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Q1:老师,怎么才能让孩子爱祷告?
其实小孩儿爱不爱祷告这事儿不太重要,教小孩儿从小要敬畏父母,从小守规矩。现在我们的父母也不劝诫孩子;也不责备孩子;也不管教孩子,结果孩子的肉体不断地膨胀,然后你让他祷告,那不是很麻烦的事儿吗?
小孩儿最先要守规矩。比如说,你要带着他祷告,他得跟着祷告,至于他同意还是不同意,那不是给他提出的,他没有提意见的机会。这是规矩,必须跟着。听明白了吗?因为在这个家里头,除了吃,除了喝,什么贡献也没有,然后他在家里头还要民主,他要做主了。
有的小孩儿到学校,跟几个小孩联系在一起,要告他爸他妈,因为他爸他妈揍他。这是什么逻辑?如果你能够自立,你就赶紧出去自立,如果你不能自立,还得在家里听话。你不要以为十几岁的孩子他能自立,自立什么?因为从小就没管孩子,没给他立规矩。
所以说我们不但很多父母如此,很多教会的牧者也是如此。我们就非常感慨,为什么?因为他出生以后,他不就是属肉体吗?人天然地就是一个属肉体的人。
Q2:老师,我有时候喜欢自己惯自己,惯自己太多,别人一说就觉得难受。小时候爷爷奶奶宠爱,认为真爱就是那样,那怎么纠正自己?
很简单,遭够罪了没有?如果遭够罪了,就知道那是败坏我,我爷爷奶奶都在败坏我,我家人都在败坏我,所以我今天活得很痛苦。为什么?从小不吃苦,没有对付过肉体,人属肉体不可能活得好。一个属肉体的人常常活在神的愤怒之下,你说要命不要命?所以说,一定要小心,千万千万不要活在神的愤怒之下,人要活在神的恩典之中。
Q3:老师,牧养的时候,该如何确定对方是软弱还是头猪?
咱们没有教软弱这个逻辑,他提出来这个问题,说:老师,我最近很软弱。听了之后其实也没有太大的用。他说:老师,我没有信心。那你不会有信心。其实这话讲的就给自己的软弱找了很多的借口,你不是挺软弱吗?把你账号里的钱打到我账号里。他一定说:那不行。哎呀,你挺刚强!为什么?因为吃亏的事那他是不干的。
那如果说软弱,在什么事情上软弱?就是他不知道对自己有益处的,落实神的话上落实不了。他说:老师,我控制不住。我说:你控制得挺好的。非常明显的一个原因:人到底认为什么东西划算?他认为划算的,他立刻就刚强起来了。他认为不划算的,就会说:哎,照你说的,那日子怎么过,那就软弱了。我落实不了,我软弱。什么原因?其实我想告诉大家,就是他不知道什么是有益处的事。
包括我刚才讲的那五岁孩子,他不知道。就是人笨嘛,所以最后还是头猪。就是人要解决聪明的问题。对他有益处的事,他得听明白了,他得知道:这个对我有益处。那他就刚强了。如果他觉得:这个对我没什么太大意思,就像老妈子似的念叨我。那就这样了。所以人得知道,什么东西对自己有益处。
你比如说小孩子,他如果说是真的很软弱,为什么?就知道玩手机,那他就在败坏自己,在那干一些毫无意义的东西。我问你:拿藤条抽一顿以后,他还软弱吗?把藤条挂在墙上,小孩一看到藤条,他就不软弱了。为什么?他肉体就怕敬畏,你知道吗?
