命定神学
推荐评论
命定神学 关闭
【성경공부】고린도후서 1장 - 우리를 의지하지 않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함이라

2024-06-12 27,191 哥林多后书 哥林多后书01章 哥林多后书第一章 不靠自己 在神凡事都能 靠叫死人复活的神 信靠神的不蒙羞愧

相关经文

哥林多后书01章-问候
  • 1 奉 神旨意作基督耶稣使徒的保罗和兄弟提摩太,写信给在哥林多 神的教会,并亚该亚遍处的众圣徒。
  • 2 愿恩惠、平安从 神我们的父和主耶稣基督归与你们!
  • 3 愿颂赞归与我们的主耶稣基督的父 神,就是发慈悲的父,赐各样安慰的 神。
  • 4 我们在一切患难中,他就安慰我们,叫我们能用 神所赐的安慰去安慰那遭各样患难的人。
  • 5 我们既多受基督的苦楚,就靠基督多得安慰。
  • 6 我们受患难呢,是为叫你们得安慰,得拯救;我们得安慰呢,也是为叫你们得安慰;这安慰能叫你们忍受我们所受的那样苦楚。
  • 7 我们为你们所存的盼望是确定的,因为知道你们既是同受苦楚,也必同得安慰。
  • 8 弟兄们,我们不要你们不晓得,我们从前在亚细亚遭遇苦难,被压太重,力不能胜,甚至连活命的指望都绝了;
  • 9 自己心里也断定是必死的,叫我们不靠自己,只靠叫死人复活的 神。
  • 10 他曾救我们脱离那极大的死亡,现在仍要救我们,并且我们指望他将来还要救我们。
  • 11 你们以祈祷帮助我们,好叫许多人为我们谢恩,就是为我们因许多人所得的恩。
  • 12 我们所夸的是自己的良心,见证我们凭着 神的圣洁和诚实;在世为人不靠人的聪明,乃靠 神的恩惠,向你们更是这样。
  • 13 我们现在写给你们的话,并不外乎你们所念的、所认识的,我也盼望你们到底还是要认识;
  • 14 正如你们已经有几分认识我们,以我们夸口,好像我们在我们主耶稣的日子以你们夸口一样。
  • 15 我既然这样深信,就早有意到你们那里去,叫你们再得益处;
  • 16 也要从你们那里经过,往马其顿去,再从马其顿回到你们那里,叫你们给我送行往犹太去。
  • 17 我有此意,岂是反复不定吗?我所起的意,岂是从情欲起的,叫我忽是忽非吗?
  • 18 我指着信实的 神说,我们向你们所传的道,并没有是而又非的。
  • 19 因为我和西拉并提摩太,在你们中间所传 神的儿子耶稣基督,总没有是而又非的,在他只有一是。
  • 20  神的应许,不论有多少,在基督都是是的。所以藉着他也都是实在(实在:原文是阿们)的,叫 神因我们得荣耀。
  • 21 那在基督里坚固我们和你们,并且膏我们的就是 神。
  • 22 他又用印印了我们,并赐圣灵在我们心里作凭据(原文是质)。
  • 23 我呼吁 神给我的心作见证,我没有往哥林多去是为要宽容你们。
  • 24 我们并不是辖管你们的信心,乃是帮助你们的快乐,因为你们凭信才站立得住。

