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答疑解惑》
Q1:我做事总是三天打渔,两天晒网。三天好好学习干家务,两天放纵躺着刷手机,心里空虚难受又悔改,然后又好好学习。这样的循环我从小到大,都是类似,我到底应该怎么办?
我告诉你应该怎么办,人属肉体的东西是非常败坏的,一个人身上属肉体的东西时常胜过我们,我们也时常胜过它们。三天打渔两天晒网,应该是比两天打渔三天晒网好。我们可以先立个小目标:就是三天半打渔,一天半晒网,就是不断地多坚持半天。刷手机的时候就告诉自己:我要停止!能坚持一分钟,就能坚持两分钟;能坚持两分钟,就能坚持一小时;能坚持一天就能坚持两天,就能走在坚持的路上。
要克服这样的事情,就是别想着要一下子解决,而是一点一点地解决。本来是一天打渔四天晒网,后来是两天打渔三天晒网,再后来是三天打渔两天晒网,就照这个趋势往下走了。千万不要一下子就想解决问题。我们里面天然的喜好是相当败坏的,那要怎么办?我告诉大家,一定要靠神的灵。大量的方言祷告之后,想刷手机的感觉就不会那么强烈了,神的灵会让你觉得刷手机不好玩,所以要追求一点一点地对付。
Q2:公司给我一个任务,给阿根廷政府讲中国的五年规划。但是我没做过,我开始有想逃避的想法,很惧怕。这几天紧张得睡不着觉,头疼、眼疼,这是不是不信靠神?信靠神是不是要勇于尝试,错了也没关系,我的问题出在哪里?
你的问题出在无知。我问你,你跟阿根廷政府讲这些,他们能懂多少?比如说,我不怕跟你讲日语,但是我怕跟日本人讲日语,因为他们懂日语。人最怕的就是无知,我们里面经常有无知的东西。如果你跟我学了电脑之后,你可以去跟完全不懂电脑的人随便讲,因为他啥也不懂,很容易。人不知道是啥就开始害怕,他们为什么不找一个领导讲?那是因为领导讲的话太深,他们听不懂,所以就找你这种嫩青嫩青的讲,或许别人还能听得懂。
我们当中很多人,尤其是姐妹,一做新事像杀猪似的,这类的例子可多了。有一次,我们教会的一个姐妹,要去开一个他们行业的技术会议。我说:那多好啊!往酒店里头一住,吃睡都挺好,你就开开心心地去吧,好好地休息休息。她说:那不行!会后还得发言呢!我说:会后发言,你以为可以让你做三个小时的报告?人家没那舞台。她却写了好几篇稿子,准备得很累。回来了以后,我说:怎么样?她说:哎呀!其实只给我两分钟时间讲话。我问你:你两分钟能讲啥?两分钟就讲点官话,你能有什么压力?
还有个姐妹进来就垂头丧气的,我问她咋了?她说:哎呀!最近压力特别大,我受不了啦!我说:来我这!你要做些什么事告诉我,我是专家,绝对可以帮助你。我让她依序写下第一件、第二件、第三件事分别是啥,第一件事应该怎样做,需要多长时间,然后第二、第三件都照这样去思考解决。我跟她梳理以后发现,做第一件需要两小时,第二件事需要两天、第三件事大概也就半天时间,一个礼拜一共五天,压什么力?她说:老师啊,你说了以后我也觉得奇怪,我哪来的压力?
我告诉你,压力就是因为混乱。其实也没干啥,却累得够呛。还有压力吗?给阿根廷人讲,想讲啥讲啥,别讲离谱就行,千万别给自己挖坑,只要都在道上就行。如果一个小时,咱讲一个小时;如果三个小时,咱讲三个小时;如果讲三天,咱按着三天的结构来讲。但是人家应该也没那么长时间听。
Q3:我怎么衡量自己变成新人了?
这很简单,你到底创造了什么价值?祝福了多少人?服侍和造就了多少人?就可以做衡量了。如果说啥也没干,就光管自己那点事,还不觉得亏欠,那也挺要命的。那另外一个就是,人要变成了一个新人以后,就常常觉得服侍、奉献、给出去都是理所应当的。
人开始常常要学习解决问题,因为解决问题人就会成长。所以工作实际上是一个舞台,还给咱钱,让咱们去成长,你说这不挺好吗?别把机会给糟蹋了,多去解决问题。如果你说在企业里头我没有人管,那没关系,咱教会里有的是,你好好服侍吧!人要想解决问题总能够想到办法。你解决别人的问题,刚好反思我们自己,反思了以后我们就不断在更新,一点一点更新。只要你在更新的路上,神就天天帮助你。
Q4:若有人在基督里就是新造的人,这样的过程是一次性的、还是每一天都该做的?心意更新而变化,是要变化到什么境界呢?
在基督里是个新造的人,造完了吗?没造完。亚当是不是新造的?是的。造完了吗?造完了。但是,他是新的吗?不是,因为神给他工作,他也没干,他得继续不断地做。这不是一次性的问题,而是要一直不断地更新变化。就像你读了小一、小二、小三,然后读完小学,读中学,再读大学,大学毕业了以后就做工。你要变化到什么境界呢?要变化到像耶稣,满有耶稣基督的身量。如果你离耶稣基督的身量差得十万八千里,再多跑一百米也挺好。千里之行,始于足下,开始一点一点地改。
Q5:如果我不把自己累够呛,做到极致,就觉得没有竭力追求、心里亏欠,这怎么办呢?
你如果用砸时间来衡量,那就麻烦了!咱得按着东西的有效性来衡量。如果砸时间才能做到极致,那就麻烦了!你什么时候看过砸时间就能做到极致的?没有!因为往里砸时间是脑袋在晕圈的状态。人需要平静安稳、归回安息,人需要梳理及整理。我常常教大家做事要归纳、整理、抽象、总结,但是,我们常常忙得像个无头苍蝇似的,那怎么行呢?我最不喜欢的就是瞎干。
前几天我把一个姐妹训了一顿,她在写一个学校考试成绩总计的程序,目的是可以看学生哪一个是弱点,哪一个是强项。我就看见她一直在刷鼠标,一会儿就半个小时过去了。我就很奇怪,这样能刷出个啥来?原来她在竭力刷鼠标。我要让大家清楚地知道一件事情,就是当我们对事情看不明白,觉得混乱的时候,就要停下自己的脚步,再把整个东西从头到尾梳理梳理,总结总结,归纳归纳。这就叫聪明!