人一旦是个属肉体的人就是个兽性,就像没有被驯服的马、没有被驯服的野兽一样。所以要对付兽性,那就是管教。孩子如果养成好习惯了,我告诉你,长大了很省心,他自己就会成长,知道什么东西对他有益处。
我想牧养的时候,不用太体贴软弱。但是问题来了,是什么关系,就说什么话。关系不到,还是别说,说了也没有用的。关系到了,比如像保罗跟提多的关系,那就直话直说,不用绕弯子。所以牧养到了什么关系,就说什么话。如果对方软弱,关系到了,就对付他。
我服侍过一个弟兄挺有意思,他一软弱,他的病情就加重。后来我一训他,他就刚强。后来他就说:“老师,你什么时候有时间?”我说:“干什么?”他说:“训一训我,你训完我了,我就舒服了。”这是我小时候,我妈跟我讲的:是不是要收皮子了?所以,人其实被管教以后,人的灵是舒服的。
Q4:老师,我家孩子说他们老师认为自己有自由选择的权利。
那当然了,我们都有自由选择的权利。问题是什么?如果你在家里头一丁点贡献都没有,白吃、白喝、白住,应该有自由的权利吗?那不是权利,那是福利。如果你想要福利,你就放下你的权利。你要想要你的权利,我就撤掉你的福利。我就在想,家里头一丁点的贡献都没有,然后还要讲究权利?这是什么权利!
Q5:老师,孩子发烧、流鼻涕,我祷告把发烧解决了,但是流鼻涕、咳嗽、精神不好,却没有什么进展。或者说发烧的时候,都不怎么流鼻涕、咳嗽,这是后面才来的鬼,怎么整?
其实不是,发烧感冒是一个鬼,你只干掉了一小半。发烧这个症状,那是人身体的免疫功能。感冒、咳嗽、流鼻涕那实际上是肮脏的东西要往外走,大家千万别搞错了。当然了,它是不是有问题?那里面肯定有问题,里面有肮脏,所以它往外排,里面干净了它不就没这个毛病了吗?
那怎么办?我鼓励你可以考虑、琢磨这孩子身上有哪些恶习。我们祷告,你会发现只解决百分之六七十、七八十的问题。那剩下的问题是什么?剩下的问题是纠正,要纠正他脑子里的想法、要劝诫、要责备、要管教。
Q6:老师,我孩子读高中,每天晚上十点多睡觉,但是常常说睡不够,上课容易打瞌睡,周末一回来就睡觉,这是什么原因?
想都不用想,是不是学习很辛苦?如果学习很辛苦,有几个方面没解决好。第一个方面,是自律做得不好。小孩其实没有学习的自律,他就指望听课。我有一个坏习惯,什么坏习惯呢?我一听课就爱困,我听老师讲课,一会儿我就睡着了。但是我还有个好习惯,我晚上回家读书。但其实也不是说有一个坏习惯配上我那好习惯就好了。
所以说,这孩子白天困,晚上也困,一刷手机打游戏他就不困了。就是从小自律管得不好。我跟你讲,凡是有孩子的,要从小管教孩子守规矩、自律还是非常重要的。那像这样的孩子,能量也不够。大量的方言祷告对他会有帮助,因为方言祷告是我们的能力。
Q7:老师,做一件事就想着做下一件事,这个坏习惯怎么改?
这东西还需要改吗?你的脑袋是你自己的。你做一件事,就专注做一件事,做一件事就想着做下一件事,这东西叫做不专注。小孩儿守规矩,专注,我告诉你:这小孩儿就应该差不了哪里去,学习上也不会差到哪里去。但是做一件事就不专心,再做一件事还不专心,以为自己能够同时处理很多任务,其实是个坏习惯。
怎么改?我告诉你:一旦这个事儿来了,赶紧祷告,神就是我们的力量。我说的,你自己去实践一下,实践好了以后,就知道原来这是个鬼在捣乱,搅扰你。所以一个人要学会抗干扰。
愿神祝福大家!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우리는 《디도서》 2장을 함께 보겠습니다. 이 장의 주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밝히 전하고, 권면하며, 권위로 책망하는 것입니다. 우리 많은 사역자들이 사역을 하다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명확하게 전하지 못하게 되는데, 그중 아주 치명적인 원인 하나는 사람들을 감히 권면하지 못하고 권위로 책망하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역자가 갈수록 산타클로스 같은 호인(좋은 사람)처럼 변해버립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정말 명확하게 전하려면 반드시 육신을 처리해야 합니다. 모든 문제는 사람이 육신의 생각을 따르는 것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육신을 위하고 세상을 사랑하는 것은 매우 부패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명확히 전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반드시 사람을 권면해야 하고, 반드시 권위로 책망해야 하며, 목양에서 반드시 사람의 육신을 다루어야 합니다. 바로 이렇게 단순한 일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디도서》 2:11-14)
많은 그리스도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에 대해 큰 혼란을 겪습니다. “나는 주님을 믿었고, 예수님을 믿었으니, 죽으면 천국에 갈 수 있다.” 정말 그런 것일까요?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채찍 맞으심으로 나타난 은혜이며, 우리의 경건하지 않은 마음과 세상의 정욕을 버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제게 이렇게 말합니다. “아이고, 당신 말대로 하면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제대로 살아갈 수는 있습니까?” 예수님을 잘 믿고 신중하며, 의롭고 경건하게 살아가는 것이 과연 살아갈 수 있는 삶일까요? 제가 말씀드리건대, 여러분은 평범한 사람들보다 훨씬 더 잘 살게 됩니다. 우리 사람에게 있는 문제는 무엇과 관련되어 있습니까? 육적인 정욕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경건하지 않은 마음과 세상의 정욕을 버릴 때, 여러분은 복을 받는 사람이 됩니다.
