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Q1:老师,有神同在的人一定能把活干好。对吗?
你说的对。神只要弹下来一粒粉尘那么大点儿的智慧,就够你干活用的。有神同在的人一定是心灵手巧的。人怎么就把神的同在整没了呢?就是因为我们里面有一大堆的坏习惯。《箴言》书说:人要懒惰,贫穷的灵就会临到你。所以会干活很重要。多干点儿活累不着,少干点儿活,也没看见你闲出啥样来?大家有没有发现,多干点儿活,不光睡觉睡得香甜,还可以少吃安眠药。
中国的文字特别有意思,活着的“活”,和干活的“活”是一个字,不会干活就不太会活着。今天我们就把这个观念调整过来,养成一个不但爱干活,还要会干活的好习惯,干着干着神就与你同在了。千万别做一个懒惰的人。如果你是一个懒惰的人,别较劲,赶紧悔改。我们要明白,《圣经》就是要让我们来学习的。如果你能把雅各学得有模有样的,神也会与你同在的。
Q2:老师,可以分享一下坚持忍耐的信心吗?
坚持忍耐的信心,就是事情还没有成,就要坚持到事情成就;如果事情还没成,你就放弃了,事情也就不会成了。在悟性上我们得知道,坚持还有机会,如果放弃了,就啥也没有了。坚持忍耐是不容易的,是要在信心的操练中坚持。比如如果我相信神一定会帮助我解决这个问题,整着整着就整明白了。其实坚持忍耐的本质就是信心。
Q3:老师,《创世记》那时候75岁的人跟现在75岁的人的身体相差很大吗?
不太清楚,应该相差有点儿大。那个时候的人活到一百多岁是常态。亚伯拉罕活到了175岁,以撒起码活到170岁左右,雅各活到了147岁。
Q4:老师,为什么雅各到了早晨才发现娶回来的是利亚呢?
那个时候没有电灯,看不见光,全是摸黑干的。问这问题的人脑袋不太好使,老觉着锃光瓦亮是自然的状况。如果你去到没水没电的地方活一下就知道了,黑灯瞎火的啥也看不见。其实利亚一开口说话就知道了。但是,利亚就是不说话。肯定是拉班要利亚别开口说话,干完事再说。第二天天亮了雅各才发现弄错了。这事可不能反悔的。其实,利亚也喜欢雅各,她和拉结都喜欢雅各。你不能说她们没有命定,她们里面还是有那么一点观念的。
Q5:老师,如果我知道被人算计了,我也保持对神的信心,相信有神掌权。是否也可以像雅各一样得到神的祝福?
你得先有命定。你有命定,渴望得着命定,渴望成为很多人的祝福,你就成了雅各了。如果你成了雅各了,即使被人算计也没事,最后神祝福你。但是,如果你不是雅各,被人算计了,即使持守信心也没有用。命定之外没有祝福,这句话是我发明的。因为亚伯拉罕、以撒、雅各都是有命定的人,所以他们都有祝福,是这么个逻辑。
Q6:喜欢干活和会干活不太一样吗?
喜欢干活的人一定会干出感觉来的;不喜欢干活的人很难有感觉。为什么会喜欢干活?是因为干活有了感觉了。咱们当中有没有干活干到有感觉的?干活干到有感觉,干活就好玩了;如果干活干得没感觉,就累、闹心,因为干得少,不喜欢干活。喜欢干活,干着干着就会有感觉,有感觉就会干活……然后就成了一个有神同在的人。
Q7:老师:家里的人说,出去干活的时候要留一手,不要教会了徒弟饿死了师傅。这对不对?
这不对。不是靠着手艺活,而是靠着神的祝福活。这个观念如果不调整过来,就麻烦了。因为,说“干活要留一手,不要教会了徒弟饿死了师傅”的人不是雅各,他们没有神的同在,所以得留一手。最后,也没什么太大用。
Q8:为什么利亚失宠,神就使她生育?雅各爱拉结,神就使她不能生育?
神挺公平的。其实,雅各到利亚那儿去,跟她同房的时候很少,但是,一同房就怀孕,一怀孕就生一个。生孩子就像下个蛋似地。雅各很爱拉结,拉结生孩子很费劲,而且,生了最后一个还难产。一个人受宠,经常有人给你很多爱,就一定会作,往死里作;如果没有人宠,人就会呼求神。一个人在世上充满了被爱,很难有命定的;一个人在世上吃够了老多的苦,对世上一切都彻底地绝望了,你让他有命定好像还是不难的。
Q9:老师,能不能讲一讲利亚和拉结?有人说最终利亚与雅各同葬,说:在神眼里利亚更合神心意;拉结偷神像的事,不讨神喜悦。
这我研究得不太多。但是,拉结偷了神像,的确是被宠糊涂了。大家一定要知道,被宠糊涂了就瞎整、就作;利亚因为老公不太爱她,她就整天祷告求神。所以,那几个孩子的名字都是很属灵的。大家要知道,在地上恩爱不用感谢神,你感谢你自己吧。
Q10:老师,有命定的人就有神的同在,我们怎样才算是得着命定了呢?
就是你脑子里得很清楚,你到底是为什么而活,为什么而生,为什么而死。就叫做命定。如果你说我为了工作而活,为了工作而生,为了工作而死,那工作就是你的命定。所以弟兄姐妹,你很清楚,你得着的命定就是为神而活。
Q11:老师,按旧约记载,亚伯拉罕,雅各、大卫等人物都有一些不足之处,虽然他们都是有命定的人,他们达不到耶稣基督的完全,能这样理解吗?
如果他们达到完全,咱们就没机会了。所以《圣经》讲的是不完全的人都有机会。
Q12:老师,我问一下,以前传统教会,台上带领祷告,台下口口声声回应“阿门,感谢主”,这是不是也叫宗教化?
如果是走个形式就叫宗教化;如果走心就不是宗教化,不走心的都叫宗教化。
Q13:老师,在选择工作时,是不是只要有神的同在,不管在哪儿,不管干什么都一样,是吗?
