命定神学
推荐评论
命定神学 关闭

相关经文

撒母耳记下19章-约押劝谏王
  • 1 有人告诉约押说:“王为押沙龙哭泣悲哀。”
  • 2 众民听说王为他儿子忧愁,他们得胜的欢乐却变成悲哀。
  • 3 那日众民暗暗地进城,就如败阵逃跑、惭愧的民一般。
  • 4 王蒙着脸,大声哭号说:“我儿押沙龙啊!押沙龙,我儿,我儿啊!”
  • 5 约押进去见王,说:“你今日使你一切仆人脸面惭愧了!他们今日救了你的性命和你儿女妻妾的性命,
  • 6 你却爱那恨你的人,恨那爱你的人。你今日明明地不以将帅、仆人为念。我今日看明,若押沙龙活着,我们都死亡,你就喜悦了。
  • 7 现在你当出去,安慰你仆人的心。我指着耶和华起誓:你若不出去,今夜必无一人与你同在一处;这祸患就比你从幼年到如今所遭的更甚!”
  • 8 于是王起来,坐在城门口。众民听说王坐在城门口,就都到王面前。以色列人已经逃跑,各回各家去了。
  • 9 以色列众支派的人纷纷议论说:“王曾救我们脱离仇敌的手,又救我们脱离非利士人的手,现在他躲避押沙龙逃走了。
  • 10 我们膏押沙龙治理我们,他已经阵亡。现在为什么不出一言请王回来呢?”
  • 11 大卫王差人去见祭司撒督和亚比亚他,说:“你们当向犹大长老说:‘以色列众人已经有话请王回宫,你们为什么落在他们后头呢?
  • 12 你们是我的弟兄,是我的骨肉,为什么在人后头请王回来呢?’
  • 13 也要对亚玛撒说:‘你不是我的骨肉吗?我若不立你替约押常作元帅,愿 神重重地降罚与我!’”
  • 14 如此就挽回犹大众人的心,如同一人的心。他们便打发人去见王,说:“请王和王的一切臣仆回来。”
  • 15 王就回来,到了约旦河。犹大人来到吉甲,要去迎接王,请他过约旦河。
  • 16 巴户琳的便雅悯人、基拉的儿子示每急忙与犹大人一同下去迎接大卫王。
  • 17 跟从示每的有一千便雅悯人,还有扫罗家的仆人洗巴和他十五个儿子,二十个仆人;他们都趟过约旦河迎接王。
  • 18 有摆渡船过去,渡王的家眷,任王使用。王要过约旦河的时候,基拉的儿子示每就俯伏在王面前,
  • 19 对王说:“我主我王出耶路撒冷的时候,仆人行悖逆的事,现在求我主不要因此加罪与仆人,不要记念,也不要放在心上。
  • 20 仆人明知自己有罪,所以约瑟全家之中,今日我首先下来迎接我主我王。”
  • 21 洗鲁雅的儿子亚比筛说:“示每既咒骂耶和华的受膏者,不应当治死他吗?”
  • 22 大卫说:“洗鲁雅的儿子,我与你们有何关涉,使你们今日与我反对呢?今日在以色列中岂可治死人呢?我岂不知今日我作以色列的王吗?”
  • 23 于是王对示每说:“你必不死。”王就向他起誓。
  • 24 扫罗的孙子米非波设也下去迎接王。他自从王去的日子,直到王平平安安地回来,没有修脚,没有剃胡须,也没有洗衣服。
  • 25 他来到耶路撒冷迎接王的时候,王问他说:“米非波设,你为什么没有与我同去呢?”
  • 26 他回答说:“我主我王,仆人是瘸腿的。那日我想要备驴骑上,与王同去,无奈我的仆人欺哄了我,
  • 27 又在我主我王面前谗毁我。然而我主我王如同 神的使者一般,你看怎样好,就怎样行吧!
  • 28 因为我祖全家的人,在我主我王面前都算为死人,王却使仆人在王的席上同人吃饭,我现在向王还能辨理诉冤吗?”
  • 29 王对他说:“你何必再提你的事呢?我说,你与洗巴均分地土。”
  • 30 米非波设对王说:“我主我王既平平安安地回宫,就任凭洗巴都取了也可以。”
  • 31 基列人巴西莱从罗基琳下来,要送王过约旦河,就与王一同过了约旦河。
  • 32 巴西莱年纪老迈,已经八十岁了。王住在玛哈念的时候,他就拿食物来供给王;他原是大富户。
  • 33 王对巴西莱说:“你与我同去,我要在耶路撒冷那里养你的老。”
  • 34 巴西莱对王说:“我在世的年日还能有多少,使我与王同上耶路撒冷呢?
  • 35 仆人现在八十岁了,还能尝出饮食的滋味、辨别美恶吗?还能听男女歌唱的声音吗?仆人何必累赘我主我王呢?
  • 36 仆人只要送王过约旦河,王何必赐我这样的恩典呢?
  • 37 求你准我回去,好死在我本城,葬在我父母的墓旁。这里有王的仆人金罕,让他同我主我王过去,可以随意待他。”
  • 38 王说:“金罕可以与我同去,我必照你的心愿待他。你向我求什么,我都必为你成就。”
  • 39 于是众民过约旦河,王也过去。王与巴西莱亲嘴,为他祝福,巴西莱就回本地去了。
  • 40 王过去,到了吉甲,金罕也跟他过去。犹大众民和以色列民的一半也都送王过去。
  • 41 以色列众人来见王,对他说:“我们弟兄犹大人为什么暗暗送王和王的家眷,并跟随王的人过约旦河?”
  • 42 犹大众人回答以色列人说:“因为王与我们是亲属,你们为何因这事发怒呢?我们吃了王的什么呢?王赏赐了我们什么呢?”
  • 43 以色列人回答犹大人说:“按支派,我们与王有十分的情分;在大卫身上,我们也比你们更有情分。你们为何藐视我们,请王回来不先与我们商量呢?”但犹大人的话比以色列人的话更硬。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함께 《사무엘하》 19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장은 참으로 훌륭한 교훈을 줍니다.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면 다윗에게 배워야 하고, 지혜로운 리더가 되고 싶어도 다윗에게 배워야 하며, 지혜로운 제사장이 되고 싶어도 여전히 다윗에게 배워야 합니다. 다시 말해 다윗이라는 사람은 참으로 대단한 사람인데, 그 안에 하나님의 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내면에는 매우 기묘한 것이 있었는데, 도량이든 지혜든 보통 사람을 뛰어넘었습니다. 사람이 다윗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면 다윗이 바보 같다고 생각할 것이고, 다윗이 볼 때도 여러분이 바보 같을 텐데, 과연 누가 바보인지는 모를 일입니다. 요압처럼 똑똑한 사람조차 다윗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세상에서 반드시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지혜와 총명이 없다면 평생이 비극이 될 것입니다. 문제를 잘 처리하지 못하면 원래 문제없던 일도 수많은 문제를 일으키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평생을 아주 힘들게 살아가고 결국 비참한 결말을 맞이하며, 늘 수많은 골칫거리를 마주합니다. 사람이 이런 지경에 이르면, 저는 그 사람에게 과거에 자신이 어떤 어리석은 일들을 저질렀는지 되돌아보게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결코 반성하지 않고 자기가 옳다고만 생각하는데, 제가 보기에 이런 어리석은 사람들이 매우 많습니다. 그들은 저에게 이런 상황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습니다. 저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저는 이런 상황을 겪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그쪽 길로 가지 않는데 어떻게 이런 상황을 만나겠습니까?" 그래서 이번 장의 주제는 <사람의 마음을 되돌리는 지혜>입니다.

