命定神学
推荐评论
命定神学 关闭
【성경공부】민수기 33장 - 인생길의 핵심은 매 순간의 선택에 있다

2018-09-28 50,787 民数记 逻辑体系 神的心意 做正确的选择 学会看透 不要抱怨 相信神

相关经文

民数记33章-从埃及到摩押
  • 1 以色列人按着军队,在摩西、亚伦的手下出埃及地所行的路程(或译:站口;下同)记在下面。
  • 2 摩西遵着耶和华的吩咐记载他们所行的路程,其路程乃是这样:
  • 3 正月十五日,就是逾越节的次日,以色列人从兰塞起行,在一切埃及人眼前昂然无惧地出去。
  • 4 那时,埃及人正葬埋他们的长子,就是耶和华在他们中间所击杀的;耶和华也败坏他们的神。
  • 5 以色列人从兰塞起行,安营在疏割。
  • 6 从疏割起行,安营在旷野边的以倘。
  • 7 从以倘起行,转到比哈·希录,是在巴力·洗分对面,就在密夺安营。
  • 8 从比哈·希录对面起行,经过海中到了书珥旷野,又在伊坦的旷野走了三天的路程,就安营在玛拉。
  • 9 从玛拉起行,来到以琳(以琳有十二股水泉,七十棵棕树),就在那里安营。
  • 10 从以琳起行,安营在红海边。
  • 11 从红海边起行,安营在汛的旷野。
  • 12 从汛的旷野起行,安营在脱加。
  • 13 从脱加起行,安营在亚录。
  • 14 从亚录起行,安营在利非订;在那里,百姓没有水喝。
  • 15 从利非订起行,安营在西奈的旷野。
  • 16 从西奈的旷野起行,安营在基博罗·哈他瓦。
  • 17 从基博罗·哈他瓦起行,安营在哈洗录。
  • 18 从哈洗录起行,安营在利提玛。
  • 19 从利提玛起行,安营在临门·帕烈。
  • 20 从临门·帕烈起行,安营在立拿。
  • 21 从立拿起行,安营在勒撒。
  • 22 从勒撒起行,安营在基希拉他。
  • 23 从基希拉他起行,安营在沙斐山。
  • 24 从沙斐山起行,安营在哈拉大。
  • 25 从哈拉大起行,安营在玛吉希录。
  • 26 从玛吉希录起行,安营在他哈。
  • 27 从他哈起行,安营在他拉。
  • 28 从他拉起行,安营在密加。
  • 29 从密加起行,安营在哈摩拿。
  • 30 从哈摩拿起行,安营在摩西录。
  • 31 从摩西录起行,安营在比尼·亚干。
  • 32 从比尼·亚干起行,安营在曷·哈及甲。
  • 33 从曷·哈及甲起行,安营在约巴他。
  • 34 从约巴他起行,安营在阿博拿。
  • 35 从阿博拿起行,安营在以旬·迦别。
  • 36 从以旬·迦别起行,安营在寻的旷野,就是加低斯。
  • 37 从加低斯起行,安营在何珥山,以东地的边界。
  • 38 以色列人出了埃及地后四十年,五月初一日,祭司亚伦遵着耶和华的吩咐上何珥山,就死在那里。
  • 39 亚伦死在何珥山的时候年一百二十三岁。
  • 40 住在迦南南地的迦南人亚拉得王听说以色列人来了。
  • 41 以色列人从何珥山起行,安营在撒摩拿。
  • 42 从撒摩拿起行,安营在普嫩。
  • 43 从普嫩起行,安营在阿伯。
  • 44 从阿伯起行,安营在以耶·亚巴琳,摩押的边界。
  • 45 从以耶·亚巴琳起行,安营在底本·迦得。
  • 46 从底本·迦得起行,安营在亚门·低比拉太音。
  • 47 从亚门·低比拉太音起行,安营在尼波对面的亚巴琳山里。
  • 48 从亚巴琳山起行,安营在摩押平原、约旦河边、耶利哥对面。
  • 49 他们在摩押平原沿约旦河边安营,从伯·耶施末直到亚伯·什亭。
  • 50 耶和华在摩押平原约旦河边、耶利哥对面晓谕摩西说:
  • 51 “你吩咐以色列人说:你们过约旦河进迦南地的时候,
  • 52 就要从你们面前赶出那里所有的居民,毁灭他们一切錾成的石像和他们一切铸成的偶像,又拆毁他们一切的邱坛。
  • 53 你们要夺那地,住在其中,因我把那地赐给你们为业。
  • 54 你们要按家室拈阄,承受那地;人多的,要把产业多分给他们;人少的,要把产业少分给他们。拈出何地给何人,就要归何人。你们要按宗族的支派承受。
  • 55 倘若你们不赶出那地的居民,所容留的居民就必作你们眼中的刺,肋下的荆棘,也必在你们所住的地上扰害你们。
  • 56 而且我素常有意怎样待他们,也必照样待你们。”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한다

