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장의 주인공은 아합 왕의 아들 아하시야입니다. 아합이 죽은 후 아하시야가 이스라엘의 왕위를 이어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하시야라는 인물을 통해 우리에게 어떤 도리를 계시하실까요? 선생님은 이 장에서 아하시야를 분석하여,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어리석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우리에게 밝혀 주십니다!
생각해 볼 문제:
아하시야는 어디에서 어리석었습니까? 그의 결말은 어떠했습니까?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어떤 특징이 있습니까?
아하시야를 통해 어떤 깨달음을 얻었습니까?
《열왕기하》 1장에 제목을 붙인다면 “어리석은 사람은 모두 죽는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죽을 뿐만 아니라 매우 비참하게 죽고, 아무도 그들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아하시야는 매우 어리석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아버지 아합이 겪은 일을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아합은 전쟁터에서 적에게 발각되지 않기 위해 평범한 사람으로 변장했지만, 결국 적이 무심코 쏜 화살에 맞아 죽었습니다. 엘리야가 아합에 대해 선포한 선지자의 예언도 매우 분명했지만, 아하시야는 그것을 모두 잊어버렸습니다. 아하시야의 어리석음이 정말 안타깝습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이처럼 어리석은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됩니다.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말라
어리석은 사람은 반드시 죽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왜 어리석은 사람을 만드셨는지 하나님께 물을 자격이 없습니다. 《성경》은 한 가지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바로 왕이라 할지라도 어리석으면 매우 비참하게 죽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어리석음은 세상적인 어리석음이 아닙니다. 정치가처럼 영리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영적인 지혜에 관한 것입니다. 영적인 어리석음은 반드시 죽음을 가져옵니다! 아하시야는 왕이 된 지 2년이 되었고, 첫해가 지나고 얼마 동안은 왕 노릇을 하는 것이 괜찮다고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그는 분수를 잊고 하나님도 잊어버렸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을 자세히 읽어 보면, 갑자기 죽은 사람들은 대부분 마음속에서 죄가 자라난 사람들이었습니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습니다(《야고보서》 1:15). 죄가 다 자라면 사망의 영을 불러들이고, 사망의 영을 불러들이면 악한 영도 들어오게 됩니다. 아하시야가 난간 위에 서 있다가 살짝 기대었을 때, 다른 사람이 밀어도 끊어지지 않을 난간에서 그가 기대자마자 떨어진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사람이 가진 첫 번째 어리석음입니다. 바로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것입니다. 자신의 수명이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시편》에서 모세는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편》 90:12). 모세는 자신의 생명이 길지 않으며, 자신이 사실 매우 제한적인 존재이고 하나님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삶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많은 사람은 자신에게 하나님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모르고 매우 교만하게 행동합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사람은 생각하려 하지 않습니다. 죽음이 눈앞에 닥쳐도 자신의 생명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지 못합니다. 이것이 사람의 두 번째 어리석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은 어리석게, 어떤 사람은 지혜롭게 만드셨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아하시야를 읽어 보면 그가 바로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비슷한 상황이나 어떤 사고가 일어났다면, 우리 안에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다루어야 합니다. 우리 안에 교만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것을 다루어야 합니다. 그리고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면 곧 회복될 수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아하시야에게 모두 다섯 번이나 회개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아하시야가 회개할 수 있었던 첫 번째 기회
아하시야가 난간에서 떨어졌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의 안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경고하시며 회개하라고 하셨습니다. 재앙이 닥치고 환난 가운데 있을 때, 사람은 자신에게 어떤 문제가 남아 있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는 떨어진 후에 더욱 어리석어졌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에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선지자 엘리야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와 같은 선지자는 지금까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엘리야를 찾아가지 않고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사람을 보내 물어보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행하시는 일은 엘리야의 때와 비교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우리 가운데에도 많은 기사와 이적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한 형제의 어머니는 암을 앓고 있었는데, 2년 전에 우리가 그녀를 위해 기도하여 나았습니다. 그때 그녀가 계속 우리와 함께 기도했다면 지난 2년 동안 얼마나 건강하게 지낼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당시 그녀는 떠나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그래도 주님께 감사한 것은, 그녀가 아하시야처럼 끝까지 어리석지는 않았고 다시 우리 가운데로 돌아왔다는 사실입니다. 아하시야는 어리석음의 극치였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가운데 가장 위대한 선지자 엘리야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에게 도움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기회: 사람은 죽음을 마음에 두어야 한다
좋은 기름보다 좋은 이름이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 (《전도서》 7:1-2)
《성경》은 사람이 죽음이 무엇인지 생각하도록 자주 가르칩니다. 《전도서》의 말씀은 매우 좋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이 죽음을 마음에 두지 않는다면, 기본적으로 매우 어리석은 상태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람이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려면 자신의 생명이 길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이 풀과 같고 풀은 반드시 시들며, 우리도 반드시 넘어지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안다면 생명을 소중히 여기게 되고, 이 세상에서 우리로 하여금 영생을 얻게 하시는 하나님과 삶의 모든 아름다운 것을 얻게 하는 방법을 찾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것들을 경험할 수 있다면, 생각하기를 원하고 죽음을 마음에 두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이 아름다운 것을 나누어야 합니다. 우리는 죽음을 마음에 두지 않는 많은 사람을 만납니다. 그러다가 죽을 때가 되면 당황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죽음을 마음에 두어야 합니다. 아하시야가 자신이 죽음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았다면 회개할 기회가 아직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이 두 번째 기회도 붙잡지 못한 것입니다.