사람이 저지르는 가장 어리석고 둔한 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위대하고 크신지 모르며,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힘써 지켜 행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혼란스러워하며 묻습니다. “선생님, 말씀하신 믿음이 기초가 아닙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힘써 지켜 행하는 것은 행위가 아닙니까?” 저는 그 말을 듣자마자 이 사람이 혼란에 빠져 있음을 압니다.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이 크고 두려우신 분임을 믿지 않는다면, 무엇을 지켜 행하겠습니까? 그저 자기 방식대로의 것이나 지키며 살아가겠지요. 믿음이 기초임을 알아야 합니다. 믿은 후에는, 진짜 믿는다면 정말로 지키게 됩니다. 여러분이 정말 예수님을 믿으면 복을 받는다고 여긴다면, 그분의 말씀을 힘써 지켜 행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명확히 전해야 합니다. 말씀을 명확히 전하면, 우리는 육적이고 세상적인 정욕을 버리게 됩니다. 육적이고 세상적인 정욕을 버리고 우리는 무엇을 합니까? 우리는 신중하고 의로우며 경건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분명 아주 잘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 사기를 당하지 않고 정상적으로 일하며 경건하게 살아간다면, 여러분은 이미 수많은 사람을 뛰어넘은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툭하면 사기를 당해 한번 당하면 빈털터리가 되고, 지금도 빚을 다 갚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비참하게 살아가는 이유는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쉽게 속는 것입니다. 스스로 똑똑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쉽게 속지 않습니다. 사기꾼이 말을 걸어와도 ‘이건 좀 이상한데, 잘 확인해 봐야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사람이 평생 병에 걸리지 않고, 큰 병을 앓지 않는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을 뛰어넘는 것이겠습니까? 수많은 사람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병원에 가보십시오. 병원에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고, 큰 병 하나면 여러분의 모든 저축이 다 날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 평생 질병과 재앙 없이 산다면 여러분은 90%의 사람을 뛰어넘은 것입니다. 주변 사람들을 보십시오. 암 하나만 걸려도 모든 것이 끝나버립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신중하고 의로우며 경건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수많은 사람을 뛰어넘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저주가 여러분에게 임하지 않고, 하나님의 진노가 여러분에게 임하지 않으니, 평생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을 뛰어넘는 것이겠습니까?
