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Q1:怎么才算是有活着的执照?
这个问题好呀!我们得逐渐地朝着一个方向走,就是恢复神造我们的荣耀形像。如果一个人除了识别善恶与日俱增,弄得不光自己难受,连你周围的人也难受;要么就自以为是,缺少智慧和聪明,这种人就是不会活着。比如说人要有驾照才能开车上路,这样才不犯法,所以人活着也需要有活着的执照。
有活着的执照,首先他得会活!但是怎么才算是会活呢?首先,他得知道活着是怎么一回事。人经常为了活着的事,一整邪劲就上来了,这不是很要命吗?我们要开始变得有知识、有智慧。你读了《箴言》、《传道书》,有了智慧之后,就开始得着命定。只要能够清楚回答为什么而活和怎么活,就有了活着的执照,就可以活在神造我们的目的当中了。
Q2:老师,有才德的妇女,是指教会吗?
这个地方没有说,如果非得说是教会也可以。在使徒保罗的书信《以弗所书》第五章里讲了很多有关夫妻的问题。讲完了以后,保罗又讲了一句话:这是极大的奥秘,但我是指着耶稣和教会说的(参《以弗所书》5:32)。一下子就把前面所讲的夫妻关系重新定义了范畴。这个范畴是指啥呢?是指耶稣和教会的关系,就像夫妻一样。
Q3:你们做父亲的,不要惹儿女的气,是什么意思呢?
不要惹儿女的气,是指不要整天在那里斗气。人为什么会惹儿女的气呢?当儿女的惹父母的气,父母也惹儿女的气,是因为缺少命定,不知道活着的目的是什么。如果没有活在命定当中,就会把鸡毛蒜皮的小事变成了大事,这就是问题的根本。咱们弟兄姐妹,逐渐地要把最大的事,也就是神在我们身上的旨意整明白。
愿神祝福大家!
1. 서론
- 사람이 세상에 올 때는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을 가지고 옵니다. 사람이 하나님께서 주신 이 직분을 감당할 수 있는지는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 왕이든 일반 백성이든, 남자든 여자든, 모두에게 다스리는 직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온 땅을 다스리게 하셨고, 창세 때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았습니다.
2. 네 힘을 여자에게 주지 말라
- 아이가 자라는 과정은 어머니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현숙한 어머니는 아이에게 여인에게 힘을 쏟지 말라고 가르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 앞에서 바른길을 걷고,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맡기신 직분을 감당하도록 가르칩니다!
- 발정하는 일에 힘을 쏟지 말고, 술 마시는 일에도 힘을 쏟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이 육체를 따라 사는 것을 좋아하면 어리석어집니다. 지혜로운 사람이 되려면 먹고 마시며 성적인 욕망을 따르는 일에서 멀리해야 합니다.
3. 왕의 직분
-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매우 존귀하게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것은 사람이 왕의 신분을 얻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왕의 직분은 사로잡힌 자를 자유롭게 하고, 억압받는 자를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 왕의 직분을 감당하려면 자신의 성장에 책임을 지고 성장하기를 갈망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을 사랑할 자격조차 없습니다.
4. 여인의 직분
- 현숙한 여인을 누가 얻겠느냐? 이 말에는 부정적인 태도가 담겨 있습니다. 현숙한 여인의 기준이 상당히 높아서, 그 뜻은 얻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 현숙한 여인의 기준에 자신을 비추어 보면 모두가 그다지 합격점에 이르지 못한 것 같지만, 사람은 이 기준을 향해 노력하고 사명을 얻으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나타내며 살아야 합니다!