《答疑解惑》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고린도후서》를 나누기 시작합니다. 이 성경의 배경은 아주 좋습니다. 바울은 목양을 통해 이미 타락했던 고린도 교회를 다시 바로잡아 놓았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는 《고린도중서》라는 매우 중요한 서신 하나를 잃어버렸습니다. 바울은 총 세 통의 편지를 썼습니다. 《고린도전서》를 쓴 후, 고린도 사람들은 바울의 권면을 전혀 듣지 않았고, 이미 자신들의 믿음을 무너뜨렸기에 읽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 후 바울은 《고린도중서》라는 또 다른 편지를 썼는데, 비록 《성경》에 수록되지는 않았지만 매우 중요한 편지였습니다. 바울은 그 편지에서 아주 엄한 말을 쏟아부었고, 그 결과 고린도 사람들은 회개했습니다. 좋은 말로 할 때는 회개하지 않더니, 엄하게 말하니 회개한 것입니다. 참 신기한 일입니다. 이 편지는 디도가 전달했고, 첫 번째 편지는 디모데가 전했습니다. 디모데는 성격이 다소 유약했지만, 이 디도는 역사상 유명한 티투스 장군은 아니지만 매우 대단하고 융통성 있으며 기민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고린도중서》를 가지고 고린도 사람들을 만나러 가서, 어떻게 했는지 고린도 사람들을 바로잡아 놓았습니다.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고린도후서》를 보면 고린도 사람들이 돌이켰음을 알 수 있고, 바울이 그 서신에서 매우 엄한 말을 썼음을 대략 짐작할 수 있습니다. 바울도 편지를 쓰고 나서 온종일 걱정했을 것입니다. 이 점은 저도 깊이 공감합니다. 때로는 제가 말을 너무 심하게 해서 교회의 형제자매들이 넘어지거나 상처를 입지 않을까 걱정하느라 저 자신도 몹시 괴로울 때가 있습니다. 나중에 디도가 돌아와 고린도 사람들이 말을 귀담아들었다고 바울에게 보고하자, 바울은 다시 《고린도후서》를 쓰게 되었습니다.

《고린도후서》 1장의 주제는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함”입니다. 제 성경공부를 들으신다면 매우 중요한 한 가지 개념을 듣게 되실 텐데, 바로 믿음입니다. 하지만 이 믿음은 장난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입으로는 믿는다고 하면서 마음으로는 믿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가 믿는 분은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이시니, 그분을 온전히 신뢰하기만 하면 이겨내지 못할 상황이란 없습니다. 우리가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기에, 어떤 형편에 처하든 저는 이 말씀대로 실천합니다. 두려움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믿음에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한 사람이 믿음을 가진다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의 사람이 됩니다. 믿음에서 벗어나는 것이 비극임을 알아야 합니다. 《고린도후서》의 행간마다 묻어나는 것은 바로 믿음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오늘 가슴에 손을 얹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우리는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두려워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든 걱정과 염려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해 주실 수 있습니다. 자랑하려거든 내 하나님을 자랑하십시오. 이것이 제가 거듭해서 믿고 따르는 신조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제가 전하는 설교와 성경공부가 매번 똑같은 내용만 반복해서 재미가 없다고 말합니다. 듣기에는 기분 나쁠 수 있는 말이지만, 그 말은 맞습니다. 저의 모든 설교, 성경공부, 기도 인도는 사실 다 믿음에 관한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은 내면의 믿음이 살아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면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지만, 자기를 의지하는 자는 반드시 귀신에게 붙잡히고 넘어지게 됩니다. 사람은 자기 의를 세우지 말고, 자기 꾀를 부리지도 말며,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이 말은 매우 직설적이고 새로울 것도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삶 속에서 적용될 때 사람들의 반응은 천차만별입니다. 두려워하고 비겁한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면 또 어떤 사람은 자기가 비겁하다며 번민하기 시작하는데, 그것은 아직 믿음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오늘부터 내면의 생각을 정리하고, 자신이 믿음을 실천하는 사람인지 살펴보십시오. 그렇지 않다면 이 길을 걸어갈 수 없습니다. 인생의 길은 믿음의 길을 걸어갈 때 매우 단순해지지만, 그렇지 않으면 지극히 복잡해집니다. 제가 늘 말하는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참 단순한 일이다’라는 것은 바로 믿음 안에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믿음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사실 믿음은 하나의 선택일 뿐인데 무엇이 그리 어렵겠습니까?