리더십의 지혜

리더에게 지혜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저는 리더가 되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의 인도를 받으면 됩니다. 예를 들어 2000년대생이 당신의 상사가 되어 일하면서 1980년대생 직원을 책망했는데, 그 직원이 상사에게 "내가 먹은 소금이 네가 먹은 밥보다 많고, 내가 건넌 다리가 네가 걸은 길보다 많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실 이런 말들은 다 어리석은 말이지만, 사람들은 종종 이런 말을 하기 좋아합니다. 그렇다면 리더가 되는 지혜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우리는 다윗에게서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저 중간만 가기를 원하지만, 결국 미끄러져 떨어져 중간조차 하지 못합니다. 중간이라는 것은 당신 아래에 절반이 있고 당신 위에 절반이 있는 것인데, 당신이 아래 사람의 리더가 되지 않고 되겠습니까?

만약 리더가 되기 싫다면 맨 밑바닥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화장실의 쥐와 같아서, 수많은 사람들이 한정된 자원을 두고 경쟁하며, 화장실에 있는 똥 한 덩어리를 두고 두 마리 쥐가 죽기 살기로 물어뜯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남의 밑바닥에 사는 것은 좋지 않으며, 남 위에 서는 사람이 되어야 좋습니다! 중간이라도 가고 싶다면 리더의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한 사람조차 이끌지 못한다면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열 명, 백 명을 이끄는 것은 더더욱 말할 것도 없습니다.

관리란 사람을 관리하고 일을 관리하는 것이며, 사람을 잘 다스리고 일을 잘 처리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저는 그저 평범한 사람으로 살고 싶어요"라고 하지만 평범해질 수도 없습니다. 평범해지고 싶다는 생각 자체가 어리석은 것이니 절대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지혜가 있다면 일이 쉬워집니다. 지혜로운 사람이 되려면 말을 잘할 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왜 말을 잘할까요? 머릿속에 든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머리에 든 게 없으면 입만 열면 어리석은 소리뿐이라 듣는 사람까지 피곤해집니다. 어떤 사람은 2030대부터 7080대가 될 때까지 줄곧 어리석은 말만 하며 바보 같은 모습을 보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다윗의 지혜를 통해 여러분에게 설명해 드리고자 합니다.