对的。经常有人问我:老师,我拿到了三个工作,我应该选哪一个?我告诉他:闭着眼睛随便摸一个,选哪一个都一样。蒙祝福的人在哪儿都一样,不蒙祝福的人在哪儿也都一样;有神同在的人在哪儿都一样,没有神同在的人在哪儿也都一样。
Q14:老师,雅各没有怨言,你举例说也许邻居会挖走雅各,雅各有信心不会去吗?你还说别傻干,请老师讲一讲,没明白?
我是说雅各在他舅舅家,如果他舅舅不给他薪水,他会继续傻干下去吗?应该不会。他就会主动找他舅舅,让他舅舅把女儿嫁给他。他是这个逻辑。
Q15:老师,有神的眼光就是把一切看成是好的,就是把坏事看成好事,知道神掌权,神掌管我们的生命,是这样理解吗?
千万别搞错了,《圣经》里头除了亚伯拉罕、雅各、以撒、约瑟这四个人,神是这么说的,坏事都会变成好事。但是还有很多不是亚伯拉罕、以撒、雅各、约瑟的人,被卖到埃及去的都变成奴隶了,不会变成好事的。所以我说的意思是命定之外没有祝福。
Q16:老师,既然都是命定,是不是就得认命了?
你对命定理解错了。因为你认为的命定是说,你不用做选择就这么地了。命定不是命运,命定也不是命中注定,命定是我们自己的选择。如果说认命,那雅各早就应该认命,他本来就是次子。所以基督教的信仰不是认命,是信心。
Q17:老师,宗教辖制怎么把人的性情扭曲了?
宗教这玩意儿它是做了一个表面的样子。比如说人死了给人烧纸,烧完了他真的收到了吗?不知道。那人为什么这么做呢?因为大家都这么做,没有人证明他收到没收到,就是那么干。初一、十五烧纸,烧完了以后会怎么样?不知道!自私的还自私,愚蠢的还是愚蠢,投机的还是投机,没有用。但是如果人心里头开始改变,那就不叫宗教辖制,那叫信心。
Q18:老师,拉结受宠是招鬼了吗?
拉结被体贴肉体了。体贴肉体就招鬼,满嘴都是鬼话,后来就受了咒诅难产死掉了。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창세기》 29장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사실 이 장은 저에게 매우 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어디에 깊은 영향을 주었을까요? 바로 하나님께서 야곱과 함께하셨지만, 우리는 야곱에게서 그러한 종교적인 냄새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점입니다. 예전에 우리 교회에 한 형제가 있었는데, 겉보기에는 아주 영적이었습니다. 다 같이 식사할 때 누군가 농담을 던져서 모두가 박장대소하고 있는데, 그 형제가 거기서 갑자기 "주님 감사합니다!"라고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그가 대체 무엇 때문에 감사하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또 웃었습니다. 첫 번째는 그 농담 때문에 웃었고, 두 번째는 그 상황이 '주님 감사합니다'와는 아무 상관이 없어서 웃었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 대해 여러분과 꼭 나누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사람들, 특히 《창세기》에 나오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이 네 사람을 보십시오. 이들이 툭하면 "주님 감사합니다", "아멘", "할렐루야"를 외쳤습니까? 아닙니다! 그것을 하나님이 함께하신다고 합니까? 많은 사람이 그저 "할렐루야", "주님 감사합니다" 하다가 정작 하나님을 다 잃어버립니다.
종교적인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것은 제게 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중화권 사명신학에는 종교적인 냄새가 별로 없습니다. 왜 종교적인 냄새가 별로 없을까요? 《창세기》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인데 어떻게 많을 수 있겠습니까? 한번은 어떤 형제가 먼 곳에서 병든 두 딸과 며느리를 데리고 찾아왔는데, 몸도 아프지만 생각도 온전치 못했습니다. 눈보라가 치는 추운 날씨에 멀리서 찾아왔기에, 제가 식사를 대접하며 술 한 병을 땄습니다. 그랬더니 그가 "안 됩니다! 절대 안 됩니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게 왜 안 된다는 거지?' 싶었습니다. 그의 얼굴 표정이 일그러져 있었습니다.
그가 말하길 "우리 장로님이 여기 계셨다면 난리가 났을 겁니다! 그건 술 취함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이 술에 독이라도 들었습니까?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도 여러분 장로님처럼 엄격하고 기준이 높지는 않았습니다. 이건 예수님을 뛰어넘는 것 아닙니까?" 이것이 도대체 무슨 논리입니까? 그래서 저는 이런 종교적인 냄새가 사람을 얼마나 해치는지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나눌 주제는 바로 《하나님이 야곱과 함께하시다》입니다. 여러분이 보아도 알지 못한다면 제가 알려드리겠습니다. 보이지 않더라도 보셔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야곱과 함께하심'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동행하심입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동행하심입니다. 모세는 왜 이렇게 기록했을까요? 모세는 그 시대에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어 이 일을 기록했습니다. 그는 하나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종교적인 냄새는 하나님의 동행하심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는 것이며 그저 겉모양만 흉내 내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모양만 내는 사람은 많지만, 실질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온몸에 종교적인 냄새를 풍기는 것, 솔직히 저는 정말 견디기 힘듭니다. 이 세대를 살아가면서 견디기 힘들어도 견뎌야 하지만, 저는 그것을 원치 않습니다. 저는 우리 가운데 있는 형제자매들이 온몸에 종교적 냄새를 풍기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우리는 실질적으로 살아내며, 사회의 자산이 되고 사회의 자원을 덜 소모하며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마주할 때 야곱처럼 반응하기 시작하는 것, 이것을 '하나님이 야곱과 함께하심'이라고 부릅니다.