모세가 《민수기》 33장을 기록할 때, 출애굽부터 자신이 《민수기》의 이 장을 기록할 때까지 일어난 일들을 기록하려고 했습니다. 이 장을 기록한 목적은 무엇일까요? 바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알려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과거에도 너희는 선택해야 했고, 오늘도 여전히 선택해야 한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이르라 너희가 요단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너희 앞에서 그 땅의 모든 주민을 너희가 몰아내고 그들의 조각한 석상과 부어 만든 우상을 다 깨뜨리며 산당을 다 헐고 그 땅을 차지하여 거기 거주하라 내가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이 되게 할 것임이라.(《민수기》 33:51-53)

너희가 그 땅의 주민을 몰아내지 아니하면 너희가 남겨 둔 자들이 너희의 눈에 가시가 되고 너희의 옆구리에 찌르는 것이 되어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서 너희를 괴롭게 할 것이요 나는 그들에게 행하기로 생각한 것을 너희에게도 행하리라.(《민수기》 33:55-56)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올바른 선택을 하는 법을 배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나눌 주제는 “인생의 길에서 핵심은 매번 선택하는 것이다”입니다. 사실 그들이 걸어온 전체 길에서 본 것은 은혜와 이스라엘 백성의 패역으로 가득했습니다. 처음에 이스라엘 백성은 군대의 대열을 이루어 모세와 아론의 인도 아래 애굽에서 나왔습니다. 하나님은 군대의 모습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셨지만, 그들은 군대처럼 행동하지 못했고 매번 평범한 백성의 선택을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 성경은 어떻게 말씀합니까?

첫째 달 열다섯째 날이니 곧 유월절 다음 날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사람의 목전에서 큰 담력을 가지고 라암셋을 출발하였으니 애굽인은 여호와께서 그들 중에 치신 그 모든 장자를 장사하는 때라 여호와께서 애굽의 신들에게도 벌을 주셨더라.(《민수기》 33:3-4)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을 변호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사람을 마구 죽이는 하나님이시며, 모든 애굽인의 장자를 치셨습니다. 애굽의 모든 사람이 슬픔 가운데 있을 때 이스라엘 백성은 두려움 없이 나아갔고, 애굽의 각 가정에서 금은보화를 빼앗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보는 이스라엘 백성은 순종하는 백성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그들을 애굽의 종살이하던 땅에서 이끌어 내셨고, 동시에 애굽인의 장자를 치셨습니다. 애굽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거듭해서 패역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애굽은 전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였고, 바로는 자기 뜻대로 행하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패역했고, 매번 자신이 한 말을 지키지 않았으며, 그런 상태로 하나님을 대적했습니다.

꿰뚫어 보는 법을 배우라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절대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지 마십시오. 당신이 누구든지, 손에 얼마나 큰 권력을 가지고 있든지, 하나님을 대적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한 선택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모세와 아론을 따라 애굽에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애굽의 바로 왕과 백성들은 잘못된 선택을 했고, 결국 애굽의 모든 가정의 장자가 하나님의 손에 죽었습니다. 오늘 우리 형제자매들이 이것을 보면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와, 하나님, 너무 심하신 것 아닙니까?”

