으로 내려가서 그들이 하는 말을 들으라 그 후에 네 손이 강하여져서 그 진영으로 내려가리라 하시니 기드온이 이에 그의 부하 부라와 함께 군대가 있는 진영 근처로 내려간즉 (사사기 7:10-11)

기드온이 부라에게 “너 나랑 같이 갈래?”라고 묻자, 부라는 “상황을 좀 보고요”라고 답했습니다. 기드온이 “뭘 본단 말이냐?”라고 하니, 부라는 “아휴, 우리 둘이 가는 건 좀 무리인 것 같은데요”라고 했습니다. 이때 기드온은 온몸에 전기가 통하듯 찌릿찌릿 저렸고 두 다리가 후들거렸으며, 부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기드온은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미디안 진영으로 내려가 보라고 하셨지.’ 얼마나 갈등이 되었겠습니까! 변장을 하고 미디안 사람들의 옷을 챙겨 입은 뒤 몰래 숨어 들어갔습니다. 세상에, 이번에는 담대해졌습니다. 하나님은 미디안 사람들의 꿈 하나를 통해 그들을 완전히 무너뜨리셨습니다.

기드온이 어느 장막 근처로 다가가 귀를 기울였습니다. 한 장막이었는지 여러 장막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많은 장막에서 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을 것입니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만일 네가 내려가기를 두려워하거든 네 부하 부라와 함께 그 진영으로 내려가서 그들이 하는 말을 들으라 그 후에 네 손이 강하여져서 그 진영으로 내려가리라 하시니 기드온이 이에 그의 부하 부라와 함께 군대가 있는 진영 근처로 내려간즉 (사사기 7:10-11)

기드온이 부라를 데리고 내려갔습니다. 처음에는 온몸이 덜덜 떨렸습니다. 기드온이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거짓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네가 두려워하거든 부하 부라를 데리고 가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곳에 가보니 다음과 같았습니다.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의 모든 사람들이 골짜기에 누웠는데 메뚜기의 많은 수와 같고 그들의 낙타의 수가 많아 해변의 모래가 많음 같은지라 (사사기 7:12)

끝없이 펼쳐진 광경에는 10만 대군이 가득했습니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한 사람이 야영지에서 10제곱미터를 차지한다고 해도 어마어마한 면적입니다. 기드온이 장막에 가까이 다가갔을 때 그들이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기드온이 그 곳에 이른즉 어떤 사람이 그의 친구에게 꿈을 말하여 이르기를 보라 내가 한 꿈을 꾸었는데 꿈에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영으로 굴러 들어와 한 장막에 이르러 그것을 쳐서 무너뜨려 위쪽으로 엎으니 그 장막이 쓰러지더라 (사사기 7:13)

보리떡과 기드온의 칼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사람은 원래 엉뚱한 소리를 잘합니다. 왜 엉뚱한 소리를 할까요? 꿈을 꾸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중에도 뒤숭숭한 꿈을 꾸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사실 저도 엉뚱한 꿈을 자주 꿉니다. 어젯밤에도 꿈 때문에 너무 피곤했는데, 차를 주차해 두고 아무리 찾아도 찾지 못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 거대한 주차장에서 계속 헤매다가 꿈에서 깼습니다. 다행히 저는 꿈 해몽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이런 헛된 생각과 허황된 꿈은 쓰레기처럼 내다 버립니다.

그런데 이 미디안 사람은 보리떡 한 덩어리, 마치 인도 사람들의 로티 프라타(Roti Prata) 같은 떡을 꿈에서 본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기드온의 칼이 될 수 있단 말입니까? 기드온이 들으면서 속으로 ‘이 사람들 머리가 어떻게 됐나? 무슨 보리떡이 진영으로 굴러 들어온단 말인가? 보리떡이 굴러 들어오면 얼른 집어먹어야지. 차라리 바위가 굴러 들어왔다고 하면 모를까’ 하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의 친구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의 칼이라 하나님이 미디안과 그 모든 군대를 그의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하더라 (사사기 7:14)

성경에는 기드온이 다른 장막으로 옮겨 다니며 살펴보았다는 말은 없지만, 아마 미디안 진영의 모든 장막마다 “나도 꿈을 꿨어, 너도 꿈을 꿨어?” 하며 모두가 보리떡 꿈에 대해 기이하게 이야기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꿈 하나를 통해 이 군사들의 마음을 완전히 녹여버리셨습니다. 하나님은 실로 대단하십니다! 사람이 많다고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결국 기드온은 승리의 암호를 얻었는데, 그것은 바로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었습니다. 기드온이 그곳에서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여!”라고 외쳤을 때, 원수들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원수들은 “세상에, 정말 기드온의 칼이다!”라며 어찌할 바를 몰라 넋이 나갔을 것입니다. 사람이 많아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사람이 많으면 혼란만 가중될 뿐입니다.

