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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 사무엘하 7장 - 이것이 어찌 사람이 흔히 겪는 일이겠습니까?

2023-07-07 35,542 撒母耳记下 撒母耳记下 07章 撒母耳记下第七章 神的遗憾 建造神荣耀教会 建造神的殿宇 以神的心为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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撒母耳记下07章-拿单传信息给大卫
  • 1 王住在自己宫中,耶和华使他安靖,不被四围的仇敌扰乱。
  • 2 那时,王对先知拿单说:“看哪,我住在香柏木的宫中, 神的约柜反在幔子里。”
  • 3 拿单对王说:“你可以照你的心意而行,因为耶和华与你同在。”
  • 4 当夜,耶和华的话临到拿单说:
  • 5 “你去告诉我仆人大卫,说耶和华如此说:‘你岂可建造殿宇给我居住呢?
  • 6 自从我领以色列人出埃及直到今日,我未曾住过殿宇,常在会幕和帐幕中行走。
  • 7 凡我同以色列人所走的地方,我何曾向以色列一支派的士师,就是我吩咐牧养我民以色列的说:你们为何不给我建造香柏木的殿宇呢?’
  • 8 “现在,你要告诉我仆人大卫,说万军之耶和华如此说:‘我从羊圈中将你召来,叫你不再跟从羊群,立你作我民以色列的君。
  • 9 你无论往哪里去,我常与你同在,剪除你的一切仇敌。我必使你得大名,好像世上大大有名的人一样。
  • 10 我必为我民以色列选定一个地方,栽培他们,使他们住自己的地方,不再迁移;凶恶之子也不像从前扰害他们,
  • 11 并不像我命士师治理我民以色列的时候一样。我必使你安靖,不被一切仇敌扰乱,并且我耶和华应许你,必为你建立家室。
  • 12 你寿数满足、与你列祖同睡的时候,我必使你的后裔接续你的位;我也必坚定他的国。
  • 13 他必为我的名建造殿宇;我必坚定他的国位,直到永远。
  • 14 我要作他的父,他要作我的子;他若犯了罪,我必用人的杖责打他,用人的鞭责罚他。
  • 15 但我的慈爱仍不离开他,像离开在你面前所废弃的扫罗一样。
  • 16 你的家和你的国必在我(原文是你)面前永远坚立。你的国位也必坚定,直到永远。’”
  • 17 拿单就按这一切话,照这默示,告诉大卫。
  • 18 于是大卫王进去,坐在耶和华面前,说:“主耶和华啊,我是谁?我的家算什么?你竟使我到这地步呢?
  • 19 主耶和华啊,这在你眼中还看为小,又应许你仆人的家至于久远。主耶和华啊,这岂是人所常遇的事吗?
  • 20 主耶和华啊,我还有何言可以对你说呢?因为你知道你的仆人。
  • 21 你行这大事使仆人知道,是因你所应许的话,也是照你的心意。
  • 22 主耶和华啊,你本为大,照我们耳中听见,没有可比你的;除你以外再无 神。
  • 23 世上有何民能比你的民以色列呢?你从埃及救赎他们作自己的子民,又在你赎出来的民面前行大而可畏的事,驱逐列邦人和他们的神,显出你的大名。
  • 24 你曾坚立你的民以色列作你的子民,直到永远;你耶和华也作了他们的 神。
  • 25 “耶和华 神啊,你所应许仆人和仆人家的话,求你坚定,直到永远;照你所说的而行。
  • 26 愿人永远尊你的名为大,说:‘万军之耶和华是治理以色列的 神。’这样,你仆人大卫的家必在你面前坚立。
  • 27 万军之耶和华以色列的 神啊,因你启示你的仆人说:‘我必为你建立家室’,所以仆人大胆向你如此祈祷。
  • 28 “主耶和华啊,惟有你是 神。你的话是真实的;你也应许将这福气赐给仆人。
  • 29 现在求你赐福与仆人的家,可以永存在你面前。主耶和华啊,这是你所应许的。愿你永远赐福与仆人的家!”

