命定神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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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2023-05-21 8,956 耶和华是我的牧者 牧养 爱神的心 爱神的教会 不合一的灵 亚波罗的逻辑 祝福和咒诅的神

1. 서론

  1. 그리스도인은 주님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고, 그저 교회에 적을 두고 있는 것만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만일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저주를 받아 마땅합니다. 저주 가운데 살아서는 결코 잘될 수 없습니다.
  2.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실 때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 않는다면 화를 당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축복을 나누어 주실 뿐만 아니라 저주도 나누어 주시는 분이시기에, 하나님을 사랑하면 복을 얻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게 됩니다.
  3. 《신명기》는 그리스도인에게 주신 말씀이며, 마음과 힘과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큰 계명입니다.

2. 본문 말씀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고린도전서 16:22)

3. 기도

4. 본문 배경

  1. 아볼로는 능력이 없는 교회의 전형으로, 성경공부는 매우 잘하고 달변가였으나 교회를 세우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후에 바울에게 가서야 비로소 바울의 신학 체계를 전수받았습니다.
  2. 교회를 세우는 데는 세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사랑하여 보석으로 교회를 세우는 사람, 둘째는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있으나 풀과 나무와 짚으로 교회를 세우는 사람, 셋째는 주님을 사랑하지 않고 돈을 벌기 위해 교회를 세우는 사람입니다.

5. 주를 믿으면서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저주받을 일이다

  1. 주님을 믿으면서도 주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아무런 사명도 갖지 못하게 되며, 그 모습은 옹졸하고 속이 좁아 걸핏하면 상처받고 툭하면 남과 다투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2.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기꺼이 순종하여 행할 때 수많은 문제들이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6. 입술로만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소용없다

  1.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므로 입술로만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으며, 반드시 올바른 교회관을 가져야 합니다.
  2. 스승은 많으나 아비는 많지 않으니, 주님을 사랑한다면 대가를 지불하고 하나님의 양 떼를 잘 목양해야 합니다.

7. 종교적 행위 역시 소용없다

  1. 진정한 목양은 참으로 공을 들여야 하는 일이며, 사람을 아무것도 할 줄 모르고 할렐루야만 외치는 종교적 장애인으로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2. 기독교 신앙은 행위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근본으로 삼습니다.

8. 사랑에 대한 미혹(착각)을 버리라

  1.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을 위해 자신을 드리고, 하나님을 위해 살며, 하나님께서 염려하시는 바를 염려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첫 자리에 두는 것입니다.
  2. 사랑은 능력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을 때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울 능력이 넘쳐납니다!

핵심 단어

  1.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2. 입술로만 주님을 사랑함
  3. 종교적 행위
  4. 사랑에 대한 미혹
  5. 자신을 내어드림
  6. 주를 믿으나 사랑하지 않음
  7.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움
  8.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음
  9. 마음과 힘과 뜻을 다해 주님을 사랑함

1.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여러분과 조금은 특이한 주제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이전에 우리가 《보석으로 지은 성전》에 대해 나누었을 때, 다들 '아, 나는 보석이구나. 아, 나는 하나님의 눈에 보물이구나'라고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아이고, 목사님, 제 믿음을 세워 주셔야지요." 맞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에게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왜일까요? 저는 하나의 붉은 선(한계선)을 긋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 선을 넘지 마십시오. 이 선을 넘으면 여러분은 결코 보물이 아닙니다! 결코 보석이 아닙니다!

저는 어떤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이곳에서 그저 대충 기웃거리는 것을 보면 참으로 탄식이 나옵니다. 그러면서도 날마다 저에게 "저를 내쫓지 말아 주세요"라고 간청합니다. 저는 이들이 도대체 어떤 사람들인가 싶습니다. 교회 안이라 할지라도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기 때문입니다. 왜 굳이 이곳에 와서 저주를 받으려 합니까? 여러분은 이곳이 축복만을 나누어 주는 곳이 아니라, 저주 또한 나누어지는 곳임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목사님, 교회는 축복을 나누어 주는 곳이 아닙니까?"라고 묻겠지요. 맞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에게는 저주가 임합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우리 가운데 왔다가 상황이 더 안 좋아지는 것을 봅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 가운데 와서 상황이 더 나빠진 이유가 무엇입니까? 저주가 더 깊어졌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사랑한다는 이야기는 많지 않아도,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차고 넘치며, 저주에 관한 이야기 또한 너무나 많습니다. 여러분, 알고 계십니까? 복을 받는 사람은 적고, 저주를 받는 사람은 많습니다. 하나님의 눈에 보물인 사람은 적고, 하나님의 눈에 쓰레기 같은 자들은 많습니다. 제가 묻겠습니다. 쓰레기가 많습니까, 보물이 많습니까? 당연히 쓰레기가 많습니다. 트럭으로 몇 차씩 밖으로 실어 나릅니다. 여러분이 언제 보석을 트럭째 밖으로 실어 나르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아주 드뭅니다.

그러므로 저주 가운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너무나 많습니다. 자세히 관찰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오늘부터 더 이상 혼란스럽지 않을 것입니다. 왜 혼란이 사라질까요?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라는 말씀이 곧 여러분에게 닥칠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에게 있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표는 저주와 그리 멀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그리스도인을 직원으로 채용하기를 극히 꺼리는 이유입니다. 그리스도인을 직원으로 쓰는 일에는 참으로 기괴한 구석이 있습니다. 그래서 목사가 된 이후로는 우리 가운데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제가 보아왔던 저주 가운데 살아가는 그런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답습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저주 가운데 사는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해도 되는 일이 없고, 어떤 것도 제대로 해내지 못합니다. 차라리 이런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면 주님을 사랑할 필요도 없지 않습니까? 그리스도인이 아니니까요. 그런데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서도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여기에 대체 무엇하러 온 것입니까? "저주나 좀 얻어가려고 왔습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입니까? 만약 오늘 제 설교를 듣고 "아이고, 여기는 있으면 안 될 곳이구나" 싶다면, 서둘러 떠나십시오. 여러분이 스스로 떠나면 저를 차버리는 셈이니 체면이라도 서겠지만, 제가 여러분을 쫓아낼 때까지 기다리다 쫓겨나면 얼마나 망신스럽겠습니까?

그러므로 신약에는 저주가 없다고 결코 생각하지 마십시오. 구약과 신약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은 바로 축복과 저주이며, 이 축복과 저주는 하나님을 사랑하느냐, 사랑하지 않느냐와 직결되어 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오늘 제 나눔을 듣는다면 확실하게 분별하십시오. 부디 우리 가운데 와서 저주를 끌어안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저도 민망하고 여러분도 민망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은 저주 가운데 살아서는 결코 잘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믿기지 않는다면 두고 보십시오.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릅니다. 그저 우리 공동체에 엉겨 붙어 있으면 되는 줄 알고, 계정은 남겨둘 테니 언제든 접속해서 얌체처럼 이득만 챙기려 하거나, 접속조차 하지 않기도 합니다. 들어와서 방치해 두고 자기 할 일만 합니다. 그러나 분명히 경고하건대, 사람이 주를 사랑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습니다! 이 말이 심각하게 들립니까, 안 들립니까? 대단히 심각한 말씀입니다! 이전에 우리 교회에 한 자매가 있었습니다. 그녀의 어머니가 심각한 우울증을 앓게 되자, 멀리서 우리를 찾아왔습니다. 기차나 비행기를 타고 온 것이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 찾아왔습니다.