Q6:我每天上班前都在想:我要在遇到的调整中成长,我的命定是成为服侍别人的人。进入工作后,这个概念越来越弱,越来越看重工作,还识别善恶,计较,到晚上听课反思起来,又认识到自己整错了,觉得自己挺脱节,咋办?
我们人里面有两套逻辑体系,旧的那一套逻辑体系已经根深蒂固,新的逻辑体系还没有完全建立起来,遇到事情直接的反应就是一个旧人,新人一整就被旧人干趴下了。查经的时候新人刚露出头来,第二天一上班,旧人又回来了。所以,人一生都要治死肉体的恶行。我们为什么会那样反应?因为,我们人不会干我们认为吃亏的事,都找自己认为划算的事干。如果我们认为这是吃亏的,那我们就不会这么干了,问题就出在我们觉着我们的神帮不了我们。
前几天我在服侍一位姐妹,这个姐妹我用了七八年时间来改变她,可是七八年过来也没有什么改变,直到出了肛瘘的问题,长出了很多痔疮,她这时候开始想起来是自己的问题了。我鼓励大家不要得了癌症,才想起来改,要学聪明,不要再害自己。你的逻辑体系要越来越像神,你的反应就越来越敏锐。以后别再干吃亏的事,体贴肉体、识别善恶、爱世界都是吃亏的事情。如果你知道这是在害你自己,你就不会那么干了。
Q7:魔鬼总能进入我的梦里释放谎言,每次起来心情都很低落,然后祷告就好了。这个魔鬼在梦里骗人真的很讨厌,怎么一直对付不掉呢?是神在操练我吗?
如果你住在铁路的旁边,火车经过的时候你肯定能够听得到,火车拉笛的声音你想听也听得到,不想听也听得到。因为人属于在半得胜与不得胜之间,鬼想往你的梦里面放啥都行。所以我们要从半不得胜到半得胜,再到完全得胜,就好办了。后来鬼发现在你身上整这些没用,就不整了,以后就不要再中这样的诡计。
Q8:做旧的事怎么依靠神?还是说每次都要找点新的东西做做,更新更新,让自己处于依靠神的状态?
我们神是做新事的神,人也要成为做新事的人,如果你一直做旧事,你慢慢就会成为一个旧人。人的心思意念必须不断更新而变化,人停止了更新变化,就停止了经历神。如果你做一件事情要花一个小时,改进以后你半个小时就可以搞好,我问你:这是做新事还是做旧事?我们可以是旧事新做。事情可能没有改变,但是方法和工具改变了,做事情的效率可以增长两倍、五倍,甚至十倍,这样你就会有更多的时间去学习新东西。啥叫旧事?旧事还可以新做呢!
1.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새 사람이 되는 것이다
- 사람이 새 사람이 되려면 핵심은 사람 안에 있는 것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바뀌기를 원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행하시는 일은 사람이 구하고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뛰어납니다!
-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사람은 허망합니다. 사람이 새 사람이 될 수 있는지는 결국 사람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뜻 안에 있는 쓰레기를 제거하기를 원하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 사람은 새 사람이 되기를 갈망해야 합니다. 새 사람은 하나님을 닮은 사람이고, 따지지 않는 사람이며, 내어주는 사람이고, 자신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입니다!
2.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다
- 하나님은 신실하시며, 하나님의 인내는 사람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큽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이 어떤 사람인지 아셨음에도 그에게 은혜를 충분히 베푸셨습니다!
- 사람이 하나님께로 돌이킬 때마다, 하나님을 부를 때마다 하나님의 구원을 받습니다! 사람은 절대로 한순간에 하나님을 잊어버려서는 안 되고, 절대로 완고해져서는 안 됩니다!
3. 자신을 의지하는 것은 옛 사람이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새 사람이다
- 사람은 자신을 의지하기 좋아하거나 다른 사람을 의지하기 좋아하지만, 자신도 사람도 의지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두려움으로 가득 차고 속이 매우 괴롭습니다.
- 하나님을 의지하려면 하나님의 논리 체계가 있어야 합니다. 과거에 중요하게 여기고, 따지고, 흠잡던 것을 내려놓고, 늘 자신이 빚진 사람이라고 여기며 항상 내어주어야 합니다.
- 이제부터 자신을 죽은 사람으로 여기십시오. 이제 사는 것은 내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4. 결론
- 우리가 이기적인 논리 체계를 바꾸고, 살려고 발버둥 치며 죽음을 두려워하는 논리 체계를 바꾸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도움이 되어 주십니다!
- 더 이상 자신도, 다른 사람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과거에도 통했고, 지금도 통하며, 앞으로도 통할 것입니다! 언제 하나님을 의지하든 그때마다 마음이 평안합니다!
핵심 단어
- 따지지 않음
- 내어줌
- 새 사람이 됨
- 신실하신 하나님
- 자신을 의지함
- 자신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음
- 오직 하나님만 의지함
- 늘 자신이 빚진 사람이라고 여김
- 이기적인 논리 체계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새 사람이 되는 것이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사무엘상 10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장은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요? 사실 이스라엘 백성이 사무엘에게 자신들을 다스릴 왕을 세워 달라고 요구했고, 결국 하나님께서 실제로 그들에게 왕을 세워 주신 이야기입니다. 이 일이 진행되는 과정은 상당히 극적입니다. 이 이야기는 도대체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 주는 것일까요? 중국인 명정신학의 성경공부 방식에 따라 이 장의 주제를 하나 정해 보겠습니다. 바로 “새 사람이 되어야 한다!”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우리 모두가 새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여러분이 새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것과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새 사람으로 만드시는 것은 별개의 일이라는 점입니다. 새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여러분 안에 있는 것이 바뀌어야 합니다. 겉모습이 바뀌었다고 해 봅시다. 성형수술을 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겉모습만 바꾼 것일 뿐입니다. 진짜 사람은 사실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사람 안에 무지와 어리석음이 있으면 결국 여전히 무지하고 어리석습니다. 겉모습이 잘생기고 예뻐져서 바람을 가르며 걷고, 하이힐과 청바지를 입어 멋져 보여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 사람 안에 있는 것이 무엇이든 그는 여전히 그대로입니다! 사람이 새 사람이 되는 것이 겉모습에 달려 있다면 우리 모두 성형수술을 하면 됩니다. 그러면 모두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사람이 새 사람이 되는 데 결정적인 요소는 정말 자기 자신에게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새 사람이 되었습니까?