5.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아름다운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
-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에게 완전한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것은 사명을 얻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완수하기 원하시는 일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 자신이 현숙한 여인이라고 스스로 생각하지 말고, 이런 착각을 버려야 합니다. 남자든 여자든 모두 사명을 회복하고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핵심 단어
- 사명을 얻다
- 하나님을 위해 살다
- 현숙한 여인
- 왕의 직분
- 여인의 직분
- 성장에 책임을 지다
- 다스리는 직분
- 하나님께서 맡기신 직분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잠언》 31장을 공부하겠습니다. 처음 《잠언》을 공부하기 시작했을 때 저는 한 가지 목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잠언》을 읽고 지혜로워지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다지 지혜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읽을수록 한 장 한 장 더 어려워졌고, 한 주 또 한 주를 버티다 보니 정말 혼이 났습니다. 나중에는 ‘내가 《잠언》을 강의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우리 함께 공부합시다. 그러니 제가 잘못 말한 부분이 있더라도 여러분은 저를 따라 아무렇게나 생각하지 마시고, 여러분 자신의 견해도 가지고 계시는 것이 좋습니다. 《잠언》 31장은 현숙한 여인에 대해 한 단락을 길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연결해서 읽어 보면, 사실 현숙한 여인에 대한 말씀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장이 이렇게 말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맡기신 직분을 잘 다스리라.’ 여러분이 남자든 여자든, 혹은 어떤 사람이든, 절대로 ‘새 인간’이 되지 마십시오. 한 번 새 인간이 되면 곤란해집니다.
어느 해에 저는 어떤 곳에 가서 건물을 둘러보았습니다. 건물주가 영어를 잘하지 못했는데, 건물을 bird man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번역하면 ‘새 인간’입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새 인간’은 좋은 말이 아닙니다. 나중에는 ‘날아다니는 손님’이라고 다시 번역했습니다. 날아다니는 손님이든 새 인간 손님이든, 어쨌든 좋은 일이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이 새가 되어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매우 이상합니다. 어렵게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났으면서도 동물이 되려고 합니다. 모든 동물 가운데 사람이 가장 존귀하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정말 비극입니다!
여러분이 죽는다면 다시 태어나 무엇이 되고 싶습니까? 어떤 사람은 돼지가 되고 싶다고 말합니다. 돼지는 먹을 것도 있고 마실 것도 있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먹고 마신 뒤 잠을 자다가 도살장으로 보내집니다. 그런데 그는 먹고 마시고 자고 쉬는 것만 생각하고, 돼지가 도살장에 보내져서 통돼지 구이가 된다는 사실은 잊어버립니다. 어떤 사람은 새가 되고 싶다고 말합니다. 새는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니 얼마나 좋습니까! 하지만 하늘을 나는 것에는 모기, 파리, 바퀴벌레 등도 많습니다. 그래도 사람으로 사는 것이 좋습니다! 어떤 사람이 되었든 사실 사람이 세상에 올 때는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을 가지고 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을 감당할 수 있는가가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창조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에 따라 살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자동차를 만든 목적은 그 자동차를 운행하기 위해서인 것과 같습니다. 컴퓨터나 휴대전화를 만드는 것은 사람이 사용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 수 없고, 자동차가 달릴 수 없으며, 컴퓨터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고, 컴퓨터를 켰을 때 화면이 검게만 나온다면 그것은 형편없는 물건입니다. 그것이 창조된 목적을 완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왕부터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남자든 여자든,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는 ‘이 사람은 무엇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사실 화인(華人) 사명신학은 이 점을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창세기》의 처음부터 바로 이런 일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다스리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1:26-28)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때부터 지금까지 이 다스리는 책임이 변했습니까? 변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에 와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어떤 자매들은 세상에 와서 오직 한 가지 일만 합니다. 하루 종일 남편만 바라봅니다. 자매가 말합니다. “어젯밤에 꿈을 꿨는데, 남편이 다른 여자와 도망갔어요.” 왜 그렇습니까? 낮에 생각한 것이 밤에 꿈으로 나타난 결과입니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얼굴이 새까맣게 변해 있습니다. 이 자매가 남편을 책망할 때 남편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릅니다. 남편은 그 자매의 꿈속에 들어간 적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자매에게 주신 직분은 남편을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현숙한 여인이 되는 것입니다. 덕이 없는 여인이 되는 것은 정말 치명적입니다. 이 세상에는 덕이 없는 여인이 아주 많고, 너무 많습니다. 그들은 바른 일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남자든 여자든 하나님께서 맡기신 직분을 감당해야 합니다. 처음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부터 계획이 있으셨습니다. 《창세기》 1장부터 3장까지 읽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 세 장은 《성경》의 기초이며,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입니다. 신약 《성경》에 이르러 예수님께서 오셨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뜻을 바꾸셨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사람이 번성하고 생육하며 땅을 다스리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 이해되십니까?