《答疑解惑》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우리 함께 《사무엘하》 7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장은 정말 은혜로운 말씀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신 은혜가 형제자매 여러분의 삶 가운데 모두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것은 실로 엄청난 은혜입니다. 이 은혜가 얼마나 큰지 “이것이 어찌 사람에게 흔히 일어나는 일이겠습니까?”라고 할 정도입니다. 사람이 평생 이런 일을 단 한 번이라도 만날 수 있을까요? 우리가 평생 겪는 일들을 한번 헤아려 보십시오. 제가 보기에 사람들은 참으로 부정적인데, 왜냐하면 제가 본 많은 사람들이 불운과 불행 속에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 장에서 다윗이 경험한 일이 결코 사람에게 흔히 일어나는 일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다윗 자신의 감탄이기도 합니다! 사람은 왜 이런 일을 흔히 경험하지 못할까요? 사람들이 하나님의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여기서 매우 큰 아쉬움을 나타내셨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일에 관심을 갖는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렇다면 그것은 사람에게 흔히 일어나는 일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크나큰 아쉬움을 나타내시다

그 밤에 여호와의 말씀이 나단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가서 내 종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내가 살 집을 건축하겠느냐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부터 오늘까지 집에 살지 아니하고 장막과 성막 안에서 다녔나니 이스라엘 자손과 더불어 다니는 모든 곳에서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먹이라고 명령한 이스라엘 어느 지파들 가운데 하나에게 내가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위하여 백향목 집을 건축하지 아니하였느냐고 말하였느냐 (《사무엘하》 7:4-7)

하나님은 누군가를 기다리고 계신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없었지만,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가 나타나 “하나님, 제가 주를 위해 성전을 짓겠습니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다윗의 때에 이르러 다윗이 “하나님! 제가 주를 위해 백향목으로 성전을 짓겠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큰 감동과 감회를 느끼셨습니다. 오랜 세월 마음에 품고 계셨던 아쉬움이 드디어 다윗의 입을 통해 터져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사사들에게는 이 말씀을 하지 않으셨을까요? 그들에게 말해 보았자 의미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세월 동안 사사들은 하나님을 마치 걸레처럼 필요할 때만 사용했습니다. 일이 터지면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하나님이 사사를 세워 도와주시면 이스라엘 백성은 평안한 날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나면 하나님을 한쪽에 내팽개쳐 두고, 각자 자기 일에 바빠서 돌아가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정말로 큰 아쉬움을 느끼셨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이래로 하나님은 서운함으로 가득 차 계셨습니다. ‘내가 어떻게 저 사사들에게 나를 위해 백향목 성전을 지으라고 요구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말씀하지 않으셨지만, 마음속에는 ‘누군가 일어나 “하나님, 제가 주를 위해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하겠습니다. 하나님, 제가 주를 위해 영광스러운 성전을 짓겠습니다”라고 말해 주었으면’ 하는 간절한 소원이 있으셨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없었습니다! 안타깝지 않습니까?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언뜻 하나님께서 불평하시는 것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은 하나님 마음속에 있는 크나큰 아쉬움을 표현하신 것입니다.

지난 세월 동안 “하나님, 제가 주를 위해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하겠습니다”라고 말한 사람이 몇 명이나 있었습니까? 하나님께서 눈물을 흘리실 정도로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 도시에 대형 예배당을 짓겠다”고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우리 도시에 핫플레이스를 만들어 결혼식이든 어떤 행사든 여기서 열리게 하겠다”고 말합니다. 어떤 목사는 대형 예배당을 짓다가 3억 2천만 위안의 빚을 지고 결국 도망치기도 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한 일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지금 감히 자신 있게 말씀드리자면, 저는 기독교 역사를 보면서도 깊은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찌 아쉬움을 느끼지 않으셨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사도들의 시대 이후로 오늘날까지, 하나님을 위해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하고자 헌신한 사람이 몇이나 있었습니까?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하나님, 제가 감히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할 수 있는 이런 복을 누리게 되다니요!”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과 더불어 다니는 모든 곳에서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먹이라고 명령한 이스라엘 어느 지파들 가운데 하나에게 내가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위하여 백향목 집을 건축하지 아니하였느냐고 말하였느냐 (《사무엘하》 7:7)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지만, 사람이 먼저 말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도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다윗이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하나님의 마음에 맺힌 아쉬움을 알아차린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보시고 너무나 기뻐하시며 나단을 통해 다윗에게 말씀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이 일이 어떻게 시작되었습니까?

