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1.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여러분과 나눌 말씀의 제목은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것》입니다. 사실 이 말씀은 제가 자주 전하던 말씀입니다. 얼마나 많이 전했는지 가끔은 제가 몇 번이나 전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아십니까? 저는 도대체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했다는 것이 무엇인지 오랫동안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항상 ‘이것들이 도대체 무엇일까?’ 생각했습니다. 저는 한 사람이 회사를 설립하고 아주 큰 기업을 경영하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아, 하나님 감사합니다!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 생각지도 못했던 일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후에 저는 생각했습니다. ‘소경이 눈을 뜨고 절름발이가 걷는 것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귀로도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귀머거리가 듣고 벙어리가 말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는가? 볼 수 있다. 들을 수 있는가? 들을 수 있다. 마음으로 생각해 보았는가? 이미 다 생각해 본 것들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래서 오늘 저는 저의 최근 깨달음을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어떤 일이든 깊이 파고들어 생각하기를 좋아합니다. 한번은 옛 동창을 만났는데, 그 친구가 재미있다는 듯이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어릴 때부터 깊이 파고들기를 좋아하더니, 지금도 여전히 그러는구나.” 그렇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저는 끊임없이 깊이 묵상합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고린도전서 2:9)
보통 사람들은 그냥 읽고 지나칩니다. ‘이런 걸 굳이 깊이 파고들 필요가 있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참 별난 사람일까요? 저는 깊이 파고드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리저리 깊이 묵상하다가 마침내 명확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제가 무엇을 깨달았는지 여러분께 설명해 드리고자 합니다. 여러분께 말씀드리건대, 사람이 영적 세계를 알지 못하고 영적 세계에 대해 무지하면 정말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됩니다. 그야말로 막대한 손해입니다! 영적 세계는 모두 눈으로 볼 수 없고, 귀로 들을 수 없으며, 마음으로 다 헤아릴 수 없는 것들입니다. 영적 세계와 영적 지혜, 영적 총명, 영적 법칙은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가 늘 여러분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권면하는 것은, 하나님께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가장 지혜로운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영계의 일은 정말로 신기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저의 101 과정을 들으셨다면, 첫 번째 강의가 무엇인지 반드시 아실 것입니다. 바로 《영계는 실재한다》입니다. 영계는 매우 실재합니다. 그렇다면 이 영계가 눈에 보입니까? 보이지 않습니다. 금과 은은 눈에 보이지만 영계의 일은 보입니까?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제가 여러분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권면하는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 예비하신 것은 전부 영적 세계에 속한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은 정말 어마어마합니다! 왜일까요? 화인 사명 신학(华人命定神学)의 가장 위대한 발견은 바로 ‘영계의 일이 인간이 이 세상에서 겪는 모든 일을 통제하고 주관한다’는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꼭 기억하십시오. 영계의 일이 인간이 이 세상에서 겪는 일을 주관합니다! 여러분에게 자꾸 불운한 일이 생긴다면, 그것이 무슨 일인지 아십니까? 영계의 일입니다. 공부를 잘하지 못한다면 그것도 영계의 일입니다.
오늘 제가 기도를 인도할 때, 생후 한두 달쯤 된 신생아가 설사를 한다는 나눔이 있었습니다. 우유를 먹고 있었습니다. 우리 인간의 논리대로라면 ‘우유 알레르기 때문인가 보다’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이전에는 괜찮았는데 왜 지금 문제가 생겼을까?’ 이전에는 괜찮았다가 문제가 생기는 일이 어디 한둘입니까?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건대, 그것은 영계의 일입니다.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사람의 몸에서 난 자녀나 가축의 새끼나 모두 영적 세계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자녀가 겪는 일은 사실 부모의 영적 상태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입니다. 부모의 영적 상태가 바로 자녀가 겪는 문제들의 명확한 투영입니다.
사람들은 참으로 어리석어서 이를 알지 못합니다. 자주 아픈 것, 그것은 영적인 일이며 영계의 일입니다. 몹시 가난하다면 그것도 영계의 일입니다. 들으셨습니까?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모두 영적인 일입니다. 눈으로 볼 수 있고 귀로 들을 수 있고 마음에 떠올릴 수 있는 모든 일은 다 영적인 일이지만, 영적 세계 자체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가 우리가 이 세상에서 겪는 모든 일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매우 영적인 일이며, 살리는 것은 영입니다! 영계의 일이 우리가 보는 일들을 통제합니다.
얼마 전 우리 가운데 한 자매가 있었습니다. 그녀의 남동생 부부는 돈을 아주 잘 벌었습니다. 엄청나게 잘 벌었습니다. 사람들이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땠는지 아십니까? 속으로 ‘와, 저 부부는 정말 대단하다. 돈도 잘 벌고 집안도 부유하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십니까? 이 자매 역시 평소에 하나님을 별로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온종일 이것 부러워하고 저것 부러워하며 남동생만 부러워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여러분, 사람은 앞으로 자신에게 무슨 일이 닥칠지 알지 못합니다. 어제까지 열심히 돈을 벌고 큰 계약을 체결했을지라도 오늘은 어찌 될지 모릅니다.
바로 며칠 전, 그 남동생이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정말 끔찍했습니다! 뇌수가 터져 나오고 팔다리가 다 부러졌지만 겨우 숨만 붙어 있는 상태였습니다. 세상에! 이 교통사고라는 것은 영계와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교통사고를 주관하는 자가 누구일까요?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이 문제를 깊이 연구했기 때문입니다. ‘라마(老马, 세상과 맘몬의 영)’가 교통사고를 주관합니다. 이 라마는 참으로 악합니다. 제가 귀신을 쫓아내다 보면 금방 라마를 마주치게 됩니다. 세상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배후에 바로 이 라마가 있습니다. 녀석은 할 일이 없으면 저와 잡담을 나누고 실실 웃기도 하지만, 지금은 상대하기도 귀찮습니다. 녀석이 하는 짓이 하찮기 짝이 없기 때문입니다.
