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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창세기 18장 - 하나님의 도를 지켜 공의와 정의를 행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라!

2023-01-20 73,901 创世记 创世记18章 创世记第十八章 挑剔 恩典 好怜悯 属肉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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创世记18章-神应许亚伯拉罕得儿子
  • 1 耶和华在幔利橡树那里向亚伯拉罕显现出来。那时正热,亚伯拉罕坐在帐棚门口,
  • 2 举目观看,见有三个人在对面站着。他一见,就从帐棚门口跑去迎接他们,俯伏在地,
  • 3 说:“我主,我若在你眼前蒙恩,求你不要离开仆人往前去。
  • 4 容我拿点水来,你们洗洗脚,在树下歇息歇息。
  • 5 我再拿一点饼来,你们可以加添心力,然后往前去。你们既到仆人这里来,理当如此。”他们说:“就照你说的行吧。”
  • 6 亚伯拉罕急忙进帐棚见撒拉,说:“你速速拿三细亚细面调和做饼。”
  • 7 亚伯拉罕又跑到牛群里,牵了一只又嫩又好的牛犊来,交给仆人,仆人急忙预备好了。
  • 8 亚伯拉罕又取了奶油和奶,并预备好的牛犊来,摆在他们面前,自己在树下站在旁边,他们就吃了。
  • 9 他们问亚伯拉罕说:“你妻子撒拉在哪里?”他说:“在帐棚里。”
  • 10 三人中有一位说:“到明年这时候,我必要回到你这里;你的妻子撒拉必生一个儿子。”撒拉在那人后边的帐棚门口也听见了这话。
  • 11 亚伯拉罕和撒拉年纪老迈,撒拉的月经已断绝了。
  • 12 撒拉心里暗笑,说:“我既已衰败,我主也老迈,岂能有这喜事呢?”
  • 13 耶和华对亚伯拉罕说:“撒拉为什么暗笑,说:‘我既已年老,果真能生养吗?’
  • 14 耶和华岂有难成的事吗?到了日期,明年这时候,我必回到你这里,撒拉必生一个儿子。”
  • 15 撒拉就害怕,不承认,说:“我没有笑。”那位说:“不然,你实在笑了。”
  • 16 三人就从那里起行,向所多玛观看,亚伯拉罕也与他们同行,要送他们一程。
  • 17 耶和华说:“我所要做的事岂可瞒着亚伯拉罕呢?
  • 18 亚伯拉罕必要成为强大的国;地上的万国都必因他得福。
  • 19 我眷顾他,为要叫他吩咐他的众子和他的眷属遵守我的道,秉公行义,使我所应许亚伯拉罕的话都成就了。”
  • 20 耶和华说:“所多玛和蛾摩拉的罪恶甚重,声闻于我。
  • 21 我现在要下去,察看他们所行的,果然尽像那达到我耳中的声音一样吗?若是不然,我也必知道。”
  • 22 二人转身离开那里,向所多玛去;但亚伯拉罕仍旧站在耶和华面前。
  • 23 亚伯拉罕近前来,说:“无论善恶,你都要剿灭吗?
  • 24 假若那城里有五十个义人,你还剿灭那地方吗?不为城里这五十个义人饶恕其中的人吗?
  • 25 将义人与恶人同杀,将义人与恶人一样看待,这断不是你所行的。审判全地的主岂不行公义吗?”
  • 26 耶和华说:“我若在所多玛城里见有五十个义人,我就为他们的缘故饶恕那地方的众人。”
  • 27 亚伯拉罕说:“我虽然是灰尘,还敢对主说话。
  • 28 假若这五十个义人短了五个,你就因为短了五个毁灭全城吗?”他说:“我在那里若见有四十五个,也不毁灭那城。”
  • 29 亚伯拉罕又对他说:“假若在那里见有四十个怎么样呢?”他说:“为这四十个的缘故,我也不做这事。”
  • 30 亚伯拉罕说:“求主不要动怒,容我说,假若在那里见有三十个怎么样呢?”他说:“我在那里若见有三十个,我也不做这事。”
  • 31 亚伯拉罕说:“我还敢对主说话,假若在那里见有二十个怎么样呢?”他说:“为这二十个的缘故,我也不毁灭那城。”
  • 32 亚伯拉罕说:“求主不要动怒,我再说这一次,假若在那里见有十个呢?”他说:“为这十个的缘故,我也不毁灭那城。”
  • 33 耶和华与亚伯拉罕说完了话就走了;亚伯拉罕也回到自己的地方去了。

