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Q1:老师,天的根基是什么?
天的根基是神。天是神的宝座,地是神的脚凳。你问天的根基是啥?天的根基是神。我这句话好像跟没回答你一样,其实我也不知道,因为咱也没去过那地方。但是凭着我这么一点点的知识,大概能知道神用祂全能的双手托着万有,包括天。
曾经有人给我出了一个难题,他说:神能不能造一个祂自己拿不起来的东西?哎呀,我说神能吧,但是祂拿不起来;我如果说,神不能造一个吧,祂也不能拿起来。他要证明啥呢?要证明神是不是全能的。我也想给神出这么一个难题,到底是神坐在天上还是天坐在神上?跟这问题也差不太多,真的回答不了。等有机会咱们到天上去问问神吧。
Q2:老师,大卫杀人流血,怎么还说自己是完全人呢?
我告诉你大卫可不是一般的悔改,大卫是认认真真的悔改,不像咱们搪塞一下就完了。大卫犯罪流人血,杀了乌利亚后他悔改了,我问你,神喜欢人灭亡吗?神不喜欢人灭亡,但神喜欢人悔改。听明白了吗?既然神喜欢人悔改,大卫悔改了,神都原谅了他,你怎么还不原谅呢?很多人都不原谅亚伯拉罕。有意思吧?人家撒拉都没在乎,你在乎啥呀?你看以撒都愿意献上自己,然后你替以撒打抱不平!还想着怎么把以撒给献上,不跟以撒商量商量呢?
我知道你不理解,不理解是啥?神原谅了人,有问题吗?如果神不原谅他,我们能得着什么呢?如果我们照着自己认为的,还以为这就是神的要求,今天你和我还能活着吗?如果照着我们那种理解你和我都活不了。但神竟然让我们仍然存留,好让我们有一个悔改认识神的机会。那什么叫做完全人呢?就是你对神的认识是完全的,不是你的行为是完全的。大家有疑问没关系,咱们可以继续讨论。
Q3:老师,什么样的基督徒是法利赛人和撒都该人,他们之间有什么不同?
有一种基督徒不相信灵界,就是撒都该人的基督徒,有一种人相信灵界,相信天使,相信神迹,那是法利赛人。
Q4:老师,人好不容易活一辈子还不信神,最后就进到地狱里受永火的刑罚,这是不是太惨了呢?
那你要觉得太惨了就别去啊,听明白了吗?但有的人就愿意去,你说哪一个骗到缅北的是被人拿绳绑去的?没有啊,都是他愿意去的。是不是?如果去了他还说那太惨啦!那不是他自己去的吗?他不信就得去呀,去了以后回不来了,还惨吗?我告诉你,这世上最惨的就是耶稣基督,什么伤天害理的事祂都没干过,就被人给钉在十字架上,惨不惨呢?那去了缅北的不是活该吗?我讲的这个太惨了,就觉得人很无奈,因为那都是神造的。
Q5:老师好!我常常很轻易就远离神也很苦恼,要怎么做呢?
为什么人要远离神呢?我告诉你,就是你认为有一些事比神更重要。一个人常常远离神,能得着什么好处呢?得不着什么好处!人如果不能醒悟过来,你说不是很悲剧吗?我鼓励你要把神当做宝贝。就是因为人不把神当做宝贝,所以常常远离神。如果家里有一些破瓶子破罐子的,你肯定往犄角旮旯一堆完事。是吧?
但是你家里头如果有一个价值连城的宝贝呢?到鉴宝师那去鉴宝,人家一看这是唐朝著名的竹雕家雕刻的,价值十亿!我问你会怎么着?那家伙得买个保险箱,当做宝贝收起来。是不是?肯定是,因为值钱嘛。但是人就不觉得神值钱,这是一个悲剧。
Q6:老师,我有一位基督徒朋友,经常听美国牧师的讲道内容, 他们主要是从科学的角度来认识神,也得了不少恩典,我需要跟他传福音吗?怎样传命定的福音才是神喜悦的呢?
其实不需要,做做见证就完了。这种叫做基督教科学,有一个叫做《基督教科学》的杂志,大家知道吗?不知道的就太好了,因为没受到过这些污染。他们主要是从科学的角度来看神。那你说有没有神的恩典呢?我告诉你,就是不信神的都有恩典。你说那些不信神的得着多少恩典呢?中国搞科研的人不信神还能造出原子弹呢,是吧?你不能说那不行啊。所以说像不像耶稣,一下子就把这事划清楚了。你整的那些东西像耶稣吗?不像。不像就算了吧,像这一类的东西能够讲个见证就讲,不讲就算了。听就听,不听就拉倒。
Q7:老师,神的道是“完全的”,大卫又说自己是“完全人”。这两者之间是同一个意思吗?
我得告诉你一个事,什么叫做完全人?就是义人。那义人是啥人?就是有信心的人。那义人信的是啥呢?义人信的是神的话。神的话是完全的,所以完全相信神的话的人,神就称他为义,他就是个完全人。听见没有?我想在《新约》里头也有完全人,就是完美的人。那这个完美不是照着行为,我们常常说完美就是行为。比如说:一看这个人脸上长了一个痦子,啊!这个不完美。至于他信不信神不知道。就说:老师,你看他脸上还有一个痦子,有一个麻子,还有包有坑的,凹凸不平的。我说:那没关系呀,只要用美颜相机一磨一照溜平的,看着还奶油奶油的。这是开玩笑!
Q8:老师,以前的教会说,我们最大的使命就是传福音,现在又想传华人命定神学,又感觉很多阻挡,我应该怎么做呢?
因为你传的是神学,我见到人都是讲故事、讲见证。我讲故事不冒犯人呐,我传教那是不行的。传教和讲故事那能是一样的吗?我讲的是我真的经历这些,我真的做了这些。没有人反对讲故事,但是人讲自己做的,讲见证,尤其是讲自己的经历都最好。然后人家信就信,不信就不信。别拉人入教,我非常反对拉人入教!对人说:来吧!来吧!好像是传销商似的。大家有没有发现传销商很喜欢拉人入传销啊?保险员很喜欢拉人入保险?就是这么个东西。
Q9:老师,我信主多年,为什么传福音没有一个人信,还是说得看神的拣选?
我给大家解释一下,我们一传就传了一个宗教,那不叫传福音。那真正要传啥呢?给人恩典。听明白了吗?有人说他腰痛,我就说:这事我会整。人家说:你会整啊?我说:那是,我整一个好一个。你要不要试试?人家说:要试试。我说:那你就跟着我祷告好不好?那有的人不像我这样,他会问人家说:你信不信?人家说:不信。那就拉倒,是不爱给人恩典。你传的是一个宗教不是释放一个恩典。人家得着恩典腰好了,肯定对我印象好,你信不信?但人家听你问信不信的时候能不闹心吗?太闹心了!咋的,你要道德绑架我呀?咱以后就别再这么做了!
