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Q1:老师请问追求精致和完美主义怎么区分?
完美主义就是名字好听,这是人对完美主义不了解。顾名思义,你以为追求精致就是追求完美,如果你要追求完美就好了!那完美主义是个啥呢?其实是做不到完美就自暴自弃,这样永远都做不到精致。完美主义带着一种好高骛远的心态 ,是要求高到落实不了,眼高手低的状态。追求精致,追求卓越 ,听起来好像是跟完美主义差不多,但实际上不是。
追求精致是我们不做到精致不罢休,但能接纳从不精致到精致的过程。我们一定要避免好高骛远,眼高手低 。其实一个人如果照着神的话逐步去落实,他应该是一个精致的人。他应该是做事非常具体,做事非常精致,又能够抓到关键点的人 ,你仔细去读《圣经》写的全是这个。
Q2:老师,自己常常处于飘飘然和脚踏实地之间的中间地带,请问老师常说的神的灵会在工作上带领我们,帮助我们,是指怎样帮助?并且我心里一直有一个疑惑,就是基督徒如果和世人一样需要脚踏实地,按部就班的把事情做成,那还有什么优势呢?我知道自己的提问很愚蠢,请老师海涵。
先回答最后这部分。如果一个人做了合神心意的事,照着神的心意做,又依靠神,神的能力会不会降到你的身上?会降到你的身上。你脚踏实地的做,又合了神的心意,神又帮助你,你跟世上的人差别大不大呢?差别很大。但是问题是看你怎么比。如果你这样比:你看我的公司怎么总也比不上马云的公司?我没比上啊。那是你比错了,那不是神的心意。你得照着神的话去琢磨,所以问题还是因为不明白神的话,所以把东西整得乌烟瘴气。
回到第一个问题:常常处于飘飘然和脚踏实地的中间地带。其实你处在中间地带比一直飘飘然已经好多了!实际上你之前应该几乎都在飘飘然的状态,后来离飘飘然远一点,离脚踏实地近一点;又远一点,又近一点;最后就走到脚踏实地里去了。你心里的疑惑其实是在你脚踏实地的时候就觉得这啥时候是个头啊!又飘飘然了。飘飘然以后又想起来,飘也飘不出去呀!最后就又脚踏实地了。这样好几天过去了,再脚踏实地的时候,心里又疑惑了,我这样脚踏实地跟世人有啥差别啊?就又飘起来了。所以你这俩问题问得挺好,自己给自己一个答案。
Q3:老师,我平时做事还算有想法,但是只要一遇到要算的东西就会云里雾里,脑子开始不好使了,该怎么对付?
不具体,这是典型的不具体。不具体是很要命的!很多人做事就喜欢不具体,然后一到要做具体的东西的时候,就容易云里雾里。因为都养成习惯了,所以首先得再把事情做到具体。很多人不会思考。一思考就乱成一坨,很多相关的、不相关的东西全部都扯在一起。我的思考方式是什么?是一件事一件事地整明白。
很多人不喜欢这样,就想快,云里雾里是快了,但是脚都不沾地了,一会儿不就晕了? 有人跟我分享,他读大学的时候他的同学经常去请病假。但是走到诊所里,他不发烧也不咳嗽,啥症状也没有,怎么办呢?他就跟医生说:医生啊我头晕。头晕这种毛病是检查不出来的,就算你用最先进的仪器也检查不出头晕。
有个小品赵本山装病,就手在那哆嗦,咋检查啊?检查不了。所以头晕他有可能是真是晕,我们没法怀疑他的真假,但是一到打篮球、游泳、玩、打游戏这些时候,他立刻就不晕了。这种状况是相当普遍的,其实医生也知道。哦,你来了?来了。头晕是吗?头晕。要几天病假?两天。ok,给你开两天。这两天他就去打球去了,不算旷课。这不是自己忽悠自己吗?大家要听明白了,不论做什么就是要具体,大家把具体的概念往脑子里灌,要刻在心坎上,那可是神的属性,思辨来思辨去没有用的。
Q4:追求精致和掉进细节里的区别是什么?
我看这个追求精致给大家制造了不少困扰,追求精致和掉进细节里的差别太大了!差别在哪呢?有的人就在紫色线的事上纠结:哎呀,这个不够紫!哎呀,这块紫的不够好!那是精致吗?那不是精致。满脑子就是那根线了,其实那根线离帐幕差老远了,这叫掉进细节里去了。所以一个人在训练自己的时候,需要训练自己整体的观念,同时每一样又变得很具体。能抓住我说的吗?我好像没解释很清楚,没关系,有机会再多说。
Q5:圣所和至圣所有什么区别?
这是两个不同的层次,有些人可以进至圣所,有些人只能进到圣所,有些人连圣所也进不去。大家理解了吗?就是一个属灵层次的分别,也是跟神关系的差别。现在我们靠着耶稣基督就可以坦然无惧的来到至圣所。但问题是啥呢?我们虽然可以坦然无惧的来到至圣所,但是你的属灵层次老也达不到,就还是需要竭力攀登。因为神的殿建在圣山之上,圣山实际上是耶和华的山。这不有句话说:登耶和华的山,进雅各神的殿。在雅各神的殿还有圣所、至圣所,你要爬到山顶然后才能够进至圣所。进到至圣所以后,人的生命就满有耶稣基督的身量。你问的问题挺深,差点把我难倒了。
Q6:老师,我们在读这一章时,需要把建造会幕的细节搞明白吗?
如果你想搞明白其实也不难,多少个扣、多少个钩、怎么围在一起等等描述的不过就是四面墙,上面加个盖。盖上面有羊皮、海狗皮,然后扣怎么扣,从哪进从哪出,中间还有个帘子,大概就是这样。整明白这些,不如整明白神的属性,整明白了神的属性,我们就可以好好去落实神的属性,回报反倒更高。
Q7:老师,如果建立教会要按着上帝给摩西的方法做,那现在教会做得如何?