녀석이 어떻게 일하는지 아십니까? 녀석은 “누구누구 교통사고 난 거 알지? 그거 내가 한 짓이야”라고 말합니다. 녀석이 한 것입니다. 라마가 입김을 한번 훅 불면 그 사람은 교통사고를 당합니다. 이런 일이 정말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두고 그저 ‘우연한 사고’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우연이란 전혀 없으며, 모두 라마의 통제 아래 일어난 일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일들은 모두 눈으로 볼 수 있고 귀로 들을 수 있으며 마음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지만, 영적인 일은 모두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며 마음으로 생각하지 못한 것들입니다.
비유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제 손에 레이저 포인터가 있다고 합시다. 벽에 촥 비추면 벽에 빨간 점 하나가 나타나지요? 분명히 점이 생깁니다. 제가 손을 떼면 그 점은 사라지고, 다시 누르면 점이 나타납니다. 제가 손을 살짝만 흔들어도 벽에 있는 그 점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움직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그 점을 잡으려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어디 한번 잡아보십시오. 어쩌다 잡힐 때도 있고 못 잡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제가 손을 흔들면 마치 고양이나 원숭이를 놀리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들은 사실 이런 영계의 존재들에게 농락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잡으려는 것은 그림자에 불과한데 어디 가서 잡겠습니까? 도저히 잡을 수 없습니다. 어쩌다 잡힌 것은 여러분이 잡은 것이 아니라 제가 잡히도록 내버려 둔 것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절대로 잡을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은 영계의 것들에게 농락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온갖 혼란과 미혹에 빠집니다! 모두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들만 붙잡으려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제가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영계의 일을 구하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을 썼습니까? 솔직히 말해 보십시오. 영계의 일을 구하는 데 시간을 얼마나 씁니까? 아주 적습니다. 영계의 일을 구하려면 반드시 하나님 사랑하기를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이 길을 끝까지 갈 수 없습니다. 사람은 참 그렇습니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참으로 신기한 단어입니다. 예를 들어, 사람이 자기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참된 사랑입니다. 조금의 거짓도 없는 진짜 사랑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합니다. 어떤 이들은 남녀 간의 애틋한 사랑 속에 살아가며 그것을 너무나 실재적으로 느끼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에 훨씬 미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사람의 삶은 미혹으로 가득 차 있고,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은 눈으로 볼 수 있고 귀로 들을 수 있고 마음에 떠올릴 수 있는 것들이지만, 결국 걷다 보면 비극으로 끝나고 맙니다. 사람의 일생은 온통 비극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사랑하기를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 생각지도 못한 것들이니, 곧 영적 세계를 알고, 영적 지혜를 소유하며, 영적 권세를 얻어 만사를 통달하고, 이 세상의 모든 통치자들과 권세자들을 훨씬 뛰어넘는 것입니다! 알아들으셨습니까? 즉, 오늘 우리 형제자매들은 온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성경은 무엇이라 말씀합니까? 가장 큰 계명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행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릴 각오가 되어 있습니까? 여전히 좀 어렵게 느껴지십니까? 참 어렵지요? 저도 여러분을 이해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진정으로 버릴 수 있다면 오히려 얻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어떤 이들은 화인 사명 신학에 와서 매일 “하나님을 사랑하라, 사랑하라, 사랑하라!”는 설교를 듣지만, 영적인 일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합니다. 이것이 보배인 줄도 모르고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않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어떤 사람은 제게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별거 아니에요. 교회를 떠나면 떠나는 거죠. 나중에 돌아오고 싶을 때 101 과정을 다시 공부하면 되잖아요.” 제가 말했습니다. “당신은 이미 101 과정을 몇 번이나 들었습니다. 다시 듣는다고 제가 당신을 다시 받아줄 것 같습니까?” 돌아오고 싶으면 그저 101 과정을 한 번 더 읽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이 101 과정의 문제입니까? 101 과정을 한 번 더 한다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까? 그렇게 대충 적당히 때울 수 있습니까? 화인 사명 신학에 들어왔다 나갔다, 다시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하면 문제가 해결될 줄 압니까? 전혀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저주받을 일입니다!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가능하다면 이런 불운하고 저주 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멀리하십시오. 재수 없는 사람은 멀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불운이 여러분에게 옮겨붙을 수 있습니다. 들으셨습니까? 그 몸에 귀신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아 불러들인 귀신은 셀 수도 없이 많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것이 핵심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습니다! 어떤 이들은 “아닌데요, 전 지금 아주 잘 지내고 있는데요?”라고 합니다. 제가 말합니다. “뭐가 잘 지낸다는 겁니까? 어디 두고 보십시오!”
어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 좇고, 어떤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것을 추구합니다. 저도 참 신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바로 사람의 운명입니다. 어떤 이는 불운할 운명이고, 저는 복을 받을 운명입니다. 제가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저의 인식 속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는 조건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을 사랑할 시간은 언제나 있습니다. 왜일까요? 이것이 제가 선택한 가장 좋은 몫(은혜)인데 어떻게 시간이 없을 수가 있겠습니까? 장사로 비유하자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장사보다 더 수지맞는 장사는 없습니다. 돈을 버는 것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같을 수 있겠습니까? 전혀 다릅니다. 영계의 존재들이 모든 사람의 인생을 연출하고 있지만,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기로 선택하면 끝납니다! 영계의 문제들이 다 해결됩니다. 오늘 하루뿐 아니라 평생토록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더 많이 쌓으십시오.