我想这些事都是问题本身,这叫宗教味。耶稣基督不喜欢人拉人入教,听明白了吗?耶稣基督喜欢给人恩典,拣选门徒,人家愿意跟着就跟着,人不愿意跟着,耶稣说,你们也要离开吗?要离开赶紧滚,下面那句话是我说的,但大概的意思差不多。所以说跟家里人也好,外面人也好,别拉人入教,咱传的是一个生命之道,不是一个拉人入教的东西。所以咱传的是福音,不是传教,我不是宣教士,听明白了吗?
为什么信主这么多年传福音,没有一个人信,是不是神的拣选呢?你说这锅甩的,就不觉得是自己哪块没整对?是吧?是神的拣选吗?不是,是我们没整对。如果我们常常调整,这么整不对,那应该怎么整?所以记住,无论如何常常使人得着福音的好处。听明白了吗?不是教会需要人,也不是教会需要奉献,需要钱,教会需要给恩典,给人祝福,是吧?这一讲你看,我为了你的好处,你也为你自己的好处,那咱俩能不同心吗?是不是?咱俩能谈不来吗?肯定能谈得来,这回大家明白了吧?
Q10:老师,101课程中说只要信,恩典就得着了,您刚才又说不信的人也有恩典,请问怎么理解?
我相信第二天早晨太阳从东边出来,你不用相信,它肯定从东边出来。那太阳照歹人也照好人。歹人种地会长,好人种地可能还没那歹人种得好,这也是太诡异了吧,是不是?所以说,这个只要信,信是支取恩典的。那这个不信的人有的时候有,有的时候没有。为啥?比如说有的人种地,地长挺好啊,但得癌症以后就不好了。有的人在病痛当中一祷告好了,有的人他不相信就得不着啊,是不是?这回大家明白了吗?我们常常容易把东西搞得很混乱。
Q11:老师,听你讲得胜就是得救,但自己好多事又不能得胜,心里很纠结,该怎么办呢?
这个事好理解,大的得胜胜不了,小的得胜还是有的吧?人为什么心里很纠结呢?就是一下子不能够成为完全人。我最近讲了一个“一下子”的道,这个道的名字叫:“一下子“。有听过吧?一下子,其实一下子这种东西不是一个生命的东西。你会发现有一个词叫做有机体或者是叫做organism。你看一个机构,一个企业叫做organization,都是organic。那这个organic是啥呢?就是有机的东西,有生命的东西。
为什么叫企业?企业它是一群人在一起干一件事的时候,它是有生命的。有生命的东西都是一点点长起来的,是不是?比如说马云的十八罗汉,是吧?吭哧、吭哧、创建了一个现在应该有十几万甚至几十万员工的阿里帝国。马化腾建立的腾讯刚开始也就是小猫三两只,它也是一点点长起来的,听明白了吗?所有这些有生命的东西都是一点一点的长起来的。
如果你听《罗马书》你一定会听到本于信以至于信,或者叫始于信以至于信。信心像芥菜种子,芥菜种子它就会怎么样?就可以移山,因为那芥菜种子是个活的。它不大,但它是个活的。那大米粒,煮好的大碴子,那粒是挺大呀,可它却是个死的。
凡是有机的东西,有生命的东西都是一点一点长起来的。你的信心为什么会忽小忽大,它需要啥呢?就是要脚踏实地,持守我们所领受的就够了,然后继续探索,在你所站的台阶上再往前迈一个台阶。那这个台阶没必要有两米高,只要你一抬脚就能迈上去的一个十五公分的台阶就够了。如果你整了一个斜坡,那轮椅都能上去,是不是?但是如果你整了一个两米高的,那是一堵墙,不叫台阶。
因为我们太着急了,所以就闹心,就很纠结。一下子不完全,就算了吧,就闹心了,所以说小事上得胜很重要。有一个人服侍,说了一句很有意思的话,他是把我的话抄写过去了,抄完了以后那味道变重了。有一个姐妹她感冒了,他说:咋地?你感冒都没有信心好,你想等到得了癌症才操练信心?这味道就重了。我讲的明白了吗?
Q12:老师,我也很想把神当宝贝,但很容易被工作辖制,怎样才能越来越爱神?工作压力一大就难受,就想逃离这种环境,该如何调整呢?
这里头有一个很重要的观念就是,我们做事的时候缺少信心,人没有信心就很难成长。我给你举个例子,有一个同工常常以为我这个学霸就是信手拈来的,天生的。不管什么东西只要我一学习就一下子全会了的那种。在他的印象里头,老师太厉害了!做什么都是一下子。其实不是,我抄一本书是一个字一个字抄的,那是个性格,是个信心。我做一道数学题我做了两个月,还有一个工程师曾经帮助过我。他说,你也要做两个月啊?我说那你呢?他说:我连一个礼拜都没有,一天没做下来就算了。
我猜,像你这类的人常常都是处在这种状况里的,不想脚踏实地,就想一下子。所以我感谢神!这次你应该快得释放了。为啥呢?因为我们对人急于求成这种东西背后的鬼,有了一个很深刻的认识。急于求成,一急于求成就什么事也做不成,听明白了吗?不管在普通的员工、在一个很高职位的经理、甚至很高位分的老板身上都有这毛病。这种毛病就会导致问题一直不断地积累,什么问题也不解决。不解决旧问题,新问题就会不断的冒出来,然后问题堆问题,压力就会越来越大。
为啥呢?因为之前小的问题不解决就会变成大问题,大的就变成更大的,就越来越多问题。是什么原因造成的呢?就是不想脚踏实地,因为信心是在小的事情上操练的,小的事不想做,大的事做不来。这种坏习惯你说怎么整?你就很麻烦的。那你说,老师,你这么一说我更绝望了。你不需要绝望,因为你这么活已经活了这么多年了。你很需要改呀,再这么走下去会更糟。
如果说你很想改的话,在咱们当中不是一件很难的事,需要啥呢?需要重新回到像小孩子,不要在原来的根基上建造,彻底的拆毁重新建造,我告诉你如果再读小学六年所学的东西大概半个月,是吧?然后初中三年,还有好些东西咱也不用学,其实几下子就迈过去了。几下子就把事都清理干净了,清理干净工作压力不就不大了,是不是?清理了然后人就成长了,人信心也实在了,建造在一个信心的根基上,好吗?