여호와께서 주위의 모든 원수를 무찌르사 왕으로 궁에 평안히 살게 하신 때에 왕이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볼지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에 있도다 (《사무엘하》 7:1-2)

다윗은 진심으로 하나님의 일을 염려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형제자매 여러분 모두가 다윗을 본받아 하나님의 뜻을 우리의 뜻으로 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자신이 잘 꾸며진 별장이나 인테리어가 멋진 집에 살면서 하나님의 전이 황폐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 태도를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전이 황폐한 이유는 사람 수가 적어서가 아니라, 교회 안의 사람들이 다 자기 일만 챙기고 교회 안에서 보험을 팔고 물건을 팔기 때문입니다. 정작 하나님을 위해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하고자 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알다

여러분이 ‘다윗이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그랬는가?’라고 묻는다면, 결코 아닙니다. 다윗의 내면에는 하나님의 아쉬움을 깊이 느끼는 마음이 있었고, 하나님의 뜻을 깊이 헤아리고 염려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사울과 사무엘, 늙은 엘리 제사장 시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블레셋 사람들에게 빼앗겼고, 이후 블레셋 사람들이 언약궤를 돌려보내자 언약궤는 아비나답의 집에 모셔져 최소 40~50년 동안 방치되었습니다. 그때는 사울이 왕이 되기 전이었고, 늙은 엘리에 이어 사무엘이 다스리던 20년 동안에도 사무엘은 언약궤를 신경 쓰지 않았으며, 사울 역시 돌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언약궤는 계속 아비나답의 집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 후 사울이 40년 동안 왕으로 다스렸고, 이어서 다윗이 헤브론에서 7년 반 동안 왕 노릇을 한 뒤 다른 모든 지파가 다윗에게 복종하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이 시점이 되어서야 비로소 언약궤를 다윗성으로 모셔왔습니다. 우리는 사무엘과 사울 모두 이 일을 신경 쓰지 않았던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안정을 찾자마자 가장 먼저 하나님의 언약궤를 다윗성으로 옮겨올 생각을 했습니다. 그 후 하나님께서 그를 평안하게 하사 주위의 모든 원수로부터 침략받지 않게 하셨습니다. 다윗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계셨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여호와를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너무나 기뻐하시며 나단을 보내 다윗에게 이렇게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내 종 다윗에게 이와 같이 말하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양치는 데 곧 양을 따르는 데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고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땅에서 위대한 자들의 이름 같은 이름을 네게 만들어 주리라 내가 또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곳을 정하여 그를 심고 그를 자기 곳에 살게 하고 다시 옮기지 못하게 하며 악한 종류로 전과 같이 그들을 해치지 못하게 하여 전에 내가 사사에게 명령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아니하게 하고 너를 모든 원수에게서 벗어나 편히 쉬게 하리라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사무엘하》 7:8-11)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 안에 들어간다면 이 말씀은 바로 여러분을 향한 말씀이 됩니다. 다윗은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었을까요? 다윗의 내면에는 매우 중요한 관점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팔자가 좋아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의 전부이심을 온전히 알았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을 아십니까? 저는 성경 전체를 통독하면서 단번에 하나님의 마음을 붙잡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바로 그분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장차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될 터인데, 이것은 실로 엄청난 일입니다. 신부는 한 개인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바로 교회를 가리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하는 것이야말로 성경 전체의 주제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이 성경 전체를 통해 하나님께서 나타내신 뜻입니다. 저는 늘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 저는 주를 위해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기를 원합니다. 저에게는 주의 임재가 필요하며, 주의 영광이 우리 가운데 충만하기를 간구합니다.’ 성경은 수없이 말씀합니다. 여러분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버릴 수 있습니까? 내려놓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쓰실 수 없습니다.