어떤 사람들은 참 이상합니다. 제가 목양을 하려고 하면 슬금슬금 피하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립니다. 결국 저로 하여금 모진 말을 하게 만듭니다. 제가 말합니다. “당신이 이전에 받은 은혜는 다 받았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군요. 당신은 차라리 세상을 사랑할 자격이나 먼저 갖추도록 자신을 훈련하십시오.” 그가 말합니다. “목사님, 어쩌면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세상을 사랑할 자격을 갖춘 후에 세상을 사랑하지 않기로 선택해야 그것이 진짜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며, 하나님을 사랑할 자격조차 없는 상태에서도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어야 그것이 진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사람이 무언가를 사랑하면, 예컨대 마작을 사랑하는 사람은 24시간 내내 마작을 쳐도 끄떡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마작을 치다가 마작대 위에서 죽기도 하지만, 그래도 마작을 칩니다. 마작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지만 저는 마작을 사랑하듯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정말 보기 드뭅니다. 그래서 저는 참으로 탄식하게 됩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은 언제쯤 하나님을 위해 기꺼이 내려놓을 수 있을까요? 언제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자신의 것들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요? 생각해 보십시오. 마작을 치는 사람도 마작을 치기 위해 수많은 것들을 내려놓고 마작을 합니다.
오늘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에 대해, 여러분도 알다시피 저는 지칠 줄 모르고 섬깁니다. 저는 진정으로 이 일을 자랑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지혜입니다! 제가 동정표를 얻으려고 이러는 줄 생각하지 마십시오. 아닙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지혜인지 모릅니다! 지칠 줄 모르고 섬기는 것, 제가 다른 사람을 섬기고 있는 중이 아니라면, 보통 저에게 걸려 오는 전화, 특히 제가 목양하는 사람들의 전화는 거의 다 받습니다. 여러분이 확인해 보셔도 좋습니다. 그것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저는 제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저는 일하는 것을 좋아하고 섬기는 것을 좋아하며, 다른 취미는 별로 없습니다. 먹고 마시고 노는 것은 일절 가까이하지 않으며, 오직 하나의 취미만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후에 저는 이 영적 세계에서 아주 큰 은혜를 얻었음을 깨달았습니다. 바로 영계의 법칙을 알게 된 것입니다. 영계의 법칙을 깨닫기 시작했을 때, 지난 10여 년간 저는 문득 형제자매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아, 제가 영적인 최고봉에 오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영적 정상에 올라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들어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여호와의 산에 오르고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들어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일주일이 지나면 저는 성도들에게 “아직 아닌 것 같습니다. 또 아닙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저는 다시 여호와의 산에 오르고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들어간 줄 알았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저를 보며 ‘며칠 뒤면 또 아니라고 하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예상이 맞았습니다. 아니었습니다, 정말 아니었습니다. 시간이 좀 더 흐른 뒤에 보니, 저는 여전히 산기슭에서 기어오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전히 산 밑바닥에 있었기에 저는 계속해서 위로 기어올라갔습니다.
후에 깨달은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 생각지도 못한 것’은 단번에 끝나버리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새롭게 끊임없이 알아가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마침내 저는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여러분, 아십니까? 저는 예수님을 믿자마자 ‘게임 끝(Game Over)’이라고 생각하는 일부 그리스도인들과 다릅니다. 저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마치 초등학생이 겨우 ‘1+1=2’를 배우고는 “와, 나 이제 1+1=2 알아!”라며 대단한 일이나 한 것처럼 손가락 하나를 펴서 “이건 일”, 또 하나를 펴서 “이건 이” 하며 몹시 기뻐 어쩔 줄 몰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스무 살이 되어서도 손가락을 꼽고 있고, 서른 살이 되어서도 여전히 손가락을 꼽고 있다면 얼마나 바보 같습니까? 그것이 말이 됩니까? 안 됩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이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막 믿기 시작했을 때의 상태에 머물러 20대, 30대가 되어서도 여전히 손가락 두 개만 알고 세 번째 손가락을 펴면 셀 줄도 모릅니다.
물리학이든 수학이든 화학이든 생물학이든, 혹은 IT 소프트웨어나 하드웨어든, 모든 분야의 깊이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깊습니다! 끝없이 배워도 다 알 수 없습니다. 그 전체 산업 체계에서 아주 작은 부분 하나만 제대로 붙잡아도 엄청난 전문가가 됩니다. 그렇다면 영적 세계는 얼마나 더 깊겠습니까? 우리는 결코 그리스도 도의 초보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힘써 벗어나 완전한 데로 나아가며 하나님을 더욱더 깊이 알아가야 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끄시기를 원합니다. 재앙이 닥친 후에야 비로소 하나님을 사랑하겠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귀신을 불러들이는 일은 너무나 많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은 솔직히 많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잘 살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뿐입니다. 귀신을 부르는 일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외의 모든 것입니다. 사역을 하면서 저는 사람들의 내면에 뿌리박힌 문제가 얼마나 깊은지 보게 됩니다. 좋습니다, 이제 오늘의 본문을 보겠습니다. 고린도전서 2장 9절입니다. 고린도전서라고 하면 여러분은 제가 또 누구 이야기를 할지 짐작하시겠지만, 실망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베드로 이야기는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만 말씀드리겠습니다.