1. 환난 중에 온갖 위로를 주시는 하나님을 의지함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와 또 온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고린도후서》 1:1-3)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은 조심해야 합니다. 사역의 길을 가다 보면 상처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상처받아도 괜찮습니다. 여러분은 자기를 의지합니까, 아니면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이 하나님을 의지합니까? 여러분이 이 하나님을 의지한다면, 그분은 반드시 온갖 위로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고린도 사람들은 바울과 관계가 거의 파탄 날 뻔했습니다. 마치 제가 우리 형제자매들을 목양하다가 거의 파탄 날 지경에 이르렀다가 반전되어 마음에 큰 위로를 얻은 것처럼 말입니다. 알고 보니 하나님은 위로를 주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눈앞에서 다 망가지고 끝장날 것만 같을 때는 마음이 정말 너무나 힘듭니다. 하지만 마음에 돌 같은 마음을 품고 있다면 힘들지 않을 것입니다. 누가 넘어지든 자신과 상관없을 테니까요. 그러나 바울에게는 생생하고 피와 살이 있는 따뜻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 말을 참으로 깊이 체감합니다. 누가 넘어져도 저는 마음이 아프고, 사람이 불신앙의 길을 가고 굳이 패망의 길로 달려가는 것을 보면 마음이 보통 아픈 게 아닙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제 안에 있는 믿음으로 인해 일들을 종종 아주 기이한 방향으로 발전시켜 주십니다. 그 결과를 보며 제 마음은 위로를 얻습니다. 이것이 바로 온갖 위로를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제가 여러분을 이기적이라고 말하는 것을 정죄한다고 절대 생각하지 마십시오. 저는 여러분을 이기심에서 건져내려는 것입니다. 육신을 위한다고 말하는 것도 꼬리표를 붙여놓고 내버려 두려는 것이 아니라, 육신을 따르는 데서 끄집어내려는 것입니다.

제가 섬기는 하나님은 저에게 위로를 주시는 하나님이시며, 종종 우리 안에서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것을 보게 하십니다. 어떤 자매는 일을 할 때 늘 작심삼일이고, 틈만 나면 바닥에서 인생역전하는 식의 방식을 좋아했습니다. 한동안 잠적했다가 다시 나타나면 화려하게 등장해 저에게 칭찬이라도 몇 마디 들을 줄 알았던 것이지요. 한바탕 요란을 떨었지만 튀어나온 것은 여전히 작은 생쥐 한 마리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자매가 저를 포기하지 않았기에 저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섬겼습니다. 저는 그 자매가 어떤 사람인지 마음으로 알고 있었고, 그 자매 역시 마음속으로 참 힘들고 괴로워했습니다. 저는 우리 가운데 있는 이러한 연약한 형제자매들이 더욱 아름다운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믿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한 말씀입니다. 그들로 인해 우리는 많은 위로를 얻었습니다. 최근에 이 자매가 점차 철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10년 동안 칼을 갈더니, 마침내 갈아낸 칼의 형태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그 자매에게 영업 경험을 정리해 보라고 권했더니 글을 참 잘 썼더군요. 한눈에 봐도 소설을 적잖게 읽었고 헛되이 읽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섬길 때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 사람이 극도로 이기적이라고 해서 얼굴을 찌푸리며 혐오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제가 가르친 바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그분의 영광과 긍휼과 공의를 나타내고자 하십니다. 수년간 걸어오면서 모든 간증이 저의 위로가 되었습니다. 섬길 때마다 저는 "오늘 내가 당신을 어떻게 섬겼는지, 훗날 당신도 다른 사람을 그렇게 섬겨야 합니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사실 저와 함께 이 길을 걷고자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사람의 뼛속 깊은 이기심이 여전히 너무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상관없습니다. 저는 여전히 내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내 하나님은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이시며, 한 사람을 쓰레기 더미에서 건져 올리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저의 섬김을 받았거나 소그룹 목회자의 섬김을 받아 상황이 반전되었고 우리가 위로와 하나님의 은혜를 얻었다면, 기억하십시오. 여러분 역시 은혜를 받은 사람이 되어야 하며, 갑자기 자신의 일에만 빠져 다른 모든 것을 다 내팽개쳐서는 안 됩니다. 사람이 일생 동안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위해 일할 기회를 얻는다는 것은 얼마나 큰 은혜인지 모릅니다. 우리 하나님은 위로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2. 그리스도의 고난을 많이 받은즉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위로도 많이 받음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우리가 환난 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된 것 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 (《고린도후서》 1:4-7)