하나님은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라는 암호를 지으시고, 그것을 보리떡으로 나타내셨으니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법을 배우고, 여호와의 목전에서 정직하게 행하는 법을 배우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승리하게 하시고 상황을 반전시키시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핵심적인 문제는 우리가 늘 믿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자주 원수에게 사로잡히고, 하나님의 목전에서 정직하게 행하지 않으며, 도리어 하나님의 눈에 악한 일을 행합니다.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것은 두려워하고, 정작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두려워할 줄 모릅니다. 제 말을 이해하시겠습니까? 우리가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십시오.

하나님의 명령대로 미디안 진영을 살펴보고 온 기드온은 미디안 군대보다 훨씬 큰 담력을 얻었습니다. 세상에, 정말 대단했습니다! 기드온은 믿음이 충만해져 돌아와 300명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미디안 진영에 다녀왔는데, 적들의 장막마다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에 대한 소문이 파다하다. 일어나라! 여호와께서 이미 원수들을 우리 손에 넘겨주셨다!”

4. 일어나라, 여호와께서 원수를 우리 손에 넘겨주셨다

만약 기드온이 돌아와서 300명에게 “세상에, 낙타가 셀 수 없이 많고, 미디안 군대는 해변의 모래알처럼 많다”라고 말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 300명은 완전히 끝장났을 것입니다! 기드온과 부라가 돌아와서 그런 불신앙의 말을 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을 즉시 쳐서 죽이셨을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전례가 있는 일입니다. 손으로 물을 떠 마시는 방식은 전례가 없었을지 몰라도, 악평을 전하고 하나님을 불신앙한 자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수많은 전례가 있습니다. 가나안 땅을 탐지했던 열두 정탐꾼 중 불신앙했던 자들이 다 그렇게 죽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기드온은 돌아와서 “여러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이미 원수를 우리 손에 넘겨주셨습니다”라고 선포했습니다. 300명으로 10만 명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300명만의 싸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군대가 이미 우리 앞서 싸우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이러한 영적인 통찰력이 있다면 대단한 사람이 될 것이며, 영적인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영적인 시각이 없다면 그 열두 정탐꾼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기드온이 그 꿈과 해몽하는 말을 듣고 경배하며 이스라엘 진영으로 돌아와 이르되 일어나라 여호와께서 미디안과 그 모든 군대를 너희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하고 삼백 명을 세 대로 나누어 각 손에 나팔과 빈 항아리를 들리고 항아리 안에는 횃불을 감추게 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만 보고 내가 하는 대로 하되 내가 그 진영 근가에 이르러서 내가 하는 대로 너희도 그리하여 나와 나를 따르는 자가 다 나팔을 불거든 너희도 모든 진영 주위에서 나팔을 불며 이르기를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 하라 하니라 (사사기 7:15-18)

이것은 마치 ‘열려라 참깨’와 같습니다. 승리에는 비밀번호가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라는 이 한마디 말씀만을 주셨습니다. 그 결과 300명이 이곳저곳 구석구석에서 손에 든 항아리를 깨뜨리고, 세 무리가 일제히 나팔을 불며 횃불을 흔들고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여!”라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칠흑같이 어두운 밤중에 진영 안의 적들은 누가 아군이고 누가 적군인지 분간하지 못한 채 자기들끼리 칼로 쳐 죽이기 시작했습니다.

이 300명의 정병은 직접 싸우지도 않고 그저 횃불과 나팔을 든 채 그곳에서 외치고 불기만 했습니다. 하나님은 실로 위대하십니다! 10만 명, 10만 톤의 나무를 장작 패듯 하려면 한 사람당 330명을 베어야 합니다. 한 사람의 목을 베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300명의 목을 베는 것은 결코 장난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습니다. 미디안 군사들이 자기들끼리 칼부림을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원수들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난투극을 벌이며 얼마나 오랫동안 서로를 죽였는지 모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제 생각에 하나님께서 이 300명을 뽑으실 때 테너나 소프라노 같은 목소리가 아주 좋은 사람들로만 뽑으신 것 같습니다. 밤새도록 소리를 질러도 끄떡없을 정도로 성량이 대단했던 것입니다. 기드온은 원수들이 서로를 칼로 쳐 죽이다가 도망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왜 도망치는지도 모른 채 달아났습니다.