어떤 사람이 덕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그 사람이 자신이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을 감당했다는 뜻입니다. 그 사람이 여자라면 여자로서의 책임을 감당했다는 뜻이고, 왕이라면 왕으로서의 책임을 감당했다는 뜻이며, 일반 백성이라면 일반 백성으로서의 책임을 감당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렇게 해 보며 우리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책임을 감당합시다.
《잠언》 31장을 읽어 보겠습니다. 이 말씀은 르무엘 왕의 어머니가 아들을 가르치며 한 말입니다. 어머니라면 아들을 볼 때마다 좋게 보이고, 볼 때마다 귀하게 여길 것입니다. 그러므로 르무엘 왕의 어머니는 분명 아들에게 가장 좋은 지식을 가르쳤을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일부 어머니들처럼 어머니가 되는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아무렇게나 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르무엘 왕이 누구인지, 르무엘 왕의 어머니가 누구인지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습니다. 아무도 르무엘 왕이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에 여러 추측이 나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르무엘 왕이 솔로몬 왕이며, 르무엘은 그의 어머니가 솔로몬 왕에게 붙여 준 애칭일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우리도 르무엘이 무슨 뜻인지 모릅니다. 히브리어이고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르무엘 왕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가르친 것이 분명 매우 중요한 내용이라는 점은 알 수 있습니다.
네 힘을 여자에게 주지 말라
네 힘을 여자들에게 쓰지 말며 왕들을 멸망시키는 일을 하지 말지어다. (《잠언》 31:3)
얼마 전 우리 가운데 우울증을 앓는 한 아이가 왔습니다. 사람이 우울증에 걸리면 매우 고통스럽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는 어머니를 매우 미워했습니다. 어머니가 어머니로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모든 일을 엉망으로 했기 때문에 그 아이가 우울증에 걸린 것입니다. 최근에는 그 어머니가 또 아무렇게나 일을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남자는 나이가 차면 결혼해야 하고 여자는 나이가 차면 시집가야 한다고 생각하여, 아들을 위해 여자 친구를 찾고 교제할 일을 주선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지만 르무엘 왕의 어머니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네 힘을 여자에게 주지 말라!”
우리가 《잠언》 31장을 자세히 읽으면, 이것이 솔로몬 왕과 그의 어머니 사이의 대화였을 것이라고 대략 추측할 수 있습니다. 글자 하나하나에 지혜가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이 어머니는 밧세바입니다. 밧세바는 한때 우리아의 아내였지만 나중에는 다윗 왕의 아내가 되었고 솔로몬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또한 밧세바의 이름은 예수님의 족보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았다고 기록한 뒤 계속해서 예수님의 족보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밧세바라는 사람이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이 어머니가 아들에게 가르친 첫마디는 “네 힘을 여자에게 주지 말라!”였습니다. 그녀가 한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정말 흥미롭습니다!
솔로몬이 아직 어렸을 때 그의 어머니 밧세바는 하루 종일 솔로몬에게 하나님의 일을 중요하게 여기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이 어린 나이에 아버지와 함께 하나님의 성전을 어떻게 세울 것인지 의논했던 것입니다. 이 아이의 머릿속에는 온통 하나님의 일만 가득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가르친 것입니까? 바로 솔로몬 왕의 어머니 밧세바입니다. 아이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사실 어머니와 매우 큰 관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우리 가운데 어머니 된 분들에게 어떤 일이 있어도 현숙한 어머니가 되고, 현숙하지 못한 여인이 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밧세바와 같은 현숙한 어머니가 아이에게 가르친 첫마디는 “네 힘을 여자에게 주지 말라”였습니다. 여자는 여자를 매우 잘 알기 때문에 어머니는 아들에게 권면하며, 그가 하나님 앞에서 바른길을 걸어가기를 가르친 것입니다.