우리 가운데서는 하나님을 경험하지 않으면 살아가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무엇이 새로워졌습니까? 모든 것이 낡아진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 모두가 새 사람이 되어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새로운 피조물이 되기를 원한다면, 새로운 피조물은 도대체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여러분은 자신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생각합니까? 새로운 피조물은 어떤 모습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람 안의 관념이 바뀌지 않으면 새 사람이 되기 어렵습니다.
제가 마침 말기 암 환자 한 분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매우 고통스럽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항문으로 대변을 볼 수 없어서 의사가 배에 구멍을 내 주었습니다. 사실 저는 오늘 처음 그분을 섬긴 것이 아니라 이전에도 섬긴 적이 있었습니다. 지난번부터 이번까지 섬기면서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분을 데리고 기도하는 일이 정말 힘들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새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변했습니까? 그분이 입을 열어 말하기만 하면 안에 있는 방식은 여전히 그대로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분을 한바탕 책망했습니다. 왜 책망했을까요? 사람이 이렇게까지 병들었는데 왜 책망했을까요? 그 사람 안에 있는 것이 자기 자신을 망치는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를 섬길 수도, 세울 수도 없습니다.
저는 모든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우리처럼 섬기는 사람들도 모두 바뀌어야 합니다. 그분의 소그룹 형제자매들이 그분을 섬기고 있었는데, 섬기던 사람이 여행을 갔다가 비가 온 뒤 무지개를 보고 사진을 찍어 그 환자에게 보냈습니다. “자매님, 이것은 하나님께서 자매님과 세우신 언약입니다. 언약의 무지개입니다.” 이게 순전히 말이 됩니까? 우리는 자신이 언약 안에 있는지 언약 밖에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그것을 보낸 사람이나 받은 사람이나 머릿속에서 새 사람이 되었습니까? “무지개의 언약으로 하나님께서 당신을 기억하신다”는 말은 순전히 엉터리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안이 정말 새 사람이 되었습니까?
한번은 제가 한 형제와 함께 어떤 사람을 섬겼는데, 그 사람 안에 매우 심각한 우울증 문제가 있었습니다. 사실 우울증이든 암이든 사람의 생각과 뜻은 상당히 더럽습니다. 그 더러움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큽니다. 그런데 그 사람을 섬기던 형제가 말했습니다. “제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 뒤에 서서 당신의 머리를 만지고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됐습니다, 그만합시다! 정말 예수님께서 그의 머리를 만지셨다면 그가 지금처럼 엉망인 모습으로 있겠습니까?” 아마 잘못 본 것 같습니다. 그것이 진짜 예수님인지 가짜 예수님인지 누가 알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새 사람이 되는 것이지만, 새 사람이 되는 핵심은 여전히 우리 자신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은 얼마나 신실하신 분입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 안의 쓰레기를 치우고, 생각과 뜻 안의 쓰레기를 치우십시오. 어떤 때 제가 사람들의 머릿속이 온통 똥으로 가득하다고 말하면 그들은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왜 욕을 하세요?”라고 합니다. 저는 그저 사실을 말했을 뿐입니다! 우리 가운데 성경공부를 하는 분들은 자신에게 자세히 물어보십시오. 여러분은 어느 부분이 새로워졌습니까? 여러분은 우리 가운데서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그것도 조금 경험한 것이 아니라 사울이 경험한 것과 거의 같은 정도로 경험했습니다.
여호와의 영이 크게 감동시키시리니 너는 그들과 함께 예언을 하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되리라.(사무엘상 10:6)
사울이 사무엘에게서 떠나려고 몸을 돌이킬 때에 하나님이 새 마음을 주셨고 그날 그 징조가 다 응하니라.(사무엘상 10:9)
사무엘이 사울에게 “너는 새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고, 하나님께서는 실제로 그에게 새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새 사람이 되었습니까? 아닙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어떻게 새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왜 사울은 새 사람이 되지 못했을까요? 문제는 간단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실 일은 이미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겠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 마음을 주셨으니, 사람이 안에서 변화하기를 원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도우십니다.
아담과 하와가 막 창조되었을 때는 우리가 찐빵을 막 쪄서 찜통에서 꺼냈을 때처럼 김이 모락모락 날 정도로 새로웠습니다! 그들은 매우 새로웠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창조되었을 때 얼굴에는 주름 하나 없었고 온몸에서 빛이 났으며, 매우 아름답고 영적이었고, 일도 잘하고 모든 일을 잘했습니다. 정말 새로웠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들은 순식간에 낡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새 사람이 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책임은 하나님께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시지만 사람은 모두 허망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섬기던 암 환자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저는 그 사람이 상당히 게으르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쓸데없는 일만 잔뜩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제가 컴퓨터 한 대를 그에게 주었습니다. 원래 제가 쓰던 컴퓨터였는데, 그에게 글 사역을 배우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다 말고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제가 성경공부를 인도하라고 하면 이곳저곳 여행을 다녔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됐습니다. 그만합시다. 무슨 성경공부를 인도하겠습니까?” 저는 그에게 생계를 마련해 주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는 제가 일을 조금 시키려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그가 하는 일이 필요하지 않았고, 그가 말하는 내용도 제대로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또 말했습니다. “중국인 명정신학을 많이 전수하십시오.” 그런데 입을 열기만 하면 여전히 자기 멋대로 말했습니다. 정말 속이 상했습니다. 보기만 해도 속이 상했습니다. 나중에는 그가 일어나 섬기고 사람들을 데리고 기도하도록 격려했습니다. 그런데 사람을 데리고 기도하기만 하면 그의 휴대전화가 뜨거워지고 과열되었습니다. 사람만 열이 나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와 휴대전화도 열이 났습니다. 나중에 제가 사람들을 데리고 기도하라고 휴대전화 한 대를 더 보내 주었지만, 결국 그는 사람들을 데리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완전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습니다. 그는 변했습니까? 제가 그에게 무슨 일을 좀 하라고 기대한 것이 아닙니다. 암으로 인해 생긴 악습에서 벗어나기를 기대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제가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자주 사람을 잘못 봅니다! 많은 사람이 값싼 주전자처럼 입만 잘 놀립니다. 