그녀가 온 후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기 시작하셨습니다. 사실 그녀는 하나님을 그리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녀를 사랑하셨습니다. 왜일까요? 하나님께서 먼저 그녀를 사랑하시고 그녀의 반응을 보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그녀는 학교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될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비정규직이었는데, 시험을 썩 잘 보지 못했음에도 합격했습니다. 또 다른 시험도 신통치 않았는데 합격했습니다. 합격하니 참 좋았겠지요? 그러자 그녀는 우쭐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이 잘해서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신 줄로 착각한 것입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신 것은 하나님께서 그녀를 사랑하시며, 그녀가 돌이켜 회개하기를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정규직 전환을 눈앞에 두고, 시험도 다 통과했는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얼마 전 우리에게 성전 건축 헌금이 있지 않았습니까? 우리의 성전 건축은 대단한 것입니다. 인터넷상에 그런 영광스러운 교회를 짓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녀는 하나님께 마치 거지에게 적선하듯 푼돈을 던졌습니다. "십 원 줄 테니 가져가라!" 대략 이런 태도였습니다. 그러자 난리가 났습니다! 어떻게 난리가 났을까요? 즉시 재앙이 닥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때때로 저는 여러분이 헌금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함부로 행동하다가 저주를 받을까 염려스럽습니다. 어떻게 저주를 받았을까요?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 상사가 그녀를 불러 면담을 했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요? 최근 근무 태도가 엉망이라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상사가 또 불러 면담을 했는데, 알고 보니 그녀가 밖에서 자기 학교 학생들을 상대로 과외를 하며 돈을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정규직 전환이 되겠습니까? 불가능해졌습니다. 자업자득입니다. 상사만 면담할 것이 아니라 목회자도 그녀를 불러 면담해야 마땅합니다.

장담하건대, 이런 사람이 재앙을 만나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입니다! 예전부터 재앙 가운데 살다가 우리 가운데 와서 은혜를 입었으면서도, 여전히 자기가 잘나서 그런 줄 압니다. 아닙니다! 당신이 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잘 대해주신 것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을 저주하기도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셨는데도 여전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면, 꼴좋은 일입니다! 앞으로 겪을 불행한 날들이 무수히 남아 있으니 평생 그렇게 살아보십시오.

그러므로 오늘 형제자매 여러분, 제발 교회 안에서 대충 시간이나 때우며 어정거리지 마십시오. 교회 안에서 기웃거리다가 저주를 받게 되면, 감당조차 못 할 큰 화를 입게 됩니다. 알아두십시오. 저는 혈육의 정에 얽매이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압니다. 저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며,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기를 원할 뿐입니다. 그런 쓰레기와 찌꺼기들은 말귀신, 나귀귀신, 게귀신, 온갖 잡귀들에게 다 넘겨줄 것이니, 데려가고 싶은 귀신이 있다면 마음대로 데려가게 둘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어쨌든 저는 거두지 않습니다! 지난 세월 동안 이런 사람들을 수없이 보아왔습니다.

우리 가운데 온 또 다른 자매가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뼛속까지 극도로 이기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녀가 어떤 회사에 들어가 일하면 그 회사가 망했고, 다른 직장을 구해 들어가면 그 회사도 망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어떻게 가는 회사마다 다 말아먹습니까? 총괄 대표로 일한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대표도 아니면서 회사를 말아먹었는데, 대표 자리에 앉았다면 얼마나 많은 회사를 망하게 했겠습니까?" 몸에 귀신이 붙어 있는 것입니다! 몸에 저주를 달고 다니니 손대는 것마다 다 망하고, 그녀와 엮이는 사람들마다 저주를 받고 부정함을 타게 됩니다. 얼마나 끔찍한 일입니까?

이 자매뿐만 아니라 어떤 형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자매들만 그런 줄 아십니까? "나는 형제인데요." 형제라도 봐주지 않습니다. 남성이냐 여성이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느냐, 사랑하지 않느냐이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사랑하지 않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나중에 한 형제도 회사를 다니다가 회사가 망했고, 다른 회사에 들어갔는데 그곳도 망했습니다. 그가 교회 안에서 성장하고 있었기에, 저는 그가 자라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그에게 목양을 맡겨보았습니다.

목양을 하려면 우선 전화 몇 통 거는 법부터 배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안부 전화를 거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전화를 전혀 걸지 않고, 양 떼와 전혀 연락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불러서 물었습니다. "왜 전화를 하지 않습니까?" 그러자 그는 "목사님, 생각이 안 났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이게 무슨 대답입니까? 좋습니다. 그럼 앞으로 내가 상기시켜 주면 기억할 수 있겠습니까?" 그 후 제가 일깨워 주었습니다. 그런데 일깨워 준 후에도 여전히 잊어버렸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이상해서 다시 그를 불러 말했습니다. "내가 이미 일깨워 주었는데 어떻게 또 잊을 수가 있습니까?" 그러자 그는 우물쭈물하며 딴청을 피우고 전혀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애초에 걸 생각이 없었던 것입니다. '잊어버렸다'는 핑계로 저를 둘러대려 한 것입니다.

이제는 저를 그렇게 둘러댈 수 없습니다. 제가 직접 챙기기 때문입니다. 제가 사람 대하는 것이 너무 융통성이 없어 보입니까? 남이 대충 둘러대면 넘어갈 일이지 왜 그리 따지냐고요? 저는 원래 그렇게 철저한 사람입니다! 그의 여자친구가 우리 가운데 있었기에, 제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여자친구한테 전화할 때는 생각이 납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그건 문제없지요. 날마다 전화합니다." 저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는 여자친구를 사랑하기에 여자친구에게 전화할 시간은 언제든지 있는 것입니다.

여자친구가 전화해서 "오늘 밤 건물 아래에서 기다려"라고 하면, 야근도 팽개치고 모든 것을 제쳐둔 채 당장 달려갈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니 들어가는 회사마다 문을 닫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이후 저는 그를 축복의 길로 돌이켜 놓으려고 무진장 애를 썼지만, 끝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이렇게 선언합니다. "하나님! 그가 저주를 받게 하옵소서." 참 흥미로운 일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합니다. "어떻게 사람을 저주할 수 있습니까?"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그를 저주한 적도 없습니다. 단지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선포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 것이 마땅하지 않다"라는 식의 헛소리를 결코 믿지 마십시오. 마땅하지 않다니요? 우리 하나님은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저주를 내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의 말씀이 원래 이렇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보다 더 대단합니까?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인데 우리가 선포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선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형제자매 여러분은 결코 저주받은 그리스도인으로 살지 마십시오. 저주 가운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우리 교회가 비록 승리하는 교회라 할지라도, 저주 역시 여전히 실재합니다. 사람을 저주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불행한 삶을 살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만약 우리 가운데 있지 않고 불교도나 이슬람교도가 된다면 오히려 별 탈 없이 잘 지낼지도 모릅니다. 교회를 떠나서 잘 먹고 잘사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떠나고 나니 얼마나 복을 누립니까? 저주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큰 저주가 임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결코 저주 가운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지 마십시오.

우리 교회에 있던 한 청년 형제는 최근 재정의 돌파를 경험했습니다. 예전에는 손대는 것마다 망했습니다. 왜일까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돈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겨우겨우 조금 돌려놓았는데, 용수철처럼 다시 옛날로 튕겨 돌아갈지 모르겠습니다. 아십니까? 제가 그를 돌려놓느라 진이 다 빠졌습니다. 붙잡아 두느라 몹시 힘들었는데, 복을 받자마자 손을 놓으면 다시 세상을 사랑하고 돈을 좇던 옛 방식으로 돌아가 버립니다. 그러니 비록 가난에서 벗어나고 파산에서 건짐을 받았을지라도 반드시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형제자매 여러분, 제가 두려움을 심어준다고 결코 생각하지 마십시오. 저는 하나님의 진리를 여러분에게 알려주는 것뿐입니다. 여러분은 "목사님, 두려움을 조장하지 마시고 제 믿음을 세워 주셔야지요"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여러분의 믿음을 세워달라고요? 곰곰이 생각해 보니 여러분에게 해야 할 말은 이것입니다. "당신은 마땅히 두려워해야 합니다. 얼마나 두려움이 없길래 이토록 방자하여 감히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단 말입니까? 어찌 감히 저주 가운데 살려고 합니까?"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큰 계명임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은 계명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계명은 마지노선(최소한의 기준)입니다. 계명이 대단히 고상하고 거창한 것이라 착각하지 마십시오. 계명이 무엇입니까? 도둑질하지 말라, 강도짓 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이것이 무엇입니까? 최소한의 기준입니다.