우리가 꿰뚫어 보지 못하기 때문에 선택할 때도 꿰뚫어 보지 못한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잘못된 선택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 할 때 모세는 다시 한번 그들에게 깨달음을 주며 올바른 선택을 하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너희가 그 땅의 주민을 몰아내지 아니하면 너희가 남겨 둔 자들이 너희의 눈에 가시가 되고 너희의 옆구리에 찌르는 것이 되어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서 너희를 괴롭게 할 것이요 나는 그들에게 행하기로 생각한 것을 너희에게도 행하리라.(《민수기》 33:55-56)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그들의 머릿속에는 무엇이 생각나고 있었을까요? “이렇게 많은 사람을 다 죽이다니, 너무 잔인한 것 아닌가?” 만일 그들이 그렇게 생각했다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들을 대하신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도 대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논리 체계가 무엇인지 정말 알지 못합니다. 사람의 논리로 이 성경 말씀을 읽으면 매우 힘들어집니다. 멀쩡한 백성이 들어가서 사람을 죽이고 남의 땅을 빼앗다니, 너무 잔인한 것 아닙니까? 《창세기》로 돌아가 보면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불을 내리셔서 소돔과 그 안의 주민들을 모두 멸망시키셨습니다. 이런 내용을 읽을 때마다 주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우리 가운데서 반드시 이렇게 물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너무 잔인하신 것 아닙니까?” 오늘 형제자매들은 알아야 합니다. 그 땅의 주민들이 하나님을 대적하기로 선택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멸하신 것입니다.

올바른 선택의 기초는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의 논리 체계에 따르면 하나님은 매우 잔인하신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아말렉 사람들을 죽이라고 하신 일을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매우 잔인하게 느껴집니다. 사람은 하지 않기로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을 모두 죽이라는 것이었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을 남겨 두었습니다. 그 결과 그 아말렉 사람들은 《에스더》 때까지 남아 유대인의 온 족속을 멸하려 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논리 체계가 무엇인지 이해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을 꿰뚫어 보아야 합니다. 꿰뚫어 보지 못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우리는 좋은 일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하나님께 죄를 짓게 됩니다. 우리 안에 잘못된 연민을 품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대하신 것처럼 우리도 대하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정말 쉽지 않습니다. 매번 중요한 순간마다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서 실제로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 깨달아야 합니다. 사실 하나님의 관점과 우리의 관점은 완전히 다릅니다. 영적인 사람은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하나님은 더욱 모든 것을 꿰뚫어 보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생명과 죽음을 모두 분명하게 보십니다. 당신은 “이 사람들을 죽이다니 너무 아깝다!”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몇 살에 죽든 마찬가지입니다. 어차피 죄 가운데서 죽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보실까요? 가나안 사람들이 본래부터 하나님께 패역했고, 그들이 온갖 악한 일을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매우 공의로우신 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다른 사람을 대하는 대로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을 대하실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불의하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자신이 매우 의롭다고도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가나안 사람들을 그렇게 대하신 것은 그들이 실제로 악을 많이 행했고 죄악이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 형제자매들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결코 하나님을 대적해서는 안 됩니다.

원망하지 말라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 땅에서 나왔을 때 하나님은 원래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 가나안 땅의 사람들을 모두 멸하게 하려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나와 광야를 지나 바닷가에 이르렀습니다. 앞에는 바다가 있고 뒤에는 길이 없었습니다. 애굽의 바로 왕은 갑자기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 주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그들을 공격하려 했습니다. 그들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왕은 군대를 이끌고 이스라엘 백성을 추격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앞에는 바다, 뒤에는 추격해 오는 군대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 그들은 처음으로 원망했습니다.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사실 이렇게 말한 사람들은 죽는 것이 두려웠던 것입니다.

저는 우리 가운데 몇몇 형제자매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아이고, 그냥 죽어 버렸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잠시 후에는 다시 이렇게 말합니다. “아이고, 제일 좋은 의사를 찾아 주세요.” 보통 이렇게 소리치는 사람들은 죽고 싶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진정으로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사람은 사실 그렇게 비참한 상황까지 가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다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모든 형제자매에게 여러 번의 기회를 주셔서 하나님의 권능 있는 역사를 보게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 그들은 무기도 없는 이스라엘 백성 무리를 강대한 애굽 군대 앞에서 이끌어 내시는 하나님을 직접 보았습니다.