这个问题好像不太成立,教会是按着神给耶稣基督的或者耶稣基督给我们的来建造。因为摩西建造的帐幕是新约教会的一个影子。所以耶稣基督讲,建造教会要这样建造。后来使徒保罗又讲,建造教会也是要按着耶稣基督说的这样建造。
Q8:如果没有按照神的去做,它为什么做得又大信徒又多?这是兴旺吗?我看到主任牧师要出名,希望在社会上有影响力,这跟巴别塔的灵有关吗?
我的天哪,这个问题很挑战!我试着回答,不一定答得好。教会人多是在新约圣经里从来没有提到的。如果看到教会人多就是好,那你告诉我教会应该是啥呢?教会是一群门徒的整体,耶稣基督的门徒才是建造教会的人。整一些信徒,那不是耶稣要的。大家要清楚。耶稣早就把这件事讲的明明白白。耶稣要的是门徒。如果没有门徒只有信徒,又有什么用呢?想在社会上有影响力,这影响力是《圣经》里教的吗?不是,我不知道他们在干啥。
说到这个事,我要提到彼得。彼得刚开始出来一讲道、一祷告就三千人信主、五千人信主。结果是教会里面连吃饭都成问题。吃饭这事都管不好,可见教会成了一个人体现私欲的地方,有一大堆的问题。现在很多人把教会做大了以后,他们就说:哎呀,教会有人就有政治斗争啊!但是我问你,有这些人能没有政治斗争吗?如果是一群像耶稣基督的人,会有政治斗争吗?不会的。一群像使徒保罗这样的人,会有政治斗争吗?不会的。就是因为教会里面有一群法利赛人,一群乌烟瘴气的东西,教会才会成这样。你如果问我,我可不轻易把人弄进来。
教会不需要大,需要的是圣洁,需要的是耶稣基督的门徒。如果你想在这里做个信徒,我看你应该做不下去。如果你能做下去,那是你本事大,把我给忽悠了,你装得挺像门徒的。所以教会应该是什么样,我们需要去琢磨,需要去了解,教会到底是啥?需要去思考。所以我们不想整一群乌烟瘴气的,问题太多了,我不想整那些。
一天到晚这个被人打了,那个被讨债的抓了,这一个又被人告了,我要给他安排律师了,我不想干这事儿。我只想干一件事,照着神的心意,建造神荣耀的教会。不是把一群人带到更深的咒诅里去,而是带到更深的祝福里去,做谨守遵行神话语的人。我想那些照着属世界的逻辑体系建造的就叫巴别塔。
Q9:老师,你的思考方式是一件事一件事弄清楚,可以举个例子吗?
比如说我要做一个桌子,桌子板我怎么做,桌面我怎么做,桌子腿我应该怎么做,我都想好。桌子板我给它整好,桌子腿我给它整好。然后把桌子腿和桌子板连在一起,就成了一张桌子。如果说如何做桌子板,我就要想,边我怎么封?面要整成啥样?跟桌子腿应该怎么连?也就是说,到我这儿来,一个复杂的问题,都被分解成一个一个简单的问题。
把一个复杂的问题分解成一个一个简单的问题,然后一件事一件事弄清楚。你比如说桌子腿,我得弄清楚这个桌子腿如何牢固地连接在桌子面上,一整就塌了,那叫桌子啊?那不能用,做出来害人啊!所以桌子腿得稳定,桌子面得好看、平整。然后看着整体也要美。这就是把一个复杂的事,分成一个一个简单的事,一下子就整明白了。
Q10:老师,我总是眼睛看到的和手里做的就是相悖的,眼睛看的数字,写出来就是错的,我对付了好久还是会出现,这是黄皮子辖制吗?要怎么做?
这是鬼,这绝对是鬼!有的人看到的字全是乱的,比如说《创世记》,起初,神创造天地,他看到的不是这样,而是创造起初的神,顺序都是乱的。人怎么会看到的顺序就是乱的呢?这是个鬼,需要释放。
Q11:老师,要做到如此的精致,如果按一百分来算,我现在只能算一分,那真要努力加油啊!但是自己脑子经常卡住,有没有办法进步快些呢?
不用进步快些,是需要脚踏实地!我们养成了坏习惯,老想快,结果就一直在原地。前一段时间我做培训,有一个学员说,我得快快赶上。我一听,完了!我说你不可能赶上。他说:老师,你怎么这么说呢?我说:你有这种想法,你就好不了!我得快快赶上,你干啥啊?你最好脚踏实地的干。老想快,结果是快了,却也乱了,加油加不到对的地方去。
我想我们的工作还相当艰巨,需要做的还很多。大家是不是觉得需要做的工作很多?在一般的教会可没人管这些事,我们却要管。所以你说,我用什么办法呢?我只有一个办法,就是不断训练像耶稣基督一样的人,包括我自己也要不断的提升。通过不断地解决这样的问题,才能不断的成长。我们不能够玩表面工夫,唱唱诗歌唱得泪流满面之后,回家该啥样还是啥样,没有用!这不是解决问题的办法。
愿神祝福大家!
1. 어리석은 질문을 하지 말라
- 많은 사람들이 공부를 잘하지 못하는 이유는 늘 자기 나름의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 많은 어리석은 질문을 하기 때문입니다. 즉, 핵심을 찌르는 질문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 사람이 무언가를 배울 때 처음부터 왜냐고 한 무더기의 질문을 하면, 그런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 됩니다.
-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하라고 하시면 우리는 그대로 하면 됩니다. 하나님의 설계를 철저히 이해하고 잘 실행할 수 있다면 이미 매우 훌륭한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지시하신 모양대로 건축하라
- 하나님께서 교회를 설계하신 것은 매우 정교하고 구체적입니다. 교회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알려 주셨으니, 순종하여 그대로 행하면 됩니다!