종교적인 냄새가 없음
야곱에게서는 종교적인 냄새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 야곱은 《야고보서》를 쓴 야고보가 아니라 《창세기》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손자이자 이삭의 아들인 야곱입니다. 그러나 그는 참으로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경험했습니다. 종교적인 냄새가 없는 것이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이고, 종교적인 냄새가 나는 것은 바리새인의 영이 함께하는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바리새인의 영이 함께하는 것을 어떻게 분별하는지 알려드리겠습니다. 머릿속과 입술에 온통 종교적인 냄새로 가득 차 있어서 보기만 해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압니까?"라고 묻겠지요. 신약 《성경》에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이 다 그런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종교적인 냄새는 하나님의 동행하심이 없음을 뜻하고, 종교적인 냄새가 없는 것은 하나님의 동행하심이 있음을 뜻합니다. 여러분은 동의할 수도 있고,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나누는 것은 저의 한 가지 견해이며, 제가 틀렸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드리는 이 말씀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교회가 바리새인의 교회로 변하지 않도록, 우리 형제자매들이 바리새인의 누룩에 빠지지 않도록 특별히 연구해 왔기 때문입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저는 종교적인 냄새들을 하나하나 제거해 왔습니다.
한때 저는 기도를 아주 뜨겁게 했습니다. 위로 세 층, 아래로 세 층, 건물 7개 층 전체에 다 들릴 정도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이 와서 문을 두드렸습니다. 천지를 뒤흔들 듯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습니다! 느낌이 아주 충만했습니다! 여러분도 저와 함께 기도할 때 느낌이 있었습니까? 엄청난 느낌이었지요! "와! 정말 영적이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지금은 왜 그렇게 안 합니까?"라고 묻겠지요. 이제는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또 한 자매님이 우리 가운데 오셨는데, 마침 제가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대화 중에 그 자매님이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어떤 점이 흥미로웠을까요? 감정이 매우 풍부했는데, 예전 목사님이 스피커 볼륨을 최대로 올리라고 했고, 건물 관리실에서 문을 두드려도 열어주지 말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나중에는 관리실에서 큰 통나무를 가져와 문을 부수려고 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방 안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어쩜 내가 예전에 하던 짓과 저렇게 똑같을까?' 싶었습니다. 그냥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얼마나 느낌이 좋습니까!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여러 사람이 둘러앉아 손을 잡고 큰 소리로 방언 기도를 하면 느낌이 아주 대단합니다!
오늘 저더러 그런 분위기를 연출하라고 한다면 저는 완벽한 전문가입니다. 예전에 다 해봤고, 꽤 잘했기 때문입니다! 무대 위에서 마이크를 잡고, 음향, 피아노, 드럼, 기타 연주자들과 함께... 와! 저는 찬양 인도를 아주 잘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다 지나간 과거입니다. 그 분위기는 정말 끝내줬습니다. 나팔을 불고, 깃발을 흔들고, 외치고! 여러분은 그것이 참 좋아 보입니까? 사실 아주 좋아 보이고, 흥분되며, 느낌도 충만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을 다 뜯어고쳤습니다. 그것이 '종교적인 냄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것을 없애버려서 조금 아쉽게 느껴지십니까? 지금의 저를 보면 점잖아서 어디에도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지 않습니까? 다 사라졌습니다! 역사의 한 페이지를 넘긴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아쉬워하기도 합니다. 사실 새로 온 형제자매들의 간증을 들을 때면, 저도 속으로 약간의 아쉬움이 들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 시절을 놓쳤구나' 하고 말입니다. 그때는 한 사람당 기도 방석을 하나씩 주고 둥글게 둘러앉아 큰 소리로 기도했는데,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하지만 사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저는 지금도 그것이 무엇을 이룰 수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재미있고, 흥분될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그런 것은 사람들을 선동하여 종교적 광신을 일으키기 쉽습니다. 나중에 저는 그런 것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단계 판매원들과 다를 바가 없어서 다 없애버렸습니다.
그것은 종교적인 냄새일 뿐, 《창세기》에는 이런 것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런 것은 꽤 두려운 것입니다. 어떻게 그것을 없앴을까요? 흑암의 세력(마귀)을 대적할 때 그런 것은 눈곱만큼도 쓸모가 없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아쉬워하지 마십시오. 없앤 것을 자랑스럽게 여겨야 합니다. 과거에 우리가 자랑으로 여겼던 것들이 이제는 쓸모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걷는 길은 참으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는 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고,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과 함께하셨다는 것은 《성경》에 근거한 것이니 차츰 깨달아가야 합니다.
야곱은 일을 잘했다
일을 잘하는 것과 일을 못 하는 것은 종교적 냄새가 있느냐 없느냐와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일을 못 하는 사람은 어떻게 합니까? 겉치레만 요란하게 합니다. 일을 잘하는 사람은 그냥 묵묵히 일을 해냅니다. 일을 못 하는 사람은 PPT나 번지르르하게 만들어 상사를 속입니다. 야곱은 바로 일을 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외삼촌 라반의 집을 향해 매우 고되게 걸어갔습니다! 하루 또 하루를 걸었습니다. 걷다가 마침내 한 우물가에 이르렀습니다.
목자들이 우물 곁에 누워 있는 것을 보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왜 우물 위의 돌을 굴려내지 않는 걸까? 양들에게 물을 충분히 먹이고 나서 다시 양을 치러 나가야 하지 않는가?' 그들이 대답하기를 "지금은 안 됩니다. 양 떼가 다 모인 후에야 돌을 굴려내고 물을 먹일 수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차이가 발생합니다. 야곱은 양을 이렇게 쳐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사람들은 저렇게 쳐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야곱은 해가 아직 중천인데 양 떼가 모일 때가 아니니, 먼저 양들에게 물을 먹이고 가서 다시 풀을 뜯기는 것이 낫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야곱이 이르되 “해가 아직 높은즉 가축 모일 때가 아니니 양에게 물을 먹이고 가서 풀을 뜯게 하라.” 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그리하지 못하겠노라 양 떼가 다 모이고 목자들이 우물 아귀에서 돌을 굴려야 우리가 양에게 물을 먹이느니라.”(《창세기》 29:7-8)
여러분, 이것이 무슨 뜻인지 짐작이 가십니까? 바로 게으름을 부리는 것입니다! 싱가포르 사람들은 '뱀을 먹는다'고 하고, 우리 중국인들은 '물고기를 더듬는다(농땡이친다)'고 합니다. 그들은 일을 그렇게 한 것이지, 융통성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다들 '더 치러 나가면 얼마나 힘든가! 차라리 돌 곁에서 한숨 자며 게으름 피우는 게 훨씬 낫지!'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들은 '양 떼가 다 모일 때까지 기다린다'는 그럴듯한 핑계를 댔습니다. 해가 이렇게 중천에 떴는데 뭣 하러 모입니까? 다 모일 때까지 우물가에서 잠이나 자고 게으름을 피우려는 것입니다! 야곱의 방식은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 방식이고, 이 사람들의 방식은 게으름을 피우는 방식입니다.