인생의 길에서 오늘 우리가 어디까지 왔든지 하나님이 우리의 길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자주 앞에는 홍해가 있고 뒤에는 추격해 오는 군대가 있는 상황에 놓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하나님이 능력의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다시 한번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셔서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마른 땅처럼 건너게 하셨고, 애굽 군대가 추격해 왔을 때 하나님께서 바닷물을 합치셔서 애굽 군대를 바닷물 속에 묻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잘못된 선택을 했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은혜를 베푸셨다고 해서 여러분이 올바른 선택을 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은혜를 반복해서 경험하는 가운데 매번의 선택이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때로 우리가 잘못된 선택을 해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지만, 매번 그렇게 운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매번의 선택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원망하는 사람도 홍해를 건널 수 있었다면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은 더욱 홍해를 건너야 하지 않겠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매번 선택의 순간에 상황을 만날 때 우리는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습니까?

오늘 우리 형제자매들은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를 건넌 후 사흘 길을 걸어 마라에 진을 쳤는데, 그때 물이 없었습니다. 정말 비참한 상황이었습니다. 사람이 물이 없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가 이스라엘 백성이라면, 하나님께서 애굽 사람들을 치시고 애굽 군대를 바다에 묻으셨으며 홍해를 마른 땅처럼 건너게 하신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이제 아주 작은 문제가 생겼습니다. 물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선택과 반응을 해야 합니까? 여러분의 반응과 마음속 선택이 원망이라면, 여러분은 여전히 꿰뚫어 보지 못한 것이며 여전히 패역한 백성입니다.

하나님은 다시 이스라엘 백성에게 긍휼을 베푸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나뭇가지를 주워 물에 던지자 쓴 물이 단물로 변했습니다. 이제 충분히 경험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죽게 하려 하시는 것이 아니라 살게 하신다는 것을 알게 하십니다. 그 후 이스라엘 백성은 마라를 떠나 엘림에 이르러 그곳에 진을 쳤고, 그곳에는 마실 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출발하여 계속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군대처럼 이렇게 계속 행진하는 것은 정말 힘듭니다! 사실 우리 인생의 길도 정말 힘듭니다. 인생의 길은 그렇게 쉽게 걸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힘든 것은 힘든 것이고,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죽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들어가게 하려 하십니다. 영원한 소망을 품고 있다면 이 작은 고난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늘 우리는 여러 가지 어려움과 곤경을 자주 만납니다. 힘들게 여기까지 왔는데 또 마실 물이 없습니다. 앞의 두 번 물이 없었을 때에는 배웠으니 이번에는 좀 배웠겠지요?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또 원망했습니다. 믿음의 공과를 배울 수 없습니까? 매번 원망해야만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원망하지 않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평생의 선택을 꿰뚫어 보라

《민수기》 33장에 이르렀을 때 아론은 이미 죽었고, 죽을 사람들은 거의 다 죽었습니다. 여러분은 한 사람의 평생의 선택을 꿰뚫어 볼 수 있습니까? 사람이 평생 무엇을 하며 살아가는지 꿰뚫어 볼 수 있습니까? 사람의 평생의 선택은 그 안에 있는 논리 체계에 달려 있습니다. 사람의 평생의 선택은 문제를 만났을 때 마음속에 품는 태도에 달려 있습니다. 사람의 평생의 선택은 살아 있음에 대한 그의 관점에 달려 있습니다. 그는 도대체 무엇을 추구합니까? 만일 그가 편안하고 작은 삶만 추구한다면 어려움 하나만 만나도 일상이 흔들리므로 분명 계속 걸어가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이 모든 것을 꿰뚫어 보았다면 물이 없을 때 금식하며 기도하면 되는데, 그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그때 여호수아와 갈렙, 그리고 모세도 물을 마시지 못했습니다. 목이 마르면 목마르다고 느낄수록 더욱 목이 마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고통스럽게 목말라하며 원망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정말 목이 말라도 원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자신에게 물을 주실 것이고 반드시 이겨 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느낌을 따라가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목마른 느낌이 줄어듭니다.

