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大家好!今天讲的《哥林多后书》十二章,让我感到非常兴奋,因为又讲了一遍我自己啊。哎呀,我这养成了凡尔赛的习惯了,这简直就是住在凡尔赛宫里啊。
《哥林多后书》写得好啊。十二章的主题是:我要得着的是你们,不是你们的财物。愿这句话都刻在我们弟兄姐妹的心坎上。现在是答疑解惑时间:
Q1:老师您好,贫困的弟兄姐妹不能给他钱,要对付他们肉体的恶习才会富足起来吗?
我问你,合神心意的人,有穷的没有?合神心意的人有没有穷的?大家来说一说看。你在《圣经》里头能不能举出几个例子,说亚伯拉罕很穷,或者以撒穷,雅各穷得叮当乱响,就剩手里一根棍儿?没有。大卫和所罗门呢?是不是很穷?不是。大卫厉害啊,有两百多吨的黄金,结果那黄金没地方用,就往墙上贴。哎呀,那真厉害!
那这个拉萨路呢?他还是举个例子,真的找不到一个拉萨路。其实那个拉萨路没那么穷,就是从死里复活的那个拉萨路不那么穷。所以说今天咱们弟兄姐妹要知道,人为什么会穷呢?得知道啊。今天咱们当中那些欠债的,为啥会穷?爱钱啊。爱神的人没有穷的。是不是这么回事啊?
那如果你说看见很多穷传道人,他把道传错了,他能不穷吗?是不是?他传的是贫穷的道。我传的是富有的道;我传的是兴盛的道;我传的是健康的道;我传的是神的国降临。在神的国里没有贫穷,在神的国里没有疾病。我问你神的国里有贫穷吗?没有!
如果神的国降临会怎么样?那为什么神的国没有降临呢?因为人太爱钱,把自己爱穷了。是不是?爱钱爱穷的。所以今天咱们弟兄姐妹可得小心啊!
那人为什么会被骗?一骗十万,一骗二十万,一骗五十万,一骗三百万。爱钱啊,可爱钱了。你说不是,那个人不爱钱。但他不爱钱,他也觉得这钱很重要。仔细听哦,他觉得钱很重要,他的逻辑体系是玛门的逻辑体系。
你比如说我得赚点钱,然后好养这个传道人。啊,坏了。所以今天咱们弟兄姐妹可得知道,你今天可能还没完全翻转,但是我给你一个盼望,就是在咱们当中要想不蒙福是很难的。
那人为什么穷呢?你看啊,有些人特别奇怪。干了好几年的工,手里头没工作的时候,就能撑一个月。奇怪吗?就能撑一个月?那我就在想他赚的钱干嘛去了呢?他也不攒钱。为啥?八千块钱买一套西装,五千块钱买个手机,几千块钱买个美容配套。哎,你得有多少钱经得住这么糟啊,是不是?
所以说我告诉大家啊,人穷,就是爱钱,爱世界和世界上的事儿。是不是?眼看看不饱,耳听听不足。哦,我得去欧洲旅游,哎呀,我有点钱了,以后我得去东南亚,我得去逛逛新加坡。其实有啥意思?我也不知道有啥意思啊。哎呀,就觉得这个可好了,爱神的人觉得这玩意儿没啥意思。所以说爱世界,就觉着花钱很快乐。
你像我这些同工,都不知道花钱干啥花。有的人一天吃一顿饭,对玩儿没有兴趣,他们到我这儿来培训的时候,我说出去玩一玩,转一转。他们不出去。干啥?哇,就捧着电话在那牧养啊。你说他没地方花钱,他怎么可能穷?穷不了。哎呀,我跟你讲,我们这些同工攒钱都是一把好手啊,然后奉献,都是奉献大户。
我想这个对付肉体的恶习,对付人里面的价值观念,对付人里面的这种属世界的逻辑体系,人肯定会富有。然后我告诉你,记住啊,如果一个人得着了命定,知道为什么而活,不富有是很难的。
Q2:老师,“我的神叫我在你们面前惭愧”是什么意思?
这意思很简单,使徒保罗说话的水平太高,就是让我在你们面前丢人。听明白了吗
哎呀,一看,这丢死人了,赶紧挖个坑钻进去。哎呀,我怎么牧养这么一群人呢:纷争、嫉妒、恼怒、结党、毁谤、谗言、狂傲混乱的事。来了一看,哎呀,恶心死了,吃了一个屎壳郎。哎呀,一看又来一个,哎哟,吃了另外一个屎壳郎。又来了一个,哎哟,这可不是屎壳郎啊,这是放屁虫啊。
大家知道放屁虫吗?搁手摸一下,那手都洗不掉啊。哎呦,那他释放的那些化学物质简直了啊。放屁虫肯定是地狱里的虫子,所以说特别有意思。保罗写的这个如果让我说啊,哎呀,不要让我见你们的时候,看到的是一只放屁虫啊。这回你就明白了,是不是啊?
Q3:老师,先知以利亚很穷是如何理解呢?
你怎么知道先知以利亚很穷啊?有这句话吗?我问你先知以利亚他缺啥?他啥也不缺。
所以我们得知道,先知以利亚和先知以利沙可了不得了!你读过以利沙吗?先知以利亚逃到寡妇那里,因为以色列降了三年的饥荒。那我问你他到了寡妇那里,寡妇会怎么样?寡妇她家的粮和她家的油吃不完。什么人东西吃不完,那得有钱的人就吃不完,是不是?
我问你,以利沙住在自己的房子里还养了几个仆人。有没有?乃缦将军拿着金银财宝,要给以利沙,以利沙不要。我问你他差钱吗?他不差钱。那咱们今天弟兄姐妹千万不要以为以利亚穷。以利亚只不过是他家的那个房子他不能住了,他得逃到那个寡妇家里头。而且他一生不缺钱。直到被提的那个时刻,而且还是火车火马。
我跟你讲,接走以利亚的那辆车,大家有用过婚车吗?大家知道结婚的婚车吗?那是比以利亚的车差老远了!火车火马,那两个轮子都是风火轮做的啊。听明白了吗?啊,就飞上天去了,被那个火车火马接走了。
所以以利亚为什么用火车火马接走他,大家知道吗?那叫做风光!是不是?风光就是不差钱。啊,多有排场啊!老有排场了。能用得起火车火马的不多!