말을 잘하지 못하는 것은 인생의 비극입니다. 그 사람 안의 논리가 틀렸기 때문입니다. 말을 제대로 못 하는데 어떻게 문제를 처리하겠습니까? 저는 문제 해결 속도가 매우 빠른데, 말을 잘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릴 때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때 아껴둔 말을 지금 하는 것입니다. 제가 하는 말은 다 배운 것이지 머리 굴려서 함부로 지어낸 말이 아닙니다. 사람이 말을 잘해야 하는 목적은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함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제가 '순종'을 거의 강조하지 않고 '감복'을 이야기한다는 것을 느끼셨습니까? 기꺼이 순종하고 싶다면 순종하십시오. 그것은 제게 그런 지혜가 있다는 뜻이고, 순종하기 싫다면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는 것인데, 입만 열면 남에게 상처를 주고, 말하는 뽄새마다 어리석음만 드러낸다면 사람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사람을 얻는다는 것은 곧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순종을 거의 강요하지 않으셨지만, 그들은 모두 예수님께 진심으로 감복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일어나 리더가 되어야 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어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이 땅을 다스리고 관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더러 다스리라고 하셨는데, 여러분은 그저 이치만 따지고 있으니 천지 차이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입만 열면 다 맞는 말만 늘어놓지만, 다스리는 지혜나 리더로서의 지혜는 쥐뿔도 없고 그저 따지기만 잘합니다. 아랫사람과 이치만 따진다고 통하겠습니까?

여러분, 제가 따지는 말을 거의 하지 않는 것을 눈치채셨습니까? 정말 저와 논리로 따지려 든다면 여러분은 저를 이기지도 못합니다. 저는 감정과 마음을 나누기 때문입니다. 가끔 성경공부나 설교를 할 때 제 눈시울이 붉어지곤 하는데, 이유는 간단합니다. 저와 형제자매님들의 관계는 마음의 관계이지 이익의 관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가 여러분과 무슨 이익을 따지겠습니까? 저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고 사람을 섬기기를 마치 하나님을 섬기듯 하는 것을 말합니다.

리더가 되어 사람을 얻으려면 아랫사람을 섬길 때 그저 이치만 따져서는 안 됩니다. 남에게 순종하라고 요구하는데 아랫사람이 듣지 않으면 멱살잡이나 하게 됩니다. 당신의 그 좁은 안목과 수준에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순종하겠습니까? 그 정도 수준과 안목이라면 끌어올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한눈에 봐도 턱없이 부족하니 제대로 배워야 합니다. 툭하면 아는 척도 안 하고 입을 닫아버리는 식의 태도, 이런 것이 바로 어리석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가운데서 여러분이 어리석은 사람이 되는 것을 저는 용납하지 않으며, 어리석어지기를 바라지도 않습니다. 비행기 날개에 묶어서라도 여러분을 하나님의 나라로 이끌어 지혜로운 사람이 되게 할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며, 여러분에게 유익한 것이라면 저는 숨김없이 다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리더의 지혜입니다. 다윗에게 지혜가 없었다면 그가 왕이 될 수 있었겠습니까?

압살롬은 사람의 마음의 문제이다

어떤 사람이 요압에게 아뢰되 왕이 압살롬을 위하여 울며 슬퍼하시나이다 하니 왕이 그 아들을 위하여 슬퍼한다 함이 그 날에 백성들에게 들리매 그 날의 승리가 모든 백성에게 슬픔이 된지라 그 날에 백성들이 싸움에 쫓겨 부끄러워 도망함 같이 가만히 성읍으로 들어가니라 왕이 그의 얼굴을 가리고 큰 소리로 부르짖되 내 아들 압살롬아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니 (《사무엘하》 19:1-4)

다윗이 압살롬을 죽였다고 해서 민심이 돌아왔습니까? 돌아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흩어졌습니다! 압살롬이 이미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다윗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읽어냈을까요? 다윗은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눈물 콧물을 흘리며 "내 아들 압살롬아!" 하고 통곡했는데, 이는 다윗이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을 다시 얻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압살롬이 드디어 죽었다고 샴페인을 터뜨리며 축하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압살롬과 함께했던 자들이 반란을 일으켰을 것이고, 실제로 다음 장에서 한 사람이 반란을 일으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을 다시 얻어야 했기에, 압살롬의 사건은 사람의 마음에 관한 문제였습니다.

요압은 똑똑한 사람이 아닙니까? 똑똑한 사람이었지만, 다윗의 행동을 알지 못했고 이해하지도 못했습니다. 그에게는 그런 지혜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요압의 지혜는 기껏해야 장수 수준으로 군사를 이끌고 싸우는 지혜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때로는 전쟁에서 이겼을지라도 민심과 도의를 잃을 수 있습니다. 제가 어릴 때 부르던 노래처럼 "도를 얻은 자는 돕는 이가 많고, 도를 잃은 자는 돕는 이가 적다"는 말과 같습니다. 말에 도리가 없으면 조폭 두목조차 될 수 없습니다. 만약 당신이 조폭 두목인데 부하들이 온종일 당신을 죽이려고 꾀한다면 그런 두목 자리를 오래 지킬 수 있겠습니까? 장비와 관우도 위세가 당당했지요? 하지만 결국 부하들의 손에 죽임을 당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이제부터 스스로에게 늘 "나는 어리석은 사람이다"라고 말하십시오. 그러면 지혜로워질 것입니다. 만약 "나는 똑똑해"라고 한다면, 당신은 늘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는 '똑똑한 사람'일 뿐이며 지혜로워질 방법이 없습니다. 저는 종종 "과거에 저지른 어리석은 일들을 돌이켜 정리해 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은 점점 더 어리석어질 뿐입니다. 가끔 이런 사람들을 마주할 때면 제 마음이 답답하고 애가 탑니다. 사람이 패망의 길로 걸어 들어가는 것을 뻔히 보면서 어떻게 마음이 편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사람의 마음 문제는 참으로 중대합니다.