형제자매 여러분도 한번 시험해 보십시오. 어려움을 보자마자 “왜 이렇게 됐지? 왜 저렇게 됐지?”라고 원망하기 시작하면 고통스러운 느낌이 배가됩니다. 그러나 원망하지 않고 믿음으로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하면, 어려움을 만나도 괜찮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나는 이겨 낼 수 있다. 반드시 이겨 낼 수 있다.” 왜냐하면 이 환경은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고통스러운 느낌이 절반으로 줄어듭니다. 계산해 보면 하나는 절반으로 줄어들고 하나는 배가되니 네 배의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형제자매들에게 말씀드립니다.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일을 꿰뚫어 보고, 원망하지 않으며,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를 가지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공급하신다는 것을 알면 사람은 인생의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얼마 후 이스라엘 백성은 시내 광야에 이르렀고 모세는 산에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상황은 매우 나빴습니다. 그들은 “모세가 사라졌으니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지?”라고 말할 이유를 많이 찾았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을 위해 신을 만들었습니다. 금송아지 두 개를 만들어 “이것이 우리의 신이다. 이것이 우리를 인도하게 하자”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무슨 논리입니까? 사람이 손으로 만든 신은 신이 아닙니다. 오늘 형제자매들이 이스라엘 백성이 걸어간 길을 보면, 하나님께서 다시 한번 이스라엘 백성에게 은혜를 베푸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전염병을 보내 이스라엘 백성을 모두 치려 하셨지만, 모세가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용서하시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게 하셨으며, 시내 광야에서 《십계명》과 여러 계명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오랫동안 고기를 먹지 못했다는 이유로 또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매번 어떤 선택을 했는지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의 선택은 정말 어리석었습니다. 결국 하세롯에 이르기 전의 어느 곳에서 다시 메추라기를 먹었고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우리는 사람이 살아가는 일을 조금 더 꿰뚫어 볼 수 없습니까? 하나님처럼 분명하게 볼 수 없습니까?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사람이 살아가다가 어려움과 장애물을 조금 만나면 우리 안의 반응을 다스릴 수 없습니까? 설령 완전히 다스리지 못하더라도 우리 안의 고통스러운 느낌을 절반으로 줄일 수는 없습니까? 일을 만날 때마다 원망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하는 사람들은 모두 매우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조금 자세하지 않게 요약하자면, 사람에게 악성 질병이 생기는 것은 우리 안의 선택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어떤 일을 조금만 만나도 매우 긴장하고, 조금만 일이 생겨도 원망하는 사람은 대개 암이나 악성 질병에 걸리기 쉽습니다.

원망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으라

마침내 하세롯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열두 정탐꾼을 선택하게 하셔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곳의 과일을 가져오게 하셨습니다. 열두 정탐꾼 가운데 열 명이 악한 보고를 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다시 한번 선택의 어려움에 직면했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않고 애굽으로 돌아가기로 선택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는 길에서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을 선택할 수도 있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을 선택할 수도 있으며, 광야에 머무는 것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선택은 무엇입니까?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로 선택한다면 치열한 전쟁에 직면해야 합니다. 그 땅에는 거인들이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믿지 않기로 선택했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않기로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자리에서 열 명의 정탐꾼을 치시고 여호수아와 갈렙만 남겨 두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이 걸어간 모든 단계의 선택은 지명들 속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지명들은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 때문에 그곳에서 다시 잘못된 선택을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한 선택은 그들에게만 영향을 준 것이 아니라 모세 등에게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모세와 여호수아와 갈렙은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광야에서 사십 년을 돌아다녀야 했습니다. 이것은 슬픈 일이었습니다!

만일 제가 모세나 여호수아나 갈렙이었다면 마음이 매우 괴로웠을 것입니다. “내가 왜 너희와 함께 여기서 돌아다녀야 하지?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쯤 가나안 땅에서 편안하게 살고 있었을 텐데, 왜 여기서 돌아다녀야 하지? 다 너희 때문이잖아!”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모세의 글에는 그가 원망했다는 내용이 없습니다. 모세는 마치 이 현실을 아주 담담하게 받아들인 것 같습니다. “내가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사십 년을 돌아다녀야 하는구나.”