이것은 앞서 나눈 내용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그것은 결코 여러분이 P2P 대출 투자를 하다가 빚을 져서 겪는 고난이 아니며, 이기심으로 투자에 실패하여 겪는 고난도 아니고, 암이나 관절염에 걸려 겪는 고난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많이 받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암에 걸려 항암치료나 방사선 치료를 받으신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는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고난을 받으셨고, 우리의 질병이 치유받고 우리의 저주를 짊어지시기 위해 기꺼이 십자가의 길을 가신 분입니다. 결코 평범한 분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여러분은 이 길을 걷기를 원하십니까? 이러한 고난을 짊어지기를 원하십니까? 여러분이 섬기는 사람이 여러분을 헌신짝처럼 몇 번이고 내팽개칠 수도 있는데, 그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을 많이 받을수록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위로도 넘치게 받습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사람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랜 세월 동안 저는 수많은 것을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는 사람의 불신을 보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위로를 보았습니다. 제 마음은 종종 해산의 수고를 다시 겪으며, 그것은 참으로 보통의 아픔이 아닙니다.

누군가 화인 명정 신학을 떠날 때 제가 샴페인을 터뜨리며 축하한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그저 자기위안일 뿐입니다. 누가 넘어져도 제 마음은 몹시 아픕니다. 저의 동역자들은 제 마음이 참 부드럽다고 말하는데, 이는 결코 거짓말이 아닙니다. 마음이 부드러워야만 하나님을 섬길 수 있으며, 마음이 완고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마음이 부드럽기 때문에 눈물도 많이 흘립니다. 바울도 《사도행전》에서 눈물을 많이 흘렸습니다. 사람이 고통스럽게 살고 저주 가운데 살아가는 것을 보면서 어찌 마음에 감동이 없겠습니까? 많은 사람에게 부족한 것은 바로 예수님 안에서의 믿음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이심을 알지 못하고,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온갖 위로를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알지 못하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고난을 많이 받을수록 위로도 많이 받게 됨을 알지 못합니다.

교회가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오면서 눈물도 있었고, 마음도 참으로 아팠습니다. 말을 강하게 하면 상처받을까 두렵고, 약하게 하면 나쁜 습관을 고치지 않습니다. 최근에 제가 섬기던 한 형제는 아이가 뇌수막염에 걸려 세상을 떠났습니다. 부모로서 이런 일을 겪으면 마음이 얼마나 찢어지겠습니까. 하지만 이 말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참으로 거듭 고민했습니다. 듣기에는 다소 완곡하게 들리는 말을 했지만 요지는 그대로였습니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돌이켜보았습니까? 여전히 자신이 좋은 사람인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에만 얽매여 있다면 더 많은 고난을 겪게 될 것입니다. 사실 귀신은 사람을 잘못 찾아가지 않으며, 하나님도 사람을 잘못 다루지 않으십니다. 잘못된 것은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형제자매들이 필사적으로 저주를 향해 달려가는 것을 보면 마음이 몹시 아픕니다. 저는 매번 말을 꺼내려다 삼키곤 합니다. 말을 꺼내는 순간 여러분 내면의 논리와 충돌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의 관계가 그 정도까지 깊어졌는지를 가늠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말하고 나서 여러분은 저를 원망하고, 저 또한 제 자신을 탓하게 될 테니까요. 진실을 말하기란 참 어렵습니다. 그러나 형제자매들이 자기의 사소한 문제들을 그토록 중하게 여기고, 툭하면 하나님을 내려놓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참으로 괴롭습니다.