입을 잘 놀린다고 해도 사실 과장입니다. 그들이 하는 말은 진심이 없습니다. 저는 자주 제 돈과 힘을 더 들였습니다. 여러분은 저를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손해 본 일은 아주 많습니다. 하지만 계속 손해를 보아도 따뜻한 반응을 얻어 내지 못했습니다! 차가운 엉덩이에 뜨거운 얼굴을 갖다 대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의 엉덩이라도 따뜻해졌다면 괜찮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엉덩이는 따뜻해지지 않고 제 얼굴만 차가워졌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새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를 원합니까? 마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을 기꺼이 행하십니다.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게 하실 정도로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뜨거운 얼굴이 우리의 차가운 엉덩이에 이미 오랫동안 닿아 왔습니다. 다행히 우리의 엉덩이가 따뜻해졌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깊이 생각하시며 일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왕이 되시는 것을 원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신실하셨고 이스라엘 백성이 새 사람이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오늘 형제자매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은 누구든 하나님을 만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우리가 구하고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일은 우리가 구하고 생각하는 것보다 크지만, 우리는 무엇을 했습니까? 한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우리가 암 환자 한 분을 데리고 기도하는데, 전화로 그분의 목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아 제가 그분을 크게 책망했습니다. 자세히 듣고 이어폰까지 사용했지만 그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분을 섬기던 사람도 암 환자였습니다. 여러분, 알고 계십니까? 그 암 환자는 배가 아주 크게 부풀어 있었고, 위와 심장까지 눌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분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그분의 가족들이 장례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분을 섬기기 시작하자 배가 작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완전히 줄어든 것은 아니고 조금 작아졌을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분과 함께 다른 암 환자를 섬겼습니다. 그런데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자 제가 말했습니다. “왜 목소리가 안 들립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저는 평소처럼 기도하고 있는데요!” 제가 말했습니다. “그게 평소처럼 하는 것입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저는 병원에 입원해 있고, 같은 병실에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인사라도 할 수 없습니까? 병실 밖에서 누가 찾아오든, 어떤 사람이 찾아오든 병실 안에서 그렇게 떠들면 다른 사람을 방해하게 됩니다! 도대체 무엇이 평소처럼 하는 것입니까? 이게 평소처럼 하는 것입니까?” 제가 한바탕 책망하고 나자, 나중에는 이야기하다가 다시 본론에서 벗어났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지난번부터 지금까지 무엇이 바뀌었습니까?”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제가 말했습니다. “어머니와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그러자 그가 말했습니다. “저는 거의 죽어 가는데, 어머니는 어떻게 저에게 이럴 수 있어요?” 여러분, 이 말을 이해하셨습니까? “나는 거의 죽어 가는데, 어머니는 왜 나에게 이렇게 대하실까?”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의 마음이 좋겠습니까? 언제부터 여러분이 어머니를 따질 자격이 생겼습니까? 여러분이 암에 걸리지 않으면 누가 걸리겠습니까? 이것이 정상적인 일입니까? 우리 가운데 와서 형제자매들이 그분을 섬겼는데, 그분은 누구에게 감사했습니까? 그저 입으로 말했을 뿐입니다.
정말 사람들에게 감사했습니까? 저는 그렇게 보이지 않습니다. 이것을 이기적이라고 하지 않으면 무엇이라고 하겠습니까? 이것이 죽음을 자초하는 것이 아니면 무엇입니까? 그 어머니가 똥오줌을 받아 가며 그를 어릴 때부터 키웠는데, 언제 그에게 어머니를 따질 자격을 주었습니까? 그는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제가 이렇게 죽어 가는데, 왜 저는 아직도 어머니에게 이렇게 대하고 있을까요?” 그러면 사람이 훨씬 좋아지지 않겠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가운데는 아직도 따지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때로는 악한 사람이 많습니다!
한 자매가 목회자에게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목회자는 다른 사람들을 섬기느라 한 사람 한 사람 섬기며 매우 바빴고, 죽을 만큼 바빴습니다. 하루 동안 그 자매의 메시지를 보지 못했습니다. 볼 시간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자매는 곧바로 따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신이 사울이라 해도 나는 다윗이 될 것이고, 당신이 아무개라 해도 나는 여전히 요셉이 될 거예요.” 그것이 요셉다운 태도입니까? 듣기만 해도 제대로 된 말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따지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은 잘못 보지 않으시고, 귀신도 잘못 보지 않습니다. 잘못 볼 수 있는 것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새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새 사람은 어떤 모습입니까? 새 사람은 하나님을 닮은 사람입니다.
여러분, 이 본문을 잘 묵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이미 읽었다고 가정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충분히 많은 일을 행하셨습니다. 그렇게 많은 일을 행하셨는데 우리 마음에 새 사람이 되고자 하는 모습이 조금이라도 있습니까? 새 사람이 되기를 갈망합니까? 새 사람이 되기를 갈망하면 얼마나 많은 고난을 덜 겪겠습니까! 그런데도 여전히 안에 있는 방식은 그대로입니다. 나중에 저는 함께 그 사람을 섬기던 자매에게 말했습니다. “암이 아직 완전히 낫지는 않았지만 당신은 복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분이 병원에 가면 의사가 배에 구멍을 내어 인공항문을 만들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정확한 의학 용어는 모르겠지만, 항문으로 대변을 볼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분은 말했습니다. “저는 수술하지 않겠습니다. 그냥 이렇게 살겠습니다.” 그분은 수술하지 않고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에 그분과 함께 수술을 받고 함께 재발했던 사람이 나중에 다시 의사를 찾아가 인공항문 수술을 받았는데, 두 달 전에 죽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새 사람이 되는 것이지만 책임은 하나님께 있지 않고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시지만 우리 사람은 모두 허망합니다. 이해하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저와 함께 주님을 믿은 지 어느새 9년이 되었고, 어떤 사람은 어느새 10년이 되었으며, 어떤 사람은 어느새 7~8년이 지났습니다. 변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하실 수 있는 모든 일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새 사람이 될 수 있는지는 전적으로 여러분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새 사람은 도대체 어떤 모습입니까? 새 사람은 내어주는 모습입니다. 무엇인가를 얻으려고 하지 않고, 늘 내어주며, 이기적이지 않습니다.