Q13:老师,我传福音给他们讲灵界,告诉她们神是个灵,鬼也是个灵,也给他们讲我的见证,他们都信也接受耶稣为救主,可他们都没时间被牧养,我也不知道该怎么办?
不要着急,着什么急啊,是吧!他没遭够罪你着什么急啊?我这话有点损。其实我服侍人的时候,都是慢慢等机会,等啥机会呢?等他们遭够罪的机会,不遭够罪我开不了口。你看,我说,你咋不好好爱神?你才不好好爱神,你看这话。他说,我咋没好好爱神啦?我这不挺好嘛。
所以说大家要知道人一点一点的被神引导进神的家里,其实不是我们拯救人,是神拯救人。那神怎么拯救人?整着整着,神又给你一个机会;整着整着,神又给你一个机会。别上来就给人家说,哎呀!我很想牧养你!别人就会说:你快拉倒吧,你牧养我?牧养啥呀?我们千万别一上去就整这些事,听明白了吗?别那么主动要牧养,因为人家还没让你牧养呢。人家来找你就解决人家的问题,不找你就算了。就是我们常常太希望带人信主,其实是个坏习惯。常常讲点见证,有机会人来找你就找你,不找你,你也感谢神,是吧!
感谢神!如果你真的很需要帮助,咱们有一系列的牧养方法去帮助你,从你现在的这种光景当中走出来,脚踏实地的一步一步成长。不但你有这样的问题,其实很多人信主比你时间更长,还是常常这样。不要绝望,神是给恩典的神。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사무엘하》 22장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이 책의 성경공부도 이제 거의 끝나갑니다. 《사무엘하》 전체는 다윗이 평생 걸어오며 겪었던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번 장에서 저자는 다윗이 사울의 추격을 피해 도망치던 시절에 읊었던 시 한 편을 전하고 있습니다. 왜 이 시를 마지막 부분에 두었을까요? 결론을 맺기 위한 도입부로 삼기 위함입니다. 저자는 다윗이 평생 동안 하나님을 어떻게 알고 있었는지를 분명하게 기록했습니다. 이번 장의 주제는 '다윗이 알고 있었던 하나님'이라고 붙이는 것이 가장 적절할 것입니다. 물론 본문 전체가 하나님께서 다윗을 구원하시는 내용을 다루고 있으므로 '하나님은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시다'라고 붙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만 정하면 깊이와 높이가 다소 부족해 보일 수 있어, 좁은 의미로 본다면 '하나님은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시다'가 될 것입니다.
다윗이 알고 있었던 하나님은 과연 어떤 하나님이실까요? 다윗이 알고 있었던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어떤 이들은 구원을 경험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살아가기도 합니다. 이런 일들을 보면 참 의미심장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다윗이 알고 있었던 그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다윗이 이처럼 많은 은혜를 입었듯이, 우리도 그렇게 행하면 똑같이 은혜를 입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굳이 그렇게 행하지 않고 도리어 반대로 가기를 좋아한다는 점입니다. 저는 형제자매들에게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라고 자주 권면하지만, 어떤 이들은 이 말을 귓등으로 흘려듣다가 문제가 터지고 나서야 비로소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의 이상한 행동 방식입니다. 그 사람 내면의 논리 체계가 다윗의 논리 체계와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떤 부모들은 자녀를 열대여섯 살 때부터 이삼십 대가 될 때까지, 심지어 쉰 살이 다 되도록 간섭하고 돌보지만, 자녀는 여전히 철이 들지 않아 부모의 속을 썩이고 마음을 답답하게 만듭니다. 그럼에도 자녀 자신은 스스로 아무 문제 없다고 느낍니다. 이런 사람들은 오직 그런 자기만족의 느낌 하나로 살아갈 용기를 얻는데, 이것이야말로 비극이 아니겠습니까? 자기가 괜찮다고 느끼면 정말로 괜찮은 것입니까? 다윗의 이 시에 비추어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점검해 보십시오.
저희 어머니는 일흔, 여든이 넘은 고령이신데도 여전히 자녀들 때문에 마음고생을 하십니다. 한번은 어머니께서 시외버스에서 내리시다가 실수로 돌을 밟아 발목을 접지르셨습니다. 마침 제가 전화를 드렸는데, 목소리만 들어도 마음이 몹시 답답해하고 계심을 알 수 있었습니다. 자녀들이 서른, 마흔, 쉰, 예순이 넘도록 다 컸는데도 여전히 노모의 속을 썩이고 있었고, 그러면서도 스스로는 다 잘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어머니를 붙들고 함께 기도했고, 기도가 끝나자 접질렸던 발목이 풀렸습니다. 한겨울에 왜 발을 접지르셨을까요? 멀리 있는 예배 모임에 가시려고 버스를 타셨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마친 후 어머니는 예배 모임에 가실 수 있었습니다. 저는 저의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저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진심으로 찬양합니다! 제가 알고 있는 하나님은 참으로 너무나도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어떤 이들은 평생토록 부모의 속을 편하게 해드리지 못합니다.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제가 보기에도 답답하고 한숨이 나오는데, 우리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어떻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십 대든 오십 대든, 심지어 육십 대가 넘은 자녀를 둔 부모들을 섬길 때마다 자녀 때문에 너무 염려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자식에게는 자식의 복이 있고, 각자에게는 하나님이 정하신 사명이 있는 법입니다. 그가 다윗과 같은 사람이라면 그를 위해 걱정하거나 가슴 졸일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그의 구원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가 다윗과 같은 사람이 아니라면 그대로 두십시오. 여러분이 그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부모 되신 여러분, 이 말을 들으니 마음이 훨씬 가벼워지지 않습니까? 이제부터는 그들을 보며 더 이상 속상해하지 마십시오. 각자의 길이 있으니 그저 맡겨두십시오!
다윗이 알고 있었던 하나님은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다윗이 알고 있었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실까요? 바로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다윗을 모든 원수의 손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신 날에 다윗은 여호와께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본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내가 피할 나의 반석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높은 망대시요 그에게 피할 나의 피난처시요 나의 구원자시라 나를 폭력에서 구원하셨도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에 대한 다윗의 인식입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크고 놀라우신 분이십니다!