복스러운 소망을 기다리며, 지극히 크신 하나님과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에 대해 오해하여, 죽은 뒤의 일이라고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은 신중하고 의로우며 경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나타납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힘써 지켜 행하고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주신 구원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점점 더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고,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우리에게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을 여러분도 행할 수 있게 되어 하나님의 사람이 됩니다. 단순히 병에 걸리지 않고 무병무재한 수준이 아니라, 저주를 끊어버릴 수 있고, 사람들을 흑암의 권세에서 구원해 낼 수 있으며, 포로 된 자를 자유하게 하고 눌린 자를 놓아줄 수 있게 됩니다. 이는 99%를 뛰어넘는 것이 아니라 99.99%를 뛰어넘는, 만 명 중에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순금에는 9가 네 개 각인되어 있는데, 이는 금의 순도가 99.99%에 달한다는 뜻입니다. 이 금이 얼마나 귀하고 비쌉니까? 예전에 우리가 18K라고 부르던 것은 대략 80% 정도의 금입니다. 24K는 우리가 말하는 순금이지만 사실 98% 정도입니다. 저는 참으로 감회가 깊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존귀한 자, 아주아주 존귀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당신 말대로 신중하고 의롭고 경건하게 살면, 사람들이 우리를 괴롭히고 짓밟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살 수나 있겠습니까?”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돼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돼지에게 진리의 도를 전하면 돼지는 달려와서 들이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진주를 돼지에게 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돼지는 좋은 것을 알아보지 못하고 들이받으니, 썩은 배춧잎이나 던져주는 것이 딱 맞습니다.
본래 우리는 구속함을 받아 모든 죄악에서 벗어나 깨끗하게 되어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 선이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 선과 같은 선일까요? 돼지에게는 돼지의 선이 있고, 개에게는 개의 선이 있으며, 하나님께는 하나님의 선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선은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주고,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며, 사람들을 흑암의 권세에서 풀어주고 가난의 저주에서 건져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선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선은 여기저기 돈을 뿌리고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 “제게 보물을 하나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슨 보물을 원하느냐?”라고 물으시자, 그 사람은 “제가 만지는 것마다 즉시 황금으로 변하게 해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참으로 어리석은 자라, 그대로 주셨습니다. 그 결과 이 사람이 손을 대는 것마다 즉시 황금으로 변했습니다. 빵을 집자마자 황금으로 변하니 먹을 수가 있겠습니까? 배고파 죽겠는데 물을 한 모금 마시려 하자 황금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세상에, 애가 타서 미칠 지경이었고, 결국 미련하게 굴다가 미라처럼 굳어 죽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돈을 원하십니까? 돈을 탐하고 목숨처럼 사랑하면, 사람은 재물 때문에 죽게 됩니다.
전하는 것은 항상 순전한 도리에 합당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은 바로 이 경건의 도리이며,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살아내게 하는 도리입니다. 우리가 전파하는 것은 언제나 이 순전한 도리에 합당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서신에는 몇 가지 주요 주제가 있는데, 첫 번째 주제는 성령으로 육신의 악한 행실을 죽이는 것입니다. 사람이 육에 속하면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세상을 사랑하면 하나님과 원수가 되며, 육신의 생각을 따르면 반드시 죽습니다. 순전한 도리는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내게 하는 도리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명확히 전하여 사람을 권면하고 책망하는 것입니다. 곧 사람의 육신을 처리하는 것이며, 여러분이 전하는 것은 언제나 순전한 도리에 합당해야 합니다.
저는 사도 바울의 서신을 아주 열심히 읽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도 매우 열심히 읽습니다. 여러분이 제가 강해한 《마태복음》, 《누가복음》,《요한복음》, 《마가복음》, 《사도행전》,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를 들어보시면, 사람의 육신을 다루고 처리하는 내용이 아주 많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왜일까요? 사람의 문제는 모두 여기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육에 속하면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화인 사명 신학은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신학이며, 사도 바울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서 온 것으로 우리의 뿌리는 예수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웁니까? 사람의 육신을 처리하고, 사람 안의 경건하지 않은 마음과 세상의 정욕을 버리며, 이 세상에서 신중하고 의롭고 경건하게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사람들을 섬길 때, 특히 죽네 사네 하는 상황에 처했을 때 끊임없이 한 문장을 반복하는 이유입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육은 흙으로 돌아가지만, 하나님이 지으신 영은 영을 지으신 하나님께로 돌아간다.” 제가 지치지도 않고 전하는 것이 바로 이 도리입니다.
저는 기도를 인도하거나 성경공부를 인도할 때마다 바로 이 도리를 전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사람이 여전히 육적이고 세상적인 정욕을 품고 살아가다가 결국 큰 손해를 보고 맙니다.