우리 형제자매 가운데 이기적인 사람이 많습니까? 자신만 중요하게 여기고, 언제 다른 사람을 중요하게 여긴 적이 있습니까? 저도 한마디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언제 저를 중요하게 여긴 적이 있습니까! 괜찮습니다! 어쨌든 저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 도와 달라고 구합니다.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굳게 결심했습니다. 새 사람이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시며 반드시 저를 도우실 것을 압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지불할 수 있는 모든 대가를 지불해서라도 제가 새 사람이 되도록 도우실 수 있습니다. 이기적인 사람이 많습니다! 자기만 돌보는 사람은 여전히 옛 사람이고, 여전히 망가진 사람이며, 여전히 형편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에게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망가뜨리는 일에는 아주 능숙합니다!
여러분께 부탁드립니다. 오늘부터 하나님과 협력하여 새 사람이 되고, 더 이상 자신을 망가뜨리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시니 누가 우리를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까지도 저는 매일 적어도 한 번은 “저는 통제할 수 없습니다”라는 말을 듣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 사람에게 10만 위안을 제 계좌로 보내라고 하면 아주 잘 통제합니다. 10만 위안을 보내면 자신이 손해 보지 않습니까? 제가 바보입니까! 저는 말합니다. “통제할 수 없다면서요?” 통제할 수 있습니다. 통제하고 싶으면 통제할 수 있고, 통제하고 싶지 않으면 통제할 수 없습니다. 손해 보는 일은 아주 잘 통제하고,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일은 얻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제가 여러분의 마음을 찔렀지요! 그런데 문제는 무엇입니까? 그런 논리대로 살면 자신을 망치는 것이 아닙니까?
제가 아무리 많은 말을 해도 여러분 자신이 결정하는 것만 못합니다. 눈을 크게 뜨고 저 같은 사람을 잘 보십시오. 아마 멀리서 잘 보이지 않을 수도 있고, 저도 여러분에게 보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하는 일은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제가 직접 섬기는 모습을 보십시오. 제가 해야 할 일은 모두 하고, 제가 내어줄 수 있는 것은 반드시 내어줍니다. 어떤 때는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말합니다. “하나님, 저를 기억하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저에게도 육체에 속한 악습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때는 생각하다가 엉뚱한 곳까지 생각이 미쳐 마음이 괴롭습니다. 쉽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새로운 피조물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논리 체계 안에서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다
오늘 나와 작별하고 네가 베냐민 땅의 셀사에 이르러 라헬의 묘실 곁에서 두 사람을 만나리니 그들이 네게 이르기를 네가 찾으러 갔던 암나귀들을 찾았고 네 아버지가 암나귀들의 염려는 놓았으나 너희를 위하여 걱정하여 이르기를 내 아들을 위하여 어찌하리요 하더라 할 것이요 네가 거기서 더 나아가 다볼의 상수리나무에 이르면 벧엘로 하나님께 예배하러 올라가는 세 사람을 만나리니 한 사람은 염소 새끼 세 마리를 이끌었고 한 사람은 떡 세 덩이를 가졌고 한 사람은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가졌더라 그들이 네게 문안하고 떡 두 덩이를 주리니 너는 그들의 손에서 받으리라 그 후에 네가 하나님의 산에 이르리니 그곳에는 블레셋 사람의 영문이 있느니라 네가 그 성읍에 들어갈 때에 선지자의 무리가 산당에서부터 내려오는데 그들의 앞에는 비파와 소고와 피리와 수금 잡은 자가 있고 그들이 예언을 하리니 여호와의 영이 크게 감동시키시리니 너도 그들과 함께 예언을 하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되리라 이 징조가 네게 임하거든 너는 기회를 따라 행하라 하나님이 너와 함께하시느니라.(사무엘상 10:2-8)
사울은 나중에 실제로 이 일련의 사건들을 경험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으신 것은 하나님의 본래 뜻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들을 다스릴 왕을 세워 달라고 하나님께 강하게 요구했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요구를 들어 왕을 세워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왕을 세워 주시면서 그에게 성령을 부어 주셨고, 그는 예언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사울도 선지자였습니까? 사울도 선지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일들을 사울은 모두 경험했습니다. 그렇다면 사울은 자신이 경험한 일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까?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새로운 피조물이 되기를 원했다면 이렇게 생각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의 하나님은 정말 위대하시다! 내가 감동을 받아 예언할 수 있다니! 하나님을 통해 미래의 일을 알 수 있다니! 사무엘이 내게 기름을 부었고,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여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시려는구나! 내 왕위는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니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을 크게 높여야 한다!”
사무엘이 그에게 이런 일들을 말했을 때 그는 나중에 실제로 경험했습니다. 실제로 경험한 뒤에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변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그대로였습니다. 오늘 형제자매 여러분, 사울을 연구하면서 동시에 우리 자신도 연구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셨겠습니까? 하나님은 분명히 아셨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은 사람이 핑계할 수 없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그 후에도 자신을 망치는 일을 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자신의 책임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왕을 세우기 전에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고 너희를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 내었으며 너희를 압제하는 모든 나라의 손에서도 너희를 건져 내었거늘(사무엘상 10:18)
누가 이스라엘 백성을 압제할 수 있겠습니까? 누구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반드시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한 번도 약속을 어기지 않으셨고, 우리를 실망시키신 적도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부르짖고 하나님께로 돌이킬 때마다 효과가 없었던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충분하고도 넘치게 행하셨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너희가 오늘날 너희를 모든 재난에서 구원한 너희의 하나님을 버리고 이르기를 우리 위에 왕을 세워 달라 하였도다 그러므로 이제 너희의 지파대로, 너희의 족속대로 다 여호와 앞에 나아오라 하셨다 하니라.(사무엘상 10:19)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가운데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매우 적습니다. 어떤 때 우리 가운데 목회자가 한 사람을 몇 시간씩 섬기는데, 섬김을 받는 사람의 얼굴이 어떻게 일그러지는지 본인은 모릅니까? 압니다. 그렇다면 귀신이 그 사람 안에서 얼마나 일하고 있습니까? 많이 일합니다! 그러면서 “다른 목회자로 바꾸고 싶어요”라고 합니다. 여러분의 목회자가 여러분에게 잘못한 것이 있습니까?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목회자를 바꾸면 새 사람이 될 것 같습니까? 목회자를 바꾸면 좋아질 것 같습니까? 여러분을 받아 섬길 목회자도 여러분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왕이 되시는 것을 버렸음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에게 왕을 세워 주셨고, 해야 할 일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을 부어 사울이 예언하게 하셨고, 사울이 놀라운 일들을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사울이 경험한 모든 일은 매우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변했습니까? 변하지 않았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이킬 때마다 구원을 받고, 하나님에게서 멀어질 때마다 파괴를 불러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마음을 조금 더 부드럽게 하십시오. 이런 일들을 경험했다면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뿐만이 아닙니다. 사울이 왕으로 세움을 받은 후 하나님께서는 한 무리를 일으켜 감동시키시고 사울을 따르게 하셨으며, 사울을 위해 많은 부하도 준비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풍성하고 영광스러운지, 정말 핑계할 수 없게 합니다. 우리가 툭하면 하나님을 잊어버린다면 그것은 자신의 선택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이번에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들을 다스릴 왕을 세워 달라고 하자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은 신실하시다고 말하는 것은, 사람이 모두 거짓되더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신실하시다는 뜻입니다. 어떤 때 저는 말합니다. “하나님, 정말 쉽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아니어서 다행입니다. 우리의 좁은 마음으로는 사람을 짓눌러 죽였을지도 모릅니다.” 사람은 정말 악합니다! 하나님께는 풍성한 은혜와 긍휼이 있고, 하나님의 인내는 사람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러나 오늘 하나님의 진노를 드러내는 그릇이 되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그릇이 되십시오.