그가 높은 데서 손을 내밀사 나를 붙드심이여 많은 물에서 나를 건져내셨도다 나를 강한 원수와 미워하는 자에게서 건지셨음이여 그들은 나보다 강했기 때문이로다 그들이 나의 재앙의 날에 내게 이르렀으나 여호와께서 나의 의지가 되셨도다 나를 또 넓은 곳으로 인도하시고 나를 기뻐하시므로 구원하셨도다 (사무엘하 22:17-20)
주께서 또 나를 내 백성의 다툼에서 건지시고 나를 보전하사 모든 민족의 으뜸으로 삼으셨으니 내가 알지 못하는 백성이 나를 섬기리이다 이방인들이 내게 굴복함이여 그들이 내 소문을 귀로 듣고 곧 내게 순종하리로다 이방인들이 절망하고 그들의 견고한 곳에서 떨며 나오리로다 여호와의 사심을 두고 나의 반석을 찬송하며 내 구원의 반석이신 하나님을 높일지로다 이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보복하시고 민족들이 내게 복종하게 하시며 나를 원수들에게서 이끌어 내시며 나를 대적하는 자 위에 나를 높이시고 나를 강포한 자에게서 건지시는도다 (사무엘하 22:44-49)
다윗이 이 시를 노래했듯이, 여러분이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여기느냐에 따라 하나님은 바로 그런 분이 되어 주십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구원의 하나님으로 믿는다면 하나님은 여러분을 구원하실 것이요, 하나님을 구원치 않으시는 분으로 여긴다면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구원의 하나님이 되지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왜 하나님은 다윗에게는 구원의 하나님이 되셨는데, 어떤 사람들에게는 구원의 하나님이 되지 않으셨을까요? 왜 어떤 이들은 항상 재수 없는 일들만 겪게 되는 것일까요? 여러분, 이것이 과연 왜 그런지 진지하게 묵상해 보아야 합니다.
제가 예전에 어떤 사역자를 만난 적이 있는데, 그 사람은 참으로 불운의 연속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무엇 하나 제대로 해내는 일이 없었습니다. 커서 사역자가 되었는데, 그것은 남을 해치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간증했습니다. 자기가 무슨 일을 해도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이 하나님께서 자기를 부르신 증거라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의아했습니다. '정말 그런 것일까?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하시는 모습이란 말인가?' 만약 그가 사울의 손에서 도망치고 있는 처지라면 모를까, 그에게는 그런 기회조차 없었습니다. 사울의 손에서 도망칠 필요도 없었습니다. 사울은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참으로 기이한 논리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간증합니다. 사업을 하다가 말아먹고, 직장 일을 하다가 그르쳐 놓고는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셨다'는 그럴듯한 핑계를 댑니다. 이것이 도대체 무슨 논리입니까? 결국 그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습니다.
제가 알던 한 목사님은 어떤 사람에게서 예언을 받았습니다. 그 예언은 그의 부르심이 목사가 아니라 디자이너라는 것이었고, 또 어떤 이의 부르심은 목사가 아니라 교사라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교회의 사역을 사임하고 다른 일을 하러 떠났는데, 그로 인해 겪은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이 되시는 것은 우리가 그 하나님을 어떻게 알고 있느냐와 직결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님은 과연 어떤 분이신지 차근차근 묵상해 보십시오!
《마태복음》에는 매우 흥미로운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인색한 분으로 여기면 하나님은 인색한 분이 되시고, 하나님을 후하신 분으로 여기면 하나님은 후하신 분이 되십니다.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을 인색한 분으로 여겨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분으로 생각한다면, 하나님이 정말 그런 분이십니까?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 두었다가, 주인이 돌아왔을 때 원금 그대로 돌려주려고 했습니다. 그것이 주인의 뜻이었습니까? 인플레이션이 일어나고 화폐 가치가 떨어지면 그 은 한 달란트의 가치가 온전히 보존되겠습니까? 더 이상 원래의 가치가 아닌데, 그것이 도대체 무슨 생각입니까? 그는 하나님을 악한 분으로 여겼고, 결국 얻은 것은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칭호뿐이었습니다.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묻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마태복음 25:24-26)
다윗이 모든 원수와 사울의 추격을 피해 도망치던 시절에 여호와 하나님께 이 시를 노래했을 때, 그는 얼마나 많은 연단을 겪었습니까? 아기스 왕 밑에 머물던 그 시절도 결코 쉽지 않았고, 사울의 추격을 피해 도망치던 나날도 결코 순탄치 않았습니다. 그때 그는 돈도 양식도 없었고 끼니를 제대로 잇지 못해 굶주리기 일쑤였습니다. 다윗은 이 모든 과정을 어떻게 통과했습니까? 다 하나님의 구원이요, 하나님의 공급하심이었습니다. 그가 쏟아낼 간증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았습니다!
여호와께서 다윗을 모든 원수의 손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신 그 날에 다윗이 이 노래의 말씀으로 여호와께 아뢰어 (사무엘하 22:1)
하나님은 나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시다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그가 그의 성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도다 (사무엘하 22:7)
7절에서 다윗은 어떻게 고백합니까?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그가 그의 성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도다." 얼마나 귀한 말씀입니까! 하나님은 나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기도도 듣고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시는지 여부는 여러분이 하나님을 어떻게 알고 있느냐와 직결되어 있습니다. 제가 처음에 왜 교회를 개척하고 화인 사명 신학을 세웠겠습니까? 교회 안에서 가장 흔하게 목격한 안타까운 모습이 바로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기도를 듣지 않으신다는 사실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기도하지 않을 때는 차라리 낫다가, 기도만 시작하면 일이 더 꼬이고 상황이 악화되곤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내일 은행 강도질을 무사히 성공하게 지켜 주옵소서!" 그런데 막상 가보니 경찰이 이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런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런 기도를 들으신다면 그것이야말로 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 경찰서에 관우 상을 모셔두고 향을 피우며 도둑을 잘 잡게 해달라고 빌고, 조폭 무리도 관우 상을 두고 향을 피우며 이번 강도질이 성공하게 해달라고 빈다면, 그 관우는 도대체 누구의 말을 들어주어야 하겠습니까? 다윗의 기도는 어떠했습니까? 그는 말했습니다.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그가 그의 성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도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여러분, 꼭 아셔야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을 자신의 가장 귀한 보물로 여겼기에 어떤 상황을 만나도 결코 하나님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모습은 참으로 묘합니다. 마음은 원이로되 힘이 따르지 않습니다. 평안할 때는 믿음이 대단해 보입니다. "나는 나의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할 것입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결국 자신의 사업과 세상일을 의지합니다. "나는 나의 하나님을 의지하며 기도할 것입니다!"라고 말하지만, 위기의 순간이 닥치면 어김없이 하나님을 뒷전으로 미루는 쪽을 택합니다.
이러한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은 저에게 크나큰 배움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저는 제 자신에게서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서도 교훈을 얻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저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저는 저런 사람이 되지 않겠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아닙니다. 저는 제 자신을 경계하고 깨어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으며, 오직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으실 수밖에 없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을 뿐입니다. 저의 기도는 하나님의 귀에 상달되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여러분의 기도가 하나님의 콧구멍으로 들어가 악취를 풍긴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저 높은 보좌에 앉아 계시는데 악취가 올라온다면, 하나님께서도 얼마나 괴로우시겠습니까?