야곱이 어떻게 이 일들을 알았을까요? 그는 양 치는 전문가였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다 설명할 수 없지만, 나중에 알게 되듯이 야곱은 일에 있어서 대단히 유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양을 어떻게 쳐야 하는지 진정으로 잘 알고 있었습니다. 본래 8시간 동안 쳐야 할 양을 그들은 4시간만 치고, 나머지 시간은 우물가에서 빈둥거리며 기다렸던 것입니다. 게으름을 피우고, 땡땡이를 치고, 농땡이를 부리고, 대충 시간이나 때우는 식으로는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결코 누릴 수 없습니다. 틈만 나면 게으름 피우고 요령만 부린다면 결국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다 날려버리게 됩니다.
저는 일할 때 온 힘을 다하며 시간을 질질 끌지 않습니다. 10개를 할 수 있으면 8개만 하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빨리 일하니까요! 10개를 할 수 있으면 10개를 다 합니다. 그러다 보니 10개를 할 수 있던 제가 20개도 할 수 있게 되었고, 저의 생산량은 일반인보다 훨씬 높았습니다. 왜일까요? 게으름을 피우지 않기 때문입니다. 게으름을 피우면 하나님의 동행하심마저 잃어버리게 됩니다. '내가 일을 더 많이 해주면 사장만 이득이다. 3,000위안을 주니 2,000위안어치만 일해서 1,000위안을 이득 봐야지'라고 계산한다면, 그 계산이 맞습니까? 완전히 틀린 계산입니다. 나중에는 그 2,000위안마저 잃게 됩니다. 누가 그런 사람을 쓰겠습니까? 결국 자신만 바보가 되어 나중에 정작 자기 양을 칠 때가 되어도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됩니다.
예전에 어떤 사람이 제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만약 우리 집에 양이 딱 한 마리만 남았다면 십일조를 어떻게 드려야 합니까? 양 엉덩이를 잘라야 합니까, 아니면 양 머리를 잘라야 합니까?" 제가 그 말을 듣고 어이가 없어서 말했습니다. "당신 참 대단하군요! 어떻게 양을 쳐서 겨우 한 마리만 남길 수가 있습니까? 도대체 저주를 얼마나 깊이 받은 겁니까! 양 머리를 바치네 엉덩이를 바치네 따지기 전에, 먼저 당신의 저주 문제부터 해결합시다. 그 양 한 마리는 그냥 놔두십시오." 그 사람은 게을렀던 것입니다!
남의 재물에 충성하지 않는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당신의 것을 주시겠습니까? 우리는 충성스러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땡땡이를 치고 게으름을 피우는 것은 충성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억지로 야근하고 구호나 외치며 쓸데없는 짓을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혜롭게 일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양 한 마리가 있으면 두 마리로 불리고, 두 마리를 네 마리로, 네 마리를 열여섯 마리로, 열여섯 마리를 백스물여덟 마리로 불릴 수 있어야 합니다. 남의 것에 충성할 때 하나님께서 나의 것을 주신다는 것은 《성경》에 기록된 참으로 귀한 말씀입니다.
만약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에 가서 아침부터 밤까지 스마트폰이나 들여다보고, 밥이나 얻어먹고 돈이나 타 쓰며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한 달 뒤에 외삼촌이 그를 쫓아냈을지도 모릅니다. 수습 기간도 통과하지 못했을 텐데 딸을 그에게 시집보내기나 했겠습니까? 척 보니 살만 디룩디룩 찌고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으며, 일은 젬병이고 밥 먹는 데만 일등인 꼴을 본 외삼촌은 '에이고, 이 조카 녀석 안 되겠구나. 밖으로 나가라! 조카라 해도 우리 집에 둘 수는 없다'라고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야곱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성경》에 어떻게 나와 있습니까? 라반이 "너는 참으로 내 골육이로다"라고 했고, 야곱은 그들과 한 달 동안 함께 살았습니다. 만약 야곱이 '삼촌의 골육이니 삼촌을 등쳐먹어야겠다. 친혈육이니 거저 먹고 거저 마시고 거저 챙겨야지'라고 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실컷 먹고 마신 뒤에 인생이 망가졌을 것입니다. 바보 같은 사람들이나 그렇게 행동합니다.
그런데 야곱은 그 한 달 동안 일을 기가 막히게 잘했습니다! 제가 그것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눈에 들었다는 것 자체가 보통 대단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어떤 직장에 들어가 수습 기간을 보낼 때 사장이 '그냥 여기서 무보수로 일하려면 일하고 계시오'라며 월급을 주지 않는다면, 우리도 열심히 배워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도 실제로 이런 청년이 하나 있었습니다. 사장이 그에게 "월급은 못 주지만 여기서 일하는 것은 허락하겠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떻습니까? 썩 유쾌하지 않지요.