3. 절망 중에도 오직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함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 (《고린도후서》 1:8-10)

살 소망까지 끊어졌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바울의 말은 매우 사실적입니다. 그는 《고린도후서》 뒷부분에서 이를 더욱 자세히 설명합니다.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고린도후서》 11:26-28)

바울이 여기서 살 소망까지 끊어졌다고 말한 것은, 거짓 형제들의 배신으로 죽임당할 위험에 처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피땀 흘려 섬겼지만 돌아온 것은 거짓 형제들의 위협이었습니다. 당시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가 말하는 것은 더 이상 갈 길이 없을지라도 자기를 의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저 삼시 세끼 먹고 자는 것만을 구한다면 얼마든지 자기 힘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절망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해 본 적이 있습니까? 여전히 자기를 의지하겠습니까? 사람이 아무리 기세등등해도 절망의 순간에는 정말로 갈 길이 없어집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우리는 절망 중에도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분은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에베소의 원형경기장에서 사자와 맹수들과 싸워 이기고 그러한 위험에서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은 예사로운 표적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참으로 더없이 좋은 일입니다. 우리 가운데 여전히 두려워하거나, 믿음이 적거나, 믿지 못하는 분들이 있다면 생각을 정리하고 믿음을 끌어올리십시오. 여러분이 연약한 것은 믿음이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일 좀 하다가 온몸에 땀이 나면 못 견디겠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믿음으로 버텨내면 아무 일도 아닙니다. 사람들은 입으로는 죽겠다, 쓰러지겠다 하지만 사실 죽으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정말 죽는다면 그것으로 끝이니, 더 이상 땀 흘릴 일도 탈진할 일도 없이 다 깔끔하게 해결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절망 중에는 오직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믿음을 끌어올리십시오. 우리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라도 하나님께는 능히 하지 못하실 일이 없습니다. 믿음이 있으면 사람의 삶은 지극히 단순해집니다. 게다가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고난을 많이 짊어지며 사람들을 섬긴다면, 섬길수록 더 많은 위로를 얻게 될 것입니다. 제가 간증을 나눌 때 여러분이 저를 대단한 능력자로 여기지 않기를 바라며, 믿음의 사람으로 여겨주시길 바랍니다. 저는 내 하나님이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알고 있기에, 걸어온 길마다 간증으로 가득 찼고, 듣기에는 눈 깜짝할 사이에 다 나은 것처럼 느껴집니다. 한번은 연세 드신 분을 심방했는데, 엄지손가락이 아프다고 하셔서 손을 잡고 기도했더니 순식간에 나았습니다. 방아쇠수지는 참 낫기 어려워서 어떤 때는 오래 섬겨야 낫기도 하는데, 그분은 단번에 나았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제가 믿은 대로 이루어 주시는 것에 참으로 감사하며,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모릅니다. 사람들이 절망하는 모습을 볼 때 저는 절망하지 않습니다. 제게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절망적인 상황에 살면서 이리저리하다가 또다시 옛 악습에 빠지는 것을 볼 때, 여러분은 절망할지 몰라도 저는 절망하지 않습니다. 저는 오직 소망을 품고, 언젠가 우리 형제자매들이 모두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며 살게 될 것임을 압니다. 하나님의 뜻이 원래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는 다시 한번 자기를 의지하지 않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을 여러분에게 나누어 드립니다.

그 무엇도 하나님을 가로막을 수 없습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습니다. 바로 그 절망 속에서도 내 하나님은 여전히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저는 자기를 의지하지 않습니다. 만약 제가 자랑하려거든 자기를 의지하지 않는 사람임을 자랑하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목사님처럼 똑똑한 분이 어떻게 자기를 의지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라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제가 의지하는 분은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지혜로워진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며, 표적과 기사는 제 삶의 즐거움이고, 하나님의 역사를 볼 때마다 마음에 크나큰 위로를 얻습니다. 보시다시피 제가 하는 일들은 매우 구체적이고 자질구레한 일들이지만, 뼛속 깊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입니다.

4. 이것이 우리의 간증입니다

바울이 쓴 《고린도후서》 1장은 마치 저에게 쓴 편지 같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같은 길을 걷고 있다는 간증입니다. 바울의 경험 속에서 저는 종종 제 자신의 그림자를 봅니다. 단지 제가 그처럼 절망적인 상황을 겪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러나 저는 압니다. 바울이 믿었던 하나님과 제가 믿는 하나님은 동일한 하나님이시며, 바울이 겪은 것과 제가 겪은 것도 동일하다는 것을 압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간증입니다.