스스로 본을 보여야 합니다
범사에 네 자신이 선한 일의 본을 보이며 교훈에 부패하지 아니함과 단정함과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게 하라 이는 대적하는 자로 하여금 부끄러워 우리를 악하다 할 것이 없게 하려 함이라 (《디도서》 2:7-8)
선행이란, 다량산이나 소량산 같은 곳에 가서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원촨 대지진 현장에 가서 구호 활동을 하는 것입니까? 그것이 선행입니까? 그것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선일 뿐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의 선행으로 하나님의 선행을 해석하는 오류에 매우 쉽게 빠집니다. 사람이 저주 가운데 살고 있다면 그는 자유로워지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에게 돈을 조금 쥐어주면 그것을 선행이라고 여깁니다. 진정한 선행은 사람을 저주에서 건져내는 것이며, 여러분의 선행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자선과 예수 그리스도의 선은 같은 선이 아닙니다.
범사에 네 자신이 선한 일의 본을 보이며 교훈에 정직함과 단정함을 보이며 (《디도서》 2:7)
이 구절만 따로 떼어놓고 보면, 불교에서는 불교식으로 해석하고, 세상에서는 세상식으로 해석하며, 도덕경에서는 도덕경식으로 해석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구절을 읽는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하신 도리, 즉 맹인이 보고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 환자가 깨끗함을 받고, 죽은 자가 살아나게 하는 참된 도리이며, 이것이 바로 본입니다!
교훈에 정직하고 말을 돌려 하지 말며 단정해야 합니다. 《성경》에는 모두 치유를 받았다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 나아온 자들은 모두 치유를 받았습니다!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정말로 모두 치유를 받았습니다!
그 후 제가 설교를 한 편 했는데, 당시에는 아직 모두가 치유받지 못했던 때라 사람들이 저를 괴물 보듯 했습니다. 늘 ‘모두 치유받는다’고 전하는데 아직 치유받지 못했으니 다들 매우 혼란스러워했습니다. 제가 말한 이것이 정직한 것입니까, 정직하지 않은 것입니까? 제가 전한 것은 정직하고 단정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도리이며, 이것이 바로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선을 하나 긋는다고 할 때, 손으로 그으면 삐뚤빼뚤해져서 아무 쓸모가 없지만, 레이저 측정기로 레이저를 쏘면 반듯한 직선이 나옵니다. 바르고 곧습니다. 우리가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의 기준에 따라 행하다 보면, 점점 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갖추어 가게 됩니다.
어떤 목회자들은 교회를 세웠는데, 그 교회 성도들이 화인 사명 신학의 말씀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듣다 보니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 목사님이 전하는 말씀이 참 좋고, 명쾌하여 이해하기 쉽다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자기 교회 목사님의 설교를 다시 들으니 머리가 지끈거리고 도저히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빙빙 돌려 말하고, 정직하지도 단정하지도 않으며, 말이 순전하지 못해 여기저기 흠잡을 데투성이였기 때문입니다.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게 하라 이는 대적하는 자로 하여금 부끄러워 우리를 악하다 할 것이 없게 하려 함이라 (《디도서》 2:8)
왜 그 사람들은 사도 바울과 시비를 가릴 수 없었을까요? 사도 바울이 전한 도리와 말씀은 지혜롭고 설득력 있는 말로 한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의 능력의 나타남으로 증명했기 때문이며, 그는 정직하고 단정하여 책망할 것이 없었습니다. 꼬투리를 잡으려 해도 사도 바울은 말한 것을 그대로 행했고, 디도 역시 말한 것을 그대로 행하지 않았겠습니까? 이는 바울이 단순히 격려한 것이 아니라, 그가 말한 것이 곧 그가 행한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가 제게 따지듯 물었습니다. “선생님, 모두 치유받는다고 하셨는데, 당신이 기도하면 다 낫습니까?” 제가 말했습니다. “이 미련한 사람아, 그것은 기준입니다. 내가 그 기준을 향해 달려가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은 비록 다 낫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그렇게 될 것입니다!” 일을 볼 때는 흐름과 추세를 보아야 합니다. 처음에는 열 명을 위해 기도하면 한 명이 낫더니, 계속 사역하다 보니 두 명이 낫고, 그다음에는 다섯 명이 낫고, 결국에는 열 명 중 여덟 명이 치유를 받았습니다. 왜일까요? 제가 ‘모두 치유받는다’는 것을 믿기 때문에, 끊임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기준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떤 목사들은 온종일 말을 빙빙 돌리며 성도들을 데리고 엉뚱한 소리를 합니다. 예를 들어 요즘 ‘무속/마술’에 관한 학설 같은 것이 있어서, 어떤 목사는 누가 뒤에서 마술을 행해 자기를 공격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며 사람을 혼란케 하는 온갖 것들을 믿습니다. 암 환자를 위해 기도해 주고 나서는 또 정결 기도를 해야 한다고 하는데, 《성경》에는 그런 가르침이 없습니다. 정결 기도를 안 하고 집에 가면 이것저것 걱정하고 두려워하는데, 이것이 다 무슨 해괴한 궤변입니까? 이것이 어찌 정직하고 단정한 도리이겠습니까?