문제의 근본 원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도대체 우리 마음 중심에 있는 하나님에 대한 인식은 무엇입니까? 제가 왜 이번 장의 주제를 '다윗이 알고 있었던 하나님'으로 정했겠습니까? 여러분이 알고 있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여러분이 구하는 것들을 돌아보십시오. "하나님! 우리 아이가 대학에 합격하게 해주세요. 하나님, 며느릿감을 얻게 해주세요. 우리 아들 선자리가 잘 풀리게 해주세요…" 온통 이런 것들뿐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가장 귀한 보물로 여겼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도 하나님을 보물로 여기고 계십니까? 여러분 앞에 한 가지 자랑을 하자면, 저는 하나님을 알게 된 그날부터 하나님을 저의 유일한 보물로 확정했습니다. 어떤 형편에 처하든지 섬김과 사역을 언제나 최우선에 두었습니다. 비록 처음에는 사역의 열매가 뚜렷하지 않았지만, 그것은 제가 하나님의 도를 깊이 알지 못했고 영적 고지에 오른 높이가 부족했기 때문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어떤 섬김은 참으로 온 힘을 쏟아야 했습니다. 새벽 서너 시까지 사역하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바로 어젯밤에도 새벽 한 시가 넘었을 때 메시지 한 통이 왔습니다. 낮에 미리 약속해 둔 상담 및 기도 사역이었는데, 제가 밤 9~10시쯤 너무 졸려서 잠깐 눈을 붙였다가 눈을 뜨자마자 메시지를 확인한 것입니다. 서둘러 전화를 걸었더니 상대방은 제 수면 시간을 방해한 것 같아 미안해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섬김을 늘 첫자리에 두었고, 나중에는 이것이 습관이 되어 '밤이야말로 귀신을 쫓아내기에 가장 좋은 시간대'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가운데서 여러분이 만나는 목회자와 동역자들에게서 다소나마 저의 모습이 보이는 것은, 제가 바로 그렇게 그들을 훈련시켰기 때문입니다.
제가 만났던 어떤 목사님들은 하나님께서 참으로 그들의 기도를 듣지 않으셨습니다. 한번은 그분들의 집회에 초청을 받아 간 적이 있습니다. 그분들은 집회 자체에 중독되어 있었지만, 저는 실제로 사람을 섬기는 일을 더 좋아했습니다. 당시 그 모임에서 제가 섬겼던 한 사람은 지금 우리 교회에 와 있습니다. 그들이 집회를 하고 있을 때, 저는 돌보아야 할 섬김의 대상이 있어 먼저 일어나야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차를 몰고 먼 길을 달려가 섬김이 필요한 사람의 집에 도착해 그를 위해 기도해 주었습니다. 밤 10시가 넘었을 때, 저를 그 모임에 초청했던 분에게 전화를 걸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를 걱정하고 가슴 졸이지 않게 하려는 배려였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정말 저를 걱정했을까요? 전화를 걸자마자 전화기가 꺼져 있었고, 몇 번을 연속해서 걸어도 여전히 꺼져 있었습니다.
오히려 제가 그 목사님에게 무슨 변이라도 생긴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계속 전화가 연결되지 않아 우리는 작은 식당을 찾아 국수 한 그릇을 먹고, 허름한 여관을 잡아 하룻밤을 보냈습니다. 다음 날 그를 만나 물어보고서야, 그가 매일 밤 10시만 되면 칼같이 핸드폰을 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아니, 어머니가 돌아가셔도 연락이 안 닿겠군요!"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남이 자기 잠자리를 방해할까 봐 전전긍긍하며, 결국 자기 몸에 기름진 살만 잔뜩 찌우게 됩니다. 제가 말이 조금 직설적이긴 하지만, 돼지는 살을 찌우면 잡아서 고기라도 먹지만 사람은 살만 찌워서 어디에 쓰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의 기도를 들으시겠습니까? 턱도 없는 일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능력이 한이 없으시며,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문제는 여러분이 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알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알지 못하신다면, 여러분이 하나님을 안다고 한들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문을 두드렸더니 리콴유 총리가 나왔다고 합시다. 여러분이 "아이고, 리 총리님, 드디어 뵙는군요!"라고 외친들, 여러분은 그를 알지 몰라도 그는 여러분을 알지 못합니다! 그에게 막강한 권세가 있어 서명 한 번으로 일을 해결해 줄 수 있다 한들, 그가 여러분을 모르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가 손을 한 번 내저으면 여러분은 그저 쫓겨날 뿐입니다. 평생 크리스천으로 살았는데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하신다면 이 얼마나 낭패입니까?
그러므로 살아있는 동안에 하나님을 깊이 알아가고,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을 아시도록 해야 하며, 그분의 초장의 양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증표입니다. 이후 저는 화인 사명 신학을 세우고 신학적 체계를 정립하며,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진리와 영광을 끊임없이 회복해 나갔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인식도 다윗이 가졌던 인식에 점점 가까워졌고,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후대하셨듯이 우리를 풍성히 은대해 주셨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능력이 크신 하나님이시다
초창기에 저는 하나님을 찾으면서도 과연 어느 신이 나를 도울 수 있을지 알지 못했습니다. 저는 매사에 지식인적인 기질이 있어서, 과연 누가 참신인가를 깊이 탐구하고 검증했습니다. 만약 내가 어떤 신을 섬기는데, 그 신이 영적 세계에서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 하찮은 존재라면 인생을 망치는 것 아니겠습니까? 자기보다 조금만 강한 자를 만나면 꼬리를 내리는 신이라면, 내가 뭣 하러 그 신을 섬기겠습니까?