저는 제 자신이 참으로 복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복은 500년에 한 번 나올 만큼 큽니다. 이것이 어찌 평범한 사람이 흔히 만날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결코 흔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우리 가운데 오게 된 것도 결코 흔히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이 우리와 함께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하는 이런 복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 참으로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제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이 비전을 전할 때, 제 마음속에는 많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어떤 형제자매들은 교회의 가장 어렵고 혹독한 환경과 단계를 저와 함께 통과해 왔으면서도,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진정으로 그분의 영광을 나타내시려 할 때 떠나가 버렸습니다. 저는 참으로 깊은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결국 그들은 복을 누릴 팔자가 아니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하나님의 마음을 내 마음으로 품어야 합니다. 이것이 제가 하나님 앞에서 드리는 부르짖음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아쉬움은 모세로부터 다윗에 이르기까지 약 500~600년 동안 대대로 이어졌습니다. 다윗은 기원전 1000년경의 인물로 지금으로부터 약 3000년 전 사람이고, 모세는 지금으로부터 약 3500년 전 사람입니다. 모세부터 다윗까지 수많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하나님의 뜻에 깊이 들어간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500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것입니다!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쓰실 만한 그릇을 오랫동안 찾아 헤매셨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런데 제가 감히 이런 복을 누리게 되다니요! 때로는 이런 고백을 할 때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건축함은 흔히 얻을 수 없는 복이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짓는 데 얼마나 많은 금이 필요합니까? 다윗은 하나님의 성전을 짓기 위해 200톤의 금을 모았습니다. 성전을 지으려면 실력이 있어야지, 기둥 몇 개 세워 움막을 짓는다고 해서 성전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왜 사람들은 성전을 지을 마음을 품지 못했을까요? 손익을 따져 보니 돈이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세우려면 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정말 돈이 필요합니까? 필요한 것은 사람 중심의 굳은 뜻입니다. 하나님의 양 떼를 먹이고 돌보는 데 얼마나 큰 대가가 따르는지 아십니까? 막대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하고 성전을 세우는 일은 장난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계산해 보고 이리저리 재보며 “예산이 없다, 돈이 없다! 경제 사정이 좀 나아지면 그때 짓자”라고 말합니다.

왜 500년에 한 번 나올까요? 모세부터 다윗까지 어떤 사사도 일어나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짓자”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돈만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 당시 다윗이 정말 돈이 많았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오직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짓고자 했습니다. 성전을 건축하는 데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계시면 돈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는 이제 새로운 단계로 나아갈 것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바다의 풍부한 재물이 몰려올 것입니다. 우리가 짓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성전이며,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가운데 충만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훗날 다윗이 200톤이 넘는 금을 소유할 수 있었던 이유는, 처음부터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짓겠다는 마음을 품고 조금씩 모았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겨우 모은 1킬로그램에서 시작하여 점차 1톤, 10톤, 100톤으로 늘어났고, 마침내 200톤 이상을 모으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사람이 흔히 누릴 수 있는 복이 아닙니다. 인격과 성품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더욱이 하나님께서 그에 걸맞은 위치를 주셔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스라엘에서 다윗도 아니고 사울도 아니며, 구석진 시골 마을에서 밭 한 뙈기 부치며 찢어지게 가난하여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농부인데 성전을 짓겠다고 한다면 정신 나간 소리가 아니겠습니까? 자본도 없고 통솔력도 없다면 하나님께서도 그런 일을 맡기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건축하는 것은 참으로 흔히 누릴 수 있는 복이 아니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품은 이러한 뜻과 중심을 반드시 기억하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하고자 하는 뜻을 품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약속하신 이 복들을 부어 주실 것입니다. 결코 하나님과 거래하려 들지 마십시오! 우리는 이런 복을 얻기 위해서나 200톤의 금을 탐내어 성전을 짓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바라는 것이 그 200톤의 금이라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왜 이 복이 놀라운 복일까요? 첫 번째 복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복: 원수의 침략과 소란을 겪지 않음

여호와께서 주위의 모든 원수를 무찌르사 왕으로 궁에 평안히 살게 하신 때에 (《사무엘하》 7:1)

다윗이 성전을 지으려는 마음을 먼저 품었을까요, 아니면 사방이 평안하여 원수의 침략을 받지 않는 상황이 먼저였을까요? 성전을 짓고자 하는 마음이 먼저였고, 이때에 이르러 비로소 말로 표현한 것입니다. 다윗이 나단에게 말했습니다.

왕이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볼지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에 있도다 (《사무엘하》 7:2)

다윗의 마음속에는 항상 이 생각이 있었으며, 이제는 자신이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건축해야 할 때라고 여겼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에게 사방의 원수로부터 침략당하지 않는 평안의 복을 주셨습니다. 만약 한 나라가 주변의 외세로부터 끊임없이 침략을 당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복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업만 하면 망하고 손대는 일마다 꼬인다면 불행의 굴레에 갇힌 사람입니다. 그 이유는 마음속에 하나님의 뜻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안에 하나님의 뜻이 있다면, 비록 입 밖으로 “하나님을 위해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하겠습니다”라고 아직 고백하지 않았더라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지켜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내면에 이미 그러한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짓고자 할 때, 성전을 아직 짓지도 않고 나단에게 단 한 마디 건넸을 뿐인데도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사무엘하》 7:9)