어떤 교회들은 이런저런 짓을 하다가 사람들의 마음을 다 흩어놓습니다. 어떤 목사는 자기 교회에서 순종을 결사적으로 강조합니다. 가끔 눈을 감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선지자의 말이 임했다고 하면서 "저쪽에 화살이 날아옵니다!"라고 외칩니다. 지목당한 사람은 그야말로 큰 봉변을 당합니다. 결국 아래 앉아 있는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고, 모든 교인이 그 사람이 불순종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눈 감고 아무렇게나 손가락질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을 다 겁주어 쫓아내니, 이래서는 사람들의 마음이 완전히 흩어져 버립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교회를 세울 때 저는 흉내만 내지 않습니다. 이것은 마음의 문제입니다. 마음과 마음으로 통해야 합니다. 진심으로 섬기는지 아닌지는 길가의 개도 아는데 하물며 사람이 모르겠습니까? 그래서 때로는 제가 시간이 없더라도 저와 조금이라도 연관된 사람이 몇 시에 전화를 걸든 다 받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섬김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렇게 일하는 것은 여러분이 제게 빚진 것이 아니라, 제가 늘 모두에게 빚진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당신을 섬기는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이런 섬김을 받을 때 사람의 마음은 훈훈해지는 법입니다.

한번은 기차를 탔을 때 한 자매님이 제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어떤 분들은 '왜 또 자매인가?'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교회에는 원래 자매들이 많습니다. 제가 여자를 밝힌다고 오해하지 마십시오. 예수님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열두 제자가 있었지만 자매들이 더 많았습니다. 그 자매님이 제게 "선생님, 《삼국지》 인물 중에 누구를 좋아하세요?"라고 물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나를 시험해 보는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유비를 좋아합니다"라고 했더니, 자매님이 "저도 선생님이 유비를 좋아하실 줄 알았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유비는 사람의 마음을 얻는 데 탁월했습니다. 그는 서주에서 패배했을 때도 여전히 서주의 백성들을 이끌고 피난했습니다. 유비가 가짜였다면 백성들을 다 내쫓았겠지만, 왜 걸음이 느려지더라도 그 무리를 데리고 갔겠습니까? 바로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거짓으로 행해서는 안 되며, 개에게조차 거짓으로 대할 수 없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목회자로서 당신 안에는 반드시 긍휼의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왜 천하삼분지계에서 유비가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을까요? 바로 긍휼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비라는 사람은 눈물을 잘 흘렸는데, 저 역시 눈물이 많습니다. 저도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눈물이 절로 나며 결코 꾸며낸 것이 아닙니다.

사실 압살롬의 이 사건은 사람의 마음에 관한 문제입니다. 압살롬은 어떻게 민심을 얻었을까요? 스스로 섬김을 통해 얻은 것이며, 그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적잖이 섬겼습니다. 압살롬이 국가의 동량지재 이백여 명을 데리고 헤브론으로 간 뒤, 그가 왕이 되었다는 소식은 순식간에 온 이스라엘에 퍼졌고, 이스라엘 사람들도 압살롬이 왕이 되는 것을 매우 좋게 여겼습니다. 다윗은 민심을 잃었기에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을 되찾을지 반성해야 했는데, 이때 요압이 압살롬을 죽여버렸으니 다윗이 어떻게 해야 했겠습니까?

왕이 그의 얼굴을 가리고 큰 소리로 부르짖되 내 아들 압살롬아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니 (《撒母耳记下》 19:4)

다윗이라는 사람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그가 진심이었든 아니었든, 그가 행한 것은 하나의 지혜였습니다. 사실 다윗은 압살롬이라는 아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기도 했습니다. 압살롬이 정말 똑똑했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 일에 있어서 조금 어리석게 행동했을 뿐입니다.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마음을 되찾아야 한다

다윗은 민심을 잃었으니 다시 되찾아야 했습니다! 비록 이번 전쟁에서는 승리했지만, 사람의 마음을 얻는 싸움에서는 아직 승리하지 못했습니다. 만약 다윗이 한 차례 전쟁에서 이겼다고 기뻐하며 샴페인을 터뜨렸다면,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은 완전히 흩어졌을 것입니다. 남들이 무엇 때문에 당신의 통치를 받겠으며, 무엇 때문에 당신을 따르겠습니까? 모든 것이 엉망이 되고 결국 군벌 간의 내전으로 이어졌을 것입니다. 다윗은 이 일의 결과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았기에 거기서 통곡했던 것입니다.