제가 하나님을 분별했던 기준은 이렇습니다. 첫째, 그분은 능력이 있어야 하고, 영계에서 그분의 말씀이 절대적인 권세를 가져야 합니다. 말에 힘이 없다면 차라리 관두는 게 낫습니다! 제가 찾고자 한 분은 말씀하시면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지고 효력이 있는 하나님이셨습니다. 둘째, 그분이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나를 사랑하지 않으신다면 소용이 없습니다. 내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데, 그분께 향을 피우고 제물을 바쳐야만 겨우 도와주신다면 그것을 어찌 온전하다 하겠습니까? 그것은 뇌물을 받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다윗이 알고 있었던 바로 그 하나님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땅이 진동하고 떨며 하늘의 기초도 요동하고 흔들렸으니 그의 진노로 말미암음이로다 그의 코에서 연기가 오르고 입에서 불이 나와 사름이여 그 불에 숯이 피었도다 그가 또 하늘을 드리우고 강림하시니 그의 발 아래는 어두캄캄하였도다 그룹을 타고 날으심이여 바람 날개 위에 나타나셨도다 그가 흑암 곧 모인 물과 공중의 빽빽한 구름으로 둘린 장막을 삼으심이여 그 앞에 있는 광채로 말미암아 숯불이 피었도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우렛소리를 내시며 지존하신 자가 음성을 내심이여 화살을 날려 그들을 흩으시며 번개로 무찌르셨도다 이럴 때에 여호와의 꾸지람과 콧김으로 말미암아 물 밑이 드러나고 세상의 터가 나타났도다 (사무엘하 22:8-16)
이 얼마나 위대하고 두려운 하나님이십니까! 하나님을 알고자 갈망했던 그날부터 저는 쉼 없이 찾아 헤맸습니다. 어느 신이 참으로 강한지 알지 못했기에 하나하나 검증해 나간 것입니다. 한번은 어떤 교회에 발걸음을 하게 되었는데, 그 교회에서 치유 사역과 축사, 즉 귀신을 쫓아내는 사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담력이 있는 편이라 귀신이 그 사람에게서 나와 내게 들어올까 두려워하지 않고 가까이 다가가 지켜보았습니다. 그런데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그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에게 나가라고 명령하자, 귀신이 실제로 쫓겨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하나님은 참으로 위대하시며 큰 권능을 가지셨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내가 먹여 살리는 분이 아니라, 그분이 나를 먹여 살리시는 분입니다. 만약 내가 그분을 먹여 살려야 한다면 큰일입니다. 나 자신조차 건사할 능력이 없는데 말입니다! 하찮은 귀신을 신처럼 떠받들며 모시는 것은 논리적으로 전혀 맞지 않습니다! 이후 걸음걸음마다 우리 하나님이 능력이 크신 하나님이심이 확증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여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마귀를 결박하고 얼마나 많은 귀신을 쫓아냈는지 모릅니다!
최근 우리의 축사 사역은 참으로 강력합니다! 이는 모두 지각과 명철 안에서 하나님을 바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지각으로 하나님을 온전히 알게 되면 귀신의 정체를 꿰뚫어 볼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한마디가 있으니, 곧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입니다. 천하에 그 어떤 이름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비길 수 없습니다! 저는 이 하나님을 알게 된 것과, 하나님께서도 나를 알아주신 것을 참으로 감사하게 여깁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알아가는 이 길을 끊임없이 전진해 왔습니다.
이후 하나님을 알아가는 데에는 끝이 없음을 깨닫고, 영적 세계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도, 그리고 하나님의 성품을 깊이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는 실로 엄청난 신학적 발견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아갈수록 하나님의 권능 또한 우리 가운데 더욱 생생하게 나타났으며, 오직 우리 하나님만이 유일하게 능력이 크신 하나님이심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다윗이 알았던 하나님이 다윗 자신조차 구원하지 못하고, 틈만 나면 향이나 피워 올려야 하는 그런 신이었다면 얼마나 비참했겠습니까?
하나님은 상벌이 분명하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알고 대하느냐에 따라 상을 주시기도 하고 벌을 내리시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와 인자를 베푸시며,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의 죄는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갚으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결코 흑백을 가리지 못하거나 상벌이 흐릿하신 분이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내 공의를 따라 상 주시며 내 손의 깨끗함을 따라 갚으셨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의 도를 지키고 악을 행함으로 내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며 그의 모든 법도를 내 앞에 두고 그의 규례를 버리지 아니하였음이로다 내가 또 그의 앞에 완전하여 스스로 지켜 죄악을 피하였나니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내 의대로, 그의 눈앞에서 내 깨끗한 대로 내게 갚으셨도다 자비한 자에게는 주의 자비하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 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며 사악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르심을 보이시리이다 주께서 곤고한 백성은 구원하시고 교만한 자를 살피사 낮추시리이다 (사무엘하 22:21-28)
얼마나 탁월한 말씀입니까! 하나님은 내게 갚아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마치 내가 그분의 은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분의 도를 삼가 지켜 행하기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갚아주시는 것입니다. 본래 갚는다는 것은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은혜를 갚을 때 쓰는 말이지만, 다윗이 하나님을 묘사하며 이 단어를 사용한 것은 참으로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갚으시되 어떻게 갚으십니까?
그의 모든 법도를 내 앞에 두고 그의 규례를 버리지 아니하였음이로다 내가 또 그의 앞에 완전하여 스스로 지켜 죄악을 피하였나니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내 의대로, 그의 눈앞에서 내 깨끗한 대로 내게 갚으셨도다 (사무엘하 22:23-25)
다윗이 어떻게 온전한 사람이 되었을까요? 사울에게 억울하게 쫓기면서 충분히 선악을 분별하여 원망할 자격이 있었음에도 선악을 분별하기를 거절했고, 사울을 죽일 수 있는 두 번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결코 사울을 해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자가 되었으니, 마치 요셉이 하나님 앞에서 온전했던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사역을 하다 보면 '이 사람은 왜 다윗 같지 않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들 때가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윗 같다면 우리의 돌봄을 받을 필요도 없이 오히려 그가 우리를 섬길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요셉과 같다면 이런저런 잡음이 없을 것이요, 사람들이 다 다윗과 같다면 이런 온갖 골치 아픈 문제들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상벌이 분명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인자로 대하시고, 온전한 자에게는 온전함으로 대하시며, 깨끗한 자에게는 깨끗함으로 대하시고, 비뚤어진 자에게는 거스르심으로 대하십니다. 주변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살아가면서 스스로 재앙과 불운의 구렁텅이로 걸어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일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스스로 불행을 자초하며 걸어 들어가는 것을 보거든, 여러분이 그를 사역으로 건져내려는 목적이 아닌 한 그런 사람을 반드시 멀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비뚤어지게 대하시기 때문이며, 그것만으로도 그는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겪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도를 깨닫지 못하며, 습관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은 참으로 치명적입니다! 우리 삶에 일어나는 일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의 완고함과 비뚤어짐을 따라 거스르신 결과가 아닌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본래 걸리지 않았어도 될 암에 걸리는 것 역시 인간 내면의 비뚤어진 성정에서 비롯된 결과입니다. 사람의 성품이 기이하게 꼬여 있기 때문입니다.