그 청년이 말했습니다. "사장님, 다른 사람을 구할 때까지만 일하고 나가겠습니다." 여러분, 이 대답이 뭔가 잘못되지 않았습니까? 당신이 능력 있는 인재라면 사장이 월급을 안 줄 리가 없습니다. 월급을 안 주고 무료로 일하게 한 것은 배울 기회를 주기 위함인데, 배우지도 않고 상대에게 그런 식으로 대하니 얼마나 답답하고 철이 없습니까? 여러분, 이해가 되십니까? 저는 그 말을 듣고 웃음이 나왔습니다. 라반이 어떤 사람입니까? 라반이 딱 보니 '어이쿠! 이 조카 녀석 실력이 대단하구나. 완전 전문가네!' 싶었던 것입니다. 마침 그달에 어미 양이 새끼를 낳았는데 산파 역할을 기가 막히게 해냈고, 마침 그달에 양 한 마리가 병들었는데 야곱이 손을 대자마자 나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은 사람들에게 참으로 사랑을 받지만, 귀신이 함께하는 사람은 미움을 받는다는 것을 아십니까? 만약 많은 사람이 당신을 싫어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자신이 일할 만한 재목이 못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일은 하나도 못 하면서 밥 먹는 데만 일등이니, 누가 보고 싫어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은 반드시 일을 잘하는 사람입니다! 귀신이 함께하는 사람은 게으름 피우고 농땡이치는 사람입니다.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눈에 든 것뿐만 아니라, 라반의 마음에 쏙 들어왔습니다! 라반은 '내 딸을 저 녀석에게 시집보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묻겠습니다. 라반이 야곱의 내력을 알고 있었을까요? 알고 있었습니다. 야곱이 집에 들어오자마자 자신의 경험과 사정, 아버지의 축복을 어떻게 받았는지, 집을 떠나 외삼촌에게로 도망쳐 오게 된 모든 자초지종을 이야기했기 때문입니다. 라반이 들어보니 '세상에나! 예전에 내 누이가 그 이삭에게 시집갔는데 이삭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지. 이 아이는 내 누이의 아들이니 진짜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자로구나! 이 녀석은 반드시 큰 축복을 가져올 것이다. 어떻게든 이 녀석을 붙잡아 두어야겠다!'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어떻게 붙잡아 둘까요? 딸을 시집보내어 묶어두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하나님의 동행하심이 있습니까, 아니면 귀신의 동행하심이 있습니까? 단언컨대, 사람은 일을 잘해야 합니다. 훗날 사실로 증명되었듯이 야곱은 일을 엄청나게 잘했습니다! 야곱이 라반의 집에서 섬긴 덕분에 라반의 낙타와 나귀와 양 떼의 수가 몇 배로 번성했습니다. 그렇다면 야곱 자신이 바로 '돈' 아니겠습니까? 야곱이 곧 돈이었습니다. 제가 묻겠습니다. 하나님의 동행하심이 값어치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엄청난 값어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절대로 게으름을 피워서는 안 됩니다!
저는 참으로 하나님의 동행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저의 생산량은 매우 높고, 일하는 속도도 엄청나게 빠르며, 일도 꽤 잘 해냅니다. 나중에 저는 한 가지 결론을 내렸는데, 혹시 아직 모르는 분들이 계실까 봐 오늘 작은 홍보를 하나 하겠습니다. 제가 바로 돈입니다! 저는 엄청난 가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저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 말을 하는 것은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 형제자매들이 모두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남들에게 "내가 바로 돈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당신 자신이 자산이기 때문입니다! 어디를 가든 자산이 되고 돈나무가 되는 것입니다. 비록 듣기에는 거칠지 몰라도, 당신은 참으로 값진 존재가 된 것입니다. 당신 자신이 그렇게 값진 존재가 되었다면 남이 이 재산을 가져가든 저 재산을 가져가든 신경이나 쓰이겠습니까? 쓰이지 않습니다. 에서가 아버지의 유산을 다 가져가려 할 때도 야곱은 "가져가고 싶으면 다 가져가라! 어차피 내가 곧 돈이다"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인내와 끈기가 있었다
야곱은 참 대단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길을 떠날 때 돈을 챙겨가지 않아도 되지만, 이런 삶에는 인내와 끈기가 필요합니다. 야곱이 먼 길을 걸어와 라헬과 그녀가 치는 양 떼를 만났을 때, 그는 외삼촌의 양 떼에게 물을 먹인 뒤 라헬에게 입 맞추고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야곱이 라헬에게 입 맞추고 소리 내어 울며(《창세기》 29:11)
어떤 사람이 소리 내어 울겠습니까? 마음고생이 심했던 사람입니다. 하루 또 하루를 끈기 있게 버텨냈는데, 이러한 성품은 모두 혹독한 환경 속에서 훈련된 것입니다. 여러분, 그의 마음에 쌓인 고통을 털어놓을 사람이 아무도 없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부잣집 도련님으로 자라다가 아버지 집을 떠나며 돈 한 푼 챙기지 못하고 손에 지팡이 하나만 쥐고 길을 나섰습니다. 금목걸이라도 몇 개 챙겼다면 좋았겠지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걷고 또 걸었습니다! 어떤 때는 늑대에게 잡아먹힐 뻔하고, 어떤 때는 곰에게 찢길 뻔하고, 어떤 때는 호랑이에게 삼켜질 뻔하면서 마침내 여기까지 걸어와 외삼촌의 딸 라헬을 만난 것입니다. 그러니 사촌 동생을 끌어안고 애가 끊어질 듯이 통곡한 것입니다.
끈기와 인내는 결코 편안한 일이 아닙니다. 편안한 일이라면 굳이 버텨낼 필요도 없습니다. 누군가 마사지를 아주 시원하게 해주고 있다면 "조금만 더 참으세요" 할 필요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시원하고 좋은데 무엇을 참겠습니까?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에만 인내가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데 왜 힘듭니까?"라고 묻겠지요.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인내하는 성품을 갖추게 되기 때문이며, 이 성품은 정말로 중요합니다.