광야에서 사십 년을 보내는 것이 재미있었겠습니까? 무슨 오락 활동이 있었겠습니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광야에서 사십 년을 돌아다니며 맛있는 것을 무엇을 먹을 수 있었겠습니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사십 년을 돌아다닐 때 모세의 마음이 실제로 어땠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가 기록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정말 이 부분을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저는 모세와 여호수아와 갈렙이 모든 것을 꿰뚫어 본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압니다. 모세의 관점은 하나님과 같았습니다. 사람이 사는 것은 원래 그런 것입니다. 광야에서 돌아다녀야 한다면 그냥 광야에서 돌아다니면 됩니다. 어차피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아도 사는 것이고 저렇게 살아도 사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셨다면, 나는 너희와 함께 계속 걸어가겠다. 그렇게 해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 안에 원망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선택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이렇게 된 것이라면 우리 함께 걸어가겠습니다. 언젠가는 제가 가나안 땅에 들어갈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시니 저는 반드시 올바른 선택을 하겠습니다.” 이것이 여호수아와 갈렙과 모세의 논리 체계였습니다.

여러분은 그들이 원망하는 것을 보았습니까? 그러나 사실 그들이야말로 정말 억울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가 좋은 삶을 살아야 했고, 광야에서 돌아다닐 필요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나 모세와 여호수아와 갈렙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이 길을 함께 걸어야 했습니다. 여러분이 괴로웠던 것처럼 그들도 괴로웠습니다.

그러나 어떻든 우리가 평생 걸어가는 길에서 오늘 하나의 갈림길을 만나고, 내일 또 하나의 갈림길을 만나며, 오늘 한 가지 일을 만나고 내일 또 한 가지 일을 만나고 모레 또 한 가지 일을 만납니다. 여러분 안에서는 모든 것을 이미 꿰뚫어 보고 있습니까? 이 모든 일을 이미 꿰뚫어 보고 있습니까? 꿰뚫어 보았다면 어떻게 선택해야 하는지 알게 됩니다. 어차피 사람의 삶은 그런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 있든지, 내가 매우 억울하고 부당한 일을 당했으며 이런 일을 겪어서는 안 되고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광야에서 사십 년을 돌아다녀서는 안 된다고 해도, 이미 돌아다녀야 한다면 그냥 돌아다니면 됩니다. 나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오늘 저는 다시 형제자매들 앞에서 자랑하고 싶습니다. 저는 정말 많은 것을 꿰뚫어 봅니다. 물론 반드시 그렇게 깊이 꿰뚫어 보는 것은 아니지만, 제 안에 이어진 것은 바울의 논리 체계이며, 모세와 같은 마음입니다. 이렇게 되면 또 어떻습니까? 사람의 평생은 원래 그런 것입니다. 어떻게 되었든 계속 걸어가야 합니다. 하루 스물네 시간, 일 년 삼백육십오 일을 그렇게 걸어가면 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원망하지 마십시오.

나는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여깁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얻었다면 무엇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하나님이 계시다면 힘들고 뒤흔들리는 삶을 살아도 괜찮습니다! 오늘 형제자매 여러분, 저와 같은 마음을 품을 수 있습니까? 많은 일을 꿰뚫어 보면 정말 잘 살 수 있습니다. 근심을 만날 때에는 근심이 절반으로 줄고, 기쁨을 만날 때에는 기쁨이 배가됩니다. 하나님보다 더 좋은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살아 있다면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며 살아갑시다.

우리는 매번 선택에 직면하고, 매번 길을 걸어가는 것이 사실 매우 힘듭니다. 모세와 여호수아와 갈렙이 여기서 출발하고 저기서 출발하는 일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때로 우리는 마치 함께 묶여 강제로 끌려가는 것처럼 느낍니다. 이스라엘 전체가 실패하고 이스라엘 전체가 하나님의 뜻을 거역했지만 모세와 여호수아와 갈렙도 똑같은 결과를 감당해야 했습니다. 원망할 이유가 충분히 있었지만, 여러분은 원망하기로 선택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이 소그룹이나 목회 지역을 이끌 때에도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많이 생길 수 있지만, 사람은 결국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원망을 선택할 수도 있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언젠가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서서 결산하게 될 것이며, 언젠가 하나님께서 우리로 이 세상의 수고를 그치고 그분 안에서 안식을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모세가 기록한 이곳들은 모두 그가 직접 걸어온 길이기도 합니다. 모세도 다른 백성들과 마찬가지로 걸으면 다리가 아팠고 마음도 답답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이 모든 것을 꿰뚫어 보았기 때문에, 그 후 우리의 반응은 매우 달라집니다.