사역을 하다 보면 참 묘한 일들을 겪게 되는데, 저 자신도 최근에 이런 일을 자주 경험합니다. 저는 그 사람의 유익을 구하고 있고 그 사람 역시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데, 도리어 그 사람이 제게 화를 내는 것입니다. 이런 황당한 일을 어디 가서 하소연하겠습니까? 곰곰이 생각한 끝에 저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주님 앞에서 온전한 자로 행했습니다. 얼마든지 선악을 따져 분별할 수 있었으나 선악을 분별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다윗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대했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의 모든 법도를 내 앞에 두고 그의 규례를 버리지 아니하였음이로다 (사무엘하 22:23)
이 대목에서 제 마음속 깊은 탄식을 나누고자 합니다. 주님을 믿은 지 20년이 넘도록 성경 일독조차 끝내지 못한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저 자기 생각대로 주먹구구식으로 살아가니 어떻게 하나님을 알 수 있겠습니까? 그런 사람이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면 대체 누가 겪겠습니까? 우리 교회의 003 사역에서 조장을 모집하는 것은, 교회가 그를 조장으로 필요로 해서가 아니라 그 자리를 통해 그 사람이 훈련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허풍은 제일 세면서 실력은 쥐뿔도 없고, 시험만 보면 번번이 낙제하여 재시험을 쳐야 합니다. 주님을 믿은 지가 몇 년인데 좋은 일은 하나도 임하지 않고 재수 없는 일에만 단골로 낍니까? 이것이야말로 비뚤어진 자에게 하나님께서 거스르심으로 대하시는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이 비뚤어지고 거스르는 세대에서 벗어나야 하며, 왜곡된 성정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우리 내면에 비뚤어진 요소들이 너무 많아, 무슨 일만 생기면 자기가 옳다고 따집니다! 똑같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결정적인 차이는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갚아주시는지를 아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기도를 들으신다면 하나님께 감사하며 끊임없이 하나님을 알아가야 합니다. 묻겠습니다. 화요일에 제가 기도해 주어 병이 나은 뒤에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셨습니까? 어떤 분은 제게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제가 화요일엔 목사님 따라 기도하고, 수요일과 금요일엔 성경공부까지 참석해 주었는데 저더러 더 이상 뭘 어쩌라는 겁니까?" 저는 그 말을 듣고 속이 몹시 상했습니다. 그래서 반문했습니다. "내가 당신의 참석을 그토록 아쉬워하는 줄 압니까? 필요한 것은 바로 당신 자신입니다. 은혜를 입는 것이 어찌 대가를 치르는 일이 될 수 있습니까? 그것을 대가 지불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까?"
제가 처음 주님을 믿고 아직 세례도 받기 전, 저는 영어 성경을 읽었습니다. 한 페이지에 모르는 단어가 스무 개도 넘게 나와서 사전을 일일이 찾아가며 읽었고, 매일 새벽 두 시까지 말씀을 읽고는 다음 날 아침 일찍 출근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늦게까지 깨어 있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사람들은 "몸을 잘 챙겨야지!"라고 말하지만, 저는 깊은 밤에 경건의 성품을 훈련하는 것이야말로 몸을 가장 잘 돌보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려는 이러한 태도를 하나님께서 분명 기뻐하셨을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간곡히 당부합니다. 가장 귀한 보물을 쥐고서도 그것을 아무렇게나 내던져 버리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참으로 가장 귀한 보물이십니다!
하나님은 내 생명의 도이시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등불이시니 여호와께서 나의 어둠을 밝히시리이다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진으로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성벽을 뛰어넘나이다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진실하니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에게 방패시로다 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이며 우리 하나님 외에 누가 반석이냐 하나님은 나의 견고한 요새시며 나를 안전한 곳으로 인도하시며 (사무엘하 22:29-33)
다윗의 고백은 참으로 탁월합니다! 하나님은 내 길의 빛이시요, 내 생명의 빛이시며, 하나님께 영생의 말씀이 있으니 내가 어디로 가겠습니까? 하나님 외에 내가 사랑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 한 분만으로 충분합니다. 입만 열면 돈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정작 그들이 돈을 버는 모습은 보지 못했습니다. 머릿속에 온통 돈 벌 생각뿐이고 회사를 상장시킬 궁리만 하다가, 상장은커녕 회사가 어디로 사라졌는지도 모르게 망해버립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의지하여 살아가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크리스천이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해 살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모른다 하실 뿐만 아니라 저 역시 여러분을 알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의 인연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다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생명의 도로 삼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갈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영적 동역의 관계를 맺게 됩니다.
다윗이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진지하게 대했는지 모릅니다! 어디가 하나님의 말씀이고 어디가 사람의 생각인지 그의 마음속에는 너무나도 명백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모두 주의하십시오. 우리 머릿속에는 너무 많은 쓰레기가 들어차 있습니다! 어떤 이는 "목사님, 저는 목사님의 뜻을 헤아리려 했던 것뿐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제 뜻을 잘못 짚은 것이며 엉뚱하게 헤아린 것입니다. 자기 생각을 위하는 것을 두고 제 뜻을 위하는 것이라 착각한다면, 그것은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것이니 순식간에 베드로처럼 넘어지지 않겠습니까? 하마터면 제가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외칠 뻔했습니다. 물론 제게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어야 합니다!
저는 때로 엄하게 말합니다. 어떤 이가 한참 동안 말을 늘어놓으면 저는 이렇게 묻습니다. "그 말 중에 하나님의 말씀이 단 한 구절이라도 있습니까?" 하나도 들어있지 않은 것 같은데, 그렇다면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등불이십니다! 하나님의 영과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계시면 우리 안에는 어둠이 없습니다. 어둠이 없으면 구부러지고 꼬인 것들이 사라집니다. 비뚤어진 것이 없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스르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온갖 상급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십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을 따라 늘 풍성하게 갚아주십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비극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너무나 쉽게 이 사실을 잊어버립니다.