살인하지 않았다고 해서 결코 위대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그렇다면 이 최소한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이것이 가장 큰 계명입니다! 이 선을 넘어서는 순간 저주를 받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고난을 받고, 하나님을 위해 대가를 치르기 때문에 고난을 당합니다. 그러나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아 저주를 받아 고통을 당하며, 그러한 고통에는 그 어떤 영광도 없습니다. 알아들으셨습니까? 저에게는 오랜 세월 풀리지 않던 커다란 의문이 있었습니다. 지난 세월 지역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할 때 저는 깊은 회의를 느꼈습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저주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그런 식의 그리스도인으로 남기를 끝까지 고집했습니다. 저주받은 그리스도인으로 살기를 고집하는 그 모습이 저는 참으로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성경의 저주가 누구를 향한 것인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묻겠습니다. 《신명기》는 누구에게 주신 말씀입니까? 주님을 믿는 자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신명기》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규례와 법도와 명령을 지켜 행하면 복을 받을 것이요,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다. 그렇지 않습니까? 《신명기》가 불교도를 위한 책입니까? 아닙니다. 《신명기》는 그리스도인을 위한 책입니다. "아닙니다, 그것은 구약성경 아닙니까"라고 하겠지요. 구약이라고요? 신약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이 바로 지난 세월 저의 가장 큰 의문이었습니다.

과거에 제가 만났던 한 그리스도인은 참으로 기이했습니다. 5, 6년 전 제가 그를 영접했을 때, 그는 암에 걸려 음식을 삼키지 못해 유동식을 튜브를 통해 섭취하고 있었습니다. 저주 가운데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는 음식 맛을 느끼지 못하고 입맛을 잃는 것입니다. 그는 배에 꽂힌 튜브로 유동식을 주입하고 있었는데, 그가 저주를 받은 것입니까, 아닙니까? 10년 후, 그의 아내도 암에 걸렸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제가 말했습니다. "당신들은 지금 저주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그러자 그는 "아닙니다. 저는 욥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욥이라니요, 저주받은 욥입니까? 참으로 기가 막혀 "어쩌면 이토록 고집스러울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단언하건대, 이런 교회의 가르침은 지극히 황당무계한 가르침입니다. 그럴 거면 욥이나 만나러 가라 하십시오. 욥과 한패이니 말입니다. 이처럼 헛된 고집을 부리는 것이 저에게는 가장 큰 의문이었고,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위해 고난을 받는 줄로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말합니다. "아이고, 목사님, 저는 주님을 너무나 사랑합니다!" 제가 묻습니다. "주님을 사랑한다고요? 어떻게 사랑합니까? 주님을 어떻게 사랑하고 계십니까?" 한참을 생각해도 대답을 내놓지 못합니다. 입만 살아 있는 속 빈 강정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사랑한다"는 말은 내뱉기 쉽지만, 행하기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말해 보십시오. 제가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합니까? 어떻게 주님을 사랑합니까?"라고 물으면, 그는 "예배에 참석하고 헌금도 합니다"라고 합니다. 그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까? 세상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예배 참석을 애걸복걸하시는 줄 압니까?

"주님을 사랑한다"는 말을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사람이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과 사랑하는 것의 개념을 반드시 분명히 해야 합니다.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성경에 명확히 기록되어 있기를 성숙한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하나님의 양 떼를 목양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한다면 목양을 위해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주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기쁨으로 지켜 행해야 합니다. 제가 "당신은 무엇을 지켜 행했습니까?"라고 물으면, 그는 눈만 동그랗게 뜨고 저를 쳐다봅니다. 무엇을 행했냐고요? "목사님, 왜 이렇게 어려운 질문을 하십니까?"라고 합니다. 저는 아픈 곳만 콕콕 찌르는 것을 좋아합니다. 제 질문에 대답하기가 곤란합니까? 제 질문은 다 대답하기 어렵습니다. 저와 말씨름을 하려 든다면 결코 저를 당해낼 수 없습니다.

"무엇을 지켜 행했습니까?"라고 물으면 멀뚱멀뚱 저를 쳐다보기만 합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목록이라면 수없이 나열해 줄 수 있습니다." 순종하지 않은 것이 태산 같은데, 입술로만 떠벌릴 일이 아닙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사랑한다고 자처하면서 주님의 교회를 망쳐 놓았습니다. 알아들으셨습니까? 제가 코로나에 걸렸던 그해, 어떤 목사님도 코로나에 걸렸습니다. 저는 나았지만 그 목사님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죽기 전에 한마디 말을 남겼습니다. 자신은 하나님의 사랑이 충만한 교회를 세우고 싶다고 했습니다. 속으로 '제발 헛된 소리 좀 그만하십시오' 싶었습니다. 이미 돌아가셨으니 대놓고 그렇게 말하지는 못했지만 말입니다. "차라리 하나님을 사랑하는 교회를 세우십시오!"

교회 안에 온갖 흑암의 난장판을 만들어 놓고 날마다 권력 다툼만 벌이더니, 결국 비극적이게도 다투던 목사까지 코로나에 걸려 목숨을 잃고 교회를 완전히 말아먹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교회가 하나님을 완전히 배도하여 영적으로 간음하는 지경까지는 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여러분은 교회가 하나님을 등지고 간음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과 교회를 배신하고 간음한다면 그 저주가 얼마나 깊겠습니까? 하나님께 배신의 모욕을 안겨드려 보십시오.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의 엄청난 저주가 임합니다.

그러므로 화인 사명 신학(华人命定神学)은 이러한 것들을 명명백백하게 밝히고자 합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건대, 화인 사명 신학은 본래 사도 바울의 신학입니다. 세월이 흘러 사도 요한이 90세가 넘은 노년이 되었습니다. 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요한은 스무 살 남짓이었을 테니, 90여 세가 되었다는 것은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지 70년이 흘렀음을 의미합니다. 이 70년 동안 일반인들은 그토록 오래 살지 못했습니다. 야고보도, 베드로도, 바울도 다 죽고 오직 늙은 요한만 남았습니다. 요한은 모진 세월을 견디며 그들 모두의 마지막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들이 다 떠난 후, 요한은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 그들이 어떻게 교회를 망쳐놓았는지, 어떻게 교회가 하나님을 등지게 되었는지를 되짚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주님을 사랑함'이라는 결론을 도출해 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과 《요한일서》에는 주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이 유독 많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훗날 요한이 기록한 《요한복음》에는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야 밝혀진, 다른 이들은 기록하지 않았던 매우 흥미로운 일화가 등장합니다. 왜 다른 이들은 쓰지 않았을까요? 당시에는 베드로가 살아 있었기에 그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더 이상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기에 늙은 요한이 이 이야기를 기록한 것입니다.

이 베드로는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는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것을 보고도 그는 다시 물고기를 잡으러 갔습니다.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고기잡이 전문가가 한 마리도 잡지 못한 것입니다. 그때 해변에 계시던 예수님께서 그물을 저편에 던지라고 하셨고, 그물을 올리자 백쉰세 마리의 물고기가 잡혔습니다. 예수님은 해변에서 양념을 바르고 쯔란과 고춧가루를 쳐서 생선을 굽고 계셨는데, 그 냄새가 기가 막히게 구수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과 함께 생선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요한복음 21:15)

예수님께서 물으셨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양을 먹이라." 세 번을 연거푸 물으시자 베드로는 어리둥절해졌습니다. 이 대화가 성경에 기록된 것은, 당신이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부각하기 위함입니다. 사실 이후에 베드로가 사역을 잘 감당했습니까? 그렇지 못했습니다. 교회를 사랑한다면서 오히려 그르쳐 놓았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이 당시 베드로와 동역자로 함께 일하며 이 일을 떠올렸을 때, '아, 당시 방향이 잘못되었었구나' 하고 깨달은 것입니다. 사실 이 말씀은 훗날 요한의 시대에 와서야 비로소 깨달아진 것이 아니라, 사도 바울이 이미 《고린도전서》에 명백히 기록해 둔 바 있습니다.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고린도전서 16:22)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여기서 "누구든지"라는 표현이 참 흥미롭습니다.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오늘 한번 낱낱이 파헤쳐 봅시다. "누구든지"는 대체 누구입니까?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여러분이 저주 가운데 머물지 않고 축복 안으로 들어가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 "누구든지"가 여러분이나 제가 아니라, '어떤 특정한 사람들'이기를 바랍니다. 참으로 감회가 깊습니다!