《答疑解惑》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우리 함께 《창세기》 18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저는 《창세기》를 여러 차례 전해 왔는데, 다시 전하려고 보니 이전에 미처 명확하게 전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에는 제목을 이렇게 정하고자 합니다. "주의 도를 지켜 공도와 정의를 행함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게 하라." 이 구절은 《창세기》 18장 19절에 나옵니다. 저는 《창세기》 18장을 매우 좋아하며, 특히 17절부터 19절을 각별히 좋아합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창세기》 18:17-19)

그러므로 우리의 주제도 이 방향을 향해 전해질 것입니다. 이전에는 제가 서 있던 관점이 충분히 높지 못해 정확하게 짚어내지 못했을 수 있지만, 이제 다시 바로잡아 보겠습니다. 예전에는 3점, 2점을 맞혔다면, 이제는 더 정확하게 쏘아 올려 주제를 더 정확하게 붙잡아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약속 성취에는 조건이 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약속 성취에 조건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것을 보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보지 못합니다. 기도는 할 수 있어도, 죽을 때까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것을 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렇고, 더 심각한 경우는 목사들입니다. 늙은 엘리 같은 목사가 된다면 그것은 비극입니다! 여러분은 늙은 엘리를 아십니까? 모른다면 《사무엘상》 앞부분의 몇 장을 읽어 보십시오. 《사무엘상》에는 늙은 엘리라는 인물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는 그리스도인일 뿐만 아니라 목사였고, 목사일 뿐만 아니라 대제사장과 같은 위치에 있던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전하는 "주의 도를 지켜 공도와 정의를 행함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게 하라"는 이 말씀은 결코 가벼운 말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이러한 혼란 속에서 살아갑니다. 특히 이 말씀은 사람들을 매우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데는 조건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조건이 없지만, 하나님의 약속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늙은 엘리 집안이 드린 제사는 우리가 기도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으며, 영원히 그 집안의 죄를 속할 수 없었습니다.

제사만 드리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제사 드리는 것보다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훨씬 더 기뻐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어떤 사람들의 기도가 역사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할 때는 역사가 일어나는데, 왜 내 자신의 일로 기도할 때는 역사가 일어나지 않을까요?"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가 역사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계속 지켜져 《창세기》 17장에서 할례를 행하는 데까지 이르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할례를 행한다는 것은 육체의 정욕과 탐심을 잘라내는 것입니다.

신약 《성경》이 무엇이라 말씀하는지 아십니까?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할 수도 없습니다. 반드시 육체의 정욕과 탐심을 잘라내야 합니다. 육에 속한 정욕과 탐심을 잘라내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기 위한 매우 중요한 조건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번 장에서 우리가 나눌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입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은 바로 이것입니다.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창세기》 18:19)

즉 주의 도를 지켜 공도와 정의를 행하는 것이 선결 조건입니다. 그러나 이 선결 조건은 육체의 정욕과 탐심을 잘라내야만 가능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 가운데 행할 방법이 없으므로,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육에 속한 반응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아십니까? 여러분은 반드시 이를 알고 분별해야 합니다. 저는 그리스도인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을 보면 '끝났구나! 육에 속했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어느 날 더우인(틱톡)을 보다가 한 영상을 보았습니다. 설에 돼지를 잡으려 하자, 돼지가 자기가 죽을 것을 알고 이리저리 뛰며 난리를 치다가 머리를 우물 속으로 처박고는 투신자살을 해버렸습니다. 참 흥미롭게 찍은 영상이었습니다.