왕이 그 아들을 위하여 슬퍼한다 함이 그 날에 백성들에게 들리매 그 날의 승리가 모든 백성에게 슬픔이 된지라 그 날에 백성들이 싸움에 쫓겨 부끄러워 도망함 같이 가만히 성읍으로 들어가니라 (《撒母耳记下》 19:2-3)

군사적인 싸움과 정치적인 싸움은 완전히 다른 차원입니다. 다윗은 이 이치를 깨달았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을 되찾으려면 한 전투에서 이기고 또 다른 전투에서 져서는 안 됩니다. 중국은 예로부터 나라를 다스리는 데 매우 심오한 지혜가 있었으나, 훗날 서태후나 상나라 주왕 같은 자들이 나타나 망쳐버렸을 뿐입니다. 왕에게 지혜가 없으면 왕조는 끝을 맞이하게 됩니다. 다윗이 치른 것은 민심을 얻는 싸움이었으며, 이것이 바로 다윗의 지혜였습니다.

요압이 집에 들어가서 왕께 말씀드리되 왕께서 오늘 왕의 생명과 왕의 자녀의 생명과 처첩과 비빈들의 생명을 구원한 모든 부하들의 얼굴을 부끄럽게 하시니 이는 왕께서 미워하는 자는 사랑하시며 사랑하는 자는 미워하시고 오늘 지휘관들과 부하들을 멸시하심을 나타내심이라 오늘 내가 깨달으니 만일 압살롬이 살고 오늘 우리가 다 죽었더면 왕이 마땅히 여기실 뻔하였나이다 (《撒母耳记下》 19:5-6)

여러분, 문제를 발견하셨습니까? 자기 장수들이 이 전쟁에서 승리했으니 다윗이 감사할 줄 알았지만, 다윗은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차갑게 식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성문에 앉아 먼저 부하들을 위로하고, 소문이 온 이스라엘 땅에 퍼져 이스라엘 사람들이 스스로의 문제를 돌아보게끔 기다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더라 이스라엘 모든 지파 백성들이 변론하여 이르되 왕이 우리를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셨고 또 우리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나 이제 압살롬을 피하여 그 땅에서 나가셨고 우리가 기름을 부어 우리를 다스리게 한 압살롬은 싸움에서 죽었거늘 이제 너희가 어찌하여 왕을 도로 모셔 올 일에 잠잠하고 있느냐 하니라 (《撒母耳记下》 19:9-10)

다윗은 일부 사람들의 마음을 되찾았고,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으며, 이제 그들의 관계는 더 이상 적대적인 관계가 아니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제가 여러분의 문제를 처리해 드린 적이 있다면, 제가 바로 이 논리를 따라 행했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이치로 상대를 이기려는 것이 아니라, 다시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함이었습니다.

유다 지파의 마음을 되찾다

압살롬은 유다 지파 사람이었고, 조정에서 관직을 맡은 유다 지파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렇게 행했습니다.

다윗 왕이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너희는 유다 장로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왕의 말씀이 온 이스라엘이 왕을 왕궁으로 도로 모셔오자 하는 말이 왕께 들렸거늘 너희는 어찌하여 왕을 모시는 일에 나중이 되느냐 너희는 내 형제요 내 골육이거늘 너희는 어찌하여 왕을 도로 모셔오는 일에 나중이 되리요 하셨다 하고 너희는 또 아마사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골육이 아니냐 네가 요압을 이어서 항상 내 앞에서 지휘관이 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시기를 바라노라 하셨다 하라 하여 (《撒母耳记下》 19:11-13)

다윗이 왜 이렇게 말했을까요? 아마사는 압살롬의 군대 지휘관, 즉 국방부 장관으로서 군권을 쥐고 있었고, 그의 수하들은 싸움에 매우 능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이런 조치는 수많은 문제를 단번에 해결했고, 많은 피를 흘리지 않게 했으며, 유다 지파의 마음을 되찾았습니다. 다윗의 이런 행동은 매우 중요했지만 요압은 언짢아했습니다. 아마사가 자기 자리를 빼앗으려 한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요압의 내면은 일개 장수의 마음에 불과하여 자신의 직위만 중히 여겼고, 정치적 지략과 포용력이 부족했습니다. 그러므로 요압은 제 꾀에 제가 넘어간 격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리더가 되고자 한다면 관리를 배워야 합니다. 다윗이 요압의 큰 공을 몰랐을까요? 아마사를 등용하는 위험을 몰랐을까요? 다 알고 있었습니다. 만약 하나라도 잘못 처리하면 온 이스라엘 나라가 사분오열되어 열두 개의 작은 나라로 쪼개질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유다 지파의 마음을 되찾을 방도를 찾아야 했습니다.