자신을 의지하는 것은 옛 사람이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새 사람이다
왜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을 통해 사울에게 이 모든 일을 알려 주셨을까요? 그가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에게 전하는 관념은 이것입니다. 여러분은 변해야 합니다! 변해야 합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새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더 이상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의지하지 마십시오. 그런데 여러분 자신을 의지할 수 있습니까? 의지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가장 치명적인 것은 자신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의지해도 의지할 수 없으니 두려움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제가 한 암 환자를 섬기고 있는데, 그분이 말했습니다. “선생님, 암 환자 안에 있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모르실 거예요. 극심한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고, 너무 고통스럽고 괴로워요.” 그 귀신은 매우 악합니다. 사람은 살고 싶지만 살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끝없는 악순환이며 풀리지 않는 매듭입니다. 자신을 의지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자매는 제가 섬겼기 때문에 정말 복이 많습니다. 사실 저는 여러 해 동안 고향에 거의 돌아가지 않았는데, 그해에는 고향에 돌아갔습니다. 그 자매가 저를 알게 되었고, 그 후 암에 걸렸습니다. 정말 우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분은 정말 복이 있습니다. 그분은 제게 진심으로 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새 사람이 되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알고 있습니까? 과거에 중요하게 여겼던 온갖 원한과 감정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오늘 새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제가 그 자매와 함께 다른 사람을 섬길 때 그분은 매우 기뻐했습니다. 며칠 전에도 한 사람을 섬기면 한 사람이 좋아지고, 또 한 사람을 섬기면 또 한 사람이 좋아졌습니다. 정말 놀랍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큰 환난에서 살아남으면 반드시 뒤에 복이 있다는 말이 정말 맞습니다. 새 사람이 되려면 과거에 중요하게 여기고, 따지고, 흠잡던 것을 모두 내려놓아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죽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이제부터 자신을 죽은 사람으로 여겨야 합니다. 나는 이미 죽었고, 오늘 살아 있는 것은 더 이상 내가 아니라 내 안에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사람이 더 이상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면 아무것도 따지지 않게 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새 사람이 되십시오! 늘 자신이 빚진 사람이라고 여기십시오. 얼마 전 제가 성질이 아주 큰 사람을 섬겼습니다. 그분의 집에서 나온 뒤 다른 자매가 저에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혹시 그분은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행동하는 것 아닐까요?” 제가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그분은 자신이 아주 잘났다고 생각하고, 모든 사람이 자신에게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 자매가 말했습니다. “정말요?” 이런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까? “내가 당신에게 잘못했으니 당신에게 화를 내겠다.” 그리고는 “당신이 나에게 잘못했기 때문에 내가 화를 냈다”고 합니다. 이런 일이 어디 있습니까? 제가 여러분에게 화를 낸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제게 잘못했고 저는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암에 걸리기 쉬운 체질입니다. 여러분은 늘 자신이 빚진 사람이라고 여겨야 합니다. 왜 사람이 더 이상 자신을 의지하지 않습니까? 자신을 의지해도 의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바로 이렇게 의지하는 것입니다. 늘 자신이 빚진 사람이라고 여기고, 항상 내어주며, 늘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전략을 바꾸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몸에 많은 병이 있어 매우 고통스럽다면 제가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제가 여러분을 데리고 다른 사람을 섬기고, 늘 자신이 빚진 사람이라고 여겨야 합니다. 늘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빚졌다고 생각한다면 암에 걸리지 않더라도 다른 병에 걸릴 것입니다. 병이 여러분을 찾아오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입니다! 여러분은 늘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빚졌다고 여기십시오. 천천히 생각해 보십시오. 자신을 의지할 수 없으니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려면 하나님의 논리 체계를 가져야 합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이 없고 사람만 있다면, 그가 더 많이 가지면 여러분은 적게 가지게 되고, 여러분이 더 많이 가지면 그는 적게 가지게 됩니다. 이 논리는 맞습니다. 전 세계의 GDP가 정해져 있다면 여러분이 더 많이 가지는 만큼 다른 사람이 적게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하나님이 계시다면, 내가 내어준 것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십니다. 제가 묻겠습니다. 이것에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논리입니다. 왜 새 사람이 되어야 합니까? 자신을 의지할 수 없으므로 하나님을 의지하기 시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자신을 의지하면 괴롭습니다. 사울이 앞에서 그렇게 많은 놀라운 일을 경험하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고 생각했지만 곧 잊어버렸습니다. 사무엘이 미스바에 와서 왕을 세우자고 하고 제비를 뽑았는데 사울이 뽑혔습니다. 그런데 찾으니 그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는 물건들 사이에 숨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키가 큰 사람이 도대체 얼마나 큰 물건 사이에 숨은 것입니까? 왜 그랬습니까? 자신을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의지하는 개도 마음에 확신이 없고, 자신을 의지하는 사람도 마음에 확신이 없습니다. 마음에 확신이 없으면 미쳐 날뛰게 되고 심장이 허리쯤에 매달린 것처럼 불안합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해 사울에게 그렇게 많은 일을 행하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울은 선지자처럼 예언할 수 있었고, 하나님의 영이 그와 함께하셨으며, 하나님께서 그가 이런 일들을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사무엘은 기름 한 병을 가져다가 사울에게 기름을 부었고,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릴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의지할 줄 몰랐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의지할 줄 모르면 마음에 확신이 없고, 확신이 없으면 광주리 아래로 숨게 됩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허둥대며 당황할 필요가 있습니까? 자신을 의지하는 사람은 반드시 잘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든 무슨 일을 하든 자신을 의지하면 잘되지 않습니다. 