내 아들아, 내 태에서 난 아들아, 서원한 아들아! 내가 무엇을 가르칠까? 네 힘을 여자들에게 쓰지 말며 왕들을 멸망시키는 일을 하지 말지어다. (《잠언》 31:2-3)
여러분은 절대로 밧세바라는 이유만으로 색안경을 끼고 그녀를 보지 마십시오. 나중에 솔로몬이 하나님께 구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릴 지혜였고, 이 공로는 분명 어머니 밧세바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실 솔로몬의 어머니 밧세바는 하나님의 뜻을 매우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창세기》 1장에서 말하는 주제, 즉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직분을 잘 다스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많은 시간과 힘을 남자 친구나 여자 친구를 찾는 데 사용하지 마십시오. 어떤 사람들은 바로 이런 일 때문에 정신질환을 얻기도 합니다.
얼마 전 저는 조울증에 걸린 한 자매를 섬겼습니다. 남자 친구를 사귀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조울증이 있는 사람은 입만 열면 터무니없는 말을 하고, 소리를 지르며 난리를 칩니다. 그들이 내뱉는 말은 듣는 사람을 매우 괴롭게 합니다. 그 자매는 다른 사람들에게 “아무개가 나를 강간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부잣집 자제들의 실명까지 직접 거론했습니다. 그 결과 그 자매의 남편은 그 말을 듣고 매우 괴로워했습니다. 하지만 이 자매가 그렇게 된 것은 마음속이 사실 매우 더러웠기 때문입니다.
저는 남자든 여자든 이런 일에 모든 힘을 쏟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것은 여러분을 돼지나 원숭이, 개나 말로 만든 것이 아니며, 우리 주변에 흔히 나타나는 들고양이로 만든 것도 아닙니다. 들고양이는 발정기가 되면 매우 어리석어집니다. 창문 밖에서 아이가 우는 것 같은 소리를 내는데, 듣는 사람도 매우 괴롭습니다. 어떤 사람은 제게 묻습니다. “선생님, 이게 무슨 소리예요? 어느 집 아이가 이렇게 처절하게 우는 거예요?” 그러면 저는 말합니다. “아닙니다. 고양이가 발정한 소리입니다.” 고양이도 발정하면 저렇게 되는데, 사람이 발정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사람을 동물처럼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것은 사람이 발정하며 살게 하시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르무엘 왕의 어머니처럼 아이에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직분을 감당하라고 가르쳐야 합니다. 여러분의 힘을 모두 여자에게 주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은 사람이 늘 그런 일만 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이 아닙니다. 하지만 실제로 많은 어머니는 아이에게 반드시 그런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사람이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면 그런 것이 있고 없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발정하면 괴로워집니다. 제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은 사람이 동물처럼 살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사람은 얼마나 존귀합니까! 사람이 세상에 온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입니다.
네 힘을 여자들에게 쓰지 말며 왕들을 멸망시키는 일을 하지 말지어다. (《잠언》 31:3)
참 좋은 말씀입니다. 다른 어떤 왕을 멸망시키는 행동도 이것보다 더 심각할 수는 없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핵심은 바로 네 힘을 여자에게 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르무엘아, 왕에게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고 왕에게 독주를 마시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며 왕은 마시면 법을 잊어버리고 모든 곤고한 자의 송사를 굽게 할까 두려우니라 독주는 죽게 된 자에게, 포도주는 마음에 근심하는 자에게 줄지어다 그는 마시고 자기의 빈곤을 잊으며 다시 자기의 고통을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잠언》 31:4-7)
여기서 술을 마신다는 것은 술을 마셔서 모든 고통을 잊을 정도로 지나치게 마시는 것을 뜻합니다. 사람은 술을 좋아해서는 안 됩니다. 술을 좋아하는 것은 매우 곤란한 일입니다. 사람이 술에 빠지면 쉽게 정신을 잃고, 정신을 잃으면 하나님의 법을 잊어버리며, 곤고한 사람의 송사를 굽게 합니다. 사람이 육체를 따르고 먹는 것과 마시는 것에만 관심을 두어 돼지처럼 산다면 돼지 머리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 사람은 결코 잘될 수 없습니다. 그의 머리는 분명 제대로 기능하지 못할 것입니다.
