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민수기》 7장 서두에는 “모세가 장막 세우기를 마치고 장막에 기름을 발라 거룩하게 하였다.”(《민수기》 7:1)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장막을 세우는 일은 《민수기》에서 다루지 않는데, 장막을 세우는 일이 《민수기》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민수기》가 주로 다루는 것은 사람과 수를 세는 일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칼을 들고 싸울 수 있는 사람의 수를 세고, 각 사람의 책임을 세고, 레위인의 직무를 설명하며, 각 지파의 직무와 제사장의 책임을 모두 설명합니다. 이제 사람들의 헌물을 세기 시작하는데, 다시 말해 헌물도 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다음 각 족장의 헌물을 세고, 또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 여호와께 말씀드리려 할 때 법궤의 속죄소 위, 두 그룹 사이에서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었다고 기록합니다. 곧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민수기》 7:89) 그래서 저는 이 장을 기름 부음, 헌물,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일로 요약합니다. 우리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매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일은 헌물과 긴밀한 관계가 있습니다. 모세가 이러한 일들을 기록한 것은 사실상 기름 부음과 헌물,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일을 기록한 것입니다.
사명이 있어야 거룩해질 수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보통 사람인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오히려 감사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지 않으시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말씀하셨는데도 당신이 듣지 않는다면 저주를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까? 그 이유는 매우 간단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완수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어디에 사명이 있느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사실 사명은 “기름 부음” 안에 있습니다. 모세는 장막을 세운 후 장막에 기름을 발라 거룩하게 했고, 성전 안의 기구들에도 모두 기름을 발랐습니다. 오늘 우리 형제자매들은 “기름 부음이 곧 사명”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셨고, 다윗에게 주신 사명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제사장이 되도록 기름 부음을 받는데, 제사장이 되는 것이 바로 그의 사명입니다. 하나님과 관계된 모든 사람은 기름 부음을 받아야 합니다. 기름 부음을 받는다는 것은 사명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무엇을 하도록 기름 부으셨는지가 곧 당신의 사명입니다. 기름 부음은 실제로 그 사람에게 직분을 주는 것입니다.
사명이 있어야 거룩해질 수 있습니다. 반드시 사명 안으로 들어가야 거룩해질 수 있으며, 사명이 없는 사람은 거룩해질 수 없습니다. 우리가 전하는 중국인의 사명 복음은 사실상 사명이 곧 기름 부음이라는 뜻입니다. 오늘 우리는 사명 안으로 들어가야 거룩해지고 성결해질 수 있습니다. 만일 당신의 사명이 엔지니어가 되는 것이라면 거룩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사명이 여호와이신 영원하신 하나님의 제사장이 되는 것이라면 기름 부음을 받고 거룩해져야 합니다. 기름 부음이 없고 거룩해지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말씀하실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에는 사명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성경》을 공부할 때 반드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신 목적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신 목적이 그분의 진노를 받는 것이라면, 당신의 사명은 그분의 진노를 받는 것입니다. 그것은 멸망을 받는 것이며, 하나님의 진노를 드러내는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어쩌면 당신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 당신은 창조주이신데 제가 무엇으로 당신과 다투겠습니까? 당신이 나를 지으신 목적이 당신의 진노를 드러내는 그릇이 되는 것이라면, 저는 당신의 진노를 드러내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실 때에도 우리에게 선택할 권리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어찌 된 일인지 하나님의 진노를 드러내는 것을 선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당신과 나를 선택하셔서 우리가 그분의 말씀을 읽고, 그분이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게 하셨습니다. 또한 사명이 없으면 거룩함도 없고, 거룩함이 없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여지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반드시 사명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사명을 찾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고, 그가 모든 나라와 모든 민족의 복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사명이라는 것을 새로 만들어낼 필요가 없습니다. 아브라함을 본받기만 하면 됩니다. 아브라함과 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다면 당신은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오늘 우리의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에게는 반드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있었던 어떤 속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 속성을 사명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어떤 대가라도 지불했으며, 심지어 자신의 생명까지 바친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신과 나는 기름 부음이 곧 사명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기름 부음을 받으면 거룩해집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오늘 우리가 《성경》을 공부하면서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살펴보면, 모두 한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해야 잘 살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사명이 없으면 잘 살 수 없습니다. 사람이 왜 고통받습니까? 사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삶의 사소한 문제들을 큰일로 여기면, 그 사람의 인생에는 더 이상 큰일이 될 다른 일이 없어집니다. 