不过我告诉你啊,就是你看着的和我们看到的可能不太一样啊,但也没关系。一定要知道神的百姓没有穷人。我问你,以利亚会不会整点金子,整点银子投资,会吗?他不干这事儿,人不差钱,人投什么资?是不是?以利亚一生想得着以色列的百姓,让以色列的百姓归向神。
Q4:老师,被提的那个人在身内身外是什么意思?
这个保罗被提起来以后,到了三层天。他完全不知道是肉身进到三层天了,还是他的魂游象外进到三层天。他完全都没有办法分辨,他不知道。我猜应该是保罗这个人被提到三层天了。
那保罗这个人被提到三层天,但是他没法说清楚。他就说的是他自己,他认识一个在基督里的人。为啥他不说呀?就是我自己了。为啥?他不希望人家像拜大师似的来拜他。保罗很清楚,说完了以后,大家都来拜,我的天哪,给你献点花儿,给你送个花圈呐,他不要这玩意儿。就觉着他了不起啊什么的,这些都不好。所以他写的文字就是这么写的,就是不希望让大家来拜大师。
Q5:老师你好,我的好朋友经常给我买很多东西。我给他买的东西他不要,甚至有时我去他家,给他买的东西他又会给我送回来。为此事我会难受。
不用难受,关系嘛,是吧?因为你给他的东西他不缺。所以说大家要开始知道。有的人他真的就是有很多的东西,你能给他啥?你给不了啊。理解了吗?你给他一看,啥他也看不上。咱们就别玩假的了,你给我点,我给你点,没啥意思。
你知道吗?有一个人他老板的孩子结婚的时候,他给了一千。等他孩子结婚,老板只给了他八百,结果把他气坏了。他老板有的是钱。他给老板的孩子结婚时,几百几百地凑了一千。等到他孩子结婚,老板却只给了八百。然后他生气,为啥?他穷,他心态穷。是不是?其实,这东西要么你就别给,给完了以后,人家还回来的时候少给了二百,好像怎么着似的。
你不知道你整天趴在你老板的身上吃他啃他呀,是不是啊?给你薪水,你不知道那是给你的。很多人不知道,很多人就以为那红包是钱。我告诉你,做老板其实很不容易的啊。老板扛着压力多大,你打完了工,拍拍屁股就走了,这就是问题了。所以我们要经常了解,经常要了解我们的心里都有多脏。
Q6:老师好,父母该为儿女积财,但如果儿女不会理财怎么办,乱花钱怎么办?
那不是咱们关心的事儿啊,咱们弟兄姐妹可得知道这个逻辑。
父母为什么给孩子攒钱?你什么时候听说过他妈结婚,儿子给她攒钱,让她妈结婚的。有吗?没有。或者也没有儿子攒钱,让他爸爸娶媳妇。有吗?没有。都是老头老太太攒钱,为儿子娶媳妇。是不是?
所以说,我们觉得这是一个在保罗年间和我们今天的中国都没有什么差别的现象。就是父母理所应当为孩子攒钱。什么事情是这样的呢?供儿子上大学,你要不要出钱供他上大学?如果你说不要,让他自己赚,是不是有点心疼,舍不得?
然而,如果孩子今天花钱,明天花钱,那是另外一回事儿。如果他不会理财,那怎么办?那是不懂事儿。那父母也还是爱孩子的。所以保罗所说的就是一个爱的体现,如果孩子不会理财,那就得教他。是吧?
Q7:老师,保罗身上的病是刺,我们身上的病也是刺吗?
保罗身上的病是个刺儿啊,你们身上的病应该是个咒诅,听得懂吗?很多都是咒诅。保罗那根刺儿是不是个咒诅?没这么说。那为啥呢?因为这根刺儿实际上就是撒旦的仆役攻击保罗。撒旦的仆役攻击保罗,大家听得懂吗?
撒旦的仆役攻击保罗,至于是不是攻击他的眼睛?这是我瞎猜的。但瞎猜也有原因,因为在《加拉太书》中,保罗到了加拉太这个地方,因为他眼睛有病,所以加拉太的人都想挖出自己的眼睛给保罗,就这么个关系。保罗跟加拉太人的关系还是蛮铁的,所以我们就以为这个刺儿就是眼睛。那这个事儿是啥呢?这个是撒旦的差役攻击保罗。
我得告诉你啊,一个服侍人的不经历撒旦的猜疑和攻击是很难的,但是你要不要?仍然要。为啥每一次的攻击都看见神的恩典?听明白了吗?都是神的恩典,不用怕。我们一旦骄傲了,坏了。肯定知道,立刻知道。
其实我们很多弟兄姐妹身上也是,也有这种印记。就是一旦犯罪了,立刻知道。撒旦的仆役就来了。我想这个刺儿不一定是病,有可能是别的,有的人是叫做难受。
Q8:为什么保罗求主三次?
保罗求主一次,神没告诉他答案;求主两次,没告诉他答案;求了第三次,神说﹐我的恩典够你用的。然后从此以后就不再求这事儿了。
所以咱们弟兄姐妹一定要知道,我们的肉身一天天朽坏,正常。但是我们的灵一天一天的更新。我们活着,已经不再是我活着,是耶稣基督活在我们里面。
今天的答疑就到这。谢谢大家!愿神祝福大家!愿神也兴起大家成为得人如得鱼的人。阿们!
여러분 안녕하세요. <고린도후서> 12장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이 장 역시 고린도 서신의 한 부분이며, 그렇게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고린도후서>가 어떻게 전해졌는지에 관해서는 당시 문헌을 정리할 때 두 편지를 혼동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장의 주제는 무엇일까요? 주제는 바로 "내가 구하는 것은 여러분 자신이요, 여러분의 재물이 아니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능력이 사람의 약함 가운데서 온전해진다고 말합니다. 이 말을 하는 목적이 무엇일까요? 바로 한 가지 사실, 즉 얻고자 하는 것은 여러분의 재물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이라는 점을 밝히기 위해서입니다.
