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여러분과 성령의 감동만을 의지하는 순전히 미신적인 생각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제가 만난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감동을 의지해서 일하는 것을 매우 좋아하고, 기도하는 것도 매우 좋아합니다. 하지만 들어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여러분께 한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운전면허 시험을 볼 때 순전히 성령의 인도만 의지한다면 합격할 수 있을까요? 아마 합격하지 못할 것입니다.
최근에 저는 이와 비슷한 상황을 많이 발견했습니다. 무슨 일이든 성령의 계시에 의지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어떤 일들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수학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고, 운전을 배우지 않고,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않은 채 성령의 계시에 의지한다면, 그런 사람이 대학에 합격할 수 있을까요? 운전면허를 딸 수 있을까요?
어떤 사람들은 매우 이상합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한 형제가 운전면허 시험에 합격하지 못했는데, 그의 리더가 그에게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영적인 문제인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어떻게 설명했을까요? 운전면허 시험에 합격하지 못한 것은 마치 마귀의 방해 때문인 것 같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는 우리 형제 중 한 명이 세 번이나 시험을 봤지만 합격하지 못했고, 그 역시 영적인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정말 그런 것일까요?
제가 젊었을 때는 온갖 기이하고 터무니없는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습니다. 절에 가서 향을 피우면 대학에 합격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 얼마나 이상한 일입니까?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책임은 철저히 다해야 합니다. 아는 것은 아는 것이고,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잘하는 일은 마귀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입니다. 마귀도 참 억울할 것입니다. 시험을 잘 보지 못하고, 운전면허 시험에 합격하지 못한 것을 모두 자기 탓으로 돌리니 말입니다.
이 마귀가 얼마나 운이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마귀가 날마다 예수님께 가서 하소연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좋은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이해력 면에서 아주 분명해야 합니다. 이해력이 분명하지 않고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여러분이 작성한 프로그램은 전부 깨진 문자처럼 되어 버립니다.
영성과 이해력은 서로 대체할 수 없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나는 영으로 기도하고 또 이해력으로 기도하며, 영으로 찬송하고 또 이해력으로 찬송하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4:15)
영 안에서는 하나님의 능력을 풀어낼 수 있지만, 사람이 이해력 면에서 하나님을 알지 못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에는 모든 것이 흰 종이에 검은 글씨로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고, 모두 우리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읽지 않으면 깨달을 수 없습니다. 제가 여러분께 한 가지 제안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이해력으로 하나님을 알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이해력으로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최근에 저는 인테리어 공사를 하면서, 사람의 이해력 수준이 어떠한지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벽을 곰보처럼 발라 놓고는, 제가 문제가 보이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보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 벽은 여드름이 잔뜩 난 것 같기도 하고, 천연두에 걸린 것 같기도 했습니다. 정말 재미있는 일이었습니다.
나중에 제가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만들어 놓았습니까? 이렇게 만들어 놓으니 어떻다고 생각합니까?” 제가 보기에는 그들은 꽤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만일 누군가 여러분의 집을 이렇게 인테리어해서 벽을 이런 모양으로 만들어 놓는다면, 여러분은 그에게 돈을 주겠습니까? 그들은 모두 주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만든 것입니까?
벽을 바르는 일에 대해 그 자리에서 “하나님, 제가 벽을 평평하게 바를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라고 기도하기만 한다면, 그것이 도움이 되겠습니까? 그런 식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목수이신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목수는 일을 할 때 실제적인 부분까지 제대로 해내야 합니다.
목수로 일하는 사람은 이해력 면에서 매우 분명해야 합니다. 분명하지 않으면 목수가 될 수 없습니다. 모든 물건의 치수는 정확해야 할 대로 정확해야 합니다. 분명히 알지 못하면 조립할 수 없습니다. 벽을 바르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해력으로 알지 못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예수님이 목수가 아니라 철학자로 태어나셨다면 정말 말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우리가 결코 종교화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기도하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런 일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는 기도해야 하지만, 동시에 이해력으로 하나님을 온전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어리둥절하게 아무렇게나 일을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아주 분명합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 가운데 있는 형제자매들이 직접 목공 일을 연습해 볼 기회를 가질 수 있습니다. 목공 일을 해 보고 나면, 자신에게 이해력 면에서 돌파가 매우 필요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여러분이 모두 운전면허 시험을 보러 가서 이해력 면에서 새로운 돌파를 경험하게 된 것도 저는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돌파가 없다면 그저 아무렇게나 해 놓고 모든 책임을 마귀에게 떠넘기게 됩니다.
마귀에게 책임을 떠넘긴다고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결국 여러분이 그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이 이해력 면에서 알아야 할 것은 분명히 알도록 힘쓰고, 영적인 면에서 성장해야 할 부분은 성장하기를 권면합니다. 하루 종일 기도하는 것이 성경을 읽는 것을 대신할 수 없고, 성경을 읽는 것 역시 기도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해력으로 사물의 본질을 분명히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흰 종이에 검은 글씨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그 글자 하나하나를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하나님을 알고 있습니까? 정말 하나님을 안다면, 우리 하나님께서 미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과 진실함으로 하나님을 예배해야 하며, 지나치게 종교적인 태도를 가져서는 안 됩니다.
이해력으로 하나님을 온전히 알고, 종교적인 냄새를 제거하라
저는 우리 가운데 있는 목회자들에게 권면합니다. 이해력으로 반드시 분명히 알아야 하며, 자신의 목표가 무엇인지, 전략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목표가 분명하지 않고 전략이 명확하지 않으며 방법이 잘못되면 끝입니다.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전문가는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일들을 알려고 하지 않고, 기도만 하려고 합니다. 마치 향을 피우러 가는 것처럼, 갑자기 어떤 기적이 일어나서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고, 아무것도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이런 간증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지만 돈이 계좌로 입금된 것입니다. 필요할 때 하나님께서 도와주신 것이니 참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단계에만 머물러 있어도 되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자신의 책임을 감당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지켜 행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손으로 하는 모든 일을 복 주실 것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저는 우리가 종교적인 말로 우리 안의 상황을 가리는, 이상하게 신비주의적인 사람들로 변할까 염려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종교적인 용어로 자기 안의 상태를 덮으려 하는 것입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우리 가운데 있는 몇 가지 잘못된 생각을 제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핵심 가치 안에서 우리는 기도로 게으른 생각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력으로 사물의 본질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머리를 주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분명히 알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성경》도 우리의 머리로 읽어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은 후에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이해력으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매우 분명히 알고 있습니까?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수학을 배운다면 수학을 잘 배우십시오. 운전면허 시험을 본다면 운전을 잘 배우십시오. 전문가가 되려면 전문적인 일을 잘 해내십시오. 이것이 제가 여러분께 드리는 제안입니다. 모든 책임을 마귀에게 떠넘기지 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