돼지도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머릿속이 온통 '살아야 한다'는 생각뿐이라면 끝난 것입니다! 육에 속한 것이며 돼지와 다를 바 없습니다. 먹고 마시는 것을 너무나 중하게 여기는 것도 돼지와 같은 생각입니다. 이 세상의 사소한 일들을 보며 다투고 빼앗으려 합니다. 저는 '동물의 세계' 같은 짧은 영상을 즐겨 보는데, 볼 때마다 정신이 번쩍 듭니다. 수말 두 마리가 암말 한 마리를 차지하려고 죽기 살기로 싸우더니, 한 마리를 쫓아내고 다른 한 마리가 짝짓기 권리를 얻어냅니다. 사람도 마치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이 온갖 것을 만들어 냈는데, 도대체 왜 "초록 모자(배우자의 부정)"라는 말을 만들어 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왜 "초록 모자를 쓴다"고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전부 육에 속한 생각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의 반응이 어떠한지 살펴보십시오. 많은 사람에게 "사모의 얼굴"이 나타나는데, 왜 사모의 얼굴이 그렇게 변하겠습니까? 이유는 단순합니다. 온종일 목사만 주시하다가, 목사가 어느 자매와 이야기라도 나누면 마음이 괴롭고 초록 모자를 쓸까 봐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어디에 그런 모자가 그렇게 많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나는 그리스도인이고, 매 주일 예배에 참석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육체의 정욕과 탐심을 잘라내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으며, 하나님의 약속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육에 속했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영에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이 여러분과 제 삶 가운데 성취되는 데에는 모두 조건이 따릅니다. 이 말씀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나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라고 말하는데, 정작 하나님께서 "어찌하여 너는 마귀의 자손이냐?"라고 하신다면, 여러분이 무슨 말을 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은 반드시 몇 가지를 극복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영에 속한 사람이 되어야지, 육에 속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의 생각이 돼지의 생각과 흡사하다면 매우 곤란합니다. 혹은 돼지의 생각이 여러분의 생각과 흡사하다 해도 마찬가지로 매우 곤란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주의 도를 지켜 공도와 정의를 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 성취의 핵심이며,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알려주신 것입니다. 이 일을 아브라함에게 숨길 수 없었던 이유는 단순히 숨기고 숨기지 않고의 문제가 아니라, 이 일을 기록하여 아브라함의 자손인 우리, 아브라함의 자녀들로 하여금 어떻게 주의 도를 지키고 공도와 정의를 행할지, 어떻게 그 약속이 여러분과 제 삶 가운데 성취되게 할지를 깨닫게 하려 하심입니다. 사람이 평생 하나님의 약속 없이 산다면 그것은 비극입니다.

이 본문 말씀은 참으로 탁월합니다. 하나님께서 소돔을 멸하시려는 일을 먼저 아브라함과 상의하십니다. 이는 아브라함 한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그의 자녀들에게 명하여 아브라함을 본받게 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주의 도를 지키고 공도와 정의를 행하여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말씀이 우리 삶 가운데 모두 성취되게 하려 하심입니다.

손님 대접의 도를 지키라

여호와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날이 가열할 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아 있다가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서 있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이르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시옵고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에서 쉬소서 내가 떡을 조금 가져오리니 당신들의 마음을 상쾌하게 하신 후에 지나가소서 당신들이 종에게 오셨음이니이다 그들이 이르되 네 말대로 그리하라 아브라함이 급히 장막으로 가서 사라에게 이르되 속히 고운 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라 하고 아브라함이 또 가축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잡아 하인에게 주니 그가 급히 요리한지라 아브라함이 엉긴 젖과 우유와 하인이 요리한 송아지를 가져다가 그들 앞에 차려 놓고 나무 아래에 모셔 서매 그들이 먹으니라 (《창세기》 18:1-8)

많은 사람이 이 구절을 읽을 때, 곧바로 시선을 다음과 같은 곳에 둡니다. "이 세 사람이 하나님이신 것을 그는 어떻게 알았을까?" 사실 아브라함은 단지 이 세 사람에게만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자기 집 장막 곁을 지나가기만 하면 다 그렇게 대접했습니다. 아브라함의 명성은 널리 퍼져 있었고, 그는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대접했습니다. "이분은 하나님이니 잘 대접하고, 이 사람은 하나님이 아니니 모른 척하겠다"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신약 《성경》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대접하면 결단코 상을 잃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손님을 대접하는 데에는 매우 중요한 기초가 있는데, 바로 여러분의 생각 속에 손님 대접의 도가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머릿속에 손님 대접의 도가 없다면 손님을 대접할 수 없습니다. 이 일에 관해서라면 저도 자랑할 것이 있습니다. 저의 손님 대접의 도는 모두 아브라함에게서 배운 것입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든 명심하십시오. 손님 대접의 도는 주의 도를 지키는 것의 한 부분입니다.

사람이 지나치게 이기적이면 주의 도를 지킬 수 없습니다. 나와 아무런 상관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집 앞을 지나가는데 그를 영접하여 대접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의를 당부드리자면, 그것은 아브라함 시대의 이야기이며, 지금 누군가 여러분 집 문을 두드린다면 조심해야지 무분별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아브라함이 손님을 대접할 때, 집 앞을 지나가던 건달이나 불량배를 대접한 적이 없었겠습니까?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소돔 성 사람들을 대접한 적은 없었겠습니까? 당연히 있었을 것입니다. 소돔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려면 아브라함이 있는 곳을 지나게 됩니다.