1. 나는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다
바울이라는 사람은 매우 진솔하고 순수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포장하지도 않았고, 유명한 스타 목회자로 만들지도 않았습니다. 만약 오늘날 사람들의 사고방식대로라면 유명 목사로 자신을 포장했어야 맞지 않겠습니까? 왜 유명 목사로 만들려 할까요? 이점이 많기 때문입니다. 제가 알기로 어떤 목사님들은 일 년 일정이 꽉 차 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외부 강사를 초청하기를 매우 좋아하며, 그중에서도 가장 초청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 바로 유명 목사들입니다. 유명 목사를 초청할 수만 있다면 대단한 일로 여깁니다. 그런데 저에게는 한 가지 염려가 있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을 강사로 초청하지 않다 보니, 여러분이 매일 제 설교만 들으면 지루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입니다. 여러분이 지루해하지 않는다면 저는 그것만으로도 하나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바울이 "내가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다"고 말한 목적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여러분의 재물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을 얻기 위함이었습니다. 만약 여러분의 재물을 얻고자 했다면 아주 간단하지 않았겠습니까? 유명 목사로 이미지를 만들고 브랜딩하고 포장하면 대단했을 것입니다. 가장 최신의 마케팅 기법을 써서 셋째 하늘에 이끌려 올라간 일을 두고 곳곳에 다니며 선전했을 것입니다. "내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올라갔습니다! 그곳에서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비밀한 말을 들었고, 엄청난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왜 내 말을 듣지 않습니까? 왜 내가 유명 목사가 되지 못하겠습니까?"
유명 목사를 초청해서 도대체 무엇을 하려는 걸까요? 저는 초청하지도 않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런 것을 대단하게 여기지도 않고 초청할 형편도 되지 않습니다. 미국의 유명 목사를 초청하려고 전화를 걸면 정작 그 목사는 전화를 받지도 않습니다. 거물급이라 앞뒤 좌우로 검은 옷을 입은 경호원들이 둘러싸고 있어서 가까이 다가갈 수도 없습니다. 전용기를 타고 날아오는데 우리가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전용기를 한번 띄우는 데 얼마나 많은 돈이 듭니까? 여러분 아십니까? 오늘날 사람들은 유명해지는 것을 매우 좋아합니다. 유명 목사가 되면 엄청난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현금화 능력은 매우 강력합니다. 유명 목사에게 한 시간 설교를 맡기는 데 얼마가 드는지 아십니까? 최소 5천 달러입니다. 그것도 순수 강사료일 뿐이며, 숙소도 마련해 주어야 합니다. 싱가포르라면 마리나 베이 샌즈 같은 최고급 호텔을 잡아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고급 레스토랑에 데려가 식사를 대접하고 관광도 시켜줘야 합니다. 스포츠카 타는 취미가 있다면 스포츠카도 태워줘야 하고, 낚시를 좋아하면 낚시터에도 데려가야 합니다. 정말이지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어떤 선지자가 매우 탁월한 말을 했습니다. 교회가 미국으로 건너가더니 기업이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제게 묻는다면 저는 그런 것을 정말 하찮게 여깁니다. 미국의 목사들은 사회적 기업가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싱가포르의 목사들이 그것을 본받으려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배울 게 없어서 왜 그런 것을 배웁니까? 그들은 안식일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우리에게는 그런 안식일이 없습니다. 우리는 일주일에 7일, 일 년에 52주, 20대부터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쉬지 않고 달려왔습니다. 정말 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일부 형제자매들의 상황을 화면 너머로 보고 있노라면 참으로 안타깝고 애가 탑니다. 집을 살 때 앞뒤 가리지 않고 나중에 집값이 반토막 날 줄도 모른 채 레버리지를 잔뜩 끌어다 샀습니다. 그 레버리지라는 지렛대를 쓰다가 자기가 갇혀 버려 지금 몹시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수입보다 지출이 많은 것을 볼 때 목회자의 마음이 타지 않겠습니까? 정말 마음이 탑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형제자매들이 하루빨리 복을 받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사기를 당하거나 투자에 실패한 사람들도 오직 돈 버는 것만 생각했지 손해 볼 것은 잊어버린 것입니다. 미국의 기업가들을 어설프게 흉내 낸 탓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사역들은 온갖 잡다한 것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바울은 계시를 받았지만 그것을 떠벌리지 않았습니다. 왜 말하지 않았을까요? 그가 말하고자 한다면 할 말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그런데 왜 말하지 않았을까요? 바울은 브랜드를 만들고 유명 목사가 되어 재물을 긁어모으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목적은 사람을 얻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사람을 얻습니까? 수많은 사람의 설교 집회에 200명이 모이면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모이는 숫자가 적으면 나는 안 갑니다. 나를 초청하려면 최소한 야외 경기장은 되어야 하고, 최소한 1만 명, 3만 명, 5만 명은 되어야지 적으면 안 갑니다." 그 3만 명, 5만 명 앞에서 강단에 서는 것은 쇼를 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제가 장담하건대, 제가 하는 일은 모두 그와 정반대의 길을 갑니다. 저도 그런 일을 겪어 보았습니다. 스무 명이 오면 저는 제대로 사역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그냥 그 스무 명과 나누면 되지 않습니까?"라고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나누고 나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인터넷으로 제 설교를 들으면 그만이지 않습니까?
그 스무 명과는 인격적인 관계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저는 대형 집회 같은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두세 사람, 한두 사람과 실질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좋아합니다. 당신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최근에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를 다룹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제가 "내가 이런 계시를 받았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거의 듣지 못했을 것입니다. 저는 그런 짓을 거의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이 깊이 알았듯이, 저 역시 하나님의 뜻은 목양에 있음을 깊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목양이며,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는 것입니다. 강단에서 설교 한 편 한다고 밑에 있는 물고기들이 다 당신을 따라올 것 같습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것은 쇼에 불과하며, 그 관계는 지극히 허황된 것입니다.