맛있는 것을 좋아하고, 마시는 것을 좋아하고, 색을 밝히는 것은 모두 지혜로운 사람이 할 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면 절대로 먹고 마시며 성적인 욕망을 따르지 마십시오. 그렇게 하면 곤란해집니다. 저는 한 형제를 섬긴 적이 있습니다. 그는 여자가 없으면 살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아내와 다투다가 아내에게 쫓겨났고, 아내의 친구와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그의 생활은 매우 문란했습니다. 나중에 제가 그를 섬기며 물었습니다. “왜 그렇게 하십니까?” 그러자 그는 말했습니다. “선생님, 저는 남자잖아요. 저에게는 그런 필요가 있어요!” 이처럼 먹는 것과 여색을 좋아하는 사람은 결코 지혜로운 사람이 아닙니다.
왕의 직분
너는 말 못하는 자를 위하여 입을 열며 모든 고독한 자를 위하여 변호할지니라. (《잠언》 31:8)
이것이 바로 왕의 책임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만왕의 왕이십니다. 그렇다면 만왕은 누구입니까? 바로 우리입니다. 우리가 만왕입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님께서 세우신 왕이므로 왕의 직분을 다해야 합니다. 왕의 직분은 스스로 변호할 수 없는 사람을 위해 입을 열고, 모든 외로운 사람을 위해 변호하는 것입니다.
너는 입을 열어 공의로 재판하여 곤고한 자와 궁핍한 자를 신원할지니라. (《잠언》 31:9)
오늘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사로잡힌 자를 자유롭게 하고, 억압받는 자를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사람을 지배하는 속박을 끊고, 사람에게 있는 저주를 제거하며,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영광스러운 형상을 회복하는 것, 이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이것은 고된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본래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입니다. 사람에게는 책임이 있어야 합니다. 왕이라면 왕이 해야 할 일을 하고, 평범한 백성이라면 평범한 백성의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든 상관없고 천국에만 가면 된다고 말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그곳에서 청소를 해도 괜찮다고 말해서도 안 됩니다. 천국에는 청소하는 사람이 부족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작은 요정 몇 명만 만드셔도 사방을 깨끗하게 청소할 수 있습니다. 왕에게 청소하라고 명령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사람을 매우 존귀하게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것은 사람이 왕자의 신분과 왕의 지위를 얻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에게는 이런 존귀함이 없습니다. 결국 자신을 낮은 직분에 만족하게 만들 온갖 핑계를 찾아냅니다.
여러분이 정말 그곳에서 청소하고 있는데 누군가 여러분을 한 번 바라보거나 노려본다면 마음이 괴로울 것입니다. ‘왜 나를 노려보지? 왜 나를 이렇게 대하지?’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본래 여러분을 왕으로 만들려고 하셨는데, 여러분 스스로 자신을 밑바닥으로 끌어내린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도 자신을 업신여기는데 누가 여러분을 존중하겠습니까? 우리 가운데 있는 여러분에게 작은 요구를 하나 하겠습니다. 여러분의 성장에 책임을 지십시오. 우리는 여러분이 성장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나중에 저는 몇 가지 표현을 만들어 냈는데, 오늘 다시 여러분에게 말하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말합니다. “선생님, 저는 세상을 아주 사랑해요.” 그러면 저는 말합니다. “그만두세요! 당신은 세상을 사랑할 자격도 없습니다.” 또 어떤 사람이 말합니다. “선생님, 저는 아주 뛰어난 사람입니다.” 그러면 저는 말합니다. “그만두세요! 뛰어난 말은커녕 늙은 당나귀에도 못 미치는데 무슨 뛰어난 말입니까? 자격도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는 일마다 잘하는 것이 없고, 무엇을 하든 망쳐 놓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입니다. 잘못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러므로 하루 종일 할 일 없이 일을 만들어 내기만 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얼른 ‘살아 있는 면허’를 하나 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003 사역에는 101 과정과 《창세기》 과정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빨리 003 과정을 수강해서 ‘살아 있는 면허’를 따라고 말합니다. 살아 있는 면허도 없는데 어떻게 살아가겠습니까! 우리 003은 생명의 면허이자, 살아가는 보물과 같은 책입니다. 세상을 사랑할 자격도 없고 하나님을 사랑할 자격도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제가 작은 요구를 하나 하겠습니다. 성장하기를 갈망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자격이 없을 때 제가 가르치겠습니다. 