- 하나님의 설계에 따라 교회를 건축하면 어떤 자원도 부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의 문제는 하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신 것은 실행하지 않으면서, 예수님께서 하지 않으신 일들을 많이 벌이는 데 있습니다.
3. 구체적인 것은 하나님의 속성이다
- 우리의 하나님은 고상한 말만 외치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일을 매우 구체적으로 하시며, 우리에게도 일을 구체적으로 하라고 요구하십니다.
- 관리는 반드시 구체적이어야 하고, 일을 맡길 때도 반드시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합니다. “구체적”인 것은 일을 배정하는 데 있어 중요한 속성입니다.
4. 정교한 것은 하나님의 속성이다
- 우리가 사람을 목양하는 사역은 매우 구체적입니다. 형제자매들을 예수님처럼 정교한 사람으로 빚어 가는 것입니다!
- 우리 하나님의 구속 계획은 매우 정교합니다. 교회를 대충 거칠게 세우거나 아무렇게나 해서는 안 됩니다. 정교한 태도와 탁월함을 추구하는 태도를 가지고 임해야 합니다!
5. 결론
- 우리 안의 믿음을 다시 정돈하고, 다시 한 번 힘써 추구합시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기를 추구하며,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갑시다!
- 하나님의 지시하신 모양대로, 구체적이고 정교하게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성전을 세우기로 마음을 굳게 정합시다!
핵심 단어
- 하나님의 설계
- 하나님의 속성
- 하나님의 지시
- 일을 구체적으로 하기
- 일을 정교하게 하기
- 핵심을 붙잡기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출애굽기》 26장을 읽겠습니다. 몇 년 전 제가 이 장을 읽었을 때는 무슨 말인지 몰라서 전부 건너뛰곤 했습니다. 읽기가 상당히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26장을 다시 보니, 여기에는 분명한 특징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설계의 첫 번째 특징은 구체적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묘사하신 모든 내용은 매우 분명하며, 공학 도면으로 그릴 수 있을 정도로 세밀합니다. 예를 들어 교회를 건축하는 일에 대해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설명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매우 자세하고 분명하게 설명하셨습니다. 어느 정도로 자세합니까? 어떤 재료를 사용할지, 어떤 치수로 만들지, 그 치수에 따라 몇 개가 필요한지, 이것과 저것을 어떻게 연결할지까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셨습니다. 특히 두 물건 사이의 연결 지점, 즉 연결되는 부분이 핵심입니다. 가장자리를 어떻게 마감하고 어떻게 서로 연결하느냐에 따라 완성된 작품이 정교한지 아닌지가 결정됩니다.
하나님의 설계의 두 번째 특징은 핵심을 붙잡는 것입니다. 저는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서, 손으로 만들다 보면 가장자리를 잘 처리하지 못하면 매우 보기 흉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가장자리가 마감되지 않은 바지를 입고 다니는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까? 모두 가장자리를 마감합니다. 물건을 만들든, 인테리어를 하든, 수공예를 하든, 가장자리를 마감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바닥을 깔다가 벽 모퉁이에 이르렀다고 합시다. 제가 여러분에게 “그 부분에 틈이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틈이 있습니다. 그 틈을 어떻게 처리합니까? 걸레받이를 설치합니다. 그것은 전체를 잘 마무리하기 위한 것입니다. 나중에 저는 우리 하나님의 솜씨가 정말 훌륭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사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이런 방법을 배워 핵심을 붙잡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설계의 세 번째 특징은 정교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설계하신 전체 과정은 매우 정교합니다. 이를 악물고 대충 거칠게 만든 것이 아닙니다. 네 번째 특징은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장인, 즉 손재주가 있는 사람을 사용하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네 번째 특징은 어떤 사람을 찾느냐는 것입니다. 이 장의 주제는 하나님의 설계는 구체적이고 정교하며, 또한 핵심을 붙잡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설계의 특징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3,500년 전이라면 어떤 시대였겠습니까? 그 시대에 이런 것을 만들어 내고 이런 수준까지 해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어서 문제가 생깁니다. 광야에서 이런 재료를 어디서 구하겠습니까? 광야에서 도구를 어디서 구하겠습니까? 광야에서 장인을 어디서 찾겠습니까? 도전은 매우 많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예비하셨습니다!
우리는 매우 흥미로운 특징을 발견합니다. 모세가 산에서 하나님을 만나 사십 일, 사십 밤을 보냈는데,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겠습니까?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 모든 것을 기록하지 않았을까요? 중요한 것들을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기록하지 않은 내용도 아주 많았을 것입니다. 모두 기록했다면 성경이 얼마나 두꺼워졌겠습니까! 사십 일 밤낮 동안 한 시간에 만 자씩 말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하루 밤낮이면 24만 자이고, 사십 일 밤낮이면 960만 자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다 기억하겠습니까?
어리석은 질문을 하지 말라
형제자매 여러분, 이제 생각해 봅시다. 모세는 왜 하나님께 왜 이렇게 해야 하느냐고 한 번도 묻지 않았을까요? 사람이 이런 질문을 한다면, 여러분은 그가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무언가를 배울 때 처음부터 왜냐고 한 무더기의 질문을 한다면, 여러분은 아마도 《십만 가지 왜》가 될 것입니다. 《십만 가지 왜》라는 책도 있지만, 사람이 무슨 일만 생기면 “왜요?”라고 묻는다면 끝입니다! 그런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하라, 이렇게 하라, 이렇게 하라!”고 말씀하시면 우리는 “이렇게 하고, 이렇게 하고, 이렇게 해야 합니다!” 제 충고를 기억하십시오. 여러분, 성경공부를 하면서 늘 왜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 해달 가죽을 사용해야 합니까? 왜 기둥을 쉰 개 사용해야 합니까? 왜 금으로 가장자리를 입혀야 합니까? 이렇게 묻고 또 묻다 보면 어리석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에게 말씀해 주지 않으실까요? 하나님께서 그 이유까지 말씀해 주신다면 더욱 곤란해집니다! 원래도 960만 자인데, 왜 그런지까지 말씀하시면 9,000만 자가 됩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질문 하나를 하고 하나님께서 설명을 마치신 뒤에 또 왜냐고 질문한다면, 결국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아무 데도 나아가지 못합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만들라고 하시면 우리는 이렇게 만들면 됩니다! 모세는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어떤 사람들이 자신이 모세보다 지혜롭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솔로몬보다 지혜롭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예수님보다 자신이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분도 이런 사람을 본 적이 있지 않습니까? 제가 왜 이런 사람을 매우 싫어하는지 예를 들어 말씀드리겠습니다.