즉, 강단 아래 앉아 있는 사람이 골반 통증을 앓고 있어도 유명 목사는 위에서 계속 설교만 할 뿐, 그 사람의 골반은 여전히 아프고 그 목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저를 찾아오면 여러분의 골반 통증은 곧 저의 아픔이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아플 때 제 골반도 함께 아픔을 느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구하는 것은 재물이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 안에 거하기만 하면 그 인생은 온전해지며 참으로 강력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에는 그런 허황된 겉치레나 포장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순수합니다. 표적과 기사가 많습니까?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표적과 기사로, 당신의 임재로 우리를 친히 증거해 주십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으며, 그 어떤 유명 목사보다 뒤처지는 것도 거의 없다는 사실입니다. 다만 우리는 유명 목사 행세를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뿐입니다. 오늘날의 목사들은 이런 것을 몹시 좋아하면서도 정작 성도 개인의 문제에는 관심이 없으니, 이야말로 해괴한 일입니다.
때로는 제가 말이 거칠고 여러분에게 요구하는 기준이 높아 보일지라도, 제 마음속은 몹시 조마조마합니다. 여러분이 감당하지 못할까 봐 두렵고, 그 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을까 봐 염려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요구를 여러분에게 전하지 않을 수 없기에 요구하지 않을 수도 없고, 전하자니 여러분이 너무 큰 부담을 느낄까 걱정이 되니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목회자는 성도를 통해 이득을 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한 가지 자랑할 수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서 어떠한 이득이라도 취한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한번은 어느 형제의 가정을 심방했는데, 그가 술 한 상자를 선물로 가져왔기에 차에 도로 실어 놓으라고 돌려보냈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바라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갈망하는 바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하여 재물을 모으는 것이 마땅하지, 자식이 부모를 위하여 재물을 모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목양은 이와 같은 관계를 세워야 합니다. 바울이 말했습니다.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하지 아니하리라 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두노라 (<고린도후서> 12:1-6)
바울은 왜 이런 이야기를 길게 하지 않았을까요? 그런 말을 많이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말을 늘어놓고, 또 어떤 이들은 그런 말을 듣기를 좋아합니다. 예를 들어 어떻게 성령의 찌릿한 감전을 경험했는지, 어떻게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는지 따위의 말들입니다. 그런 말을 해서 도대체 무엇 하겠습니까? 단지 그 사람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릴 뿐입니다. 하지만 그가 대단하다는 것을 안다고 한들 여러분 자신의 문제는 어떻게 됩니까? 상대방은 여러분의 문제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저는 이런 경우를 수도 없이 보았습니다. 한번은 어떤 목사님과 같은 숙소에 머물며 함께 특별 성회에 참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의 문제를 누가 돌봐줍니까? 그는 20년 된 요추 질환을 앓고 있었고, 우울증으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의 스승 목회자들은 모두 유명 목사들이었습니다. 저는 '어째서 저 유명 목사들은 그의 문제를 돌보지 않는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수년 동안 이러한 질병의 고통과 악습에 짓눌려 있었습니다.
만약 제가 맡았다면 철저히 다루어 어떻게든 그를 바로잡아 복을 받게 했을 것입니다. 그 사람은 참으로 비참하게 방치되어 있었고, 그의 스승 목사는 "하나님의 긍휼을 빕니다!"라는 한마디 말만 던질 뿐이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도대체 무슨 목양인가 싶었습니다. 그 유명 목사의 제자는 저에게 자신의 스승이 누구인지, 자기가 누구의 제자인지 늘어놓았는데 모두가 대단히 유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결과가 어떠합니까? 저는 "이게 무슨 유명 목사란 말인가?"라며 깊은 탄식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일은 비일비재합니다. 또 찬양과 경배를 가르치며 사람들을 이끄는 매우 유명한 사람이 있었는데, 정작 귀신을 쫓아내야 할 실제 상황이 닥치자 무기력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사냥하러 다닐 시간은 있어도 양 떼를 칠 시간은 없고, 스포츠카를 즐길 시간은 있어도 목양할 시간은 없으니, 교회를 기업으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그런 교회가 사람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을 얻겠습니까? 길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들만 얻을 뿐입니다. 바울은 무엇이라 말합니까? 바울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고자 했습니다. 비록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었지만, 결코 자기 이름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자랑하려거든 오직 자신의 약함을 자랑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능력이 자신을 붙들어 주시도록 약한 것을 자랑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사람이 자기 이름을 드러내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은 꼭 기억하십시오. 나중에 저에 대해 신상 털기 같은 것을 하지 마십시오. 그런 것을 해서 제 이름을 알아내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 이름은 결코 중요하지 않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이 중요합니다.
2.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바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십니까? 그에게는 몸에 가시가 하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바울을 보라, 눈에 병이 있다"고 수군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바울의 그 가시가 무엇이었을까요? 전해지는 바로는 그의 눈병이 아무리 기도해도 낫지 않았다고 합니다. 바울은 이 가시를 떠나가게 해 달라고 주님께 세 번이나 간구했습니다. 그것은 그를 끊임없이 공격하는 사탄의 사자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바울을 봐라, 어떻게 눈이 저 모양일 수 있는가?"라고 비난했습니다. 바울은 부득불 그들에게 "내게 약함이 있다"고 말해야만 했습니다. 바울이 받은 계시가 너무나 컸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이 가시로 인해 시험에 들었습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은 병에 걸리면 "나에게도 가시가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렇게 큰 계시를 받은 적이 없는데 그 가시가 왜 필요하겠습니까? 온몸이 가시투성이입니까? 바울은 받은 계시가 너무 커서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가시를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받은 계시도 미미하고 자만할 기회나 자격도 없으면서 "어? 나에게도 가시가 있네"라고 말합니다. 알고 보면 그녀는 가시를 가진 것이 아니라 남편의 뼈 중의 골시요 살 중의 가시이며, 본인 자체가 남에게 찌르는 가시일 뿐입니다.