모든 유다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 같이 기울게 하매 그들이 왕께 전갈을 보내어 이르되 당신께서는 모든 부하들과 더불어 돌아오소서 한지라 (《撒母耳记下》 19:14)

왜 다윗과 그의 신하들에게 돌아오라고 청했을까요? 모셔와야 벌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다윗이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와 예루살렘을 피로 물들였다면 끔찍했을 것입니다! 저는 위대한 지도자 마오 주석을 매우 존경하는데, 손꼽히는 위대한 인물입니다. 그가 군사를 이끌고 베이징에 들어갈 때 국민당 군대가 베이징에 주둔해 있었지만, 그는 싸우지 않고 굴복시켰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면 이런 일을 해낼 수 있었겠습니까? 마오 주석은 당시 국민당 봉기 장령들을 대거 기용함으로써 이를 이루었습니다. 이는 매우 지혜로운 사람의 모습이며, 우리는 이런 사람을 보고 잘 배워야 합니다.

시므이를 어떻게 처리했는가

다윗 왕이 바후림에 이르매 거기서 사울의 친족 한 사람이 나오니 게라의 아들이요 이름은 시므이라 그가 나오면서 계속하여 저주하고 또 다윗과 다윗 왕의 모든 신하들을 향하여 돌을 던지니 그 때에 모든 백성과 용사들은 다 왕의 좌우에 있었더라 시므이가 저주하는 가운데 이와 같이 말하니라 피를 흘린 자여 사악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를 이어서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넘기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이므로 화를 자초하였느니라 하는지라 (《撒母耳记下》 16:5-8)

이전에 시므이는 다윗이 사울의 왕위를 차지했다며 그를 온갖 욕설로 저주하고 깎아내렸습니다. 시므이는 사울 지파 사람으로 가문이 번창하고 정치적 영향력이 매우 컸으며, 당시 다윗을 저주한 것은 가슴속 한을 풀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시므이는 압살롬이 죽고 다윗이 다시 돌아와 왕이 되는 것을 보자, 자신에게 큰 화가 닥칠 것을 직감하고 서둘러 엎드려 사죄했습니다. 속으로는 '어쩌면 나와 내 가산을 보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며 오직 그 생각뿐이었습니다.

바후림에 있는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유다 사람과 함께 급히 다윗 왕을 맞으러 내려올 때에 베냐민 사람 천 명이 그와 함께 하고 사울 집의 하인 시바도 그의 아들 열다섯과 종 스무 명과 더불어 그와 함께 하여 요단 강을 건너 왕 앞으로 나아오니라 왕의 가족을 건너가게 하며 왕이 좋게 여기는 대로 쓰게 하려 하여 나룻배가 건너가니 왕이 요단을 건너가게 할 때에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왕 앞에 엎드려 왕께 아뢰되 내 주여 원하건대 내게 죄를 돌리지 마옵소서 내 주 왕께서 예루살렘에서 나오시던 날에 종의 행한 패역한 일을 기억하지 마시오며 왕의 마음에 두지 마옵소서 왕의 종 내가 범죄한 줄 아옵기에 오늘 요셉의 온 족속 중 내가 먼저 내려와서 내 주 왕을 영접하나이다 하니 (《撒母耳记下》 19:16-20)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대답하여 이르되 시므이가 여호와의 기름 부으신 자를 저주하였으니 그로 말미암아 죽어야 마땅하지 아니하니이까 하니라 다윗이 이르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너희가 오늘 나의 원수가 되느냐 오늘 어찌하여 이스라엘 가운데서 사람을 죽이겠느냐 내가 오늘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을 내가 알지 못하리요 하고 (《撒母耳记下》 19:21-22)

다윗의 이 말은 단호하고 힘이 넘쳤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사람을 죽여야 하겠습니까? "내가 이스라엘의 왕인데 내 백성을 죽이겠느냐?" 시므이가 다윗을 저주한 적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시므이는 다윗을 저주했지만, 지금은 죄를 자복하고 회개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진정한 회개였을까요? 사실 아닙니다. 시므이는 권세에 아부하는 기회주의자였습니다. 다윗이 다시 왕이 되었으니 시므이는 그저 자신을 보전하려 했을 뿐입니다. 다윗도 마음속으로 훤히 알고 있었지만, 이때는 그를 죽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왕이 시므이에게 이르되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고 그에게 맹세하니라 (《撒母耳记下》 19:23)

시므이 문제는 일단 해결되었지만, 입 밖에 낸 말은 약속을 지켜야 했습니다. 다윗은 죽은 후에 솔로몬에게 시므이를 처단하게 했는데, 그가 솔로몬 왕조의 큰 불안 요소였기 때문입니다. 시므이 같은 자는 반골 기질이 있어 틈만 나면 반역을 꾀하거나 다른 사람이 반역할 때 편승할 위인이었습니다. 다윗은 솔로몬 왕조의 안정을 위해 결국 이 자를 제거해야 했던 것입니다.