며칠 전 저는 한 자매와 이야기를 나누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아는 한 목회자가 WR 교회라는 곳에서 사역하고 있는데,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습니다. 그는 담임목사직을 자기 아들에게 넘겨주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제가 그 자매에게 물었습니다. “자매님,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러자 자매가 말했습니다. “그 아들은 분명 아주 잘 살겠네요. 위엄 있고 화려하게 살겠어요.” 저는 그 말을 듣고 생각했습니다. 앞으로 그 자매를 천천히 가르쳐야겠다고 말입니다. 만 명이 모이는 교회라면 헌금 규모를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일 년에 평균 육천 싱가포르 달러를 헌금한다면 만 명은 육천만 싱가포르 달러입니다. 정말 많은 돈이고, 겉으로 보기에도 매우 화려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담임목사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정말 알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목회자의 자리는 앉기 쉽지 않습니다. 또한 교회에는 오랜 경력을 가진 지도자들이 많이 있는데, 그들이 정말 그의 아들을 존중하겠습니까? 물론 그의 아들에게 ‘말씀’이 있다면 괜찮습니다. 그러나 ‘말씀’이 없다면 그가 교회를 잘 목양할 수 있겠습니까? 아마 쉽지 않을 것입니다. 살아가는 일이 아주 단순한데, 굳이 아들에게 이렇게 어려운 길을 선택하게 해야 합니까? 사실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차라리 아들이 자신의 팀을 이끌고 작은 교회를 세운 뒤 큰 교회로 성장시켜도 괜찮습니다. 어차피 그의 아들은 반드시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 굳이 이런 일을 해야 합니까? 물론 이것은 제 생각입니다.

사람이 세상의 일들을 꿰뚫어 볼 수 있습니까? 세상의 일을 꿰뚫어 보면 세상의 명예와 이익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람이 명예와 이익을 추구한다면, 물론 그 사람이 추구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추구하는 것이 명예와 이익과 영광이라면, 많은 경우 고통이 사람을 깊이 찌르게 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세상의 일을 꿰뚫어 본다면 광야에서 떠돌더라도 그 광야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과 모세처럼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이런 결과를 감당하면서도 한 번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원망은 매우 고통스럽기 때문이며, 원망은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모든 것을 꿰뚫어 볼 수 있다면 이런 일을 만나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사람이 일을 꿰뚫어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사람이 이 세상에 와서 많은 일을 꿰뚫어 볼 수 있겠습니까? 많은 일을 꿰뚫어 본다면 광야에서 죽지 않고, 광야에서 고통스럽게 떠돌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꿰뚫어 보는 사람이 복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바울은 복음 때문에 감옥에 갇혔지만 그 안에 있는 기쁨을 빼앗을 사람도, 일도 없었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지만, 성경의 《창세기》부터 《민수기》까지를 보면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람들에게는 매우 특별한 자질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미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이 모두 그러했습니다. 요셉은 애굽 땅에 노예로 팔려 갔지만 그의 안에는 여전히 영원한 소망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하나님을 의지했고 누구도 그의 사명을 빼앗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정말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일을 꿰뚫어 보고 있습니까? 꿰뚫어 본다면 광야에서 사십 년을 걷지 않을 것입니다. 꿰뚫어 본다면 매번 올바른 선택을 할 것입니다.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와 놀라운 은혜를 보게 될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자신을 산 제물로 드리기를 권합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사람은 반드시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것은 아니며,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자신을 산 제물로 드리면서도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를 수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분명하게 설명해 드리지 못할 수도 있지만, 제 자신에게는 아주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사용되면 사업을 하든, 일을 하든, 목양하고 섬기든, 우리를 얽매어 지배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람 안의 잘못된 논리 체계를 버리라