우리 교회의 상황은 잘 견뎌내어 이겨냈습니다. 어제 저는 어느 목사님을 한 분 뵈었는데, 그분은 끝내 버텨내지 못해 교회가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그분을 뵈니 마음속에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만약 저도 끝까지 버텨내지 못했다면 저분과 비슷한 처지가 되었을 것입니다. 조금 거칠게 말하자면 그 형편없는 꼴이 되었을 것입니다. 참으로 힘들었겠지요! 저는 그런 상황을 보면 진심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그래서 "제가 드릴 수 있는 것은 다 드리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그때 어떻게 참고 견뎌냈는지 저 자신도 다 기억하지 못합니다. 매일 믿음을 가지고 버텨내야 했습니다. 남들은 믿음이랍시고 엉뚱한 짓을 할 때, 저는 믿음을 가지고 끈기 있게 제대로 해나갔습니다. "제대로 해나갔다는 것을 어떻게 압니까?"라고 묻겠지요. 저에게는 쌓아온 축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번 보십시오. 10년 전의 성경공부 자료들이 여전히 웹사이트에 남아 있고, 저는 수많은 자료를 축적해 왔습니다. 제가 심은 영적 양식으로 수많은 사람이 먹임을 받았습니다! 많은 사람이 우리가 생산해 낸 자료를 통해 공급을 받고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 여러 교회가 우리의 자료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인내의 성품을 잘 빚어가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눈으로 보셨습니까? 아닙니다. 그렇다면 끈기와 인내는 보셨습니까? 보셨을 것입니다. 그것을 바로 하나님의 동행하심이라고 부릅니다. 여러분은 "왜 내 눈에는 안 보이지?"라고 하겠지만, 야곱은 믿음 안에서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하심을 보았던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에게 믿음이 없다면 그냥 그만두십시오.
원망이 없었다
외삼촌이 말했습니다. "네가 언제까지나 내 일을 거저 해줄 수는 없지 않느냐!" 외삼촌이 가만히 보니 한 달이 지나고 또 한 달이 지나는데, 혹시 야곱이 어느 날 이웃집으로 일하러 가버리면 큰일이겠다 싶었습니다. 그러면 끝장입니다. 외삼촌이 보니 '안 되겠다, 이 녀석을 꼭 붙잡아 둬야겠다! 한 달을 무보수로 일시키고 또 한 달을 무보수로 일시키면, 야곱이 아무리 인내심과 끈기가 있어도 이웃집으로 일하러 갈 것이다!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라며 계산을 마친 것입니다. 당신에게 진짜 실력이 있다면 사장은 당신을 붙잡으려 할 것이고, 어떻게든 환경을 마련하여 남겨두려 하지 쫓아내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 라반은 '야곱이 계속해서 나를 거저 섬기게 둘 수는 없다! 공짜로 한 달 일하고 또 한 달 일하다가 옆집에서 인재인 줄 알아보고 스카우트해 가면 나만 큰 손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라반은 속으로 '안 되겠다, 품삯을 주어야겠다' 결심하고 야곱을 불러 말했습니다.
라반이 야곱에게 이르되 “네가 비록 내 생질이나 어찌 그저 내 일을 하겠느냐 네 품삯을 어떻게 할지 내게 말하라.” (《창세기》 29:15)
여러분, 야곱이 이 한 달 동안 무엇을 했는지 아십니까? 열렬한 사랑에 빠졌습니다. 라헬을 보는데 그녀의 손짓 하나, 발짓 하나에 마음이 온통 빼앗겨 어떻게 보아도 너무나 사랑스러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온종일 그 집에서 지극정성으로 일했습니다. 어쩌면 그 한 달 동안 그 집에서 잘 보인 것은 목적이 있어서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마침내 외삼촌이 입을 열었습니다.
야곱이 라헬을 사랑하므로 말하되 “내가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칠 년을 섬기리이다.” 라반이 이르되 “그를 네게 주는 것이 타인에게 주는 것보다 나으니 나와 함께 있으라!” (《창세기》 29:18-19)
그렇게 일한 세월이 7년이었습니다. 이 7년 동안 아무런 불평도 없이 그저 먹고사는 것만 얻었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80세가 넘었지만 조급해하지 않았습니다. 마땅한 대가를 다 치러야 데려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7년이 눈 깜짝할 사이에 휙 지나갔습니다. 일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시간이 금방 지나갑니다. 게으른 사람은 고통 속에서 하루를 일 년처럼 보내지만, 일하기를 즐기는 사람은 기쁨 가운데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갑니다. 그런데 결혼하여 다음 날 아침에 보니 큰딸 레아였습니다. 그 맑고 초롱초롱한 눈을 가진 여인은 오지 않고, 눈에 총기가 없고 흐리멍덩한 여인이 와 있었던 것입니다. 총명한 눈을 가진 이는 동생이었는데, 결국 또 7년을 일하게 되었습니다.
아침에 보니 레아라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외삼촌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행하셨나이까 내가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을 섬기지 아니하였나이까 외삼촌이 나를 속이심은 어찌됨이니이까.” 라반이 이르되 “언니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에서 하지 아니하는 바이라. 이를 위하여 칠 일을 채우라 우리가 그도 네게 주리니 네가 또 나를 칠 년 동안 섬길지니라.” 야곱이 그대로 하여 그 칠 일을 채우매 라반이 딸 라헬도 야곱에게 아내로 주고 (《창세기》 29:25-28)
라헬의 몸값은 7년이었지만, 레아의 몸값은 7년짜리가 못 되었습니다. 3년만 쳐줘도 후한 것이었습니다. 계산을 잘해야 합니다. 눈이 맑고 사랑스러운 여인은 7년이지만, 사랑스럽지 않고 눈에 생기가 없는 여인은 당연히 할인을 받아야 마땅한데, 또 7년을 일했습니다. 야곱은 이미 나이가 들 만큼 들었는데 언제 또 그 세월을 버티겠습니까? 그럼에도 또 7년을 일하면서도 놀랍게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사기를 당하고도 왜 원망하지 않았는지 아십니까?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하심을 믿는 사람은 설령 속임을 당하더라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기꺼이 좋아서 그랬다는 것이 아니라, 그의 내면에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라는 확고한 생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원망이 거의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늘 불평과 원망을 달고 산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잃어버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야곱을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야곱을 축복하는 자는 축복을 받습니다. 야곱이 바로 훗날의 이스라엘이며, 이스라엘은 어떤 저주로도 저주할 수 없는 대상입니다. 하나님이 당신과 함께하심을 믿는다면 좋은 일도 좋은 일이고, 나쁜 일도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좋은 일은 좋은 일이고 나쁜 일은 나쁜 일이라고 여기는 것을 '선악을 분별함'이라고 부릅니다. 좋은 일도 좋은 일이고 나쁜 일도 결국 좋은 일이라고 여기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야곱의 아들 요셉이 애굽에 팔려갔을 때도 믿음으로 버텨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섭리하신 일이었고, 실제로도 그러했습니다. 당신이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은 모든 일 배후에 하나님의 동행하심이 있으며,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임을 굳게 믿습니다. 만약 나쁜 일이 닥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께 감사하면 됩니다. 여러분은 "어휴! 너무 종교적인 것 아닙니까?"라고 하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야곱의 마음 중심이 진실로 그러했기 때문에 아무런 원망도 없었던 것입니다.