적들이 소리 지르는 자들이 고작 300명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까요? 그들은 300명뿐이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습니다. 단지 300명이 각자 나팔 하나와 횃불 하나를 쥐고 크게 나팔을 불며 소리를 질렀을 뿐인데, 적들은 고작 300명인 줄 몰랐던 것입니다. 저는 속으로 ‘이것이 도대체 무슨 논리인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모두가 한 꿈을 꾸었고, 그 결과 이런 엄청난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사람이 많은 것은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꿈 하나를 통해 적들을 자멸하게 만드셨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참으로 놀랍습니다. 여호와께서 원수들을 우리 손에 넘겨주셨습니다.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일어나야 하며, 절대로 나태하고 안일한 사람으로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배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배우고, 성경을 통해 배우며, 여호와를 아는 지식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을 알아야 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능력이 우리 몸에 나타나야 합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원수들은 모두 우리 발아래 짓밟힐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절대로 육신에 속한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육신에 속한 사람은 귀신을 불러들입니다! 저는 우리 형제자매 모두가 하나님 안에서 새롭게 변화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여러분 중에 빚을 졌거나, 실직했거나, 여러 가지 문제로 곤경에 처한 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모든 문제의 근원은 단 하나, 하나님을 경외할 줄 모르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상황을 반전시키시는 것은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그 믿음이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우리가 이 세대 가운데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이 될 수 있는가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용하고자 하신다면, 그것은 일생일대의 천재일우의 기회입니다.

우리 교회가 어떻게 지금까지 올 수 있었을까요? 죽기를 두려워하고 육신의 안일함을 좇는 목회자는 형제자매들을 승리로 이끌 수 없습니다. 저는 기드온이 참으로 부럽습니다. 우리 교회에 있는 기드온 형제가 아니라 성경에 나오는 기드온 말입니다. 우리 가운데도 기드온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여러 명 있어서, 나중에는 구분하기 위해 다른 글자를 붙여야 할 정도였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참으로 훌륭하신 분입니다! 우리 가운데 수많은 기드온을 일으키실 것입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죽으려 해도 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안의 믿음을 다시 추스르고 하나님께 쓰임 받기를 갈망하며, 하나님께 택함 받기를 갈망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시험하시는 기회가 올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 여러분을 시험하실지는 모르지만, 여러분이 하나님께 택함 받은 자인지 확인하시고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는 결코 쉽게 죽지 않습니다. 우리 안의 세상적인 논리 체계를 제거하고, 육신을 위하는 모든 것들을 씻어내기 시작하십시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반드시 하나님께 쓰임 받기를 갈망해야 합니다. 그것이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만약 여러분과 제가 그 300명 중에 속하여 미디안 진영의 사방을 둘러싸고, 온 진영 주위에서 나팔을 불고 횃불을 흔들며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여! 여호와와 명정신학(命定神学)이여!”라고 외친다면, 얼마나 통쾌하고 위대하며 흥분되는 일이겠습니까! 이 세대 가운데 우리 형제자매들은 모두 하나님의 기이한 역사를 보게 될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이 우리 가운데 나타날 것입니다. 어떤 귀신이라도 우리 발아래 짓밟힐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5. 모두가 하나님의 승리를 함께 나누다

3만 2천 명 중 겨우 300명만 남았을 때, 기드온은 나머지 사람들을 보내며 “이 온 지역을 두루 다니며 모든 길목을 지키라”고 명했습니다. 알고 보니 이들도 원래는 겁쟁이들이었지만, 기드온이 승리하는 것을 보고는 “나도 하나님의 역사를 보았으니, 나도 하나님의 승리에 동참하겠다”며 달려들었습니다. 그러자 모두가 용맹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한 동역자가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강사님, 어떤 사람들은 우리를 무시하지만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그들은 늘 다른 사람들이 더 대단하다고 생각하니까요.” 제가 “왜 그럴까?”라고 물으니, 그가 말했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점점 더 승리하고 더욱 강력해지면, 그들도 결국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승리에 동참하게 될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저 역시 큰 힘을 얻었습니다.

이 세대 가운데 승리하는 정병의 교회가 반드시 일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우리로 인해 도전을 받고 격려를 얻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갈대와 같아서 바람이 강하게 부는 쪽으로 기울어지고 넘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이 담장에 걸터앉아 눈치만 보고 있습니다. 사실 수년 전부터 저는 “우리가 새로운 세대의 기독교 변혁을 가져올 것”이라고 선포했습니다.