당시에는 그 누구도 다윗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셨기 때문이며, 사람은 하나님을 이길 수 없습니다. 다윗을 대적하면 하나님께서 대적자를 멸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건축하는 것은 흔히 얻을 수 있는 복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 앞에 설 수 있는 원수가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두가 그러한 자들이었습니다. 다윗 역시 마찬가지로 원수의 침략과 방해를 받지 않았습니다. 원수가 쳐들어오려 해도 다윗 앞에서는 패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모든 원수를 멸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두 번째 복: 네 이름을 존귀하게 만듦

생각해 보십시오. 주변 사람들이 다윗을 공격하려다 다윗에게 패하고 완전히 제압당했습니다. 주변 나라들은 다윗이 대단하다고 여겼습니다. 다윗이 왜 대단했을까요? 다윗의 하나님이 위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이름을 위대하게 만드셨습니다. 즉, 주변의 열방과 백성 가운데 다윗의 배후에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계심을 모르는 자가 없게 되었고, 다윗의 이름은 하나님의 이름과 결속되었습니다. 만약 여러분의 이름도 하나님의 이름과 묶이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이름을 존귀하고 위대하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시장을 조금이라도 연구해 보신 분이라면 ‘이름’이 곧 ‘명품 브랜드’임을 알 것입니다. 내가 가방 하나를 만들어 100위안을 남길 때 명품은 2,000위안을 남깁니다. 내가 만든 가방을 2,000위안에 팔 때 명품은 20,000위안에 파는데 어떻게 경쟁하겠습니까? 명품 브랜드의 이윤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이름을 크게 높이시자 다윗은 그 지역 최고의 명품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에게 돈이 부족했을까요? 전혀 부족하지 않았습니다. 훗날 다윗이 200톤이 넘는 금을 가지게 된 배경이 무엇입니까? 사람들이 다윗에게 가져다 바친 것입니다. 다윗조차 왜 갖다 주는지 모를 정도로, 사람들은 다윗의 명성과 영향력에 편승하고자 했습니다. 다윗은 강력한 사람이었습니다. 적이 오면 패하고 경쟁자가 맞서면 다윗의 손에 무너졌습니다. 다윗이 엄청난 부를 누릴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당연히 그렇습니다! 역사적 기록을 보더라도 다윗 왕조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번영하고 강성한 왕조였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은 왜 날마다 돈이 없다고 탄식합니까? 이름값이 너무 작고 명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브랜드를 가꾸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 원리이니 헛된 일에 매달리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하고 있다면 어떻게 불행과 실패를 연속으로 겪겠습니까? 다윗이 그런 불행을 겪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아브라함부터 다윗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이름을 창대하게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을 구한다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여러분의 이름을 크게 높이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하든지 여러분의 대적은 하나님의 대적이 될 것입니다.

가장 두려운 것은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의 대적이 되는 것입니다. 일하다 보니 어느새 하나님의 징계 대상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사람이 왜 실패하고 꼬일까요?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다루시기 때문입니다. 본래는 잘 풀리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손을 대시니 모든 투자가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이름을 높이는 데 급급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자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그의 이름을 크게 높여 주십니다. 이는 본질적으로 거래가 아닙니다. 다윗의 마음에 진정으로 하나님이 계셨기에 하나님께서도 그의 이름을 높여 주신 것입니다.

세 번째 복: 네 왕위를 견고하게 하심

하나님께서 다윗의 왕위를 견고하게 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어떤 이는 “훗날 다윗이 아들에게 왕위를 찬탈당한 일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라고 물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찬탈당한 후 다시 되찾지 않았습니까? 역사상 이런 일은 손에 꼽힙니다. 남이 빼앗아 간 것을 하나님께서 다시 찾아 주시는 것, 이것이야말로 왕위를 견고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자리를 견고하게 하실 것임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사람에게 부족한 것은 하나님께서 왕위를 견고하게 세워 주시는 복입니다. 사람들은 늘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고 아등바등하다가 신경쇠약에 걸립니다. 왕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죄수처럼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스스로를 감옥에 가두었기 때문이며, 참으로 비참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왕위뿐만 아니라 그의 후손의 왕위까지도 견고하게 세우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의 이러한 약속을 받으면 내면에 불안감이 사라집니다. 자신의 힘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왕위를 세우려 한다면 사울과 다를 바 없게 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지키실 것이므로 스스로 지키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이름을 크게 높이시고, 원수의 방해를 막아 주시며, 여러분의 자리를 견고하게 하실 것입니다. 이런 일이 사람에게 흔히 일어나는 일입니까? 결코 흔치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이 복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기뻐하며 감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한마음 한뜻으로 교회를 건축할 때 이 모든 복이 우리에게 임합니다.