소돔 성 사람들이 아브라함에 대해 가진 인식은 그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것이어서 "이 사람 정말 대단하다!"라고 했습니다. 소돔 성 사람들은 아브라함에게 빚진 것이 있었습니다. 당시에 소돔 사람들이 그돌라오멜 왕에게 사로잡혀 갔을 때, 아브라함이 건져내 주었기에 소돔 사람들에게도 일말의 인간적인 정은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손님 대접의 도는 참으로 대단했습니다. 심지어 소돔 사람들이 그곳을 지나갈 때도 영접을 받아 극진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건달이나 불량배가 찾아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수년 전, 저의 어머니께서 작은 가게를 하나 운영하셨습니다. 그 시절에는 참 쉽지 않았는데, 건달과 불량배들이 무전취식을 하러 오는 경우가 참 많았습니다. 저는 어머니를 참 존경합니다. 어머니께서는 그 건달, 불량배들과 관계를 아주 잘 맺으셨습니다. 그 건달들이 어머니 가게에 와서 둘러보며 "아주머니, 먹을 것 좀 줘봐요"라고 하면, 우두머리가 "내가 너희한테 경고하는데! 나 이 아주머니랑 사이 엄청 좋아. 너희 여기 와서 얌전히 먹고, 다 먹으면 돈 제대로 내라"고 했습니다. 그 건달 두목이 어머니와 관계가 아주 좋았습니다. 그 관계가 어떻게 좋아졌겠습니까? 인색하다면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소돔 지역 사람들과도 두루 관계가 좋았는데, 여러분은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그 일을 해내지 못합니다. 어머니께서 하셨던 그 작은 허름한 가게 일조차 감당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마음이 너무 인색하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께서는 그 일을 참 잘 풀어가셨습니다. "아주머니, 무슨 일 생기거나 누가 괴롭히면 나를 찾아와요!" 무전취식하는 사람이 있었겠습니까? 없었습니다. 어머니께서 그들에게 베풀지 않으셨겠습니까? 베푸셨습니다. 손님 대접의 도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조차 기꺼이 주지 못한다면, 어떻게 과일 주스 한 잔을 줄 수 있겠으며, 어떻게 고기 한 그릇을 줄 수 있겠고, 어떻게 살진 송아지를 잡아줄 수 있겠습니까?

아브라함이 행한 것을 보십시오. 급히 반죽을 하고, 살진 송아지를 잡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인에게 "가서 피부병 걸린 송아지를 가져다 신에게 드려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까? 여러분 머릿속의 생각들은 아브라함에게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그는 이렇게 행동했는데, 이해가 되십니까? 저는 여러분이 이를 잘 본받기를 권면합니다. 손님 대접의 도는 주의 도를 지켜 행하는 것의 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행할 때 주께 하듯 해야 합니다. 《성경》에 그런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분명히 있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주께 하듯 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요? 부유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돈에 쪼들리지 않았고, 재물이 늘 넉넉했으며, 내면에 부유한 마인드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얼마 전 어떤 분이 저를 찾아와서는 기어코 딘타이펑에 데려가겠다고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제가 설교 중에 딘타이펑을 언급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인데, 그분이 제게 딘타이펑을 빚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예전에 한 미련한 친구가 있었는데, 제가 그를 정말 온 힘을 다해 섬겼기에 그는 제게 많은 신세를 졌습니다. 어느 날 그가 온몸에 만두 냄새를 풍기며 제 사무실로 들어왔습니다. 제가 "몸에서 무슨 냄새냐?"고 묻자 그는 "딘타이펑 냄새요"라고 했습니다. 제가 "너는 딘타이펑을 먹으면서 왜 내 생각은 안 났니? 어째서 나한테 조금도 안 사 왔어?"라고 했습니다. 사실 그렇게 말한 것은 제가 그 만두 몇 개가 아쉬워서가 아니었습니다. 다만 그에게 손님 대접의 도가 부족했던 것입니다. 너무나 이기적이었는데, 이기적인 사람은 참으로 장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먼 곳에서 저를 찾아와 기어코 딘타이펑을 사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먹으러 갔더니 문이 닫혀 있었습니다. 오후 2~3시쯤에는 브레이크 타임이어서 4시가 되어야 문을 열었기에 먹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상관없었습니다. 먹지 못했어도 먹은 것만큼이나 마음이 흡족했습니다. 제가 만난 사람이 손님 대접의 도를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점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인색한 사람은 부유해지기 어렵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면이 가난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은혜를 베푸셔서 아브라함처럼 공도와 정의를 행하고 주의 도를 지키며, 심지어 손님 대접의 도까지 본받는 법을 알게 하셨습니다.