2. 본문 말씀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고린도전서 2:9)
3. 기도
하나님,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심히 풍성한 은혜를 예비하셨음을 압니다. 하나님, 주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것은 모두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한 것들임을 압니다. 하나님, 오늘 주의 성령으로 우리를 이끄사 우리가 주를 굳게 따르며 끊임없이 주님을 알아가게 하옵소서. 우리가 더욱더 주님을 얻고 더욱더 주님을 갈망하게 하사, 영적 지혜와 영적 능력과 영적 지식 안에서 주님을 더욱 깊이 알게 하옵소서. 하나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이 사망의 몸에서 우리를 건져내어 주시고, 더 이상 육신의 정욕을 따라 행하지 않고 오직 주의 뜻을 따라 행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4. 본문의 배경
이 본문의 배경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고린도전서 2장은 다들 꼼꼼히 읽으셔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전체의 핵심과 뒤에서 논술하는 세부 사항들의 요점이 바로 2장에 있기 때문입니다. 2장에는 제가 특히 좋아하는 구절들이 있습니다.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고린도전서 2:4-5)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고린도전서 2:13-15)
오늘 여러분은 세상의 많은 일들을 통달하고 꿰뚫어 보고 계십니까? 꿰뚫어 보지 못했다면 여러분은 여전히 인간 삶의 미혹 속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꿰뚫어 보셨습니까? 통달했다면 많은 일들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됩니다. 사람들은 사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일들에 얽매여 살아갑니다. 바울이 왜 이 글을 썼을까요? 고린도 교회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어와 분란을 일으키며, 성도들을 미혹하여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고 마음에 떠오르는 육적인 것들만 바라보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이 무엇이었을까요? 먹고 마시는 일이었습니다! 이 먹고 마시는 일이 어디서 시작되었습니까? 사도행전에 나오는 예루살렘 교회에서 온 것입니다.
물론 함께 먹고 마시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는 것은 좋습니다. 하지만 교회가 아예 식당이 되어버렸습니다. 교회가 식당을 차린 꼴이 되었습니다. 예배당이 아니라 식당이 되었으니 이 얼마나 큰 문제입니까! 당시 사람들은 이것이 참 좋다고 여겼고, 결국 이 풍조가 고린도 교회로까지 번졌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다 함께 모여 먹고 마시니 즐겁지 않겠습니까? 아주 즐겁습니다. 어찌 즐겁지 않겠습니까? 다 같이 먹고 마시면 당연히 즐겁지요. 그런데 이 일이 고린도 교회에 들어왔습니다. 이전에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이끌 때는 이런 것들이 없었는데, 나중에 사람들이 함께 먹고 마시며 너무나 좋다고 여겼습니다. 큰일이 난 것입니다!
우리가 성찬을 행할 때 쓰는 떡은 50원짜리 동전만 한 작은 조각입니다. 함께 모여 밥을 푸짐하게 먹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대단했습니다. 고기 샌드위치에, 떡을 솥뚜껑만 하게 크게 만들고 발효 빵 등 온갖 빵을 다 가져왔습니다. 성도들은 며칠 동안 밥도 제대로 안 먹고 성찬식만 기다렸습니다. 그 성찬식은 그야말로 산해진미 뷔페와 같았습니다. 그 결과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곳에 귀신이 들어왔습니다.
다들 사랑의 애찬이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었습니다. 먹고 마시는 것, 이것이 바로 고린도 교회가 관심을 두던 일이었습니다. 고작 이런 일에만 관심을 쏟으니 결과가 어찌 되었습니까? 바울이 그들에게 편지를 쓴 것입니다. 왜 썼을까요? 그곳에서 성찬을 행하며 자기의 죄를 먹고 마셨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를 자세히 읽어 보십시오. 자기의 죄를 먹고 마셨습니다! 그 결과 귀신이 들어왔습니다. 술도 통째로 들이부으며 마셔댔으니, 그 모임이 얼마나 떠들썩했겠습니까? 5천 명이 동시에 식사하는 거대한 프로젝트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고린도 교회는 모여서 무슨 이야기를 했습니까? 결혼 이야기, 누가 누구와 결혼하고 누가 누구에게 장가가는지 이야기했습니다. 게다가 그곳에는 은사들이 많아서 기도하면서 “너는 저 사람에게 시집가야 한다, 저 사람은 누구와 결혼해야 한다”라고 예언했습니다. 난리가 난 것입니다! 먹고 마시는 일, 결혼하는 일에만 치중하고,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 생각하지 못한 영적인 일에는 관심이 없으니,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마음이 거의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누가 그렇게 만들었을까요? 말하지 않아도 여러분이 아실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는 파당을 짓기 시작하여 ‘나는 바울파다, 나는 아볼로파다, 나는 베드로파다’ 하며 갈라졌습니다.