바울이 왜 이 가시를 얻었을까요? 하나님께서 그로 하여금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의지하도록 깨닫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저는 이 말씀을 매우 깊이 깨달았습니다. 왜일까요?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되려면 반드시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해야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런 일을 겪을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가 반드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자신을 자랑하고 스스로 강하다고 여길 때 하나님의 능력은 떠나가지만, 우리가 스스로 약하다고 여기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낄 때 도리어 능력이 나타납니다. 이 일에 대해 저는 하나님 앞에서 친히 증언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바울과 같은 약함을 결코 업신여기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바로 그 약함으로 인해 자신이 무능함을 알았기에 하나님께서 그를 유능하게 쓰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이 스스로 잘났다고 여기는 순간, 자신이 무능함을 보게 될 것입니다. 때로는 자신이 대단하다고 뽐내다가 바로 다음 날 큰코다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엄청난 계시를 받았다고 자랑하다가 다음 날 넘어져 발목이 삐고 다리가 퉁퉁 붓는 식입니다. 사람들은 허풍 떨기를 좋아하여 큰소리를 쳐놓고는 스스로 대단하다고 여깁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실제로 바울을 직접 보았다면 시험에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왜일까요? 여러분의 마음속에 '강자의 논리'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되거나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가 되어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데는 반드시 '약자의 논리'가 필요합니다. 무엇이 강합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하십니다. 사람이 약해야 예수가 강해지는 것, 사람의 내면에 바로 이 논리가 서 있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스스로 대단하다고 여기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얼마나 어리석은 자인지를 증명해 보이십니다. 다음 날 영문도 모른 채 머릿속이 멍해져서 참으로 부끄러운 짓을 저지르게 만드십니다. 자신이 대단하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섬기고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려면 여러분은 반드시 약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의 가르침들을 보면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부족하고 그들에게 허물이 많았다고 말합니다. 또한 다윗의 조상 중에 라합과 룻이 있어 음란의 뿌리가 있었다며 다윗도 온전치 못했다고 말합니다. 제가 듣기에는 참으로 궤변 같습니다. 라합이니 음란이니 하는 것들 말입니다. 하지만 분명히 말씀드리건대, 천만다행으로 그들이 완전한 사람이 아니었고 많은 허물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에게도 기회가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만약 그들이 세상에서 흠 하나 찾아볼 수 없는 순종의 완전무결한 사람들이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온통 흠투성이인 우리에게 무슨 기회가 있겠습니까? 사람이 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길을 가야 합니까?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사람이기에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고 '여겨' 주시는 것이며, 결과적으로 우리를 온전한 자로 여겨 주시기에 우리에게 기회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저는 기꺼이 저의 약함을 자랑하겠습니다. 여러분은 결코 저의 약함 때문에 시험에 들지 마십시오. 저 자신에게 너무나 많은 허물이 있다는 것을 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때로는 저도 제갈량처럼 자신을 악의나 소진 같은 인물에 빗대어 보기도 합니다.
솔직히 저도 자신을 바울과 비교하고 싶지만, 바울과 비교하면 낭패입니다. 바울의 약함이 제게도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지혜롭고 손재주가 좋으며 지식과 능력이 출중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사업을 했더라도 분명 성공했을 것입니다. 재능도 많고 지식도 풍부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낚는 어부로 그를 부르셨기에 그에게 가시를 주셨습니다. 왜일까요? 교만해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대단해 보이기 쉽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단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결코 저를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십시오. 우리는 아무도 완전한 사람이 아니며, 오직 하나님의 능력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자랑하려거든 제 안에 수많은 허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여 그리스도의 능력이 우리를 덮으시는 것을 자랑해야 합니다. 자신의 약함을 자랑해야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될 수 있고, 여러분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와, 목사님은 참 대단하시다, 하시는 일을 보라"고 생각하기를 결코 원치 않습니다. 결코 사람의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수년 전에 저는 이미 깨달았습니다. 비록 제가 유능하고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했을지라도 제 인생의 운명조차 스스로 통제할 수 없었습니다. 가령 일자리를 구하고 싶어도 구해지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 일을 좋아했지만 그 일이 나를 좋아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 후 저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웠고, 이것이 참으로 아름다운 일임을 발견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신뢰할 때 은혜를 받으며, 자신이 강하다고 여길 때 약해집니다. 반대로 자신이 약하다고 인정할 때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강하심을 보게 되며, 교회를 세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명성을 널리 알리려 하지 말고, 도리어 자신의 약함을 전하여 모든 이에게 기회가 있음을 알게 하십시오. 어떤 사람들은 "목사님은 완전한 분이시고 정말 대단하십니다"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화인 사명 신학이 오늘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은 저 역시 옳지 못하게 행할 때가 있음을 늘 자각하기 때문입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완고함으로 따지자면 얄팍한 지식 몇 가지와 하나님의 말씀 쥐뿔만큼 알면서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니며 전혀 말이 통하지 않는 완고한 사람들을 당해낼 수 없습니다. 그런 자들은 죽어서 천국에 갈 것이라 굳게 믿지만, 겉모습을 보면 예수님의 모습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습니다.