제가 이토록 거듭 말씀드리는 까닭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도대체 생각이 있는 것입니까, 없는 것입니까?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도대체 머리를 어디에 두고 사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도 이런 '어떤 사람들', '누구든지'에 해당하는 자가 있습니까? 우리 닉네임 중에 혹시 '누구든지'라고 쓰는 사람은 없겠지요? 그런 닉네임을 쓴다면 큰일 날 일입니다. 자, 이제 본문 말씀을 펴봅시다. 고린도전서 16장 22절입니다.

2. 본문 말씀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고린도전서 16:22)

3. 기도

하나님! 오늘 우리에게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부어 주옵소서. 하나님! 우리는 마땅히 주님을 사랑해야 하며, 마음과 뜻과 힘과 정성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것 되십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이러한 결단을 허락하사 주님을 우리 삶의 최우선 순위에 두게 하옵소서. 하나님! 오늘 우리는 날마다 주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겠다고 결단합니다. 이것이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명입니다. 하나님!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저주 가운데 살 수밖에 없음을 압니다. 오늘 우리를 도우사 능력을 주시고, 우리를 얽어매는 모든 죄를 벗어버리며 우리 위의 모든 저주를 끊어내게 하옵소서. 주의 말씀을 따라 행하며 주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주를 사랑하는 백성이 되게 하사 이 세대 가운데 주의 영광이 온 땅에 가득하게 하옵소서. 하나님!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며 힘을 더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4. 본문 배경

이 구절 뒤에는 "주께서 임하시느니라(주여 오시옵소서)"라는 말이 덧붙여져 있습니다. 주님께서 오셔서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그를 저주하러 오시는 것입니다. 주께서 오셔서 그를 저주하실 것이라니, 참으로 무섭고도 강력한 말씀입니다! 이 구절의 배경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기회가 닿는 대로 여러분과 《고린도전서》 전체를 다시 나누고자 합니다. 저는 사람의 내면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이 제법 있는 편입니다. 성경을 읽다 보면 '아, 이 자는 이런 사람이었구나' 하는 것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왜일까요? 저는 중국인이고, 중국 역사와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가 깊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의 배경은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고린도 교회가 극심한 혼란기를 겪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되었을까요? 그 경위를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바울은 고린도라는 지역에 교회를 개척했는데, 그것이 바로 고린도 교회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1년 반 동안 머물렀습니다. 그는 어떻게 사역했습니까? 그곳에서 천막을 짓는 일을 하여 스스로 생계를 유지하며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는 고린도 교회로부터 단 한 푼의 재정 지원도 받지 않고 교회를 세워 올렸습니다. 고린도는 오늘날의 상하이와 같은 곳이었고, 로마는 베이징과 같은 수도였습니다. 혹은 고린도가 뉴욕이라면 로마는 워싱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고린도는 대도시였기에 사업하기에 좋은 환경이었습니다. 바울은 그곳에서 천막을 잘 팔았고, 1년 반 만에 교회를 든든히 세웠습니다. 그 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떠났습니다. 그 내용이 《사도행전》 17장에서 19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떠난 후 누가 왔습니까? 아볼로가 왔습니다. 아볼로가 온 후 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왔는데, 바로 야고보와 베드로 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바울이 떠난 뒤 아볼로를 거쳐 나중에는 베드로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제가 어떻게 이것을 알까요? 《고린도전서》의 문맥을 살펴보면 매우 흥미로운 화법이 사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세 파로 갈라졌습니다. 어떤 이는 "나는 바울파다", 어떤 이는 "나는 아볼로파다", 또 어떤 이는 "나는 게바(베드로)파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세 파벌로 나뉘어 서로 치열하게 다투었습니다. 그렇게 싸워대니 교회가 온통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교회 역사에는 참으로 기이한 일들이 많습니다.

초창기 사역 시절, 교회를 건축할 때 우리는 이 분열의 영(일치하지 못하게 하는 영)을 대적하여 싸웠습니다. 어느 날 집에서 기도하고 있는데, 제 눈앞에 놀라운 환상이 펼쳐졌습니다. 어떤 환상이었을까요? 뱀 한 마리가 세 개의 몸통이 한데 엉켜 있고 세 개의 머리가 각기 다른 세 방향을 향하고 있는, 대단히 흉측하고 강력한 모습이었습니다. 제가 그 환상을 보며 "하나님! 이것이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하나님께서 "이것은 분열의 영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 분열의 영이 이렇게 생겼구나!' 그때 교회는 바로 이 악한 영과 싸우고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여러분에게 축하를 드립니다! 오늘 우리 교회는 이 분열의 영을 완전히 짓밟아 굴복시켰습니다.

또 어떤 교회에는 세 명의 사역자가 있었는데, 그 교회 안에서 그야말로 《삼국지》가 펼쳐졌습니다. 교회 안에서 삼국지가 벌어지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교회에서 벌어지는 삼국지 암투극은 조조 역할을 맡은 배우보다 훨씬 더 실감 나게 연기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당시에 분열의 영, 험담의 영, 그리고 수많은 악한 영들을 대적하여 싸워야 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도 바로 이런 무리가 들이닥쳤으며, 그들 배후에 역사하는 악령의 세력은 대단히 강력했습니다. 심지어 교회 안에는 "나는 바울에게도, 아볼로에게도, 게바에게도 속하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께 속했다"라며 거룩한 척하는 자들도 나타났습니다. 사실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입만 살아서 헛소리를 늘어놓는 것에 불과했습니다.

이 세 부류의 무리가 들어오자 교회는 큰 혼란에 빠졌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바울이 쓴 편지가 바로 《고린도전서》입니다. 행간을 읽어보면 아볼로가 고린도를 떠나 바울에게로 도망쳐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린도에서 잘 지내고 있었는데 왜 바울에게로 왔을까요? 아볼로의 장점이 무엇입니까? 그는 성경에 매우 능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심을 힘있게 증명하는 자였습니다. 《사도행전》에 따르면 아볼로는 요한의 세례만을 전했습니다. 요한의 세례가 무엇입니까? 사람이 회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까지도 아볼로식의 이러한 가르침은 교회 안에 매우 팽배해 있습니다. 사실 《고린도전서》는 고린도 교회뿐만 아니라 고린도에 있는 아볼로파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쓴 것이기도 합니다. 아볼로파의 논리 체계는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심을 강력히 논증하지만, 능력은 없고 오직 회개만을 강조하는 형태였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능력이 없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라고 했는데, 이는 바로 아볼로를 두고 한 말입니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고린도전서 2:4-5)