팬데믹 기간이라 할지라도 손님 대접의 도를 잊어서는 안 되며, 함부로 행동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은 치명적인 일입니다. 이번 장은 온통 공도와 정의를 행하며, 하나님의 손님 대접의 도를 지켜 행하는 것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만 사람들이 어떻게 순종해야 할지 모를 뿐인데, 그렇다면 작은 일부터 시작해 순종하십시오. 어떤 사람들은 섬기려고 할 때 늘 큰 것만 섬기려 하는데, 사실 작은 자를 섬기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하나님의 큰 능력을 믿으라

여기에 매우 흥미로운 대화가 나옵니다. 세 사람 중 한 분이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라"고 하십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어찌 또 와서 드시려고 하십니까, 아직 부족하셨습니까?"라고 했습니까? 아닙니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아브라함과 사라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사라에게는 여성의 생리가 끊어졌는지라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 (《창세기》 18:10-12)

보십시오, 이것이 사람의 생각입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사라가 두려워서 부인하여 이르되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이르시되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창세기》 18:13-15)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무엇을 보게 하십니까? 우리의 믿음이 종종 우리의 육체 위에 세워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은 다 알고 있습니다. 여성은 생리가 없으면 아이를 낳을 수 없고, 폐경기를 지나 생리가 끊어지면 출산할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하나님 보시기에 육에 속한 관점이며, 육체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생리가 멈추었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아이를 낳게 하실 수 없겠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은 여전히 성취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깨닫기 시작해야 합니다. 사라의 생리가 끊어졌으니 여호와 하나님께서 출산을 약속하셨다 한들 아이를 낳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아흔 살인데 어떻게 아이를 낳겠느냐고 생각하지도 마십시오. 단언하건대, 백 살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아이를 낳게 하시고자 한다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기초입니다. 신약 《성경》은 무엇이라 말씀합니까? 신약 《성경》에서 제가 가장 자주 인용하는 구절은 이것입니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고린도전서》 2:4-5)

화인명정신학(중국인 사명 신학)에서 지극히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의 능력에 있는가, 아니면 다른 것에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의 약속 위에 세워지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 위에 세워지지 않으며, 우리 하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신다는 기초 위에 세워지지 않는다면, 우리의 믿음은 서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는 기초 위에 세워진다면, 여러분의 삶에는 참된 평안이 넘칠 것입니다.

신을 믿는다고 하면서 문제를 만났을 때, 우상을 가방 속에 넣어 두었다가 일을 당했을 때와 같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가방 속의 그 우상이 나와서 당신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구원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서히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진정으로 '하나님께는 능하지 못한 일이 없다'는 한 가지 사실을 믿고 있습니까? 신약 《성경》에 이르러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마태복음》 19:26)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믿음을 하나님의 크신 능력이라는 기초 위에 세우기 시작하십시오. 이것이 약속을 받는 조건이며, 믿지 않는다면 얻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까지도 마음속에 온갖 미혹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러한 미혹은 사람을 극도로 무지하게 만듭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중국에서 코로나가 발발하여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 누군가 외국에서 화이자의 특효약을 가져다주기를 바랐습니다. 사람들은 믿음을 화이자의 특효약 위에 두었던 것입니다. 나중에는 그 특효약을 팔던 많은 사람도 죽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 논리는 사실 매우 명백합니다. 만약 특효약이 제대로 듣는다면 외국에서는 전염병을 겪지 않았어야 합니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을 병원에 두기를 좋아합니다. 단언하건대, 저는 병원에 대한 믿음이 없습니다. 사실 병원을 믿고 의료를 믿는 것 자체가 비극입니다. 이는 너무나 자명한 사실 아닙니까? 어머니께서 병원에 누워 계실 때 제가 어머니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는데 병실 문이 열려 있었습니다. 어머니께서 "또 한 사람 갔네"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뭐가 또 한 사람이에요?"라고 묻자, "또 한 사람 죽어서 실려 나갔어"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다시 어머니를 이끌고 기도하는데, 어머니는 또 "또 한 사람, 또 한 사람 죽었네"라고 하셨습니다. 병원이 효과가 있다면 이럴 수가 있겠습니까? 병원은 죽음을 막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각을 통해 점차 깨달아가야 합니다. 지각이 열리지 않으면 당연하다고 여기지만, 왜 당연한지조차 명확히 설명하지 못합니다. 사실 하나님의 큰 능력을 신뢰하는 것이야말로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입으로는 하나님의 큰 능력을 신뢰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믿는 바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 얼마나 기이한 일입니까? 사실 화인명정신학에서는 하나님의 약속에 조건이 있다고 봅니다. 여러분에게는 손님 대접의 도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큰 능력을 믿어야 하며, 여러분의 믿음을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기초 위에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기초 위에 세워진다면, 이것저것 염려할 필요가 없으며 의료 체계 위에 둘 필요도 없습니다.