여전히 옛 사람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한 번 또 한 번 경험하고도 여전히 광주리 안에 숨습니까?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자신을 의지하면 늘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면 어떤 새로운 일도 감히 시도할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 사람은 반복적인 일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반복적인 일을 너무 많이 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사람은 새로운 일을 해야 합니다. 최근에 저는 우리 가운데 있는 목회자들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모두 일어나 관리하기 시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선생님, 저는 관리할 줄 모릅니다!” 저는 여러분이 관리할 줄 모른다는 것을 압니다. 새로운 일을 하기 때문에 당연히 모르는 것입니다. 새로운 일이란 무엇입니까? 경험해 보지 않은 일이 새로운 일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일을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는 옛 사람과 새 사람이 있습니다. 새 사람이 우리 안에서 다스리면 무엇이든 감히 할 수 있고, 새로운 일을 계속해서 돌파하게 됩니다. 옛 사람이 우리 안에서 다스리면 무슨 말을 들어도 마음에 두려움이 생깁니다. 무엇이 두렵습니까? 하나님께서 받쳐 주시는데 무엇이 두렵습니까? 여러분, 절대로 광주리 안에 숨지 마십시오. 저는 이미 여러분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할 수 없습니다. 제가 여러분의 형편없는 모습을 말하면 저에게서 흠을 찾는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사실은 사실입니다. 언제 자신을 의지하면 그때 망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습관을 기를 수 있습니까? 모든 일에서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잠언 3:5)
자신의 지혜를 의지하지 말고 자신의 능력을 의지하지 마십시오. 모든 일에서 여러분의 하나님을 의지하기 시작하십시오. 여러분의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이 언제 그분을 의지하든 그분은 의지할 만한 분이십니다. 여러분이 언제 그분을 부르든 그분은 그곳에서 여러분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어떤 때 우리 가운데 목회자들이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가르치다가 막상 자기 차례가 되면 여전히 자신을 의지하는 것을 발견합니다. 정말 흥미로운 일입니다. 그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조금만 방심하면 저도 빠져듭니다. 오늘까지도 조심조심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마음을 보십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문제는 외모가 그 사람이 새 사람인지 결정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새 사람인지 결정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의지한다면 온전히 의지하십시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우리가 매우 형편없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하셔야 할 일은 모두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충분히 훌륭해서가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로 돌이켜 부르짖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신 것입니다. 사울이 광주리 안에 숨어 있었어도 하나님께서는 나중에 한 무리를 감동시켜 그를 따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무리를 감동시켜 사울을 따르게 하신 것은 사울의 지도력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말 그를 도우시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형편없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시는데,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한다면 비록 여전히 형편없더라도 하나님께서 더욱 우리를 도와주시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한다면 누가 우리를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것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영원부터 영원까지! 아멘!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정말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야 합니다. 제가 다시 큰 소리로 여러분에게 간증하겠습니다. 사람이 죽었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그를 죽음에서 다시 살리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아직 살아 있는데 무엇이 두렵습니까? 여러분이 의지하는 것이 의사이고, 자신이며, 과학기술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들은 사람에게 믿음을 줄 수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런 것들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한 전도자가 악성 질병에 걸렸습니다. 의사가 말했습니다. “이 약은 40퍼센트의 사람에게는 효과가 없고, 60퍼센트의 사람에게는 효과가 있습니다.” 의학이란 원래 그렇습니다. 약을 사용하고 많은 돈을 썼지만 효과가 없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하나님, 왜 제가 40퍼센트의 사람들 가운데 들어가게 하셨습니까?” 나중에 의사가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약이 있습니다. 20퍼센트에게는 효과가 없고 80퍼센트에게는 효과가 있습니다. 확률을 20퍼센트 높이는 것이지요! 하지만 가격은 그 약의 열 배입니다! 아니, 다섯 배입니다!” 제가 예를 든 것입니다. 좋습니다! 돈을 내고 사용했지만 여전히 효과가 없었습니다. 그는 또 물었습니다. “하나님, 왜 또 제가 20퍼센트의 사람들 가운데 들어가게 하셨습니까?”
그곳에 들어가지 않으면 어디에 들어가겠습니까! 그가 언제 하나님을 의지한 적이 있습니까? 나중에 그 전도자는 또 다른 약을 사용하기 위해 사방으로 돈을 구했습니다. 돈을 마련하자 의사가 또 말했습니다. “이번에는 90퍼센트에게 효과가 있고 10퍼센트에게는 효과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가 사용해도 여전히 효과가 없었습니다. “하나님, 왜 저를 10퍼센트의 사람들 가운데 들어가게 하셨습니까?” 그곳에 들어가지 않으면 누가 들어가겠습니까! 결국 그는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결론
형제자매 여러분, 제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안이 더럽다면 바꾸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시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가 변화하기만 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도움이 되어 주십니다! 우리가 원하기만 하면 우리 안의 이기적인 논리 체계를 바꾸고, 살려고 발버둥 치며 죽음을 두려워하는 논리 체계를 바꾸어야 합니다. 이제부터 영원한 것 안에서 살고, 이 세상에서만 살지 마십시오. 왜 굳이 옛 사람이 되려고 합니까? 더 이상 자신도, 다른 사람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십시오. 과거에도 통했고, 오늘도 통하며, 앞으로도 통할 것입니다. 우리가 훌륭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절대적으로 선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신실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절대적으로 신실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선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절대적으로 선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좋은 하나님을 만났는데 왜 그분을 의지하지 않습니까?