아볼로는 능력이 없는 교회의 대표적인 전형입니다. 성경공부는 탁월하고 이리저리 증명은 잘하지만, 결국 자기 자신조차 별 볼 일 없는 상태에 머물렀습니다. 그런데 그가 어쩌다 바울에게로 오게 되었을까요? 흥미로운 추론을 해볼 수 있습니다. 훗날 베드로 일행도 고린도에 왔습니다. 비록 베드로가 말솜씨로는 아볼로를 당해내지 못했을지라도,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제자라는 엄청난 타이틀을 쥐고 있었기에 단숨에 수많은 사람들을 압도해 버렸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아볼로가 있는 고린도 교회에 베드로가 들이닥쳤으니 어떤 일이 벌어졌겠습니까? 베드로가 언변으로는 아볼로를 이길 수 없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중국 2,800년의 역사와 권력 암투의 생리를 바탕으로 인간 본성을 통찰해 볼 때, 아볼로는 베드로의 권세에 밀려 큰 상처를 입고 고린도 교회를 떠나버린 것입니다. 아볼로는 교회를 세우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말만 잘하는 사람이었을 뿐입니다. 그는 사도 바울에게로 도망쳐 왔고, 그곳에서 비로소 바울의 신학 체계를 전수받게 됩니다. 상처받았다고 교회를 내팽개치는 것이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까? 그것은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권력 다툼을 벌인 것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에는 이름을 직접 거론하지 않고 "누구든지(만일 어떤 사람이)"라는 표현이 여러 번 등장합니다. "내가 지금 너를 두고 하는 말이다"라고 직접 말할 수는 없으니, "만일 누구든지..."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혹시 어떤 사람을 말하는 것인가? 당신은 아니니 신경 쓰지 말라'는 식의 매우 고도화된 수사적 화법입니다. 이름을 직접 밝힐 수 없는 자들을 가리키는데, 그들이 누구겠습니까? 교회를 망쳐놓고 여기저기 분란을 일으킨 자들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비록 교회가 완전히 문을 닫지는 않았을지라도, 교회를 어지럽히고 영적으로 메마르게 만들며 바리새인 소굴로 만들어 버린 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러니 겉으로는 누구를 콕 집어 말하지 않는 것 같지만, 《고린도전서》를 읽는 이들은 바울이 누구를 겨냥하고 있는지 다 알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아볼로에게 고린도 교회로 돌아가라고 권면했지만, 아볼로는 돌아가기를 한사코 거부했습니다.

형제 아볼로에 대하여는 그에게 형제들과 함께 너희에게 가라고 내가 많이 권하였으되 지금은 갈 뜻이 전혀 없으나 기회가 있으면 가리라 (고린도전서 16:12)

이 구절의 뜻이 읽혀지십니까? 그곳에서 상처를 입었기에 가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다음 구절이 참으로 의미심장합니다.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 (고린도전서 16:13)

행간에 담긴 뜻은 이것입니다. "너희나 아볼로나 다 옹졸한 자들이다. 그깟 사소한 일에 얽매여 삐쳐 있는 꼴이라니." 결국 고린도 교회는 회복되었을까요? 바울에 의해 그 분열의 영이 꺾였습니다. 《고린도전서》는 바울, 아볼로, 게바라는 세 부류의 사람들을 언급합니다. 이들이 교회 안에서 벌인 일이 무엇입니까? 삼국지 암투극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바울 안에 있는 아비와 어미의 심정, 즉 참된 사랑과 사랑으로 충만한 바울의 말씀 앞에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이제 이해가 되십니까? 이 세 부류 가운데 바울이 언급한 "만일 누구든지"는 베드로 파의 사람들을 겨냥한 것이 분명합니다. 이제 그들은 다 세상을 떠났으니 제가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습니다. 그들이 살아서 다시 저를 찾아올 리도 없지 않습니까? 한밤중에 자는데 누가 나타나 "내가 베드로다"라고 한들 제가 무서워하겠습니까? 살아서도 나를 당해내지 못했을 텐데 죽어서 어떻게 나를 당해내겠습니까?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고린도전서 16:22)

오늘 형제자매 여러분, 깨어 있어야 합니다! 남자답게 강건하고,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습니다. 헛되고 헛된 것들, 한낱 명성을 위해 살아가는 자가 되지 마십시오. 베드로 파의 사람들이 고린도 교회에 무엇하러 왔겠습니까? 교회를 어지럽히고 분란을 일으킨 것 외에 무엇을 했습니까? 이제 이해가 되십니까? 세를 과시하고 돈을 끌어모으려 다닌 것에 불과합니다. 깊이 묵상해 보십시오. 이는 대단히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처럼 세 부류의 사람이 교회를 세우는 모습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첫째 부류는 주님을 사랑하여 보석으로 교회를 세우는 사람이고, 둘째 부류는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있으나 나무와 풀과 짚으로 교회를 세우는 사람이며, 셋째 부류는 주님을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자기 잇속과 돈을 챙기기 위해 교회에 분란을 일으키는 자들입니다. 이제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라는 바울의 선언이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이제 아볼로에 대해 대략 파악이 되셨습니까? 베드로에 대해서도 더 깊이 알게 되셨을 것입니다. 문제는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정작 주님을 믿기만 하고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점입니다.

5. 주를 믿으면서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저주받을 일이다

오늘날의 교회는 대부분 '예수를 믿는다'는 초보적인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나 화인 사명 신학이 전하는 사도 바울의 신학 체계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바로 '주님을 사랑함'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상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결국 저주 가운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저주라는 것은 대단히 무서운 실재임을 기억하십시오. 주님을 믿지만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가 교회를 세우면, 교회 안에는 온갖 기이하고 해괴한 일들이 가득 차게 됩니다. 주를 믿으면서도 사랑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기 마련인데, 그런 자들이 세운 교회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예를 들어, 한 자매가 어머니를 모시고 저를 찾아왔습니다. 왜 찾아왔을까요? 어머니가 다니던 교회에서는 교인들이 건강검진만 받으면 암이 발견되고, 또 검사하면 다른 교인에게서 암이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자매는 "이러다 다음 검사 때는 우리 엄마 차례가 될 것 같다"라며 두려워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그럼 어머니를 우리 교회로 모셔 오십시오." 어머니가 올바른 신학 체계를 받아들이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자매가 어머니를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 도리어 어머니의 잘못된 생각에 자매가 끌려가 버렸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교회 안에서 검사만 하면 암 환자가 속출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저주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주는 결코 없는 것이 아니며, 교회 안에서 대단히 맹렬하게 역사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례를 들 수 있습니다. 암은 의심할 여지 없는 저주입니다. 오늘날 목회자들의 암 발병률이 일반인의 두 배에 달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주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를 믿으면서도 사랑하지 않는 자들에게 저주가 임한다는 사실을 이제는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 안에 분쟁과 권력 다툼이 끊이지 않는 것이며, 속이 좁고 편협하여 툭하면 상처받는 자들이 넘쳐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왜 우리 가운데는 그런 일이 없을까요? 우리는 그저 믿기만 하는 자들이 아니라,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이곳에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이곳에 있어 봐야 아무것도 얻을 수 없으며, 고작해야 저주나 얻어걸릴 뿐입니다. 주를 믿으면서도 사랑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습니다. 알아들으셨습니까? 이곳에서 축복은커녕 저주만 받게 된다면 여기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제발 이곳에서 빈둥거리지 마십시오.

오늘 여러분에게 권면합니다. '여기는 승리하는 교회니까 내가 여기 붙어있기만 해도 어떻게든 콩고물이라도 떨어지겠지'라는 생각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입니다. 여러분에게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길은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사랑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기쁨으로 순종하여 행하십시오! 기꺼운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간다면 재정 문제뿐만 아니라 인생의 수많은 문제들이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오직 한 가지 질문만이 남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합니까?" 왜 우리 가운데 어떤 형제자매들은 속이 그토록 좁습니까? 사소한 일만 생기면 집에서 싸우고, 회사에서 다투고, 가는 곳마다 분란을 일으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기에 마음의 그릇이 커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명이 없으니 그 사소한 일들이 다 목숨 걸 만큼 큰일로 보이는 것입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그러므로 겉으로는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여러분이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는 법을 배워 결코 저주받는 신앙생활을 하지 않도록 권면하는 것입니다.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아볼로의 가르침은 세례 요한의 회개의 세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비록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심을 힘써 논증했을지라도, 그것은 이론적인 믿음에 불과했습니다. 아볼로의 논리는 겉보기에는 맞아 보였지만 실제로는 아무런 능력이 없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자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우며, 하나님의 말씀을 삶 속에서 살아내지 말로만 떠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볼로의 복음은 예수가 주님이심을 증명하는 데서 멈추어 버렸기에 아무런 능력이 없었던 것입니다.