오늘날의 의료는 매우 기이합니다. 관을 꽂아놓으면 겨우 숨만 붙어 있는 산 송장일 뿐입니다. 여러분이 깨닫기를 바랍니다. 그러한 삶의 질은 결코 좋은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모두 은밀히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은혜를 베푸사 제가 살아가는 날 동안 이러한 처지에 떨어지지 않게 하옵소서." 사람의 뜻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고, 하루를 살면 병원에 하루 치 비용을 지불해야 하니, 병원에서 나가는 돈은 노잣돈을 찍어내는 것만큼 빠르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큰 능력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을 실현해 낼 수 없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말씀을 자신들의 삶 가운데 성취되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이제 강건해지십시오. 우리가 주의 도를 지키고 공도와 정의를 행하여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 삶 가운데 성취되게 합시다. 아흔 살이든 백 살이든 사람은 여전히 아이를 낳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육체와 큰 상관이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능력과만 상관이 있습니다. 사람이 육체를 의지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우리 중에 여전히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고 육체를 의지하며, 자신의 하찮은 능력을 의지하는 사람이 있다면, 성이 유(劉) 씨라면 이름을 '유능(劉能, 류넝: 능력 있음)'이라 지으십시오. 어감이 좋지 않다면 '소(小)' 자를 더해 '유소능(劉小能)'이라 부르면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다고 해서 이름을 '유대능(劉大能)'이라 부를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그 역시 육에 속한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자신의 능력을 중하게 여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결코 다시는 자신의 능력을 의지하지 마십시오. 자신의 능력, 병원의 능력, 의사의 능력을 의지해 보아야 그들은 다 사람일 뿐이며, 사람을 의지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주의 도를 지켜 공도와 정의를 행하여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 삶 가운데 모두 성취되는 것은 비교할 수 없이 좋은 것입니다. 때때로 저는 '이토록 좋은 복음을 사람들은 어찌하여 알지 못할까?' 하고 탄식하게 됩니다.

화인명정신학이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교회 안에 온갖 혼란이 가득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필사적으로 《성경》을 읽으며 하나님을 알아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천해 보았더니, 참으로 비교할 수 없이 좋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 곧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의 말씀이 우리 삶 가운데 모두 성취되니 날마다 샴페인을 터뜨리는 것과 같았습니다. 저는 이 일이 단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이 있을 때 우리에게 알려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소돔을 멸하려 하노라"고 하셨을 때, 만약 우리 모두가 아브라함이었다면 이렇게 물었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 저에게 왜 이런 말씀을 하십니까? 저와는 아무 상관도 없지 않습니까." 어찌 상관이 없겠습니까? 상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그것을 멸하겠다"고 말씀하실 때, 결코 그 자리에서 손뼉을 치며 좋아해서는 안 됩니다. 아브라함이라는 인물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그의 내면에는 공도와 정의를 행하는 도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셔서 먹고 마시기를 다 마친 뒤에, "하나님,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라고 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무슨 일이냐?"고 물으실 때, "소돔을 멸해 주십시오. 그곳은 너무 악합니다. 보십시오, 아무개가 거기를 지나가다 성폭행을 당하고 길거리에서 죽었습니다. 그곳은 너무 악하니, 하나님! 그들을 멸해 주십시오"라고 한다면 큰일 날 소리입니다. 그것은 우리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만약 그러한 기준으로 잰다면, 사라가 속으로 살짝 웃었을 때 하나님의 약속이 그 웃음 때문에 사라졌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라를 멸하셨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는 풍성한 은혜와 긍휼이 있습니다.

공도와 정의를 행하는 도

이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어찌 숨기겠느냐." 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려는 것입니까? 아브라함은 반드시 강대한 나라가 되고, 땅의 모든 민족이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강대한 나라가 되게 하실 것이기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어떻게 강대한 나라가 됩니까? 바로 그 자녀들, 곧 우리에게 명하여 주의 도를 지키고 공도와 정의를 행하게 해야 비로소 큰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이 우리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창세기》 18:17-19)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숨기지 않으시고 그와 상의하십니다. 이는 아브라함이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우리로 하여금 알게 하려 하심입니다. 아브라함은 고자질하듯 하나님께 "소돔이 얼마나 악하고 못됐는지 아십니까?"라고 일러바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그런 모난 성품이 없었습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공의가 담겨 있었습니다. 제가 그것을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여호와께서 떠나실 때 아브라함은 참으로 인상 깊게도 그들을 배웅하려 동행했는데, 그 배웅의 길에서 실로 엄청난 일이 일어났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기이한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려는 일을 먼저 아브라함에게 알려주신 것입니다.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되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무거우니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 하노라 (《창세기》 18:20-21)

두 사람은 돌이켜 떠나고, 한 분이 남아 아브라함과 이 일을 상의하십니다. 아브라함은 어떻게 말합니까?