다윗이 이르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너희가 오늘 나의 원수가 되느냐 오늘 어찌하여 이스라엘 가운데서 사람을 죽이겠느냐 내가 오늘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을 내가 알지 못하리요 하고 (《撒母耳记下》 19:22)

다윗은 "내가 왕이 된 것을 모르겠느냐? 너희가 내게 어떻게 하라고 가르칠 필요 없다. 너희의 그 얄팍한 지혜 따위는 집어치워라!" 하는 뜻으로 말한 것입니다. 다윗은 문제를 해결하는 솜씨가 매우 대단했습니다! 저의 성경공부도 꽤 탁월한데, 이는 모두 저 자신의 오리지널 나눔입니다. 어쨌든 자료를 찾아보아도 저처럼 이렇게 성경을 푸는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는 제 안에도 다윗의 지혜가 조금이나마 있기 때문이며, 다윗의 지혜가 없다면 이런 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므비보셋을 어떻게 처리했는가

지금 므비보셋에게 문제가 있습니까?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란 참으로 알기 어렵습니다. 므비보셋은 다윗이 예루살렘을 떠날 때 따르지 않았는데, 보름이 지나 다윗의 종들이 돌아왔을 때 그가 뒤따라갈 수 없었을까요? 갈 수 있었습니다! 본문을 보겠습니다.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이 내려와 왕을 맞으니 그는 왕이 떠난 날부터 평안히 돌아오는 날까지 그의 발을 맵시 내지 아니하며 그의 수염을 깎지 아니하며 옷을 빨지 아니하였더라 예루살렘에서 와서 왕을 맞을 때에 왕이 그에게 물어 이르되 므비보셋이여 네가 어찌하여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더냐 하니 대답하되 내 주 왕이여 왕의 종인 나는 다리를 절므로 내 나귀에 안장을 지워 그 위에 타고 왕과 함께 가려 하였더니 내 종이 나를 속이고 종인 나를 내 주 왕께 모함하였나이다 내 주 왕께서는 하나님의 사자와 같으시니 왕의 처분대로 하옵소서 내 아버지의 온 집이 내 주 왕 앞에서는 다만 죽을 사람이 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나 종을 왕의 상에서 음식 먹는 자 가운데에 두셨사오니 내게 아직 무슨 공의가 있어서 다시 왕께 부르짖을 수 있사오리이까 하니라 (《撒母耳记下》 19:24-28)

므비보셋은 일방적인 자기주장만 늘어놓았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십니까? 므비보셋이라는 사람은 꽤나 계산적이고 엉큼했습니다. 만약 다윗이 싸움에서 패한다면 므비보셋은 '나는 그래도 살아야지, 이 절뚝거리는 다리로 다윗을 따라 고생하기는 싫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시바가 다윗에게 물품을 전하고 돌아온 뒤, 므비보셋이 집안사람을 시켜 나귀를 안장 얹고 다윗을 찾아갈 수 없었을까요? 갈 수 있었습니다! 왜 못 가겠습니까? 그는 일방적인 변명만 늘어놓고 있는데, 우리는 다윗이 모를 줄 알았겠지만 다윗이 어찌 모르겠습니까?

여러분은 가급적 저와 따지려 하지 마시고 변명도 하지 마십시오. 저는 변명 듣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제가 누군가를 지적하면 그들은 이것저것 변명하지만, 사실 제 마음속으로는 다 꿰뚫어 보고 있습니다. 비록 제가 다윗만큼 대단하지는 못해도 일반적인 세상 이치와 사람의 속마음쯤은 환하게 꿰뚫고 있어서 때로는 제 마음이 씁쓸하고 서늘해집니다. 므비보셋이 나중에 쫓아갈 수 있었을까요?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쫓아가지 않았을까요? 그는 집에서 발도 안 씻고 세수도 안 하고 수염도 깎지 않고 있었을 뿐입니다.

제가 왜 이렇게 말할까요? 왕이 므비보셋에게 "네가 어찌하여 또 네 일을 말하느냐?"라고 한 것은 "그만둬라! 더 말하지 말고 물러가라!"라는 뜻입니다. 사실 다윗의 마음도 매우 서늘했습니다. 므비보셋이 한 말이 다 핑계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람 속에는 늘 자기 잇속을 챙기는 셈법이 있습니다. 섬김의 길에서 득실을 따진다면 끝까지 갈 수 없습니다! 므비보셋 같은 사람에게 이렇게 처리하지 않고 또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래서 다윗은 므비보셋에게 "너의 밭을 시바와 나누라"고 말했습니다.

시바라는 사람도 꽤 악했지만, 그 배후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아무도 정확히 모릅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분명한 문제가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얼굴에 금칠을 하려 한다는 점입니다. 정말로 다윗을 따라가고 싶었다면 나귀를 안장 지워 하루 늦게 출발하면 안 되었을까요? 됩니다!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실은 압살롬에게 붙잡힐까 봐 두려웠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므비보셋이었습니다! 말이야 누군들 못 하겠습니까? 그러니 말만 듣지 말고 행실을 보아야 합니다. 다윗은 므비보셋을 처리할 때 "네 일은 더 말하지 말고 시바와 반씩 나누라"고 했습니다.