오늘날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안에서 이성 소개나 하고, 다단계 판매를 하고, 보험을 파는 등 온갖 잡다한 일들을 하거나, 아니면 모여서 먹기만 합니다. 교회 사진들을 보면 식탁에 음식이 가득 차려진 사진이 가장 많습니다. 사실 우리도 예전에는 그렇게 해봤습니다. 우리는 고린도 교회의 방식에서 빠져나왔고, 먹고 마시고 노는 것에서 걸어 나왔습니다. 먹고 마시고 노는 방식도 참 다양했습니다.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식사하고, 게임하고, 아이스브레이킹을 했습니다. 온통 노는 것뿐이었고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없었습니다. 그때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을 끌어모으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일 줄 알았는데, 결국 모인 것은 식충이들뿐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무엇이 있었습니까? 교회에 와서 인맥을 쌓고 일자리를 구하려 했습니다. 심지어 교회 안에서 수많은 음란한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교회 안에 음란한 일이 적을 것이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음란의 악령이 이끄는 것입니다. 예배 시간에 줄지어 앉아 있는데 멋진 남자가 미녀 옆에 앉습니다. 목사님이 “옆 사람을 돌아보며 ‘예수님이 당신을 사랑하시고 저도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인사하세요”라고 합니다. 둘의 눈이 맞아 불꽃이 튀고 사건이 터집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광장 댄스든, 교회든, 동호회든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은 잦은 접촉이 있으면 문제가 생깁니다. 음란한 일들이 생겨나고, 수시로 포옹하고 껴안다 보면 완전히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린 이 모든 일들이 고린도 교회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러면서도 영적 은사가 어떠니 저쩌니 자랑만 늘어놓고, 정작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고린도 성도들에게 고린도전서를 써서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맨 마지막 장 끝에서 서너 번째 구절에 무엇이라 기록되어 있습니까?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고린도전서 16:22)
들으셨습니까? 앞선 2장에는 무엇이라 기록되어 있습니까?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고린도전서 2:9)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우리는 반드시 영적인 일들을 사모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참으로 신기한 일입니다. 왜 신기할까요? 어떤 사람은 아무리 많은 은혜를 체험해도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어떤 사람은 별다른 체험이 없어도 하나님을 깊이 사랑합니다. 참으로 신비롭습니다. 지난 세월 동안 저는 이 일을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나중에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진정으로 택하심이며, 인간이 본질적으로 내리는 선택이자 사람의 운명(사명)이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운명이 있다면 그것은 실로 엄청난 일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위해 예비하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 생각지도 못한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 대해 거듭 이야기한 후 무엇을 말합니까? 아비와 어미의 마음을 품고 교회에서 목양하라는 것입니다. 알아들으셨습니까? 아비와 어미의 마음으로 목양하는 것,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 함께 밥이나 먹는 것으로 목양이 됩니까? 함께 술이나 마시는 것으로 목양이 됩니까? 건강보조식품을 소개하는 것이 목양입니까? 보험을 파는 것이 목양입니까? 만나기만 하면 건강식품, 화장품, 보험 따위를 소개하는데 어떻게 목양이 되겠습니까? 그런 짓은 영적 능력을 소멸시키고 영적 권세를 잃어버리게 하며, 귀신을 불러들이는 능력만 키워 교회에 온갖 문제를 일으킬 뿐입니다.
고린도 교회에는 병든 자가 아주 많았고 죽은 자도 있었습니다. 알아들으셨습니까? 성찬을 그런 식으로 먹고 지켰으니 어찌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결과 영적 권능을 다 잃어버려 아무런 문제도 해결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기도하면 병이 나았는데 이제는 기도해도 사람이 죽어 나갔습니다. 이전에는 기도하면 놀라운 반전이 일어났는데, 이제는 기도할수록 문제만 더 많아졌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 교회가 그릇된 길로 가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잃어버렸으니 목양이 목양다울 리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 전체를 통해 간절히 썼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고린도전서 4:15)
일만 스승은 있으되 아비의 마음을 가진 자는 많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갑니다! 알아들으셨습니까? 비록 우리가 ‘믿음으로 시작하여 믿음에 이른다’고 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다 헛것입니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고린도전서 13:13)
저는 우리 형제자매들이 가장 큰 계명이 바로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임을 알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계승한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 가르침입니다. 성도가 교회 안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영적인 능력이며, 사랑을 기초로 삼을 때 비로소 영적인 진리와 영적인 말씀, 영적인 권세가 임하여 만사를 통달하고 영적 세계를 알며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들으셨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다 끝장입니다. 은혜를 아무리 많이 받아도 소용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것 자체는 대단한 자랑거리가 아닙니다. 은혜를 주신 하나님이 위대하신 것이지, 여러분 자신이 대단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다시 한번 여러분을 권면합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여러분이 우리 교회에 온 지 몇 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저는 여러분의 목회자에게 통보할 것입니다. “더 이상 목양하지 말고 내보내십시오. 굳이 인사할 필요도 없이 어느 날 그냥 끊어버리면 됩니다.” 수년 동안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것은, 마치 거듭 밭을 갈고 물을 주고 거름을 주었으나 결국 가시와 엉겅퀴를 내는 땅과 같으니, 저주를 받아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지 않겠습니까? 마지막은 불사름입니다. 지혜로운 마음을 품을 수 없겠습니까? 지혜와 총명을 가지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인간의 가장 지혜로운 선택임을 깨달으십시오. 알아들으셨습니까?
환난 중에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았고, 절망 중에 그분을 의지했습니다. 이제 상황이 반전되었는데, 여러분은 그분을 더 깊이 알기를 원하십니까? 그분을 더욱 사모하고 더욱 사랑하기를 원하십니까?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지혜로운 사람인지 어리석은 사람인지를 가르는 기준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주 쉽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됩니다.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도 아주 쉽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로 선택하면 됩니다. 여러분은 분명 “목사님, 제가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까?”라고 물을 것입니다. 이토록 길게 말씀드렸는데도 아직 모르시겠습니까? 이것이 본문의 배경입니다. 이제 고린도전서의 주제를 아시겠습니까? 고린도전서의 주제는 바로 ‘사랑이 가장 크다’는 것입니다. 두 종류의 지혜가 있습니다. 하나는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고 귀에 들리는 것에만 주목하는 육적인 지혜이고, 다른 하나는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으며 마음으로 생각지도 못한 영적인 것에 주목하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5. 영적인 말로 영적인 일을 설명함
사람의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며 마음으로 생각하지 못한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영계의 일입니다. 영적인 말로 영적인 일을 설명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영적인 법칙을 알게 되면 놀라운 사람이 됩니다. 바로 지난주에 저는 한 자매를 사역했습니다. 이 자매는 어느 노인을 돌보는 일을 맡게 되었는데, 그 노인의 주거 환경이 썩 좋지 않았습니다. 머무는 곳이 좀 추웠는데, 비록 여름이었지만 밤에는 매우 쌀쌀했고 위생 상태도 별로였습니다. 게다가 그 노인은 매우 까다로운 성격이었고, 이 자매 역시 매우 까다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까다로운 두 사람이 만났으니 어떤 일이 벌어질지 짐작이 가시지요? 아니나 다를까, 이 자매가 감기에 걸려 온몸이 쑤시고 춥다가 덥다가 하며 밤새 끙끙 앓았습니다. 견디다 못해 저에게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어쩌다 감기에 걸렸습니까?” 보십시오, 저는 사람의 말을 유도해 내는 것을 잘합니다. 한마디만 들어도 바로 압니다. 자매가 말했습니다. “그 노인을 돌보는데, 잠을 자는 매트리스도 그렇고 날씨도 좀 춥고 해서 감기에 걸렸어요.” 여러분, 선악을 분별하는(판단하고 불평하는) 냄새가 나지 않습니까? 제가 말했습니다. “요셉은 두 손이 밧줄에 묶이고 낙타에 묶여 애굽까지 끌려갔습니다. 목이 말라도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계속 걸었으며, 비바람과 이슬을 맞으면서도 감기 한 번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남의 집 매트리스에서 하룻밤 잤다고 감기에 걸립니까? 이것이 전형적인 선악을 분별하는 죄입니다!”