여러분의 소망을 직업에 두지 말고, 시험에 두지도 말며, 직장이나 사업에 두지도 마십시오. 이제 여러분의 소망을 하나님께 두십시오. 그러면 마음이 평안해집니다. 언제 하나님을 의지하든 마음이 평안하고, 언제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든 하나님의 복 가운데 살게 되며, 언제 사람의 뜻대로 행하든 저주 가운데 살게 됩니다. 저주 가운데 살면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고 하나님도 역사하시기 어려워집니다. 원리는 아주 간단합니다. 저주는 하나님께로부터 오기 때문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어떤 악한 병에 걸렸든지 귀신을 쫓아내는 데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에 의존해야 합니다. 우리가 귀신을 초대했다면 그것을 쫓아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이 어디에서 귀신을 초대했는지 알아야 합니다. 알겠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이 말씀을 들었다면 마지막에 한 무리의 불량배들이 나오는 부분을 이해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라고 하며 사울을 멸시하고 그에게 예물을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그것을 개의치 않았습니다. 사람은 본래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행하셔도 언제나 반대하는 사람이 있고, 영원히 반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든 우리는 하나님께서 여전히 다스리고 계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자신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고, 더 이상 악한 생각과 뜻 가운데 살지 마십시오. 마귀와 암 뒤에 있는 귀신은 계속해서 여러분에게 거짓말을 퍼뜨립니다. 여러분이 암의 영이 퍼뜨리는 거짓말에 따라 행한다면 행운을 빌겠습니다! 이 세상에 유일한 살 길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인도하시는 길, 곧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길입니다.
아멘!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무엘상 10장 말씀
10:1 사무엘이 기름병을 가져다가 사울의 머리에 붓고 그에게 입 맞추며 이르되 여호와께서 네게 기름을 부어 그의 기업의 지도자로 삼으셨다는 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10:2 네가 오늘 나와 작별하고 베냐민 땅의 셀사에 이르러 라헬의 묘실 곁에서 두 사람을 만나리니 그들이 네게 이르기를 네가 찾으러 갔던 암나귀들을 찾았고 네 아버지가 암나귀들의 염려는 놓았으나 너희를 위하여 걱정하여 이르기를 내 아들을 위하여 어찌하리요 하더라 할 것이요.
10:3 네가 거기서 더 나아가 다볼의 상수리나무에 이르면 벧엘로 하나님께 예배하러 올라가는 세 사람을 만나리니 한 사람은 염소 새끼 세 마리를 이끌었고 한 사람은 떡 세 덩이를 가졌고 한 사람은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가졌더라.
10:4 그들이 네게 문안하고 떡 두 덩이를 주리니 너는 그들의 손에서 받으리라.
10:5 그 후에 네가 하나님의 산에 이르리니 그곳에는 블레셋 사람의 영문이 있느니라. 네가 그 성읍에 들어갈 때에 선지자의 무리가 산당에서부터 내려오는데 그들의 앞에는 비파와 소고와 피리와 수금을 잡은 자가 있고 그들이 예언을 하리라.
10:6 여호와의 영이 크게 감동시키시리니 너도 그들과 함께 예언을 하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되리라.
10:7 이 징조가 네게 임하거든 너는 기회를 따라 행하라 하나님이 너와 함께하시느니라.
10:8 너는 나보다 앞서 길갈로 내려가라 나도 네게로 내려가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리니 너는 칠 일 동안 기다리라 내가 네게 가서 네가 행할 일을 가르치리라.
10:9 사울이 사무엘에게서 떠나려고 몸을 돌이킬 때에 하나님이 새 마음을 주셨고 그날 그 징조가 다 응하니라.
10:10 그들이 그 산에 이르매 선지자의 무리가 그를 만나고 하나님의 영이 크게 감동시키시므로 사울이 그들 중에서 예언을 하니라.
10:11 전에 사울을 알던 모든 사람이 사울이 선지자들과 함께 예언함을 보고 서로 이르되 기스의 아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 사울도 선지자들 중에 있느냐 하더라.
10:12 그곳의 어떤 사람이 말하여 이르되 그들의 아버지가 누구냐 하였으므로 속담이 되어 이르기를 사울도 선지자들 중에 있느냐 하더라.
10:13 사울이 예언하기를 마치고 산당으로 올라가니라.
10:14 사울의 숙부가 사울과 그의 사환에게 묻되 너희가 어디로 갔더냐 대답하되 암나귀들을 찾으러 갔더니 보이지 아니하므로 사무엘에게 갔었나이다 하니라.
10:15 사울의 숙부가 이르되 청하노니 사무엘이 너희에게 이른 말을 내게 말하라.
10:16 사울이 그의 숙부에게 말하되 그가 암나귀들을 찾았다고 우리에게 분명히 말하더이다 하고 사무엘이 말한 나라의 일에 대해서는 숙부에게 말하지 아니하니라.
10:17 사무엘이 백성을 미스바에서 여호와 앞에 불러 모으고
10:18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고 너희를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 내었으며 너희를 압제하는 모든 나라의 손에서도 너희를 건져 내었거늘
10:19 너희가 오늘날 너희를 모든 재난에서 구원한 너희의 하나님을 버리고 이르기를 우리 위에 왕을 세워 달라 하였도다 그러므로 이제 너희의 지파대로, 너희의 족속대로 다 여호와 앞에 나아오라 하셨다 하니라.
10:20 사무엘이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가까이 오게 하여 제비를 뽑으니 베냐민 지파가 뽑혔고
10:21 베냐민 지파를 그 족속대로 가까이 오게 하였더니 마드리 족속이 뽑혔고 그중에서 기스의 아들 사울이 뽑혔으나 그를 찾아도 찾지 못한지라
10:22 그러므로 그들이 여호와께 묻되 그 사람이 여기 왔나이까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가 물건들 사이에 숨었느니라 하셨더라.
10:23 사람들이 달려가서 거기서 그를 데려오니 그가 백성 중에 서매 키가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만큼 더 크더라.
10:24 사무엘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를 너희가 보느냐 모든 백성 중에 그와 같은 자가 없느니라 하니 모든 백성이 왕의 만세를 외쳐 부르니라.
10:25 사무엘이 나라의 제도를 백성에게 말하고 책에 기록하여 여호와 앞에 두고 모든 백성을 각기 집으로 보내니라.
10:26 사울도 기브아 자기 집으로 돌아갔고 하나님께 감동된 용사들이 그와 함께 갔느니라.
10:27 어떤 불량배들은 이르되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 하고 그를 멸시하며 예물을 바치지 아니하였으나 사울은 잠잠하였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