자격이 생길 때까지 가르치겠습니다. 여러분이 세상을 사랑할 자격을 갖추었는데도 계속 세상을 사랑한다면, 저는 여러분에게 행운을 빌겠습니다. 하지만 세상을 사랑할 자격을 갖춘 뒤 세상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기로 선택한다면, 이제 여러분에게 면허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면허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형제자매 여러분은 자신의 성장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우리는 여러분을 위해 생명의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생명의 보물’, ‘생명의 면허’라고 부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은 지혜로워져야 합니다. 자신이 이 세상에 무엇을 하러 왔는지 알아야 합니다. 배우는 것은 힘들지만, 배우지 않는 것은 더 힘듭니다! 그래서 저는 많은 것을 만들어 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프로그래밍을 아무리 배워도 배우지 못합니다. 지난 세월 동안 머리를 잘 쓰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도 잘 쓰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계산기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덧셈과 뺄셈 하나만 가르쳤는데, 모두가 계산기를 만들어 냈습니다. 나중에는 모두가 곱셈과 나눗셈까지 해냈습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이제 계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수년 동안 무엇을 했습니까? 노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큰일 아닙니까?
하나님을 섬겼느냐고요? 섬기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섬기는 일이 조금 힘들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사명이라는 두 글자는 매우 무겁습니다. 사명이 없는 사람은 그저 살아 있기 위해 살아갑니다. 그러면 동물이 되는 것 아닙니까? 평생 자손을 잇는 도구로만 살게 되는 것이니, 정말 비참하지 않습니까?
여인의 직분
현숙한 여인을 누가 얻겠느냐? (《잠언》 31:10)
이것은 왕이 감당해야 할 책임입니다. 하지만 여자가 되는 데에도 책임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매우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현숙한 여인을 누가 얻겠느냐?” 이것은 르무엘 왕의 어머니가 탄식하며 한 말입니다! 마치 얻을 수 없다는 뜻처럼 들립니다. 현숙한 여인에 대해 많은 말을 했지만, 나중에 보니 맨 앞의 이 말이 가장 핵심입니다. 왕에게는 왕의 직분이 있고, 여자에게는 여자의 직분이 있으며, 무엇을 하든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두신 계획이 있습니다. 이것을 사명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명으로 돌아갈 때 복을 받습니다!
네 힘을 여자들에게 쓰지 말며 왕들을 멸망시키는 일을 하지 말지어다. (《잠언》 31:3)
여러분은 자신을 도와줄 현숙한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고 싶어 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막상 결혼하고 보니 덕이 없는 여인일 수 있습니다. 덕이 없는 여인과 결혼하면 그 사람의 평생이 망하는 것 아닙니까? 르무엘 왕의 어머니는 사실 부정적인 태도로 말하고 있습니다. “현숙한 여인을 누가 얻겠느냐?” 그녀의 관점에는 꽤 깊은 뜻이 숨겨져 있습니다. 하지만 《잠언》 11장부터 31장까지 자세히 읽어 보면, 이것이 어디 여자만 해당되는 말입니까? 남자도 이 기준에 미치지 못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계속 읽어 내려가면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현숙한 여인을 누가 얻겠느냐 그의 값은 진주보다 더 하니라 그런 자의 남편의 마음은 그를 믿나니 산업이 핍절하지 아니하겠으며 그런 자는 살아 있는 동안에 그의 남편에게 선을 행하고 악을 행하지 아니하느니라 그는 양털과 삼을 구하여 부지런히 손으로 일하며 상인의 배와 같아서 먼 데서 양식을 가져오며 밤이 새기 전에 일어나서 자기 집안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며 여종들에게 일을 정하여 맡기며 밭을 살펴보고 사며 자기의 손으로 번 것을 가지고 포도원을 일구며 힘 있게 허리를 묶으며 자기의 팔을 강하게 하며 자기의 장사가 잘 되는 줄을 깨닫고 밤에 등불을 끄지 아니하며 손으로 솜뭉치를 들고 손가락으로 가락을 잡으며 그는 곤고한 자에게 손을 펴며 궁핍한 자를 위하여 손을 내밀며 눈이 와도 자기 집안 사람들을 위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하니 이는 다 홍색 옷을 입었음이라 그는 자기를 위하여 아름다운 이불을 지으며 세마포와 자색 옷을 입으며 그의 남편은 그 땅의 장로들과 함께 성문에 앉으며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며 그는 세마포로 옷을 지어 팔며 띠를 만들어 상인들에게 맡기며 (《잠언》 31:10-24)