기억하십시오. 감기에 걸리는 이유는 오직 하나, 귀신이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동의하지 않으셔도 상관없습니다. 질병에는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귀신이 들어온 것입니다. 아주 단순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귀신이 왜 들어왔을까요? 저는 그녀에게 트집을 잡고 불평하는 나쁜 습관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핑계를 대며 까다롭게 구는 것, 온통 그런 것뿐이었습니다. 들어보니 정말로 온갖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자매가 “저도 알아요”라고 하길래, 제가 “알면서도 그렇게 행동합니까?”라고 했습니다. 20~30분, 40분가량 기도해 주자 나았습니다. 치유되었지만 다음 날 자매는 문자로 가슴이 여전히 답답하고 기침할 때 통증이 있다고 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당신은 마음의 그릇을 넓혀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눈에 보이는 사소한 일들에만 얽매여 살고 있지 않습니까?
저는 고학력 지식인에 속합니다. 하지만 제가 생활하는 데 있어서 어디서 자든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저는 어떤 환경에서도 잘 잘 수 있고, 아무리 척박한 환경에서도 살아갈 수 있으며, 어떤 복도 누릴 수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여러분도 인정하셔야 합니다. 이것이 영적인 말로 영적인 일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영적인 세계를 볼 수 있습니까? 무엇을 보고 계십니까? 육신의 눈, 육신의 귀, 육신의 마음으로만 보니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그저 감기에 걸렸다, 온몸이 아프다, 병이 났다며 이런저런 핑계만 잔뜩 늘어놓습니다.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귀신이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말로 영적인 일을 설명하는 사례는 수없이 많습니다. 눈이 침침하면 “당뇨병 합병증 때문에 눈이 잘 안 보여요”라고 합니다. 어찌 그런 이유뿐이겠습니까? 그 사람에게 영적인 문제가 많았던 것입니다. 제가 사역해 주자 이제는 눈으로 글씨를 똑똑히 보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두꺼운 비닐막이 낀 것처럼 흐릿하게 아무것도 안 보였는데, 지금은 얇은 막만 남아 있고 조금만 더 대적하면 완전히 낫게 됩니다. 그 뿌리는 모두 까다롭게 굴며 흠잡는 태도에 있었습니다. 사람의 영적인 결점과 육체의 질병, 인간사의 문제들을 하나로 연결하여 영적인 말로 영적인 일을 설명하니 얼마나 명쾌합니까! 즉, 오늘날 우리는 영계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턱없이 부족합니다. 어쩌다 조금 깨닫고는 영적 정상에 오른 줄 착각하지만, 고개를 들어보면 가야 할 길이 까마득히 멀리 남아 있습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은 알아야 합니다. 영적인 일, 영적인 논리, 영적인 법칙, 영적 세계는 평생을 다하고 영원을 다해도 끝없이 탐구해야 할 만큼 방대합니다. 영적 세계는 물질세계보다 훨씬 더 크고 훨씬 더 복잡합니다. 예를 들어, 저는 영계의 귀신들을 쫓아내면서 제가 배운 지식들이 묘하게 쓰이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황제내경》 같은 고대 의서들도 사실 귀신이 사람의 몸에 거하는 법칙을 연구한 것이었습니다. 특정 혈자리 같은 것들이 참으로 신기하게 작용합니다. 어떤 귀신이 어디에 머물고 어떻게 역사하는지, 저는 아직 그 빙산의 일각만을 알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사람의 눈에 바르신 장면을 묵상해 보았습니다. ‘예수님, 굳이 이런 번거로운 일을 하실 필요가 있습니까? 사람들을 얼마나 혼란스럽게 만듭니까? 그냥 귀신을 쫓아내어 눈을 뜨게 하시는 것은 주님께 너무나 간단한 일인데, 왜 이런 방식을 쓰셨을까요?’ 그것은 겉치레가 아니라 영적 세계의 법칙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영계의 법칙들을 완벽하게 꿰뚫고 계셨습니다. 영적인 내막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저 겉모습만 구경하지만, 전문가는 그 이면의 도리를 봅니다. 깊이 묵상하고 연구하며 적용해 보니 마귀가 두려워하는 영적 원리들이 있었습니다. 어떤 귀신은 이것을 두려워하고, 어떤 귀신은 저것을 두려워합니다. 제가 그것을 영적으로 분별하여 적용했을 때 아주 강력한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영적인 말로 영적인 일을 설명하고 다루는 것입니다.