때로는 제가 찬물을 끼얹듯 말해 줍니다. "어느 날 갑자기 저승사자가 좌우에 나타날 때, 당신은 자기가 어디로 가야 할지 알게 될 것입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지나친 자신감에 차서 이미 구원받았다고 확신하지만, 성경을 제대로 읽어 보십시오. 바울조차 자신이 겨우 구원에 이르는 과정에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3. 섬김은 재물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여러분 앞에 분명하게 자랑할 수 있습니다. 믿기지 않는다면 충분한 시간을 두고 천천히 살펴보십시오. 일평생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으면서 여전히 맘몬을 섬긴다면, 그것이야말로 인생 최대의 비극입니다! 사람의 마음속에 숨겨둔 탐욕은 쉽게 제거할 수 없습니다. 재물을 목적으로 삼는다면 자신을 과시하고 브랜드를 만들어 유명 목사가 되려 할 것이며, 자신의 영적 경험들을 자신을 치장하는 밑천으로 삼을 것입니다. 재물을 위해 섬기는 것이 아니라면 왜 그런 것들을 꾸며내겠습니까? 재물을 좇지 않고 오직 사람을 축복하고자 하는 우리의 중심을 여러분이 엄격히 지켜봐 주시기 바라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끊임없이 채찍질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누구에게서 이득을 취한 적이 있습니까? 우리는 오직 베풀기만을 원하며, 이는 확고부동한 결심입니다! 우리가 전하고자 하는 논리가 바로 이것이며, 수많은 사람에게 축복의 통로가 되고자 함입니다. 우리는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함이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본을 따르고자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 땅에서 본받아야 할 분은 오직 주 예수님뿐입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좋은 것이며, 사람들은 무엇이 지혜인지 잘 모르지만 이것이 참된 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를 먹이시고 입히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운데 한 사역자가 이런 말을 했는데, 제가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달은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만 해 드리면 다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을 결코 잊지 마십시오. 일평생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만이 문제를 해결하는 길임을 모른다면 그것이야말로 비극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가운데 소그룹 사역자든 구역장이든 혹은 저 자신이든 간에, 여러분 앞에 나아가 돈을 빌리거나 사적인 부탁을 한다면 큰일 난 줄 아십시오. 여러분은 마음속으로 '끝장이구나, 귀신이 들렸구나. 하나님,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은 틀림없이 귀신에게 사로잡힌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섬김이란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거저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들은 "남에게서 취하지 않으면서 무엇으로 베풀겠습니까? 재물을 위하지 않는다면서 무엇으로 사람을 축복하겠습니까?"라고 묻습니다. 그러나 정반대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때 비로소 사람을 축복할 수 있습니다!
오늘 저는 깊은 감회를 느낍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이 우리를 본받고, 사도 바울을 본받으며, 바울과 함께 이 길을 달렸던 디도를 본받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누구에게서도 이득을 취하지 않고 오직 같은 본을 따라 하나님의 양 떼를 목양하며 그들이 영적 유익을 얻도록 섬기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제가 자주 하는 말을 들었을 것입니다. 비록 실망할 때가 훨씬 많지만 말입니다. "내가 오늘 여러분을 섬긴 것처럼, 여러분도 다른 사람을 그렇게 섬기십시오." 물론 우리 중에는 제가 직접 섬길 기회가 없었던 분들도 많습니다. 직접 섬길 수 있다면 하나님께 감사할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 안의 모든 사역자가 이 길을 걷기를 간절히 바라며 스스로 물어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사람에게서 이득을 취하고 있는가?"
단언컨대 남에게서 부당한 이득을 취해서는 안 됩니다. 왜 안 됩니까? 사리사욕을 챙기면 하나님의 진노를 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사면 이 땅에서 온전히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품고 섬겨야 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곤궁하고 궁핍할 때 우리가 섬기는 것은 부유한 사람을 섬기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사실 재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람을 우리가 굳이 무엇 때문에 특별히 섬기겠습니까? 재정에 문제없고 몸도 건강하며 가정도 평안한 사람은 저를 별로 찾지도 않으며, 솔직히 그도 저를 귀찮아하고 저 역시 그에게 얽매이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누군가 저를 찾아와 "목사님, 오늘 기쁜 소식을 나누고 싶습니다"라고 한다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저와 함께 이 기쁨을 나눠주시겠습니까?"라고 하는 사람을 지금까지 거의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전화가 걸려 오면 대개 이런 식입니다. "목사님, 죽겠습니다. 어지럽고 눈이 아프고 위가 쓰리고 열이 납니다." 머리가 아프든 엉덩이가 아프든 아니면 마음이 괴롭든, 늘 이런 문제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이러한 섬김은 진실로 부모의 심정으로 양 떼를 돌보는 것입니다. 부모의 마음이란 건강하고 강성한 자녀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 법입니다. 부모의 마음은 늘 가장 약한 자식에게 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자녀가 다섯 명 있는데 그중 한 아이가 허약하다면 마음에 걸리지 않겠습니까? 밖에서 승승장구하는 자식은 부모가 크게 간섭하지도 걱정하지도 않습니다. 제 어머니께서도 저에 대해서는 거의 걱정하지 않으시고 늘 제 동생만 염려하십니다. 사람의 마음은 본래 그러합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돈을 위해 섬긴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 사역자 중에는 이전에 섬기던 교회의 목사에게 "목사님, 저를 섬겨주신 것처럼 모든 성도를 그렇게 섬겨주실 수는 없나요?"라고 물었던 경험이 있는 분이 있습니다. 그러자 그 목사는 "내가 모든 사람을 당신처럼 대하면 피곤해서 죽습니다"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십니까? 그 성도에게 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묻겠습니다. 여러분이 양이라면 그런 목사를 계속 따르겠습니까? 따르기 어려울 것입니다. 문제에 부딪혀 그를 찾아갔을 때 큰 낭패를 보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에게 돈이 없다는 것을 알면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교회의 사람들은 참으로 어리석어서 "바울은 교활한 놈이라 여러분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한다. 왜 사로잡으려 하겠는가? 여러분에게서 단물을 빨아먹고 이득을 취하려는 것이다"라고 비난했습니다. 고린도 사람들의 논리가 바로 이러했습니다. 사람은 자기 마음에 품은 악한 생각을 남들도 똑같이 품고 있을 것이라 여깁니다.
자기가 그렇게 생각하니 남도 당연히 그럴 것이라 착각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베드로를 따르던 무리는 그것이 습관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우리 우두머리도 그렇게 하니 사도 바울이라고 별수 있겠는가? 가장 큰 사도라는 자도 저 모양인데 바울도 마찬가지겠지'라며 오직 돈 때문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실상이 그렇습니까?