그 사람들이 거기서 떠나 소돔으로 향하여 가고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섰더니 아브라함이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 그 성 중에 의인 오십 명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 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하지 아니하시리이까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부당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같이 하심도 부당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정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창세기》 18:22-25)

이 뉘앙스가 느껴지십니까? 이것이 바로 하나님에 대한 아브라함의 인식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왜곡되어 있다면 큰일입니다. 온 세상을 심판하시는 주님은 반드시 공의를 행하시고 인자를 사랑하실 것입니다.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시고, 의인을 악인과 똑같이 대하시는 것은 결코 우리 주님께서 행하실 일이 아닙니다. 보십시오, 그가 한 말을! 그러므로 아브라함이라는 인물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오늘 우리로 하여금 무엇이 공도와 정의를 행하는 것인지를 알게 해 줍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공평이나 당신이 생각하는 공의를 좇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의 공의란 "소돔을 멸해 주십시오, 그곳은 날마다 성폭행 사건이 터집니다" 하는 식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이것도 문제고 저것도 문제다"라고 보았다면, 사람에게는 허물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어떤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악한 자들을 죽여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렇게 죽이다 보면 결국 한 사람도 남지 않게 됩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가장 악한 자를 죽이면, 뒤에서 두 번째로 악했던 자가 가장 악한 자가 됩니다. 그 두 번째를 죽이면 세 번째가 일등이 됩니다. 끝도 없이 죽여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왜 큰 나라를 이루고 천하 만민이 그로 말미암아 복을 얻게 되었겠습니까? 아브라함의 내면에는 은혜의 마음, 긍휼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며, 이것을 일컬어 공도와 정의를 행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시어머니와 말다툼을 하고는 "하늘이시여! 벼락을 내려 저 사람을 쳐 죽여 주옵소서" 하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공도와 정의가 아닙니다. 그 얼마나 비뚤어진 생각입니까? 결국 벼락은 내리지 않고 자신이 호되게 벼락을 맞고 맙니다. 우리가 사물을 바라볼 때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아브라함을 배워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열어젖힌 이 길은 평범한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의 생각이란 무엇입니까? 남보다 조금 낫다 싶으면 대단한 줄 아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의 뜻은 우리 모두가 죄인이며, 모두에게 하나님의 구원이 필요하고, 모두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러한 마음을 품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소돔처럼 사악한 곳을 그때까지 그대로 두셨겠습니까? 죄악이 가득 차기까지 기다리신 것입니다. 죄악이 가득 찼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의인 단 한 사람조차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그곳을 멸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 것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습니다. 이어 아브라함은 무엇이라 말합니까?

아브라함이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 그 성 중에 의인 오십 명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 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하지 아니하시리이까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부당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같이 하심도 부당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정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만일 소돔 성읍 가운데에서 의인 오십 명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역을 용서하리라 아브라함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티끌이나 재와 같사오나 감히 주께 아뢰나이다 오십 의인 중에 오 명이 부족하다면 그 오 명이 부족함으로 말미암아 온 성읍을 멸하시리이까 이르시되 내가 거기서 마흔다섯 명을 찾으면 멸하지 아니하리라 아브라함이 또 아뢰어 이르되 거기서 마흔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마흔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주여 노하지 마시옵고 말씀하게 하옵소서 거기서 서른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거기서 서른 명을 찾으면 그리하지 아니하리라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내가 감히 내 주께 아뢰나이다 거기서 스무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스무 명으로 말미암아 그리하지 아니하리라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아뢰리이다 거기서 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창세기》 18:23-32)

이때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러 가시면서 당신을 찾아와 상의하신다면, 당신은 어떻게 반응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당신과 상의하지 않으신 것이 다행입니다. 만약 당신과 상의하셨는데 당신에게 아브라함과 같은 중심이 없다면 끝장입니다. 당신은 큰 나라를 이루지도 못할 것이며, 천하 만민이 당신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지도 못할 것이고, 하나님의 약속도 당신의 삶 가운데 성취되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에게 "자신은 꽤 괜찮고 다른 사람은 아주 악하다"고 여기며 늘 "하나님! 어찌하여 저들을 멸하지 않으십니까?"라고 생각하는 악습이 있다면, 단언하건대 하나님의 약속을 상속받기 어려우며 하나님의 약속을 모조리 날려버리게 됩니다.