6. 입으로만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소용없다

입술로만 주님을 사랑한다고 떠벌리는 신앙의 종착점은 결국 저주뿐이며,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반드시 올바른 교회관을 가져야 합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여러분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서 "목사님, 또 그 말씀이십니까?"라고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가 전하기만 하고 여러분이 듣기만 해서는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말만 하고 듣기만 하다가 알몸뚱이로 쫓겨나는 신세가 된다면 큰 낭패가 아니겠습니까? 말만 해서도 안 되고 듣기만 해서도 안 되며, 반드시 행해야 합니다! 말씀을 수없이 들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막상 행동으로 옮겨보면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얼마나 보잘것없으며 턱없이 부족한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행해야 합니까? 바로 양 떼를 돌보는 목양을 해야 합니다. 목양을 하려면 대가를 치러야 하지 않겠습니까? 갓난아이를 젖먹여 기르는 데 대가가 들지 않습니까? 묻겠습니다. 집에 토끼 두 마리만 키워도 외출할 때 "토끼 밥은 누가 주지?" 하고 걱정하지 않습니까? 날마다 먹이를 주지 않으면 배가 고파 깩깩거리기 때문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부모들은 "왜 울어? 배고픈 게 대수야?"라고 방치하기도 합니다. 고양이나 강아지를 키워도 외출하기가 조심스러워집니다.

어떤 자매가 저를 찾아와 "목사님, 저녁에는 집에 가봐야 합니다"라고 하기에 이유를 물었더니, 집에 있는 고양이가 아직 밥을 못 먹었다는 것입니다! 고양이 한 마리를 키워도 이럴진대, 사람을 양육하는 일은 어떠하겠습니까? 그런데 목양을 맡겨놓았더니 "까먹었습니다"라고 한다면, 그것이 제정신입니까? 자기 자식에게 젖 먹이는 일도 잊어버립니까? 스승은 일만 명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않습니다! 이 말씀이 누구를 겨냥한 것이겠습니까? 바로 아볼로나 게바, 곧 베드로 같은 자들을 두고 한 말입니다. 이들은 입술로만 번지르르하게 떠들고는 엉덩이를 털고 휑하니 떠나버리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알아두십시오. 우리 교회에서 저는 하나님의 양 떼를 참으로 신실하게 목양하겠노라 굳게 결단했습니다. 지난 세월 저는 방치된 채 방목되듯 자랐습니다. 먹을 것이 있으면 먹고 없으면 굶어야 했으며, 돌봐주는 이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저를 기억하시고 버리지 않으셨으며,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여 영의 양식을 공급받게 하셨고 오늘날까지 저를 먹여 기르셨습니다. 비록 지나온 세월 동안 수많은 고난을 겪었지만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 모진 연단을 겪었기에 사도 바울과 같은 목회자가 되어, 아비와 어미의 심정을 품고 양 떼를 목양하겠노라 굳게 결단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없이는 결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스승은 일만 명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않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결국 분별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이들은 말만 앞세우는 자들이었지만, 사도 바울만이 진심으로 삶을 내던져 헌신했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만 잘하는 자는 사기꾼일 수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랑에 관한 위대한 논증을 펼칩니다. 고린도전서 전편에 걸쳐 십수 장의 글을 써 내려갔지만, 그 편지 전체에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사랑이 가득 배어 있습니다. 성경에 《고린도전서》가 남아 있어 당시 사도 바울의 애끓는 심정을 우리가 깨달을 수 있게 하신 하나님께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7. 종교적 행위 역시 소용없다

주님을 사랑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고 하나님의 양 떼를 목양하십시오. 목양은 대단한 심력과 정성이 들어가는 일입니다. 성전에 엎드려 날마다 십수 시간씩 무릎을 꿇어 무릎에 굳은살이 박인들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아무 소용없습니다! 날마다 온 세상을 위해 중보기도를 길게 한다고 해서 자신이 하나님을 퍽 사랑한다고 생각합니까? 그런 것을 '종교적 행위'라고 부릅니다! 종교적 행위는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진정한 목양은 실질적인 땀과 정성을 쏟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의 목양은 이제 한 걸음 더 전진했습니다.

이전에는 여러분 몸에서 귀신을 쫓아내고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심어주는 사역을 했다면, 이제는 그것을 넘어 여러분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는 생계 능력을 길러주고 삶의 나쁜 습관들을 뜯어고쳐 줄 것입니다. 공부할 줄 모르는 자는 공부할 수 있게 만들고, 일할 줄 모르는 자는 일할 줄 알게 만들며, 돈을 벌 줄 모르는 자는 돈을 벌 수 있도록 훈련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의 기초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저는 여러분을 아무것도 할 줄 모르면서 그저 "할렐루야"만 외쳐대는 종교적 장애인으로 만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종교적 장애인이라 부르지 않고 무엇이라 부르겠습니까? 그런 사람은 세상 정부도 싫어하지만 저 역시 질색입니다! 그런 사람이 도대체 어디에 쓸모가 있습니까? 아무 짝에도 쓸모없으면서 툭하면 말썽이나 일으킵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행위 중심의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품고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까지 믿어야 합니까? 우리의 모든 감정과 마음을 하나님께 온전히 쏟아붓는 데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시며, 참되시며 살아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우리를 위해 자주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를 이토록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계신데, 그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거룩한 열정에 사로잡히지 않겠습니까? 자신을 온전히 내어드리고 하나님을 우리 삶의 최우선 순위에 두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 이렇게 고백하십시오. "하나님, 제 자신을 주님께 기꺼이 드립니다. 주께서 나를 이토록 사랑하셨는데 내가 무엇으로 보답하겠습니까? 내 생명을 온전히 주께 바칩니다." 이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선택입니까! 그 기쁨이 얼마나 충만한지 아십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주를 위해 기꺼이 대가를 치르고, 하나님께서 영원 속에서 나를 기억하시며 영광의 면류관을 예비하고 계심을 바라보는 소망, 이것이 얼마나 복되고 영광스럽습니까!

8. 사랑에 대한 미혹(착각)을 버리라

여러분, '사랑'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극심하게 왜곡되고 혼란스럽게 쓰이고 있는지 아십니까? 수많은 젊은 남녀들이 "너를 사랑해, 나를 사랑해" 하다가 결국 어떻게 됩니까? "내가 너를 이렇게 사랑하는데 너는 나한테 뭘 해줄 거야?"라고 따집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내가 너를 사랑하니 너는 내게 무언가를 주어야 하고, 주지 않으면 나는 상처받는다'는 기괴한 논리입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을 위해 자신을 내어드리고 주님을 위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자, 이제 《고린도전서》 13장 말씀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고린도전서 13:1-8)

저는 형제자매 여러분이 사랑의 참된 본질을 명확히 깨닫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사랑이란 대체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목양할 때 가슴속에 날마다 품고 염려하는 그것이 바로 참된 사랑입니다! 겉치레로 흉내만 내는 목양을 한다면, 산을 옮길 만한 예언의 능력이 있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말씀드리지만, 제가 전수받은 것은 사도 바울의 목양 체계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설교를 기가 막히게 잘한다고 해서 그것에만 주목하지 마십시오. 아무것도 아닙니다. 저는 설교도 강력하게 선포하지만, 삶으로 살아내는 실천은 설교보다 훨씬 더 강력합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고린도전서 13:2)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께서 염려하시는 것을 함께 염려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양 떼를 목양하기 위해 진정한 땀과 정성을 쏟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참으로 삶의 최우선 순위에 두고 있습니까?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의 마지막 장을 맺으면서 남긴 구절은 언뜻 보면 사람들을 의아하게 만듭니다. 그는 먼저 이렇게 문안합니다.