6. 영적 권세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향해 고린도전서를 쓸 때 자주 언급한 ‘권능과 권세’는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영적인 권능과 영적인 권세입니다. 바울의 신학에서 가장 많이 강조된 것이 영적 권능과 영적 권세였습니다. 귀신들은 바울을 두려워했습니다. 귀신이 바울을 속이려 할 때마다 바울의 영적 지각(총명)이 뛰어났기 때문에 결코 속아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저는 사도 바울을 깊이 존경합니다. 그는 영적인 지각에 있어서 막힘없이 완전히 통달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둠의 권세를 대적하여 이기려면 반드시 지각 안에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영적인 말로 영적인 일을 분별했다면 이제 영적인 권능이 필요합니다. 이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우리가 영적인 법칙과 영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권세를 취하여 권능으로 대적하면 원수는 즉시 패배합니다. 그러므로 라마와 같은 악령을 대적할 때는 온 동네가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며 위아래 층 주민들이 다 듣고 경비실에서 찾아오게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경비원이 찾아와도 귀신은 여전히 나가지 않는 그런 식으로 사역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웃지 마십시오. 실제로 경비원과 보안요원이 들이닥치는 일들이 있습니다.
제 말의 의미는 그렇게 소리만 지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목소리 크기 대결이 아니라 영적 지각의 깊이 대결입니다. 저는 지각 안에서 하나님을 구하는 사람입니다. 끊임없이 연구하고 추구합니다. 어떻게 해야 성도들로 하여금 영적 법칙을 깨닫게 할 수 있을까요? 지각을 사용하여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말씀을 철저히 삶에 적용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손에 하나님의 권세가 있는데 굳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를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어떤 목사님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집에서 오디오와 노래방 기기를 켜놓고 스피커 볼륨을 최대로 올린 채 귀신을 쫓았다고 합니다. 결국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문을 두드려도 열어주지 않자 통나무로 문을 부수고 들어왔는데, 그 와중에도 방 안에서 고함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 목사님이 “이렇게 크게 소리를 질러야 느낌이 온다”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크게 소리 지르면 감정적인 느낌이야 있겠지요. 싱가포르의 클락 키(Clarke Quay)라는 곳을 아십니까? 밤이 되면 그곳의 클럽마다 귀청이 떨어질 듯 음악을 틀어대고, 수많은 사람이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어댑니다. 귀신이 가장 좋아하는 장소입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영적 권능이란, 여러분이 이 권세를 가졌음을 지각 안에서 분명히 아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권능에 있습니다. 들으셨습니까? 오직 하나님의 권능에 있으므로 마귀 원수를 능히 제압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오늘날까지 100% 치유된다고 담대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물론 믿지 않는 사람은 얻지 못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저는 하나님께서 마귀 원수를 짓밟을 영적 권세를 제게 주셨음을 지각 안에서 명확히 알고 있으며, 아무리 어려운 문제라도 온전히 치유되는 역사를 봅니다.
어떤 사람들은 “백신 부작용 때문입니다”라고 말합니다. 부작용이든 무엇이든 하나님의 능력 앞에서는 상관없습니다. 모든 표적과 기사는 영적 권세와 직결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수많은 표적을 행하는 제가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선택임을 압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나를 위해 예비하신 이것들이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까? 귀로 들을 수 있는 것입니까?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까? 저조차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제가 어떻게 오늘날과 같은 사람으로 변화되었는지 놀라울 따름입니다. 세상의 논리로는 도저히 이런 사람이 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것이 얼마나 위대한 지혜요 총명인지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고백합니다. “하나님, 창세 전에 나를 택하사 주님을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영적 권능이 눈에 보이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7. 만사를 통달함
저는 만사를 꿰뚫어 보는(통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습니다. 여러 해 전부터 저는 생사를 초월하여 꿰뚫어 보아야 한다고 설교했습니다. 만사를 꿰뚫어 보지 못하면 삶이 얼마나 답답하고 괴롭습니까? 이 세상에서 여러분이 만사를 꿰뚫어 보되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않는다면, 천하 만민 위에 뛰어난 자가 되지 않겠습니까? 영적인 사람은 만사를 통달합니다. 왜 만사를 통달할까요? 영계의 비밀까지 깨달았는데 이 세상의 일을 꿰뚫어 보지 못하겠습니까? 세상의 모든 일은 영계의 일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 예비하신 것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께 권면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더 이상 세상을 사랑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방해가 되는 것들이 있다면 다 버리십시오. 이것저것 우리를 얽매는 것들을 과감히 떨쳐버리십시오. 만사를 꿰뚫어 보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능력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 주께서 예비하신 선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시작하여 끊임없이 주를 구하고, 더욱 주님을 사모하며 주를 얻고자 할 때, 하나님은 만사를 통달하는 지혜와 능력을 우리에게 부어주십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꿰뚫어 보게 된다면 참으로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결혼이라는 문제조차도 완전히 꿰뚫어 보았습니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교회가 결혼 세미나에 매달리고 있습니까? 가르치다 보면 결국 서로를 얽매는 속박으로 빠져듭니다. 서로를 얽어매면서 끝없이 사랑을 외치지만, 정작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없이 오직 배우자만 집착하듯 사랑하다가 얽매임 속에 빠져 고통당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업자득입니다. 영적으로 아무것도 꿰뚫어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세상의 본질을 몇 가지나 꿰뚫어 보고 있습니까? 보지 못합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하면 비판한다고 여길지 모르나, 저는 진실을 말할 뿐입니다.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육적인 것들만 좇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것만 붙잡아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 결과 영적인 소경, 영적인 귀머거리, 영적인 바보가 되고 맙니다. 영적인 바보가 어떻게 만사를 통달하겠습니까? 아무것도 분별하지 못한 채 혼란 속을 헤매다 멸망에 이를 뿐이며,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게 됩니다! 만사를 통달할 때 여러분은 영적 세계를 더욱더 깊이 알아가게 될 것입니다.