IT 업계에 관해서는 공정하게 말해도 제가 깊이 알고 있습니다. 제가 하는 일은 기본적으로 각각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비교적 분명하게 연구한 것들입니다. 어느 날 갓 학교를 졸업한 청년이 있었는데, 그가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어서 제가 그에게 일을 맡겼습니다. 그런데 몇 달 지나지 않아 관리자가 저에게 와서 항의했습니다. “사장님, 제가 이 직원에게 1, 2, 3, 4, 5를 하라고 했는데, 이 사람은 1, 3, 5만 하고 2와 4는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그를 불러오십시오.” 그리고 그에게 물었습니다. “내가 1, 2, 3, 4, 5를 하라고 했는데 왜 그대로 하지 않고 1, 3, 5만 했습니까?” 그는 저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제가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저는 하마터면 말문이 막힐 뻔했습니다. 그가 믿음이 그렇게 된 것인지, 아니면 믿기 전부터 그랬던 것인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업무 매뉴얼에는 1, 2, 3, 4, 5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제 막 학교를 졸업했으니, 제가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지난 여러 해 동안 연구하며 문제를 겪었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방식으로 업무를 규범화한 것입니다. “왜 이렇게 일해야 합니까?”라고 묻지 마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의 업무입니다! 모세가 왜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알려 주셔야 할 것은 모두 알려 주셨고, 알려 주지 않으셔도 되는 것은 알려 주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주 예수님께서도 우리에게 알려 주셔야 할 것은 모두 알려 주셨고, 알려 주지 않으셔도 되는 것은 알려 주지 않으셨습니다. 이해하셨습니까? 많은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알려 주지 않으신 부분을 연구하기를 좋아합니다. 하나님께서 알려 주지 않으신 것을 반드시 물으려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알려 주신 부분은 행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여러분은 우리가 오늘 나누는 주제를 알기 시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을 기뻐하십니까?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설계를 철저히 이해할 수 있다면 이미 훌륭한 것입니다! 어리석은 질문을 하는 상황은 우리 가운데 상당히 보편적입니다. 사람이 공부를 잘하지 못하는 이유는 질문을 핵심에 맞게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설계는 구체적이고 정교하며, 핵심을 붙잡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께 배워야 할 부분입니다. 여러분은 열 폭의 휘장을 어떻게 만들지 하나님께서 매우 분명하게 말씀하셨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휘장을 정확히 어떻게 만드는지 설명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전체 설계가 가진 특징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어리석은 질문을 피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알려 주신 것은 붙잡지 않으면서, 하나님께서 알려 주지 않으신 부분을 굳이 붙잡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께서 알려 주신 것을 잘 이해하고, 하나님께서 알려 주지 않으신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셔도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어리석은 질문을 피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건축하는 일에 대해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셨습니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대로 하지 않습니까? 우리에게 자기 생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생각은 어디에서 옵니까? 어리석은 질문을 하고도 답을 찾지 못하는 데서 옵니다.
이런 예를 들자면 저는 아주 오랫동안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핵심은 이것이 아닙니다. 핵심은 우리가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다윗과 같은 사람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 바울을 본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한 일을 우리가 이해하고 철저히 깨달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매우 훌륭합니다! 어리석은 질문이란 그들이 한 일조차 아직 철저히 깨닫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했으면서, 다른 질문을 한 무더기 하는 것입니다. 왜 이런 질문을 합니까? 여전히 마음속에 자기 생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든 예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불쾌할 수도 있지만 괜찮습니다! 제가 이런 위험을 감수하겠습니다. 듣다가 불쾌하셨다면 먼저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늘 제가 말한 것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며, 여러분이 한 것이 제가 한 것보다 더 옳을 수도 있다고 주장합니다. 괜찮습니다. 저도 배우고 있습니다. 이것은 제 관점입니다.
예수님 시대와 사도 바울 시대에 동성애가 있었습니까?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이 큰 깃발을 들고 거리로 나가 항의하며 정부에 법을 제정하라고 호소했습니까? 사도 바울은 그렇게 하지 않았고, 예수님도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일을 하기를 좋아합니까? 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예를 들자면 아주 많습니다. 그러나 교회를 건축하는 데 있어 가장 기본적인 몇 가지 핵심은 그들이 묻지도 않고 관심을 두지도 않으며 관리하지도 않습니다. 여러분은 제가 무엇을 붙잡기 좋아하는지 아십니까? 저는 하나님의 설계를 붙잡기 좋아합니다. 누구에게 배운 것입니까? 모세에게서, 다윗에게서 배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설계는 도대체 무엇입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반석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진리,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반석은 얼마나 큽니까? 시내산처럼 높은, 매우 큰 반석입니다.