모든 형제도 너희에게 문안하니 너희는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나 바울은 친필로 너희에게 문안하노니 (고린도전서 16:20-21)

그러고는 돌연 이 한마디를 덧붙입니다.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와 함께 하고 나의 사랑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무리와 함께 할지어다 아멘 (고린도전서 16:22-24)

갑자기 이 준엄한 경고를 덧붙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바울은 자신이 전하고자 한 바를 아직 다 쏟아내지 못한 것 같아, 가장 핵심 중의 핵심을 마지막에 다시 한번 강조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 넘어서는 안 될 붉은 선을 그어주며, 이 선을 넘으면 저주를 받게 됨을 엄중히 경고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안에 하나님께로부터 온 참된 사랑이 부어지면 목양은 결코 어려운 짐이 되지 않습니다. 목양은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며,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전시용도 아닙니다. 아비와 어미의 심정을 품고 감당하는 목양을 통해 여러분 자신도 반드시 영적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처음 아이를 낳은 엄마들도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비로소 엄마가 되는 법을 배우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엄마가 되는 법을 완벽히 다 알고 나서 아이를 낳는 사람은 없습니다. 낳아 기르면서 엄마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저에게 "아이의 몸무게만큼 엄마의 힘도 세진다"라는 말을 했는데, 참으로 맞는 말입니다. 어떤 자매는 몸집도 작고 연약하여 힘이 없어 보이지만, 자기 아이를 안아 올릴 때는 어디서 그런 괴력이 나오는지 거뜬히 안고 다닙니다. 밀가루 한 포대는 무거워서 들지 못해도, 제 자식은 아무리 무거워도 번쩍 안아 올립니다. 여러분, 사랑은 능력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우리 안에 있을 때, 우리는 무한한 능력을 덧입어 앞을 향해 달려가며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게 할 수 있습니다. 제게 이 힘이 어디서 나오느냐고 묻는다면, 하나님을 사랑함에서 나온다고 답할 것입니다. 지혜가 어디서 오느냐고 묻는다면, 하나님을 사랑함에서 온다고 답할 것입니다. 어떻게 그 많은 사역을 감당하느냐고 묻는다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에 매일의 삶이 이토록 충만하고 풍성한 것이라 고백할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오늘 우리 다 함께 하나님께 고백합시다. "하나님, 내가 주님을 깊이 사랑합니다!"

이 찬양을 부르며 함께 예물을 드리겠습니다. 최근 많은 형제자매들이 성전 건축 헌금에 동참하고 계시니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토록 복된 일에 아무도 소외되지 말고 모두가 축복의 주역이 되기를 바랍니다. 적은 액수라 해서 부끄러워할 것 없고, 큰 액수라 해서 자만할 것도 없습니다. 다만 헌금을 과시의 수단으로 삼지 마십시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피조물로서 마땅한 본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고백하십시오. "예수님,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을 깊이 사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채찍에 맞으사 온몸에 상처를 입으셨음을 기억할 때마다, 우리 형제자매들이 치유를 받고 모든 질병이 예수께로 넘어갔음을 묵상할 때마다 하나님께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 주의 사랑이 어찌 그리 크고 위대하신지요! 하나님,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의 영광이 온 땅에 가득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내 생명의 그 무엇보다 주님을 더욱 사랑합니다!"