과거에 빚더미에 앉아 있던 분이 이제 다시는 빚을 지지 않게 되었다면, 제게 큰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긍휼히 여기시고 택하셔서 여러분을 이끌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게 하셨기에 여러분이 이러한 복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어떤 형제자매들은 처음에는 믿음이 없었지만, 지속적으로 제 설교를 들으면서 “나도 이 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함께 교회를 세우겠습니다”라고 결단했습니다. 그 결과 수많은 성도들이 극도로 열악했던 재정적 곤경에서 돌파와 반전을 경험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복입니까! 안타깝게도 어리석은 어떤 이들은 이 복을 눈앞에서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들도 우리 가운데서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체험했으면서도, 그것이 결코 흔히 만날 수 없는 놀라운 은혜임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저는 예전에 한 암 환자를 섬긴 적이 있는데, 그 아이의 고모도 저와 함께 섬겼습니다. 비록 그 아이는 세상을 떠났지만, 고모는 우리의 사역을 보고 우리 공동체에 합류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떠나갔습니다. 떠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어쩌면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을 우리가 다 가로챌까 봐 두려웠는지도 모릅니다. 이런 사람은 저주가 깊어 장차 반드시 원수에게 시달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의 이름을 낮추실 것이며 그의 자리는 결코 견고하지 못할 것입니다. 복을 누리려면 반드시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네 번째 복: 네 집안을 세우심

여러분은 다윗의 육신적인 가문이 그리 평탄하지 않았음을 알아야 합니다. 집안을 세운다는 것은 어떤 집을 세우는 것입니까? 바로 영적인 집을 의미합니다. 얼마 전 우리는 다음 말씀을 읽었습니다.

잉태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산고를 겪지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이는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이사야》 54:1)

이것이 바로 영적인 집안입니다. 다윗의 집은 실로 견고합니다. 다윗을 본받아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고 다윗과 같은 뜻을 품은 모든 사람이 다윗의 집안이며, 이것이 바로 영적인 가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세히 읽어 보면 ‘영원히’, ‘영구히’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다윗이 세운 것은 이 땅의 집이 아니라 영원한 집입니다. 영원한 집이란 무엇입니까? 영원한 집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개인적인 집도, 저의 개인적인 집도 아닙니다.

세상의 얽매임을 그대로 짊어진 채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하려 한다면 결코 지을 수 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노후 보장을 위해 자식을 낳지만 기대에 못 미치자 하나 더 낳으려 하고, 그래도 여전히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영원한 집이 아니라 이 세상의 집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워야 할 집은 영원한 집이며, 다윗과 동일한 뜻을 품은 모든 자가 다윗의 집안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신 이 집안은 훗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모든 자를 가리키며, 하나님께서는 이 집을 영원히 견고하게 세우실 것입니다. 다윗의 육신적인 집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입니다. 다윗의 육신에서 난 자녀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영으로 난 자들을 가리키므로, 다윗의 영적인 자녀는 무수히 많습니다. 따라서 다윗을 본받아 영적인 집을 짓는 자, 곧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하는 모든 자가 다윗의 집안이라는 사실이 명확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우리의 자리를 견고하게 하시고, 우리의 집을 견고하게 하시며, 우리를 위해 영적인 집을 세워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에게 이러한 영적인 집이 있다면 얼마나 복되겠습니까!