진리의 반석은 한 층 한 층 올라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의 성전이며, 이 반석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음부의 권세가 그것을 이기지 못합니다. 이해하셨습니까? 오늘날 많은 사람은 반석 위에 건축하지 않고 모래 위에 건축합니다. 그러면 음부의 권세가 그를 짓밟고 또 짓밟아 결국 사람이 암에 걸리기까지 합니다. 이해하셨습니까? 그런데 마지막에는 오히려 좋다고 생각합니다. 왜 이렇게 되는지 저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권세: 원문은 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태복음 16:18-19)
천국의 열쇠가 핵심입니다. 이해하셨습니까? 천국의 열쇠는 핵심적인 것입니다. 불법 건축물이 아닙니다. 불법 건축물은 철거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건축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불법 건축물이 아니겠습니까? 너희가 땅에서 매는 것은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며, 땅에서 푸는 것은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라는 말씀이 얼마나 분명합니까!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교회에 대한 정의입니다. 이후에 예수님께서는 많은 진리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한 가지가 교회의 정의입니다. 알아들을 수 있습니까? 핵심을 붙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핵심을 우리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교회를 어떻게 세워야 하는지, 교회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이미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로 구체적입니까? 《출애굽기》 26장과 비슷할 정도로 구체적입니다. 모세가 성막을 건축하는 일은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만들지, 어떻게 처리할지 매우 분명하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건축하면 재료가 부족하겠습니까? 부족하지 않습니다. 도구가 부족하겠습니까? 부족하지 않습니다. 돈이 부족하겠습니까? 부족하지 않습니다. 인재가 부족하겠습니까? 부족하지 않습니다. 이해하실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건축하지 않으면 이것도 부족하고 저것도 부족합니다. 하나님의 설계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첫 번째입니다. 어리석은 질문을 하지 마십시오. 이때 어떤 사람은 이렇게 물을 수 있습니다. “왜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푸는 교회를 세워야 합니까?” 이런 종류의 질문을 하는 것이 어리석은 것입니다. 이해하셨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설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지시하신 모양대로 건축하라
구약의 성막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렇게 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바로 그 모양대로, 하나님의 지시하신 모양대로 해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교회의 모양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우리 뒷마당에 있는 교회와 같고, 우리 집 앞마당에 있는 교회와 같고, 우리 마을의 교회와 같고, 옆 마을의 교회와도 같습니다.” 성경이 교회가 어떤 모양인지 알려 주었습니까?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예수님이 어떤 모습이십니까? 교회도 그 모습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는 정말 잘 지어졌습니다. 정말 각양각색입니다! 이 일을 어디 가서 따져야 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마음이 매우 서늘해지실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각양각색의 교회를 세웠습니다. 어떤 것은 개혁교회라고 하고, 어떤 것은 루터교회라고 하고, 어떤 것은 감리교회라고 하고, 어떤 것은 성공회라고 합니다. 그 밖에도 천주교, 동방정교회, 개신교가 있습니다. 정말 놀랍습니다! 독립교회라는 것도 있습니다. 정말 각양각색입니다!
저는 한 교회의 목회자를 알고 있습니다. 그는 감리교회의 관리 체계가 매우 좋다고 생각하여, 감리교회에서 제명된 목회자를 자신의 교회로 초청해 지도를 받았습니다. 감리교회의 방식을 전수받기 위해서였습니다. 저는 의아했습니다. 저는 주님을 믿은 날부터 성경이 도대체 무엇을 말씀하는지 연구하기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연구한 지 하루 이틀이 아니며, 성경도 많이 읽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목회자가 감리교회의 목회자를 데리고 제 사무실에 왔습니다. 그 감리교회 목회자는 소파에 털썩 앉더니 저를 상대하지도 않고 누구도 상대하지 않은 채 고개를 숙이고 기도했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지금 무엇을 하시는 겁니까?” 그러자 제 친구가 말했습니다. “우리 교회의 이 목회자는 늘 먼저 20분 동안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봅니다.” 세상에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제 흉을 보시지만 않기를 바랍니다. 저는 문제가 아주 많은 사람이니까요.
20분이면 20분, 천천히 기다리면 됩니다. 당신은 기도하고 나는 내 말을 하면 됩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런 것은 어디서 배운 것인가?” 너무 신비주의적입니다! 하나님의 계시하신 모양대로 건축한다는 것이 이런 것입니까? 감리교회의 방식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까? 아닙니다. 감리교회가 스스로 말한 것입니다. 저는 감리교회를 비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감리교회에서 제명된 그 목회자가 감리교회에서 배운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만들어 낸 것인지 모르겠다는 말을 하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런 것들에 따라 건축해야 합니까?
얼마 전 어떤 목회자가 저를 찾아와 말했습니다. 자신이 오랫동안 우리 웹사이트를 지켜보았지만 그것을 만든 사람이 저인 줄은 몰랐다고 했습니다. 우리 웹사이트의 내용이 매우 좋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오순절 교회가 아니지요? 치유와 축사도 하고, 하나님의 말씀도 매우 깊이 깨닫고 있네요.” 우리 웹사이트에는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많은 내용이 있기 때문에 그는 매우 놀랐습니다. “이 웹사이트를 누가 만든 것입니까?” 나중에 그는 저를 찾아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을 만든 사람은 분명 이단이 아닙니다! 그가 한 말과 그가 연구한 성경을 들어 보면 성경에 비교적 부합합니다. 그런데 성경에 부합한다고 하면서 치유와 축사도 하네요.”
저는 의아했습니다. 왜 치유와 축사를 하면 오순절이 됩니까? 왜 우리가 치유와 축사를 합니까? 하나님께서 자신의 교회를 치유와 축사를 하는 교회로 정의하셨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바로 이것을 하는 곳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교회가 거리로 나가 정부에 항의하라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우리 가운데 누군가 이런 일을 하고 그런 쓸데없는 일에 참여하기를 좋아한다면 저는 그를 내보낼 것입니다. 저는 이런 일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그런 내용이 한 번도 나오지 않고, 예수님도 그렇게 하신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모두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만들어 낸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여러분이 어느 교파에 속했든 어떤 사람이든 성경을 자세히 읽어 보십시오. 성경에는 이런 내용이 없습니다!