우리가 자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의 양심이 증언하는 바며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이라 오직 너희가 읽고 아는 것 외에 우리가 다른 것을 쓰는 것이 아니니 너희가 끝까지 알기를 내가 바라는 것은 너희가 우리를 부분적으로 알았으나 우리 주 예수의 날에는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우리가 너희의 자랑이 되는 그것이라 (《고린도후서》 1:12-14)

저는 이 구절을 읽고 매우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제가 형제자매들에게 자랑하는 것은 바로 저의 양심입니다. 제 양심은 부패하지 않았으며, 형제자매들의 고통을 보면서 그들에게 '고린도의 악당'이라는 꼬리표를 붙이지 않습니다. 저는 제가 섬기는 모든 형제자매가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고, 저와 동일한 간증을 갖게 될 것임을 굳게 믿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세상에서 행하되 자기를 의지하지 않고, 사람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지금의 성경공부를 듣고 믿음이 일어났다면, 여러분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은혜는 자기 지혜를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설령 여러분이 과거에 제게 잘못을 저질렀다 해도 저는 여전히 여러분에 대해 소망을 품고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쓰는 말이나 평소 여러분을 목양하며 하는 말도 결국 되풀이해 보면 이 범주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제가 자랑하려거든 저의 믿음과 하나님께서 제게 행하신 역사를 자랑할 것입니다. 저는 훗날 주님을 뵈올 때 여러분 모두가 그 자리에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그리된다면 깊은 위로를 얻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결정을 제가 대신 내려줄 수는 없으며, 여러분을 억압하여 믿음을 억지로 짜낼 수도 없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믿음을 주관하고 싶지 않고, 대신 선택해 주고 싶지도 않으며, 여러분이 스스로 선택하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우리가 여러분을 자랑거리로 삼는 것처럼, 만약 여러분이 저를 자랑하며 류 목사님을 안다고 말한다면, 저 역시 여러분을 자랑할 것입니다. 주 예수의 날에 여러분도 그 자리에 함께 있는 것을 본다면 저는 하나님께 감사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간증입니다. 걸어온 여정 속에서 여러분의 간증은 하나님을 신뢰한 간증입니까?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하셨다는 간증입니까? 믿음의 길은 사실 쉽기도 하고 쉽지 않기도 하지만, 하나님은 여러분과 함께하시며 여러분의 간증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5. 이 신뢰함에는 결코 변덕이 없습니다

내가 이 확신을 가지고 너희로 다시 은혜를 얻게 하기 위하여 먼저 너희에게 이르렀다가 너희를 지나 마게도냐로 갔다가 다시 마게도냐에서 너희에게 가서 너희의 도움으로 유대로 가기를 계획하였으니 이렇게 계획할 때에 어찌 경솔히 하였으리요 혹 계획하기를 육체를 따라 계획하여 예 예 하면서 아니라 아니라 하는 일이 내게 있겠느냐 (《고린도후서》 1:15-17)

내가 내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불러 증언하시게 하노니 내가 다시 고린도에 가지 아니한 것은 너희를 아끼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1:23)

바울이 이렇게 말한 것은 그의 성품이 결코 변덕스럽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그는 평생 믿음을 실천하는 길을 달려왔으며, 고린도 사람들에게뿐만 아니라 에베소 사람들과 다른 모든 이들에게도 믿음과 소망을 품고 섬겼습니다. 사실 관계가 이미 틀어졌는데 바울이 고린도에 가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면박만 당하는 것은 유쾌한 일이 아니며, 겉보기에는 갈 것 같다가도 안 갈 것 같고, 가려니 때가 무르익지 않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자 고린도 사람들은 인편을 통해 바울이 이랬다저랬다 변덕스러운 사람이라 가려다 말고 안 가려다 또 가려 한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고린도에 가지 않은 것이 그들을 너그럽게 아끼기 위함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렇지 않고 갔다가 완전히 파탄이라도 나면 몹시 괴로운 일이 될 테니까요.