세 번째 기회: 첫 번째 오십부장의 죽음
세 번째 기회는 아하시야가 오십부장을 엘리야에게 보낸 일이었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죽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살기를 원하십니다. 엘리야가 아하시야에게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말한 것은 아하시야가 죽음을 마음에 두고 돌이켜 하나님을 찾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그의 아버지 아합에게도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아합이 굵은 베로 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며 자신을 낮추고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자, 하나님께서는 “아합 왕이 내 앞에서 겸비하였은즉 내가 재앙을 저의 시대에는 내리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열왕기상》 21:27-29 참조).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죽는 것을 원하지 않으시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하시야에게 그가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아하시야를 자극하여 깨어나게 하려 하셨지만, 그는 여전히 깨어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일을 자주 만납니다. 그가 곧 죽을 것이라고 말해 주어도 그 사람은 여전히 마음에 두지 않습니다. 첫 번째 오십부장이 파견되었고, 아하시야는 이미 침상에 누워 있으면서도 교만하게 그들에게 엘리야를 잡아 오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는 엘리야를 죽이면 혹시 살아날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엘리야를 죽인다고 어떻게 살아날 기회가 생기겠습니까? 그를 죽게 한 것은 바로 그의 어리석음이었습니다. 결국 첫 번째 오십부장은 매우 교만하게 나아갔고, 불이 내려와 그들을 태워 죽였습니다. 그들은 엘리야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지만 여전히 그를 그렇게 무례하게 대했습니다. 이 오십부장은 아하시야의 어리석음을 그대로 이어받아 어리석음 가운데 죽었습니다.
네 번째 기회: 두 번째 오십부장의 죽음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아하시야였고, 두 번째로 어리석은 사람은 아하시야의 첫 번째 오십부장이었으며, 세 번째로 어리석은 사람은 이 두 번째 오십부장이었습니다. 두 번째 오십부장도 엘리야에게 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여, 내려오소서.” 그들에게는 존경심이 전혀 없었습니다! 앞서 오십부장이 불에 타 죽은 것을 그들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알고서 이렇게 행동했으니, 이런 사람은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만일 우리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우리는 앞선 오십부장이 불에 타 죽은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잘 물어보아야 합니다. 두 번째 오십부장의 운명도 첫 번째 오십부장과 거의 같았습니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왔고, 그 오십 명은 모두 죽었습니다.
이 오십 명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지혜로운 사람이 있었다면 그 오십 명을 구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그들의 지도자에게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안 됩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앞서 간 오십 명이 모두 죽었으니, 우리도 그들처럼 죽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그 오십 명은 이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살아서 집에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고, 앞서 일어난 일은 우연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번에도 우연한 일이 그들에게 닥쳤고, 그들은 집에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죽지 않습니다. 사람은 흔히 어리석음 가운데서 죽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하시야에게 다섯 번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첫 번째 오십부장이 죽은 후, 그때 아하시야가 회개하고 직접 하나님의 사람을 찾아가 그 앞에서 굵은 베를 입고 재를 뒤집어쓰며 하나님의 긍휼을 구했다면 문제를 해결하고 죽음을 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하시야는 이 기회를 붙잡지 못했습니다.
다섯 번째 기회: 엘리야를 직접 모셔 오다
두 번째 오십부장의 죽음은 네 번째 기회였습니다. 두 번째 오십부장이 죽었을 때 아하시야가 회개하기를 원했다면 여전히 기회가 있었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두 번째 오십부장을 불태워 죽이신 것은 아하시야가 깨어나기를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깨어나지 못했습니다. 세 번째 오십부장이 엘리야를 모셔 온 후, 이때 아하시야가 마지막 기회를 붙잡아 진심으로 회개하고 엘리야에게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자신을 위해 간구해 달라고 하며 살려 달라고 구했다면, 하나님께서도 아하시야를 용서하셨을 것입니다.