다윗은 진실로 그것을 생명의 도로 여겼습니다. 만약 그가 자기 생각대로 칼을 휘둘러 사울을 죽여버렸다면, 하나님과의 깊은 언약의 관계도 단칼에 끊어버렸을 것입니다. 제가 다소 거칠게 표현하자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자기 뜻대로 걸어가다 보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맙니다. 저는 제 평생이 참으로 복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단히 진지하게 붙들었고, 평생토록 하나님의 말씀의 빛 가운데 지금까지 걸어왔습니다. 지난 세월 동안 제가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 중에는, 목사님들을 포함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향한 저의 열정을 뛰어넘는 사람을 아직까지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저를 은대하시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제가 행한 의를 따라 갚아주시고 머리에 하나님의 영광의 관을 씌워주시니 이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하나님은 나의 힘이시다
나의 발로 암사슴 발 같게 하시며 나를 나의 높은 곳에 세우시며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니 내 팔이 놋 활을 당기도다 주께서 또 주의 구원의 방패를 내게 주시며 주의 온유함이 나를 크게 하셨나이다 내 걸음을 넓게 하셨고 내 발이 미끄러지지 아니하게 하셨나이다 내가 내 원수를 뒤쫓아 멸하였사오며 그들을 무찌르기 전에는 돌아서지 아니하였나이다 내가 그들을 무찔러 뜨렸더니 그들이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내 발 아래에 엎드러졌나이다 이는 주께서 내게 전쟁하게 하려고 능력으로 내게 띠 띠우사 일어나 나를 치는 자를 내게 굴복하게 하셨사오며 주께서 또 내 원수들이 등을 내게로 돌려 달아나게 하시고 내게 나를 미워하는 자를 끊어 버리게 하셨음이니이다 그들이 도움을 구해도 구원할 자가 없었고 여호와께 부르짖어도 대답하지 아니하셨나이다 내가 그들을 땅의 티끌 같이 부스러뜨리고 거리의 진흙 같이 밟아 헤쳤나이다 (사무엘하 22:34-43)
힘이라는 것은 무술을 연마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한번은 제가 키가 190cm나 되는 건장한 사람을 섬긴 적이 있습니다. 그는 무술 사범이자 태권도 유단자였는데, 무릎 통증으로 다리를 절뚝이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를 붙들고 기도로 섬기기 시작하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가 교회 안에서 원숭이 권법(후권)을 현란하게 구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알고 보니 그것은 무술의 영, 즉 악한 영이었습니다.
결국 제가 그 사람 속에 있는 귀신을 쫓아내려 하자, 귀신이 정체를 드러내며 저를 때려눕히려 덤벼들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한두 번 겪은 것이 아닙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몸무게가 100kg이 넘고 저는 50kg 남짓인데, 그가 엉덩이로 저를 깔고 앉기만 해도 치명적이었을 것입니다. 그가 주먹을 한 대 날리면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고, 저를 바닥에 내리꽂기라도 하면 뼈도 못 추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을 통해 저는 하나님이 진정 나의 힘이 되심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사랑하는 자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으시고, 그분의 능력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 주십니다.
다윗은 저와 비슷하게 170cm 정도의 작은 체구였지만, 대단히 수려한 청년이었습니다. 그가 3미터가 넘는 거인 골리앗과 마주섰을 때의 모습은, 마치 5밀리미터 드릴 비트와 3센티미터 드릴 비트를 비교하는 것과 같았으니 하나는 아비요 하나는 아들과 같았습니다. 5밀리미터 드릴과 8밀리미터 드릴만 비교해도 할아버지와 손자 같은 차이가 납니다. 직경이 두 배 차이 나면 부피는 세제곱인 8배 차이가 납니다. 그 운동선수의 손가락은 당근 굵기만 해서, 저를 치는 것은 개미 한 마리를 짓밟는 것과 같았으니 얼마나 위협적이었겠습니까!
또 다른 사람은 150kg에 육박하는 스모 선수였습니다. 저는 50kg에 불과했습니다. 그가 귀신을 쫓아내 달라고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는 커다란 두 손을 제 얼굴 앞에서 마구 휘두르며 제 목을 졸라 죽이려 했습니다. 그 시절 우리 교회는 지금처럼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던 단계가 아니었기에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권능이 고스란히 저의 능력이 되었고, 결국 그는 의자에서 바닥으로 굴러떨어져 몇 분 동안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누워 있다가, 일어난 후 온전한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런 일들을 나누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을 때에만 이 악한 영들과 능히 싸워 이길 수 있음을 알려드리기 위함입니다. 우리 안에는 하나님의 영이 계시고, 골리앗 안에는 귀신의 영이 있었습니다. 귀신의 영은 하나님 앞에서 반드시 멸망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는 악마와 싸워 이기시는 능력이 있으시며, 어떤 전쟁이든 지금까지 저는 단 한 번도 패배해 본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능력이 무궁하시고, 나를 사랑하시며, 내 기도를 들으시고, 내게 상을 주시며, 나를 구원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은 내 생명의 도가 되시며, 그분은 친히 내 안의 힘이 되셔서 나를 위해 싸워 주십니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여전히 하나님을 가장 귀한 보물로 여기지 않는다면 참으로 어리석은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을 보물로 여기지 않는 자에게 저는 단호히 말합니다. 머릿속에 오물이 가득 차 있다면 속히 그 더러운 생각들을 씻어내십시오. 반드시 하나님을 최고의 보물로 삼으십시오. 영적 세계에서 싸워 이기는 힘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나옵니다!
결론
여호와의 사심을 두고 나의 반석을 찬송하며 내 구원의 반석이신 하나님을 높일지로다 이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보복하시고 민족들이 내게 복종하게 하시며 나를 원수들에게서 이끌어 내시며 나를 대적하는 자 위에 나를 높이시고 나를 강포한 자에게서 건지시는도다 이러므로 여호와여 내가 모든 민족 중에서 주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리이다 (사무엘하 22:47-50)
그러므로 우리는 이방인과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 가운데서 우리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분의 이름을 찬양해야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저는 하나님의 위대한 행적을 증언합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왕에게 큰 구원을 주시며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 인자를 베푸심이여 영원토록 다윗과 그 후손에게로다 하였더라 (사무엘하 22:51)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과 저를 왕으로 세우셨음을 기억하십시오. 그분은 만왕의 왕이십니다. 고대 로마 제국이나 아테네와 같은 도시 국가의 구조로 보면, 한쪽에는 유다 왕이 있고 다른 쪽에는 헤롯 왕이 있듯이 각 도시마다 왕이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 하려면 왕다운 품격과 그릇을 갖추어야 합니다. 땅콩만 한 좁은 속 좁은 마음이나 호두 알만 한 옹졸한 생각을 버리십시오. 지금부터 우리 내면에는 왕의 당당한 마음가짐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왕으로 세우고자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름을 부어 그분의 자녀로 삼으시고, 우리를 왕으로 기름 부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만왕의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최고의 보물로 삼고, 하나님을 한 걸음 한 걸음 깊이 알아가며, 끊임없이 전진해야 합니다. 더 이상 게으름을 피우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하나님을 바로 알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알고 믿는 바를 따라 온갖 은혜를 부어주실 것입니다. 더 이상 자신을 영적인 궁핍 속에 방치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또한 저처럼 믿지 않는 자들 가운데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세상 사람들이 우리의 삶과 열매를 보며 우리를 존귀한 영적 군주로 인정하게 하십시오. 영원토록 그분의 이름을 찬양합시다! 아멘!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넘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