바울이 쓴 이 편지는 지혜가 없으면 그 안에 담긴 뜻을 읽어낼 수 없지만, 하나님을 섬겨본 사람이라면 읽어낼 수 있습니다. 이는 육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믿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변덕을 부린 것이 아니라 때가 오기를 기다리며 거듭 미루고 인내한 것입니다. 저 역시 섬기다 보면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천천히 기다리며 소망 가운데 기다리는 것 외에는 사실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 같은 사람들이 걷는 길에는 결코 변덕이란 없다는 점입니다. 여러분은 말할 것도 없고, 길가에서 들어온 사람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듯 똑같이 섬깁니다.

변덕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늘 오래 참으며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회를 조금 더 기다려야 할 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상대를 호되게 꾸짖는 것 외에는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합니다. 저의 동역자들은 제가 사람들을 섬길 때마다 참 온유해 보인다고 자주 말하는데, 사실 관계가 아직 그 정도 깊이에 이르지 않았기 때문에 온유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제 안에는 여러 가지 화법이 있습니다. 사실 이 모든 섬김에는 변덕이 없으며, 다 소망을 품고 있는 것입니다. 언젠가 여러분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나타내며 살아가기를 소망하고, 세상을 사랑하는 데서 걸어 나오고 억압에서 자유케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많은 것들이 실제로는 한 사람의 생각과 마음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6.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됩니다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셨으니 그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고린도후서》 1:18-20)

이 구절이 바로 저의 믿음을 말해줍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약속이 아무리 많을지라도 다 '예'가 되며, 다 신실하심을 압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은 저의 모든 섬김을 통해 여러분을 하나님의 약속 안으로 인도하는 것뿐입니다. 저는 형제자매들이 패망 가운데 살다가 결국 재정과 건강 모두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결코 보고 싶지 않기에, 듣기 싫은 말이라도 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토록 많지만 하나님의 징계는 더욱 많으며, 하나님 역시 우리가 돌아온 탕자처럼 되기를 바라는 이런 마음을 품고 계십니다.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누리고 취하는 것은 아직 너무나 적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우리 형제자매들 모두가 하나님의 약속 안으로 걸어 들어가기를 바랍니다. 강건해지십시오. 생각을 정리하고 우리 안의 불신과 적은 믿음을 모두 제해 버리십시오. 우리 하나님이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이심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약속이 아무리 많을지라도 다 우리의 것임을 믿읍시다. 재정 문제는 지극히 사소한 일이며, 육신의 질병도 마찬가지로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사실 최근에 꽤 감동을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섬기던 한 형제가 예전에 메마른 사막 같은 곳에 처해 있었는데, 어머니와 함께 이모를 위해 매일 기도하며 반년 넘게 지속했습니다. 그 이모님은 75세로 늘 지팡이를 짚고 다녀 일도 하지 못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형제와 어머니의 섬김으로 최근 지팡이를 버리고 밭에 나가 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아니었다면 우리가 어디에서 이런 표적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그 형제는 그리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속도 좁은 편입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그를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제가 여러분에게 직업 설계나 진로를 이야기한다면 이는 기술적인 차원일 뿐이며, 축복받는 차원이 해결된다면 이런 기술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해도 대단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금산 은산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생명이며, 사람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려내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나타내게 하는 복음입니다.

여러분은 온전히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믿음으로 취하는 것이지, 여러분의 행위로 취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능력으로 여러분을 구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더 많은 간증이 있을 줄 믿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간증이 너무 많아서 기술적으로 재생 속도를 높였더니 말이 좀 잘 안 들리기도 했습니다. 여러분의 손이 이미 보배를 쥐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직장이나 학위는 보배가 아닙니다. 물론 제가 이렇게 말하면 어리둥절할 수도 있겠지만, 괜찮습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믿음을 전하고자 합니다. 사람이 믿으면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여러분에게 임할 텐데, 여러분에게 능히 하지 못할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사람의 논리로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의 논리 체계로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기이한 일이 반드시 일어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을 얻는 자는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사람입니다.