감정이 매우 풍부했다
우리 하나님은 감정이 충만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제가 그것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야곱이 라헬을 보았을 때, 그녀를 끌어안고 통곡했습니다.
야곱이 그의 외삼촌 라반의 딸 라헬과 그의 외삼촌 라반의 양 떼를 보고 나아가 우물 아귀에서 돌을 굴리고 그의 외삼촌 라반의 양 떼에게 물을 먹이고, 야곱이 라헬에게 입 맞추고 소리 내어 울며 (《창세기》 29:10-11)
칠십이 넘은 나이 든 남자가 어린 처녀를 끌어안고 왜 그렇게 울었겠습니까? 야곱이 마침내 외삼촌 라반의 집에 도착하여 참된 감정을 있는 그대로 터뜨린 것인데, 여러분은 그것이 못마땅하십니까? '대장부는 함부로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는 말을 도대체 누가 만들었습니까? 눈물을 흘려도 됩니다. 참된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영적인 사람,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의 감정은 결코 메마르지 않고 아주 풍부합니다. 감정이 꽉 닫혀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의 모습이라 보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남자는 눈물을 흘려선 안 된다'는 말을 절대 믿지 마십시오. 감정을 죽이지 말고, 마음속의 감정이 살아나도록 하십시오.
야곱은 라헬을 끔찍이 사랑했습니다. 레아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라헬만큼은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레아의 눈이 맑지 못했던 것을 탓할 수밖에 없는데, 그것이 바로 야곱의 솔직한 감정 표현이었습니다. 야곱이 편애했다고 비난하지 마십시오. 이쪽이 사랑스럽고 저쪽이 덜 사랑스러운 것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지 않습니까? 가식 떨지 마십시오. 마음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알고 있습니다. 이런 감정은 지극히 정상적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사람답게 사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감정은 인간의 삶을 이루는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런 종교적인 냄새를 완전히 벗어버려야 합니다. 종교적 냄새가 가득한 사람들을 관찰해 보면 감정이 꽉 닫혀 있습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은 야곱에게 하나님의 동행하심이 있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신다고 해서 자신이 무슨 대단한 천사인 양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제가 보기엔 하늘에서 떨어진 오물과 같습니다.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되며, 종교적인 냄새로 진실한 감정을 대신하려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사람은 참으로 자유롭다
야곱은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하심을 알았을까요? 알았습니다. 알면서도 어떻게 편애를 할 수 있었을까요? '내가 편애하고 싶으면 하는 것'이며, 이것은 지극히 솔직하고 자유로운 모습입니다. '일도 내가 원해서 하는 것이지 남이 시켜서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나의 선택이요 나의 자유다. 내가 참고 견디는 것도 내가 기꺼이 견디고 싶어서 견디는 것이다. 내가 원망하지 않는 것도 불평하고 싶지 않아서이다. 내가 라헬을 사랑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며 아무런 문제가 없다.' 만약 종교적 냄새가 가득한 사람의 기준대로라면, "야곱은 레아를 사랑하지 않고 라헬만 편애했다"라며 비난하는 소리를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레아가 총애를 잃었는데, 사랑을 덜 받는 것도 당연한 것 아닙니까?
여호와께서 레아가 사랑받지 못함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자식이 없었더라. 레아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르우벤이라 하여(즉 아들이 있다는 뜻임)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하였더라. 그가 다시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가 사랑받지 못함을 들으셨으므로 내게 이 아들도 주셨도다” 하고 그의 이름을 시므온이라 하였으며(즉 들으심이라는 뜻임). 그가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름을 레위라 하였으니(즉 연합이라는 뜻임) 이르되 “내가 그에게 세 아들을 낳았으니 내 남편이 지금부터 나와 연합하리로다” 하였더라. 그가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고 이로 말미암아 그의 이름을 유다라 하였고(즉 찬송이라는 뜻임) 그의 출산이 멈추었더라. (《창세기》 29:31-35)
보통의 경우라면 하나님께서 굳이 간섭하지 않으실 수도 있지만, 야곱의 집에서는 레아가 총애를 받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 아들을 낳고 또 낳게 하셔서 쿵덕쿵덕 네 아들이나 낳게 하셨습니다. 당신이 이렇게 행동하든 저렇게 행동하든, 그것이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방해하지 못합니다. 야곱은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하심을 명확히 알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음을 분명히 알았으며, 하나님께서 자신의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심을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레아 또한 마땅히 누려야 할 것을 받았습니다. 우리 가운데 이름이 레아인 분이 계십니까? 혹시 이름이 레아라도 참 좋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 알고 계십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은 이제 자유로운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내가 잘하면 어떻게 되고, 잘못하면 어떻게 될까 너무 전전긍긍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있는 사람은 잘해도 이렇고, 잘못해도 크게 빗나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그렇게 정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온종일 '이것을 잘못했나, 저것을 잘못했나'만 생각한다면 얼마나 힘들고 부자유하게 사는 것이겠습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무 자유롭다며 이웃집 아내를 사랑하거나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그것은 큰일 날 짓이며, 결국 이리저리 꼬이다가 사고를 치게 됩니다. 그러고 나서 "나는 참 자유롭다"고 한다면, 그런 자유는 결코 용납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제가 말하는 자유가 아니며, 그런 자유는 패망을 부를 뿐입니다.