우리가 사명을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로 여긴다면, 그 밖의 모든 일은 작은 일이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형제자매들은 기름 부음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보기 시작해야 합니다.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답은 사명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저에게는 영적인 은사도 없습니다. 보세요, 하나님께서 저에게 은사를 주시지 않았습니다.” 사명이 없는 사람도 은사는 어느 정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은사는 비교적 작은 주제이고, 더 큰 주제가 바로 사명입니다. 사람이 성령으로 기름 부음을 받고 성령께서 그 위에 임하셔서 능력을 받게 되면 무엇을 합니까?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모든 민족을 주님의 제자로 삼는 것입니다. 이 사명은 땅의 모든 나라와 모든 민족에게 복이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들에게 복을 줍니까?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 안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사명을 위해 드리는 헌신
우리가 사명을 받으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헌신입니다. 헌신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헌신이 없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지 않으시고, 사명이 없으면 사람은 헌신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명이 있으면 사람은 자신이 붙든 사명을 위해 자신을 드립니다. 구약시대에는 자신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을 드렸습니다. 가장 귀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드려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이 그러한 사람이었고, 사무엘도 그러한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사람들은 모두 그러했습니다. 특히 아브라함 이후의 모든 선지자들은 하나님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드린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떤 선지자에게 하나님께서 벌거벗은 채 거리로 다니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자신을 드리지 않는다면 그런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또 어떤 선지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창녀와 결혼하라고 하셨고, 또 다른 선지자의 자녀에게는 창녀와 같은 이름을 지어 주셨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이런 일을 기꺼이 하는 이유는 그들 안에 하나님을 위해 사는 사람이라는 사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행하는 것, 이것이 헌신입니다.
우리가 헌신할 때 무엇을 위해 헌신합니까? 내가 이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명을 위해 헌신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많은 사람들이 헌신하고 십일조를 드린 후에도 하나님의 축복을 보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해 줍니다. 어떤 사람들은 헌신한 후 그곳에서 축복을 기다립니다. 시간이 지나도 축복이 보이지 않으면 조급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렇다면 축복은 어디에 있습니까? 사명 안에 축복이 있습니다. 사명이 없다면 당신의 헌신에는 때로 축복이 있고 때로 축복이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명을 얻고 그 사명을 위해 돈과 자신을 드린다면 반드시 백 퍼센트 축복을 받게 됩니다.
이 말에는 성경적인 근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처음 말씀하신 것은 《창세기》 12장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땅의 모든 족속에게 복이 되게 하시려고 했기 때문에 그를 축복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사명 밖에는 축복이 없습니다. 사명이 없으면 사람은 왜 사는지 알지 못합니다. 돈을 위해 살면 돈이 그를 지배하게 됩니다. 사랑을 위해 살면 사랑이 그를 지배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위해 살면 지배받지 않습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살면 반드시 복을 받습니다. 사명 밖에는 축복이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믿는다면 반드시 사명 안까지 믿어야 한다
주님을 믿는다면 반드시 사명이 있는 데까지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위해 살면 반드시 복을 받습니다! 우리는 이 7장의 헌물을 통해 은접시와 은대접, 덮개가 있는 수레 등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들은 모두 좋은 것들이며, 그들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을 드린 것입니다. 당신이 무엇을 위해 사는지에 따라 헌신하십시오. 하나님을 위해 산다면 당신이 가진 가장 귀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그것을 장막의 일에 사용하십시오. 절대로 푼돈을 헌금하지 마십시오. 오늘 우리는 주님을 믿으면서 사명 안까지 믿지 못한다면 정말 축복받기 어렵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제가 섬겼던 한 사업가도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경험했습니다. 그의 사업은 때로 나아졌다가 때로는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더 이상 믿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가 주님을 믿은 목적은 하나님을 자신의 종으로 삼아 자신이 일을 편리하게 하려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으면서 하나님께 사업을 도와 달라고 요구할 담력이 있다면 정말 대단한 담력입니다.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결과 그의 축복은 정말 사라졌습니다. 이후 그는 더욱 힘들게 살게 되었고, 저에게 왜 이렇게 되었느냐고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당신 자신이 알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 교회의 예배에 한 번이라도 참석해 본 사람이라면 ‘사명’이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두 번 참석하면 두 번 듣게 됩니다! 오늘 성경공부에서도 사명이라는 말이 여러 번 언급되었습니다. 당신이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사명이라는 두 글자는 당신의 머릿속에 들어가야 합니다. 사명 밖에는 축복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업을 뒤집고 싶습니까? 뒤집고 싶다면 사명 안으로 들어가 하나님을 위해 사십시오. 자신을 위해 살지 마십시오!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은 《성경》이 계시하는 복음이 아닙니다.