7. 그러므로 우리는 너희의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 내가 내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불러 증언하시게 하노니 내가 다시 고린도에 가지 아니한 것은 너희를 아끼려 함이라 우리가 너희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요 오직 너희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 함이니 이는 너희가 믿음에 섰음이라 (《고린도후서》 1:21-24)

제가 여러분을 억압하고 꽁꽁 묶어서 믿음의 길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은 묶을 수 없습니다. 제가 가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여러분을 하나님의 약속 안으로 인도하겠다고, 비행기 날개에 묶어서라도 약속의 땅으로 데려가겠다고 말하곤 합니다. 하지만 비행기가 착륙할 때 미라가 되어 있다면 데려간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는 그저 제 마음의 간절한 열망을 표현한 말일 뿐입니다. 여러분이 믿음 위에 굳게 서게 하려면, 오직 여러분 스스로가 자신을 위해 선택해야만 합니다.

오늘날까지도 어떤 형제자매들은 제가 자신들을 통제하고 억압한다고 자주 말하는데, 제 심정이 바울과 정말 너무나 비슷합니다. 사실 저는 억압할 수도 없으며, 진심으로 여러분이 기쁨을 얻기를 바라고, 이 믿음을 여러분에게 나누어 주어 기쁨을 누리게 하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사람이 기쁘게 사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왜 굳이 자기를 의지하며 번민 속에 살아가려 합니까? 자기를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얼마나 큰 기쁨입니까.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많이 받는 것 아니냐"고 말합니다. 이 고난은 더 큰 위로를 얻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을 다시 끌어올려야 합니다. 여러분은 믿음으로 굳게 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 안에 어떤 믿음이 있는지 보십시오. 방언 기도를 하나님께서 다스리지 못하시겠습니까? 온갖 방언과 분별을 하나님께서 다스리지 못하시겠습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전통적인 신학 체계가 종종 사람의 믿음을 무너뜨린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두 손으로 온 우주 만물을 붙들고 계시며, 여러분 같은 작은 인물도 붙드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을 도와 바빌론의 총리가 되게 하셨고, 요셉을 붙들어 이집트의 총리가 되게 하셨으니, 여러분이 작은 관리나 직장인이 된다 한들 하나님께서 능히 붙드시지 못하겠습니까?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온갖 불행한 일들을 만들어낼 이유가 없으며, 우리는 점점 더 자유로워지고, 점점 더 믿음이 충만해지며, 하나님의 영광을 더욱 보게 될 것입니다. 사역도 점점 더 힘을 얻고, 하나님에 대해서도 점점 더 명확하게 알아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은 더없이 좋습니다. 우리 가운데 한 자매가 참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최근에 집 한 채를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자매의 사촌 언니가 부모님 모시는 것을 싫어해서 부모님 돌보는 일을 우리 자매에게 맡겼습니다. 그런데 이 자매는 일하기를 좋아하고 믿음이 매우 좋은 자매였습니다. 시골 마을에서 버스를 타고 주일 예배에 참석하는데 갈 때 3시간, 올 때 3시간, 예배 2시간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실제로 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 자매가 사촌 언니의 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돌보자, 사촌 언니는 시골집을 그 자매에게 주었습니다. 당시에는 값어치도 얼마 되지 않는 집이라 그 자매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뜻밖에도 재개발 철거 보상이 이루어지면서 위치가 아주 좋은 아파트 한 채를 받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눈에는 손해 보는 일처럼 보여도 결국에는 큰 유익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베푸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매일 그 정도 일하고 어르신을 말동무해 드린 것을 따져보면 이는 은혜입니다. 우리는 종종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지만 유익을 얻고, 죽는 것 같으나 다시 살아나며, 절망 중에 있는 것 같으나 하나님을 경험하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게 됩니다.

여러분 모두가 자신의 좁은 셈법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셈법을 다시 붙잡아, 하나님의 논리로 계산해 나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하면 수많은 문제가 단번에 풀릴 것입니다. 돈이 있네 없네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 황금 집이 있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 유리 바다가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 안에 각양각색의 보석이 있어 여러분이 생각하는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이 생기셨습니까? 생기셨다면 지금부터 이 믿음을 며칠 더 굳게 지켜나가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복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관심을
关闭
暂无评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