장담하건대 저는 어리석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결코 여러분을 짐스럽게 하지 않으며, 제 곁에 있는 동역자들이 이를 증언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들을 소나 말처럼 부려 먹지 않으며, 도리어 제 자신이 소가 되고 말이 되어 섬깁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저는 여러분을 존귀한 사람으로 대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여러분에게 참된 본을 보여주어 사역이란 마땅히 이러해야 함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그 동역자들도 지금 이 자리에 있고 제 설교를 듣고 있습니다. 만약 제가 거짓말을 한다면 그들이 밑에서 당장 반박하고 나섰을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하여 재물을 쌓고 수고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실제로 아흔이 넘은 노인도 자신의 연금을 아껴 자식에게 물려주려 합니다. 아흔 살 노인도 그러할진대, 자신을 위해 쓰지 않고 자식을 지극히 사랑하기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4. 모든 것은 여러분을 세우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바울의 진심 어린 고백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이 모든 것은 너희의 덕을 세우기 위함이니라." 왜 이런 말을 했을까요? 듣기에 거북할 수 있는 이런 말을 왜 굳이 꺼냈을까요? 모두 여러분의 유익을 세우고, 여러분을 향한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를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바울은 매우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고린도에서 교회를 개척하고 1년 6개월, 즉 18개월 동안 머물렀습니다. 18개월 동안 교회를 세운 후 고린도를 떠났고, 그 후에 베드로 일행이 찾아왔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에 머문 18개월 동안 고린도 성도들에게 결코 짐을 지우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직 관계가 깊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관계의 깊이에 따라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명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 18개월 동안 오직 그들을 세우기 위해 힘썼고, 털끝만큼도 그들에게서 이득을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즉 그들에게서 아무것도 받지 않고 깊은 신뢰의 관계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고린도 교회는 결국 등을 돌리고 배신했습니다.
18개월 동안 고린도 성도들에게 짐을 지우지 않았다는 말은 듣기에 씁쓸한 말입니다. 바울이 마케도니아 교회에는 그렇게 하지 않았음을 알아야 합니다. 마케도니아 성도들과는 관계가 매우 돈독했기에 <마케도니아전서>나 <마케도니아후서> 같은 편지를 쓸 필요조차 없었습니다. 18개월 동안 바울이 고린도 사람들과 맺은 관계는 고작 '모든 것이 그들을 세우기 위함'이라는 선에 머물렀을 뿐이며, 고린도 사람들은 그 관계의 친소(親疎)가 얼마나 큰 차이를 낳는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신발 끈 하나조차 받지 않는 관계라면, 결국 우리의 관계는 '신발 끈 한 가닥'에 불과한 얕은 관계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고린도 사람들은 바울에게 베풀 마음조차 없었습니다. 바울이 받지 않은 것뿐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만약 관계가 깊어졌다면 고린도 성도들이 바울에게 줄 때 바울은 관계를 세우기 위해 기꺼이 받았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저와 제 어머니의 관계를 보십시오. 어머니께서 "내가 너한테 돈을 얼마나 많이 쓰게 하니?"라고 하시면 저는 "어머니는 제 어머니이신데 제 돈을 어머니께 안 쓰면 누구에게 쓰겠습니까?"라고 말씀드립니다. 이것이 바로 온전한 관계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고린도 성도들이 진심으로 바울을 섬기고자 했다면 바울이 굳이 그렇게 많은 해명을 늘어놓았겠습니까? 그들은 베드로가 위대하다고 여기지 않았습니까?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연보를 모을 때도 바울이 행간에 자극적인 표현을 써가며 권면해야만 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에서 보낸 18개월 동안 맺은 관계는 기껏해야 그 정도 수준에 머물렀고, 고린도 사람들은 매우 육신에 속해 있었습니다. 그들 내면의 세상적인 논리 체계는 18개월의 목양을 거치고도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관계가 깊어지지 않았을 때는 저 역시 여러분 안의 세상적 논리 체계를 감히 깨뜨리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관계란 그런 것입니다.
제가 제대로 건드리기도 전에 여러분은 "목사님이 나를 무시한다"고 불평합니다. 하지만 남이 알아주는 것이 무슨 대수입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의 관계가 깊어진다면 행하는 모든 것은 오직 여러분을 세우기 위함입니다. 여러분에게서 신발 끈 하나를 취한들 어떻습니까? 마땅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관계가 깊어졌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은 여러분을 온전히 세워 영혼이 잘되고 육신이 강건하며 재정적으로도 형통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교회를 세우는 목적은 재물에 있지 않으며, 이는 거룩한 사명입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조차 고린도 교회에서 몇 가지 부분은 온전히 행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흠을 잡자는 것이 아니라 고린도 사람들을 온전한 사명 안으로 밀어 넣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사람을 세우는 데는 여러 단계가 있습니다. 고린도 수준으로 세워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마케도니아 수준으로 세워지는 사람이 있고, 골육친척과 같이 깊은 관계로 세워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저의 동역자들에 대해 자랑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드리라 해도 기꺼이 순종할 사람들입니다.
교회가 이처럼 온전한 일치를 이루어 내 것이 그의 것이고 그의 것이 내 것이 된다면 얼마나 강력하겠습니까? 내 것 네 것을 따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오늘날 우리 교회에는 하나님의 임재가 가득하며, 동일한 사명을 품고 동일한 길을 달려가며, 한 가지 일을 위해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수고와 헌신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저의 동역자들을 자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들 역시 오직 여러분을 세우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붓고 있습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여러분에게 동역자들을 흠잡을 기회를 주려는 것이 아니니, 아직 그런 수준에 이르지 못한 분들은 더욱 힘써 앞으로 달려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목회자는 관계를 세워야 합니다. 관계를 세우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목회자가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합니까? 재물이 목적이 아니라 오직 사람을 세움으로써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사람을 얻을 수 있습니다. 바울이 "내가 구하는 것은 너희의 재물이 아니요 오직 너희니라"고 고백한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목회자가 여러분을 위해 애가 타는 것은 진심입니다. 비록 우리가 얼굴을 직접 보지 못했고 만나보면 평범한 외모일지라도, 영 안에서는 서로 통하며 실제로 만났을 때는 오랜 친구처럼 다정합니다.