《성경》이 계시하는 복음은 모두 하나님을 위해 사는 복음입니다. 내가 생명을 하나님께 드리면 하나님께서 생명을 나에게 남겨 주십니다. 생명을 자신에게 맡기면 결국 하나님께서 당신의 생명을 없애 버리시거나, 하나님께서 없애지 않으시면 마귀가 와서 당신의 생명을 없애 버립니다. 당신이 돈을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많은 돈을 갖도록 축복하십니다. 그러나 돈을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있는 얼마 안 되는 돈까지 가져가시고, 마귀도 와서 그것을 모두 빼앗아 갈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 자신을 위해 살지 말고 하나님을 위해 사십시오. 이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사명은 기름 부음과 헌신이다
헌물로 수레와 소를 드렸지만 말은 없었고, 수레와 소는 고핫 자손에게 주지 않았습니다. 성소의 일을 할 때에는 성물을 어깨에 메어 날라야 했기 때문입니다. 기름을 부어 제단을 봉헌하는 날에 지도자들이 와서 제단 봉헌 예물을 드렸다는 내용이 9절과 10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일을 살펴보면 《성경》은 성물을 소가 끄는 수레로 운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은근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다윗이 언약궤를 예루살렘 성으로 옮기려고 했을 때 소가 끄는 수레에 언약궤를 실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결과 수레가 거의 뒤집힐 뻔했고, 웃사라는 사람이 언약궤를 붙들었다가 하나님께 죽임을 당했습니다. 언약궤가 웃사의 집에 20년 넘게 있었고, 사무엘 때부터 다윗 때까지 몇 년이나 되었든 언약궤는 오랫동안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다윗이 잘못한 것입니다.
《성경》에는 분명히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수레와 소는 고핫 자손에게 주지 아니하였으니 성소의 일을 할 때에는 성물을 어깨에 메어야 하기 때문이라.” 하나님께서 성소의 일을 행하실 때에는 반드시 사람이 메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사람이 마땅히 감당해야 할 대가라는 사실도 알아야 합니다. 성소의 일은 사명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소에게는 사명이 없지만 사람에게는 사명이 있습니다. 언약궤는 반드시 사람이 메어야 하며, 무거워도 반드시 사람이 메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섬길 자격이 있는 것은 사람뿐입니다. 이것은 영광스러운 사명이며, 소가 끄는 수레에 맡길 수 없습니다.
사명은 기름 부음과 헌신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드린 헌물은 날마다 자세히 기록되었습니다. 금과 은으로 된 기구들, 수레와 소와 양까지도 모두 분명하게 기록되었습니다. 한 번은 헌물의 액수를 통계로 내어 모든 사람에게 알리고 성전 건축에 사용하려고 했습니다. 저는 그것이 성경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동의하지 않으면서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헌물을 아주 적게 드렸기 때문에 부끄러워했던 것입니다. 공개될까 두려워하는 이러한 마음가짐은 옳지 않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체면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한 교회에서는 형제자매들이 모두 헌금을 드렸는데, 어느 날 목회자가 그것을 공개하여 교회 벽에 붙였습니다. 그 후 그 목회자는 일부 형제자매들에게 교회에서 쫓겨날 뻔했습니다. 분쟁을 일으킨 사람들은 헌금을 적게 드린 사람들과 헌금하지 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헌금 명단에 자신들의 이름이 적혀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해야 한다”고 하며 공개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공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에도 그렇게 공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어떤 사람들은 헌금을 드리면서 “왼손이 한 선한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족장들이 드린 헌물은 하나님께 드린 것이지 자신들에게 드린 것이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은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많이 드리면 하나님께서 많이 축복하시고, 적게 드리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도 적습니다. 이것은 농부가 씨를 뿌리는 것과 같습니다. 밭에 씨를 뿌리고, 가을이 되면 많이 심은 사람은 많이 거두고 적게 심은 사람은 적게 거둡니다. 축복은 우리 자신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헌신하는 사람은 손해 보지 않습니다. 우리가 영원하신 하나님께 드리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재정을 돌보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집안의 질병을 해결해 주시기만 해도 많은 돈을 절약할 수 있습니다. 만 원이 드는 질병, 십만 원이 드는 질병, 오십만 원이 드는 질병, 백만 원이 드는 질병과 각종 재난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 주시고 돈을 절약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매우 유익을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손으로 하는 일을 축복하시면, 하는 일마다 축복을 받게 됩니다. 이렇게 헌신하는 것은 매우 유익합니다! 저는 헌신한 사람이 잘되지 않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헌신이 하나님께 선행을 베푸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길가의 거지에게 구제한다면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거지에게 주는 것이지만, 헌신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성경》이 이러한 헌물들을 기록한 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좋은 본을 보이기 위해서입니다. 헌신은 자랑할 일이 아닙니다. 선한 일을 자기 자신에게 행한 것이기 때문에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기꺼이 드리는 것도 자신의 선택입니다! 그러므로 돈과 금과 은과 어린양과 수레와 소 등 이러한 재산을 기꺼이 드리는 것은 자원하여 드리는 헌신입니다. 사명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위해 살고, 자신의 생명도 제단 위에 드려야 합니다. 이 시대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되어야 합니다.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 기꺼이 본받아 행하고, 모든 민족에게 복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을 위해 무엇인가를 얻으려 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축복하십니다. 저는 생명을 하나님께 드린 사람이 손해 보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민수기》 7장 89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 여호와께 말하려 할 때에 증거궤 위 속죄소 위의 두 그룹 사이에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는 목소리를 들었으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심이었더라.” 모세가 온전히 자신을 헌신했고, 이스라엘 백성도 모두 자원하여 기꺼이 헌신했기 때문입니다. 다윗 시대에 이르러 다윗도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렇게 헌신하도록 격려했습니다. 다윗은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큰 복을 받은 왕도 이토록 자원하여 기꺼이 헌신했습니다.