바울에게는 많은 제자가 있었지만, 그는 그리스도인들을 데리고 항의하거나 진승과 오광처럼 봉기하지 않았습니다. 저도 여러분에게 그런 일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사도 바울과 예수 그리스도는 한 번도 정의를 주장하며 나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정의를 주장하며 나서는 그리스도인이 많습니다. 마치 자신들이 정의를 주장하지 않으면 세상이 끝나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저는 이 그리스도인들이 어디서 배웠는지 매우 의아합니다.
서양의 민주주의 문화에 세뇌된 어떤 사람이 제게 꼭 모자를 씌우듯 누명을 씌우며, 누가 저를 매수했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예수님께 완전히 매수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합니다. 예수님께서 하지 않으신 일은 우리도 하지 않습니다. 조금 손해 보고 약간 박해받는 것은 감수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렇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다시 다른 것을 만들어 예수님께 성을 하나 붙이고, 이름을 하나 붙여 장예수, 이예수로 만들면 되겠습니까? 그렇게 하면 곤란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마땅히 예수님의 모습대로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 가운데 예수님을 닮지 않은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주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교회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예를 들어 이렇게 묻습니다. “주님을 믿은 지 얼마나 되었습니까?” “20년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배웠습니까?” “제가 구원받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제가 말합니다. “당신 같은 모습으로 이미 구원받았다고요?” 그는 말합니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 교회에서 저에게 가장 큰 위로가 되었던 말은 제가 이미 구원받았다는 말이었습니다. 저는 기분이 좋았고, 제가 구원받았다고 느꼈습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여러분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교회의 설계는 매우 정교하고 구체적입니다. 교회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미 분명하게 말씀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교회를 건축하면 하나님의 영이 우리 가운데 계시고,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가운데 나타납니다.
제가 기도할 때 어떤 사람은 제가 하는 일이 그다지 신기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신기할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원래 매우 신기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의 목에 생선 가시가 걸렸는데, 저는 늘 사람들에게 생선 가시는 기도하면 나아진다고 말해 왔습니다. 그런데 어제 정말 그런 사람이 왔습니다. 온라인으로 만난 적도 없는 사람이었는데, 목에 생선 가시가 걸렸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럼 제가 인도해서 함께 기도하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나중에 생선 가시가 사라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잘 실행하면 하나님의 교회에 대한 설계가 매우 정교하고 구체적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이런 핵심들을 우리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우리가 제대로 배우지 않고 일부러 비뚤어진 방향으로 배우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구체적인 핵심 부분을 붙잡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구름 속처럼 흐릿하고 모호하다면 그만두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잘 실행하면 하나님의 영이 반드시 우리 가운데 계실 것입니다. 어떤 재료와 도구, 인력과 인적 자원이든 모두 해결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건축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엇을 건축하는 것입니까? 그래서 제가 그 목회자에게 대답했습니다. “당신은 우리가 이단이라고 생각합니까?” 그는 말했습니다. “이단이라고 할 정도는 아닙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감사해야겠군요! 그럼 무엇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는 말했습니다. “극단적이라고는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하기 때문에 극단적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과학 연구를 하면서 진지하지 않고 엄밀하지 않다면 계속해 나갈 수 있겠습니까? 뉴턴의 세 가지 운동 법칙을 지키면서 엄밀하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원자력과 원자폭탄, 수소폭탄을 만들면서 엄밀하지 않고 극단적이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대충대충 만들다가는 어느 날 원자폭탄을 끌어안고 이 푸른 하늘 속에서 함께 폭발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그는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이 극단적이라고 말했지만, 저는 그것이 저를 칭찬하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바로 이런 태도 때문에 마귀가 우리 앞에서 떨고 있습니다. 마귀조차 탄식합니다. “이 사람은 상대하기 어렵구나. 속이기도 쉽지 않구나!”
우리는 왜 구체적이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일을 매우 구체적으로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왜 정교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일을 매우 정교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제가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해 정교하게 하려고 한다는 것을 점차 알아 가십시오.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올바르게 해야 정교해질 수 있습니다. 잘못하면 항상 이가 드러나 흉한 모습이 됩니다. 저는 언제나 사물의 기본 개념을 붙잡을 수 있습니다. 기본 개념은 매우 중요합니다.
구체적인 것은 하나님의 속성이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일을 매우 구체적으로 하신다는 것을 발견하셨습니까? 구체적이지 않으면 모든 것이 구름 속처럼 모호해집니다. 구체적이지 않은 일 몇 가지를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혹시 비슷한 점이 있다면 순전히 우연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구체적이지 않은 일을 벌이기를 매우 좋아합니다. 저는 구체적인 일을 하기를 좋아합니다. 왜 구체적인 일을 좋아합니까? 하나님의 속성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고상한 말만 외치는 분이 아닙니다. “할렐루야!”를 크게 외치면서 정작 아무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설계는 매우 정교하고 구체적입니다.
얼마 전 저는 여러분에게 관리에 대해 말했습니다. 관리라는 것은 구체성이 뼛속까지 스며들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말하는 일이 구체적이지 않다면 대부분 자기 자신의 나쁜 습관에서 나온 것입니다. 고상한 말만 외치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내가 온 인류를 해방하겠다!” 그런데 정작 자신은 매우 형편없습니다. “내가 알리바바 같은 회사를 만들겠다!” 하지만 알리바바는 이미 존재하고, 자신은 매일 그곳에서 낮잠이나 자며 구름 속처럼 모호하게 자기 자신을 속이고 실제적인 일은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사장이라면 부하 직원에게 일을 맡길 때 반드시 구체적으로 맡겨야 합니다.