더 이상 트집 잡지 마십시오. 자녀들에게 주의 도를 지키고 공도와 정의를 행하도록 가르쳐 하나님의 약속을 온전히 성취하게 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사물을 볼 때 하나님처럼 모든 것을 선하게 볼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사물을 볼 때 다 선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까? 많은 사람이 남의 문제는 아주 명확하게 보면서, 자기 문제는 전혀 보지 못합니다. 어느 부부가 제게 와서 부부 싸움을 털어놓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 사람은 제 문제를 현미경으로 보듯 합니다. 작은 세포 하나까지도 엄청나게 크게 확대해서 봅니다. 그런데 자기 문제는 축소경으로 봅니다."

단언하건대 부부가 이러하다면 그 관계가 좋을 수 있겠습니까? 그저 같이 밥이나 먹고 사는 관계라 할지라도 버텨낼 수 없습니다. 온종일 남의 허물만 바라보면서 어떻게 공도와 정의를 행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자기만의 공평을 좇고 자기만의 정의를 행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장점은 현미경으로 보고, 남의 단점도 현미경으로 보며, 자신의 단점은 축소경으로 보고, 남의 장점은 축소경으로 봅니다. 눈이 비뚤어졌으니 정말 안과 의사를 찾아가 보아야 합니다. 의인 열 명만 남아 있어도 하나님께서는 소돔을 멸하지 않으십니다. 몸에 아주 작은 장점 하나만 남아 있어도 하나님께서는 굳이 당신을 멸하려 하지 않으십니다. 저 역시 "하나님! 어서 저 사람을 멸해 주옵소서" 하고 기도하지 않으며, 그렇게 할 마음도 없습니다.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회개하여 주의 도를 지키고 공도와 정의를 행함으로써,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우리 삶 가운데 모두 성취되게 하기 위함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무너뜨린 자는 누구입니까?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당신 자신 외에는 그 누구도 당신을 무너뜨릴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당신 자신 외에는 그 누구도 하나님의 계획이 성취되는 것을 가로막을 수 없습니다. 설령 누군가 당신을 이집트에 노예로 팔아넘긴다 해도, 하나님의 약속이 당신 삶 가운데 성취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결론을 맺고자 합니다. 우리 자신도 일반인의 상상을 뛰어넘는 아브라함의 사고방식을 계승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만약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 삶 가운데 성취되지 않았다면 문제는 바로 우리 자신에게 있습니다. 변화되기 시작하십시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자신의 그 보잘것없는 체격과 힘만 의지한다면 여러분은 아무것도 감당해 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바랍니다!

《창세기》 18장 본문

18:1 여호와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날이 가열할 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아 있다가 18:2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서 있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18:3 이르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시옵고 18:4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에서 쉬소서 18:5 내가 떡을 조금 가져오리니 당신들의 마음을 상쾌하게 하신 후에 지나가소서 당신들이 종에게 오셨음이니이다 그들이 이르되 네 말대로 그리하라 18:6 아브라함이 급히 장막으로 가서 사라에게 이르되 속히 고운 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라 하고 18:7 아브라함이 또 가축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잡아 하인에게 주니 그가 급히 요리한지라 18:8 아브라함이 엉긴 젖과 우유와 하인이 요리한 송아지를 가져다가 그들 앞에 차려 놓고 나무 아래에 모셔 서매 그들이 먹으니라 18:9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대답하되 장막에 있나이다 18:10 그가 이르시되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18:11 아브라함과 사라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사라에게는 여성의 생리가 끊어졌는지라 18:12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 18:13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18:14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18:15 사라가 두려워서 부인하여 이르되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이르시되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18:16 그 사람들이 거기서 일어나서 소돔으로 향하고 아브라함은 그들을 전송하러 함께 나가니라 18:1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18:18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18:19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18:20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되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무거우니 18:21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 하노라 18:22 그 사람들이 거기서 떠나 소돔으로 향하여 가고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섰더니 18:23 아브라함이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 18:24 그 성 중에 의인 오십 명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 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하지 아니하시리이까 18:25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부당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같이 하심도 부당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정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18:2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만일 소돔 성읍 가운데에서 의인 오십 명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역을 용서하리라 18:27 아브라함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티끌이나 재와 같사오나 감히 주께 아뢰나이다 18:28 오십 의인 중에 오 명이 부족하다면 그 오 명이 부족함으로 말미암아 온 성읍을 멸하시리이까 이르시되 내가 거기서 마흔다섯 명을 찾으면 멸하지 아니하리라 18:29 아브라함이 또 아뢰어 이르되 거기서 마흔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마흔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18:30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주여 노하지 마시옵고 말씀하게 하옵소서 거기서 서른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거기서 서른 명을 찾으면 그리하지 아니하리라 18:31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내가 감히 내 주께 아뢰나이다 거기서 스무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스무 명으로 말미암아 그리하지 아니하리라 18:32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아뢰리이다 거기서 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18:33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가시니 아브라함도 자기 곳으로 돌아갔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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