이 시간 손을 들고 함께 기도합시다. "하나님, 내 자신을 주께 온전히 드립니다. 주님을 사랑하되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겠습니다! 내게 능력을 더하사 이 믿음의 경주를 힘차게 달려가게 하옵소서. 날마다 주를 사랑하며 주를 더 깊이 알기를 갈망합니다. 내 삶의 모든 저주를 끊어버리고 모든 장애물을 제하여 주옵소서. 주님을 좇아 힘차게 달려가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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恩典
这几天一位10年的基督徒好友将我拉黑。我不知道自己是否有做错,如果做错我也愿意悔改。想听听牧师和牧者如何看。 这位朋友信主10多年,不去教会,不守主日,也不读经祷告。我邀请她去教会多次,分享各种属灵资源给她,她都是拒绝或者不回。我从来没说过什么,就觉得这是你自己的事,你不去不回就算了。前几年她的工作非常好,直到前几天她主动联系我,说她崩溃了,无法工作,耳朵里听到各种脏话,6月底可能面临离职,专业看不到前景。后来我就邀请她守主日,和她吃饭。我鼓励她也许神并没让你辞职,让你装备好继续在位置上为神做见证。我说你和神的关系对了,过敬虔的属灵生活这些问题就没了。她觉得我论断她,论断她不属灵,说话刺她的心,在她面前炫耀属灵骄傲,不接纳她,她不觉得自己和神的关系有什么问题,说我不应该告诉她怎么做,用专业衡量我。我先是和她道歉,说如果让你觉得我在论断你,我对你说对不起。后来我说但是我说的都是神的话,你可以自己去经历。吃饭不欢而散,她先走了,回家后发现她把能屏蔽和拉黑我的地方都拉黑屏蔽了。 这几天我一直在祷告也在想到底我哪里做错了,毕竟是10年的朋友。心里就像被人打了一拳。 我们是同一领域,以后可能还会有碰到的机会,这样的朋友是否值得挽回。 想听听牧师和牧者的建议
命定小助手
你做了一件耶稣都做不了的事。现在人拉人入教还以为是在服侍。其实耶稣不是这么做的。我没有看到耶稣这么做,所以我们也不做你做的这种事。
@恩典: 这几天一位10年的基督徒好友将我拉黑。我不知道自己是否有做错,如果做错我也愿意悔改。想听听牧师和牧者如何看。 这位朋友信主10多年,不去教会,不守主日,也不读经祷告。我邀请她去教会多次,分享各种属灵资源给她,她都是拒绝或者不回。我从来没说过什么,就觉得这是你自己的事,你不去不回就算了。前几年她的工作非常好,直到前几天她主动联系我,说她崩溃了,无法工作,耳朵里听到各种脏话,6月底可能面临离职,专业看不到前景。后来我就邀请她守主日,和她吃饭。我鼓励她也许神并没让你辞职,让你装备好继续在位置上为神做见证。我说你和神的关系对了,过敬虔的属灵生活这些问题就没了。她觉得我论断她,论断她不属灵,说话刺她的心,在她面前炫耀属灵骄傲,不接纳她,她不觉得自己和神的关系有什么问题,说我不应该告诉她怎么做,用专业衡量我。我先是和她道歉,说如果让你觉得我在论断你,我对你说对不起。后来我说但是我说的都是神的话,你可以自己去经历。吃饭不欢而散,她先走了,回家后发现她把能屏蔽和拉黑我的地方都拉黑屏蔽了。 这几天我一直在祷告也在想到底我哪里做错了,毕竟是10年的朋友。心里就像被人打了一拳。 我们是同一领域,以后可能还会有碰到的机会,这样的朋友是否值得挽回。 想听听牧师和牧者的建议
恩典儿
你好姊妹 我也刚刚和你经历的一模一样,我也是好心分享给姊妹课程,好心拉姊妹进入早上的领袖群,结果人家不领情,还各种论断我们的课程,我真的很无语!那个姊妹也是把我拉黑了 我三番五次的用另外一个号加她 也得不到她的饶恕!拉黑就拉黑吧 随她去吧 没了任何人地球照样转!没了神我们真的就完了 单单仰望神
@恩典: 这几天一位10年的基督徒好友将我拉黑。我不知道自己是否有做错,如果做错我也愿意悔改。想听听牧师和牧者如何看。 这位朋友信主10多年,不去教会,不守主日,也不读经祷告。我邀请她去教会多次,分享各种属灵资源给她,她都是拒绝或者不回。我从来没说过什么,就觉得这是你自己的事,你不去不回就算了。前几年她的工作非常好,直到前几天她主动联系我,说她崩溃了,无法工作,耳朵里听到各种脏话,6月底可能面临离职,专业看不到前景。后来我就邀请她守主日,和她吃饭。我鼓励她也许神并没让你辞职,让你装备好继续在位置上为神做见证。我说你和神的关系对了,过敬虔的属灵生活这些问题就没了。她觉得我论断她,论断她不属灵,说话刺她的心,在她面前炫耀属灵骄傲,不接纳她,她不觉得自己和神的关系有什么问题,说我不应该告诉她怎么做,用专业衡量我。我先是和她道歉,说如果让你觉得我在论断你,我对你说对不起。后来我说但是我说的都是神的话,你可以自己去经历。吃饭不欢而散,她先走了,回家后发现她把能屏蔽和拉黑我的地方都拉黑屏蔽了。 这几天我一直在祷告也在想到底我哪里做错了,毕竟是10年的朋友。心里就像被人打了一拳。 我们是同一领域,以后可能还会有碰到的机会,这样的朋友是否值得挽回。 想听听牧师和牧者的建议
恩典
也不是拉她入教,她已经是基督徒了,只不过不去教会,不过属灵生活。 而且是她先联系的我,她自己也不了解主内资源,主日我才邀请她去的教会,心想这样她就认识了,以后去不去都随她的便,是一个资源。 也请您指教,耶稣怎么做的,您说你们不会做这种事,也请教你们会怎么做。
@恩典: 这几天一位10年的基督徒好友将我拉黑。我不知道自己是否有做错,如果做错我也愿意悔改。想听听牧师和牧者如何看。 这位朋友信主10多年,不去教会,不守主日,也不读经祷告。我邀请她去教会多次,分享各种属灵资源给她,她都是拒绝或者不回。我从来没说过什么,就觉得这是你自己的事,你不去不回就算了。前几年她的工作非常好,直到前几天她主动联系我,说她崩溃了,无法工作,耳朵里听到各种脏话,6月底可能面临离职,专业看不到前景。后来我就邀请她守主日,和她吃饭。我鼓励她也许神并没让你辞职,让你装备好继续在位置上为神做见证。我说你和神的关系对了,过敬虔的属灵生活这些问题就没了。她觉得我论断她,论断她不属灵,说话刺她的心,在她面前炫耀属灵骄傲,不接纳她,她不觉得自己和神的关系有什么问题,说我不应该告诉她怎么做,用专业衡量我。我先是和她道歉,说如果让你觉得我在论断你,我对你说对不起。后来我说但是我说的都是神的话,你可以自己去经历。吃饭不欢而散,她先走了,回家后发现她把能屏蔽和拉黑我的地方都拉黑屏蔽了。 这几天我一直在祷告也在想到底我哪里做错了,毕竟是10年的朋友。心里就像被人打了一拳。 我们是同一领域,以后可能还会有碰到的机会,这样的朋友是否值得挽回。 想听听牧师和牧者的建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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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命定小助手: 你做了一件耶稣都做不了的事。现在人拉人入教还以为是在服侍。其实耶稣不是这么做的。我没有看到耶稣这么做,所以我们也不做你做的这种事。
命定小助手
她是基督徒?那简直是侮辱基督徒这个名号了。
@恩典: 这几天一位10年的基督徒好友将我拉黑。我不知道自己是否有做错,如果做错我也愿意悔改。想听听牧师和牧者如何看。 这位朋友信主10多年,不去教会,不守主日,也不读经祷告。我邀请她去教会多次,分享各种属灵资源给她,她都是拒绝或者不回。我从来没说过什么,就觉得这是你自己的事,你不去不回就算了。前几年她的工作非常好,直到前几天她主动联系我,说她崩溃了,无法工作,耳朵里听到各种脏话,6月底可能面临离职,专业看不到前景。后来我就邀请她守主日,和她吃饭。我鼓励她也许神并没让你辞职,让你装备好继续在位置上为神做见证。我说你和神的关系对了,过敬虔的属灵生活这些问题就没了。她觉得我论断她,论断她不属灵,说话刺她的心,在她面前炫耀属灵骄傲,不接纳她,她不觉得自己和神的关系有什么问题,说我不应该告诉她怎么做,用专业衡量我。我先是和她道歉,说如果让你觉得我在论断你,我对你说对不起。后来我说但是我说的都是神的话,你可以自己去经历。吃饭不欢而散,她先走了,回家后发现她把能屏蔽和拉黑我的地方都拉黑屏蔽了。 这几天我一直在祷告也在想到底我哪里做错了,毕竟是10年的朋友。心里就像被人打了一拳。 我们是同一领域,以后可能还会有碰到的机会,这样的朋友是否值得挽回。 想听听牧师和牧者的建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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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命定小助手: 你做了一件耶稣都做不了的事。现在人拉人入教还以为是在服侍。其实耶稣不是这么做的。我没有看到耶稣这么做,所以我们也不做你做的这种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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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恩典: 也不是拉她入教,她已经是基督徒了,只不过不去教会,不过属灵生活。 而且是她先联系的我,她自己也不了解主内资源,主日我才邀请她去的教会,心想这样她就认识了,以后去不去都随她的便,是一个资源。 也请您指教,耶稣怎么做的,您说你们不会做这种事,也请教你们会怎么做。
恩典
谢谢姐妹的分享。我这个姐妹是相处了10年,让我觉得是最好朋友之一的一位姐妹。过去十年间她话语不经意的伤害,轻蔑,我一次一次的原谅。她父母离异,母亲过世了,她又比我小 看到她的时候我心里总是怜悯她。虽然她不过信仰生活,但是这十年神真的是很恩待他,有时候让我觉得神对待她比对待我仁慈多了,要是我这样早就被神击打死了,她前面这十年过的好好的。 这两天确实让我觉得心痛失落,甚至对谨守遵行神的话神的教导也有怀疑的想法。谢谢你的鼓励。 昨天下午还在祷告有人能按照神的话安慰我。 上帝祝福你,也安慰你
@恩典: 这几天一位10年的基督徒好友将我拉黑。我不知道自己是否有做错,如果做错我也愿意悔改。想听听牧师和牧者如何看。 这位朋友信主10多年,不去教会,不守主日,也不读经祷告。我邀请她去教会多次,分享各种属灵资源给她,她都是拒绝或者不回。我从来没说过什么,就觉得这是你自己的事,你不去不回就算了。前几年她的工作非常好,直到前几天她主动联系我,说她崩溃了,无法工作,耳朵里听到各种脏话,6月底可能面临离职,专业看不到前景。后来我就邀请她守主日,和她吃饭。我鼓励她也许神并没让你辞职,让你装备好继续在位置上为神做见证。我说你和神的关系对了,过敬虔的属灵生活这些问题就没了。她觉得我论断她,论断她不属灵,说话刺她的心,在她面前炫耀属灵骄傲,不接纳她,她不觉得自己和神的关系有什么问题,说我不应该告诉她怎么做,用专业衡量我。我先是和她道歉,说如果让你觉得我在论断你,我对你说对不起。后来我说但是我说的都是神的话,你可以自己去经历。吃饭不欢而散,她先走了,回家后发现她把能屏蔽和拉黑我的地方都拉黑屏蔽了。 这几天我一直在祷告也在想到底我哪里做错了,毕竟是10年的朋友。心里就像被人打了一拳。 我们是同一领域,以后可能还会有碰到的机会,这样的朋友是否值得挽回。 想听听牧师和牧者的建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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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恩典儿: 你好姊妹 我也刚刚和你经历的一模一样,我也是好心分享给姊妹课程,好心拉姊妹进入早上的领袖群,结果人家不领情,还各种论断我们的课程,我真的很无语!那个姊妹也是把我拉黑了 我三番五次的用另外一个号加她 也得不到她的饶恕!拉黑就拉黑吧 随她去吧 没了任何人地球照样转!没了神我们真的就完了 单单仰望神
周晨洋
神是万能的吗?
命定小助手
是的!
@周晨洋: 神是万能的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