때로는 지극히 다루기 힘든 상황이 닥치면 사역자들이 저를 찾아와 "우리 가운데 이런 형제, 이런 자매가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묻고, 저는 뒤에서 지혜를 모아줍니다. 그리고 마침내 만나게 되면 정말이지 더할 나위 없이 친밀해지며 결코 거짓이 없습니다.
5. 이것이 바로 목양의 관계이다
이러한 고백을 통해 바울이 비록 무겁고 따끔한 말을 썼을지라도 참된 목양의 관계를 세우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야 고린도 교회는 바울의 중심에 있는 아비와 어미의 심정을 진정으로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양을 더 많이 사랑할수록 도리어 사랑을 덜 받게 되는 기이한 현상이 종종 일어납니다. 참으로 묘한 일입니다. 가정에서도 부모가 유독 더 사랑하는 자식일수록 부모를 덜 사랑하는 기괴한 일이 벌어지곤 합니다.
그러나 건강한 목양 관계를 세우려면 부모의 마음을 품는 동시에 사람의 육신적인 악습을 깨뜨려 주어야 합니다. 사람의 눈이 상대방의 주머니 속 돈에만 머물러 있다면 진정한 섬김을 할 수 없습니다. 목회자라는 직분을 가지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하지 않고 오직 사람의 비위만 맞추려 든다면, 그것이야말로 인간의 비극입니다.
과거 어떤 통계에 따르면 목사의 암 발병률이 일반인의 두 배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 통계의 진위는 알 수 없으나 수많은 목사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원인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양 떼를 성심껏 목양하지 않고,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려 하지 않으며, 오직 성도들의 주머니 속 재물만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 관계가 건강할 수 있겠습니까? 왜 그런 일이 일어납니까? 영적인 높이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영적 고지에 올라서지 못하고 이러한 깨달음이 없다면 이와 같은 결단을 내리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이 끊임없이 영적 정상에 올라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더 깊은 인식을 갖추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하면 비로소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우리는 재물을 위하지 않기에 담대하게 선포할 수 있다." 여러분이 목회자가 되어보면 알겠지만, 남에게 얻어먹으면 말이 유순해지고 남의 것을 받으면 손이 부끄러워집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적 차원이 충분히 높아지고 우리가 하는 일이 사람을 낚는 일임을 분명히 알 때, 우리는 담대하게 선포하여 사람들의 육신에 속한 악행을 깨뜨릴 수 있습니다.
오늘날까지 우리 가운데 어떤 형제자매들은 참으로 효과적으로 깨어짐을 경험했습니다. 깨어지지 않으면 몹시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괴롭습니까? 괴롭습니다. 괴로운 것은 당연합니다. 왜냐하면 지나치게 육신적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사람들은 괴로웠겠습니까? 괴로웠습니다. 자신의 영적 차원이 너무 낮았기에 바울이 돈을 탐낸다고 지레짐작했던 것입니다. 자신들이 돈을 밝히니 소인의 심보로 모든 사람을 자기들처럼 여겼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두가 영적 정상을 향해 올라가야 합니다. 어렵습니까? 어렵습니다. 영적 정상에 오르는 것이 피곤합니까? 피곤합니다. 그러나 그 보상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큽니다. 하나님께 점점 더 가까워지고, 하나님의 보좌에 가까워지며, 하나님의 성전에 더욱 가까워집니다. 단언컨대 여러분은 돈보다 훨씬 더 귀한 존재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제가 여러분의 영적 성장을 얼마나 갈망하는지 아십니까? 여러분이 재정적인 결핍의 수렁에서 벗어나기를 얼마나 간절히 바라는지 아십니까? 우리 가운데 많은 형제자매가 결핍 속에 있을 때 제 마음은 겉치레가 아니라 진심으로 타들어 갑니다. 겨우 얼마 되지 않는 돈을 벌기 위해 얼마나 고되게 일하고 있습니까?
그러나 여러분에게 한 가지 길을 제시합니다. 영적 차원을 높이고 영적 정상에 올라 하나님을 향한 인식을 더욱 깊이 하십시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번성하고 형통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본래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돈보다 훨씬 값진 존재이며, 제 눈에 여러분은 너무나 존귀한 보배입니다.
훗날 제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주님께서 "내가 네게 준 한 은화로 몇 은화를 남겼느냐?"라고 물으시면, "열 은화를 남겼습니다!"라고 답할 것입니다. 어떻게 열 은화를 남겼습니까? "이 형제가 처음 왔을 때는 땡전 한 푼 없는 빈털터리였습니다. 그러나 영적 차원을 높이고 영적 정상에 오르며 육신의 악습을 깨뜨림으로써 이렇게 변화되었습니다. 풍성한 은혜를 부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형제자매 여러분이 끊임없이 영적 정상을 향해 오르기를 바랍니다. 고통의 날들은 지나갈 것이며, 가난의 날들도 지나갈 것이고, 질병의 날들도 지나갈 것입니다. 영혼이 흥왕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목양입니다.
솔직한 심정을 말씀드리자면, 여러분을 온전히 세우고자 하는 목회자의 애타는 심정을 이해한다면 여러분을 향한 높은 요구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화인 사명 신학에 오면 참으로 고단합니다. 학창 시절에는 숙제하는 것도 귀찮아했는데, 이곳에 와서도 과제를 작성해야 하니 말입니다. 그러나 과제를 작성하지 않고서 어떻게 영적 성장을 이루며, 어떻게 옛 삶에서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 충만하기를 원하며,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기이한 일을 끊임없이 행하시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이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장차 여러분 역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섬겼는지 본 대로 여러분 또한 일어나 다른 사람을 섬기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가 주님을 이토록 뜨겁게 사랑하는 것을 보시고 온전히 만족하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그분의 크신 권능을 더욱 풍성히 나타내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넘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