바르실래를 어떻게 대우했는가

바르실래는 비록 80세가 넘었지만 대단한 큰 부자였습니다. 다윗이 몰락했을 때, 그는 목이 잘리고 멸문을 당할 위험을 무릅쓰고 다윗을 도왔는데, 그것은 진정한 도움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깊이 감사했습니다. 그 당시 압살롬이 이스라엘을 얼마나 오래 통치할지 아무도 알지 못했고, 당시 그의 집안에서도 압살롬에게 밀고하려는 자가 없었겠습니까? 분명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에도 자식이 아비를 고발하는 판국인데, 먹고살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다 할 수 있는 법입니다. 바르실래가 마음속으로 어떻게 생각했든, 제 짐작에 그의 속마음은 온전한 충성이었습니다. 그래서 가끔 저도 '내가 망한 척해 보면 어떨까, 사람들의 반응이 어떨지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왕이 바르실래에게 이르되 너는 나와 함께 건너가자 예루살렘에서 내가 너를 공궤하리라 바르실래가 왕께 아뢰되 내 생명의 날이 얼마나 있사옵관대 어찌 왕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리이까 내 나이가 이제 팔십 세라 어떻게 좋고 흉한 것을 분간할 수 있사오며 음식의 맛을 알 수 있사오리이까 이 종이 어찌 다시 노래하는 남자나 여인의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사오리이까 어찌하여 종이 내 주 왕께 미치지도 못하면서 누를 끼치리이까 종은 왕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너려는 것뿐이거늘 왕께서 어찌하여 이같은 상으로 내게 갚으려 하시나이까 청하건대 당신의 종을 돌려보내옵소서 내가 내 고향 부모의 묘 곁에서 죽으려 하나이다 그러나 왕의 종 김함이 여기 있사오니 청하건대 그가 내 주 왕과 함께 건너가게 하시옵고 왕의 처분대로 그에게 베푸소서 하니라 (《撒母耳记下》 19:33-37)

조정에 줄이 있어야 벼슬하기도 쉬운 법인데, 그 후 김함이 예루살렘으로 가서 장관이든 부총리든 좋은 관직을 얻을 수 있었지만, 바르실래 본인은 가지 않았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모두 지혜로운 사람이며, 우리에게도 이런 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 안에 충성심이 부족하면 뼛속에서 작은 이익을 탐하다가 큰 의리를 저버리는 태도가 흘러나오게 됩니다. 바르실래는 아들을 다윗 곁에 두어 1품, 2품, 3품 고관 자리를 얻게 할 수도 있었습니다! 다윗 역시 어느 시대에 있든 사람의 마음을 얻으려면 이렇게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과 유다 사람들의 어리석음

온 이스라엘 사람이 왕께 나아와 왕께 아뢰되 우리 형제 유다 사람들이 어찌 왕을 도둑하여 왕과 왕의 집안과 왕을 따르는 모든 사람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너가게 하였나이까 하매 모든 유다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에게 대답하되 왕은 우리의 종친인 까닭이라 너희가 어찌 이 일에 대하여 분내느냐 우리가 왕의 것을 조금이라도 얻어 먹었느냐 왕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이 있느냐 이스라엘 사람이 유다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는 왕에 대하여 열 몫을 가졌으니 다윗에게 대하여 너희보다 더욱 관계가 있거늘 너희가 어찌 우리를 멸시하여 우리 왕을 모셔오는 일에 먼저 우리와 의논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나 유다 사람의 말이 이스라엘 사람의 말보다 더 강경하였더라 (《撒母耳记下》 19:41-43)

말이 거친 것이 좋을까요, 좋지 않을까요? 결국 두 큰 진영이 "왜 이랬냐, 저랬냐" 하며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이런 소리를 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아무 소용도 없습니다! 그저 기분이 상했고 트집을 잡고 싶었던 것뿐입니다. 무슨 의논을 더 하겠습니까? 올 사람은 오고 안 올 사람은 마는 것이지, 유다 사람들은 거기서 말꼬리를 물고 늘어졌습니다. 사실 따질 일도 아닌데, 이런 어리석음이 사람의 모습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우리 중에도 사역을 맡은 조장들 중에 아래 수강생들을 섬기면서 툭하면 말다툼하고 맞서는 이들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어리석음입니다! 만약 유다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어쩌다 이 일을 미처 챙기지 못했네요" 하고 넘어갔다면 끝났을 일입니다! 그러나 결국 이스라엘 사람들이 들고일어났고, 그중에는 반역을 꾀하는 자까지 생겨났습니다.

결론

다윗은 그의 지혜로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을 얻어 정치적 위기를 모면했습니다. 다음 장을 계속 살펴보면 결국 또다시 반란이 일어납니다. 다윗이 이렇게 처리했음에도 반란이 일어났는데, 만약 이렇게 처리하지 않았더라면 전국 방방곡곡에서 봉기가 일어났을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 지혜가 조금 생기셨습니까? 이제 적어도 다윗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이해가 되시지요? 우리 모두 다윗이라는 사람을 본받고 배워야 하며, 그리할 때 다윗의 마음을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바랍니다!

관심을
关闭
暂无评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