오래 살아본 사람들은 “그게 그렇게 대단한 일인가?”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화인명정신학은 얼굴도 없고, 유명세도 없으며, 유명한 스타 목회자도 없고, 마르틴 루터 같은 인물도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가져올 영향력은 역사상 역대 기독교의 변혁을 훨씬 뛰어넘을 것입니다. 저는 기독교 역사를 꽤 깊이 연구해 왔는데, 교회의 역사는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 아주사 거리(Azusa Street)에서 갑자기 큰 부흥이 일어나 모두가 주님을 믿게 되었고, 1904년 영국 웨일스에서도 갑자기 수많은 사람이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참으로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연구를 거듭할수록 그것이 온전한 것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것만이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 세대에 세운 교회들은 이후 수백 년 동안 세워진 교회들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러나 미국 아주사 거리나 영국 웨일스의 부흥 같은 것들은 어느 순간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습니다. 마치 순식간에 찾아왔다가 언제 사라졌는지 모르는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는 일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일시적인 부흥을 좇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기초를 견고히 세우며, 형제자매들을 사도 바울의 형상과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은 사람으로 빚어내는 것을 추구합니다. 그때가 되면 수많은 사람이 우리와 함께하게 될 것입니다. 마치 기드온의 300명 정병이 승리한 소식이 온 땅에 퍼졌을 때 모든 사람이 나아와 기드온이 가져온 승리를 함께 누렸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승리하게 하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챌 수 있는가?”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었던 것처럼, 기드온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챈 것이 아니라 기드온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낸 것입니다. 우리 화인명정신학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영광을 얻는 것이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우리가 오래 살다 보면 반드시 그 세대가 도래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아멘! 우리는 더 많은 사람이 우리와 함께 이 승리를 누리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6. 교회를 세우는 것도 이와 같다

우리는 험난한 길을 걸어왔으며, 교회를 세우는 일도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원수를 우리 손에 넘겨주셨습니다. 공중의 권세 잡은 자든, 통치자들과 권세자들이든, 이 어둠의 세상을 주관하는 흑암의 세력이든, 모두 우리 발아래 놓이게 될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택하셨을 때, 베드로는 예수님을 온전히 본받지 못했습니다. 왜 예수님을 본받지 못했을까요? 갑자기 3천 명, 5천 명이 몰려오자 그는 너무나 기뻐 어쩔 줄 몰랐습니다. 그 후 베드로가 한 일이 무엇입니까? 사람들에게 가산을 다 팔게 하고 아주 기이한 방식의 교회 공동체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제가 묵상해 보니 그것은 난장판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베드로가 한 일이 무엇입니까? 모두가 공짜로 먹고마시다 보니 결국 배급 문제로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이런 상태로 어떻게 영적 전쟁을 치를 수 있겠습니까? 베드로는 구제와 배급을 맡으러 갔지만, 그 일조차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교회를 세울 때 일시적인 붐이나 센세이션을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웨일스의 부흥이나 아주사 거리의 부흥 같은 일시적인 현상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원했던 것은 견고하게 기초를 다져 승리하는 교회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본보기입니까!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절대로 베드로가 했던 방식을 사모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참으로 알은 낳지 못하면서 똥만 싸대는 형국입니다. 그런 교회가 어찌 흥왕할 수 있겠습니까?

이후 하나님은 예루살렘 교회를 치셔서 흩으셨고, 사도 바울의 시대를 여셨습니다. 그 시대에 베드로는 쓸쓸히 무대 뒤로 물러났고, 바울이 교회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습니다. 화인명정신학의 핵심 이념은 바로 바울의 신학입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이 미신 같은 착각 속에 살고 있습니다. 어떤 목회자는 “내가 설교할 때 왜 이렇게 능력이 나타나는지 아십니까? 뒤에서 300명이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합니다. 300명이 기도해 주어야만 능력이 나타난다는 말입니까? 저는 성경에서 그런 전례를 찾을 수 없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절대로 이런 착각에 빠지지 마십시오. 어떤 사람들은 더 많은 사람이 기도하거나 온 교회가 함께 기도해야만 무언가 변화가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를 위한 기도입니까? 스스로를 돌보지 못하는 장애를 가진 아이를 위한 기도 같은 것입니다. 더 많은 사람이 기도하면 능력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여전히 그런 상태에 머물러 있다면 그것이 정말 맞는 말이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천군만마를 이끌고 다니시는 것을 보셨습니까? 예수님은 천군만마를 이끌지 않으셨고, 홀로 모든 것을 해결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오병이어로 5천 명을 먹이셨지만, 그 사람들은 그저 얻어먹고 즐기려고 모여든 무리에 불과했습니다.

나중에 예수님은 그렇게 무리 지어 몰려드는 사람들을 달가워하지 않으시고 다 돌려보내셨습니다. 다 먹었으면 그만하고 집으로 돌아가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더 이상 그런 헛된 것을 추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각 사람이 예수님을 닮고, 각 사람이 사도 바울을 닮아,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끊임없이 성장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아멘!

숫자에 대한 맹신은 매우 무서운 미혹입니다. 많은 교회가 중보기도 팀을 세우는데, 그들이 무엇을 기도합니까? “하나님, 우리 목사님을 변화시켜 주옵소서”라며 기도합니다. 마치 주술이나 무속 행위를 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은 성경적 근거가 없는 이러한 맹신과 착각에서 반드시 벗어나야 합니다! 교회를 세우려면 하나님께서 택하신 교회를 세워야 하며, 하나님께서 친히 그분의 교회를 세우실 때 그분의 영광이 교회 가운데 충만히 나타날 것입니다. 아멘!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관심을
关闭
暂无评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