레아는 네 아이를 낳았고, 아이를 낳을 때마다 이름을 지어주었는데 유다는 '하나님을 찬송함'이라는 뜻입니다. 이 네 아이의 이름을 짓는 것에 대해서는 길게 나누지 않겠지만, 제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은 바로 하나님이 야곱과 함께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도 이와 같은 상황을 마주한다면 야곱과 같은 사람을 본받아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온전히 살아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복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창세기》 29장 본문
29:1 야곱이 길을 떠나 동방 사람의 땅에 이르러
29:2 본즉 들에 우물이 있고 그 곁에 양 세 떼가 누워 있으니 이는 목자들이 그 우물에서 양 떼에게 물을 먹임이라 우물 아귀의 돌은 컸더라.
29:3 모든 양 떼가 거기에 모이면 목자들이 우물 아귀에서 돌을 굴려 양에게 물을 먹이고, 그 후에 다시 우물 아귀 본래 자리에 돌을 덮더라.
29:4 야곱이 목자들에게 이르되 형제들아 너희는 어디서 왔느냐 그들이 이르되 우리는 하란에서 왔노라.
29:5 야곱이 그들에게 묻되 너희가 나홀의 손자 라반을 아느냐 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아노라.
29:6 야곱이 이르되 그가 평안하냐 그들이 이르되 평안하니라 보라 그의 딸 라헬이 양을 몰고 오느니라.
29:7 야곱이 이르되 해가 아직 높은즉 가축 모일 때가 아니니 양에게 물을 먹이고 가서 다시 풀을 뜯게 하라.
29:8 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그리하지 못하겠노라 반드시 양 떼가 다 모이고 사람들이 우물 아귀에서 돌을 굴려내야 우리가 양에게 물을 먹이느니라.
29:9 야곱이 그들과 말하는 사이에 라헬이 그의 아버지의 양 떼를 몰고 오니 그 양들은 그가 치는 것이었음이라.
29:10 야곱이 그의 외삼촌 라반의 딸 라헬과 그의 외삼촌 라반의 양 떼를 보고 나아가 우물 아귀에서 돌을 굴리고 그의 외삼촌 라반의 양 떼에게 물을 먹이고,
29:11 야곱이 라헬에게 입 맞추고 소리 내어 울며,
29:12 야곱이 라헬에게 자기가 그의 아버지의 생질이요 리브가의 아들임을 말하였더니 라헬이 달려가서 그의 아버지에게 알리매,
29:13 라반이 그의 생질 야곱의 소식을 듣고 달려와서 영접하여 그를 안고 입 맞추며 자기 집으로 인도하여 들이니, 야곱이 자기의 모든 사정을 라반에게 고하매,
29:14 라반이 그에게 이르되 너는 참으로 내 골육이로다 하였더라. 야곱이 그와 한 달을 함께 거주하더니,
29:15 라반이 야곱에게 이르되 네가 비록 내 골육(원문에는 형제)이나 어찌 거저 내 일을 하겠느냐 내게 말하라 네 품삯을 무엇으로 하겠느냐.
29:16 라반에게 두 딸이 있으니 언니의 이름은 레아요 동생의 이름은 라헬이라.
29:17 레아의 눈은 생기가 없고 라헬은 생김새가 아리땁고 준수하니,
29:18 야곱이 라헬을 사랑하므로 이르되 내가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을 칠 년 동안 섬기리이다.
29:19 라반이 이르되 그를 네게 주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보다 나으니 나와 함께 있으라 하매,
29:20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섬겼으나 그가 라헬을 깊이 사랑하는 까닭에 이 칠 년을 며칠처럼 여겼더라.
29:21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기한이 찼으니 내 아내를 내게 주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게 하소서.
29:22 라반이 그곳 사람들을 다 청하여 잔치를 배설하고,
29:23 저녁에 그의 딸 레아를 야곱에게로 데려오매 야곱이 그에게로 들어가니라.
29:24 라반이 또 여종 실바를 그의 딸 레아에게 몸종으로 주었더라.
29:25 아침에 보니 레아라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외삼촌이 내게 행하신 일이 어찌 된 일입니까 내가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을 섬기지 아니하였나이까 외삼촌이 어찌하여 나를 속이셨나이까.
29:26 라반이 이르되 언니를 아직 시집보내지 않고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의 법도가 아니니라.
29:27 이를 위하여 칠 일을 채우라 내가 그도 네게 주리니 네가 또 그를 위하여 나를 칠 년 동안 섬길지니라.
29:28 야곱이 그대로 행하여 레아의 칠 일을 채우매 라반이 딸 라헬도 야곱에게 아내로 주고,
29:29 라반이 또 여종 빌하를 그의 딸 라헬에게 몸종으로 주었더라.
29:30 야곱이 또한 라헬에게로 들어갔고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하여 다시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더라.
29:31 여호와께서 레아가 사랑받지 못함(원문에는 미움받음, 이하 동일)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자식이 없었더라.
29:32 레아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르우벤이라 하여(즉 아들이 있다는 뜻임)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하였더라.
29:33 그가 다시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가 사랑받지 못함을 들으셨으므로 내게 이 아들도 주셨도다 하고 그의 이름을 시므온이라 하였으며(즉 들으심이라는 뜻임).
29:34 그가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름을 레위라 하였으니(즉 연합이라는 뜻임) 이르되 내가 남편에게 세 아들을 낳았으니 그가 지금부터 나와 연합하리로다 하였더라.
29:35 그가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고 이로 말미암아 그의 이름을 유다라 하였고(즉 찬송이라는 뜻임) 그의 출산이 멈추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