권면하라
우리가 《디도서》 2장을 읽을 때 잔소리 많은 노파의 권면을 늘어놓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제가 앞에서 말씀드린 이 세 가지입니다.
늙은 남자로는 절제하며 경건하며 신중하며 믿음과 사랑과 인내함에 온전하게 하고 늙은 여자로는 이와 같이 행실이 거룩하며 모함하지 말며 많은 술의 종이 되지 아니하며 선한 것을 가르치는 자들이 되고 그들로 젊은 여자들을 교훈하되 그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며 신중하며 순전하며 집안일을 하며 선하며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게 하라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너는 이와 같이 젊은 남자들을 신중하도록 권면하되 범사에 네 자신이 선한 일의 본을 보이며 교훈에 부패하지 아니함과 단정함과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게 하라 이는 대적하는 자로 하여금 부끄러워 우리를 악하다 할 것이 없게 하려 함이라 종들은 자기 상전들에게 범사에 순종하여 기쁘게 하고 거슬러 말하지 말며 훔치지 말고 오직 모든 참된 신실성을 나타내게 하라 이는 범사에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려 함이라 (《디도서》 2:2-10)
언뜻 들으면 잔소리처럼 들리지만, 이 말씀들은 도덕 규범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권면은 사실 꽤 엄격한 일로, 이러한 것들을 통해 세상적인 것들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절제, 단정함, 신중함, 믿음, 사랑, 인내, 흠 없이 온전함, 공경함, 헐뜯지 않는 것 등은 모두 성령의 성품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점점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내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세상을 사랑하지 않고 돈에 의지해 살지 않으며 하나님을 의지해 산다면, 물건을 훔치거나 가로챌 필요가 있겠습니까? 세상에서 종의 신분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내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종, 젊은 남자, 늙은 남자, 늙은 여자, 젊은 여자 등 이러한 예를 들어 디도에게 권면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명확히 전하고, 권면하며, 권위로 책망하라
이 말씀은 사람의 육신을 철저히 처리하고, 육적인 정욕을 다루며, 그 안에 있는 세상적인 논리 체계를 무너뜨리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행할 때 신기한 일이 일어납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역사하셔서 다른 사람의 마음속 은밀한 일들을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사람 마음속의 은밀한 일이 어떻게 드러납니까? 병이 나고, 괴로워집니다. 머리가 아프고, 엉덩이가 아프며, 등 뒤의 신경이 당겨오고, 다리의 신경이 당겨옵니다. 하나님의 기준에 따라 사람을 권면하고, 권위로 책망하며, 육신을 처리하고 세상적인 논리 체계를 무너뜨릴 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역사하사 사람 마음속의 은밀한 일을 드러내십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그 사람을 온전히 세우게 되고, 큰 선한 일을 행한 것이며, 참으로 선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저주와 하나님의 진노, 질병의 고통에서 해방시키고 재앙에서 건져내게 됩니다. 바로 이렇게 단순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살아내게 하시고, 신중하고 의로우며 경건하게 살아가며 복스러운 소망과 하나님과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복 주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