모든 것이 주님께로부터 왔으니, 주님께로부터 온 것을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이것이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입니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 당신의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단지 청지기일 뿐입니다. 모든 것이 주님께로부터 왔고,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습니다. 최근 어떤 사람이 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사람들은 마침내 행복의 비밀번호를 찾았습니다. 내용을 열어 보니 행복은 돈과 관계가 없었습니다. 이 조사는 매우 흥미로웠고, 기독교인이 한 조사도 아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많은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돈이 생겨 백만을 갖게 되고, 사업을 시작하여 천만을 벌고, 벤처 투자를 받아 일억이 되고, 다시 천억이 되고, 만억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자신이 점점 더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예전에는 자신의 배만 채우면 되었지만, 이제는 직원 8천 명의 가정을 부양해야 합니다. 어떤 부자는 직원이 2만 명이나 되고, 어떤 사람은 30만 명이나 됩니다. 예전에는 자신의 한 가지 일만 걱정하면 되었지만, 이제는 30만 명 직원의 급여를 걱정해야 합니다. 또 각종 무역 활동에 참여해야 하고, 무역의 영향을 직접 받기도 합니다. 그러고 나서 보니 먹는 것은 여전히 하루 세 끼이고, 자는 것도 여전히 한 번입니다. 결국 마음도 지치고 사람도 지칩니다.
사람들은 돈이 있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결과적으로 더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마윈은 훌륭한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이 가장 행복할 때는 수백만을 가지고 있을 때입니다. 수천만을 가지게 되면 투자를 시작하며 그 일로 걱정합니다. 수억을 가지게 되면 부동산 시장과 주택 시장을 걱정하기 시작합니다. 수십억, 수백억을 가지게 되면 고용과 시장 등을 걱정하기 시작합니다. 사람의 행복 지수는 과연 무엇입니까? 어쨌든 돈은 아닙니다.
사람의 행복 지수는 우리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사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에게 사명이 있는 사람인지, 우리가 헌신하는 사람인지가 중요합니다. 헌신하는 사람이고 사명이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하나님의 축복을 받습니다. 또한 앞일을 미리 아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앞으로 일어날 일을 우리에게 알려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좋은 친구가 되고, 하나님의 종이 되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시는 것은 매우 간단합니다. 앞으로 집값이 오를 것을 안다면 사 두면 됩니다! 사람이 기꺼이 자신을 드리는 이유는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결론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자신을 완전히 드리기 원하십니까? 하나님을 섬기든지 맘몬을 섬기든지 해야 합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한쪽을 가볍게 여기고 다른 쪽을 무겁게 여기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돈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돈도 있게 됩니다. 돈은 매우 간단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맘몬을 섬기면 모든 것이 헛되이 돌아갑니다. 하나님을 섬기면 모든 약속이 우리에게 성취됩니다! 우리에게 사명이 있기 때문에 약속이 우리에게 성취되는 것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기름 부음이 곧 사명이며, 그다음은 헌신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앞으로 일어날 일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신다는 것은 얼마나 큰 복입니까. 하나님은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이시고, 우주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시고 지켜 주시며 우리에게 말씀하기를 원하시는 것은, 우리 안에 하나님께로부터 온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장막 세우기를 마치고 장막에 기름을 발라 거룩하게 하였다.(《민수기》 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