이게 어떻게 여자입니까! 기준이 너무 높습니다. 왜 기준이 이렇게 높습니까? 사실 “현숙한 여인을 누가 얻겠느냐?”라는 말은 현숙한 여인을 얻기 어렵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르무엘 왕에게 네 힘을 여자에게 주지 말라고 말하는 동시에, 헛된 기대를 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이런 여자를 본 적이 있습니까? 어쨌든 저는 정말 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본 여자들은 모두 남편을 지배하는 여자들이었습니다. 남편에게 유익을 주기는커녕 손해를 끼치는 사람들입니다! 르무엘 왕의 어머니는 르무엘 왕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까? “아들아, 이젠 그 마음을 접거라!” 여러분, 이런 뜻 아닙니까? 저는 이런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말하는 것이 모두 옳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여러분도 자세히 생각해 보십시오. 많은 여자가 이 말씀을 자신에게 비유하는데, 저는 그 비유가 조금 억지스럽다고 생각합니다.
결론적으로 남자든 여자든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맡기신 직분을 완수해야 합니다. 현숙한 여인에 관한 전체 기준을 말하고 나면 모두가 합격점에 이르지 못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기준이 이렇게 높으니 우리도 이 높은 기준을 향해 자신을 요구합시다. 누구든 가장 중요한 것은 사명을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창조하실 때 내게 두신 아름다운 뜻이 바로 사명입니다. 사실 하늘에서는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지 않습니다. 여자도 왕이 될 수 있고, 만왕의 왕의 왕이 될 수 있으며, 동일한 요구를 받습니다. 자신이 여자라는 이유로 온갖 핑계를 대며 사명을 얻으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자도 사명을 얻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나타내며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물론 이 전체 말씀은 여자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자가 이 기준을 실천할 수 있다면 그것도 훌륭한 일입니다.
그 손의 열매가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요 그의 행한 일이 성문에서 칭찬받으리라. (《잠언》 31:31)
사실 남자와 여자 사이에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솔로몬의 《잠언》 31장은 매우 분명한 주제를 드러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직분을 잘 다스리라는 것입니다. 어떤 여자는 자신의 직분이 남편을 잘 감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직장에 가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의자를 하나 가져다 놓고 남편만 바라봅니다. 자기가 남편의 사장이고, 남편은 기업의 사장인 셈입니다. 남편이 교회의 목회자이고 아내가 목회자의 목회자일 수도 있습니다. 하루 종일 남편의 모든 행동만 지켜보고, 자신은 실제로 아무 가치도 창출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창조하신 목적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창조하신 것은 하루 종일 남편의 허물을 찾아내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세상에서 가치를 창출하고 유익한 일을 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루 종일 할 일 없이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고, 말을 마친 뒤에는 다른 사람의 허물을 찾지 마십시오. 양심에 손을 얹고 자신이 도대체 얼마나 많은 가치를 창출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많은 여자는 부자와 결혼해서 사고 싶은 것을 마음껏 사기를 원합니다. 키가 크고 잘생겼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그저 물건을 사기 위해서입니다. 손오공은 오늘 요괴를 물리치고 내일도 요괴를 퇴치하는데, 이런 여자들의 삶의 목적은 오늘 가방 하나를 사고 내일 신발 한 켤레를 사는 것입니다. 예전에 제 소그룹에 있던 한 자매는 신발장이 따로 있었는데, 그 안에 신발이 대략 300켤레나 있었습니다. 그 신발들은 모두 저렴하지 않았습니다. 집에 돈이 아무리 많아도 신발을 사기에는 부족했을 것입니다. 여기까지 듣고 ‘나는 신발 열 켤레밖에 안 샀으니 괜찮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것도 고쳐야 합니다. 많이 사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 자매가 지네도 아닌데 신발을 그렇게 많이 사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그 자매는 여자가 분홍색 가방을 사면 분홍색 신발을 맞춰야 하고, 분홍색 바지도 맞춰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색깔에 대한 감각도 제대로 연구하지 않고 위아래 모두 분홍색으로 입으면 예쁘겠습니까? 정말 촌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나중에는 초록색 테 안경을 하나 사고, 또 거기에 맞추려고 초록색 신발을 한 켤레 더 사려고 했습니다. 그다음에는 분명 모자나 가방도 맞춰야 한다고 고민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아름다운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