8. 결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의 신학이자 우리 화인 사명 신학의 본질이며, 핵심 중의 핵심입니다! 여러분이 “목사님, 저는 하나님을 별로 사랑하지 않는데요?”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교회를 잘못 찾아오신 것입니다. 가고 싶은 곳으로 가십시오. “저는 여기서 그저 은혜나 좀 받고 싶습니다”라고 한다면, 은혜를 받을 수 있을지 두고 보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에게는 저주가 임하는데 무슨 은혜를 받겠습니까? 그곳에는 저주가 임합니다! 어떤 이는 “목사님, 어찌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이 거룩한 곳에서 어떻게 저주를 받는다는 말입니까?”라고 묻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예비하신 것이 위대하듯,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들을 위해 예비하신 심판 또한 심히 엄중합니다. 그러므로 깊이 생각하고 명확히 깨달으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값없이 주신 은혜일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여러분의 선택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대가를 치르고자 하는 것은 여러분의 결단입니다. 여러분은 기꺼이 주를 위해 헌신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의 생명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시겠습니까? 제게 물으신다면, 저는 기꺼이 드리겠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10여 년 전, 제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던 때가 기억납니다. 당시 교회는 몹시 황폐했고, 저는 어느 수련회에 참석 중이었습니다. 쉬는 시간에 사람들과 잡담하는 대신 홀로 머물러 있었습니다. 저는 주님을 믿은 첫날부터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저의 유일한 선택임을 알았습니다. 바로 그때 주님께서 제게 물으셨습니다. “너는 나를 위하여 죽을 수 있겠느냐?” 저는 펑펑 울었습니다.
제가 대답했습니다. “하나님, 주께서 저 같은 자를 눈여겨보아 주시다니, 주를 위해서라면 당연히 죽을 수 있습니다. 저는 주님을 위해 이 세상에 왔으며,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저의 유일한 선택입니다.” 오늘날까지 저는 이러한 믿음의 간증을 전하고 있으며, 지금도 그 음성이 종종 제 귓가에 맴돕니다. 저는 진정으로 저의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많은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지만, 저는 하나님을 위해 저의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저를 헛되게 대우하지 않으셨습니다. 제가 모든 것을 버렸을 때 하나님은 저를 기억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늘 기도합니다. “하나님, 나를 기억하사 은혜를 베푸시고, 이 땅에 사는 날 동안 주의 마음에 합한 백성이 되게 하시며, 다윗왕을 본받아 주의 마음에 꼭 맞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오늘 저는 여러분을 격려합니다. 이것이 가장 지혜로운 선택이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것의 핵심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전편에 걸쳐 강조한 핵심 중의 핵심이 바로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절정에 달합니다. “내가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그것은 바로 사랑이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성도 여러분, 육신을 위하는 정욕적인 사랑을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착각하지 마십시오. 우리 교회에서 육신의 정욕을 철저히 쳐서 복종시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께 선포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비록 예화가 많지는 않았지만, 오늘 선포된 이 말씀은 참으로 견고하고 확실한 진리입니다. 어떻게 해야 여러분을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세워 주를 사랑하는 마음을 품게 할 수 있을까요? 돌아가셔서 고린도전서를 깊이 읽으십시오. 고린도전서는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을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이어서 헌금 드리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찬양 한 곡을 부르겠습니다. 이 곡은 우리 교회 성도들이 저를 위해 지어준 《주님을 더 얻기 원하네(更多得着你)》라는 찬양입니다. 헌금의 참된 의미를 깨닫지 못하신 분은 헌금하지 마십시오. 이곳에는 하나님이 계시며,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생명까지 기꺼이 주께 드린다면, 헌금하는 것을 가로막을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재물은 결코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우리의 중심이 가장 중요합니다. 기억하십시오. 교회는 결코 돈을 걷는 곳이 아니며, 하늘의 복을 나누어 주는 곳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 복된 길로 인도하여, 우리 형제자매들이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 생각지도 못한 것들을 얻게 하기를 원합니다. 영원 안에서 역대 모든 선지자가 그토록 사모했던 그 영광을 얻게 하기를 원합니다.
이 마지막 세대에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서신을 읽으며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결정적인 비밀인지 알게 하셨습니다. 지금 이 시간,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십시오. 그리고 주님께 고백하십시오. “주님은 내 삶의 유일한 열정이십니다. 더 이상 어떤 조건도 달지 않겠습니다. 그 무엇도 주를 향한 내 사랑을 가로막을 수 없습니다.” ‘만약 내가 독신이라면 하나님을 더 잘 섬겼을 텐데’라는 식의 조건을 붙이지 마십시오. 오늘 어떤 장애물과 형편 속에 있더라도 여전히 하나님을 사랑하기로 결단하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유일한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손을 들고 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오늘 내 자신을 온전히 주께 올려드립니다. 주님이 내 삶의 유일한 열정이심을 주님 앞에 선포합니다. 내 모든 감정과 중심을 주님께 쏟아부으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겠습니다. 하나님, 주께서 나를 위해 예비하신 모든 하늘의 신령한 것들을 내 삶에 부어주사, 영적 권능과 영적 지식과 영적 지혜를 얻게 하시고, 인생의 모든 본질을 꿰뚫어 보게 하옵소서. 내 삶을 온전히 드리며 전심으로 주를 좇아가겠습니다! 하나님, 저의 헌신을 기쁘게 받아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이것이 저의 중심의 고백입니다. 오직 주님을 더욱더 얻기 위하여 내 평생을 온전히 주께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