예를 들어 부하 직원에게 집을 하나 지으라고 하면서 어떤 집을 지을지, 얼마나 큰 집을 지을지 말하지 않았다고 합시다. 그가 묻습니다. “얼마나 크고 몇 층인 집을 지을까요?” 여러분은 “아무렇게나 하세요!”라고 말합니다. 내부 장식은 어떻게 할지 묻자 “아무렇게나 하세요!”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다음 날 부하 직원이 집 하나를 사장 책상 위에 가져다 놓았습니다. 보니 죽은 사람을 위해 태우는 종이집이었습니다. 사장은 화가 나서 정신을 잃을 지경이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맡긴 일이 구체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칠 때도 반드시 구체적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저는 일을 맡길 때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는 것을 가장 싫어합니다. 구체적인 것은 관리하고 업무를 배정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속성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맡기신 일은 매우 구체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맡기신 것은 즉흥적으로 정하신 것이 절대 아닙니다. 매우 상세하게 설계하셨고 치수까지 모두 말씀하셨으며, 매우 구체적으로 정의하셨습니다. 어떤 모습인지, 어떻게 만들지, 어떤 재료를 쓸지 모두 분명했습니다.
정교한 것은 하나님의 속성이다
교회를 건축하고 일을 구체적으로 하면 교회는 정교해집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어떻게 세울지 세심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우리는 아직 하나님께 많은 빚을 지고 있으며, 하지 못한 일이 매우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는 무엇을 합니까? 성탄절 공연을 준비합니다. 그런데 준비한 공연이 매우 조잡합니다. 동계올림픽의 공연을 보십시오. 얼마나 정교합니까! 교회에서 준비하는 공연은 볼 수조차 없고 사람만 몹시 지치게 합니다. 무엇을 하는지 말하기도 전에, 자신이 하는 일조차 정교하게 하지 못합니다. 어린아이가 소꿉놀이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재능도 없으면서 매일 그 일을 벌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라고 하신 일이 아니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일이라 해도 이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목양 사역은 매우 구체적이어야 하며, 우리는 형제자매들을 일을 정교하게 하는 사람으로 빚어 가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사역에 대해 여전히 매우 만족하지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정교함이라는 목표에 훨씬 미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왜 자주 여러분에게 일의 양을 늘리라고 격려합니까? 일의 양을 늘리는 것은 정교하게 완성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논리입니다. 정교함은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교회는 그곳에서 대충 거칠게, 아무렇게나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아직 부족하고 갈 길이 멉니다. 그러나 다른 많은 사람들과 비교하면 우리는 훨씬 정교합니다. 목양은 매우 깊은 학문입니다. 사람의 나쁜 습관을 다루고 사람의 육체를 다루는 것은 매우 깊고 깊은 학문입니다. 계속 깊이 파고들면 그 업무량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어떤 아이가 공부를 잘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우리의 사역입니까? 그렇습니다! 공부를 잘하지 못한다면 반드시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반드시 그 사람에게 나쁜 습관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아이를 사람으로 빚어야지 개로 빚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사람을 하나님과 같은 사람으로, 예수님과 같은 사람으로 빚는 곳입니다. 예수님은 얼마나 정교한 분이십니까.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또한 매우 놀라웠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눈먼 사람과 다리 저는 사람까지 치유받았습니다. 눈과 다리가 얼마나 정교합니까? 제가 기도해서 생선 가시가 사라진 것은 예수님과 비교하면 훨씬 부족합니다! 우리는 아직 목표를 훨씬 이루지 못했습니다. 해야 할 일이 매우 많습니다. 바로 형제자매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가진 사람으로 빚는 일입니다. 제가 왜 이 일을 합니까? 하나님의 구속 계획이 매우 정교하기 때문입니다.
신약에 대해 먼저 조금 말하고 다른 내용은 나중에 말하겠습니다. 구약은 신약의 그림자입니다. 구약의 성막도 이처럼 정교했는데, 오늘날 우리가 교회를 세우면서 정교함과 탁월함을 추구하는 태도를 가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이 말은 저 자신과 우리 가운데 목회자로 섬기는 분들에게 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거칠고 조잡한 일들을 개선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전의 엉망진창인 모습에 비하면 훨씬 나아졌지만, 하나님의 설계와 하나님의 뜻에는 아직도 훨씬 미치지 못합니다. 우리 안의 것들을 다시 정돈하고, 다시 한 번 힘써 추구합시다! 여러분 모두 깊이 생각하는 법을 배우기를 권합니다.
여러분에게 한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교회 안에서 암이 발생하는 비율이 교회 밖보다 높습니다. 교회 안에서 발병률이 가장 높은 사람은 누구입니까? 바로 목회자들입니다. 저는 제 주변 사람들의 통계를 본 적이 있고, 동시에 주변 사람들을 대상으로 통계도 내 보았습니다. 이것은 무슨 이유 때문입니까?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르는 곳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한다면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건축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건축하지 않는다면, 괜히 일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결론
여러분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복과 저주는 그리스도인에게 하시는 말씀이지, 주님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 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매우 혼란스러워합니다. 주님을 믿은 뒤 자신의 상태가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나빠졌다는 것입니다. 그런 일은 정상적인 일입니다. 지금 저에게 아무리 큰 용기를 주더라도 저는 구체적이지 않거나 정교하지 않게 할 수 없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실행할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가야 합니다.
26장에 이르러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 번 산에서 지시하신 모양대로 성막을 세우라고 강조하십니다.