우리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라는 첫 가정을 창조하신 때부터 남자와 여자에게 본래적인 직분을 정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에게 완전한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두신 하나님의 사명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사명은 이 세상에서 남편을 감시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하라고 하신 일을 완수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돕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기를 원할 수도 있습니다. 드보라를 본받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기를 원한다면, 여자는 드보라를, 남자는 기드온을 본받을 수 있습니다. 사명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이 늘 현숙한 여인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저는 표정이 애매하고 두 손을 모은 채 “주 예수님께서 나를 사랑하십니다. 나는 주 예수님의 신부입니다”라고 말하는 여자도 본 적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어떤 개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라고 말합니다.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것이 우리의 사명과 직분이며,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어떤 여자들은 목회자를 매우 심하게 지배합니다. 목회자는 설교할 때 사명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아내가 모두를 위해 밥을 하느라 손가락 관절이 아팠다는 이야기만 합니다. 아내가 교회를 위해 큰 대가를 치렀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사실 그것은 선악을 분별함에서 비롯된 행동이며, 하루 종일 남편을 감시해서 생긴 일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사명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서로에게 힘을 쏟지 말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실 때 주신 본래의 계획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앞의 두 장에서는 사람이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지 말고 목을 곧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장에 와서도 자신이 현숙한 여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모자까지 감히 자기 머리에 쓰려 하다니,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오늘부터 여러분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말한 것처럼 살아야 합니다. 결혼한 사람은 결혼하지 않은 사람처럼, 아내를 맞이한 사람은 아내가 없는 사람처럼 되어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정말 하나님께로부터 온 사명이 있고 하나님을 위해 산다면,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고 다른 사람의 표정을 신경 쓸 필요가 있겠습니까?
어떤 여자가 남편과 떨어져 지냈습니다. 남편이 이틀 동안 집에 돌아오면 두 사람은 늘 사소한 일로 다투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벽돌을 나르다가 이 자매가 실수로 허리를 삐끗했습니다. 목회자가 그 자매를 데리고 기도했는데, 하나님께로부터 온 계시가 있었습니다. 그 자매가 선악을 분별했기 때문에 그런 일이 생겼다는 것이었습니다. 기도를 받고 나은 뒤 다시 벽돌을 날랐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벽돌을 나르는 일과는 관계가 없고, 선악을 분별하는 것과 관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잘 생각해 보십시오. 아담과 하와가 창조될 때부터 이 이야기는 이렇게 전개되었습니다. 여자가 먼저 마귀에게 유혹을 받고, 여자가 다시 남자를 유혹하여 두 사람이 함께 구덩이에 빠졌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아담과 하와의 비극은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습니다.
또 어떤 목회자들은 베드로처럼 거짓된 태도를 취합니다! 부부 관계가 원래 매우 좋지 않은데도 교인들 앞에서는 매우 사랑하는 부부인 것처럼 가장하며 겉치레만 합니다. 교회로 가는 길에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곧 교회에 도착하니까 잠시 휴전하자. 집에 돌아가면 다시 싸우자.” 이런 일이 매우 많습니다. 이 성경 말씀은 우리에게 이렇게 알려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완전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며, 남자든 여자든 모두 하나님의 계획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