결론: 마음이 완고한 사람이 되지 말라
하나님께는 풍성한 긍휼과 넘치는 은혜와 사랑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마음을 이렇게 완고하게 하지 맙시다. 사람은 모두 자신의 완고한 마음 때문에 죽습니다. 아하시야는 한 번의 기회도 붙잡지 못했고, 결국 자신의 어리석음 가운데 죽었습니다. 우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이 《성경》 본문을 읽고 하나님이 너무 잔인하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오십 명을 그렇게 불태워 죽이실 수 있느냐고 말입니다. 그러나 사실 이 오십 명은 불에 타 죽지 않았더라도 다른 방식으로 죽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관념은 변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10년, 20년을 살다가 죽는 것과 30년, 50년을 살다가 죽는 것, 70년, 80년을 살다가 죽은 뒤 결국 지옥에 떨어지는 것은 하나님께 동일한 일입니다. 이것이 성경에 부합하는 관점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 모두에게 죽음을 마음에 두라고 권면합니다.
내가 이 모든 일을 마음에 두고 자세히 살펴보아 의인들이나 지혜자들이나 그들의 행위나 모두 다 하나님의 손 안에 있음을 알았나니 사랑을 받는 것도 미움을 받는 것도 그들의 앞에 있는 일이지만 사람이 그것을 알 수 없느니라. (《전도서》 9:1)
우리 모든 사람의 행위가 하나님의 손 안에 있기를 바랍니다.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 자세히 살펴봅시다. 죽음이란 무엇입니까? 아하시야는 왜 갑자기 난간에서 떨어졌습니까? 이 사람이 병든 것은 어떻게 된 일입니까? 암은 무엇 때문입니까? 몸이 매우 약해져 집안일을 할 수 없는 것은 어떻게 된 일입니까? 자세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한 사람이 살펴볼 수 없다면 우리 함께 살펴봅시다. 그러면 우리 모두 지혜로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관념은 정말로 변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정신적인 의지가 아니라, 우리의 생명과 호흡과 존재가 모두 우리의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믿음입니다!
성경 본문
2Ki 1:1 아합이 죽은 후에 모압이 이스라엘을 배반하였더라.
2Ki 1:2 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 있는 그의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들매 사자들을 보내며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가서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내가 이 병에서 낫겠나 물어보라 하니라.
2Ki 1:3 여호와의 사자가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이르되 너는 일어나 올라가서 사마리아 왕의 사자들을 맞이하여 그들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가서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
2Ki 1:4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엘리야가 가니라.
2Ki 1:5 사자들이 왕에게 돌아오매 왕이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돌아왔느냐
2Ki 1:6 그들이 왕께 대답하되 한 사람이 우리를 맞이하여 우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너희를 보낸 왕에게 돌아가서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네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보내느냐 그러므로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2Ki 1:7 왕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를 맞이하여 이 말을 너희에게 한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더냐
2Ki 1:8 그들이 그에게 대답하되 그는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었더이다 하니 왕이 이르되 그는 디셉 사람 엘리야로다.
2Ki 1:9 이에 왕이 오십부장과 그의 부하 오십 명을 엘리야에게 보내매 오십부장이 올라가서 산꼭대기에 앉아 있는 엘리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왕께서 말씀하시기를 내려오라 하셨나이다.
2Ki 1:10 엘리야가 오십부장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면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너와 너의 오십 명을 불사를지로다 하매 불이 곧 하늘에서 내려와 그와 그의 오십 명을 불살랐더라.
2Ki 1:11 왕이 다시 다른 오십부장과 그의 부하 오십 명을 엘리야에게 보내매 그가 올라가서 엘리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왕께서 속히 내려오라 하셨나이다.
2Ki 1:12 엘리야가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면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너와 너의 오십 명을 불사를지로다 하매 하나님의 불이 곧 하늘에서 내려와 그와 그의 오십 명을 불살랐더라.
2Ki 1:13 왕이 세 번째로 오십부장과 그의 부하 오십 명을 보냈더니 세 번째 오십부장이 올라가서 엘리야의 앞에 이르러 무릎을 꿇고 간구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원하건대 나의 생명과 당신의 종인 이 오십 명의 생명을 당신의 눈앞에서 귀하게 보소서.
2Ki 1:14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전번의 오십부장 둘과 그들의 부하 오십 명씩을 불살랐거니와 이제 나의 생명을 당신의 눈앞에서 귀하게 보소서 하매
2Ki 1:15 여호와의 사자가 엘리야에게 이르되 너는 그를 두려워하지 말고 함께 내려가라 하신지라 엘리야가 일어나 그와 함께 내려가 왕에게 이르러
2Ki 1:16 말하되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사자들을 보내어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려 하니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물으려 함이냐 그러므로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나이다.
2Ki 1:17 왕이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대로 죽고 그가 아들이 없으므로 그의 동생 여호람이 대신 왕이 되니 유다 왕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의 둘째 해였더라.
2Ki 1:18 아하시야의 남은 행적은 모두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열왕기하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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