다윗의 반응

다윗이 이 축복을 받은 후의 반응은 참으로 인상적입니다.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를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나이까 주 여호와여 주께서 이것을 오히려 적게 여기시고 또 종의 집에 있을 먼 장래의 일까지도 말씀하셨나이다 주 여호와여 이것이 사람의 법이니이까 (《사무엘하》 7:18-19)

다윗은 “제가 단지 주 여호와를 위해 성전을 짓고자 했을 뿐인데, 주께서 저를 이토록 축복하십니까?”라며 마음 깊이 감격했습니다. 우리 중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걸레처럼 여기는 사람들과는 다릅니다. 우리 가운데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자신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한없이 연약하고 부족하기 때문에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다윗은 이러한 중심을 가졌기에 은혜를 입었고 감탄하며 고백했습니다. ‘내 집이 무엇이기에, 주께서는 이를 오히려 작게 여기시고 이런 은혜를 주십니까? 이것이 어찌 사람에게 흔히 일어나는 일이겠습니까!’ 다윗은 너무나 벅찬 감격에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주 여호와는 주의 종을 아시오니 다윗이 다시 주께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주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주의 뜻대로 이 모든 큰 일을 행하사 주의 종에게 알게 하셨나이다 그런즉 주 여호와여 주는 위대하시니 이는 우리 귀로 들은 대로는 주와 같은 이가 없고 주 외에는 신이 없음이니이다 땅의 어느 한 나라가 주의 백성 이스라엘과 같으리이까 하나님이 가서 구속하사 자기 백성으로 삼아 주의 명성을 내시며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주의 땅을 위하여 두려운 일을 애굽과 많은 나라들과 그의 신들에게서 구속하신 백성 앞에서 행하셨사오며 주께서 주의 백성 이스라엘을 세우사 영원히 주의 백성으로 삼으셨사오니 여호와여 주께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셨나이다 여호와 하나님이여 이제 주의 종과 종의 집에 대하여 말씀하신 은혜를 영원히 세우셨사오니 말씀하신 대로 행하사 사람이 영원히 주의 이름을 크게 높여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 하게 하옵시며 주의 종 다윗의 집이 주 앞에 견고하게 하옵소서 (《사무엘하》 7:20-26)

여러분, 보셨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제가 교회를 다스린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교회를 다스리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저는 실수할 수 있지만 하나님은 결코 실수하지 않으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목사의 권한을 견제할 자가 누구인가?”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하나님의 권한을 견제해 보십시오. 능력이 대단하시다면 하나님의 권한을 한번 견제해 보시지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알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며 고백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교회를 온전히 세울 수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주의 종의 귀를 여시고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세우리라 하셨으므로 주의 종이 이 기도로 주께 간구할 마음이 생겼나이다 (《사무엘하》 7:27)

이 말씀을 읽고 여러분 마음에 어떤 반응이 일어납니까? 우리가 받은 복은 과거 다윗이 받은 복을 훨씬 뛰어넘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으며,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교회 안에서 임재와 은혜를 나타내사 이 모든 복을 우리에게 주고자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복들은 아직 전부 실현된 것이 아니며, 장차 이루어질 일들이 훨씬 더 많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이름을 높입시다. 하나님 앞에서 “만군의 여호와 우리 하나님은 교회를 세우시는 하나님이시며, 교회는 그분의 손으로 세워졌으니 우리는 오직 주의 말씀에 순종하여 따를 뿐입니다”라고 고백합시다. 우리가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고자 하는 뜻을 품었기에,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며 수많은 은혜를 부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힘써 추구하고 완전함에 이르도록 힘써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워 나가야 합니다.

얼마 전 저는 여러분이 더 큰 번영과 회복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선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더 큰 일을 행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허튼소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라는 이 작은 무리로 인해 그분의 뜻이 만족을 얻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크나큰 은혜를 계속해서 베푸실 것입니다. 우리가 받는 복이 어찌 사람에게 흔히 일어나는 일이겠습니까? 지난 세월 동안 우리가 걸어온 길을 돌아볼 때 제 마음은 온통 감사로 가득합니다.

제게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하고자 하는 굳은 뜻이 있습니다. 혹자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까?”라고 물을지도 모릅니다. 저도 모릅니다. 그저 그런 마음이 들었을 뿐입니다. 어릴 적 어머니께서는 “얘야, 너는 복 있는 사람이란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돌아보니 정말로 복된 자입니다. 이 복은 사람이 흔히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께서 영원 속에서 우리를 창조하시고 택하사 그분의 영광을 나타내는 그릇으로 삼아 주셨으니 이 얼마나 놀라운 복입니까! 저는 다시 한번 여러분을 격려합니다. 하나님을 다시는 아쉽게 해 드리지 맙시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힘을 얻읍시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자들이며,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 드리는 것은 실로 가장 아름다운 선택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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