산에서 네게 보인 양식대로 성막을 세울지니라 너는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짜서 만든 휘장 열 폭을 만들고 그 위에 그룹들을 정교하게 수놓아서 만들지니라 휘장 다섯 폭을 서로 연결하며 다른 다섯 폭도 서로 연결하고 휘장 다섯 폭의 끝에 청색 고를 만들며 다른 연결된 휘장 다섯 폭의 끝에도 그와 같이 할지며 금 갈고리 오십 개를 만들고 그 갈고리로 휘장을 서로 연결하게 하여 한 성막을 이룰지며 너는 성막을 위하여 막 곧 성막을 덮는 막을 만들되 가늘게 꼰 베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로 그룹을 정교하게 수놓은 열한 폭을 만들지며 그 휘장 다섯 폭을 서로 연결하고 또 여섯 폭을 서로 연결하고 그 여섯째 폭 절반은 성막 앞에 접어 드리우며 금 갈고리 오십 개를 만들고 그 갈고리로 휘장을 연결하여 한 막이 되게 할지며 그 막 곧 휘장의 나머지 반 폭은 성막 뒤에 늘어뜨리고 막 곧 휘장의 길이의 한 자를 양쪽에 남겨 성막 좌우에 덮어 늘어뜨리고 성막 위에 덮은 막의 나머지 곧 그 막의 반 폭은 성막 뒤에 늘어뜨릴지며 성막을 덮는 막을 위하여 붉은 물들인 숫양의 가죽으로 막을 만들고 그 위에 해달의 가죽으로 덮개를 만들지니라 너는 성막을 위하여 널판을 만들되 조각목으로 만들지며 각 판의 길이는 열 규빗, 너비는 한 규빗 반으로 하고 각 판에 두 촉씩 내어 서로 연결하게 하되 성막의 모든 판에 그와 같이 할지며 성막을 위하여 널판을 만들되 남쪽을 위하여 널판 스무 개를 만들고 그 스무 개 널판 밑에 은 받침 마흔 개를 만들되 이 널판 밑에 은 받침 두 개씩으로 그 두 촉을 받치게 할지며 성막의 다른 쪽 곧 북쪽을 위하여도 널판 스무 개를 만들고 은 받침 마흔 개를 만들되 각 널판 밑에 은 받침 두 개씩이 있게 하며 성막 뒤 곧 서쪽을 위하여는 널판 여섯 개를 만들고 성막 뒤 두 모퉁이 편을 위하여는 널판 두 개를 만들되 아래에서부터 위까지 각기 두 겹으로 하여 한 고리에 연결하게 하고 두 모퉁이 편을 다 그리하며 그 여덟 널판에는 은 받침 열여섯 개를 만들되 각 널판 밑에 은 받침 두 개씩으로 할지며 너는 조각목으로 성막을 위하여 띠를 만들되 성막 이쪽 널판을 위하여 다섯 개, 성막 저쪽 널판을 위하여 다섯 개, 성막 뒤 곧 서쪽 널판을 위하여 다섯 개이며 널판 가운데에 있는 중간 띠는 이 끝에서 저 끝에 미치게 하고 그 널판들을 금으로 싸고 그 널판의 띠를 꿸 금 고리를 만들고 그 띠도 금으로 싸라 산에서 네게 보인 양식대로 성막을 세울지니라 너는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짜서 만든 휘장 열 폭을 만들고 그 위에 그룹들을 정교하게 수놓아서 만들지니라 휘장 다섯 폭을 서로 연결하며 다른 다섯 폭도 서로 연결하고 휘장 다섯 폭의 끝에 청색 고를 만들며 다른 연결된 휘장 다섯 폭의 끝에도 그와 같이 할지며 금 갈고리 오십 개를 만들고 그 갈고리로 휘장을 서로 연결하게 하여 한 성막을 이룰지며 (《출애굽기》 26:30-32)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모양대로 하나님의 성전을 만들어야 합니다. 여러분과 저는 그 청색, 자색, 홍색 실일 수도 있고, 그 휘장일 수도 있으며, 그 금 갈고리일 수도 있고, 여러 가지 재료 중 하나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형제자매가 바로 이 성전의 재료입니다. 형제자매들을 정교한 사람으로 빚는 것이 교회의 사역이며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너무 심각하다는 것을 아십니까? 저는 많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반드시 잘 실행해야 한다고 계속 강조합니다. 어떤 사람이 암에 걸리지 않았고 교회에서도 잘 지내고 있다면 저는 감히 아무 말도 하지 못합니다. 말하고 나면 그 사람이 여러분과 맞서 논쟁할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교회가 돈을 거두는 곳이 아니라 축복을 나누어 주는 곳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는 돈이 부족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공급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어떻게 공급하십니까?”라고 묻는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공급하시는 방법은 여러분의 상상을 초월한다고 대답하겠습니다. 의심이 있다면 시험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자신을 공급하실 것을 모른다면 헌금하지 않아도 됩니다. 어떤 형제자매들에게 생계를 유지할 능력을 가르쳐야 합니까? 반드시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는 아직도 이 방향을 향해 필사적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원을 공급하셔서, 우리의 모든 지도자가 사람을 훈련하는 사람이 되게 하시기를 필요로 합니다.
어떤 자매가 일자리를 구했지만 수습 기간을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지난 여러 해 동안 너무 혼란스러운 상태에 있었고, 책을 읽을 줄도 공부할 줄도 몰랐습니다. 이 모든 것은 훈련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수많은 형제자매를 일으키실 것입니다. 과거에는 공부할 줄 몰랐던 사람들이 이제는 공부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과거에는 핵심을 붙잡지 못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핵심을 붙잡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과거에는 정교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정교해지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과거에는 구체적이지 못했던 사람들이 오늘은 구체적으로 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설계이며, 교회의 사역입니다.
저는 때때로 우리가 많은 기업을 위해 인적 자원에 관한 사상 교육을 해 준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우리 가운데 온 뒤 직장에서 선악을 분별하는 일, 인간관계의 문제, 혼란스러운 문제 등을 우리가 모두 바로잡아 주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직장으로 돌아가면 사장도 좋아하고 동료도 좋아합니다. 관계도 좋아지고,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으며, 묵묵히 열심히 일하고, 점점 더 지혜로워집니다.
우리는 사람을 문제를 일으키고 불공평한 일을 보면 나서며 정의를 주장하는 사람으로 훈련하지 않습니다. 저는 여러분을 매일 민원을 제기하며 한 번 민원을 제기하면 20년 동안 계속하는 사람으로 만들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것이 무슨 일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공의이심을 믿습니다. 우리는 사람 안에 있는 나쁜 습관을 다루고, 여러분을 정교한 사람, 성전을 건축하는 재료, 귀하고 정교한 재료가 되도록 길러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건축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반드시 우리 가운데 충만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