우리가 모든 것을 꿰뚫어 본다면 전쟁이 무엇이 대단합니까? 여러분은 “아이고, 전쟁이 나면 사람이 죽잖아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죽으면 죽는 것입니다! 어차피 이 세상에서는 언젠가 떠나야 합니다. 가나안 땅에 가서 전쟁하는 일이 많은 사람에게 매우 잔인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무엇을 위한 일이었습니까? 그 땅의 백성은 죄악이 가득했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멸하려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멸하는 것이 매우 끔찍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들을 멸하라고 하셨다면 멸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삼천오백 년 전 모세 시대의 일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안에 있는 사람의 논리 체계를 제거하고 모든 일을 꿰뚫어 보기 시작합시다. 매번 선택할 때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선택합시다. 이스라엘 백성이 제비를 뽑아 땅을 나누는 것처럼 사람의 논리에 맞지 않아 보이는 선택도 있습니다. 이런 작은 일도 오랫동안 고민했지만, 여러분이 정말 꿰뚫어 본다면 이런 일 때문에 고민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목양과 섬김의 일을 모두 꿰뚫어 보게 하시는 것은 그것이 단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며 모든 일을 꿰뚫어 보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시든 우리는 그대로 따라가게 됩니다.

오늘 저는 반드시 여러분에게 말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은 일련의 선택의 결과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대신해 선택하신 것이 아니라 여러분 스스로 선택한 것입니다. 과거에 잘못된 선택을 했다면 오늘부터 올바른 선택을 하십시오. 하나님의 논리에 따라 다시 살펴보기 시작하십시오. 일을 꿰뚫어 본다면 반드시 아주 잘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사십 년 동안 광야 길을 걸어야 한다 해도 기쁨으로 걸을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 형제자매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싸워 승리하며 함께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습니까? 우리 가운데 뒤처지는 형제자매는 한 사람도 없어야 합니다. 자신의 뜻에 따라 선택하는 사람도 없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의지하여 선택해야 합니다. 오늘 형제자매 여러분, 일어나 싸우기 시작하십시오.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것들을 제거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선택의 근거가 되게 하십시오.

우리가 주님을 믿기 시작하고 세상에서 나온 그 순간부터 하나님은 우리를 싸움에 능한 용사로 정하셨습니다. 그 순간부터 우리는 능력 있는 군대입니다. 오늘부터 함께 제대로 된 선택을 한다면 광야에서 그렇게 오래 돌아다니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잘못된 선택을 했다면 함께 그 결과를 감당해야 합니다. 때가 무르익으면 우리는 여전히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원망과 두려움을 거절하고, 모든 ‘사람의’ 생각을 거절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는 이 모든 일은 영적인 일이기 때문입니다. “성벽을 무너뜨리고, 그 땅의 주민을 몰아내며, 그들의 모든 우상을 멸하고, 그 땅을 차지하여 그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기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선택은 매우 중요합니다.

결론

오늘 우리에게 마음이 불편한 때가 있습니까? 오늘 우리가 다른 사람 때문에 억울하게 끌려간다고 느끼는 때가 있습니까? 그것은 그때 우리가 꿰뚫어 보지 못했고 어떤 일을 너무 중요하게 여겨 그 일에 묶였기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여호와의 산을 오르고 영적인 높이를 계속 높여 일에 대한 관점이 점점 더 깊어지고 분명해지면 올바른 선택을 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이 평생 걸어가는 길은 어떻게 걷든 결국 걸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올바르게 선택했다면 계속 걸어갈 수 있고, 자신의 뜻에 따라 잘못 선택했다 해도 계속 걸어가야 합니다. 과거에 잘못 걸어온 길은 바꿀 수 없지만, 앞으로의 길은 여전히 선택할 수 있습니다.

우리 안의 믿음을 다시 정돈합시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시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자기 힘만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싸워 승리해야만 그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과거의 길에는 많은 은혜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우리가 주도적이고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하기 시작합시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관심을
关闭
暂无评论~